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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하며 해외여행 즐긴다/IMF시대 경비절약형 여행프로 인기

    ◎와우­우프 2종류 상품… 대학생·명퇴자 등 몰려/현지 농장 일손 도와주고 급여·숙식 제공 받아 IMF시대를 맞아 경비절약형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데다 어학습득도 할 수 있고 색다른 경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들 프로그램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학생,휴학생 등 학생층이 대부분 이용했으나 올 들어서는 명예퇴직자는 물론 장기무급휴직자,취업이 안된 대졸자 등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상품은 농장에서 일손을 도와주고 대신 숙박 및 식사를 제공받는 것과 숙식 대신 급여를 받는 2종류가 있다. 여행춘추(508­3933)는 뉴질랜드 관광국의 후원아래 뉴질랜드 농장에서 하루 4∼6시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와우(WOW)라는 프로그램을 1백26만원에 판매하고 있다.체류기간은 3개월이 기본이며 두번 연장이 가능,최장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다.우프코리아(733­3313)는 호주,카나다,뉴질랜드에서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우프(WWOOF)를 실시하고 있다.와우가 여행사에서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것과는 달리 우프는 본인이 직접 안내책자를 보고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경비는 우프 가입비 6만원에 뉴질랜드,호주가 1백36만원이다. 워킹 홀리데이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취업,숙식은 본인이 해결하고 대신 시간당 8∼10달러의 급여를 받는 것이다.호주,캐나다가 비자를 발급해 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700명으로 제한돼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모두 영어회화가 가능해야 이용할 수 있다. 여행춘추의 정동창 대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용자가 학생층이 주류였으나 올해부터는 대학생과 실직자들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며 주 5일 근무인데다 일하는 시간도 적어 남은 시간은 여행 또는 골프,승마,카약,낚시 등 레저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레저생활이 가능한 것은 농장주변에 레포츠시설이 풍부,교통수단만 있으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여 대신 숙식이 제공되는 와우 또는 우프의 경우 노동강도도 그리 높지 않다.울타리치기,우유짜기 등의 간단한 작업이 대부분이며 규정된 시간을넘어 일을 해야 할 경우에는 웃돈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숙박 및 식사의 질도 상당한 수준이다.농장주들이 생활수준이 높은데다 부부가 지내는 경우가 많아 사람을 그리워 하기 때문이다.
  • 낚시터 주인 납치 1억여원 빼앗아/5명 영장

    【안산=金丙哲 기자】 경기도 안산경찰서는 19일 생활비 마련을 위해 낚시터 주인을 납치,1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李정태(38·시흥시 신천동),全창수씨(22·대전시 중구 태평동) 등 5명을 강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李씨 등은 지난 1일 0시30분쯤 시흥시 월곶동 H주유소 앞길에서 귀가하던 高모씨(37·낚시터 운영·시흥시 월곶동)의 승용차를 가로막고 흉기 등으로 위협,高씨를 납치했다. 이들은 이어 高씨를 15시간여 동안 자신들의 승용차로 끌고 다니며 현금과 가계수표 등 1억2백70여만원 상당을 빼앗은 혐의다.李씨 등은 高씨의 현금카드로 백화점 등지에서 물품을 구입했다가 매출전표에 찍힌 지문을 추적한 경찰에 붙잡혔다.
  • 소설가 金周榮(이세기의 인물탐구:168)

    ◎날로 확대­심화해온 소설세계/봇짐장수 삶 그린 ‘객주’ 5년간 본지에 연재 호평/대작 ‘임꺽쩡’ 등에 비견되는 역사소설 주로 집필 180센티의 큰키에 언제나 말이 없고 진실한 이미지가 작가 金周榮의 모습이다. 그와 절친한 소설가 이문구에 의하면 그는 ‘어진 사람’‘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며 ‘교통순경과 방범대원을 구별하지 못할만큼’ 아는 것은 알지만 모르는 분야는 깜깜하다. 그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작품세계의 확대(擴大)와 심화(深化)를 끊임없이 이룩해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분단소설의 지평을 개척하는가하면 성장소설의 아름다움과 민중적 역사소설의 높은 봉우리를 역력(歷歷)하게 정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소리가 메아리져 돌아오는 생의(生意)의 소설’을 쓰고 있다. ○분단소설 지평 개척 그의 초기소설은 주로 ‘상경한 촌놈이 겪는 도시의 세상물정’이 주류를 이룬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타관의 물을 먹고나면 진솔하고 소박한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이해타산과 세파에 시달려 속된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이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각을 지켰다. 이러한 풍자는 단편소설에서는 ‘경쾌한 속도감, 재치의 반전으로 소설적 재미를 가속화시키는 반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구성의 묘(妙)로써 문학적 향기’를 뿜어내고 장편소설에서는 ‘걸쭉한 입담과 해박한 풍물묘사에 의존한 특유의 지구력으로 수준높은 세태풍속’을 그려나간다.그중에서도 그가 유년의 시골장터에서 목격한 봇짐장수들의 고달프고 강인한 삶을 그린 ‘객주(客主)’는 79년부터 5년간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근현대 역사소설의 빛나는 업적들인 ‘임꺽정’과 ‘장길산’ 등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 무렵의 그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갖춘 취재가방을 둘러메고 장이 서는곳마다 찾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채집한 언어들로 문학적 생동감을 소설속에 되살려내고 있다. 그와 한평생을 어울려 지낸 소설가 이문구는 김주영이 소설을 쓰기 위해 깨알같이 메모해둔 노트를 보고 ‘이것은 피다.이것은 피를 흘리는 김주영의 모세혈관(毛細血管)’이라고 쓴적이 있다.그의 문학생활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89년의 ‘절필선언’을 들수 있다. 정상을 달리던 한 중견작가가 갑자기 ‘절필’을 선언하고 일간신문연재를 중단해버리자 문단은 온통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평론가 정현기와의 한 대담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소설을 돌아볼때 ‘동어반복(同語反復)이 너무 심하다는 것’, 근 10년동안 줄기차게 신문연재에 매달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상업적 측면에 침식되어가고 있다’는 경각심과 신문소설이 요구하는 반문학적 요소들이 ‘자신의 문학적 성채(城砦)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마침내 절박감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백하고 있다. ○상업성 우려 89년 절필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자신에게 가하는 나의 검증’이며 ‘비평가들의 비판이나 상찬이나 독자의 갈채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 글쓰기의 경험으로 독자를 교묘하게 속일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원고료와 인세가 나의 생활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야한다. 그럴수는 없다’는 절규가 그것이다. 그의 이러한 선언은 문학하는 이들의 양심에 칼날이 되어 타성적인 문학행위에 충격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껑충한 허우대와 맑고 박(撲)한 성정, 씩씩한 소년티를 벗지못한 소탈한 모습’에서 ‘눈크고 키큰 용량만큼이나 외로운 자기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천부적 질박함이 그의 문학적 원형질’임을 실감할수 있게 했다. 그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배고프고 외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군청에 다니던 金海允씨의 2남1녀중 장남. 가난과 더불어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려왔고 ‘이틀돌이’로 품앗이를 다니는 어머니를 동구밖에서 기다리는 핍색(逼塞)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청소년기는 ‘길가의 잡초’였고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간직한채 16살때 대구로 와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일삼으며 대구 농림고를 졸업, 다시 서울에 올라와 친구집에 기식한채 서라벌예대에 입학하자 서정주 박목월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문학의 앞길에 서조(瑞兆)가 비치는 듯했다.그러나 박목월씨로부터 ‘시보다는 소설’을 쓸것을 권유받았고 이후10년간은 연고지가 아닌 안동에 내려가 엽연초생산조합에 취직하고 있었다.가족은 고향에서 유년기를 함께 보낸 부인 金震得씨와의 사이에 3남2녀. ○단편 ‘휴면기’로 등단 조직이란 사회에 일단 자신을 내던지게 되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그는 ‘중뿔나게 아는체도 고독한체도 하지 않았고 무사하게 살아남기 위해 대세를 따르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가슴에 응어리가 쌓이는 바람에 자기자신을 술자리로 데리고 갈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이 시기에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자기학대는 결국 ‘문학에 대한 끊이지않는 욕구’때문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71년, 단편 ‘휴면기(休眠期)’로 문단에 등단하자 ‘숨결이 야무지게 살아있는 언어’‘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일정한 밀도를 유지하는 문장력’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취미는 낚시에다 절륜의 술실력.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 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노래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그는 전9권에서 5권의 역사소설전집만을 주로 내다가 최근 한 10년만에 한권짜리 장편소설인 ‘홍어’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중견작가의 빛나는 감수성으로 눈이 시릴 정도의 박꽃같은 순백한 사랑을 순정미학(純正美學)의 진수(眞髓)로 그려낸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긴 도정을 지나 그는 그의 삶의 결핍된 부분들을 인간적 정서와 무르익은 인간미로 채우는 시기다. 결국 그의 문학은 우여곡절을 지나 정상에 오르게 되었고 문학에 대한 심한 갈등과 의혹과 고뇌를 되풀이하는 어쩔수없는 작가의 자세를 지킨다. 그는 처음에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더니 오늘도 여일하게 진실한, 이 시대 ‘대기거영(大器巨影)’의 얼굴이다. □연보 ▲1972년 소설 ‘휴면기(休眠期)’(월간문학)로 등단 ▲1976년 경향신문에 첫장편소설 ‘목마위의 여자’ 연재 ▲1979년부터 서울신문에 ‘객주(客主)’연재 ▲1983년부터 중앙일보에 ‘활빈도(活貧盜)’ 연재 ▲1988년 한국일보에 ‘화척(禾尺) 7년 계약, ‘중국기행’연재 ▲1991년 동아일보에 ‘야정(野丁)’ 연재 ▲1995년 서울신문에 아프리카기행 연재 장편소설 ‘객주’ 전9권 (81년 창작과 비평사) ‘아들의 겨울’(82년 전예원) ‘천둥소리’(86년 민음사) ‘활빈도’ 전3권(87년 중앙일보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88년 민음사) ‘외설 춘향전’(94년민음사) ‘화척’ 전5권 (95년 문이당) ‘야정’ 전5권(96년 문학과 지성사) ‘홍어’(98년 문이당)출간, 단편집 ‘겨울새’(83년 민음사) ‘새를 찾아서’(87년 도서출판 나남)등 소설문학상(82년) 유주현문학상(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3년) 이산문학상(96년)
  • 종묘 蒼葉門의 숨은 뜻(秘錄 南柯夢:8)

    ◎高宗 “하늘에 빌면 王朝운수 늘까”/高宗이 정환덕에게 묻기를 “蒼자는 분명 二十八君이고 葉자 또한 二十八世 뜻 하는데 운수가 과연 글자 뜻과 같겠는가” 정환덕의 입궐시각은 고종황제의 기상에 맞춘 매일 낮12시.황제가 일어나면 잠시 문안을 드린뒤 오후 내내 물러나 있다가 초저녁부터 다시 임금곁을 지켰다.새벽녘에야 황제가 잠자리에 들었으므로 장장 12시간의 밤노동이었다. “광무 6년 11월 시종원(侍從院) 시종으로 임명한다는 칙명(勅命)을 받았다. 매일 낮 12시경 대궐(덕수궁)에 입궐하여 편전(便殿=함녕전)에 나가 대기하게 되었다.침소에서 나오신 황제는 잠시 안부를 물으시고 다시 침소에 드셨고 초저녁이 되어서야 완전히 일어나시는 것이었다.황제는 대궐의 종소리가울리는 밤 11시까지 집무를 보시다가 다시 침소에 드셨는데 반드시 나와 봉시(奉侍)내관을 불러 곁에서 지켜보도록 일렀다.황제는 한시간쯤 눈을 붙이신 뒤 다시 일어나 일을 보시는데,날이 밝기를 기다려서야 지밀(至密=내전)에 드신다.침소에 드신 뒤에는 겹겹으로 된 문이 굳게 닫혔다.” 고종 황제는 이처럼 불면증으로 낮과 밤을 뒤집어 생활했는데 그 때문에책을 많이 읽어 군왕에게 꼭 필요한 역사와 보학(譜學=족보학)에 통달하였다.그래서 어디의 아무개 하면 누구의 자손이란 것을 훤히 알고 있었다.사람을 잘 써야 좋은 임금이란 것은 고금을 막론한 진리다.사람 잘못 써서 망한 분이 최근에도 있지 않은가. “황제께서 눈을 뜨시면 먼저 관보(官報)와 천금록(千金錄·성균관의 선비명단인 靑衿錄의 잘못인 듯)을 올려드렸고 황제는 이를 세세히 읽으셨다.황제께서는 우리나라 선정(先正=선현)을 비롯하여 충렬,공훈,문장,명필,문무의 집안 사적에 대해 자세히 통달하고 계셨다.” 그래서 이규찬이 처음 정환덕을 소개했을 때 고종은 어디사는 누구인지를 물었고,이규찬은 그의 선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고려 명신 鄭襲明 후손” “황상께서 ‘그 사람이 어느 지방에 살고 있고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인고’고 물으셨다.이규찬은 ‘원래 거주지는 경상도 영양군이고 현재 거주지는 충청도 황간고을인데고려때 명신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이라고 합니다.단종조에 문과 중시에 합격하여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한 정종소(鄭從昭)의 12세손이고 임진왜란때 의병을 주창한 공신으로 영천과 경주 두 고을을 수복하고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황해도지방의 현령을 지냈고 병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바 있는 의병장 정세아(鄭世雅)의 10세손이라고 합니다.그리고 효종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좌랑 진주목사를 역임했으며 대구부의 청호서원(淸湖書院)에 배향된정호인(鄭好仁)의 8세손입니다.경상도 관찰사 송인명(宋寅明)의 특별추천으로 사릉(思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은 정시건(鄭時愆)의 7세손인 정환덕이라고 합니다’고 아뢰었다.” 정습명은 고려때 김부식과 더불어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이 컸고,임진왜란때의 의병장 정세아는 영월 환고사에 배향되어 있다.그러니 고종은 안심하고 정환덕을 임명하기로 한 것이다.그러나 고종은 다시 정환덕에게 물었다. “황상께서는 ‘나이는 몇이나 되었는고’하고 물으셨다.‘40이오나 백두(白頭)이옵니다.한번도 벼슬을 한 바 없으니 천안(天顔=임금의 얼굴)을 우러러 뵙는 것만으로도 더이상 바람이 없사옵니다’고 하자 ‘그러면 너의 나이가 40이나 되도록 벼슬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고 되물으셨다.‘그동안 공부만 하였사옵니다.그러다가 늦었사옵는데 누구나 때가 있고 운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어찌 벼슬에 이르고 늦음이 있겠사옵니까.옛날 중국의 풍당(馮唐)은 한문제(漢文帝)의 부름을 받기까지 늙도록 벼슬하지 않았고,낚시꾼으로 유명한 강태공(姜太公)도 나이 80에 주문왕(周文王)에게 등용되었습니다.우리나라에서도 나이 70에 비로소 벼슬한 사람이 있고,또 어떤 분은 80에 출세하였으니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빠르고늦고 하는 것은 벼슬하는데 상관이 없는 줄로 압니다’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뒤 고종은 내심 정환덕을 믿을만한 신하로 단정하였고,이어마지막 시험문제(?)를 냈다.즉 산에서 여러해 수학(數學=역학)을 했다니 얼마나 아는지 들어보자면서조선왕조의 운명에 대해 물었다.이것은 여간 큰학자가 아니고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상이 또 묻기를 ‘갑오경장 이후로 국가의 운명이 점점 위급하고 어려워져 재이(災異)가 거듭 일어났다.또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는 무리와 풍속을 무너뜨리는 자들이 조정과 민간에 가득차 임금은 임금노릇을 못하고 신하는 신하노릇을 못하고 아비는 아비노릇을 못하고 자식은 자식노릇을 못하게 되었다.흉역의 무리가 계속 일어나 거의 평안하고 안정된 때가 없었다.만약 이같이 타성에 젖어 시간만 보내다보면 국사가 어떤 지경에 이를지 알지못하겠다.당초 태조가 한양에 터를 잡을 때 500년으로 왕조의 운명을 삼아종묘의 문에 창엽(蒼葉)으로 현판을 써서 걸었다.창(蒼)이라는 글자는 분명히 이십팔군(二十八君)이고 엽(葉)이라는 글자도 또한 이십팔세(二十八世)를 뜻하는데 운수가 과연 그와 같은가’라고 하셨다.” 종묘 문의 창엽이라는 글자는 정도전이 쓴 것이라 전하며 창(蒼)자의 초두는 쌍십자로 20이란 뜻이요,그 밑에 여덟팔(八)자와 임금군(君)자가 붙어 있으니 28대라는 뜻이고 엽자 또한 초두 쌍십자에 인간세(世) 그리고 나무목(木 )자에 여덟팔자가 들어 있어 28세로 읽을 수 있다.정도전이 어쩌면 그렇게도 조선왕조의 운명을 알아맞혔는지 모두 탄복하고 있다. ○고종의 在位연수 맞혀 “엎드려 아뢰기를 ‘예로부터 국가의 운수는 길고 멀며 짧고 촉박한 것이 정해진 수(=천재지변)가 없는 것은 아니나 또한 국가가 다스려지느냐 다스려지지 않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약 폐하께서 나라를 잘 다스리시면 500년 뿐아니라 1천년도 더 갈 수가 있고 1만년도 가할 것입니다만 잘못 다스리시면 아침에 얻었다가 저녁에 잃을 수도 있겠습니다.신의 얕은 생각으로는 대개 추측한 운수는 폐하 이후로부터 11제(帝)의 운입니다.폐하에게 앞으로 주어진 재위 연수는 정유 원년(1897년) 이후 11년으로 그쳤으니 이 수는 피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황상께서 ‘그렇다면 혹 하늘에 빌어서라도 그 수를 늘리는 법이 없는가’고 말씀하심에 ‘인재를 얻으면 번창해지고 인재를잃으면 좋지 않게 됩니다.이밖에는 특별히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이에 상께서 다시‘너는 나가서 자세히 수를 추산하여 다시 아뢰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현릉참봉(顯陵參奉)이 비어 있는데 정환덕을 임명한다는 글을 써서 궁내부에 내려주셨다.임금의 은혜에 대한 감격은 다 말씀드리기 어려웠다.다만 임금을 향하여 사배(四拜)를 하고 그 은혜에 사례하고 물러 나왔다.” 실제 고종은 일제의 강압으로 1907년 정미(丁未)년에 양위하게 되었으니 정환덕이 그것을 꼭 집어 맞혔던 것이다.
  • 한국신발명연구소 申錫均 소장(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3)

    ◎달러 위폐감식기 등 4,000여개 발명/특허·실용신안건 700건… ‘韓國의 에디슨’/국제발명상도 89회 수상,기네스북에 올라 ‘일흔살의 청년’.申錫均 한국신발명연구소장을 주변에선 이렇게 부른다.내년이면 벌써 고희(古稀).그를 나이대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한창 나이의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요즘도 하루 한 건씩 발명을 하고 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양복 안주머니에 신주 모시듯 항상 품고 다니는 ‘발명수첩’에 다 들어 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이 수첩에는 깨알같은 글씨와 복잡한 그림들이 빼곡히차 있다.매일 매일 쓰는 일종의 ‘발명일기’.러시아어,영어,일어,독어로 음과 뜻을 뒤섞어 써 놓았기 때문에 申소장말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5세때 ‘자전거 우산’ 발명 이렇게 해서 그가 지금까지 발명한 것만 4천개가 넘는다.이 가운데 특허나 실용신안권을 따낸 것만 700여건.국제발명상도 89번이나 받아 이 부문 세계 최다(最多) 기록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세계천재회의 주최 발명대회에서는 87년에서 90년까지 4년 내리 금메달을 땄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한국의 에디슨’이다.사실 어려서부터 발명에 천재성을 보인 점에서 그는 에디슨과 닮았다.첫 발명품을 내놓은 것이 겨우 다섯살 때.대부분의 발명이 그렇듯 ‘필요’의 산물이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자전거를 탈수 없게 된 꼬마는 고민에 빠졌다.우산을 손에 들고 자전거를 타자니 너무 불편했다.궁여지책으로 우선 자전거핸들에 우산대를 붙잡아맸다.일단 비는 피하게 됐지만 이번엔 우산때문에 앞을 볼수가 없었다.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우산을 조금 찢어 투명 셀로판지로 창을 내는 방법.이렇게 하자 고민은 순식간에 풀렸다. 발명가 申소장의 천부적인 소질을 보여주는 이 얘기는 91∼96년 초등학교 5학년 사회탐구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의 발명품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을 받았다는 점. 야구장이나 낚시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모자에 쏙 들어가는 소형 솔라셀(Solar Cell) 라디오가 대표적인 작품이다.당시 스위스에서 출간되는 불어신문 ‘라 쉬스’(La Suisse)는 이런 기발한 발명을 한 한국인 발명가의 인터뷰 기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입체투시기’도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스테레오 렌즈’를 이용,평면사진을 입체로 볼 수 있게 만든 것으로 82년 7월 권위있는 영국의 과학전문잡지 ‘포퓰러 사이언스’에 자세히 소개됐다. 이런 그의 발명품은 사물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으로 만들어진다.‘위조지폐 만능감식기’가 좋은 예이다. 申소장은 은행에서 달러를 바꿀 때 은행원들이 일일이 위폐감식기로 확인하는 것을 보고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며 쓸 수 있는 위폐감식기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당시 쓰던 감식기를 수집해 뜯어 보고 성능을 분석하기를 수백차례.결국 연구를 시작한 지 11년만에야 열매를 맺었다. ○‘공해환경 특별상’ 수상 그가 만든 담배갑 절반 크기의 위폐감식기는 지폐안의 특수화학물질을 읽어내는 원리.진짜돈이면 불빛이 들어오면서 ‘삐’소리가 나고 가짜돈이면 아무런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발명으로 90년 스위스 제네바대회에서 금상을 받는다. 요즘은 점점 크기를 줄여 나가 궁극적으로 볼펜형으로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거창한 발명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그가 만든 아주 간단한 발명품한 가지는 ‘화장지의 인출 안전장치’다. 상자 모양의 화장지는 두장씩 나오면 불편하다.마지막 몇장이 상자안에 남아 있어도 골치.이전에는 또 곽화장지에는 비닐이 붙어 있었다. 申소장이 새로 만든 것은 비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화장지통의 윗덮개종이부분만 톱니모양으로 잘라 낸 것.거기에 화장지가 물리면서 한 장씩 쏙쏙 뽑힌다. 비닐을 붙이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으니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고 환경공해도 막을 수 있었다.9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국제발명신기술전시회에서 공해환경분야의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발명가답게 申소장은 발명가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발명의 역사입니다.첨성대나 망원경이 없었다면 천문학자가 무슨 수로 별을 관측했겠습니까? 타이머가 없었다면 스포츠경기에서 정확한 기록을 재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겠지요” 하지만 발명가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국내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과학,기술은 이미 오래전 대중화한 반면 발명은 극히 소수만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만든 금속활자나 충무공의 거북선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우리는 누구보다도 창의력이 뛰어난 민족입니다.다만 지금까지 도덕교육에만 치중하는 탓에 그런 쪽의 발전이 더뎠을 뿐입니다” 그는 한국인의 이런 두뇌자원을 기술화,상품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스위스 하면 곧바로 시계라고 머릿속에 떠오르듯 우리만의 특성을 갖춰야 합니다.‘한국=아이디어왕국’이라는 공식이 성립됐으면 합니다” □약력 △1929년 출생. △외국어대 러시아어과 졸 △연세대 산업대학원 기계공학석사 △미국 뉴욕 유니온 유니버시티 이학박사 △한국신발명연구소 소장 △한국발명학회 회장 △국제발명가협회 고문 △3.1문화상 수상(84년)△서울올림픽경기장 수상(88년) △금탑산업훈장 수훈(92년) △국제발명상 89회 수상 △세계최다 국제발명상 수상기록으로 기네스북 등재
  • “황소개구리엔 두꺼비가 천적”/문경시,살생 전과정 촬영 공개

    ◎몸길이 20㎝ 크기 30㎝ 개구리 등에 타 앞다리로 가슴 ‘조르기’ 【문경=한찬규 기자】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를 죽이는 두꺼비가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홍대일씨(43·문경시 점촌동 67의6)는 지난 13일 낚시 도중 몸길이 20㎝ 가량의 두꺼비가 30㎝ 크기의 황소개구리의 등에 올라 타 앞다리로 가슴을 죄어 죽이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 홍씨는 “물 속에서 두꺼비가 황소개구리 등에 올라탄 채 가슴을 죄고 있는 것을 발견,물 밖으로 꺼냈으나 떨어지지 않고 황소개구리가 죽을때까지 다리를 풀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경시는 17일 현장에서 두꺼비가 황소개구리를 죽이는 과정을 촬영,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의 천적이 되는지 여부를 경북대 등에 의뢰했다.
  • 상수원 가두리 양식장 철거/2000년까지

    ◎연내 33곳 폐쇄·46곳 면허 연장 불허 앞으로 청평호나 소양호 등 상수원으로 이용되는 호소내에서는 메기 향어 송어 등 민물고기를 기르는 가두리양식업을 할 수 없게 되며 신규 허가도 전면 금지된다. 환경부는 16일 상수원 수질 보호를 위해 올해 청평호에 있는 가두리양식장 11개를 철거하는 등 2000년까지 전국 11개 호소에 있는 46개 가두리양식장을 모두 철거키로 했다고 밝혔다. 환경부 고재영 수질정책과장은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호소수질관리법에 따라 상수원으로 이용되는 호소에 대해서는 가두리양식어업 면허를 내줄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따라 올해 10년 만기의 면허 유효기한이 만료되는 33개 가두리양식장에 대해 면허를 재발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에 11개,2000년에 2개의 가두리양식장 면허를 잇따라 종료시키는 등 청평호(12개) 소양호(6개) 옥정호(전북 2개) 안동호(7개) 춘천호(3개) 화천호(7개) 괴산호(1개) 나주호(3개) 장성호(3개) 광주호(1개) 영상강(1개) 등 11개 상수원 호소에 있는 기존 46개 가두리양식장이 모두 철거된다. 고과장은 또 전남 광주지역의 주요 상수원인 주암호와 새로 조성중인 새만금호를 올해중 호소수질관리법에 의한 ‘지정호소’로 지정,축산·오폐수·하수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을 우선 확충하고 가두리양식장의 조기철거 및 신규 면허를 금지하는 등 수질보전을 위한 특별관리방안을 수립·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특히 주암호에서는 낚시가 전면 금지되며 새만금호에서는 낚시행위가 일부 제한된다.
  • ‘향응 골프’ 부활 안되게(사설)

    우리나라의 골프인구는 약 2백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한국에서 골프를 대중 스포츠라고 부른다면 아직은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 인구를 놓고 본다면 이제 골프가 귀족스포츠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그런 골프를 김영삼 정부는 유독 공무원에 대해서만 금지시켰다.물론 지난 5년간의 공무원 골프금지조치는 나름대로 공직사회 정화에 기여한 바가 컸지만 시대역행적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뜻에서 김종필 총리서리의 ‘공무원 골프 해금’발언은 공직사회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족쇄 하나를 푼 조치로 이해된다.김총리서리 말마따나 휴일에 건강을 위해 자기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사실 여가선용의 수단으로 등산과 낚시는 되고 골프는 안된다는 것은 합리적 주장이 못된다. 그럼에도 골프금지가 설득력을 발휘했던 것은 골프가 항용 부정·비리와 연계되기 쉬운 접대수단으로 이용됐기 때문일 것이다.김총리가 골프해금을 언급하면서 “향응적 성격의 골프는 곤란하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김총리의 희망처럼 공무원들이 ‘건강을 위해’‘자기분수에 맞게’ 골프를 친다면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문제는 현실이다.골프장엘 자유롭게 나가려면 우선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회원권이 있어야 한다.어디 그뿐인가.골프 한번 치려면 적어도 10만원 이상의 경비가 든다.박봉의 공무원 가운데 이 비싼 회원권을 과연 몇명이나 소유하고 있으며,또 자기 돈으로 골프를 칠 수 있는 금전적 여유를 가진 공무원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를 생각해 보자. 공무원 골프해금은 자칫 잘못하면 ‘접대골프’‘향응골프’를 부활시킬 소지가 큰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일본 검찰이 공무원 접대골프를 뇌물로 규정해 관련자를 구속한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 국제 레저·스포츠쇼 오늘 개막/6국 110업체 참가

    ◎KOEX서 14일까지 레저·스포츠관련 최신 기자재 및 신제품들이 선보이는 ‘98서울국제 레저·스포츠쇼’(SILPO98)가 11일부터 14일까지 한국종합전시장(KOEX) 1층 태평양관에서 열린다.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한국종합전시장(KOEX)이 공동주최하고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협찬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일본,대만,이탈리아,파키스탄 등 세계 6개국 110여개 업체가 출품한 레포츠용품이 매일 상오 10시부터 하오 5시까지 전시된다. 전시품목은 등산관,골프관,낚시관,수중장비관,휘트니스관으로 나뉘어 전시되며 전시기간 동안 수중사진전,암벽등반시범대회,초경량항공기전시회 등의 부대행사도 곁들여진다. 이번 전시회는 문화관광부,산업자원부,한국방송공사,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후원하고 있다.
  • 신창원 추적 사흘째 허탕

    ◎경찰 3천명 동원… 전주·완주 등 검문 강화 【전주=조승진 기자】 탈옥수 신창원(30)을 뒤쫓고 있는 전북경찰청 수사본부(본부장 전판용 전북경찰청 차장)는 7·8일 이틀동안 3천여명의 경찰력을 동원,신이 달아난 완주군 이서면 전주권 광역쓰레기매립장 인근 야산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신을 검거하지 못했다. 경찰은 헬기 3대와 군견을 동원,대대적인 수색활동을 폈으나 도주현장에서 400m쯤 떨어진 미나리꽝에서 신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오리털점퍼와 소형라디오 1대를 발견했을 뿐 신의 추가행적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경찰은 신이 출현한 지역이 김제·전주시,완주군 등 3개 시군의 접경지역인 점을 감안, 도주에 능한 신이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전주와 익산,완주군 등에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또 인근 전남·충남경찰청과 공조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신이 열흘전부터 고향부근인 김제시 금구면 금천저수지에서 낚시꾼 행세를 하며 배회했다는 주민들의 신고에 따라 가족들이나 고향친구들과 접촉여부를 캐고 있다.
  • 늑장·착각·안이… 총체적 허점/경찰 신창원 왜 놓쳤나

    ◎부랑아로 판단 착오… 신분확인도 어수룩/배낭속 권총 등 확인후 뒤늦게 발동동 경찰이 탈옥수 신창원을 다 잡았다가 또 놓쳐 경찰의 무기력한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경찰이 신을 놓친 것은 4번째.이 번에는 잠복근무 중인 형사의 검문에 걸린 신을 권총까지 쏘며 검거를 시도했으나 또 다시 실패,늑장출동,판단착오,안이한 대처 등 경찰이 할 수 있는 문제점의 결정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경찰이 주민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 5일 상오 10시쯤. 그러나 경찰은 5시간이 지난 하오 3시쯤 형사 20여명을 현장에 보내 저수지와 휴게소 일대를 탐문했으나 행적을 찾지 못했다. 신을 발견한 것은 이튿날 하오 8시15분쯤.7시부터 휴게소에서 잠복근무하던 형사 12명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신이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8명은 휴게소 밖에 기다리고 4명은 안으로 따라 들어가 신의 거동을 살폈다.하지만 신을 알아보는 형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아예 한 형사는 “저놈은 김제에서 집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미친 놈”이라고 말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판단착오까지 했다. 긴장이 풀린 형사들이 취한 행동은 휴게소를 빠져 나가는 신에게 다가가 “신분증이나 한 번 보자”고 여유를 부린 것이 고작.신은 “금구에 사는 낚시꾼”이라고 자신을 소개 한 뒤 형사들의 방심을 틈타 배낭을 벗어 던지고 전주권 광역쓰레기 매립장 쪽으로 달아났다. 이 때 까지만해도 경찰은 도망자가 탈옥수 신창원이라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몰랐다.경찰이 대어를 놓친 것을 안 것은 그가 벗어 던지고 간 배낭속에서 지난 1월11일 충남 천안에서 신에게 빼앗긴 권총을 발견하고 부터. 부랴부랴 상부에 보고하고 추가 병력을 요청하고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포위망을 구축했으나 신은 이미 포위방을 벗어난 뒤였다.
  • 뉴욕 우수 중기 수출상담회/30개사 참여 24일부터

    삼성물산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경공업제품의 수출시장 개척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5일 최근 환율인상으로 수출경쟁력이 높아진 경공업제품의 수출확대를 위해 24∼25일 이틀간 미 뉴욕에서 우수 중소기업 수출상담회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삼성물산이 중소기업을 선정하고 무공이 현지 홍보와 바이어 초청을 맡은 이번 상담회에는 장갑과 가방,낚시대,텐트,신발,골프용품,사무용품,모조장신구,안경테,주방용구 등 수출유망 경공업제품을 생산하는 우수 중소기업 30여개사가 참여할 계획이라고 삼성물산측은 설명했다. 이미 범양글러브(장갑),한백월드·천마월드(가방),에스에스광학(렌즈),대동광학(선글라스용 안경테),나눔과 베품(신발) 등 일부 품목의 중소기업은 선정을 마친 상태이며 이번 상담회를 통해 약 1억달러 이상의 상담 및 수출실적이 기대된다고 삼성물산측은 밝혔다.
  • 신축 건물 절수설비 의무화/이달부터

    ◎상수원보호구역 주민 부분 어로 허용 이달부터 모든 신축 건축물은 절수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지금까지 전면 금지돼 온 상수원보호구역내 어로행위가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환경부는 2일 이같은 내용의 수도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이 발효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모든 신축 건축물과 주택은 반드시 1회 사용수량이 8∼9리터(기존 13∼15리터)인 절수형 대변기를 설치해야 한다.2000년부터는 소변기와 샤워기,수도꼭지도 절수형을 설치해야 한다. 또 어패류의 과다번식 등에 따른 수질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이전부터 거주해온 주민들에 한해 그물과 주낙을 이용한 어로행위는 허용되나 정치망과 낚시를 사용한 어로행위는 금지된다.
  • 허저족의 어렵문화(흑룡강 7천리:23)

    ◎물고기 껍질 옷­이불 보온성 탁월/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장갑­자루 등 생활용품도 생산/4월 해빙기엔 강에 제사… 최대 명절로 지난해 12월 6일 우리는 동강시 가진구 허저족자치향(가진구혁철족자치향) 소재지인 가진구로 갔다.가진구는 동강진에서 동북으로 4.5㎞ 떨어져 있다.북으로 흑룡강을 등지고 동,남,북으로 나지막한 가진산에 둘린 분지에 오붓하게 자리잡은 가진구촌은 허저족의 어향이다. 때가 겨울이어서 아름다운 자연은 없어도 겨울풍치가 가관이었다.서남에서 흘러온 연화하가 얼어서 거울같이 햇빛을 반사하는데 수십척의 크고 작은 어선들이 얼음판과 강역 모래사장에 세워져 있다.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썰매를 타기도 하고 팽이를 치기도 했다. 연화하를 따라 산굽이를 돌아가니 일망무제한 흑룡강이 시야에 안겨왔다.강 건너는 러시아 유태인자치주의 변경도시 레닌스코야가 있다고 하지만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바로 가진구에서 0.5㎞ 강물을 거슬러오른 곳에서 흑룡강과 송화강이 합수되면서 강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결빙땐 움막지어 생활 삼강구로 불리는 합수목은 이름 그대로 무변대해다.강이 얼기 전에는 누런 색을 띠는 송화강과 검푸른 흑룡강이 합쳐지면서 신기한 보검으로 갈라놓듯 두가지 색깔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흐른다고 한다.그것이 기묘한 경관이다.합수목에서부터 강을 따라 10여㎞ 가서야 점차 물빛은 검푸른색깔로 바뀐다는 것이다. 두가지 색깔의 물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을 상상속에 떠올리면서 매운 겨울 바람이 쓸고 가는 강판을 바라보았다.강이 얼기 전에 집채같은 얼음덩이들이 밀고 밀리다가 그대로 얼어붙은 강판은 마치 가을 보습을 댄 밭처럼 우툴두툴했다.두만강,압록강 얼음위에서 스케이트를 탄다는 상식이 송화강이나 흑룡강과 같은 북방의 대하에서는 통하지를 않는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강위에서는 나무판자로 작은 집을 짓고서 겨울 물고기들을 잡고 있었다.침대 하나에 난로를 놓은 비좁은 막안 얼음에 우물구멍만큼 구멍을 뚫었는데 바로 거기로 물고기들을 잡아 올린다고 한다.겨울 물고기는 하루 50∼60근은 쉽게 잡는다고 한다.한근에15원,몇백원 벌이는 된다.흑룡강에서는 바로 이 구간에 고기가 제일 많다는 것이다.‘삼화(자라,방어,붕어)’와 ‘오라(정장어,뿔수염어,황어,숭어,가물치)’ 등 명어들 외에도 잉어,백조어,연어,붉은발도요,열목이,물개,송어 등 많은 종류의 고기가 있다.늘 철갑상어가 출몰하고 매년 백로가 지나면 바다에서 연어가 무리로 강을 거슬러온다. 가진산이 흑룡강과 부딪치며 동강이 난 벼랑바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서있었다.여름이라면 정자속에 앉아서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며 고기를 낚기에 알맞는 곳이다.오채운 여사는 정자를 가리키면서 조어대(낚시터)라고 일러주었다.개방이 되면서 여러 나라에서 낚시꾼들이 여기로 오는데 일본인들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조어대에 올랐다.수면과 10여m 높이 정자가 세워진 널따란 바위와 그 언덕에는 1천여명은 모일만한 광장이 있었다.매년 4월 강이 풀릴 때면 마을의 허저족들은 여기에서 강에 제를 지낸다.오채운여사는 말한다. “우리 민족은 강에 제를 지내는 것을 중대한 명절의식으로 안답니다.얼음이 풀리기 시작하는 날 저녁이면 사람들은 제물들을 갖추어 갖고 와서 화톳불을 피워놓고 의식을 지냅니다.우리 민족은 강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민족이랍니다.입는 것은 물고기 가죽옷이고 먹는 것도 물고기거든요.우리의 문화는 강의 문화입니다” 오채운 여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제사 때 부르는 민요 한가락을 불러주었다. “…어머니 강이여/ 우리는 대대로 그 품에서 사노라/ 수리개는 푸른 하늘을 떠날 수 없고/ 허저족은 강을 떠날 수 없네/…” 허저족들은 물고기껍질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그것으로 옷을 짓는 것은 물론 이부자리나 기타 생활용품… 허리띠,앞치마,각반,장갑,자루 등을 만들어 쓴다.물고기껍질로 만든 제품들은 보온성이 좋아 추위를 막을 수 있고 또 여름에는 살에 붙지 않아서 시원하다. 오채운 여사는 우리를 자기의 친정집으로 안내했다.그녀의 부친 오명옥(60)은 직접 손을 걷고 귀빈을 대접하는 특별한 음식 ‘타라하(탑라합)’를 만들었다. 타라하란 우리의 물고기 회와 비슷한 음식이다.오노인은 물고기 머리는 떼고 능란한 솜씨로 잉어가죽을 벗겨내고 나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따로 건사하는데 부레는 그대로 입에 넣고 씹어 먹는 것이다.그리고 칼로 통째로 고기만을 발라내고 다시 칼로 새끼손가락 마디만큼씩 간격을 두고 가로에었다.그런 다음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꼬챙이에 꿰어 들고 불에 굽기 시작했다. ○고기뼈는 공예품 만들어 겉면만 굽는데 기름기가 밖으로 내배일만 하면 된다.밖은 익고 안은익지 않은 반숙이다.구운 고기를 칼로 썰어서 상에 올렸다.마늘과 고추가루를 듬뿍 놓은 초간장에 반숙이 된 물고기 살점을 찍어서 입에 넣으니 맛이 좋다.언 가물치를 그대로 썰어서 초간장에 찍어 입에 넣으니 입안에서 고기가 사르르 녹았다. 허저족들은 물고기에서 비늘 외에는 버리는 것이 없다.서과(40)는 고기뼈로 공예품을 만들어 개인 박물관을 차린 사람이다. 허저족은 물고기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기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서양 문화와 사람이 고기가 되려고 하는 동양 문화가 고루 몸에 밴 민족이다.2천여년 전에 장자는 물고기가 되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는데 누군가 “물고기한테도 쾌락이 있을소냐”고 묻자 그는 “물고기한테 쾌락이 없음을 그대는 어찌 아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 허버트 후버(미국의 대통령 문화:12)

    ◎‘영웅’으로 취임 ‘무능’ 비난속 퇴임/29년 임기시작 7개월만에 대공황… 경제 파국/퇴임후 대외구호 활동… 부정적 이미지 씻어내 【웨스트브랜치(미아이오와주)=나윤도 특파원】 “영웅에서 희생양으로.” 미국민을 절망과 분노의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멍에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한채 백악관을 떠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재임기간을 그의 전기작가 조지 나쉬는 이같이 표현했다. 1929년 10월,그의 대통령 임기 시작 7개월만에 주가 폭락으로 비롯된 대공황은 당시 1차대전 이후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경제를 파국으로 빠트렸으며 국민들은 단임으로 물러나는 그에게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역사가들은 후버 대통령을 ‘가장 많은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다 가장 많은 비난을 받으며 퇴장한 대통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계최고 광산기사’ 명성 그러나 그는 58세로 대통령을 퇴임한 후 90세까지 살면서 30여년 동안 활발한 퇴임후 활동을 통해 대통령 당시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을 수 있었다.1차대전후 식량원조 책임자로 유럽 구호에 나섰던 전력을 살려 후버는 트루만·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대외식량원조 책임자로 발탁되어 2차대전 종전 이후 국제적 기근을 해소하고 유럽부흥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평판을 긍정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중서부 대평원 한 복판에 위치한 아이오와주 사람들은 미시시피강 서쪽에서 최초의 대통령을 배출한 주민이라는데 높은 자긍심을 갖고 있다.특히후버 대통령의 출생지인 주도 데모인 인근의 작은 시골인 웨스트브랜치 마을은 후버 도서관과 생가 등을 포함한 일대를 사적지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가로등 마다에는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출생지’라고 쓴 깃발이 자랑스럽게 펄럭이고 있다. 1874년 8월10일 웨스트브랜치 마을의 가난한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난 후버는 6세때 부친,8세때 모친의 병사로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다행히 친지들의 도움으로 성장,스탠포드대 졸업 후 광산기사가 되어 세계 40여개국을 돌아다녔다.그는 세계 최고의 광산기사로 명성이 높았으며 1898년 청황실 광산국의 수석기사로 초빙돼 만주 일대는 물론 조선,일본 등도 광범위하게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 무렵,그는 광산기술회사를 소유한 백만장자가 돼있었다.조상들의 퀘이커교 전통에 따라 근검절약이 생활화 돼있던 후버는 돈에의 집착보다는 자선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1차대전이 발발했을때 유럽내 미국인들의 구호 및 본국 송환으로 시작된 그의 본격적인 구호활동은 독일의 침공에 고립돼 있던 벨기에 구호활동으로 이어졌다.그는 어떠한 직책에서도 보수를 받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했다. ○하딩­쿨리지때 상무장관 1917년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부터 윌슨 대통령에 의해 식량청장으로 임명된 후버는 “식량은 전쟁을 이기게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연합군측 국가들에의 식량지원을 차질 없이 해냈다.이같은 탁월한 추진력으로 그는 하딩 대통령에 의해 상무장관으로 임명됐으며 후임인 쿨리지 대통령에 의해서도 그대로 상무장관에 유임,2대 8년에 걸쳐 상무장관을 역임하고 또 상무장관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는 등 많은 새로운 기록들을 세웠다. 후버가 대통령에 취임한 1929년 3월 미국의 도시들은 자동차의 물결로 덮였으며 백화잠에는 물건이 가득차는 등 국민들은 전후 최고의 소비생활을 만끽할 정도로 경제호황을 이루고 있었다.그때문에 대공황이 일어나기 불과 두달전의 연설에서도 후버는 “이제 가난은 우리사회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대공황은 갑자기 찾아왔고 후버는 사태의 심각성을 바르게 깨닫지못했다.그는 국민들에게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상품 생산과 분배는 여전히 건강한 기반위에 있다”면서 60일의 시간을 요구하며 회복시킬수 있음을 자신했다.더우기 때마침 불어닥친 세계경제 전반의 침체는 후버의 약속을 무위로 돌렸다.곧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빈곤이 미전역을 뒤덮었다. 후버에 실망한 국민들은 빈민가를 ‘후버촌’,공원벤치에서 잠자는 사람들이 덮은 신문지는 ‘후버담요’라고 부르며 후버의 실정을 비난했다.그러나 후버는 끝내 연방차원에서의 구호계획보다는 시장원리에의한 회복을 꾀했다.결국 32년의 대통령선거에서 후버는 공화당후보로 재지명을 받았으나 강력한 연방정부의 개입을 의미하는 ‘뉴딜정책’을 구호로 내세운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후버는 취임식 이틀전까지도 경제회생을 위한 정책마련에 몰두할 정도로 우직하고 충실한 대통령 이었다.그러나 국민이 자신을 믿고 따라 주리라는 그의 국민에 대한 생각은 큰 오산이었음을 깨달은채 그는 백악관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티모시 월치 후버도서관장/“재임기간 아닌 전생애 평가해야”/루즈벨트의 뉴딜 성공은 후버가 닦은 기반 덕분/야구 좋아하고 낚시즐겨 저서 12권중 낚시책도 【웨스트브랜치(미아이오와주)=나윤도 특파원】 미 대통령도서관 중 세번째로 1962년 개관된 후버도서관의 티모시 월치 관장은 대통령의 평가는 전생애에 걸쳐서 이뤄져야 한다며 대통령 재임기간 중심의 현 평가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후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인가. ▲별로 높지 않다.라이딩스의 평가에서는 42명의 역대 대통령중 24위로,다른 평가들은 더 낮다.그러나 대통령의 평가는 임기 전후의 기간까지 종합적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사실상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성공할수 있었던 기반은 후버 때에 닦여진 것이다.또 퇴임후의 활동 등을 감안할때 후버에 대한 평가는 불만족스럽다. ­후버 사적지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후버 도서관은 내셔날 아카이브(국립문서관리소)에서,박물관을 중심으로 생가,부친의 대장간,학교,교회,부부 묘소 등은 국립공원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학자들과 관람객뿐 아니라 주민들의 휴식공원으로도 개방되고 있다. ­대공황 당시 후버 정책의 실패 원인은 무엇인가. ▲상무장관을 8년 동안 역임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대공황 해결에 가장적임자 였다고 볼수 있다.그러나 후버는 단기처방 보다는 장기적 근본적 처방을 택했다.그리고 자신의 신념이었던 자유기업정신과 역동적 개인주의 신장의 대원칙 하에서 해결을 시도했던 것이다. ­후버의 개인적인 생활은 어떠했나. ▲“미국인들에게 종교 다음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야구다”라는 말을 남길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여가생활로는 낚시를 좋아해 그의 12권 저서중낚시책이 한 권 있을 정도다.
  • 김대중 당선자 고향 하의도 관광지 개발/신안군,13억 들여

    ◎인동초 재배단지 조성/해수욕장·낚시터 확충 【신안=최치봉 기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가 관광지로 개발된다. 15일 신안군에 따르면 하의도는 섬 주변에 천연해수욕장과 백사장의 송림,해당화 등 천혜의 관광자원이 많은 데도 그동안 개발여력이 없어 방치해 뒀으나 최근 관광객이 크게 늘어 관광지로 개발하기로 했다. 군은 이를 위해 올해 13억원을 들여 관광객들이 각종 편의시설을 마련키로 했다.군은 이달부터 6월까지 울창한 송림과 넓은 백사장으로 유명한 하의신지 해수욕장에 간이숙박시설과 화장실,샤워장 등 편의시설을 갖춰 하의도를 찾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낚시군들이 즐겨 찾는 피섬과 굴암지역을 낚시터로 개발하는 한편 연내에 대단위 인동초 재배단지(10㏊)를 조성키로 했다.
  • 한일 어업분쟁 현장 서일본해를 가다

    ◎일 감시선·정찰기 출동… 긴장 고조/영해침범 경계속 어선들은 조업방해/조업규모 반이상 줄어… 황금어장 썰렁 【서일본해역 무궁화20호 선상=이기철 기자】 한·일어업협정 파기이후 홋카이도(북해도)∼쓰시마(대마도)∼고도랫도(오도)에 이르는 서일본해역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양국의 어업지도선과 감시선이 자주 출몰,영해침범이나 불법어로 여부를 감시하고 양국 어민들간에 마찰이 간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상오 9시15분 일본 고도랫도 서쪽 15마일 공해상. 사천선적의 갈치 줄낚시어선 경양호(40t급)가 해무속에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내자 우리 어업지도선 무궁화 20호(500t·선장 김성수·52)와 일본 감시선 가이세이마루(해성환 500t급)가 순식간에 빙 둘러싸 대치형국이 연출됐다.곧이어 일본의 정찰기 한대가 출현,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우리 어선과 지도선 주변의 상공을 3∼4차례 선회하면서 감시의 눈을 번뜩였다. 우리 지도선은 즉각 무선으로 경양호의 피해 여부를 확인한뒤 영해침범으로 나포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남겼다.그러나 일본 감시선은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은채 망원경으로 경양호의 조업상태를 면밀히 관찰했다. 이런 가운데 어업지도선 김승련 소장(55)은 즉각 일본 감시선의 다나카 수석감독관을 콜사인으로 불러냈다. ▲김소장=전통적으로 우호적인 어업협력관계가 유지됐으나 협정파기이후 불미스럽게 됐다. ▲나카=물론이다.옛날처럼 마찰없이 잘 지내자는게 우리의 바람이다.양국의 어민들간에 트러블이 없도록 하자. ▲김소장=협정파기이후 일본 어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다나카=일본 어민들은 하루속히 좋은 관계가 회복돼 서로 웃으며 조업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처럼 양국 어민과 실무진들은 하루속히 전통적 우호협력속에 자유롭게 조업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업지도선 김선장은 “전에는 양국의 지도선과 감시선이 망망대해에서 조우하면 좋은 친구처럼 지냈는데 요즘은 왠지 서먹서먹해졌다”고 전했다. 이에앞서 6일 하오 2시15분 쓰시마 북쪽 15마일 공해상에서 만난 경남 사천선적의 연승어선 부경호(20t·선장 정병갑)와 제101영진호(20t·선장 박응현)등은 “우리 어선들은 최근들어 일본 감시선과 순시선이 자주 나타나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며 “일본 소형어선들이 우리 어구들을 찢고가는 등 마찰이 잦아 조업하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우리어선 17척이 일본에 나포됐고 어구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부산을 출발해 쓰시마를 거쳐 고도랫도에서 다시 귀항할때까지 우리 어선들의 공해상 조업광경이 간간이 눈에 뛸 뿐이었다. 이같이 불안한 평화가 계속되는 서일본해역의 공해상에는 요즘 바다가 텅 비다시피하고 있다.많을때는 우리어선 200여척이 조업했으나 요즘은 장어 오징어 갈치잡이 어선 80여척이 조업중이다. 이는 국내 기름값 인상에다 어업협정 파기가 겹친 까닭이다.그러나 서일본해역은 우리 어선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황금어장’이다.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데다 양질의 플랭크톤이 많아 고기잡이가 잘 되고 맛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영진호 박선장은 “이곳 해역에서 잡히는 갈치는 보통 길이 1m에 달해 맛도 좋아 잡히는대로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윤정식 고려호 선장/“협정 빨리 타결돼 마음껏 잡고 싶어” 지난 6일 하오 5시20분쯤 일본 쓰시마 남쪽 13.5마일 공해상에서 갈치잡이를 하던 경남 사천선적 제103 고려호를 조우했다. 투망작업중이던 윤정식 선장(47·경남 사천시 향천동 1113의 13)은 어업지도선 무궁화20호를 만나자 무척 반가워했다. ­일본 어선들과 마찰은 없었나. ▲일본 어선들이 우리 어장의 어구들을 끊고 달아나는 경우가 많아 조업에 지장이 많았다. 특히 지난해 1월이후 마찰이 잦았으나 올들어선 좀 잠잠한 편이다. ­일본 감시선들의 동향은. ▲한·일 어업협정 파기이후 일본 감시선과 순시선들이 부쩍 자주 출몰해 우리 어선들을 관찰하고 있다.때문에 상당한 긴장감속에 조업하고 있다. ­일본 당국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일본이 새롭게 배타적 경제수역이니 직선기선이니 하니까 불만이다.지난 65년이후 지금까지 조업해오던 어장에서 조업을 못하게 해 혼란스럽다.양국간에 협정이 빨리체결돼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조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마감 앞둔 얼음 낚시/짜릿한 손맛에 IMF 한파도 ‘훌훌’

    ◎저수지 가장자리 갈대·수초 있는 곳 포인트/가족들과 함께 썰매타기·얼음 축구도 묘미 얼음낚시는 낚시꾼들에겐 겨울철의 색다른 감흥이다. 두꺼운 얼음을 깨고 낚시를 드리우는 얼음낚시는 저수지 가장자리에서 즐기는 물낚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물낚시가 멀리 있는 물고기를 자신 앞으로 불러들여야 하는데 반해 얼음낚시는 물고기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서 찌를 드리운다.이에 따라 지척에서 물고기와 접해 찌올림이 시원하고 손맛도 한결 짜릿하다.얼음낚시는 또 수확도 풍성하다.물고기가 뛰노는 곳에 찌를 드리우기 때문에 대어를 낚을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다.이와 함께 얼음낚시는 가족들과 함께 즐기기에도 적격이다.얼음구멍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자녀들과 썰매를 타거나 얼음축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두껍게 얼음이 언 저수지 위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해도 겨울철 나들이 길로 부족함이 없다. 얼음낚시는 얼음 위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최소한 얼음이 6∼7㎝이상 돼야 마음놓고 낚시대를 드리울 수 있다.그러나 구멍 위로 물이 계속 올라오면 얼음낚시를 해서는 안된다. 얼음낚시는 포인트(낚시터 자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상오에는 저수지의 골자리,말풀수초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가 햇살이 퍼지면 저수지의 중상류쪽으로 이동,가장자리의 갈대나 수초를 노리는 것이 좋다. 얼음낚시는 방한장비를 갖추는 것이 필수다.방한복은 물론 모자,장갑, 얼음낚시용 신발 등을 준비해야 한다. 전국낚시연합회 문명환 이사는 얼음낚시가 가능한 곳으로 강원도의 학저수지(철원),지내저수지(춘천),반송저수지(춘천),경기도의 검단수로(김포),분오리지(강화),내가(강화),충북 칠성저수지(괴산),신항지(괴산),내곡저수지(음성),용곡저수지(보은),충남 풍전저수지(서산),삼봉저수지(당진),대호만(당진) 등을 추천했다. 한편 낚시연합회는 오는 8일 충북 괴산 신항지에서 제12회 전국얼음낚시대회를 개최한다.이번 대회는 지난달 18일 대호만에서 갖기로 했던 대회가 기상상태가 안좋아 연기된 것으로 3천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참가비는 5천원의 환경기금 포함 4만원으로 교통편과 식사가 제공된다.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낚시연합회(747­0501)나 연합회 산하 낚시회로 연락하면 된다.낚시연합회는 환경보호를 생활화하기 위해 이날 낚시터 청소를 먼저한 뒤 낚시를 하고 낚시터 오물은 전량 회수해 올 것을 결의하는 등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이고 잡은 고기는 모두 방생하기로 했다. 대상 시상기준은 붕어 크기로 하고 행운상은 잉어,가물치,메기,뱀장어순으로 정해졌다. 한편 강원도 춘천호,의암호,소양호 등에서는 빙어낚시를 즐길 수 있다.붕어 얼음낚시에 비해서는 찌가 올라오는 맛은 덜하지만 금방 잡아올린 빙어를 초장에 찍어먹는 맛은 일품이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미국의 대통령문화:10)

    ◎한국전 휴전 등 성사… ‘국제평화의 전도사’/후르시초프 방미 실현… 냉전해소 노력/동남아조약기구·IAEA창설 결정적 역할 【애빌린(미캔자스주)=나윤도 특파원】 “I like Ike”(나는 아이크를 좋아한다.)1952년 34대 미 대통령선거전에 나선 공화당 후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장군의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오직 이 한마디 였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이미 탁월한 지도력이 입증된 아이젠하워 후보를 온국민들은 풀 네임보다도 애칭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다.그리고 그들은 빨강·하양·파랑 바탕에 이 글귀가 쓰인 캠페인 뱃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다. 이같은 아이젠하워의 치솟는 국민적 인기는 일리노이 주지사 출신인 민주당 아들라이 스티븐슨 후보의 풍부한 행정력과 지식,재치,세련된 언변,화려한 공약 등을 두차례나 무용지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당선자 신분 한국전선 시찰 선거결과는 선거인단수 442대 89라는 아이젠하워의 압도적인 승리로 나타났다.더우기 공화당에 상하양원의 압승까지 안겨주어 루즈벨트­트루만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집권20년의 종지부와 함께 새로운 공화당 시대의 개막을 가져왔다. 20세기 들어 대공황­2차대전­냉전­한국전쟁의 사슬에 얽매여 한시도 긴장을 풀수 없던 미국민들은 하루빨리 정상상태로의 복귀를 열망했고 아이젠하워는 이같은 기대를 충족시켜줄 최적의 인물로 추대됐던 것이다.아이젠하워는 또 39세의 젊은 캘리포니아 출신 상원의원 리처드 닉슨을 런닝메이트로택함으로써 62세로 상대적으로 고령이던 자신의 나이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당시 선거에서 최대의 이슈는 수많은 미군 사상자를 낸채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한국전쟁의 종식과 관련된 것이었다.아이젠하워는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선거가 끝난후 당선자 신분으로 아직 포화가 멎지 않고 있던 한국전선을 방문,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였다. 취임연설에서는 “국제평화 유지를 위해 모든 국가와 협력하겠다”고 강조,평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염원에 답했다.실제로 그는 한국전쟁의 휴전을 성사시켰으며 미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반대했다.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역설,국제원자력위원회(IAEA)의 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소련과의 대화도 시도했으며 장차 군산복합체 대두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국내적으로는 방만한 정부 예산의 감축을 위해 국방비의 절감,감세,정부사업의 축소,각종 규제의 완화 등 연방정부의 활동을 대폭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갔다.그리고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대통령보좌관을 선임,그에게 상당부분의 권한을 위임하고 자신은 세세한 문제에는 관여치 않는 당파를 초월한 정치를 추구했다. 미시시피강 서부 대평원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인구3천명의 캔자스주 애빌린은 아이젠하워의 도시로 유명하다.도시 중앙에 위치한 아이젠하워센터에는 중앙에 그의 동상을 중심으로 성장기의 집과 묘소,박물관,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어 커다란 역사공원을 이루고 있다.1898년부터 46년까지 아이젠하워 패밀리가 살았던 사저는 캔자스의 평범한 시골집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센터 입구에 ‘명산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교회형태로 생긴 그의 묘소는 경건의 장소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며 박물관은 2차대전및 냉전시대의 전쟁박물관으로,도서관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8년간은 물론 그가 군사령관으로 남긴 것까지 모든 자료의 집대성을 이루고 있다.특히 아이젠하워와 맥아더가 주고받은 편지들도 보관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편지에서 아이젠하워는 맥아더를 항상 ‘장군님’이라고 존경의 호칭을 사용했고 맥아더는 ‘사랑하는 아이크’라고 적고 있는등 두사람의 인간적인 관계는 계속됐던 것으로 보인다. 대륙횡단 철도가 지나기 때문에 텍사스등지에서 동부로 수송을 위해 수백만마리의 젖소들만 몰려들던 황량한 시골마을인 이 도시는 오늘날 인구 3천명의 소도읍으로 성장했으며 아이젠하워를 키워낸 자부심에 가득차 있다. 19세기에 출생한 마지막 미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1890년 텍사스 데니슨에서 출생했으나 어려서 부친이 애빌린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초,중·고등학교를 이곳에서 다니는 등 애빌린을 실질적인 고향으로 간주해왔다.낙농업에 종사하던 부친의 사업부진으로 대학진학은 엄두에 두지도 못하던 아이젠하워는 21세때 뒤늦게 웨스트포인트에 진학,군생활을 출발하게 됐다. ○흑백차별엔 단호한 입장 1차대전때 군훈련교관을 역임하고 파나마운하 주둔군으로 활약하던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30년초 필리핀 주둔군사령관 이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부터 였다.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 이후에는 조지 마샬 참모총장에 의해 전쟁성의 태평양전략 담당관에 임명돼 탁월한 기획능력을 발휘했다.마침내 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히틀러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연합군측의 승리를 이끌어낸 그는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게 됐다. 전쟁이 끝난후 군을 떠나 콜럼비아대학 총장으로 잠시 외도한 그는 트루만 대통령에 의해 5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으로 다시 군에 복귀했다.52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을때 트루만 대통령의 불출마 선언에 따라 공화,민주 양당에서 그에게 대통령 후보를 타진해 왔으나 그는 공화당을 택했고 압승을 거두게된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재임중 사회복지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이를 담당할 보건부,교육부,복지부 등의 부서를 창설했다.특히 흑백차별 문제에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57년 아칸사스주 리틀록의 백인 고등학교에서 흑인들의 입학을 거부하고 주지사가 민병대까지 동원,이를 옹호했다.이에 대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천명의 낙하산부대를 투입,흑인학생들을 호위 등교케하고 한학기 동안 학교를 순시케 하는 등 단호히 맞서 마침내 차별론자들을 굴복시켰다. 대외정책은 존 덜레스 국무장관에게 위임시켜 행하게 했으며 동남아조약기구(SEATO),를 창설하는 등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데 크게 기여했다.또 후르시초프의 방미를 실현시키고 소련에 영공 공개와 공중 군사설비 조사에 관한협정 제안등 냉전해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젠하워는 남북전쟁의 격전지 였던 펜실바니아주 게티즈버그에 농장을 짓고 퇴임후 그림을 그리며 말년을 보냈다.오늘날 애빌린 못지 않게 게티즈버그의 아이젠하워 하우스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으며 이곳에는 링컨 워싱턴 등 인물화와 각종 풍경화 등 그가 남긴 수십점의 작품들이 진열돼 예술가대통령으로서의 푸근함 또한 느끼게 하고 있다. ◎다니엘 홀트 아이젠하워 도서관장/“정치인·군인 모두 성공적 삶”/“62년 도서관 개관… 220만점 소장 한국전쟁 관련 자료도 상당수 보관” 【애빌린(미캔자스주)=나윤도 특파원】 아이젠하워 도서관의 마틴 티즐리 관장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정치인으로서 군인으로서 두가지 생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친 훌륭한 대통령으로 국민적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대통령의 하나로 소개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센터 중앙에 있는 그의 동상에는 ‘평화의 챔피온’이라는 글귀가 써있다. 그는 전쟁에 피곤해있던 미국민들에게 평화를 심어주려 노력했다. ­도서관의 연혁및 활동은. ▲대통령 도서관으로는 네번째로 1962년 개관됐으며 초기 120점 이던 소장 자료가 이제 220만점으로 증가됐다.주로 2차대전과 관련된 것들이 많으며 400여명의 등록 학자들을 비롯 수많은 연구자들이 찾고 있다.특히 NATO 콜렉션은 미국내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한국전쟁 관련 자료도 상당수 보관돼 있다. ­지역에의 기여는 어떤 것이 있는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탄생일과 2차대전* 각종 기념일 등에 다양한 추모행사를 갖고 있으며 애빌린 주민들의 참여도는 매우 높다.특히 묘소가 있는명상의 집은 주민들의 경건의 장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국립문서보관소에서 모든 운영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민들의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로서의 참여가 없다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국민들과의 관계는. ▲TV시대가 개막될 무렵이어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들과 접촉이 많았던 대통령으로 볼수 있다.특히 그는 골프와 낚시 등 스포츠를 좋아했으며 대통령과 아놀드 파머와의 골프경기는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였다.
  • 일자리를 잃으셨나요/서울 목동에 ‘IMF 모임터’ 개설

    ◎40평 사무실에 PC·TV·각종 신문 비치/구인·구직 정보교환… 하루 이용료 3천원 “IMF한파로 일자리를 잃고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지난 5일 서울 양천구 목3동에 문을 연 ‘IMF 모임터’.3천원의 이용료만 되면 누구나 하루를 보낼 수 있다. 40여평 규모의 사무실에는 국내에서 발행되는 모든 일간지,각종 지역정보지,기업관련 자료,케이블 TV 등이 갖춰져 있다. 특히 각종 PC통신망 등을 구비해 구인·구직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사업 구상도 할 수 있도록 했다. 바둑 장기 커피자판기 등의 편의시설과 한끼에 3천원으로 점식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도 마련돼 있다. IMF 모임터를 개설한 이성희씨(36)는 “내 자신 책상과 걸상 등을 만들어 납품하는 ‘하나로 시스템’이라는 중소업체를 운영하다 지난해 5월 2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낸 뒤 다방 낚시터 극장 기원 등을 전전하며 실직자들이 마땅히 쉴 곳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면서 “실직자들의 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하루에 50여통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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