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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근당 고촌상 ‘국경없는… ’ ‘게스키오’ 공동 선정

    종근당 고촌재단은 제8회 고촌상 수상자로 스위스 ‘국경없는 의사회’와 아이티 ‘게스키오 센터’를 공동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국제 민간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는 분쟁지역의 약제내성 결핵환자들을 위해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결핵 관련 제품개발과 연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게스키오 센터는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난민들의 결핵 치료에 앞장서고 의료위생 시설을 확장하는 등 아이티 보건 의료환경 개선에 이바지해 온 업적을 인정받았다. 제8회 고촌상 시상식은 한국시간으로 오는 31일 오전 2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리는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 이사회 총회에서 진행된다. 고촌상은 종근당 창업주 고촌(高村) 이종근 회장이 장학재단으로 설립한 종근당고촌재단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이 2005년 공동 제정한 상이다. 세계 결핵 및 에이즈 퇴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후원한다. 매년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고, 상금을 포함해 총 10만 달러를 지원한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심사에만 2~3년… 구금당하는 난민들

    심사에만 2~3년… 구금당하는 난민들

    정치적·종교적 박해 등을 피해 우리나라에 온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난민법’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되면서 난민 신청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법무당국이 난민 신청자를 구금하는 등 난민 행정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26일 법무부의 국내 난민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1574명으로 2012년 1143명보다 37.7%나 늘었다. 우리나라가 난민을 처음으로 인정한 1994년 이후 지금껏 받은 난민 신청건수 6643건의 23.7%가 지난해에 몰린 것이다. 특히 지난해 7월 이후 신청자 수는 1063명으로 전체 신청자 중 67.5%에 달했다. 그러나 현장의 난민 지원가들은 “난민의 국내 유입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은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정부가 생계·취업 지원 등을 핵심으로 하는 난민법 시행 이후 외국인들이 기대를 가지고 대규모로 난민 신청할 것을 우려해 난민 신청자 중 1년 이상 불법 체류한 사람은 원칙적으로 구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법인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법 시행 이전에는 불법 체류 상태로 국내에서 1년 넘게 지내다 난민 신청을 해도 대부분 과태료 처분만 받았다”면서 “하지만 법 시행 이후 남용적 신청을 우려해서인지 난민신청자 중 1년 이상 불법체류한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 보호소 등에 구금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호소에 구금된 난민은 이곳에 1~3년가량 갇힌 채 지내며 난민 인정 여부를 기다려야 한다. 만약,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면 강제 퇴거 명령 등을 당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난민 신청이 늦어진 외국인들도 많다. 이 변호사는 “난민 신청 절차를 몰라 시간을 흘려보낸 사람도 있고 국내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등 뒤늦게 난민 신청 사유가 생긴 아랍권 외국인도 있다”면서 “불법체류를 했다고 무조건 구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난민 신청 뒤 지위를 인정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도 문제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난민신청자 1인당 심사 기간이 평균 2~3년인데 이 기간에 난민들은 아무 보호도 못 받고 불안정한 신분으로 숨죽여 산다”면서 “심사 인력을 대폭 늘려서 기간을 줄여야 난민의 불법 취업 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난민법 시행 이후 신청자가 늘어 심사인력을 4~5명 충원했지만 여전히 인력 한계로 빠른 심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하면 비교적 잘 인정하지만 종교·문화적 이유로 신청하면 인정 비율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을 사유별로 보면 정치적 이유가 13건, 종교적 이유 5건, 인종적 이유 4건, 다른 가족이 난민으로 인정받아 함께 지위를 인정받은 사례가 33건이었다. 김 국장은 “난민심사를 하는 공무원이 동남아 등지의 정치 박해 등은 뉴스를 통해 잘 이해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등의 종교적 박해는 이해하지 못해 인정 비율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동영상] 수십시간 매몰됐다가…시리아 아이 충격적 구조 영상

    [동영상] 수십시간 매몰됐다가…시리아 아이 충격적 구조 영상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 매몰됐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어린아이의 영상이 공개돼 네티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잔해에서 구조되는 시리아 아이(Syria Child is Saved from the Rubble)’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총 8분 길이의 해당 영상을 살펴보면 초반 1분까지는 구조과정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 하지만 2분여가 지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돌무더기에서 어린아이의 팔로 추정되는 부분이 발견되면서 구조대의 손길이 갑자기 바빠지는 것. 별다른 장비 없이 맨 손으로 정신없이 잔해를 파헤치던 구조대의 눈앞에 드디어 어린 생명의 모습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미동이 없던 아이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자 구조대는 환호성을 보내며 더욱 활발히 잔해를 파헤쳐나간다. 아이는 오랜만에 보이는 햇빛이 눈부신 듯 팔로 눈을 감싸며 천천히 호흡을 시작한다. 중간 중간 눈을 뜨며 긴박한 구조대의 손길을 응시하기도 한다. 곧 아이 몸 전체가 구조대에 의해 잔해에서 빠져나오며 영상은 끝을 맺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영상 속 배경은 시리아 북부 할라브 주 알레포 지역으로 촬영자는 시리아 반군 측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리아는 3년 가까이 진행 중인 내전으로 1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난민촌에 거주 중인 상황이다. 한편 최근 시리아 정부와 반군 측은 첫 대면 협상을 시작했다. 양측 대표단은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유엔 중재로 한 테이블에 앉아 구호품 지원, 포로 석방, 휴전 등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이번 협상은 다음 주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동영상·사진=유튜브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시리아 붕괴 현장서 아이 극적 구조

    시리아 붕괴 현장서 아이 극적 구조

    지난 22일 시리아 정부군이 북부 최대 도시 알레포 시장 등을 공습했다. 이 여파로 어린이 6명과 의료진 등 최소 44명이 숨졌으며, 17명이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건물이 붕괴되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다. 이런 가운데 붕괴된 건물 잔해에서 어린아이가 극적으로 구조되는 장면이 공개 돼 화제가 되고 있다. 또 최근 구조 당시 생생한 순간을 담은 영상이 해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훈훈함을 전하고 있다. 영상을 보면 붕괴된 건물 잔해 더미 속에서 애타게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매몰되어 있는 아이가 다칠까봐 맨손으로 돌덩이들을 들어내고 잔해들을 파낸다. 잠시 후 구조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손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기 시작한다. 매몰된 아이의 모습을 확인 한 것이다. 정신없이 건물 잔해를 헤치는 구조팀은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마침내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아이를 구출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이 극적인 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한편 만 3년 가까이 이어진 시리아 내전으로 1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100만 명에 달하는 난민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수십시간 매몰됐다가…시리아 아이 구조 영상 충격

    수십시간 매몰됐다가…시리아 아이 구조 영상 충격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 매몰됐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어린아이의 영상이 공개돼 네티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잔해에서 구조되는 시리아 아이(Syria Child is Saved from the Rubble)’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총 8분 길이의 해당 영상을 살펴보면 초반 1분까지는 구조과정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 하지만 2분여가 지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돌무더기에서 어린아이의 팔로 추정되는 부분이 발견되면서 구조대의 손길이 갑자기 바빠지는 것. 별다른 장비 없이 맨 손으로 정신없이 잔해를 파헤치던 구조대의 눈앞에 드디어 어린 생명의 모습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미동이 없던 아이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자 구조대는 환호성을 보내며 더욱 활발히 잔해를 파헤쳐나간다. 아이는 오랜만에 보이는 햇빛이 눈부신 듯 팔로 눈을 감싸며 천천히 호흡을 시작한다. 중간 중간 눈을 뜨며 긴박한 구조대의 손길을 응시하기도 한다. 곧 아이 몸 전체가 구조대에 의해 잔해에서 빠져나오며 영상은 끝을 맺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5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영상 속 배경은 시리아 북부 할라브 주 알레포 지역으로 촬영자는 시리아 반군 측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리아는 3년 가까이 진행 중인 내전으로 1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난민촌에 거주 중인 상황이다. 한편 최근 시리아 정부와 반군 측은 첫 대면 협상을 시작했다. 양측 대표단은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유엔 중재로 한 테이블에 앉아 구호품 지원, 포로 석방, 휴전 등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이번 협상은 다음 주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동영상 보러가기 동영상·사진=유튜브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중앙아프리카共 첫 여성 대통령… ‘유혈분쟁’ 끝낼까

    중앙아프리카共 첫 여성 대통령… ‘유혈분쟁’ 끝낼까

    유혈 분쟁을 겪고 있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AFP, 로이터 통신 등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과도 수반에 수도 방기의 여성 시장인 캐서린 삼바 판자(59)가 선출됐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아공 과도 의회는 이날 8명의 후보를 놓고 두 차례에 걸쳐 투표를 진행했다. 삼바 판자는 선거 직후 의회 연설에서 “국민이 더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기독교와 이슬람 민병대가 무기를 버리고 유혈 분쟁 사태를 종식시키자”고 말했다. 중아공은 지난해 3월 이슬람계 반군 ‘셀레카’가 중앙 정부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전체 인구의 50%에 달하는 기독교계 주민을 학살하고 약탈, 강간했다. 이슬람 반군에 대항해 기독교 민병대가 결성되면서 유혈 분쟁은 가속화했다. 지난달에는 1000명이 사망했다. 결국 셀레카 수장인 미셸 조토디아 임시 대통령과 티앙가예 임시 총리가 지난 10일 사임하고 베냉으로 망명한 상태다. 삼바 판자는 과도 정부를 이끌면서 내전 사태를 끝내고, 내년 상반기 중에 총선을 치러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앞서 과도 정부가 내전이 종식됐다고 공식 선포했지만, 유혈 충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내전으로 인해 93만 5000명이 난민으로 전락했고 방기 국제공항 인근 난민캠프에는 10만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분쟁이 길어지면서 난민에게 제공할 식량도 고갈되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보급차량이 중아공 상황에 위협을 느껴 카메룬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WFP는 항공 운송을 고려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이날 중아공에 주둔 중인 프랑스군(1600명)과 아프리카연합군(4000명)을 지원하기 위해 최대 1000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안을 승인했다. 또한 브뤼셀에서 열린 원조공여국 회의에서 국제사회는 중아공에 대해 4억 9600만 달러(약 5300억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레즈비언 난민, 공개구혼에 추방 위기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라는 이유로 국내에서 처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우간다 여성이 항소심에서 지는 바람에 출국당할 위기에 놓였다. 서울고법 행정4부(부장 성기문)는 우간다 여성 A(28)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11년 2월 한국에 입국해 그해 4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A씨는 자신이 동성애자이고 우간다 정부가 법률로 동성애자를 탄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자신 때문에 화재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의 공포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며 A씨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이는 레즈비언이라는 성 정체성을 사유로 난민 인정을 받은 첫 사례였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A씨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왔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은 A씨가 과거 독신자 간의 만남을 주선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 구혼했고, 실제 여러 남성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A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이성애자 행세를 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A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 A씨가 우간다에 돌아갈 경우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시리아 반군 참여할까… 기로에 선 평화회담

    시리아 반군 참여할까… 기로에 선 평화회담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국제평화회담(제네바 2회담)이 오는 22일부터 시작된다. 3년간 계속된 최악의 내전으로 13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평화회담을 둘러싼 안팎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협상 전망이 밝지 않다. 17일 AFP, BBC, 알자지라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 반군 연합체인 시리아국민연합(SNC) 대표자들은 이날 터키 이스탄불에 모여 평화회담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벌였다.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는 SNC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은 과도정부 관리는 물론 향후 대선에 출마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반군 대표들이 반드시 협상에 들어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시리아 정부가 이날 국지적 휴전과 포로 교환에 동의한다고 밝혀 회담에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했다. 왈리드 알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시리아 북부 최대 도시인) 알레포에서 휴전하고, 포로 교환을 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협상 참여 여부도 논쟁거리다. 미국은 이란이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의 대량 학살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란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6월 열린 첫 제네바 회담에서도 미국과 러시아가 알아사드 대통령의 과도정부 참여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려 결실을 맺지 못했다. 반군 내의 분쟁도 골칫거리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 등은 SNC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정부군보다 SNC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반군 내 충돌로 106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유럽의 이슬람 교도들이 ‘용병’을 자처해 참전하는 것도 사태 해결을 꼬이게 하고 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이나 아랍계 이주민들이 시리아 반군에 자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국가들은 내전 해결보다 참전한 자국민들의 동향과 귀국 후 테러리스트로 활동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700여명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참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유럽인 1200명 이상이 참전을 위해 시리아로 건너갔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서울 전세가 폭등에 구리, 하남 등 알짜 분양 시선집중

    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대책들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14년, 장기간 침체됐던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어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 부동산 시장에 대해 전문가는 “취득세 영구 인하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가 폐지되면서 주택 거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세난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서울 외곽에 내 집 마련을 고려하는 수요자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3년은 세입자에게 유난히 힘든 한 해였다. 지난해 8월 중순부터 오르기 시작한 전세가는 72주째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말 전국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하 전세가율)은 66.8%로 2002년 10월(66.2%)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가율도 62.7%로, 집값이 급등했던 2000년대 초반 수준을 웃돌고 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셋값을 마련하느라 세입자들은 은행 문턱을 쉴 새 없이 넘나들 수밖에 없었다. 단기간에 목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서민들 중에는 전세난민이 생겨났으며, 폭등하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서울 중심부에서, 서울 변두리로, 서울 변두리에서 수도권으로 옮겨가기 위해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실제 통계청의 ‘국내인구 이동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말까지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입한 인구는 서울에서 전국으로 전입 인구(1,468,869명)의 20.8%에 해당하는 305,970명이다. 특히, 지난해 11월말까지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동한 순이동(전출에서 전입을 뺀 나머지) 인구는 82,728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 전국으로 이동한 순이동 인구는 86,398명이다. 부동산 전문가는 “올해도 전세난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주하는 일명 전세 난민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의 인접한 경기 지역 중 서울 전세가격 수준으로 구입할 수 있는 아파트가 반사 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오르고 있는 서울의 전셋값 상승으로 경기도로 이주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경기도의 모든 지역이 주목 받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 중에서도 서울과 인접하고,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이 우수한 신도시와 택지지구 중심으로 수요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부간선로와 서울외곽순환로를 통해 서울 도심과 강남권 진입이 쉬운 구리시에서는 구리갈매보금자리지구에서 민간 분양이 예정돼 있다. 포스코건설은 오는 3월, 구리갈매보금자리 C-2블록에 857가구 규모의 ‘갈매 더샵’을 분양할 예정이다. 분양 가구 전체를 소비자 선호도 높은 85㎡ 이하의 중소형으로 구성한다. ‘갈매 더샵’이 조성되는 구리갈매보금자리는 2009년 지정된 2차 보금자리지구 중 서울과 가장 가까워 쾌적한 자연 환경 속에서 서울의 생활권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서울 강동구와 접해 있는 하남시 미사강변지구 A10블록에도 포스코건설이 ‘미사강변 더샵’을 오는 5월 분양할 예정이다. 총 874가구로 조성되는 이 아파트는 올림픽대로와 서울외곽순환로를 통해 송파, 강남 접근이 용이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서울 강북아파트 전셋값 3.3㎡당 1000만원 돌파

    새해 들어서도 전셋값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강남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낮았던 서울 강북의 아파트 전세가가 3.3㎡(1평)당 1000만원을 넘어섰다. 13일 KB국민은행의 부동산정보사이트 ‘KB부동산알리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강북 지역 14개구의 아파트 3.3㎡당 평균 전셋값이 1026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까지 3.3㎡당 평균 989만원으로 1000만원을 밑돌던 강북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1000만원을 돌파한 이후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강남 11개구에 위치한 아파트 3.3㎡당 평균 전셋값은 1306만원, 서울 전체의 평균 전셋값은 1178만원(3.3㎡당)을 기록했다. 한편 부동산 전문업체 부동산114의 통계에 따르면 이달 기준 서울 강북 지역 가운데 3.3㎡당 아파트 평균 전세가가 높은 자치구는 용산구(1115만원), 광진구(1084만원), 중구(1075만원), 성동구(1066만원), 마포구(1036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영웅과 도살자 사이

    영웅과 도살자 사이

    ‘레바논 침공’을 주도한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85세로 11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샤론 전 총리는 200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 동안 혼수상태로 지냈다. 장례식은 13일 오후에 열린다. 샤론 전 총리는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간 대결의 핵심 인물이었다. 군인 출신인 샤론 전 총리는 이집트, 팔레스타인, 요르단 등 수많은 중동 국가와의 전쟁에 나섰다.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1973년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등에서 공로를 세웠다. 국방부 장관에 오른 1981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겨냥한 ‘레바논 침공’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쫓아냈지만 레바논 베이루트 외곽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민간인 수천명이 학살되자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2000년에는 이슬람 성지인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지역을 방문해 2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반 이스라엘 저항운동)를 야기했다. 2001년에는 아라파트 PLO 의장과 평화협상 재개에 합의하고 2005년에는 가자 지구에서 자국민 8500명과 군 병력까지 철수시키면서 우파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 극우파를 대표하는 인물답게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이스라엘에서는 그를 ‘불도저’나 ‘영웅’이라 부르며 안보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칭송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베이루트의 도살자’로 불린다. CNN은 그를 ‘이스라엘은 사랑했지만 아랍권은 욕했다’고 보도했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중재자, 영웅…그리고 도살자’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일간 영자지 ‘예루살렘포스트’는 ‘이스라엘의 영웅에게 작별 인사를’이라는 글로 그를 추모했지만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는 ‘평화의 적’이라는 칼럼을 내보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부통령을 대표로 하는 조문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국민들은 샤론 전 총리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타우픽 티라위 전 팔레스타인 정보기관 책임자는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구 상에서 없애 버리고 싶어 했지만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은 남고 그는 죽었다”고 평가했다. 칼릴 알하야 하마스 지도자도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피를 묻힌 폭군이나 범죄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샤론 전 총리의 사망에 환호했다. 가자 지구에서는 그의 사진을 불태우거나 짓밟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시리아 화학무기 1차 폐기분 첫 공해상 이송

    시리아 화학무기 1차 폐기분 첫 공해상 이송

    시리아 내전이 격화된 지난해 8월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학무기 1차 폐기분이 7일(현지시간) 시리아 라타키아항에서 덴마크 선박에 의해 공해상으로 이송됐다. 유엔과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조정관인 시그리드 카그는 이날 “화학무기 원료물질을 실은 선박이 공해상으로 출발했다. 이 선박은 라타키아항에 추가로 화학무기 물질이 반입될 때까지 공해상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AP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카그 조정관은 시리아의 두 지역으로부터 이송된 화학무기 물질이 덴마크 선박에 실려 공해상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선적된 분량과 화학 물질의 성분 등은 밝히지 않았다. 이 화학무기는 이탈리아로 옮겨진 뒤 화학물질 분해 및 중화를 위해 만들어진 미군 컨테이너함 ‘케이프레이’에 실려 공해상에서 최종 폐기된다. 공해상 화학무기 폐기 과정에 대한 해상 보안은 러시아, 중국, 덴마크, 노르웨이 군함이 책임질 예정이다. 당초 시리아 화학무기 1차 폐기분은 지난 연말까지 시리아 바깥으로 옮겨질 예정이었으나 안전 문제와 기상 악화 등으로 시한을 넘겼다. 앞서 유엔은 2013년 9월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결의안’을 채택, 시리아 핵심 화학무기(1차 폐기분)는 2013년 12월 31일까지, 나머지 화학무기는 2014년 2월 5일까지 국외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OPCW의 아흐메트 우줌쿠 사무총장은 시리아 화학무기의 첫 번째 이송은 시리아 화학무기의 전면 폐기를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1년 3월 발생한 시리아 내전으로 100만명 이상의 어린이 난민이 발생했으며, 이들을 돕기 위해 10억 달러(약 1조 650억원)가 필요하다고 유엔난민기구(UNHCR)가 이날 밝혔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내전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도 관심 보여줬으면”

    “내전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도 관심 보여줬으면”

    “한센병에 걸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전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들을 대신해 손자·손녀를 키웁니다. 한센병 환자 밀집 지역인 말렉은 교전이 일어난 보르에서 불과 20㎞ 거리인데 이분들이 피란이나 가셨을지 걱정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권기정(38) 남수단 사무소장은 8일 밤 정부군과 반군의 내란이 20여일째 이어지는 남수단으로 돌아갔다. 그는 2012년 4월부터 아동 지원과 지역 재건활동 등을 펼치다가 남수단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시작된 이후 지난달 20일 직원들과 함께 갑작스럽게 귀국했었다. 하지만 남수단·우간다 국경지대로 피란을 간 난민들이 눈에 밟혀 구호물자만 서둘러 챙겨 다시 남수단으로 돌아간 것이다. 어린이재단은 국경 지역 피란민을 위해 우선 1차로 20만 달러를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유엔은 이번 내전으로 1000여명이 숨지고 20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 소장은 8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전 세계가 자연재해나 전쟁 재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수시로 발생하는 내전 지역의 피해에는 무관심할 때가 많다”며 “끝나지 않은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아동들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본 뒤 구호활동을 시작한 그는 스리랑카, 아이티 등에서 10년 이상 난민들을 도왔다. 권 소장은 “남수단에 처음 갔을 때 학교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어 나무 밑에서 공부를 했다. 우리가 돌본 전쟁 고아만 180여명에 달했다”며 “2년 가까이 5곳의 학교를 세워 5~16세 아이 1700여명을 돌봤는데, 이번 내전으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이스라엘서 아프리카 불법이민자 파업 이틀째 “난민에게도 자유를 달라”

    이스라엘의 경제 중심지 텔아비브에서 아프리카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불법 이민자 구금 정책에 반대하며 사흘간 파업에 돌입하는 동시에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6일(현지시간) AFP,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파업 이틀째인 이날 미국 대사관 앞에서 아프리카 이주민 1만여명이 집회를 벌였다. 시위 행렬은 캐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영국 등 서구권 대사관과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이스라엘 사무소로 이어졌다. 전날인 5일에는 3만여명이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시위다. 이들은 ‘동포들에게 자유를 달라’ 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족의 생계 책임자까지 가두는 바람에 이민자들이 고난과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이는 1951년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 지난달 통과된 새 법안은 체류 비자가 없는 이민자들을 구금할 수 있고, 네게브 사막 감옥에 무기한으로 가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이스라엘의 유대교 사회 구조를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법안이 통과된 뒤 3주 만에 300명이 체포됐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불법 이민자는 수단, 에리트레아 등 아프리카 출신으로 최대 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2006년부터 이집트 쪽 국경을 통해 들어왔다고 이스라엘의 관계자는 말했다. UNHCR 이스라엘 사무소는 “불법 이민자 대부분은 난민으로서 국제협약에 따른 보호를 받아야 한다”면서 “피난처를 찾아온 이들을 무기한 가두는 것은 난민협약에 위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남수단 유혈사태 종지부 찍나… 정부·반군 직접 협상 개시

    남수단 유혈사태 종지부 찍나… 정부·반군 직접 협상 개시

    최근 내전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남수단에서 정부와 반군 대표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직접 협상을 시작해 지난 3주간 이어진 유혈 사태가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주목된다. 5일 AFP통신 등은 남수단 정부와 반군 간 공식 평화 협상이 이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렸다고 전했다. 디나 무프티 에티오피아 외무부 대변인은 양측이 이날 낮 12시부터 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휴전 시기와 방식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시작되기 전 타반 뎅 가이 반군 측 협상 대표는 폭력 사태와 관련된 정치인들의 석방과 정치적 자유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직접 협상을 하루 앞둔 4일에는 정부와 반군 측 대표자로 구성된 협상단이 사전 회담을 가졌다. 협상을 중재한 테드로스 아드하놈 에티오피아 외무장관은 이날 “남수단은 평화와 발전을 누려야 할 나라이지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 의미 없는 전쟁이 계속되게 해서는 안 되고 오늘 꼭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지난달 31일 휴전 협상을 벌이기로 결정했지만 교전이 계속되면서 협상 일정이 미뤄졌다. 양측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직접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가 돌연 연기하는 등 막판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사전 협상이 열린 이날도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는 포탄이 오가는 등 교전이 계속됐다. 이번 유혈 분쟁은 지난해 7월 남수단 제1부족인 딩카족 출신 살바 키르 대통령이 제2부족인 누에르족 출신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해임하자 이에 반발한 세력이 지난달 15일 정부군과 충돌하면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이 숨지고 2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제사회의 중재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수도권도 전세가율 70% 넘는 아파트 속출

    수도권도 전세가율 70% 넘는 아파트 속출

    전셋값 강세가 새해 들어서도 꺾이지 않고 있다. 수도권마저 아파트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70%를 넘는 곳이 속출하는 양상이다. 전셋값이 매매가를 바짝 쫓아가면서 집값 하락으로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일 가능성이 있는 ‘깡통주택’에 대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2일 KB국민은행의 부동산정보사이트 ‘KB부동산알리지’에 따르면 지난 12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70%를 넘은 곳은 경기 군포시(70.9%), 의왕시(70.2%), 수원시 영통구(70.5%), 장안구(70.2%) 등 4곳이다.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매가격이 싼 지방에서는 전세가율이 70%를 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전세가율 70%가 넘는 지역이 같은 달에 두 곳 이상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수도권 전세가율이 70%를 돌파한 것도 2002년 3월 인천(71.4%)과 4월 서울 강북(72.1%) 등 두 차례에 불과했다. 군포, 의왕, 영통, 장안은 지난해 11월 말 전세가율이 각각 69.3%, 69.5%, 69.7%, 68.6%를 기록하더니 1개월 만에 나란히 70%를 돌파했다. 이들 지역은 소형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삼성전자 사업장이 위치한 수원 영통구처럼 집을 사지 않고 거주하는 젊은층 비율이 높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서울을 떠나 경기·인천 등으로 빠져나가는 ‘전세난민’이 늘면서 수도권 전세가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시도별 인구 이동 결과에 따르면 전출자를 빼고 순수하게 유입된 인구의 숫자는 경기도가 3461명, 인천 2383명 순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서울에서는 전입 인구보다 전출 인구가 많아 한달새 1만 1357명이 빠져나갔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사업부 부동산전문위원은 “과거에는 수도권에서 전세를 살다가 매매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전세가율 60%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전세가가 치솟아도 선뜻 집을 사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 전세가율이 지속적으로 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깡통주택’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이 매매 수요를 유도할 수도 있다고 국민은행은 분석했다. 박 위원은 “수도권 아파트 경매 물건의 평균 낙찰가율이 80% 초반을 기록하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 전세가율이 70%를 넘는다는 것은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통째로 날릴 위험성이 커진다는 뜻”이라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질수록 일부 전세 수요자가 매매나 반전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남수단 정부·반군 평화협상 시작

    2주간 교전을 벌이며 대립하고 있는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이 에티오피아에서 만나 평화협상을 시작한다고 AFP 통신이 31일 보도했다. 디나 무프티 에티오피아 외무부 대변인은 AFP통신에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이 지금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로 오고 있으며 오늘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협상 발표는 반군의 대변인 모세스 루아이가 “보르는 우리가 (다시 일주일 만에)장악했다”고 주장한 뒤 이뤄졌다. 그러나 정부군은 교전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반군이 재탈환했다고 주장하는 종글레이주의 주도 보르 지역은 수도 주바에서 북쪽으로 200㎞ 거리에 있으며 우리 정부가 파견한 한빛부대의 주둔지다. 282명의 장병으로 구성된 한빛부대는 지난해 4월 현지에 도착해 재건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평화협상은 아프리카정부간개발기구(IGAD) 정상들이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31일까지 휴전안을 받아들이고 키르 대통령과 직접 협상하라고 촉구한 가운데 이뤄졌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마차르 전 부통령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인근 국가들의 조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랜 내전 끝에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에서는 지난 15일 키르 대통령의 정부군과 지난해 7월 해임된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반군이 주바에서 교전을 벌여 왔다. 유엔은 이번 남수단 분쟁으로 지난 2주간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8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지난 24일 보르에서 정부군이 반군을 몰아냈으나 이날 아침부터 또다시 교전이 발생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남극부터 아프리카까지… 한국 리더가 뛴다

    남극부터 아프리카까지… 한국 리더가 뛴다

    KBS 1TV의 신년기획 프로그램 ‘글로벌 리더의 선택’(1~3일 오후 10시 50분)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세계무대를 빛내는 한국인 리더 3인방을 통해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도전정신을 제시한다. 1일 방영되는 ‘대한민국 최초의 남극인 김예동’ 편에서는 극지연구소장 겸 국제남극연구위원회 부의장 김예동 박사를 만난다. 그는 남극 대륙에 오는 2월 준공되는 ‘장보고 남극대륙기지’의 건설을 책임지고 있다. 1983년 미국 유학생 시절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남극 땅을 밟은 그는 우리나라의 남극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모두 26차례나 남극탐사에 참여했다. 풍부한 부존자원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남극에 우리나라도 곧 2개의 기지를 마련한다. 앞으로 들어설 ‘장보고 남극대륙기지’에서는 1988년 설립된 세종과학기지에서는 할 수 없었던 보다 폭넓은 연구가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하고 20여년간 치열하게 남극에 매달렸던 김 박사의 끈기와 의지가 밑바탕이 됐다. 이어 ‘유엔의 여성파워, 강경화’ 편에서는 한국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유엔 최고위직에 오른 강경화 인도지원조정국 사무차장보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외교부 재직 시절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통역관을 역임하고 2005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의장을 맡은 그는 2006년 유엔에 입성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로 6년간 활약했다. 인권분야에서 남다른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그는 지금 세계 재난과 분쟁 지역에 대한 지원을 총괄하는 UN 인도지원조정국 차석의 자리에 올랐다. 제작진은 그의 동아프리카 3개국(남수단, 케냐, 에티오피아) 출장을 1주일간 동행했다. 내전과 홍수 피해로 수많은 난민과 이재민이 발생한 현장에서 인도지원 방안을 모색한 그는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국내 젊은이들의 롤모델이 돼 있다. 마지막 ‘세계지식산업의 리더 지영석’ 편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출판사 엘스비어의 지영석 회장을 만나본다. 세계 굴지의 출판사 랜덤하우스 회장을 거쳐 국제출판협회(IPA) 동양인 최초 회장직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세계 지식산업을 이끄는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지금의 그를 만든 원동력은 특유의 성실함과 통찰력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운도 따른다’는 지론을 가진 그는 아메리카 익스프레스 CEO의 비서로 시작해 출판계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나갔다. 또 청년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전수하는 멘토링 모임도 열고 있다. 그의 멘토링을 통해 성장한 청년들은 의사, 뉴욕 시의원 후보, 에미상 수상자 등으로 성장해 사회 곳곳을 누비고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한국인 최초 남극 방문자 관련 정정보도문] 본지는 지난 1월 1일자 27면 ‘남극부터 아프리카까지, 한국 리더가 뛴다’ 및 1월 22일자 23면(김문이 만난 사람) ‘올 3월 완공 남극 장보고 기지 건설 총괄 김예동 극지연구소장’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인 최초로 남극 땅을 밟은 사람이 김예동 박사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1963년 고 이병돈 박사가 한국인 최초로 남극(에스페란사 기지)을 방문한 사실이 자료를 통해 확인되었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소니가 앞뒤로 몸을 흔든다. 몸을 숙일 때마다 등의‘보호외국인’이란 흰 글자가 형광등 불빛에 번쩍거렸다. 흔들림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근무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여자 보호실에는 그녀와 나 단 둘뿐이었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당직실로 연락하라고 이 반장은 말했었다. 소니가 요란하게 몸을 떨더니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당직실 내선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갔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반장은 밤새 직원이 당직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했었는데,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망연히 소니만 바라봤다. 소니는 비린내를 맡은 임산부처럼 헛구역질을 해댔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소니가 말했다. “언니, 제발, 소니 물 줘.” 소니의 일그러진 입가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눌한 소니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소니도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따라 웃었다. 보호소를 안내해주던 이 반장은 말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소니한테 물어보라고. 저래 보여도 사무소에서만큼은 나보다 선임이니깐.” 이 반장은 소니를 가리키면서도 내 쪽을 흘끔거렸다. 철장 안의 소니보다 나를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살아오며 항상 마주쳐야 했던 눈빛이었기에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면 많은 혼혈을 봤을 텐데.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해서 곁눈으로 슬그머니 흘겨봤다. 아마도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혼혈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이 반장이 가리키고 있는 소니를 쳐다봤다. 내 옅은 커피색 피부보다 소니의 피부는 희었다. 소니의 피부는 한국인들이 살색이라 부르는 옅은 귤색에 가까웠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따르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소니가 언니, 하며 나를 불렀다. 그녀는 한 아름 크기의 원을 손으로 그렸다. 나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지만 왜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소니가 다시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대야 한가득 담긴 물을 본 소니는 구역질을 멈췄다. 소니는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수면 위를 내려다봤다.‘후훕 후훕’소니의 날숨과 들숨소리가 보호실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소니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대야에 담갔다. 넘쳐난 물이 바닥을 적셨다. 정수리까지 잠기자 찰랑대며 흘러넘쳤던 물결이 잠잠해졌다. 소니의 숨소리가 사라지자 보호소는 파도가 멈춘 바닷가처럼 고요해졌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얕은 내 숨소리뿐이었다. 소니의 앞머리가 흘러내렸다. 수면 위로 소금쟁이 발자국 같은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얼마나 지난 걸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소니는 미동조차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철창을 열려는데 소니가 대야에서 고개를 들었다. 물방울들이 그녀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졌다. 소니가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소니 땅 멀미했다. 이젠 괜찮다.” 땅 멀미? 배를 오래 탄 선원들이 뭍에 올라오면 멀미를 한다고 하던데, 그걸 말하는 건가. 소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온전히 자기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니는 지금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쇠창살에 기대앉은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바다에 살았다. 발, 땅에 안 디뎠다.” 물방울이 소니의 이마에서 볼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의 궤적을 따라 형광등 불빛이 반사됐다. 소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말했다. “소니 여러 여름 전, 바다 떠났다.” 그녀는 땅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올라선 땅은 흔들렸다. 바다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울렁거림을 겪어야 했다. 바다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그녀가 설명했지만 어눌한 발음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땅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한국까지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에서도, 쪽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매 순간 속은 메슥거렸다. 나는 며칠 전 봤었던 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소수종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바다 집시라 불리는 그들은 육지에 올라오면 오히려 멀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와 주변 국가의 압력 때문에 땅에 정착해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엄마가 동생을 낳다 죽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녀의 국적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피부색을 보며 다큐멘터리에 나온 저들처럼 바다와 강렬한 해가 있는 지역 출신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소니의 피부색은 그들이나 나보다 옅었다. 지하층 계단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등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은 갈아주지 않고 있었다. 흐릿한 빛에 의지해 현관문을 열었다. 안은 말라버린 우물 속처럼 컴컴했다. 벽을 더듬자 콘크리트의 냉기가 손끝에 스며들었다. 스위치를 찾지 못한 나는 어둠 속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채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무릎과 정강이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 찔끔 오줌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퀴퀴한 지린내가 밀려왔다. 나는 팬티를 갈아입을 생각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까지 기어가 누웠다. 첫 밤샘근무였고 한밤중에 소동까지, 피로에 찌든 몸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다. 얼마나 잔 걸까? 알 수 없었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만졌다. 다행히 손끝에 느껴지는 물기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눈에 무슨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린다는 걸. 무슨 꿈인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교통사고 후의 기억상실증처럼 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깨어날 때마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허기가 엄습해왔다. 더듬거리며 일어나 방에 불을 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통증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라면 두 개를 끓였다. 밥까지 말아 먹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다 먹고 난 냄비를 싱크대에 놓았다. 수도꼭지를 틀자 빈 냄비 속으로 물이 쏟아졌다. 냄비 속 옅어진 갈색 국물이 거품을 내며 소용돌이쳤다. 밥풀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다 넘쳐나는 물을 따라 개수대로 흘러갔다. 땅멀미를 한다는 소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멀미할 때처럼 속이 울렁였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울렁임은 더욱 심해졌다. 배를 채우면 이 메스꺼움이 좀 가라앉지 않을까. 찬장에서 감자칩을 꺼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듯이 넘겼지만 메스꺼움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보호실 철문이 열리고 이 반장과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이런 곳이 처음인지 창살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린이 팔뚝만 한 쇠봉이 한 뼘 간격으로 세워진 창살 안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여자 외국인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마루 형식으로 된 바닥에 국적별로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소니만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사무소 직원이 아닌 듯 남자는 관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검은색 쟈켓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특징 없는 인상은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십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이 반장이 소니를 조사실로 호출했다. 남자는 조사실로 들어갔다. 둘은 삼십 분 정도 조사실에 있었다. 가끔 소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끈적끈적하니 교태가 묻어있는 웃음이었다. 조사실에서 나온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어그러뜨렸다. 황당하다는 웃음 같기도, 싱겁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남자와는 다르게 뒤따라 나오는 소니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남자는 이 반장에게 짧게 말을 전한 후 돌아갔다. 나는 이 반장에게 다가갔다. 저분은 누구예요, 라는 내 물음에 이 반장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밀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순순히 돌아갔다. 내 태도에 이 반장은 당황한 듯싶었다. 쩝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더니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소니가 진짜 이름일까?” 나는 그제야 이 반장이 비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최대한 지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잘 직시하지 못했다. 나의 피부색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는 바로 꼬인 가방끈을 고쳐 매듯 낯을 바꾼다. 마치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어떤 반감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본 나로서는 더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 반장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말했다. “당연히 진짜 이름 아니지. 소니 들어봤잖아. 워크맨 만드는 전자회사” 작년 겨울, 한 베트남인이 여고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사건은 십분 정도 모 포털 사이트 검색어 톱을 차지했다. 첫눈이 오기 전날 대대적인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이 벌어졌다. 그날 밤 노래방을 덮친 경찰은 손님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치고 있는 소니를 붙잡았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첫눈을 맞으며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다. 그녀의 지문과 일치하는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넘겨진 불법 체류 외국인들은 사무소 내에 있는 보호실에 임시로 수감된다. 제일 먼저 그들의 국적을 확인하는데 가끔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국적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니는 아예 한국어를 모르는 척했다. 여러 언어의 통역사들이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연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협조하지 않는 한 그녀의 모국어가 무엇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굉장히 난감해했다. 직원들은 소니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수거된 소지품에서 신원의 단서를 찾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품에 지니고 다닌다. 신분증부터 휴대폰, 수첩, 메모 등. 그러나 그녀의 소지품이라고는‘SQNY’라고 로고가 박힌 짝퉁 휴대용 라디오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은 발각되었지만, 그녀의 국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 신원의 실마리가 될 이야기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녹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심문에 잘 대답하다가도 신분이 노출될 만한 질문이 들어오면 입을 다물거나 딴소리를 해댔다. 그 엉뚱한 말들 때문이었을까, 심문했던 직원들 중 몇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보내져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관에 그녀의 사진이 포함된 협조문도 보내졌다. 미친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과 자기네 국민이 아니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몇몇 국가는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보호실은 외국인 보호소로 이송되기 전, 하루나 이틀 정도 임시 수용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골치 아플 것을 눈치챈 외국인 보호소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이름이 없으니 불편함을 느낀 직원 하나가 그녀를 소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이름이 맘에 들었는지 자신을 소니라 소개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근무 첫날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 반장에게 했다. 소니가 바다에서 왔다는 내 말에 이 반장은 껄껄대며 웃었다. “소니는 신입이 오면 꼭 한 번씩 골탕을 먹이더라고. 내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냥 맘 편하게 신고식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해.” 이 반장은 은근히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이 반장은 말했다. “나도 올 초 여기 사무소로 발령받아 왔을 때 감쪽같이 속았다고. 소니가 자기는 동생한테 이름을 빼앗겼다는 거야.” 소니는 자신이 일 가구 일 자녀 정책을 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이 반장에게 말했었다. 소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다. 첫아이가 소니이자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됐던 그녀의 아버지는 앞으로 태어날 남동생을 위해 그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대신 미리 지어 놨던 남자 이름, 남동생에게 주어질 이름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곧 태어난 남동생이 가져가 버렸다. 그녀는 이름도 없고 서류상으로도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소니의 비밀을 알게 된 이 반장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중국대사관에 동생 이름을 문의해 봤더니 그런 자는 없다는 거야.” 소니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상하게도 먹먹해진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나는 만난 적 없는 엄마와 기억나지 않는 꿈을 떠올렸다. “아마도 소니는 여기서 두 번째 겨울은 나지 못할 것 같아.” 이 반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나 보다. 내 반응에 이 반장은 신이 났는지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윗분들이 그녀를 풀어주려 한다고 했다. 어차피 더는 그녀의 신원을 알아낼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둬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혹시 간첩이 아닐까 ’누군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방금 전 소니를 조사했던 남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남자가 지었던 표정으로 봐서 그녀는 간첩이 아닌 게 분명했다. 창살 사이로 소니를 바라봤다.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터운 쌍꺼풀에 불거진 광대뼈, 두꺼운 입술 위로 큼지막하게 자리한 뭉툭한 코. 아무리 뜯어 봐도 어디 사람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속으로 삼키듯 소니를 발음해 봤다.‘SONY’라는 글자를 전 세계 사람 모두 소니라고 발음한다는 기사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별 같은 느낌을 주는 소니라는 어감은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녀와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비록 ‘SQNY’라 적힌 그녀의 라디오는 짝퉁이지만. 핸드폰 벨소리에 눈을 떴다. 팔을 뻗어 보려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시작한 후부터 낮에는 앓는 사람처럼 곯아떨어져 버렸다. 벨소리는 곧 끊어졌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생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함께 문자가 와 있었다. ‘어머니 제사 때는 집에 올 거지?’ 동생의 문자를 다 읽은 나는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며 꿈을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추억처럼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 문을 열자 어제 먹다 남긴 치킨이 보였다. 차가운 치킨을 데우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살코기는 푸석댔고 닭 껍질은 질겼다. 차가울 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기계적으로 씹을 뿐이었다. 접시 위의 치킨은 모두 없어졌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온전한 것을 찾아 수북이 쌓인 닭 뼈 사이를 뒤적였다. 손에 닭 목이 걸려 올라왔다. 튀김가루가 다 떨어져 앙상해진 닭 목을 통째로 씹었다. ‘빠드득’ 입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입 밖으로 삐죽거리며 새어 나왔다. 엄마의 제사는 연극 같았다. 나는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엄마는 불법 체류 외국인이 되어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나를 낳았는지, 왜 고향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대신 단속에 걸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보호실로 들어올 때마다, 엄마 또래의 외국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마치 쏘기 직전의 활처럼 소니와 나이지리아 여자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어제 들어온 금발의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커다란 눈망울로 둘의 눈치만 살폈다. 나는 슬며시 수화기를 들어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벌써 외국인 보호소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난민신청 문제로 이송이 지연되고 있었다. 소니는 그동안 보호실의 터줏대감처럼 행동했었다. 워낙 오래 있었고 기가 셌기 때문에 처음 들어온 외국인들은 그녀에게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여자는 자신의 덩치를 믿고 그녀를 무시했다. 아슬아슬했던 둘 사이가 결국 터지려 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소니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금이 그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소니의 영역은 티브이 맞은편 창가 아래였다. 사람들은 아무리 보호실이 붐벼도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직원들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리 소니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그곳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낮잠을 청했다. 소니가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먼저 주먹을 날렸다. 소니의 주먹이 정확히 나이지리아 여자의 얼굴을 때렸지만, 나이지리아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이지리아 여자가 성큼 달려들어 소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검은 표범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보통의 남자보다 몸무게도 더 나갔으며 몸도 더 우람했다. 작은 키에 마른 편인 소니는 금방이라도 찢길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소니의 머리를 흔들어 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 기세에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구석으로 도망쳤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나도 멈칫했다. 아직 이 반장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뭉치로 뽑혀 휘날리는 소니의 머리카락을 보자, 큰일 나겠다 싶었다.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어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파리를 쫓듯 팔을 휘젓자 나는 그대로 날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틈에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깨물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소니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었다. 얼마나 세게 당기는지 소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눈초리는 찢어질 듯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흰자위로 금이 가듯 붉은 실핏줄이 섬뜩하게 번져 갔다. 이 반장이 도착했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는 제발 놓아 달라며 울고 있었다. 나와 이 반장, 우즈베키스탄 아가씨가 달려들어 겨우 소니를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소니의 입은 거품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뚝은 처참하게 살점이 뜯겨 있었다. 소니는 분이 안 풀리는지 몇 번이고 이를 드러내며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보고를 받은 김 실장이 달려왔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김 실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소니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다음 날 아침,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반장이 들어왔다. “같이 병원 좀 가줘야겠는데.” 이 반장은 소니와 나를 차에 태우고 인근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싸움을 보고 김 실장이 특별 지시를 내린 모양이었다. 여자 수감자가 외출할 때는 반드시 여직원이 동행해야 했다. 소니는 차창 밖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선지 살짝 들뜬 것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병원 대기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번 왔었는지 이 반장은 간호사와 아는 척을 했다. 대기 순번을 보니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접수를 마친 이 반장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펴들었다. 느긋한 그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지금쯤이면 거의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당장 쓰러질 것같이 피곤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고요한 대기실에 울렸다. 이 반장이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들만 이리저리 바삐 움직일 뿐 대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멍하니 티브이만 들여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밖으로 나간 이 반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올 때만 해도 어스레했었는데 어느새 대기실은 햇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슬슬 데워지기 시작한 볕은 커피 잔의 온기처럼 따스했다. 머리가 무거워지며 눈꺼풀이 스르륵 감겨 왔다.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집요하게 따라 붙는 졸음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슬쩍 소니를 쳐다봤다. 소니도 대기실의 다른 이들처럼 아침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었다. 열중했는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 쥔 손이 스르륵 풀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사막에 있었다. 작은 모래 구릉들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높아 보이는 모래 구릉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살펴봤지만, 예상대로 모래벌판 외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모래 속에서 한참을 달렸지만, 소리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멈춰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격양된 노인의 언성과 가는 아이의 음성, 사투리도 들려왔고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도 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무력감에 빠져 주저앉는데 저 멀리 누군가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히잡 같은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를 쫓았지만, 그녀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두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녀가 바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간호사가 보였다. “괜찮으세요?” 손을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축축한 물기가 만져졌다. 나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간호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환자분 어디 가셨어요? 진료실로 들어오시라는데.” 옆을 보니 소니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가 비어 있었다. 뒤통수가 서늘해지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뒷줄에 새로 온 이들이 보였다. 화장실로 달려가 봤지만, 소니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소니를 봤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목이 탁 막혀 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 반장이 들어왔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소니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내 이야기를 들은 이 반장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이 반장을 쫓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반장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소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뿐, 어디로 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수많은 목소리와 거리의 소음들이 한꺼번에 귀로 파고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문득 스쳐 가는 한 여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옆모습은 소니와 닮아 보였다.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안경을 쓴 여자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소니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여자에게 사과한 후 무턱대고 앞으로 걸어갔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가 멈춰 서자 소니와 닮은 여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나는 누구를 쫓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가방을 멘 여자를 따라갔다. 한참을 쫓는데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번에도 소니가 아니었다. 여자의 한국말은 너무나도 유창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반장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돌아갈까.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데 옅은 커피색 피부의 손등이 보였다. 보호소 철장 안에 이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도망쳐 나온 게 내가 아닐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그러진 간판의 글자들은 처음 보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 이곳의 내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빈 석상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던 걸까, 핸드폰이 울렸다. 이 반장에게 온 전화였다. 그는 소니를 찾았으니 집으로 퇴근하라 했다. 소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자신의 영역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내 기분은 가을비처럼 오락가락했다. 도망친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고 돌아와 준 것에 대해 고맙기도 했다. 소니는 도망친 지 네 시간여 만에 자기 발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직원들은 그녀가 어디를 갔다 온 건지 몸이 달 정도로 궁금해했다. 하지만 소니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이 반장이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다. 병원 근처 지하철역의 개찰구와 그 앞 대합실을 찍은 CCTV 영상이었다. 하단의 숫자는 소니가 도망친 날의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반장이 ‘저기다. 저기’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화면 끝에서 소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홉 시 삼십 분이었다. 병원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였다. 내가 졸자마자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녀는 대합실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단의 숫자가 열두 시를 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눈길을 보내지도 않았다. 이 반장이 비아냥거렸다. “돈이 없으니 아무 데도 못 가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아는 소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사람을 속여서라도 갈 사람이었다. 이 반장은 의심스러운 장면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며 한 번 더 비디오를 틀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화면을 스쳐 지나갔고 의자에 앉은 소니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반장과 나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소니의 도주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갈까 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 사건 이후에도 소니는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새로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텃세를 부렸고 자신의 영역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소니가 또다시 겨울을 보호소에서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첫눈 예보가 있던 날 소니의 석방이 통보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소니는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자신의 몸에 자해를 했다. 결국, 소니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단호했다. 그런 소동을 부렸음에도 다음 날로 석방이 미뤄졌을 뿐이었다. 새로 온 소장은 골치 아픈 문제를 빨리 치우고 싶어 했다. 이 반장은 병원에서 돌아온 소니를 잘 감시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첫날처럼 보호실에는 나와 소니 둘만이 남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다른 수감자들은 일찌감치 외국인 보호소로 보내 버렸다. 취침시간이 지났는데도 소니는 자리에 눕지 않았다. 불을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톤으로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지하철역을 말하는 건가,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소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걸을 때 참 무서운 얼굴을 한다. 그런 얼굴로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소니는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바라봤다. 소니의 눈동자는 마치 갓난아기의 눈처럼 샛말갰다.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 흰 얼룩 같은 눈송이가 쌓이고 있었다. 어제 내릴 거라던 첫눈은 오늘 아침에야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파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니는 예정대로 오늘 아침 석방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이송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니가 더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가고 있었다. 나는 소니의 발자국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벌써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지럽혀 있었다. 무작정 소니의 흔적이라 짐작되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눈바람이 날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발자국들은 뭉개졌다. 나는 발자국을 놓쳤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역 앞이었다. 나는 역으로 들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역은 붐볐다. 부딪히지 않게 나는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그때, 왠지 낯이 익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도망친 소니가 앉았던 지하철역의 의자였다. 나는 그 의자로 가 앉았다. 소니의 말대로 사람들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빠르게 내 앞을 지나쳐 갔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지듯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점점 옅어져 갔다. 결국,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고 역에는 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소리들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주변 소음은 오히려 증폭되어 귓전을 때렸다. 전차가 진입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전차는 A시 공단역으로 갈 것이다. 엄마는 A시 공단역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니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끝>
  • 남수단 한빛부대 주둔지 보르 인근서 교전…“반군 총공격 시작될 듯”

    남수단 한빛부대 주둔지 보르 인근서 교전…“반군 총공격 시작될 듯”

    한빛부대가 주둔한 남수단 보르 인근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발생했다. 남수단 정부군인 인민해방군(SPLA) 대변인 필립 아구에르는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보르 북쪽에서 총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구에르는 “곧 (반군의) 총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보르에 주둔하는 정부군은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니알 마자크 니알 보르시 시장도 보르에서 북쪽으로 30㎞가량 떨어진 마티아 지역을 ‘백색 군대’로 알려진 반군이 공격했다고 전했다. 그는 로이터와의 통화에서 “(백색군이) 마티아 마을을 공격해 주민을 살해하고 민가를 불태우고 있다”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보르로 도피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남수단 정보장관 역시 보르 외곽에서 정부군과 반군이 충돌했다고 확인했다. 루에트 정보장관은 앞서 이날 2만 5000명 규모의 백색군이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어 대규모 전투가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교전에 따른 사상자 규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레이첼 니예다크 폴 정보부 차관은 보르 지역에서 퇴각하도록 반군을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폴 차관은 백색군의 주요 구성원인 누에르족의 관리를 통해 백색군 지휘관과 수차례 통화해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인종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개입을 삼가라고 촉구했다고 CNN에 말했다. 오랜 내전 끝에 2011년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에서는 지난 15일 살바 키르 대통령의 정부군과 지난 7월 해임된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반군이 수도 주바에서 교전을 벌였다. 키르 대통령은 딘카 족이고 마차르 전 부통령은 누에르 족이다. 정부군은 지난 24일 반군이 거점으로 점령하고 있던 보르를 재탈환했다. 벌레를 퇴치하려고 온몸에 흰색 재를 발라 ‘백색군’으로 불리는 반군은 대부분 누에르족 출신으로 1991년 보르에서 발생한 딘카족 학살에도 관여했다. 유엔은 2주간 이어진 남수단 분쟁으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8만명 가량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는 분쟁 종식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거의 매일 전화해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남수단에 파견된 도널드 부스 미국 특사도 협상이 곧 시작될 수 있다고 전해왔다고 이날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이 말했다. 같은 날 남수단 주바를 방문해 키르 대통령과 만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도 반군 측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31일까지 휴전안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282명의 장병으로 구성된 한국의 한빛부대는 지난 4월 초 본진이 현지에 도착해 재건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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