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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TA총회 행사 “빛좋은 개살구”

    ◎외국인관광 5개코스 신청 적어 취소/「무료」는 성황… 불거리개발 등 대책 시급 20일 폐막된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의 연차총회등 3대행사가 유료관광의 참가자가 적어 주요 관광코스가 취소되는등 부진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21일까지 PATA 참석자를 위해 22종의 유·무료관광을 실시했으나 신청자가 적어 6종의 관광이 취소됐다. 특히 유료관광은 7종중 5종이나 취소돼 홍보부족및 볼거리개발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취소된 관광은 하루코스의 판문점·민속촌·경주와 2박3일의 경주∼부산,3박4일의 경주∼제주등이며 요금은 코스별로 1인당 48달러에서 8백28달러까지이다. 한국관광공사의 용역을 받아 유료관광을 실시한 한진관광측은 지난 1월부터 3월25일까지 각국 참가자들로부터 관광신청을 받았으나 5개코스는 신청자가 워낙 적어 취소할 수밖에 없으며 이같은 취소내용을 신청자에게 즉시 알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방문을 통해 판문점등 한국내 특정지역에 관심을 표시한 참가자들에게는 아쉬움을 줘 업체의 이기심과 관광공사의 근시안적인 행정이 PATA행사의 개최의미를 무색케했다. 관광공사는 이번 행사를 통해 참가자들의 관광·숙박·쇼핑등으로 50억원의 수익을 예상했으나 차질을 빚게 됐다. 한편 관광공사가 실시한 15종의 무료관광에는 올림픽공원∼올림픽스타디움관람 1개코스만 취소됐을 뿐 나머지 코스에 9백여명이 참가,유료관광과는 큰 대조를 보였다. 가장 인기있는 코스는 남대문시장,남산공원∼창덕궁∼비원,한국의 집등으로 80∼1백20여명이 몰렸다.남대문시장에서는 가방·핸드백·그릇등의 쇼핑이,창덕궁과 비원,한국의 집에서는 한국전통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관광공사 PATA사무국 관광담당직원 정성대씨(29)는 『PATA참가자들은 여행을 자주한 탓인지 주로 전통혼례·다도·유적등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면서『앞으로 관광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통문화를 가꾸고 개발해야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 회식 물의 경관/3명 직위해제

    서울경찰청은 16일 조계종 총무원측으로부터 식사대접을 받아 물의를 빚은 종로경찰서 정보과소속 이동현경사·유준형경장·박영선경장등 3명을 직위해제하고 정보2계장 김병국경감과 유현식경장등 2명은 각각 서부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로 전보발령했다.
  • 영상시스템/대학에도 곧 보급/서울대·연대,원격강의제 도입계획

    서울에 있는 교수가 지방캠퍼스의 강의를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어진다.지방의 기업체 임원들도 서울본사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번거롭게 먼길을 오지 않아도 된다.TV화면을 보면서 회의를 할 수 있는 원격영상시스템이 국내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영상시스템의 용도는 이제 단순한 국내·국제회의용 뿐만아니라 원거리 강의 및 설교,원격감시,교통관제등의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88년 포항제철이 서울∼포항∼광양을 잇는 회의용 시스템을 구성함으로써 국내에 첫선을 보인 원격영상시스템은 현재 한국통신과 삼성전자·금성정보통신 등 기업체를 비롯,한국전력·한국도로공사·순복음교회 등 20여곳에 설치돼 있다. 2년전부터 이 시스템을 도입한 순복음교회는 여의도 본당과 강남·강북·분당·원당등 수도권 9개 교회에 영상장치를 설치,원격 설교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통신은 지난해말부터 사내 원격강의용으로 서울∼대전(중앙연수원)간 이 시스템을 설치,대학의 유명교수나 강사들이 서울에서대전의 연수생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대는 다음달 본교 첨단통신연구실에 원격강의 시스템을 도입,이를 13∼15개의 기업체와 연결하고 등하교가 어려운 산업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영상강의를 통한 석·박사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연세재단도 연세빌딩(남대문)에 17개 국가와 동시 국제회의를 할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이번달부터 대학과 기업체등을 대상으로 본격 시설임대에 들어갔다. 한국통신의 우승술기업통신지원단장은 『영상시스템은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시간과 교통난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불편을 덜어주고 출장감소등에 따른 경비절감도 크다』면서 『특히 국제화와 지방화시대를 맞아 국가·지역간을 이어주는 첨단통신수단으로 자리잡을 날도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 주점:중/작부있는 「색주가」 세종때 첫등장(서울 6백년만상:25)

    ◎포주는 지금의 깡패… 여자꾀어 영업/무교동에 많아… 포졸들에 정기상납 작부가 옆에 앉아 노래가락을 곁들여 가며 술 시중을 드는 색주가가 서울에 첫 등장한 것은 조선조 세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색주가는 당시 지금의 홍제동인 홍제원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것으로 자료들은 전하고 있다.홍제원은 바로 중국으로 떠나는 길목인데다 서울에서 가까와 사신들을 환송하고 또 출영하는 장소였다.중국 출발에 앞서 사절들이 홍제원 벌판에 머물 때는 여기저기에 천막이 쳐지고 마치 잔치집처럼 사람들이 모여 들끓었다. 사절이하 역관의 천막에는 진수성찬에다 기생들의 풍류소리가 요란한 반면 교군·군졸등은 술잔이나 나누며 쓸쓸하게 보내곤 했다.그래서 먼길을 떠나는 이들 하속을 위안하고자 세종은 한성부에다 영을 내려 홍제원에 색주가를 두게 한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그뒤로 남대문밖 잰배(자암)·낙원동·수운동등에 색주가가 몰려 들었다. 색주가들의 포주는 대개가 왈패들,지금의 깡패들이었다.포도청 포교들의 끄나풀이 많았다고 한다.이들은 범죄자의 딸이나 누이를 위협해 데리고 오기도 했고 시골의 어수룩한 집 여자들을 꾀어 데려와 잡가를 가르쳐 영업을 하게 했다.포주들은 포교나 포졸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했었다.예나 지금이나 유흥가에는 폭력과 이권이 함께 따라 다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다동과 무교동은 술집동네로 유명했다.이는 관기제도가 없어지자 술자리에서 술시중을 하던 기생들이 이 일대에 「기생조합」을 만들어 모여 살아 일제시대에서 해방후로 이어졌다. 기생에게도 「1패(배)·2패·3패」의 등급이 있었다.1패는 어전에 나가 가무를 하는 최고급 기생이었고 2패는 관가나 재상집에 출입하는 기생,3패는 창기로 몸을 파는 그런 기생이다. 옛날 관기들은 전출오는 관원이 독신으로 부임하기 때문에 객고를 풀어 주는 등 접대 위안하는 신세였다.오입쟁이들이 기생을 만나자면 오늘날처럼 요정이 없던 때라 기생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기생집을 찾아가서 이미 와 있는 오입쟁이들에게 인사하는 법이 『편안하오?』이고,기생한테는 『무사한가?』였다.또 먼저 온 놈팽이들이 너무 늘어 붙어 앉았으면 『신입구출 합시다』라고 사뭇 나가주기를 재촉했었다.즉 새로운 사람과 교체하자는 뜻이다. 기생은 반드시 치마를 오른쪽으로 여미는데,남의 첩이라도 되면 왼쪽으로 여밀 수 있었다.그 치마를 외로 입어보는 것이 기생들의 염원이었다. 지난 70년대에 풍미하던 「영자의 전성시대」「별들의 고향」등의 소설·영화가 아니더라도 예부터 술집과 호스티스들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수없이 많았다.1926년에 희동서관에서 「강명화 실기」가 상·하 2권으로 발간됐다.이 책의 광고문안은 『천추에 원한을 품고 신성한 연애에 희생된 절대가인,그 다정다한한 정경,비절참절한 하소연,어쨌든 한번 보시오』였다.이 책은 나오자마자 날개돋친듯 팔렸다.
  • 연봉억대 샐러리맨시대 열렸다/동양증권3명,4개월급여 3천만∼1억원

    ◎목표액 초과하면 1억당 성과급 10만원/영업전담직 91년 도입… 타증권사도 검토 억대 샐러리맨 시대가 열렸다.유명한 직업 운동선수나 연예인에 이어 「봉급쟁이」 사회에도 억대의 연봉을 받는 사원들이 나오고 있다. 동양증권에서 영업만 전담하는 조길용(32)·최만섭(33)·정회승(34) 과장 등 세사람이 주인공.강남지점 조과장은 작년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월급 5백20만원에,주식을 사고 판 약정실적(8백96억6천만원)에 대한 성과급(9천6백76만원)을 합해 4개월간 1억1백96만원을 벌었다. 작년에 7천8백80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던 남대문 지점 최과장 역시 4개월만에 7천3백75만원을 받았다.본사 영업부의 정과장도 3천8백28만원을 챙겼다.둘 다 연말까지 1억원대 돌파는 무난하다. 1천만달러 이상씩 받는 펀드 매니저들이 즐비한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의 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국내의 억대 연봉은 증권사에서 10년을 근무한 차장 월급의 3∼4배,재벌 회사 사장 월급(월 4백만∼6백만원)의 약 2배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억대의 샐러리맨은 이미예견돼 왔다.지난 92년 홍콩과 합작으로 설립된 동방페레그린증권이 인재를 모으기 위해 약정실적 1억원당 10만원의 실적급과 승용차 제공 외에 수천만원대의 스카우트 비용을 들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동양증권이 이를 현실에 맞게 변용한 셈이다. 동양증권의 성과급은 기본 약정액을 채운 뒤 초과분의 규모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월간 기본 약정액은 직급에 따라 20억∼26억원.기본 약정액보다 1억∼20억원을 초과하면 1억원 당 10만원,20억∼40억을 넘으면 12만원,40억원을 넘으면 14만원의 성과급을 받는다.대신 기본액에 미달하면 월급에서 20%가 깎인다. 억대 샐러리맨을 탄생시킨 동양증권의 영업전담직은 지난 91년5월에 도입됐다.그동안 유명무실하다가 작년 11월 증시 활황과 함께 고객이 급증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성과급제로 호봉과 직급 및 보수가 비례해서 오르던 관례는 깨지고 직급이 낮더라도 실적만 좋으면 상급자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호봉이 낮은 직원이 부장으로 관리를 담당하고,부장보다 호봉과 월급이 높아도 영업을 전담하겠다는 직원이 조만간 출현할 전망이다. 동양증권은 성과급 제도가 큰 호응을 얻자 지난 2월 을지로지점 김광민차장(37) 등 5명을 보강,영업전담팀을 8명으로 늘렸다.김차장은 지난 2월 2백24억2천27억원의 약정고를 올려 한달만에 2천29만원의 성과급을 챙겼다.월급 1백48만원을 더해 한달만에 2천1백77만원을 번 셈.성과급 제도는 선경·한신 등 다른 증권사로 퍼지고 있다.금융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 증권사들의 국내 진출이 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기 때문이다.연봉 억대를 넘는 샐러리맨들이 더욱 늘어나게 된 셈이다. 김광민차장은 『약정고를 많이 올리는 중개인 역할보다는 고객들에게 많은 수익을 올려주는 훌륭한 펀드 매니저가 꿈』이라고 말했다.
  • 걸인들 상대 강도행각/40만원 뺏은 10대 영장(조약돌)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5일 걸인들을 상대로 금품을 빼앗은 이모군(18·서울 서대문구 미금동)을 강도상해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이군은 이날 0시쯤 시청지하철역 지하도에서 걸인 김모씨(24·구로구 오류동)를 마구 때린뒤 김씨가 구걸해서 받은 돈 8만원이 든 가방을 가로채는등 4차례에 걸쳐 40만원을 빼앗은 혐의. 이군은 같은날 하오8시30분쯤 종각지하철역에서 걸인 최모씨를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린뒤 손목시계 하나를 빼앗으려다 경찰에 덜미.
  • “「소매치기 누명」 국가서 배상”

    ◎서울지법/경관이 허위조서 작성,피해입혀 서울민사지법 합의11부(재판장 김길중부장판사)는 4일 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경찰에 의해 소매치기로 몰렸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이모군(16·서울 동작구 신대방동)과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이군등에게 2천6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서를 작성할 당시 서울시경 강력과 소속 이재창순경(파면)이 자신의 부인을 피해자로 꾸며 이군을 소매치기범인으로 모는 바람에 원고들에게 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힌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군은 92년6월13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소매치기 일제단속을 벌이던 형사들에게 검거,구속됐다가 피해자진술조서가 허위작성된 사실이 드러나 같은달 26일 기소유예로 풀려나자 지난해 2월 1억5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 “국가경쟁력 책에서 찾자”/정보화시대 맞아 「독서 새물결운동」출범

    ◎추진위,독서공간 확보 등 6개사업 추진 책을 읽는 국민,책을 읽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독서 새물결 운동」이 힘찬 출발을 선언했다. 「독서 새물결운동 추진위원회」(위원장 정원식 전국무총리)는 31일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대강당에서 정위원장과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권이혁 전문교부장관,이원홍 전문화공보부장관 등 각계인사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서 새물결운동」 출범선포식을 가졌다. 정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민족은 옛부터 책을 사랑하고 책 읽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물질만능주의 풍조가 만연하면서 책을 멀리하게 됐다』고 진단하고 『국제화와 정보화시대를 맞아 극심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창조력의 원천인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장관도 치사에서 『독서는 우리들의 삶속에 일상화·생활화되어있긴 하지만 무한대의 국가경쟁시대에서는 국가경쟁력강화 차원에서 더욱 중요해졌다』면서 『오늘 출범하는 독서 새물결운동이 역사발전의 전기가 될 수 있도록 전국민이참여하는 국민운동으로 전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식이 끝난뒤 국립중앙도서관 별관에서 추진위원회 현판식이 있었고 이어 문화체육부 지원도서 5백권씩을 실은 전국 15개 시·도의 이동도서관 차량들이 국립도서관을 출발,테헤란로∼강남대로∼한남대교∼동대문∼종로∼남대문∼서울역에 이르는 길을 달리며 카퍼레이드를 벌였다.『행복은 마음속에 진리는 책속에』『책 한권 읽는 생활 풍요로운 문화생활』등 지역마다 색다른 독서표어를 내건 차량행진을 통해 주민을 직접 찾아가는 이동도서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행진을 마친 전국의 이동도서관 직원들은 서울역광장에서 이동 도서전시회를 갖고 시민들에게 전단 등을 나눠주며 독서 및 도서관이용에 관한 홍보활동을 벌였다. 한편 추진위원회는 지난해 「책의 해」를 원년으로 올해를 「발전의 해」,95년 「확산의 해」,96년 「성숙의 해」,97년 「정착의 해」로 정해 독서 새물결운동 5개년계획을 추진한다.올해는 문예진흥기금과 청소년육성기금 10억원,일반모금 10억원 등 20억원으로 ▲독서환경 개발 ▲독서정보 안내 ▲독서공간 확보 ▲청소년 독서진흥 ▲책을 통한 한민족 동질성 회복 등 6개 사업을 펼친다.
  • 권총소지 30대회사원 구속

    경찰청 보안국은 30일 미제 권총과 M16 실탄등을 소지한 김홍근씨(31·회사원·서울 서초구 양재동)를 총포도검및 화약류단속법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김씨가 권총을 구한 서울 종로구 당주동 R빌딩 지하상가 모의총판매회사인 P상회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수색을 하고 권총을 취급하게 된 경위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27일 종로구 당주동 P상회에서 스미스웨손 38구경 권총 1정과 실탄 4발을 28만원에 구입하고 서울 남대문시장 등지에서 M16실탄 18발·방독면·수갑·무전기등을 사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 국제교류재단의 문화외교(국제화 앞서간다:21)

    ◎18개국 59개대에 한국한 “파종”/석좌교수직·강좌 신설 돕고 연구비 제공/미·영·독 박물관에 우리 문화재 전시실 『창조적 교류속에 세계를 이웃으로』­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526 한국국제교류재단 5층 사무실 벽에 걸린 구호다.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손주환·55)은 세계 여러나라와의 각종 교류사업을 통해 지구촌 가족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국제적 우호·친선을 도모하기위해 지난 92년 한국국제교류재단법에 의해 설립됐다. 일본의 저팬 파운데이션,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독일의 괴테 인스티투트 등의 기구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에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리기위한 문화외교 기구인 셈이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기위해 재단이 현재 가장 중점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은 미국등 모두 18개국 59개 대학및 연구소에 대한 한국학 진흥책이다. 올해 재단예산 1백36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약78억원이 한국학 연구지원기금으로 책정되어 있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진흥책은 크게 한국학 석좌교수직 설치지원,한국학 강좌지원,한국학 관련연구지원으로 나눌 수 있으며 투자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미국의 유명대학에 집중하고 있다. 재단은 지난 93년부터 95년까지 하버드 대학에 3백50만달러(28억원),컬럼비아대학은 93년부터 97년까지 3백만달러를 석좌교수기금으로 각각 지원할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17명의 한국학교수가 있는 하와이대학의 경우 연구기금으로 올해부터 내년까지 2백만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이들 4개 대학 대학원생 20명에게 해마다 3억원 정도의 장학금을 지급,한국학 연구를 지원할 방침이다. 하버드대등 6개대학의 「한국학자료 컨소시엄」에도 올해부터 5년간 각 대학에 2만달러씩을 지원키로 했다.이 컨소시엄은 한국관련 도서를 대학별 특성에 따라 공동으로 구입,구성대학은 물론 미국내 한국학 학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도서관 특화사업이다. 재단은 또 해외 한국학 교수등 한국학분야 전문가들의 논문작성등 연구활동지원을 위한 「한국학 장학제도」(펠로십)사업과 한국어 보급을 통한 차세대 한국학 지도자양성을 목적으로 한 「한국어 펠로십」사업도 펼치고 있다. 한국학 펠로십 수혜자는 지난해의 경우,23개국 71명이었으며 올해에도 29개국 80여명을 지원할 예정이다. 재단은 이밖에 문화교류사업으로 오는 5월과 7월에 각각 개관예정인 독일의 퀼른 동아시아박물관내 한국관과 미국 시애틀박물관에 1백80평 규모의 한국실 설치를 지원했다. 또 영국의 대영박물관에도 1백20평규모의 한국실을 오는 97년에 열기로 합의하고 모두 2백만달러를 지원,고려청자,이조백자,금속공예품 등 5천여점의 우리 문화재를 전시할 예정이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도 98평 크기의 한국실을 오는 96년에,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동양문화재 전문박물관인 국립 기메 박물관에는 60평 정도의 한국실을 오는 98년까지 각각 설치키로 했다. 교류재단은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도모를 위해 우리나라에 영향력있는 해외인사들을 초빙,지난해 말 서울에서 한·일포럼을 연 것을 비롯,이달에는 워싱턴에서 양측 인사 20명씩이 참여할 한·미 포럼을,오는 6월에는 한·중포럼을 중국 북경에서 개최,주요국가들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돈독히 해 나가는 사업도 계속하고 있다. ◎“문화투자 앞서야 선진진입”/영어권위한 한국어 표준교재 96년 발간/손주환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주역) 손주환 재단이사장은 『향후 20년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로부터 요구받을 일을 제대로 하기위해서는 지금부터 해외투자를 해야한다』며 경쟁력있는 상품제조를 위한 기술혁신 못잖게 한국역사,문화예술,한국인을 해외에 알리는게 급선무임을 강조했다.2천년대 세계10대강국 진입을 목표로 한다면 10∼20년 뒤를 내다보는 국제사회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하부구조를 닦기위한 투자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손이사장은 이러한 하부구조 조성을 위해 해외 유명대학에 한국학 석좌교수 설치,한국어 표준교재 개발 등 해외한국학 진흥에 재단 재원의 약80%를 쏟아붓고 있다고 소개한다. 특히 한국어 표준교재 개발과 관련,『현재 해외한국학 교수들이 별도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한국학 관련교재를 통일화하기위해 지난1월 초 해외학자 30명,국내학자 20명등 모두 50명의 학자들이 서울에 모여 초급부터 고급까지 5단계로 된 영어권 대학의 한국어 표준교재 개발을 하기로 했으며 1차로 오는 96년에 초급교재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 이사장은 『하는 일이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는 학술및 문화관련 사업인 만큼 우리의 학술·문화씨앗을 해외에 뿌리고 이를 잘 자랄 수 있도록 국민·기업·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손 이사장은 『신규 여권발급자 한사람에 1만5천원씩 받는 국제교류기금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으나 재원부족으로 한국학 진흥책등 자체기획사업외에 해외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은 사업의 약25%밖에 소화를 못하고 있다』며 기업과 국민들이 기금조성에 좀더 많은 협조를 해줄 것을 당부했다. 손이사장은 『저팬 파운데이션의 경우,연간예산이 우리의 20배 정도인 2천억원으로 이 가운데 90%를 정부에서 지원받고 나머지는 기금 이자등으로 충당하고 있다』면서 『국제화시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등의기금출연등 대폭적인 지원이 아쉽다』고 말했다.
  • 비자금계좌 2개 또 발견/한 농협회장 수사/8천만원 출처 추적

    농협비리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김태정검사장)는 12일 8천만원이 입금된 한호선회장의 가·차명 비자금계좌 2개를 추가로 찾아냈다. 이로써 한회장이 조성한 비자금은 지금까지 밝혀진 4억7천만원을 포함,모두 5억5천만원으로 늘어났다. 검찰은 한회장의 집과 사무실에서 찾아낸 한일은행 독립문및 남대문지점의 계좌등에 대해 이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입금된 돈의 정확한 출처와 사용내역,돈의 성격등을 밝히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한회장은 지난해 11월 한일은행 독립문지점에 농협직원인 이모씨(여·31)명의로 5천만원짜리 1년만기 신탁예금을 든 것을 비롯,같은해 5월에는 한일은행 남대문지점에서 3천만원을 인출해 삼성생명보험에 계좌를 개설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한회장의 친형인 한호준씨가 지난 90년 2월 조흥은행 종로지점에서 거액의 자금을 대출받은뒤 5월에 되갚은 사실과 납품업체인 T사와도 돈거래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한회장과의 관련여부를 캐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인사와 관련된 청탁금이거나 납품업체로부터 받은 커미션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검찰은 한회장의 구속기간이 오는 15일로 만료됨에 따라 14일 구속기간연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 「문민정부」 아닌 「제3민주정부」/이달순(기고)

    ◎「김영삼정부」의 성격과 명칭 「문민」시대와 「개혁」을 외치고 있다.그런데 문민정부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우리는 오랫동안 「양반」시대를 살아왔다.「무」반과 「문」반의 시대였다.우리는 그 양반권위주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지금부터 꼭 1백년전인 1894년 동학교도혁명을 일으켰다.일본의 침략으로 그 혁명은 실패했다.그뒤 우리 조상들은 일본인들을 내쫓고 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싸웠다.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민주정부였다.3·1민족독립혁명으로 세운 우리나라 제1민주정부였던 것이다. 8·15해방과 함께 우리는 노래불렀다.『남대문을 열어라.동대문을 열어라.임시정부 들어온다.광복군이 들어온다』그러나 임시정부는 들어오지 않았다.이승만이 들어와 이씨왕조를 「이은」(승) 그것도 「뒤늦게」(만) 나타난 왕으로 행세했다.백성들은 그를 국부 즉,임금으로 떠받들었다.우리는 그의 정부를 제1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현대판 이승만왕조였다.왕조정치는 혁명으로 무너진다.4·19학생혁명이다.그리고 장면내각이 성립되었다.임시정부에이은 제2민주정부의 탄생인 것이다. 혁명 뒤에는 온건파가 집권한다.그 시대는 이중주권시대로 불린다.혼란한 질서가 나타난다. 이때 쿠데타가 발생한다.5·16이다.쿠데타는 민주혁명에 대한 반동이지만 역사가들이나 정치학자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혁명의 이념을 이상으로 삼고 그 실천을 위해 광신도처럼 날뛰었다.우리는 조국근대화,민족중흥의 역사를 창조했다. 이 시점에서 민주정치만 실시되면 금상첨화다.그러나 집권자는 장기집권의 독재자로 변신한다.박대통령은 18년(목=십,팔) 집권하고 점(복=박)을 보러갔다.당신은 일단(일) 끝났다고(지=정) 했다. 이를 무시했더니 자기의(기) 신하(신=와)가 총을 네방(····=희) 쏘았다.궁정동 한모퉁이에서 그때 그사람 노래듣다 그때 그사람이 되고 말았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그 뒤로는 민주화가 구현될 것 같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왕정복고를 불러왔다. 12·12(두)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대통령은 왕(팔+왕=전)이 되어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오야」맘대로 하던 이승만왕조로의 복고였다.민주정치를 위한 국민의 투쟁은 맹렬했다. 3김씨의 싸움은 국민의 표를 갈라놓았다.군사권위주의에 종지부를 찍으려던 국민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12·12세력의 한 사람인 노태우대통령이 들어섰다. 군사통치의 권위주의시대였다.이때에도 「양반」의 시대였다.군출신인 「무」반이 주도권을 행세했고 지식인들이 들러리를 섰다.「문」반인 것이다.양반의 시대는 조선왕조이래 노태우정부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3·4·5·6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다.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장기집권하고 독재공포정치를 한 「양반」정권을 공화국이라고 계속 불러줘야 하는가 말이다. 앞으로 다시 양반권위주의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공화국이라 불러서는 절대 안된다. 역사의 정률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명예혁명으로 민주정부로 발전했다.국민의 지지와 집권층의 도움까지 얻어 김영삼정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군사통치의 「밀리터리언」시대에서 「시빌리언」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문민정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호칭인 것 같다. 「문」은 선비또는 지식인을 뜻하기 때문이다.「반」이 아니고 「민」이기 때문에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법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고,오늘의 세계가 산업사회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귀에 거슬리고 전제주의시대의 양반을 연상시키는 용어다.국민을 문민으로 대치할 수 없다.이제 우리는 김영삼정부를 제3민주정부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 교통수단:상(서울 6백년만상)

    ◎1899년 종로에 40인승 전차 등장/하루 3만명 수송… 60년대말 사라져/인력거 일 상인이 들여와… 기생 애용 1899년 5월4일 역사적인 개통 테이프를 끊은 전차는 운행 20여일만에 선로에 자빠진채 불길에 휩싸이는 예기치 못한 수모를 당한다.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당시 전차의 개통을 전후로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비가 한방울도 내리지 않아 민심은 크게 흐트러졌으며 사람들 대부분은 전차때문이라고 몰아붙였다.『전차가 공중의 물기를 빨아먹기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얘기가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퍼졌다.공교롭게도 사건 당일 아침 9시쯤 동대문에서 서대문쪽으로 달리던 전차가 파고다공원앞에서 5살난 아이를 치어 죽인 끔찍한 사고까지 겹쳤다.이 장면을 목격한 군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리던 전차를 세워 엎은뒤 불을 질렀다.당시 이 사건의 수습을 위해 한성판윤 이채연이 사표를 제출했지만 전차에 대한 적개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전차는 지난 60년대말 이땅에서 사라질때까지 서울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한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종로선으로 명명된 서대문∼청량리간 전차길에 이어 종로네거리∼남대문·용산을 잇는 2개노선이 잇달아 개설됐다.개통초기 40인승 8대가 하루에 나른 전차 승객의 수는 무려 3만명에 달했다.노선이 단선이어서 군데군데 대피소를 마련,운행했다.물론 초기에는 일정한 정류소도 없었다.승객이 아무데서고 손을 들면 멈추었으며 내리고 싶은 곳 어디서든 내렸다. 사람이 끄는 인력거는 1894년 최초로 일본상인에 의해 서울에 들어왔다.1911년 전국에는 4천8백11대의 인력거가 있었다.이때만해도 고관이나 귀족·상류계층의 자가용으로 널리 쓰였다.기생제도가 권번제도로 바뀌면서 인력거는 기생이 애용하는 승용물이 되기도 했다. 정도이래 구한말까지 고관대작들이 주로 타던 가마에는 앞뒤 2명씩 4명이 메는 큰가마 또는 쌍가마와 앞뒤 한 사람씩 2명이 메는 외가마가 있었다.판서가 나들이 할때의 빛바랜 사진에서 볼수 있듯 앞뒤 6명씩 12명이 멘 12인교까지 있었다.요즘 승용차들의 배기량이 클수록 고급승용차이듯 당시에는 가마꾼이 많을수록 권위가 비례해서 커졌던 것을 알수 있다. 차편이 보편화되기까지 가장 널리 애용되던 교통수단은 말이었다.자가용이라 할수 있는 자가마,관용차인 관마,그리고 고을마다 수시로 이용할수 있는 택시인 대마도 있었다.때문에 모든 주막이나 여인숙에는 「현대판 기사식당」과 유사한 마방이 별도로 마련됐었다. 한국 말의 체구는 대체로 작지만 운송수단으로서의 효용성은 대단히 높았다.특히 8할이 산이요,모든 마을이나 고을이 산밑이나 산허리에 자리잡고 있어 교통수단으로서의 말은 「속도」보다 「안전」을 보다 중요시했다.크고 빠른 말보다 작고 느린 말이 우리 지형에 적합했다.그래서 과하마라는 조랑말이 우리 고유의 교통수단으로 이어져왔다. 조선초부터 교통수단의 대종이었던 기마풍습도 대중화됐다.그러나 기마에도 일정한 제한이 가해져 상중인 사람,중·서인등은 서울 도성안에서 말을 타고 다닐수 없었다. 서울의 발전은 교통수단의 발달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금세기초만 해도 고작 가마·소달구지나 인력거가 다니던 종로거리는 지금 차량의 홍수로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그만큼 「탈것」과 뗄려야 뗄수 없는 오늘의 「서울살이」는 집에서 한 발짝만 나서면 교통수단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 조흥은행 국제금융실(국제화 앞서간다:19)

    ◎지구촌 환시장 24시간 공략/20국과 통화 거래… 작년 19억원 벌어/국내시장 13% 점유… 규모·이익 1위 서울의 중심가인 남대문로 1가에 위치한 조흥은행 본점 5층 국제금융실.자정이 임박한 시각에도 불이 환히 밝혀져 있다.로이터모니터 딜링 시스템(RMDS·국제 외환딜링 전문 통신망)의 모니터용 단말기 앞에 앉은 최명규 외환딜러의 눈이 충혈돼 있다. 그는 이날 거래업체로부터 사들인 2백만달러 상당의 엔화를 팔기로 했다.우리와 비슷한 시간대인 홍콩과 싱가포르 외환시장은 밤 11시로 이미 폐장했다.프랑트크푸르트(하오4시)와 런던(하오3시)은 후장이 개장됐고 뉴욕(상오10시)은 막 전장이 열렸다.APDJ 텔리레이트사가 방금 타전한 런던과 프랑크푸르트 외환시장의 엔화 시세가 들어왔다.미들랜드은행(영국계)과 드레스드너은행(독일계)이 매수가격 달러당 1백3.80엔,매도가격 달러당 1백3.70엔을 제시했다.딜링머신을 통해 후지은행 싱가포르지점을 불러냈다. 조흥:『엔화 2백만달러어치를 거래 하자』 후지:『매도가격은 달러당 1백3.65엔,매수가격은 달러당 1백3.75엔이다』 조흥:『팔겠다』 이어 양측이 거래내용을 한번 더 확인하고 결제할 구좌를 지정한 뒤 통화를 끝내기까지 20초가 채 못걸렸다.대화는 물론 모두 영어로 이뤄진다.따라서 유능한 외환딜러가 되려면 무엇보다 유창한 외국어 구사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 은행의 외환딜링 룸에는 모두 16명이 딜링업무를 하고 있다.하루 평균 거래 규모는 30건에 6억달러 정도.작년초와 비교하면 거의 두배로 늘었다.아직은 원화와 미달러화를 사고 파는 거래가 대종이다.그러나 엔화,독일의 마르크화,영국의 파운드화를 비롯,세계 20개국의 통화도 하루 평균 1천3백만달러어치정도 거래된다. 지난 90년까지만 해도 국내 은행들은 외환거래 업무에 매우 소극적이었다.그 결과 국내 외환시장은 시티은행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들이 판을 쳐 왔다.당시 국내 외환시장의 점유율은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이 6대4정도로 우위를 지키며 장세를 주도했다.거액의 환차익도 그들이 대부분 차지했다.국내 은행들이 그만큼 제 몫을 못 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작년부터상황이 달라졌다.국내 은행들도 국제화와 개방화에 따라 외환업무 분야의 영업을 강화했기 때문이다.작년의 경우 국내 외환시장의 점유율은 국내은행이 6대4 내지 7대3 정도의 우세로 역전됐다. 조흥은행은 국제 및 외환영업 파트를 강화하는 국내 은행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지난해 이 은행의 국내 외환시장 점유율이 13.4%를 기록,국내 및 외국은행 국내지점을 통틀어 규모와 이익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올해부터는 그 여세를 몰아 국제 외환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웠다.외환딜링룸의 근무시스템도 「24시간 영업체제」로 바꿨다.16명의 외환딜러들이 지구촌의 외환시장을 개장시간에 맞춰 매일 한바퀴씩 돈다.금융 국제화의 첨병들인 셈이다.정상근무조 외에 야간근무조를 편성,하오 2시부터 취리히·프랑크푸르트·런던시장을 거쳐 뉴욕시장의 전장을 보고 나면 자정이 넘는다. 이들이 지난해 벌어들인 돈은 19억원에 이른다.올들어서는 2월까지 7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허경희/국내 첫 여성딜러/“정보 통한 순간적판단이 딜러의 생명”/전세계 정치·경제정보 지속적으로 수집 『외환딜러는 정보를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딜링을 잘 하려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시시각각의 정치·경제 관련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일이 요체입니다』 국내 은행 최초의 여성 딜러인 조흥은행 국제금융실의 허경희씨(26)는 유능한 딜러가 되기 위한 자격요건으로 국내 및 국제 정치와 경제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꼽았다.수집된 정보의 의미와 그것이 환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그러려면 평소에 국내외 정세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은행원 경력 4년에 딜링업무만도 2년째인 허씨는 매일 신문이나 방송·통신의 보도 내용을 빼놓지 않고 검색한다.그날의 환율을 오르내리게 할 만한 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허씨는 외환딜링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이달말부터 7주 코스의 금융연수원의 국제금융 과정에 등록했다.국내 연수가 끝나면 오는 6월부터 10월까지 뉴욕 금융연수원(NYIF)과 런던의 선물중개회사 등 해외 연수과정도 밟을 계획이다. 이화여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허씨가 국제 금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 입행 후 지점근무를 할 때이다.『금융시장의 개방화와 자율화가 확대될 수록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가 국제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생소한 외환업무를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돼 국제금융에 관한 서적들을 구입,기본 개념들을 익히기 시작했다.또 근무가 끝난 밤시간을 이용해 국내 선물거래회사들이 개설하는 연수프로그램 등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덕분에 지난 92년에는 미국의 선물거래중개사 자격증도 땄다. 허씨는 성실성과 신속한 판단력,그리고 철저한 자기관리가 외환딜러의 생명이라고 강조한다.모니터 화면앞에 하루종일 앉아 초단위로 변하는 국제 환율시세를 들여다 보면서 거래의사를 신속하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거래 결과가 나빠 거금을 날린 경우라도 절대 흥분은 금물이다.흥분하면 다음 거래에서 더 큰 손해를 초래하기 십상이다.그러나 거래 결과가 좋아 하루에 수천만원씩 벌어들일 때는 뿌듯한 자긍심을 느낀다.
  • 대형건물 65% 화재 무방비/감사원,4대도시 조사

    ◎백화점·호텔 등 방화시설 엉망 □적발업소 백화점/롯데·현대 무역센터점·태평 데파트 호텔/리버사이드·삼정·인천 송도비치 백화점 극장 병원등 대형건물의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거나 전기배선등 시설이 불량해 화재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2일 서울 부산 인천 대전의 대형건물 4백74곳을 대상으로 소방시설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전체의 64.5%에 이르는 3백6개 건물에서 모두 6백1건의 소방시설및 전기가스시설 불량사항이 지적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 잠실의 롯데백화점은 자동화재탐지설비의 예비전원이 규정치인 24V에 크게 미달된 5V에 불과,정상작동이 되지 않는 것으로 적발됐다.또 2만ℓ들이 탱크와 탱크실 사이의 방화문에 자동폐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으며 각층 창고에 상품을 과다적재,스프링쿨러의 작동에 장애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8층의 콘센트 배선을 절연전선이 아닌 비닐전선으로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리버사이드호텔의 스프링쿨러는 관리소홀로 작동이 되지 않았으며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관광호텔은 지하2층 피난계단을 카바레 탈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국도극장등 대형공연장에는 옥외 피난계단이 설치되지 않았으며 파고다극장등 15개 소극장은 관람석을 너무 많이 설치,통로가 비좁아져 불이 나면 대형인명피해의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서울 종로구 창신시장등 시장·상가는 프로판가스를 옥내에 보관하거나 가스누설자동차단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 특히 서울 남대문 국제화재빌딩,세종로 현대해상보험빌딩,종로구 수송동의 대한재보험빌딩,중구 대흥동의 대한생명보험빌딩등 재해보험회사의 건물도 화재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교통회관은 4층부터 12층까지 피난계단 입구에 칸막이를 해 사무실로 쓰고 있는 것으로 적발됐다. 이밖에 소방시설이 미비하다고 지적받은 주요건물은 인천 송도비치호텔·대전 유성관광호텔·서울의 중구 을지로 삼성빌딩과 선경빌딩·서초구 반포동경남쇼핑센터·동작구 사당동 태평데파트백화점·중구 황학동 동화카바레·서울 중구 회현동 아시아나빌딩·남대문 럭키빌딩과 대우센터·이대부속병원·여의도 성모병원·백병원·한양대병원·서울기독병원등이다. 감사원은 서울시와 5개 직할시의 소방검사담당자 2백90명 가운데 73명이 무자격자로 조사됐으며 소방검사도 건축물의 용도 구조 설비등을 고려하지 않고 시설규모만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실시돼 이같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 봄나물/풋풋한 향·상큼한 맛 “식탁의 별미”

    ◎하우스재배 작황좋아 가격 내림세로/4백g기준 냉이·유채 2000원,달래 2500원/수산물 전반적 보합… 마늘·무 소폭 올라 겨우내 먹어온 김장김치에 입맛을 잃은 가족들을 위해 시장을 찾는 주부들이 많아져 요즘 채소류및 수산물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한때 5백g 한단에 5천원까지 치솟았던 대파는 3천5백원선으로 내렸지만 여전히 비싼 가격이다. 또 봄으로 접어들며 물량부족으로 인해 마늘의 경우 지난주보다 1㎏에 1천원이 올라 6천원에,1.5㎏정도 개당 5백원하던 무도 7백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한편 수입산 방출로 반입량이 증가한 양파및 상추는 지난주 보다 많이 내려 각각 1㎏에 1천5백원씩의 판매가를 보이고 있다.배추는 2.5㎏ 1포기 1천5백원선이다. 큰 일기변동이 없어 물량 반입이 꾸준한 수산물의 가격은 3주째 보합세. 최근 서양식의 다양한 요리로 응용돼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갈치는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경우 2주전 70㎝ 한마리 1만2천원 하던 것이 2일 1만원선에 판매되고 있다.고등어는 30㎝ 한마리에 상품 2천원선이며 동태는 40㎝한마리에 4천원에 보합거래되고 있다. 주말 별미식으로 식탁에 한번씩 올릴만한 먹거리 대하는 한마리에 대품 2천3백원,중품 1천2백원선이다.생태는 6㎏ 한상자당 노량진 수산시장 경락가격으로 상품 1만7천원,중품 7천원선이다. 최근 하우스재배 기술이 발달,지난 1월 중순부터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과 경동시장등에 꾸준히 모습을 보여온 봄나물은 3월이라는 계절적인 요인이 겹쳐 최근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채소류. 시장 상인들은 이번 겨울 날씨가 예상외로 푸근한데다 김장김치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봄나물의 시장 출하가 앞당겨졌다고 말한다.가격은 지난해 대비 10%정도 오른 상태서 보합 거래되고 있다. 주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봄나물은 역시 달래 냉이 씀바귀와 겉절이 김치용 봄동배추. 달래·냉이·씀바귀는 전남 해남·완도,충남 서산지역의 노지및 비닐하우스 재배품이 대부분인데 올 작황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가격이 점차 내릴 것으로 보인다. 달래(2일 가락동시장 1차 도매가격)는 4㎏(1관)에 상품 1만1천∼1만2천원,냉이는 6천∼7천원,배추봄동은 6천원선에 거래되고 있다.서울 남대문 시장과 경동시장의 일반 소비자가격은 냉이와 유채나물,보리가 1근(4백g) 각각 2천원선이며 달래는 1근(〃) 2천5백원선에 판매되고 있다. 역시 시설재배된 것으로 풋풋한 향기가 일품인 풋마늘은 첫 출하된 2달전 1㎏에 1천5백원이던 것이 꾸준히 올라 2일 2천5백원에 판매되고 있다. 냉이를 고를 때는 뿌리가 가늘고 잔털이 없으며 길쭉한 것이 좋다.떡을 만들거나 향긋한 국을 끓이면 봄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쑥은 4㎏에 1만6천∼1만8천원선. 시장에 출하되고 있는 봄나물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봄동배추는 4㎏에 6천원선,보리나물은 7천∼8천원 정도이다.
  • 「광화문」,5년만에 선두 복귀/작년 세무서별 세수실적

    ◎「삼성」 2위… 「전북 진안」은 전국 최하위 지난해 세무서별 세수실적에서 광화문세무서가 88년이후 5년만에 1위를 탈환했다.세수순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일반적인 세목의 규모와 주세 증권거래세 등 일부 지역에만 관련있는 특수 세목이다.기업은 본사 관할 세무서에 법인세를 내고,부가세도 본사에서 주로 납부하므로(사업장별로 낼 수도 있다) 세무서의 세수규모는 관내에 주요 법인이 있느냐 여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세무서별 세수 실적은 광화문세무서가 약 1조2천억으로 1위에 올라 88년만 제외하고 86년부터 지난 92년까지 계속 1위였던 강남세무서를 4위로 밀어냈다.광화문세무서의 지난해 세수는 국세청이 거둔 전체 세수 36조3천6백40억원의 3.3%로,대전지방국세청이 거둔 세수와 비슷하다. 광화문세무서가 1위에 오른 것은 관내의 한국통신이 법인세와 전화세로 약 5천8백억원을 냈기 때문이다.또 강남세무서 관내에서 강남구 삼성동과 청담동지역이 지난해 3월 신설된 삼성세무서로떨어져 나간 것도 요인이다.그동안 강남세무서는 관내인 강남구 신사동 논현동 압구정동 등에 알부자들이 많은 데다 삼성동에 본사가 있는 한국전력 때문에 쉽게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강남세무서는 지난해 약 9천억원의 세수로 4위로 밀린 반면 삼성세무서는 한전의 세수 덕택에 약 9천4백억원의 세수로 신설 첫해에 3위에 올랐다.지난해 한전은 법인세와 부가세로 약 5천4백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울산세무서는 약 1조원으로 2위를 기록,전년보다 한단계 올랐다.유공과 쌍용정유 등이 소비자를 대신해 부담하는 간접세인 특별소비세를 많이 냈기 때문이다.여수세무서도 호남정유의 특별소비세(6천억원) 덕택에 전년보다 26%나 많은 6천7백억원의 세수를 올려 젼년의 11위에서 10위으로 올라섰다. 여의도세무서는 전년보다 30%나 많은 약 8천7백억원의 세수로 전년의 8위에서 5위로 껑충 뛰었다.지난해 증시가 활황을 보이며 주식거래가 늘어나 증권거래세가 전년의 배인 3천억원 가까이 걷혔기 때문이다.반면 북인천세무서는 경인에너지 대우자동차 대우전자 등의 특소세를 비롯한 공단입주 기업들 덕분으로 8천억원의 세수를 올렸음에도 전년보다는 한단계 떨어진 7위였다. 반면 맥주의 소비가 줄어들어 주세비중이 큰 세무서의 실적은 저조했다.영등포세무서는 약 7천3백억원으로 전년보다 4단계 떨어진 8위,이천세무서도 약 7천1백억원의 세수로 전년보다 2단계 밀린 9위로 떨어졌다.이천세무서의 세수 중 주세가 4천5백억원이며,여기에 붙은 교육세는 1천억원이었다.남대문세무서는 한국은행의 원천세 6천억원을 포함,8천2백억원을 올려 6위를 차지함으로써 광화문세무서와 함께 강북의 체면을 세웠다. 전북 진안세무서(무주군 진안군 장수군)의 세수는 광화문세무서의 0.4%에 불과한 50억원으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 거리:상/시전 있던 종로는 상업의 중심지(서울 6백년 만상:15)

    ◎“사람 구름처럼 모인다” 운종가로 불려/현재 세종로인 육조거리엔 관청 자리 서울에는 세종로·종로·청계천로·태평로 이렇게 고유의 이름이 붙여진 거리가 5백개가 넘는다. 6백년전 서울이 한양이란 이름으로 처음 수도로 정해질 때만해도 이름을 가진 거리는 3개에 불과했다.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광화문네거리를 중심으로 지금의 세종로에 해당하는 육조거리,지금의 종로인 운종가,을지로쪽을 일컫는 구리개 혹은 동현. 하기야 당시 한양의 상주인구가 5만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고 보면 3개의 거리만으로도 충분했는지 모를 일이다. 「육조거리」가 거리이름에서도 바로 읽혀지듯 이·호·예·병·형·공조등 6개 행정부처가 자리한 정치의 거리였다.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궁궐·종묘·사직·관아·문묘등을 건설한 다음 도성을 축조해갔다.이때 태조는 통치의 근간이 되는 6조를 궁궐인 경복궁에서 지금의 광화문네거리 사이에 배치했다. 폭 1백m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6백m의 이 거리에는 정부제1종합청사를 비롯,문화체육부·미대사관·국세청·체신부와 한국통신공사등이 자리잡아 정치의 거리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6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흔히 「육조앞」이라고도 불리던 이 거리는 일제때 「광화문통」으로 바뀌었다가 해방후에는 반만년 역사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이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다 해서 세종로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양을 대표하던 거리는 지금의 종로인 운종가였다.그당시에 사람이 모이면 얼마나 모였으랴만 그래도 사람이 구름처럼 모인다 해서 운종가라고 이름을 붙였다니 옛날은 옛날이었나 보다.지금의 종로는 광화문네거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거리를 이르지만 한양시대 운종가는 창덕궁 동쪽 문 그러니까 지금의 종로3가끝까지였다. 그 가운데 중심지는 통금시각의 시작과 해제를 종소리로 알리기 위해 당시 가장 번화가인 운종가에 커다란 종을 만들어 매달아놓은 종루였다.맨처음 종루가 지어진 것은 태조의 한양천도 4년후인 1938년4월로 처음에는 청운교 서쪽,그러니까 지금의 파고다공원옆에 있었다.그러다 42년후인 세종 22년(1440년)에 지금의 종각자리 부근으로 옮겨 지었다고 옛문헌들은 전한다.그후 종루를 재건축하면서 2층으로 지어 그 밑으로 사람이나 말들이 통행하도록 했다고 한다.세종조의 종루는 임진왜란때 불타 세번째 다시 지어지고 운종가에서 조금더 안쪽으로 옮겨 지어 현재 종각(보신각)자리를 지키고 있다. 운종가와 종로가 한양과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가 된 것은 「경제의 거리」였고 그래서 언제나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나중에는 정치·경제·문화의 구심점 몫까지 도맡은 데서 연유한다.또 운종가가 6백년동안 끊임없이 「경제의 거리」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은 것은 조선왕조가 지금 말로 대단위유통단지를 조성했기 때문이다.궁궐에 이어 도성축조까지 마무리되면서 새 왕조로서 토대가 굳건해지자 3대왕 태종은 즉위 12년(1412년)째부터 2년여에 걸쳐 광화문네거리에서 동대문까지와 종루에서 남대문 사이에 길양옆으로 2천6백33칸의 행랑을 건설했다.행랑은 관청에서 세운 상설점포로 관청에 세금을 내고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해서 시전(시전)행랑이라 했다.성종실록에서는 운종가를 「지역은 좁고 사람은 많아 간사한 무리가 속이고 빼앗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차마가 꽉 메워 사람이 많이 상한다」고 묘사해놓고 있다. 이같은 「경제의 거리」로서 종로의 명성은 1920년 파고다공원옆에 미니백화점격인 동아부인상회가 들어선 이후 1922년 종각네거리의 화신백화점시대를 거쳐 70년 초반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70년대 중반부터 한강이남이 집중개발되면서 서울의 상권을 강남쪽으로 많이 빼앗겼지만 아직도 내로라하는 금은방·주단포목점·지물포와 서점만은 종로에 자리잡고 있어야 최고로 쳐주는 세상인심만은 여전하다.
  • 은행 영업시간 자율화해야(사설)

    최근 금융가에는 은행의 휴일영업 문제와 영업시간 조정문제가 핫 이슈로 부상해 있다.외환은행이 지난 12일부터 서울시내 3개 백화점 점포에서 시작한 휴일영업이 노조측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될 가능성이 있고 한국은행이 오는 3월 2일부터 영업시간을 30분 앞당기기로 한 방침도 노조의 반대로 실시가 불투명한 상황에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은행의 영업시간 변경이 자율화되면서 일부 은행은 고객편의를 위해 일부점포의 영업시간 변경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백화점에 위치한 은행점포는 일요일에 영업을 하고 월요일에 쉬며 새벽에 문을 여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남대문시장·평화시장 등 주변의 은행점포는 새벽시간에 문을 여는 문제를 검토해 왔다.그러나 대부분의 은행은 자율화 1년이 가깝도록 논의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은 국내 기업들이 대부분 아침 9시 이전에 일을 시작하고 일부 기업은 조기출퇴근제까지 실시하고 있는 점을 감안,개점시간을 현재보다 30분 앞당기기로 결정한 바 있다.한은이 영업시간을 앞당길 경우 모든 은행이 영업시간을 앞당기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은행의 영업시간변경은 민간기업의 조기출근제를 확산시키는 등 전체 국민경제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래서 은행영업시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우리는 여기서 영업시간변경을 둘러싼 은행 집행부와 노조간의 쟁점에 관해서 시시비비하고 싶지는 않다.또 각 은행이 영업시간을 획일적으로 묶어 두는 것이 경쟁제한적 행위라는 점을 지적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런 미시적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장개방과 국민경제발전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할 문제라는게 우리의 생각이다.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었을 경우 국내 은행끼리의 묵시적인 휴일영업을 포함한 영업시간 결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첨단금융기법과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한 외국은행이 속속 국내에 진출해 오면 「담합」은 깨질 수밖에 없다. 현재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서 낙후되어 있다.다른 산업은 개방화와 국제화에 대비하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금융산업이 실물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기는 커녕 과거 관습에 연연한다면 낙후폭은 더 깊어질 것이다. 따라서 금융기관,특히 은행은 선진국 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그리고 국내 다른 산업을 위해서 영업시간 등 현재의 관행과 규칙을 혁신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개방화시대의 은행으로 탈바꿈하는 바람직한 출발신호로서 영업시간 자율화를 하루 빨리 실천하기 바란다.
  • 놀이:상(서울 6백년 만상:13)

    ◎대보름밤 광통교엔 다리밟기 인파/고려때 전래… 밤새도록 “액막이 긴행렬”/삼문밖­아현 편갈라 만리현서 돌싸움 한양의 정월 대보름 밤은 장안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다리밟기」(답교)행렬로 절정을 이루었다.쟁반같은 둥근달이 휘영청 떠오르면 도성의 남녀들은 운종가(종로)의 종루로 몰려들어 인경소리를 들은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밤이 깊도록 다리를 밟았다. 「이날 다리(교)를 밟으면 한햇동안 다리(각)의 병을 앓지않고 건강하게 지낼수 있으며 액운도 면할 수 있다」는 민속신앙에서 출발한 다리밟기는 고려때부터 정월 보름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으나 한양과 그 주변일대가 가장 대표적인 중심지였다.특히 광통교(지금의 광교부근)와 수표교(청계천2가부근)주위는 몰려 나온 도성안 백성들로 크게 붐볐으며 밀려드는 인파로 3일동안 계속될 때도 적지 않았다.이날만은 도성의 통금이 해제될 정도로 다리밟기의 참여도는 높았다. 지금의 석촌동일대에선 한달 내내 다리를 밟았으며 마포·노량진·살곶이다리·장안동·뚝섬·송파일대에선탈춤과 농악놀이·무동춤이 어우러진 신명하는 축제의 한마당을 벌였다. 옛 기록들은 『자신의 나이대로 또는 12달을 상징해 12개의 다리를 밟으려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밤을 지새웠다』고 적고 있다.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들도 장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채 외간 남자들과 줄을 서서 극성맞게 다리를 밟았다.때문에 풍기문란시비가 일어 한때 법으로 금지한 일도 있었다. 사대문 안팎에서 유행했던 「편싸움」도 다리밟기와 함께 한양의 대표적인 놀이로 꼽힌다.일명 「돌싸움」(석전)으로 불린 이 놀이 역시 정월 보름을 전후해 성행됐다.마을과 마을,지역과 지역간에 집단적으로 행해진 편싸움은 하천을 사이에 두거나 서로 백여보가량 떨어진채 상대방에 돌을 던지며 상대방의 진지로 쳐들어가 상대편 마을어귀에 서 있는 당나무까지 도달하면 승부가 갈렸다.돌은 밤알보다는 작아야 했고 상대방의 눈동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는 돌을 던지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이를 어긴자는 그 지역에서 따돌림당하는 사회질서교육기능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아침무렵 열서너살 안팎의 어린아이들의 편싸움으로 시작돼 정오무렵 젊은이들의 대결로 이어져 하루종일 진행됐다.저녁무렵엔 돌에 맞아 벌겋게 부어오른 이마의 상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상대편과 어울려 잔치판을 벌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경도잡지는 『삼문(동·서·남대문)밖과 아현(아현동일대)사람들이 때를 이루어 패를 나눈다음 만리현(공동덕동부근)에서 돌 던지고 고함자르며 달려들어 석전을 벌인다.삼문밖편이 이기면 경기도에, 아현쪽이 이기면 다른 도에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는데 용산과 마포쪽 젊은이 작당해 아현쪽을 돕는게 상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중상자가 속출했던 이노리는 4대문 4소문 안팎과 만리현·우수현(도동∼후암동부근 )등에서 가장 성행했다.. 고구려,신라등에서 연원을 찾을수 있는 편싸움은 집단의식을 드높인다는 이유로 일제에의해 금지되기도 했다. 재담과 창등이 결합된 가면극의 하나인 「산대놀이」도 당시 한양에서 성행했다.32개탈이 어우러져 12마당을 이루는 송파산대놀이가 대표적이었으며 구파발,노량진,애오개(아현동일대)등도 산대놀이패가 거주하면서 정월대보름,사월초파일,단오,칠월백중등에 「장」을 열어 인기를 끌었다.굿중패,남사당패라 불리는 직업 유랑연예인들에 의해 공연됐던 전통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일명 박첨지놀음·홍동지놀음)도 사대문안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다. 조선이 유교를 숭상했지만 사월초파일에 등을 켜서 복을 비는 관등놀이는 고려때의 연등회를 이어 커다란 민속놀이로 지켜져 왔다.용,봉황,표범,물고기,학등 갖가지 모양의 등을 만들어 종로등 각 시장에 달았고 여염집에서도 등을 달아놓고 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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