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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낸시랭 “내 이상형은 뇌가 잘생긴 남자”

    낸시랭 “내 이상형은 뇌가 잘생긴 남자”

    평소 톡톡 튀는 행동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슈메이커’ 낸시랭이 리얼 엔터테인먼트채널 QTV ‘러브 택시’에 스페셜 의뢰녀로 출연한다. 낸시랭은 ‘러브 택시’에 탑승하자 마자 또 한번의 깜짝 고백으로 MC 정준하와 제작진들을 놀라게 했다. 바로 자신의 이상형으로 ‘뇌가 잘 생긴 남자’를 꼽은 것. 또 늘 어깨에 올리고 다니는 마스코트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낸시랭. 결국엔 헌팅님과 낸시랭, 그리고 코코샤넬이 모두 함께 대화를 나누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돼 역시 낸시랭 다운 기막힌 소개팅이 이뤄졌다. 젊음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홍대에서 진행된 이번 소개팅에는 개성 넘치는 해외 교포 출신 대학생, 재치만점 군의관 등 거리의 훈남들이 탑승해, 낸시랭과 독특한 소개팅 시간을 가졌다. 특히 녹화분에서는 평소 정준하와 친분이 두터운 이영자와 김숙이 ‘러브 택시’에 기습 탑승해 남자는 낸시랭보다 자기들이 더 급하다며 난동을 부려 웃음을 자아냈다. 이외에도 방송에서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팔색조 매력을 선보이는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 윤혜경도 ‘러브 택시’를 통해 반쪽 찾기에 나선다. QTV ‘러브 택시’는 의뢰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가다 길거리의 초절정 훈남들과 즉석 소개팅을 가지게 해 좋은 인연을 찾아주는 드라이빙 데이트 프로그램. 낸시랭과 윤혜경의 즉석 소개팅 현장은 오늘밤(29일) 11시 QTV를 통해 볼 수 있다. 사진=QTV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월드 뉴스라인] 日극우단체 또 조선학교에 난동

    지난달 4일 교토에 위치한 조선제1초급(초등)학교에서 행패를 부렸던 일본의 극우단체들이 지난 14일 또다시 학교 앞에서 난동을 벌였다. 17일 시민단체인 ‘조선학교를 지지하는 모임’에 따르면 극우단체인 ‘재일(在日)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 소속 회원 50여명이 14일 오후 2시쯤 조선제1초급학교 앞에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들고 학교 주변을 돌며 확성기로 “조센진(한국인을 비하하는 말)은 돌아가라.” “조선학교를 부숴버리자.” 등의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 “조센진들은 밤길을 조심하라.” 등의 협박도 했다. 때문에 학교 측은 정상적인 수업을 실시하지 못했다.
  • 法·檢갈등 핵심은 ‘공무집행방해’

    용산참사와 민노당 강기갑 의원 재판을 둘러싼 법원·검찰간 갈등의 중심에는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있다. 검찰은 법치주의를 내세워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려 하지만 법원은 ‘국민 군기잡기’적 성격이 짙다고 보고 엄격한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초기 촛불시위에 대해 검·경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고, 법원이 무죄나 벌금형 선고로 제동을 걸었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17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용산참사와 강 의원 사건의 핵심은 ‘방해 받은 정당한 공무집행’이 실제로 있었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한 민원인이 경찰서 민원실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에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한 것과 관련,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정당한 경우에 한해 ▲폭행과 협박에 이른 경우 이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전제가 ‘정당한’ 직무집행이라는 점을 유의해서 봐야 한다.”면서 “다소간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 해도 정당한 직무집행이 아니라면 무죄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회폭력’이라 이름 붙은 사건에 대해 법원이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무죄를 선고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국회 본회의장 문을 해머로 부순 민주당 문학진 의원, 국회의원 명패를 집어던진 민노당 이정희 의원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회 외통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 자체가 위법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강 의원 사건과도 연결된다. 이와 관련, 남부지법은 ▲김형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이 위법했고 ▲더구나 당시 박계동 사무총장은 신문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공무를 집행 중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입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한 영장 기각률은 2005년 30.1%, 2006년 34.3%, 2007년 38.7%, 2008년 43.2%, 2009년(7월 기준) 46.9%로 꾸준히 증가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과 2009년 상반기에 40%대를 넘어섰다. 용산참사건도 다르지 않다. 용산참사 피고인들에게 1심에서 징역 5~6년형의 중형이 선고된 것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가 인정됐기 때문. 검찰이 용산참사건과 용산참사 재정신청건을 함께 심리하는 것에 반발, 재판부 기피신청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찰 진압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는 전제가 흔들리면 양형은 물론 유·무죄 판단까지도 뒤집힐 우려가 있다는 것이 검찰의 속내다. 검·경은 법원이 도전받는 공권력 문제에 둔감하다고 말한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공무집행 사범에 대한 공권력 확보방안’이란 논문을 통해 “법집행이 폭력성을 띠고 있더라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이를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 역시 “판결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경우 공권력 집행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할머니가 사라졌다. 노인정과 공판장을 지나 경찰서로 뛰어가던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할머니가, 어디? 엄마, 잘 안 들려요! 모퉁이를 돌아서자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결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칸막이를 닫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 전부터 기숙사에 와 잔소리를 해대는 팀장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오후 두 시가 다 되도록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친김에 변기 위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곧 리허설을 시작하겠다는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건 안 됩니다. 코끼리들 상태가 좋질 않아요. 오늘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팀장은 무전기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오라고 했지만 당장은 가기 싫었다. 무전기의 전원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다는 거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삼촌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울고 있던 가족들이 황망히 수골실로 내달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촌의 유골은 대리석 탁자 위에 새카맣게 탄 못들과 뒤엉켜 있었다. ‘냉각’을 거쳤다고는 하나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유골이었다. 할머니가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짓찧었다. 망연히 서 있던 아버지가 서둘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작은 뼛조각 하나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탁자 옆에 서 있던 나도 얼른 새카맣게 탄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모들은 아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내 울음을 참던 아버지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못을 내 몸에 박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리러 온 사촌 동생의 차를 탈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장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둘째 고모가 내 몫의 상복을 내밀었다. 장례식장 안팎에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삼촌이 왜 죽었을까 답답해했고 삼촌의 동료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이라도 불러 알아볼 수 없을까? 사촌 동생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삼촌의 방에 널브러진 술병들, 불에 탄 이부자리,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들. 어떤 추측은 가능할 테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삼촌은 각기 다른 이유들로 죽고 또 죽었다. 효원 장례식장 국화실에 놓인 영정사진 속 삼촌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상복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삼촌의 시신을 보았다는데도. 거의 녹아내린 새카만 못과 유골을 분리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뼈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그만 잠에서 좀 깨어나라고 흔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나는 어쩌려고 못을 집어든 것일까. 할머니가 두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내 손이 못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득달같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달라는 방송은 계속 되었다. 운영실이 가까워질수록 방송이 더 자주 들려왔고, 느려터진 두 발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저 공손한 팀장의 말투는 야수로 변해 나에게 돌진할 것이었다. 그때 가로수 사이로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색 기지바지와 연두색 스웨터, 복고풍의 파마머리까지. 혹시 할머니인가 싶어 가던 방향을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팀장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창문 쪽으로 날아갔고, 내 가슴팍에 내리꽂힌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원내 방송 담당 아나운서가 시디 데크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악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단장의 발치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나비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 기어이 팀장과 한바탕 한 것 같았다. 오전에 병원으로 실려 간 러시아 무용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하혈이 심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악단장과 팀장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더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던 내가 그 ‘중요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것이 팀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팀장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태국인 조련사 푸앙이 운영실 안으로 들어왔다. 푸앙은 코끼리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퍼레이드를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설사 따위는 팀장에게 먹혀들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푸앙의 손을 잡아끌고 코끼리 우리로 갔다. 쏘냐는 계속 설사를 했고, 아프리카 산 일 년 생 코끼리 튀라는 쏘냐의 엉덩이 쪽에 대가리를 박고 누워 있었다. 제때 검사를 하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과는 달리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래서 예방 접종, 먹이, 변의 상태 등을 확인하여 제때 사료 혹은 건초 더미를 바꾸어 주는 것들은 무척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팀장은 번번이 동물원의 재정 상태를 운운하며 우리가 올리는 건의사항들을 묵살했다. 이하설, 오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부터 자를 줄 알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팀장님, 직접 오셔서 코끼리들을 살펴보시란 말이에요! 무조건 데리고 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야? 푸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코끼리 나가지 마, 나 죽어. 푸앙,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한테 제발 좀 이러지 마! 그러나 푸앙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는 한 삼촌은 아픈 동물은 절대로 퍼레이드에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국인 조련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선에 맞추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못을 만졌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푸앙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퍼레이드의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를 나온 동물들의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한 달 전부터 신문 및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테마랜드의 혁신을 위해 팀장이 삼 개월 넘게 심혈을 기울인 행사였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삼촌은 일급 코끼리 조련사이자 동물 쇼의 사회자였다.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기 한 달 전이면 삼촌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일 테마 랜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쇼가 진행 중인지 보도해 주었다. 삼촌은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나도 삼촌에게 꽃을 건네는 어린이 중 한 명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나도 테마 랜드에 조련사 보조로 들어왔다. 그러다 조련사가 되었지만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내 업무에 허덕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삼촌처럼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뛰어넘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물 구입 차 태국과 러시아에 출장을 간 사이 삼촌은 직원 기숙사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가 지난 뒤 실신한 채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어린이 날 행사를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바쁘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악단장과 팀장 사이에 생긴 일들을 조율하고 동물원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별 탈 없이 생활을 했다는 진술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 도중, 나는 삼촌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입던 붉은색 조련복을 챙겨두었다. 팀장은 동물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사육사들이 동물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 구입의 명목으로 예산을 타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란주점에서 여자애들과 놀아났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에는 실내 경마장에서 누군가와 게임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건의서를 제출하면 가지고 있는 동물 관리나 잘하라며 번번이 우리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죽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사체처리비로 외유를 떠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줄을 잘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악단의 인원이 대폭 감소되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악단장의 연봉도 삼십 퍼센트나 감봉시켰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연주자들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곧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동물원을 떠나는 연주자들이 늘자 참다못한 악단장이 팀장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악단장은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주를 마시고,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테마랜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과 관리되지 않은 채 잡풀이 번다한 식물원, 날만 흐리면 전기가 오르는 범퍼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놀이기구만 모아 놓은 부상 랜드였다. 사육조장에게선 늘 술 냄새가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날이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동물들이 발정이 나면 수컷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늘 술을 마셨다. 나도 간간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쩐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삼촌의 성격과 그와의 관계, 동물들을 아끼던 마음, 은밀하게 나누곤 했던 농담들. 하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반쯤 마신 매실 주스에 소주를 타먹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코끼리 우리를 나오면서 빈 매실 주스 병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없어진 할머니를 이곳에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좀 바빠!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조장님, 홍학 우리에 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들을 물어뜯고 난동을 부렸어요. 뭐라고? 홍학 한 마리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알았어, 곧 갈게. 안 그래도 행사 준비 때문에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홍학무리였다.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가다 보니 남색 기지바지가 또 눈에 띄었다. 오늘은 동물원에 남색 기지바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 바지들은 여기서도 나타났고 저기로도 지나갔다. 동물원에 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남색 기지바지 혹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손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느릿느릿 걷거나 그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납골당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 공원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가는 산 중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인 줄 알았던 공원도 지나가며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물이 벗겨진 하나밖에 없는 축구 골대, 녹슨 시소, 줄 끊어진 그네. 곳곳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와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납골당이 나오질 않아 잘못 찾았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 삼십여 분쯤 더 걸어가다 보니 자그마한 분지 위에 지어 놓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곧장 유골 안치실로 들어갔다. 삼촌의 위패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 이선빈이 아닌 고(故) 이선빈은 내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쪽 세계의 풀 수 없는 문제 같은 것인가. 돌아갔으나,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낙인?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신같이 아들 있는 곳을 찾아냈다. 가져간 술과 포를 놓고 준비되어 있는 향을 피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대꾼한 두 눈을 슴벅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라 해도 한사코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술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을 쥐고 향 위에 세 번을 돌린 후 상에 올렸다. 두 뺨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옆 칸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분향실의 향내에 짓눌려 있던 나는 생담배 타는 매캐한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우리도 한 대 필까, 삼촌?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단장과 몇몇의 연주자들, 팀장에 대한 조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알지 못하던 우울증이 새로 생겨났으며,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덧붙여졌다. 추측성 발언들이었지만 조서에 쓰인 것들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되었다. 분개한 가족들이 사건 수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발인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인 전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영안실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납골당 쪽을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저쪽의 삼촌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어깨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칼은 그 사이 더 빠졌는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일 지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잘 찾았던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헷갈렸다. 납골당에 들어서는 길은 우리가 걸어온 길 하나밖에 없는데도 할머니는 분향실에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내가 앞장서 걸을 수도 있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지난 주말에 할머니와 내가 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납골당에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 것을 알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는 할머니가 한 번도 삼촌에게 다녀온 적이 없다는데,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삼촌의 자리를 잘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학 우리 안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였다. 고양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친 홍학은 다행히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이 아니라 두 달 전에 알에서 깬 새끼였다. 놀란 홍학들을 진정시키느라 껍질 깐 호두와 아몬드를 두 자루나 뿌려주었다. 어느샌가 팀장도 홍학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는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들을 좀 더 밝은 빨간색 형광 안료로 칠하라며 조련사들을 다그쳤다. 나는 홍학들에게 빨간 안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보았지만 팀장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팀장과 조련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을 보내고도 꿋꿋하게 나오던 곳이고, 그가 하던 일만은 내 손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빨간 형광 안료 통을 들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옷장에서 삼촌의 조련복을 꺼내 입었다. 오랫동안 묵혀둔 것이라 혹시 곰팡이라도 슬었으면 어쩌나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의자 위에 놓아둔 전기 총을 집어 들자 푸앙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미안해,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얼른 끝내버리자.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쏘냐의 뒷다리에 총을 쏘았다. 쏘냐가 움찔하며 왼쪽 다리를 들었다. 재빨리 엉덩이에도 총을 갖다 댔다. 한참 만에 쏘냐가 일어섰다. 푸앙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 울부짖으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쏘냐의 몸에 멋을 내느라 발라놓았던 노란색 형광안료가 설사에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형광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니 그 뜻 없는 말들은 점차 행진곡 풍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고, 얼른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호두를 쪼아 먹고 있던 홍학들이 코끼리 우리 앞에 나와 있었다. 온몸에 빨간색 형광 안료를 잔뜩 바른 홍학 무리였다. 등에 홍학을 둘씩 태운 코끼리들이 정문으로 출발했다. 붉고 노란 머리들이 공중에다 점을 찍었다. 휴대전화와 무전기에서 팀장과 사육조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어차피 코끼리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행렬을 완성할 수 없고 또 사회자인 내가 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뺐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리허설을 취소해 주세요. 뭐, 뭐야? 이대로 가단 코끼리들이 죽습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데리고 나와! 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니가 나한테, 대든 거냐? 쏘냐와 튀라는 절뚝이고 비틀거리면서도 앞만 보고 걸었다. 푸앙이 코끼리 배에 손을 얹고 함께 걸었다. 저렇게라도 가주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쏘냐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코끼리, 죽어. 나도 죽어. 푸앙이 울며 말했다.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미안해! 니가 살려! 푸앙,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키고 이미 죽은 것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니. 푸앙이 이를 악물고 우는 소리와 코끼리들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한 덩이처럼 느껴졌다. 정문 쪽에 노란 나비넥타이를 한 악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잘 다려진 연미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심벌즈 연주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탬버린을 담당했던 사람이 심벌즈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던 작은 북 담당 연주자들은 둘밖에 없었고 심지어 트럼펫 연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행렬이라도 완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고집 때문에 음악은 녹음해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연주자들이 항의했지만 오늘은 ‘리허설’ 날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악단장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한 처지인데 악단장마저 번번이 자신들 앞에서 팀장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에 익지도 않은 악기를 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악단장은 연신 나비넥타이만 고쳐 맸다.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직접 코끼리를 만지려고 다가갔다. 놀란 사육사들이 그들을 말리는 사이, 나는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내 가슴속에 맺혔다. 그 사이 ‘시’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거지? 팀장은 ‘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 사람들은 악단장에게도 다가갔다. 팀장이 활짝 웃으며 악단장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팀장에게 이끌린 악단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엉거주춤하게 그들과 악수를 했다.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않은 채 인사를 하는 악단장을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은 악단장에게 당장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악단장은 시디를 틀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빨리 하라니까! 팀장 자신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에 본인이 더 놀라고 있는 사이, 악단장이 뒤돌아섰다. 그러나 내내 굽실거리거나 팀장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던 악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악단장은 맨 앞줄의 연주자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았다. 지휘봉을 연미복 허리춤에 찔러 넣은 악단장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배의 노래였다. 멍한 얼굴의 팀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단장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당황한 팀장이 재빨리 ‘시’에서 나온 사람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 갔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원숭이와 코알라,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채 들고 나온 나무늘보들을 적셨다. 문제는 코끼리 등 위에 빨간 형광 안료를 덕지덕지 바르고 올라 앉아 있는 홍학들이었다. 진회색의 코끼리 등에 붉은 물이 들어갔고,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열심히 연주를 하는 악단장과 ‘시’ 사람들을 서둘러 본관으로 끌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동물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때 푸앙이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홍학의 다리를 잡아챘다. 푸덕, 푸흐드덕! 홍학이 거센 날갯짓을 했지만 푸앙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앙이 정문과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홍학 연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빠른 속도였다. 홍학 한 마리가 사라지자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다른 홍학 네 마리도 푸앙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앙은 홍학의 습성도 잘 알았다. 아마도 어미를 데려갔을 거였다. 홍학이 날아가면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 앉아 무릎을 굽혀 반쯤 앉거나 선 채 왼발을 들어 쇼의 시작을 알리게끔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말려볼 틈도 없이 정문에서가 아니라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등에 얹은 코끼리들이 추는 군무가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때까지도 정문 앞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댔다. 쏘냐와 튀라는 설사를 좍좍 갈기면서도 춤을 추었다. 코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접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코를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웠다가 쿵쿵 땅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왼쪽 오른쪽으로 두 차례씩 긴 코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빗줄기를 쏟아붓는 하늘을 향해 코를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번 쇼를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게 훈련된 코끼리들이었다. 홍학과 함께 한 군무가 오 분, 코끼리만 하는 쇼가 십오 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코끼리들 옆에 전기 총을 든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코끼리의 군무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쯤 다시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악단장은 마치 무한 반복이라도 할 것 같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코끼리들은 덜렁덜렁 코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푸앙이 쏘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커다란 횃불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푸앙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홍학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본관으로 갔던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문을 가로지르는 팀장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색 기지바지가 지나갔다. ……할머니? 축배의 노래에 맞춰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할머니, 할머니이! 그러나 할머니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악단장이 연주하고 있던 바이올린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따라 전기 총을 쏘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끼리들이 거세게 날뛰며 질러대는 울음과 구경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돌아서서 잠시 주춤하던 나는 다시 있는 힘껏 할머니 쪽을 향해 뛰어갔다. 빗물이 자꾸 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촌의 뼛조각을 손에 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내 손은 자꾸만 할머니의 몸을 움켜쥐려고 했다. 아버지가 못을 골라내자 화장장 직원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삼촌의 뼈를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고모들은 자신의 혈육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막힌 듯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촉망받던 조련사였으며, 사람 좋던 막내 삼촌은 그렇게 몇 줌의 유골이 되었다. 옥색 유골함 위에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삼촌은 옥함 겉면의 금박 이름으로만 남게 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게 우시려는가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유골함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쥐고 있던 두 주먹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수골실의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숙였다. 입 속의 것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할머니 뒤쪽의 흰 벽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동물원에 가보자. 집으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동물원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 않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세와 할머니의 고집 사이에서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기 어디쯤 삼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할머니의 쇄골 위에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속에서도 삼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삼촌은 할머니의 팔목을 그러쥔 채 죽이 담긴 숟가락을 할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먹은 음식이 어쩌다 얹히기라도 하면 조용히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삼촌이 그렇게라도 여기서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삼촌, 좋아? 나는 탄 못과 할머니의 무릎을 번갈아가며 만졌다. 할머니는 오래 울었다.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할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삼촌의 베개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쩌다 밥상에 삼촌이 좋아하던 창란젓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눕거나 앉거나 간신히 일어서거나 벽에 등을 기대거나. 언제 어디에서건 어떤 자세로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으로 울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울다 지쳐 손으로 몸을 짚기라도 하면 어디에서건 삼촌이 만져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유골함이 되는 일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식구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는 혼자서 동물원에 온 거였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식물원 입구였다. 할머니를 막 따라잡으려다가 도대체 왜 동물원에 왔고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 뒤를 따랐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남색 기지바지 속에서 끊임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원내 방송이 나왔다. 이하설 조장님,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물원 뒤쪽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희귀한 꽃이나 과실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누군가가 빼돌린 뒤였다. 테마 랜드를 재정비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곳도 여기였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것일까. 마침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단풍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왔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으로 모셔 갈 작정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그것을 입에 넣은 후 가슴을 쳤다. 그러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으헉, 으흑. 그것은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다가가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간은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툭툭 땅을 쳤고, 나무 둥치에 등을 짓찧었다. 돌로 만든 조형물에 얼굴을 갖다 박았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속으로만 쌓였던 울음들을 모조리 뱉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 식물원 어디선가 커다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앙? 그는 나에게 다른 한국인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자기를 찾는 거라 여기고 또 달아나버리면 어떡하지? 푸드덕거리는 새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이 식물원 안을 가득 채웠다. 죽은 나무들도 잔잔한 바람을 타며 울음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나는 할머니가 울고, 푸앙이 새들과 함께 마음을 삭이고 있는 여기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다시 걸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동물원 곳곳을 걷던 할머니는 코닥 필름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서 문 닫힌 사진관의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코끼리 등에 올라 탄 삼촌이 붉은 조련복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테마랜드 30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랬을 뿐, 사진 속의 모든 것들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은 채로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삼촌의 사진이 언제부터 저곳에 걸려 있었던 걸까. 테마랜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사진을 그곳에 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 그제야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 위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삼촌과 그것을 향해 말 없이 손을 뻗는 여인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 속으로도 빗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푸앙이 우는 소리였다. 푸앙은 팀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쪽으로 끌려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홍학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야, 이하설!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내 그렇게 멈춰 있을 것만 같던 사진 속 초로의 여인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여인의 핏발 선 두 눈이 멈춘 곳은 내가 입고 있는 삼촌의 조련복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달고 솔기를 여며준 이 옷을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새 창틀에서 떼어 낸 삼촌의 사진을 안고 있는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팀장과 푸앙도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코끼리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쏘냐와 튀라는 우리로 돌아갔을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못을 꺼내 쥐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끝> ■ 당선소감 -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타슈켄트 동물원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초원을 훑어야 할 우묵한 눈들이 녹슨 푸슈킨 동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늙고 병든 코끼리의 두툼하고 너덜너덜한 귓불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 코끼리들이 저와 함께 아랄 해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노인정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십니다. 손녀가 쓴 글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글을 써나갈 작정이므로 할머니는 기필코 200세 장수하셔야 합니다.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동인, 그 섬’의 대장 임철우 선생님(‘그 섬에 가고 싶다’를 필사하던 그 순간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잘 견디고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치열하고 엄중한 소설쓰기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수철 선생님(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쓰겠습니다.), 검룡소에서 풀솜대를 뜯어주신 최두석 선생님(돌아가지 못하는 시의 자리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글 쓰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서영채 선생님(밤새 꺼지지 않던 선생님 연구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술 취한 저는 도서관에서 잠들곤 했지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인석 선생님(아, 이제 오디오 튜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 전 홍성여고 문예반 수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정록 선생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그 운명을 결정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바로잡아주고 격려해준 권오영 시인께는 미처 다 갚을 수도 없는 마음들을 받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소설 쓰기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김도연 선배께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철없는 저를 뒤치다꺼리해 주느라 고생한, 제일 먼저 축하해준 이진희 시인.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손에 들고 계셨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같이 힘들어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리보통(Ly-botong)’으로 달려가 그곳에 계신 분들과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 -본명: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 한국어 강사 역임 ■ 심사평 - ‘현대인 삶의 축도’ 동물원… 상징적 압축미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새해 첫날, 세계 곳곳 ‘떡실신’ 남녀 속출

    2010년 새해가 밝았다. 대부분이 웃음과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한 데 반해, 일부는 새해 첫날부터 ‘떡실신’이 돼 언론에 노출되는 굴욕을 당했다. 2010년 1월 1일 새벽, 런던 중심가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해를 기념했지만, 일부 젊은이들은 달랐다. ‘떡실신’(‘인사불성으로 취한’을 뜻하는 유행어)이 된 한 여성은 친구들의 부축도 만류한 채 눈 위에 철퍼덕 누워버렸고, 한 남성은 추운 바람도 잊은 채 웃통을 벗어던지고 시비를 걸었다. 이날 런던 경찰은 취한 채 난동을 부리는 젊은이들을 체포하거나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데에 새벽을 모두 소비해야 했다. 버밍엄에 있는 병원 관계자들도 평소보다 훨씬 늘어난 ‘주정뱅이’들에게 응급실을 내줘야 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병원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누워 새해 첫날을 맞이했다. 미국 뉴욕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임스퀘어 광장은 2009년 마지막 1분을 함께 카운트다운 하려고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테러 방지 차원에서 배낭과 알코올 반입 등을 금지했지만 이미 술에 취한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시내를 배회했다. 새해맞이 행사가 열린 서울의 보신각에도 7만여 명이 운집해 2010년을 맞았다. 매서운 한파와 전날 내린 눈 때문에 교통은 다소 혼잡했지만, 행사는 별 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마무리 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향일암 悲感/김성호 논설위원

    문화재는 일단 훼손되면 원형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을 수 없는 특성을 지닌다. 훼손된 다음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모조요 복사, 즉 가짜일 뿐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은 문화재의 원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예방차원의 방재에 열을 올리고 그 훼손의 책임도 냉혹할 만큼 엄하게 따져 묻는다. 그런 차원에서 국보1호 숭례문의 소실은 우리가 문화재의 가치를 얼마나 인식하고 지키려 들었는지를 돌아보게 한 뼈아픈 교훈이다. 문화재의 훼손, 상실에서 천재의 변보다 인재의 망실은 더 가슴 아픈 일이다. 천년고찰 낙산사의 소실을 순식간의 화재참사라 하면서도 미리 막아야만 했던 방재의 미비를 거듭 들먹임도 그런 이유에서다. 낙산사 참사는 일면 천재지변으로 돌릴 수 있지만 숭례문은 부인할 수 없는 인재의 대표적 참화다. 많은 사람들은 나라의 으뜸문화재가 무너져 내림을 보면서 가슴을 쳤었다. 국보1호의 망실 자체보다 더 놀라운 건 한 노인이 화풀이의 대상으로 불을 질렀다는 어이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나라의 으뜸문화재가 불만 표출의 표적이 됐다는, 웃지 못할 사연 말이다. 사람에 의한 문화재 훼손이야 그 이유가 많을 터. 타종교에 대한 상징적 응징이 있을 것이고, 정치적 목적의 파괴 또한 인류사의 여전한 아픔이다. 2001년 탈레반 무장세력이 로켓포로 세계 최대의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것이며 나치의 무차별 문화재 폭격, 일제강점기 한반도 전역에서 이어졌던 문화재 말살….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대구 계산성당의 원 건물인 순 한식성당이 누군가에 의해 소실된 것이나, 부랑인에 의해 처참하게 불 타 없어진 옛 약현성당은 천주교계의 아픔을 넘어 문화재의 큰 상실로 꼽히는 대표적 흔적들이다. 세밑 뜬금없이 여수 향일암이 불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프링클러·경보기 미비, 저수조의 방재대책 소홀이 또 도마에 오른다. 한 해 60만명이 찾아든다는, 국내 4대 기도도량이자 빼어난 해돋이의 명소가 하룻밤 새 폐허가 됐단다. 방화 운운, 인재가 또 들먹거려진다. 지난 4월 대웅전에서의 방문객 난동으로 한 차례 수난을 겪은 뒤라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해맞이 명소’ 여수 향일암 화재

    20일 우리나라 대표적 해맞이 명소인 전남 여수의 향일암에 불이 나 대웅전 등 3개 건물이 전소됐다. 이날 새벽 0시24분쯤 전남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대웅전(51㎡)과 이곳에서 각각 2~4m쯤 떨어진 종무실(27㎡), 종각(16.5㎡) 등 사찰 건물 8개 동 가운데 3개 동을 태워 5억 90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내고 3시간여 만에 꺼졌다.이 불로 대웅전 안에 있던 청동불상과 탱화 등도 함께 탔다. 당시 사찰에 있던 승려와 신도, 사찰 물탱크 보수 인부 등 26명은 긴급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으나 일부 주민이 잔불 진화과정에서 다쳤다.불이 나자 소방대원, 공무원, 주민 등 250여명이 긴급 진화에 나섰으나 사찰이 가파른 산 중턱에 있는 데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었다.종무실장 김모(38)씨는 “요사체에서 잠을 자던 총무스님이 화장실에 가던 중 대웅전에서 불길을 처음 발견했다.”며 “‘불이야’란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 보니 불길이 이미 대웅전 지붕 위까지 치솟아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최초 발화지점인 대웅전 등 현장 감식을 펴는 한편 정확한 화인 분석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감식을 의뢰했다. 또 전날 오후 9시쯤까지 10여명의 신도들이 예불을 마치고 대웅전 안의 촛불도 껐다는 사찰 측의 설명에 따라 전기 합선이나 방화 가능성 등에 대해 수사를 펴고 있다.향일암은 지난 4월에도 ‘우상 숭배는 안 된다’는 특정 종교에 심취한 정모(43·여)씨의 난동으로 대웅전 불상 등이 훼손돼 5000여만원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전남도 문화재자료(제40호)로 지정된 향일암은 화엄사의 말사(末寺)로, 원효대사가 659년(의자왕 19년)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1715년 인묵(仁默) 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고,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향일암으로 명명했다. 대웅전 등은 1986년 새로 지었다.향일암은 천연 동백림과 섬들 사이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연출하면서 새해 첫날이면 5만여명의 인파가 몰리고, 연간 6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명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번 불로 여수시와 지역상가 주민들이 31일~2010년 1월1일 계획한 ‘제14회 향일암 일출제’가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행사는 해넘이, 개막행사, 제야의 종 타종식 등으로 여수 엑스포 성공 기원 행사도 겸하고 있어 수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여수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박홍기특파원 도쿄 이야기] 조선학교 집단행패… 막가파식 日우익

    지난 4일 일본 교토 조선제1초급학교(초등학교)의 뒷문에서 ‘난리’가 났다. 확성기를 가진 건장한 젊은이들 10여명이 몰려와 “불법 점거”, “일본에서 내쫓아라.”, “스파이 자식들”이라며 난동을 벌였다. 공원에 있던 학교의 스피커 전선을 끊고, 조회 때 쓰는 단상도 교문 쪽으로 집어던졌다. 교류회를 갖던 교토와 시가현에 위치한 4개 조선학교 4~6학년생 130명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겁에 질려 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또 강당이나 교실에서 모여 ‘횡포’가 끝날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도 못했다. 젊은이들은 다름아닌 ‘행동하는 보수’를 주장하는 ‘재일 한국인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과 ‘주권회복을 지향하는 모임’ 등 극우단체 회원들이었다. 주장인즉 “공원이 학교에 불법 점거돼 불편을 겪고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확성기나 축구공을 공원에 마음대로 놔두고 있었다. 시가 조치하지 않아 나섰다.”고 떠벌렸다. 못 말릴 존재들이다. 제1초급학교는 자금난에 운동장을 마련하지 못한 채 1960년대부터 학교 옆에 있는 공원을 운동장으로 써오고 있던 터다. 학교장은 “공원 사용은 교토시와 마을 주민회의 협의를 거쳐 승인을 받았다.”면서 “불법점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측도 “다른 주민들에게 불편이 없도록 학교 측에 요청한 적은 있지만 사용하지 말도록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조선학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회(조총련) 소속이지만 북한 국적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국적의 학생들도 다니고 있다. 전국적으로 70개교에 이른다. 극우단체들의 행패는 정치활동의 도를 넘어섰다. 배움터인지조차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막가파식’이다. 더욱이 조선학교 여학생들의 치마를 칼로 찢던 개인 행패와는 차원이 다르다. 집단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징조다. 우카이 사토시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도쿄신문에서 “공원 사용에 대한 항의라는 것은 트집”이라면서 “외국인 혐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은 지방참정권의 도입에 앞서 차별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맞는 말이다. hpark@seoul.co.kr
  • [사회플러스] ‘아이리스’ 촬영장 난동 수사 착수

    인기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에서 한 연예인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제작진과 주먹다짐을 했다는 논란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7일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에서 폭행 소동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연예인 K씨와 드라마 제작진 관계자들을 이른 시일안에 불러 집단 폭행 여부, 조폭동원설 등에 대한 사실 관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사건이기 때문에 광역수사대가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4일 새벽 1시쯤 드라마가 촬영 중이던 서울 문정동의 한 대형상가 앞에서 연예인 K씨가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다툼 현장을 목격하지 못하고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당시 K씨는 제작진이 배우 이병헌씨를 혼인빙자 간음죄와 불법도박죄로 고소한 이씨의 전 여자친구 권모씨의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소문을 냈다며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K씨가 현장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아이리스’ 측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했고, 이에 격분한 K씨가 조직폭력배 등을 불러 다시 폭력을 행사하며 난장판이 벌어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송파서 관계자는 “촬영장 규모가 커서 모든 곳을 살펴볼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신고한 제작진 쪽에서 무난하게 화해했다고 해서 철수했다.”고 말했다.안석기자 ccto@seoul.co.kr
  • 中 도심서 칼 휘두른 ‘잠옷男’

    도심에서 칼을 휘두르던 중국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중국 간쑤성 출신인 천 위(25)라는 남성이 날이 시퍼렇게 선 긴 칼을 들고 도심에 나타난 건 지난 3일 오전 7시(현지시간)다. 푸른색 잠옷을 입은 그는 후난성 창사시(市)에 있는 한 은행에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칼을 휘둘러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무장 경찰 30여 명과 대치하기를 2시간. 지루한 설득 작업이 계속됐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와 형 그리고 여자친구가 칼을 버리라고 했으나 오히려 천 위는 더욱 흥분했다. 경찰은 상황이 악화될 것을 우려, 그가 한 눈을 판 사이 뒤에서 덮쳤다. 순식간에 칼 든 남성이 제압되자 숨 죽여 지켜보던 시민 사이로 박수가 터져나왔다고 현지 신문은 전했다. 천 위는 현재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이다. 부모에 따르면 그는 과거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으며 사건 전날에도 가족에게 칼을 휘두르는 등 난동을 부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통신망에 지휘부 비판글 156건 올린 경관 파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경찰 내부통신망에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을 무더기로 올린 양모(45) 경사를 파면조치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양 경사는 지난해 1월부터 인터넷 사이버경찰청 경찰발전제언방에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을 156건이나 올려 조직의 내부 결속을 저해하고 위계질서를 문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감찰조사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피우는 등 경찰 공무원의 품위를 훼손했다.”고 징계 사유를 밝혔다. 양 경사는 그러나 “강남서 성매매업소 뇌물수수사건으로 부하직원 30여명이 파면당했는데 주무과장이 총경으로 승진한 것에 대한 감찰조사를 요구하고 경찰 간부가 강도사건을 절도로 축소 보고한 사실을 폭로하는 등 합리적인 비판글이 대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양 경사의 변호인 측은 “소청심사와 행정소송을 통해 부당함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北 “해상분계선 고수 군사조치”

    北 “해상분계선 고수 군사조치”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의 북측 대표단 이상철 단장은 13일 남측 단장에게 통지문을 보내 최근 서해교전에 대해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있다.”면서 “지금 이 시각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통지문은 지난 10일 류재승(육군 소장) 남측 수석대표가 보낸 전통문에 대한 답신 형식이다. 남측은 전통문을 통해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고 우리 고속정을 조준 사격한 행위를 엄중 항의했다. 북측이 이번 교전과 관련해 ‘군사적 조치’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 단장은 통지문에서 “우리 함선의 자위권 행사를 ‘월선’으로 매도하고 불명 목표 확인에 나선 우리 함선과 군인들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여러 척의 함정을 일시에 동원해 수천발의 총포탄을 쏘아댄 난동은, 완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조선반도 정세의 흐름을 제3의 서해교전으로 가로막아 보려는 남측 우익 보수세력들과 군부 호전집단의 계획적인 모략행위”라면서 “남측의 북방한계선 고수 입장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북측 단장은 이번 통지문이 “위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나 승인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여성에 시비걸다 ‘묵사발’…알고보니 여장 파이터

    여성에 시비걸다 ‘묵사발’…알고보니 여장 파이터

    영국 법정에서 공개된 CCTV가 화제가 되고 있다. 현지언론에 공개된 CCTV를 보면 영국 스완지(Swansea)의 킹스웨이에서 술에 취한 두명의 청년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한다. 술에 취해 폭언과 난동을 부리는 두사람은 올해 19살의 딘 가드너와 22살의 제이슨 펜더. 난동을 일으킨 이 둘은 다시 길을 가다 지나가는 여장남자들에게 시비를 건다. 가발과 여성복장을 하고 앙증맞은 핸드백에 하이힐을 신은 두명의 여장남자들은 그냥 무시하고 길을 가나, 두 청년은 여장남자들을 쫓아가 시비를 걸었다. 그 순간 여장남자의 비수같은 주먹이 가드너와 펜더를 가격하고 두 청년은 바닥에 쓰러진다. 나중에 경찰서에서 밝혀진 여장남자들의 신분은 케이지 파이터(Cage fighter).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된 두 청년과 여장남자들은 법정에 섰다. 법정에서 공개된 CCTV에는 그날 시민들에게 시비를 걸고, 폭언과 폭행하는 두 청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법정은 두 청년에게 4개월동안 사회봉사,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외출금지령과 함께 전자발찌를 차는 선고를 내렸다. 사진=데일리 메일 서울뉴스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형태 tvbodaga@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일본 터미널에 곰 습격…9명 다쳐

    곰 한 마리가 사람을 물어뜯지만,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고 속수무책일뿐.  일본의 한 버스터미널에 시커먼 곰 한 마리가 사람들을 습격해 9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1일 교도 통신에 따르면 지난 19일 반달가슴곰이 일본 도쿄 서쪽 기후현 다카야마시 산악지대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관광객 등을 덮쳤다.       사고가 난 이 날은 5일간 이어지는 황금연휴 첫날로 터미널 주위에는 관광객이 100여명 모여 있어 피해가 컸다.  동영상에는 130cm정도의 검은 색 곰이 쓰러진 사람을 공격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반경 10m 정도에 10여명이 있었지만,곰의 난폭함 때문에 선뜻 나설 수 없었다.  곰이 난동을 부리는 과정에서 관광객과 매점 직원 9명이 다쳤는데,4명은 얼굴과 몸을 물려 부상 정도가 심각하다.그러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곰은 결국 사냥협회 회원들에게 사살됐다.  일본에서는 산악지대 근처에 있는 곰이 민가로 내려와 사람들을 습격하는 일이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하지만 해당 터미널에는 그동안 곰이 출몰한 적이 없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문설주기자 taiji@seoul.co.kr  
  • “재범 돌려줘!” 2천팬 시위…사상 최초·최대 규모 (현장 종합)

    “재범 돌려줘!” 2천팬 시위…사상 최초·최대 규모 (현장 종합)

    아이돌 그룹 한 멤버의 탈퇴가 불러온 사상 최초, 최대 시위가 일어나고 말았다. ◆ 사상 취대…2천여 팬 운집, 경찰 100여명 투입 2PM 64개 팬 연합에서 몰려든 약 2천 명의 회원들은 13일 오후 2시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사옥 앞 도로를 점령하고 리더 재범(본명 박재범)의 탈퇴 철회를 요구하는 침묵 집회를 시작했다. 예상 외 규모에 현재 100여명의 경찰이 긴급 투입,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은 강했다. 아이돌 멤버의 탈퇴 사상 최대 규모로 번진 이번 시위는 단순한 ‘난동’이 아닌, 소속사 측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검은 상의에 ‘(재범을) 돌려줘’라는 문구가 새겨진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2천여 팬들은 13일 팬카페에 공지된 바에 따라 ‘無폭력, 無언, 無난동’등을 철칙화 하며 비교적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 성명서 낭독, 소속사 안일한 대처 비판 첫 순서로 2PM 팬 연합 대표자가 재범의 탈퇴를 반대하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가 낭독됐다. 이어 지난 닷새간 온라인을 통해 달성해낸 ‘16만명 서명’ 탄원서도 제출됐다. 이 성명서에서 2PM 팬 연합은 “재범이 글을 썼을 당시, 그는 연습생이었으며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심경을 토로한 이 글이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직역과 오역으로 기사화 됐고, 철없던 시절의 행동에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반성의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고 밝혔다. 팬 연합은 소속사의 재범의 탈퇴를 끝까지 만류하지 않은 소속사의 안일한 대처도 지적했다. 팬 연합은 “팬들의 바람을 뒤로하고, 가수를 지키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은 기획사 JYP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한다.”며 “재범이 없는 2PM은 인정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 ’JYP 보이콧’ 운동 결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JYP 보이콧’ 운동에 대한 강력한 결의도 내비쳤다. 시위에 참여한 1천여 팬 연합 회원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JYP 소속 가수의 CD를 일제 수거해 JYP사옥 앞에 줄지어 반환하는 등 이번 사태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한 암시를 내보였다. 시위 행렬 곳곳에는 ‘사(思)년, 사(死)일’ 이라는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4년, Jay Park에서 박재범으로 그의 생각이 바뀌어간 시간. 4일, 그의 꿈이 무너진 시간’이란 문구가 새겨진 이 포스터에는 무려 4년이란 생각(思)의 시간을 통해 달라진 그를, 우리가 단 4일 만에 몰아내고 말았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JYP 사옥은 여전히 재범을 그리워하는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 메모지와 플랜카드로 전면 도배된 상태다. 또 시위 동참 인원이 늘어나면서 팬 연합에서 나눠준 연합에서 1,000개의 호소문 및 ‘박재범 탈퇴 철회’ 띠도 모두 동난 상태다. 한편, 2PM 팬 연합은 이날 6시까지 대대적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오는 14일에는 일간지 1면에 재범의 복귀를 위한 신문 광고를 게재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운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난동설 정수근 “그런 일 없는데”

    프로야구 롯데의 정수근(33)은 과연 또다시 음주 소란을 피웠을까.  지난 31일 밤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의 한 호프집에서 웃통을 벗은 채 종업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난동을 부렸다는 보도가 터져나온 정수근이 1일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해 주목된다.  정수근은 이날 스포츠조선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술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황당해 했다고 신문이 전했다.  해운대경찰서 재송지구대는 31일 밤 11시45분쯤 정수근이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신고자가 “다 해결됐고 아무 피해도 없다.”고 해 정수근을 만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구대로 돌아왔다고 했다.  정수근은 “지인들과 함께 그 호프집에 간 것은 맞다.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사실 어제 약속이 많아서 술에 취할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내가 인기가 많아서인가.”라고 씁쓸하게 되물은 정수근은 “나도 어떻게 된 것인지 주위에 전화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나도 사실을 알고 싶다.또 그런 일이 있으면 야구 못하게 되는 걸 뻔히 아는데 내가 왜 그러겠느냐.”고 되물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주점 주인은 마이데일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장에 있던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수근이 만취한 상태로 들러 생맥주를 시켜놓고 채 마시지도 않은 채 곯아 떨어졌다고 했다.주방장과 아르바이트 학생이 퇴근하기 위해 정수근을 깨웠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급히 가게로 달려간 주인은 ”정수근은 이미 대리운전을 불러 돌아간 상황이었다.난동을 부린 흔적은 없었다.경찰도 큰 일이 없어 돌아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주인은 처음에는 정수근이 “새벽 6시까지 가게에 있었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시간을 밤 12시쯤으로 정정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한 직원은 “정수근 선수가 웃옷을 벗고 있어 옷을 입어달라는 문제 때문에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가 많이 취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롯데 구단에 경위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구단측은 재송지구대와 호프집 등을 방문해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  정수근은 지난해 음주폭행 사건으로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은 뒤 지난 6월초 KBO가 징계 해제를 결정,393일만인 지난달 12일 1군에 복귀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은퇴’ 나오미 캠벨 파파라치 폭행 구설

    ‘은퇴’ 나오미 캠벨 파파라치 폭행 구설

    잦은 폭행으로 구설에 오른 나오미 캠벨이 또 주먹을 휘둘렀다. 캠벨은 러시아 부호 블라디슬라브 도로닌과 결혼을 전격 발표하며 지난 5월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3개월 만에 폭행 혐의으로 다시 한번 연예 신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녀는 이탈리아 휴양지인 리파리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한 이탈리아 파파라치 개타노 디 지오반니의 얼굴을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라 리퍼블리카(La Repubblica) 등 현지 신문들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또 다른 러시아 억만장자 미하일 프로호로프(44)의 요트에서 휴식을 취하던 캠벨은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가방과 손으로 파파라치를 때렸다, 파파라치는 현지언론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처음엔 가방으로 때리더니 따귀를 때리려고 했다. 가까스로 손을 막았는데 눈에 손톱으로 할퀸 상처가 남았다.”고 말했다. 보디가드와 남자친구가 달려들어 그녀를 떼어 냈으나 맞은 남성은 몇 분 동안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현지 주민의 부축을 받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시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치료를 받은 병원은 밝혔다. 캠벨이 폭력을 휘두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그녀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고 경찰에게 침을 뱉는 등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기소돼 2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과 벌금 5600달러(약 570만원)을 부과받았다. 2007년 1월에는 자신의 가정부에게 ‘청바지를 훔쳐갔다’며 휴대폰을 집어던져 닷새동안 사회봉사명령을 받았고 2006년에는 약물중독 상담원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퀸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사진설명=지난해 기내 난동 혐의로 법원에 출두하는 모습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구체적 경험 섞어 답하면 신뢰↑

    구체적 경험 섞어 답하면 신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공시족’에게 최고의 화두는 면접이다. 서울을 제외한 15개 시·도와 국가직의 필기시험 합격자가 모두 발표되면서 ‘최종합격’의 관문만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직 면접은 모두 이번 달 진행되며, 오는 9월에는 국가직 9급 면접이 예정돼 있다. 9급 공무원 면접시험은 응시생의 75%가 합격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필기시험에 합격한 수험생들은 공든탑이 무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최근 3년간 출제된 면접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면접 대비 요령을 정리했다. ●사전조사서·자기소개서 허위 작성 금물 국가직은 면접 직전 3~4가지 질문이 담긴 사전조사서를 수험생들에게 작성케 하며, 지방직은 자유형식의 자기소개서를 받는다. 사전조사서와 자기소개서는 면접관과 수험생의 첫 만남과 다름없다. 공무원 면접은 철저한 블라인드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면접관들은 자기소개서나 사전조사서를 통해 수험생의 첫인상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출제됐던 사전조사서 질문은 ‘지원 동기와 15년 후의 목표는?’ ‘최종합격한다면 희망하는 직무와 이 직무에 도움이 될 당신의 역량은 무엇인가?’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부처의 당면과제는?’ 등이었다. 최근 치러진 외무고시 면접에서는 봉사활동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기도 했다. 사전조사서나 자기소개서 작성은 크게 어렵지 않게 보이지만, 거짓으로 기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면 면접관이 질문할 때 자칫 제대로 답을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조사서 등의 내용이 거짓으로 들통나면 치명적인 감점을 받는다. ●인성 관련 질문 구체적 경험 섞어 답해야 면접관들은 사전조사서 내용 외에 인성과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질문을 한다. ‘전공이 ○○이 아닌데 ○○직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이 보는 공무원의 퇴출 기준은?’ ‘우리 역사상 가장 부흥했던 시기와 요인을 분석하고 현재 상황을 말해보시오.’ ‘첫 월급을 받고 나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두 번째 월급은?’ 등의 질문이 최근 있었다. 면접관들은 또 열정과 가치관을 관찰하고자 ‘활기찬 직장을 만들기 위한 방안은?’ ‘타인과의 갈등을 해결했던 경험이 있으면 얘기해 보라.’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무원 월급이 박봉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질문은 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지만, 구체적인 경험을 섞어 답변하면 면접관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출문제에 대한 답을 종이에 직접 써보라고 권한다. 글로 써보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 것보다 훨씬 쉽게 면접장에서 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판단 문제는 중립적인 자세로 돌파 면접관들은 이 밖에 순발력과 문제해결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질문도 한다. 이 경우에는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한 뒤 답을 요구하기 때문에 수험생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 있다. 최근 나왔던 기출문제로는 ‘전임자의 실수로 인해 민원인이 당신에게 항의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술 취한 민원인이 난동을 부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근무하는 곳에 대통령이나 요직 인물이 방문했는데 민원인이 행패를 부린다. 대처 방안은?’ ‘공청회를 앞두고 상관이 15분 늦을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어떻게 15분을 지연시킬 것인가?’ 등이 있었다. 이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는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피력하기보다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임기욱 에듀윌 콘텐츠개발팀 연구원은 “면접은 결국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스터디 그룹 등을 통해 많은 실전 연습을 하는 것만이 면접에 합격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中위구르 유혈시위] 시내 상가 잿더미로… 몽둥이 든 한족과 충돌 일촉즉발

    │우루무치(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박홍환특파원│위구르인들은 굽히지 않았다.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났지만 7일에도 우루무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장갑차의 위용을 앞세워 시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중무장 병력도 위구르인들의 목소리를 막기에는 힘에 부쳐 보였다. 이날 오전 11시쯤 우루무치시 남부 경마장 인근의 위구르인 밀집지역. 중국 정부가 안내한 대표적인 시위 피해 현장이다. 중국 고유상표의 한 승용차 판매점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다. 전시된 차량 10여대는 뒤집혀 불태워졌고 점포는 검게 그을렸다. 주변 거리는 온통 무장경찰 천지다. 가게 주인 톈(田)씨는 “5일 밤 갑자기 시위대가 몰려들어 이렇게 모두 다 부숴 버렸다.”고 울먹였다. ●부녀자·아이들 “가족 풀어달라” 시위 바로 그때 대로 건너편 위구르인 밀집지역내 다완난(大灣南)시장 골목에서 갑자기 수십명의 부녀자와 아이들이 걸어나왔다. “남편을 풀어 달라.” “아빠가 잡혀 갔어요.” 대열을 갖춰 울먹이며 소리 높여 외쳤다. 시위 당일은 물론 6일 밤에도 공안(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쳐 가족들을 체포해 갔다는 것이다. 18살 소녀 누르즈만은 “시위 현장에 가지도 않은 아빠와 오빠가 어젯밤 집에서 옷도 못 챙겨 입고 잡혀 갔다.”며 울부짖었다.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잡혀갔는지 알 수도 없다. 경찰은 집에 들이닥쳐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패면서 아빠와 오빠를 끌고 갔다.”는 말을 남기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한 중년 여성은 경찰이 3층 건물 창문에서 현장을 내려다보던 위구르인에게 총을 발사했다고 했다. ●中경찰 3층건물서 시위 현장에 총 발사 시위대는 진압병력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금세 주변의 위구르인 남성과 어린이들까지 합류, 1000명 가까운 대규모 시위대가 만들어졌다. 장갑차를 앞세운 무장경찰이 진압 대열을 갖춰 전진했지만 동요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목발을 짚은 중년 여성은 홀로 장갑차를 가로막아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선 모습을 연상케 했다. 우루무치는 이렇게 일촉즉발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우루무치 3일간 임시휴무 대규모 유혈시위 사태 이후 우루무치는 3일간의 임시 휴무에 들어간 상태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는 시내 중심부에 통행금지가 실시되고 있다. 외부에서 시내에 들어가려면 철통 같은 검문을 통과해야 하고 그마저도 교통편까지 끊어지기 때문에 우루무치 전역이 오후 7시 이후에는 사실상 ‘어둠의 도시’로 변했다. 날이 밝으면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시내는 정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지만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시위의 흔적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상당수 점포가 불에 타고 부서져 문을 닫아 거리는 오히려 한산했다. 70대의 한족 왕야핑(王亞平)은 “이런 시위는 우루무치 생활 40년 만에 처음”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족 난동 동영상 보러가기 ●취재진 100여명 프레스센터서 기사송고 우루무치에는 현재 2만명의 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은 이틀간의 대대적인 검거를 통해 1434명을 체포했다. 길거리에 버려져 있다가 치워진 시신만 57구나 됐고 사망자 156명 가운데 여성도 27명이나 포함됐다. 우루무치는 또 국제전화와 인터넷도 사실상 마비돼 100여명의 취재진들은 프레스센터에 설치된 20여개의 회선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stinger@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전세보증금 소득? 빚?… 과세 부활 논란 동료 부정 눈감은 공무원도 징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들여다보니 ’학파라치’ 나도 해볼까 해방촌 철거발표 이후 주민들 만나 보니… “부드러운 ‘초식남’ 애인감으로는 글쎄…” 콤플렉스 털어내는 청춘들의 비법
  • ‘송파 흉기난동사건’ 검·경 갈등 법정 비화

    검찰과 경찰이 한 112 신고 사건을 놓고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게 됐다. 검·경간의 갈등으로 비화한 이 사건은 지난해 2월17일 새벽 일어났다. 당시 송파경찰서 가락지구대 소속 최모(53) 경위와 김모(37) 경사는 시민 A씨로부터 “내가 탄 택시의 운전자격증명서 사진이 실제와 다르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이후 경찰은 운전자격증명서를 임의로 떼내 갖고 있는 A씨의 사무실을 찾아가 현장에 있던 택시기사와 함께 “요금을 내고 증명서를 돌려주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A씨는 이를 거절하고 경찰관들과 언쟁을 벌였고, 급기야 주방에서 30㎝짜리 식칼을 들고 왔다. 경찰은 A씨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씨를 무혐의로 풀어 주고 경찰관 두 명을 직권남용감금,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그해 6월 불구속기소했다. 경찰이 목격자인 택시기사의 진술을 조작했고 A씨가 칼을 휘두르지 않았는데도 휘두른 것처럼 허위로 조서를 꾸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A씨는 실제로 흉기를 휘둘러 위협을 느낀 최 경위가 두 발짝 물러섰고, 또 택시기사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사건 해결의 열쇠는 A씨 사무실의 폐쇄회로(CC)TV 영상이었다. 그러나 같은 영상을 두고 검찰과 경찰의 판단은 달랐다. A씨가 흉기를 휘둘렀고 이 모습을 택시기사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경찰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 “A씨는 자해를 하려 했고 경찰은 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말한다. 사건 당사자인 김 경사는 “A씨가 ‘내가 경찰에게 칼을 휘둘렀다.’고 진술한 경찰 피의자 조서는 인정되지 않고, 검찰이 우리 쪽에 유리한 CCTV 결과는 인정하지 않는 등 무리한 기소를 했다.”면서 “수사권 등을 놓고 대립하는 경찰과 검찰 사이에서 일종의 희생양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무리하게 경찰을 기소해 ‘경찰 길들이기’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1년 간 9차례 열린 공판에서 검찰과 경찰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지난달 말 검찰은 두 경찰관에게 각각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허위 공소장 운운은 본인들 주장”이라면서 “재판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했다. 둘 중 누가 옳은지는 오는 6일 서울 동부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서 최종 결정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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