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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쉽게 눈물 보이지 마세요”

    ‘남자로부터 이런 점은 배우자’여성전용 포털사이트 마이클럽(www.miclub.com)은 10일 ‘사회생활을 할 때 여자가 남자에게 배워야할점 6가지’를 소개했다. ■눈물을 아낀다 상사에게 혼나거나 친구와의 갈등,실연때문에 자주눈물을 보이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있다.눈물은 흔하지 않을 때 강력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깨져도 허허실실 자존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회생활의 현명한 대처방법이 된다.나쁜 상황을 마음 속에 담아두지 않는 여유로움이 여성들에게도 필요하다. ■제낄 건 제낀다 만사를 제쳐놓고 스포츠나 낚시 등에 빠지는 것도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다.여성들도 일과 여가를 분리해 수영이나 등산 바둑 등 푹 빠질 수 있는 자신만의 취미를 개발하자. ■일과 사람을 분리한다 감정이 많이 소모되는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예민할 필요는 없다.일에 대해 누군가에게 핀잔을 받더라도 마음에 담아두거나 미워하지 말 것. ■남의 흉을 안본다 남자들은 가정에서 ‘수모’를 당하더라도 대외적으로 아내를 헐뜯지 않는다.그러나 여성들은 친구나 친정 식구들에게 남편 흉보느라 정신없다.자기 얼굴에 침뱉을 수도 있으니 말을 아껴야 한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힘들어도 꾹 참고 가족을 위해 버티는 남성들의 책임감과 인내심은 배울 만하다.회사를 관두고 싶다면 남성들처럼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생각해 보자. 김미경기자 chaplin7@kdaily.98com
  • 독자의 소리/ 바다에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말아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어선을 빌려 바다낚시를 갔다.잡은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나니 조리를 해준 아줌마가 고기뼈와 내장,먹다 남은 매운탕국물까지 죄다 바다에 쏟아붓는 게 아닌가. 잠시후에 ‘풍덩’소리가나기에 돌아봤더니 선장이 배에서 쓰던 휴대용 버너를 연거푸 두 개나 버리는 것이었다.너무나 어이가 없었다.“그런 걸 바다에 넣으면어떡해요”라고 했더니 별걸 다 참견한다는 투로 “고기나 잡으슈”하는 것이었다.생업의 터전으로 생명처럼 아껴야 할 바다인데,그런최소한의 고마움조차 잊고 사는 것 같았다.하루종일 씁쓸한 마음을가눌 길이 없었다. 윤창노[인천시 서구 당하동]
  • [굄돌]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일벌레처럼 일만 열심히 하고 살던 30대 중반의 후배가 한동안 소식이 뜸해 근황을 물어보니 사이버 중독에 빠졌단다. 반년 넘도록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결국은 이혼 당하고 사이버에서 알게 된 남자와 동거 중이라는 소식이다. ‘주부들의 사이버 채팅 중독’은 잡지에서나 나오는,나와는 먼 소설같더니 실제로 아는 후배가 그럴 줄이야.즐비하게 늘어선 러브호텔,온갖 야한 짓이 벌어진다는 룸살롱,대학에서마저 벌어지는 성희롱,애인 둔 유부남,남자친구 가진 유부녀….청소년이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이 문제로다.어른들이 왜 이 모양일까? 우리는 어릴 때 늘 공부에 쫓겨 맘껏 놀아 볼 기회가 없이 컸다.노는 것은 공부에 방해만 되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꾸지람을 들었다. 놀이에 굶주린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는 ‘국가 경제 건설’이라는거창한 구호 아래 모두가 소처럼 일만하도록 강요받던 시대를 지내왔다. 그러나 전혀 놀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우리는 짬짬이 틈을 내어 놀기도 했다.하지만 사장님 몰래,부인 몰래,남편 몰래,아이들 몰래 쉬쉬하며 “일하는 척 하면서” 놀아야 했다.낚시 가고 싶으면 출장 핑계를 대고, 고스톱이 치고 싶으면 직장 동료의 모친상을 둘러댔다. 부정적으로만 간주되어 오던 놀이,거짓말로 감춰오던 놀이,음성적으로만 발전한 놀이에 젖어 살아온 우리는 사실상 건전하게,떳떳하게,신나게 놀 줄을 모르고 있다.그러나 21세기는 잘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한다.개미처럼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 사람은 환영을 못 받고 베짱이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이 보고 듣고 즐기며 놀던 사람이풍부한 경험을 살려 실컷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다.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예스 맨은 찬밥 신세고 남이 시키지도 않고 생각도 못해본 일을 만들어내는 괴짜,엉뚱이,아이디어맨이 대접받는다.아이디어 시대에는 많이 놀아본 사람이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노는 것은 일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즐겁게 놀자.공개적으로 놀자.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남과 더불어 즐겁게 놀거리를 많이 만들자.가족이 함께 놀자.건전한 놀이 문화가 생기면 사이버 중독이나러브호텔도 줄지 않을까? 최성애 국제 심리·가족치료사
  • 서산농장 철새도 부도위기?

    ‘현대건설 뿐만 아니라 철새들도 살려달라’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충남 서산농장을 일반인에게 매각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철새도래지가 훼손위기를 맞고 있다. 6일 서산A·B지구로 구성된 서산농장.A지구의 간월호와 B지구의 부남호 주변에는 기러기와 두루미 등 20만여마리의 겨울철새가 먹이를찾아 떼지어 날아다니고 있다.서산A·B방조제 너머 천수만에는 수만마리의 갈매기들이 물이나 바위 등에 한가하게 앉아 있다. 해마다 이곳에는 220여종 50만마리의 철새들이 찾는다.지금도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를 비롯,흑두루미(228호),노랑부리저어새(205호) 등 희귀 철새들이 찾고 있으며 여름엔 뜸부기 등이 찾아들어 번식한다. 서산시 부석고 김현태(金賢泰·33) 교사는 “4일전 가창오리 30만마리가 전남 영암호 등 남쪽으로 날아가 겨울철새 개체수가 줄었다”며 “내년에는 이러한 장관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매각대상은 서산농장 3,122만평 가운데 3,082만평이다.이중 2,076만평은 오는 20일까지 14만∼30만평,5만∼14만평,1만∼5만평 등으로 쪼개져 일반인에 매각되고 나머지 1,006만평은 인근 어민들에게 분양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훼손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근처에 있는 당진군 대호방조제를 보면 알 수 있다.독한 농약을 마구 뿌리고 ‘싹쓸이 추수’로 철새들의 먹이감인 붕어 등 물고기와 낙곡(落穀)이 줄어든데다 밀렵 등이 성행한 이후 철새들이 거의사라졌다. 현대는 이곳을 찾는 철새들을 먹여살렸다.항공기로 씨앗을 뿌리는등 대규모 기계 영농으로 곳곳에 떨어져 있는 낟알은 철새들의 먹이가 돼왔다.또 인근 군부대와 함께 일반인의 농장출입을 통제하고 밀렵과 낚시를 제한하는 등 관리도 철저해 철새의 낙원으로 자리잡아왔다. 서산농장은 95년 정주영(鄭周永)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지로 두 담수호까지 합하면 모두 4,700만평으로 서울의4분의 1 크기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은 서산농장 매각발표 직후 성명서를 내고 “주택과 공단조성이 우려되는 토지공사에서의 매각을중지하고 농장운영을 단일화하라”며 정부의 철새보호 대책을 촉구했다. 조류학자인 공주대 조삼래(趙三來) 교수는 “정부가 담수호 주변 땅을 매입,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며 일괄관리해야 철새도래지를 보호할 수 있다”며 “담수호 가운데에 철새들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인공섬을 만드는 방안 등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산 이천열기자 sky@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4)유배지의 한 끼니

    * 제4장 유배지의 한 끼니①** 배고팠던 졸병시절 서리한 닭 통째 삶아 포식. 술자리나 동창모임 같은 자리에서 남자들끼리 모이면 가장 오랫동안끊이지 않고 길게 지속되는 얘기꺼리가 바로 군대 이야기다.군대 얘기는 대개 몇 가지로 그 특성을 집약할 수 있다.남들은 다 뭣 빠지게 고생했지만 자기는 요령과 능력을 발휘해서 ‘재미있고 편하게 군대생활을 했다’는 것이며,자기가 얼마나 운좋게 특과로 빠지게 되었는지,그래서 주로 상관과 고참을 골탕을 먹이면서 위세를 부렸다는 얘기,등등이다.얘기 끝에 꼭 덧붙이기를 요새 군대는 아저씨 고참들 말투대로 ‘빳다가 폐지되고 기합이 빠져서 할랑한’민주화가 된 데다나라가 살만하여 ‘반찬 투정’이나 할 정도로 식사도 좋아졌다고 가볍게 넘어가 버린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속사정을 알고 보면 신성한 의무라는 ‘군대’는젊은이들에게는 젊은 꿈을 유보시키고 일정기간 국가권력의 군율로족쇄를 채우는 악몽임에는 틀림없다.지나고 보면 늘 사람 사는 곳의그럴듯한 ‘인정’으로 달리 채색되어 있지 않던가. 처음에 훈련소에 가입대를 하면 비위가 약하거나 도회지에서 반찬 가려먹기를 하던 젊은이들은 한 이틀은 밥을 먹지 못한다.훈련을 받으면서 사나흘 지나자마자 꿀맛으로 변하기는 하지만.내가 군에 갔던육십년대에는 나라의 경제가 신통치 않은 때여서 부식이 정말로 형편없었다.일년 삼백육십오 일을 콩나물국만 먹었으니 오죽하면 콩나물늘어놓는 길이로 고참순을 따졌겠는가.멀건 된장에 배추오래기나 콩나물이 떠있고 두부가 가끔 나타났으며 ‘왕거니’라야 통째로 넣은꽁치가 고작이었다.그것도 취사장에서부터 유리한 부서 순서로 다시막사에 오기 전에 고참 순으로 건져져서 나중에는 꼬리나 대가리나가시만 바닥에 갈아앉아 있기 마련이었다.양념이나 간이란 것은 된장 고추장 그리고 소금이 전부였다.특히 생선이 ‘헤엄만 치고 지나간’콩나물국은 거의 소금국이었다. 훈련병 시절에는 뭐든지 뱃속으로 들어가지만 기간사병이 되어 부대에 배치 받고 반년쯤만 지나도 세 끼니의 밥을 넘기기가 곤욕스런 일이 된다. 신병이 부대에 배치 되어서 가자마자하는 일이 고참들의 식사당번인데 제일 먼저 주보에 가서 화학 조미료를 사다가 군복 윗호주머니에지참해 두어야 한다.국을 받아 오면 제일 먼저 국을 맛있게 드시라고 조미료를 적당량 털어 넣는다.자기 것은 포기하더라도 아랫것들 국속에서 건더기를 건져서 따로 반찬거리를 만든다.콩나물은 건져내어알토란 같이 아껴 쓰는 박카스 병에 담긴 참기름을 치고 관급 고추장에 비벼서 그야말로 반찬 콩나물을 만들고,두부는 건져서 간장과 참기름을 쳐서 두부 무침을 만들고 무 국은 무를 따로 건져서 고춧가루 조금 치고 간장 쳐서 무나물로 만든다.그래도 고참들은 뭔가 특식을 요구하기 마련인데 지난번 신병 아무개는 밖에서 무엇이든 조달해오던 천재였다면서 신병의 창의성 없음과 무능함을 꾸짖는다.그래서남들 다 자는 밤에는 신병들 몇몇이 짝을 지어 철조망을 넘어 부대인근의 민가로 보급투쟁을 나간다.풋고추에 감자에 오이며 호박은 기본이고 남의 장독에 가서 된장 고추장은 물론이고 겨울에는 김장 김치도 퍼 온다.재수가 좋을 때에는 멀리 있는 양계장까지 진출을 해서 닭서리도 해온다. 대개 단위 부대의 작은 막사 창고에는 사제 석유곤로나 아니면 하다못해 등산 버너라도 준비해 놓고 있어서 고참들을 위한 취사가 따로준비된다.겨울에는 높은 사람들 눈을 피해서 막사 안의 난로에서 직접 이루어지기도 한다.어떤 녀석은 자신도 먹지 못하는 특식을 끼니마다 장만하는 일에 역증이 나서 찌개를 끓여서 바치기 직전에 침을혀 끝에 동그랗게 몰아서 퇴 뱉고는 휘휘 저어서 갖다 주었다고도 한다.그래서인지 고참들은 맛있게 먹으면서 요리 솜씨가 훌륭하다고 칭찬이 자자했고. 그래도 원래의 부대에 주둔해 있을 적에는 근처의 주민들도 그러려니 하여 민원이 그리 심하지는 않은 편이지만,무슨 훈련이나 작전으로부대 이동이 생겨나서 다른 고장으로 가면 젊은 병사들도 뭔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하여 눈을 반짝이고 민간인들은 줄지어 항의하고 민원을 내기 마련이다.그렇게 단속을 하건만 한창 식욕이 왕성한 나이에 입을 봉하고 앉았을 리가 없다. 훈련을 나갔다가 어느 동기생 녀석과 함께 닭서리를 나간 적이있었다.보전협동이라고 탱크와 보병의 합동작전을 연습하던 중이라 분대단위로 이인용 텐트를 치고 야영 중이었는데 한밤중에 아랫마을로 내려갔던 것이다.우리는 낮에 그 집 앞을 지나치면서 대개의 지형지물을 관측해 두었던 터였다.어쨌든 개가 짖는 통에 여러 마리를 잡아올 틈은 없었고 내가 닭장 앞에서 망을 보는 사이에 녀석이 안으로 들어가 두 마리를 잡아 옆구리에 끼고 나왔다.닭이 꼬꼬댁 거리고 개가 요란하게 짖으니 주인이 누구요,하면서 방문을 열었고 우리는 논두렁 밭두렁에 고꾸라지고 엎어지면서도 간신히 주둔지까지 땀 투성이가 되어 기어 왔다.녀석이 잡아올 제 어찌나 세게 비틀었던지 한 마리는 목이 꺾여서 덜렁거렸고 또 하나는 아직 설 죽어서 날개를 퍼덕거렸다.나보고 처치하라는 것을 그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군화발로 지긋히 누르고 기다렸을 뿐이었다.이제 튀겨먹을 일만 남았는데 오늘 밤 안으로 처치를 하지 못하면 분명히 내일 아침에는 이동을 하거나 상관들 눈에 띨 위험이 있었다.하는 수 없이 철모를 벗어서 얼룩무늬 위장 천을 벗기고 속의 화이버도 빼내어 알철모를 만들어 물을채워서 끓이는 수 밖에 없었다.내가 준비하는 동안에 공범 녀석은 어둠 속으로 기어 다니며 소나무 마른 가지를 꺾어 왔다.먼저 불을 때서 뜨거운 물에 닭을 담가 털을 뜯고 다시 물을 끓여서 내장도 빼지않은 닭을 통째로 넣어 삶았다.물이 끓기 시작하자 아니나다를까 곁에 있던 텐트에서 구수한 냄새에 잠이 깬 분대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닭이 대충 삶아지자 우리는 그래도 보급 당사자인지라 닭다리를 맡았고 몸통이며 다른 부위들은 깨끗이 다른 녀석들에게 넘겨 주었다.소금이 없는 대신에 라면 스푸 가루에 찍어 먹는 닭다리 맛이그만이었다. 뜯어 놓았던 닭털은 증거 인멸을 위해서 텐트 안에 습기 방지로 깔아둔 판쵸 우의를 젖히고 맨땅을 파고 묻고나서 원상복구 시켜 두었다. 지금은 작고한 시인 조태일이도 군대 시절에 소대원들이 저지른 돼지 서리를 얘기한 적이 있었다.방법이 기묘해서 기억하고 있는데 릴 낚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낚시와 줄은 바다낚시용의 제일 큰 놈을 쓰는데끝에다 고구마를 끼운다고 했다.돼지우리 속으로 낚시를 던지면 당연히 제일 힘 좋고 큰 놈이 덥석 물고 우적우적 씹는다.그때 줄을 감으면 낚시가 돼지의 혀에 탁 걸린다.돼지우리 문을 열어주고 살살 당기면 돼지는 버티지도 못하고 골골골 하는 낮은 소리를 내면서 잘도 따라온다고.그날 밤 벽지의 초소에서는 난데없는 잔치가 벌어졌다는데 이튿날 일대 색출 작전이 벌어졌다고 한다.땅에 파묻었던 돼지의 네 굽이 나오는 바람에 들통이나서 전 소대원이 봉급 몰수되고 갹출까지 해서 돼지값을 물어주고도 주동자는 사단 영창살이를 했다는데. 어느 통신부대 출신의 친구는 전봇대 애자 속을 깨면 안에 노란 유황이 들었는데 닭서리에 그만이라고 한다.유황 덩어리에 불을 붙여 닭장 안으로 던져 놓으면 노오란 연기가 피어 오르고 횃대에 올라앉았던 닭들이 비실거리며 아래로 툭툭 떨어진다고 한다.푸대 자루를 들고 들어가 슬슬 주워 담아서 유유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황석영
  • 생활무전기 사용 급증

    서울 방이동에 사는 주부 김모(37)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에게 최근 무전기를 하나씩 마련해 줬다.버튼 하나만 누르면 학원에있든,놀이터에 있든 곧바로 통화할 수 있어 김씨는 요즘 아이들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무전기가 생활 속에 급속히 파고들고 있다.통상 무전기라면 군대나경찰,혹은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묵직한 통신기기를 떠올리기 마련.하지만 최근 국내외 업체들이 생활용 무전기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상당한 규모의 틈새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등산 낚시 스키 래프팅 등 레저용은 물론이고,가족이나 친구끼리 빠르고 간편한 교신을 하려는 이용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생활무전기의 통화반경은 통상 500m∼1㎞.해변가 공원 등 탁트인 공간에서는 3㎞까지도 가능하다.전파 사용료 없이 공짜로 이용할 수 있어 통화가능 상태로 하루종일 켜놓아도 부담이 없다.당국에 허가나신고할 필요없이 무전기를 구입,채널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남녀노소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최근들어 담뱃갑 크기의 초소형 모델이 출시되고 있으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돼사용법도 매우 간단하다.FM전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음질도 깨끗하다.가격은 업체별로 5만∼20만원대. 국내 생활무전기 시장은 올 1∼7월에 이미 지난해 전체 매출 규모인600억여원을 달성했을 만큼 빠르게 커지고 있다.지난해 5월 0.5W 이하의 소출력 무전기는 별도의 신고나 사용료 없이 전파를 쓸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모토로라코리아는 지난해 12월 한국시장에 진출했다.주력제품은 지난해 미국에서 500만대 이상이 팔린 히트상품 ‘토크 어바웃’.제이콤 유니모 텔슨정보통신 태광산업 에어텍 우진전자 메이콤 화영산업등 국내 기업들도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의 생활무전기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발해가 운영하는 ‘와이어리스 홈’(www.wireless.co.kr)등 생활무전기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늘고 있다. 김태균기자
  • “돼지고기 무료로 나눠 드립니다”

    “돼지고기 무료로 나눠줍니다” 4일 전남 나주시 영산강 둔치에 가면 1인당 돼지고기 2㎏씩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나주축협(조합장 全俊和)은 2일 생산비 이하로 폭락하고 있는 돼지고기 값을 안정시키고 돼지고기 소비를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돼지고기 소비를 촉진하고 또 사육돼지 10%줄이기 운동을 농가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양돈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뜻을담고 있다. 축협은 사육농가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돼지 100마리를 도축,소비자들이 즐겨찾는 삽겹살과 목살 부위를 중심으로 나눠준다.마리당 100㎏,총 1만㎏으로 5,000명에게 2㎏씩 나눠줄 수 있는 양이다. 특히 휴대용 불판을 준비할 경우 강변에서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고기를 알맞게 잘라주고 집으로 돌아갈 때 국거리나 불고기용을포장도 해준다. 또 이날 영산강에서 낚시대회를 열어 월척상과 최다상에 찌개용 고기 6㎏(10근)을 상품으로 준다.가족노래자랑에서 입상한 팀에게도 같은 분량을 부상으로 제공한다. 전남도내 돼지사육두수는 지난 9월 현재 79만3,000마리로 지난해같은 기간 76만9,000마리에 비해 3.1% 늘었으나 값은 100㎏ 기준으로지난해의 절반인 1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나주축협측은 “돼지고기 소비량이 갈수록 줄어 양돈농가가 파산할지경”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돼지고기 소비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
  • [먹거리 축제를 찾아서] (12)양양 남대천 연어

    강원도가 온통 떠들썩하다.불타는 설악의 단풍에다 알래스카 등 북태평양으로 떠났던 ‘우리 연어’가 떼를 지어 어머니의 강 남대천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3,4월 양양 앞바다에 방류된 1,200만마리의 연어 치어는 3,4년뒤 몸무게 3∼4㎏,길이 40∼80㎝의 어른이 돼 설악산이 붉게 물들무렵이면 동해로 귀향한다.10월부터 12월초 사이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연어는 연간 3만5,000여만리.이중 2만5,000여 마리가 남대천에서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수정을 하고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때는 알래스카 등지에서 들여온 냉동 또는 훈제 연어에 익숙한 미식가들이 모처럼 갓 잡은 싱싱한 연어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시기다. 강원도 양양군이 주최하는 제 5회 남대천 연어축제가 오는 4,5일 이틀간 남대천 둔치와 내수면연구소 채란장 등에서 열린다. 축제에서는연어 맨손잡기 체험,연어 낚시대회,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함께 달리기,연어 탁본뜨기 등 연어를 주제로 한 생태체험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체험행사의 참가자는 하루 1,000여명으로제한되며올해의 경우 이미 접수를 마감했다. 그러나 행사기간중 누구나 남대천 둔치 상설전시장을 찾아 싱싱하고향긋한 연어 요리를 맛보며 행사에 동참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수 있다.국립수산진흥원 내수면연구소에서는 지난달 11일부터 그물로잡아 채란을 마친 연어를 마리당 4,000원씩,양양군 가평리 부녀회는훈제 연어구이를 한 토막에 2,000원씩 이달말까지 판매한다.냉동연어와 연어포 등 각종 연어 제품은 물론 은어뚜가리탕,감자부침,송이요리 등의 시식코너도 있다. 연어는 담백한 맛도 일품이지만 ‘나이아신’ 함량이 높아 피부미용및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의 건강식품으로 적격이라는 것이다. 연어고기는 주로 살짝 훈제하거나 말려서 먹는다.회는 민물과 바다를 오르내리는 도중 기생충에 감염됐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연어요리에 대한 연구가 짧아 훈제구이,튀김,회,연어포 정도가 고작이지만 일본에서는 연어를 재료로 100여 가지가넘는 요리가 개발돼 인기를 끌고 있다.문의 양양군 개발기획단 이벤트기획팀 (033)670-2239,2418.연어축제 홈페이지(salmon.or.kr)양양 조한종기자 bell21@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3)의열단 자취 남은 南京·廣州

    광복군 제3지대가 있던 안휘성 부양(阜陽)에서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강소성 성도 남경에 내렸다.중경·무한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찜통’이라 부른다더니 아침부터 사우나실처럼 후꾼후꾼했다.양자강이 가까워 고온다습하기 때문이었다.남경은 수운의 이점이 있어 예로부터 강남의 중심 구실을 했고 삼국시대에 손권이 오나라를 세운이래 10개의 왕조가 왕도로 삼은 곳이다.근대에 와서도 태평천국의봉기군이 청나라 정규군과 서구열강에 대항해 싸울 때 거점으로 삼았으며 신해혁명 이후 손문도 중화민국의 임시수도로 삼았다.중일전쟁때도 임시수도였으며 일본군에 의해 양민 30만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 시절,우리 선열들의 항일운동도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취재팀이 먼저 찾은 곳은 남경대학.그곳에 항일전쟁사의 걸출한 인물 여운형(呂運亨)과 김원봉(金元鳳)이 다닌 금릉(金陵)대학 캠퍼스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조국에서 3·1운동이 실패하자 무력항쟁 밖에 없다고 생각한 김원봉은 금릉대학을 중퇴하고 서간도로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갔다.그러나 그곳의 교육은 중국 명문대학을 다닌 그를충족시키지 못했다.그는 길림으로 가서 저 유명한 암살 폭파 비밀결사인 의열단을 만들고 수많은 테러공작을 감행해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이때 그의 나이는 약관 21세였다. 30대 장년이 되자 김원봉은 의열단의 테러공작을 지양하고 군대조직을 계획했다.뒷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였다.그는 스스로 광동성 광주(廣州)로 가서 황포군관학교를 나와 조선혁명간부학교를 만들었다.이 학교출신으로 유명한 이는 뒷날 태항산에서 전사한 윤세주와 진광화,그리고 민족시인 이육사이다.김원봉의그런 활동은 거의 남경에서 이루어졌다.황포군관학교 동기생으로 중국의 첩보기관 삼민주의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의 대표였던 등걸(騰傑)이 그를 도왔다. 남경대학은 우리 대학들과 달리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이 넓고 녹지가 많아 여유로워 보였다.플라타너스·팽나무가 지천이었다.시 인민정부가 발행한 백서를 보면 가로수가 40만 그루라던가.금릉대학 캠퍼스는 예스러운 품격을 지닌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푹신한 네모꼴의 잔디밭을 두고 3동의 건물이 둘러앉아 있었다.그 앞쪽에 뚝 떨어져서 대례당(大禮堂)이란 간판이 붙은 회당 건물이 있었다.민족혁명당을 창당한 곳이 이 대학의 강당이라 했으니 이것이 틀림없을 듯싶은데 전면이 일부 개축되어 있다. 남경대학을 나온 취재팀은 얼음이 섞인 생수병을 들이키며 의열단원들이 묵었던 명양가(鳴羊街)와 화로강(花露崗)을 찾아나섰다.한상도교수의 논문 ‘재중한인군관학교연구’를 보면 조선혁명간부학교는 1932년 10월20일 남경교외 탕산(湯山)의 선사묘(善祠廟)라는 사원에서 개교했고,교관들은 남경성내 명양가 호가화원(胡家花園)에서 묵었다.골목을 더듬어 찾아가보니 명양가와 화로강은 이어진 골목이었다.김원봉에게 호의적이었던 부호 호대해(胡大海)는 자신의 장원 호가화원에 김원봉을 식객으로 묵게 했고,김원봉은 자신의 의열단 동지들을위해 근처 화로강에 머물게 하면서 혁명간부학교 교관들의 숙소도 마련했을 것이다. 어림짐작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컸을 듯한 호가화원은 퇴락된 채 빈민들이 살고 있었다.그 옛날 주인이 손님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음직한연못가의 팽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문득 ‘지절시인’ 이육사가 떠올랐다.그는 조선혁명간부학교 1기생 명단 26명 가운데 육사(陸史)라는 가명으로 실려있다.그가 이 연못에서 올곧은 의지로 시를 썼을 것 같은 생각에 이곳저곳 두리번거렸다.연못가에서는 얼굴에 여유로움이 가득한 노인이 낚시질을 하고,해오라기 한 마리가 긴 부리로우렁이를 찍어올리고 있었다. 남경에는 백범 김구가 만든 한국특무대독립군 본부도 와 있었다.‘김구구락부’로 더 알려진 테러공격 비밀결사였는데 목장영 고안리(木匠營 高安里)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호가화원의 연못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이 목장영이 가까운 곳에 있다고 일러주기에 찾아갔으나 새 아파트단지 입구에 붙은 ‘목장영’이라는 간판을 본 것만으로만족해야 했다. 취재팀은 저녁 비행기로 광동성 광주로 날아갔다.우리 항일투쟁사에 큰 몫을 한 도시이기 때문이었다.광주 백운(白雲)공항에서택시를타고 달리는 동안 필자는 중국의 도시라기보다는 유럽에 온 느낌이었다.네온사인이 현란하고 거리를 질주하는 깨끗한 중형차들이 질서있게 차선을 지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세련되어 보였다.건물의 외형까지도 첨단화된 미를 뽐내고 있었다.하기야 북경,상해에 이어 중국 3대도시이며 1인 평균 생산액이 전국 1위인데다 백년전부터 중국내륙으로 들어가는 교통요지였고 홍콩과 가깝다보니 그럴 것이었다. 광주는 중국의 역사에서 혁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손문이 혁명을일으켜 ‘호법(護法)정부’를 세웠고 공산주의자들은 광주봉기를 일으켰다.광주봉기를 배경으로 쓰여진 앙드레 말로의 소설이 ‘정복자’이다.우리의 항일투사들도 이곳에 와서 크고 작은 자취를 남겼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황포군관학교(본래의 이름은 육군군관학교)이다.수많은 우리 항일투사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황포군관학교는 1924년 1월 손문이 국민당과 공산당을 합작한 결과탄생했다.국민당측의 장개석이 교장을,공산당 측의 주은래가 정치주임을 맡았는데 그로 인해 학생들도 양분되었고 그곳에 재학중이던 한인청년들도 뒷날 임시정부와 광복군,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으로갈라서는 결과가 되었다.그들의 입학은 1924년의 3기생들로 부터 시작되는데 유명한 이는 박효삼(朴孝三)·왕자량(王子良)·김원봉 등이다.그밖에 남경과 무한에 있던 분교를 졸업한 이도 많다. 황포군관학교에는 우리 교관요원들도 있었다.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가 러시아 유학을 하고 돌아온 양림(楊林.본명 金勳),1922년 의열단원으로 상해 황포탄 의거를 일으켰던 오성륜(吳聲輪),뒷날 만주에서 동북항일연군 간부로 활동한 최용건(崔庸健),의열단원이었다가 조선의용대 간부로 활동한 박효삼,이빈(李彬),양달부(梁達夫),김원봉,채원개(蔡元凱)등이다.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金山. 본명은 張志樂)도 교관이었다고 하나 연구가들의 실증은 없다. 취재팀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군관학교를 찾아갔다.광주시를 관통해 흐르는 주강(珠江)의 제방을 따라 보리수가 싱그럽게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대절한 자동차를 페리에 싣고 20분쯤 걸려 도시의 동남쪽에 있는 장주도(長州島)로 건너갔다.섬 거의 전체가 해군부대 주둔지였는데 황포군관학교는 옛날의 모습 그대로 보존,복원되어 있었다.우리나라의 중고생들이 극기훈련,야영훈련을 가듯 남녀 학생들이 입영훈련을 받고 있다.김원봉이 생도시절 중국인 생도 등걸과 우정을 쌓으며 토론을 한 곳은 어디일까.필자는 그런 상상을 하며 강의실,생도 숙사,강당,연병장 등을 돌아보았다.발길을 돌려 중산대학을 찾아갔다. 아나키스트였던 김성숙(金星淑)과 김산이 졸업한 중산대학은 필자가 돌아본 십여개의 전통있는 중국의 대학들 가운데 건축미가 가장 돋보였다.새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옛날 것들인데 깨끗하게 보존되어고상하면서도 웅장한 품격을 뽐내고 있었다. □광주(중국 광동성)■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먹거리 축제를 찾아서](7)미조항 해산물

    미식가라고 자부한다면,아니 비릿한 갯냄새와 쪽빛 바다가 그리운사람이면 이번 주말 남해로 먼 여행길을 나서자.그곳에는 삼남 유일의 절승영악(絶勝靈岳) 금산이 있고 ‘남해안의 베니스’ 미조항이있다. 그리고 남해섬 끄트머리에 땅콩처럼 붙어 이름처럼 아름다운 미조항에서는 별미 중의 별미가 여로에 지친 나그네들을 기다린다.갈치회,멸치회,감성돔·장어·볼락회,전복과 소라·돌멍게 등. 주말인 28,29일 경남 남해군 미조항에서 제1회 해산물 축제가 열린다.청정해역을 유일한 삶의 터전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이 처음으로 마련한 먹거리축제다. 축제에서는 미조항 앞바다에서 낚시로 잡아올린 갈치와 감성돔·장어·볼락 등은 물론 해녀들이 바다속에서 바로 건져낸 전복과 소라·돌멍게 등 싱싱한 해산물을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다. 특히 미조항에서 뱃길로 1시간30분 거리인 세존도 주변 바다에서 잡아올린 은빛 갈치회는 한창 기름이 오르고 고소해 관광객들의 입맛을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남해의 향토먹거리 ‘미조 갈치회’는 길이 40∼50㎝의 싱싱한 횟감은 물론 곰삭은 고추장과 막걸리를 발효시킨 재래식초로 만든 초고추장을 쓰는 독특한 조리법으로 전국적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항구에 늘어선 횟집들은 싱싱한 갈치를 얼음에 채웠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비늘을 벗겨낸 후 뼈채 썰어 파·마늘과 미나리,양파 등 갖은양념과 배즙을 넣고 초고추장에 버무려 접시에 담아낸다.매콤 새콤하면서 자극적이지 않고,쫄깃한 살과 뼈가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여기에 막걸리 한사발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행사기간중 미조면 사항부녀회 회원들이 수협공판장 앞 행사장에 설치된 간이식당에서 2∼3명이 먹기에 충분한 갈치회 한접시를 1만원에내놓는 것을 비롯,수협중매인협회,가두리협회, 연안·근해통발협회,나잠업협회 등 각종 어민단체 회원들이 나와 각종 해산물을 싼 가격에 판매한다.문의 미조면사무소 총무팀 (055)867-6114,860-3605. 남해 이정규기자 jeong@
  • 다양한 산문집 독자 ‘손짓’

    4명의 소설가 시인들이 산문집을 각각 펴냈다. 소설가 김영하의 ‘굴비낚시’ (마음산책)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것으로 끝내지 않고 나름의 의견을 열렬히 펼치곤 하는 행복한 예술장르인 영화산문집이다.누구나 한마디씩 할 수 있는 만큼 글을 쓴다하는 작가들은 매우 독특하고 예리한 시선을 내놓아야 한다. 전에 발표한 평들을 모은 이 책에 대해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낚는 어종들이 어떤 것이든 중요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여기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에 의해 낚여 올려지는 순간 모두 ‘김영하의 영화’가 돼버리기 때문이다.영화는 그만의 거침없는 입담과 유머 감각,경쾌한 사유들을 펼쳐보이는 데 필요한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다”고시인 유하는 말한다. 지난해 두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30년 만에 펴냈던 시인 허만하의 산문집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솔출판사)는 “그간 시를 찾는 순례의 길 위에 남긴 발자국 가운데서” 34편의 산문을 엮었다.70년대부터 써 온 산문을 골라낸 이 책은 주변사가 아닌 시인의시적 욕망과 함께 교류하는 시인 예술가들,작품들의 뿌리를 들여다 보게 한다. 시인 김승희의 산문집 ‘너를 만나고 싶다’(웅진닷컴)의 주된 테마는 저자 자신이 공감하고 동경하며 사랑한 여인들의 삶이다.틀을 부수고 자유와 진정한 삶과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인들에 대한 공감과동경에 이어 이 땅의 보통 여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동경을 읽을수 있다.시인 윤중호의 ‘느리게 사는 사람들’(문학동네)은 느릿느릿 굼뜨게 자신의 길을 가는 외고집 인생들을 이야기한다.이문구 송기원 신경림 천상병 등 문인과 함께 묵묵히 자신의 외길을 가고 있는장인들 삶을 담고 있다. 김재영기자
  • [먹거리 축제를 찾아서](3)부산 자갈치 수산물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비릿한 갯냄새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한데 어우러진 부산 자갈치시장이 전국의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특히 ‘깨가 서말이나 들어 있다’는 ‘가을 전어’가 계절의 진미를 자랑하며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전국 최대의 수산물집산지인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19일부터 23일까지 제5회 부산자갈치수산물축제가 열린다.행사에는 지하철 자갈치역과 남포동역 사이 자갈치어패류시장과 신동아회센터,건어물상가 등에서 엽업중인 1,000여 횟집과 건어물상 등이 일제히 참여,부산 최고의 맛을 경쟁적으로 선보인다. (사)부산자갈치문화관광축제위원회 홍보담당 김성진(金聖珍·28·여)씨는 “1년 내내 막 건져올린 생선처럼 퍼덕이는 생동감으로 가득한 자갈치시장에는 바다에서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있다”면서 “특히 요즘에는 전어를 비롯,물오징어,우럭,돔,장어 등이 한껏 물이 올라 있다”고 말했다. 45년동안 자갈치시장에서 영업했다는 ‘춘자상회’의 최춘자(崔春子·65·여)씨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곳에서 주로 사는 전어는까다롭고 급한 성질 탓에 수족관에서 하루 이상 살지를 못한다”면서 “때문에 요즘 상에 오르는 전어는 모두가 막 바다에서 건져 올린자연산”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전어는 포를 뜨듯 회를 떠 초장 대신 된장이나 막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면서 “살을 바른 뒤 가락국수처럼 가늘고 길게 썰어 야채와 콩가루를 섞어 초장에 비벼 먹는 것도 별미”라고 소개했다. 축제기간중 어느 식당이나 2∼3명이 전어와 우럭,돔 등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생선회 한 접시를 1만원에 내놓는다.비린내 때문에 생선회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담백한 물오징어도있다.마른 멸치,김,미역 등 각종 건어물도 도매가격으로 판매한다. 이밖에 대형수족관에 바지를 걷고 들어가 고기를 직접 잡아보는 ‘활어낚시’,장어를 바톤처럼 들고 뛰는 ‘장어이어달리기’,‘외국인요리경연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관광객들을 기다린다.문의 자갈치축제위 (051)243-9363.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中납꽃게 먹고 기형아 우려 낙태수술

    중국산 납꽃게를 먹은 임산부가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낙태수술을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8월10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승보수산이 제조 판매한 납이 든꽃게장 4만8,000원 어치를 울산의 한 시장에서 사먹은 임신 6주의 정모씨(31·여·울산시 동구 화정동)는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지난달 29일 낙태수술을 받은 사실이 12일 뒤늦게 확인됐다. 수술 당시 담당의사는 “정씨가 임신 초기에 납성분이 든 음식물을먹었으며 임신부가 납성분이 든 음식물을 먹었을때 임신기간과는 관계없이 태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라는 소견서를 적었다. 꽃게장을 함께 먹은 정씨의 어머니 김모씨(65)도 두통과 복통,소화불량,양쪽 눈경련으로 울산대학병원에서 1차 검진을 받았고 11월에재검진을 받으며,나머지 가족 4명도 건강상태를 조사받을 예정이다. 경찰 조사결과,정씨 가족이 먹은 꽃게장의 중국산 꽃게 2마리에서손가락 마디크기의 납 13개가 검출됐다. 정씨 가족들은 “꽃게장에서 납이 발견됐을 당시 낚시하다 들어간물체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납을 들어내고 계속 먹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중국산 납꽃게를 한국산으로 속여 유통판매한 승보수산대표 이봉구씨(54)를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공장장 한모(58),영업부장 고모씨(50)등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조약돌] 수영하다 낚싯줄 걸려 익사

    9일 오후 3시쯤 전남 나주시 송월동 나주역 신축공사장옆 저수지에서 정모씨(22,나주시 금천면)가 수영을 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숨졌다. 최씨와 함께 놀러 왔던 김모씨(22,여, 나주시 영산포읍)는 “낚시를 하던 최씨가 '덥다'며 옷을 벗고 저수지에 뛰어든 뒤 갑자기 허우적거리다 물속으로 빠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최씨의 팔에 낚싯줄이 감겨있는 점으로 미뤄 최씨가 수영을 하려다 낚싯줄이 손에 감기는 바람에 당황해 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나주 남기창기자
  • 개그맨 이용식씨 벤처 홍보이사로

    개그맨 이용식씨가 벤처기업인 섬나라닷컴(www.sumnara.com)의 홍보이사를 맡았다. 섬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섬나라닷컴은 대청도가 고향이며 연예계에서 소문난 낚시광으로 알려진 이씨를 홍보이사로 선임했다고 4일 밝혔다. 이씨는 섬나라닷컴의 광고제작은 물론 각종 홍보이벤트에 참여하며섬나라닷컴은 앞으로 이씨가 섬지역 여행이나 바다낚시 과정에서 얻은 섬지역 정보나 뒷얘기 등을 인터넷에 올릴 계획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북한에서 만난사람] (2)백두산 소백수 초대소 관리원 정명실씨

    백두산 관광단이 여장을 풀고 다섯 밤을 지낸 곳은 양강도 삼지연군의 소백수 초대소.이곳에서 관리원으로 일하는 정명실씨(22).정씨는평북 구성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이곳 초대소로 온지 4년이됐다.북한은 유치원 높은반 1년과 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중등반 3년 고등반 3년)이 의무교육.정씨는 의무교육만 마치고 직업전선에 나선 셈이다. “귀중한 손님들이 와서 정말 반갑습네다” 남측 관광단의 방북 사실을 도착하기 하루전에 알았다며 반색을 했다. 소백수 초대소는 91년 문을 연 정부 초대소.초대소란 호텔보다 급이높은 영빈관급 숙소다.주로 국가에서 초청한 사람들이 묵는다. 지난 8월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했을 때도 이곳에서 지냈다.유럽풍의별장 스타일로 숙소 28개동과 종합센터 2곳,낚시터 농구장 매점 등을갖추었다. 특히 이번 관광단을 위해 가라오케를 마련했다고 했다.여성 관리원은 32명. 정씨는 손님들의 양말이나 속옷을 세탁해주고 청소며 심부름을 맡아한다. 시중드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한마디로 “일 없시요”(괜찮다는 뜻)다.“불편한 점은 없습네까”라며 오히려 상대방을 걱정한다. 초대소의 방 내부구조는 여느 호텔과 비슷하지만 침대위에 김일성주석의 사진이 걸려있고 세면실에는 색조 화장품까지 준비돼 있다.인삼살결물(스킨) 고려인삼물크림(로션) 기름크림(영양크림) 동백머리기름(헤어오일) 평양볼연지 인삼향분 장미향수 등. “질이 좋은 거야요.한번 써 보시라요” 정씨는 커다란 눈망울을 껌벅이며 화장품을 권한다.포장은 볼품 없지만 품질은 괜찮았다. 손님이 기쁘게 놀고 즐겁게 돌아갈때 가장 보람 느낀다는 정씨는 친절이 몸에 밴 듯하다.그는 친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며 “통일이된 다음 남한에 꼭 가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최희주 기자 pearl@sportsseoul.com
  • [‘6.15’이후의 북한] (2)북한의 사회상

    9월 5일 황해도 구월산을 향해 달렸다.평양에서 약 48㎞.평양∼개성간 고속도로에서 황주를 지나 신천쪽으로 꺾어든 차는 은율쪽으로 달렸다.연백평야 넓은 벌에는 누런 벼이삭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군데군데 나타나는 옥수수밭에는 온통 누렇게 말라들어간 옥수수들이서 있었다.안내선생은 “가뭄 때문에 올해 농사가 큰 일”이라고 했다.며칠전 황주에 다녀왔다며 “올해는 작황이 안좋다”고 고개를 내젓던 김순권 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월산은 지난 97년부터 해외동포,외국인들에게 개방됐다.1150년전에 건립된 고려시대의 사찰 월정사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월정사관리인 길병호씨는 함흥화학공업대학에서 원유화학을 전공했으나 평생 월정사를 관리해온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평양을 떠나 산에 들어온 보기드문 인물이었다.그는 “월정사 극락보전은 북남을 통틀어 유일한 두공식 건물”이라며 “오대산 월정사도 이곳과 건립 연대가 유사한데 같은 월정스님이 지은 절이 아닌지,통일되면 꼭 가보려 한다”고 했다.부속건물인 명부전에는 주불인 지장보살 만이 휑뎅그렁하게 앉아있었다.주불을 보좌하는 금속제 부처 10쌍을 일제가 약탈해갔다는 것이다. 북에는 지금 ‘열대메기’ 열풍이 불고 있다.열대메기는 남아프리카원산의 민물고기로 4월에 부화하면 9,10월까지 최고 3㎏까지 성장한다.아무것이나 잘 먹고 고기맛도 좋아 각급 학교나 직장,기관들에서양어장을 만들어 키우고 있다.올해 3월 조성한 평양시내 서산호텔 양어장에도 어른 팔뚝만한 열대메기들이 우글우글했다. 호텔 부지배인 전룡운씨는 “호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가공해 사료로 쓰고 있다”면서 “앞으로 호텔손님들이 양어장에서낚시도 즐기고 잡은 고기는 요구대로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몇 마리를 얻어다 숙소에 와서 구이와 매운탕을 해먹었는데 가물치 맛과 비슷했다.농촌에서는 모내기 후에 논에 열대메기를 풀어 키우는데 메기들이 벼뿌리를 들춰주고 벌레를 잡아먹어 농사도 잘되고 배설물은 거름이 된다고 한다.가정에서도 봄에 비운 김장독에 열대메기를 키워서 이제 잡을 때가 다 됐다는 얘기였다. 조선중앙TV는 맹렬한 금연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었다.그런데 슬로건이 ‘금연’이 아니라 ‘담배조절’이라는 것이 흥미롭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제로가 아니라,건강에 폐해가 있고 부인들 앞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실례라는 것을 자각해서 스스로 끊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김 위원장 자신은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와의회견에서 담배를 끊었음을 밝힌 바 있다. 조선중앙TV가 권하는 담배 끊는 방법을 보면 “무 200g을 채 썰어서물은 짜버리고 설탕을 쳐서 먹은 후 담배를 피우면 담배맛이 없다”는 등 효과가 의심스러운 방법도 있다. 보통강호텔 식당에는 올해 29세의 처녀 접대원이 있다.모습도 태도도 아름다운 여성이다.왜 시집 안 가느냐고 했더니 “남자는 나이들수록 금값이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안타까운 마음에 같은 식당의 28세 총각 접대원에게 “동무에게 장가 들면 어떠냐”고 했더니 “어린 처녀도 많은데 하필…”하면서 시큰둥한 표정이다.어찌된 일인지 북에는 처녀가 더 많다고 한다.명태가 넘쳐나던70년대에는 ‘조선에 많은 게 명태하고 여자’라고 했다니 말이다.남쪽에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곧 처녀 기근현상이 심각해지리라는데이 문제도 통일로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취재중 가장 놀라웠던 점 가운데 하나는 대동강변에서 다운증후군 중학생을 목격한 일이다.학생은 행사연습을 하러 가는 듯 손에꽃을 들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걸어가고 있었다.매우 즐거운 표정이었다.다운증후군 장애인의 얼굴은 세계적으로 모두 같다.남쪽언론은 지금까지 “평양에는 장애인이 없다.미관상 이유로 모두 이주시켜 버렸다”라고 보도해왔다.기자는 안내인에게 물었다. “평양에도 장애인이 있는가요?” “장애인이오? 아,불구자 말입니까? 있습니다.우리 동네 이발사가벙어리인데….그런데 왜요?”남쪽 언론의 ‘정설’을 알 리가 없는 안내인이 되물었다.그 대답은못하고 다시 물었다. “불구자들은 어떻게 사나요?” “인민학교,고등중학교까지는 정규학교에 같이 다닙니다.그 후에는불구자에 맞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거쳐 사회에 진출하는데주로앉아서 하는 직업을 많이 갖습니다.대학시험에 붙으면 대학 측에서끝까지 공부할 수 있게 보장합니다.몸이 불편하면 교원이 집에 가서가르쳐 줍니다”평양에 ‘장애인’은 없다. 그러나 ‘불구자’는 있다.남쪽 언론의정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신준영기자 junyoung@. *평양서 만난 허혁필 민족화해협 부회장. 1961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지도원을 시작으로 조평통 부국장을 지낸 민족화해협의회 허혁필 부회장.현재 범민련 중앙위원과 민족대단결 잡지사 사장을 겸하고 있다.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 러시어학과를 졸업한 허 부회장은 99년에는 민화협 부회장으로서 남측의전국어민연합회와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한 공동어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방북취재 마지막날인 8일 허 부회장은 기자일행을 위해 청류관에서오찬을 베풀어 주었다.그는 식사중 10여분간에 걸쳐 ‘톨스토이가 그린 구원의 여인상’에 대해 분석해 주기도 했다. ■평생을 통일문제와 씨름해 왔는데 6·15공동선언에 대한 소감은. 우리같은 통일일꾼 몇 천명이 40년 동안 노력해도 이루지 못할 일을두 분 수뇌께서 단 3일만에 이루어내었다.감격스럽다. ■6·15공동선언에 대한 북측 인민들의 반응은. 신 기자도 이번 취재 중 느꼈을 것이다.우리 인민들은 이번 공동선언에 대해 진심으로 기대와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공동선언후 북남관계가 나같은 사람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급진전되어 왔다.5개 조항중 적지 않은 조항이 이미 실현되었고 나머지 조항의 실현을 위해서도 우리는 모든 성의를 다할 것이다.그것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현실 속에서 확인하고 있다.
  • 하늘과 땅이 잇닿은 오직 한 곳 ‘천혜의 곡창’

    이 들녘은 지금 따스하다. 누렇게 익은 벼들로 가득한 김제의 만경평야.때마침 불어온 산들바람과 흥겨운 춤사위를 나누느라 이랑마다 여유와 만족감이 충일하다. 노령산맥이 서해로 뻗어오다 그 기운을 모악산에 모두 토해내고 지리멸렬,한숨을 내쉰 형국으로 평야가 들어섰다.땅과 하늘이 잇닿은,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전북 김제시 광활면과 진봉면 일대. 들판에 서면 도리깨질을 하는 어머니와 수확을 앞둔 논에서 피를 뽑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배어나오는 바다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오래전부터 천혜의 곡창.“태풍 ‘프라피룬’인가 뭔가 ‘사오마이’인가 뭔가도 이상하게 싹싹 비켜간당게.물도 좋고 땅도 좋아,다른 곳은 흉년들면 여긴 더 대풍이지라”농심은자랑스럽기만 하다. 이곳의 어느 논두렁을 들어가도 가슴이 다 훤해지는 지평을 만날 수있다.또한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시원스레 달리다보면 도시인들은 해방감에 흠뻑 젖어든다. 그리고 일몰.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벼들의 머리위로 참연히 얼굴을 담그는 일몰을 접하는 일은 여느 곳에서 쉬 만나기 어려운 엑스터시를 안겨준다. 김제에서 유명한 벽골제에 이르는 길.그 길엔 코스모스가 연도에 나와있고 가을이 마중나와 있다.무려 13세기라는 거대한 세월을 버텨낸 벽골제.그 둘레가 44㎞에 이르렀다는 이 제방은 호남(湖南)이니 호서(湖西)니 하는 명칭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이곳의 물을 빼고 흙을 메워 논으로 둔갑시켜 놓는 바람에 벽골제는 박제화돼 있다. 제를 쌓는 데 동원된 일꾼들의 짚신을 털게 했다는 신털미산과 성주의 딸 단야공주가 일꾼들을 불러모아 가야금을 뜯으며 노고를 위무했다는 명금산 등이 남아있지만 일제는 많은 것을 이 천혜의 곡창에서앗아갔다.소설가 조정래씨가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으로 이 곳을 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김제시 위로는 만경강이,아래로는 동진강이 에워싸듯 흐른다.만경강위쪽이 군산.만경들녘에서 군산까지의 도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포장됐다.다 효과적인 수탈을 위해서였다.그런 아픔과 한을 되새기는 여정이 이곳 지평선위에 아로새겨져 있다. 김제시는 조씨와 함께 금산사와 심포 등 현존하는 관광자원을 돌아보는 ‘아리랑 투어‘ 상품개발을 추진하고 있다.소설에 등장하는 감골댁 일가,사금 채취장,징게맹갱 등 거점과 송수익 정재규 손판석 등 50∼60명의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투어로 진행된다. 또한 드라마 제작을 중점지원하겠다는 입장을 MBC측에 전달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조씨는 현재 집필중인 ‘한강’을 마무리하는 2002년 이후 첫 작품으로 벽골제를 배경으로 한 소설 ‘단야’를 집필하겠다는 뜻을 밝힌것으로 알려졌다. “김제에는 사실 지평선이 두 개지라” 도인기 김제시청 문화공보담당관은 자랑했다.그대로였다.심포항에 물이 빠지니 또하나의 지평선이 얼굴을 드러낸다.평일인데도 사람들은 바지락이며 생합들로 가득한 자루를 어깨에 지고 갯벌을 훠이훠이 저어나온다. 심포 바로 곁의 망해사.소박한 절 크기에 비해 만경강,서해,군산땅,김제들녘을 한눈에 내려다보는,지평선과 수평선을 한꺼번에 맛보는조망감이 활달하다. 그리고 모악산 줄기에 자리한채 풍요로운 만경들녘을 굽어보는 금산사.국보 62호인 미륵전을 비롯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등 3개의 대형불상이 봉안된 대적광전과 점판암을 쌓은 육각다층석탑 등보물급 문화재들이 즐비하다.조계사의 큰 집 답게 호남 지역 전체를아우를만한,속리산 법주사에 비견될만한 위엄을 갖추었다. 이제 열차를 타고 남행할 때 서쪽 창변으로 내다보던 석양의 아름다움을 더깊이 이해할 것 같다. 글·사진 김제 임병선기자 bsnim@. *김제 ‘지평선축제' 내일 팡파르. 성공적인 지방축제로 자리매김한 김제 지평선축제가 올해는 29일부터 사흘동안 열린다.올해 하이라이트는 ‘떡가래 길게 뽑기’로 기네스 공인기록에 도전한다.시민과 관광객 380명이 참여,통일 염원을 담아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한 380m 길이의 떡가래를 뽑는다.지금까지 비공인 기록은 지난해 12월 이화여대에서 세운 305m. 광활면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이 26m의 관람대도 주목할만하다.우마차를 타고 황금벌판을 누빌 수도 있고 40가족이 1박2일간 자매결연 농가에 머무는농사체험,허수아비와 옹기만들기를 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입석 줄다리기와 벽골제 축조를 배경으로 한 쌍용놀이 등 민속놀이와 심포항에서 즐기는 조개캐기,청하면 만경대교에서 벌어지는 망둥어낚시대회 등이 펼쳐진다.축제위원회(063-540-3108)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김제 나들목을 빠져나와 714번 지방도로를이용한다.강남고속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김제행 버스가 운행되며 열차도 수시로 다닌다.29번 국도가 벽골제∼죽산∼심포항으로 연결된다.김제시와 벽골제,심포항을 돌아오는 셔틀버스가 행사기간동안6대 운행된다. ■먹거리 김제의 3대 자랑거리는 벽골제와 미질 뛰어나기로 이름난지평선쌀,싱싱한 생합(백합). 생합은 간이 나쁘거나 악성빈혈이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있다고 전해지며 쫄깃한 맛이 9월과 10월 절정에 이른다. 조금은 인파로 북적이는 심포항보다 거전(巨田)마을쪽이 한가롭고 좋다.시원한 맛이 일품인 꼬막국수와 꼬막무침도 푸짐하다.새만금횟집(063)543-6668낙조를 기다리며 거전마을 갯벌에 정박한 배에 올라 망둥어 낚싯대를기울이는 맛도 황홀하다.
  • 김포 대명포구 철책선 개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대명포구 해안이 30일부터 개방된다. 김포시는 22일 그동안 군사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돼온 대명포구 해안철책선 가운데 250m 구간을 군과 협의해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개방시간은 일출 1시간 후부터 일몰 1시간 전까지이며,대명포구를찾는 시민들은 철책선 안으로 들어가 낚시·관광 등을 즐길 수 있다. 조선조 말 형성된 대명포구는 쭈꾸미·낙지(봄철),병어ㆍ밴댕이ㆍ준치(여름),꽃게ㆍ새우(가을),숭어ㆍ삼세기(겨울) 등 계절에 따라 싱싱한 생선을 맛볼 수 있다. 김포 김학준기자
  • [문화도시 문화거리] (8)다도해의 藝鄕 통영

    회를 뜨고 남은 서더리가 아니라,자연산 활어를 토막쳐서 매운탕을끓인다?통영항 강구안의 중앙시장엔 죽은 생선을 얼음에 뉘어놓고 파는 형태의 어물전이란 찾아볼 수 없다.대신 어스름녘 포구를 따라난 골목에선 반짝 어물전이 선다.좌판을 펼쳐놓은 아낙은 저녁거리를 장만하려는 주부를 위해 퍼떡이는 우럭이며 노래미·광어에 능숙한 솜씨로 칼질을 해댄다. 내륙사람들에게 통영이 가장 먼저 주눅들게 하는 대목은 먹거리다.해산물에 관한 한 자반 고등어 정도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이 누리는 ‘삶의 질’은 얼마나 부러운가.그러나 문화도시로서의 자존심이 굳건한 통영사람들은 풍성한 먹거리 정도는 결코 ‘문화’의 반열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통영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곳에 자리잡은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1593년(선조 26년) 통제영이 설치되고 삼도수군통제사로 처음 임명된 사람은 충무공 이순신장군.1955년 통영군에서 통영읍이 떨어지면서 충무시로 이름지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지금의 통영시는충무시와 통영군이 다시 합쳐진도농어(都農漁)통합시다. 이렇듯 유서깊은 역사문화도시 통영의 중심가에는 통제영의 객사였던세병관과 충무공을 기리는 충렬사가 자리잡고,유람선터미널에서 20분이면 닿는 한산도에는 충무공이 삼도해군을 호령하던 제승당이 발길을 잡아끈다. 통영에는 오광대·승전무·남해안별신굿 등과 나전칠기·누비·가구·갓 등의 유무형문화재도 즐비하다.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사람만 13명.한 도시에서 이만큼의 인간문화재가 배출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김세윤 통영문화원장은 “통영의 전통문화는 통제영 시절의 12공방에서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면서 “재줏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400여년 동안 공방의 전통을 세워가면서 어느 지역보다 많은 예술가들이 배출됐다”고 ‘통제영 문화권’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통영이 과거의 영화와 아름다운 풍광만 내세운 관광도시에 만족했다면 오늘날 ‘현대적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도시’라는 이미지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2월 열렸던 ‘통영현대음악제’는 이 고장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축제였다.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세미나를 열어음악세계를 탐험한 이 음악제는 국내에서 열린 윤이상 행사로는 가장규모가 큰 것이었다.인구 14만명의 작은 지방자치단체 통영은 이음악제에 많은 예산,그것도 위험부담이 큰 현대음악에 투자해 관광문화도시로서 미래의 고객인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지난 8월 한달동안 통영대교에서 펼쳐진 미국의 설치음향예술가 빌폰타나의 작품 ‘사운드 브리지(통영대교가 소리를 낸다)’도 이 도시의 문화수준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이 프로젝트는 한산대첩제위원회가 ‘한산대첩제’행사의 하나로 유치한 것.지역의 전통문화축제를이끄는 사람들이 이토록 열린 예술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여느 도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저력일 것이다. ‘문화도시 통영’은 그러나 거창한 이벤트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지난 99년 시작한 ‘도시색채가꾸기’사업은 조용하게 도시의분위기를 바꾸어가고 있다.지붕을 오렌지색,벽체를 흰색으로 칠하면보조금을 주는 이 사업에 지역의 건축사협회가 호응하여 건축주들에게 적극 권장함으로서 이제는 지중해풍의 색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지역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문화’로의 가능성은 크게열려있으되 통영사람들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는 아직 만족스럽지못하다는데 있다.지난 2월 동호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문을 연 통영 출신 유치환시인을 기념하는 ‘청마문학관’에서 이런 생각은 더욱 절실했다. 청마의 문학과 인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전시내용은 훌륭했지만,관광객들만 찾을 뿐 주인이어야 할 지역청소년을 위한 사회교육시설 및 소프트웨어는 눈에 띠지 않는다.이곳에 문학공부방을 마련하여 시 낭송회와 토론회가 열리는 날,청마의 후예가 이 땅에 다시태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계획단계인 윤이상과 소설가 박경리,서양화가 전혁림,극작가유치진 등 이곳 출신 예술가들의 기념관도 단순히 이들을 추념하는공간이 아니라 지역민,특히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교육공간이 되어야새로운 시대에 통영을 빛낼 다양한장르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기대할수 있는 것은 아닐까. 통영 서동철기자 dcsuh@ [이렇게 가꿉시다] '윤이상 국제음악제'음악도시로 육성을 아름다운 한려수도에 둘러쌓인 통영에서는 매년 2월 국제음악제가 열린다.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제를 목표로 올해 처음 시작한 ‘통영현대음악제 2000’은 이곳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며,그의 작품세계를 깊이있게 펼쳐보인다. 윤이상이 처음으로 유럽에 이름을 알린 작품은 한국의 정서를 담은관현악곡 ‘예악(禮樂)’이었다.1966년 남부독일의 작은 도시 도나우에싱엔에서 발표했다.해마다 10월에 열리는 도나우에싱엔음악제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유럽의 대표적 음악축제의 하나이다.그 당시일본의 많은 작곡가들이 프랑스 등지에 유학하고 작품들을 발표했지만 모작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이러한 시기에 한국사람윤이상은 아시아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국제적인 음악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다.윤이상은 199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시아를대표하는 작곡가로 서양음악계의인정을 받았다.뿐만 아니라 독일의하노버와 베를린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가르친 수많은 아시아계의작곡가들은 지금 아시아 음악계를 주도하는 인물들로 성장하였다. 통영음악제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은 통영이 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사실이다.그는 늘 자신의 모든 것이 고향에서 왔다고 역설하였다.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고향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제를 여는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통영은 인구 14만의 작은 도시지만 잠재력은 무한하다.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점 말고도 축제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름다운 경치와역사,친절하면서 문화적인 시민들, 맛있는 음식 등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국제적인 음악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무엇보다많은 음악가와 관광객이 통영을 찾을 수 있는 부대시설과 행정체계,또한 국제음악제를 전담할 만한 조직 등이 마련되어야 만이 명실공히 아시아,나아가 세계의 음악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윤이상은 말년을 고향인 통영의 바닷가에서 낚시를 즐기며 조용히 작품생활을 하면서 보내고 싶어하였다.하지만 그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귀향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국제적인 음악제를 통하여 그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서,참으로 올바른 평가와 더불어 자신의 이름을 고향과 함께 역사에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것은 이제 뒷사람들의 몫이다. 김승근 국제 윤이상협회/한국사무국장·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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