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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순의 낮꿈꾸기] 정치·기독교·미디어, 그 파괴적 삼각 동맹

    [강남순의 낮꿈꾸기] 정치·기독교·미디어, 그 파괴적 삼각 동맹

    “드디어 문재인을 벌써 하나님이 폐기처분했어요. 지금 대한민국은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냐,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어….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전광훈의 발언이다. 그는 후에 “‘하나님 까불지 마! 나한테 죽어’라는 말의 본심은 ‘문재인 저 ○○ 빨리 죽여 달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전광훈은 ‘증오의 레토릭’을 애국 행동으로 포장한다. ‘세계기독청’이 완성돼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의 회비와 면세점 수입까지 계산하면 한 달에 ‘1조원’이 생긴다고 하는 전광훈은 능숙하고 기만적인 기독교 사업가다. 8월 15일 집회에 오지 않으면 “인간으로 살 필요가 없다”며 “주민등록증을 회수”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혐오와 공포, 이 두 가지가 바로 전광훈 레토릭을 구성하는 핵심이다.그런데 ‘전광훈’은 단지 예외적 존재인가. 유감스럽게도 나는 도처에서 무수한 ‘전광훈들’을 본다. 예수를 내세우면서 자본주의적 욕망을 펼치는 사업을 하는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두 가지, 즉 권력과 물질적 이득이다. ‘전광훈들’과 같이 대중을 선동하는 기독교 사업가는 스스로 자생할 수 없다. 기생해야 하는 다른 권력은 바로 극우 정치와 미디어이다. 극우 정치·기독교·미디어의 기생적 동맹을 드러내는 장면을 보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전광훈이 주도하는 집회에 등장해서 “전광훈 목사님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만세”라고 외쳤다. 이어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그리고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막강한 정치권력을 행사해 온 황교안이 연단에 등장해서 악수한다. 환호하는 청중 앞에서 세 사람은 미소를 띠며 사진을 찍는다. 극우 기독교 사업가와 정치인이 각자의 권력 확장을 위해서 서로에게 기생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이 장면은, 극우 미디어를 통해서 사진과 함께 선동적 제목을 붙인 기사로 확산된다. 이렇게 해서 진실을 왜곡시키고 혐오와 공포의 정치를 확산시키는 극우 정치·기독교·미디어의 ‘파괴적 삼각 동맹’은 비로소 완성된다.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나치가 파괴했던 한 유대인 회당을 방문했다. 교황은 그 자리에서 “독일과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20세기에, 신이교주의(neo-paganism)에서 태동된 광기적 인종차별주의 이데올로기가 일어나서 유럽의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는 정권을 탄생하게 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치 치하에서 벌어진 ‘인류에 대한 범죄’를 ‘신이교주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교황의 말은 당시 히틀러 치하의 정치와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가 맺은 파괴적 동맹관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마치 전광훈을 ‘이단’으로만 치부하면 한국 기독교의 복합적 문제들이 가려진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히틀러는 자신의 권력 확장을 공고히 하고자 ‘적극적 기독교’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전개하고 1936년 독일의 국가교회를 탄생시켰다. 성서의 자리에 ‘나의 투쟁’이, 십자가의 자리에 꺾어진 십자가 (하켄크로이츠)인 ‘나치 문양’이 대체됐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나는 독일민족과 국가의 지도자인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하고 복종할 것을 맹세합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라는 선서를 했다. 독일의 기독교인들은 히틀러를 지지하는 다수의 ‘적극적 기독교’의 교인들과 히틀러에게 저항하며 디트리히 본회퍼를 중심으로 구성된 소수의 ‘고백교회’ 교인들로 이분화됐다. 히틀러는 다수 기독교인의 협조와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권력욕망을 성취했다. 끔찍한 ‘인류에 대한 범죄’가 히틀러라는 한 개인에 의해서만 저질러진 것이라고 보면 안 되는 이유이다. “기독교인들은 나를 사랑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말이다. 트럼프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조차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시시때때로 신과 성서를 들먹이고, 교회 앞에서 성서를 손에 들고서 기자들이 사진 찍게 하는 연기를 한다. 자신에게 표를 주었던 극우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이 성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이미지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미디어 장치가 없었다면 트럼프의 이러한 가식적 이미지 메이킹은 확산되지 못한다. 히틀러와 트럼프가 사용한 미디어와의 기생적 동맹 관계는 매우 유사하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을 통제하고자 “거짓말하는 언론”(lying press)이라는 개념을 시시때때로 차용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한다. 히틀러는 ‘국가 대중계몽선전부’를 만들어서 요제프 괴벨스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괴벨스는 이 부처를 통해서 신문, 잡지, 책, 공공 집회, 예술, 음악, 영화, 라디오 등을 통제하고 나치 정권을 확고히 하는 기능을 하도록 했다. 모든 미디어를 나치 정권의 권력 확장을 위한 도구로 만드는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트럼프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이라는 뉴미디어를 통해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을 불신하도록 선동하고 유리한 것만을 부각하는 방침을 쓰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의 맨 앞장에 선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여성·난민·성소수자·타 종교·‘빨갱이’ 혐오 등 혐오 정치를 기반으로 극우 보수 정치인들과 공동 전선에 선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은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았고, 지금은 현 대통령을 ‘종북 빨갱이’라며 탄핵을 외쳐댄다. 히틀러는 유대인, 외국인, 성소수자, 공산주의자에 대한 혐오를 무기로 삼았다. 트럼프도 난민·흑인·외국인·여성·이슬람·성소수자 혐오 등 다양한 혐오의 가치를 무기로 삼는다. 혐오의 대상을 ‘위협적 존재’로 부각하는 전략은 매우 유사하다. 위협적 존재를 ‘공동의 적’으로 삼은 보수적 기독교 지도자들은 히틀러에게, 그리고 트럼프에게 지지를 모아 준다.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혐오 가치를 극대화하고 혐오의 대상을 ‘공동의 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신과 성서를 소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전광훈’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보수기독교 역시 신과 성서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난민·타 종교·‘빨갱이’·여성 혐오를 먹고 산다. “중국이 기독교를 박해해서 하나님이 화가 나 전염병으로 중국을 심판한다” 또는 “차별금지법 때문에 하나님이 한국을 세균으로 벌을 내린다”라고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도처에 있다. 이들은 전광훈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류의 역사에서 야욕에 찬 정치인들은 언제나 기독교를 이용하고, 비판적 성찰이 부재한 반지성주의에 빠진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정치인들과 동맹을 맺은 기독교 지도자의 선동에 넘어가서 이용당한다. ‘전광훈’이라는 이름은 한국 보수 기독교인들의 문제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 전반의 뿌리 깊은 질병을 드러내는 표면적 예일 뿐이다. 전광훈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전광훈과 함께했던 정치인들이나 정당은 그와 선 긋기를 하고, 그를 ‘문제가 있는 개인’으로만 돌리는 것은 전광훈식의 기독교, 그와의 동맹적 관계를 맺는 정치인들, 그리고 미디어의 파괴적 삼각 동맹이 왜 등장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보지 못하게 한다. 도대체 한국 사회 전반에 어떠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가. 비판적 물음이 결여된 공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구성원이 될 때, 종교·정치 영역에서 비판적 사유를 작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판적 사유의 부재, 질문을 억누르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사유기능은 정지된다. 그들은 다만 ‘선동’될 뿐이다. ‘자유’라는 동전의 이면은 ‘책임’이다. 종교적 자유란 이름으로 공공세계에서 무책임한 행동들을 하며 구체적인 사회적 해를 끼칠 때, 그 종교는 개인과 사회에 파괴적이다. 개인의 종교적·정치적 자유는 공공선을 해치거나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최소한의 책임성이 수반될 때 비로소 존중받을 수 있다. 기독교 사업가의 선동에 ‘아멘’을 부르짖는 대중들은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지 못한다. 이미 사유기능을 마비시키는 종교적 마약을 흡입했기 때문이다. 교육·정치·종교·미디어 등 특정한 한 부분에서의 개혁은 사회 전체 개혁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각 영역이 총체적으로 변화돼야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각각의 권력 확장과 이득의 극대화를 위해 뭉친 극우 정치·기독교·미디어의 파괴적 삼각 동맹을 끊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동맹 관계가 지속될 때 종교는 마약이 되고 미신이 되며, 그 종교가 위치한 사회 속에 성숙한 민주정치와 미디어가 뿌리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개혁은 상호의존적’임을 기억하자. 글 텍사스크리스천대(TCU)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얼굴없는 작가’ 뱅크시, ‘난민 구조선’에 자금 지원…비밀리에 출항

    ‘얼굴없는 작가’ 뱅크시, ‘난민 구조선’에 자금 지원…비밀리에 출항

    영국 국적의 ‘얼굴없는 예술가’로 알려진 뱅크시가 난민을 돕기 위한 구조선에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의 27일 보도에 따르면 뱅크시는 북아프리카를 출발해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을 구하기 위한 배에 자금을 보탰다. ‘루이 미셸’이라는 이름의 이 배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무정부주의자의 이름을 딴 구조 선백으로, 지난 18일 스페인 발렌시아 인근의 한 항구에서 비밀리에 출항했다. 이 배 안에는 수색과 구조 작업에 능숙한 난민 구조 활동가들이 탑승했고, 27일 리비아 인근에서 여성 14명과 아이 4명 등 89명의 난민을 구조했다.뱅크시가 난민 구조 임무에 참여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수천 명의 난민을 구조한 NGO 단체 보트의 선장이었던 피아 클램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이메일에서 “신문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읽었다. 나는 영국 출신의 예술가”라고 소개한 뒤 “(난민 구조를 위한) 새 배를 살 때 자금을 보태고 싶다. 방법을 알려 달라”고 적었다. 피아 클램프는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처음엔 뱅크시의 이메일이 그저 장난인 줄 알았다”면서 “뱅크시는 정치적인 관여가 아닌 난민 구조에 관련된 재정적 지원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뱅크시의 자금을 지원받은 루이 미셸호가 비밀리에 출항한 이유는 난민을 위협하는 특정 조직이나 단체를 피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이번 난민 구출 작전은 난민들을 데려다 학대하고 민병대로 팔아넘기는 세력이 존재하는 리비아에서 이뤄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리비아 해안 경비대는 바다를 건너는 난민들을 학대하는 것도 모자라 돈을 받고 팔아넘기고 있으며, 이렇게 붙잡힌 난민들은 인간 이하의 모진 고문과 학대, 강간을 당하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뱅크시가 이 배에 지원한 자금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루이 미셸호 외벽에는 구명조끼를 입은 소녀가 하트 모양의 안전 부표를 잡고 있는 뱅크시 특유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 뱅크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난민 80여 명을 태운 뱅크시의 루이 미셸호는 지중해 중부에서 난민들이 하선하기에 안전한 곳을 찾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무려 20년 동안 자신을 철저히 숨기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뱅크시는 공공장소에 남몰래 작품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5월에는 코로나19에 맞서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을 ‘새로운 영웅’으로 표현한 작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민족은 근대 정치 부산물? 유전자가 끄는 자연 본능!

    민족은 근대 정치 부산물? 유전자가 끄는 자연 본능!

    18세기 근대화 혁명 거쳐 ‘민족’ 개념 만든 유럽 제국시절에도 민족은 서로 뭉치며 흥망 이어가 인간은 이방인보다 같은 유전자 가진 친족 선호국가 분쟁·이념 싸움도 민족 개념으로 극복해야 한때 우리는 ‘백의민족’이라는 말로 한 민족임을 과시했다.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관해 거부감이 아주 크지는 않다는 말이다. 유럽은 조금 다르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세에 나왔다거나, 18세기 프랑스혁명이나 산업혁명과 더불어 출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교구 단위로 느슨하게 연결된 소규모 농촌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결속하기 위한 사회적 통합의 노력이자 정치적 과정에 따른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민족이 자본주의와 산업화, 도시화, 대중 정치 참여, 인쇄술 등과 같은 접착제로 이어 붙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아자 가트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석좌교수는 ‘민족’을 통해 이런 주장을 반박한다. 전작 ‘문명과 전쟁’,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이라는 틀로 세계사를 설명한 저자는 이번엔 민족이라는 틀로 역사를 풀어낸다. 저자는 우선 민족을 ‘친족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지니고 국가 내에서 정치적 주권이나 자치권을 가졌거나 이를 추구하는 집단’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역사를 더듬어 민족의 기원을 찾는다. 수렵 채집 집단에서 시작한 친족 집단이 씨족을 거쳐 부족으로 발전한 과정, 기원전 1만년 전에서 5000년 전 사이에 부족 조직이 대규모 종족으로 거듭나고 국가가 형성된 과정, 고대 이집트와 중국을 오가며 여러 민족의 흥망을 분석한다. 우리가 아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평소 자주 대립했지만, 외세 위협이 닥쳤을 때는 민족을 중심으로 서로 동맹을 맺기도 했다. 또 제국은 영토 내에 있던 민족을 없애려 했지만, 오히려 민족 국가의 결속을 자극했다. 제국은 학교, 보편 군역, 미디어, 언어 교육 등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무력이나 회유로 민족을 지배하려 했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35년을 견뎌 낸 우리로선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인간 본능에는 집단을 이루려는 성향이 있다. 인간은 이방인보다 자신과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을 더 선호하도록 진화했다는 사회생물학이 그 근거다. 부족국가에서 현대의 유럽에서 생겨난 민족국가들까지 살핀 저자는 민족이 근대적 혁명으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선동한 촉매제로 작용했다고 결론 짓는다. 현재로 눈을 돌린 저자는 민족주의적인 원인으로 발발하는 전쟁을 우려한다. 민족 통일과 민족 독립을 외치며 중동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유럽 전반에 폭력적 테러가 이어진다. 난민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두고 유럽 나라들 간 의견이 충돌한다. 저자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앞으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다시금 강조한다. 전 세계 유례없는 민족 해방운동인 3·1운동으로 광복을 맞은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국부(國父)가 누구냐를 두고 패를 갈라 싸우고, 이번 광복절에는 또다시 친일을 두고 쪼개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뿐인가. 종교를 내세워 광장 한복판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었던 날 이후 사회는 다시 감염병 공포에 휩싸였고 갈등이 이어진다. 책은 분열한 사회를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어떻게 다시 이을 수 있는지 고민하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원고지 10만장에 담긴 ‘청년 방민호의 꿈’… 세상 모든 글을 품다

    원고지 10만장에 담긴 ‘청년 방민호의 꿈’… 세상 모든 글을 품다

    오래고도 거센 장마 끝자락에 서울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는 또래이고, 공동 경험을 여럿 나눈 동료이고, 서로의 성정을 잘 알고 있어 이야기의 핵심을 집약해 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새삼 그를 만나기로 한 건 이번에 그의 신작 ‘경원선 따라 산문여행’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책에 얽힌 이야기, 그동안 걸어온 문학 인생 이야기며 앞으로 매진해 갈 분야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방민호는 세상이 다 아는 비평가요, 근대문학 연구자다. 그런데 그는 근자에 들어 시와 소설 등 창작 부문에 가없는 열정을 부여하면서 존재 전환 과정을 부단히 치르고 있다. 논리적 해석과 창의적 작업을 겸하면서,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창작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해 가는 중이다. 나는 언젠가 ‘시’야말로 방민호의 양도할 수 없는 존재론적 원적(原籍)이라고 적었다. 기억과 고백의 양식인 서정시가 그에게 맞춤한 장르일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시집 ‘숨은 벽’(2018)은 그러한 속성을 여지없이 충족시키면서 지난날에 대한 깊은 회감(回感)을 충실하게 보여 준 바 있다. 언제나 선하게 글썽이는 눈을 가진 그가 들려준 내면 토로의 한 정점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장소성의 원형을 찾아 ‘경원선 따라 산문여행’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시간적으로는 일제강점기를, 공간적으로는 서울에서 의정부, 철원을 지나 원산 역에 이르는 철로를 따라 그 코스를 안내하는 책이다. 거쳐 가는 역마다 그 당시 문인들의 경험이 담긴 수필, 화제를 담은 글들, 신문 기사들이 친절하게 제시된다. 일례로 경원선을 타고 청량리역에 내린 사람들 가운데 역병 걸린 사람이 있었는데 방역 문제로 시끄러웠던 장면은 우리 시대를 환기하는 시의성조차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철로를 따라 걷는 시대 여행이다. 일찍이 그가 수행했던 ‘대전’, ‘서울’의 탐사 이후 새로운 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퍽 새로운 방식으로! “저는 예산에서 났지만 대전에서 성장해 대전을 고향처럼 생각해요. 스무 살 때 서울에 와서 대전과 서울의 문화적 차이를 경험한 후 ‘장소’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요.” 그래서 그는 연구서 ‘서울문학기행’(2017)과 장편소설 ‘대전 스토리, 겨울’(2017)을 통해 서울과 대전의 지리적 탐사를 완결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책이 그동안 가졌던 북한문학 연구의 관심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했다. 체제의 변화에 따른 북한문학 연구가 그동안 이루어져 왔지만, 방민호는 그것을 장소라는 지역학적 맥락에서 수행하려고 한다. 중요한 역사성을 가진 북한 도시와 문학의 관련성을 따지려는 것이다. ‘개성-해주-평양-정주-원산-청진’이 전인미답 상태로 남아 있지 않은가. “또 하나는 경원선과 경의선 철로와 그 일대를 중심으로 문학과의 연관성을 탐구하려고 해요. 철도는 근대성을 상징하지 않습니까? 철도와 함께 열린 공간들에 관심이 많아요.” 경의선 쪽도 곧 준비된다고 한다. 특별히 그쪽은 한국 근대문학과 깊은 연관성을 보여 줄 듯하다. “북한은 저개발 상태가 오래돼 오히려 장소성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설사 크게 변했다 해도 현재 안에는 과거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탐구하고 싶어요.”●다장르 안에 흐르는 타인의 목소리 그동안 방민호는 원고지 10만장가량의 글을 썼다. 세상의 모든 글쓰기에 청춘과 중년의 세월을 바쳤다. 언어를 내놓는 방식도 다양해 평론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연구물로 확장됐고, 시와 소설과 산문으로 줄기차게 뻗어 갔고, 이제는 꼼짝없는 다장르 종사자가 됐다.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글쓰기 작업에 다장르를 껴안고 가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역동적이다. 그래도 최종적 글쓰기의 욕망은 어디에 있을까? “한 분야에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편력을 보이는 자의식이 있어요. ‘쪽모이’라는 우리말이 있어요. 여러 조각을 모아 더 큰 조각을 만드는 일을 말하는데, 저는 여러 쪽을 모아도 전체가 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 나름으로 삶의 전체성과 우주의 무한성 같은 데 도전하려 합니다.” 그는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모두 나름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창작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비평과 연구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어 천천히 창작 쪽으로 귀환해 부지런히 시와 소설을 썼다. 스스로도 시인의 기질을 인정하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온 궤적의 산문성이 내러티브에 대한 운명을 요청한다고 했다.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산문적 드라마로 엮어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다. “시와 소설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저를 이루고 있고, 또 연구나 비평과의 긴장 속에서 그것이 통일돼 글쓰기를 해 가는 것이 저의 인생이 될 것 같아요.” 물론 무엇으로 남을지는 시간만이 알려 줄 것이다. 다만 그는 상아탑의 대학교수로 남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인생은 그렇게 여러 태도들이 공존하고 통합하는 것 아니겠는가. 글쓰기의 즐거움도 다 다를 것 같다. “작가 연구를 즐겨요. 작가의 정신과 영혼과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매력을 느껴요. 비록 낡은 방식이지만 작가에게서 텍스트의 본질을 읽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그는 작가의 가슴속에 들어가 그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논리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했고 그때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그는 자신을 이야기할 때조차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하는 성정의 사람이다. 첫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2010)에서 우리는 서정시를 쓸 때조차 타인을 대변하는 그를 만나게 되지 않는가. 자기만족에 끝나는 시와 소설을 쓰지 않고, 타인의 목소리가 들어와 주인 역할을 하는 작품을 쓰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다가온다.●모순의 복합성과 ‘청년 방민호’의 꿈 방민호는 장르의 다양성 못지않게 연구 대상의 프레임이 넓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 그는 이광수, 채만식, 이태준, 이효석, 이상, 박태원, 김남천, 황순원, 손창섭, 최인훈 같은 작가들에 대한 독보적 연구를 남겼다.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제가 하는 연구나 행동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 같아요. 또 특정 작가에 대해서도 비판이냐 옹호냐, 좌냐 우냐, 이런 질문을 받곤 해요(웃음).” 그러나 그는 문학이란 그러한 이념적 구획으로 나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나 이념이라는 유기체를 포함하면서도 넘어서는 전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때 우리는 ‘근대’라는 복합성을 관통하고자 하는 그의 진정성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오해받는 두려움 때문에 그러한 전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의 믿음이, 이념적 귀속성을 구구절절 따지는 한국 사회의 풍토에서 훨훨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이처럼 단일한 프레임으로 착안할 수 없는 모순의 복합성이랄까 하는 것들을 방민호는 지속적으로 탐구해 간다. 물론 그 과정에는 방민호 자신의 실존적 자의식이 투영돼 있다. 그가 요즘 공들여 접근하는 ‘탈북문학’ 역시 방민호만의 그러한 스펙트럼을 보여 주는 독보적 범주일 것이다. 북한문학과도 다르고, 한국 근대문학과도 다른 제3지대 ‘탈북문학’에 대한 그의 목소리는 인간 탐구라는 문학 본연의 기능에 대한 기대로 차 있다. “반체제문학, 난민문학, 증언문학으로 생각해 봅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나 가오싱젠의 ‘나 혼자만의 성경’은 소련과 중국의 전체주의 체제 아래서 삶의 심층을 들여다보았지요. 갈 길이 멀지만, 탈북문학도 그러한 가능성을 함축한 귀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그는 인간다움을 생각하던 ‘청년 방민호’의 상(像)을 이렇게 여전히 고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서사가 많을 것 같다. “다음은 ‘대전 스토리, 겨울’의 주인공 ‘이후’가 세월이 지나 다시 서울로 돌아와 강의교수라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동시대적 표상이 될 것 같습니다.” 구상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됐고, 앞부분을 고쳐 쓰다가 얼마 전 제대로 된 틀이 잡혔다고 한다. 방민호 특유의 약소자(弱小者)의 삶에 대한 탐사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리라 기대해 본다. “저는 제가 가장 낡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요즘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제가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저는 지금도 제가 낡은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낡음 속에서 씨앗을 만들어 싹을 틔울 수 있는가를 고민합니다. 제 화두는 바로 그 ‘씨앗’이에요.” 그는 이러한 씨앗 찾기에 정신적 모델이 됐던 김윤식 교수의 연구 스타일을 떠올리고, 자유로운 방임의 가르침을 부여했던 박동규 지도교수의 넉넉함을 환기하고, 생의 고비마다 도움을 준 오현 스님을 잊지 않으면서, 겸허함과 성실함을 두루 갖춘 ‘글쟁이 방민호’를 생각한다. 겸허와 성실로 채워져 갈 원고지는 방민호의 또 다른 도약을 가져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쪽모이를 완성한 ‘청년 방민호’의 꿈을 환하게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펠로시보다 팔로어 많은 31세 의원, ‘90초 연설’서 美민주당 미래 보였다

    펠로시보다 팔로어 많은 31세 의원, ‘90초 연설’서 美민주당 미래 보였다

    올해 31세의 최연소 미국 연방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괴물 신인’에서 ‘민주당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주 막 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불평등 타파를 호소한 90초짜리 연설을 계기로 미국인들에게 차세대 지도자로서 강렬히 각인됐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어머니, 뉴욕 빈민가 브롱크스 출신 아버지를 둔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018년 미 중간선거 경선에서 10선의 현직 조 클로리 의원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정계에 진출했다. 당시 29세의 나이로 사상 최연소로 당선된 그는 대학 졸업 후 바텐더로 일하다 2016년 대선 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캠프에 참여한 게 정치 이력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뉴욕시 14선거구는 나 같은 이민자 출신 노동자 계급, 소수인종,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필요하다”며 유권자들을 매료시켰고, 당시 무슬림 난민·원주민 출신 여성 의원들과 함께 ‘마이너 당선자’로 관심을 모았다. 이후 약 1년 반 새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스토리텔링을 앞세워 정계 입문한 신예에서 콘텐츠와 잠재력, 대중성을 겸비한 차세대 주자로 급성장했다. ‘미국의 민주주의사회주의자들’(DSA) 일원으로 당내에서도 급진 좌파에 속하면서, 트위터 팔로어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보다 많은 스타 의원이다. 지난달엔 ‘빈곤에 대해 강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의사당에서 “나쁜 X”이라고 공개 욕설한 테드 요호 공화당 하원의원을 향해 반박한 의회 발언이 명연설로도 회자됐다. 차분한 목소리로 무장한 그는 “그 말은 이 나라 모든 여성들에게 한 말”이라며 “그런 욕설을 해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문화, 여성에 대한 폭력·폭언을 용인하는 문화, 그것을 지탱하는 권력구조의 문제”라고 일침을 놨다. 특히 요호 의원이 “나도 부인과 두 딸이 있다”며 ‘다정한 가장’ 이미지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 데 대해 “가정적 남자 이미지를 갖고 있어도 아무런 가책,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여성을 모욕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 이 나라 모든 여성, 딸들이 그런 말을 들어도 된다고 인정하게 한 셈”이라고 조목조목 따졌다. 지난 18일 민주당 전당대회 지지 연설에서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불과 90여초를 할당받았지만 논리정연한 전개로 다시금 인상을 남겼다. 그는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수를 이미 채운 조 바이든 대선 후보 대신 규정에 따라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말하고 “공중보건, 교육, 최저생계, 인종 문제, 동성애 혐오 등 (도널드 트럼프가 남긴) 폭발적 위기로부터 구조적인 대안을 누가 찾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수백만 미국인이 대량 추방과 실업, 건강보험 결여에 대한 깊이 있는 제도적 해결을 원하는 시점”이라며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남겼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서울대 로스쿨생들 “한부모 결혼이주민 양육 위한 체류 보장을”

    서울대 로스쿨생들 “한부모 결혼이주민 양육 위한 체류 보장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이 한부모 결혼이주민 가족을 위해 나섰다. 이 대학원 2학년인 염주민씨 등 7명은 지난 4일 여성아동인권클리닉 강좌를 맡은 소라미(46) 임상교수와 함께 한부모 결혼이민자의 체류권 보장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현재 시행 중인 출입국관리지침은 한부모 결혼이주민은 자녀가 성인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명시했다. 염씨와 학생들은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에 따라 행복추구권과 가족결합권은 한국 국적자만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이라며 “차별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결혼이주민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체류 자격 등 제도 개선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다음주 헌법재판소에 강제 추방 대상으로 보이는 외국인을 출국 시까지 보호소에 구금하는 외국인 보호제도의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도 낼 예정이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1월 미성년자 외국인까지 보호소에 가두는 이 제도가 과잉금지 원칙과 적법 절차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지 판단해 달라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평소 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염씨는 “학생들이 각자 아동구금의 특수성, 과잉금지의 원칙, 국제법 존중주의 부분을 나눠 의견서를 만들었다”면서 “하나의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당사자 상황과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은 지난해 8월 공익법률센터를 열고 공익 관련 실무 수업을 강화했다. 학생들의 공익 활동도 장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주영 공익법률센터장의 지도로 로스쿨 학생들이 대법원에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서울대생들 “성인 자녀의 한부모 결혼이민자도 체류 보장해야”

    서울대생들 “성인 자녀의 한부모 결혼이민자도 체류 보장해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이 한부모 결혼이주민 가족을 위해 나섰다. 이 대학원 2학년인 염주민씨 등 7명은 지난 4일 여성아동인권클리닉 강좌를 맡은 소라미 임상교수와 함께 한부모 결혼 이민자의 체류권 보장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현재 시행중인 출입국관리지침은 한부모 결혼이주민은 자녀가 성인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명시했다. 염씨와 학생들은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에 따라 행복추구권과 가족결합권은 한국 국적자만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이라며 “차별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 결혼이주민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체류 자격 등 제도 개선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다음주 헌법재판소에 강제 추방 대상으로 보이는 외국인을 출국 시까지 보호소에 구금하는 외국인 보호제도의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도 낼 예정이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1월 미성년자 외국인까지 보호소에 가두는 이 제도가 과잉금지 원칙과 적법절차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지 판단해달라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평소 난민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염씨는 “학생들이 각자 아동구금의 특수성, 과잉금지의 원칙, 국제법 존중주의 부분을 나눠 의견서를 만들었다”면서 “하나의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당사자 상황과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은 지난해 8월 공익법률센터를 열고 공익 관련 실무 수업을 강화했다. 학생들의 공익 활동도 장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주영 공익법률센터장의 지도로 로스쿨 학생들이 대법원에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소 임상교수는 “오는 2학기에는 7세 아동의 출생신고를 위한 소송 진행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英 망명 탈북여성, 인종차별 피해 호소…”옆집 흑인 지속적 괴롭힘”

    英 망명 탈북여성, 인종차별 피해 호소…”옆집 흑인 지속적 괴롭힘”

    영국에서 망명 신청 후 대기 중인 탈북자가 직접 인종차별 피해를 호소했다. 탈북 후 우리나라를 거쳐 2016년 런던 크로이던 지역에 자리 잡은 고모 씨(45)는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웃 여성과의 갈등을 폭로했다. 고씨는 “옆집 흑인이 언제부턴가 괜히 트집을 잡고 우리를 괴롭힌다. 쓰레기를 우리 집 앞에 내놓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한다. 너무 괴로워서 오늘 집 앞에 CCTV를 달았다”고 밝혔다. CCTV를 설치하는 동안에도 옆집 여자가 자신을 폭행했다며 어린 딸이 촬영한 영상도 공개했다.영상에는 쓰레기통을 사이에 두고 옆집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고씨의 모습이 담겼다. 고씨를 밀친 옆집 여자의 약 올리는 듯한 몸짓도 촬영됐다. 고씨는 “옆집 여자에게 여러 번 폭행 당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여러분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곳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다. 오로지 나와 내 아이들뿐”이라며 “폭행을 막아달라”고도 말했다. 지난해 여름 런던 난민 숙소에 머물던 고씨는 같은 해 11월 지금 사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사 직후 옆집 여자와 쓰레기통 문제로 갈등이 불거졌으며, 이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현지 쓰레기 수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옆집 여자에게 쓰레기통을 나눠 쓰자고 제안했고, 그 사람도 동의했다. 하지만 얼마 후 갈등이 시작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고씨가 쓰레기통 위치를 옮긴 게 발단이었다. 이후로 옆집 여자는 주차된 차량에 쓰레기통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으며, 고씨를 모욕하고 신체적 폭행을 가했다. 하지만 영어가 서툴렀기에 경찰을 부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괴롭힘은 노골적이 됐다. 옆집 여자는 매일같이 고씨 집에 쓰레기를 던졌고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벽돌까지 투척했다. 골이 깊어진 둘 사이의 갈등은 올해 5월 배수로 문제로 폭발했다. 고씨는 당시 옆집 여자가 자신을 밀치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으며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싸움이 벌어지자 주민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지만, 증거가 없어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고도 했다.화가 난 고씨는 직접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지난 9일 CCTV를 설치했다. 옆집 여자도 가만있지 않았다. CCTV 케이블 선을 잡아당기는 등 설치를 방해했다. 고씨에게 “망명 신청자. 넌 이 나라 사람이 아니다”라며 차별적 폭언도 퍼부었다. 고씨는 “아이들을 지킬 수 없는 내가 실패자 같다”라며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탈북자의 처지를 비관했다. 고씨의 사연이 보도되자 현지 한인 사회가 손을 내밀었다. 17일 재차 소식을 전한 고씨는 “CCTV를 달고 난 후 사람들이 카메라에 찍히면 불편할까 싶어 방문 오겠다는 사람들을 만류했다. 그런데 한인 가족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 위로해줬다. 그동안의 서러움에 눈물이 쏟아졌다”고 밝혔다.이어 “아이들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는데, 만두를 가져다주셨다. 깜빡하고 이름도 묻지 못했다. 도움을 준 한인 가족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지 경찰은 “5월 29일 크로이던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했다는 두 건의 신고가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서로 폭행을 당했다는 양측을 중재했다. 쌍방이 합의에 도달해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라는 사실 확인만을 내놨다. 유엔난민기구(UNHCR) ‘2019 세계난민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탈북 난민은 762명, 망명 신청 후 대기 중인 탈북자는 124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412명은 캐나다, 85명은 독일, 78명은 영국에 정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들이 한국을 거쳐 영국으로 망명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녹색금융가·난민전문 통역인… 미래 新직업 50개 키운다

    ‘녹색금융 전문가, 육아전문 관리사, 난민 전문 통역인, 커머스 크리에이터, 오디오북 내레이터….’ 정부가 미래 일자리 창출과 신산업 지원을 위해 14개의 신직업을 적극 육성하기로 했다. 나아가 사이버 도시분석가, 고속도로 컨트롤러 등 국제사회에서 관심을 가지는 37개 이상의 유망 잠재 직업을 국내에 도입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미래산업과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 중인 14개의 신직업을 발굴하고, 활성화되도록 관련 법·제도 정비와 전문인력 양성, 초기 시장 수요 창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직업훈련 교육을 강화하고 법개정 등을 통해 공인자격제도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스마트건설 전문가는 기존 건설 기술뿐 아니라 드론 측량, 3D프린팅 활용 건설자재 생산 등의 기술까지 갖춰야 해 새로운 교육 과정을 신설하기로 했다. 녹색성장을 지원하는 녹색금융 전문가도 특성화대학원 지정·운영을 통해 육성한다. 수요가 있으나 제도적 장치가 부족했던 신직업에 대해선 공인자격증제도를 새로 마련하기로 했다. 전문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육아전문 관리사, 기부자를 발굴해 문화예술단체나 예술가에게 재원 지원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문화예술 후원 코디네이터 등이 있다. 항상 인력난에 허덕이는 난민 전문 통역인에 대해서도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양성기관도 별도로 지정하기로 했다.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지만 국제사회에서 주목받는 37개 이상의 잠재 신직업 발굴에도 나선다. 대표적으로 고속도로 컨트롤러는 자율주행차와 드론의 공간 관리에 사용되는 인공지능 플랫폼을 프로그래밍하고, 사이버 도시분석가는 도시의 안전, 보안, 기능성 보장을 위해 도시 데이터를 관리한다. 정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글로벌 유망 직업의 도입 필요성과 시장 수요 규모 등을 연구해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군포, ‘소리 없는 책’ 국제도서전시회 오는 23일까지 개최

    국내 최초 그림책 공립박물관을 조성하는 경기 군포시는 ‘소리 없는 책’ 국제도서전시회를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오는 23일까지 열리는 전시회는 국제안데르센상을 수상하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와 함께 한다. 1953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IBBY는 비영리협회로 전 세계 아동·청소년 도서에 관련된 작가, 출판사, 교수 등이 함께 결성했다. 전세계 80여개국에 지부를 갖고 있는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기관이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이번 행사는 ‘소리 없는 책 프로젝트’로 아시아 대륙을 순회하는 첫 번째 전시회로 군포에서 열린다. 전세계에서 출간하는 ‘아름다운 글 없는 그림책’을 수집해 아프리카 난민이 머무는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의 어린이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최를 미루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일부터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 중이다. 전세계 16개국 67권의 그림책과 국내 선정된 작가 9명의 원화, 더미북, 체험코너 등 보기 드문 그림책 콘텐츠들로 채워진다. 직접 전시회를 찾지 못하는 언택트 관람객을 위해 오는 13일에는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KBBY)와 함께 언택트 세미나를 개최한다. 시 홈페이지를 통해 가상현실(VR) 온라인전시회 등 새로운 개념의 전시콘텐츠도 선보일 예정이다.이번 전시회의 모든 관람객은 사전예약을 마치고 입장 시 QR코드 인명부 확인을 해야 한다. 한대희 군포시장은 “그림책박물관공원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다양한 네트워크와 교류하고 협력하며 우수한 콘텐츠를 군포시로 끌어오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정부, 폭발 참사 레바논에 100만달러 긴급지원

    정부, 폭발 참사 레바논에 100만달러 긴급지원

    정부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서 지난 4일(현지시간) 발생한 대규모 폭발 사고 피해 복구를 위해 100만달러(약 12억원)의 긴급 인도지원을 결정했다. 외교부는 7일 “레바논의 피해 주민들의 조속한 생활 안정과 피해 복구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일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 앞으로 위로전을 보내 이번 폭발사고로 인한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한 바 있다.또 국방부는 레바논 현지에 파견된 동명부대를 통해 구호물자를 긴급 지원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이날 동명부대가 마스크 등 생필품 6000세트를 레바논 정부에 전달하고 의약품 등 구호물자 4000여 세트를 현지에서 구매해 추가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 난민을 해온 레바논에 모두 133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다. 올해엔 레바논 내 시리아 난민 지원 사업과 코로나19 대응에 300만달러 지원을 추진했다. 베이루트 항만 창고에 장기 보관된 질산 암모늄 2700t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이번 사고로 150명 이상이 사망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씨줄날줄] 베이루트/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베이루트/임병선 논설위원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는 ‘지중해의 파리’로 통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성경에 하나님이 성전을 지으려면 레바논산의 백향목을 쓰라고 했다고 나올 만큼 풍요로움을 상징하기도 했다. 아랍의 재화가 몰려드는 금융 중심지였으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동과 아랍권에서 가장 이름난 교역항이었다. 정치와 문화, 지식의 중심지였다. 레바논 사람은 여러 인종의 피가 섞인 이가 많았다. 종파도 정말 다양했다. 기독교만 해도 마론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가톨릭, 가톨릭, 개신교로 나뉘고 이슬람교는 수니파, 시아파, 드루즈파 등으로 분열돼 18개 종파가 뒤섞여 있다. ‘모자이크 국가’란 말이 나올 정도다. 독립을 3년 앞두고 종파별로 돌아가며 권력을 잡는 배분안에 합의했다. 구두 합의였지만 그런대로 잘 지켜졌다. 하지만 1948년부터 팔레스타인 난민이 이스라엘에 쫓겨 들어오면서 복잡해졌다. 기독교도가 인구에 비해 너무 많은 권한을 쥐고 있다며 이슬람교도가 1958년 반란을 일으켰다가 미국의 개입으로 진압됐다. 1974~76년에는 무슬림과 팔레스타인 난민이 손을 잡고 기독교에 대항해 내전을 일으키자 기업들이 베이루트를 떠나기 시작했다. 내전이 끝난 뒤에는 기독교 민병대의 주도로 내전을 딛고 일어선 동베이루트와 이슬람교도가 절대 다수인 서베이루트로 분단되다시피 했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영토를 침범해 폭격을 가하고 3년 뒤 철수했다. 1980년대 말에는 파괴 행위가 격렬해져 수천 명이 이 도시를 탈출하기도 했다. 1990년대 잠깐 평온을 되찾았으나 이슬람 시아파 중심의 무장조직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로켓포 공격을 주고받는 준전시 상황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15년 동안 폭탄 공격만 열세 차례 일어났다. 여기에다 시리아 난민까지 밀려 내려와 레바논 경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나랏빚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70%이다. 이런 형국에 4일(현지시간) 베이루트 항구 근처에 6년 넘게 방치된 질산암모늄 저장소가 두 차례 대형 폭발을 일으켜 100명 이상이 숨지고 4000명 이상이 다치는 엄청난 참극이 빚어졌다. 베이루트시장은 “어떻게 이 도시를 재건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절규했다. 레바논이 생채기를 이겨 내려면 국제사회의 도움이 간절하다. 한국 정부도 거들겠다는 의사를 빨리 표명했으면 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겸 시인 칼릴 지브란이 베이루트에서 차로 두 시간여 걸리는 브샤레 마을 출신이다. 그의 시 ‘예언자’ 한 구절이 절절하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bsnim@seoul.co.kr
  • [영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서 의문의 폭발…“핵폭발 같았다”

    [영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서 의문의 폭발…“핵폭발 같았다”

    사망 73명, 부상 3700명…사상자 늘 수도 지중해 연안 중동 국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현지시간) 대규모 폭발이 발생해 최소 73명이 숨지고, 3700명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큰 폭발이 두 차례 있었다고 레바논 언론 ‘데일리스타’와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폭발과 함께 항구 주변 상공은 거대한 검은 연기로 뒤덮이고 폭발의 충격으로 많은 건물과 차량이 파손됐다. 폭발 순간을 담은 영상 등을 보면 베이루트 곳곳의 건물 유리창이 깨졌으며, 놀란 시민들은 비명을 질렀다. 240㎞ 떨어진 키프로스서도 폭발음 들려레바논에서 약 240㎞ 떨어진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에서도 폭발 소리가 들렸다고 키프로스 매체들이 전했다. 베이루트 항구에서 약 2㎞ 떨어진 지역에 사는 한 시민은 데일리스타에 폭발 충격에 대해 “내 아파트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했다. 베이루트에 거주하는 왈리드 아브도(43)는 AP와 인터뷰에서 “마치 핵폭발과 같았다”고 밝혔다. 레바논 보건부는 초기 집계 결과 이번 폭발로 최소 50명이 숨지고 부상자가 2700~3000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발표된 추가 집계에서 사망자는 최소 73명, 부상자는 3700여명으로 늘어났다. 외신은 사상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이번 폭발과 관련해 이날을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디아브 총리는 텔레비전 연설에서 “이번 재앙에 책임있는 자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폭발 원인 파악 안돼…항구 폭발물 저장창고 폭발한 듯다만 폭발의 원인이 누군가의 공격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사고로 인한 것인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정부의 초기 조사 결과 일단 사고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의 안보 책임자인 아바스 이브라힘은 폭발 현장을 방문한 뒤 “당장 조사할 수 없지만 몇 년 전부터 보관된 물질이 있는 것 같다”며 “폭발성이 큰 물질을 압수했다”고 말했다. 레바논 NNA통신은 베이루트 항구에 압수한 폭발물 저장창고가 있다고 전했다. 베이루트 항구의 한 근로자는 폭발이 폭죽과 같은 작은 폭발물에서 시작한 뒤 커졌다고 전했다. 항구에 오랫동안 보관된 물질이 관리 소홀 등으로 폭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우리와 무관…인도적 지원하겠다”이스라엘 관리들은 베이루트의 폭발이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다며 이스라엘의 공격 가능성을 부인했다. 또 이스라엘 정부는 이날 베이루트 폭발과 관련해 레바논에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군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최근 국경지역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등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또 최근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에 대한 유엔 특별재판소의 판결이 불과 사흘 남겨놓고 있었다. 오는 7일 유엔 특별재판소는 2005년 하리리 전 총리에 대한 암살을 주도한 혐의로 헤즈볼라 대원 4명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친서방정책을 폈던 하리리 전 총리는 2005년 2월 14일 베이루트의 지중해변 도로에서 승용차로 이동하던 중 트럭 폭탄테러로 경호원 등 22명과 함께 사망했다. ‘경제 위기’ 레바논에 엎친 데 덮친 격이번 베이루트 폭발은 경제 위기가 심각한 레바논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3일에는 나시프 히티 외무장관이 정부의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며 사임했다. 레바논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이르는 국가부채와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 하락, 높은 실업률 등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10월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에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반정부 시위가 수개월 동안 이어졌으며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위기가 심화했다. 레바논 정부는 올해 5월부터 국제통화기금(IMF)과 금융 지원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레바논은 1975∼1990년 장기 내전 등으로 국토가 황폐해졌고 2011년 이후에는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난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레바논은 이슬람 수니파 및 시아파, 기독교계 마론파 등 18개 종파가 얽혀있는 ‘모자이크 국가’이며 종파 간 갈등이 정치·사회적 문제 원인으로 꼽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핵재앙 같은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적어도 73명 죽고 4000명 부상”

    핵재앙 같은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적어도 73명 죽고 4000명 부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현지시간) 핵폭탄이 폭발한 것 같은 대규모 폭발 참사가 발생, 적어도 73명이 숨지고 부상자가 4000명을 넘는 것으로 AFP 통신이 보도했다. 이 나라에서 약 240㎞ 떨어진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에서도 폭발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키프로스 매체들이 전했다. 이날 오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큰 폭발이 두 차례 있었다고 레바논 언론 ‘데일리스타’와 AP 통신 등 이 보도했다. 폭발로 항구 주변 상공은 거대한 검은 연기에 뒤덮이고 많은 건물과 차량이 파손됐다. 베이루트 건물들의 유리창이 깨졌으며 놀란 시민들이 비명을 질렀다. 베이루트 항구에서 약 2㎞ 떨어진 지역에 사는 한 시민은 데일리스타에 “내 아파트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했다. 베이루트에 거주하는 왈리드 아브도(43)는 AP 인터뷰를 통해 “핵폭발과 같았다”고 밝혔다. 지금도 부상자나 건물 등에 매몰된 사람들을 구조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시신 수습에 힘쓰고 있다.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이날을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디아브 총리는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이번 재앙에 책임있는 자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폭발 원인은 일단 어떤 다른 요인에 의해 불꽃이 일었고 2750t의 암모니아 질산염 창고가 6년 동안 방치돼 있었는데 이 창고에 옮겨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그런 위험한 화학물질이 안전하지 않게 저장돼 있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이 나라 안보 책임자인 아바스 이브라힘은 폭발 현장을 방문한 뒤 “당장 조사할 수 없지만 몇 년 전부터 보관된 물질이 있는 것 같다”며 “폭발성이 큰 물질을 압수했다”고 말했다. 현지 NNA통신은 베이루트 항구에 폭발물 창고가 있다고 전했다. 베이루트 항구의 한 근로자는 폭발이 폭죽과 같은 작은 폭발물에서 시작한 뒤 커졌다고 전했다.이스라엘 관리들은 베이루트의 폭발이 자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스라엘군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최근 국경 일대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등 긴장이 고조된 상태다. 이번 참사는 유엔 특별재판소의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엔 특별재판소는 2005년 하리리 전 총리에 대한 암살을 주도한 혐의로 헤즈볼라 대원 4명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친서방 정책을 폈던 하리리 전 총리는 2005년 2월 14일 베이루트의 지중해변 도로를 승용차로 이동하던 중 트럭 폭탄테러로 경호원 등 22명과 함께 사망했다. 이번 참사는 또 경제 위기가 심각한 레바논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날 나시프 히티 외무장관이 정부의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며 사임했다. 레바논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이르는 국가부채와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 하락, 높은 실업률 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의 세금 계획에 대한 반발로 반정부 시위가 몇 개월이나 이어졌으며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에 경제 위기가 심화했다. 레바논 정부는 지난 5월부터 국제통화기금(IMF)과 금융 지원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1975∼1990년 내전 등으로 국토가 황폐해졌고 2011년 이후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난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레바논은 이슬람 수니파 및 시아파, 기독교계 마론파 등 18개 종파가 얽혀 사는 ‘모자이크 국가‘로 종파 갈등이 여러 정치,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페임’ ‘에비타’ 연출 앨런 파커 감독 별세

    ‘페임’ ‘에비타’ 연출 앨런 파커 감독 별세

    영화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페임’, ‘에비타’ 등을 연출한 영국의 영화감독 앨런 파커가 3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76세. BBC 등에 따르면 파커의 가족은 그가 오랜 질병 끝에 이날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1944년 런던에서 태어난 파커 감독은 카피라이터로 광고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뒤 은막으로 진출, 1974년 TV 영화 ‘피난민들’로 영국 아카데미상을 따내며 이름을 알렸다.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그린 ‘페임’과 ‘에비타’, ‘핑크 플로이드의 벽’ 등 뮤지컬 영화를 비롯해 백인 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의 실제 만행을 다룬 고발물 ‘미시시피 버닝’까지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시도했다. 생전 그는 1978년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로 아카데미상 2개 부문을 수상했고, 골든 글러브상도 10차례 손에 쥐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아프간 난민 남성, 석방 5주 만에 또 아동 성폭행…독일 사회 발칵

    아프간 난민 남성, 석방 5주 만에 또 아동 성폭행…독일 사회 발칵

    독일에서 11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혔다가 12일 만에 풀려난 아프가니스탄 20대 난민 남성이 불과 5주 만에 또 다른 13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돼 현지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공영방송 WDR(서부독일방송)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6월 성폭행 혐의로 붙잡혔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23세 난민 남성 주비르 S.는 지난달 또다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당국은 이 남성이 재범을 저지를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그를 2주도 안 돼 풀어줬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남성은 지난달 24일 13세 소녀를 복도로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로 다시 체포될 수 있었다. 피해 소녀가 수사관들에게 피해 사실을 진술한 덕분이다. 이에 대해 담당 검사 뵈르게 클레핑은 현지 빌드지와의 인터뷰에서 “도르트문트에서 발생한 두 건의 성폭행 사건은 매우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 검사에 따르면, 당국은 문제의 난민 남성이 재범을 저지르거나 탈옥할 위험이 없다며 지난달 3일 석방했었다. 이 남성은 이전에 마약 범죄와 부정 승차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성범죄 이력이 없었기에 당국은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검사 폴커 슈머펠트 토포프는 WDR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에게 혐의를 시급하게 적용하고 구금할 때는 이유가 필요하다”면서 “석방을 막으려면 재범을 저지를 수 있다는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 첫 번째 사건 당시 11세 소녀의 피해 증거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의 이민자 담당 장관 요아힘 스탬프는 “이 혐오스러운 범죄자는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수감되면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강제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치인들 역시 성폭행 용의자들을 조사하는 동안 이들을 더 쉽게 구금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민을 반대하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이번 사건을 “사법 스캔들”(judicial scandal)이라고 규정하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개방적인 난민 정책을 꼬집어 비판했다. 한편 아동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문제의 난민 남성은 독일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페임’의 앨런 파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페임’의 앨런 파커

    1978년 범죄 스릴러 영화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하는 올드 팬들이 많을 것이다. 1977년 빌리 헤이스의 넌픽션을 올리버 스톤이 각색한 이 미국 영화는 터키에 머무르던 미국 청년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탈출하는 과정을 긴박감 넘치게 연출해 국내에서도 제법 흥행했다. 조르조 모르더가 만든 음악들도 기억에 선명하다. 이 영화를 비롯해 ‘페임’과 ‘에비타’,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등 음악영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영국 영화감독 앨런 파커 경(卿)이 3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 유족들은 파커 감독이 오랜 질환과의 싸움 끝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1944년 런던에서 태어난 파커 감독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 뒤 광고 연출 등을 거쳐 1974년 TV 영화 ‘피난민들’(The Evacuees)로 영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영국 아카데미상을 일곱 개나 받았으며, 2013년에는 평생 공로를 인정받아 협회상(The Academy Fellowship)을 수상했다.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로 아카데미상 두 부문을 수상하는 등 10차례나 수상했고 골든글로브도 10 차례나 수상했지만 정작 감독상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1995년 대영제국 3등급 사령관(CBE) 훈장을, 2002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페임’과 에비타 페론의 극적인 삶을 그린 ‘에비타’,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등 음악영화들로 유명하다. 1964년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큐클럭스클랜(KKK)이 흑인 인권운동가 3명을 구타·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을 다룬 ‘미시시피 버닝’ 등 묵직한 주제들도 놓치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 할리우드를 오간 경력도 돋보인다. 2003년 케빈 스페이시와 케이트 윈슬렛이 공연한 ‘데이비드 게일’이 마지막 연출작이며 유족 대변인에 따르면 은퇴 후 실크 스크린 그림과 그림 활동에 열심이었다고 전했다. 2005년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신랄하게 돌아본 회고록 ‘윌 라이트 앤 디렉트 포 푸드(Will Write and Direct for Food)’를 출간했다. 2018년에는 영국 영화 연구소의 아카이브에 생전에 모아둔 방대한 각본과 작업 노트 등을 기증했다. ‘에비타’ 음악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 경은 트위터에 고인이 “뮤지컬이란 장르를 스크린에 옮기는 방법을 진정으로 이해한 몇 안되는 감독 중 한 명이었다”고 추모했다.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를 앨런 마샬과 함께 제작했던 데이비드 푸트넘은 “가장 오래 된 절친이었다”며 “난 늘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돌아봤다. 대영제국 감독 조합 창립 멤버였으며 영국 영화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영국 아카데미 위원회(Bafta)와 영국 영화 연구소, 미국 아카데미 위원회 등도 일제히 조의를 표했다. 1994년 코미디 영화 ‘웰빌 가는 길’에서 고인과 함께 작업했던 배우 존 쿠삭은 “위대한 영화감독”이었다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리사 모란과 다섯 자녀, 일곱 손주를 남겼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취중생]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끝나지 않은 노근리의 비극

    [취중생]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끝나지 않은 노근리의 비극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2020년은 ‘노근리양민학살사건(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노근리 사건은 국내 미군 관련 학살 사건 중 한미 양국이 함께 진상조사에 나선 유일한 사건이자 미국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유일한 미군 관련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가 중심이 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한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올해는 노근리에 70주년이란 특별한 숫자만큼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노근리 유족회 등이 주관하던 노근리 사건 기념식이 처음으로 정부 주도로 열리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노근리에 방문한 것입니다. 노근리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 정부가 드디어 노근리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씻을 수 없는 한국사의 비극…노근리 사건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마지막주 미군의 공중 폭격과 사격에 의해 한국 민간인 수백명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희생자만 226명(사망자 150명, 행방불명자 13명, 후유장애인 63명)입니다. 노근리 사건은 1994년 사건의 피해자인 정은용(2014년 사망)씨가 펴낸 장편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정씨의 소설을 읽은 미국 AP통신 기자가 1999년 이를 특종 보도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노근리 사건을 주목하게 됐습니다. 미국 언론들이 연일 노근리 사건을 주요 뉴스로 다루자 미국 정부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내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진상규명을 지시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움직이자 뒤이어 한국 정부도 뒤늦게 진상규명에 나섰습니다. 2001년 1월 12일 한미 양국은 드디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1950년 7월 마지막 주 노근리에서 미군이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 입힌 사실은 인정하나 ‘고의’로 민간인을 공격하진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이 직접 민간인 학살을 인정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지만 미국이 학살의 책임을 부정하면서 성과는 절반에 머물렀습니다. 같은 날 클린턴 대통령은 유감표명 성명서와 함께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서에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희생자의 자녀들에게 장학금 형식으로 총 400만 달러 규모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마치 노근리 피해자들이 미국의 사과를 받고, 보상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그러나 노근리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교묘히 적은 추모비와 장학금의 대상 때문입니다. 미국은 ‘한국전쟁 동안 사망한 모든 민간인(all other innocent Korean civilians killed during the war)’을 대상으로 적었습니다. 노근리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노근리 사건 하나로 한국전쟁 당시 일어났던 모든 미군 관련 사건을 해결하고 끝내겠다는 뜻입니다. 정은용 씨의 아들인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노근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노근리와 달리 진상조사조차 하지 못한 다른 미군 관련 사건 피해자들이 진상을 규명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됐을 것”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결국 미국이 내놓은 400만 달러는 2006년 미국이 전부 다시 가져갔습니다.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는 무효” 정 이사장은 미국이 내놓은 대책이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의 뜻과는 다른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위안부 합의)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지난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 직속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습니다. 같은해 12월 TF는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 접근을 결여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문 대통령은 이 보고서의 발표에 따라 입장문을 내고 “위안부 합의는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면서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밝힙니다. 정 이사장은 노근리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미국이 내놓은 대책에도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피해자 중심 접근을 결여했다고 바라봤듯이 노근리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과거사 소송 시효도 문제입니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2015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지만 현재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1·2심 모두 패소하고 대법원에 계류하고 있습니다. 당시 법원은 노근리 사건의 시효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종료일인 2010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뒀습니다. 그러나 노근리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등장 이전부터 별개의 특별법에 따라 진상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노근리 사건 등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노력으로 선제적인 진상 조사가 시작된 과거사 사건들은 오히려 손해배상 소송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노근리 사건과 거창양민학살 사건(거창 사건)의 변호인이자 거창 사건의 유족인 임재인 변호사는 “국가가 과거사 소멸 시효를 둔 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노근리 사건, 거창 사건 등 별개의 특별법이 있는 사건들이 소멸 시효가 모호해지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사 문제에 불을 붙여 다른 사건들이 진상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포문을 연 사건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손해배상에 난항을 겪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책임 외면해온 한국 정부…학살 70년만에 노근리에 첫 발 노근리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 국가는 미국이지만 한국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노근리 사건을 포함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은 1950년 7월 26일 미8군이 내렸던 “언제 어떠한 피난민도 방어선을 넘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피난민 소개 및 이동 통제에 관한 지침이 배경이 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침은 전날인 7월 25일 임시 수도였던 대구에서 한국 정부, 미 대사관, 국립경찰, 유엔, 미8군 대표자들이 모여 개최한 회의에서 결정됐습니다. 게다가 한국전쟁 초기 피난민을 통제할 책임이 있는 한국 정부가 피난민 통제정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 한 책임도 있습니다.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동안 노근리 사건을 외면해 왔습니다. 노근리 사건이 미군 관련 사건으로 유감 표명을 받은, 한국 역사상 의미가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미국의 눈치를 보기 바빴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4년 제정된 노근리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무총리고, 주관 부처는 행정안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위원장인 국무총리나, 행안부 장관 누구도 노근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노근리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매년 노근리 유족회 등이 주관하던 노근리 사건 기념식이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열리고 진영 행안부 장관이 노근리에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충북 영동 노근리평화공원에서 노근리 70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진 장관과 더불어 이시종 충북지사, 박세복 영동군수, 양해찬 노근리 유족회장 등 100여명이 함께했습니다. 진 장관은 추모사에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 오신 유족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다시 한번 희생자 영전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코로나19로 행사는 축소됐지만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미혼모 아들인 내가…” 베이조스 가정사 의회 앞에 고백

    “미혼모 아들인 내가…” 베이조스 가정사 의회 앞에 고백

    “전 미성년자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세계 최고의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29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반독점 소위원회가 개최한 정보기술(IT) 공룡업체의 독점 의혹 관련 청문회에 출석하기에 앞서 청문위원들에게 가정사를 담은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가 감추고 싶을 법한 가정사를 시시콜콜 털어놓은 일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다. 재킷 하나 손에 쥐고 사실상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온 쿠바 난민 출신 남성과 어머니가 결혼하면서 네 살 때 새아버지가 생겼고 어릴 땐 원자력위원회(AEC)에서 봉직한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소개했다. 베이조스는 서한에서 아마존이 미국 경제와 사회에 기여한 바를 열거하는 한편 아마존이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를 지원하는 미국의 문화와 ‘소비자의 선택’ 덕에 성공했으며 현재도 다른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마존은 시장을 지배하며 ‘갑질’하는 회사가 아니며 미국에 기여하는 회사라고 호소하는 것을 조금 더 인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베이조스는 “세계에서 가장 소비자 중심적인 기업을 만들고자 26년 전 아마존을 창업했다”면서 “수백만 종의 책을 보유한 온라인 서점을 만들겠다는 결정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아마존의 성공은 ‘정해진 운명’이었다며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가 사는 위대한 미국은 사업가로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고 지원한다”고 성공을 ‘나라 덕’으로 돌렸다. 베이조스는 “아마존이 기업으로서 영속할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아마존 내에 ‘오늘이 창업 첫날’이라는 정신이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는 결코 만족할 줄 모르고 항상 더 나은 것을 원하기에 소비자의 관심을 붙잡으려면 ‘창업 첫날’ 정신으로 서비스를 꾸준히 향상해야 한다면서 “이런 ‘소비자 최우선 정책’이 아마존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조스는 아마존 총이익의 80% 이상이 여전히 초기 사업영역인 소매판매에서 나온다면서 “소매판매업 특성은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일자리는 중국 등에 아웃소싱으로 넘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마존엔 미국 소비자에게 물건을 전달할 미국 노동자가 필요하다”면서 아마존이 미국 전역에서 100만명가량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아마존이 지난 10년간 미국에 2700억달러(약 322조5천억원)를 투자했고 약 70만명의 간접고용을 창출했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코로나19를 맞아 17만 5000명을 더 고용했고 노동자 안전과 소비자에게 생필품을 배달하는 데 지난 2분기에만 40억달러(약 4조 7000억원)를 썼다고도 설명했다. 베이조스는 아마존에 전 세계 170만개 중소기업이 입점해 있다며 소상공인도 살렸다고도 주장했다. 또 아마존의 지분 80%가 외부인 소유라면서 지난 26년 동안 1조달러(1119조 4000억원)를 배당했으며 이는 아마존 지분을 보유한 연기금에 돌아갔다고 밝혔다. 기후변화 방지와 노숙인 등을 위한 사회공헌활동도 소개했다. 베이조스는 아마존의 시장점유율이 25조 달러(약 2경 980조원) 규모 세계소매시장을 기준으론 1% 이하, 미국소매시장을 기준으론 4% 이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마존은 몸집이 2배는 큰 타깃, 코스트코, 크로거,마트 등 기존 업체들과 매일 맞서고 있다”면서 소매시장이 특히 경쟁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아마존의 직원이 10명, 1000명, 1만명일 때, 또 지금처럼 100만명일 때 어떤 일이 가능한지 난 안다”면서 “대형 비행기를 차고에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엔 소기업이 필요한 만큼 대기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정우성 “분단 현실은 우리의 얘기… 무겁지만 외면할 수 없어”

    정우성 “분단 현실은 우리의 얘기… 무겁지만 외면할 수 없어”

    “역사 속 불행했던 우리” 시사회 중 울먹‘우리는 왜 恨 많나’ 생각하며 역할에 몰입北 쿠데타 세력에 납치된 南·北·美 정상 잠수함 속 각국 파워 게임 긴박하게 그려 ‘우리 의지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풀기 힘든 한반도 문제 현실적 시각 제시지난 23일 열린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의 언론배급시사회. 영화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를 연기한 배우 정우성은 답변 도중 울먹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지난 역사 속에서 늘 불행했던 우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한테는 왜 ‘한’이 많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경재 대통령의 감정에 몰입됐던 거 같아요.”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난 정우성은 그때의 ‘울먹’을 이렇게 설명했다. ‘강철비2’에서 한경재는 어렵게 성사된 남북미 정상회담 중 북한 군부의 쿠데타로 북한 위원장(유연석 분), 미국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 분)과 함께 북한 핵잠수함의 좁디좁은 함장실에 감금된다.“남북이 서로 입장을 바꿔본다 하더라도, 한반도 문제는 우리 의지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인물들의 진영을 바꿨다”는 양우석 감독의 설명처럼, 전편 ‘강철비1’(2017)에서는 북한 최정예요원으로 등장한 정우성이 이번에는 남한 대통령을 맡았다. 반대로 남한 측 외교안보수석이었던 곽도원은 북한 쿠데타의 주역이 됐다. 개성 강한 북미 정상들 틈에서 한경재는 액션과 말보다 침묵이 긴 인물이다. “‘강철비1’을 하면서 양 감독님이 제 표정을 좋게 보셨나봐요. 한경재 대통령의 침묵 속에 여러 가지 표현을 해야 하니까요.” 긴 침묵 속에서 그가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국민과 역사에 관한 ‘연민’이다. “남북 문제에 있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죠. 심지어 휴전협정 당사자도 아니라는 게 역사적 아이러니예요. 그러나 정치적 선택이 어떻게 이뤄졌든지 간에 그 안에서 가장 고통받는 건 국민입니다. 분단이라는 체제 속 우리 과거에 대한 연민이 한경재가 가지는 주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출연을 결심하기까지, 대통령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에게도 부담이었다. 특히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2013)을 연출했던 양 감독의 영화에 정치적 소신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던 정우성의 가세는 낙인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정치적 편향을 강조하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영화이기 때문에 시도해 볼 필요도 있는 것이고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미래 세대에 필요한 화두를 던지는 시도는 충분히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난민 문제 등과 관련한 소신 표명에 대한 세간의 시선에도 그는 거리낌이 없다. “우리 모두 삶에 있어서의 불편함을 얘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책임이 있다”고 확신을 담아 말했다. “‘정치적 발언은 정치인이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건 정치인들이 국민을 정치에서 거리 두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도 했다. 영화는 남북미에 일본·중국을 더한 동아시아 정세 속 각국의 내치. 잠수함 속 파워 게임까지 더해 ‘스리 트랙’으로 그려진다. “얼개가 복잡해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에 대한 주연배우의 생각은 어떨까. “아주 볼만한 잠수함 액션”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한 그는 이어 말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보다 한반도 분단의 현실과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얘기입니다.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외면할 순 없어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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