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난민 신청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시민 제안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시 수업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이글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72
  • 갑작스러운 난민 생활, ‘다른 사람’으로 사는 방법

    갑작스러운 난민 생활, ‘다른 사람’으로 사는 방법

    우연히 타국에 나와 있는데, 고국에선 내전이 발발했다. 아버지는 한사코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밖에 있으라고 충고했다. 이국의 낯선 거리를 배회하다 지쳐 결국엔 정치적 망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갑작스럽게 난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알렉산다르 헤몬의 에세이 ‘나의 삶이라는 책’을 읽다 보면 ‘난민이 별 거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6월 한국 사회를 시끌시끌하게 했던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행위처럼 보였다. 그러나 헤몬처럼 개인의 삶으로 환원해서 보면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다 교통사고가 난 것처럼, 어느 날 우연히 나의 고국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그 바람에 나는 집을 잃었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태어나 문화 잡지 편집자로 일하던 헤몬은 27세가 되던 해 미국 시카고를 방문했다가 발이 묶인다. 갑자기 난민이 된 그는 그린피스 운동원, 서점 판매원, 강사 등 생계를 위한 다양한 일을 하며 영어를 익힌다. 문학 전공자이자 평생을 말과 글을 무기로 살아온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시련이었다. ‘시카고에 존재하는 법을 아직 몰랐기에 나는 형이상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했다.’(139쪽)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사라예보에서 이슬람교도 친구를 ‘터키인’이라는 말로 울렸던 헤몬은 그 자신이 영원한 이방인이 됨으로써 평생을 ‘다름’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그 결과 얻은 결론은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순간, 타자가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21쪽)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망명, 캐나다 이민 등으로 헤몬 가족에게 “원래는 어디 출신이십니까?”라는 질문은 일상이다. 이에 헤몬은 말한다. “저는 작가 출신입니다” 하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그게 아니라면 “아직 뭐라 말씀드리기엔 너무 이른 것 같네요”(35쪽) 정도로만 대답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에게 이런 질문은 답할 수 없는 의문들이 얽히고설킨 다름의 결정체다. 그렇다면 타국에서의 사무치는 외로움 속, 그를 지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헤몬이 시카고에서 가장 열심히 몰입했던 것은 뜻밖에 이민자 축구 모임이었단다. 이탈리아,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여러 사연을 안고 모여든 이민자들과 패스에 성공했을 때 느껴지는 발끝의 얼얼함으로 외로움을 견딘다고 그는 말한다. 번역서 제목은 원제(The Book of My Lives)보다 다소 심심해 보이지만, ‘이 책=그의 삶’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단독] 모욕받는 빈곤층…기초수급 신청 때 ‘가족해체 제3자 인증’ 요구

    [단독] 모욕받는 빈곤층…기초수급 신청 때 ‘가족해체 제3자 인증’ 요구

    관악구청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에 부양 못 받는 사유 등 상세히 기술하고 본인 외 보증인의 서명도 별도 받도록 허위·위증 확인땐 법적 문제 책임물어 ‘아사 탈북민 모자’에게도 이혼확인서 복지부 지시 지난달 초부터 사용 중지 아동수당 신청때 3자가 이혼 보증해야 기초단체 임의 ‘개인 내력’ 서류 강요도‘아사’(餓死·추정사인)로 숨진 탈북민 한모(42)씨 모자의 담당 관청인 서울 관악구가 그간 기초생활수급 신청자들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을 받으려면 제3자의 인증을 받아 가족이 해체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요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먹고살고자 어렵게 관청 문을 두드린 빈곤층에게 가난보다 더한 굴욕을 안겨 준 셈이다.빈곤사회연대가 19일 서울신문에 공개한 관악구의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를 보면, 구는 기초생활보장 신청자와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 대상자들에게 부양의무자와의 관계가 단절돼 부양을 받지 못하는 사유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본인 서명 외에 보증인의 서명을 별도로 받도록 했다. 또한 ‘위 사실이 허위나 위증일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49조에 의거,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한다’는 경고 문구를 사유서에 함께 기재했다. 보증인에게는 ‘이 사실이 허위·위증으로 확인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법적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복지 급여를 신청한 국민을 사실상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간주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가족관계 단절 사유는 가출·실종,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 부양의무자의 학대·외도, 폭력·고부갈등을 비롯한 가족 간의 갈등 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민감한 내용이다. 자신의 ‘비극’을 타인에게 확인받아 오라는 구의 요구에 신청자들은 어쩔 수 없이 보증인을 수소문하러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유서는 보건복지부의 요구로 지난달 초부터 사용 중지됐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서울의 한 기초단체에서도 아동수당을 신청하려는 한부모 여성에게 이혼확인서를 가져오라면서 제3자의 확인 보증 서명을 받아 오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활동가는 “당시 그 여성은 해외로 이민을 했다가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국적 회복 중이었고, 이혼 사실을 증명할 법정 판결문이 있었는데도 구청이 이혼 사실을 타인에게 확인받아 오라고 해 수치스러워했다”고 전했다. 탈북민 한씨와 접촉이 있었던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도 “관악구 주민센터가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알아보려고 주민센터를 찾은 한씨에게 ‘이혼확인서’를 요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무원의 냉대에 발길을 돌린 한씨는 결국 기초생활수급신청을 하지 않았고, 지난달 31일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여섯 살 난 아들과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에는 강서구가 기초생활보장 신청자에게 ‘살아온 내력, 지원받고 싶은 내용, 부양의무자와의 관계, 기타 참고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사유서를 요구해 논란이 됐다. 이런 서류는 정부가 지침으로 정한 필수 제출 서류가 아니다. 각 기초단체가 임의로 요구하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도 임의서류를 받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깐깐하게 심사하지 않아 부정수급자가 나오면 감사를 받다 보니 일선 공무원들이 무리한 서류를 요구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간 복지 행정은 부정수급 근절, 복지예산 효율화에 줄곧 방점을 찍어 왔다. 이는 공적복지의 장벽을 더 높여 사각지대를 넓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 활동가는 “어차피 신청해 봤자 모욕만 받고 정부로부터 지원은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지는 않는지 냉철하게 살펴야 제2의 ‘아사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굶어죽은 6살과 엄마… 3가지 못 풀면 ‘복지 사각 비극’ 계속된다

    굶어죽은 6살과 엄마… 3가지 못 풀면 ‘복지 사각 비극’ 계속된다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 한모(42)씨와 여섯 살 아들이 숨진 지 두 달쯤 지나 뒤늦게 발견됐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지만 추정 사인이 아사(굶주려 죽음)여서 파장이 컸다. 여섯 살배기 작은 생명이 굶주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안전보장망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일까.한씨가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긴급복지지원제도, 한부모가족지원제도가 있었다. 탈북민인 한씨는 정착 초기 5년간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됐다가 아르바이트로 소득이 생기자 2010년 수급자 자격이 중단됐다. 한씨는 한 차례 수급자가 된 경험이 있어 정부 지원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올해 1월 중국 국적 남편과 이혼한 뒤로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지원제도를 신청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문제는 부양의무자 기준에 있었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은 1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겨울(지난해 12월~올해 1월쯤으로 추정) 한씨에게서 ‘너무 살기 힘들다’는 전화를 받았다. 주민센터 복지팀을 찾아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씨는 김 회장의 조언대로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남편과의 이혼 확인서를 받아오라”는 공무원들의 냉대였다고 한다. 김 회장은 “그 얘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나 구청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걸었다. ‘이혼서류만 있으면 됐지 이혼 확인서라는 것은 도대체 뭐냐. 그리고 그걸 중국에 가서 어떻게 떼어 오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자 ‘욕을 하면 녹음을 하겠다’는 경고가 왔다. 더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한씨의 여섯 살 아들은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받지 않으려고 해 한씨가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다. 이후 한씨가 한 번 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고 시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과거에 수급을 받았다가 탈락한 경험이 있다 보니 이번에도 수급자가 되지 못할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신청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공무원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가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찾은 탈북민 모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간 ‘아는 사람만 받는 복지, 부양의무자 제도에 발목 잡힌 복지, 재정적 보수주의에 발목 잡힌 복지’로 요약되는 우리나라 복지제도 3대 난센스는 ‘사각지대’를 만들어 내는 고질적 문제로 지적받아 왔다. 기본적으로 복지 시스템은 ‘신청주의’에 기반한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청하지 않으면 만 6세 미만(9월부터 7세 미만으로 확대)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는 아동수당조차 받을 수 없다. 2017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비수급 빈곤층은 93만명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아는 사람만 받는 복지’가 되지 않도록 원하는 이들에게 맞춤형 복지를 안내해 주는 ‘복지멤버십’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이런 제도가 있더라도 현장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한씨의 소득인정액은 사실상 ‘제로’(0)였다. 남편이 있는 것으로 돼 있어 부양의무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서류로 입증할 수 없더라도 부양의무자와의 관계가 청산됐다면 적극적으로 발굴해 수급자에 포함시키라고 여러 차례 지침을 보냈지만 현장에서는 이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운데도 부양의무자가 있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되지 못했다면 지방생활보장위원회에 재상정해 수급 여부를 다시 심의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지자체 희망복지지원단에서 긴급복지지원이나 민간 복지 자원을 연결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씨는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김 활동가는 “복지제도를 신청해 본 분들은 ‘막상 내가 신청하려고 하니 대상이 안 된다더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이 모든 게 복지 예산 효율화의 기조 아래 기준을 강화해 온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청만 하면 국가가 나를 생계 위협으로부터 지켜 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8 한국복지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생계가 어려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신청을 한 가구 가운데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를 모두 받은 가구는 전체의 5.47%에 불과하다. 78.95%는 4개 급여 중 일부만 받았고 15.58%는 탈락해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급여별로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한 가구를 조사한 결과 생계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보다 많아 탈락했다는 응답이 42.9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본인의) 소득이 기준보다 많아서’라고 응답한 가구가 38.91%로 뒤를 이었다. 탈락자들은 생활고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31.24%가 부양의무자나 친지, 이웃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고 17.62%는 빚을 내 생활했다고 밝혔다. 탈북민인 한씨는 도움받을 친지도 부양의무자도 없었다. 이웃과 교류가 있었다면 사망 후 두 달 뒤에 발견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의 기준이 되는 2020년 기준 중위소득은 올해에 비해 2.94% 인상됐다. 문재인 정부 3년간 기준 중위소득의 평균 인상률은 2.06%로, 실질 경제성장률 평균치인 2.9%에 크게 못 미친다. 김 회장은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렵다고 호소하면 주민센터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집에 찾아가 냉장고를 열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정도도 안 하면서 월급 받으며 복지업무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아들은 난민, 아버지는 아니라니요” 김민혁군 친구들 간절한 호소

    “아들은 난민, 아버지는 아니라니요” 김민혁군 친구들 간절한 호소

    김군 부친 난민 불인정에 조목조목 반박“10년 기다린 꿈이 허망하게 부서졌다”“국민 아니면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되나”지난해 이란 출신 김민혁(16)군의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해 나섰던 10대 청소년들이 다시금 실명 호소문을 발표했다. 김군 아버지 A(53)씨가 난민 심사를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김군의 중학교 때 친구들인 이들은 법무부 결정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다시 공정한 판단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 8일 김군 아버지 A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김군이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일시적인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는 1년마다 체류 자격을 심사받아야 하고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박지민(잠일고 1학년)군 등 김군과 함께 아주중학교를 졸업한 학생 30명은 12일 실명을 적은 호소문을 발표했다.이들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의 결정에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아직은 아빠와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민혁이, 불치병 선고를 받은 시한부 환자처럼 얼굴이 어두워지는 민혁이 아버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계시다 휘청이는 선생님을 보며 돌아서야 했던 우리가 가슴에 품었던 입장문”이라고 밝혔다. 김군의 친구들은 지난해 5월부터 김군 부자의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하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이들은 “1년 남짓의 시간, 여유를 낼 수 없던 시간과 싸우고 때로는 부모님의 걱정과 싸우고, 우리의 나약함, 이기심과싸우며 걸어왔다”며 “민혁이와 아버지가 10년을 기다려온 꿈이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부서진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김군 친구들은 출입국당국의 심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가톨릭 개종자로 이란에서 배교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동일한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한 아들과 아버지에게 아들은 박해 위험이 있고 아버지는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며 “미성년자인 아들보다 어른인 아버지가 박해 위험이 더 크고 아들이 난민 인정을 받은 지난해보다 지금이 더 (여론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나온 정반대의 판정”이라고 주장했다.이들은 “우리 국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되는 것인지, 이 불공정을 진정 그대로 두실 것인지 묻고 싶다”고 호소했다. 김군 아버지의 난민 불인정 판정을 받은 뒤 이들은 “다시 싸우자고 격려하고 웃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며 울었다. 집에 가서, 학원에 가다가 울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힘이 많이 부족하지만 끝까지 싸우겠다. 그러니 누가 됐든 우리 슬픔 곁에 함께 해 달라고, 어둠 속에 버려진 이들을 감싸는 빛의 길을 걷자고 다짐하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A씨는 법무부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하기로 했다. A씨의 법률대리인 이탁건 변호사는 “이의신청을 통해 이번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지 타진해 보고 불가능하다면 행정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사업차 김군과 함께 입국한 A씨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A씨는 2016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신앙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 김군도 함께 난민 신청을 했다가 불인정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학교 친구들이 힘을 보태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천주교계 등도 지지하고 나서면서 지난해 10월 ‘종교적 박해 가능성’을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정우성, 난민에 대한 관심+지원 촉구 “우리도 한때 난민”

    정우성, 난민에 대한 관심+지원 촉구 “우리도 한때 난민”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의 인터뷰가 재조명됐다. 정우성은 지난 5월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방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도 난민 문제의 아픔을 겪었고, 그 가운데 유엔이나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우리도 6·25 전쟁(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때 실향민이고 난민이던 때가 있었다”면서 전 세계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그는 “대한민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정학적으로 1000번 넘게 침략당한 나라였고,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지만 역사가 반복됐을 때 다른 나라에서 당연히 대한민국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지금 우리의 시민의식과 국가 의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우성은 “‘우리’라고 하면 우리나라로 한정시킬 수 있지만, ‘우리’라는 말은 인류 공동체로도 넓힐 수도 있다”면서 “난민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며 공존하고 연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 활동을 하며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정우성씨는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신청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을 때에도 난민을 돕자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다. 이 때문에 난민 인정을 반대하는 측으로부터 비판과 악성 댓글을 받기도 했다. 이에 정우성은 “엄마나 청년으로서 느끼는 불안감과 우려를 존중한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거부감도 있을 것”이라면서 난민을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부는 조직적으로 혐오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이런 점은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일에 대한 부담감과 관련해서는 “배우는 직업이며, 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이라면서 “배우라서 사회적 공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프랭크 래무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는 “정우성씨가 친선대사로 일하며 한국인들을 설득해 많은 이들이 난민을 이해하게 되고 지지자로 변했다”면서 “기구 내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지금 같은 역할을 계속해서 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뉴스부 seoulen@seoul.co.kr
  • ‘이란 난민’ 김민혁군 아빠 또 난민 불인정

    ‘이란 난민’ 김민혁군 아빠 또 난민 불인정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힘입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란 출신 김민혁(16)군의 아버지 A(53)씨에 대해 인도적 체류 허가가 내려졌다.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 체류를 일시적으로 허가하겠다는 결정이다.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8일 김군의 아버지인 이란인 A씨에 대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적절한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 (이슬람교 국가인) 이란에 돌아가도 박해 위험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인도적 체류 허가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2016년 난민 지위를 신청한 후 불인정 처분을 받고 지난 2월 재신청서를 제출했다. 난민 신청자는 ▲난민 인정 ▲인도적 체류 허가 ▲난민 불인정 중 하나의 판정을 받는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 인정 요건을 충족하지는 않으나 강제 추방당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인도적 차원에서 임시 체류를 허가하는 제도다. 사회보장 혜택에서 제외되며 1년마다 체류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반면 난민 지위가 인정되면 난민법에 따라 우리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A씨 측은 법무부의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다. 김군은 “부디 난민으로 인정해 줘 더 나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김군 부자와 동행한 오현록 아주중학교 교사는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김군은 난민으로 인정됐는데 아버지는 안 된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법률대리인 이탁건 변호사는 “이의신청을 통해 이번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지 타진해 보고 불가능하다면 행정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사업차 김군과 함께 입국한 A씨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A씨는 2016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신앙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인정 처분을 받았다. 김군도 함께 난민 신청을 했다가 불인정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학교 친구들이 힘을 보태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천주교계 등도 지지하고 나서면서 지난해 10월 ‘종교적 박해 가능성’을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이란 난민’ 김민혁군 아버지 난민지위 끝내 불인정

    ‘이란 난민’ 김민혁군 아버지 난민지위 끝내 불인정

    민혁군 “저에겐 하나뿐인 가족…난민 인정되길” 청와대 국민청원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란 출신 김민혁(16·한국 활동명) 군의 아버지는 재심사 결과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8일 김군 아버지 A씨가 난민협약이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다만 민혁 군이 미성년자인만큼 1년 기한의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A씨는 이날 난민심사를 마치고 나와 “난민 지위는 인정하지 않고, 인도적 체류 허가를 한 것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A씨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을 통해 다투겠다고 했다. A씨는 2010년 아들 김군과 함께 사업을 위해 입국한 뒤 기독교로 개종했다. 무슬림국가인 이란은 개종할 경우 반역죄로 인정돼 최고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A씨는 2016년에도 난민신청을 했지만 ‘신앙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인정 처분됐고 이어진 소송에서도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아들 김군도 같은 해 난민신청을 했다가 ‘너무 어려 종교 가치관이 정립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거절됐지만 지난해 중학교 친구들의 청와대 국민청원과 릴레이 1인 시위에 힘입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김군의 난민 지위 신청을 도왔던 아주중학교 오현록 교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A씨가 기억 착오로 한국 입국 연도에 대해 진술을 바꾼 것과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주된 이유였다”며 동일한 이유로 난민 신청을 했음에도 A씨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김군은 “저도 작년에야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는데, 저에게 하나뿐인 가족인 아빠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속보] ‘이란 난민’ 민혁군 아버지 재심사도 난민 불인정

    [속보] ‘이란 난민’ 민혁군 아버지 재심사도 난민 불인정

    친구들의 도움과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힘입어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란 출신 김민혁(16·한국 활동명) 군의 아버지가 난민 심사 재신청을 냈으나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8일 김군 아버지 A씨에 대한 난민심사 결과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난민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A씨의 주장이 난민협약에서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A씨가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그에게 1년 기한의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브라질, 쿠바 의사 2200명 난민 자격 인정

    브라질, 쿠바 의사 2200명 난민 자격 인정

    브라질 정부가 빈곤 지역 의료 서비스 프로그램인 ‘더 많은 의사들’에 참여했다가 귀국하지 않고 브라질에 체류 중인 쿠바 의사들에게 난민 자격을 인정하기로 했다. 브라질 정부가 29일(현지시간)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자국에 체류 중인 쿠바 의사 2200여 명의 난민 신청을 받아들여 합법적인 거주 권리를 인정하게 됐다. 브라질 정부는 쿠바 의사들을 공공의료 서비스인 통합보건시스템(SUS)에 합류시켜 활동하도록 하고 2년 후 이들의 활동 내용 등을 평가해 거주 기간을 연장해주는 방식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국가난민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브라질에 난민 신청을 한 쿠바 의사는 2209명에 이른다. 1년 전인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의 880명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들은 브라질 정부가 빈곤 지역 의료 서비스 확충을 위해 2013년부터 시행한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귀국하지 않고 브라질에 체류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 본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버 택시 운전이나 병원 행정 업무, 상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활고를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스웨덴 등 유럽 의료 선진국의 보건 정책을 본뜬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에 따라 브라질에서 활동한 외국인 의사는 1만 6400여명이며 이 가운데 쿠바 출신이 8300여명이었다. 브라질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쿠바 의사들에게 월급을 직접 주지 않고 쿠바 정부에 달러로 전달했고, 쿠바 정부는 브라질 파견 의료인력의 신분을 공무원으로 규정해 일정액을 제외하고 월급을 지급했다. 쿠바 의사들이 실제로 받은 월급은 30% 정도로 알려졌다. 쿠바 정부가 의료 인력 파견으로 벌어들인 돈은 연간 11억 달러(약 12조 3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1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쿠바 정부는 의사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가족을 불러들이지도 못하게 하는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며 “이런 노예노동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쿠바 정부는 이에 반발해 모욕적 언사를 참을 수 없다며 자국 의사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외교 관계 중단을 경고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쿠바 정권의 부정적 면모를 부각시켜 단교 명분을 쌓으려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브라질과 쿠바는 1906년 외교 관계를 맺었다. 1964년 브라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후 단교했다가 1986년 관계를 복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美 뉴욕주 “아파트 임대료 마음대로 못 올린다”… 한국은 30년째 탁상공론

    美 뉴욕주 “아파트 임대료 마음대로 못 올린다”… 한국은 30년째 탁상공론

    ‘세입자 보호법’ 시행… 100만여가구 해당 폭등 주원인 ‘렌트 인상 혜택제도’ 없애 韓 ‘인상 상한 연 5%’ 개정안 국회 낮잠 독일 평균 12.8년 거주…한국은 약 3년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뉴욕이라고 아파트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는 10월부터 뉴욕주는 1.5%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세입자와 주택 소유자 각각 2명, 시 관계자와 전문가 5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된 관련 위원회가 수십 년째 매년 임대료 상한선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료 규제를 받는 1974년 이전에 지어진 뉴욕시의 아파트는 전체 240여만 가구 중 100여만 가구에 달한다. 2017년 기준 이들 아파트의 월평균 임대료는 1269달러(약 154만원)다. 이를 토대로 1.5% 인상률을 환산하면 한 달 평균 19달러(약 2만 2000원)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한 것이다. 또 뉴욕주는 지난달 세입자 보호를 위해 아파트 임대료 인상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2019 주택 안정 및 세입자 보호법’을 통과시켰다. 통과 직후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곧바로 관련 법안에 서명하면서 “이 법안은 가장 강력한 개혁 패키지이자 뉴욕 전역의 세입자들을 위해 진일보한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0일(현지시간) 전했다. 뉴욕주의 ‘2019 주택 안정 및 세입자 보호법’은 렌트규제법 영구화와 세입자 소득에 따른 임대료 규제 해지 폐지, 빈집 자유 임대료제도 폐지, 신규 임대 시 렌트 인상 혜택 제도 폐지 등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고 아파트 집주인들의 집세 인상과 세입자에 대한 강제퇴거를 어렵게 하는 게 주요 골자다. 특히 기존 세입자가 퇴거하고 신규 세입자로 교체될 때 아파트 임대료를 최고 20%까지 올릴 수 있었던 ‘렌트 인상 혜택 제도’를 없애기로 한 게 특징이다. 이 제도는 그간 뉴욕 아파트 임대료 폭등의 주원인으로 꼽혀 왔다. 아파트 임대료 규제는 미국 내 다른 주로 확산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지난 5월 주의회에서 주 차원의 임대료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조지아주도 지난 3월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상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임차인들을 집주인이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오리건주는 지난 2월 미국 내에서 처음으로 주 차원에서 연간 아파트 임대료 증가율을 ‘7%+물가상승률’ 수준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로 무장된 미국도 어려운 세입자 보호를 위한 강제 법을 엄격하게 시행 중인데 한국은 어떤가. 30년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은 여전히 탁상공론 중이다. 한국 주택임대차보호법은 1989년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고 인상률도 5%로 제한한 후 30년 동안 발이 묶여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허점이 많다. 2년 계약기간이 지나면 임대인이 얼마든지 전세금이나 월세를 올릴 수 있다. 그래서 전세 계약 2년 뒤 수천만원의 인상 요구에 ‘전세 난민’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민간임대주택 비율이 한국과 비슷한 독일 세입자의 평균 거주기간은 12년 8개월이지만 한국은 약 3년밖에 안 된다. 무주택 가구 중 거주기간이 2년 이내인 비율은 36%에 달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국회는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 현행 2년인 계약갱신 기간을 4년 또는 8년, 10년까지 늘리고 임대료 인상 상한을 연 5% 내로 제한하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글 사진 워싱턴·뉴욕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노르웨이 前장관 “영주권 줄게” 동성 성폭행 파문

    노르웨이 前장관 “영주권 줄게” 동성 성폭행 파문

    노르웨이 유력 정치인이 권력을 이용해 동성 망명 신청자 3명에게 성관계를 강요한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다.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 법원은 어업부 장관, 트롬스 주지사를 지낸 스벤 루드빅센(72)에게 27일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루드빅센 전 주지사는 주지사 시절 자신이 망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에도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법정 증언에 따르면 그는 2011~2017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세 남성을 성적으로 학대했는데 이들 중 한 명은 루드빅센을 처음 만났을 때 17살에 불과햇으며, 다른 한 명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추방을 당하거나 노르웨이 영주권을 얻을 수 있을지는 루드빅센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확신했다. 인권단체들은 재판에서 드러난 성적 학대가 세계에서 인권 지도자로서 자질을 홍보하는 나라인 노르웨이에서 이민자 학대의 광범위한 문제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앤 매그리트 오스테나 노르웨이 난민기구 사무총장은 “이번 판결은 젊은 망명 신청자들과 난민들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판결”이라면서 “루드빅센의 행동은 폭력적인 신뢰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루드빅센은 2001~2005년 중도우파 정부에서 어업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6~2014년 정계 은퇴까지 노르웨이 북부 트롬스 주지사로 일했다. 법원은 루드빅센에게 징역형과 별도로 피해자들에게 총 74만 3000 노르웨이크로네(약 1억원)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루드빅센의 변호인은 이번 판결에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에 대한 징역형은 이르면 연말 항소심이 끝나야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난민 신청 작년 1만 6173명… 1년새 63% 급증

    지난해 우리나라에 난민 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이 총 1만 6173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62.7% 증가한 역대 최다 수치다.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난민신청 건수는 2012년 1143명, 2013년 1574명, 2014년 2896명, 2015년 5711명, 2016년 7541명, 2017년 9942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난민 신청 급증은 사증 면제 제도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증 면제 제도는 국가 간 협정으로 입국 허가 없이 일정 기간 우리나라에 체류할 수 있는 제도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사증 면제 협정을 체결한 카자흐스탄(2496명)·러시아(1916명)·말레이시아(1236명) 등 3개국에서 지난해 난민 인정을 신청한 비율은 전체 56%를 차지했다. 그러나 실제로 난민으로 인정된 비율은 여전히 낮다. 지난해 난민 심사가 완료된 3879명 가운데 3.7%인 144명만 난민으로 인정됐다. 514명은 인도적 사유로 체류를 허가받았고, 나머지 3221명은 모두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기준 1만 7159명이 1차 심사를, 2772명이 2차 심사(이의 신청)를 기다리고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난민이란 죄…병든 8살 아이가 공항에 175일째 갇혀 있어요

    난민이란 죄…병든 8살 아이가 공항에 175일째 갇혀 있어요

    앙골라서 부인·네 자녀와 함께 한국행 심사 통과할 때까지 수개월 ‘공항 살이’ “공중화장실서 씻고 잠자리 비위생적” 일부 족쇄·수갑 찬 채 장기간 구금도 변호사 접견도 사실상 불가능 가까워“부인과 아이 4명을 데리고 공항에서 175일째 갇혀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한국에서 1만 2000㎞ 떨어진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온 난민 루렌도 은쿠카(46)의 가족은 여섯달 가까이 인천국제공항 탑승동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은 앙골라 정부의 콩고 이주민 추방 과정에서 박해를 받다가 한국으로 왔다. 은쿠카 가족들에게 공항은 감옥이다. 아이들은 공항 의자에서 잠을 자고 공중화장실에서 씻는다. 높은 공항 물가 탓에 신선한 음식은 꿈도 못 꾼다. 둘째 아들 실로(8)는 임시 허가를 받아 한국 병원에 실려갔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다. 은쿠카는 “우리도 인간이다. 공항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이들은 올 1월 난민 사전 심사에서 정식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불회부 결정’을 받았다. 지난 4월 결정 취소 소송에서도 패소해 7월 항소심 재판 때까지 공항에서 지내야 할 처지다. 20일 세계난민의날을 맞아 은쿠카 가족처럼 공항에서 난민 사전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체류하는 난민 신청자들이 극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난민인권네트워크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난민 사전 심사 과정에서 난민들이 의식주도 보장받지 못하고 폭행·구금 등 물리적 폭력에 노출된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약 10건의 피해 사례를 모아 다음주에 인권위에 진정을 넣는다. 일부 난민 신청자들이 공항에 갇혀 지내야 하는 건 ‘출입국항 난민신청제도’ 때문이다. 2013년 도입된 이 제도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입국한 사람이 난민 신청을 하면 본심사에 올릴 대상인지 판단하는 사전 절차다. 최대 7일 내 회부·불회부 결정이 나오는데 이때까지 신청자들은 공항에 머문다. 여기서 떨어지면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거나 소송을 해야 한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2018년 공항만 난민 신청자는 516명으로 전년도(197명)보다 61% 증가했다. 하지만 난민 심사 회부율은 2017년 10.6%, 2018년 46.7% 수준이었다. 불회부 결정을 받으면 취소 소송에서 승소할 때까지 공항에서 지낸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18일 기준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는 송환 대기실에 31명, 탑승동에 37명, 여객동에 6명의 난민 신청자가 머물렀다. 제2터미널까지 합치면 100여명이 공항에 갇힌 셈이다. 이날 피해 증언에 나선 이집트인 무함마드 아보지드도 약 3주간 인천공항에서 지냈다. 그는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해 지난해 4월 우리나라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했지만 면접관은 거짓이라며 그를 몰아세웠다. 그는 “공항에서 있던 시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돌이켰다. 일부 난민들은 수갑, 족쇄를 차거나 밀폐된 보호실에서 장기간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한얼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난민들은 공항에서 가스분사총이나 곤봉에 맞거나 수갑을 찬 채 비행기에 짐처럼 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보장돼야 할 변호사 접견권도 난민에게는 요원하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어렵게 난민이 변호사 접견을 신청해도 만나기 전에 강제 송환되는 사례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의 처우를 파악하고 난민의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을 현실화하는 등 법적·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난민 신청 작년 1만 6173명…1년새 63% 급증

    지난해 우리나라에 난민 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이 총 1만 6173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62.7% 증가한 역대 최다 수치다.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난민신청 건수는 2012년 1143명, 2013년 1574명, 2014년 2896명, 2015년 5711명, 2016년 7541명, 2017년 9942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난민 신청 급증은 사증 면제 제도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증 면제 제도는 국가 간 협정으로 입국 허가 없이 일정 기간 우리나라에 체류할 수 있는 제도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사증 면제 협정을 체결한 카자흐스탄(2496명)·러시아(1916명)·말레이시아(1236명) 등 3개국에서 지난해 난민 인정을 신청한 비율은 전체 56%를 차지했다. 그러나 실제로 난민으로 인정된 비율은 여전히 낮다. 지난해 난민 심사가 완료된 3879명 가운데 3.7%인 144명만 난민으로 인정됐다. 514명은 인도적 사유로 체류를 허가받았고, 나머지 3221명은 모두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기준 1만 7159명이 1차 심사를, 2772명이 2차 심사(이의 신청)를 기다리고 있다.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지난해 난민신청 1만 6173명…전년 대비 62% 급증

    지난해 난민신청 1만 6173명…전년 대비 62% 급증

    지난해 우리나라에 난민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이 총 1만 617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62.7% 증가한 역대 최대 수치다.법무부는 20일 세계난민의 날을 맞아 지난해 우리나라 난민신청 및 처리현황을 발표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난민신청 건수는 2012년 1143명, 2013년 1574명, 2014년 2896명, 2015년 5711명, 2016년 7541명, 2017년 9942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는 전년 대비 62.7%가 증가한 1만 6173명을 기록했다. 난민신청의 급증은 사증면제 제도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사증면제 제도는 국가 간 협정으로 입국허가 없이 일정 기간 우리나라에 체류할 수 있는 제도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사증면제 협정을 체결한 카자흐스탄(2496명)·러시아(1916명)·말레이시아(1236명) 등 3개국에서 지난해 난민인정을 신청한 비율은 전체 56%를 차지했다. 이어 중국(1199명), 인도(1120명), 파키스탄(1120명) 순으로 난민인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실제로 난민으로 인정된 비율은 극히 낮다. 지난해 난민심사가 완료된 3879명 가운데 3.7%인 144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됐다. 514명은 인도적 사유로 체류를 허가받았고, 나머지 3221명은 모두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기준 1만 7159명이 1차 심사를 기다리고 있고, 2772명이 2차 심사(이의 신청)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4년 4월 14일부터 난민인정 신청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 2013년 6월 말까지 20년간 난민신청자는 5580명로 연평균 280명에 불과했지만, 2013년 7월 난민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해까지 5년 6개월간 난민신청자는 총 4만 3326명으로 연평균 7877명으로 늘어났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전쟁 한가운데 선 이경, 서울서 ‘남북 이데올로기’ 잉태를 보다

    전쟁 한가운데 선 이경, 서울서 ‘남북 이데올로기’ 잉태를 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8회 서울의 문학2(박완서의 나목)’ 편이 지난 15일 중구 회현동과 명동 그리고 충무로에서 종로 일대까지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회현역 7번 출구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소설 속 여주인공 이경이 근무하던 옛 미군 PX(옛 미쓰코시백화점, 신세계백화점)와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거쳐 명동 유네스코 회관 11층 옥상정원에 올라 명동거리를 한눈에 내려다봤다. 명동성당~영락교회~고당 조만식선생 기념관~옛 수도극장(옛 스카라극장, 아시아미디어타워)~이순신 생가터를 지나 종묘 어귀 종로성당 앞에서 여정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소설 속 문학현장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줬다.1970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소설 ‘나목’은 한국전쟁 와중인 1951년부터 1953년까지 격동과 비극의 도시 서울을 그린 문제작이다. 소설가 박완서를 세상에 알린 데뷔작이고, 자전적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질은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는 서울과 서울사람들을 얘기하는 전쟁소설이다. 두 번의 피난과 두 번의 복귀는 서울의 정체성을 통째 바꿔 버렸다. 상호 적대적 체제 선택이라는 숙명을 안겼고, 부역과 전향이라는 천형을 새겼다.작가는 개성에서 태어났지만 8살에 서울로 올라와 매동초등학교를 다녔고 숙명여고에 입학했으며 서울 문리대에 합격, 6월 20일 입학식을 치른 지 며칠 뒤 전쟁을 맞았다. 실제 미8군 PX에서 근무했으며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인민공화국 치하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러나 소설처럼 주인공은 서울토박이도 아니고, 북촌 재동에 살지도 않았다. 폭사한 오빠의 죽음도 사실과 다른 소설적 장치에 불과했다. 소설은 그렇게 리얼리티와 허구를 절묘하게 버무렸다. 박완서의 전쟁체험은 이후 ‘엄마의 말뚝’(1982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년)에서 한 꺼풀씩 허울을 벗는다. 제목이 다른 4개 작품은 사실상 1개의 연작소설인 셈이다. 작가는 ‘나목’에서 시작한 전쟁체험을 ‘말뚝’에서 구체화했다. ‘싱아’가 수줍은 자화상이라면 ‘그 산’은 민낯이다. 작가는 “아무튼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1970년 봄 어느 날 단골 미용실에 가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뒤적이던 ‘여성동아’에서 여류 장편소설 모집이란 공고를 보고 갑자기 가슴이 두근대며 소설을 쓰고 싶어졌던 것이다”고 ‘중년 여인의 허기증’이라는 산문에서 창작 동기를 밝혔다. 그러나 정작 ‘소설을 쓰고 싶어졌던’ 이유는 따로 있었던 듯하다. “S회관 화랑은 3층이었다. …나는 미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을 보았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라는 대목이 소설에 나온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의 분신인 여주인공 이경이 남편 장태수와 덕수궁 은행나무 아래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한 독백이었다. 결혼은 장태수와 했지만 마음은 화가 옥희도에게 있었다. 여기서 S회관이란 지금의 남대문로 5길 37, 39 일대에 있었던 중앙공보관 건물 내 화랑을 말한다. 중앙공보관은 국정홍보를 담당하던 당시 공보실 건물로 나목의 모티브가 된 ‘박수근 유작전’이 1965년 열린 곳이다. 작 중 옥희도의 모델이 된 화가 박수근은 회고전을 준비하던 중 타계하면서 첫 개인전이 유작전이 됐다. 나목은 박수근이 1962년에 그린 ‘나무와 두 여인’이다. 박수근의 유작전을 본 박완서는 나목을 집필했다. 북창동 전주회관 뒤편 옛 중앙공보관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이경과 옥희도가 데이트를 즐겼던 명동은 옛 남촌 명례방이다. 우리는 명동 하면 일제강점기 메이지마치(명치정)와 혼마치(본정)를 떠올리지만 명동에 외국인의 DNA가 처음 새겨진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다. 훈련대장 이경하의 명동 집(주한 중국대사관)을 접수한 청나라는 이곳에 영사관 격인 상무공서와 상공회의소 격인 중화회관을 세운 뒤 자체 치안관서를 운영하면서 조선의 주인행세를 했다. 1894년 청일전쟁 패배 이전 3000명이 넘는 중국인이 조선의 상권을 쥐락펴락하다 일본인에 의해 쫓겨났다. 1945년 일제가 패망, 1948년 중화민국 대사관과 한성화교소학교가 들어서면서 청요리집, 중국과자집, 생활용품점, 환전소, 여행사, 약재상 등이 들어섰다. 1970년 서울거주 전체 외국인 1만여명 중 80%가 중국인이었다. 1966년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서울도심재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화교들은 서울 한복판 차이나타운에서 내쫓겼다. 서울은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대도시가 됐다.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서울 사람의 운명은 한강을 건넌 사람과 건너지 못한 사람으로 엇갈렸다. 이른바 도강파(渡江派)와 잔류파의 역경이다. 박완서의 소설 또한 서울을 떠난 사람과, 서울에 남은 사람의 얘기다. 이때의 기억이 1970년대 이후 한강 이남 즉 강남개발과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탄생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겪은 한강도하의 악몽이 준 심리적 안정감이다.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한국전쟁의 실체는 피난이다. 피난은 전쟁의 참화를 모면하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상호적대적인 사상과 체제에 대한 선택이기도 했다. 두 번의 피난(1950년 6월 28일, 1951년 1월 4일)과 두 번의 복귀(1950년 9월 28일, 1951년 3월 15일) 과정에서 서울은 기원전 도시생성 이후 최대의 수난을 겪었다. 불과 10개월 사이 각각 90일과 60일에 걸쳐 발생한 일대 사건이었다. 도합 150일 동안 남과 북, 우익과 좌익,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군과 인민군이 서울을 번갈아 점령했다. 이는 장차 서울이라는 지역과 서울에 사는 사람의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처음 전쟁이 발발했을 때 사람들은 도시의 함락과 수복을 자신과는 무관한 권력과 이념의 다툼으로 인지했지만 전쟁 과정을 통해 서울은 이데올로기의 불꽃이 번쩍이는 비극적 도시가 된다. 1950년 6월 28일 제1차 함락 이후 피난을 못 가거나 안 간 잔류시민들은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1950년 9월 28일 1차 수복으로 서울을 떠났던 피난민이 다시 돌아오면서 도강파는 ‘반공 시민’의 지위를 보장받은 반면 잔류파는 적 치하에서의 결백을 증명해야 했고, 반대의 경우 보복을 각오해야 했다. 부역과 전향이 반복됐다. 서울은 1차 인공 치하 90일간 벌어진 일로 배신과 보복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1·4 후퇴로 우려하던 2차 서울점령이 현실화하자 서울은 텅 비었다. 1949년 140만명이 살던 대도시가 노인과 환자 그리고 그를 돌보는 극소수 가족만 남고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서울을 떠났다. 인민군이 가할 억압과 국군에게 당할 고초를 피하고자 했다. 이는 1951년 3월 15일 재수복으로 실현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돈의 정체성이 이 과정에서 잉태됐다. 박완서의 나목 연작은 이 시기 서울과 서울 사람들에 대한 증언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9회 3·1운동 표석을 찾아서 일시 및 집결장소: 6월 22일(토) 오전 10시 종각역 4번 출구 보신각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공무원 81명이 2만명 떠맡아…졸속 심사에 기댄 난민 운명

    “담당자 잦은 인사에 전문성도 결여” 우리 정부가 난민 심사 인력을 올해 두 배 이상 늘렸지만 이미 크게 늘어난 난민 신청자를 제대로 심사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1명이 260여명을 떠안아야 하는 업무 과부하는 물론 공무원 보직 순환도 심사의 전문성을 떨어뜨려 심층 심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요소로 지적된다. 세계난민의날을 나흘 앞둔 16일 난민인권센터의 국내 난민 현황 통계 분석과 법무부 통계 등을 종합하면 지난 4월 기준 난민 심사 절차를 밟고 있는 인원은 2만 1341명에 이른다. 현재 담당 공무원은 모두 81명이다. 1명당 263명을 맡고 있는 셈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38명에 불과했던 전담 인력을 두 배 이상 늘렸지만 쌓여 있는 심사 대상자를 살펴보기도 버거운 수준이다. 당초 법무부 계획대로 올해 안에 91명까지 증원된다 해도 1명당 234명꼴이다. 난민 신청은 1차 심사와 2차 이의신청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1만 9931명(12월 기준)의 심사 결과 대기 인원 가운데 각 지역 출입국외국인청에서 1차 심사 중인 사람은 1만 7159명에 달했다. 또 난민 심사 신청을 하고 결과를 받기까지 평균 10.6개월이 걸렸다. 난민인권센터는 “심도 있는 심사와 사실 조사가 필요하고, 신청자들이 겪은 박해 진술에 자주 노출되는 등 강도 높은 업무 특성이 담당 공무원 숫자에는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1차 심사에서 빠진 정보나 통역의 오류 등을 보완할 기회를 주는 2차 심사를 맡는 난민심사위원회 또한 인력난에 버겁게 운영되는 실정이다. 난민위원회는 15명의 공무원과 외부 전문위원으로 구성돼 연간 4~6회 열린다. 지난해 위원회가 심사한 건수는 2613건으로 회당 500~600건을 한꺼번에 심사한 셈이다. 심사 담당자들의 전문성도 고질적 문제로 지적된다. 수년에 한 번씩 부서를 옮기는 보직 순환 제도 탓에 난민 담당 공무원이 정기적으로 바뀌어 전문성 있는 심사 제도 운용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심사 결과가 나온 3879명 중 난민 인정자는 144명(3.7%)에 불과했고, 올해 4월까지 1238명 중 19명(1.5%)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13년 7월 난민법 시행 이후 인정률이 5%를 넘지 못하고 있다. 난민인권센터 관계자는 “보직 순환으로 인해 난민 심사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쌓아 난민 심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적극적으로 마련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미국과의 이민자 ‘이면 합의’ 끝내 인정한 멕시코

    미국과의 이민자 ‘이면 합의’ 끝내 인정한 멕시코

    미국과 중미 이민자 차단을 위한 협상에 합의한 멕시코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장하는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중미 이민자를 미국 대신 멕시코로 망명시키는 이른바 ‘안전한 제3국’ 조항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인했다. 15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은 전날 의회에서 미국과의 추가 합의 문건을 공개했다. 양국은 지난 7일 중미 이민자 문제에 대한 협상을 타결하고 그에 따라 멕시코는 6000명의 국가방위군을 국경에 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 압박에 따른 것이었다. 백악관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의 미 유입 차단에 소극적이라며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지난 10일부터 멕시코산 상품에 5%의 관세를 부과해 오는 10월까지 점진적으로 최대 25%까지 관세율을 올리겠다고 예고했었다. 이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암로) 멕시코 대통령은 협상단을 급파해 미국의 관세 부과를 무기한 연기하는 협정을 이끌어냈다. 미국 내에서 멕시코와의 이민 협상 내용이 결국 수개월 전에 나온 것을 재탕했다는 비난이 일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멕시코 간 이면 합의가 담겼다고 주장하는 문서 일부를 공개했다. 멕시코는 이를 부인하며 진실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에브라르드 장관이 기존 입장을 번복하며 공개한 문건에는 양국 합의 45일 후 미국이 멕시코의 중미 이민자 억제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멕시코 정부는 그로부터 45일 이내에 합의가 실행되도록 국내법에 따라 가능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 중미 이민자들이 미국 대신 멕시코에서 망명을 신청하도록 하는 ‘안전한 제3국’ 조항과 비슷한 표현이 포함됐다. 그러나 에브라르드 장관은 여전히 이를 부인하면서 이 문건은 양국 대통령이나 외교 수장이 아닌 멕시코 외교부 법률고문과 미 국무부 카운터파트가 서명해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으로 가려고 멕시코로 들어온 제3국 국민의 귀환 및 난민 지위 요구 처리와 관련한 양자 회담을 즉각적으로 열기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브라르도 장관의 이 같은 해명은 오히려 멕시코 의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의원들은 추가 합의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미·멕시코 합의가 멕시코 상원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발효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민혁이가 아버지와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민혁이가 아버지와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직계 보호자 아버지 난민 인정돼야”“민혁이 아버님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죽습니다. 공정한 심사로 난민으로 인정해 주세요.” 10대 청소년들이 난민 친구의 아버지를 돕기 위해 10일 일일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다. 이란 난민 소년 김민혁(16)군과 김군의 친구 4명은 이날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제협약인 난민협약과 국내법인 난민법에 의해 규정된 ‘가족 재결합’ 원칙에 따라 민혁이의 직계 보호자인 아버지는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이슬람 율법에 따라 개종을 중죄로 여기는) 이란으로 귀국하면 (기독교로 개종한) 아버지의 생명은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군의 아버지 A씨는 11일 난민 재심사를 받는다. 김군과 9년지기라는 박지민(잠일고 1년)군은 “내가 돕지 않아 민혁이가 잘못된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면서 “이 자리에 나온 건 작게는 민혁이 아버지를 위해, 크게는 가혹한 난민 심사 시스템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김군은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이 자리에 왔다”면서 “난민을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차별이 아닌 존중으로 대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2010년 일곱 살 때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김군은 기독교로 개종했다. 2016년 처음 난민신청을 했지만 불인정됐고 행정소송에서도 최종 패소했다. 김군은 중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지원을 받아 재심사 절차를 밟았으며 지난해 10월 끝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1차 신청 때 아들과 마찬가지로 불인정 처분을 받았던 A씨는 역시 소송을 진행하다가 상고를 포기하고 올해 2월 재심사를 신청한 상태다. 이번에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이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에 올해 고등학생이 돼 흩어졌던 김군의 친구들이 다시 뭉쳤다. 김군은 11일 아버지에 대한 난민 재심사가 열리는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별관 앞을 지킬 예정이다. 심사는 2시간가량 진행되며 2주 후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글 사진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이란 난민 김민혁군, 혐오 차별 직접 홍보

    이란 난민 김민혁군, 혐오 차별 직접 홍보

    이란 난민 김민혁(17)군이 혐오 차별 철폐에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혐오 차별 예방 ‘마주’ 캠페인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겪은 한국 사회의 편견과 혐오를 이야기하고 공익광고 내레이션도 맡았다. 4일 인권위는 혐오 차별 예방 캠페인 선포식을 열었다. 캠페인 명칭은 ‘마주’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돌아보고, 다름을 인정하며, 혐오 차별에 대항하고 연대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선포식을 함께한 김군은 “‘품에 들어온 생명은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지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던, 나를 겨냥한 인터넷 댓글이 가슴에 박혀 있다”면서 “더이상 숨지 않고 난민과 이주민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 편견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0년 7살 때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김군은 기독교로 개종해 고국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슬람 율법상 타종교 개종은 중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016년 김군은 한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김군을 돕기 위해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 팔을 걷어붙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제기와 출입국외국인청 앞 시위 등 김군의 난민 지위 인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결국 지난해 10월 김군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앞으로 인권위는 마주 캠페인의 일환으로 김군의 목소리로 라디오 공익광고를 방송한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