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행사하는 지도부 ‘대수술’ 요구하는 소장파
한나라당이 지난 26일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 이후에도 여전히 들끓는양상이다.대선 패배 책임론과 당 진로모색을 위해 마련했던 연찬회는 일단개최 취지에 부합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정나는 듯한 분위기다.
한편에서는 이를 당 내분의 ‘일단 봉합’으로 여기기도 한다.최고위원단전원 사퇴와 이어진 사퇴철회 등 해프닝 속에서도,현행 최고위원단의 한시적 유지로 최대 현안이었던 지도체제를 결정하고 당 혁신을 위한 비상대책기구 구성 결의 등을 성과로 받아들이는 인식에서다.그러나 수술부위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재발했다.
◆소장파,재반발
미래연대는 27일 모임을 갖고 다시 성명서를 냈다.전날 서청원(徐淸源) 대표로부터 “뒤통수 치거나 뒤에서 총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던 원희룡(元喜龍),권오을(權五乙),안영근(安泳根)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갖고 거듭 최고위원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은 연찬회에서 최고위원단을 유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데 대해“형식논리상 지도부가 필요하다면 직책을 유지해도 좋다.그러나 전권을 비대위에 위임,사실상의 기능을 정지시켜라.”라고 요구했다.특히 비대위 구성과 관련,“보고서나 만드는 기구는 필요없다.”면서 “당의 개혁을 실질적으로 이끌 수 있는 비대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연대 회원인 남경필(南景弼) 대변인도 이날 사퇴,힘을 더했다.그는 전날 연찬회에 대해 “당헌·당규 규정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우를 범했다.”면서 “당은 지금 목숨을 건 대수술이 아닌,모양만 바꾸는 변장을 하려한다.”고 비판했다.
◆갈 길 가는 지도부
최고위원단은 이날 ‘이제는 거칠 것 없이 당 나름의 일정을 소화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오후 회의를 갖고 비대위원장을 선출하는 등 전날 연찬회를 통해 다시 부여받은 ‘주도권’을 발빠르게 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연찬회는 이들에게 비대위 구성권과 당무 지속 등을 주문했다.
남경필 대변인의 사표도 즉각 수리하고,대표 비서실장이자 미래연대 회원인 박종희(朴鍾熙) 의원을 임명했다.김영일(金榮馹) 총장은 “국회 전략 등 통상업무는 최고위원단이 맡을 것”이라고 말해,지도부의‘통상업무’ 개념이 상당히 포괄적인 것임을 확인시켜주었다.이는 ‘비대위에 당무 전권을 위임하라.’는 소장파의 요구를 일축한 것이기도 하다.
대선직후 인책론에 휘말려 심하게 당내 위치가 흔들려 사퇴와 함께 차기 전대 불출마까지 선언해야 했던 이들은,이로써 향후 재편될 당의 권력구조에어느 정도의 영향권은 확보한 셈이다.지도부가 현경대(玄敬大)·홍사덕(洪思德) 의원을 비대위 공동위원장에 추대한 것은 당내 신망이 높고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들을 통해 당내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고려한 듯하다.
◆내연하는 불씨
우선 지도부와 소장파가 전날 연찬회에서 극심한 ‘감정상’의 대립 양상을 내보였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지도부가 소장파의 반발을 포용하는 노력을 보이지 못한 채 정치 일정을 몰아가고 있는 점도 향후 후유증을 예고한다.
당장 내년초 임시국회와 정치현안에 대한 지도부의 대응방식에 따라 한나라당은 심각한 분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이지운기자 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