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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영도다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어린 시절 “니(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우(주워)왔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 장난투의 놀림이었지만 참말로 알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영도다리에서 부산 사람들은 고향 같은 친근함을 느낀다. ‘구포다리는 걷는 다리요, 영도다리는 드는 다리요, 영감다리는 감는 다리요’라는 익살스러운 부산지방의 구비 민요도 있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조금 못 미치는 영도(影島)는 선사시대의 패총 유적이 많고 해안 경치가 아름다운 섬이다. 영도와 부산의 본토 남포동을 잇는 다리가 영도다리다. 영도의 남쪽 끝에 있는 태종대로 가려면 영도다리를 건너야 한다. 6·25 피란 시절 영도다리 밑은 피란민들이 비를 피하고 잠을 청했던 공간이었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처럼 영도다리는 피란민들이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향수에 빠졌던 곳이기도 했다. 영도다리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4년 11월 준공됐다. 준공식에는 멀리 김해나 밀양에서까지 6만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밤새 제등행렬도 이어졌다고 한다. 영도다리가 명물 중의 명물이 된 것은 국내 유일의 도개교(跳開橋,draw bridge)였기 때문이다. 영도다리는 부산의 남항과 북항 사이에 있어서 배가 영도 남쪽을 돌아가는 시간 낭비를 해결하는 비책이 도개교였던 것이다. 영도다리는 하루에 여섯 차례 들어 올려졌다. 거대한 물체가 하늘로 치솟아 오를 때 처음 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부산사람들은 그저 “영도다리가 끄덕끄덕한다”고만 했다. 그러나 교통량의 증가로 1966년 9월부터는 영도다리가 들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다리를 들어 올릴 때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려야 했다. ‘배 몇 척을 보내려고 수많은 차들이 기다려야 하느냐, 배가 돌아가면 되지’ 하는 원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노후화된 영도다리를 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결국 복원하기로 결정되어 2006년에는 부산시 기념물 제56호로도 지정됐다. 이듬해 7월 보수·복원공사가 시작되어 최근 상판 연결공사가 끝났다. 부산시는 다리를 복원함과 동시에 47년 만에 도개 기능도 재현한다고 한다. 올 연말에는 영도다리가 ‘끄덕끄덕’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낭만적인 풍경을 위해서라면 잠시 교통이 정체되는 것쯤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하늘님도 개운하시겠네! 환구단, 일본식 석등 걷어내고 전통방식으로 복원

    하늘님도 개운하시겠네! 환구단, 일본식 석등 걷어내고 전통방식으로 복원

    대한제국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환구단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서울 중구는 지난해 10월부터 추진한 사적 제157호 환구단 복원 공사를 마치고 10일부터 개방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헐린 환구단엔 총독부의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이 들어섰다. 지금은 하늘과 땅 신령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 돌북 3개, 석조 정문만 남아 있다. 특히 환구단에 설치됐던 석등은 한국미술사에 등장하지 않은 이질적 형태로 근대 이후 일본의 정원 장식용으로 널리 보급된 일본식 석등과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또 일본식 정원으로 논란을 빚은 잔디 1340㎡를 들어내고 전통 방식에 따라 마당 1462㎡ 전체를 마사토로 포장했다. 배수가 잘 되도록 집수정 7곳과 배수관로 110m도 설치했다. 석등 21개와 가로등, 조형수 7그루를 철거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주변에 흩어졌던 난간석과 지대석도 한데 모았다. 황궁우의 파손된 부분은 전통 돌로 다시 깔았다. 환구단은 오전 9시~오후 9시 연중무휴 무료로 개방된다. 황궁우 내부는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 운영하는 중구 문화유산탐방,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볼 수 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전력대란 공포’ 몸사리는 서민

    ‘전력대란 공포’ 몸사리는 서민

    올 들어 처음 전력수급 경보가 ‘관심’ 단계로 발령된 지난 5일. 서울 광진구의 한 노인정은 건물 1~4층을 오가는 엘리베이터의 전원을 내렸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는 60~80대 노인들은 평소 건물 2층에 있는 휴게실을 갈 때도 불편한 다리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했지만 이 날부터 한 손에는 난간을, 한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노인정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재작년에 인근 아파트에서 정전 발생으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그 안에 갇힌 어르신이 실신하는 사고가 있었다”면서 “그 이후에는 TV에서 전기가 부족하다고 나오면 어르신들이 혹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시다가 사고가 날까 걱정돼 일시적으로 운행을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한 반에 30여명의 학생들이 하루 종일 맞대고 생활해야 하는 학교도 에너지 절약과 전기료 부담 탓에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낮에 교실 내 온도가 30도를 훌쩍 넘어가지만 에어컨 가동은 꿈도 못꾼다.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교무실과 화장실 등의 형광등도 끈 채 어두컴컴하게 지내는 학교가 적지 않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감 이모(52)씨는 “한 해 전기요금만 적어도 8000만원, 많을 때는 1억원이 넘는다”라고 말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실시하던 체육 수업도 이달 들어 교실수업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었다. 한국교원단체협의회가 지난달 27일 전국 1058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전체 학교의 87.9%가 전기료 부담 때문에 냉방 가동을 중단했고, 72.2%는 비싼 전기료 때문에 교육비와 시설 유지·보수비 예산을 깎았다. 시민들은 “전력 대란의 원인은 따로 있는데 책임은 시민들에게 돌린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회사원 여지원(29·여)씨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전력난은 사실 부품비리 때문에 원전이 멈추고 전력수요 예측을 제대로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큰 데 마치 국민들이 전기 낭비를 해서 전력난이 온 것처럼 선전하는 것이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주택용·교육용 전기보다 낮게 책정된 산업용 전기료를 현실적으로 상향 조정해 가파르게 증가하는 전기 수요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남미(52·여)씨는 “식당을 시원하게 해놓지 않으면 손님들이 들어왔다가 바로 나간다”면서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의 영업점이나 집에서 쓰는 전기는 누진세를 더 올리고 대기업이 쓰는 전기는 싼값에 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분기 기준으로 전기료는 주택용이 당 104.6원, 교육용 101.4원, 산업용 86.8원, 농사용은 47.5원이며 전체 전기 사용량 가운데 산업용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55%, 주택용 전기는 14%였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여심 잡기 완결판, 대단지 ‘북죽곡 한라비발디’ 분양

    최근 분양시장에서 여심공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을 배려한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면서 분양시장을 주도하는 것. 업계에서도 주택구매 의사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여성을 위한 맞춤형 상품 개발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대구 세천지구에 들어서는 ‘북죽곡 한라비발디’는 여자신도시 건설을 목표로 다양한 특화설계와 친환경 조경시설, 각종 안전 시스템과 커뮤니티시설을 도입해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금호강변의 입지를 살린 단지는 강 조망 세대에 강화유리 난간을 시공해 조망권을 극대화하였으며, 금호강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단지 내 전망데크도 설치했다. 단지 내 ‘힐링’을 테마로 한 대규모 친환경 조경에는 약 600㎡ 넓이의 비발디 플라자에서는 편안한 휴식과 여가를 누릴 수 있으며, 700㎡의 넓이로 조성되는 힐링포레스트에서는 육아와 가사에 지친 심신을 정화시켜주는 삼림욕도 즐길 수 있다. 또 산책로와 연계하여 약 800m의 힐링로드에는 산책에 즐거움을 더하는 체력단련시설이 마련했다. 이 밖에도 허브식물, 초화류의 향기를 교감할 수 있는 힐링가든이 조성되며, 2012 우수산업디자인으로 선정된 어린이 놀이터, 유아의 연령대를 고려한 맞춤형 놀이시설이 체험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텃밭을 조성했다. 북죽곡 한라비발디는 대구 최초로 범죄예방 환경설계(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 Design 이하 셉테드) 디자인 인증을 받았다.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단지 내 보안 사각지대를 없애고 늦은 밤길도 환하게 밝혀주는 조명도 단지 곳곳에 설치했다. 또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등에CCTV, 비상콜 버튼 등을 구축하고, 1~2층 및 최상층에는 동체감지기 설치, 안전을 극대화했다. 아이들을 위한 커뮤니티시설도 눈길을 끈다. 다목적구장, 키즈카페, 키즈스테이션 등이 있으며 조명, 벽지, 바닥재를 선택할 수 있는 키즈 맞춤 인테리어가 적용됐다. 이 밖에도 부재중에 비밀번호를 통해 안심하고 택배를 받을 수 있는 무인택배시스템, 다용도실 입식빨래대 등 편리한 가사도움 시스템 및 계단실 다이어트사인 등 세심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북죽곡 한라비발디는 죽곡지구 생활권에 해당하는 세천지구에 지하3층~지상33층 9개 동, 총 1,204세대의 대단지로 조성되며 실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 평면(62, 74, 84㎡)로 구성됐다. 또한 남향 및 판상형 위주 설계로 채광 및 환기가 우수하며 1, 2층 세대에는 기준층보다 천장고를 20cm 높게 설계하여 넓은 공간감을 제공한다. 대구 현대백화점을 시공한 한라건설이 대구에 첫 선을 보이는 주거상품으로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오는 31일 분양에 나설 예정이다. 모델하우스는 이마트 성서점 인근(달서구 이곡동 1258)에 위치해 있다. 분양문의: 1588-3170 인터넷뉴스팀
  • 대형사찰 공사중 인부 추락사… “흉하다고 안전망 없애”

    서울 송파구에 있는 대형 사찰의 재건축공사 현장에서 건물 5층의 외벽 마감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인부가 떨어져 숨졌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시공사 측이 건물 외부의 안전그물망 등을 철거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안전장치 미비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14일 석촌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B사찰에서 건설 인부로 일하던 홍모(49)씨가 건물 5층에서 바닥으로 추락,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30일 밝혔다. 송파서는 시공사인 S건설과 외벽마감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 C건설 등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지를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S건설 현장소장과 C건설의 현장 인부들을 상대로 법에 따라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도 사고 현장에 감독관을 파견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했는지 검사하고 있다. 사고 당시 홍씨는 사찰 건물 5층 외벽에 설치된 작업 발판에 의지한 채, 외벽에 돌을 붙이는 작업을 하다가 접착 부분이 떨어진 돌을 받아내다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추락했다. 홍씨가 떨어진 장소에는 지하 2층 깊이의 구멍이 뚫려 있어 실제 홍씨가 추락한 높이는 건물 7층에 달했다. 공사 목적으로 파놓은 구멍 위에는 그물망이나 난간 등의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의 유족들은 “B사찰과 S건설 측이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신도들에게 지저분한 공사 모습을 감추기 위해 건물 외벽에 설치됐던 파이프와 안전그물망 등을 철거했다”며 안전장치 미비에 따른 인재라고 주장했다. 고용부의 1차 현장 조사에서도 외벽에 있어야 할 안전그물망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규칙은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안전 난간이나 덮개 등의 방호 장치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공사와 하청업체 측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대형사찰 공사중 인부 추락사… “흉하다고 안전망 없애”

    서울 송파구에 있는 대형 사찰의 재건축공사 현장에서 건물 5층의 외벽 마감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인부가 떨어져 숨졌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시공사 측이 건물 외부의 안전그물망 등을 철거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안전장치 미비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14일 석촌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B사찰에서 건설 인부로 일하던 홍모(49)씨가 건물 5층에서 바닥으로 추락,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30일 밝혔다. 송파서는 시공사인 S건설과 외벽마감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 C건설 등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지를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S건설 현장소장과 C건설의 현장 인부들을 상대로 법에 따라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도 사고 현장에 감독관을 파견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했는지 검사하고 있다. 사고 당시 홍씨는 사찰 건물 5층 외벽에 설치된 작업 발판에 의지한 채, 외벽에 돌을 붙이는 작업을 하다가 접착 부분이 떨어진 돌을 받아내다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추락했다. 홍씨가 떨어진 장소에는 지하 2층 깊이의 구멍이 뚫려 있어 실제 홍씨가 추락한 높이는 건물 7층에 달했다. 공사 목적으로 파놓은 구멍 위에는 그물망이나 난간 등의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의 유족들은 “B사찰과 S건설 측이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신도들에게 지저분한 공사 모습을 감추기 위해 건물 외벽에 설치됐던 파이프와 안전그물망 등을 철거했다”며 안전장치 미비에 따른 인재라고 주장했다. 고용부의 1차 현장 조사에서도 외벽에 있어야 할 안전그물망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규칙은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안전 난간이나 덮개 등의 방호 장치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공사와 하청업체 측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학폭에 엄마도 피멍 “옥상 올라가 극단적 생각도”

    학폭에 엄마도 피멍 “옥상 올라가 극단적 생각도”

    “죽어서라도 이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요. 우리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왜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지금도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2011년 지방의 유명한 공립 기숙사 고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킨 A(45·여)씨는 입학 후 석달이 지나서야 아이가 학교폭력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동성 간의 성추행은 물론 입에 담기 힘든 ‘갈X’라는 폭언에 아이는 반항조차 못했다. A씨는 학교의 책임 있는 처벌과 가해 학생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이를 쉬쉬했다. 참다 못한 A씨가 경찰에 가해 학생을 신고하고 교육청 학교폭력담당센터를 찾아가자 그때서야 학교는 부랴부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고 가해·피해 학생의 학급을 분리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도 A씨는 홀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남들은 다 끝난 일이라며 A씨를 다독인다. 고3 수험생이 된 아들도 조금씩 학교에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지금도 우리 아이와 가해 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면서 “학교가 가해 학생을 전학시키도록 3년째 법정 공방을 이어 가고 있다”고 했다. 학교폭력에 멍든 엄마들이 방치되고 있다. 특히 피해 학생의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잘 양육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왜 하필 우리 아이냐는 원망, 가해 학생에 대한 억하심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간이 흘러도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보듬어 줄 기관이 마땅히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수빈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3일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유착 관계가 강하게 형성돼 있어 (엄마들이)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죄책감과 분노가 커져 우울감에 빠지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학교나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데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 학교폭력상담센터의 장학사는 “아이는 상처가 커도 의외로 잘 극복해 나가는 반면 부모의 상처는 적절한 조치가 없다 보니 더 오래간다”고 지적했다. B(39·여)씨는 딸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면서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더니 목과 손등, 팔 등에 멍과 상처를 입고 돌아왔다. B씨는 가해 학생이 누구냐고 채근했지만 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학교 측에 조사를 요구했지만 피해 학생이 말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특정해 처벌하기 어렵다는 답만 들었다. 결국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상황이 됐다. 최근 몇번이나 옥상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B씨는 남편의 권유로 최근 자살예방센터를 찾았다. 전문가들은 분노와 죄책감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아이와 함께 엄마들도 조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변에서 지지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 교수는 “피해 학생의 엄마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치료를 받거나 상담받는 일을 사치라고 생각한다”면서 “1차적으로 엄마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주변에서 인지시켜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피해자 엄마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면서 “집단 상담 등을 통해 마음을 터놓을 수 있게 하고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학폭에 엄마도 피멍 “옥상 올라 극단적 생각도”

    학폭에 엄마도 피멍 “옥상 올라 극단적 생각도”

    “죽어서라도 이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요. 우리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왜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지금도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2011년 지방의 유명한 공립 기숙사 고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킨 A(45·여)씨는 입학 후 석달이 지나서야 아이가 학교폭력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동성 간의 성추행은 물론 입에 담기 힘든 ‘갈X’라는 폭언에 아이는 반항조차 못했다. A씨는 학교의 책임 있는 처벌과 가해 학생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이를 쉬쉬했다. 참다 못한 A씨가 경찰에 가해 학생을 신고하고 교육청 학교폭력담당센터를 찾아가자 그때서야 학교는 부랴부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고 가해·피해 학생의 학급을 분리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도 A씨는 홀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남들은 다 끝난 일이라며 A씨를 다독인다. 고3 수험생이 된 아들도 조금씩 학교에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지금도 우리 아이와 가해 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면서 “학교가 가해 학생을 전학시키도록 3년째 법정 공방을 이어 가고 있다”고 했다. 학교폭력에 멍든 엄마들이 방치되고 있다. 특히 피해 학생의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잘 양육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왜 하필 우리 아이냐는 원망, 가해 학생에 대한 억한 심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간이 흘러도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보듬어 줄 기관이 마땅히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수빈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3일 “아이를 하나만 낳아 키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유착 관계가 강하게 형성돼 있어 (엄마들이)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죄책감과 분노가 커져 우울감에 빠지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학교나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데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 학교폭력상담센터의 장학사는 “아이는 상처가 커도 의외로 잘 극복해 나가는 반면 부모의 상처는 적절한 조치가 없다 보니 더 오래간다”고 지적했다. B(39·여)씨는 딸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면서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더니 목과 손등, 팔 등에 멍과 상처를 입고 돌아왔다. B씨는 가해 학생이 누구냐고 채근했지만 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학교 측에 조사를 요구했지만 피해 학생이 말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특정해 처벌하기 어렵다는 답만 들었다. 결국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상황이 됐다. 몇번이나 옥상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B씨는 남편의 권유로 최근 자살예방센터를 찾았다. 전문가들은 분노와 죄책감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아이와 함께 엄마들도 조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변에서 지지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 교수는 “피해 학생의 엄마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치료를 받거나 상담받는 일을 사치라고 생각한다”면서 “1차적으로 엄마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주변에서 인지시켜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피해자 엄마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면서 “집단 상담 등을 통해 마음을 터놓을 수 있게 하고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이탈리아 북부 이야기 Italy, eataly, italo② Veneto 베네토주

    이탈리아 북부 이야기 Italy, eataly, italo② Veneto 베네토주

    Veneto 베네토주 베네토의 행복학 실습 언젠가 들은 ‘행복론’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었다. ‘기대했던 것을 보여주면 만족하지만 기대 이상의 것을 보여줄 때 행복해진다’고. 그런 의미에서 파도바Padova와 트레비조Trevizo는 행복을 준 도시였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은 의외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오리엔테이션이람?’ 그런 마음으로 스크로베니 예배당Scrovegni Chapel로 달려갔다. 관람 전에 반드시 동영상을 시청하는 일은 ‘알고 보라’는 뜻 외에도 그 시간 동안 관람자들의 체온이나 배출하는 땀 등을 조절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들이 이토록 소중하게 보존하려는 것은 조토Giotto di Bondone·1266년(추정)~1337년의 프레스코화(1303~1305년)였다. 사람들을 꾸벅꾸벅 졸게 했던 동영상과 달리 눈앞에 펼쳐진 예수와 마리아의 생애, 최후의 심판 등은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입체적으로 표현된 인물들은 내면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고 있었고, 그 기쁨, 절망, 고통, 환희는 성서 속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관람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지만 조토의 화풍은 동시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파두아와 근교 도시에서는 지오토 스타일의 프레스코화를 종종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전날부터 여전한 비를 뚫고 팔라조 보Palazzo Bo에 들어섰을 때도 ‘웬 대학이람?’ 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이런 투덜거림은 원형경기장을 연상시키는 세계 최고最古, 1594년의 해부실과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의학대학부속 식물원 앞에서는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파두아 대학은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전세계적으로는 볼로냐, 파리 다음으로 3번째) 대학이다. 교황의 영향력이 컸던 볼로냐에 비해 파도바는 학문의 자유가 인정되는 분위기였고, 학생들은 단테,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실력 있는 선생들을 모셔서 직접 수강료를 지불했다. 회장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세계 여러 도시와 가문의 문장은 당시 이 대학으로 유학을 왔던 명문가의 자제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증명한다. 선생들의 열정도 대단하여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시신을 실습용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지금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실습실은 원형의 나무 난간들이 촘촘하게 둘러쳐진 형태였다. 참관 중에 기절하는 사람의 추락을 막기 위한 것. 악취를 배출하기 위한 창문이 필수였고, 그나마 겨울 동안에만 가능했다. 해부학의 발달 덕택인지 모르지만 유럽의 대성당은 성인들의 유해를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 파도바 성안토니오 대성당에는 안토니오 성인의 성대와 혀, 아래턱이 보존되어 있다. 자녀를 위한 수호성인이기도 한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적의 증표들도 남아 있어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다. 이탈리아 여행 내내 계속 비가 내렸지만 트레비조Treviso의 비오는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잔잔히 물결치던 운하와 세차게 돌아가던 물레방아 때문인 것 같다. 중세의 수채화 같은 도시 풍경은 실레강으로부터 뻗어 나온 브라넬리 운하로 인해 마치 작은 베니스를 연상케 한다. 운하 주변의 집들은 창가에 꽃을 내놓거나 석상 등을 진열해 놓았다. 작은 다리를 건너 회랑을 지나고 또 로마시대 그대로인 듯한 골목들을 걷다가 도착한 곳은 신전을 연상케 하는 두오모였다. 티치아노의 ‘성모 수태고지’와 지롤라모 다 트레비조의 ‘꽃의 성모’ 등이 증명하듯 트레비조는 놓쳐서는 안 될 작품들을 품고 있었다. 트레비조의 프레스코화에 최초로 안경을 쓴 인물이 등장하고, 그런 이유로 지금도 트레비조의 안경이 유명하다는 소소한 사실들이 트레비조의 작은 상점 하나하나를 달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득, 시뇨리 광장 근처의 베네통 매장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크다고 느꼈다면, 그건 이 도시가 베네통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일행이 쇼핑을 간 사이 노천카페에 앉아 트레비조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발포성 와인인 프레스코를 한잔 마셨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베네토 지방의 두 도시를 여행하며 느꼈던 행복감이 잔 속의 공기방울처럼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는 그런 행복이었다. ▶travie info 카페 페드로키 1831년에 문을 연 카페 페드로키Caffe Pedrocchi 는 오스트리아에 대항하는 청년 운동이 시작되었던 역사적인 장소다. 건축가의 이름을 딴 이 카페는 녹색, 빨강, 백색의 소파천 색으로 구별되는 3개의 홀로 이뤄져 있다. 그중 가운데 홀이 카페고 그린홀은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내어 주던 곳이었다. 대표 메뉴인 페드로키 커피는 에스프레소 위에 차가운 민트 아이스크림을 얹은 것으로 색다른 맛이다. 주소 Via VIII Febbraio, 15-Padova 문의 +39 049 8781231 www.caffepedrocchi.it트레비조의 베네통 본사 트레비조는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거리의 작은 상점들조차 예사롭지 않다. 그중에서 가장 반가운 브랜드는 역시 베네통이다. 트레비조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베네통은 톡특한 컬러감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캐주얼 브랜드가 됐다. 루치아노 베네통이 아직도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고 있다는 베네통 본사 건물은 작고 아름다운 정원을 끼고 있었다. 주소 Via Villa Minelli, 1 31050 Ponzano Veneto Treviso 문의 +39 0422 519111 www.benettongroup.com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이탈리아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5-8806, 레일유럽 한국사무소 02-3789-6110, 맥아더글랜 한국사무소 02-553-0822
  • 눈앞에 불벼락이 떨어졌다…충격 영상

    눈앞에 불벼락이 떨어졌다…충격 영상

    눈앞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13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이 영상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콜피노에서 촬영된 것으로 눈앞에서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는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영상을 올린 네티즌은 폭풍 영상을 찍기 위해 난간 앞으로 나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높이 6~8m 나무에 번개가 내리치는 것을 촬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개된 영상에는 도심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번개가 치는 순간과 촬영자도 놀라는 소리가 함께 녹화돼 있다. 한편 이 동영상은 현재 4만 명이 넘는 사용자가 감상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서도 확산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인터넷뉴스팀
  • 고교생 아파트서 잇단 투신자살

    고교생들이 잇따라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7일 오전 6시 20분쯤 경기 안산시의 한 아파트 화단에 A(15·고1)군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화면과 14층 복도 난간에 손을 디딘 흔적 등을 토대로 A군이 14층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A군은 품에 지닌 수첩에 ‘엄마 아빠가 신경을 많이 써주셨는데 속 많이 썩여 죄송하다. 미안하다. 친구들은 운동 열심히 해라’ 등의 메모를 남겼다. 교내 야구부원 합숙소에서 주로 생활하던 A군은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지난 토요일(11일) 집에서 통학하도록 학교 측이 조치했으나 가출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지난 16일 오후 9시쯤 부산 북구 모 아파트 뒤편 화단에서 A(16·고교 1년)양이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A양이 옥상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A양은 쾌활한 성격이어서 교우관계가 원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양이 고교 입학 후 밤늦게까지 학업에 매달렸는데도 최근 중간고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상심했다는 지인들의 말을 바탕으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안산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자연과 예술의 땅, 노르웨이

    자연과 예술의 땅, 노르웨이

    호수를 연상시키는 코발트빛 바닷물 위로 우뚝 솟은 ‘피오르’(fjord)의 행렬을 보셨습니까. 1만년간 빙하의 침식을 받아 이뤄진 골짜기에 생긴 좁고 긴 만으로 ‘U’자 모양을 이룹니다. 전나무와 자작나무가 우거진 절벽, 기암괴석의 머리에 면사포같이 살포시 덮인 피오르의 하얀 빙하는 죽기 전 꼭 봐야 할, 아니 살아 있기에 마주해야 할 가슴 벅찬 풍광입니다. 북위 60도,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서쪽 자락에 자리한 노르웨이는 1967년 북해 유전 발굴 전까지 유럽의 최빈국에 가까웠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를 차례로 받고 1905년 가까스로 독립한 뒤 척박한 자연환경과 같은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매장량 세계 5위의 북해 유전은 노르웨이를 1인당 국내총생산(GDP) 9만 달러를 웃도는 ‘유럽의 사우디’로 바꿔 놓았습니다. 변변찮은 공장 하나 없던 험상궂은 풍광은 그대로 귀중한 관광 자원이 됐답니다.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얼굴이 하얗고 키가 180㎝를 훌쩍 넘는 노르웨이인들은 과연 행복한 사람들일까요?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지만 길을 걷는 시민들 얼굴에선 근심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에드바르 뭉크(1863~1944)나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 같은 걸출한 예술가 덕분이겠죠. 아름다운 피오르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들은 몽환적인 자연과 함께 여행객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치유합니다. 한순간 당황했다. 잠시라도 호젓한 여유를 즐기려 일행과 떨어져 버스 맨 앞자리에 앉은 게 화근이었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탄 34번 버스가 예정된 ‘하겐비’에 정차한 뒤 호기롭게 뒤를 돌아봤으나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 뭉크의 ‘절규’의 배경이 된 이케베르그 다리로 향하던 터였다. ‘절규’할 무렵 휴대전화에 ‘+82’로 시작하는 국제전화가 걸려 왔다.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일행이 뒤늦게 현지인 이야기를 듣고는 다급하게 두 정거장 앞에서 하차했다는 설명이다. 역설적이지만 동네 주민 대부분은 이케베르그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짧은 영어로 물어 찾아간 이케베르그 다리. 다리라기보다 언덕배기에 꼭꼭 숨은 구비길에 난간 몇 개 설치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오슬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따름이다. 뭉크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다. 그의 초상화가 1000크로네 지폐에 들어 있을 정도다. 노르웨이 국민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예술가로, 탄생 150주년을 맞아 오슬로 시내 곳곳에 관련 전시회와 음악회 등을 알리는 현수막이 넘쳐났다. 진짜 뭉크는 국립미술관에서 만났다. 국립미술관에 특별전시된 ‘절규’ ‘마돈나’ ‘병든 아이’ ‘병실에서의 죽음’ 등은 불우했던 그의 삶을 통째로 옮겨 놓았다. 그런데 소름 끼치던 그의 작품들이 말년으로 갈수록 아이들 동화처럼 포근함을 띤다. 촬영이 금지된 터라 한 시간 넘게 작품 주변만 서성이며 마음속에 담았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사실 노르웨이의 첫인상은 꺼림칙했다. 10시간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핀란드 헬싱키. 다시 오슬로행 비행기로 갈아탔으나 창가의 내 좌석은 60대 후반 할머니의 차지가 됐다. 자리를 빼앗은 험상궂은 노르웨이인 노파는 한 시간 넘는 비행 시간 내내 앞 좌석 일행과 독일 방언 같은 노르웨이어를 뱉어냈다. 그런데 도착 20여분 전 갑자기 다정하게 영어로 말을 걸어 왔다. 중국 베이징에서 2년 넘게 살았다는 이야기부터 방문지가 어디인지, 또 좋은 여행 되길 바란다는 인사까지 아끼지 않는다. 아뿔싸, 그들은 바이킹의 후손이었다. 산 만한 덩치에 우락부락한 인상이지만 속내만은 따스했다. 순간 창가 너머로 활처럼 휜 피오르 위에 세워진 중세 도시, 오슬로의 위엄이 눈에 들어왔다. 오슬로의 번화가는 중앙역에서 왕궁에 이르는 칼 요한 거리다. 불과 1.5㎞ 남짓 거리에 의사당, 대성당, 오슬로대학 등이 몰려 있다. 풍성한 녹지가 부러울 따름이다. 이곳 시청에선 매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다른 시상식은 모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지만 평화상만은 예외란다. 노벨이 당시 스웨덴의 척박한 속국이던 노르웨이에 혜택을 준 것인데, 오늘날 역전된 양국의 처지를 본다면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 밤 10시. 대낮처럼 환한 백야다. 오슬로항에 도열한 요트들을 뒤로하고 해변가 레스토랑에 자리 잡았다. 노르웨이 하면 연어지만 이곳 사람들은 대구나 청어를 즐긴다. 짜디짠 대구 스테이크에 수프와 빵, 맥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영수증에 1인당 500크로네(10만원)가 찍혔다. 일행 누군가가 “뭉크의 ‘절규’는 4월 말에도 초겨울에 버금가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살인적인 물가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피오르 없는 노르웨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창처럼 깊고 날카롭게 해안 깊숙이 파고든 피오르는 이맘때면 산정의 눈 녹은 물이 떨어지면서 만든 크고 작은 폭포들로 장관을 이룬다. 오슬로에서 ‘피오르의 수도’ 베르겐까지는 버스로 5시간가량 걸린다. 베르겐은 1048년까지 노르웨이의 수도였다. 노르웨이 최초의 국립극장, 세계 최초의 교향악단이 자리한다. 중세풍 목조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한 브뤼겐이 중심이다. 당시 북유럽 상권을 장악했던 독일 무역상들은 한자(Hansa) 동맹에 따라 이곳에 상관을 짓고 무역을 했다.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나무 보도와 집들로 채워진 어두컴컴한 골목은 현재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이용된다. 브뤼겐 맞은편 어시장, 플뢰위엔 산 전망대로 향하는 열차인 플뢰이바넨을 둘러보고 호젓한 교외로 향했다. 오로지 ‘아이를 많이 낳는 것’과 ‘조국의 독립’이 소원이라던 작곡가 그리그의 사택인 ‘트롤헤우겐’까지는 베르겐 시내에서 차로 10여분 남짓 걸린다. 트롤헤우겐은 북유럽 신화 속 요정 트롤이 사는 언덕이란 뜻이다. 그리그가 1885년부터 22년간 살던 집이다. 그리그는 지금도 아내 니나와 함께 피오르를 바라보는 절벽 중간의 납골묘에 묻혀 오후의 햇살을 만끽 중이다. 피오르를 턱밑에 둔 작업실은 생전에 쓰던 피아노 의자와 책상으로 꽉 차 있다. 현지 가이드는 “키가 150㎝에 불과했던 그리그가 두꺼운 베토벤의 교향곡 악보들을 방석 삼아 작업하곤 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으로 쓰이는 생가는 손때 묻은 악보부터 편지, 초상화 등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초상화나 사진 속 그리그 부부는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두살배기 외동딸 크리스티나를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 한다. 피오르는 인구 500명의 소도시 플롬에 이르자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산악 열차인 ‘플롬스바나’를 타고 베르겐에서 뮈르달을 거쳐 굽이굽이 20㎞의 산길을 돌자 일순 폭설에 휩싸였다. 해발 800m 안팎의 산간 마을과 잔잔한 하천, 만년설로 흰 모자를 쓴 설산, 거기서 떨어지는 폭포가 번갈아 나타났다. 기차는 기울기가 30도를 넘는 협곡을 따라 20여개의 터널을 지난다. 종착지인 플롬은 해발 1300m에 자리한 송네피오르의 내륙 관광 허브다. 송네피오르는 노르웨이 최장 피오르로 204㎞의 길이와 최고 1300여m의 수심을 자랑한다. 하늘을 향해 첨탑처럼 치솟은 고산준봉, 깊고 장대한 계곡에 들어 앉은 노랗고 빨간 지붕의 통나무집이 매력적이다. 고속도로가 없는 노르웨이에서 국도를 따라 다시 울렌스방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나 내려 카메라 렌즈만 들이대면 한폭의 그림이 됐다. 잠시 머무르는 관광객도 영감과 치유를 얻기에 충분한 ‘힐링로드’인 셈이다. 오슬로·베르겐·플롬·울렌스방·스타방에르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아이를 수개월 독방에 가두고, 각목으로 때리고… ‘제천판 도가니’

    아이를 수개월 독방에 가두고, 각목으로 때리고… ‘제천판 도가니’

    설립 50년을 맞은 충북 제천의 아동양육시설에서 여러 해 동안 감금과 폭행 등 심각한 가혹 행위가 자행된 사실이 드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원장과 교사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시설을 설립하고 지난해 12월까지 원장을 맡았던 미국인 여성 선교사는 아동 보호에 대한 공로가 인정돼 국민훈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시민상 등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제천판 도가니’라고 할 만한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지도·감독의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인권위는 2일 시설 아동들을 감금, 학대한 혐의로 제천 J아동양육시설 박모(51·여) 원장 등 2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제천 시장과 충북 도지사에게 시설장 교체와 지도점검 강화 등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이 시설에는 총 79명의 보호아동이 있으며 설립 이후 1232명의 아동이 시설을 거쳐 갔다. 이 시설에서는 2000년 이후 지속적인 가혹 행위가 벌어졌다. 전임 사무국장으로 지난해 시설장이 된 박 원장은 아동들을 각목이나 몽둥이로 직접 때리거나 생활교사 등에게 폭행을 지시했다. 아동들의 도둑질이나 욕설을 막겠다며 억지로 생마늘이나 청양고추를 먹이기도 했다. 부원장의 며느리인 이모(42) 교사는 몽둥이로 아동들의 머리를 때리거나 ‘오줌을 싼다’는 이유로 베란다 난간에 아동들을 세워 뒀다. 다른 교사 6명도 일부러 밥을 굶기거나 대걸레 등으로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었다. 겨울에 아동들을 찬물로 씻게 하고 베개 등 생필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른바 ‘타임아웃방’이라는 독방을 만들어 아동들을 가둬 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건물 3층 원장실 옆에 타임아웃방을 만들어 놓고 통제를 따르지 않는 아동들을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씩 감금했다. 피해 아동들은 “3개월 동안 벽만 바라보고 지내 자살까지 생각했다”거나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식사 시간까지 소변을 참았다”고 진술했다. 갇혀 지낸 아동들은 이 방 책상 서랍에 독방 수용에 대한 불만이나 욕설을 빼곡히 적어 놓은 것으로 조사됐으나 박 원장은 “훈육에 좋은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전임 원장인 미국인 H(77·여)도 이런 인권 유린 행위를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수년간 가혹 행위가 이어졌지만 감독 기관인 제천시는 일부 가혹 행위를 확인하고도 별다른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 시설 점검을 맡았던 충북 지역 상급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학대 상담팀장은 해당 시설에서 2006년까지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독방 수용과 마늘을 먹이는 행위 등에 대해 오히려 “인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변호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반복되는 아동보호시설의 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아동위원 등이 참여해 지자체가 실질적인 지도점검을 벌이도록 해야 한다”면서 “회계처리 감독을 강화하고 아동 치유 프로그램 등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제천 양육시설 충격적 아동학대…“생마늘 먹이고 독방 감금,석달간 벽만 보다 자살 생각”

    제천 양육시설 충격적 아동학대…“생마늘 먹이고 독방 감금,석달간 벽만 보다 자살 생각”

    설립 50년을 맞은 충북 제천의 아동양육시설에서 여러 해 동안 감금과 폭행 등 심각한 가혹행위가 자행된 사실이 드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원장과 교사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시설을 설립하고 지난해 12월까지 원장을 맡았던 미국인 여성 선교사는 아동 보호에 대한 공로가 인정돼 국민훈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시민상 등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제천판 도가니’라고 할만한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지도·감독의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인권위는 2일 시설 아동들을 감금·학대한 혐의로 제천 J아동양육시설 박모(51·여) 원장 등 2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제천 시장과 충북 도지사에게 시설장 교체와 지도점검 강화 등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이 시설에는 총 79명의 보호아동들이 있으며, 설립 이후 1232명의 아동이 시설을 거쳐갔다.  이 시설에서는 2000년 이후 지속적인 가혹 행위가 벌어졌다. 전임 사무국장으로 지난해 시설장이 된 박 원장은 아동들을 각목이나 몽둥이로 직접 때리거나 생활교사 등에게 폭행을 지시했다. 아동들의 도둑질이나 욕설을 막겠다며 억지로 생마늘이나 청양고추를 먹이기도 했다. 부원장의 며느리인 이모(42) 교사는 몽둥이로 아동들의 머리를 때리거나 ‘오줌을 싼다’는 이유로 베란다 난간에 아동들을 세워뒀다. 다른 교사 6명도 일부러 밥을 굶기거나 대걸레 등으로 폭행을 휘두르고 폭언을 퍼부었다. 겨울에 아동들을 찬 물로 씻게 하고 베개 등 생필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른바 ‘타임아웃방’이라는 독방을 만들어 아동들을 가둬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건물 3층 원장실 옆에 타임아웃방을 만들어 놓고 통제를 따르지 않는 아동들을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달씩 감금했다. 피해 아동들은 “3개월동안 벽만 바라보고 지내 자살까지 생각했다”거나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식사시간까지 소변을 참았다”고 진술했다. 실제 이 방 책상 서랍에는 갇혀 지낸 아동들이 독방 수용에 대한 불만이나 욕설을 빼곡히 적어 놓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박 원장은 “훈육에 좋은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전임 원장인 미국인 H(77·여)씨도 이런 인권 유린행위를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년간 가혹행위가 이어졌지만 감독 기관인 제천 시청은 일부 가혹행위를 확인하고도 별다른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 시설 점검을 맡았던 충북 지역 상급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학대 상담팀장은 해당 시설에서 2006년까지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독방 수용과 마늘을 먹이는 행위 등에 대해 오히려 “인권 침해가 아니다”고 변호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반복되는 아동보호시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아동위원 등이 참여해 지자체가 실질적인 지도점검을 벌이도록 해야 한다”면서 “회계처리 감독을 강화하고 아동 치유 프로그램 등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남산 야외음악당 유세장에 모인 인파

    [DB를 열다] 1967년 남산 야외음악당 유세장에 모인 인파

    몇십년 전과 비교하면 대통령 선거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유권자들을 직접 보지 않고도 공약이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미디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 후보들은 넓은 곳에서 수십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벌이는 선거 유세로 세몰이를 하고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서울에서는 한강 백사장, 효창운동장, 장충단공원이 유세장으로 주로 사용됐다.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56년 신익희 당시 민주당 후보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30만명의 청중을 불러 모은 유세장이 한강 백사장이다. 지금은 한강 제방공사로 동부이촌동의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사진은 1967년 4월 22일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보선(오른쪽에서 두 번째)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 앞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멀리 서울 도심과 북한산이 보인다. 이날 모인 청중은 약 25만명이나 되었다. 당시 서울의 가구 수는 75만 가구쯤 되었으니 세 집에 한 집은 유세장에 갔다는 말이 된다. 음악당 자리로는 부족해 어린이 놀이터와 근처 숲 속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서울시는 야외음악당을 유세장으로 허가해 주는 것이 음악인들의 정서에 반하고 난간이 많아 추락 위험이 있다며 난색을 보이다 결국 허가해 주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미주통신] ‘순간 포착’ 85층 빌딩 난간 자살 시도남

    뉴욕 맨해튼의 상징적 건물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85층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남자가 아래로 뛰어내리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고 뉴욕데일리뉴스가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남성은 지난 23일 밤 12시경 86층 전망대를 관람하던 두 여행객에 의해 순간적으로 발견되었는데, 이미 86층에서 85층으로 한 층을 뛰어내려 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발목과 손목이 부러진 상태에서 이 남성은 85층 전망대 난간에 앉아 다시 지상으로 뛰어내리려고 한 발을 허공에 들고 있었다고 사진을 찍은 관광객은 밝혔다. 즉각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전망대 경비원의 설득으로 이 남성은 결국 자살을 포기하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고 말았다. 뉴욕 경찰은 현재 약간 횡설수설하고 있는 이 남성의 정신 감정을 의뢰했으며 우선 무단 침입 혐의로 조사 중이지만 그가 86층에서 85층으로 뛰어 내린 것이 스스로 의도했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뉴욕데일리뉴스는 전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양키스 팬이 불렀다 보스턴의 응원가를

    17일 양키스타디움을 메운 미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팬들이 앙숙인 보스턴 팬들의 응원가를 한목소리로 불렀다. 제117회 보스턴마라톤 폭발물 공격이 만들어낸 색다른 풍경이다. 보스턴 팬들은 1997년부터 홈 구장인 펜웨이파크에서 8회 말 공격 전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 ‘스위트 캐럴라인’을 합창해오고 있다. 이날 애리조나와의 홈 경기가 열린 양키스타디움 외벽에는 양키스와 보스턴 구단의 휘장과 함께 ‘우리는 하나다’라는 문구가 아로새겨졌다. 관중석 스탠드 난간에도 같은 문구가 등장했다. 전례 없는 참사에 슬퍼하고 있을 보스턴 팬들을 위로하려고 양키스 팬들이 진심을 담은 것이었다. 두 팀의 열성 팬들이 상대를 거의 원수 대하듯 해 온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 지라디 양키스 감독도 “모든 이들이 한마음으로 보스턴 시민을 지지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며 “이 곡은 보스턴 시민과 펜웨이파크에 의미 있는 곡이기 때문에 우리의 뜻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추신수(신시내티)의 홈 구장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 시카고 컵스의 리글리필드 등에서도 같은 노래가 울려 퍼지는 등 미국 야구장 곳곳에서 추모 열기가 이어졌다. 묵념으로 경기를 시작한 밀워키는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 ‘치어스’ 주제가를 경기 도중 들려주면서 ‘보스턴 친구들에게, 우리의 마음은 오늘 당신들과 함께 있다’는 글귀를 전광판에 띄웠다. 보스턴이 클리블랜드 원정 경기를 벌인 프로그레시브파크에서도 이 곡이 흘러나와 검은 완장을 팔에 두른 채 그라운드에 나선 보스턴 선수들을 감격시켰다. 더그아웃에 ‘보스턴 617 강하다’라고 적힌 회색 원정 유니폼을 걸어 둔 보스턴이 7-2로 이겼다. ‘617’은 보스턴 지역의 전화번호다. 존 패럴 보스턴 감독은 “클리블랜드와 다른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에 감사드린다”며 “양키스타디움에서 ‘스위트 캐럴라인’이 울려 퍼진 것은 아주 감동적이고 멋진 일”이라고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보스턴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경기 전 “분명 일상적인 경기가 아니다. 보스턴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좋지 않은 기억을 잊을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크 나폴리도 “선수들 모두가 슬퍼하고 있다. 우리의 가슴은 보스턴을 향해 있다. 야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서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보스턴은 오는 20일 펜웨이파크로 돌아가 캔자스시티, 오클랜드, 휴스턴 등과 홈 10연전을 치른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다. 무작정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동백섬이 선연하게 보이는 해운대는 싫었다. 대신 자갈치 아지매가 손짓하는 ‘남포동’과 부산 속 작은 섬인 ‘영도’를 단 하루 만에 돌았다. 화통한 남포동 꼬불꼬불 미로엔 ‘없는 게 없다’ 부산에 몇 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도 ‘부산 가이드북’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종종 허풍을 떤다. 그건 부산을 아끼고 좋아하는 내 마음의 표현법이었다. 누군가 부산 여행을 도와 달라 손을 내밀기라도 하면, 나는 넓은 오지랖을 쫙 펴곤 여행 멘토를 자처했다. 부산 초보자의 단골 질문 중 하나는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멀어?”다. 멀다.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지하철을 타면 최소 45분이 걸린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해운대에선 맨얼굴의 부산을 느낄 수 없다. ‘짠’하고 ‘찐’한 부산을 만나고 싶다면, 부산역에서 신평행 1호선 지하철을 타면 된다.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5분이면 남포역과 자갈치역에 도착한다. 큰 도로를 중앙에 끼고 왼쪽이 자갈치시장, 오른쪽이 남포동이니 두 역 중 어디에 내려도 무관하다. 그곳엔 “어서 오이소” 하고 두 팔을 내젓는 부산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정신없이 돌아가는 남포동엔 없는 게 없다. 먹을 것도 ‘천지 삐까리매우 많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입을 것도 ‘천지 삐까리’, 볼 것도 ‘천지 삐까리’. 남포동의 초입은 대영시네마와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마주 보고 서 있는 ‘BIFF부산국제영화제’ 광장. 광장에는 현재 영화인 48명의 손이 박제돼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베니스영화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과 배우 이자벨 위페르, 홍콩의 욘판 감독도 핸드 프린팅 대열에 합류했다. 남포동 인근의 낡은 극장에서 시작된 ‘작은 영화제’ 앞에는 이제 ‘국제’라는 호칭이 붙는다.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영화인의 손도장을 찾다 정신을 차리니 구불구불한 골목 안이었다. 얼키설키 뒤엉킨 골목은 거대한 미로 같았다. 지하철역을 등지고 남포동 BIFF광장에 서면, 앞으로 창선동 먹자골목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부평동 족발골목, 오른쪽으로 광복동 패션거리가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릇노릇한 씨앗호떡과 굵직한 부산 떡볶이가 차려진 노점상을 비집고 쭉 직진하면 ‘아리랑거리’다.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의자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분주하게 비빔당면, 국수 등을 흡입하고 있다. ‘도떼기시장, 깡통시장’ 등 다양한 별명을 자랑하는 국제시장도 아리랑거리와 멀지 않다. 1945년 해방 이후 각종 군수 물자가 시장을 통해 풀렸는데, 지금도 국제시장에선 일제, 미제 등 각종 수입품이 팔리고 있다. 왁자지껄 수다스러운 남포동을 떠나 자갈치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니, 찾아가기 참 쉽다. 오랜만에 찾은 자갈치 시장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최민식 사진작가가 그리워졌다. ‘날 것의 사진’을 고집한 그가 왜 그토록 자갈치 시장을 사랑했는지, 시장 주변을 한 바퀴만 돌면 알 수 있다. 자갈치 시장은 펄떡이는 물고기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언제나 역동적이다. “회 한 접시 먹으소.” 권하는 호객행위도 여기선 거추장스럽지 않고 정겹다. 자갈치 시장 뒤편에선 영도다리가 훤히 보였다. 1 자갈치시장에선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장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길이 분주하다 2 신신한 해산물이 가득한 시장 남포동 길거리 음식 트로이카 씨앗호떡 BIFF광장엔 긴 줄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단 하나. 씨앗호떡을 먹기 위해서다. 기름이 흥건하게 둘린 판 위에 찹쌀 반죽을 떨어뜨리면 금세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른다. 호떡의 가운데를 가위로 쭉! 그 속으로 땅콩, 해바라기 씨 등의 견과류가 두둑하게 들어간다. 뜨끈뜨끈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한 찹쌀이 입 안에 엉겨 붙고 견과류가 오도독 씹힌다. 위치 부산시 중구 남포동 5가 BIFF광장 일대 가격 900~1,000원 비빔당면 국수만 비벼 먹는 건 아니다. 새하얀 당면도 부산에서는 새빨간 양념 옷을 입는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거창하지 않다. 면과 양념장을 분주하게 섞은 뒤 토핑으로 올라온 김치, 시금치를 곁들여 젓가락질 하면 된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2,000원 충무김밥 속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김밥’과 함께 부추 김치, 무 김치, 오징어 무침이 반찬으로 나란히 따라 나온다. 하얀 종이가 깔린 쟁반 위로 검정, 빨강의 조화는 참 곱다. 정신없이 김밥 하나, 반찬 하나를 떠 먹는 동안, 할머니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징어는 남기지 말고 다 챙겨 무래이, 안 그럼 혼낸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3,000원 영도등대는 태종대 여행의 메인요리다 ©나명선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수줍은 영도 한 맺힌 다리 너머, 외로운 섬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화자는 영도다리를 서성이는 어느 사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흥남부두에서 누이 금순이의 손을 놓친 오라비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 걸린 외로운 초승달을 보며 흐느꼈을 것이다. 어디 금순이와 금순이의 오라비만 헤어졌을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피란민들은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간절한 주문을 외웠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잔인한 약속은 마음의 덫이었다. 희망고문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영도다리를 서성거렸다. 오늘은 오려나, 내일은 오려나…. 자갈치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피란민의 애끓는 애환이 덕지덕지 붙은 영도다리를 건넜다. 그림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말절영도·絶影島이 살았다는 섬이 바로 영도다. 실제 신라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선 말이 자랐다고 한다. 신석기 사람들에게도 영도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신석기 유적인 ‘동삼동 패총’은 영도의 역사를 말해 준다. 국립 해양대학교 입구에 들어선 동삼동 패총 박물관에 바로 그 ‘패총’이 잠들어 있다. 먼 길을 온 여행자가 영도까지 찾아드는 이유는 뻔하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곤 했다는 ‘태종대’가 영도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던 버스가 태종대에서 멈췄다. 나는 태종대와 무려 세 번이나 만났다. 자갈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직접 싼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 태종대 축제에서 반딧불이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太宗臺태종대’라 쓰여 있는 묵직한 대형 돌덩이도 그대로였고, ‘다누비’ 열차도 여전히 손님을 태우고 씽씽 달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경사를 따라 쭉쭉 뻗은 나무가 조성돼 있고 그 사이사이로 살짝살짝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여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던 바다는 남항 조망지에서 인심을 썼다. 부산의 대표 항구인 남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항 조망지’는 야경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남항 조망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태종대 최고의 명당인 전망대와 영도등대가 나오니까. 전망대엔 두 아이를 끌어안은 모자상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로 나가면 모자상의 비밀이 풀린다. 고개를 빼꼼 내밀자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바위와 자살바위가 양쪽으로 보였다. 모자상을 세운 건 다 자살바위 때문이다. 한때 한 해 평균 30명이 자살바위 인근에서 목숨을 끊었는데, 신기하게도 모자상을 세운 뒤로는 자살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주전자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주전자섬’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내 눈을 따라다녔다. 어느 지점에서 보든 바다 위에는 주전자섬이 떠 있었다.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의 정중앙엔 주전자섬, 그 뒤로 대마도, 거제도가 나란히 서 있다. 물론 대마도와 거제도는 날씨가 쾌청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손님이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마음이 급하겠지만 영도등대는 놓쳐선 안 된다. 영도등대를 봐야 태종대를 다녀갔다고 ‘인증’할 수 있다. 1906년 설립된 영도등대는 벌써 100살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했다. 태종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불투명해졌다. 어느덧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도등대 위에 자리한 태종사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 다시 뭍으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를 타고 영도다리를 지나던 순간, 신기하게도 배 멀미를 느꼈다. 1 영도등대 일대는 예술이 꽃피는 문화공간이다 2 바다가 펼쳐지는 태종대 산책로에선 봄을 만끽할 수 있다 3 여행객을 태우고 씽씽 달리는 다누비 열차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www.koreatravel.or.kr 태종대 짬뽕 태종대에 도착하면 범상치 않은 중화 요릿집이 하나 버티고 있다. 이름부터 정직한 ‘태종대 짬뽕’.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이 많은 걸 보니, ‘맛집’이 분명하다. 짬뽕을 주문하면 종업원의 질문이 되돌아온다. “태종대 짬뽕 맞지예?” ‘태종대’ 세 글자에 유독 힘을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이 오른 꽃게, 입을 살짝 벌린 홍합, 도톰한 오징어 등…. 국물을 한 입 떠 먹으면 “살아있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주말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3시에도 손님이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후루룩 먹고 일어나는 건 암묵적인 예의다. 찾기도 쉽다. 버스 정류장에서 태종대 입구 쪽으로 걸어가면 왼편으로 식당이 보인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동삼 2동 986-9 문의 051-405-2992 대표메뉴 일반 짬뽕 4,500원, 태종대 짬뽕 6,000원, 태종대 짜장 5,500원, 하얀 짬뽕 6,000원 ▶travie info 추천 여행사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면 약 3시간. 비싼 기차 비용을 들여서 내려갔건만, 초행길이라 헤매면 곤란하다. 더구나 주말이면 부산행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도권 거주자라면 열차 티켓부터 현지 이동까지 도와주는 여행사의 힘을 빌려도 좋다. 기차 상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홍익여행사는 다양한 부산 여행 상품을 갖추고 있다. 상품가격도 KTX 왕복 비용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 저렴한 편이다. 문의 홍익여행사 www.ktxtour.co.kr 02-717-1002 태종대 탐방 코스 태종대를 돌아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걷기, 다누비 탑승, 유람선 탑승. 이중에서 4.3km의 순환도로를 운행하는 열차 ‘다누비’를 타면 태종대 관광은 훨씬 편하다. 단, 주말이면 탑승객이 워낙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 주요 코스 광장 승차장→태원자갈마당→구명사→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정문 입구 하차장 탑승료 1,500원 부산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9번 출구, 시내버스 88번, 101번 남포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6번 출구, 시내버스 8번, 30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中 노동교화소, 사지 뜯기는 고문”

    악명 높은 중국 노동교화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문과 무자비한 구타 등 인권 침해 참상이 폭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마산자(馬三家) 여성노동교화소 구금자들이 지난 2월 출소한 한 여성을 통해 교화소 내부의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하며 노동교화 제도의 폐지를 촉구했다고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인터넷포털 인민망 등이 9일 보도했다. 랴오닝성 당국이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사는 이날 오후 모두 삭제됐다. 이들이 폭로한 내용은 끔찍했다. 일상적으로 폭행이 자행되고 있으며 전기고문과 사지를 잡아당기는 고문 등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 한 여성 출소자가 이 같은 참상을 담은 편지를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숨겨 빼낸 뒤 다른 구금 여성의 남편에게 전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외부에 공개됐다. 편지에는 “교화소 측이 정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자 며칠간 폭행을 가해 얼굴과 머리가 온통 검게 멍들었다. 수갑으로 양 손목이 침대 난간에 묶인 채 몸이 눌리는 고문을 6시간가량 당해 팔이 빠지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DB를 열다] 1962년 한강인도교 자살방지 안내판

    [DB를 열다] 1962년 한강인도교 자살방지 안내판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시골에 사는 젊은 처자가 당산나무에 목을 매 죽었더라도 쉬쉬하면서 넘어갔겠지만, 도시의 특정 장소에서 자살 사건이 지속되고 나서는 언론에도 흔한 기사의 소재가 되었다. 특정 장소란 바로 다리가 놓인 한강과 같은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강에 인도교와 철로가 놓여 쉽게 물로 뛰어내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자 자살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했다. 생활고, 가정불화, 질병, 치정 관계, 취업난 등 자살의 원인도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먹일 것이 없는데 젖먹이가 배가 고파 보챈다고 엄마가 죽고, 시어머니의 학대를 못 이긴 며느리가 몸을 던지고, 실연한 청년이 배를 타고 놀다가 갑자기 강물에 뛰어들었다. 1923년에는 투신이 계속되자 다리에 전등을 설치하고 난간에는 철망을 치는 한편 망보는 사람도 두기로 했다는 기사가 있다. 1930년에 한강에 투신자살한 사람이 55명이나 되었다. 1950, 60년대에는 전후에 궁박한 삶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의 투신 사건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62년 6월부터 7월 20일까지 짧은 기간에 한강에 투신했거나 하려 한 사람이 113명이 됐다고 하니 엄청난 숫자다. 한강인도교 주변에는 자살방지상담소 직원들이 상주하며 자살 기도자들을 설득하고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활동을 했다. 한편으로 사진과 같이 ‘잠깐만 참으라’고 설득하는 팻말도 세워 놓았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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