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날벼락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법인세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특례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시급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보험사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22
  • 화염덮인 기체속 시신 뒤엉켜/KAL기 괌추락 참사­현장 르포

    ◎달려온 실종자 가족 잔해더미 보고 망연자실 6일 하오 5시(한국시간) 미국령 괌섬의 니미츠 힐. 조용한 열대 낙원의 밤공기를 섬광과 굉음으로 갈라놓은 대한항공 801편의 추락 현장은 사고발생 만 16시간이 지난 이때까지도 검은 연기를 흉물스럽게 뿜어내고 있었다. 사고 여객기는 하늘색 꼬리 부분을 빼고는 전체가 숱덩어리로 변해 야트막한 산봉우리 사이 갈대와 관목들이 낮게 깔린 분지위에 처참하게 누워있었다. 앞 부분은 폭발과 이에 따른 화염으로 녹아내려 철골구조물만이 뒤엉킨채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비행기의 방향은 멀리 5㎞전방에 보이는 활주로를 왼쪽으로 20도 가량 비껴나 있었다.제 갈길을 잃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산길을 미끄려져 내려갔던 사고 당시의 정황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했다. 여객기가 첫 충돌후 바닥을 땅에 대고 5백여m 이상을 미끄러진 흔적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나무들은 동체에 부딪칠 때의 충격으로 중간 윗부분은 마치 톱으로 썬 것처럼 잘려나가 있었다.여객기가 충돌,잘려진 미 공군기지의송유관 주변은 쏟아져나온 기름으로 검게 물들었고 석유냄새가 코를 찔렀다.송유관 옆에는 엔진부분의 커다란 프로펠러형 부속품이 찌그러진채 나뒹굴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몰려온 괌의 실종자 가족과 친지들은 더이상의 생존자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은 잔해더미를 보자 “혹시나”했던 기대감이 완전히 무너진듯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들의 낮은 울음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국민회의 신기하 의원과 함께 연수를 왔다가 실종된 염시열 광주시교육위원의 아들 필승씨가 끝내 큰 소리로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이제는 편히 모시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염씨의 통곡이 다른 사람들의 오열로 옮아가면서 225명의 애꿎은 목숨을 앗아간 니미츠 힐은 서서히 어둠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 “웬 날벼락” 충격 휩싸인 국민회의

    ◎대책반 현지 급파… DJ,대부분 일정 취소/신 의원 노모 TV로 소식듣고 몸져 누워 국민회의는 6일 신기하 의원 부부와 당원 22명이 괌에 추락한 사고 여객기에 탑승한 것으로 확인되자 충격에 휩싸였다. ○…이날 상오 긴급 소집된 간부회의에서는 현지대책반(반장 유재건 총재비서실장)을 구성,국회건설교통위 간사인 김명규 의원을 KAL특별기편으로 현지에 급파한데 이어 나머지 대책반 소속의원들을 하오 현지에 파견했다. ○…앞서 김대중 총재는 새벽 4시쯤 일산 자택에서 정동영대변인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 광주동지구당에 전화를 걸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시했다. 김총재는 이어 대부분 일정을 취소토록 지시했다. ○…비보가 전해진 이날 새벽부터 국민회의 광주동구 지구당 사무실에는 탑승자 가족들이 몰려들어 생존 여부를 확인했으나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울음바다를 이뤘다. 신의원의 장남 영록씨(25·고려대 4년휴학)도 다른 탑승자 가족 및 당직자들과 함께 부모의 생존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특히 신의원 가족들은 광주시 남구 월산동에 살고있는 노모 이묘현씨(93)가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사고소식을 전하지 않았으나 TV를 통해 사실을 알게된 이씨는 몸져 누웠다.
  • 효도여행 3대 8명 참변/탑승자 사연 이모저모

    ◎회사 인기투표 1위가족 4명·신혼부부 3∼4쌍도 6일 새벽 괌에서 추락한 대한항공 801편 탑승객 중에는 일가족이 유난히 많았다.그만큼 안타까움도 컸다. 탑승객 명단의 주소를 대조한 결과,국민회의 신기하의원 부부,노무라증권 한국지사 박정실차장의 일가족 4명 등 가족 단위 여행객이 80명이 넘었다. 또 김진화씨(32·회사원)와 권진혜씨(24·여) 등 주소와 여행목적이 같아 신혼부부로 보이는 여행객도 서너쌍이나 됐다. 서울 양천구 목3동에 사는 이경한씨(32·회사원)의 3대에 걸친 일가족 8명은 효도여행을 떠났다가 참변을 당했다.외아들인 이씨는 평생 해외여행 한번 못한 부모 이성철(68)·송병원씨(62)를 비롯,부인 박소현씨(28),외동딸 주희양(3),누나 혜경씨(35),조카 2명 등 8명과 함께 미국령 괌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거평그룹 기조실에 근무하는 이정환씨(34·서울 강동구 상일동) 부부도 양가 부모를 모시고 휴가길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대한항공의 괌지점장인 박완순씨(44)의 부인 김덕실씨(44)와 딸 주희양(16),아들 수진군(12)도 탑승했으나 주희양만 중상을 입고 참변을 면했다.박씨는 가족의 참변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고수습을 위해 동분서주,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노무라증권의 박정실 차장(41·서울 서초구 잠원동)부부는 박차장이 지난해 말 회사에서 사원 인기투표에서 1등으로 뽑혀 받은 3박4일짜리 괌여행 티켓으로 두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다. 변여미(28·삼성출판사 직원)·선미씨(20·중앙대 재학) 자매는 최근 부친상을 치른뒤 슬픔에 잠겨있던 어머니 조도자씨(55)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괌 여행에 나섰다.여미씨의 남편 이명우씨(33·월간지 기자)는 “장인이 한달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뒤 처와 장모등이 비탄에 잠겨 있어 먼저 괌으로 떠나게 한 뒤 곧 뒤따라갈 예정이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3개월전에 형이 세상을 떠난데 이어 이번에 장조카가 변을 당했다는 김연창씨(65)는 “며칠 전에 조카가 휴가를 다녀오겠다고 연락을 했는데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느냐”면서 통곡했다.김씨의 장조카인 한솔화학 부장 김회철씨(40)는 부인 정순용씨(37),아들 태준군(9),딸 지영양(12)과 함께 휴가를 가기를 위해 사고기에 탑승했었다. 한편 사고기에는 9명이 예약을 해놓고도 탑승하지 않아 구사일생으로 화를 면했다. ◎KBS 보도국장 일가5명 탑승/부인·둘째딸 2명은 생존 확인 사고기에는 KBS 홍성현 보도국장(51)과 부인 이재남씨(45),딸 영실(17)·화경양(15)자매,막내 은기군(11) 등 일가족 5명도 탑승했으나 부인 이씨와 둘째딸 화경양만이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홍국장은 부산고와 서울대 공대를 나와 지난 73년 한국방송공사 1기로 입사한 뒤 사회부장·정치부장·취재주간을 거쳐 지난해 5월부터 보도국장을 맡아왔다. 의협심이 강하고 역량있는 언론인으로 평가받아온 그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도 역임했으며 영국 카디프대에 1년간 연수를 하며 석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 대중탕서 감전 “날벼락”/한증욕하던 2명 사상

    25일 상오11시30분쯤 부산시 수영구 망미1동 금천목욕탕(업주 신연숙·40)안 여탕 한증탕에서 한증욕을 하던 이 동네에 사는 전명칠씨(46·여)와 강조남씨(62·여) 등 2명이 감전돼 전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강씨는 인근 세광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경찰은 한증탕내 전등이나 습식 전열보일러에서 누전되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여의자동화시스템 성명기 사장(빌게이츠 꿈꾸는 한국의 도전자)

    ◎외제장악 원격제어시장 탈환 선봉/4년 위암투병 공백딛고 새시스템 개발/대형프로젝트 잇단 수주… 해외시장 도전 대부분 후미진 곳에 있는 도시가스 정압실엔 가스 누출센서 및 압력·온도 계측장비 등이 설치돼 있다.수시로 변하는 데이터는 네트워크를 타고 가스회사 본사 상황실에 있는 컴퓨터와 이에 연결된 대형 상황판에 나타난다.이상이 생긴 곳은 가스관 밸브가 자동차단되고 상황판엔 즉시 빨간 불빛이 나타난다.상황실에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문제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정비요원차량을 보내 수리케 한다.원격자동제어시스템으로 가능한 작업이다. (주)여의자동화시스템(02­469­1203)의 성명기 사장(43)은 컴퓨터를 이용한 원격자동제어시스템 개발에 14년째 몰두하고 있다.그동안 공장자동화시스템(FA)을 비롯해 폐수정화처리,수질분석,지하철 신호감시 제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크고 작은 단위의 원격제어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국내에선 일급 기술력을 갖춘 회사를 만들었다. 원격자동제어분야는 시스템 장비구입에 들어가는돈이 만만치 않고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데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하다.응용프로그램 하나 잘 만들면 떼돈을 버는 PC소프트웨어 분야보다 「벤처적 성격」이 떨어지는 셈.「벤처 붐」이 일어도 이 분야에선 그리 활발하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성사장이 원격자동제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연세대 전자공학과)을 졸업한 뒤 첫 직장이던 한 방산업체 연구소에서였다.컴퓨터로 함포를 쏘는 원격제어기술을 공장 자동화에 접목하면 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창업 무렵인 84년엔 IBM사 16비트급 PC가 나와 영세기업도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능하게 됐다.처음엔 공장자동화의 일부분인 불량품 검사 소프트웨어와 보드를 개발,짭잘한 재미를 봤다. 그러나 86년 날벼락같은 위암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에 들어가면서 남보다 앞선 출발로 이룬 작은 성공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동생이 회사를 맡아 운영했지만 명맥유지에 불과했다.기적처럼 건강을 되찾아 현업에 복귀한 90년은 시장상황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원격자동제어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고조돼 있었고 외국산이 시장의 한가운데를,국산 모방품이 귀퉁이를 차지한 꼴이었다. 그는 대규모 사업장에 들어갈 중량급 시스템 개발에 힘을 쏟아야겠다고 판단했다.몇몇 공장,빌딩에 전력감시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90년 3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뒤 해마다 40%를 웃도는 꾸준하면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어나갔다. 여의의 실력이 업계의 인정을 받으면서 동국합섬 제사기 관리시스템,노원 열병합발전소 열량 계측 시스템,동양 엘리베이터 원방감시시스템 등 굵직한 아이템 수주도 잇따랐다.지난해 매출액 33억원에 이어 올해 목표는 50억원.현재 환경부 발주 4대강 수질분석 시스템,지하철 3·4호선 신호감시 및 제어 시스템을 구축중이다. 개발도상국을 타깃으로 한 해외시장 진출노력도 병행하고 있다.태국,베트남 업체의 입찰에 참여했으며 인도네시아 한 대형 식품제조업체의 화재감시 제어시스템을 수주하는 실적도 올렸다. 성사장은 『외국업체와의 싸움에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저렴한 인건비와 꾸준한 기술개발로 가격대비 성능이 외국산보다 앞선다는 생각이다.또 자동제어시스템에서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사후관리에 국내업체가 갖는 장점을 최대한 살린다는 전략이다. 그도 여느 벤처업체 사장들과 다름없이 국내업체들의 국산품 불신에 이의를 단다.국산과 외산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비교,분석하는 낙찰과정이 아쉽다는 얘기다.『국산이라고 무조건 사서 쓰랄 수는 없겠죠.단지 정당하게 평가해 달라는 겁니다』 기술이 전부인 벤처기업인의 호소다.
  • 교통사고사(외언내언)

    그렇잖아도 세계 2위의 불명예를 누리고 있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 전년대비 22.6%나 늘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경찰청은 지난 96년 26만5천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1만2천600여명이 숨지고 35만5천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매일 멀쩡하던 35명이 사망하는 것이다. 수도 없이 되풀이 되어온 통계의 나열이지만 1년 교통사고에 따른 경제적 폐해는 6천6백여억원.사회적 간접 손실은 1년 정부예산의 8%를 상회하는 6조원이나 된다.하루 평균 18억2천여만원의 직접 피해,1백64억원의 사회적 피해가 발생하는 셈이다. 뭐니뭐니해도 안타까운 것은 인명피해다.아침에 건강하게 집을 나선 가장이,귀여운 자식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는 비극은 누구에게나 날벼락처럼 떨어질 수 있다. 자동차생산 세계 5위국.차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 금년 하반기면 1천만대 시대에 들어간다.그만큼 사고는 늘게 마련인데 더욱 큰 문제는 사망자의 45%가 보행자라는 점이다.행인의 안전을 외면하는 거친 운전풍토의 소산이다.또 피해보상이나 치료도 제대로 못받아 2중의 피해를 입히는 뺑소니사건이 급증,96년 35.4%나 늘어난 1만5천여건에 811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통계다.뺑소니사고 검거율은 60%에 미달이다. 「야만적 교통문화」는 사고원인에 뚜렷이 나타난다.중앙선 침범,음주·과속운전등 법규위반 사고가 46.6%를 점한다.한국의 도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91년 걸프전에 46만7천여명의 미군이 파견됐지만 전사자는 148명에 불과했다.64년부터 74년까지 10년여 이어진 월남전에 연인원 8백74만여명의 미군이 참전했으나 전사자는 4만7천여명이었다.지난 4년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와 비슷하다. 92년부터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으로 줄이기 운동을 폈던 당국은 이번엔 보다 현실적인 사망자 10% 줄이기 운동에 나섰다.사고가 난 뒤에야 후회하는 조급하고 난폭한 운전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생사람 잡는 교통사고는 줄 수가 없다.전쟁터보다 무서운 거리의 평화를 위해 철저한 사전 안전교육과 용서없는 엄한 단속으로 운전문화를 바꾸는 도리밖에 없다.
  • 김송죽 소설 「번개치는 아침」(송화강 5천리:17)

    ◎북만일대 조선족 삶과 투쟁 생생히/비적의 약탈에 맞서 결성한 무장지위대/후일 공산군부대 편입… 국민당군 토벌나서/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반동으로 찍혀/중국 문혁시기 혹독한 핍박·고초겪어 흑룡강성 화천면 성화향 성화촌에 사는 김송죽 선생(59)은 퇴직교원이다.자식들은 모두 대학을 나와 하얼빈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나가있다.그래서 두 내외가 넓은 한족식 집을 지켰다.그는 80년대 초에 처녀작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을 발표한데 이어 90년대 초에는 장편실화 「혈전」을 내놓았다.이미 문명을 얻은 그는 요즘 「관동의 밤」이라는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처녀작 「번개치는 아침」은 그의 부친을 모델로 한 소설이다.광복직후 조선족부대가 비적과 싸운 투쟁의 역사를 그렸다.국민당군 별동대 성격의 비적은 광복직후 북만일대에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공산당을 적으로 싸워야했던 당시 국민당에 북경에서 먼 북만은 사실상 통치지역 밖이었는지 모른다.그런 탓에 국민당을 돕는답시고 나선 별동대속에는 만주국시절 헌병이나 경찰관도끼여있었다는 것이다. ○피땀어린 농토 등지고 유랑 그리고 실제 국민당 비호를 받았다.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상장 사문동과 제1집단군 총사령 상장 이화당,국민당 동북 정진군 총지휘 중장 장우신이 별동대를 조종했다.당시 그들의 횡포를 고발한 노래말에 「사(사문동),이(이화당),장(장신우)은 불지르고 살인하니」라는 내용이 들어갈 정도였다.북만일대의 주민들은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공산당이 일찍 뿌리를 내린 이유도 이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마을이 불타버리고 주검이 들판을 덮었다.더구나 조선족은 늘 사냥의 대상이 되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그런 일로 해서 조선족들은 피땀으로 일군 땅을 버리고 다시금 유랑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이 무렵 조선족 선각자들이 일어났다.무장자위대를 만들어 마을을 지켰던 것이다.그러고 나서 얼마있다가 공산당 군부대에 속속 편입되었다. 그러한 무장자위대 가운데 맨 먼저 공산당 군부대에 편입한 조선독립대대는 1945년 11월25일 연안에서 주덕해와 손을 잡았다.조선의용군 제3지대로 개편한 조선독립대대는 다음해 4월28일 하얼빈에서 국민당군과 싸웠다.하얼빈이 국민당군 손에서 떨어져나오자 당기관과 발전소,송화강철교,비행장 경비를 담당했다가 국민당군 토벌에 나섰다.1946년 9월2일 하얼빈시 향방구 사리툰전투에서는 제3지대 소속 조선족 21명이 전사했다. 김송죽 선생의 부친이자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모델 김병념은 광복직후 동북민주연군에 참가했다.제1연대 조선족대대인 제2대대 5중대 1소대에 배속되었다.소대에서 3반장 직책을 맡은 그는 1946년 가을 대대를 따라 흑룡강성 화남현 발전소로 이동했다.그해 11월6일 주변정찰을 나갔다가 국민당군 병력과 교전이 붙었다.그 전투에서 김병념은 대대참모 김해정 등과 함께 전사했다.그리고 얼마뒤인 11월20일 국민당 제15집단군 총사령 사문동이 붙잡혔다.사문동은 12월23일 벌리현에서 총살되었다. 김송죽 선생은 소년시절을 부대에서 보냈다.부친 김병념이 전사한 이후에도 모친이 부대 재봉대에서 군복을 짓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냥 영내에서 살았다.그러다 부대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모친과 함께 벌리현에 남았다.할아버지 김석길이 아직 생존해있던 때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애국계몽운동가이자 교육자요,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엄하게 자랐다. ○소년시절 군부대서 생활 할아버지 김석길은 1884년 평남 수난 태생이었는데,1912년부터 계몽운동에 참여했다.3·1운동에 적극 가담한 연고로 지명수배를 받자 제자 9명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집안과 휘남을 거쳐 왕청에 와서 대종교에 입교하고 북로군정서의 일원이 되었다.그리고 1925년 신민부에 들어갔다.1928년에는 김좌진 장군이 파견한 의란현에서 이도강 등에 4개의 학교를 세웠다. 김송죽 선생이 스무살 나던 해인 1958년에 할아버지 김석길은 흑룡강성 화남현에서 세상을 떴다.그러나 독립운동에 참가한 민족의사들은 대접을 못받고 있다.항일운동을 했으면서도 공산당이 이끈 투쟁대열에 서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배제되었다.오늘날 흑룡강성 항일열사 가운데 민족독립운동가는 한 사람도 없다.물론 김석길 같은 분들도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후손들은 오히려 모진 핍박을 받았다.더구나 문화대혁명시기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겪어야했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김송죽 선생은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이유로 반동민족주의자가 되었다.그의 죄목은 반동민족주의자 말고도 역사반혁명분자의 아들,반혁명집단의 두목,반당분자,반사회주의분자 등 10가지에 이르렀다.부친 김병념이 국민당군과 투쟁한 사실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부친이 광복전 강제로 끌려가 철도경호대에 있었다는 사실만 들추어 혁명열사가 계급의 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김송죽 선생 자신이 써놓았던 소설 「번개치는 아침」의 원고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비적토벌을 내용으로 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갔으나,김동철·김해정이 조직한 조선족부대를 문제로 삼았다.김동철과 김해정은 본래 항일연군 8군에서 일제와 싸웠다.그러다 1939년 군장 사문동이 일제에 투항하자 숨어있다가 광복과 더불어 조선족부대를 창설했던 것이다.그 뒤에 동북민주연군 제1연대 제2대대에 편입되었던 조선족부대가 1949년북한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반동으로 몰았다.문화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북한을 수정주의로 보았던 터라 조선족부대는 반동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 틈틈이 습작 그는 옹골진 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모진 매를 맞고 이른바 돌림투쟁을 숱하게 당했다.그래도 푸른 대나무처럼 곧게 살라는 뜻에서 지어준 자신의 이름(송죽)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감옥생활 4년을 버티었다.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소설 「번개치는 아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1965년 탈고하고 하얼빈 조선족문화관에 원고를 보내놓은 상태에서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출판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문학수업은 어떤 의무감에서 이루어졌디요.청소년기를 할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리 독립운동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서 그걸 언젠가 정리한다는 생각을 했습네다.할아버지 유언도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과 비적의 횡포를 역사로 기록하라는 것이었디요.할아버지한테 듣고,어렴풋하나마 어려서 실제 보아왔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에서 소설을썼던 것이외다.1957년 벌리중학을 나와 농사일 틈틈이 그런 꿈을 키우면서 실제 습작을 해왔디요.할아버지 유언과 내 꿈은 실로 오랜만에 이루어졌습네다』 김송죽의 「번개치는 아침」은 1983년에 출판되었다.원고를 탈고한지 꼭 18년만에 햇빛을 본 것이다.그에게는 물론 가족사를 문학적으로 정리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주었다.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속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과 투쟁을 복원한 대서사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요즘 탈고한 장편소설 「관동의 밤」도 북만의 독립운동사를 형상화한 것이다.자그마치 75만자나 되는 작품을 출판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 교내서 윤화 “날벼락”/고3 수험생 3명 중상

    ◎내리막길 교사 승용차에 치여 7일 하오2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경신고 운동장에서 이 학교에 재학중인 박용규군(18) 등 3년생 3명이 교사의 승용차에 치이는 교내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박군 등은 중상을 입고 인근 서울대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날 수능성적통지표를 받으러 학교에 들어서다 이 학교 최동석 교사 소유의 서울 2푸9827호 프라이드 승용차가 운동장에서 과속으로 학교정문 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미처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사고는 최교사가 방전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기 승용차를 동료 교사들의 도움으로 밀고가다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시동이 걸리는 바람에 일어났다.
  • 소풍길 초등생 “날벼락”/부산

    ◎화물차 인도덮쳐… 2명 중태·17명 부상 【부산=이기철 기자】 17일 상오10시50분쯤 부산 중구 영주2동 대청공원 입구 앞길에서 부산8두 6431호 1t 포터화물차(운전자 강돈진·25)가 부산3바 5528호 영업용 택시(운전사 박종철·44)와 추돌,화물차가 공원으로 소풍가던 수정초등학교 1학년4반 학생 40여명을 덮쳤다. 이 사고로 이지수군(7)·황정은양(7) 등 학생 17명이 부상을 입고 인근 메리놀병원과 침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황양과 이군은 중태다. 목격자 박정호씨(38)는 『화물차가 영주2동 동남아파트 앞길에서 우회전하던 중 앞서가던 영업용 택시를 들이받아 학생들이 있던 오른쪽 인도를 덮쳤다』고 말했다. 사고현장에서는 학생들이 흘리고 간 소풍가방과 신발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경찰은 사고운전사 강·박씨와 담임교사 정광식씨(31)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중이다.
  • 하늘서 쇠파이프 50개 “날벼락”

    ◎헬기로 운반중 추락… 행인 2명 중경상/도로변 덮쳐 차량 3대도 파손 【과천=조덕현 기자】 2일 상오 11시 30분 쯤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535 상공에서 한국항공 소속 헬기(조종사 임충근·44)가 운반하던 길이 3m·직경 5㎝ 크기의 쇠파이프 50여개가 과천∼양재간 8차선 도로와 인도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행인 이춘호씨(40)와 경기3도 1798호 쏘나타 승용차를 운전하던 문승대씨(40) 등 2명이 쇠파이프에 맞아 중경상을 입었다.문씨의 쏘나타 승용차와 서울 2처 2777호 프라이드 승용차 등 차량 3대도 파손됐다. 쇠파이프가 떨어지자 이 도로를 지나던 차량들이 서로 뒤엉켜 큰 소란이 벌어졌으며,주민 2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사고는 관악산 정상에 짓고 있는 서울방송 송신시설의 건축자재를 운반하기위해 헬기가 과천동 과천주유소 뒤편 공터에서 쇠파이프를 쇠줄에 매달아 2백40m상공까지 이륙했을 때 갑자기 쇠줄이 풀리면서 일어났다. 경찰은 헬기조종사 임씨를 업무상 과실치상혐의로 입건,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어느 일가족의 “날벼락”/고속도 펑크승용차 도우려 갓길 주차

    ◎버스덮쳐 3m언덕 추락… 4명 참변 【경산=한찬규 기자】 6일 상오 2시30분쯤 경북 경산시 진량면 선화리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서울기점 3백15.3㎞ 지점에서 동원관광 소속 전남5바 2108호 관광버스(운전사 황준옥·50)가 타이어 펑크로 추월선에 정차해 있던 서울41가 7072호 엘란트라승용차와 노견에 정차중인 경기71고 1670호 산타모승합차를 잇달아 충돌했다. 이 사고로 산타모승합차가 도로 옆 3m 언덕아래로 추락,운전자 이춘우씨(42)의 부인 서숙자씨(40)와 딸 지현(20)·은희(16)양과 아들 동진군(17) 등 일가족 4명이 숨졌다. 이씨는 이날 추월선에 타이어 펑크로 정차중인 엘란트라승용차를 발견하고 도와주기 위해 가족 4명이 탄 자기 차를 도로 옆 노견에 세워두고 운전자 서종석씨(33)와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버스가 두 승용차를 연쇄적으로 충돌하면서 가족이 참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 죽음부른 함값 시비/김성수 사회부 기자(현장)

    ◎결혼 첫날 다투다 호텔 7층서 뛰어내려… 『이제는 잘 살 테니 아무 걱정 말라던 것이 바로 어제 일인데…』 4일 하오 서울 송파구 석촌동 남서울병원 영안실.딸 서영희씨(21·여·석촌동 14의 11)의 영정 앞에서 어머니 김모씨(64)는 말을 잇지 못했다.충남 강경에서 비보를 듣고 택시를 대절해 황망한 상태로 달려온 김씨는 전날 결혼식을 올린 딸이 하루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날벼락 같은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서씨는 3일 하오 1시30분 서울 송파구 송파동 황제예식장에서 박모씨(28)와 결혼식을 올렸다.4일 상오 1시10분쯤 투숙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 98의 5 가락호텔 708호에서 21m 아래 1층 화단으로 투신,그 자리에서 숨졌다. 「함값」으로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결혼식이 끝난 뒤 단란주점에서 뒤풀이를 하던 남편의 친구들은 술값으로 함값 50만원을 요구했다.장모인 김씨는 10만원밖에 주지 못했다. 2차로 나이트클럽까지 갔다가 만취돼 돌아온 박씨는 호텔로 돌아와 『장모가 함값을 10만원밖에 안주면 내체면은 뭐가 되느냐』며 화를 냈다.자존심이 상한 서씨도 『자꾸 그러면 죽어버리겠다』며 다투다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서씨의 언니(27)는 『예식장비 1백70만원은 양가가 반반씩 부담하기로 해 70만원을 어렵게 모아서 냈다』며 『함도 받지 않았는데 뻔한 시골살림에 50만원이나 되는 큰 돈을 어떻게 줄 수 있었겠느냐』며 오열했다. 서씨는 세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3년전 서울로 올라와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다 박씨를 만났다.1년전부터 동거,임신 6개월이다. 비뚤어진 결혼관행 때문에 젊은 부부의 인생이 풍비박산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었다.
  • “법정서 12·12 관련자료 공개”/이양우 변호사 문답

    ◎영장집행사실 사전통보 안받아/월요일쯤 검찰에 출두하려 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양우 변호사는 3일 낮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스위스그랜드호텔 1층 음식점에서 장세동 전안기부장과 안현태 전경호실장등 핵심측근들과 대책회의를 갖기에 앞서 기자와 만나 향후 대책을 밝히면서 검찰의 전격적인 구속영장집행에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사전에 영장집행 통보를 받았나. ▲받지 못했다.영장발부사실도 어제밤 TV방송을 보고 알았다. ­이날 영장집행을 예상했나. ▲전혀 못했다.검찰이 변호사인 나에게 집행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당초 계획은. ▲검찰에서 별 연락이 없어 오늘 하오 2시쯤 전전대통령과 함께 상경,월요일 쯤 출두할 작정이었다.그래서 영장발부 사실을 전해듣자마자 밤 늦게 합천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전씨가 마지막 남긴 말은.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속옷바람에 옷을 챙겨 입으면서 『나 아침도 못먹고 가네』라고만 말씀하셨다.담담한 표정이었다. ­지금 느낌은. ▲구속영장이 발부되면받아들일 각오였는데 통보도 받지 못하고 날벼락을 맞았다.65년 평생,30년 법조인 생활에 이런 꼴은 처음이다.죽은 사람한테 칼을 들이댈 수 있나.부관참시와 다름없다.연희동에는 시체밖에 안남았다.(눈물을 흘리며)전직 대통령의 양팔을 잡고 연행하다니 이럴 수는 없다. ­앞으로 계획은. ▲재판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관련자료도 모두 공개하겠다.정승화나 장태완이 영웅이라니 적반하장이다.검찰에선 더이상 할말 없다.15∼16년전 사실에 대해 그분이 상세히 아는 것도 없다.과거 12·12와 관련,검찰에 제출한 3백7개 질문항목 가운데 그분이 알고 대답할 수 있는 항목이 1∼2개도 안됐다.대부분 나를 포함한 변호인단이 작성한 것이다.실제로 그분은 정승화를 잡으라는 지시만 했을 뿐이다. ­더 하고 싶은 말은. ▲과거 3공·유신체제 하에서 내가 군검찰관의 자격으로 윤보선 전대통령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소환하는 임무를 맡았을 때 3번이나 찾아가 『각하 가셔야 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대했다.
  • 6공 비자금 파문­관리 어떻게 했나/청와대 예산 어떻게 쓰이나

    ◎금융실명제 실시로 숨을곳 없어 노출/연희동→이현우→이태진씨 라인 유지/세탁 끝낸 수표로 차명계좌 4개 운용 92년 봄 국민당창당 기자회견에서 정주영씨는 『현대그룹이 88∼90년까지 3년동안 청와대에 갖다바친 정치자금은 모두 2백60억 정도』라고 폭로,재계의 정치헌금 사실을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했다.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정씨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않았지만 일반론적으로 기업체들이 「성금」을 낸 사실을 시인하면서 『불우이웃돕기에 썼다』고 말해 한때 도마위에 오른적이 있었다. 정씨의 경우와 같이 재계의 자진헌금이든,이권의 대가든 노전대통령이 재임기간중 여러 경로를 통해 조성한 정치자금의 총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정가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총규모는 알수 없지만 쓰고남은 비자금 액수만해도 자그마치 4백85억원.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92년 11월쯤 이현우 전 경호실장은 노전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남아있는 통치자금의 관리는 앞으로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노전대통령을 안심시켰다.이전실장은 노전대통령으로부터 받은 1억∼10억원짜리 수표를 모았다가 이태진 전경리과장에게 수표를 건네주며 은행에 입금시키라고 지시했다.전직 경리과장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긴 것은 비자금관리의 계속성을 유지,보안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믿을만한 은행을 물색하던 이씨는 같은해 11월 나응찬 신한은행장을 사무실로 찾아갔다.나은행장도 「청와대」의 손님인 만큼 극진히 대접할 수 밖에 없었다.이씨가 여러 시중은행 가운데 신한은행을 고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은행장이 경북 상주출신으로 77년까지 대구은행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6공과 지역적 연고를 같이하는 까닭에 아무래도 믿음이 갔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이 때부터 신한은행측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나은행장­홍영후 상무(현 신한리스사장)­이우근 서소문 지점장(현 이사대우 융자지원부장)등 단계를 밟아간 이씨는 이전지점장에게 『기업금전 신탁에 차명으로 예치해달라』고 요구했다.당시 서소문지점은 신한은행 내에서 예금수신고가 3번째로 큰데다 이전지점장의 영업수완이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비자금 은닉장소로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전 지점장은 92년11월 매형 최광문씨가 대표로 있던 한산기업 명의로 1백30억원짜리 계좌를 만들고 93년2월 거래를 트고 있던 우일종합물류 하종욱씨의 아버지 하범수씨가 경영하던 우일양행 명의로 1백10억원을 분산예치하는 등 4개의 차명계좌를 감쪽 같이 만들었다.그 당시만 해도 탄로날 줄은 몰랐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4개통장에 대한 인감을 모두 「이호경」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향후 발생할 지도 모르는 명의대여인들과의 소유권분쟁을 예방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특히 이씨가 신한은행에 맡긴 대부분의 수표는 이미 시중 10여개 은행을 통해 「돈세탁」이 된 상태였다. 노전대통령측은 이후 93년8월 실명제실시전까지 필요할 때마다 총 1백20억여원의 돈을 빼내 썼다.이때까지만 해도 은행측의 협조와 보안유지로 순탄한 비자금 예치­관리과정이 지켜졌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날벼락이 떨어졌다.금융실명제와 96년부터 실시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로 비자금 노출의 결정적 계기가 다가왔다.명의를 빌려준 탓에 7억여원의 세금을 내야 할 「위기」에 처한 하종욱씨가 서울 B고 1년 선배인 민주당 박계동의원에게 이 사실을 상의하게 됐고 박의원은 국회본회의에서 이를 폭로했던 것.명의대여인의 「고민」을 미리 알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 노전대통령측의 관리잘못도 컸다. 6공초부터 노전대통령 비자금의 실질적 관리인이라고 자처한 이전경호실장은 『차명계좌인줄 알았으면 당연히 (명의대여인의 세금문제를 해결하는)조치를 취했을 텐데 가명계좌에 예치돼 있는 것으로 알았다』면서 『관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이런일이 생겼다』고 관리허술을 시인했다. 이처럼 노전대통령측의 비자금 예치 및 관리경위가 밝혀진 만큼 검찰은 앞으로 자금조성경위와 총비자금 규모,비자금의 사용처,비자금을 제공한 업체를 집중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예산 어떻게 쓰이나/올해 예산 5백70억4천5백만원/해외출장땐 예비비를 별도로 책정 문민정부들어 김영삼 대통령은 기업들로 부터 단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않겠다고 선언,이를 엄격히 실천해오고 있다.그렇다고 청와대예산이 5·6공때에 비해 늘어난 것도 아니다.이와관련,청와대의 실무자들은 지난 6·27 지방선거를 예로 들면서 돈을 쓰지 않는 선거를 실천하고 평소에도 예산에 없는 지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검은돈」이 필요하지도 않고 지출될 수도 없다고 밝힌다.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올해 청와대 예산은 대통령실(비서실)과 경호실을 합쳐 모두 5백70억4천5백만원이다.대통령이 격려비등으로 사용하는 대통령활동비는 대통령실 예산 가운데 사업비항목에 포함된다.그러나 대통령실 사업비에는 국가경쟁력 강화기획단 운영비와 시설유지비·홍보비·책발간비용·만찬비용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사업비를 모두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이밖에 해외출장을 나갈 경우 청와대 예산이 아니라 예비비를 별도로 책정,사용하고 있다.대통령의 연봉은 7천7백34만원으로 이 돈은 대통령실 예산의 인건비에서 나온다. 재경원은 이같은 청와대 및 대통령의 공식적인 씀씀이가 문민정부 들어 증가율이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매년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노태우전대통령 재임당시에도 사정은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집권당의 총재를 겸하고 있어 당에 필요한 비용은 중앙선관위에서 지급되는 정치자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경로 교통수당(외언내언)

    경로승차권 제도가 경로교통수당 제도로 바뀐다고 한다.65세이상 노인들이 한달에 12장(인천 제주도 20장,충남 대구 16장,광주 15장)씩 받던 일반 버스표 대신 그 값만큼의 교통비를 현금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노인들은 소원하던 현금을 타게되어 잘 됐지만 취급 행정관서는 더욱 신경쓰이는 일이 될 것 같다. 경로승차권은 65세이상 일반 노인들이 유일하게 직접받는 혜택이다.노인복지사업으로 노인정과 경로식당 노인복지관 주간노인보호기관 운영과 양로원 요양원 노인건강진단등 여러 사업이 있으며 정부는 한해 6백10여억원을 이런 노인복지 사업에 쓰고 있지만 아직 혜택범위가 한정돼 있고 간접적인 것이다. 일반 노인들은 그런 것보다 경로승차권에 더욱 애착을 가지고 있다.3개월에 한번씩 동사무소에 가서 찾는 버스표가 조금만 늦어도 날벼락이 나고 병원에 입원하거나 여행으로 못찾은 때는 후에 그몫까지 다 챙기는 것이 이 경로승차권이다. 경로승차권은 단순한 버스표가 아니다.서울 탑골 공원 같은 데서 흔히 보는 것처럼 승차권을 모아 할인 판매하여 용돈으로도 쓰고 노인들끼리 다른 물건으로도 바꾸는데 통용되어 화폐구실도 한다.노인들이 이 승차권에 애착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중 가장 큰 기능이 이런 부분이다. 지금껏 노인들이 경로승차권을 찾아가는 비율은 서울시의 경우 90%쯤 되고 그 사용 비율은 80%쯤 되었다.타지역은 이보다 조금 낮았다.행정기관마다 안찾아가는 것만큼 해당 예산이 절약되어 다른 노인복지사업에 보탤수도 있었다.서울시의 경우 그 절약액수가 연 18억원이나 되어 경로식당등에 더많은 지원을 할수 있었다고 한다. 내년부터 교통수당으로 지급하게 되면 그 것은 우리 노인들 모두에게 노령수당 같이 인식될 것이다.더욱 민감하게 수령하려 들 것이다.행정기관은 승차권지급때보다 더 힘들겠지만 빠른 시일에 그것을 노령수당으로 확대 전환시키는 방안을 연구할 수 있는 계기도 될것이다.
  • “기술 배운다더니…” 두딸잃은 모정 통곡/「경기기술학원」 참사현장

    ◎불에 탄 일기장엔 애절한 사연 절절히/사물함속 “생일축하” 꽃다발만 외로이 ○…『이런데인줄 모르고 기술학원이라고 해서 교육시키라고 딸자식들을 맡겼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졸지에 두딸 정숙(18)·정아(16)양을 모두 잃은 이모씨(38·상업·서울 광진구 성수동)는 성적이 나빠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방황하던 딸들을 입교시킨뒤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랬던 소박한 꿈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끝맺자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두딸의 장래를 근심하던 이씨는 친구로부터 학원에 대한 얘기를 듣고 미용기술을 배우게 하기위해 지난 봄 두 딸을 학원에 입소시켰다. 『입소전에는 그토록 명랑하던 애들이 점점 얼굴에서 웃음을 잃고 바보처럼 변해갔습니다』 이씨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배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당하며 생활했다는 사실을 두딸이 사망하고 난뒤 이날 비로소 알게 됐다. 이씨는 『언젠가 면회를 갔는데 큰딸 정숙이 오른뺨에 손바닥자국이 나있었다』며 『그 때 이유를 알았더라면…』이라고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그때부터 딸들을 두번씩이나 퇴소시키려 했었지만 입소때 쓴 서약서때문에 학원측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20일 둘째딸 생일이었고 오늘이 첫딸 생일인데도 아이들이 경비원이 무서워 면회온 부모에게 생일선물을 얘기하지 못한 것 같다』며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다른 학원을 다니며 착실하게 살겠다는 딸들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며 복받치는 울음을 터뜨렸다. ○…화마가 삼키고 간 2층짜리 기숙사 건물의 2층 복도와 방에는 불을 끄며 뿌린 물이 흥건히 괴어 있고 원생들의 곰인형과 색종이로 접은 종이학 다발,일기장,편지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사고당시의 참혹함을 짐작케 했다. 또 한원생의 사물함에는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종이리본과 함께 원생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20송이의 장미다발이 주인을 잃고 흩어져 있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희생자들의 빈소가 차려진 수원 아주대병원,동수원병원,성빈센트병원,수원의료원 영안실에서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가족들이 『새사람이 되어 밝은 표정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는데 이게 웬일이냐』며 오열,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전북 김제에서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딸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상경한 이순자씨(53·여)는 딸 배모양(17)의 시신을 붙잡고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벌써 가면 어떡하느냐』며 통곡. 한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와는 달리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곧바로 신원이 확인돼 가족들에게 연락이 됐으나 일부 시신은 잠옷을 입고 자다 변을 당하는 바람에 신원확인이 늦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원생 가족 70여명은 이날 하오 3시쯤 경찰이 생존한 원생 78명을 격리시킨뒤 가족들과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하며 사고현장앞 4차선도로를 점거하고 10여분동안 연좌 농성. 조카를 찾아온 장기수(53)씨는 『보도를 듣고 새벽 6시30분부터 현장에 나와 조카를 만나려 했으나 당국이 아무런 설명없이 출입을 통제해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발을 동동.
  • “무슨 날벼락”… 예금주들 분통/충북신금 사고 이틀째 표정

    ◎예금인출 빠르면 17일부터 가능할듯/민씨 부동산투자… 돈 쪼들려 빼쓴듯 ○…거액의 예금을 불법유용한 혐의로 지난 7일 재정경제원으로부터 업무정지 등의 조치를 받은 충북상호신용금고의 예금자들은 빠르면 오는 17일쯤부터 예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용관리기금 관계자는 8일 『신용관리기금 직원이 예금지급을 위한 작업을 진행중』이라며 『지금으로선 정확한 지급일자를 알 수는 없으나,충북투금이 예금지급중지명령을 받은 이후 10일만에 지급을 개시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런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관계자는 『지급개시 초기에는 우선 소액예금자를 최대한 보호하는 쪽으로 지급대상 및 지급액 수준을 정하게 될 것』이라며 『현지에 파견된 신용관리기금 직원 등이 2만여명에 달하는 예금자의 예금구성비 및 예금액을 파악,이를 토대로 지급기준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설명. ○…충북금고를 관리하고 있는 신용관리기금은 민병일회장 명의로 된 부산 해운대아파트 부지 2만6천평(경매가 1백50억원 예상)을 찾아낸 데 이어 8일 하오에는 서울 및 충주에 있는 시가 35억원규모의 나대지 등 부동산을 추가로 찾아내 이들 부동산에 대한 채권확보에 나섰다.한편 재경원 관계자는 『신용관리기금은 지난 5일부터 10일간의 일정으로 충북금고의 자금유용규모 및 유용액의 흐름 등에 대해 조사하게 될 것』이라며 『8일까지의 조사에서는 당초 드러난 6백10억원 이외에 더 이상 밝혀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신용관리기금의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충북금고의 장래를 속단하기는 어려우나,그동안 비슷한 전철을 밟은 신용금고 및 투금사 등의 예로 미루어 신용관리기금이 인수할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이라는 게 중론. 신용관리기금 관계자는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충북금고의 경우 지역경제사정 등을 고려할 때 신용관리기금이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신용관리기금이 금고와 투금사 및 종금사 등으로부터 거둬들여 적립해놓은 기금규모가 1조8천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6백억원대의 사고를 낸 충북투금을 파산시키는 최악의 수순은 밟지않을 것』이라고 전망. ○…충북금고의 사고금액 6백10억원의 행방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 금액만 보면 민병일씨 개인이 착복하기엔 큰 돈이어서 금융당국은 민씨 외에도 일부 대주주들도 자금을 유용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출국금지조치가 취해진 민권식씨 등 9명의 계좌를 추적 중.그러나 민씨가 골프장 등 부동산 투자로 자금압박을 받아오면서 금고돈을 조금씩 빼내쓰다 눈덩이 처럼 유용액이 커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설득력이 있다. 사고금액 6백10억원 중 1백8억원은 민병일씨가 대출받은 것이어서 민씨가 직접 유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용금고 사고 왜 잦나/친인척 경영체제… 사금고화/감독기관도 민원 있을때만 형식적 검사 소규모 자금대출을 주로 하는 상호신용금고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특히 충북상호신용금고의 금융사고는 그동안 발생했던 크고 작은 금융사고의 유형과는 달리 수법이 더욱 악랄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종전의 상호신용금고 금융사고는 위장 대출이나 여신한도를 초과하는 등의 수법을 주로 썼다.그러나 충북금고는 이중 장부까지 만들어 서민들의 예금을 중도 해약하거나,신규예금자에게 통장을 발급한 뒤 전산자료를 지우는 방법으로 자금을 유용했다.금융기관끼리 단기자금을 빌려주는 콜론계수를 조작,2백2억원 중 1백89억원을 유용하는 수법도 동원했다.신용관리기금이 설립된 83년 이후 발생한 대형사고만 30여건이며,해마다 매년 2∼3건씩 발생하고 있다. 신용금고에서 금융사고가 빈발하는 주 원인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금고가 대주주들의 사금고화한 데 있다.지난 1일 미국으로 달아난 충북금고 대주주 민병일회장은 친·인척을 주요 간부로 앉혀 놓았다. 6일 출국한 최명식 충북금고 과장은 민회장의 처남이다.이 금고가 동일인 대출한도(자기자본의 10%)를 어기며 1백25억원을 대출해준 C중기는 민회장이 지난 77년 사장에 취임했던 적이 있는 회사로,「특수관계」가 있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덕산그룹 부도에 휘말렸던 충북투금의 전 사주 전응규씨에게 민회장이 30억원을 대출해 준 것도 개인적인 거래관계라고 주장하지만 의문이다.사고금액이 수신고(9백21억원)의 3분의 2에 해당할 정도로,대주주의 사금고가 돼 버린 것이다. 관리감독 기능이 취약한 것도 한 요인이다.신용금고에 대한 검사는 은행감독원의 정기검사 뿐이었다가 지난 4월부터 신용관리기금의 특별검사가 추가됐다.그러나 신용관리기금의 검사는 민원이 제기되는 등의 경우에 한해서만 이뤄져 형식적이다. 신용금고의 수는 전국적으로 3백30개(본점 2백36개)나 되나,신용관리기금의 검사요원은 15명 뿐이다.지난 해 은감원의 정기검사에서 충북금고가 동일인 여신한도를 위반한 사실이 적발돼 그동안 신용관리기금의 검사요원 2명이 상주하며 경영지도를 해왔다.그러나 금융사고가 깊어지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해 감독기능이 얼마나 취약한 지를 잘 보여준다.
  • 페리호 침몰로 사촌 잃고 「삼풍」 붕괴로 딸마저 실종

    ◎“기구한 운명” 서일진씨/백화점에 취직해 집안살림 도왔는데…/이 무슨 날벼락… 뜬눈으로 행방 수소문 『서해페리호 침몰사고때는 사촌동생을 잃었는데 이번엔 또 딸이 대형참사의 희생자가 되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지난 93년 2백92명이 희생된 서해페리호 사고로 사촌동생을 잃었던 서일진(54·상업·전북 부안군 부안읍)씨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딸 미애(25·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마저 실종되자 망연자실할 뿐이다. 서씨는 지난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직후 서울에 사는 처제로부터 소식을 듣고 곧바로 밤차를 타고 상경,6일째 딸의 행방을 찾아 붕괴현장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뒤지고 있다. 딸 미애씨는 지난 90년 부안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집안살림을 돕겠다며 서울로 올라와 이모의 소개로 삼풍백화점 아동복 코너에서 3년째 판매직원으로 일해왔다. 얼마되지 않는 봉급에도 불구하고 첫해 대학입시에 실패한 동생 영석군(21·군입대)을 서울의 좋은 학원에서 공부시키겠다며 데려와 학비를 대준 끝에 결국 동생을 대학에 들여보낼정도로 가족사랑이 깊었다. 그러면서도 봉급을 쪼개 고향의 부모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부치고 남는 돈을 저축할만큼 억척스러웠다. 『오는 6일이 내 생일이라고 딸이 내복을 소포로 부쳐 왔어요.이토록 착한 딸이 이런 변을 당하다니 진정 하늘마저 원망스럽습니다』 서씨는 북받치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이 애꿎게 희생되는 대형참사가 계속되어야 합니까』 비명에 간 사촌동생에 이어 딸마저 잃을 처지에 빠진 서씨는 어디선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딸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 붕괴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 “네가 원하던 워크맨 사왔는데…”/실종여학생 3가족의 애타는 사연

    ◎맞벌이 엄마 힘드실까 저녁 사먹다 참변/“아빠 삐삐 사드릴게요” 효심도 못피우고… 『수경 화이팅! 6월 28일 아빠가』 삼풍백화점 붕괴더미 속에 갇혀 엿새째 소식이 끊긴 권수경양(18·반포고3)의 책상에는 사고 전날 아버지가 전해준 메모만 쓸쓸하게 붙어있다. 못다핀 어린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사체가 잇따라 발굴된 4일에도 생존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사고주변을 헤매는 수경양을 비롯한 8명의 실종 여중고생 부모의 심정은 안타깝기만하다. 수경양의 아버지 권기주씨(46)는 사고전날 입시준비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딸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싶어 평소 갖고 싶어하던 워크맨을 구입,딸의 책상에 갖다놓으며 사랑의 메모를 남겼다. 하지만 자정이 넘도록 집근처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새벽에야 돌아온 딸은 이튿날 아침일찍 등교,아버지의 선물을 써보지 못한채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어머니 김미옥씨(44·풀무원식품소장)도 사고가 나던날 아침 『엄마 힘드시니까 도시락은 필요없어요』라며 맞벌이하는 어머니를 생각해주던 딸의모습을 지우지 못했다. 『직장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를 편하게 해준다』고 수경양은 도시락을 싸가는 대신 학교 근처에서 분식으로 매일 저녁을 때웠다. 이날도 수경양은 하오 5시45분쯤 삼풍백화점 A동 지하1층 스낵바에서 학교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입시얘기를 나누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밤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면서 하오 5시30분부터 6시까지 허용된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해외파견 근무를 한 아버지를 따라 외국생활을 하다 지난 91년 귀국한 권양은 친구들 사이에 「대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해마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꾸준히 하루에 2∼3통씩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 올 정도였다. 어머니 김씨는 『도시락을 준비해 보냈더라면 학교에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수경이를 꼭 보살피고 계시다고 믿지만 만약 죽었다면 고통 없이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흐느꼈다. 서울 선화예고 1학년 우정림양(16)은 사고당일인 29일 상오수업밖에 없어 일찍 돌아와 어머니 김현자씨(48)와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 위해 삼풍백화점에 들렀다 소식이 끊겼다. 치과의사인 아버지 우건희씨(48)는 『지금도 막내딸과 집사람이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있다는 생각이 들지않는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담임인 선화예고 1학년 4반 이재숙 교사(47·여·수학)는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있는 정림이는 공부도 잘했지만 밝고 깨끗한,너무 착한 아이였다』고 울먹였다. 수도여고 1학년 조미경양(17)은 사고 한달전부터 지하1층 패스트푸드점인 웬디스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건물 잔해에 깔렸다. 평소 효심이 지극했던 미경양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아빠의 삐삐를 새것으로 바꿔주려고 일했던 것으로 드러나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 뺑소니차 피해자의 하소연 들으며(박갑천 칼럼)

    어느 자리에서 뺑소니차에 치인 피해자가족의 억울하고 가슴아픈 사연을 듣는다.날벼락 맞아 사람 다치고 애옥한 처지에 치료비 대야하며 하소연할 곳도 없는 딱한 사정.가끔 길거리에서 볼수 있는 『목격자를 찾습니다』의 경우이다.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10명중 6명이 사고현장을 보고도 못본체한다는 것이었는데 더구나 뒤늦게 나타나 주겠는가.그래도 피해자가족은 그런 광고에 한줄기 희망을 거는 듯하다. 뺑소니차는 지난해 1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진다.차량이 늘어남에 따라 그 건수도 불어난다.그런데 문제는 검거율.10건중 6건은 안 잡히는 형편이다.절반도 못 잡으니까 안 잡히면 그만이지 하고 괘다리적게 줄행랑 쳐 버린다.오라가라 귀찮아 신고율도 낮고 보니 분하고 서러운 피해자는 늘어날 밖에 없다.하지만 달아나도 어느땐가 잡히고 만다 할때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한비자」(내저설상)에 사형을 가해도 도둑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해놓은 대목이 있다.­옛날 형(형:초)나라 남쪽 여수라는 강에서 사금이 많이 났다.사람들은 이를 몰래 채취해간다.그러자 나라에서는 금령을 내린다.잡히는 자는 저자거리에서 고책(기둥에 묶어 찔러죽이는 형벌)에 처하여 효수(목을 베어 높은데 매다는것)한다고 했으나 사금 훔치는 사람은 많아져 형을 받고 죽은 시체가 강물을 막을 정도였다. 이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없겠건만 사금 훔치는 자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한비자」는 말한다.『그건 범인이 모두 잡힌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어떤 사람에게 천하를 다주는 대신 너를 죽이겠다고 하면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세상을 가지려들지는 않을 것이다.세상을 다 갖는 것은 큰 이익이지만 그에 응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말에 틀림이 없다.뺑소니차만의 문제는 아니다.강도·절도에 사기·횡령·수뢰…,하다못해 몹쓸 전화질에서부터 각종 선거사범에 이르기까지가 다 그렇다.반드시 법망에 걸려들고 그옭을 받는다고 할 때도 그럴 수 있겠는가.하지만 안 잡힐 수도 있고 잡혀도 빠져나갈 수까지 있는것이 세상사.반사회적인일들은 역시 끊이지 않게 되어있다. 사회현상으로서의 불행은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른다.그걸 생각하면서 모르쇠로 도리머리만 쳐선 안 된다.잡히는 율 높이는데 다같이 참여해야 옳다.당국 또한 더덜뭇해서는 안 되며 고발인에게 불이익이 덜 돌아가게 마음써야 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