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남동생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확장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수현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93
  • 미스 뉴코리어 컨트리 클럽 최정옥(崔貞玉)양 - 5분 데이트(52)

    미스 뉴코리어 컨트리 클럽 최정옥(崔貞玉)양 - 5분 데이트(52)

    『여기가 근무한지 꼭 3년째 되는데요. 아직도 여기가 직장이라는 생각이 안들어요. 꼭 놀러나온 것만 같거든요』 하긴 그럴것이 최정옥양이 근무하고 있는「뉴 코리어 컨트리 클럽」은 파란잔디로 온통 뒤덮인 곳. 교외에 사는 사람들이 시내로 출근할 때 최양은 공기좋은 교외직장으로 빠져나간다. 매일「하이킹」을 다니는 기분이다. 46년생이니까 올해 23세. 순 서울아가씨다. 홀어머님과 위로 오빠 두분, 밑에 남동생 하나. 그래서 외동딸로 오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채 자라났다. 숭의(崇義)여고 졸업. 최양이 이「컨트리 클럽」에서 말고 있는 직책은 좀 이채롭다. 이름하여「캐디·마스터」. 그러니까「캐디」장(長)인 셈이다. 그래서「뉴·코리어」「골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3백50여명의「캐디」아가씨들에게 「파트너」를 정해주는 일과외에 틈이 나는대로 대인(對人)「에티케트」등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손에 익힌「골프」가「핸디」28 정도. 새벽 일찌기 출근해서 조용할때 몇차례「스윙」을 하고나면 미용체조를 하고 난 것보다 더 몸매가 날씬해 지는 기분이다. 9시부터 근무개시. 7시 30분께 퇴근해 돌아오면 시내서 친구들과 차 한잔 나누는 것이 일과. 「보이·프렌드」는『곧 가져야죠』다. 『이젠 사회가 어떻다는 것, 어느정도 눈뜬 셈이니까요. 알맞은 사람 나타나면 즉각 결혼하죠』그러면서 그「알맞은」의 조건은 적당히 생각해 두시란다. [선데이서울 69년 10/5 제2권 40호 통권 제 54호]
  • [5·31 광역단체장 후보 지상탐구] (1) 인천시장

    [5·31 광역단체장 후보 지상탐구] (1) 인천시장

    ■ 우리당 최기선 “일자리 30만개 만들것” 열린우리당 최기선 후보는 인천시장을 3차례 지낸 인물이다. 출마를 고사한 그에게 열린우리당이 끈질기게 구애한 것은 이런 경력을 평가했기 때문. 최 후보는 1945년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누나 여섯에 남동생이 하나인 집안의 장남이었다. 그는 64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제적돼 69년 복학했다. 입학 10년 만인 73년 졸업했다. 은행과 건설회사 등 직장생활을 거쳐 1979년 김영삼(YS) 당시 신민당 총재의 외신 담당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YS의 총애를 받았다. 뛰어난 영어실력과 성실성 등을 평가받았다고 한다.88년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됐고 그해 총선에 나가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들어 관선 인천시장에 부임했고 민선 1·2기 시장선거에서 잇따라 당선됐다. 최 후보는 94년 터진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장직을 사퇴했다. 사퇴 직후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도 겪었다. 천주교 모임에서 만난 김영애(50)씨와 재혼한 것은 2002년의 일이다. 2002년 인천시장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을 발전시킬 새 사람에게 시정을 열어주고자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4년 만에 다시 선거판에 돌아왔다. ▶왜 다시 시장이 되겠다는 것인가. -지금 인천은 실업률이 전국 광역단체 중 2위, 재정자립도는 꼴찌다. 경제자유구역 외국자본 유치는 부진하다. 위기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 시절 송도신도시에 127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고 인천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이끌었다.4년간 후퇴한 인천을 다시 전진하게 하겠다. ▶핵심 공약인 경제자유구역 특별자치단체화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가능한데. -이미 지난해 재정경제부가 추진하려던 것이다. 안상수 시장이 “인천을 둘로 쪼개는 것”이라고 몰고 가 시민들의 반감을 조장하고 본질을 외면하게 했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있고 여당이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일자리 30만개를 만들겠다는데, 현실성 없다는 비판이 있다. -인천형 뉴딜정책을 통해 가능하다. 영종 경제자유구역내 혁신사업지구 조성을 통해 10만개 일자리가 나온다. 기존 공단을 디지털산업단지화하면 6만개를 만들 수 있다. 또 송도유원지를 문화산업지구로 조성,4만개를 만드는 등 세부 계획이 있다.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에게 많이 뒤지고 있다. 박근혜 대표 사건 여파도 있는데. -선거운동 한 지 겨우 4주 됐다. 안 후보는 4년 됐다. 박 대표 피습으로 여론이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모르겠다. 여론조사에서 20%가량 안 후보와 차이 나는 것으로 나오지만 부동층이 45∼50%나 된다. 또 실제로 체감하는 지지율 차이는 많지 않다. ▶과거 민자당과 신한국당, 자민련 등을 거쳤다. 열린우리당과는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이나 서민경제를 중시하는 성향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한나라 안상수 “네거티브 선거 안통해” 한나라당 안상수 인천시장 후보는 지난 4년간 시정을 맡아 일해 오면서 151층짜리 인천타워를 비롯해 유엔 산하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 정보통신개발센터(UN ESCAP APCICT), 국제학교, 연세대 등을 유치했다는 사실을 새삼 부각시키고 있다. 안 시장은 특히 버스무료환승제를 실시하고, 녹지확보율을 높이는 등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들을 집중 제시하며, 최고경영자(CEO) 출신 시장으로서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들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선두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이같은 지지율은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조모 전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있다. 안 시장은 24일 이에 대해 “예비후보 등록 때부터 일관되게 인천이 경제자유구역을 성공시키고 동북아 중심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계 경제흐름을 한눈에 꿰뚫고 있는 CEO 출신 시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온 게 주효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도 후보자가 제시하는 정책과 비전에 관심을 갖지 더 이상 네거티브 선거운동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표심(票心)에 대한 분석도 곁들였다. 이어 “근거없는 비방이나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지만 선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깨끗한 정책대결을 해 나갈 생각”이라고도 다짐했다. ▶열린우리당 최기선 후보와 8년 만에 리턴매치를 갖게 된 심경은. -지난번엔 도전자로서, 이번엔 챔피언으로서 선거를 치르지만 선거를 치르는 심정은 어떤 상황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 선거는 지난 4년간의 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를 받는 자리인 만큼 지난번보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경쟁 후보들의 장단점을 얘기한다면. -열린우리당 최 후보의 경우, 저에 앞서 10년 동안 인천시장으로 재직하며 많은 일을 하신 분이고, 민주당 신경철 후보는 인천시의회 의장을 하실 만큼 인천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진 분이며, 민주노동당의 김성진 후보는 오랫동안 인천의 소외된 분들을 위해 일해오신 분이다. 다들 훌륭한 분들이지만 지금 인천에는 경제를 잘 알고, 국제적인 비즈니스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약 중 특히 역점을 두는 게 있다면. -2014년 인천·평양 아시안게임 공동 유치다.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면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속에서 인천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명실상부한 동북아 중심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7조 2000억원의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 효과와 함께 14만 8000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특히 평양과의 공동 개최가 성사된다면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어가는 데 인천이 중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 4년간의 도정을 평가한다면. -다른 광역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인천의 구조적 틀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전념했다. 인천을 위해 누가 더 많은 일을 할 것인지,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민노당 김성진 “서울에 종속된 인천 되찾겠다” 민주노동당 김성진(46) 인천시장 후보는 인천지역 시민사회운동의 ‘대부’로 불린다.1988년 인천민주청년회 초대 회장을 비롯, 굵직한 대표 이력만 10여개. 이 과정에서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건설 문제와 부평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 수인선 지상건설 등 지역현안을 해결하는 데 시민들과 마음을 모아왔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인천을 위한 인천’을 만드는 일이 출마를 결심하게 만든 본질적인 고민이다. 김 후보는 “모든 것이 서울에 종속돼 있다. 인천의 정체성을 되찾고 싶다.”며 출사표를 올렸다.‘지역사회 연대기금 1000억원 조성’과 ‘부평미군기지 인수위원회 구성’,‘주민참여조례 제정’ 등 주요 공약도 인천을 복지도시,‘풀뿌리 진보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다른 후보들이 경제자유구역 문제에 ‘올인’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단호하다. 그는 “인천경제자유구역 건설에 그동안 1조 6000억원 이상을 들였지만 인천시민들에게 돌아온 혜택은 극히 적다.”고 지적했다. 지지율 1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김후보는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강화해 고정표를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민주당 신경철 “재래시장등 골목경제 활성화” 인천 시의원을 3차례 역임한 민주당 신경철 후보는 ‘토박이’란 사실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그는 안산 대부도와 화성에서 보낸 초등학교 중학교 때를 제외하곤 줄곧 인천에서 살았다.1953년 대부도 태생으로 호적에 기재돼 있지만, 아버지 본적을 따른 것일 뿐 실제론 인천 송림동 태생이라고 한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던진 화두는 ‘골목경제 활성화’다. 토착상인과 기업인을 살리기 위한 재래시장활성화 대책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지방정부 자치법규 등을 정비하고 대형 할인점을 규제하는 등의 방안을 내놨다. ‘아시안게임 유치’,‘경인전철 인천 구간 지하화’ 등 상대 후보들의 주요 공약에 대해선 “당선된다 해도 본인들 임기 내에 실현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근혜 대표 피습 이후 선거 분위기가 가라앉고 시민들이 냉담해진 것 같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다가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으로 옮긴 데 대해서는 “인천시장은 시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자리로 당적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박근혜 테러수사] 박대표 “국민염려 감사”

    [박근혜 테러수사] 박대표 “국민염려 감사”

    입원 사흘째인 22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차츰 안정을 되찾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아침부터 ‘바깥’ 소식이 궁금하다며 신문을 찾는 등 점차 피습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표는 신문들이 대서특필한 이번 사건 관련 기사를 보고 “국민들이 염려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유정복 비서실장이 밝혔다. ●신문 찾는 등 안정 되찾아가 그러나 박 대표가 완전히 회복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 의료진의 판단. 수술 경과가 좋기는 하지만,60바늘이나 꿰맨 탓에 오른쪽 턱이 많이 부어오른 상태다. 의료진은 오른쪽 귓구멍 밑에서 입술 아래까지 생긴 상처 전체에 압박붕대를 붙여 회복을 돕고 있다. 말도 여전히 제대로 못하고 있다. 흉기에 턱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을 다쳤는데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해 말을 한다고 해도 입을 조그맣게 오므리는 정도다. 의료진은 말을 하지 않도록 권하고 있다. 평소처럼 말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지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특기’인 대중연설을 하려면 몇 달은 더 걸린다. 박 대표의 식단은 현재로선 미음 정도가 전부. 턱을 움직이지 못하니 유동식만 먹어야 하는데 그나마도 빨대로 조금씩만 들이켜야 한다. 식사를 하기 전에 우유와 두유를 빨대로 마시기도 하지만 소량에 그쳤다. 면회도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여동생 서영씨와 남동생 지만씨 부부, 두 살짜리 조카 세현군 등 가족과 보좌진 몇 명만 병실을 드나들고 있다. 박 대표는 “참을 수 있는 만큼 참겠다.”며 진통제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증은 호소해도 진통제는 요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의료진도 박 대표의 ‘고집’을 존중해 진통제를 주사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상처가 빨리 아물려면 진통제에 의존하지 말고 그냥 참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오늘 실밥 절반풀기로 사흘 전 수술할 때도 회복이 더디다며 전신마취를 거부했다. 의료진은 “인내심이 대단하다.”,“독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23일엔 실밥을 절반 정도 풀 예정이다. 물론 실밥을 다 뽑는다고 바로 바깥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덧나지 않고 잘 아물도록 돕는 살색의 특수 테이프를 보름 정도 얼굴에 붙인 채 활동해야 한다. 병원측은 “오는 27일께 퇴원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신관 20층 VIP룸에 묵고 있다.25평 규모로 병실 옆에 작은 거실이 딸려 있다. 측근들은 병실이 ‘2007호’라 당황해하는 눈치다. 대선이 있는 내년이 2007년이라 ‘의미심장하다.’는 것이지만, 괜한 오해를 살까 언급을 꺼리고 있다. 박지연 홍희경기자 anne02@seoul.co.kr
  • 납북 日人 메구미 부친·南 김영남 모친 서울상봉

    납북 日人 메구미 부친·南 김영남 모친 서울상봉

    “멀리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돈과 힘을 합해 적극적으로 나서면 가족 모두가 만날 수 있는 날이 일찍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김영자씨) “이 자리에 오니 김영남씨가 어머니와 누님을 부르는 소리, 메구미 누나가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요코타 데쓰야)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부친 요코타 시게루(73)와 남동생 요코타 데쓰야(37)가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수협중앙회 2층 대강당에서 메구미의 남편인 납북피해자 김영남씨의 어머니 최계월(82)씨, 누나 영자(48)씨와 상봉했다. 이들은 반갑게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20분가량 얘기를 나눴다. 아버지 요코타가 하코네 관광지 특산품과 가고시마에서 만든 전통 공예품, 목제 거울 등을 건네며 “둘 다 모국으로 돌아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하자 최씨는 도자기 찻잔세트를 선물했다. 아버지 요코타는 “딸이 김영남씨와 함께 훌륭한 숙녀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는 28일 일본 도쿄에서 (납북자 송환촉구모임인)일본국민대책회의 집회가 있으니 꼭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영자씨는 “초대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요코타 부자는 서울 서대문구 납북자가족협의회(회장 최우영) 사무실을 방문해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일본 단체들이 손잡고 협력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가족의 상봉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15일 밤 일본 정부로부터 김영수(김영남의 북한이름)씨의 몽타주, 김씨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 사진 3장, 김씨 가족이 이사다닌 곳을 그린 지도, 김씨와 메구미가 만난 과정 등을 적은 기록을 건네받았다.”고 밝혔다. 영자씨는 “몽타주에 나온 콧날이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주 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영남이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편지의 필적에 대해선 가족 대부분이 느낌상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사돈 만나게 돼 반가워 고통·슬픔 함께 나눌것”

    “메구미야, 애비다. 한참 못 만나는 동안 애비가 백발이 많아졌지?그래도 엄마랑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마라. 난 지금은 정년퇴직해서 가와사키에 살고 있다. 전에 너 살던 가시마에서 전철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야.12층에서 후지산이 잘 보인다.” “메구미 누나, 나 데쓰야야. 내가 벌써 서른일곱이 됐다니 상상도 못하겠지?나 지금 한국에 왔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도 누나를 구하지 못해 정말 미안해.28년이 지났지만 한 순간도 누나를 잊은 적이 없어.”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부친 요코타 시게루(73)와 남동생 요코타 데쓰야(37)가 15일 오후 2시30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일본의 납북자 모임인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가족 연락회’‘북한에 의한 피랍자 가족 연락회’ 등 단체의 관계자들과 함께 온 이들은 16일 북한에서 메구미와 결혼한 납북피해자 김영남씨의 어머니 최계월(82)씨, 누나 영자(48)씨 등과 합동 기자회견을 연다. 또 납북자가족협의회(회장 최우영)와 6ㆍ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대표 이미일)도 방문한다. 이들은 입국하자마자 자유북한방송을 방문, 북녘에 보낼 40여분간의 인터뷰를 녹음했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국장의 사회와 일본의 납북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협의회 니시오카 쓰토무의 통역으로 진행된 방송은 오는 18일 저녁 7시와 19일 새벽 2시 북녘으로 방송된다. 아버지 요코타씨는 최씨와의 만남에 대해 “딸과 결혼한 남한측 사돈과 만나는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 영남이가 어떤 아들이었는지 메구미는 어떤 딸이었는지 서로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이야기 나누고, 그동안 얼마나 슬픈 심정으로 살아왔는지 아픔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한국에서 납북자 구출 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자신들의 방문으로 관심이 더욱 깊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들은 최씨 등을 위해 일본 하코네 관광지 특산품과 목재 거울 등을 선물로 가져왔다. 두 사람이 빨리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염원을 담은 기도의 탑도 만들어 가져왔다. 한편 최씨 등 김영남씨 가족은 27일 일본을 방문, 중의원에서 증언을 하고 양국 연대 납치 피해자집회에도 참석한다. 아베 관방장관과 아소 외무대신과의 면담도 예정돼 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남정임 노리는 7人의 신랑감

    남정임 노리는 7人의 신랑감

    혼령기(婚齡期)의 「스타」 남정임(南貞姙·24)에게 구혼사태가 일어났다. 미모와 인기와 돈과 명성을 한 몸에 지닌 이 처녀 「스타」를 노리고 수많은 기사(騎士)들이 구혼작전을 펴고 있다. 그 중에는 이름을 대면 곧 알만한 명사급에서부터 상당히 「지체높은 분」의 자제들도 섞여 있다. 과연 어느 기사의 화살이 이 미인(美人)의 「하트」에 적중할 것인지? 南양 어머니는 모두 칭찬 딸 일곱 있으면 좋겠다고 남정임(南貞姙)은 하루 평균 30통의 「팬·레터」를 받는다. 그 중 3분의 1은 『남정임을 사랑한다』는 구애편지. 「스타는 만인의 연인」이니까 누구나 사랑할 권리는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남정임의 사랑을 요구하는 구애편지는 그녀를 환희보다 비명속에 몰아넣는다. 말하자면 즐거운 비명일까? 3년 남짓, 남정임이 영하배우로 「데뷔」한 직후부터 오늘까지 사흘에 한통꼴로 끈질지게 편지를 보내는 「팬」이 있다. 3일에 1통꼴은 안가도 한달에 2,3차례씩 낯익은 필적을 보내는 「팬」도 10명이 넘는다. 편지 내용은 『한번만 만나주세요』의 애원조에서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다』는 충성파, 『안만나주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조까지 가지각색이지만 한결같은 미사(美辭)는 『남정임을 사랑한다-』는 것. 그러나 이런 유의 「팬·레터」는 남정임의 심금을 울리기엔 너무 허약하다. 그가 보관하고 있는 「팬·레터」는 현주소인 서울 서대문구 안산(鞍山)동 19의16으로 이사오기 전에 3가마를 불태웠어도 아직 조그마한 방에 산처럼 쌓여있다. 정작 장본인의 손으로 개봉되지 못한 채 창고에 쌓여지는 비운의 편지도 수두룩하다. 『유정(有情)』으로 「데뷔」한 이후 탄탄대로를 달리듯 「스타돔」에 올라선 남정임은 지금도 17편의 영화출연에 밤낮을 잊고 있다. 30여통의 「팬·레터」를 일일이 읽고 답장 쓰기엔 너무 피곤한 처지. 여기서 밝히려는 건 이런 단순한 「팬·레터」이 사수(射手)들이 아니다. 남정임은 현재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구혼공세에 적이 당황하고 있다. 점잖게 중매를 내세워 청혼하거나 가정속으로 파고들어 양가친목의 수단을 펴서 접근하고 있는 신랑후보가 현재 10명가량, 이 중 남정임측이 이미 「체크」했고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후보만도 7명이 있다. 이들은 남정임양의 어머니가 『딸이 일곱만 있다면 모두 사위삼고 싶은 청년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선은 합격점의 사나이들. 생일 축하 꽃다발 보내고 동료·상관의 응원 받기도 아닌게 아니라 『남정임이 모 고위층 비서관인 S씨와 정혼할 단계』란 소문이 최근 영화계와 정계 일부에 나돌아 귀를 번쩍하게 만들었다. 젊은 비서관 S씨-그도 분명히 7인의 후보중 한사람이다. 나이는 남정임양보다 6세위인 30세, 똑똑하게 잘 생겼고 가문도 「돈 많은 집안」. S씨는 남정임이 배우가 된지 반년쯤 뒤에 동료직원을 사이에 넣고 구혼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남정임의 집에 몸소 찾아온 것도 5,6회. 지난 7월19일 남양의 24회 생일엔 축하 「카드」와 꽃다발을 보내고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 때 남정임은 다른 사정으로 거절. 소식통은 S비서관과 남양의 관계가 약혼일보직전이라고 전해졌다. 그러나 남양측은 이를 극구 부인했다. 또 한사람의 후보는 S여대 C모교수, 30세. 남정임의 외사촌이 바로 S여대에 다니고 있으며 그것이 접근「루트」가 됐다. 독실한 장로교신자이기도 한 이 총각교수는 남정임의 어머니 김순희(金順姬)씨가 역시 같은 교인이란 점에서 선취득점, 2년전에 정식 청혼장을 보냈다. 재벌 아들 사업가 4명은 「액세서리」등 선물보내와 지금도 집안끼리 연락이 오가고 가족처럼 친밀한 사이가 됐지만 청혼장의 답장은 아직 내지 않았고. 2명의 재벌 아들과 2명의 청년실업가가 역시 남정임에게 구혼장을 띄었다. 최고령이 35세고 최하가 25세. 이 4명은 이따금 「액세서리」등 선물을 사보내고 그 중 1명은 일본월간여성잡지(주부(主婦)의 우(友))를 3년간 계속 보내주고 있다. 구혼(求婚) 방법이 은근하고 점잖은 것이 받아들이는 측 판단으로는 소극적인 것이 되는지? 이 4명에 대한 장본인측의 신임은 비교적 희박하다. 멀지 않아 「프레임·아우트」될 공산이 크다. 나머지 1명, 주미대사관(駐美大使館)의 金모(29)씨. 7명의 기사중 가장 촉망되는 신랑후보가 바로 이 외교관 金모씨라는 얘기도. 3년전 임지인 미국으로 건너간 김씨는 67년 여름 2개월간의 귀국기간중 남정임과 「데이트」를 즐긴 유일의 행운아다. 경기고(京畿高)-서울문리대(文理大)를 나온 KS「마크」, 그의 백부가 바로 국내제일의 합판회사를 갖고 있는 金모씨. 유력하긴 외교관(外交官)·비서관(秘書官) 가을에 결혼식 올릴지도 남정임의 어머니 김순희씨는 딸이 영화배우생활중 특별히 염문이 없는 이유를 『점찍어 놓은 사람이 있기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정임 자신도 신랑감을 묻는 한 기자에게 『외교관-』이라고 발설했다. 편모와 외동딸(남정임은 오빠1명 남동생 1명뿐)이니까 남정임의 결혼상대를 결정할 실권자는 바로 두 사람. 두 실권자의 발언은 김씨를 두고 일맥상통의 심증을 굳게 한다. 사실상 김씨는 남정임의 「친서(親書)」를 받고 있는 유일한 신랑후보다. 태평양(太平洋)을 사이에 두고 띄워보내는 남정임의 사연이 연서(戀書)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들 사이엔 지금도 편지가 오가고 있다. 두사람이 친밀한 사이가 된건 남정임의 『유정(有情)』이 개봉되기 전후부터. 「팬」의 위치에서 접근해 왔다지만 김씨는 남양의 어머니 김순희씨의 친구의 조카이기도 해서 전부터 알만한 사이인듯. 어쨌든 남정임측이 가장 강력한 신랑후보로 치고 있음엔 틀림없다. 한국식나이로 25세인 남정임의 결혼 「스케줄」은 가을에 정혼(定婚)하여 27세가 되는 71년 봄이나 가을에 식을 올릴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일을 해야겠고 또 아는 사람(관상가?)에게 물어보니 27세때 결혼하는게 제일 좋다더라』는것. 이쯤되면 남정임의 신랑감은 S비서관과 외교관 김씨 선으로 압축할 수 있다. 두사람 도무 「가정·인품이 뚜렷한 1등 신랑감」. 당분간 사랑쟁탈의 줄다리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남양측의 얘기는 어디까지나 외교관 쪽. 다른 청혼자들은 「한낱 비교의 대상 정도」라니 특별한 일이 없는한 6명의 기사들은 자퇴서(自退書)라도 내야할듯. [ 선데이서울 69년 9/7 제2권 36호 통권 제50호 ]
  • 인터넷 경품사기 억대뜯어

    경품에 당첨됐다고 속여 싸구려 식품을 보낸 뒤 세금 명목으로 억대를 챙긴 4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구모(40)씨는 지난해 11월 인터넷에 쇼핑몰을 개설한 뒤 거짓 경품 행사를 열었다.1등부터 5등까지 홈시어터, 세탁기 등을 준다고 선전해 많은 사람들이 응모하게 해 놓고 실제로는 버섯엑기스를 주는 3등 경품권만 만들었다. 이를 관리비나 케이블TV 납부고지서에 첨부해 전국 아파트 28만 5000여가구에 뿌렸다. 구씨는 경품권을 받고 전화를 걸어온 피해자들에게 “39만 9800원짜리 버섯엑기스에 당첨됐는데 세금 10%(3만 9800원)는 본인 부담”이라고 속였다. 이런 식으로 4400여명으로부터 1억 800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버섯엑기스는 상황버섯 8㎏에서 무려 2t을 우려낸 원가 6000원짜리로 밝혀졌다.이 과정에서 구씨의 두 남동생은 각각 인쇄물 제작과 광고 및 쇼핑몰 관리를 맡았고 여동생은 전화상담원 노릇을 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8일 구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구씨의 동생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일요영화]

    [일요영화]

    ●걸파이트(KBS1 밤 12시30분) 반항기에 있는 10대 소녀가 사각의 링에서 정체성을 찾고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영화다.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승부의 긴장감이나 승리의 환희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슈팅 라이크 베컴’(2002)이나 ‘밀리언달러 베이비’(2004)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가장 여성 파워가 빛나고 있다.‘걸파이트’의 여주인공은 심지어 남자 선수와 링 위에서 맞붙기도 한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단 30일 만에 촬영을 끝낸 이 영화는 200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 등을 받으며 각광받았다. 또 칸영화제, 도빌영화제 등 여러 곳에서 상을 휩쓸었다. 데뷔작이었던 이 작품으로 유명세를 탔던 여성 감독 캐린 쿠사마는 지난해에는 피터 정 원작의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옮긴 ‘이온 플럭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인공 미셸 로드리게스는 이후 ‘분노의 질주’(2001) ‘레지던트 이블’(2002)과 TV시리즈 ‘로스트’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걸핏하면 싸움에 휘말리는 문제아 다이아나(미셸 로드리게스)는 어느 날 남동생이 다니는 체육관에 들렀다가 권투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권투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며 조금씩 자신감과 희망을 찾게 된 다이아나. 체육관 동료 애드리안(산티아고 더글러스)과도 달콤한 사랑을 시작한다.2000년작.107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천국보다 낯선(EBS 오후 1시50분) 1980년대 미국 인디 영화의 걸작으로, 독립영화의 기수 짐 자무시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여행기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낯선 현실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래 ‘신세계’라는 단편이었으나 짐 자무시 감독이 두 단락을 추가해 장편으로 만들었다. 잦은 생략과 절제된 카메라를 통해 고독감과 소외감이 흑백 화면에 녹아든다는 평.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이다. 뉴욕 빈민가에 사는 윌리(존 루리)에게 헝가리에서 사촌 에바(에스터 벌린트)가 찾아와 머물다 간다. 윌리는 1년 뒤 친구 에디(리처드 에드슨)와 함께 클리블랜드에 있는 에바를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핫도그 가게 점원으로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에바는 에디 등이 찾아오자 함께 플로리다를 향해 떠난다. 세 사람의 여행은 윌리와 에디가 개경주에서 돈을 날리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1984년.89분.
  • 하사 제대후 다시 하사로

    “너무 늦게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은 것 같아 걱정되긴 하지만 나를 믿고 끝까지 따라준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멋진 군인이 되겠습니다.” 23일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열린 제195기 공군 부사관 후보생 임관식에서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은 최정희(29) 하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두번째 부사관 임관식을 치른 특이한 인생역정의 소유자다. 그러니까 9년전 170기 공군 부사관으로 임관했다가 4년 만에 전역한 뒤 지난해 다시 195기 부사관 후보생으로 입교한 것이다. 최 하사는 1997년 공군 부사관으로 임관한 뒤 비행대대에서 ‘항공운항’ 분야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군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군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긴장의 연속인 비행대대 근무는 너무나도 바쁘고 고된 일이어서 결국 2001년 8월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제대한 뒤 평범한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해 예쁜 딸도 낳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최 하사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군인에 대한 꿈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10전투비행단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다가 다시 부사관에 도전하기로 결심, 몇 개월에 걸쳐 아내를 설득,‘잃어버린 꿈’을 되찾았다. 물론 방황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 최 하사는 9년전 같이 임관했던 동기들(대부분 중사급)에게 깎듯이 상관 대접을 해야 한다. 다만 공군은 최 하사가 그 전에 4년간 근무했던 호봉은 인정해주기로 했다. 한편 김현희(26·항공기관정비), 박혜인(25·총무) 하사는 각각 부사관인 남동생들의 임관식에 왔다가 제복을 입은 여군의 당당한 모습에 반해 부사관을 지망한 케이스. 이들은 “남동생을 선배로 만나야 하는 것이 조금은 쑥스럽지만 같은 길을 가게 되어 든든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날 임관한 신임 부사관 253명(여성 27명 포함)은 규정상 9급 공무원에 준하는 연봉을 받게 되며 4년 의무복무 후 장기부사관 응시를 통과하고 20년 이상 근무하면 군인연금도 받게 된다. 이들은 4개월 전 평균 7.6대의1의 경쟁률을 뚫고 기본군사훈련 과정에 들어왔으며, 특히 여성 부사관 경쟁률은 21대1에 달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정부, 일제징용 희생자 지원안 입법예고… 피해자·유족 반발

    정부, 일제징용 희생자 지원안 입법예고… 피해자·유족 반발

    정부가 지난 8일 내놓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 방안에 대해 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안은 해외로 징용돼 장해를 입은 자와 현지 사망자 유족에게 최고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생존자와 생환 후 사망한 징용자의 유족에게는 한 해 50만원 한도 내에서 의료비 혹은 자녀 교육비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일본정부 및 일본기업으로부터 받은 미수금에 대해서는 1엔당 1200원으로 보전해준다. ●유족들,“보상금 너무 적다.” 그러나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측은 이러한 지원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지 사망자에게 주는 지원금 2000만원이 적은 것은 둘째 치고 생환 후 사망자 유족과 생존자에게 한 해에 최고 50만원의 의료비와 교육비밖에 주지 않는 것은 너무 적다는 불만이다. 살아 돌아왔다고 지원금을 주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나마 의료비는 징용 당시 다쳤던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미수금도 당시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며 1엔을 1200원으로 환산하는 것은 너무 적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지원액을 둘러싼 정부와 유족들의 입장 차이는 예산과 징용 피해자 수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5000억원 예산으로 7만명이 넘는 피해자들에게 모두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유족측은 전체 지원 대상을 2만 5000명으로 추정하면서 예산을 1조원 이상 늘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유족들은 정부가 예산은 너무 적게, 피해자 수는 너무 늘려 잡았다고 말한다. ●“살아돌아온 게 죄인가.” 17세 때 일본 해군 군속으로 끌려가 남양군도의 한 섬에서 4년간 징용생활을 했던 한병항(82·서울 강서구 가양동) 할아버지는 요즘도 궂은 날씨엔 오른쪽 무릎이 쑤신다. 섬에서 방공호를 만드는 작업에 동원됐다가 입은 무릎 탈골상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 사망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상금은 고작 한 해 치료비 5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60년간 보상만 믿고 여태껏 기다렸는데…. 죽은 사람도 죽은 사람이지만 산 사람에게도 보상을 제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나.” 한 할아버지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1965년 한·일회담 때 돈 받아와서 고속도로 깔고 포항제철 짓는 데 썼으면 이제라도 돌려줘야지. 몽둥이라도 들고 청와대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야. 사형도 무섭지 않아. 이런 늙은이를 어디 잡아다가 해코지하겠나. 정부가 원망스러울 뿐이네.” ●“국내징용도 일제 징집장에 의한 강제징용” 최수영(81·서울 구로구 구로동) 할아버지는 18세 때 징용을 피해 강원도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했지만 이 회사가 일본 징용회사로 바뀌었다. 최 할아버지는 몰래 도망쳤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소년 형무소로 끌려갔다. 최 할아버지는 징용 지역이 국내이기 때문에 이번 보상 대상에서 완전 제외됐다.“나는 일본에 반대해서 징역을 산 사람이야. 개인적으로 편하자고 징집을 피한 게 아닌데…. 독립운동을 하고 만세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일제에 반대했다가 징역을 살았으니 그게 독립운동이 아니고 무엇이냔 말이다.” ●“죽어 돌아왔어야 한다는 말이냐.” 채창순(50·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씨의 언니와 남동생은 모두 근육병을 앓고 있다. 채씨는 이 병이 일본으로 징용된 아버지가 당한 폭격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친척 누구도 근육병을 앓는 사람이 없는데 아버지가 징용에서 돌아온 뒤 낳은 자식들만 유전병처럼 이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병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채씨의 남매들은 보상은커녕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가 징용에서 얻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걸 이제 와서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정부에 꼭 뭔가를 요구할 수는 없지만 보상금이라도 받으면 근육병으로 고생하는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텐데….”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자들의 외침] 남편·두아들 옥바라지 “눈물 마를날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자들의 외침] 남편·두아들 옥바라지 “눈물 마를날이…”

    제 이름은 박정순입니다. 올해로 예순 한 살이지요. 저는 남편과 사이에 아들 셋을 두었습니다. 큰 아들은 특허법무대학원을 나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고, 둘째 아들은 치과대학원 2학년생입니다. 막내아들은 지난해 8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남들은 어쩜 그렇게 자식농사를 잘 지었느냐고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시꺼멓게 타버린 제 속을 모르고 하는 얘기지요. 저희 집안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입니다. 대충 짐작들 하시겠죠. 바로 병역거부 문제이지요. 양심적 병역거부로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남동생을 교도소로 보내야 했지요. 이제 막내아들까지 병역거부로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될지 모르는 저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남동생도 감옥에… 막내아들 거부 예정 첫번째 시련은 남편의 구속이었습니다. 큰 아들이 태어난 지 8개월 되던 1975년 3월, 종교행사를 갖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과 병무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남편을 포함해 남자 200∼300명을 끌고 갔습니다. 제 남편은 이미 1969년 병역거부로 1년간 유치장 생활을 한 상태였습니다. 충남 조치원 헌병대로 끌려간 남편은 항명죄로 2년형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해야 했지요. 그 때의 구타와 비인간적인 대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11일 동안 하루 한끼의 식사를 세 번으로 나눠 주면서 양쪽 종아리에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매일 6시간씩 구보를 시켰습니다. 칫솔을 90명이 함께 쓰도록 했고 철창에 매달려 있기, 거꾸로 벽타고 서 있기, 잠 안재우기 등 듣기만해도 끔찍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으로 엉망이 된 남편 얼굴을 교도소에서 보여주질 않아 면회하러 갔다가 눈물을 뿌리며 발길을 돌려야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형기 2년이 끝나갈 즈음 저는 남편이 1년형을 추가로 언도받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2년형을 받고 복역하고 있는 재소자들에게 군사 훈련을 해 이를 거부하도록 유도,1년을 더 선고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울화병과 지병이 악화된 시아버지는 “징역살고 나오면 뭐해, 또 들어갈 텐데.”라고 원통해 하시다가 아들이 출소하기 한달 전 돌아가셨습니다. 그 와중에 제 남동생도 병역거부로 3년간 옥살이를 했고 저는 남편과 동생의 옥바라지로 속앓이를 하며 매일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습니다. ●수형생활 마치고도 국가시험 한동안 응시못해 남편은 출소 후에도 구타의 후유증으로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전과자라는 이유로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기도 어려워 정수기 세일즈맨 생활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세 아들 모두 자기 앞가림은 톡톡히 해내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병역거부를 지켜보면서 아들들의 장래를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병역거부를 하게 됐을 때 겪을 과절과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만해도 끔찍했습니다.99년 11월 큰 아들이 스물 여섯 되던 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2개월 후 둘째도 형의 뒤를 이어 병역을 거부했습니다.26년 전 고통이 반복된다는 생각에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으려 해도 눈에선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이 교도소에 있었던 3년간 우리 부부는 1주일에 한번씩 하루는 큰 아들이 복역하고 있는 의정부로, 하루는 둘째가 있는 안양으로 교도소 문이 닳도록 면회를 다녔습니다. 수형생활을 마친 아들들은 지금 사회에 복귀했지만 안타까운 것은 두 아들 모두 자기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과자이기 때문에 큰 아들은 국가고시인 변리사 시험에 3년간 응시할 수 없고, 작은 아들도 원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내키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습니다. ●“신념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 막내도 곧 병역거부를 할 것입니다. 막내 역시 출소 후 5년간은 원하는 공인회계사 시험을 치를 수 없겠지요. 저의 바람은 제발 막내만은 남편과 두 아들처럼 시련과 좌절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실력이 있으면서도 자기 꿈을 펼치지 못하는 아들들을 보는 것은 어미로서 가슴에 천근만근 무거운 돌을 얹어놓은 것 같이 힘겹습니다. 요즘엔 막내가 교도소에 들어갈 걱정에 신경이 쓰여 신경통도 악화되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보통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종교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신념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며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신념입니다. 조선시대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그때까지 지켜온 유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았던 선조들처럼 인류를 향해 살인무기를 들이댈 수 없다는 신념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옥바라지를 해온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부디 앞으로 저와 같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눈물 흘리는 가족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길섶에서] 흥남철수 그후/임태순 논설위원

    아버지 손에 끌려 13살때 피란내려온 사촌형이 한분 계시다.1950년 12월21일에 거제도에 닿았다고 하니 그 유명한 ‘흥남철수’때인 모양이다. 그가 지난해 북에 있는 가족소식을 듣게 됐다며 한동안 흥분했던 적이 있다. 브로커가 달라붙었던 것이다. 몇차례 맞느니, 틀리느니 옥신각신하다가 어머니, 누나, 여동생, 남동생 등 가족사진과 편지가 전해졌다. 첫번째 편지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공부 잘하고 예뻤던 누나는 의사로 정년퇴직한 뒤 ‘년료보장’으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남동생은 위암으로 죽었지만 여동생 2명은 각각 함흥 성천강 피복공장 간부, 도 출하사업소 지도원으로 역시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설 때 그후 소식을 물어봤다. 여동생으로부터 짤막한 편지가 날아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보고싶은 마음 간절하나 자식들한테 피해를 줄 것 같아 따라나서지 못합니다. 더 이상 사람을 보내지 마세요.”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동생이나 누나를 만나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보자 “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잘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지.”하고 입맛을 다신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웰빙한방 칼럼] 초경을 하는 딸에게

    “경선아 축하한다. 너도 이제 어른이 된 거야.”라며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박수를 치는 황선태(37)씨 가족. 이젠 딸아이의 초경을 온 가족이 모여 축하해 주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 딸아이의 초경은 소녀에서 신체적으로 완벽한 여성으로 재탄생되었다는 신호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심리적, 정서적으로 아주 불안한 상태를 가진다. 이런 딸아이를 위해 부모들은 준비를 해야 한다. 첫번째, 아빠를 비롯한 가족의 축하는 아이가 새로운 신체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주며 자연스레 받아들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남동생이나 오빠가 있을 때는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어야한다. 두번째, 마냥 어려 보이던 딸아이를 여성으로 인정해야 한다. 특히 목욕 후 알몸을 보이지 않는다든지, 노크 없이 딸의 방문을 열지않는 등 딸의 성적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 세번째, 물론 엄마가 해야 할 일이지만 딸아이의 신체 변화에 대한 설명과 대처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월경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엄마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는 신호라며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임을 아이에게 꼭 알려 주어야 한다. 네번째는 부모들이 소홀하게 넘어 갈 수 있는 ‘성장판’에 대한 문제이다. 딸아이가 초경을 시작했다고 하면 이제 아이가 더이상 키가 크지 않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혹시 딸아이가 ‘키’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거나 또래보다 현격하게 키가 작다면 초경 직전에 병원을 찾아서 문의를 해야 한다. 초경이 시작되면 향후 1∼2년 내에 성장판이 닫혀 키가 크지 않는다고 보면 옳다. 그러므로 이때가 성장에 관한 마지막 치료 시점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딸아이의 키는 커지지 않는다. 한의학에서는 한약을 통해 성장부진의 요인을 제거하고 체내 호르몬 대사를 조절하여 초경을 가급적 늦추고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성장을 유도한다. 따라서 여자의 성장치료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초경 이전에 시작해야 하고, 키가 많이 작은 경우에는 어릴 적부터 관리에 들어가 꾸준히 성장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김기준 원장(자연담은 한의원·www.nature-clinic.com/growth)
  • [여담여담] 여초와 남초/전경하 경제부 기자

    여초(女超)현상에 대한 남성들의 놀라움이 크다. 중년 남성이 더욱 심하다. 그 연령대는 여초를 상상조차 해보지 못해서일 거다. 정부 경제부처의 50대 국장이 “난 여성이 미련할 줄 알았는데….”라고 말할 정도다. 서울신문은 매주 토요일자에 ‘커리어우먼’이라는 기획 인터뷰를 싣고 있다. 상대적으로 ‘성공녀(女)’가 드문 경제계, 그중에서도 금융, 특히 은행·보험·증권쪽의 성공한 여성들 이야기를 다룬다. 경제계 여성 임원들을 만날 때마다 여초의 이유를 물어봤다. 답은 저출산과 남녀차별의 역효과로 요약된다. 아이를 하나 또는 둘 낳기 시작하면서 ‘너는 여자니까 오빠, 남동생을 위해 희생해야지.’라고 하지 않는다.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보다 지적 발달이 빠르다는 건 정설이다. 부모의 ‘배려’까지 더해지면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보다 뛰어나기는 쉽다. 여자 아이들은 자라면서 대기업 임원, 정치인, 장·차관 등 힘있는 사람들 중 여성이 드물다는 현실과 맞닥뜨린다.‘일을 하려면 아주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데 매진한다.30·40대 ‘극성모(母)’는 딸을 키울 때 ‘여자니까 더 잘 키워야지.’라고 다짐까지 한다. 여초라고들 하지만, 신입사원 중 여자가 절반을 갓 넘었거나 예전에 비해 여성비율이 크게 늘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문제는 앞으로다. 사회 초년생 여성들은 ‘언니’들보다 일에 대해 더 진지하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아본 적도 없어 승진 등에서의 차별에 거세게 항의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힘있는 사람들’ 중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 진정한 여초가 현실화될 날도 그리 머지않은 것 같다. 여자인 나는 여초가 좋다. 하지만 사회는 남녀균형이 좋다. 모든 분야에서 여초가 정착되기 전에 이를 막을 수 있는 열쇠는 중년 남성들이 쥐고 있다.‘똑똑한 여자’‘강한 여자’에 대한 이들의 부정적 인식이 여성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경하 경제부 기자 lark3@seoul.co.kr
  • 어린이 3명 참변 하루만에 또…

    강원도 영월에서 어린이 3명이 참변을 당한 지 하루 만에 서울에서도 부모가 없는 사이 불이 나 집을 지키던 남매 가운데 남동생이 숨졌다. 숨진 어린이는 자폐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0일 오후 8시15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1동 3층짜리 빌라 2층 김모(55·자영업)씨의 집에서 불이 나 20여평을 태운 뒤 19분만에 진화됐으나 방에 있던 김모(11·초등학교 1년)군이 연기에 질식돼 숨졌다. 함께 있던 누나(19)는 집밖으로 빠져나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김양은 경찰에서 “불을 혼자 끄려다 너무 커져서 동생을 찾았는데 사방에 연기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았다.”며 “동생이 불을 피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방으로 잘못 피해 변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씨는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요양을 위해 지방에 내려가 있어 집에는 남매밖에 없었다. 김 군은 어렸을 적부터 자폐증을 앓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외부 침입이나 방화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뤄 일단 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정확한 화인을 조사중이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태광그룹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한다. 재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옥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 옛 동북고등학교 교사(校舍)를 30년여년 동안 그룹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타 재벌과 달리 초고층 호화 사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재계 서열 30위권이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나 강남에 번듯한 빌딩을 사옥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6층짜리 학교 건물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고 말한다.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태광의 사풍이 여실히 읽혀진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국내 재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그룹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는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 때부터 관통하는 ‘내실경영’이 면면히 이어진 결과다. ●대쪽 같은 선대 회장의 결혼과 창업, 그리고 성장 창업주인 고 이 회장은 지난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중농이었던 부친 이우식씨와 모친 정막랑씨 사이의 3남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簡井)실업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등으로 일본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듬 해인 42년 귀국길에 오른다. 이후 부친의 권유로 당시 22세 청년이던 그는 동네에 사는 이선애씨와 혼례를 올렸다. 신부 이씨는 이 창업주의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동네 유지인 이송산씨의 맏딸이다.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씨와 ‘창업 동지’ 이기화(태광그룹 회장까지 지냄)씨는 이씨의 남동생이다. 이기화씨는 부산고·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이 창업주와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궜다. 이 창업주는 야당 거물이던 이기택씨와 처남매부지간이란 이유로 군사정권 시절 여러차례 세무조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처남이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게 이 창업주에게는 결코 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기업은 절대 정치와 연결돼선 안 된다.”며 사업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찍히면 죽던 서슬퍼런 군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정경 분리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베테랑 세무조사 요원들을 투입, 몇 날 며칠을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이씨와 중매 결혼한 이 창업주는 공직(면사무소) 생활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6·25전쟁이다. 1951년 공직을 접은 이 창업주는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부산 문현동에 모직 공장을 차리고 태광산업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바로 태광그룹의 모체다. 이후 1961년 전 삼호그룹 조봉구 회장과 동업을 시작했으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창업주는 조 회장과 결별한 뒤 부산 가야동에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며 태광산업사를 주식회사로 출범시킨다. 초기 태광은 이 창업주와 이선애씨가 함께 일궈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선애씨가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이 창업주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기업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태광은 섬유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과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아크릴을 생산하던 태광은 눈부신 호황을 누렸다. 당시 아크릴은 양모 대체품으로 수요가 많았고 경쟁업체가 적어 태광의 고속 질주를 견인했다. 이 창업주는 스판덱스·나일론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했다. 섬유 호황기인 1970년대까지 내놓은 제품마다 시장의 돌풍을 일으켜 국내 최대의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태광은 이 시기에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화섬·석유화학에 금융이 붙으면서 태광은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약기를 맞은 셈이다. ●휴일에도 은행 이자는 큰다 태광그룹은 은행돈을 거의 안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타계한 이 창업주의 근검절약과 소탈함은 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이 창업주가 살던 서울 장충동 2층 양옥집은 지금도 부인 이선애(78)씨가 지키고 있다. 이 집에는 30∼40년 된 옛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 버금갈 정도로 검소했다.”고 이 창업주를 회고한다. 그는 해외이든 국내이든 출장길에는 새로 지은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법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년 동안 단골로 다닌 낡은 호텔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점심도 설렁탕 한 그릇으로 후다닥 끝낼 정도로 무척 소탈했다. 이 창업주는 “은행돈을 빌리면 토·일요일 등 은행이 쉬는 동안에도 이자는 불어난다.”며 무차입 경영을 추구했다. 돈을 빌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지도 않았다. 번 만큼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매출 규모 1조 3000억원인 모기업 태광산업의 부채 비율이 거의 제로인 것도 이같은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절약 경영과 남의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수익만큼 투자하는 실속경영은 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알차게 만들었다. 인수한 부실기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창업주는 또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 않고 공채 출신을 키워 경영진으로 기용했다.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은 그의 처남 이기화씨는 이 창업주의 사후 태광그룹 회장에까지 올랐다. 또 공채 출신인 류석기·강석명·최운형씨 등이 중용됐다. 그의 이런 원칙적이고 대쪽 같은 성품은 자녀들의 혼사로도 이어진다. ●화려한 혼맥…‘연애결혼은 없다´ 이 창업주는 생전에 모두 6명의 자녀를 뒀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연애결혼을 절대 허용치 않았다. 그는 평소 사대부가의 유교적인 면을 강조해와 전통 관습을 무척 중시했다. 재벌가의 혼사가 연애결혼보다 중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남3녀를 하나같이 중매결혼시켰다는 것은 가풍을 짐작케 한다. 이 창업주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들이 지체 있는 가문의 훌륭한 배우자를 찾아내 중매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자녀들의 혼사를 치러왔다. 이처럼 중매 일변도로 자녀 혼사를 치른 것은 중매야말로 좋은 가문의 좋은 배우자를 폭넓게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태광그룹 2세들의 혼맥은 서민의 가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격이 높고 화려하다. 태광의 사돈가가 사람들은 당시에 내로라 하는 정·관·재계의 유력 인사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자녀들 혼사로 정·관·재계의 거물들과 사돈이 되었지만 이들을 경영에 끌어들이는 법은 결코 없었다. 지금도 모기업인 태광산업의 사장은 태광 신입사원 출신인 이화동(62)씨다. 이 창업주는 이선애씨와의 사이에 식진(사망)·영진(사망)·호진(44) 3형제와 경훈(52)·재훈(50)·봉훈(48) 세 자매를 뒀다. 이 창업주의 개혼(開婚)인 식진씨의 혼사는 비교적 평범한 집안과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로는 모두 유력 인사와 사돈을 맺는다. 이 창업주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장남 식진씨를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54)씨와 결혼시켰다. 식진씨는 태광산업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식진씨의 장인 진씨는 면방업체인 경방에서 일하다 독립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공대 동창회장을 맡기도 했다. 식진씨 부부는 정아·성아·원준 등 1남2녀를 뒀다. 장녀 정아(31)씨는 결혼했다. 연세대 상대를 나온 차남 영진씨는 어머니 이선애씨 친구의 중매로 장상준(전 동국제강 회장)가의 4남2녀 중 막내딸인 옥빈(54)씨와 1976년 결혼했다. 태광산업에 입사한 뒤 계열사인 대우파일, 흥국생명, 고려상호신용금고 등에서 중역으로 활동했다. 이들 사이에는 성준·성은 남매가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호진씨의 부인 신유나(42)씨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71·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씨의 맏딸이다. 호진씨는 대원고·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경영학석사(MBA), 뉴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가 있다. 이 창업주의 세 딸은 모두 재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세자매 모두 이화여대 선후배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창업주의 독특한 자녀 교육관이 스며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태광의 혼맥은 이대 출신의 세 딸을 출가시키면서 보다 화려하게 뻗어 나간다. 장녀 경훈씨는 진주의 대지주이자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가의 막내 며느리가 됐다. 경훈씨의 남편은 유통전문기업 GS리테일 대표인 허승조(56)씨다. 이들의 결혼은 경훈씨 친척 할머니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이임용가에서 허만정가로 이어가면 조홍제-송인상-신덕균가와 만난다. 이연두-박치현-김준성-김우중가와도 연결된다. 경훈씨는 남편 허승조씨와의 사이에 지안·민경 자매를 두고 있다. 이 창업주는 차녀 재훈씨를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56)씨와 결혼시켰다. 원용씨는 현재 경희대 의대 교수로 있다. 이 창업주는 재훈씨를 양택식가로 출가시키면서 정·관계 유력인사와 연결된다. 양택식가를 통해 홍진기-노신영-정주영가로 연이 닿는다. 김한수-김복동가로도 이어진다. 특히 이 창업주는 이 결혼을 통해 업계의 라이벌인 한일합섬의 창업주 김한수가와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재훈씨 부부는 서윤·서정·서인·혁준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3녀 봉훈씨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광호가의 외아들 태원(49·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동우·상우·정우 3형제가 있다. ●뉴미디어·금융으로 21세기를 준비 태광은 1996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 해 11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이 75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3남 호진씨가 경영 전면에 부상한다. 호진씨는 이 창업주가 그룹의 후계자로 일찍 점찍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호진 회장은 섬유가 주력인 태광의 업종에 메스를 댄다. 추진력에 관한 한 부친 못지않은 ‘신형 엔진’ 이 회장은 ‘조용한 기업’ 태광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변화의 추동 세력은 MSO로 표현되는 종합유선방송과 금융 등 두 갈래다. 이 회장은 미래 태광의 신성장 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는 섬유와 화학 중심에서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기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기업으로의 급성장이다. 이 회장은 케이블TV 회사인 ‘태광 티브로드’를 세웠다. 티브로드는 태광, 미래, 통신 등의 앞글자 ‘T’와 브로드 캐스팅, 브로드 밴드의 ‘브로드’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티브로드는 지역 케이블TV 20개를 거느리고 있다. 가입자 300만명, 시장 점유율 24∼25%로 명실상부한 국내 1위다. 아직까지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진 못하지만 뉴미디어는 태광의 미래를 밝혀줄 한 축임에 틀림없다. 이 회장이 2003년 이후부터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미디어는 진헌진 티브로드 사장과 이상윤 안양방송 및 수원방송 사장이 이끌고 있다. 진 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이 회장의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금융 쪽도 더욱 살을 붙여야겠다는 게 이 회장의 전략이다. 현재 흥국생명, 고려상호저축은행, 태광투자신탁운용으로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쌍용화재와 예가람상호저축은행, 피데스증권 등의 인수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쌍용화재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태광산업은 쌍용화재 지분의 50% 이상을 확보했다.‘흥국생명+쌍용화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의 근거는 생명보험·손해보험 상품의 교차 판매다. 태광은 쌍용화재 인수 열기가 식기가 무섭게 피데스증권 인수에 나섰다. 피데스증권은 현재 주식거래 업무만 하는 중소형 증권사지만 태광은 이 회사를 인수해 종합 증권사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은 서울·경남에 기반을 둔 저축은행이다. 이들 기업의 인수작업이 순조롭게 매듭지어지면 태광그룹은 생보, 손보, 증권, 투신운용, 저축은행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금융 쪽은 류석기 흥국생명 부회장과 김성태 흥국생명 사장의 투톱 체제다. 김 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으로 LG증권 사장을 지냈다. 태광산업 출신인 오용일 흥국생명 전무도 눈여겨 볼 전문 경영인이다. 이호진호(號)의 태광은 대변신을 꿈꾼다. 현재의 청사진이 조만간 구체화되면 태광그룹은 화섬 석유화학, 금융, 미디어, 레저(태광관광개발), 육영재단(일주학술문화재단, 일주학원)으로 새 틀을 짜게 된다. ykchoi@seoul.co.kr ■ 정도·신의는 기업의 생명 ‘정도’와 ‘신의’.50여년 전 부산의 한 작은 시장에서 출발해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군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명제다. 이를 지키지 않는 거래처와는 두번 다시 거래를 이어가지 않았을 정도다. 정도와 신의를 기업의 목숨이자 기업의 자격이라고 늘 강조했던 이 전 회장은 한눈 팔지 않고 기업 경영에만 충실했던 기업인이다. 태광은 이 전 회장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그의 기업·국가관 등을 조명하기 위한 자서전 출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어록 정리에 신경쓰는 눈치다. 그의 어록에서는 경영관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 1973년 단 닷새 만에 흥국생명을 인수한 이 전 회장은 첫 임원회의에서 “보험회사의 재산은 보험가입자의 재산”이라며 “흥국생명의 돈을 태광에서 가져다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이 전 회장은 ‘오래된 만남’을 중시했다. 태광의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 양자의 관계는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오직 하나의 은행만을 고집한 이 전 회장은 1975년 대한화섬 인수 후 많은 임원들이 복수은행 거래를 건의했지만 “새 친구 열 명을 사귀기 위해 헌 친구 한 명을 안 버린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용은 이임용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자신의 입으로 말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계약서는 단지 둘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종이에 불과했다. 타계 몇해 전 신입사원 특강에서 신용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닷새 만에 서는 장에 못가는 사람이 장에 가는 친구에게 무엇 무엇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혹 자기 물건 사는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결코 친구의 부탁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 물건이 제수용품이었다면 남의 집 제사를 망치는 격이 돼 옛날 말로는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된다. 그래서 약속은 무서운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ykchoi@seoul.co.kr ■ 베일에 싸인 오너一家 재계에서 태광그룹만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오너 일가’도 없다.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은 물론 후계자인 이호진 현 회장 역시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재를 위해 이 회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는 단호한 한마디였다. 오너 일가가 이처럼 몸을 꽁꽁 숨기는 데에는 격동기를 헤쳐온 태광그룹의 기업사와 유교적 관습이 맞물려 있다. 태광에 있어 정치는 짐이었다.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은 야당의 거목인 처남(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을 두면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받았다. 고속성장을 질주한 태광이었지만 그럴수록 기업경영만큼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한눈 팔면 죽는다는 것을 절감한 이 전 회장은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에도 자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전 회장의 짙은 보수성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태광 일가의 여성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태광가(家)의 여성들에게서는 다른 재벌가와 달리 우먼파워를 찾아볼 수 없다. 여성으로서 적합한 문화계나 학술계에는 진출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세 딸도 그렇고 며느리도 마찬가지다.3형제 못지않게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세 딸 중 남녀공학 대학을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큰딸 경훈과 둘째 재훈, 막내딸 봉훈씨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이들 모두 다른 대학은 생각지도 못한 게 아닐까. 경훈·봉훈씨는 남편이 재계의 실력자들이지만 외부활동 대신 살림을 하고 있다. 태광가의 며느리들도 전혀 노출돼 있지 않다. 삼성·현대가 등 재벌들의 며느리들이 문화·재계의 저명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40대 중반인 이 회장도 전경련 활동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기피하고 있다. 선친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현장에 매우 충실한 CEO다. 캐주얼 차림으로 불쑥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놀라게 한다. 이 회장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예술에 조예가 깊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도 사실상 이 회장 작품이다. 바닥재부터 인테리어, 사무실 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CEO가 안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ykcho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터키서 또 AI 사망

    12살난 소녀가 15일 터키 동부 반 지역에서 치명적인 AI(조류 인플루엔자) H5N1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검사를 받던 도중 병원에서 사망했다. 터키에서는 현재 19명이 H5N1에 양성반응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주 각각 11,14,15살난 3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이후 이날 파트마 오즈칸(12)의 죽음으로 터키에서 AI로 인한 사망자는 총 4명을 기록했다.2003년부터 아시아에서 AI로 최소 78명이 사망한 이래 아시아 외 지역에서는 터키에서 처음 사망자가 발생했다. 오즈칸의 남동생 무하멧(5) 역시 고열에 시달리고 있으며 H5N1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터키 보건 당국은 아직 AI가 조류와 접촉하지 않고 인간 대 인간끼리 전염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터키에서는 60만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고,81개 지역중 26곳이 AI에 감염됐다.반 AP 특약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웃기는 영어(26) Taxi Drivers’ Favorite Jokes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웃기는 영어(26) Taxi Drivers’ Favorite Jokes

    A teacher says to her third-grade class,“Children,I’m going to ask each of you what your father does for a living.” “Bobby,” she says,“you´ll be first.” Bobby stands up and says,“My father runs the bank.” “Thank you,” says the teacher.“Sarah?” Sarah stands up and tells the teacher,“My father is a chef.” “Thank you,Sarah,” she says.“Joey?” Joey stands up and announces,“My father plays piano in a whorehouse.” The teacher becomes very upset and changes the subject to arithmetic. Later that day,after school,the teacher goes to Joey’s house and knocks on the door.The father answers it and says,“Yes? Can I help you?” “Your son Joey is in my third-grade class,” says the teacher.“What is this I hear about you playing piano in a whorehouse for a living?” “Oh,” says the father,“you see,actually I´m an attorney,but you can’t tell that to an eight-year-old kid.” (Words and Phrases) third-grade: 3학년의 do for a living: 직업으로 ~를 하다 run ~: ~를 운영하다 chef: 주방장 announce ~: ~를 공표하다 whorehouse: 매음굴 upset: 당황한 arithmetic: 산수 knock the door: 문을 두드리다 what is this I hear ~: 내가 들은 이 말이 무엇이냐? for a living: 생계를 위해 actually: 실제 attorney: (정식으로 위임 받은) 대리인, 변호사 (해석) 한 선생님이 3학년 자기 반 학생에게 “얘들아, 너희 각자에게 아버지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볼 거야?”라고 말했습니다.“Bobby, 네가 가장 먼저야”라고 말했습니다. Bobby가 일어나 말했습니다.“아버진 은행을 운영하세요.” “수고했어”라고 말했습니다.“Sarah는?” Sarah가 일어나 말했습니다.“아버진 주방장이세요.” “Sarah, 수고했어”라고 말했습니다.“Joey는?” Joey가 일어나 공표했습니다.“아버지가 창녀촌에서 피아노를 쳐요.” 선생님이 매우 당황해 주제를 산수로 바꿨습니다. 그날 늦게, 방과 후에 선생님이 Joey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Joey의 아버지가 대답하면서 말했습니다.“예, 뭘 도와드릴까요?” “댁의 아들 Joey가 제 3학년 반에 있는데요.”라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집장촌에서 피아노를 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이 무엇이지요?” “오, 사실은 (집장촌사람들의) 변호인인데, 여덟 살 먹은 아이에게 그걸 말할 수 없잖아요.”라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해설) 아버지 직업이 무엇인지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Joey라는 학생이 자기 아버지가 집장촌에서 피아노를 친다고 대답했습니다. 황당한 대답을 들은 선생님이 방과 후 Joey의 집을 찾아가 아버지의 설명을 요구했는데, 아버지가 자기가 창녀들의 법정 대리인인데 여덟 살 먹은 아이에게 이를 설명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장촌에서 피아노를 친다고 대답했습니다. 집장촌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이나 창녀들의 법정 대리인으로 일하거나 둘 다 창녀들을 위한 것이니 아버지의 둘러대기도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 절대문법18 자리매김학습 영어 문장은 동사를 기준으로 동사 앞은 주어자리, 동사 뒤는 목적어나 보어가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장은 반드시 주어와 동사가 함께 있게 되므로 주어의 자리에 올 수 있는 단어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동사의 특성에 따라 동사 뒤에 목적어나 보어가 올 수 있다. 따라서 목적어나 보어 자라에 위치하는 단어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어나 목적어 보어 자리에 위치하는 단어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사의 자리와 특성, 역할을 파악하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문장 구성에서 명사만큼 많이 쓰이는 품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명사가 위치하는 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동사를 기준으로 하여 앞 뒤에 오는 말들의 특성과 역할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명사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 문장을 살펴보자. The phone rings. / The game began. / The worms wiggle. 명사는 기본적으로 문장의 주어자리에 위치한다. 명사는 주어 자리에 위치하여 동작을 행하는 주체로 의미를 확장시켜주는 핵심적인 내용이 된다. 그리고 명사는 관사가 쓰인 경우에는 반드시 관사 다음에 위치하게 된다. 주어 / 동사 관사 a, an, the 명사 다음 제시된 표의 빈 칸을 채우시오. ■ Life Essay for Writing - 아버지 거액의 계약금을 아내의 순간의 결단으로 포기했지만 사실 김 회장은 가정적으로 커다란 아픔을 경험하고 있었다. 오직 성공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있었고 아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김 회장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타고난 근성으로, 들어오는 수입을 모두 재투자 하는 것은 오직 가족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지만, 김 회장이 그렇게 일에 몰두 하고 있던 어느 날, 큰딸아이가 말했다. “아버지,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방이 있으면 좀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좀 ... 참 아버지 힘드시죠?”이렇게 자신의 필요와 어려움을 말하다 아버지를 위로하는 딸아이를 보며 김회장은 너무도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지금 무얼 하는 것일까? 살자고 하면서도, 가장 기초가 되고 중요한 아이들의 필요를 돌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남의 집 아이들에게는 영어 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쏟아 왔는데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정성의 10분의1도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때쯤엔 사업도 웬만큼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베풀기를 좋아하는 김회장은 일을 추진하기 위해 자신의 직장에 속한 선생님이나 대리점 등, 자신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고 주위로부터 신망을 받았으나, 어린 줄만 알았던 딸아이의 공부방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젖었다. 그때까지 연년생 남매인 아이들은 한 방을 사용했지만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남동생과 한 방을 쓰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 아버지... 아버지란 이름이 너무도 무력하고 서글프고 아프게 다가왔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뱃심과 의지 하나로 버텨온 김회장인데 딸아이의 한마디가 몇 날을 귓전에 맴돌고 무너지는 가슴을 아무리 일으켜 세워도 마구 무너져 가기만 했다. 김회장은 딸아이의 공부방(?)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모든 결심 보다 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 [지금 청남대에선] 발묶인 관광지개발…개방2년 관람객 ‘뚝’

    [지금 청남대에선] 발묶인 관광지개발…개방2년 관람객 ‘뚝’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충북도로 소유권이 넘어간 지 3년 가까이 된다. 일반개방 이후 ‘현대판 임금님 행궁’을 보기 위해 물밀듯이 몰리던 관람객들의 열정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다. 청남대는 대통령 별장의 품위를 유지하며 국민에게 좀더 다가가려고 변화를 꿈꾸고 있으나 쉽지 않은 모습이다. ●관람객 감소 폭설로 호남지방이 난리가 난 뒤 열흘쯤 지난 지난달 말.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있는 청남대는 매서운 칼바람에 썰렁한 모습을 보였지만 분위기만큼은 고고했다. 나무는 모두 옷을 벗어 앙상했고 잔디는 누렇게 변해 있었다. 단체로 구경을 온 관람객이 주고받는 말소리와 청남대 선착장 앞의 대청호변에 풀어놓은 오리떼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깼다. 경남 거제에서 남동생과 함께 온 윤지애(28·교사)씨는 “평소 한번 오고 싶었는데 방학을 맞아 처음 찾았다.”면서 “외국의 왕이나 대통령 별장은 무척 화려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청남대에 있는 식기나 샴푸 등은 검소해 보여 의외였다.”고 말했다. 요즘 하루종일 청남대를 찾는 관람객은 평일 500명, 주말 1000명 안팎에 그치고 있다.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04년 4월 1만명을 훌쩍 넘길 때와는 대조적이다. 청남대는 2003년 4월 충북에 소유권이 이전되고 일반에 개방된 8월부터 그해 말까지 53만 843명의 관람객이 찾았다.2004년 100만 6652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73만명으로 관람객이 크게 줄어들었다. 청남대관리사업소 신현구 운영팀장은 “개방후 관람객이 많은 것은 호기심에서 찾은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면서 “올 관람객수를 정상으로 본다면 내년부터 따져봐야 관람객이 주는지 느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변화 발목잡는 규제 관람객들은 대통령이 잠자고 밥을 먹던 본관구경을 가장 많이 즐긴다. 이 가운데 대통령 부부 침실이 최고 인기다. 안내원 박상은(24)씨는 “개방 전에 항간에 ‘목욕탕의 수도꼭지가 금으로 만들어졌다.’ ‘지하실에 가면 대청호 물고기들이 훤히 보인다.’는 등의 헛소문이 많이 나 그런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시설이 단조롭다면서 불만스러워하는 관람객도 있지만 도시에서 바쁘게 살다가 온 관람객은 ‘조용하다.’며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청남대는 개방 전과 후로 크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상수원 보호구역에 있어 증개축이 어려워, 화장실을 늘리고 계단과 관람로를 넓히는데 그쳤다. 잔디밭도 행사 때에만 개방되고 있다. 본관의 침실과 방 등에도 금줄을 쳐놓았다. 신 팀장은 “대통령이나 가족들이 쓰던 식기 등은 요즘에도 나와 바꿀 수 있지만, 사용했던 것이어야 가치가 있기 때문에 관람객의 접촉을 막아 훼손을 예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휴식시설이 부족하고 하루 묵으려 해도 청남대는 불가능하고 문의면 소재지에 있는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음식점도 없다. 청남대에서는 아이스크림과 자판기 커피만 사먹을 수 있다. 관람객 설문조사에서도 ‘먹을 거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불만거리였다. 청남대는 현재 2과4팀의 충북도 소속 직원 22명과 안내, 청소, 조경, 경비 등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용역업체 직원 63명이 관리하고 있다. 신 팀장은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싶지만 상수원 보호법에 묶여 갖가지 규제가 따라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청남대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동상·소장품 전시 ‘대통령 역사관’ 계획 ‘대통령 역사관 건립’ 충북도의 의뢰를 받은 청주대 산업경제연구소와 삼성에버랜드는 올해 ‘청남대 명소화를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제안했다. 역사관에는 청남대를 이용한 역대 대통령의 유물과 업적 등을 전시해 관광 홍보시설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에서 묵은 뒤 권양숙 여사와 함께 뜬 손 모형 동상이 전시된다. 관리사업소는 ‘핸드 프린팅 전시장’을 만들기 위해 다른 대통령 부부의 손 모형도 생존시 뜬다는 구상이다. 또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탔던 자전거를 확보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6년 여름휴가 때 읽은 책 5권도 구해 놓았다. 낚싯대, 골프채, 테니스 라켓 등 대통령들이 썼던 물건도 있다. 대통령들의 동상과 각국 대통령 궁이나 별장을 축소한 미니어처 100점도 역사관에 설치, 전시할 계획이다. 유람선도 뜬다. 청남대 선착장에서 900∼1100m쯤 떨어진 대청호 큰섬과 작은섬을 모노레일로 연결해 배터리로 움직이는 유람선도 운항한다는 것이다. 두 섬은 생태공원으로 조성, 관람객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섬들은 1980년 대청댐이 건립된 뒤 25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땅이다. 모두 16만평 규모로 행정구역은 대전에 속하고 있지만 소유권이 청남대와 함께 충북도로 넘어온 상태이다. 본관 진입로에 있는 돌탑 앞에 원형광장을 조성해 먹을거리 제공장소로 활용한다. 상설공연 무대도 만들어진다. 이곳에서는 승무와 궁중무용 등 고급 전통공연이 펼쳐지고 어가행렬 등 대통령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이벤트가 열린다. 일부 건물은 고급 훈련원으로 변신한다. 청남대 곳곳의 야생화를 활용, 전국 최대 야생화단지를 꾸밀 예정이다. 이밖에도 문의면 소재지∼청남대간 13㎞의 진입로에 자전거길을 만들고 면소재지 재래시장 활성화와 숙박시설 확충 등의 계획이 추진된다. 이 발전계획은 10년간 추진된다. 권영동 관리소장은 “청남대가 국민이 사랑하는 휴식처로 자리잡으려면 필요한 시설이고, 또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청남대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권영동 관리사업소장 “상수원 보호법 때문에 도대체 뭘 할 수가 없습니다.” 권영동(55·4급) 청남대 관리사업소장은 “청남대를 변신시키지 않고 이대로 방관해서는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상수원 보호구역에 있어 건물을 신축하거나 시설을 개보수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관리사업소 사무실로 쓰고 있는 건물도 청남대 경호업무를 수행하던 지상 2층 규모의 군부대 막사다. 권 소장은 “청남대는 산과 호수, 꽃밭, 왕궁으로 이뤄진 곳인데 이런 규제로 인해 중요한 물을 이용할 수 없어 불구자 같은 처지”라고 말했다. 그는 “놀고 있는 골프장에서 관광객이 대청호로 공을 쳐보는 시설을 관광상품화 해보려고 해도 못하고 있다.”면서 “무엇을 해보려고 해도 상수원 보호법에 자꾸 걸려 짜증스럽다.”고 덧붙였다. 충북도로 넘어가기 직전인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라운딩한 1만 6515평의 5홀 규모 골프장은 현재 놀리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청남대 장기발전계획도 성사가 불투명하다. 음식조달이 안 되고 새로운 관광시설이 없는 등 관광자원이 단조로운 측면이 관광객 감소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적자가 매년 7억∼8억원에 이르고 있다. 그는 “재작년은 대부분 무료 관람이 가능한 노인들이 찾아와 관람객 숫자가 많았어도 적자를 냈다.”며 “지난해부터는 청장년이 늘어나 기대를 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소장은 장기발전계획 외에 4∼5㎞ 거리의 문의면 매표소와 청남대 사이에 유람선을 띄우고 청남대를 궁중식 혼례식장으로 활용하고 싶어한다. 그는 “청남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방된 현대 대통령 별장으로 고품위 관광지”라며 “고품위를 지키고 국민도 쉽게 다가가는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는 수질을 해치지 않는 개발방식은 허용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남대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어제와 오늘청남대는 1983년말 지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경치에 반해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실제로 들어섰다. 처음 이름은 영춘재(迎春齋)였다. 1986년 7월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에서 청남대(靑南臺)로 바뀌었다. 부지는 모두 55만 8000평에 이른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본관 등 숙소시설과 골프장, 양어장, 헬기장,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보트도 2척이 있으나 대청호변 전시시설로 옮겨져 있다. 앞에 대청호가 펼쳐진 초가정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 지어졌다. 이곳에는 김 대통령의 전남 하의도 생가에서 가져온 농기구 등이 전시돼 있다. 본관 진입로에 수령 70년이 된 반송과 130년이 넘는 소나무에다 메타세쿼이아 등 조경수 5만여그루, 야생화 20만포기가 곳곳에 심어져 있다. 청남대는 5명의 대통령이 모두 88차례 이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은 28차례 이용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4월에 한차례만 쓰고 충북도로 소유권을 넘겼다. 개방 이후에는 지난해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이 촬영되기도 했다. 청남대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하늘로 간 24살 ‘코리안드림’

    하늘로 간 24살 ‘코리안드림’

    새해 첫 여명을 앞둔 1일 오전 4시30분 경기 안산시 원곡동 편도 5차선 도로. 승합차 한 대가 지하도 입구를 들이받았다. 타고 있던 5명이 중태에 빠졌고 조수석 탑승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두스만타 브시퍼구마라(24)의 ‘코리안 드림’이 꺾이는 순간이었다. 두스만타는 2003년 6월부터 안산 원시동에 있는 섬유 제조업체 H사에서 일해왔다. 하루 11시간씩 공장일을 해야 하는 고된 생활이었다. 하지만 두스만타는 게으름 피울 줄 모르고 웃음을 잃지 않는 밝은 청년이었다. 힘든 기색 한 번 내지 않고 월급 100만원 가운데 80만원을 꼬박꼬박 고향으로 보냈다. 같은 공장의 스리랑카인 동료 두시타 로하나(28)는 “두스만타가 매월 송금일이면 ‘돈 보냈어요.’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가족에게 전화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향에서 작은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53)와 어머니(48), 남동생(22), 여동생(16)은 장남인 두스만타가 벌어주는 돈으로 부족한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했고, 그 덕에 다섯 가족이 살기엔 좁기만 했던 집을 넓힐 수도 있었다. 올 5월 말 산업연수생 비자가 만료되는 두스만타의 꿈은 고향에 돌아가 비디오 가게를 남부럽지 않은 규모로 키우는 것이었다. 사고는 월피동 스리랑카인 불교 사원에서 동료들과 밤새 새해 첫날 행사 준비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일어났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한줌 재로 고향에 돌려보낼 수 없었다. 주검이나마 온전히 보전해 고향으로 보내기 위해 쌈짓돈을 털었다. 회사의 스리랑카 동료 17명을 중심으로 안산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공동체에서 모금이 시작됐다. 공장의 한국인 동료 70명도 230여만원을 보태 400만원 가까이 든 부패방지 처리비와 영안실 이용료, 비행기삯 등 비용을 충당했다. 한국식 삼베 수의까지 입혔다. 두스만타의 주검은 5일 오후 9시 비행기를 타고 스리랑카로 떠났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