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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 전력시비 힘겨루기 공방/여야 국회본회의 하루종일 신경전

    ◎신한국­“질문서로 문제제기 어불성설”/국민회의­“사과없이는 의사진행 못한다” 신한국당 이용삼 의원 등의 김대중 총재 「전력시비」에 대해 여야는 25일 하루종일 「힘겨루기 공방전」을 펼쳤다. ○…국민회의는 즉각 『DJ 죽이기를 위한 비열한 정치음모』라며 총공세를 폈다.당차원에서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정부 여당과 안기부 합작에 의한 메카시 선풍의 신호탄』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정동영 대변인은 『신한국당 정권은 날치기와 한보게이트로 인해 침몰하는 난파선 지경에 이르자 야당과 동반침몰하기 위해 제2의 용공조작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허 두의원의 발언에 대해 해명과 사과,재발방지 약속없이는 정상적인 의사일정을 진행할수 없다』고 못박았다.김총재 측근인 김옥두·설훈 의원은 『김대통령 자신이 죽게 생기니까 김총재에 대한 근거없는 사실을 날조,동반자살하겠다는 비열한 물귀신 작전』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자민련은 공식논평을 자제하면서 양당싸움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자민련은 다만 신한국당 의원들의 문제제기 방식이 비신사적이라고 비난하는 한편 신한국당이 「색깔론」과 함께 제기한 김대중 총재의 정계은퇴를 주장한 대목만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정계은퇴 주장은 김종필 총재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공세라는 계산이다. 이정무 총무는 『제1야당 총재에 대해 무례하게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재의 정치구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이라며 『만일 야당측에서 여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더러 물러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총무는 그러나 『그래도 국회는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기수습에 무게들 두는 눈치였다. ○…신한국당 지도부는 두차례에 걸쳐 긴급 고위당직자회의를 갖고 국민회의측의 원고 수정과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한 참석자는 『대정부질문을 하기도 전에 원고만 갖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되며 야당도 각종 설을 갖고 발언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김철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발언전 이의원의 대정부질문 내용에 대한 국민회의의 반의회적 작태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라며 『국민회의가 이의원의 김총재 관계발언을 들은뒤 반론을 제기할 것이 있으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했다.
  • 김 대통령 담화­담화문 전문

    ◎“개혁 일시적 고통있어도 꼭 성공시켜야”/“한보비리 자식 연루 소문은 아비인 제 불찰/관련자 지위 고하 안가리고 사법처리 단죄”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오늘은 제가 대통령직을 맡은지 만 4년이되는 날입니다.이 뜻깊은 날,저는 참으로 괴롭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4년전 저는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 신한국 창조의 꿈을 안고 「변화와 개혁」에 나서자고 호소했습니다.급변하는 세계속에 우리가 번영해 나가려면 우리의 제도와 의식과 행동양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수많은 어려운 고비를 넘으며 줄기차게 변화와 개혁을 추구해왔습니다. 저는 그 중요한 고비마다 무엇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올바른 것인가를 고뇌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그것은 참으로 고독한 과정이었습니다.어렵고도 험난한 길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것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에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보람으로 삼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살아온 삶은 국민 여러분을 떠나서는 결코 이루어질수 없었습니다.30여년간의 기나긴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서 저에게 희망을 준 것은 바로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저에게 용기를 준 것도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여러분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마침내 문민정부가 출범했을때 저는 마음속에 굳게 다짐했습니다.국민 여러분의 은혜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저의 신명을 다바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골깊은 부패·정경유착 통탄 여러분과 더불어 한국병을 고쳐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물려주자는 것 그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오로지 그 한뜻으로 불철주야 달려온 것이 저의 지난 4년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거둔 여러가지 개혁의 성과는 전적으로 국민 여러분의 인내와 성원 덕분이었습니다. 한편 개혁의 과정에서 미흡한 점과 시행착오로 국민 여러분에게 불편과 고통을 가져다 준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은 임기동안 개혁의 미비점을 보완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그러나 개혁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피할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일시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성공시켜야합니다. 국민 여러분.지금 나라 전체가 「한보사건」으로 인한 충격에 휩싸여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오직 절제와 금욕으로 한 길만을 달려온 저로서는 처절하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더욱이 이번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위로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여야의 중진 정치인 뿐아니라 저의 가까이에서 일했던 사람들까지도 부정부패에 연루되었으니 국민 여러분께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경제피해·국민부담 최소화 신한국을 만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농락당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떠하든 이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결과입니다.대통령인 저의 책임입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의 그 어떤 질책과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대통령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하여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그동안 문민정부는 변화와 개혁의 최우선 과제를 부정부패의 척결에 두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저 자신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잘못된 정치관행과 단절하고자 추상같이 처신해 왔습니다. 그것은 과거 모든 부패의 뿌리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핵심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대통령이자 여당 총재부터가 단호한 결의로 솔선한다면 모든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도 따라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이와 함께 부패의 근원적인 예방을 위해 우리는 많은 법과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공직자 재산공개,금융실명제,정치개혁 입법 등을 과감히 단행했습니다.그러나 이번 「한보사건」은 아직도 부패한 정치와 정경유착의 관행이 우리사회 일각에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입니다.저를 더욱 괴롭고 민망하게 하는 것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제 자식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진실여부에 앞서 그러한 소문이 돌고 있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크게 부끄러운 일입니다.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제 자신의 불찰입니다. ○부패척결… 제도개선 강화 만일 제 자식이 이번 일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할 것입니다.또한 제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단하는 등 근신토록 하고 제 가까이에 두지 않음으로써 다시는 국민에게 근심을 끼쳐드리는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개탄스럽다고 하더라도 낙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지금 이 시각에도 숱한 도전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우리는 오늘의 이 비상시국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전환해야 합니다.이를 위해 우선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 수사발표가 있었습니다만,관련자들은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라도 사법적 책임을 철저하게 가려서 단죄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책임정치와 책임행정의 구현을 위해 정책차원에서 「한보사건」의 원인과 경위를 밝히고 관계자들의 정치적·행정적 책임도 물을 것입니다.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국민적 부담을 최소화하고 경제의 활력을 하루빨리 되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저는 심기일전하여 다시 취임초의 각오와 자세로 돌아가고자 합니다.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앞으로 1년간 다음 네가지 과제의 해결에 진력하겠습니다. 첫째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노력을 가일층 강화할 것입니다.특히 비리와 부정의 소지 자체를 없애도록 제도를 개혁하고 보완하는 데 치중하겠습니다.각계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여 필요하다면 정치자금법과 선거법도 다시 고치겠습니다.금융비리를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금융개혁도 가속화 하겠습니다.그리하여 이번 사건이 정경유착과 금권정치를 근절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인사개혁도 단행하겠습니다.깨끗하고 능력있는 인재들을 광범위하게 구하여 국정의 주요 책임을 맡기겠습니다. 둘째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경주하겠습니다.지금 우리의 경제상황은 대단히 어렵습니다.이대로 방치하면 우리나라가 자칫 삼류국가로 전락할 위험성마저 있을 정도입니다.저는 우리 국민과 기업,근로자들이 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고통을 받고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비록 일시적인 고통이 따르더라도 우리의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겠습니다. ○산업활력… 경제살리기 총력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노사간에 대화합을 이루어 산업현장에 활기를 회복함으로써 우리 경제를 살리는 일입니다.저는 지난해 말 이루어진 노동관계법 개정의 처리과정에서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이번 임시국회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고 노와 사의 의견도 균형있게 반영한 훌륭한 법률이 여야 합의로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높이고 경쟁력을 회복하는 일 또한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뿐만 아니라 젊고 패기있는 세대들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이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들에 대한 지원방안과 근로자들의 고용안정 대책도 차질없이 신속하게 시행되도록할 것입니다.그리고 「한보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자원이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되도록 관련제도를 선진화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세째 우리의 안보태세를 보다 강화하겠습니다.북한의 앞날은 그 핵심인사의 망명사건이 말해주듯 불안정하기 그지 없습니다.이에따라 우리의 안보상황 또한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한반도의 평화가 유린되는 사태는 우리 민족 전체에게 회복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것입니다.우리는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라도 우리의 안보를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정부는 이번 기회에 안보태세를 총점검하고 민·관·군 총력안보 체제를 재정비해 나갈 것입니다. ○어떤 희생 치러도 안보확립 안보에 대한 위협은 나라안에도 있습니다.이제 어떤 명분으로도 국가안보를 해치는 언행은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또한 국법질서를 확립하여 우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아 나가야 하겠습니다.저는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맡은바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네째 금년에 실시되는 차기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고 엄정하게 관리하겠습니다. 특히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한 경선과정이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당원들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정당제도의 발전과 당내 민주주의의 진전에 획기적 계기가되도록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평생을 명예로운 민주화 투쟁에 바쳤고 이제 문민시대의 대통령으로서 제게 무슨 사사로운 욕심이 있겠습니까.저에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오직 시대의 소명을 어김없이 실천하는 대통령으로서 직분에 충실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저는 오늘 임기 1년의 대통령직에 새로 취임하는 심경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저의 부족함에 대한 비판과 충언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앞으로 국민 여러분 곁으로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온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이나라가 난파선이 되게해서는 안됩니다.세계가 찬탄하는 민주와 번영의 값진 성취를 물거품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민족은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세계일류국가 건설을 위한 발걸음을 한시도 멈출수 없습니다. 아픔과 분노,허탈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섭시다. 우리 마음을 모아 새로이 출발합시다.모두가 힘을 합쳐 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 줍시다.그리하여 오늘의 고난을 내일의 영광으로 바꾸어 냅시다. 국민 여러분,대단히 감사합니다.
  • 당 결속·DJP 공조 노려 강온 배합/JP회견 배경·각당 반응

    ◎신한국 “난파선 선장같은 비장감 뿐”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9일 기자회견에서 현정권의 실정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도 영수회담을 계속 촉구했다.경제를 살리는 확실한 길은 정권교체 뿐이라고 현정권에 극단적 불신을 보였지만 여야간 대화의 창구가 될 수 있는 「경제비상대책회의」를 제의하기도 했다.한마디로 강온양면작전을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강하게 나온 것은 자민련 내부의 탈당 후유증을 가라앉히면서 당의 결속과 야권공조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다.영수회담 요구는 노동계 파업의 책임이 대화를 거부하는 정부·여당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자민련으로선 파업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고 그럴바엔 영수회담을 촉구,나름대로의 해결찾기에 부심한다는 인상을 심기 위한 것이다. 김총재는 그러면서 이번 대선을 「3김」의 마직막 승부로 규정,집권의지를 강하게 보였다.야권후보단일화는 「명제」라고 규정하면서 「DJP」에는 거부감을 보였다.자꾸 위축되는 자민련과 김총재의 입지를 높이고 국민회의와의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신한국당의 반응은 냉랭했다.김철 대변인은 『난파선의 선장 같은 비장감은 보이나 고식적인 시국진단에 처방적인 대안은 찾아볼 수 없다』며 『고작 제시한 것이 장기적으로 내각제고,단기적으로 영수회담이냐』고 비난했다.또 『국민회의와의 공조라는 굴레를 뒤집어 씀으로써 스스로는 물론 정당정치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는 간절한 마음이 묻어나 있으며 정권교체만이 나라를 살릴수 있다는 김종필 총재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며 『대통령의 독선에 따금히 질책한 것은 구구절절이 옳고 현 시국을 풀기 위해 영수회담을 열자는 것에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 리어 그이후·템페스트/영 「쉐어드」극단·연극집단「위토스」서 공연

    ◎12월에 만나는 ‘셰익스피어’/템페스트­사랑으로 바뀐 추방된 영주의 복수심/리어 그이후­현대사회 배경 재해석한 「리어왕 불행」 연극인들의 영원한 주제인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연극화한 작품 2편이 잇따라 무대에 올라 12월 연극계에 무게를 더해준다. 두편의 연극은 예술의 전당 초청으로 오는 12일부터 내한공연을 갖게된 영국 셰어드 익스피리언스 극단(Shared Experience Theatre)의 「템페스트」와 3일 시작된 연극집단 뮈토스의 「리어 그 이후」다.「템페스트」가 셰익스피어 본고장인 영국연극의 진수를 그대로 볼 수 있는 정통극이라면 「리어…」는 「리어왕」을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새롭게 해석한 극으로 비교해 관람할 만하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희극에 속하는 이 작품은 국내서는 자주 공연되지 않았지만 치밀한 지문과 시적 문제 등으로 셰익스피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추방당한 영주 프로스페로는 거대한 폭풍을 일으켜 자신을 내쫓은 난파선의 선원들을 잡아가둔다.그러나 딸 미랜더가 원수의 아들 퍼디낸드를 만나 사랑하게 되자 사랑의 힘이 복수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지난 75년 창단된 셰어드 익스피리언스 극단은 영국정부가 영국을 대표하는 극단으로 선정할만큼 대표적인 집단으로 정부의 후원을 받아 세계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낸시 매클러 연출.21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580­1234. 「리어…」는 프롤로그,「케첩과 마요의 사랑연출」,에필로그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프롤로그는 왕조의 몰락 이후 리어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한다.이 세계는 여전히 리어의 불행을 답습하고 있다.「케첩과…」는 현대 공간.주유소를 전전하는 연인인 케첩과 마요가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각자의 왜곡된 욕망을 채우는데만 급급한 상황을 기름을 채우는 주유소에 비유했다.에필로그는 초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한 리어가 등장,문명의 폐허가 된 시대를 조소하면서 사라지는 부분이다.리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해도 그의 광증은 결코 치유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연극은 진행된다.오경숙·박장렬 공동연출.8일까지 서울 대학로 오늘 소극장에서 공연.763­8538.
  • 이색피서/색다른 곳서 색다르게 「개성피서」 즐긴다(바캉스 특집)

    본 인파에 묻혀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고 돌아오면 쌓이는 것은 오히려 피로와 스트레스 뿐.해마다 이런 고통을 겪은 사람이라면 올해는 색다른 곳에서 색다른 방식의 피서를 한번 즐겨보는 게 어떻까. ▷자연휴양림◁ 맑고 호젓한 숲속에서 무더위를 식히고 삼림욕 효과도 볼 수있는 편안한 휴양지가 지연휴양림이다.전국에 55개소가 있다.울창한 숲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심신을 안정시키는 삼림욕은 여름철에 특히 좋다.일반인이 숙박할 수 있는 산막·야영장·주차장·캠프파이어장·취사장·화장실·체력단련장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어 이용에도 편리하다.특히 경기도 양평군 중미산 휴양림은 깊은 산속에 있어 숲의 청정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베이스캠프 여행◁ 산으로 갈까,바다로 갈까….가족끼리 의견이 엇갈려 망설이게 되거나 한 곳에 싫증을 내는 성격이라면 한번 시도해 볼만한 여행이 베이스캠프여행.말 그대로 한곳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산·바다·계곡·강을 두루 섭렵하는 일거다득의 버라이어티 바캉스다.3박4일 일정이라면 하루는 산,하루는 바다,마지막 날은 계곡을 택해 인근의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여행코스에 도전하는 방식이다.몇 곳을 소개한다. ▲산정호수 부근=제1일 산정호수·삼부연폭포.제2일 매월대 선암폭포·백운계곡.제3일 고석정·순담계곡·직탕폭포·산정호수 주변은 이름난 유원지답게 숙박시설이 잘 돼 있다.호텔이나 장급 여관을 베이스캠프로 삼아도 좋고 민박집도 다수 포진하고 있어 숙박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충무(통영)인근=제1일 해저터널·미륵도·달아공원.제2일 거제 해금강·한산도.제3일 소매물도·비진도해수욕장.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한려해상국립공원과 인근에 다양한 명소들이 즐비해 베이스캠프여행에 적합하다.해금강 최고의 경치라는 십자동굴을 비롯,사자바위·부처바위·촛대바위 등 기암괴석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미륵도에는 또 일주도로가 잘 뚫려있어 드라이브도 그만이다.한려수도의 절경을 만끽할 수있는 매력이 있다. ▲단양팔경=제1일 단양팔경(도담삼봉·사인암).제2일 소백산(다리안 폭포·희방사계곡).제3일월악산(송계계곡·용하구곡·덕주계곡).신단양과 구단양 읍내를 비롯,단양팔경 곳곳에 숙박시설이 많아 숙식이 비교적 편리하다.내륙의 비경이라는 단양팔경은 팔경중에서도 백미라는 도담삼봉을 비롯해 볼거리가 많다. ▷서울근교 놀이공원◁ 에버랜드가 최근 개장한 「캐리비안 베이」도 자녀들과 함께 가볼만 한 곳.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테마파크로 3만6천평에 동시에 1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규모이다. 17세기 중남미 스페인풍의 카리브해를 주제로 공간 전체를 스페인풍의 석조건물과 야자수·아열대식물·난파선 등의 조형물로 꾸며 카리브해 항구의 이색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꾸몄다. 실외 워터파크 시설로는 워터 봅슬레이와 워터코스터,튜브슬라이드를 즐길 수있는 「워터 슬라이드」와 서핑과 보디보드를 이용한 파도타기를 할 수있는 「파도 풀」이 있다.「유수 풀」에서는 강물이 계곡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느낌으로 휴식을 만끽할 수있다. ◎떠나기 전에/고장나면 낭패/자동차 점검 이렇게… 모처럼 가족과 함께 즐기는 휴가에서 자동차가 속을 썩이면 그것만큼 낭패스럽고 김새는 일도 없다. 유비무환이라고나 할까.점검해볼 곳은 에어컨을 비롯,5∼6군데.짧은 시간에 쾌적한 드라이브로 바캉스분위기를 더욱 시원하게 돋워보자. ▲에어컨=냉매가스를 체크한다.시동을 걸어놓고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놓은 상태에서 라디에이터 근처 수직으로 붙어 있는 원통속에 작은 기포가 많으면 가스부족.벨트가 늘어져 냉각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냉각수=냉각수가 적으면 라디에이터의 열방출이 어려워 오버히트되거나 호스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냉각수는 탱크에 표시된 최고기준선에 맞춘다.철분이 많은 지하수는 냉각수로는 곤란하다.냉각수는 엔진이 식은 다음에 넣고 넣은 뒤에는 오일을 점검한다. ▲와이퍼=퓨즈의 여분을 꼭 챙긴다.운전석 핸들 아래쪽에 있는 퓨즈박스의 퓨즈가 끊어져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전기배선이 잘 되어 있는지 손으로 확인하면서 눌러주는 것도 좋다.블레이드가 낡았으면 교환해준다.각부분의 나사를 죄어주면 깨끗하게 닦인다. ▲타이어=표준공기압을유지해야 1백% 성능이 난다.공기압 체크는 타이어가 식은 상태에서.카센터에서 무료로 해준다.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3.0psi를 더 넣는다.타이어가 물결처럼 떠는 스탠딩웨이브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트레드 옆면에 △표시가 있다.이 표시가 가리키는 트레드홈을 보면 마모한계표시인 1.6㎜ 턱이 있는데 이 이상 닳으면 위험하다. ▲브레이크=페달을 끝까지 밟아 밑판과의 거리 7∼9㎝ 정도면 정상.엔진이 정지된 상태에서 페달을 밟고 시동을 걸었을 때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도 오케이. 브레이크 오일이 새는 데도 없는데 빨리 없어졌다면 패드가 마모된 것이다.페달을 밟았을 때 푹 들어가는 느낌이 들거나 핸드브레이크 레버가 많이 올라가도 마모를 의심해야 한다.〈김병헌 기자〉
  • 여당 중진들 조심스런 연말행보/「세불리기」오해 우려…「말」도자제

    신한국당 중진들의 연말행보가 무척 조심스럽다.「세불리기」로 오해될 만한 움직임을 일체 자제하고 있다.하고싶은 말들도 많은 듯 하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다.「청산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뜻이 엿보인다. 민정계의 김윤환대표위원·이한동국회부의장이나 민주계의 최형우·서석재·김덕용의원 등 계파를 대표하는 중진들은 누구보다 연말을 바쁘게 보내야 할 인사들이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과정은 물론 총선 이후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하지만 청산정국의 한파속에서 서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잔뜩 움츠리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대부분 새해 인사를 받지 않을 생각이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상대쪽 움직임과 보조를 맞춘다는 계산인 만큼 현재로는 「집문을 열」가능성이 거의 없다.올 신년 시끌벅적하게 「손님」을 받으면서 상대쪽 손님의 「양과 질」을 저울질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대표는 26일 오랜만에 기자들과 만났다.지난 번 「16일 개각설」을 언급했다가 미묘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자 접촉을 피해온 지열흘 남짓만이다. 김대표는 이날 민감한 사안에도 즉답을 피했다.정치권 사정설에는 『들어본 적 없다』,정국전망에는 『연말을 넘겨 한파가 좀 오래갈 것 같다』,이회창·이홍구 전국무총리나 박찬종전의원 등 영입설에는 『잘되겠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정도에 그쳤다.김대표는 새해 1일에는 중앙당 단배식에만 참석하고 곧 바로 제주도로 갈 생각이다. 민주계의 맏형 격인 최의원은 지난 22일부터 부산에 머무르며 중앙과 거리를 두고 있다. 22일 방송기자클럽인 여의도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여권 이탈세력들을 「난파선의 쥐」로 비유한 데 대해 민정계쪽의 시선이 곱지 않은 뒤부터다.아예 새해까지 머물 생각도 하고 있다. 이국회부의장 역시 마찬가지다.1주일 이상 감기몸살에 시달리며 지역구에만 매달리고 있다.26일에 이어 27일에도 포천에 내려가는 등 되도록 중앙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서의원은 「전직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설」파문 이후 조심스런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부산 사하갑 지구당을 맡은뒤부터 지역구에도 신경을 쓰면서외부 노출을 삼가고 있다.김의원은 서울 서초을 지역구에 매달리면서 특유의 물밑 행보에 열중이다.
  • 성악가 김자경(인물탐구:86)

    ◎오페라와 결혼한 “영원한 프리마 돈나”/“독특한 릴릭 소프라노” 50년 미 카네기홀 진출/68년 자비로 「오페라단」 창단… 정기공연 49차례/지난 10월 국내 첫 야외오페라 무대… 최근 국악에 입문 「앵두나무 가지에 앉아 재잘거리던 파랑새가 방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김자경을 낳았다」는 그 어머니는 「새소리가 어찌나 맑고 투명하던지 나의 딸 자경은 노래하는 사람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딸은 지금도 독창회 무대에 서서 「불굴의 오뚝이」「작은 거인」 「분투의 또순」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의지의 원로다.얼핏듣기엔 드세고 거센 여장부의 이미지지만 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해맑은 미소와 화사한 「이팔청춘」의 마음씨에서 우리의 「영원한 프리마 돈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지난해만해도 희수기념 독창회를 비롯,올해도 불우이웃들을 돕는 호스피스 건립기금을 위한 독창회를 열었고 연말에도 자선음악회 스케줄이 잡혀있다.벌써 19번째다.지난 75년당시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손수운전을 하고 돋보기 없이 글씨를 읽고 쓸수 있는 눈과 귀를 주신 신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그는 맹인들의 개안수술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안수술 사람은 50여명이 넘는다.「두손을 모으고 마치 기도하듯,신을 찬미하듯 혼신을 다하는 그의 노래는 진심으로 그들이 눈뜨게 되기를 비는 순수함과 열정이 담겨있다」는 게 작곡가 김동진씨의 말이다. ○맹인 50명에 개안수술 만년의 그의 독창회중 가장 감명깊은 것은 4년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결혼 50주년 기념」독창회라고 할 수 있다.수많은 자선음악회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노래한 이 무대는 그의 부군이자 서양화 일세대였던 심형구화백을 추모하는 자리로 「그리움」「못잊어」「그대있음에」「청산에 살리라」등 「부군에 대한 사모」의 정이 절절히 넘쳐 청중에게 찡한 감동을 안겨주었다.「나의 일생을 맡긴지 21년,2남1녀와 함께 나의 수많은 연주를 자상하게 보살펴주시더니 청천벽력과도 같이 그는 예고도 없이 떠나가버렸고 29년이란세월을 혼자서 살면서 그 파란만장한 사연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그날 음악회 팸플릿에 쓴 글이다.그러나 『68년 성은 「오」씨이고 이름은 「페라」인 오페라와 결혼했고 이제는 김자경이가 오페라인지 오페라가 김자경인지 분별할 수 없이 일체가 되었다』고 일가를 이룬 예술가다운 의연함을 보이기도 했다. 김자경은 경기도 개성에서 약방을 경영하던 김영환씨와 백열소여사의 외동딸로 태어났다.3살되던해 서울에서 감리교 신학교에 다니게 된 부친을 따라 이사,이화유치원과 이화보통학교에 다니다가 다시 원산에서 루씨여학교를 나왔다.그는 노래 뿐만 아니라 운동에서 미술 수학 물리 화학등 못하는게 없었고 언제나 전교수석,어릴 때부터 오페라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아들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도쿄여의전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그러나 도쿄로 떠나기 전날밤 그는 어머니를 붙들고 「어머니가 동생하나만 더 낳았어도 나는 성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한탄한 것이 부모의 마음을 움직여 부친은 당장 「성악을할것」을 권해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성악공부는 이화여전을 졸업하던해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신인음악회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고 도미유학길에 오르기전까지 이화여고에 임시음악교사로 취직한 것이 심형구씨를 만난 계기가 된다.도쿄미술학교출신의 「멋쟁이화가」 심형구와 「만인의 애인」이자 「한국 최고의 소프라노」 김자경의 러브로맨스는 숱한 화제를 장안에 뿌리면서 41년 12월 드디어 결혼,「가정과 예술을 병행시키는 멋진 가정을 이루자」는 다짐과 함께 부군의 주선으로 김자경은 31세 되던해 오랜 숙원이던 줄리어드음악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그러나 의욕적인 출발과는 달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무대에서 세기적인 소프라노 릴리폰즈의 노래를 듣고는 자신의 음악적 자질과 소양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그는 한동안 심한 좌절감에 빠지고 말았다.단한번도 의심해 본적 없던 자신의 기량이 거대한 오페라가수 앞에서 무색해진 순간이었다.「메트로폴리탄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를 자책하며 밤새도록 흐느끼고 있을 때 어디선가 비몽사몽간에 「너는 왜 세계적인 성악가만을 고집하는가.열심히 노력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그들을 세계무대에 세우라」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때마침 미국에 다니러 왔던 김활란박사도 「나는 릴리폰즈보다 네 목소리가 백배 더좋다」고 격려해주었다. ○31세때 줄리어드 입학 『그래,나두 해내고야 말겠다』 그는 굳게 결심하고 그 길로 지도교수를 찾아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무대에 서겠으며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교수는 놀라서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하려면 먼저 학교측이 주최하는 오디션에서 통과해야 한다고 상기시켰다.그는 7명의 심사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벨리니의 「노르마」중 「카스타티바」를 열정적으로 불렀고 「독특한 음질의 아름다운 릴릭 소프라노」로 인정되어 1950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메트로폴리탄 가수들과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카르멘」에 출연,남부 60개 도시에서 80회연주를 비롯,한번 투어에 나서면 3개월이상 걸리는 전미순회공연에도 빠지지 않게되었다.그러나 좋은 일에는 흔히 마장이 생긴다고 한 것처럼 그가 「종달새처럼 푸른 창공을 마음껏 비상하며 노래부르고 있을 때」 그해 62년 여름,방학을 맞아 속초로 스케치여행을 떠났던 부군의 익사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전신마비 증세를 일으키는 등 긴 슬픔에서 헤어나기까지 실로 오랜시간이 걸렸다.그러다가 65년 봄,호화여객선 빅토리아호를 타고 세계일주 여행길에 오르면서 48세의 나이로 「퀸 오브 빅토리아」에 선발되자 당선 사례로 아르디티의 「일바치오」와 「오솔레미오」를 부르는 동안 그의 내부 깊숙이 움츠려있던 프리마 돈나의 기백과 보석 같은 기량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불굴의 투지” 여장부 유럽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는 계획했던 대로 김자경 오페라단을 창단했다.그리고 그해 5월 창단기념공연으로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를 준비하면서 티켓을 들고 각기업체와 동창 후배들을 찾아다녔다.그러나 그들의 호의와 적극적인 협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제작비 때문에 더이상 버틸 수 없이 창단 3년만에 문을 닫는 위기를 맞는다. 그는 자살을 생각했으나 「죽을 결심으로 뛰어들면 안될 일이없다」고 다시한번 자신을 일깨웠다.그때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진 고초와 수난과 시련」을 거치면서 후원회와 고정관객 확보로 그의 오페단은 서서히 기반을 잡아나갔다.오페라단창단 만27년에 정기공연 49회,4년전부터 이사장직에 머물면서 지난 10월에는 1만2천명을 수용하는 잠실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레하르의 3막 오페라 「메리 위도우(즐거운 과부)」로 국내 처음 야외오페라를 해냈고 내년도 제50회 「카르멘」 캐스팅을 위해 최근에는 뉴욕에 다녀왔다. 호는 심설,「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이루어진다(정신일도 김석가투)」는 그의 신조는 여전히 손수 차를 몰고 지난봄에는 한양대대학원 국악과에 입학,새로 우리「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줄기찬 한 흐름속에서 그는 불굴의 의지로 우뚝선채 음악성취 뿐 아니라 그늘지고 병든 이들에게 「이세상의 빛」을 실천하는 「천사」이며 그들을 위한 그의 목소리는 시들줄 모르는 「영원한프리마 돈나」로서 우리시대에 찬연한 빛을 발한다. ◇연보 ▲1917년 경기도 개성 출생 ▲40년 이화여전 졸업 ▲41년 제1회 독창회 ▲48∼50년 미 줄리어드음악학교 성악전공,「라 트라비아타」주역,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51∼58년 미남부 60개 도시순회공연,귀국독창회 ▲58∼83년 이대성악과 교수 ▲60년 오페라 「오델로」주역 ▲62년 국립오페라단 부단장 ▲65년 유럽지역 성악교육시찰 ▲68년 김자경오페라단창단,단장.베르디 「춘희」이후 49회 공연 ▲75년 제1회 「김자경 가곡의 밤」,국제음악인대회(IMC) 참가 ▲79년 김자경 오페라 관현악단창단 ▲81년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 ▲82년 한·미수교1백주년 기념독창회(워싱턴 케네디센터) ▲86년 김자경 오페라단 소극장 청소년부 창설기념 「노처녀와 도둑」 공연 ▲87년 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88년 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91년 결혼 50주년기념 독창회 ▲93년 홍난파선생 추모독창회 ▲94년 희수 독창회 ▲95년 호스피스 건립기금마련 독창회(19회),한양대대학원 재학중,김자경 오페라단 이사장 대한민국 예술원상·대한민국 문화훈장은관(74년)·중앙일보문화대상(76년)·국민훈장 석류장(83년)·세종문상(87년)·프랑스 문화예술훈장(92년)·문화공로패(93년)
  • “안녕” 케이프타운(작가 김주영 아프리카기행:14·끝)

    ◎“대자연은 관광자원” 원주민 인식 높아져/금렵지에 살며 생태계·환경보호 한몫/관광객 여행가이드맡아 수입도 올려/공원마다 백인물결… 흑인 아픔 덜날은 언제… 유럽인들이 케이프타운에 정착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이 겪었던 우연한 해난사고의 결과였다.그것은 1647년의 일로 거슬로 올라간다.그때 동양과의 무역이 한창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동양에서 사들인 비단과 일용품을 잔뜩 실은 네덜란드의 상선 한 척이 대서양을 횡단하다가 풍랑을 만나 난파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악전고투로 풍랑을 헤치고 아프리카 남부의 한 반도에 지친 몸으로 상륙하게 되었다.배를 잃은 그들은 그 해변에 캠프를 차리고 견디다가 이듬해에 지나갈 무역선단의 구조를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그들은 자신들이 캠프를 친 그 땅도 두고온 고향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여러가지 식물과 채소를 기를수 있었고 정기적으로 캠프촌 이웃을 지나가는 유목민들에게서 거의 공짜라해도 무방할 헐값으로 소나 말을 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듬해 그들이 예견하고 있었던 대로 해역을 지나가던 상선단에 의해 구조되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머물렀던 아프리카 땅에 대한 온갖 정보를 정부에 보고하였다.네덜란드의 동양주식회사는 얀반 피이크 선장을 보내어 그들이 갖고 온 정보에 대한 진실성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풍랑만나 아주와 인연 1652년,케이프반도에 도착한 얀반 피이크는 난파선의 선원들이 보고한 정보에 거젓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뒤이어 동양주식회사에서 파견되어 온 사람들은 케이프반도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게 되었다.그들이 기지를 건설하면서 맨 먼저 착수한 일은 반도 앞의 해역을 지나가는 상선들에게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채소를 재배하는 일이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동양주식회사에서 일궈놓은 채소밭의 흔적은 아직도 케이프타운 교외에 남아있다.많은 수효는 아니지만 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야생화된 배나무들에 열매가 맺고 있다. 그로써 오랜시간 동안의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케이프반도에서 닻을 내리고 정박해서 신선한채소와 과일 그리고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반도에 생겨난 도시는 바다의 선술집(Tavern of the Sea)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1665년부터 1679년까지 15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벽돌을 쌓아 지은 희망성(Castle of Good Hope)은 아직도 희망봉 뒤편에 건재한다. 케이프타운에는 에드워드 시대와 빅토리아 시대의 건출물들도 잘 보존되어 있고 작품성이 뛰어난 전형적인 네덜란드 건축물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바다의 선술집” 별명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가장 큰 관광자원은 물론 아프리카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막대한 야생의 동식물들이다.이스턴 트랜스바알과 나탈지역은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관광지이다.그러나 많은 야생동물들이 사냥꾼과 농부둘,유목부족들에게 살육되거나 마땅한 서식지를 잃고 지금은 보호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야생동물 보호지역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곳은 크루거 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으로 아프리카에선 가장 큰 야생동물원이다.남아공화국의 야생자원에 대한 관광화 작업은 매우 계획적이고 세심해서 우리가 보았던 물개섬 하나에도 하루종일 관광객을 실은 배가 작은 섬을 들락거렸다.물개들에 먹이를 제공해서 그 섬을 떠나지 않고 머물도록 한 것이다.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산업화와 문명화의 무대 뒤에 생태계의 파괴가 자행되어 왔다.그러나 오늘날에는 무엇을 우선순위로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 생태계와 환경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와함께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해 나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야생의 자연을 보호함으로써 그것을 관광자원화 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아프리카의 원주민들도 이제는 야생을 보호하고 관광자원화 하려는 추세에 편승해서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가를 눈뜨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선술집에 흑인만 북쩍 나탈주의 금렵지인 핀다 금렵지(Phinda Reserve)가 그 좋은 예로써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은 주거지를 백인들에게 내주고 옮겨가는 대신 그 지역에 그대로 눌러살면서 야생환경을 보호하는데 협조하고 관광수입의 일부를 나누어 받는다.관광객들은 관광객들대로 손쉽게 여행가이드를 구할 수 있고 또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2만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족들 중에서 혹은 공원길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중에 흑인들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어 이 나라의 아픔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리키고 있었다.케이프타운에 살고 있는 흑인들은 낮에는 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회사나 혹은 해변의 대저택에서 일하다가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교외에 있는 자신들의 거주지로 돌아가게 된다.그러나 그 주거지의 형편은 낮에 일하던 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케이프타운의 저녁거리를 구경하고 선술집이 있으면 한번 들어가 오랜 여독을 풀어볼까 하고 밤거리를 나섰다.대로를 따라 보석가게를 여러번 지나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선술집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는 문득 한가로운 저녁거리를 구경하겠다고 나선 것이 만용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그들 선술집은 흑인들의 거리나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낯선 동양인들을 보자 야유를 하거나 혹은 접근해서 무엇을 얻어내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우리는 당초의 소박했던 계획을 깨끗이 단념하고 희미한 불빛들이 명멸하는 그 선술집 골목을 벗어나야 했다.그러한 괴리는 언제 메워질 수 있을까.아프리카를 떠나면서 그러한 질문이 뇌리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 “강제해산 임박”…러 의회 초긴장/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 긴급리포트

    ◎정부군 의사당 포위… 수비대와 대치/옐친 승리선언,보수파 속속 이탈/통신 두절속 2천군중 밤샘 경계 모스크바시민들이 일명 「벨르이 돔(백악관)」으로 부르는 러시아의사당.2층의 대회의장밖에서 수시로 기자들을 만나는 하스불라토프의장의 얼굴은 수면부족과 긴장탓인지 백지장처럼 희고 입술은 부르터 있다.평소의 차고 냉소적인 그의 표정에서 냉소마저 사라졌다.특유의 독설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 같은 시간,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독립국가연합(CIS)텔레비전 방송과의 짧막한 회견에서 『의회의 저항은 최후의 순간에 도달해있다』고 밝힘으로써 의회와의 대결에서 승리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백악관 13층에 위치한 「제2의 국방장관」 블라디슬라프 아찰로프의 집무실.방문에는 「러시아연방 국방장관」이라는 푯말이 당당히 내걸려 있다.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얼룩무늬 복장의 장정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그의 지시를 받고 있다.그러나 명령의 대부분은 의사당 수비에 관한 것들이다.그는 지금 예하부대로 명령을 하달할 통신수단이 없다.외부로통하는 전화선은 모두 두절됐기 때문이다. 군인인 탓인지 그는 아직 흐트러진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전화는 불통이지만 전령을 통해 통신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북코카서스 관구가 우리에게 확고한 충성을 다짐하고 있다』고 말했다.23일(이하 현지시간) 낮부터는 온수·전력공급이 끊어졌다. 한 대의원의 표현대로 『난파선에서 빠져나가는 쥐들처럼』 대의원들 사이에 이탈자들이 속출하고 있다.제일 먼저 부의장 리야보프가 의사당을 떠났다.그는 그 길로 옐친정부의 선관위원장직을 맡았다.암바르추모프 외무위원장,스테파신 국방위원장,포치노크 예결위원장이 잇따라 「난파선」을 떠났다.옐친정부는 정부요직 3백개를 내걸고 이들을 꾀어내고 있다. 의사당밖의 분위기는 이와 정반대이다.비상조치가 발표된 21일부터 의사당앞 광장에 모여든 의회지지 군중들은 꾸준히 2천명선을 유지하고 있다.25일새벽 강제해산작전이 강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광장출입구쪽의 바리케이드는 더 보강됐다.바리케이드라고 해야 공사장에서 가져온 고철덩이,벽돌조각,폐타이어 등이지만 냉기를 이기기 위해 곳곳에 불을 피워놓고 밤을 새우는 이들의 결의는 출전전야를 방불케 한다. 의사당 발코니에 설치된 대형 연단에 끊임없이 연사들이 나와 독전을 하고 광장은 청중들이 흔드는 붉은 기의 물결을 이룬다.그들이 따라외치는 『소비예츠키 사유즈(소련)』『헌법수호』소리가 광장을 울린다. 「블랙 마피아두목 옐친을 처단하자」「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등의 깃발이 곳곳에 내걸려 있다.광장 한곳에 세워놓은 옐친대통령의 대형 초상화는 너무 많은 가래침이 뱉어져 있어 쳐다보기 역겨울 정도이다.24일 하오 10시.광장한쪽에서는 의회경비 자원병들에 대한 점호가 진행됐다.20대의 젊은이에서부터 50대의 중년에 이르는 수십명이 일렬로 서서 청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의사당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24일 하오 6시쯤 옐친측이 보낸 내무부산하 제르진스키여단,특수군 오몬병력 수백명이 의사당외곽을 에워싸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이들이 타고온13대의 트럭이 의사당으로 통하는 차도 대부분을 차단했다.이들과 의회군간의 사소한 충돌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백악관광장은 2년전 보수파들의 쿠데타 때 옐친을 지켜준 곳이다.바로 그곳에서 이번엔 옐친으로부터 의회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 있다.많은 이들은 2년전 바로 이곳에서 밤을 세운 사람들이다.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싸움.러시아 국민 모두가 패자일수 밖에 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 “부동표를 부동표로”지지 넓히기 가속/3당후보의 대권행보 이모저모

    ◎“부패척결 앞장서게 밀어달라”/YS/근로자보호 등 정책차별성 역설/DJ/“침체 한국 재건할 십장노릇 할터”/CY 민자·민주·국민 3당 대통령후보들은 13일 서울과 경기도·부산등지에서 당원대회에 참석하거나 시·도지부장회의를 주재하는등 득표활동을 계속했다. ○선거혁명 이룩 강조 ▷민자당◁ 김영삼총재는 이날 경기도 안산·옹진지구당(위원장 안재문)과 평택군지구당(위원장 허남훈)개편대회에 잇따라 참석,수도권지역공략을 본격화. 김총재는 이날 상오 안산올림픽체육관에 이어 하오에는 안중문예회관에서 열린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우리는 이번에 반드시 선거혁명을 이룩해야 한다』고 전제,『내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중립선거내각을 주장한 것은 공명선거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 그는 또 『중립선거내각의 출범으로 관권선거·행정선거의 우려는 없어졌으나 금권타락선거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국민당을 겨냥. 김총재는 이어 『30년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정열을 바쳤던 내가 앞으로는 부정부패척결에 헌신할수 있도록 압도적 지지를 부탁한다』고 강조한뒤 『변화와 개혁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루어질수 있다』며 「실천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부각. 김총재는 이어 이날 밤에는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전국 각급 청년당원 5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신한국 창조를 위한 청년시대 선언대회」에 참석,『신한국 건설을 위해 청년들은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향한 실천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청년들의 역할을 강조. 이에앞서 김총재는 상오 평촌 신도시건설현장을 방문,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는데 이 자리에서 김총재는 경남기업관계자에게 『서민용 아파트는 전체아파트중 어느 정도의 비율로 건설되고 있느냐』고 묻는등 서민주택에 대해 관심을 표명. ○당간부와 유세전략 ▷민주당◁ 김대중대표는 13일 선관위가 지적한 지방순회유세를 잠정 중단하고 대신 당간부·각계인사를 두루 만나 유세전략과 일정을 확정하느라 바쁜 일정. 김대표는 이날 상오9시부터 4시간여동안 진행된 최고위원,시·도지부장 연석회의에서 『국민들은 「이번에는 갈아보자」「무조건 바꿔보자」는 변화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말하고 『이같은 의식은 농어민·노동계·재야·중산층등 할것없이 모든 계층에 퍼져있어 당선이 확실하다고 얘기는 못하지만 해볼만하다』고 자신감을 표시. 김대표는 3당의 공약이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언론의 지적과 관련,『타당의 공약은 역대군사정권의 연장선에서 나온것이지만 안기부법개정,경찰중립,노동운동의 자유,도시에 앞선 농촌발전,통일에 대한 일관된 정책추구는 우리당 뿐』이라며 「차별성」을 강조. 김대표는 하오2시 서교호텔에서 한광옥선대본부장·신순범유세위원장등과 함께 선거공고일인 20일 이후의 유세일정을 확정하고 전략을 숙의. 이 회의에서는 유권자와의 직접접촉방식인 「버스순회유세」를 20일 이후부터 계속하되 「세몰이」를 위해 주말마다 7개 도청소재지에서 중·대규모의 옥외집회도 병행키로 결정. 또 이기택대표가 강원지역과 영·호남을,김대표가 서울을 비롯한 충·남북등 중부권을 맡아 역할을 분담하되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의 대형집회에서는 두 대표가 모두 참석할 것을 고려. 유세대책회의가 끝난 뒤 김대표는 평소 친분이 있는 학계인사등을 모처에서 만나 선거자문을 받기도. ○택시기사들과 간담 ▷국민당◁ 정주영대표는 이날 부산 신평장림공단 대강당에서 열린 사하지구당(위원장 백영주)개편대회와 마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남지역 3대국민운동 실천결의대회」에 잇따라 참석,「경제대통령」과 「양금역할소멸론」을 역설하며 민자당의 텃밭인 부산·경남지역에서의 지지기반 확산에 박차. 정대표는 이날 하오 3대국민운동 결의대회에서 체육관을 가득 메운 인파에 크게 고무돼 『양금씨는 비록 과거 군정투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나 그 관록으로는 나라를 살릴수 없다』며 『이제 시골에 가서 편안히 쉬어야 한다』고 주장. 정대표는 『지금 우리나라는 침몰직전의 난파선』이라고 비유한뒤 『이 난파선을 다시 태평양,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는 배로 만드는 십장노릇을 하겠다』며 지지를 당부. 정대표는 또 이웃에 있는 범어사와 부산불교연합회관을 방문,조정관·김대호스님등 70여명의 스님들과 만나 『할머니가 독실한 불교신자』라며 자신과 불교와의 인연을 소개한뒤 불교의 호국정신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불교계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마산·창원지역 택시기사들과도 간담회를 갖는등 강행군.
  • 김 주석의 마지막 외출?(이정연칼럼)

    북의 김주석은 지금 80노구에 각별히 반기는 동지도 없고 별로 즐겁지도 않은 39번째의 중국여행에 올라 9일엔 산동성의 공자묘(사당)를 찾아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전통의식을 주의 깊게 관람했다고 북경방송은 전했다. 그 미덥던 지난날의 크렘린 동지들은 그 막대한 핵,장비,병력을 정치수단으로 한번 써보지도 못한채,공산주의의 조종을 스스로 치고 자기가 그렇게 매도해 마지않는 한국에 손벌려 30억달러를 얻어가는 처지요,비록 한반도가 이미 열강의 이념의 대결장을 벗어나긴 했으나 그래도 의리있던 자금성의 주인공들마저 자기가 아직 중국지방을 여행중에 있음에도 「중국과 북한이 한국전쟁을 통해 우정이 맺어지긴 했으나 북한은 이제 중국에게 있어 동맹국이 아니다」고 말하는 이 차가운 현실속에서 그는 중국이 권하는대로 10일 강소성의 경제특구라는 곳을 둘러봐야 했다.그 경제특구란 바로 한국에서 모방해간 유사자본주의 방식들로서 중국 또한 손내밀고 배워가는 곳이 한국의 자본주의 방식들이고 보면 그의 심사는 미뤄 짐작할만 하다. 배고픈 군사강국은 싫다는 소련,우리도 좀 먹고 살아야겠다는 중국,배를 곪면서도 「우리는 행복합니다」는 저 북의 2천만 인민을 언제까지 환상적인 구호속에 묶어 둘수는 없는 현실,그의 딜레마는 거기에 있다. 김정일은 「외부의 잡음」에 개의치 말라고 당원들에게 교시를 내리고 있으나 그 「잡음」이 소련 동구는 물론 중국에서도 「희망의 복음」으로 여기고 그 길에 빨리 적응 못해 안달인데 김부자만은 아직도 「오판」「맹판」을 계속 일삼고 있으니 그들을 「맹신」하는 인민들만 불쌍한 처지다. 루마니아나 동독에서 배우기가 두렵거든 중국쯤에서라도 배우고,그보다는 「남」에서 직접 배우고 협력을 구하는것이 지름길임을 알것이나 스스로 쳐놓은 장벽을 거둘때 생길 불상사가 두려워 저 모양이니 또한 딱하다. 그가 이번 방중에서 새삼 확인한 것은 이제 별쓸모 없는 「이념적 유대는 재확인」해주면서도 경제적 지원이나 북의 핵사찰거부에는 뜻을 같이 할 수 없음을 나타낸 사실이다. 김주석은 핵으로 버텨보려 하나 중국도 이미 더 이상 핵무기개발을 추진할 여력이 없어 개발 초기단계에서 그대로 주춤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북의 무모한 핵개발에 찬동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북의 연간 원유 소비량은 1백47만t으로 이는 한국의 25일분의 소비량에 불과하다.그나마 연간 80만t의 원유를 국제시세보다 싼 바터 무역방식으로 팔아 주던 소련이 이제는 국제시장 가격에다 현금결제방식 요구로 수입량은 반으로 줄어든 처지요,기껏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약 3천명의 특권계급만이 소유하고 있는 북한에서 핵개발이란 당치 않다는 것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기본인식이고 보면 김주석의 이번 여행은 대단히 불편한 행차가 될 수 밖에 없다. 소련 공산당은 가장 극적으로 끝장이 난 처지로 모스크바와 평양관계를 보면 소련은 북한에 경제 군사원조를 삭감하고 민주화 개혁을 보다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김부자는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오는 때아닌 훈풍에 불안한 마음이고 보면 김주석의 초조한 마음은 북경보다는 공자묘에서 오히려 편안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 어쩌면 김주석은 이제야말로 자력경생과 내식대로의 길밖엔 없을 듯 싶으나 이미 이념적 사명감을 상실한 내부적 부패,석기시대의 사고를 가진 김에 맹종하는 사람으로 이뤄진 비전없는 무모한 모험주의로는 어떤 해결책도 기대되지 않고 있다. 김주석이 들으면 심히 불쾌할 것이나 일본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김일성정권이 쓰러지고 ▲한국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북한주민들이 알게되고 ▲수백만의 난민이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고 ▲사실상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소멸하고 ▲북조선 지역이 대한민국 관할하에 들어 온다는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우리는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이해해 주기 바란다. 김주석은 이제 해를 넘기면 80이요,중국의 장정세대가 아직 일부 남아있긴 하나 이념의 시대가 이미 끝나고 경제적 이해가 앞서는 냉혹한 현실주의 토대위에서 그를 접대한 지도층을 본 이상 다시 중국땅을 밟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보면 이번이 그의 마지막 외출일 수도 있을 것같다. 그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현실에 눈을 가리지 말고 엄청난 변혁에 대처,난파선의선장다운 자세를 크렘린과 자금성의 지도자들의 경험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밖에 또 하나의 유일한 길은 남북이 진지하게 마주앉아 민족의 장래를 서로 도와가며 협의해 나가는 길이다. 남과 북의 교역은 벌써 1억달러를 넘어섰다.이제 뒷구멍 말고 대문을 열고 떳떳이 나서는 길밖에 없다.한국에 먹힐까봐 겁낼 것도 없고 지금 어버이 수령을 따르는 북의 동포들이 공자묘에 제사를 지내듯 위대한 수령으로 사후에도 모셔주기를 바라는 허망한 꿈도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그것은 스탈린·모택동·차우셰스쿠를 보면 금방 알 것을 공연히 되지도 않을 희망사항에 매달려 꿈자리만 괴롭힐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역사상 어느 독재자도 스스로 깨닫고 택한 일이 없다는 사실이 비극일 수밖에 없다.비민주적 방법으로 출범한 정부가 민주적 통치를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역사에 기록돼 있는 사실이고.
  • “소는 「한·일경제모델」 본뜰때”/소인이 본 소 장래/특별기고

    ◎유리 타브로프스키/일정기간동안 권위주의적 통치 불가피/혼란 막게·통제·시장경제 병행돼야 쿠데타가 조기진압됨으로써 소련은 국가적 재앙을 맞을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그러나 쿠데타를 일어나게 만든 정치·경제·윤리적인 제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곡물수확량은 금년에도 감소했고 인플레는 급등하고 있으며 겨울은 다가오는데 석탄·석유는 턱없이 부족하다. 안정을 보이는 부문도 없지는 않다.일부 기간산업의 생산량이 늘고 있고 많은 군수공장들이 TV·냉장고등 소비재를 생산하고 있다.특히 단절위기까지 갔던 공화국들의 경제한계가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다. 난파선 같은 소련경제를 버리고 뿔뿔이 제갈길을 가기보다는 힘을 모아 배를 수리하는게 더 유익하다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 것같다.많은 공화국들이 자기들끼리 경제조약체결을 서두르고 있다.특히 고무적인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등 대공화국들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세력들이 승리함에 따라 이제는 보다 번영되고 안정된새 소련방건설을 위한 「묘수」를 찾아나설때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는 공산독재체제를 해체하는데는 큰 역할을 했지만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새체제 건설에는 적합치 않음이 드러났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한국·일본·대만·독일등 독제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경제적번영을 이룩한 나라들의 모델을 채택하는 것이다. 독제체제로부터 민주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정기간 권위주의통치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같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쿠데타가 일어나기전 경제·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는데 미온적인 방법으로 대처했다는 비난을 받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부문도 다른 나라의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다.한국·일본 등이 중앙집중적이고 군사위주의 경제를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바꾼 경험은 소련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와 달리 소련에는 70여년동안 모든 자유시장원리가 금지됐었다.잊었던 자본주의의 과거를 되살리고 문명세계의 경험을 다시 배우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개개인이 갖고 있는 뿌리깊은 평등주의의식도 새 국가건설의 큰 장애요소이다.이 평등의식은 곧 부유한 이웃에 대한 증오심과도 통한다. 엄청나게 높은 군사비지출이 그동안 국가경제를 마비시켰기 때문에 군산복합체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리고 있다.일본과 같이 방위비를 GNP의 1% 수준으로 낮추자는 요구도 있다.1% 수준으로 떨어지지야 않겠지만 군사비 삭감과 대폭적인 병력감축이 단행될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이제 다시 중앙집중식 관리체제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지금의 경제난,산업중심지들간의 거리·통신·수송상의 문제들을 고려할때 경직된 「고전적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없다.나는 개인적으로 중도의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즉,합리적인 중앙계획경제로 수송·에너지·군사부문생산은 통제를 하되 소비·서비스산업은 자유시장경제원리에 맡기는 것이다. 향후 수년간 소련경제는 동아시아·미국·유럽등 특정모델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미래지향적이되 기존체제의 합리적인 점도 공존시키는 형태가 좋을 것이다.70여년 지속해온 사회주의경제를 하루아침에 모두 버리려다간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이번 쿠데타를 기점으로 해서 최소한 10년의 과도기는 거치게 될 것이다.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공화국에서 권위주의체제가 등장,소위 정치적 과도기까지 거치게 될 것이다.이 정치·경제적 과도기간 동안 소련국민들은 다소의 어려움을 감수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외언내언

    바다 밑에는 신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금은보화에 골동품도 가라앉아 있다. 그것들은 보존상태도 좋다. 화수분 같았던 신안 앞바다의 유물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은가. 잘만 찾는다면 떼부자가 된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멜피셔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20여년 동안 바다밑 보물찾기를 했던 그는 85년 기회를 잡는다. 1622년에 난파당한 배를 발견해 냈던 것. 금괴·은괴에 금화·은화를 비롯하여 값진 액세서리를 건져 올려 하루 아침에 억만장자로 되었다. 몰라 그렇지 세계의 바다 곳곳에는 이런 보물이 적잖다. 전쟁으로 또는 풍랑으로 침몰한 배가 적잖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바다밑에는 도시도 가라앉아 있다. 북태평양 미크로네시아 폰페이 섬 근해에 잠겨 있는 석조도시 난마돌이 그것. 학자들에 의하면 이 도시는 가로 5백m,세로 1km 크기이고 인공 산호초 섬위에 세워졌다는 것. 돌 한개가 50t이 넘는 것도 건축에 쓰였다고 한다. 건축시기는 1천5백년전. 가라앉은 이유는 모른다. 난마돌 사람들은 금속을 몰랐다고 하지만 그 유물들 또한 휼륭한 골동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부산 앞바다 두군데서 보물찾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난파선 것이 아니라 두군데 다 인위적으로 묻은 것. 이 보물찾기는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중죽도의 경우 2차대전 때 일본군이 중국에서 약탈해온 보물 수십 상자를 묻어놨다하여 오래 전부터 발굴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허탕. 그런데 이번에는 중죽도와 함께 제7부두 쪽에서도 발굴작업을 벌이는 모양이다. 금동 불상에 다이아몬드·은괴등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다는 것. 과연 찾아낼 것인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 것인지. 기왕이면 국민들을 한번 흥분시켜 줬으면 싶다. ◆그런 해저 보물 못잖게 관심이 가는 것이 바다밑 거북선 찾기.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찾는다는데 성과를 보여줄 것인지. 거북선이야말로 우리에겐 엄청난 보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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