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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공화국과 張勉](15)분출하는 욕구(下)/기고

    1961년 2월4일 장면(張勉)총리는 반도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4주년 기념모임에 초청받아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을 주제로 강연한다. 장면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 괴뢰의 앞잡이들이 ‘조선인민보’나 ‘해방일보’를 발행하겠다고 등록신청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을 만큼 완전한 언론출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무책임하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독선적인’ 언론이 횡행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장면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압제에 반대해야 하는 것과 같이,자유가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무절제한 언론에 대한 이 경고를,관훈클럽은 훗날 발간한 ‘40년사’에서“언론에 경종을 울리는 진지하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李承晩)독재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신문은 학생세력·민주당과 더불어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자유당 정권은,비록 그후의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시대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독재체제를 유지하고자 언론에 대해 탄압을 거듭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59년 4월30일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것이다.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은 그 무렵 자유당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으며 장면이 대표하는 민주당 신파를 지지했다.따라서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몇가지 꼬투리를 잡아 경향신문에 철퇴를 가했다. 그러나 도하 각 신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유당 정권의 비정(秕政)과 ‘3·15 부정선거’,그리고 이에 따른 학생·시민의 항거를 끊임없이 보도했다. 따라서 4월혁명후 언론은 명실공히 입법·사법·행정에 못잖은 ‘제4부’로떠올라 그 힘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언론계의 변화는 먼저 양적인 팽창으로 나타났다.1960년 3월31일 현재 국무원 사무처에 등록된 각종 정기간행물의 숫자는 그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간신문은 4·19 전의 41종에서 112종으로,일간통신은 14가지에서 274가지로,주간신문은 136종에서 476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그야말로 ‘사무실 한평에 등사판 하나만 갖추면 통신사 간판을 내걸고 실업자 서너명만 모으면신문사 간판을 내걸 수 있는’시절이었다. 언론사가 급증하자 사이비기자가 판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에 따라강경·논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사이비기자 물러가라”며 데모하기도 했다.한국일보가 1961년 2월 말 연재한 ‘기자가 취재한 기자군(記者群)-공갈기자’시리즈를 보면 그들의 성분과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공갈기자’와 ‘진드기기자’들에게는 전직이 있다.…연무대 주변에서진을 친 이들의 대부분은 전직이 헌병대 문관 아니면 형사,또는 CIC군관,이밖에 퇴역군인이다.그래서인지 ‘진드기기자’들의 취재 태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고듣는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탐색하고 사람을 취조하는-말하자면 ‘범죄수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전통있는 언론사야 행태가 물론 달랐지만 그들 역시 정부 시책을 사사건건물고 늘어져 비난하는 것을 신문의 의무로 아는 듯했다.당시 언론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3·15 부정선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당 간부장경근(張暻根)이입원중인 병원을 탈출,일본으로 밀항한 사건이 발생한다.이에 서울일일신문은 “면이와 경근이 때문에 창피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장씨 종친회’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국무총리 장면과 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된 장경근을 한데 엮어 비난한 것이었다. 장총리의 공보비서관인 송원영(宋元英)이 서울일일신문의 이관구(李寬求)사장을 찾아가 항의하니 이사장도 “이건 너무했다”면서 윤전기를 멈추고 만평을 뺐다고 한다(송원영 회고록에서). 경향신문 정치부장으로 있다 바로 공보비서관이 된 송원영은 “모든 매스컴이 장면정권을 두들겨팼다.마치 언론자유는 장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처럼”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신문이 보도 면에서 신중과 자제를 잃어(宋建鎬 표현) 독자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사태도 자주 일어났다.부산일보는 동아대 학생들의 습격을 받아 20일동안 휴간했으며,한국일보는 ‘혁명전야’라는 연재소설에서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연세대생을 모욕했다는 항의를 받자 연재를 중단했다.박태선(朴泰善)장로교회 신도 수천명이 대낮에 동아일보 사옥에 침입,난동을 부린일도 있었다. 장면정부는 언론의 이런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설득하는 이외의 방법은 쓰지 않았다.장면정부의 언론 주무장관인 정헌주(鄭憲柱) 국무원 사무처장은 “심지어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쓰곤 했지만 그래도 정부로서는‘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자리를 잡겠지’하는 생각에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론도 세월이 흐르면 책임을 깨닫고 스스로 바로 설 것이라는 그 자율기능을 믿은 것이다. 장면정부는 오히려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애썼다.가끔 ‘대통령 유시’나 발표하고 기자회견은 1년에 한 두차례 하는데 그쳤던 이승만과는 달리 기자회견을 매주 한차례 정례화했다.그럴 때면 전 각료를 동원하다시피해 갖가지 질문에 답했다. 또 KBS라디오를 통해 ‘주례 국정보고’도 방송했다.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 이 방송에서 장면은 민주당 정부의 방침을 국민들에게 설득조로 이야기했다. 4월혁명을 이룰 때까지 민주당과 신문은 ‘동지’였다.그러나 장면정부가들어서자 어제의 동지는 ‘적’으로 돌변했다.5·16쿠데타후 신문은 장면정부를 망친 ‘3신(新·신문,민주당 구파가 분당한 신민당,신파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 가운데 하나로 인구에 회자됐고 군사정권 아래서 모든 자유를 빼앗겼다. 이용원기자 ywyi@[기고] 언론자유 수호 自淨운동 싹 틔워4·19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진 후 한국 언론은 비로소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됐다.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급격히 사라졌고,언론 스스로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허정(許政)과도정부는 1960년 7월1일 법률 제553호로서 ‘신문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이로써 허가제를 규정한 미 군정법령 88호는 폐지됐고,이제 등록만 하면 누구나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부서였던 공보실이 폐지됐고,국가보안법과선거법에 삽입된 언론통제 조항도 삭제됐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언론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자유를 누렸다.그러나 갑자기 언론자유가 주어지자 우후죽순처럼 정기간행물이 쏟아져 나와 일간지나 주간지가 4·19 전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날 정도가 되면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들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한편 1960년 5월 부산을 시작으로 하여 대구·서울 등지의 여러 신문사에서 노조가 차례로 결성됐고,KBS도 ‘방송중립화 운동’을 펼쳐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그리고 1961년 2월13일에는 일본 거류민단계의 조용수(趙鏞壽)가 중심이 되고 국내 혁신계 인사인 송지영(宋志英) 윤길중(尹吉重)고정훈(高貞勳) 등이 참여한 민족일보가 창간되어 혁신계 세력을 대변하게됐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에 관한 보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 항의시위나 난입,그리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이같은 사태는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보도를 한 언론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고 한 일부 독자들의 잘못된 의식도 작용한 결과였다. 이렇듯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자유가 급격히 신장됐지만,언론자유는점차로 제약되는 경향을 보였다.집권 이후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민주당 정권은 언론규제 장치로 ‘외국 정기간행물 국내 배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이것은 신문이 등록제로 대체되면서 폐기된 미군정법령 88호중 제5조만 유효하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그것을 대신하는 법령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또한 창간되기도 전에 민족일보에 대해 국회에서 조총련계 자금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창간 이후 민족일보는 서울신문 공무국에서 제작됐는데,민주당 정권은 61년 3월 초에 서울신문에 압력을 가하여 이 신문의 조판과 인쇄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이 직접 언론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언론자유는 대체로 보장된 편이었다.또한 ‘신문망국론’이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던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계가 스스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제2공화국 시기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자유가 처음으로 허용됐고 또 이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도 시작됐다는 점에서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 보장된 언론자유를 지키고 언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5·16쿠데타가 터졌다.5·16 이후 언론자유는말살되고,언론은 정권의 통제와 특혜 속에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기업적 성장에만 집착하게 됐다. [박용규 상지대 교수·신문학]
  • 여야 국감 증인채택 ‘샅바싸움’/국회 이모저모

    ◎야­총풍·세풍 관련자 증인채택 강력 요구/여­“수사중인 사건 왜곡 우려” 난색 표명 여야가 국정감사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본격 ‘샅바싸움’에 들어갔다.총풍(銃風)·세풍(稅風)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이 ‘명예회복’ 차원에서 관련증인 채택을 요구하자 여당은 “정쟁(政爭)으로 수사중인 사건이 왜곡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명했다.때문에 16일 열린 일부 상임위는 여야간 설전(舌戰)으로 얼룩졌다.쟁점 상임위의 증인채택 문제는 국감이 시작되는 23일 이후 더욱 치열한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증인채택 공방◁ 법사위가 가장 시끄러웠다.한나라당은 총풍사건과 관련, 吳靜恩 張錫重 韓成基씨 등 ‘3인방’과 가족,신체감정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李漢榮 법의학과장,姜信玉 변호사,‘옥수수 박사’ 金順權 경북대 교수 등의 증인채택을 요구했다.편파사정(司正)을 따지기 위해 청구와 경성비리사건도 증인 채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張壽弘 전 청구 회장과 裵學哲 초대대구방송 사장(청구비리),李載學 전 경성 사장과 文永晧전 서울지검 특수1부장(경성비리) 등이 지목됐다. 부산 다대·만덕지구 특혜의혹을 둘러싸고 金杞載 전 부산시장,李永福 동방주택 사장,金泰政 검찰 총장 등도 ‘리스트’에 올랐다.한나라당 李圭正 의원은 “필요한 증인을 반드시 채택해야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에 국민회의 趙贊衡 의원은 “다분히 정략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맞섰다.옥신 각신 끝에 여야는 오는 19일 간사회의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다. 정보위에서도 한나라당은 총풍사건을 담당한 안기부 요원과 북풍사건으로 구속,자해사건을 일으켰던 權寧海 전 안기부장 등을 증인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진통을 겪었다. 재경위에서는 환란(換亂) 책임과 관련,한나라당이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전후해 경제부총리를 지낸 林昌烈 경기지사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여당은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반면 여당은 세풍사건의 의혹규명을 위해 李會昌 총재의 동생 會晟씨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맞섰다.행정자치위에서는 한나라당이 서울역 집회 난동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구속된 노숙자들을 증인석에 세워야 한다고 고집했다. ▷본회의◁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의원 4명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묘한 신경전을 벌였다.국민회의 南宮鎭 의원은 “국회제도 개혁안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며 정책중심의 국회운영을 다짐했다.자민련 李良熙 의원은 “여야을 떠나 정치력을 갖고 생산적인 의정활동을 펴나가자”고 여야간 정쟁 방지를 촉구했다.이에 한나라당 申榮國 의원은 “야당이 국회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권은 햇볕을 북한에만 쬐지 말고 야당에도 보내달라”며 야당의원 빼내가기에 불만을 피력했다. 앞서 한나라당은 黃鶴洙 의원의 탈당과 관련,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그러나 주류인 李富榮·金文洙 의원이 국회일정 중단 불사선언 등 강경책을 주장한 반면,비주류의 李在五 의원이 지도부의 강경투쟁 노선을 강력 비판하는 등 이견을 빚었다.
  • ‘三風사건’ 등 현안 대접전 예고/국회쟁점과 與野 전략

    ◎상임위­야당 부도덕성 부각·특검제 도입 요구/국정감사­문민 정책실패 추궁·현 정부 실정 부각/경제청문회­경제파탄 원인 규명·공동책임론 제기 13일 정상화되는 정기국회에서는 여야간 불꽃튀는 공방전이 예상된다.총풍(銃風),세풍(稅風),병풍(兵風) 등 이른바 ‘삼풍(三風)사건’과 개혁·민생관련 법안 등 정쟁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주요 정치 쟁점별 여야 입장과 전략을 알아본다 ▷상임위◁ ○…국민회의는 ‘삼풍’과 관계가 있는 정보위 법사위 재경위 등을 통해 한나라당의 부도덕성과 李會昌 총재의 관련설을 집중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특히 吳靜恩·韓成基·張錫重 3인방과 李총재 측근과의 커넥션을 밝혀 주도권을 잡아 나가겠다는 것이다.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3인방의 고문설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사건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마련에 부심하고 있다.‘세도(稅盜)사건’은 한나라당의 ‘아킬레스 건’인 만큼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야당을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각종 정치현안에 얽힌 의혹을 도마에 올릴 태세다.정보위와 법사위에서는 안기부·검찰을 상대로 판문점 총격요청 고문조작 의혹을 따진다.안기부 간부·직원의 피의사실 유포혐의,피의자 가혹행위 등을 파헤칠 예정이다.15대 대선 당시 국민회의쪽의 대북 접촉설이나 검찰청사 1144호에서의 안기부 고문 의혹 등도 문제삼을 방침이다.대선자금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도 요구키로 했다. 재경위에서는 세풍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할 작정이다.행자위에서는 서울역 집회 난동사건과 관련,여권의 조직적 폭력배 동원과 경찰의 방조 의혹을 제기한다. ▷국정감사◁ ○…여권은 국정감사 시기를 한나라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2주일에서 20일로 조정했다.기본전략은 ‘공격은 최선의 방어’.문민정부에서 추진한 정책 실패를 추궁하고,재발방지책 마련등 정책감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경제 실정(失政)과 총체적인 국정수행능력 미비를 파헤친다는 계획이다.이를 위해 소속의원간 역할분담을 통해 ‘팀플레이’를 강화,핵심 쟁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방침이다.실업난 악화와 경제위기 심화,제2외환위기 우려,구조조정의 허(虛)와 실(實),잠수정 및 무장간첩 침투사건 등 안보문제,치안부재,민생파탄,편파사정 등을 주요 쟁점으로 삼기로 했다. ▷경제청문회◁ ○…여권은 이 번 청문회를 정기국회의 대미(大尾)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지난 정권의 최대 실정은 경제정책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개최시기는 예결위와 병행,정기국회 회기내에 마무리한다는 입장이다.金泳三 전 대통령의 증인채택 여부는 미정이지만 증인 수는 25명 안팎으로 좁혀진 상태다.외환위기 상황을 재구성하고,한보·기아사태,종금사·PCS 인허가 비리 등을 추궁,IMF구제금융을 받게 된 원인과 정경유착의 폐해를 집중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정권 당시 노동법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법안 처리를 반대한 야당의 책임도 추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당시 야당 지도부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朴熺太 총무는 “경제관련 법안을 육탄 방해한 당시 야당의 책임도 동시에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나 회기내 조기 청문회에는 부정적이다.“경제살리기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 “한나라 집회 폭력은 우발적”/경찰 수사

    ◎음주 난동 노숙자 3명 영장/배후조종 혐의 못찾아 지난달 29일 한나라당 서울역광장 집회에서 일어난 폭력사태는 술에 취한 노숙자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빚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일 李永植씨(42·특수절도 등 전과7범) 등 노숙자 3명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데 이어 趙珍相씨(33) 등 용의자 4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난동을 부린 경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으나 배후조종 여부 등에 대해서는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한나라당측이 제기한 여당의 탑골공원 노인 동원설과 관련,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형사 2개반을 투입,탐문수사를 펴고 있다.
  • 한나라 서울역 집회 폭력 휘두른 3인

    ◎“노숙자 아품 나몰라라 집회 일삼는 정치 혐오”/“술 너무 취해 정치 집회인지도 몰랐다”/“싸움 말리려다 맞아 홧김에 때렸다”/사업 실패·실직자… 조직적 방해 증거 없어 한나라당 서울역 광장집회에서 일어난 폭력사태를 수사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집회당일인 지난달 29일 술에 취한 노숙자들이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감에서 우발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보고 있다.야권이 제기하는 ‘배후조종설’은 근거가 없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1일 구속영장이 신청된 노숙자 권영복(57·사기 등 전과 2범)는 “집회 당일 만취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權씨는 “당시 서울역광장 집회가 정치집회인지조차 몰랐다”면서 “광장 부근에서 혼자 소주 2병을 마셨으나 소주병을 깨고 난동을 부린 기억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5월 돼지농장사업이 망하면서 서울역 노숙 대열에 합류했고 평소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權씨와 함께 영장이 신청된 金同坤씨(48·폭력 등 전과10범)도 노숙자들과 한나라당 당원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을 말리려다 당원들이 폭행을 가해 홧김에 받아쳤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충북 옥천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성묘 갔다가 서울역에 돌아와 보니 집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면서 “싸움을 말리려고 했는데,정말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지난해 초 정화조사업에 실패한 뒤 1년여 동안 서울역 부근에서 노숙생활을 해왔다고 밝혔다. 집회 당일 단상에 올라가려다 저지하는 한나라당 당원들을 폭행한 李永植씨(42)도 “일자리도 없어 고생하는 데 정치인들이 집회만 하는 데 화가 치밀어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李씨는 전남 목포시 봉명동 고기박스 제조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장을 잃고 지난 5월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이처럼 배후조종설을 부인하고 있는 데다 별도의 물증도 찾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집회 도중 청중 사이에서 조직적인 방해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은 데다 몸싸움과 야유 등 사소한 마찰만 군데군데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조직적방해공작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나라당측은 이 사건을 여당의 야당파괴공작으로 규정,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두 가지 의혹을 제기했었다.하나는 ‘탑골공원 노인 동원설’이고 다른 하나는 집회 당일 ‘노숙자들에 대한 우산 제공설’이다.
  • 檢·警 野 서울역집회 방해 진상규명 안팎

    ◎정부 도덕성 걸고 의혹 규명/“정치음모” 野 공세에 정면대응/배후·경찰방조 여부 집중수사 지난 29일 발생한 한나라당 서울역 집회 방해사건의 진상을 밝히라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과거처럼 진상을 덮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을 빌미삼아 국회를 공전시키는 구태(舊態)도 버려야 한다. 金鍾泌 국무총리는 30일 한나라당 항의단을 맞아 철저한 진실 규명을 다짐했다. 金총리는 불상사가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의 뜻도 표시했다. 여야의 주장,어느 것이 옳은 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조사를 지시했다. 金正吉 행자부장관도 경찰에 한점의 의혹도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 수사전담반도 편성했다. 대검도 비슷하다. 폭력 가담자 엄벌을 다짐하고 있다. 당국은 이미 용의자 몇몇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정부 조사의 초점은 크게 두가지다. 야당 주장대로 ‘불순한 배후’가 있는지가 첫번째다. 두번째는 괴청년들의 난동을 경찰병력이 방관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핵심은 배후 여부다. 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벌일 태세다. 과거 정권에서도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철저히 조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50년대 자유당시절 정치깡패,70년대말 유신시절 야당전당대회의 각목사태,80년대 중반 용팔이사건 등 과거 우리 정치사는 여권의 정치음모적 사건으로 얼룩져 왔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그 원인과 주모자를 가려내지 못했다. 정부가 사건의 진상규명에 발빠르게 나선데는 이유가 있다. 이번 사건을 잘못 처리하면 ‘국민의 정부’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당당히 선언하고 나선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 내에는 무모한 정치폭력을 획책할 만한 구시대적인 인물이 없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여권으로서는 이번 사건이 여야간 공방으로 그치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공방수준에 그치면 한편의 의혹은 남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정치공작에 희생당했던 金大中 대통령의 명예도 걸린 일이다. 또 여권이 조기 결판을 내려는것은 이번 사건이 장기화 될 경우 소모적인 정국이 경색이 계속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사 결과,조직적으로 집회를 방해한 세력이 있었다면 관련여부와는 별개로 여권이 곤혹스럽겠지만,노숙자들의 돌발적 행동으로 나타나면 한나라당은 반성해야 한다. 그 양단간 어느 쪽이든 엄정하게 결론이 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 혼미의 인도네시아… 총은 ‘약자’가 쏜다(박갑천 칼럼)

    인도네시아 사태는 암담하고 처참했던 우리 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학생시위와 과격 진압에 분노하는 시민의 합세와 장갑차와 한겨레 가슴에 불을 뿜는 총부리와….다만 방화·약탈 등 일부 시민들의 빗나간 난동만은 우리 경우와 다르다.결과는 모르나 대통령 하야설은 문득 40년전 李承晩을 연상케도 한다. “그 이승만의 4·19때 최루탄이 있었다면…”하는 가상론이 곧잘 나온다.피를 본 군중의 가세로 해서 파국은 더 빨리 다가왔기에 하는 말들이다.5·18광주민중항쟁은 어떤가.진압군의 무차별 발포와 잔혹행위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만 것 아니던가.그동안 최루탄 망국론도 나온 터이지만 사실은 그후의 수많은 시위에서 인명살상을 줄였다는 것이 최루탄 예찬론.그 최루탄을 넘어선 인도네시아 총소리는 마침내 쏜자의 조총(弔銃)으로 되들리게 될 것인지도 모른다. 부부싸움만해도 불뚝 성질내며 막말하는 남편은 아내한테 지는 법이다.백성을 네뚜리로 보면서 총기를 쓰는건 그런 남편에 비유할 수 있다.총기보다 무서운 것은 민심이기 때문이다.(31장)이 “무기는 상서롭지 못하다”(兵者不祥)고 말한 뜻도 그런 원리에서 출발되었다 할 것이다.는 계속하여 “남의 나라와 전쟁하며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자는 천하에서 뜻을 얻지 못하는 법”이라고 덧붙인다.한데 하물며 내겨레 가슴에 총을 겨누는 일이겠는가. 중국·인도·미국에 이은 세계 제4위 인구대국 인도네시아.13세기말께 기세등등 주변국을 굽잡아나간 원(元)나라 쿠빌라이의 침공군을 물리친 싱고사리왕국도 그들 조상이다.그에 이은 모조파이트왕조는 한때 동남아시아를 꺼두르는 황금시대를 구가하기도.오늘날 수도 자카르타거리나 대학이름에 보이는 ‘하얌=우르크’‘가자=마다’는 그 왕조때의 왕과 그를 보좌한 재상이름을 딴 것이다. 모조파이트왕조가 있었던 자바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섬과 섬의 나라’란뜻으로 ‘누산타라’라 부른다.인도네시아란 이름은 독일 인류학자 A.바스티안이 ‘인도의 섬들’이란 뜻으로 ‘인도스 네소스’(Indos Nesos)라 부른데 기원한다고 한다.수도 자카르타는 ‘자카트라’라고도 하는데‘승리의 도시’라는 뜻이다. 천혜의 자원 가멸진 저력의 나라 인도네시아.승리의 도시 자카르타에서 울릴 승리의 소리는 어디서 어떻게 날 것인지.우리경제와도 관계가 깊은 나라이기에 우리의 관심도 유다르다.
  • “세계 유가 끝없는 추락”/아랍석유수출국기구 전망

    ◎아 위기·이상난동·산유쿼터 확대 영향 【카이로 연합】 이라크 사태와 동남아시아 경제위기,북반구의 온난한 겨울 기후 등으로 인해 세계 원유가격은 현재의 하락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가 15일 전망했다. 압델 아지즈 알­투르키 OAPEC 사무총장은 쿠웨이트 언론과의 회견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일부 회원국들이 자카르타 회담에서 결정한 산유 쿼터를 준수하지 않는 것도 세계적인 원유가 약세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OPEC는 올해 1월 1일부터 하루 최대 산유량을 현행 2천5백만배럴에서 2천7백50만배럴로 10% 늘리기로 결정한 바 있다. 투르키 사무총장은 이라크와 유엔의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원유시장의 변화와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이라크 산유쿼터 확대노력의 결과가 유가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걸프지역의 전쟁위기가 심화될수록 걸프 역내 국가들의 경제에도 부정적 여파가 증가할 것이라면서 현재의 결프위기가 원유가 인상에 도움이 되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엘니뇨 후유증/이중한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세계기상기구(WMO)의 엘니뇨현상 전망이 2일 알려졌다.185개 회원국 기상자료를 검토한 결과,지난해를 기후관측사상 가장 더운 해로 만들었던 엘니뇨세력은 올 5월부터 줄어들 것이지만 그 뒤를 ‘라니냐 현상’이 이을 것이라고 한다.엘니뇨가 적도 수온이 높아지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면 라니냐는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정상보다 0.5도 저온이 되리라는 추정이다.이렇게 되면 몇달씩 홍수속에 살았던 페루에는 가뭄이 오고 산림을 모두 불로 태웠던 인도네시아는 홍수를 맞게 될것이다. 그동안 이런 전망은 우리와 좀 거리가 멀었었다.지역적으로 엘니뇨 영향권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사태는 바뀌었다.한반도도 엘니뇨 영향권에 들어선 것이다. 폭설과 폭풍우가 동시에 쏟아지는 기후난조를 경험했고 평균기온으로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그러니 라니냐 영향도 받게 되리라는 가정이 필요하다. 기후난조의 손실은 가시적 기상재해만이 아니다.상당 시간이 지나야 알수 있는 생태계 변화가 있는가 하면 당해연도 농사에 주는 혼란도 크다.이번 난동만 해도 여름농사에 벼 병충해 피해를 줄것이고 예년의 몇배에 달하는 농약을 쓰게 할지 모른다.그리고 저온,잦은비,일조량부족 등 냉해가 또 이어진다면 쌀 생산량을 줄일 것이다.농림부가 다행히 2일 이 대책을 내놓았다.도열병 5.5배,멸구류 4.3%,벼물바구미가 10%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이달중 ‘쌀생산대책 상황실’을 설치하리라 한다.당장 올해 엘니뇨 후유증만 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적극적인 대안을 세워야 할것 같다.그것은 우리도 우리만의 기상위성을 갖는 것이다.현재 130여개의 기상관측위성이 떠 있지만 점점더 유료화하고 있고 자기지역만 철저하게 관측하고 있다.기상위성을 가지면 기상예측정밀도를 20% 높일수 있고 몇초 단위로 대기오염가스까지 파악할수 있다.돌발적 기상재난의 물적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위성비용의 경제성도 효율적이다.기상대비가 발전에 있어 중요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 “대학 일류돼야 사회 선진화”/김 대통령,대학 총·학장과 오찬

    ◎정부 학원폭력 방지 최선다할것 김영삼 대통령은 28일 낮 대학교육협의회장인 윤형섭 건국대총장을 비롯한 전국 161개 대학 총·학장들과 사골우거지탕으로 오찬을 함께 하면서 대학교육개혁과 학생지도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대통령은 대학 총·학장들에게 “국민을 기쁘게 하고 안심시키는 대학이 되도록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참석자들은 이대순 호남대 총장의 설명을 들으며 대학생 해외봉사활동에 관한 슬라이드도 시청했다. 다음은 오찬대화 요지. ▲김대통령=학생회 간부의 자격기준을 어떻게 강화하고 있습니까. ▲윤건국대총장=4∼6학기 재학생으로 평균 성적이 ‘C+’(2.5) 이상이고 징계전력이 없는 학생 등으로 자격을 제한토록 26일 모든 대학에 권장 공문을 보냈습니다. ▲김대통령=새 학기 학생대책은 어떻습니까. ▲노성만 전남대 총장=한총련 문제로 전남대는 여러가지로 국민들에게 누를 끼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전 교수와 직원,많은 학생들이 새 출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한총련 회장은 사태직후 제적시켰습니다.과거같으면 어려운 일이었으나 이번에는 학생들도 협조했습니다.새 학기 학업면에서 문제없습니다. ▲김대통령=교육개혁은 어떻게 추진하고 있습니까. ▲김덕중 아주대 총장=공급자인 교수들 중심의 교육을 수요자인 학생들 중심으로 바꾸었습니다.대학입학이후 4년간 자신이 진출할 분야를 학생들이 정하도록 했습니다.공대·경영대·의대 등 3개 대학 중심의 특성화를 과감히 선언했습니다.정보화와 평생교육체제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우리 사회가 선진화되려면 대학이 일류가 돼야 합니다.그 일은 총장과 교수,부모가 같이 해야 합니다.학원폭력방지에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작년 연세대의 학생 난동이나 올해 한총련 사태 등으로 과격한 학생수가 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입니다.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절대절명입니다.
  • 한총련 개학전 와해 수순밟기/검찰 공개소환 배경

    ◎“이번엔 근절 안되면 제2한총련 태동”/국민공감 형성… 잔류자 자진탈퇴 유도 검찰 등 공안기관이 30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 대한 사법처리 유보 시한을 하루 앞두고 ‘미 탈퇴자 전원 입건 방침’을 재천명,본격적인 한총련 와해 수순에 들어갔다. 이같은 강경 방침에는 지난해 8월연세대 친북 난동 사태와 지난달 초 제5기 출범식 강행 과정에서 일어난 이석씨 사망사건 등으로 국민 사이에 한총련 조직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깔려 있다. 제5기 출범식을 계기로 와해작전에 들어간 검찰은 적극적인 사법처리와 탈퇴 권유라는 ‘양면작전’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206개 가입대학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2개 대학이 탈퇴한데다 강위원 의장과 9개 지역 총련의장 가운데 남총련 의장 정의찬 등 6개 지역총련 의장이 이미 구속됐다. 검찰은 특히 853명의 탈퇴자 가운데 33%인 282명이 총학생회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탈퇴했다는 점에 고무된 모습이다. 검찰 관계자는 “학생 운동권이 현격한 지각변동으로 마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한총련이라는 공개적 대중 조직 기반이 무너짐으로써 학생 운동권은 당분간 노선 투쟁을 계속하는 등 분열상이 가열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사법처리가 진행될 8월 중에도 상당수의 대학과 학생들이 탈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1차로 핵심 조직원 102명을 8월말까지 사법처리하기로 한 것은 비교적 역할이 작았던 나머지 634명에게 탈퇴 유예 기간을 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1차 대상자에 대한 사법처리가 진행중일때 나머지 조직원들도 탈퇴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93년 5월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전대협)의 노선을 이어 출범한 한총련은 4년여만에 와해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개조직은 와해되더라도 ‘정책위’,‘조통위’,‘학자추정책실’등 직업 혁명가들로 구성된 지하 지도부를 와해시키지 않는 한 제2,제3의 한총련은 언제든지 태동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함께 서울대·고려대 등 한총련지도부를 비판하고 있는 일부 대학 총학생회의 움직임도 결국에는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한 것인만큼 이들의 동향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 알바니아 국가기능 마비/일부 군경 시위 합류…공공건물 방화 속출

    ◎대통령집무실·정부청사 외곽초소 무장군 배치/장교들,항공기·군함몰고 망명… 미·EU 개입 꺼려 【티라나 외신 종합】 알바니아의 무장소요로 인한 폭력과 불법이 걷잡을수 없이 확산되면서 베리샤 대통령가족들이 국외로 탈출하는가 하면 수도 티라나를 비롯한 각지에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14일 전해졌다. 티라나 중앙병원의 의료진들은 13일밤부터 이날 상오까지 무장시민들이 탈취한 총기를 공중에 난사하는 가운데 총성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총상으로 9명 이상이 숨지고 70여명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또 티라나에서 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시코더르에서도 지난 밤 사이에 3명이 유탄에 맞아 숨지면서 사망자수가 9명으로 불어났으며 8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시코더르를 장악한 무장시위대는 밤사이에 은행과 경찰관서,법원,라디오방송국 등 정부청사와 공공건물을 모두 불태웠으며 인근 소도시에서도 공공건물에 대한 방화가 잇따랐다. 이처럼 치안체계가 무너지고 국가기능 붕괴상태가 심화된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무력충돌을 즉각 중단토록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군인과 경찰이 근무지를 이탈해 무장시위대에 합류하거나 보복을 우려해 피신하면서 대통령 집무실과 정부청사 등이 밀집해 있는 시 중심부를 제외한 수도의 치안체계는 사실상 붕괴됐다. 대통령 집무실 주변의 외곽초소와 지붕에는 무장군인이 배치됐으며 중심부의 간선도로는 정부군 탱크가 지나간 자국이 나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티라나를 비롯,알바니아 전역은 조직적 반란의 조짐은 없으나 무장군중들의 난동으로 무법천지화되고 있으며 곳곳에서 총기난사와 약탈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목격자들이 전언. 또 알바니아내 교도소들의 문이 열리면서 탈주한 죄수중에는 공금횡령혐의로 수감중이던 전사회당 당수 파토스 나노와 학살혐의로 복역중이던 마지막 공산통치지도자 라미즈 알리아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바니아당국의 군사개입요청에 대해 EU측은 사태악화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는 했으나 군사지원제공가능성은 배제했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프랑스가주도하고 있는 서구연합(WEU)은 이번 사태를 놓고 긴급회의를 가졌으나 일절 개입의도를 내비치지 않았다.미국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현황조사단파견을 지지했으나 군사개입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 ○…알바니아 군지휘관들은 앞장서 항공기와 군함들을 국외로 끌고나오고 있어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연안에는 알바니아 군함과 항공기들이 다수 넘어와 망명 등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트리탄 셰후 전 국방장관은 『군은 마비돼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평.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포항시 청사서 주민 집단난동/매립장 허가 반발

    ◎500여명 투석… 한때 업무마비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주민 500여명이 폐기물매립장 설치와 관련,포항시청에서 농성을 벌이다 시청사에 돌을 던져 시장실을 비롯한 시청사와 시의회의 유리창 100여장과 사무기기 등 집기가 파손됐다. 대보면 주민 500여명은 1일 상오 7시30분부터 시청사 대회의실에서 「대보면 폐기물 매립장 허가 반대」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였다. 주민들은 이날 낮 12시쯤 매립장 건설이 허가나자 갑자기 흥분,돌과 벽돌 등을 시청사 곳곳에 던지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이로인해 시청본관과 인근 부속건물,시청사,시의회의 유리창 100여장과 집기 등이 파손돼 업무가 2시간여동안 중단되는 사태를 빚었다. 한편 경찰은 주민들을 상대로 기물 파손 가담자를 찾고 있다.
  • 부분조업·체불… 근로자 동요 역력/한보 파동­당진제철소 르포

    ◎“올 제수는 냉수뿐” 입구부터 구호 물결/협력업체 “어음결제때 담보요구” 분통/조사단장 임창렬 차관 “정상화위해 최선 다하자” 『진성어음 설날전에 결제하라』『조상님 올 제수는 냉수뿐입니다』 정부조사단(단장 임창렬 재정경제원차관)이 30일 상오10시50분 충남 당진 한보철강제철소현자에 도착하자 협력업체,하청업체가 제철소 입구에 내건 플래카드가 이들을 맞았다.『아빠,올해 설날은 어떻게 하죠』라는 것도 눈에 띄었다.마치 산소부족으로 헐떡이는 물고기와 같았다. 통상산업부,건설교통부,노동부,국세청,중소기업청 등 정부 각 부처와 한국은행,산업은행,은행감독원 등 은행관계자들로 구성된 정부조사단은 후생동 교육관에서 회사관계자들로부터 공장 가동상황과 공사진척상황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한보철강 안정준 소장은 23일 부도이후 2단계생산 감소,야간 생산중단 등 부분조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근로자들도 동요하는 기색이 뚜렷하다며 조업정상화를 위해 전력과 가스,유류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줄 것과 체불임금을지급해줄 것을 건의했다. (주)한보 최기선 사장은 『한보철강 2단계공사가 장기간 중단되면 고가의 기계 및 전기로가 사장되고 협력업체가 연쇄도산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며 정부지원이 현장에 투입되도록 해줄 것을 건의했다. 임차관은 이에 대해 『철강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인 만큼 장기간 가동이 중단되면 국민경제에 큰 손실을 가져온다』며 정부는 공장이 정상가동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정부대표단은 회사관계자의 안내로 1단계 공사장과 2단계 공사장,전기로,미니밀 생산공정 등 공장가동상황을 점검한뒤 한보철강 협력업체,하청업체,근로자대표들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서 협력업체,하청업체관계자들은 설날전까지 진성어음이 결제되지 않으면 연쇄부도가 불가피하며 정부의 지원책이 일선 행정기관과 금융기관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협력업체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한보철강으로부터 지난해 12월분과 올 1월분 기성금을 받지 못해 직원들에게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난동사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또 진성어음이 현금으로 결제될 수 있도록 해줄 것도 요청했다. 한보철강판매주식회사와 운송계약을 맺고 일해왔다는 운송업체대표는 한보철강계열사와 손을 잡고 일해온 업체는 정부의 자금지원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데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또 정부에서는 세금유예 등 여러가지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은행에 가 어음할인을 받으려면 담보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넘어진 사람을 밟는 것 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보철강 근로자대표는 『회사가 부도났지만 근로자들은 공장정상화를 위해 묵묵히 노력하고 있다』며 ▲제철소정상화를 위해 운영자금을 지원해줄 것 ▲11,12월분 체불임금을 지급해줄 것 ▲제3자 인수시 신분보장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기업 계열사로서 한보철강과 일해왔다는 한 업체의 임원은 『51대 대기업 계열사는 진성어음 결제대상에서 제외되도록 돼있어 어려움이 많다』며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임차관은 『운송업체도 정부지원대책에 포함시켜 대책을 강구하겠으며 협력업체,납품업체의 진성어음은 자동으로 교환되도록 조치를 취해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설전에 임금을 지급받을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또 세금유예,어음결제는 절차상 문제로 일선 집행기관에서 담보를 요구하는 일이 있으나 은행감독원·국세청 등에 지시,최대한 편의가 제공되도록 하겠다며 회사근로자들과 협력·하청업체근로자들도 경영정상화를 위해 지혜를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간담회를 통해 설전까지의 한시적인 긴급 수혈은 이루어졌지만 회사경영정상화를 위해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또 나온 한총련 폭력시위(사설)

    지난해 8월 연세대사태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던 한총련 대학생의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동원한 폭력시위가 19일 하오 한양대 앞에서 또다시 벌어졌다.겨울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2천명 가까운 학생이 가담한 한총련 제5기 지도부 주도의 노동법개정안 반대집회와 시위를 지켜보며 연세대사태이후 가까스로 자리를 잡아가던 각 대학 학생회의 건전한 기풍과 면학분위기가 다시 깨져버리는 것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우리는 민노총 등 노조 지도부가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유지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실익을 얻으려면 노·학 연계의 이데올로기투쟁,특히 한총련과 연대한 정치투쟁을 벌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한총련 지도부가 무엇이라 주장하든 지난해 연세대사태는 「범총학련 통일축전」이란 불법친북 행사에서 비롯됐다.주동자와 적극가담자등 무려 44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또는 시위진압 경찰관 치사와 관련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 등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거나 재판이 진행중인 상태에 있다.검찰은 기소장에서 연세대사태를 「친북난동사건」으로 규정하고 한총련의 기본세계관이 주체사상이며 민족해방 민족민주주의혁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친북성향과 폭력시위에 대한 일반국민의 혐오감,그리고 다수학생의 외면으로 기세가 꺾인 가운데 한총련은 끈질기게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마침 노동법개정반대 총파업과 시위가 벌어지자 이에 편승,연세대사태이후의 퇴조만회에 나선 것이다. 민노총 등 노조 지도부는 첫 화염병시위가 벌어진 이 시점에서 한총련과의 관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노동법개정 반대투쟁이 친북성향의 한총련에 판을 벌여주는 결과가 되거나 노·학연대 정치투쟁으로 변질돼서는 안된다.정부도 선량한 다수학생이 총파업분위기에 휩쓸려 다시 한총련에 오도되는 일이 없도록 서둘러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지구촌 날씨가 이상하다

    ◎한국·미국 등 온대기후지역에 이상 한파·폭설/애 겨울폭우·러 11월 기온 5.8도… 230년내 최고 세계날씨가 이상하다.한국에 몰아닥친 한파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혹한·혹설·이상난동 등을 겪으며 많은 피해도 내고 있다.특히 온대기후지역이던 지역에서 갑작스런 혹한의 날씨가 두드러져 최근들면서 일반적인 날씨 패턴에 예외가 많아 지고 있어 점차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미국의 노스·사우스 다코타주를 비롯한 미주리·텍사스주등에 폭설을 동반한 혹한은 유례가 없는 섭씨 영하31도를 기록,1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지난해에도 미국동부에는 이상혹한과 함께 폭설이 내려 관공서가 문을 닫고 뉴욕주에서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바있다.미국은 1일에도 사막지역인 텍사스에서부터 오클라호마·캔자스 등 비교적 따뜻한 지역에 폭설을 동반한 한파로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나고 추수감사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을 묶는등 큰 피해를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집트에서는 겨울인데도 남부 사막지역에 많은 비가 내려1천400여가구의 집이 물에 잠기고 10여명이 숨지는가 하면 가축 5천여마리가 떠내려갔다. 아시아에서는 홍콩도 갑작스럽게 일찍 다가온 겨울날씨로 거리의 노숙자 100여명이 동사했다. 반면 춥기로 이름난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는 11월 한달평균기온이 230년만에 가장 따뜻한 5.8도를 나타냈다.눈없는 모스크바는 따뜻한 날씨가 사람들에게 좋을 듯 싶지만 각종 전염병이 나돌 우려가 많고 습도가 높아지면서 기압이 낮아 심장질병 등 각종 질병의 발병률을 높여주기 때문에 결코 좋지만 않다는 것이 현지의 우려다. 이같은 이상날씨의 원인에 대해서 단편적인 분석은 많다.그러나 그들의 분석은 『일시적으로 극지방의 찬공기 세력이 남하,갑자기 추워졌다』든지 찬대륙성 고기압이 남쪽으로 밀려 따뜻한 날씨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으로 파고들때 세계기상학자들은 이상날씨의 원인으로 지구 곳곳의 날씨패턴이 변화하고 있다는 학설을 제기하기도 한다.즉 열대,온대,아열대,툰드라,지중해성기후 등으로 패턴화됐던 지구촌의 기온대가 변화를 겪고 있다는 학설이다. 일부는 열대기온대가 점차 북상,남하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환경학자들은 대기의 성분이 각종 인공물질이 늘어나면서 기후패턴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하기도 한다.이들의 말대로라면 또 어떤 예기치 못한 날씨가 어디서 나타날지 염려되며 철저한 예보관리가 필요된다.
  • 10대 폭주족의 난동(사설)

    10대의 오토바이폭주족이 난폭운전을 나무라는 행인을 죽이고 다치게 한 사건은 충격을 넘어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16일 새벽 서울 양천구에서 굉음을 울리며 달리던 4∼5명의 폭주족이 『오토바이 똑바로 몰라』고 항의한 3명의 행인을 벽돌로 집단폭행,한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참사가 빚어진 것이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경찰은 달아난 범인들을 조속히 검거하는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폭주족에 대한 단속과 제재를 대폭 강화해주기 바란다. 이제 폭주족은 철없는 밤거리의 무법자쯤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떼를 지어 거리를 마구 질주하는 이들은 운전자와 행인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성폭행·강도 등 갖가지 범죄를 예사로 저지르고 있다.질서의식은 아예 찾아볼 수 없으며 경찰의 미지근한 단속도 아랑곳 않는다.지난 6월 폭주족 20여명이 단속경찰관을 각목과 쇠파이프로 위협한 사건은 이들의 법질서의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질서의 파괴본능이 급기야는 살인도 불사하는 극단적인 사태를 유발한 것이다. 폭주족의 난동은 이제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그런데도 당국의 대응은 너무 미흡하다.경찰은 해마다 몇차례 「폭주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불시에 차단,집중단속을 벌여왔다.그러나 단속을 해도 몇만원정도의 과태료와 범칙금을 물리는 것이 고작이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적불명의 이 저질문화가 사회에 끼치는 병폐를 감안할 때 폭주족은 청소년선도차원에서라도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치안당국은 관련법규를 엄격하게 고치는 한편 지속적이고 철저한 단속으로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다.다만 폭주족의 대부분이 10대의 탈선청소년이라는 현실을 참작,이들을 감싸안을 수 있는 사회적 기능의 확대에도 단속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 「한총련와해」 대대적 작전 예고/경찰 지휘관 회의 왜 열렸나

    ◎좌경세력척결 의지 하부조직 전달/핵심간부 검거땐 보안법 적용 방침 30일 긴급 소집된 「전국 경찰지휘관 회의」는 한총련의 북한동조 노선과 폭력시위 양상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체제수호차원에서 뿌리뽑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직폭력·학교폭력·성폭력 등 3대 폭력사범의 척결과 민생치안 강화 등 경찰이 당면한 현안들이 폭넓게 논의됐지만 초점은 한총련 와해 및 폭력시위 진압역량 강화 등에 맞춰졌다. 특히 지난 28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각 대학 총학생회·동아리방 등에 대한 일제 압수수색의 연장선상에서 구체적인 한총련 와해작업을 일선경찰하부조직에 전달하는 성격을 띤 것으로 해석된다. 회의에서는 지난 12일부터 9일간 계속된 한총련 학생들의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의 시위양상을 「전쟁을 방불케 하는 난동 테러」라고 규정했다.지금까지의 상황대처나 위기관리 기법에 일대전환을 해야 할 때라는 판단을 내렸다. 한총련 간부들에 대한 검거전담반을 무술유단자 등 최정예요원으로 편성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한총련 3인방」으로 알려진 정명기 의장(전남대 총학생회장),유병문 조통위의장(동국대 ˝),박병언대변인(연세대 ˝) 등 핵심간부의 조기검거는 물론 주사파 배후조종자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펼친다는 방침이다.「자주대오」 등 한총련 지하단체 역시 끝까지 추적해 와해시키기로 다짐했다. 경찰이 또 적법절차에 따라 대학구내를 수시로 수색하기로 한 것은 상아탑이 더 이상 신성불가침의 장소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현재 검거대상인 한총련 간부 82명 가운데 17명을 붙잡는데 그쳤지만 지역 총련 중에서는 서총련·남총련·부경총련·제주총련 등 4개지역 의장을 빼고는 전원 검거한 만큼 하부조직의 와해는 시간문제라고 자신하고 있다. 경찰은 「세기와 더불어」「참 봄을 부르며」등 이미 검찰에서 이적문건으로 규정된 것 외에도 최근 각 대학에서 수거한 각종 문건에 대한 이적성여부를 공안문제연구소에 의뢰,이적성이 드러나면 국가보안법위반 등 혐의로 엄벌한다는 계획이다.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공세적 검거위주의 진압작전을 펴기로 하고 연세대 사태를 거울삼아 ▲학교·고층건물 등 학생시위장소의 지형에 알맞는 진압전술 마련 ▲쇠파이프 방어 및 선봉대 검거전술 개발 ▲지상과 공중 합동작전 강화 ▲도시게릴라형·테러형 폭력난동시위 대비 ▲건물진입 등 특수진압기법 교육 등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 외국인 선원 대책 마련하라(사설)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한 11명을 선상에서 살해·유기한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의 선상반란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다. 아직 구체적인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배에 승선한 중국동포 선원의 난동으로 알려져 원양어선의 외국인선원 관리에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달초에는 인도네시아수역에서 우리 원양어선의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작업거부로 소동을 벌인 일도 있다. 이번 선상반란은 남태평양에서 조업중 중국동포 선원들이 『선상생활이 힘들다』고 조업을 거부하면서 발단된 것으로 전해진다. 만성적인 선원 인력난으로 원양업계에서는 경험이 없는 개발도상국 선원을 마구잡이로 승선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좁은 배 안에서 여러 국적의 선원이 힘든 일을 하다보면 극단적인 폭력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인 선원에 비해 낮은 임금과 체임, 무리한 작업지시 등에 대한 불만은 폭발의 뇌관구실을 하게 된다. 게다가 언어소통이 잘 안되는 등 문화적인 갈등까지 겹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무 준비나 대책없이 외국인 선원을 마구 고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시한폭탄의 위험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외국인선원의 고용에 앞서 제조업체의 외국인 산업연수생처럼 일정한 업무적응훈련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고용창구를 단일화하고 한국선원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현지에서의 불법채용 등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외국인선원의 관리를 체계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 원양어선의 선원관리규정에는 외국인선원이 50%를 넘지 않도록 돼 있으나 인건비가 싸다는 이유로 이 규정은 거의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선상반란을 일으킨 페스카마호에도 24명의 선원중 한국인 선원은 8명에 불과했다. 현재 국내 원양어선에 고용된 외국인선원은 1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내국인선원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항해나 조업중인 선박은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일종의 치외법권적 공간이 된다. 따라서 선상반란 등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선원의 관리·지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선원의 체계적인관리와 수급을 위한 정부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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