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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깔깔깔]

    ●슬픈 생일들 총집합 1. 만우절날 생일인 사람:진짜 생일인데 아무도 안 믿는다. 2. 생일이 방학인 사람:거의 다 잠수타고 있는 방학 때 정말 슬프다. 3. 시험기간에 생일인 사람:모두 다 공부에 열내고 있어 관심 안 가져 줄 때 정말 슬프다. 4. 생일이 어버이날인 경우:부모님께 선물받고 재롱떨기가 난감하다. 5. 생일이 2월29일인 사람:4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여보, 저예요! 어떤 부인이 은행 출납계에 가서 수표를 바꿔 달라고 했다. 은행직원이 부인에게 말했다. “수표 뒷면에 성함과 전화번호를 적어 주세요.” 부인은, “수표 발행자가 바로 제 남편이란 말예요.” “네……,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수표 뒷면에 이서를 하셔야만 나중에 남편께서 이 수표를 누가 현금으로 바꿔 갔는지 아시게 됩니다.” 그제서야 알아들었다는 듯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표 뒷면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보, 저예요!”
  •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물건너 갔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정부 관계부처들도 하이닉스반도체의 이천공장 증설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이닉스는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경기도 의회는 불합리한 규제라며 정부에 공장증설을 촉구했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은 5일 KBS1라디오에 출연,“하이닉스 문제는 수도권의 공장 증설과 관련한 규제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수도권 상수원 구역에서 독성물질인 구리를 배출하는 환경 문제가 심각한 고려사항으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내 다른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이닉스의 이천공장 증설은 어렵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면서 “하이닉스도 이같은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일찌감치 ‘청주행’ 쪽에 무게를 둔 상태다. 산자부 고위관계자는 “대안이 전혀 없다면 몰라도 청주에 기존 공장이 있는 만큼 하이닉스가 이천만 고집하지 말고 청주로 가는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하이닉스가 청주행을 택하면 모든 문제가 즉각 해결될 것”이라면서 “그러지 않고 이천을 고집한다면 현행법 때문에 공장 증설에는 아주 긴 시간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행을 대안으로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하이닉스 고위 관계자는 “해마다 라인 1개의 증설이 필요하고, 라인 1개에 3조∼4조원이 투자된다.”면서 ‘증설 불가론’에 대해 난감해했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는 투자시점이 정말 중요한 산업”이라면서 “투자의 적기를 놓치면 시장도 고객도 모두 잃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회사의 공식 입장은 없다.”면서도 “현재의 경기 이천공장에서 투자가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라인 1개에 2000명의 고용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기도의회 규제개혁특별위원회 등은 4일 대정부 결의문을 통해 “하이닉스 등 설비 투자계획을 갖고 있는 33개 기업의 55조 6500억원의 투자를 즉시 허용해야 한다.”면서 “팔당 상수원의 수질 보호에 기여하지 못하는 자연보전권역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고 친환경적인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도권에서의 과도한 규제를 즉각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도 공장 증설은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백문일 이기철기자 mip@seoul.co.kr
  • [씨줄날줄] 사랑의 유통기한/최태환 수석논설위원

    김영희씨가 최근 책을 냈다.‘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이다.2004년 1년 동안 서울신문에 ‘김영희의 이혼클리닉, 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을 연재했던 그다. 서울 가정법원 조정위원이다. 신작엔 13년 동안 지켜본 이혼법정과 조정실의 이창(裡窓)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더는 불행해질 수 없는 사람들, 위장 이혼의 함정에 빠진 이들, 고개 숙인 남자의 아내, 두 팔 없는 남편을 보듬은 여인 등,‘숙명’의 만남이 펼쳐져 있다. 그는 이들을 통해 사랑과 헤어짐의 아픔과 분노, 그리고 가슴 아린 감동을 맑은 수채화처럼 풀어냈다. 그는 결혼생활 20년의 기구한 여인을 소개한다. 약학대학 졸업반 때 납치돼 강제로 결혼까지 한 뒤, 상실의 삶을 살아가는 ‘바보같은’ 여인이다. 그녀는 건달 남편의 도박, 마약, 폭행을 견디다 못해 끝내 이혼법정에 섰다. 그녀는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미성년자인 두 딸의 양육권을 달라는 게 전부였다. 그녀는 이혼조정실에서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고 쓰러진다.“이혼 못하면…저 자살할래요.” 김씨는 “가랑잎처럼 말라버린 그녀에게 물 한컵 권하는 것 외에, 더 이상 물어 볼 게 없었다.”고 했다. 요즘같은 세태에서 상상조차 가능할까.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비련(悲戀)이다. 부부 탤런트의 폭행시비가 연일 화제다.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파경이란다. 서로 비방을 하더니, 고소사태까지 이르렀다. 법정에서 삿대질하는 모습을 봐야 할 상황이다. 여자 쪽에선 상습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남자 편에선 과장됐다고 맞서고 있다. 뺨을 때렸네, 승용차에 감금했네, 배를 걷어찼네, 어디까지 진실인지 모르지만 악취가 풍긴다. 돈 문제 때문에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들의 파국이 더욱 씁쓸한 이유다. 용서하고, 베풀고, 마음을 비워가는 사랑은 이들이 맡은 드라마 배역에서만 가능했을까. 사랑의 유통기한이 너무 짧다. 사랑도 쉽고, 헤어짐은 더 쉽다. 이혼을, 불이 난 고층 건물에서 생존을 염두에 두지 않고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는 이젠 고전이 된 느낌이다. 결혼도, 이혼도 비즈니스가 된 세상인가. 대략난감이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이장욱론/이찬

    1. ‘인공정원’ 으로서의 ‘시’를 넘어서 시인은 자신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어떤 체험의 순간을 지금-여기로 다시 불러오는 존재이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시작품들 가운데, 이 순간을 상투적인 표현들로 재생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구체적인 체험 속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생(生)의 순간들과 그 감각적 비의(秘義)들은 관례화된 문법을 통해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시’ 장르의 전래적인 형식과 표현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가 되었든, 지금까지 ‘시’가 보존해 온 관습적 전범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과격하게 실험하는 ‘전위적인 현대시’가 되었든, 이러한 ‘상투성’으로부터의 이탈은 ‘문학’(literature)이라는 현대적인(modern) 산물에 요구되었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자 ‘문학’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자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다. 이장욱의 시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과 풍경들을 1인칭 화자의 감정과 의식과 가치를 표상하기 위한 대리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왕(旣往)의 관례화된 ‘시’의 문법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서정은 만상을 일인칭의 내면적 고도(高度)에 걸어두는 방식이다.”(‘꽃들은 세상을 버리고’,《창작과 비평》,2005년 여름,70쪽)라는 그의 진술은 우선 ‘시’(‘서정’) 장르의 일반적 원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통상적인 ‘시’ 문법에 대한 그의 반감(反感)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장욱이 재래(在來)의 ‘시’의 문법에 대해 품고 있는 회의와 반감은 그것이 필연적으로 이 세계의 ‘만상’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동일적인 영혼을 표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유(專有)하며, 마침내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실상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휘발시키는”, 조작된 ‘인공정원’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더불어 이러한 ‘인공정원’으로서의 ‘시’(‘서정’)가, 세계의 그 풍요로운 다양성을 또한 사물과 사건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육체적 질감들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밀폐된 서정적 우주”로 복속시켜 버리거나 혹은 그 바깥으로 추방시킨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그에 따르면, 통상적이고 관례적인 ‘시’의 문법은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을 표현하기는커녕 시인의 ‘일관된 가치와 의미와 정서’에 의해 세계의 만상들에 얼룩져 있는 ‘혼탁한 사물성’을 그 바깥으로 밀어내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조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1인칭 화자의 나르시시즘적인 ‘인공정원’이 가공될 수 있을 뿐, 세계 그 자체의 참다운 실상들이 발견될 수 없다. 2. 표상의 외부와 마주침의 유물론 “객관적인 아침/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깨어나고/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구름을 통과하는 비행기와/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리진다./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희미한 풍경 같아서.”(‘객관적인 아침’ 전문) ‘객관’(object)이란 철학적 인식론에서 주체의 의식 바깥에 놓여 있는 외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의 시선과 지시작용(designation)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 어떤 미지(未知)의 영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곧 ‘객관’이란 주체의 의식 바깥의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 혹은 세계이기는 하나, 주체의 시선과 자기의식에 의해 호명되고 포획되어, 이미 ‘있다’고 알려진 어떤 인식적 대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장욱에게 ‘객관’은 이렇게 인식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객관적인 아침’은 ‘나’와 ‘당신’과 ‘침묵’과 ‘종이 비행기’가 서로 ‘무관하게’ 자신들의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시간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아침’이라고 명명(命名)된 것은 주체의 시선과 사유에 이미 포착되어 있는 어떤 외부적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주체의 자기회귀적인 의식의 궤도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 또는 사물 그 자체가 지닌 복수적 다양성을 표현한다. 기왕(旣往)의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시작품의 경우라면, 위의 시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은 ‘단 하나의 소실점’을 위해 봉사하였을 테지만, 그리고 그것은 시인의 내면 풍경의 표상(表象)들로 고용되었을 것이지만, 여기에서 그것들은 시인이 설정한 ‘소실점’과는 ‘무관하게’ 그 자신의 존재를 보존한다. ‘내 시선의 끝’에서는 모든 사물이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지금 ‘그대와 나’라는 인간의 ‘시선 바깥’에선 ‘멸종 위기의 식물’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허공’에 ‘포자’를 ‘띄우’고 있는 중이다. 또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인간이 설정한 세계의 위계질서와 그것의 ‘소실점’ 역시 하나의 ‘희미한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하늘’이라는 자연물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까닭은 분열되고 오염된 우리의 경험 세계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마음의 도원(桃園)’을 표상(表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은 자기 내부에서 발아한 동일자의 표상(representation)들만을 세계로부터 수집할 따름이며, 그 바깥에 존재하는 위(僞)와 악(惡)과 추(醜)를 볼 수 없으며, 그것들과 결코 마주칠 수 없다. 이 영혼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을 보며, 보고 싶은 것만을 고백하며, 고백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등뒤에 있다”는 ‘절규’의 첫 구절은 시인 이장욱이 가진 인식론적 지평을 축약하여 드러낸다. 이것은 그의 시에서 다양한 상징적 편린(片鱗)들로 산포되어 나타난다. 이 편린들은 예컨대 “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두 그루 전신주는 아름답고 밤눈은 내리고 녹슨 제 땅에서 제 어둠을 파 내려갔으므로 단 한 번도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그 오래된 이야기”(‘이상한 나라’),“꽃은 15층 베란다에 서서 까마득한 지상을 가늠하는 자와 그 흐린 눈을 마주치지 않음으로써 꽃은, 오로지 나무일뿐 인 무서운 나무들 사이에서 아직도 견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사라지는 꽃’),“하지만 너무 흔한 최면처럼 아직도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하늘이 너무 흔한 최면처럼 실편백에 내리는 빗물이, 다시 나를 이끈다는 것 돌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상투적인가 돌아오지 않기 위해 내가 치를 수 있는 무엇이, 더 있었을 것이다”(‘너무 흔한 풍경’)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시구들은 1인칭의 나르시시즘적인 영혼이 웅변하는 ‘기억’과 ‘고백’과 ‘이야기’가 ‘거짓’이거나, 세계의 풍요로운 실상과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폐쇄적인 ‘아름다움’에 불과하다는 이장욱의 인식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이 볼 수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자기 자신일 뿐이며, 그것이 도취하고 열망하는 자연의 풍경은 ‘너무 흔한 최면’일 따름이다.‘하늘’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을 때에만, 그리하여 모든 자연과 사물의 풍경이 ‘나’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에만, 시인은 ‘너무 흔한 풍경’을 재생하지 않을 수 있고,‘이 당대적 상투성의 거리’(‘상투적’)를 벗어날 수 있다. 이 벗어남은 1인칭의 고백적 화법이 마련한 자기 동일적인 표상체계 바깥으로부터 느닷없이 밀려닥치는 우발적 사건과 그것에 수반되는 ‘낯선 것의 폭력’을 통해 시작된다. 세계의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실재성과의 마주침은 바로 이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간 것이다.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가는 하오의 육신 쪽으로 수직 낙하하는 겨/울 잎, 겨울 잎 안에서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겨울 잎의 풍경 속을 지나간다고/는 생각지 못했으나./그것은 무성하고 울울한 저 너머, 횡단 보도 앞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여자가 오래도록 통과할 숲의 풍경./나무에 깃들여 사라진 벌레들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의 어젯밤 꿈속을 나는 거/닐었는지도. 말하자면 그 꿈속의 눈 내리는 거리를./그러므로 이곳은 겨울 잎과 햇빛과 벌레들이 이루는 세/계. 뚜레주르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나오는 늙은 사내는/어젯밤의 아주 쓸쓸한 수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그/와 나는 떨어지는 겨울 잎에 눈을 두고 지나쳐갔으나 우/리가 그 겨울 잎이 기억하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의심의 여지가 없는 겨울 잎’ 부분) 이미 드러나 있는 세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사태들의 일부로서 성립된다. 우리가 그 자신들의 눈앞에 어떤 사물과 사건의 잔상(殘像)조차 데려다 놓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물과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시의 화자가 ‘지나가는’ ‘겨울’의 ‘거리’에 드러나 있는 것은 ‘겨울 잎’이나,‘겨울 잎 안’에는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 것이’며,‘우리’가 ‘떠올리지 않’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들이 이루는 세계’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모든 1인칭의 시점(視點) 내부에 선재하는 명석 판명한 대자의식(對自意識)으로서의 ‘나’의 확실성이 아니라,1인칭 주체의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세계의 다양한 만상들이며 그것들이 이루는 변화와 이행의 과정이다. 결국 시인 이장욱이 보고 느끼고 감각하고자 하는 것은 뚜렷한 형태와 공간적 점유들로 구분지어진 사물과 사건의 가시적(可視的) 외면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구분의 경계들을 횡단하는 힘들의 배치이며, 모든 존재자들이 지닌 복수(複數)의 가면(假面)으로서의 ‘자세’와 ‘포오즈’이며,‘지나가’고,‘사라지’고,‘통과하’는 것으로서의 세계의 실재성이다.‘겨울 잎’ 속에는 ‘사라진 햇빛’이 ‘있었’듯이,‘나’와 ‘그대’의 ‘생’에는 ‘사라져가’고 ‘흘러간’ 것으로서 ‘무성한’ ‘잎 새’와 ‘숲’과 ‘천천히 사라진 햇빛’도 ‘있었던 것’이다. 설혹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명징한 감각과 사유가 아니라,‘꿈속을 거닐었는지도’ 모를 상상(想像)을 통해서만 겨우 감지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있었던 것’들이다. 위의 시에서 자주 활용된 ‘지나가다’,‘사라지다’,‘통과하다’ 등등의 동사들은 어떤 사물과 사건의 고정된 상태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어떤 경계를 구분지울 수 없는 사태의 진행 과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동사들은 ‘시’ 장르의 통상적인 화법 내부에 선재하는 자기의식의 투명성을 표상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것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다양성과 그 변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여러 시편들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지나치다’,‘건너가다’,‘흐르다’,‘멀어지다’,‘스쳐가다’ 등과 같은 동사들 역시 세계의 ‘천변만화’하는 실재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사물과 존재자들의 다양성과 이질성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표상적인 감정과 가치로 바꾸어버리는 ‘시’ 장르의 관례화된 문법을 벗어나기 위한 그의 시적 전략의 하나이다. 3. 假面과 ‘脫’ 인격적 주체로서의 화장 이장욱의 시가 ‘시’ 장르의 통상적인 문법에 내재되어 있는 ‘유토피아적 자기회귀’라는 ‘상투적’인 ‘최면’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주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시적 화자’를 단일한 감정과 의식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전제하는 관례적(慣例的) 설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정적 자아’의 단일한 목소리를 ‘시적 화자’의 분열적이고 다수적(多數的)인 목소리로 전환시키는 것이며,‘서정’의 화법에 내재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순결성과 엄숙한 고백체를 조롱하고, 그것 속에 은폐되어 있는 숱한 가면(假面)들을 폭로하는 것이다. “감정은 어떤 포우즈 금홍아 금홍아 마당귀 화단에 잘린 벽돌들 녹슬어 고요한 철대문, 어쩌다 딱딱한 것들과 친해졌는지 (중병에 걸려 누웠으니 얼른 오라)고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게 엽서를 띄우고 싶어 이십세기와 (짱껭뽕)을 해서라도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 품에 안기고 싶네 하루 종일 내 딱딱한 그림자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에 골몰중인지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만한 일일뿐 금홍아 금홍아아 하지만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니?”(‘금홍아 금홍아’ 부분)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이상’(李箱)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적 역사 속에 존재했던 단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이상’과 그의 작품들 속에서 ‘나’로 표기되는 여러 작중 화자들이 동일한 존재일 수 없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이상’(李箱)이면서 ‘이상’이 아니며, 또한 ‘이장욱(李章旭)이면서 ‘이장욱’이 아니기도 하다. 다시 말해,‘이상’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화자 혹은 주인공으로서의 ‘나’는 이 세계의 유일한 인격적 실체로서의 고유명사 ‘이상’(李箱)이 아니라, 그가 어느 한 시점(時點)에서 취한 하나의 정념과 태도로서의 ‘나’(假面)일 뿐이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인격적 자기동일성을 전제하는 고유명사 ‘이상’(李箱)이거나 혹은 ‘이장욱’(李章旭)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정황과 그 순간적 배치 속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정념(情念)과 태도로서의 ‘나’일 뿐이다. 더불어 이러한 ‘나’는 그 정황과 배치의 변화에 따라 무한히 변양(變樣)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의 부기(附記),“금홍이는 시인 이상의 애인이다.箱(1910-1937)과 나(1968-)의 불편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그의 소설 ‘날개’,‘逢別記’,‘終生記’ 등에서 몇 구절을 차용했다.”에서 ‘箱과 나의 불편한 관계’란 하나의 자기 동일적인 인격체로서의 ‘이장욱’이 ‘이상’이라는 또 다른 인격체로서의 시적 화자를 차용하거나 혹은 ‘이상’(李箱)의 목소리를 재연(再演)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불화(不和)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이상’의 목소리 속에 ‘이장욱’의 목소리가, 또는 ‘이장욱’의 정념(情念) 속에 ‘이상’의 정념이 서로를 전제하면서 공명(共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공명은 ‘이상’과 ‘이장욱’이라는 경험적 인격체 전반이 공유하는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한 이 둘이 여전히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공명이 어떤 특정한 한 순간에만 존속(存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 만한 일일뿐”이라는 구절은 ‘시적 화자’, 더 나아가 모든 발화의 상황 속에 놓인 화자의 존재론적 특성을 축약하여 표현한다. 이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시’ 장르가 전제해왔던 화자의 자기 동일성은 실상 ‘위조’된 것일 뿐이며, 화자는 시인의 전(全) 인격체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시적 정황과 맥락 속에서 구성되어지는 하나의 가면(정념)에 불과하다.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의 이러한 변양과 분열을 의식하지 못하는,1인칭 고백체의 화법은 ‘사기’,‘거짓’이라는 명칭을 부여받는다.“사기치지 말라,高手는 그냥 느낀다, 그대 생을 증거하는 단 하나의 표식은, 그대의 육체이다”,“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당신이 당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됩니다.”(‘편집증 환자가 앉아있는 광장’) 등은 이장욱이 1인칭 화자의 자기애적(自己愛的) 순결과 정직을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1인칭의 발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위조’와 ‘위장’과 ‘가장’을 들추어내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거의 모든 시 속에 스며있는 위악적(僞惡的) 포즈와 하드보일드 문체(hard-boiled style)는 1인칭의 발화 상황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백적 화법의 위선(僞善)에 대한 그의 근원적인 혐오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위선을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하여,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시적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시적 화자를 자기의식(自己意識)의 명석 판명함을 입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주체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상성의 외부로 추방될 수밖에 없는 병리적(病理的)이거나 환상적(幻想的)인 혹은 괴물과 같은 존재자들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편집증 환자’,‘투명인간’,‘킬러’,‘도플갱어’,‘뱀파이어’,‘좀비’ 등과 같은 화자들이 바로 이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화자의 진술 자체를 신빙성(信憑性)이 결여되거나 불명료한 어사(語辭)들로 구성함으로써, 시작품 내부의 단일한 ‘의미화’(signification) 주체로서의 화자를 그 중심의 자리에서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그를 지나 그녀를 지나 그대를/지나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정오를 지나 새벽을 지나 오/후 네 시를 지나 그리고 어느 이상한 날에 빈 공터와 당구/장과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 문득 흥겨운 술집의 죽은 친/구의 화사한 여자들의 기나긴 과거를 걸어가는 어느 이상/한 날”(‘결국,’ 부분) “그렇지. 나는 어쩌면 모든 일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혹시 모른다. 행복할 리도 황폐할 리도 없는 바람들/이 애초에 공릉동의 주민이었는지도 혹시 모르지. 이곳/에서 모든 빛들은 현재형으로 명멸한다. 너무 상투적인/가? 하지만 그때 한 마리 늑대가, 월계동 쪽의 불빛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문득 망망한 비가/내렸는지도, 혹시 모르지. 그의 마른 등을 향해 몇 장의/ 낡은 신문이 날아들었는지도.”(‘공릉동의 바람 속으로’ 부분)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어쩌면 여행중이었던/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생각하는 사람’ 부분) 위의 시편들에서, 화자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사유를 명징하고 확실한 것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결국,’에서처럼,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나타내는 ‘동대문 운동장’과 ‘정오’와 ‘오후 네 시’라는 구체적 지시어들을 능동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상한’이라는 형용사의 집요한 반복에 의해 정상적인 언어의 체계 혹은 일상적인 개연성의 세계로부터 추방된다. 또한 ‘공릉동의 바람 속으로’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과거 추측의 의미를 지닌 어미(語尾),‘-이었는지도’의 반복과 기억의 불명확성을 표현하는 ‘모른다’라는 서술어의 반복에 의해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상실한다. 결국 그의 시의 화자들은 이러한 어법들로 인해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기억, 이야기 등과 같은 의식 내용을 능동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라는 ‘생각하는 사람’의 한 구절은 화자인 ‘나’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 화자를 ‘사로잡아’ 그를 지배하는 것처럼 언술됨으로써, 시의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주관)와 그 구성 요소로서의 대상(객관)의 관계를 역전(逆轉)시킨다. 이 시에서 여러 번 반복된 “어쩌면 여행 중이었던 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라는 구절 역시, 화자의 진술을 합리적으로 독해될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만들면서, 화자의 의식으로부터 기원하는 어떤 의미의 계열도 자명하지 않은 것이 되게 하거나 또는 어떤 신비에 둘러싸인 미지(未知)의 것이 되게 한다. 결국 이러한 어사(語辭)들의 반복적 활용은 전래의 시적 관습에서 전제되었던 단일한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를 그 의미화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물러나게 하는 시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장욱의 시는 재래의 ‘시’ 장르에서 화자에게 관례처럼 부여되어왔던 의미화의 지배권을 박탈함으로써, 화자의 단일한 감정과 의식과 가치가 아니라,‘脫’인격체로서의 시적 주체의 복수적인 가면들과 정념들, 그리고 사물들 그 자체의 다양한 변양들을 시의 새로운 의미 내용으로 새겨 넣는다. 아마도 그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실재성과 마주칠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방법으로 이러한 시적 화법을 고안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4. 비선형적 시간과 존재의 주름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를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분열적 주체로 조형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바로 시제(時制)이다. 그의 시는 시간의 일정한 단위 분절을 통해서만 수립되는 ‘현재’의 시제 속에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중첩시킨다. 즉 어떤 특정한 외연(外延)으로 수렴되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 그 외연을 넘어서 존재하는 비동시적인 사건들을 병치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서는 (과거-현재-미래)로 연속되어지는 선형적(線形的) 시간의 투명성이 사라지게 되며, 그것의 명료한 경계 분할이 흐릿해지게 된다. “나는 오로지 지금 이곳에 있다./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시작된다./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결박한다./ 나는 얼어붙는다./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가 한꺼번에 다가온다./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결정’ 부분) “최선을 다해 개인적인 관계들을 생각하자/드디어 당신과 나는 10년 후의 야구를 이해한다./누군가 플레이 볼이라고 외치자/나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그리고 10년 후의 1루 베이스를 향해/필사적으로 달려갔다”(‘10년 후의 야구장’ 부분) “자꾸 다르게 보여/당신은 이미 태어났는데/당신은 사랑을 했었는데/당신은 지난해의 가을을 여행 중인데/당신은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막 떠올려 미소 지었는데”(‘정확한 질문’ 부분) ‘결정’에서 ‘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는 ‘다가온다’라는 현재시제 동사의 주어가 됨으로써 ‘지금 이곳’에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나며,‘10년 후의 야구장’에서는 ‘1루 베이스’가 ‘10년 후’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점에서,‘달려갔다’는 과거시제 동사의 목적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정확한 질문’에서는 ‘지난해의 가을’이라는 과거 시점의 명사가 ‘여행 중인데’라는 현재진행형의 동사와 결합되는 시제의 혼란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제의 혼란과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 공존은 어떤 특정한 현재적 사태 속에 감싸여져 있는 잠재성(virtuality)의 차원을 시의 표면으로 솟아오르게 한다. 위의 시들에서 표현된 ‘생각’과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화자의 자기동일성을 구축하는 명징한 자기의식과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시간 위에서 구축되는 주체의 실존적 동일성과 연대기적 서사(narrative)를 일그러뜨리는 존재의 주름들이자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이다. 이 잠재성의 차원에서 시제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예컨대,“일어나지 않았던(일어났던)”이라는 과거시제나 “일어나지 않을(일어날)”이라는 미래시제는 모두 현실성(actuality)의 척도를 통해서만 측정되고 구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드러나 있는 것들로 구성되는 현실성의 차원은 실상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 가운데 그 일부가 선택되거나 배제됨으로써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잠재성의 차원은 그러므로 일정한 외연을 가진 어떤 ‘현재’로 수렴되지 않으며, 선형적이고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늘 존속(存續)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의 주어진 물질적 사태로서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항상 ‘실재하는 것’(reality)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삼 분전의 잠’ 부분) 이 시를 단지 특정한 ‘잠’ 속에 나타난 잡다하고 무질서한 꿈의 내용 혹은 그 환상적 이미지들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의 많은 부분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화자의 현실적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는 망각과 오해와 무의식의 무한한 잠재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꿈속에서 우리는 ‘삼 분 전의 문’과 ‘삼십 년 전의 그대’와 ‘삼일 전의 기슭’이 동시에 결합되거나 병치되는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꿈속에서 ‘일어났던 것’(과거)과 ‘일어나고 있는 것’(현재)과 ‘일어날 것’(미래)은 선형적인 질서를 벗어나 한데 뒤엉키며, 시간은 산술적 단위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연대기(年代記)를 벗어난다. 이것은 곧 꿈의 본질적 특성이 비선형적(非線形的) 시간의 조합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라는 구절은 이 시의 의미가 단지 화자의 ‘잠속’에 나타난 꿈 이미지들의 재구(再構)를 통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네 번이나 반복된 ‘잠에서 깨어’는 이 시의 화자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이 ‘잠’의 안쪽만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모래산에 쌓이네”에서 ‘쌓이네’라는 술어(述語)는 ‘모래산’이 퇴적(堆積)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내 잠 깊은 모래산’은 그것이 화자의 신체에 부수되는 어떤 행위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내면적인 것인 동시에 퇴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기억’이다. 따라서 ‘잠’이 비단 현실적인 ‘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내 잠 깊은 모래산’은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기억’ 혹은 ‘나의 의식에서 지워져버린 망각들’로 해석된다.‘기억’ 또한 의식 주체의 선택과 배제를 통해서 가공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므로 세계의 실상 그 자체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인칭과 시점에 따라 상이하게 구축되는 개연적 서사(허구)에 가깝다. 따라서 ‘기억’의 내부에는 망각되고 삭제된 그 무엇이 여전히 어떤 잉여로서 남아있게 된다. ‘잠재성’의 차원은 단지 환상이나 몽상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이미 실재하는 것이다. 잠속의 꿈과 의식되지 못한 무의식과 기억의 사슬에 무수하게 주름 잡혀 있는 망각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내 잠 깊은 모래산’에 무수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이 기거하고 있듯이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또한 인칭과 시점을 달리한 숱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명성은 주체의 의식과 기억의 자명성이 아니라, 주체에게 의식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잠재성의 차원들이 실재한다는 것의 자명성이며, 주체의 단일한 의식(기억)이 조작된 서사와 허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의 자명성이다. 모든 1인칭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그들의 처지와 욕망과 권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하기 때문이다. 1인칭 주체의 자기의식은 그것을 구성하는 내용이 아무리 많이 추가되고 보충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을 포착할 수 없다. 또한 그 어떤 충만한 기억도 ‘모래산’처럼 부서지기 쉬운 공허(空虛)와 무의미(無意味)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는 삶의 근원적인 공허와 무의미를 이미 깨달아버린 자의 언어이며, 이러한 현자(賢者)만이 지닐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표현한다. 현실성의 내부에 잠재성이, 의식의 내부에 무의식이, 기억의 내부에 망각이, 무한한 주름들로 감싸여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에게만,‘우연’은 이 세계의 진상을 목도(目睹)할 수 있는 어떤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5.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 “서랍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어느 날 문득 서랍 속으로 돌아오듯/어느 날 다시 돌아오는 오래전의 목소리./……/어느 순간 너를 습격하는 상형문자들./너의 내부에서 드디어/다른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는 날이 있다./혹은 돌아오는 날.”(‘복화술사’ 부분) ‘시적 에피파니’가 도래하는 시간은 시인이 어떤 신비를 능동적으로 예감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너를 습격하듯이’ 밀려닥치는 우발성의 시간이며,‘상형문자’로서의 시적 언어가 시인의 관습적 감각과 사유를 폭력적으로 뒤흔들어 놓으면서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그러므로 능동태(能動態)의 시간이 아니라 수동태(受動態)의 시간이다. 또한 이 시간은 시인에게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졌던 세계의 만상들이 그 자신들의 풍요로운 다양성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따라서 이 순간은 “너(시인)의 내부에서 드디어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날”이기도 하며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다. 이 ‘목소리’는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시인의 명징한 의식과 관습적 표상작용에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기에,‘돌아오는 목소리’(반복)인 동시에 ‘다른 목소리’(차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복되는 것(‘돌아오는’)은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세계의 풍요로운 만상들이며, 이 반복을 통해 차이(‘다른’)를 발생시키는 것은 ‘너의 목소리’ 곧 시인의 관례적인 감각과 도식들이다. 김수영이 ‘絶望’에서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모든 미학적 실천과 시적 창조의 공간에서 우리들 자신의 관례적 감각과 도식을 매번 혁파하기 위해서는, 섬광처럼 우리를 헤집고 지나가는 모든 우발성들을 용기 있게 승인해야 하며, 이 우발성들이 우리들에게 가해 오는 ‘낯선 것의 폭력’과 과감하게 마주쳐야만 한다. 이장욱의 말처럼 “이 고투를 통과한 자에게만”,‘시적 에피파니’는 비로소 그 자신을 개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고투를 체험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 어떤 ‘에피파니’의 순간도 도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장욱의 시에서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충직한 순결성을, 일상적 경험 속에서 피어나는 순박한 인간애를, 그 아름다운 빛으로 충만해 있는 시적 감동의 순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이 아니라 1인칭의 자기애적인 영혼이 미리 전제하고 있는 어떤 관념적인 조화이자 이상적인 도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는 이것들이 배제하거나 은폐하고 있는 세계의 잔인한 리얼리티를 포착하려는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가 진정으로 한국시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혜안(慧眼)과 비전을 담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시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그 무수한 가면과 정념을, 우리를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의 그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만상을, 현대적 일상의 그 지루한 반복과 권태를, 저토록 리얼하고 또 잔인하게 묘사해준다면, 그의 시는 하나의 예술로서 그것이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근거를 충분히 입증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찬
  • [그의 삶 그의 꿈] 책에 미친 책 사랑… 한국 출판계의 죽비

    [그의 삶 그의 꿈] 책에 미친 책 사랑… 한국 출판계의 죽비

    글 최준 시인, 사진 한찬호 사진작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그를 만나기 전에 책을 한 권 읽었다. 굳이 말하자면 한 사람의 자전 에세이라 할 수 있을까. 회고록 엇비슷한데, 주인공도 젊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서 단숨에 읽어치웠다. 글쓴이는 전문 글쟁이가 아닌데도 이야기 사이사이에다 맛깔스런 양념을 칠 줄 알았고, 좀 그렇다 싶은 부분에 이르러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의뭉스럽게, 미련 없이 커튼을 내릴 줄도 알았다. 책의 주인공은 58년 개띠. 젊다. 그러나 육체적 젊음 이상으로 활달하고 부지런한 사람. 의지가 강해서 한 번 마음먹은 일이면 끝을 보는 성격. 반면 냉정한 면도 없지 않아서 상황 판단이나 사태 파악에 큰 실수가 거의 없다. 책 더미에 묻혀서 청춘을 다 보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 이렇게 일방적으로 머릿속에다 대략 정리하고, 책의 주인공을 만나러 홍대 입구로 간다. 사무실을 찾아들어 건네주는 명함을 받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그렇다. 다소 생소하지만 그는 지금 출판과 출판 마케팅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이에 관한 강의도 하고, 이런 저런 관련 매체에 글도 많이 쓴다. 그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출판인이나 출판인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연구소인 셈인데, 이에 관한 잡지도 만들고 단행본도 많이 냈다. 연구소에서 그는 책에 관련된 책만 펴냈다. 열정의 근원 그는 출판이 주먹구구식의 한탕주의가 아닌 과학이며 경영이라 한다. 복권당첨 같은 베스트셀러의 환상에만 빠져 있는 우리나라의 출판 현실과는 정반대의 지론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출판사들이 갖고 있는 근시안적 안목이 무엇보다 큰 문제인 듯하다. 소신도 의지도 없이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출판인들의 안일한 태도는 그의 제1의 비판 대상이다. 그는 출판 전반이 어렵게 된 현실도 눈여겨보고 있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런 출판 현실을 낳았지만 가장 실제적인 요인으로 서적의 인터넷 할인판매제도를 꼽는다. 모든 상거래 행위에는 일종의 룰이 있다. 서적 인터넷 할인판매는 이 룰을 깨뜨리는 행위인 것이다. 책값을 할인해 주고, 끼워 팔기도 하는 이런 변칙적인 상행위에 일부 출판사들이 동참하면서 오랫동안 오프라인의 한 축을 형성했던 동네 서점들이 사라졌다. 그는 이 현상을 출판계의 ‘자기발등찍기’라 말한다. 사무실에서 마주앉아 있는 동안 그는 책 얘기만 했다. 어느 특정한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출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한 자신의 소신과 견해를 말했다. 종이책의 소멸이니 출판계의 위기이니 말들이 많지만 그는 한국 출판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도박판에 들어앉은 듯 재수 경영에 목숨 건 일부 출판인들처럼 주먹구구식이거나 감각에만 의존하는 견해가 아니다. 전문가다. 전문가답게 자신만의 대안과 구체적인 제안을 가지고 있다. 우리 출판계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다. 책을 정말 사랑해서 출판계에 뛰어들었고 그 애정에 비례하는 열정을 가지고 출판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 책에 미친 사람 그가 자신의 저서에 쓴 프롤로그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어느 날 그의 연구소로 만화전문 출판사 사장이 찾아왔다. 영업자를 구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좋을지 난감하다는 것이었다. 만화에 미친 사람을 뽑으세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출판사 사장이 반문했다. 결국은 다 열정입니다. 만화책에 미친 사람이 만화를 팝니다. 그가 대답했다. 속는 셈치고 사장은 만화에 미친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어땠을까?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제안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안 썼을 테니까. 그는 열정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열정은 사랑의 현실적인 발현이다. 출판 입문에서 현재까지 그는 오직 책 사랑으로, 책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왔다. 그의 출판사 입문은 1982년이었다. 출판 편집자 생활 1년에 출판 영업자 15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세우고 출판 비평가로 9년, 그러니까 25년 동안을 책과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그의 인생은 책으로 깔린 길로 책을 지고 가는 셈이다. 독자들은 그를 잘 모를지 모른다. 알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판에 관련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는 한국 출판계의 죽비다. 입바른 소리 잘 하고, 불의를 못 참고, 누구보다도 출판계의 앞날을 걱정하고 그 대안에 골몰하고 있는 사람이다. 인문학이 부활해야 격동과 혼란의 시기였던 1980, 90년대에 그는 《창작과 비평사》의 영업담당자였다. 출판사 영업담당자의 업무는 서점을 상대로 책을 파는 일. 그러니 출장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 그는 모든 출판인의 꿈인 밀리언셀러도 여러 권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문 열게 했다. 이때부터 그는 출판비평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북페뎀》, 《기획회의》와 같은 출판 발전을 모색하는 잡지도 발간한다. 자신이 출판사 영업담당자로 있던 1980년대를 회상하며 그는 인문학의 소멸을 많이 걱정했다. 인문학은 모든 분야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다. 80년대는 누가 뭐래도 인문학의 시대였다. 대학 정문 부근에는 적어도 한두 개의 인문학 전문 서점들이 있었고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눈을 뜨고 시대의 모순과 불행을 바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웬만한 출판사에서는 인문학 ‘총서’나 ‘신서’ 시리즈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 승부의 단맛에 취한 출판사들이 인문학 서적 출판을 멀리하면서 인문학이 설 땅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는 인문학의 위기가 학자와 출판인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데모’보다 ‘자기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출판에 관한 활발한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반론도 있기를 바란다. 논쟁 가운데서 대안을 발견하고 길을 찾자는 것이다. 외부 상황에 일희일비하는 소용돌이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출판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한기호. 그는 책 더미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책 더미 속에다 몸을 묻는 사람이다. 책에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게 자신에게 바라는 그의 마지막 희망은 아닐까.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특별하區 ★나區] 작은 배려 ‘감동 백배’

    지난 9월 어느 날 오후에 한 대학생이 허겁지겁 여권과 창구에 왔다. 그는 미국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는데, 여권을 지금 만들어도 발급까지 날짜가 촉박한 게 아닌지 걱정을 했다. 본인 확인하려고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사진을 행정전산망의 사진과 비교하니까 서로 다른 게 아닌가. 주민등록증과 전산망의 얼굴 사진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당황하는 학생을 진정시키고 주민등록증을 만든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까, 이는 담당직원의 실수로 생긴 일이었다.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들어야 여권 발급이 가능하다. 학생의 거주지가 서울도 아닌 경기도 구리시라 난감한 일이다. 나는 학생에게 “주민등록증을 빨리 다시 만들자.”며 구리시의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전산망 사진으로 새 주민등록증을 서둘러 만들어 학생이 동사무소에 도착하면 바로 전해주기로 했다. 그러면 마감시간까지 여권발급 신청접수가 가능할 듯했다. 구청에서 접수받은 여권신청서는 그 다음날 아침 외교통상부로 보내야 출국일 직전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날 오후 5시30분쯤 그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지금 새 주민등록증을 들고 구청으로 가고 있는데 도저히 마감시간인 오후 6시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같다.”고 걱정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웃으며 업무시간이 끝나도 기다릴 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학생은 구청에 도착해 신청을 완료한 뒤 몇번씩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뿌듯하다. 친절은 남을 위한 작은 배려다. 순간의 작은 배려가 두고두고 두배의 감동으로 돌아온다. 잘 했다 싶은 일을 한번 실천하면 그런 일이 자꾸 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강선아 동대문구 민원여권과
  • ‘장난감 병정’ 박강성 22~23일 송년 디너쇼

    ‘장난감 병정’ 박강성 22~23일 송년 디너쇼

    지난 9월23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대강당. 복도에까지 의자를 놓아야 할만큼 관객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가운데,300여개에 달하는 빨간 막대풍선이 일사불란하게 율동을 벌인다. 마치 아이들 스타의 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박수와 환호과 교차하고, 열기는 장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막대풍선을 흔드는 사람들이 30∼40대 ‘아줌마 부대’라는 것.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가수 박강성이었다. 자신의 대표곡인 ‘장난감 병정’처럼 단단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어딘가 짙은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가수다. 공연마다 특유의 무대 장악력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미사리의 서태지’라고 불리는 그가 올 연말에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송년 디너쇼를 연다. 특급호텔에서 열리는 송년 디너쇼가 나훈아, 패티 김 등 기라성 같은 대형가수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전례로 볼 때, 가벼이 넘길 일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 히트곡도 많지 않고,TV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없었던 그가 요즘 만들어가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 적잖이 놀랍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연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입장권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지난 2003년 3월 서울 대학로 콘서트에서 시작된 입장권 매진사태는 올해 개런티 6억원을 받고 시작한 ‘세가지 소원’ 공연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비싼 좌석부터 매진되는 것도 이채롭다. 가까운 곳에서 그를 느끼려는 관객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번 송년 디너쇼의 경우도 40대 여성 예매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주최측은 전했다. 통상 송년 디너쇼의 경우 20∼30대가 표를 사서 부모님께 선물하는 것이 일반적. 콘서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40대 여성이 직접 표를 산다는 것은 이들이 열성적인 팬이라는 얘기다. 박강성은 1982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얼굴을 내밀었다.89년 히트곡 ‘장난감 병정’으로 이름을 조금 알리는가 싶더니, 3∼4집의 연이은 실패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가수가 된 게 슬펐어요. 꿈도 잃었고요. 먹고 살기 위해 술집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현실이 죽기보다 싫었죠.” 그가 다시 일어선 것은 95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얼마나 찾았는지 아세요’라고 쓴 한 팬의 메모를 보면서부터.“나를 사랑하고, 나로 인해 위로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단지 그들이 고통스런 현실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던 거죠.” 그는 요즘 행복하다. 인기도 인기지만,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기 때문이다.“내년쯤에 50년대 음악들을 재즈와 트로트, 팝 등으로 재해석한 앨범들을 내놓을 예정이에요. 여태 한번도 기획되지 않은 시도죠. 새로운 앨범도 준비하고 있어요.10곡 정도 새노래를 담을 겁니다. 타이틀 곡 한두개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앨범 전체를 완성도 높게 만들어야죠. 음반시장이 열악한 상황에서 음반제작에 투자하는 것이 모험이기는 하지만, 가수라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은 민감하다. 준비되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르는 가수와, 치열한 음악적 성찰을 통해 소양을 갖추고 무대에 오르는 가수를 분명하게 구분해 낸다.“정말 잘할 자신이 있어요. 좋은 노래를 담아내는 방법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요. 노래를 부를 때 제 목숨까지 걸 겁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최태환 칼럼] 겉은 번지르르 속은 부실, 누가 믿을까

    [최태환 칼럼] 겉은 번지르르 속은 부실, 누가 믿을까

    한 학생이 사고를 쳤다. 옆 학교 학생들이 집단커닝을 했는데도 학교측이 방치했다고 소문냈다.‘불량집단’ 취급을 받은 옆 학교가 난리다. 문제 학생의 학교가 다급해 졌다. 학생을 징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학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뻗댄다. 난감해진 교장이 대신 속죄하겠단다. 옆 학교로 찾아가 사과하고, 노력봉사도 하겠다고 했다. 문제 학생은 마지못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나마 피해학교가 아닌 자신의 학교에서였다. 김용갑 의원의 ‘광주 해방구’ 발언 논란을 처리한 한나라당의 모습, 그대로다. 기강이 없는 당의 전형이다. 면피용, 소나기 피하기식 대응의 단면이다. 오죽했으면 당내 여러 인사들이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 받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을까. 당이 징계결정을 못 내려 머뭇거리고, 대표가 노력봉사에 나서겠다는 발상부터가 코미디다. 얼마 전 광명시장은 호남비하 발언을 했다 해서 출당조치됐다. 잣대가 오락가락이다. 김 의원은 영남지역 봉사활동 때만 참여했다. 광주지역은 강재섭 대표 등 지도부만 찾았다. 해명이 해괴하다. 대변인이 “봉사활동은 대표가 하는 것이므로, 김 의원의 참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봉사활동 프로그램은 무엇 때문에 만들었나. 리더십 부재의 고백에 다름 아니다. 당이 왔다갔다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온정주의는 다반사로 목격된다. 대선을 앞두고 당내 계파간 이해가 엇갈리고,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얼마 전 사고 지구당을 정리하기 위해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만 해도 그렇다. 회의는 수해 골프, 여기자 성추행 파문 등으로 당을 떠난 일부 의원 및 위원장의 지구당을 공석으로 두기로 결정했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등의 구실을 댔다. 그렇게 신중한 입장이라면, 문제의 인물을 당에서 왜 내보냈나. 잊혀질 만하니 사법판단을 기다린단다. 눈가림이다. 전효숙 파동 때는 ‘법대로’를 외치다가, 새해 예산안 처리는 ‘법정시한대로 하지 않기로’ 열린당과 합의했다. 임시 국회가 열렸으나 예산안은 지금도 표류 중이다. 당은 며칠 전 당내 망년회 행사에서 벌어진 성폭행 미수 추태와 관련,18일 당사자를 제명했다. 급하게 불을 껐다. 송년모임 자제령도 내렸다. 진정성이 있는지 지켜 볼 일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나 대권 예비 후보들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미래의 리더십, 믿음의 리더십을 강조한다.‘나라가 어려울수록 당이 국정운영의 중심이 돼야 한다.’ ‘당이 중심을 잡고 국민을 안심시키겠다.’ 그럴듯하지만 감흥이 없다. 대선 예비후보가 길거리의 풀빵장수를 찾았다고 해서 웰빙 정당의 이미지를 벗는 건 아니다. 줄줄이 호남 지역을 방문한다고 지역정당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당이 바로 선 모습이 먼저다. 한나라당이 고와서가 아니다. 여당이 정신 못 차리고 헤매는 상황에서 거대 야당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당 관계자가 그랬다.“당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멋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때다.”라고. 대선 후보군만 도드라지고, 당은 제각각이다. 원칙도, 기강도 없고 임기응변만 난무한다. 오죽하면 당대표가 “대선주자에게 줄서지 말고 차라리 나에게 줄을 서라. 그게 당을 위하는 길이다.”라고 읍소했을까. 한심하기로 따지면, 여당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인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수능성적 발표 고3 교실 표정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된 13일 성적표를 받아든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학생들은 대부분 수능직후 이뤄진 가채점 결과와 비슷하다면서 차분하게 본인의 점수를 확인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언어영역에서 생각보다 좋은 등급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울상을 짓기도 했다. 과학탐구영역의 변수가 컸던 자연계의 경우 전반적으로 점수와 등급이 떨어졌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대체로 가채점 결과와 일치” 상위권 학생들은 대체로 담담했다. 경기고 김중건(18)군은 “모의고사에서는 490점대를 넘지 못한 적이 많았는데, 결과를 확인해 보니 가채점 결과와 같은 492점(원점수)이 나왔다.”면서 “이미 지역균형선발로 서울대 법대에 지원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임형석(18)군 역시 “가채점 한 결과와 똑같다.”면서 “6월 모의고사가 많이 어려웠는데, 이번 수능은 원점수 기준으로 그 때보다 20점 올랐다. 사회탐구영역 가운데 윤리가 가장 어려웠는데,67점을 맞아 1점 차이로 2등급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대일외고 이예지(18)양은 “원점수가 예상보다 1등급 높게 나와 만족스럽다.”며 “과학탐구영역의 체감 난이도가 높았는데 예상보다 점수가 잘 나왔다.”면서 좋아했다. 반면 중하위권 학생들은 “원점수는 가채점과 거의 같거나 약간 차이가 있지만 등급이 예상과는 달리 낮게 나왔다.”며 한숨을 쉬는 경우가 많았다. 여의도여고 이지현(18)양은 “모의고사에 비해 쉬웠던 과목이 오히려 등급이 떨어졌다.”면서 “등급이 예상보다 낮게 나와 가·나·다군을 지원하고 싶던 대학을 모두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경기고 박모(18)군은 “외국어영역에서 70점대를 맞아 5등급이 됐다. 사회탐구영역도 어려웠는데 50점대여서 5등급”이라면서 “등급이 너무 낮아져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난감해 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등급 하락한 학생 많아 과학탐구영역에서 점수와 등급 모두 떨어졌다는 신목고 강정훈(가명·18)군은 “쉬웠던 언어, 외국어영역은 중상위권이 붕괴되는 데 일조했다.”면서 “누가 최상위 또는 상위인지, 중상위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 말했다. 풍문여고 3학년 담임인 정경영 교사는 “전체적으로 문제가 평이해서 학생들이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았고 불안감도 덜했다.”면서 “하지만 문제가 쉬워서 그런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전체적으로 등급이 하락한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여의도여고 3학년부장 최원식 교사는 “근현대사 같은 과목은 너무 쉬워서 변별력이 없고, 과학탐구영역의 물리 과목은 변별력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수능직후 사설학원 등에서 분석한 내용이 대부분 일치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성적자료 출처는 일선학교” 한편 교육인적자원부는 청솔학원이 수능시험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낮 홈페이지에 수능 표준점수 및 도수분포를 올렸다가 삭제한 경위를 조사한 결과 경남의 K고에서 팩스로 자료를 학원으로 전송한 사실을 확인했다. 교육부는 경남교육청을 통해 추가로 경위를 파악해 관련자를 적절히 조치하고, 현행 수능성적 통지 방식을 개선할 방침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한은·금감원 끝없는 ‘영역 다툼’

    한은·금감원 끝없는 ‘영역 다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갈등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신용카드사의 대출 규모를 놓고 서로 엇갈린 분석과 대안을 내놓으며 시장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지난달부터 시작된 외화대출 공동검사도 파행으로 진행되면서 한은과 금감원의 ‘밥그릇 싸움’이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한은 “카드 대출 과열” vs 금감원 “안정 상태” 갈등이 먼저 촉발된 사안은 카드 대출 규모. 한은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06년 3·4분기 중 가계신용 동향’에 따르면 전업·은행계를 포함한 신용카드사의 카드 대출(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규모는 18조 3245억원이다. 지난 2·4분기 때보다 3000억여원 늘어난 수치다. 반면 금감원은 3·4분기 카드 대출 규모가 전분기보다 최대 2000억원 정도 줄어든 23조 1000억원선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감원은 대출 규모에 자산유동화증권(ABS)을 포함시킨다. 그러나 한은은 ABS를 빼고 계산한다. 규모가 5조원 가까이 차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추이마저 다르다는 것. 한은 통계에 따르면 카드 대출금은 지난 1·4분기 이후 급격히 늘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 통계로는 지난해부터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정책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은은 당연히 카드 대출 억제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현금서비스 쪽에서 카드사들의 과당 경쟁이 다시 시작되면서 카드 대출에 따른 가계 부담이 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카드사의 ABS를 전체 대출 규모에 포함시켜야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인 ABS는 채권을 담보로 발행해서 현금화하면 끝이지만 카드사 ABS는 관련 의무가 카드사에 남아 있는 만큼, 완전히 털어버린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카드사의 대출 억제 규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관성에 빠진 한은은 지난 2003년 시장안정 대책에서 재경부, 금감위 등과 ‘자산을 관리대상으로 보자’고 합의한 내용을 스스로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들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외화대출 공동검사에서도 두 기관의 갈등은 재현되고 있다.11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기업, 한국씨티은행 등에 대해 지난달부터 한은과 금감원이 진행 중인 외화대출 공동 검사가 파행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인은 한은이 시중은행들에 외화대출 관련 자료들을 요청했지만 금감원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 이에 따라 금감원의 감독을 받는 은행들이 한은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과 금감원의 ‘영역 다툼’이 시작된 것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때 은행 감독 기능이 한은에서 금감원으로 이관됐지만 일부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후 권한을 넓히려는 한은과 이를 견제하는 금감원 사이에 전선이 형성됐다. 2004년에는 한은이 은행 경영실태 검사 결과를 직접 은행에 통보한 것이 문제가 됐다. 지난 8월에도 카드 대출 잔액의 증감 여부를 둘러싸고 두 기관이 감정 섞인 설전을 주고받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관의 특성에 따라 통계나 정책이 달라질 수 있지만 업계의 입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하다.”면서 “한은과 금감원이 ‘진흙탕 싸움’ 대신 화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발레 ‘호두까기 인형’ 취향대로 골라 보자

    발레 ‘호두까기 인형’ 취향대로 골라 보자

    ‘호두까기 인형’은 연말 공연계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레퍼토리. 호프만의 동화를 각색해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발레곡이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된 이래 100여년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연으로 이어져온 작품이다. 올해 국내 무대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정통 발레부터 비 보이춤으로 버무린 현대무용, 한국 상황에 맞춘 스토리의 파격 발레까지 다양한 볼거리들로 무장한 ‘호두까기 인형’들이 각축을 벌인다. ●고전에 충실한 호화무대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대결은 연말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 중 하나. 국립발레단은 예년처럼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볼쇼이 버전을 택했다. 극의 전체적인 전개를 춤으로 구성, 모든 춤에 성인 무용수가 등장해 화려한 춤의 세계를 펼치는 게 특징. 원작에 더 가깝게 보여주기 위해 러시아 현지에서 제작된 무대와 의상을 공수했으며, 볼쇼이발레단 주역 무용수 니나 캅초바와 얀 고돕스키도 주역으로 출연시킨다.21년째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에 올려온 유니버설발레단은 키로프(마린스키) 버전으로 드라마틱한 무대를 선보인다. 아기자기한 춤과 마임을 버무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것이 특징. 파티 장면과 함께 꼬마병정 역할의 어린이 50여명이 무대에 올라 가족공연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여기에 지난해에 이어 내한한 벨로루시발레단이 가세해 러시아 정통 발레의 진수를 보여준다.30세 전후의 나이로 절정의 기량에 접어든 무용수들이 역동적인 무대를 꾸민다. ●실험성 돋보이는 파격무대 이정희 현대무용단의 무대는 현대무용으로 차이코프스키의 고전 음악을 새롭게 해석한 시도로 눈길을 끈다. 청소년들의 트렌드를 대표하는 비보이 춤과 마술을 접목했다.11명의 비보이(B-boy)와 팝핀(Pop Pin) 댄서들이 등장, 호두까기 인형이 이끄는 병정 장난감들과 생쥐 부대의 전투 장면을 비롯해 역동적인 춤을 보여준다. 베테랑 마술사 이제민이 마술로 연출하는 주인공 클라라의 꿈속 여행도 독특하다. 제임스 전의 안무로 새롭게 탄생한 서울발레시어터의 창작발레도 색다른 볼거리. 클라라와 왕자를 영민과 단비라는 한국의 캐릭터로 변환, 심장병에 걸린 영민을 보살피는 단비의 희망이 실현되는 과정을 다뤘다.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축으로 삼은 것은 원작과 비슷하지만 무서운 생쥐 군단을 바퀴벌레 군단으로 바꾸는 등 현실적으로 꾸민게 특징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바르게 살자/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알고 지내던 화가에게 놀러가기로 했다. 후배의 제안이었다. 화실이 일산의 끝자락이란다. 전화를 했다. 그는 찾기 쉽지않다며 난감해 한다.‘추억만들기’앞으로 데리러 오겠단다. 모텔이다. 여자 후배와 함께 기다리려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낯선 사람이 지날 때마다 고개를 돌리곤 했다. 서울서 일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러브호텔’ 경연장이다. 수색쪽에서 들어가는 길은 더하다.‘꽃의 도시 고양’이란 우아한 입간판이 무색하다. 신도시 초기 주민 반발이 심했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고정됐다. 하지만 자유로의 장항 인터체인지를 거쳐 들어가는 길목은 또다른 풍경이다.‘바르게 살자’는 석물이 우람하게 서 있다. 러브호텔 천국이지만 주민들은 바르게 살라는 것일까. 아니면 외지인들이여 러브호텔같은 곳엔 가지 말라는 호소문일까. 볼 때마다 기분이 별로다. 서울시가 앞으로 주민들이 합의하면 러브호텔같은 시설은 짓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바르게 살자’는 어설픈 계몽보다는, 주민이 나서 쾌적한 공간을 가꾸라는 주문인 모양이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보은인사 명암 2題] 구설수 오른 吳특보

    대통령 정책특보인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대학총장 후보로 응모해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5·30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오 전 장관은 최근 동국대 총장 후보에 출사표를 던졌다.5·31 총선에서 낙선했다가 대통령 특보로 임명된 점을 놓고도 ‘보은인사’ 논란을 낳은 상황에서 특보 신분을 갖고 총장 후보로 지원함으로써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오 전 장관은 1차 총장 후보 공모에는 지원하지 않았다가 2차 공모에 뛰어들었다. 이어 지난 1일 6명의 후보를 놓고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실시한 투표에서 선학과 한태식(법명 보광), 경찰행정학과 이황우 교수와 함께 공동 1위로 최종 후보 3명에 뽑혔다. 총장은 오는 12일 재단이사회에서 최종 선임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5일 이와 관련,“특보 신분으로 대학 총장후보로 응모한 데 대해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난감해했다.박홍기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서울신문·서울시의회 의정모니터… 시정 아이디어 봇물

    서울신문·서울시의회 의정모니터… 시정 아이디어 봇물

    서울시의회와 서울신문이 공동 운영하는 의정모니터제 시행 두달째인 11월 모두 116건의 제안이 접수됐다. 지난 10월 첫 시행 때 자치구나 동네 주변의 의견이 다소 많았던 데 비해 이번에는 자치구 문제점뿐 아니라 시정 전반에 걸친 제안이 많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지하철 객차 가운데 2량을 노약자 전용칸으로 운영하자는 의견에서부터 휴일 도서관 개관, 방치차량 처리 판매자 책임제 도입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우수의견은 모두 32건이었다. ●지하철에 노약자 칸을 두자 홍기홍(58·도봉구 창5동)씨는 현재 객차 앞뒤 2곳에 모두 12석에 불과한 노약자석 대신 객차 가운데 2량정도를 노약자 칸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노약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지하철을 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거리마다 특색에 맞는 조형물을 김희정(41·여·서대문구 홍제1동)씨는 서울시내 거리에 서울시를 대표하는 조형물을 발굴,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대신 기존 위인 위주의 획일적인 동상 대신 시민 공모 등을 통해 지역에 맞는 조형물을 두자고 주장했다. 을지로의 경우 을지문덕 장군 동상이나 인쇄 관련 조형물을 두자는 것이다. ●카드 충전 너무 불편해요 정구창(54·영등포구 신길3동)씨는 현행 교통카드가 지역간 호환성이 없는 것은 물론 정류소에 설치된 충전소에 가면 1000원이나 5000원어치 충전을 하려면 지하철로 가라고 한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정씨는 또 T머니카드는 고장 등 장애 발생시 지하철역이나 편의점에서 교환·환불이 안 되고, 가맹점에서만 할 수 있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당산역 주변 인도 차도 구분이 없어요 김희숙(57·여·영등포구 양평2동)씨는 당산역 주변 지하철공사 구간에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아예 없는 구간이 있다며 인도와 차도 사이에 안전펜스나 가드레일 설치를 요구했다. ●지하철역에 환경오염 전광판을 김정주(24·여·서대문구 대현동)씨는 환경오염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좀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동인구가 많은 구청이나 지하철역 등에 환경오염 전광판을 두어 오염도를 공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산업용 쓰레기 봉투 쉽게 살 수 있게 박을동(66·도봉구 방학동)씨는 어린이 장난감 등 2가지 이상으로 만들어진 재활용이 안 되는 산업용 쓰레기 봉투 구입이 쉽지 않다며 일반 쓰레기 봉투처럼 일반 가게에서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안했다. ●시민안전 체험관에서 지하철 문 여는 방법 교육을 김수미(37·여·성동구 성수2가)씨는 서울 능동 시민안전체험관에 비상시 수동으로 지하철 객차 문을 여는 방법을 교육해달라고 제안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도 당황하면 열쇠가 있어도 잘 열지 못하는 만큼 체험관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매자에게 방치차량 처리 책임 묻자 송경숙(46·여·강동구 명일동)씨는 아파트 주차장이나 공터에 폐차 목적의 장기방치 차량이 눈에 띈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동차 판매사나 중고차 판매상에게 판매시 차량 처리 책임까지 묻도록 법제화하자고 제안했다. 또 방치 차량 신고자 포상이나 조기 처리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를 줘 신속하게 차량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물새지 않는 학교에서 공부하게 해주세요 장미화(37·여·양천구 신월2동)씨는 양천구는 철거 이주에 따라 지어진 이주민 단지가 많아 자원이 넉넉지 않다면서 신월2동의 양강·신강초등학교와 인근 양동초등학교의 경우 여름에는 비가 새고, 물이 넘치는 경우도 있다면서 제발 아이들이 물이 새지 않는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성곤기자 snggone@seoul.co.kr
  • [깔깔깔]

    ●한수위 내기를 무지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다. 결혼한 지 몇 십년 동안 할아버지는 단 한번도 할머니와 내기를 해서 이긴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볼일을 보던 할아버지는 기발한 생각을 했다. 할머니에게 가서 말했다. “할멈, 우리 오줌 멀리 쏘기 내기 할까?” 할머니는 흔쾌히 허락했고, 만반의 준비를 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한마디에 이번 내기도 지고 말았다. “근데 영감 손 대기 없수다.”●아빠와 딸 “아빠는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아?” “음. 보고 싶은 사람 가끔씩 만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고 또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재미로 살지.” “그런데 너는 무슨 재미로 사니?” “장난감 가지고 노는 재미” “어떤 장난감?” “말 같잖은 질문해도 꼬박 꼬박 대답해 주는 장난감.”
  • 독일 차세대교육 다룬 다큐

    아리랑TV는 25일 오전 11시 독일이 주장하는 차세대 교육을 다룬 특별 다큐멘터리 ‘대안(代安), 독일을 가다’를 방송한다. 교실이 없는 숲속 어린이집, 양로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장난감이 없는 유치원,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돌보고 도와주는 학교, 독일어를 모르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는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안 교육으로 개별 아이들의 특성에 맞는 교육방법을 선택하는 독일의 교육제도를 들여다본다.
  • [서울광고대상-최우수상] LG화학 ‘보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서울광고대상-최우수상] LG화학 ‘보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LG화학과 소비자 간에 각별한 관계를 설정하여 LG화학을 그들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알리면서 LG화학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을 이번 광고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소비자의 기본적인 요구를 반영한 메시지를 담고 이를 의외성 있게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꿈을 만드는 것은 그 아이가 자라면서 보고 접하고 배우며 느끼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라고 전제한다면, 그 아이가 장난감 비행기를 들고 공원의 들판을 뛰면서 놀 때에도 LG화학의 생활 플라스틱이 존재하기에 그 아이의 꿈을 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광고에 담았다. 이렇듯 소비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결국엔 LG화학의 존재를 오히려 더욱 강조하고 두드러지게 전달함으로써 LG화학을 보다 친근감 있는 회사, 따뜻한 회사, 내 생활에 항상 도움을 주는 회사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이번 서울광고대상에서 뜻깊은 상을 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조갑호 상무
  • ‘궁’ 속편 주무대는 황실아카데미

    ‘지금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라면?’이라는 가정으로 인기를 모았던 MBC 드라마 ‘궁’의 속편이 ‘궁S’로 정해졌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방식으로 윤은혜를 스타덤에 올려놨던 드라마의 후속작답게 이번에는 가수 세븐을 중국집 철가방에서 황태자로 변신시킨다. 이를 위해 궁S는 ‘철종 스토리’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철종은 아버지가 강화도에 유배생활을 하던 때에 낳은 자식이었으나, 세도가 안동 김씨에 의해 왕으로 옹립됐다. 궁S의 주된 뼈대는 30대 초반의 여황제(명세빈)의 후계구도이다. 사상 최초의 여황제이지만 걸림돌은 많다. 어린 시절 즉위하다 보니 섭정과 잦은 간섭에 시달려온 여황제. 보수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다 갑자기 후계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후계구도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진다. 이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황실은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 이후(세븐)을 궁 밖에서 찾아낸다. 난감하게도 이후는 중국집 배달부. 이런 이후의 앞날이 순탄할 리 없다. 황실종친회 등 보수파는 완벽하게 준비된 이준(강두)을 내세우고 여황제와 이후는 이들과 결전을 벌인다. 궁S에서 눈길을 끄는 곳은 ‘황실 아카데미’이다. 궁이 황실을 주무대로 삼았다면 궁S는 귀족들만의 공간을 보여주는데 바로 이곳이 황실 아카데미. 중국집 배달부 이후가 황족으로 변신해 가는 과정 못지않게 황실 아카데미에서 이뤄지는 귀족교육은 또 다른 볼거리라는 게 제작진의 장담이다. 제작사 그룹에이트측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출연진과 스토리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 새로운 제목을 썼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혜자·윤유선·박찬환·이윤지 등 황실가족이 연이어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완전히 바뀌어 오미희·윤예희·이기영 등이 캐스팅됐다. 궁S는 내년 1월 MBC에서 방영될 예정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택담보대출 이달엔 못받는다

    주택담보대출 이달엔 못받는다

    “돈을 안 빌려준대요.”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나선 17일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은행 창구에서 아우성을 쳤다. 매매계약이 확정된 잔금대출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이달 말까지 신규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주택담보 대출이 최근 급증하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음에 따라 금융감독 당국이 내린 지침에 따른 것이다. 자영업자 한모(45)씨는 이날 시중은행 역삼동지점에 들러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한씨는 “지난 한 달간 대출상담을 했다.”면서 “오늘 대출 접수를 하라고 해서 은행에 나왔는데 접수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지점 관계자는 “오늘부터 주택 매매계약서 없이는 대출 승인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창동지점에 들렀다가 대출을 거절당한 이모(39)씨는 “은행 빚을 내는 사람 가운데 급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어제는 괜찮고, 오늘은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국민은행 도곡동지점 관계자는 “금감원의 기침이 본점에는 감기가 되고, 영업점으로 내려오면 독감이 된다.”면서 “대출이 힘든 경우는 어떻게 고객들을 설득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신한은행 일산지점 관계자 역시 “사전 승인된 건들도 매매계약서 등을 가져와야 대출을 해 줄 수 있다.”면서 “신규 대출과 일반 자금으로 사용하려는 고객들에게는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돈이 급한 일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금리가 비싼 대부업체나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국민·신한·우리은행에는 11월 주택담보대출 순증액을 10월 말 대비 6000억원 수준에서 차단하고, 농협과 하나은행에는 각각 순증액을 5000억원과 2500억원 이하로 할 것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이미 이 한도액을 초과했거나, 한도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김중회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주택담보대출 증가 추세가 이대로 이어질 경우 11월에만 5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돼 담보대출 속도를 조절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11·15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기 전 1주일간 평소보다 대출 신청이 3배 이상 급증해 가수요 대출이 너무 큰 것은 사실”이라면서 “주택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역 대출을 최대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날 당정협의를 열어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분양원가 공개를 민간택지로 확대하는 문제를 검토하기로 했다. 또 채권입찰제를 수정하거나 없애고 마이너스 옵션제 도입 등을 추진키로 했다. 당정은 이같은 내용의 분양가 제도 개선대책을 내년 2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이종락 이창구 주현진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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