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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열전:2/全泰壹(정직한 역사 되찾기)

    ◎개발독재 분신 항거… 노동운동 물꼬 터/피복공장 근로자로 허울뿐인 노동법에 분노/인간 부품화 거부… 사용자·독재와 죽음의 투쟁/‘YH사건’ 등 70·80년대 노동운동 정신적 지주로 개발독재가 한창 무르익던 70년 11월 13일 하오 1시30분.동대문 평화시장 건물에서 시뻘건 불덩이 하나가 뛰쳐나오며 피끓는 절규를 뱉어냈다.“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불길에 휩싸여 쓰러져 있으면서도 그는 외쳤다.“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 옆에는 ‘근로기준법’ 책이 불타고 있었다.허울좋은 근로기준법 화형식이었다. 21살의 청년 全泰壹은 그렇게 젊은 생을 마감했다.그는 이름없는 한 노동자였다.동대문시장 일대 재단사들의 모임인 삼동회 회장일 뿐이었다.그러나 그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그 이후 ‘노동자’ ‘노동운동’이란 말들이 입에 올려지기 시작하고 크고 작은 노동운동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그때까지 입에 재갈이 물린 것 같던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그해 11월청주에서 여공 50명이 상경,체불노임 청산 등을 요구하며 노동청 앞에서 ‘감히’ 농성을 벌였다.의정부 외기노조원 21명은 노조운동 방해에 항의해 전원 분신자살을 기도,사용자와 경찰을 떨게 만들었다.수많은 지식인도 위험을 무릅쓰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모두 전례가 없던 일들이었다.사건 당시 삼동회 회원이던 崔鍾寅씨(51·청우회 회장)는 “태일의 분신은 우리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함께 용기로 다가왔습니다.우리는 곧 그의 외침을 혈서로 써들고 거리로 나섰죠.경찰들에게 머리가 깨지며 끌려가면서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쳤습니다”라고 회고했다. 全泰壹의 노동운동은 ‘全泰壹 사상’으로 승화되며 70,80년대 군사독재시절 노동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원풍모방사건’이나 ‘YH사건’,인천의 ‘동일방직사건’등 굵직굵직한 노동운동은 바로 全泰壹 열사가 지펴놓은 노동운동의 불이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그것은 어떤 저명한 노동학자의 ‘노동운동론’보다도 위대한 ‘全泰壹 정신’의 실천이었다. 全泰壹 정신의 핵심은 ‘인간선언’과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다. 그의 분신은 불의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인간은 노예일 수 없다는 진실의 증언이었다.다리 한번 제대로 못펴고 한 평에 4명이 끼어 앉아 하루 15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한다고 생각해보라.그렇게 일하고도 항상 배고픈 사람들이 바로 평화시장 일대 피복공장 노동자들이었다. 全泰壹 열사는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찾아주려고 했다.업주들에게 끊임없이 개선을 요구했고,시청 근로감독관실과 노동청을 수십차례 드나들며 싸움을 벌여나갔다.그러나 사용주와 권력은 결국 한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죽음으로써 그 거대한 억압의 틀을 깨려고 했다.그는 죽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 생애 못굴린 덩이를,덩이를/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굴리는데,굴리는데,도울 수만 있다면/이룰 수만 있다면….” 거의 30년이 지난 오늘,全泰壹 열사는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새겨지고 있는가.대답은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경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IMF시대에 全泰壹은 분명 살아 있어야 한다.경제제일주의에 의한 인간의 부품화,노동자들의 희생을 거름으로 한 경제회생 논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그리고 IMF체제의 극복을 위해서 그는 반드시 우뚝 서 있어야 한다. ◎일기에 나타난 전태일 정신/“연소자를 부자들 기름으로 쓰는 세상”/시대모순 한탄·뜨거운 민중 사랑 절절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全泰壹 열사지만 그는 일기와 낙서,소설 초고 등의 기록을 남겼다.여기에는 시대적 모순과 그의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인간의 본질을 해치는 비평화적·비인간적 행위이다.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1969년 12월 어느날의 일기) “선생님,여기 본능을 모르는 인간이 있습니다.그저 빨리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는 생명체가 있습니다.그리고 죽어가고 있습니다.그것도 미생물이 아닌,짐승도 아닌,인간이 있습니다.인간,부(富)한 환경에서 거부당하고,사회라는 기구는 그들 연소자를 사회의 거름으로 쓰고 있습니다.부한자의 더 비대해지기 위한 거름으로.”(1970년의 소설 초고) ◎전태일씨 가족들/꺾이지 않는 투쟁 의지 모친 통해 부활/이소선 여사 수차례 구속 민주투사로 70년 11월 13일 全泰壹 열사는 몸을 불살라 죽었다.그러나 그순간 그는 부활했다.그것은 어머니 이소선 여사(69)를 통해서였다. “어머니,담대해지세요….어머니,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아들이 죽어가며 손을 붙들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그 순간부터 李여사는 ‘이소선’이 아닌 ‘전태일’이 되어 있었다.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그녀는 시신 인수도 거부한 채 아들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8개조항(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시키려는 내용)의 이행만을 요구했다.파장을 우려한 당국이 3천만원(지금 돈으로 약 5억여원)이라는 거액으로 회유하려 했으나 어머니의,아니 부활한 전태일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여론이 진정되고 당국이 설립된 노조에 탄압을 가해오자 그녀는 청계노조 간부들과 석유통을 쌓아놓고 분신위협으로 맞섰다.그렇게 노조를 지켜냈다. 또 시국재판에서 판사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로 법정모독죄로 1년간 복역하고 여러차례에 걸쳐 구속을 당하는 등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섰다. “태일이는 비록 죽었지만,태일이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들,이 땅의 억압받는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 태일이를 위하는 길이요,태일이를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장남인 전태일 열사 밑으로 남동생 태삼씨(48·봉제업)와 여동생 순옥(45·영국 유학)·순덕씨(38·주부)가 있다.어릴적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실직, 사망 등으로 모두 학교문턱을 제대로 밟아보지 못했다.순옥씨만이 늦게나마 몇몇 뜻있는 단체의 후원을 받아 영국 워릭대학에서 못이룬 형제들의 학업의 꿈을 대신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 연보 ▲1948=경북 대구시남산동에서 전상수·이소선씨의 장남으로 태어남. ▲1963=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 입학. ▲1965=평화시장내 삼일사에 견습공으로 취직. ▲1967=한미사 재단사가 됨. ▲1969.6=평화시장내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조직. ▲1970.9=왕성사 재단사로 취직.바보회를 ‘삼동친목회’로 새롭게 조직하고 회장이 됨. ▲1970.10=평화시장 노동자 근로개선 진정서를 노동청에 제출.삼동회 대표들이 평화시장주식회사 사무실에 찾아가 다락방 철폐,노조결성 지원 등 8개항 요구. ▲1970.10.24=근로조건 개선 시위 기도했으나 실패. ▲1970.11.13=‘근로기준법 화형식’ 거행하며 분신.성모병원에서 숨짐. ◎인터뷰/분신 당시 집회 참가 李承喆씨/“내 죽음울 헛되이 말라” 목소리 쟁쟁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갖자던 태일의 결의에 찬 눈빛이 눈에 선합니다” 全泰壹 열사의 분신 당시 삼동회 회원으로 집회에 참가해 모든 것을 지켜보았던 李承喆씨(49·자영업).그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쿵쿵 뛴다”고 했다. “태일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근로기준법을 화형시키겠다고 했을때 우리들은 순간 긴장했지요.그러나 설마 분신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李씨는 全泰壹 열사가 온몸에 화기가 올라 숨이 콱콱 막히는 지경에서도 모여든 친구들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쳤다고 했다.죽기전 병상에서도 “내가 이루지 못한 일을 꼭 이루어 달라”고 했고,대답이 없자 “왜 대답하지 않는가”라고 소리치며 일어나려고 했다고.그러자 친구들은 그를 붙잡고 “네 말대로 하겠다.맹세한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했다. 李씨를 비롯한 동료들은 결국 달포뒤 노조를 결성해 全泰壹 열사와의 약속지키기에 나섰다.그리고 노동자 교육을 위한 ‘노동교실’ 설립,근로시간 단축,다락방 철거 등 많은 것을 쟁취했다.많은 동료들이 감옥을 들락거리며 싸워 얻어낸 성과였다. 李씨는 최근 일부 언론에서 개발독재의 상징인 朴正熙 전대통령이 우리 경제성장의 일등공신처럼 비쳐지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그는 “우리 경제는 60,70년대 노동자들의 뼈빠진 희생 위에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 쉽지 않은 남녘생활(탈북 그 이후:1)

    ◎자본주의 적응못해 탈선 빈번/법·제도 등 잘몰라 자신도 모르게 범법/소외감 달래려 술·도박… 정착금 탕진도/부적응자 재교육·취업알선 등 대책 절실 오는 15일은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분단 53주년이 되는 날. 지난 50여년 동안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에서 살다 남한으로 탈주한 북한 이탈주민(탈북자)들은 700여명에 이른다. 직업이나 탈출동기가 제각각이듯 남한에서의 삶도 다양하다. 상당수는 우리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사선을 넘을 때 기대했던 것 만큼 순탄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이 되고 싶다는 희망,두고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등 탈북자들이 겪는 明과 暗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남한 생활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6일 상오 서울 강남경찰서 유치장. 100만원짜리 고액 위조수표 사건과 관련,구속된 탈북자 鄭龍씨(28·서울 강남구 일원동)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하룻동안의 유치장 생활로 얼굴이 몹시 상기된 鄭씨는 남한 생활 1년도 채 안된 상태에서 유치장 신세를 진다는 것이믿기지 않는 듯 담배를 계속 빼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조금만 남한 생활에 익숙했고 법을 알았더라면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텐데…” 鄭씨는 지난해 9월 먼저 북한을 탈출한 형 鄭연씨(33)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와 여동생,남동생 등 가족 3명과 함께 북한을 탈출,화제가 됐던 인물. 鄭씨는 “평양에서 비행군관학교를 다니다 92년 유학중 남한으로 귀순한 형 때문에 함북 온성군 탄광지역으로 쫓겨나 종이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이 생각난다”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다시 먼 곳으로 숙청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때 경찰을 잔뜩 긴장시켰던 100만원짜리 위조수표 사건은 말 그대로 남한 물정에 어두웠던 한 탈북자의 어처구니없는 범죄였다. 지난 6월 鄭씨는 사회적응 훈련을 마치고 형 친구이자 89년 귀순해 냉면 체인점 사업을 하는 全모씨(31)의 회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월급은 불과 50만원이었지만 국가에서 아파트를 제공받아 다른 탈북자에 비해 쉽게 출발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회사 동료 金모씨의 컴퓨터 가방에 들어 있던100만원짜리 위조수표를 몰래 꺼내 은행에 입금하려다 은행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수표는 金씨 등 3명이 회사 사무실에서 컴퓨터 스캐너로 위조한 것이었다. 鄭씨는 “친한 동료의 수표가 사무실에 돌아다니고 있어 입금하려 했을 뿐 범행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및 절도 혐의로 구속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뒷면에 인쇄조차 안된 조잡한 수표를 알고도 입금시킨 뒤 신고한 은행원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90년대 이후 탈북 귀순자가 늘어나면서 남한 사회에 정착한 이들의 삶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귀순,주변의 지원 속에 풍요롭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전문직업인 연예인 신앙인 등으로 변신,북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꾸려 나가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鄭씨처럼 적응에 실패해 범죄의 유혹에 빠지거나 정착금을 탕진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시베리아 벌목공 출신인 金모씨(35)는 “솔직히 문화적 차이와 소외감 때문에 생활에자신이 없다”면서 “적응을 하지 못해 술과 도박으로 소일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귀순자 朴모씨(42)는 “취직을 해도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는 것이 싫어 그만두는 탈북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탈북자 모임인 ‘숭의동지회’ 관계자는 “북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탈북자들은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상당수가 개인능력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므로 정부는 부적응자들의 재교육 및 취업,장래문제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金 대통령 인촌강좌 특강­강의 전문

    ◎“민족의 저력으로 IMF 극복 자신”/올해 고생하면 내년부터 좋아질것/민주주의·시장경제 투명하게 시행/“정경유착·관치금융 뿌리 뽑겠다” 우리 모두 존경하는 인촌(仁村) 金性洙 선생의 기념관에서 강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한국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저명한 이 대학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강의하는 것이 기쁩니다. 고대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좋은 길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명예박사학위를 준 것은 앞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개혁이 잘 될 것을 알고 그런 것 같습니다.‘아전인수’라는 말을 저럴 때 쓰는구나 하고 생각도 하실 것입니다.경제를 잘 알고 운용하는 데 앞장 서 반드시 성공해 고대에서 학위를 준 뜻에 보답하겠습니다. ▷민족의 저력 강조◁ 우리민족의 저력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동아시아를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동아시아를 보면 티벳 몽고 만주 등 전부 중국인데 조그만한 혹같이 붙어있는 게 한국입니다.다른 곳은 중국화됐지만 우리나라는그렇지 않고 남아있습니다.몽고는 중국을 100여년 지배했고 만주족도 1632년 청나라를 세우고 중국대륙을 270년 동안 통치했지만 그 뒤에는 씨도 없어졌습니다.우리나라는 2000년 동안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면에서 영향을 받고 속국도 되고 조공도 바쳤는 데 왜 속국이 안됐습니까.그 이유가 있습니다.몽고나 만주가 흔적도 없어진 것은 중국의 고급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동화했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재창조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대표적인 고승인 원효가 해동 불교를 일으키는 등 독특한 불교의 경지를 개척했습니다.석굴암·불국사·불교미술·건축 등 전부 한국적인 특색이 있습니다.유교도 그렇습니다.고려 말부터 우리나라 학문을 지배하게 된 성리학도 우리는 조선화했습니다.조선시대의 대학자인 퇴계선생과 율곡선생은 성리학을 우리 여건에 맞게 발전시켰습니다.퇴계선생의 성리학에 대한 학문세계는 세계에 널리 퍼져있습니다.성균관 중심으로 매년 20개국에서 모여서 연구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동화되지 않았던 것입니다.조상들에 대해 경탄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러한 게 우리에게 큰 저력이 돼서 현재 한반도에 7,00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우리는 음식·말·의복 모든 것이 독특한 한국적인 문화 민족입니다. 저력의 두번째는 교육열입니다.우리나라와 같은 교육열을 가진 민족은 유대민족입니다.유대민족은 정말로 지독합니다.공부잘하면 돈을 주고 음악을 잘해도 지원해 주는 게 유대민족입니다.부모님들이 공부 못하는 자녀를 때리는 게 유대민족입니다.하버드대학은 유대인으로 넘칩니다.이 대학에는 수를 제한할 정도로 한국인도 많습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서당이 있었습니다.상민들은 과거를 볼수도 없었지만 공부를 했습니다.과거시험은 못치르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사람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자식들은 가르쳐야 한다.내 세상은 못살지만 자식들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지금도 그렇지만 6·25 전쟁중에서도 논밭 팔고 소 팔아서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남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험한 일을 한 여성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교육열은 한해 두해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우수한 인적 자원을 만들어낸 토대가 됐던 것입니다.조상들에게 감사합니다.지금은 지식의 시대입니다.이러한 교육열은 엄청난 힘이 됩니다. ○21세기엔 정보가 중요 저항의식도 중요합니다.고려시대 몽고가 침략했을 때에도 삼별초가 망할 때까지 40년간 싸웠습니다.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몽고나 만주족이 중국에서는 직할통치를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실질적인 독립을 줬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일제시대를 보면 우리 민족의 저항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 만주 시베리아 대륙으로 가서 40년간 무장투쟁을 했습니다.식민생활 전 기간중 무장투쟁을 한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1919년 임시정부를 만든 뒤에도 계속 싸웠습니다.이것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입니다.공산주의와 싸워서 격퇴한 이유도 이런 것입니다. 한(恨)은 한국 사람의 특별한 정서입니다.한은 민중,국민들이 좌절된 소망을 안고 이를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심정입니다.어떻게든 잘 살아보자,나는 못살아도 자식들은 잘 살게 하자는 게 이러한 것입니다.우리의 명당은 현세에서 잘 살겠다는 것입니다.내세는 없습니다.민족의 대표적인 이야기인 춘향이의 한은 이도령과 사는 것입니다.춘향은 어려움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한국인은 이러한 한의 정서를 갖고 있는 민족입니다.심청이는 옥황상제가 살려서 황후가 됐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아버지 눈을 뜨는 것을 보고서야 한이 풀렸습니다.한의 정신은 국제통화기금(IMF)도 극복하고 분단도 극복해 선진국가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특색입니다. ▷민족의 장래◁ 다음은 우리 민족의 내일에 대해 말하겠습니다.21세기에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20세기는 조직적이고 단합된 일사분란한 힘이 필요한 때입니다.우리나라는이러한 능력은 부족합니다.자본 노동력 자원 등을 손에 쥘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하지만 21세기는 정보 두뇌 등이 중요합니다.미국의 빌 게이츠를 최근에 만났는데 그는 미국 사람이지만 키도 크지 않았습니다.얼굴도 대단이 특색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하지만 그는 뛰어난 머리와 두뇌로 재산이 500억달러가 넘는 부자가 됐습니다.그는 정보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구는 2억5,000만명입니다.만약 룩셈부르크에 빌 게이츠같은 사람이 10명만 있으면 미국보다 우수할 수가 있습니다.21세기에는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아야 됩니다.이런 점에서 우리는 21세기가 20세기보다 유리합니다.문화민족이고 교육민족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전력을 다해서 소질을 개발해야 합니다.현재 국내에는 대학도 많고 학생도 많지만 대학수준은 세계와 너무 벌어져 있고 또 큰 성과도 없습니다.교육이 입시위주여서 창의력 발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반드시 교육개혁을 해서 21세기에 적응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도록 하겠습니다.그래야 선진대열에 당당히 나갈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시켜야 합니다.제대로 했더라면 IMF도 없었을 것입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하지 않으니까 권력과 경제가 결탁됐던 것입니다. 국민들이 유리창속을 보듯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게 투명하게 이뤄지고 기업들도 경쟁을 통해 돈벌려고 전력을 다했더라면 IMF사태는 없었을 것입니다.정부가 은행의 주식을 한주도 갖지 않고 있으면서 은행장을 임명하고 한보그룹에 억지로 대출해 부실 대출을 늘린 게 과거 정부였습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잘됐다면 국민이 지금처럼 수 십조원의 부담을 지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하는 게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을 없애는 길입니다. 국민정부에서 기업인들의 활동은 자유롭습니다.정부는 어떠한 간섭이나 지배도 하지 않고 위협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정부에 잘못 보이면 지장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30대 재벌 회장들에게도 말했었습니다. 재벌회장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열심히일해서 이익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적자를 내면 은행도 망하고 국민의 부담이 늘기 때문입니다.흑자를 내서 세금내는 게 애국자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수출을 많이 하면 애국자고 그렇게 하면 대통령은 재벌회장들을 업고 다니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정치인에게 과거 정부처럼 자금을 줄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주고 싶으면 법대로 하도록 했습니다.야당에게 줘도 아무일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투명하게 할 것입니다. 정치가 경제와 유착하거나 은행을 좌지우지하면 나라가 망합니다.우리 경제를 세계 경제 수준에 올리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결심을 여러분에게 다짐합니다. ▷남북문제◁ 남북문제도 중요합니다.남북의 평화공존과 협력을 해나가야 합니다.통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평화를 이루고 협력해서 사는 게 필요합니다.손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무력도발 불용과 북한 흡수통일 배제,교류와 협력 등 대북(對北) 3대 원칙을 밝혔습니다.미국을 방문해서도 밝혔습니다.대만의 수 천개 기업은 중국에 합작 진출해 서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무력도발은 용납 못해 현대그룹이 소끌고 간 것은 교류와 협력이 바람직하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입니다.鄭周永 명예회장은 세계에서 나보다 더 유명합니다.금강산개발도 잘되기를 바랍니다.무력도발이나 남한을 전복하려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음지 구석구석에 있는 악한 것을 죽이는 것도 햇볕입니다.확고한 자세로 안보태세를 갖추고 한편으로는 동족의 입장에서 화해를 하고 북한도 잘되도록 유도하겠습니다.통일은 좀 늦더라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게 필요합니다. 경제를 다시 발전시키는 것은 세계로 가는 중요한 조건입니다.인내심과 성의,확고한 결의를 갖고 남북문제에 대처할 것입니다.완전히 장담하지는 않지만 3대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난 극복과 국민에 대한 당부◁ 경제난 극복에 대해서는 바르게 가고 있습니다.가용 외환 보유고는 대통령에 당선될 때에는 38억7,000만달러였지만 지금은 369억달러입니다.올해 무역수지 흑자는 400억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 됩니다.다시는 외환위기가 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금융개혁·기업개혁·공기업개혁·노동의 유연성을 반드시 해야합니다.정부가 앞장서서 공기업개혁을 할 것입니다.가장 중요한 게 은행입니다.그래서 은행을 개혁하고 있습니다.은행들은 부실한 기업은 상대하지 않을 것입니다.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은행을 간섭하고 지도할 권한과 의무가 있습니다.정부가 앞장서서 개혁 모범을 보이겠습니다.국민들도 올해는 피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금모으기 운동은 1∼2개월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꾸준히 해야 합니다.맨날 금만 낸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지나면 해이해지는 것은 없어야 국난을 국복할 수 있습니다. ○4대 개혁 반드시 추진 국민들은 최대한 개혁에 협력해 경제와 개혁이 잘되도록 해야합니다.절약도 하고 사회안정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올해는 고생하겠지만 내년부터는 좋아질 것입니다.내년 후반부터는 이 나라가 좋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IMF관리에서 벗어나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내후년부터는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태평양의 기적을 국민들과 합심해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내일의 희망된 개혁을 가져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랍니다.고통도 분담하면 성과도 분담한다는 원칙을 지키겠습니다.소신을 갖고 반드시 국민들이 이 나라 장래에 희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병든 아버지에 ‘내집이니 비워라’ 제소/반윤리적 딸의 승소 파기

    ◎大法,재산권 행사 제동 정당한 재산권 행사라도 윤리에 어긋나면 권리 남용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金炯善 대법관)는 12일 金모씨(42·여·서울 강동구 명일동)가 자신 명의의 집에 살고 있는 병든 아버지(85·서울 강동구 암사동)와 생활능력이 없는 남동생(42) 등을 상대로 낸 건물명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은 ‘정당한 권리 행사라도 신의를 저버릴 때에는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는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폭넓게 해석한 것으로 앞으로 친족 간의 재산권 분쟁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부양 의무가 있는 원고가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서도 주택 소유권자임을 내세워 늙고 병들어 갈 곳도 없는 부모와 형제를 내쫓으려 하는 것은 부모 자식 간의 인륜을 파괴하는 행위로 권리 남용”이라고 밝혔다. 원고 金씨는 91년 8월 호주로 이민을 가면서 19평짜리 연립주택에 노부모와 남동생 등 5식구가 그냥 살도록 했다가 3년 뒤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이에 남동생이 2년만 더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월세 25만원을 받되 2개월이상 세를 내지 못하면 집을 비워주기로 합의했다.그러나 金씨는 간염 등의 지병으로 경제력이 없는 남동생이 늙은 부모를 부양하느라 월세를 내지 못하자 95년 명도소송을 냈다.
  • “난치병 일가족 도웁시다”/대전교육청 등 온정 밀물(조약돌)

    ○…대전시교육청과 대전 대문중학교가 난치병에 걸린 중학생 일가족 3명의 수술비 마련에 나서 눈길. 洪盛杓 대전시교육감은 24일 대문중 3년 洪수민양(16)일가족의 치료비에 보태기 위해 2백만원을 선뜻 내놓았으며 대문중학교도 모금에 나섰다. 洪양은 뇌종양을,남동생 창우군(14 갑천중 2년)은 백혈병을,어머니 權영신씨(40)는 간경화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들 가족은 월 25만원의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으로 살고 있어 가족의 수술비 1억여원을 마련하는게 불가능한 형편. 연락처는 (042)583­2593,(042)488­8602)
  • 강도가 된 남매/김경운 사회부 기자(현장)

    ◎IMF 여파 용돈 궁해 빌려 쓴 돈 독촉에… “IMF가 뭔지… 어린 남매마저 강도로 나서다니” 11일 상오 서울 양천경찰서 형사계.특수강도로 혐의로 붙잡힌 박모양(17·서울 K여고 2학년)과 박모군(13·D중 1학년)을 조사하던 담당형사의 입에서 탄식이 튀어나왔다. 이들 남매는 10일 밤 9시45분쯤 서울 양천구 신월4동 주택가 골목에서 박모씨(51·여·보험설계사)를 흉기로 위협하고 신용카드 13장을 빼앗았다.이어 범행현장에서 가까운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빼내려다 순찰 중인 경찰에 붙잡혔다. 박양은 “돈은 한 푼도 없고 친구들에게서 빚독촉을 받자 일을 저질렀다”며 흐느꼈다.곁에 있던 박군도 “아저씨 다시는 안 그럴께요”라며 울먹였다. 레미콘기사였던 아버지 박모씨(49)가 한 달에 2백∼3백만원씩 벌던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여동생 등 3남매는 남부럽지 않게 지냈다. 하지만 건설 경기 한파가 닥치면서 아버지는 막노동판 자리조차 구하지 못하고 앓아 누웠다.파출부 자리라도 찾으려던 어머니 최모씨(39)의 노력도 허사였다.레미콘과 집을팔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박양은 친구들로부터 1천∼2천원씩 빌려 동생들과 용돈을 나눠썼다.그러나 두달 사이에 빚이 20만원으로 불어나자 고민끝에 부엌칼과 청테이프를 가방에 넣고 싫다는 남동생을 달래 집을 나섰다. “아줌마 용서하세요.제가 돈이 없어서 그래요”라며 칼을 들이댔다는 것이 피해자 박씨의 진술.박씨는 “어린 남매가 철없이 저지른 일이니 선처해 달라”며 조서를 꾸미는 형사의 팔을 붙잡았다. “용돈을 달라면 주었을 것 아니냐”며 어머니 최씨가 울부짖자 박양은 “엄마도 돈이 없는 것을 다 아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 연극연출가 채윤일(이세기의 인물탐구:153)

    ◎연극외엔 무엇도 관심없는 ‘외곬’/76년 ‘홍당무’로 데뷔… 모두 30여편 무대 올려/‘산씻김’ ‘카덴짜’로 “창작극 재미없다” 통념 불식 연출가 채윤일은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질때 왔느냐갔느냐고 인사를 건네는 법이 없다.용산고때부터의 만년단짝이며 연극배우인 김동수마저 그를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단정짓는다.예를 들어책을 읽거나 혼자 할일이 생기면 소리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아무리 달콤한 감언이설에도 마음에 들지않는 일은 막무가내로 거절해버린다.그는 결혼하지 않은 지금도 도대체가 ‘고독을 모르는 사람’이어서 연극외엔 그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무대마다 화제 불러 76년 ‘홍당무’연출을 첫무대로 연극계에 데뷔했을때 그는 한동안 ‘문화적 게릴라’니 ‘연극계를 강타하는 무서운 아이’ 등의 형용사에 둘러싸여 있었다.그리고 30여편이상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동안 무난하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그때마다 요란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그중에서도 84년 초연된 ‘0.917’은 어린이를 벗겨 무대에 내세워 집중포격을 받는가 하면 ‘카덴짜’는 잔혹한 냉소와 살기로 관객의 등덜미를 바늘로 찔러댄다. 지난 93년,‘불의 가면-권력의 형식’의 경우엔 이 연극이 막을 올리기도 전에 한 일간지가 ‘벗기기 위험수위- 연극 이대로 좋은가’ 제하의 유추보도를 했다고해서 그는 매스컴을 향해‘몰지각한 허위’‘날조’‘왜곡보도’등의 험구를 거침없이 쏟아내기도 했다.소설가 강석경은 후에이 연극을 보고 ‘다른 사람을 앞질러가는 참신하고 엉뚱한 연출솜씨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같은 작품이라도 얼마든지 달라질수 있음을 일시에 증명해보인 예로 평했다. 그의 연출포인트는 어둠의 공포가 아닌 백색의 조명속에서 살벌하고 섬뜩한 이미지로 등장인물들을 할키고 꼬집는다.무대위에는 시뻘건 핏물이 넘쳐 흐르고 시퍼렇게 멍든 여배우의 양쪽 유두는 전극에 연결되어 전기고문을 가하는가 하면 벌거벗다시피한 여성연기자가 천정에 매달린채 온몸에 누적된 황량한 갈증을 절규로 풀어낸다. 스토리전개도 상식적인 틀에서 벗어난 의외성과 모험성이 도출되지만 내부에 도사린 테마는 역사를 깊이 조망하는 지성인의 시선이며 광부가 광맥을 캐듯이 자기자신속에 잠재된 또 하나의 자신을 도저하게 폭로하는 분해성이 대담하다. ○극단 산울림 창단멤버 그래서 ‘새로운 시각의 센세이셔널리즘’이란 찬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괴기극’‘난해극’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고 그를아끼고 기대해 마지않던 이해랑씨도 오죽하면 ‘채윤일의 연극언어는 도무지애 매모호하다’고 회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의 전환기에서 권력과 지식인 사이의 갈등과 지식인의 역사적 책임을 묻는 질문을 통렬하게 추적하여 어디서 막을 올리건간에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는 80년이래 창작극만을 공연하기로 천명한 이래 ‘창작극이 재미없다’는 통념을 불식시키고 ‘창작극 나름대로의 매력과 맛’을 적시에 제시해냈다.‘0.917’‘산씻김’‘카덴짜’‘불가불가’가 그랬고 ‘역사는 사실,연극은 허구지만 연극이 역사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 자세로 ‘연극에서는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의 힘이 연극에 담겨야 한다는 작업태도를 지킨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채윤일은 함남 원산에서 원상상고 출신인 부친 채봉기씨와 일본에서 산부인과를 공부하던 어머니 김순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어머니는 월남후 원로배우 고설봉씨와 아동극단 동연을 창단한 연극인이다.윤희·승희씨 등 두여동생은 연극배우이고 남동생 윤진씨는 상업미술을 하는 예술가 가족.채윤일은 고교시절 연세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문예콩쿠르에서 시부문 장원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세대 국문과에 진학,그러나 4개월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최하원 감독 밑에서‘독짓는 늙은이’‘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조감독노릇을 했다.그러다가 69년 임영웅연출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난해한 작품을 밀도있게 해석해낸 연출솜씨에 반해 연극도 문학이상일수 있다는 신념에서 70년에 극단 산울림의 창단멤버가 되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채윤일,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이 끈질겨서 자신의 소신을 분명하게 펴기 때문에 연극계에서는 달걀로 바위를 치는 ‘독종’으로 소문나 있다.35세가 넘도록 어머니에게 차비를 타가지고 다니다가 84년에 막올린‘카덴짜’가 만 1년간이나 500회 공연을 기록하는 바람에 그는 드디어 ‘흥행을 만드는 연출가’로 부상되었고 오랜 가난과 무거운 빚에서 벗어났다. ○흥행 만드는 마술사로 그러나 그에게 연극을 하게해주었고 언제나 객석을 지키던 단골관객이자 매니저이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한동안 충격에서 혜어나지 못하는듯 했다.검은테 안경속에서 두눈을 반짝이면서 그는 배우가 연기의 리듬과 강약에서 흠을보이면 ‘연기 못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모든 예술은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란 전제아래서 ‘상황을 날카롭게 표현하는 정공법이 아닌’그만의 상징적이고도 우회적 방법으로 연극을 성립하지만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의 연극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파격’에 틀림없다.괴상한 연극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감성과 시선으로 새롭게 작품을 조명하려는 의지다. 내년에는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연극제에 ’산씻김’으로 참가,‘가장 한국적인 것이가장 세계적’임을 국제무대에서 입증해 보일 예정이다.참으로아름다운 것은 모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재성과 결부된 감성에 의한 창조성일 것이다.따라서 그는 상상력과 근면과 개성없이는 명성을 얻을수 없다는 영국배우 마이켈 레드그레이브의 주장을 이어가는 예술가다.그 시대엔 그시대를 풍미하는 재사가 등장한다고 했던가. 그런 맥락의 천재적 창조성으로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채윤일이야말로 차가운 계절에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정의의 사도’가 아닐수 없다. □연보 ▲1946년 함남 원산 출생 ▲1961년 서울용산고 졸업,연세대 주최 제1회 전국고교생 문예콩쿠르 시부문 1등, 연세대 국문과 중퇴 ▲1976년 극단 산울림 J르나르작 ‘홍당무’로 연출데뷔, 정하연 문호근 오종수 김동수 등과 극단쎄실극단 운영 ▲1977년 이상의 ‘날개’ 연출 ▲1979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외 창작극시리즈 ▲1984∼85년 ‘0.917’공연 ▲1985∼86년 ‘카덴짜’공연, 아시아경기대회 문화예술축전 개막행사 ‘동방의 빛과 영광’ 총연출 ▲1987년 ‘불가불가’ 연출 ▲1989년 ‘오구-죽음의 형식’ 연출 1991년 91’일본 타이니 앨리스 페스티발 ‘카덴짜’ 참가 ▲1993년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 연출참가 ▲1997년 서울 세계연극제 ‘산씻김’ 연출참가 현재­극단 쎄실극장 대표·소극장 산울림 예술감독 한국백상예술대상(87년) 동아연극상 작품상·평론가협의회제정 ‘올해 최우수 예술가’ 선정(88년) 한국 백상예술대상 연출상(95년)
  • 탈북자 가족 3명 귀순/어제 제3국 거쳐 입국

    국가안전기획부는 8일 90년 귀순한 정현씨(32)의 어머니 장인숙씨(56)와 남동생 정룡(27)·정남씨(24) 등 북한주민 일가족 3명이 북한을 탈출해 제3국을 거쳐 입국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이들을 상대로 자세한 신원과 귀순 동기를 조사 중이다.
  • 합천 부모산소 성묘/훈할머니 고향방문 이틀째

    고향 방문 이틀째인 훈할머니는 31일 경남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목곡마을에 있는 부모 산소를 찾아 성묘했다. 훈할머니는 이날 동생 순이씨 등 일행들과 함께 57년 사망한 아버지 이성호씨와 이씨의 첫 부인 민두영씨의 묘소에 도착,분향한 뒤 큰 절을 올렸다. 훈할머니는 이어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현대공원에 있는 남동생 태숙씨(92년 사망) 묘소에 들른뒤 경북 경산시에 사는 올케 조선애씨(63) 집을 방문하고 늦게 서울로 돌아왔다.
  • 파란만장했던 훈 할머니의 일생

    ◎42년 일 순사에 이끌려 고향과 긴이별/대만 거쳐 싱가포르서 위안부 생활/45년 일본장교와 캄보디아서 동거/56년 재혼… 폴포트 정권에 아들 잃어 훈할머니의 55년은 일제가 저지른 잔악한 만행의 산 증거다.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42년 어느날 할머니가 싸준 옷 2벌과 사진 2장이 든 봇짐을 안고 일본 순사에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난 것이 그만이었다. 어렵지 않게 살면서 널뛰기와 그네놀이로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던 훈할머니의 기억에는 그날 어머니가 왜 그렇게 울었고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대문 앞에서 일본 사람에게 사정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비슷한 또래 3명은 마산으로 갔고 일행은 30여명으로 늘었다.며칠간 머무는 사이 일본사람들은 옷과 신발 따위를 사줘 훈할머니를 즐겁게 해줬다. 부산으로 옮겨져 수백명이 함께 군인들에게 신병이 인계돼 배에 오를 때만 해도 이것이 고향과의 긴 이별이 될 줄은 몰랐다.대만을 거쳐 싱가폴에 도착하면서 악몽은 시작됐다. 정신대란 이름으로 수십명씩 흩어져 일본군 막사로 보내진 뒤 하루 10여명에 이르는 군인들의 성적 노리개가 돼야 했다. 사이공을 거쳐 프놈펜에 이르기까지 3년여의 세월은 같은 날의 반복이었다.행운이었을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남동생의 편지를 두번 받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45년 3월 다다코마라는 일본인 중위의 눈에 띄어 살림을 차렸다.딸을 낳았지만 곧 죽었다. 일본 패망 뒤 다다코마와 3년 가까이 도피생활도 했지만 그는 일본으로 떠나고 연락조차 끊었다.10여년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천대받다가 56년 캄보디아인과 재혼,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았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폴포트 정권의 무차별 학살에 외아들을 잃고 그뒤 두 딸마저 병으로 잃었다.외손녀 시나씨(27)와 생활하다 지난해 7월 한국인 황기연에 의해 한많은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 55년만에 부른 “순이야” “언니”/훈할머니,동생 상봉

    ◎합천 이순이씨와 유전자 일치/어제 인천 길병원서 감격의 포옹 찾았다.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일본 순사의 손에 이끌려 정신대로 끌려간 뒤 이국 땅 민들레 삶을 살아온 훈 할머니가 55년만에 마침내 혈육과 상봉했다. 훈 할머니는 29일 상오 동생이라고 주장해 온 이순이씨(61·여·경남 합천군 가회면 외사리)를 만나 고향과 가족관계 등을 확인,친자매의 뜨거운 정을 나눴다. 대검도 이날 하오 유전자 감식을 통해 이들이 친자매임을 확인했다. 이날 상오 8시 훈 할머니가 입원중인 인천 중앙길병원 9층 VIP병실을 찾은 이 할머니는 훈할머니를 만나자마자 언니가 확실하다며 훈 할머니를 끌어안은채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언니 맞지.남이 언니 맞지.엄마가 죽었다고 했던 우리 언니 맞지” 함께 온 올케 조선애씨(63)에게 훈 할머니가 언니라고 울부짖는 이씨를 바라보던 훈 할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핏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동생이 틀림없다.남동생의 사진을 보니 아버지의 얼굴과 같다.여동생과 나는어머니를 닮았지만 남동생은 아버지를 닮았었다” 훈 할머니는 이씨가 가져 온 남동생 사진을 보고 그토록 찾았던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떨어질줄 몰랐다. 이씨에 의해 밝혀진 훈 할머니의 본명은 이남이.나이는 73세 가량에 고향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이고 지난 39년쯤 경남 마산시 진동이다. 이씨는 어머니로부터 1남3녀 가운데 둘째인 남이가 18살 나던 해 일본군에 끌려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그러나 이들 자매의 부모와 형제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훈 할머니는 이씨가 가져온 마산시 진동 풍경이 담긴 대형사진을 보고 절이 있던 곳과 자신이 자주 가던 동산,바다가 있는 곳을 정확히 기억해 냈다.옆에 있던 이씨도 “언니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두사람 염기서열 일치”/대검 유전자 감식 대검찰청 과학수사 지도과는 29일 캄보디아 ‘훈 할머니’가 자신의 친언니라고 주장한 이순이씨(61·경남 합천군 가회면 외사리)의 혈액을 채취,유전자 감식을 한 결과 “두사람이 친자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대검 유전자 감식실 이승환 실장은 “이씨의 부모가 사망한 상태에서 유일한 감식 방법인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 분석기법을 활용해 감식을 한 결과,두 사람의 염기서열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모계 혈족의 친자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미토콘드리아 염기서열 분석기법은 부모가 사망해 부모의 핵유전자형을 추정할 수 없는 경우에 모계로부터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서열의 동일성 여부를 가림으로써 혈족인지를 가리는 방법이다.
  • 재산 노려 누라를 정신병자로…(조약돌)

    ◎배은의 두 남동생에 재산반환 판결 ○…서울지법 민사합의 26부(재판장 유철균 부장판사)는 13일 서모씨(52·여)가 자신의 남동생들을 상대로 낸 횡령금 반환 및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동생들은 서씨에게 횡령금 8천만원과 위자료 1천5백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두 동생이 자신의 재산을 가로채 사업자금으로 써버리는 동안 정신병원과 요양기관을 전전했던 서씨는 92년 요양소에서 빠져나온 뒤 94년 한정치산자 취소결정을 받아낸데 이어 5건의 재산반환 소송 가운데 3건에서 승소했다. 어릴때 부모를 여읜 서씨는 60년 명문 서울 K여고를 졸업한 뒤 외국계 은행에 취직,결혼도 미루고 두 남동생을 뒷바라지 하며 집 4채 등 2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서씨는 89년 식당을 운영하는 둘째 동생이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몰래 돈을 빌리면서 불화에 시달리기 시작,두 동생에 의해 우울증 치료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병원에 강제 입원된데 이어 법원으로부터 한정치산자결정까지 받았었다.〈김상연 기자〉
  • 탑승자 가족·의료진 현지로 출발/유족·공항 표정

    ◎대한항공·생존자수 갈팡질팡 발표 빈축/기장동생 “원래 비행스케줄 아니었는데”/공항승객 “사고 왜 이렇게 자주나나” 흥분 6일 아침 잠에서 깬 모든 국민들은 믿기지 않는 참사에 경악하며 탑승자 및 사망자 명단을 혹시하는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사고 비행기 탑승자 가족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와 등촌동 유가족대책본부 등에 몰려와 발을 동동 구르며 오열하며 사망자 및 생존자 명단을 확인했다. ○…유가족대책본부가 마련된 서울 강서구 등촌동 대한항공 교육훈련센터에 나온 임보경씨 가족들은 “사고가족이 현지에 갈 수 있도록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항공사측에 거세게 항의. 광주 동구 구의원 곽성제씨의 아들 열희씨(21·서울대 전기공1년)는 동행한 친구들이 감싸안고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사고 소식이 믿기지 않은 듯 울음을 터트렸다. 원로 코메디언 백남봉씨도 남동생의 막내딸 박윤정씨(23·패션모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왔으나 결국 사망자 명단에 포함된 걸 확인하고는 말을 잇지못했다. ○…대한항공 사고대책본부는 강서구 공항동 본사 5층 회의실에 상황실을 마련해 놓고 취재진들에게 현지 상황변화를 브리핑. 상오 5시40분쯤 첫 브리핑을 가진 대한항공은 그러나 사고발생 9시간여가 지나도록 사고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등 허둥지둥. 사고대책본부는 특히 하오 1시30분 브리핑에서 생존자가 60여명이었다고 발표했다가 30분 뒤 “현지 구조대의 잘못으로 중복 계산됐다”며 ”생존자는 메모리얼병원 16명,해군병원 17명 등 모두 33명이며 이 가운데 메모리얼병원에 후송된 4명은 신원확인이 안됐다”고 해명하는 등 갈팡질팡. ○…기장 박용철씨(43)의 남동생 용길씨(35·경남 진주시)는 대책본부를 찾아 “둘째 형이 오늘 밤 8시쯤 괌에서 돌아오면 큰형 등 3형제 가족이 경남 남해로 피서를 가기로 했었다”며 “형수가 전날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어 원래 형의 비행스케줄도 아닌데다 기상조건도 좋지 않은데 굳이 비행할 필요가 있느냐며 극구 말렸다더라”고 전언. ○…아시아나항공은 이날 김포공항에 부착한 ‘새 비행기로 즐겁게 다녀오십니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철거. 아시아나항공의 관계자는 “아시아나 항공기 기령이 대한항공에 비해 월등히 낮아 그간 홍보차원에서 플래카드를 내걸었지만 자칫 사고수습에 정신이 없는 대한항공측을 자극할 것 같아 철거했다”고 설명.
  • 현철씨 부인 김정현씨 문답

    ◎“매일 면회후 청와대 방문… 어머니께 안부 전해/남편 몸무게 7㎏ 빠져… 안압·장염 많이 좋아져” 김현철씨 비리 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현철씨의 부인 김정현씨(37)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21일 상오 남동생과 2차 공판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던 김씨는 기자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몰려들자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차분하게 현철씨 근황을 전했다.김씨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첫 재판때도 왔었는데 기자들이 난처한 질문을 할까봐 법정에 들어가지 못했다”면서 “편한 마음으로 재판을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면회는 자주 가나. ▲매일 20여분씩 면회하고 있다.면회가 끝나면 청와대를 방문,어머님(손명순 여사)께 건강상태 등을 전한다. ­손여사는 뭐라고 하나. ▲(아들)건강에 많은 관심을 보이신다. ­현철씨가 대통령에 대해 무슨 말을 하나. ▲아버님 걱정을 많이 한다. ­현철씨 건강은. ▲감방안에서 거의 매일 가벼운 맨손체조 등을 하고 있다.수감 전에 비해 몸무게가 7㎏ 빠졌으나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최근에는 안압과 장염 증세도 많이 낮아졌다. ­현철씨 심경은.억울하다는 말은 없나. ▲못들었다.수감 2∼3일만에 안정을 찾은 것으로 안다. ­70억원 포기 각서 등과 관련한 얘기를 하지 않았나. ▲그 얘기는 나도 신문을 보고 알았다.정치 얘기는 일체 안한다. ­무슨 책을 보나. ▲‘로마인 이야기’ 등 역사 서적과 앨빈토플러가 쓴 미래학 서적,성경책 등을 넣어줬다.교회는 나가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현철씨가 부탁하는 말이 있나. ▲아버님과 어머님을 매일 찾아뵙고 특히 아이들이 어리니까 상처 받지 않도록 당부했다.
  • ‘출연’ 최모군 실명 자막/음란 비디오제작 중고생 주변

    ◎‘주연’ 김모군 동생이 ‘감상’후 소문 퍼뜨려/“어쩌다 이지경까지… ‘여자주연’ 이웃 개탄 음란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해 엄청난 파문을 몰고온 서울 S공고 2년생 김모군(17)등은 경찰에서 “재미삼아 해본 일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며 울먹였다. ○…김군 등 남학생들은 14일 하오 수업 도중 경찰에 연행돼 모두 교복 차림이었다. 짧은 머리를 한 이들은 조사를 받는 동안 줄곧 고개를 파묻은 채 흐느끼며 “일본 포르노 비디오를 본 뒤 이를 흉내내 기념용으로 만들자고 했던 장난이 이처럼 엄청난 일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비디오 테이프 제목 ‘비디오를 보다’와 함께 자막처리된 최모군의 이름이 실명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이들이 처음부터 비디오를 복제해 유통시키려 한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가출한 최양은 단란주점에서 일하며 많은 남자와 사귀는 등 문란한 생활을 해 비디오를 찍는데 별다른 수치심을 못 느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양은초등학교 6학년 때인 95년 9월 김군의 학교에서 열린 가을축제에 갔다가 김군이 멋지게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스스로 연락,김군과 사귄 것으로 확인됐다.김군은 중학교 3학년때부터 본드를 상습적으로 흡입했고 2번에 걸친 가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군은 경찰에서 비디오가 처음 유출된데 대해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남동생이 비디오테이프를 본 뒤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진술. 김군은 그러나 “동생은 잘못이 없다“면서 “더이상 묻지도 말고 처벌도 하지 말아달라”며 울먹. ○…최양이 살고 있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K아파트 48동 411호는 불이 꺼진채 현관문까지 굳게 잠겨 있어 썰렁한 모습. 이웃 주민들은 “며칠 전에도 최양의 어머니가 ‘병원에 왜 안가느냐’며 최양과 다투는 등 평소에도 자주 다퉜다”면서 “그러나 어머니는 외동딸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설명. 이어 “최양이 평소 화장을 짙게하고 다녀 중학교 2학년이라는 것은 언론보도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면서 “어쩌다가 우리 청소년들이 이지경까지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
  • 음란비디오 주인공은 중고생/“일 포르노 모방 재미로 찍었다”

    ◎제작 4명·판매 3명 검거/작년4월 첫 제작… 반응좋아 8월 또 촬영 서울 강남일대 일부 고교에서 나돌던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는 남자 고교생 3명과 여중생 1명이 지난해 4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일본의 도색테이프를 흉내내 출연·제작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여중생 최모양(15)은 당시 K중 1년 자퇴생으로 지금은 S중 2학년에 재학중이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14일 포르노 테이프를 제작한 최양,김모(17·S공고 2년) 안모(17·〃)군과 최모(17·K고 1년)군 등 4명을 검거했다. 또 이들이 만든 테이프를 복사해 팔거나 돈을 받고 빌려준 K공고 3학년 김모 이모(18)군과 S공고 3학년 이모(18)군 등 3명도 붙잡아 철야 조사 중이다. 제작에 참여한 김군 등 3명은 서울 K중 동창으로 지난해 4월 김군의 집에서 일본 음란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도 한번 찍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최양의 동의를 얻은 김군과 안군은 지난해 4월 강동구 천호2동 B연립 김군의 집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김군의 친구에게 빌린 8㎜ 가정용 캠코더로 번갈아 성행위를 하면서 카메라에 담았다. 김군은 이어 비디오를 찍은 사실을 남동생에게 말했고 이를 전해들은 동네 선배인 K공고 3학년 김군의 시달림에 못이겨 테이프를 건네주었다.K공고의 김군은 같은 반 이모군 등에게 이를 빌려주었고 얼마후 문제의 테이프에 대한 소문이 강남 일대 고등학교에 퍼지기 시작했다. 테이프를 제작한 김군 등은 테이프에 대한 ‘반응’이 좋자 지난 해 8월 같은 방식으로 또다른 테이프를 만들었다.이때는 안군이 빠지는 대신 최군이 끼어들었다. K공고 3학년 김군 등은 두번째 테이프도 넘겨받아 지난해 11월부터 수십개를 복사,‘빨간마후라’와 ‘삼국지’ 등의 이름을 붙여 3만∼10만원에 팔거나 빌려주었다.
  • 서울 중고생 57% “학교폭력 경험”/형사정책연 조사

    ◎여학생 피해 90년보다 3배 늘어/일 만화 유통 엄단… 대여업자 첫 입건 정부가 학원 폭력을 통치권 차원에서 근절키로 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수립에 나선 가운데 서울시내 남녀 중·고생의 절반 이상이 금품갈취·구타·협박 등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원장 김택수)은 서울시내 20개 중·고교 남녀 학생 1천919명을 대상으로 ‘96년도 학교 주변 폭력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가 학교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6일 밝혔다. 이는 90년의 폭력 피해 36.1% 보다 20% 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여학생들의 피해정도는 40.7%로 나타나 90년 13.6%보다 무려 3배 이상 늘었다. 남자 중학생은 75.2%가 학교폭력을 경험해 정도가 가장 심했으며,남고생 70.9%,여중생 45.4%,여고생 36.1% 순이었다. 피해 유형은 구타가 41%로 가장 많았다.이어 금품갈취 28%,괴롭힘 23%,위협이나 협박 19% 등의 순이다. 구타의 형태로는 얼굴 뺨 머리 등을 손이나 주먹으로 맞은 사례가 35%,발로 차이거나 할큄이 22%,둔기로 맞은 경험이 6%,뜨거운 것으로 지짐을 당하거나 목을 졸린 경우 4%로 조사됐다. 특히 흉기로 위협을 당하거나 실제 흉기에 찔리거나 상처를 입은 사례도 각각 7%,3%에 달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6일 이같은 학원 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청소년들의 각종 범죄를 부추기고 있는 일본 만화를 불법 복제해 유통시키고 있는 국내 출판·판매업자와 만화방 등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섰다. 검찰은 일본 만화의 국내 유입 및 판매 경로 등에 대한 실태 조사를 거쳐 불법 복제업자 등을 엄중 사법처리키로 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도 5일 마약에 중독된 주인공이 어머니와 남동생을 살해하는 패륜적 내용을 담은 일본 만화를 청소년들에게 대여한 만화방 주인 한모씨(41·서울 송파구 송파동)에 대해 처음으로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한씨는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C서점에서 만화책 2백여권을 구입하면서 일본만화 ‘암흑가의 특별경찰’ 1·2권을 각각 1천원에 사들여 서울 송파동 S만화방에 진열해두고 청소년들에게 열람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훈할머니 “한국에 가고 싶다”

    ◎위안부 출신 김복동 할머니 만나 눈물만/가족수 4명… 김남조씨는 동생 아닌듯 【프놈펜 연합】 일본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캄보디아의 「훈」할머니(73)는 18일 그가 일제말기 한국에서 선편으로 캄디아에 끌려온 후 한번도 고국을 방문한 적이 없으며 초등(보통)학교도 고향에서 2∼3년만 다니고 중퇴했다고 밝혀 그가 현재 부산에 살고 있는 김남조씨(62)의 누이일 가능성을 부인했다. 훈 할머니는 이날 『17 또는 18세(1942년 또는 1943년) 되던때 부산으로 추정되는 항구에서 다른 한국여성들과 함께 배를 타고가다 풍랑을 만나 대만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으나 이곳에서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하루밤만 머물렀다』고 말해 「고향 진동을 떠난 누이가 대만에 살면서 1년후 한국을 이틀간 방문하고 동생 김남조씨와 만난 자리에서 일본군 장교와 결혼해 잘 살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했다」는 일부 보도는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고 밝혔다. 훈 할머니는 또 그의 형제자매가 여동생,남동생을 포함 1남3녀라고 거듭 밝혀 호적상 5남5녀라는 부산거주 김남조씨의주장과는 다르게 말했다. 한편 전날 『고향 진동에 살았던 남동생의 이름이 100% 자신할 수는 없지만 「김남조」로 어렴풋이 기억된다』고 밝혔던 훈 할머니는 누군가가 「동생이 김남조라고 하는데 아느냐」고 물어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느낌이 그렇게 간다』라고 대답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정황을 고려할 때 현재 부산의 김남조씨가 주장하는 누이 김남아는 대만으로 끌려갔던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이날 하오 「훈」할머니는 18일 프놈펜에서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복동 할머니(72)를 만났으나 끝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한채 망각의 세월에 대한 「설움이 북받쳐 오르는 듯」 눈물울 흘리기만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훈 할머니는 이날 이곳 두싯 호텔에서 김할머니와 혜진 스님(32·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원장),이상화 한국정신대연구회 총무(여·33) 등 그를 위로하고 돕기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한 한국측 인사 3명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의 고향이 진동으로 바다와 가까운 곳이라고만밝힐뿐 자신과 가족의 이름,한때 같은 처지에 있었던 한국여성을 만난 소감,위안소 장소 등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 답변하지 못하거나 기억해내지 못했다. 훈 할머니는 그러나 김할머니로부터 『한국으로 가서 「나눔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한국에 가고 싶다』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 「훈」 할머니 “남동생 이름은 김남조”/캄보디아 현지 스케치

    ◎“메콩강변서 매년 조상제사 모셨다”/박경태 대사 “한국적 먼저 회복해야” 캄보디아의 「훈」할머니는 정말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것일까.그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지금까지는 그녀가 한인이라는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 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훈 할머니를 두차례 만났던 박경태 주 캄보디아 대사는 그가 한국인이며 일본군 위안부 출신임을 밝히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향이라 주장하는 마산의 「진동」을 중심으로 호적조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한반도에 진동이라는 행정구역명이 6개나 있기 때문에 조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박대사는 그녀가 한국인으로 밝혀질 경우에도 영구귀국과 귀국뒤 보조금 지원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국적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훈 할머니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그는 「아버지」「어머니」「할머니」「감사합니다」 등 몇마디를 할 수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최근 그가 한국인들을만나는 과정에서 익혔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오히려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아배」「어매」「할매」 등 고향 사투리는 잘 모른다. ○…훈 할머니는 16일 저녁 프놈펜 시내의 「코남무역사」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캄보디아에 처음 온 당시 일본군 캠프에는 한국여성들이 300∼400명이 있었다면서 자신이 만난 일본군인은 다다쿠마 한 명뿐이었다고 말했다.그는 또 다다쿠마와 사귄 햇수는 7∼8년이지만 동거기간은 2년밖에 안된다고 주장했다. ○…훈 할머니는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이 메콩강변에서 매년 조상제사를 모셨다고 털어놨다.그는 조상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에 있는 양친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매년 명절같은 때면 마을 노인들의 도움으로 제수용품을 마련해 제사를 지냈다고 설명했다. ○…훈 할머니는 17일 어렸을적 고향 진동에 살았던 남동생의 이름이 「김남조」로 어렴풋이 기억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프놈펜에서 인근 콤퐁참주의 자택으로 한국기자들을 안내,자택을 공개한뒤 가진 인터뷰에서 『프놈펜에서 집으로오는 승용차안에서 100% 자신할 수는 없지만 두살 아래인 남동생 이름이 「김남조」라는 기억이 났다』고 말했다.〈외신 종합 연합〉
  • 자유·풍요 만끽한 첫 외출/귀순 홍진희씨 가족 덕수궁 나들이

    ◎“남한엔 모든것 풍부… 한총련투쟁 이해 안돼” 지난해 1월 귀순한 홍진희씨(28·고대 중문과1년)에 이어 지난달 29일 귀순한 어머니 주영희씨(49·여·북송 재일교포),여동생 경화씨(26),남동생 진명씨(20) 등 일가족 4명이 11일이 서울 덕수궁에 첫 나들이를 했다.비슷한 시기에 귀순한 최명동씨(51·군부대 소속 외화벌이 지도원)와 탁영철씨(25·신의주 경공업대학 기계학부 1년) 등 2명도 동행했다. 아들의 귀순으로 고초를 겪던 주씨 일가족 3명은 지난 2월17일 북한을 탈출,중국에서 떠돌다 귀순에 성공했다. 밝은 색 양장 차림의 주씨는 『자유가 넘치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아들 진희를 다시 만나 더없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동생 경화씨는 『남한은 모든 것이 풍부하고 자유스러운데 한총련 학생들이 왜 투쟁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홍는 이들보다 10여분뒤에 도착,어머니와 동생들을 얼싸안았다.어머니 주씨 등 3명은 현재 관계기관의 보호아래 생활하고 있다. 홍씨는 『북에 남겨둔 가족 생각에 마음고생을 이젠 잊게 됐다』면서 활짝 웃었다. 홍씨는 귀순 정착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 대부분을 중국으로 보내 가족의 탈북 경비에 쓰도록 했다. 동생 진명씨는 『형 때문에 산골로 쫓겨나 군대도 못가고 취업도 할 수 없어 원망했지만 이젠 형을 이해하고 고맙게 여긴다』면서 홍씨의 손을 꼭 잡았다.진명씨는 『북한에서 2년 넘게 익힌 유술을 대학에 진학해서 더 연마해 선수가 되고 싶다』며 석조전 앞에서 형을 업어치기로 메치며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머니 주씨는 『산촌으로 추방돼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무엇보다 군대와 대학에 못가게 된 진명이의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파 탈출을 결심했다』고 탈출 동기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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