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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양 생모 소재도 추적/“에스더 데리고 있다” 동생에 전화

    ◎경찰,전담반 설치,공조수사 나서 서울경찰청은 23일 최에스더양(10)실종사건과 관련,방배경찰서에 수사전담반을 편성해 경기도경찰청 과천경찰서와 공조수사를 펼치도록 긴급지시를 내렸다. 경찰은 또 방배경찰서를 제외한 나머지 29개 경찰서에도 최양의 인상착의 등을 보내 최양 소재수사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경찰은 최양이 지난 88년 10월 관악구 남현동 산95 집에서 실종될 때 1백㎝의 키에 희고 동그스름한 얼굴로 왼쪽새끼손가락을 빠는 습관이 있었다고 밝혔다. 【과천=김학준기자】 최에스더양실종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과천경찰서는 이웃 사람들이 『최양은 어머니 한순애씨(35)가 가정불화끝에 데리고 가출했다』고 잇따라 증언함에 따라 아버지 최석봉씨(59)가 부인과 딸을 찾기위해 거짓신고한 것이 아닌가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최씨가족과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서 10년동안 같이 살았다는 김필자씨(43)를 비롯한 주민들에 따르면 한씨는 평소 『남편의 성격이 포악하고 나이차이가 많아 같이 살기 힘들다』고 말해오다가 지난 88년 10월중순쯤 갑자기 딸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씨는 3개월뒤 같은 동네 박모씨(37·여)와 자신의 남동생 일훈씨(29)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딸은 내가 데리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주민들은 88년 10월 이전에도 한씨가 최씨의 가혹행위에 견디지 못해 딸과함께 여러번 가출했었고 그때마다 최씨가 수소문끝에 찾아왔다고 진술했다. 또 최씨의 처남 일훈씨는 얼마전 최씨가 자신을 찾아와 『누가 물으면 누나가 딸실종 8개월 뒤 가출한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23일 실종된 딸이 「신장」이라는 곳에 갇혀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최씨의 진술에 따라 「신장」이라는 지명이 있는 하남·송탄·오산 등지를 대상으로 전화발신지 추적조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최양 행방 조속파악/대검,긴급지시 대검은 23일 최에스더양 실종사건과 관련,서울지검과 수원지검이 공조수사를 펴 최양의 행방을 조속히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 새달 비선거/아키노­에두아르도진영 세선거서 각축

    ◎「코후앙코가 사촌싸움」에 관심/「30년 앙숙」 정계장악 “3회전”/아키노/대통령후보 라모스 지명,대대적 지원/에두아르도/출사표 내고 「마르코스 영화」 재현 삽질 오는 5월11일 실시되는 필리핀의 대통령선거는 난립한 8명의 후보중 누가 승리할 것이냐 하는점 못지않게 코라손 아키노대통령의 친정인 코후앙코가문내 두 사촌집안간의 승부 결과에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은 대통령선거뿐 아니라 상·하원 의원·주지사·시의원 일부를 뽑는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는데 아키노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그녀의 직계 친정집안과 사촌인 에두아르도 코후앙코집안이 대통령·하원의원·주지사 자리를 놓고 전국 또는 지역구차원에서 맞붙는다. 출가 전 본명이 코라손 코후앙코인 아키노대통령은 이번 대선전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 대신 피델 라모스 전국방장관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대주자겸 대표주자로 출전시켰다.에두아르도쪽에서는 에두아르도 자신이 대표주자로 직접 나섰다.따라서 당초 아키노­이멜다간 「과부들의 전쟁」실현여부에 쏠렸던 비대통령선거의 관심과 흥미는 이제 코후앙코가문내의 「한가문 두집안 골육상쟁」쪽으로 바뀌었다. 마르코스의 심복으로 필리핀 최대재벌 총수였다가 마르코스정권 붕괴시 동반몰락했던 에두아르도는 마르코스 본당의 후계자를 자임하며 아키노대통령정부의 경제실정을 호되게 비판하고 있다.이에 대해 아키노는 에두아르도의 승리는 「마르코스독재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치며 자신이 지명한 라모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같은 「아키노대 에두아르도싸움」은 최소한 「민주와 독재의 대결」이라는 명분은 지니고 있다.그러나 그들의 본거지인 마닐라북부 타를라크에서 하원의원과 주지사 자리를 놓고 전개되고 있는 양측의 대결은 그야말로 사촌간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키노진영의 하원의원주자는 그녀의 남동생인 호세 코후앙코이며 에두아르도측 주자는 그의 여동생인 메르세데스 코후앙코여사로 사촌남매간 한판승부가 벌어진다.또 양진영의 주지사후보는 아키노의 올케이자 호세의 부인인 마르가리타 코후앙코여사와에두아르도의 동생인 헨리 코후앙코로 이들은 사촌시숙­사촌계수사이. 필리핀의 대부호 명문족벌로 30년이 넘도록 앙숙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이들 두 사촌집안은 이미 피해와 가해를 서로 한번씩 주고받아 이번 대결은 3라운드인 셈. 마르코스의 20년 집권시절은 에두아르도 집안의 전성기였다.에두아르도는 이 기간 동안 친위집단의 우두머리로 마르코스의 장기독재를 뒷받침하면서 필리핀 GNP중 25%를 좌우하는 재벌왕국을 구축했다.반면 아키노 집안은 그녀의 남편인 고 베니그노 아키노가 마르코스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끝내 암살범의 총탄에 희생돼야 했을 정도로 시련기였다. 그러나 86년 마르코스정권이 피플파워에 무너지면서 이같은 상황은 완전 역전됐다.코라손은 대통령궁으로 입성했고 동생 호세는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했다.반면 에두아르도는 마르코스의 해외망명길에 따라나서야 했고 3년의 망명생활뒤 귀국했을 때 그의 재벌왕국은 이미 해체돼있었다.따라서 이번의 3라운드 대결은 어떻게 보면 양진영에 사활이 걸린 셈이기도 하다.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의 대결은 단순한 집안싸움의 흥미거리차원을 넘어 정당의 정책이나 이념이 선거의 이슈가 되지못하고 족벌정치가 여전히 성행하고있는 필리핀정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있다. 타를라크의 한 농협간부는 『이곳은 코후앙코왕가의 집안 싸움터』라고 비판한다.
  • 김향숙 「떠나가는 노래」(이작가 이작품)

    ◎운명론 탈피 「각성된 여성상」 탐구/희생·순종의 고정관념 타파할 「자매애」 강조/남성중심의 체제·사회구조 천착못해 아쉬움 소설가 김향숙씨(41)가 장편소설 「떠나가는 노래」를 현대문학사에서 펴냈다.「한 여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작품은 빈민가정 출신의 한 여인이 희생과 여성다움이라는 허위의식의 굴레를 벗고 진정한 여성으로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여권주의 계열의 소설이다. 『인류의 마지막 식민지라는 빈곤층 여성의 노동과 가사의 이중부담적인 삶을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얼마나 굳건한가를 드러내보이고 싶었습니다』 「떠나가는 노래」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본성이 왜곡되고 내면의 노래 즉 소망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여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주로 혜옥이란 여주인공의 14세에서 40세에 이르는 반생이 다뤄지고 있는데 작가는 혜옥의 국민학생시절부터 공장의 시다와 미싱사 생활,그리고 연애와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남성 중심주의에 의해 겪는 극심한 고통과 정신적갈등,방황 등을 묘사하고 있다. 혜옥은 도시빈민가정의 맏딸로서 내성적인 성격이다.아버지는 허리를 다쳐서 일을 못하고 대신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부모사이의 불화가 잦다.혜옥은 유일한 남동생 혜구의 대학진학을 위해 중학 진학도 못하고 일찌감치 공장으로 내몰리지만 좋은 누이로 남기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한다.공장 시다 시절 승태라는 남자노동자를 만나 자기본위적이고 이기적인 남성의 사랑을 체험하지만 세 번의 유산 경험 끝에 그와 결혼하고 만다. 결혼하고서도 그녀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남편이 가져다 주는 돈으로 생계유지가 어렵기도 하지만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는 자각때문이다.그러나 직장여성으로서의 그녀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그녀는 직장노동과 가사노동에다 며느리의 역할까지 고스란히 떠맡을 수 밖에 없다. 한편 누이 덕으로 대학에 진학한 남동생 혜구는 운좋게 부잣집 딸과 결혼함으로써 중산층으로의 신분상승을 이룬다.하지만 누이의 은덕을 갚는 데는 인색하다.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궁색했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의 탈출이다.셋방을 전전하는 누이 혜옥의 어려움은 아랑곳없이.혜옥의 어려움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혜옥부부의 불화에 불만을 갖는 맏딸이 가출하고,내리 세 딸만을 낳은 혜옥을 참지 못한 남편이 시앗을 보아 아들을 들였기 때문이다. 여인 3대의 비극으로까지 비쳐지는 이 작품은 그 비극이 수대에까지 계속 이어지리라 암시한다.그 비극의 원흉은 현실에 탄탄히 뿌리박아 변할 줄 모르는 잘못된 고정관념들이다.남녀 성별 분업,여성다움과 모성의 신화,그로부터 파생된 여성에 대한 온갖 편견과 허위의식은 그 안에 포착된 대부분의 사람들을 흡사 자동인형처럼 조종한다.그들은 비단 남자로만 국한되지 않는다.고정관념은 성별과 계급을 초월한다.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 시어머니 명애언니 역시 잘못된 고정관념의 희생자들로 비극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소설은 또한 혜옥이 만나는 다양한 층위의 인물들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여동생 종옥,국민학교 시절 친구 송영자 등은 문제의식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잘못된 대응으로 몰락하는 인물군이다.작가가 모범으로 제시하는 인물들은 이혼하고 새 삶을 출발하는 영분언니,여성돕기에 헌신하는 은경,드넓은 시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미순 등이다. 이들에 의해 남겨지는 전언은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기력한 운명론에서 벗어나 여성 자신의 성찰과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 불평등문제가 제도개선만으로 해결되긴 어렵지요.개개인 각자의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이 병행되어야지요』 그러나 삶의 순간순간 여성들의 세세한 정서까지 드러내며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자매애(Sisterhood)라고 작가는 말한다.함께 핍박받는 여성들끼리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폭력적인 남성적 세계를 정화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그러나 이 작품은 남녀 불평등의 모든 원인을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돌리면서도 고정관념을 생성 유포시키는 체제나 사회구조에 대한 천착에 이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가족에 대한 문제제기를 거듭 하면서도 감정적 차원에 머무르는 점도 그런 측면이다. 7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으로 등단,90년 중편 「안개의 덫」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씨는 현재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평범하지만 깨어있는 주부이기도 하다.
  • 소년·소녀가장 12명,“사회온정 갚자”/사랑의 장애인 잔치

    ◎휠체어 밀며 따뜻한 격려/백화점서 함께 선물 사고 서울타워 관광/환한 얼굴로 “돕고 사는 보람 깨달았어요” 가난한 과부의 동전 한닢은 참으로 값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 과부의 동전보다 더욱 값진 사랑이 주말 서울도심에 나타나 보는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스스로도 외롭고 가난한 소년·소녀가장들이 몸이 불편한 중증장애자들을 초청,백화점이며 거리를 구경시켜주고 귀중한 선물까지 전했다. 그동안 자신들에게 베풀어준 우리사회의 온정을 정성이 담긴 실천으로 갚은 것이다. 14일 하오 부모없이 어렵게 살고있는 소년·소녀가장 12명은 자원봉사자 20여명과 함께 대부분 휠체어에 앉은 13명의 장애인들을 초청,명동에 있는 제일백화점과 남산꼭대기 서울타워를 돌아보게 했다. 이날 하오1시 중구청광장에 모인 이들은 구청측이 마련한 음식을 나누어 먹은뒤 서로 짝을 소개받고 관광버스편으로 곧바로 명동 코스모스백화점앞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먹서먹해하던 이들은 이때부터 장애인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줄을 지어 밀면서 『왜 이렇게 다쳤느냐』『밥은 어떻게 해먹느냐』고 위로해 훈훈한 연말풍경을 연출했다. 구청에서 준 선물비용 10만원씩을 받은 소년·소녀가장들도 백화점에 들어서자 나름대로 무엇을 살까 고심하다가는 꼭 필요한 선물을 골랐다. 3살때 아버지를 병으로 잃고 5살때 어머니마저 가출,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서윤희양(17·장훈여상1년)은 고려학원에서 국민학교4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는 장선희양(18)을 위해 노트와 필기구 등을 선물했다. 뇌성마비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이연숙양(19)을 부축한 오주현군(16·덕수중3년)은 『남을 도울 수 있다는게 참으로 뿌듯하다』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것 같다』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백화점 쇼핑을 마친뒤 서울타워를 돌아본 성미낭양(20)은 『몸이 불편해 가보지 못했던 곳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도록 도와준 어린동생들로부터 큰용기를 얻었으며 앞으로 자주 만나 건전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마음으로나마 격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뒷바라지한 김성순중구청장은 『평소 외로이 소외돼 왔던 소년·소녀가장과 장애인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에 참으로 감동했다』면서 『앞으로 이같은 만남을 해마다 4차례정도 정례화 하겠다』고 밝혔다.
  • 자수모임에 「세모」간부 참석/오대양사건/검찰 확인

    ◎부장급등 3∼4명 수차례 모여/오늘 집단자수 7명 구속기소 【대전=박국평·최철호·김민수·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특수부(이기배부장검사)는 7일 집단자수한 김도현씨(38)등 6명이 여러차례에 걸쳐 자수를 위한 모임을 가졌으며 이 모임에는 주식회사 세모의 부장급간부등 직원들과 구원파신도등이 참석한 사실을 밝혀내고 세모측이 자수에 개입했는지를 집중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자수한 사람들이 지난해 6월부터 자수를 권유한 것으로 밝혀진 이재문씨(39)를 비롯,세모의 부장급 간부와 구원파신도등 이씨집에서 여러차례 만나 자수의 시기와 방법등을 논의해온 것으로 밝혀냈다. 검찰은 이날 이 모임에 참석했던 세모간부등 3∼4명을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또 이재문씨가 집단 자수자들의 변호사선임료 착수금으로 준 1천6백만원 가운데 1천5백만원이 구원파 신도인 김모씨(42·여)가 대준 것임을 밝혀내고 김씨를 불러 돈을 댄 경위및 배후등을 캐고 있다. 검찰조사결과 김씨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등 강남일대에 고급의류점 3∼4개를 갖고 있으며 구원파 신도들이 운영하는 한평신용협동조합에 자신의 집과 가게를 1억여원에 근저당잡힌 것으로 드러났다. ◎박 교주 남편 재소환 검찰은 또 32명의 집단변사사건직후 현장에 있었던 박순자씨의 남편 이기정씨(57)를 7일 상오 10시쯤 소환,사건당일을 전후한 이씨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박순자씨의 남동생 용주씨(35·수감중)를 소환조사한 결과 「삼우도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같은 내용의 메모를 직접 써 박씨에게 전달했다고 말한 정화진씨(45·여)와 대질신문을 벌이기로 했다. 한편 검찰은 집단자수한 김도현씨(38)등 7명을 8일 특수폭행치사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기소키로 했다.
  • 자수자들 변호 비용 「세모」서 댄듯/오대양 수사

    ◎검찰,이재문씨에 추궁/“셋방살며 거액지급 의문” 【대전=박국평·김민수·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특수부(이기배부장검사)는 6일 오대양직원 노순호씨등을 살해암매장한 혐의로 구속된 김도현씨(38)등 6명을 자수시킨 이재문씨(39)가 자수한 이세윤씨(45)등 4명의 변호사비용 착수금으로 1천6백만원을 지급한 사실을 확인,이 돈이 세모측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출처를 집중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조사과정에서 『돈은 나 스스로 마련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가 보증금 9백만원 월세 15만원의 사글세방에 살고 있는 생활형편임을 감안할때 1천6백만원 모두를 현금으로 냈다는 사실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있다.검찰은 특히 이씨의 손위동서이자 영업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삼우통상의 사장인 세모의 고창환상무이사(46)가 이 돈을 댔을 것으로 보고 고씨를 불러 이 부분을 캐고 있다. 검찰은 또 오대양사장 박순자씨가 지난 87년 집단변사사건 직전인 8월25일 하오늦게 사건현장에 있었던 정화진씨(45·여)를 시켜 비밀사채장부로 보이는 노란서류봉투와 수첩 3∼4개를 태워버린 사실을 밝혀내고 이것들이 박씨의 남편 이기정씨(57)가 용인경찰서 수사과장 기명수씨에게 찾아달라고 했던 「천장위의 서류가방」일 것으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검찰은 또 변사현장에서 발견된 「삼우도 고통받고 있답니다」라고 쓴 메모는 변사체가 발견되기 하루전인 8월28일 상오11시쯤 정씨가 박순자씨의 남동생 용주씨에게 전해들은 말을 적어 박씨에게 전달한 것임을 밝혀내고 세모 유병언사장이 경영하던 삼우트레이딩과 오대양과의 관계를 캐고 있다. 검찰은 이에따라 금명간 나머지 8명도 소환,자·타살여부의 중요한 증거가 되는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기로 했다.
  • 박 교주 동생 「변사」 당일 행적 추적/검찰

    ◎자수 권유한 이재문씨도 재소환 조사/“유 사장­박순자씨 밀접”/피해자 진술 【대전=박국평·김민수·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특수부(이기부장검사)는 5일 오대양의 용인집단변사사건때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오주양행직원 송화빈씨(33)와 오대양사장 박순자씨의 남동생 용택씨(38)를 소환,사건 당일을 전후한 행적을 수사했다. 검찰은 또 지난달 10일 숨진 노순호씨(당시 38세·오대양총무과장)등 오대양직원 3명을 살해,암매장했다고 집단 자수한 김도현씨(38)등 6명의 자수동기를 가리기 위해 이재문씨(39)를 불러 조사했으며 이날 밤 노씨의 처 박명자씨(36)와 김씨의 처 심해연씨(31) 등 2명도 불러 이 부분을 추궁했다. 검찰은 사채피해자 김모씨(62·여·광주시)로부터 세모의 유병언사장과 박순자씨가 지난 80년대 초반까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냄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피해자 김모씨는 검찰에서 지난 83년 9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태양열주택에서 전국 신도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사장이 『엄마들이 너무 수고한다』고 격려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오대양 사채의 행방을 밝히기 위해 박씨에게 사채를 끌어다 준 영동·김천지역 사채모집책 이순희씨(31·여) 등을 불러 유사장과 송재화씨·박순자씨의 사채관계를 캐고 있다.
  • 남­북남매 “50년만의 상봉”

    ◎코리아팀 북임원 김희진씨,누나 만나/일 지바서… 족보 맞춰보며 어릴적 회고 『희진아』 강산이 5번이나 변하고 또 변한 세월. 50년 만에 동생을 만난 누나는 이 한마디를 부르짖고는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북한탁구협회 김희진 서기장(57)이 5일 밤 10시 남북탁구 단일팀의 숙소인 이곳 뉴쓰카모토호텔 506호에서 전날 서울에서 날아온 작은 누나 김화진씨(66·충북 청원군 남성면 짓대마을)와 작고한 큰누나 소생의 조카내외와 극적인 상봉을 했다. 이미 50년 전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 함경남도 원산으로 갔던 동생임을 알고 있는 누나 화진씨는 동생을 와락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어 조카 유관모(49·풍림산업 이사)가 이모(김화진씨)의 호적등본과 자신의 족보를 생면부지의 외삼촌 앞에 내밀며 정중하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이들의 상봉은 김희진씨의 고향이 충북 청원이라는 국내언론의 보도가 나간 뒤 김화진씨가 이를 확인하면서 추진됐다. 이들은 7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중요한 경기가 남아 잠을 좀 자야겠다』는 김희진씨의 요청으로 헤어졌다. 김희진씨는 『경기를 꼭 보러 오라』고 말했고 누나는 남동생들의 이름이 새겨진 18금 반지 2개를 정표로 전달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 분신 경원대생 7시간만에 숨져/시너 뿌리고 3층서 투신

    ◎어젯밤 세브란스병원서 3일 하오 3시20분쯤 경기도 성남시 경원대학교 공대건물 3층 국기게양대 난간에서 이 학교 전자계산학과 야간부 2학년 천세용군(21)이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병원으로 옮겨졌으나 7시간 만에 숨졌다. 이 학교 공과대 학생회장 황기용군(23·전자공학과 4년)은 『학생 1백50여 명이 하오 3시30분부터 공대앞 분수대광장에서 현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집회를 가지기 직전 천군이 「학우여,이제 복수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했다』고 말했다. 천군이 3층 난간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인 뒤 5m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자 학생들은 소화기를 찾아 10분 만에 불을 껐다. 천군은 학교옆 성남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고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강성심병원으로 다시 옮겨져 1시간 동안 기관지절개 수술을 받았다. 천군을 지키던 학생들은 천군이 수술을 마치자마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갔다. 천군은 이날 하오 9시30분부터 심폐기능이 정지돼 인공호흡을 실시하다가 10시25분 끝내 숨졌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천군의 치료를 맡았던 김승호(37)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하오 7시30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약간의 의식이 있었으나 곧 심장이 멎었다』고 말하고 『90%의 전신화상 가운데 특히 기도의 화상이 직접 사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천군이 사망할 당시 병원에는 천군의 외할머니와 남동생 세환군(19) 등이 있었으며 천군의 어머니 김계숙씨(41)는 천군의 사망 직후인 10시35분 병원으로 달려와 시신 앞에서 오열했다. 한편 학생들이 사경을 헤매던 천군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시신이 있는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긴 것은 투쟁장소를 한곳으로 모으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천군은 분신장소에서 발견된 유서에서 『학우가 쇠파이프에 맞아 쓰러져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얼 했는가』라고 묻고 『살아있는 학우들이 내몫까지 투쟁해주기 바란다』고 썼다. 천군은 지난해 2월 서울 동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 학교에 입학해 사회과학서클인 「한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고 학우들은 전했다. 천군은 또 그림에 소질이 있어 학교신문과 교지에 「혁세둔」이라는 이름으로 만화와 삽화를 그려왔다. 천군은 이날 분신 직전 학교신문사 특집부장 전정욱양(21·도시계획과 3년)을 만나 『오늘 집회에서 분신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김양이 전했다. 천군은 아버지 천영웅씨(47·상업) 어머니 김계숙씨 등 가족 3명과 떨어져 세차와 막노동 등으로 학비를 벌어 학교안 서클룸 등에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불길이 앗아간 “살신모정”

    ◎20대 장애아들 구하려다/50대 어머니 함께 질식사 21일 상오 2시50분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5가 33의76 「한성완구점」(주인 조상숙·33·여)에서 불이나 이 건물 3층에서 잠자던 건물주인 박노흥씨(70)의 부인 조영숙씨(57)와 둘째 아들 근재씨(27)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건물주인 박씨는 『이날 아내 및 정신지체장애자인 둘째 아들과 함께 자고 있는데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려 일어나 보니 창밖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며 『급히 인터폰으로 아랫층에 세든 완구점 주인가족들에게 불이난 사실을 알린 뒤 옷가지를 챙겨 3층 옥상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장애자인 아들을 데리고 나오려다 계단에 가득찬 연기에 질식해 미처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완구점 주인 조씨는 이날 숨진 조씨로부터 피하라는 연락을 받고 함께 자고 있던 남동생 2명과 함께 창문에 매단 이불을 타고 무사히 대피했으나 조씨와 아들은 옥상으로 통하는 3층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불은 지하1층의 완구점 창고에서 일어나 1층 완구점과 2,3층 살림방 일부 등 모두 90여 평을 태워 완구류 등 6천8백여 만 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내고 20여 분 만에 꺼졌다. 경찰은 완구점 지하창고의 천장에서 전기합선으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중국교포,동생 애타게 찾아(조약돌)

    ○…중국 흑룡강성 영안현 영안진 양곡 서호동 15에 살고 있는 교포 김정환씨(66)가 60년 만에 고국을 찾아 6살 때 헤어진 동생을 애타게 찾고 있다. 선산 김씨로 경북 경주시 동방동 413이 본적이고 부산산업촌에서 태어난 김씨는 31년 중국에 살던 백부 김상한씨(1938년 작고)의 양자로 입적돼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지금까지 생존해 있으면 94세인 아버지 상문씨의 이름과 가족들과 헤어질 당시 남동생으로 생각되는 동생이 어머니 등에 업혀 있었다는 것 말고는 가족사항에 대해 다른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연락처는 경남 울산군 농소면 신천리 475. (0522)95­2185.
  • 70노파 살해범은 손녀/“어머니와 자주 다툰 할머니 미워…”

    ◎경찰,자백받아 윤옥란씨(74·여)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노량진경찰서는 5일 윤씨의 손녀 박경례양(24·공원·영등포구 신길4동 237의15)으로부터 범행사실을 자백받고 박양을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양은 지난 4일 하오2시쯤 자신이 다니는 영등포구 신길동 A전자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 할머니 윤씨가 휴가나온 남동생에게 잘 대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하다 부엌에 있던 흉기로 윤씨의 목 등 20여군데를 마구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양은 범행뒤 자신의 목과 배·손목 등을 찔러 자살을 기도,중태에 빠졌다가 동생(18)에게 발견돼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조사결과 박양은 자신의 얼굴이 못생겼다며 지난 89년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으며 할머니 윤씨와 어머니가 자주 다투어 『할머니가 없어야 우리 집안 화목해 진다』며 윤씨를 미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화제 만발”… 서울대 졸업식

    ◎구두닦이·여자 버스운전사 출신등 “영광”/「조국혼」 배우러온 재일교포 3세도 학사모/노 대통령 맏며느리는 음대 기악과 졸업 26일 하오 치러진 90학년도 서울대 졸업식장은 역경을 딛고 형설의 공을 쌓은 구두닦이와 여자 버스운전사 출신,그리고 현직 대통령며느리 등이 함께 학위를 받는 자리가 되는 등 갖가지 화제가 만발. 경제학과를 졸업하는 서정암씨(29)는 가정형편 때문에 국민학교를 마친 뒤 강남터미널 등지에서 구두닦이를 하면서 독학,지난 87년 학력고사 3백9점을 얻어 서울대에 입학했었다. 서씨는 특히 대학에 합격한 뒤 박봉의 수입으로 자신을 도와준 환경미화원 승영일씨(39)의 후원으로 학업을 계속,이날 졸업의 영광을 안게됐다.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는 홍숙희씨(34·여)는 방직공장 여공과 버스·택시운전사 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입학했던 여성 만학도. 홍씨는 국민학교 4학년때 고향인 전남 장성에서 상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힘겹게 하면서 중·고교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1년반동안의 준비끝에 지난 87년 서울대에 합격했었다. 홍씨는 입학과 함께 결혼,가사까지 돌보는 어려움속에서도 4년동안 줄곧 B학점대의 성적을 유지했으며 졸업후에는 평생의 꿈이었던 국어교사의 길을 걷게 됐다. 또 음대 국악과를 졸업하는 민미화씨(23)는 조국을 배우기 위해 유학한 재일교포 3세. 민씨는 86년 일본 오사카에서 고교를 마친 뒤 『조국의 혼을 가르쳐 올곧은 한국인으로 키우겠다』는 아버지 민성기씨(50·음식점경영)의 뜻에 따라 서울대 국악과 가야금전공에 입학했다. 특히 민씨가 입학한 이듬해인 88년에는 바로 아래 남동생인 성치군(1)이 같은과 피리전공에,또 다음해엔 둘째 남동생 영치군(20)도 같은과 대금전공에 입학해 3남매가 나란히 국악을 전공,「조국의 소리」를 찾는 국악가족이 됐다. 한편 노태우대통령의 며느리인 신정화씨(23)도 이날 음대 기악과를 졸업했다. 지난 87년 기악과 하프전공으로 입학한 신씨는 졸업학점 3.25점을 얻었으며 졸업후 남편 노재헌씨(27)와 도미,유학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동방유량 신명수회장의 맏딸인 신씨는 지난해 6월20일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재헌씨와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렸었다.
  • 서울대서 첫 20대 여자박사 탄생(조약돌)

    ◎새달 국문학과 졸업 최혜실주부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20대 여자박사가 탄생된다. 오는 2월25일 열릴 서울대 졸업식에서 최혜실씨(28)는 30년대의 이상·최명익·박태원소설 등에 나타난 특징을 통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라는 서로 다른 미적 인생론이 한국이라는 특수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밝힌 「1930년대 한국모더니즘소설 연구」라는 논문으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게 됐다. 최씨의 남편은 지난 80년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함께 입학한 동기인 김동환씨(29)로 현재 국문학과 박사과정 3학기째이며 최씨와는 대조적으로 현대 리얼리즘소설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부터 수원 아주대의 현대소설 강좌를 맡아 출강하고 있다. 이번 졸업식에서는 최씨의 둘째 남동생(25)과 셋째 여동생(24도 공학석사와 생물교육학 학사학위를 함께 받는다.
  • 본지 창간기념일에 초대된 조성수화백의 “자화상”

    ◎“「애환 45년」 딛고 서울신문처럼 거듭 났죠”/“45년 11월22일생” 동갑내기의 「인생역정」/부산 피난시절의 역경 패기로 극복/「총 2백만부 성장」,오늘의 나와 비슷/“정상의 신문답게 사회 발전의 밑거름 되길” 조국이 광복되던 해인 45년 11월22일에 창간된 서울신문은 1만6천4백36일 동안 지령 14169호라는 굵직한 나이테를 새기면서 영향력 있는 장년신문으로 성장했다. 급변하고 소용돌이치던 지난 45년동안 서울신문은 갖은 풍상과 기복속에서 영광과 좌절,시련과 희망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왔다. 서울신문과 같은해 같은달 같은날에 태어난 사람은 현재 전국에 6백27명(남자 3백57명,여자 2백70명). 그들도 서울신문과 똑같은 역사의 궤적속에서 혼란과 전쟁,가난의 아픔을 이겨내고 이제 우리사회의 성실하고 믿음직한 장년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화가 조성수씨(45·서울 강동구 명일2동 240의4·소화미술학원장)는 21일 서울신문을 찾아 온갖 어려움을 딛고 최신시설과 영향력을 자랑하며 국내 정상에 우뚝선 서울신문의 성장에 흐뭇해했다. 서울신문이 해방을 계기로 새로 창간되었듯이 만주의 장춘에서 태어난 조씨는 이듬해인 46년 초 만주 철도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 조석창씨(75)가 귀국하게 되어 서울에서 자라게 됐다. 조씨가 미처 철이 들기도 전인 6살일때 6·25가 일어나 조씨의 누나와 여동생 및 남동생 등 일가족 6명은 피란길에 올라 부산으로 갔다. 아직 서울생활에서 제대로 터전을 닦지 못한 조씨 가족들이 전쟁때문에 피란길에 올라 온갖 곤욕을 치른 것처럼 창간한지 5년이 채 못된 서울신문도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서울신문 직원들은 당시 북괴군의 포성이 코앞에서 울리고 있는데도 전쟁발발 3일째인 28일 새벽2시30분까지 무려 12차례나 호외를 발행하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사회부장 이종석씨 등 7명이 납북되었고 유일한 한국의 종군기자였던 한규호씨가 인민군에 납치되어 살해됐다. 또한 인쇄시설 등이 2차례나 파괴·해체당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란살이 속에서 모진 고생을 겪었듯이 조씨 일가족은 처음 영도 남항동의 등대 근처 바닷가에서천막을 치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지내야 했고 조씨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이끌고 초량동과 부평동 등으로 옮겨 다니며 날품팔이와 행상을 하며 힘겹게 연명했다. 그러나 서울신문 사원들은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51년 4월3일 서울에 상경,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다시 전선이 밀리기까지 6일부터 24일까지 19일동안 아직도 한국언론사에 전설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는 진중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조씨는 피란지인 부산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60년 다시 서울로 상경했으나 조그만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61년까지 2년동안 온 식구가 굶기를 밥먹듯 하는 가난에 시달렸다. 서울신문도 60년 4·19 학생의거의 와중에서 윤전기와 사옥이 불탄 뒤 극심한 재정난으로 4월26일부터 7월25일까지 휴간할 수 밖에 없었고 계속되는 후유증으로 이듬해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기 1주일전부터 12월19일까지 장기간 휴간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서울신문은 60년 7월27일 조·석간제를 실시하고 67년 3월13일부터는 활자를 새로 교체하며 전면적인 지면개혁을 단행했으며 68년 11월22일부터는 모든 지면을 한글전용으로 제작했다. 또 창간 25주년을 맞던 70년에는 최신고속 자동윤전기 2대를 도입하여 종전의 시간당 5만부 인쇄에서 12만부를 인쇄할 수 있는 최신 시설로 끌어 올렸다. 서울신문이 이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사세확장에 땀흘릴 무렵 조씨는 그동안의 실의를 떨치고 중동고교에 수석으로 입학,장학금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 탈바꿈했다. 서강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조씨는 전공보다는 어릴 때 부터의 꿈이었던 미술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80년 초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5년동안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했다. 서울신문은 그 사이 발전을 거듭하여 80년 12월2일부터 조간신문으로 바뀌고 85년 1월에는 숙원이었던 지상 22층의 새 사옥을 마련,한국언론사상 최초의 컴퓨터로 신문을 발행하는 시스템(CTS)을 갖추었고 같은해 6월22일에는 자매지인 스포츠서울을 창간,더욱 사세를 떨치게 됐다. 서울신문이 제2의 도약을 하던 해인 85년 조씨는 미술공부를 마치고 귀국,명일동에 미술학원을 열고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으며 2년6개월 뒤에는 같은 동네에서 4층 건물을 짓고 새로 이사하여 학원운영과 창작활동을 하며 딸 셋과 부인 등 5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조씨는 『서울신문의 발자취와 나 자신의 행로가 닮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면서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우리 사회를 밝고 살기좋게 만들어가는 횃불이 돼달라』고 기원했다.
  • “서울의 새 고심” 중국동포 한약행상/「보따리장사」 실태와 문제점

    ◎“한밑천 잡는다” 소문에 계속 몰려/덕수궁ㆍ시청 지하도 등 떼지어 “점령”/“나쁜 인상 줄라” 정부선 단속 못해/89년부터 급증… 올 1만5천명 입국 요즘 서울 한복판 덕수궁 앞길과 시청 앞 지하도,파고다공원 등이 한약시장처럼 돼버렸다. 길 가득히 늘어선 중국교포들이 우황청심환 등 각종 한약들을 길바닥에 늘어놓고 손님들을 부르고 있다. 처음 덕수궁 앞길에 몇 사람씩 모이기 시작하던 이들은 점차 숫자가 늘어 길이 좁아지자 시청 앞 지하철역으로 진출하고 이곳도 모자라 파고다공원 앞까지 점령한 것이다. ▷실태◁ 이들이 덕수궁 앞길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경. 고국 방문길에 장사가 된다는 한약을 사들고 온 교포들 사이에 판로와 가격 등의 정보를 알려면 덕수궁 앞에 나가면 된다는 소문이 나 20∼30명씩 모이던 것이 얼마 뒤부터는 아예 약 보따리를 길가에 풀어놓기 시작하게 됐다. 중국과 교류가 막혀 있던 때 홍콩 등을 통해 드물게 들어오던 중국산 편자환 우황청심환 등이 희소가치에다 효험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중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모국을 찾는 교포들이 조금씩 들어온 것이 몇 곱절의 값으로 팔렸고 때마침 중국에서 개발됐다는 대머리치료제 등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자 중국산 한약은 들여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중국산 한약이 이처럼 밀어닥치자 국민보건을 담당하고 있는 보사부가 그냥 둘 수만은 없어 이들 한약에 대한 성분검사를 실시하게 됐고 그 결과 지난달 18일 중국산 우황청심환 3종과 녹태고 및 정력제로 인기가 있던 「남보」 등에서 수은과 납 등 중금속이 검출되고 함량도 부족하다고 발표하면서 한약에 대한 인기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선물용이나 여비 정도나 뽑기 위해 조금씩 들여오던 한약이 장사가 되면서 너도나도 빚까지 얻어 갖고와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갑자기 팔리지가 않으니 야단이 난 것이다. 팔리지 않은 약을 들고 시내 중심가로 한두 사람 나오기 시작하다 순식간에 중심가를 거의 모두 차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오갈 데도 없이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묵고 체류기간을 넘겨 불법체류를 하거나 생활비나 돌아갈 여비가 없어 막노동을 하는 사람까지 생기게 됐다.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지자 서울시가 단속에 나섰으나 모처럼 교류가 시작돼 고국을 찾은 교포들을 함부로 단속했다가 중국교포사회에 고국에 대한 인상만 나쁘게 만들고 자칫 반한감정까지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어 주춤하는 사이 교포노점상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됐다. 하는 수 없이 내무 법무 재무 보사부와 서울시 등 관계부처가 합동대책회의까지 열었으나 세관에서 더이상 한약을 들여오는 것을 막는다는 대책만을 세웠을 뿐 현재까지 들어와 서울도심을 차지하고 있는 교포 노점상들에 대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돼버렸다. 지금까지는 서울시가 대우와 협의하여 노점을 펴고 있는 교포들의 한약을 모두 사들인다는 것이 대책의 모두인 실정이다. ▷통관현황◁ 88년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만 해도 한 달 입국자 수가 두자리 수에 불과했던 중국교포는 이듬해인 89년 김포공항에만 8천9백7명이 들어와 88년의 4.3배에 달하고 있다. 관세청이 중국교포들이가지고 들어오는 한약재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과세통관을 하기 시작한 올 들어 10월말까지만 해도 지난해에 비해 갑절에 가까운 1만5천2백16명이 들어왔다. 중국교포들이 우리나라에 갖고 들어오는 한약은 대체로 30여 가지. 가장 흔하게 가져오는 우황청심환은 한 사람당 2백∼3백알까지 가져오며 녹용도 2㎏ 정도는 거의 모두 가져온다. 이외에도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는 편자환이며 반입량으로 볼 때 활락환 녹태고 삼편환 호골환 101발모제 강압환 등의 순이다. 올 들어 10월31일 현재까지 중국교포들이 세금을 물고 통관한 약재는 녹용 1천9백77㎏,청심환 81만4천1백10개,편자환 3만1천6백83개 등이며 감정가격은 29억여 원에 이르며 과세액만 해도 11억7천5백여 만원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한 사람당 세금없이 반입할 수 있는 면세통관량(우황청심환 1백50알,편자환 30개,녹용 1㎏)을 합치면 올해 들어서만 2백여 억원어치의 각종 약재를 들여온 셈이다. 이 금액은 교포 한 사람이 1백만원어치 이상의 한약재를 가지고 온다는 수치다. 최근에는 이같은한약재 반입 외에도 아편과 마약성분이 짙은 고가품의 약재,그림,삼베 등 반입하는 품목도 다양화되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교포들이 가져오고도 통관이 금지돼 현재 세관 보세창고에 쌓여 있는 한약만도 수십여 억원어치다. 김포공항의 한 당국자는 『정식으로 친지초청으로 온 교포는 총입국자의 5% 내외로 추산된다』고 말하고 『나머지는 모두 「위장친지」들을 동원,약장사를 하러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을 찾은 교포 한약상의 변 ○「중금속 보도」 이후 팔리지 않아 곤혹/오청자(54ㆍ심양시 거주) 서울에 사시던 시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장남(34)과 함께 지난 8월27일 심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급히 왔다. 도착해 보니 시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셔서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안타깝다. 83년 한국에 있는 친척과 연락이 되어 그동안 서신왕래만 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왕복 비행기삯과 체류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이웃사람들의 권유로 한약과 수공예품을 사왔다. 한약은 약공장에서,수공예품은 시장에서 사왔다. 9월부터 지난 15일까지 이 동네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약을 팔았는데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신문과 TV에서 「중국산 한약재에 수은 등 중금속이 들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는 한약을 사갔던 사람들까지 물건을 갖고와 환불해달라고 요구해 곤혹을 치렀다. 친척들은 내가 한약을 팔려고 밖으로 나가려 하면 창피하다고 못 나가게 막고 있다. 그래서 친척이 아침밥을 먹고 직장과 학교 등에 나가고 난 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한약을 팔러 나왔다가 친척들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돌아간다. 덕수궁으로 나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친척이 아직은 행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지만 신문에 이름과 사진이 보도되어 알게 될까 걱정이다. ○친척에 선물도 하고 여비도 보태려/심양 거주 교민(59) 한국에는 지난 9월에 홍콩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 50년 만의 귀국이었다. 일제 때 전주에서 살다가 일본인들에게 집을 빼앗겨 만주 봉천으로 가는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너무 오랜만에와서인지 고국산천도 많이 변해 있었다. 친척집에 선물도 하고 일부는 팔아서 여비에 보태 쓰려고 한약을 가져왔다. 녹용·우황청심환 등 한약재 5만원(한화 8백만원)어치를 사왔는데 김포공항에서 비싼 세금 때문에 친척들에게 선물은 못했다. 과세를 물면 물건을 가져올 수 있지만 워낙 비싸 엄두도 못내고 팔아서 여비가 될 만큼만 갖고 들어왔다. 게다가 TV와 신문에서 중국교포들이 가져오는 한약은 모두 가짜라는 소문을 퍼뜨려 팔리지도 않는다. 다행히 며칠 전 한국정부에서 우리의 한약재를 사주겠다니 무엇보다 반갑다. 덕수궁 앞길을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이따금 불평을 듣기도 한다. 우리 때문에 길거리가 지저분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특히 나이들어서 뭣 때문에 고국까지 와 이같은 고생을 하느냐며 따질 때는 섭섭한 생각까지 든다. 집사람(60)과 같이 와 현재 여관에서 묵고 있다. 하루 여관비와 식비는 1만원이면 된다. 다음 달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정부에서 빨리 우리 물건을 사주었으면 좋겠다. ○유학경비 마련하려… 밤엔 악보 그려/변은숙(25ㆍ심양대학 음대 졸업) 일본에 유학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약을 갖고 왔다. 여기에 온 교포들 가운데 대부분이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나는 중국에서도 발레단의 피아노 연주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음악공부를 더 깊이 하고 싶었다. 마침 경북 봉화가 고향인 부모가 이웃집에서 3만원(한화 5백만원)을 빌려 한약을 사주면서 한국에 가 팔아 일본유학경비로 쓰라고 해 갖고 왔다. 그러나 인천항에 도착하자마자 희망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한약에 대한 관세가 너무 비쌌다. 할수없이 절반 정도는 세관에 맡기고 절반만 찾아갖고 왔다. 서울에 먼저 와 있던 남동생(23ㆍ악사)이 용산구 이태원동에 계약금 2백만원에 월 20만원을 주기로 하고 얻은 조그만 방에 있다. 중국에서 부모가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긴 했으나 말하기는 서툴다. 한 달 동안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한국말을 익혀 지금은 어느 정도 통한다. 저녁 때는 동생의 주선으로 드럼연주단에 악보를 그려주고 1만∼3만원씩 벌고 있다. 첫날은 2만원,둘째날은 4만원어치를 팔았다. 한약이 잘 팔리지 않아 서툰 한글이지만 약명과 효용 등을 자세히 써서 내걸었다. 어떤 짓궂은 남자 손님들은 「남성정력에 좋음」이라고 써붙인 「남성 609」를 들고 효용을 실험해봤느냐고 자꾸 물어와 얼굴이 뜨겁기도 했다.
  • 화성서 13세여중생 또피살/태안읍 뒷산서/온몸 난자당하고 목졸린채

    ◎연쇄살인 사건과 수법 비슷/현장서 담배꽁초ㆍ모발 수거… 감정 의뢰/4년새 동일지역서 “9번째 희생” 【화성=김동준기자】 부녀자 폭행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에서 또다시 귀가길의 여중생이 폭행을 당하고 손발이 뒤로 묶여 알몸으로 숨진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6일 상오9시40분쯤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병점5리 원바리고개 중턱 소나무밭에서 화성 모중학교 1년 김모양(13)이 손발이 묶이고 목이 졸려 숨져있는 것을 김양의 삼촌 김명기씨(34ㆍ회사원ㆍ인천시 서구 성남1동 457의2)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삼촌 김씨는 15일 김양이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와 마을 뒷산을 수색하던중 숨진 김양의 시체를 발견했다. 김양은 발견 당시 입에 브래지어로 재갈이 물려있고 검은색 스타킹과 김양이 입고 있던 교복의 안감을 찢어 만든 끈으로 목이 심하게 졸려있었으며 양손과 양발이 스타킹으로 묶인 알몸상태에서 교복상의로 얼굴이 덮인채 소나무 밑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또 김양의 양쪽 가슴에는면도칼로 그은 듯한 수십개의 상처가 있었으며 음부에는 볼펜과 김양의 도시락 숟갈이 꽂혀있어 지난86년 9월14일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목초밭에서 이완임씨(71ㆍ여)가 폭행 살해된 뒤 8차례에 걸쳐 연쇄적으로 발생한 부녀자 폭행살해 사건의 수법과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김양이 15일 하오5시쯤 수업을 마친 뒤 학교 친구 이모양(14)과 함께 귀가하다 하오5시10분쯤 병점국민학교 앞에서 헤어졌다는 이양의 말에 따라 혼자 집으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어가다 범인에게 1백여m를 끌려가 폭행,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살해현장에서 범인이 씹다버린 껌과 담배꽁초,김양 사체의 턱밑과 왼쪽 손목애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모발 2개를 수거해 정밀검정을 의뢰하는 한편 범인이 김양의 책가방을 뒤진 것으로 보아 도시락 등에서 지문을 채취키로 했다. 김양이 살해된 곳은 86년12월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에서 약 1㎞,김양이 집과 1㎞정도 떨어진 곳으로 8차례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그동안 발생한 살해사건의 범행수법과 비슷해 연쇄살해사건의 범인과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있다. 김양은 아버지(42),어머니(38),삼촌 철기씨(33),할아버지(66) 등과 함께 살고 있으며 오빠와 남동생이 1명씩 있는 외동딸이다. ▷화성연쇄 살인사건◁ 지난86년 9월14일 이완임씨가 살해된 뒤 10월23일 박현숙양(25)이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콘크리트관에서,12월21일 이계숙양(23)이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 둑에서,이어 87년 1월11일 홍진영양(19)이 태안읍 황계리 논 한가운데 볏짚더미 속에서 폭행당한 뒤 목졸려 숨진채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뒤 88년 9월7일 안기순씨(54)가 화성군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같은 수법으로 살해된채 발견됐으며 한달만인 9월16일 태안읍 진안1리 박상희양(14)이 집에서 폭행살해되는 등 화성군내에서만 8차례의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바 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89년 7월 마지막 사건인 박양 살해사건의 범인 윤성여씨(23ㆍ화성군 태안읍 진안리)만을검거했을뿐 나머지 사건은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강 총리ㆍ누이동생 44년만의 해후 주변

    “영순이냐” 묻자 “통일 도와줘요”/비서관에 “오빠 잘 모셔요” 부탁/북측,새벽면담 주선… 회담 영향줄까 한때 거절 ○…강영훈총리가 북한에 살고 있는 누이동생 영순씨(64)와 30대 중반의 그의 아들,즉 자신의 조카를 만난 것은 지난19일 새벽1시쯤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영빈관) 안 자신의 거실에서였다. 홍장관과 임원장도 비슷한 시간에 각각 자신의 거실에서 북측의 가족들을 상봉했는데 홍장관은 85년 적십자회담때 만난 누이 경애씨(72)와 외조카 김광섭씨(50)를 만났고 임원장은 누이동생 동연씨(54ㆍ원산거주)와 남동생 동진씨(41ㆍ트럭운전사ㆍ원산거주)를 분단이후 처음으로 재회했다. 우리측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하면서부터 북한의 최봉춘 책임연락관은 『강총리 등 실향민 대표 3명의 가족들이 평양에 와 있으니 만나보라』고 재촉했으나 우리측은 회담분위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사코 사양했다는 후문. 그러나 북한측의 요구가 너무 집요하고 혹시 인도주의를 들먹이는 역선전에 이용당할 소재를 제공할 구실을 줄지 몰라 공식일정이 다끝난 다음에 잠시 만나기로 해 이날 상봉이 이뤄졌으나 보안유지를 당부했다는 것. 강총리 등은 전날(18일) 하오11시30분쯤 목란관에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뒤 숙소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19일 상오1시부터 1시간정도씩 각자 방에서 가족들을 상봉했으나 배석자가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화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강총리가 누이 영순씨 그리고 조카를 상봉해 침실로 들어갈 때까지 대기실에는 수행원인 이흥주 국무총리 제1행정조정관과 강병규 총리비서관만이 남아 상봉장면을 지켜봤다고. 강총리가 먼저 누이동생을 보고 『네가 영순이냐』고 하자 영순씨는 『오빠』라고 불렀으며 강총리는 곧바로 이들을 침실로 안내했다는 것. 상오1시50분쯤 강총리가 『손님 가신다』고 해 다시 이조정관 등이 대기실로 들어갔더니 강총리가 웃으면서 나오며 이들의 배웅을 부탁하더라고. 곧이어 북한측 안내원들도 대기실에 들어왔는데 영순씨는 갑자기 긴장된 표정으로 강총리에게 『통일이 앞당겨지도록 도와달라』고말했고 강총리는 『그래,그래 염려말라』고 응답. 강비서관이 내의,시계,전자제품 등 선물보자기를 영순씨에게 건네주자 영순씨는 우리측 관계자들에게 『서울에서 왔느냐. 우리 오빠 잘 모셔달라』고 부탁했으며 강총리의 조카도 『총리님을 잘 모셔달라. 통일이 빨리오도록 도와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강총리는 지난75년 미국에 있을 때는 누이동생 영순씨의 소식을 알았으나 그 이후는 생사를 모르고 있다가 이날 월남한지 만 44년만에 누이동생을 직접 상봉했다는 것. 이조정관은 『강총리가 그래도 의연하시더라』면서 『강총리가 누이동생을 만날 때 울었느냐』는 질문에는 『불문가지 아니냐』며 강총리의 아픈 마음을 대변. ○…정부가 강총리 등의 가족상봉 사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이날 이 사실을 발표하게 된 것은 21일 남북축구취재차 서울에 온 북한 축구선수단의 한 수행기자가 이를 우리측 기자들에게 흘려줘 유포됐기 때문.
  • 강총리,평양서 누이동생 만났다/총리회담때

    ◎홍통일원 누나ㆍ임대변인은 두 동생 상봉 강영훈 국무총리를 비롯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 3명이 2차 평양회담을 끝내고 떠나던 날인 지난19일 새벽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난것으로 밝혀졌다. 이진 총리비서실장은 22일상오 『강총리는 지난19일 상오1시 백화원초대소에서 평양에 살고 있는 누이동생 강영순씨(64)와 그의 아들(30대)을 50여분동안 만났다』고 발표했다. 이실장은 『지난8일과 12일 등 두차례에 걸친 양측 연락관 접촉에서 우리측은 대표단이든 수행원이든간에 이번 2차회담 기간중에는 아무도 이산가족을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회담기간 중에도 북한측이 강총리의 가족상봉을 적극 알선했으나 사양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북한측은 강총리의 북에 있는 가족들이 인도적인 견지에서 만나고 싶어한다는 최종적인 연락을 해왔고 자칫 안만났을 경우 역선전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어 만났다』고 말했다. 홍성철 통일원장관과 임동원 외무부외교안보연구원장도 강총리와 거의 같은 시간에 각각 숙소에서 1시간정도 북한의가족들을 상봉했는데 홍장관은 누나 경애씨(72)와 누나의 아들 김광섭씨(50)를,임원장은 누이동생 동연씨(54ㆍ원산거주)와 남동생 동진씨(41ㆍ트럭운전사)를 만났다. 정부가 강총리 등 우리 대표단의 북한가족 상봉사실을 이날 뒤늦게 공개한 것은 당시 북한측이 보안유지를 약속했으나 남북통일축구대회 참석차 21일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온 북한선수단을 수행한 기자들이 이 사실을 은밀히 언론에 유표했기 때문이라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밝혔다.
  • 「늙은 누님」과 회담분위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조제분유로 모유를 대신하고 1회용 종이기저귀를 써서 아기를 키우는 지금 사람들은 「암죽」을 모를 것이다. 한옴큼의 쌀을 폭폭 끓여서 갓난아기가 먹을 죽을 쑨다. 중간에 참기름을 아기눈물만큼 떨어뜨리고 수저로 으깨가며 오래오래 끓여야 한다. 엄마젖처럼 건데기의 형태가 거의 없도록 부드럽게 쑤는 것이다. 쑤는데 공도 많이 들지만 무엇보다도 입쌀이 귀할 때에는 그 쌀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암죽」으로 비유하는 이언이 우리에게는 꽤 있다. 「갓난아이 암죽쌀로 한달에 소두 한말은 든다」 「밥쌀은 커녕 암죽쌀도 없다」 따위가 그것이다. 젖이 없어 암죽으로 아기를 키우는 엄마곁에서 그래도 함께 걱정하고 애써줄 수 있는 가족으로는 「큰 누나」가 제일이다. 어머니 대신 죽도 쒀야하고 기저귀 수발도 해야한다. 대체로 누나는 어머니 다음으로 아기에게 헌신적이다. 그래서 먼곳에 출가를 하더라도 자기손으로 거두며 키웠던 동생,특히 막둥이 남동생에게는 애틋한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마치 친정에 두고온 자식처럼 마음에 박혀일생을 가는 육친애가 되는 것이다. 임춘심할머니의,동생 「춘길」씨에 대한 그리움은 그런 것일게다. 그 동생을 단서로 하여 줄줄이 엮여서 기억의 수면위로 떠오르는 친정식구와 고향의 생각때문에 애가 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북에서 온 「춘길」이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무근」이란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했을 때 쓰는 말이다. 남북 총리회담에 북측 일원으로 따라온 「림춘길」이 임춘심할머니의 동생이 아니라고 해서 임할머니의 동생에 「춘길」이가 있다고 하는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름과 주소와 모습이 신통하게도 닮은,그렇지만 임할머니의 동생은 아닌 「춘길」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임할머니의 동생과 그 동기간의 존재를 「사실무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머니대신 암죽을 쑤어 먹이고 등에 업어 키우느라고 누나의 잔등을 뜨뜻하게 적셔놓곤 하던 동생의 기억이 고희의 누님가슴을 어제처럼 애절하게 파고드는 막둥이 동생에 대한 기억까지를 「사실무근」이라고 뭉갤 수는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의 「임씨 남매」 화제를 통해 우리가 정작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은 임할머니보다 오히려 북측 대표단의 「림춘길」이었다. 임춘심할머니의 「동생같다」는 말을,손을 홰홰 젓듯이 「사실무근」으로 몰아붙이고 그리고 덧붙였다는 말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회담의 분위기를 해치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는 대목이 그렇고,림춘길이 이 사실을 부인했다는 보도가 남쪽 매체에 반드시 실리기를 요구했다는 대목이 그렇다. 노경의 이산 남매가 극적으로 상봉하여 서리서리 맺힌 한을 풀어나가는 장면은 한민족 공동체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서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장면을 고대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회담의 분위기를 해치는 저의」일 수 있다는 생각을 북쪽 손님 림춘길은 어째서 했을까.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이 남쪽에 꼭 보도되어야 할 절박성은 무엇일까. 더구나 그는 이번 회담 대표단의 막후 실력자라고 한다. 그런 그가 기겁을 하듯이 「혈육의 가능성」을 떨쳐버려야 하는 것은무엇 때문일까. 남쪽에서 「가족이 나타나는 상황」이 그토록 그에게는 반갑잖은 것일까. 무척 안쓰럽다. 「북쪽 손님」들은 판문점에 도착하면서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명을 통해 기조연설을 통해 「문목사」 「임학생」 「문신부」 등의 구속자석방을 입을 모아 주장했다. 그리고 정대표와 수행원은 물론 기자들까지도 그들 구속자 가족이라도 만나 위로의 뜻을 전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 「인도적」인 뜻을 성사시키고 때로는 강경하고 집요하게 조르는 사람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토록 인도적 일양이면 일흔의 임춘심할머니가 「이제 못만나면 나는 죽어 영영 못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며 애절해 하는 사연도 「인도적」으로 들어줄법한 일이다. 기고 아닌 것은 만나보면 밝혀질 일,만나보지도 못한 채로는 한이 된다. 70난 할머니의 노안의 눈물까지를 「회담분위기를 해치려는 저의」로 의심해야 하는 메마른 가슴이 누구의 뜻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이 기회에 「림춘길」을 비롯한 「북쪽손님」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70난 시골할머니와 모의해서 회담분위기를 흐리는 저의를 실현시킬 공작을 하기에는 남쪽 사회는 너무 물렁물렁하다. 매체들의 극성 때문에도 어떤 「저의」도 행동에 옮겨지기 전에 들통이 나는데 순진하고 나이 많은 할머니와 짜고 그런 일을 해낼 형편부터가 남쪽은 안된다. 그래서 「림춘길」의 발상법에 우리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보면 이번통에 헛웃음이 나게 하는 또 한가지 기억이 있다. 가을에 유난히 돋보이는 통일로 길을 「북측 손님」들이 개선한 영웅처럼 옹위를 받으며 달려오는 모습이 비치는 화면을 지켜보며 한 나이든 문화계인사가 하던 말이다. 『… 경협 핑계로 돈이나 잔뜩 우려가고,법이니 구속자 석방따위,다 내놓게 한 뒤에 챙길 것 다 챙겨버리고,트집잡아 회담 못하겠다고 나동그라질 속셈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말을 들은 순간,헛웃음과 함께 강하게 불쾌감을 느꼈었다. 와주기만 한 것도 대견해서 칙사대접을 하고 크리스탈그릇 다루듯 「깨질세라 무너질세라」 조심을 하며 지켜보는 중인데 그 인사가 던진 비딱한 예언은 불길하고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외곬으로 뻗은 집요한 보수성이 혐오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 인사가 한 말이 차츰 꿈틀거리며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잘 선택한 모사들을 비켜놓고 보면 북측 논리의 기본 골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한 핏줄에 담긴 혈연의 확인조차도 자유롭게 행사하기를 겁에 질려하는 듯한 모습이 서글프고 맥풀리게도 했기 때문이다. 회담에서 제의된 내용중에는 북한이 내부 개방의 의지를 비추는 부분은 전혀 없다. 그러고는 『… 상대방을 소개하는 출판의 자유와 상대방의 사상을 신봉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측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남측도 똑같이 잘못이 있었다』는 전제를 면죄부처럼 앞세우는 남쪽 언론의 「양심주의」에 비하면 북측의 논리는 견고하고 일사불란하다. 불쾌하던 보수인사의 「예언」이 꿈틀꿈틀 되살아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모두가 한결같이 건져올린 한마리 말의 수확은 있다. 『만난 것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가슴에서 꿈틀거리는 회의를 가라앉혀 줄 수 있을지 어떨지 지금으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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