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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일만에 노 저어 태평양 횡단

    |히바오아(프랑스령 폴리네시아) AFP 연합|프랑스 여성 탐험가 모 퐁트노아(26)가 여성 최초로 혼자 노를 저어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퐁트노아는 지난 1월12일 페루의 칼라오 항구를 떠나 8000㎞의 횡단 항해에 나선 지 73일만에 26일 태평양 남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히바오아의 마르키즈섬 북쪽해안에 도착했다. 퐁트노아는 이날 오후 4시(현지시간) 경도 138.5도를 통과하면서 기나긴 고독의 여행을 끝냈다. 보트가 해안에 닿자 300여명의 환영객들이 퐁트노아를 따뜻이 맞았고 그는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의 인도 아래 해변으로 이동,‘타히아’(여왕)라는 칭호를 받았다. 퐁트노아는 “70일 이상을 혼자 있다가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기 때문에 즐거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번 횡단기록은 남미 대륙과 폴리아네시아 사이의 적도 해류의 도움으로 당초 계획보다 한달 앞당겨졌다. 지난 2003년 여성 탐험가 라파엘라 르 구벨로(프랑스)가 윈드서핑으로 태평양을 횡단했었으나 여성이 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퐁트노아는 길이 7m의 보트와 위치정보시스템(GPS), 위성통신 장비에 의존한 채 지난 47년 노르웨이 탐험가 토 헤예르달이 5명의 선원과 101일동안 뗏목을 타고 이동했던 경로를 따라 태평양을 가로질렀다. 탐험기간 식사는 냉동건조된 스페인식의 파엘랴와 낚시로 잡은 생선으로 충당했다.
  • [깔깔깔]

    ●올가미 집에 전화를 건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한 주 동안 낚시할 기회가 생겼어요. 당장 떠나야 해요. 내 옷과 낚시도구와 잠옷을 챙겨줘요.1시간 뒤에 가지러 갈게요.” 1시간 뒤 귀가한 남편은 아내가 챙겨 놓은 가방을 들고는 급하게 떠났다. 1주일이 지나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가 물었다. “낚시는 재미 있었어요?” 남편이 대답했다. “그럼요, 낚시 잘 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내 잠옷을 챙겨주는 걸 잊었더군요.” 그랬더니 아내가 응수하는 말. “잠옷을 당신 낚시도구 통에 넣었는데요!” ●면도 남편: 아침에 일어나서 면도하면 10년은 젊어진 기분이 든단 말이야. 아내: 그럼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왜 면도를 하지 않으세요?
  • 무비자로 Go Go 일본 나고야!

    무비자로 Go Go 일본 나고야!

    최근 개항한 주부국제공항에서 일본 중부 주요도시인 나고야 시내까진 특급열차로 28분 걸린다. 하지만 초행길에 티켓을 끊고 열차를 기다리다 보면 1시간은 잡아야 한다. 나고야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는 161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나고야성 천수각. 현재의 천수각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59년 복원했다. 외관이 구마모토성이나 오사카성의 천수각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지붕 용마루 가장자리에 황금빛 동물이 양쪽에 박혀 있다. 머리는 호랑이, 몸은 가시가 난 물고기 모양이다.‘사치호코’라는 상상의 동물인데 화재를 예방해 준다고 믿고 있다. 다른 천수각과는 색다른 모습이다. 안쪽에는 칼과 가문의 문양 등이 전시돼 있다. 또 가장 전통적인 일본의 성을 보고 싶다면 나고야 북쪽,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누야마시의 이누야마성을 들 수 있다. 기소강 남쪽에 우뚝 솟은 이누야마성은 1537년 오다 노부나가의 숙부가 축성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자 유일하게 개인 소유다. 천수각은 국보로 지정됐다. 전통적인 성곽뿐 아니라 나고야에는 첨단 건물도 많다. 가장 먼저 외관이 UFO모양으로 생긴 오아시스21을 볼 수 있다. 사카에 지역의 상징적인 건물로 상점·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나고야역의 상징인 JR센트럴타워스가 있다. 지상 51층과 53층 건물에 20층에서 49층까지가 호텔이다. JR나고야역에서 산책을 겸해 걸어서 15분쯤 가면 공원속에 붉은 벽돌 건물이 나온다. 세계적인 도자기 제조업체인 노리타케가 창업 100주년을 맞아 조성한 공원겸 도자기 박물관인 노리타케의 숲이다. 노리타케는 양식기 부문에서 로열 코펜하겐 등과 견주는 명품. 붉은벽돌 건물은 일본 최초의 도자기 공장으로 1904년 설립 당시의 모습이다. 노리타케는 1913년 일본에서 가장 먼저 양식 디너 접시를 제조한 이래 20년 만에 본차이나를 만들었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고급 도자기 장식품이나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순서대로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또 시기별 변천사와 함께 1876년 회사 설립 당시의 희귀한 식기 등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인물 사진을 넣어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코스도 있다. 장식품과 찻잔 식기세트를 시중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아웃렛 매장도 있다. 흙으로 장식품이나 그릇부터 항공우주와 초정밀 반도체까지 제작하는 노리타케에서 전통과 첨단의 조화로운 공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고야를 갔다면 도요타박물관을 가는 것도 필수. 나고야역에서 2시간가량 걸리지만 아이치 만국박람회장에선 10분 거리다. 자동차가 구두처럼 ‘생활필수품’이 된 요즘 희귀한 자동차를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겁다. 세계적인 고전명차 60대와 도요타가 생산한 명차 60대가 전시돼 있다. 이들 자동차는 기름만 넣으면 출발할 수 있도록 관리돼 있다. 이밖에도 나고야에선 지붕 모양이 톱니바퀴처럼 생긴 산업기술기념관, 호수와 샘이 아기자기한 일본식 정원인 백조정원, 동식물관과 놀이공원이 결합된 히가시야마공원 등이 있다.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빡빡한 일정으로 온천을 즐기지 못했다면 돌아오는 길에 주부공항 청사내의 온천에서 몸을 담글 수도 있다. 나고야 글 사진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이렇게 가세요 대한항공과 전일항공 등이 인천∼나고야 노선을 매일 취항한다.1시간30분가량 걸린다. 나고야로 가기가 쉬워졌지만 아직 일반인을 위한 여행상품이 개발되지 않은 것이 단점이다. 나고야 관광은 우리의 시티투어버스 비슷한 관광버스를 이용해도 좋다. 도쿠가와 미술관 코스·가마우지 낚시 투어 등 여러가지가 있다.3시간 코스는 3630엔,5시간은 5710엔. 나고야를 방문한 길에 산업을 둘러보는 데는 1박2일 코스가 적당하다. 가장 대표적으론 나고야에서 산업기술기념관~메이지촌~이누야마성~항공우주박물관 코스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도요타자동차공장-도자기자료관으로 맺을 수 있다. 이외에도 도자기를 제조하는 마루후쿠나 새우 센베이 마을 등을 택할 수도 있다. 예약은 나고야(052-561-4036)나 유람버스(www.nagoyayuran.co.jp)홈페이지로 하면 된다. ■ 엑스포 보러오세요 나고야가 속한 아이치현은 25일부터 9월25일까지 ‘자연의 예지’라는 주제로 박람회를 연다. 나고야역에서 동쪽으로 20㎞가량 떨어져 있다. 주부공항에서 1시30분쯤 걸린다. 박람회장까지는 일본 최초의 자기부상 열차 ‘리니모’로 갈 수 있다. 장내에선 무인자동차로 이동한다.‘생명의 빛’이란 테마로 참가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121개국과 기업들이 참여한다. 우리나라는 2012여수박람회 유치 활동도 벌인다. 박람회는 세계의 문화와 차세대 산업과 기술을 전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등이 박람회에서 선보여 세계화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박람회가 끝나는 9월 말까지 비자발급 없이 최장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관(www.expo2005.or.kr)이나 일본 박람회협회(www.expo2005.or.jp) 홈페이지로 들어가면 된다. 입장료는 어른 4600엔, 어린이 1500엔. 나고야(052)569-2005. ■ Go! Go! 나고야 먹을거리-덴무스로 든든하게 기시멘에 땀 쭉~ 일본의 중부지방인 나고야는 먹을거리가 무척 풍부하다. 도쿄와 오사카의 중간지점인 나고야에는 음식에서 양쪽의 특징이 모두 살아 있다. 우동은 육수의 간장색이 진하면 도쿄식이고, 육수가 맑은 것은 오사카 스타일이다. 이렇게 다양한 조리법이 만난 나고야는 음식문화도 발달했다. 하지만 우동이나 라멘의 국물은 우리 입맛에는 다소 짜게 느껴졌다. 나고야에선 새우요리를 가장 고급으로 치며, 새우 센베이까지 있을 정도로 새우 음식이 다양하다. 새우튀김을 주먹밥에 넣은 덴무스는 도쿄를 거쳐 일본 전역으로 전파된 대표적인 나고야 음식. 탁구공보다 조금 크게 만든 주먹밥 가운데에 각종 양념을 넣고 한쪽에 새우튀김을 삐죽 나오게 꽂고 김으로 띠를 한바퀴 둘렀다. 튀김의 고소한 맛과 새콤하면서 달착지근한 초밥 맛이 잘 어울린다. 웬만한 음식점 어디서든 맛볼 수 있다.3개에 600∼900엔 정도. 면 요리 천국인 일본에서도 나고야만의 면요리, 기시멘을 들 수 있다. 면발이 칼국수처럼 얇으면서도 끈처럼 넓적하다. 가다랑어로 맛을 내 국물이 시원하면서도 면발이 아주 졸깃하다. 기시멘은 대개 500∼900엔. 지하철역 구내의 서서 먹는 음식점에서도 기시멘을 판다. 나고야 고친도 뺄 수 없다. 닭의 일종인 고친은 120∼150일 정도 기른 것으로 맛이 깊고 씹는 감촉도 그만이다. 간장소스를 끼얹은 닭날개 튀김(데바사키)을 권할 만하다. 날개는 살은 비록 적지만 퍼석거리거나 질기지 않고 맛이 고소하다. 포크가 아니라 손으로 잡고 뼈를 발라 먹어야 제맛이 난다. 붉은된장(아카미소)으로 만든 우동도 그만이다. 국물은 약간 텁텁하면서도 걸쭉하다. 된장은 붉은색보다도 주황색에 가깝다. 일본 왕실에서도 붉은 된장을 사용한다고 한다. 붉은 된장은 담백한듯 가벼운 느낌의 일본 된장 미소와는 달리 맛이 깊다. 돈가스·우동·라멘·튀김 등에 골고루 소스로 쓰이는 재료다. 아카미소 우동은 600∼800엔. 정통 스시를 맛보려면 나고야 시내의 기코(吉凰·052-231-4144)를 찾으면 된다. 칼을 잡은 지 28년 된다는 주인 나카무라 쇼지(45)는 나고야에서 스시를 가장 잘한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자리는 10여석 남짓 하루 20명가량 찾는 작은 초밥집이다. 하지만 일본 언론에도 여러차례 소개됐던 곳으로 일본 프로야구 나고야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선동렬 삼성라이온즈 감독이 찾았던 곳이다. 이 집에만 있는 가장 대표적인 메뉴는 재료가 12가지나 들어가는 김말이 초밥(노리마키)은 지름이 10㎝가 될 정도로 두툼하다. 또 달걀말이를 카스테라처럼 두껍게 구워낸 다마고야키도 정교하게 보였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1인당 1만엔 정도라야 새우·참치·장어 등의 초밥을 골고루 맛 볼 수 있다.
  • [Zoom in 서울] 밤섬이 커진다

    [Zoom in 서울] 밤섬이 커진다

    “밤섬이 커지고 있다.” ‘도심속 무인도’인 밤섬의 면적이 매년 1270평씩 넓어지고 있다. 서울시 첫번째 생태계 보전지역인 밤섬은 사람들의 출입이 원칙적으로 금지됨에 따라 자연적인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매년 넓어지는 밤섬 14일 서울시가 밤섬에 대한 항공사진 등을 분석한 결과 1985년 5372평이었던 면적이 2005년 3월 현재 7939평으로 48%나 늘었다. 섬의 높이도 매년 6㎝씩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밤섬은 1968년 여의도 개발 당시 윤중제 제방에 필요한 토사·석재를 이용하기 위해 폭파되면서 아랫밤섬·윗밤섬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퇴적현상이 계속되면서 2000년 아랫밤섬과 윗밤섬을 잇는 지형이 생기며 호수도 형성됐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문영모 과장은 “상류에서 흙·모래가 밀려오는 데다 밤섬의 버드나무가 성장·발아·군락 확장을 하면서 면적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밤섬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98년 밤섬의 생태적 보전가치를 높게 평가해 최초의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퇴적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밤섬 찾는 새들도 늘어나 이에 따라 밤섬을 찾고 있는 철새들도 크게 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3년 동안 한강 밤섬에 대한 생태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멸종 위기 야생종인 매와 천연 기념물인 원앙, 황조롱이, 솔부엉이 등 총 77종 9782마리가 관찰됐다. 또 194개의 번식둥지가 발견됐으며 봄·가을에 머물렀다 떠난 새들도 173종이나 관찰돼 번식지와 철새들의 서식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이같은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한강 밤섬 하류 쪽을 낚시금지구역으로 정하는 등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죽은 버드나무나 환삼덩굴, 가시박, 연줄이나 낚싯줄 등 조류서식 위협 요인을 없애 새들이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중점 관리할 계획이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책꽂이]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실비나 오캄포 지음, 김현균 옮김, 열림원 펴냄) 라틴 환상문학 계보의 선두에 선 아르헨티나 여성작가 실비나 오캄포의 대표단편선집. 아직 국내엔 잘 소개되지 않았지만 문학적 엄숙주의를 거부하고 여성과 어린이 등을 중심에 내세워 독특한 서사형식을 구축한 작가로 평가된다. 라틴 페미니즘 문학의 전형을 확인해볼 수 있다.1만원. ●춘향전(조경남 지음, 설성경 옮김, 책세상 펴냄) 남원부사의 아들인 실존인물 성이성을 주인공 이몽룡의 모델로 삼은 ‘원춘향전’. 지은이 조경남은유학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가상인터뷰를 통해 원작자 조경남이 직접 ‘춘향전’의 집필배경과 성이성이란 인물에 대해 밝히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성이성이란 인물을 모델로 ‘원춘향전’을 창작했다는 것은 연세대 설성경 교수의 학설이다.5900원. ●어디서나 보이는 집(이동순 외 지음, 선 펴냄) 체제경쟁이 치열했던 1970년대 북한문학의 좌표를 추적한 책. 시와 소설, 관련 논문, 낱말풀이 등이 실렸다. 영남대 북한문학연구팀이 엮었다.1만 8000원. ●꽃인 듯 눈물인 듯(김춘수 지음, 예담 펴냄) 지난해 타계한 김춘수 시인이 생전에 직접 가려뽑은 대표시 53편에 화가 최용대의 그림들이 나란히 실렸다. 초기작부터 타계 직전에 쓴 미발표작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화집.1만 1000원. ●은빛낚시(이순원 지음, 이룸 펴냄) 소설가 이순원의 첫 수필집.2003년부터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주제별로 ‘손바닥 소설’처럼 간추려 묶었다. 가족, 추억, 이웃, 세태 등 4개 주제 아래 엮인 글들에서 작가의 소박한 생활철학이 읽힌다.1만 1700원. ●한국현대작가의 시야(조남현 지음, 문학수첩 펴냄) 개화기 이후 지금까지 국내 소설가들의 모습을 ‘글을 써서 생업을 도모하는 직업인’‘특정 이데올로기를 지니거나 알리는 이데올로그’‘사상가를 지향하는 지식인’ 등 5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저자는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1만 5000원.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쓰나미 철벽대비 최전선’ 日시즈오카현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쓰나미 철벽대비 최전선’ 日시즈오카현

    “시즈오카현을 중심으로 하는 도카이 지역에서 거대지진이 내일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76년 한 교수가 이처럼 얘기하면서 일본이 잔뜩 긴장했다.100년, 혹은 150년 거대지진(리히터규모 8.0 이상)주기 이론에 따른 분석이다. 이 지역에는 1854년의 안세이 지진 이후 대지진이 없었다. 경고 이후 29년, 아직까지 도카이(東海) 거대지진은 없다. 하지만 “쓰나미(지진해일)를 동반한 도카이 지진 발생이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라는 것에 지진학자들이 동의한다. 따라서 시즈오카현은 일본내 어느 지역보다 지진, 쓰나미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시즈오카 이춘규특파원|인구 379만명(2003년 기준)이 밀집한 시즈오카현은 유라시아지각판, 필리핀지각판, 북미지각판 등 3개의 이른바 지각판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100∼150년을 주기로 거대지진이 일어났다. 특히 500㎞ 이상의 해안선 연안지역에 인구가 밀집, 지난해 말 남아시아 쓰나미 피해 이후 이 지역의 쓰나미 대책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육지에도 관측기기… 사전예보 99% 시즈오카현은 도카이 지진이 발생할 경우 유일하게 사전예보가 가능한 지역으로 꼽힌다. 지각판이 충돌하는 육지에도 여러 곳에 관측기기를 설치, 지진 전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현 방재정보실 미야다 마사토의 설명이다. 151년전 7m가 넘은 쓰나미가 강타했던 쓰루가만 안쪽의 누마즈시. 이 지역 동부의 시즈우라 지구는 인구 7000명 정도의 작은 어촌이다. 바다와 산 사이에 끼어있는 좁은 평지에 주택이 밀집해 있어 쓰나미가 닥쳐올 경우 피난 장소 확보나 예방을 위한 방조제 정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높이 12m 쓰나미 대피山 조성 당국은 쓰나미 엄습시에 대비, 산으로 피할 수 있는 피난로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피난센터도 여러 군데 운영하고 있다. 해변에는 높이 12m, 넓이 600㎡로 300명 정도가 긴급 피난할 수 있는 ‘쓰나미산’을 조성해 놓았다. 주민이나 낚시꾼 등이 대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즈우라 지구 일대에는 높이 7m 정도의 긴 방조제에 갑문도 설치, 지역주민들이 관리하도록 했다.50여개소에 고성능 확성기도 설치, 쓰나미 내습시 안내방송을 한다. 시 방재지진과의 이고사와 주간은 “8∼9m의 쓰나미가 신칸센 열차의 두배인 시속 500㎞의 속도로 엄습할 것에 대비, 철저한 사전훈련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카이 지진 발생시 쓰나미 내습이 우려되는 누마즈항에는 내항과 외항을 연결하는 항로상에 지난해 9월 대형 수문을 설치, 쓰나미는 물론 태풍에도 대비하고 있다. 수문의 높이는 9.3m, 중량은 923t으로 일본 최대다. 이 수문은 진도 ‘6약’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이를 자동감지, 수문을 5분내에 급강하시켜 완전 폐쇄한다. ●방재시설, 관광자원으로도 활용 쓰나미의 높이가 5.8m일 때까지 수문을 차단, 해발 2∼3m의 지역에 밀집한 20여만명 시민의 생명을 지키게 된다. 여기서 출발하는 높이 10m 안팎으로 80㎞나 이어진 거대한 방조제도 쓰나미 피해를 막아준다. 따라서 ‘뷰오’로 불리는 이 거대수문은 누마즈시의 새로운 수호신으로 꼽힌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높이 30m에 위치, 수문 양쪽 기둥을 연결하는 복도에는 전망대를 설치, 후지산이나 쓰루가만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방재시설이면서도 평소에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 국내는 물론 외국서도 쓰나미 방재시설 견학자가 많이 몰려들어 “최근 3개월 동안 6만명의 외지인이 다녀갔다.”는 것이 누마즈시 항만과장 이나가키 히데토시의 자랑이다. 그래서 연간 1200만엔(약 1억 2000만원) 정도의 시설유지비나 43억엔의 시설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물론 현 차원에서도 쓰나미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3년 전부터는 목조주택의 내진강화 공사를 위해 가구당 30만엔까지 지원해주고 있다.65세 이상 노약자 세대는 별도다. 현 지진방재센터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에서 유일한 ‘쓰나미 체험 돔’도 센터 내에 설치돼 있다. 진도 ‘6강’까지의 지진을 체험하는 시설도 갖춰 하루 140명 정도가 견학하고 있다는 것이 마쓰모토 부관장의 설명이다. ●주민 방재조직 5100여개 주민들의 자체 방재조직은 현내에만 5100여개에 이른다. 이들은 종합 방재일인 매년 9월 1일 도카이 지진 발생을 상정, 훈련을 실시한다.12월 첫번째 일요일엔 돌연한 도카이 지진급 재해발생에 대비, 지역방재의 날 훈련을 실시한다. 또 7월1∼10일은 쓰나미대책 추진기간으로 설정돼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1997년에는 시즈오카현이 같은 지진대인 야마나시, 가나가와현 등 인접 지역과 재해대책연합회의를 설치, 합동 연구와 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현 당국의 철저한 쓰나미 대비에도 불구, 주민들은 남아시아의 30m급 쓰나미 소식을 접한 뒤로는 몹시 불안해졌다고 한다. 시즈우라 지구에서 만난 60대 노인 3명은 “이전에는 피난시설을 믿었지만 이젠 무섭다.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오면 무조건 높은 산으로 피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난에 대비한 주민 자치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마쓰다 겐고도 “10m 이상의 거대한 쓰나미가 올 것에 대한 훈련도 계속하고 있다.”면서도 “실제 지진은 추정 이상으로 온다. 지진대비 시설들이 조금은 안심하게 하지만 절대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그것이 한계다.”고 말했다. taein@seoul.co.kr ■日 쓰나미연구 발달한 이유는 |시즈오카 이춘규특파원|일본은 쓰나미 연구 강국이다. 지진해일을 뜻하는 일본어 쓰나미는 국제용어가 됐다. 왜일까. 일본은 100∼150년 주기로 거대지진이 엄습, 쓰나미도 뒤따른다. 쓰나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나미연구의 강국이 됐다. 기록에 따르면 쓰나미(津波)라는 용어는 1611년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의 문서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해저 지진과 화산폭발에 의한 해일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됐다. 쓰나미(Tsunami)가 국제 지진용어가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일설에는 1946년 알류산열도에 대지진이 일어나 해일이 하와이를 급습했을 때 현지 일본계 신문이 사용, 국제적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1968년 미국 해양학자가 국제회의에서 “Tsunami를 학술용어로 하자.”고 제안, 그 이후 시나브로 퍼졌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남아시아 지진해일 때 CNN 등 서방 방송들이 쓰나미라고 칭하면서 급격히 확산됐다는 분석도 있다. 쓰나미의 80% 정도는 환태평양지진대에서 일어나는 해저지진 때문에 발생한다. 가장 높은 것은 1958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것으로 약 520m였다. 인적 피해는 1883년 인도네시아 쿠라카트아화산 폭발 때 수반된 쓰나미로 3만 6000명이 최대였다. 그러나 지난해 남아시아 지진 때 30여만명이 사망, 묵은 기록이 깨졌다. 일본은 산리쿠지진(1896·2만 2000명 사망)과 칠레지진(1960년·61명 사망)에 의한 쓰나미 피해 등의 경험이 있다. 미국, 러시아와 쓰나미연구 경쟁을 하고 있다. taein@seoul.co.kr ■이시가와 지사 인터뷰 |시즈오카 이춘규특파원|지진과 이로 인한 해일(쓰나미) 등 시즈오카현 방재대책을 책임지고 있는 이시가와 요시노부 지사는 “언제든 지진과 쓰나미가 내습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시가와 지사는 지난 3일 인터뷰에서 지진대비의 기본 개념을 ▲현민의 생명 지키기 ▲재해 뒤 현민의 생활 지키기(긴급물자 등 피난생활지원) ▲복구작업 조기 완료로 요약했다. 특히 1995년 한신대지진 때 희생자의 80%가 건물붕괴로 발생했던 점을 중시,‘붕괴 제로’를 실현하기 위해 금전적·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시가와 지사는 시즈오카현은 28년전부터 지진과 쓰나미에 대비해왔다고 소개했다. 일본 국내나 지난해 말 남아시아 지진 등 세계 대지진 현장에 현직원을 파견, 조사활동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보강하고 있다. 그 결과 방대한 자료가 축적됐고, 지진과 쓰나미 예측기술도 최고수준이라고 했다. 한편 현내 하마오카초에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과 관련,“일정 진동 이상이면 자동적으로 작동이 중단되도록 설계돼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20년이상 원전을 가동했지만 문제가 없었고 내진도 강화, 지역주민을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대지진으로 멈춰서면 다른 발전소 전력이나 일본내 송전망을 이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지진위험지역으로 알려진 이후의 변화에 대해 “현 자체적으로는 물론 중앙정부에 특별 대책을 요구, 지진사전예측 기술을 많이 발전시켰다.”며 5년 단위로 그동안 5차례의 계획을 성사시켜 내진설계를 보강했고 쓰나미대피소와 대피로 등을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결과 “쓰나미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99%까지 예보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어 ‘피해 제로’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즈오카현에는 지진발생이후 강물을 정화하는 일본 최대의 정수회사가 있다. 이시가와 지사는 그러나 지진이나 쓰나미 대책을 본격 산업화하는 문제에는 신중했다.2002년 한·일공동월드컵 등 대형행사 때도 피난유도는 이벤트회사에 맡겼다. 이시가와 지사는 29년전 대지진 경고가 나와 산업이나 관광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오히려 공장 등의 재해대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돼 안전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역설적으로 자랑했다. taein@seoul.co.kr
  • [우리구 올해는] 김형수 영등포구청장

    영등포구청 소속 1300여명 공무원들의 명함에는 죄다 ‘제가 바로 구청장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구청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지닌 사람은 김형수 구청장뿐인데 이런 일이 어떻게 비롯됐을까. 김 구청장은 “말단 공무원이 일상적인 민원을 처리할 때조차 조직의 최고경영자(CEO) 시각에서 다루고, 좀더 자율성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라는 의미”라며 “올해초부터 영등포구청 공무원들이 명함을 만들고 이같은 문구를 새기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로 지난해 6월 재선거를 통해 당선된 김 구청장에게 2005년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민선 1·2·3기 구청장의 도중하차로 인한 구정 공백에 대한 구민들의 우려를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구청장이 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영등포구를 ‘살고 싶은 도시·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주민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교육으로 보고 지난해 말 구청에 교육 관련 전담팀까지 만들었다. 가장 큰 목표는 외국어고, 과학고 등의 특수목적고를 유치하는 것. 또 지역의 고등학교를 일류 고등학교로 만들기 위해 교사·학부모들과의 스킨십도 강화하고 있다. ●지역간 개발 격차 해소 역점 지역간 개발 격차를 없애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영등포구는 여의도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1960·7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지역이 있을 정도로 발전의 편차가 심합니다.42%가 준공업지역에 묶여 있어 개발이 지연됐습니다. 대규모 공장들로 인해 공해·공장도시라는 이미지도 강하고요.” 재래시장·달동네가 있는 영등포 2·5·7가는 ‘도심형 뉴타운’으로, 신길동은 미니 신도시인 ‘주거형 뉴타운’으로 만들게 된다. 또 ㈜경방, 방림방적 공장, 문래동 공장지대 등은 개발해서 상업·주거 시설로 탈바꿈하게 된다. 기존의 여의도는 70층 규모(250m)의 ‘서울 국제금융센터’가 들어서는 등 지속적으로 개발을 추진한다. ●안양천에 문화·레저시설 조성 영등포구의 유일한 자연 자원인 안양천도 푸른 도시로 가꿔나갈 방침이다. 낚시·물놀이를 즐기며 추억을 되새기고, 추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는 것이 목표다. 자연친화적인 공간·문화·레저 시설을 구비하고, 현재 3∼4급수인 수질을 1∼2급수로 개선할 방침이다. 청장으로 부임하자마다 청장실 벽을 유리벽으로 바꾼 김 구청장은 ‘투명행정’을 내세운다. “유리벽으로 바꾼 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민원인들을 자주 맞게 됐습니다. 귀찮지 않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저는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투명한 민원 처리가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0)명태잡이의 본산 강원도 고성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0)명태잡이의 본산 강원도 고성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강원도 최북단 고성 거진항이 부른다.2월 말이면 늘상 열리는 명태축제가 올해로 일곱회 째다. 올해는 24일에 시작해 바로 어제인 27일에 끝이 났다. 그런데 축제랍시고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 그 많던 명태들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천만 다행이랄까. 올해는 축제가 열릴 무렵 명태가 기대보다 많이 잡혀 그럭저럭 외지 손님들에게 ‘우리 것’을 팔 만큼은 되었다. 명태들이 잔치 분위기를 미리 읽고 잔치판을 기웃거리다 그렇게들 잡힌 것일까. 도대체 그 많던 명태는 어디로 갔을까. 서울에서 곧장 고성 거진항으로 가지 않고 먼저 속초엘 들렀다. 속초에서 1-1번 시내버스를 탔다. 이따금 버스 차창가에 자리 잡고 창문 너머의 동해 풍경을 음미하면서 떠나는 바다여행은 나름의 운치와 여유가 있다. 물론 바다쪽에 앉아야만 바다를 볼 수 있지만…. 이 노선버스의 특징은 속초항을 출발해 천진, 아야진, 공현진, 그리고 간성읍내와 반암리를 거쳐 거진항까지 끊임없이 정차, 발차를 반복하되 반드시 옛길로만 달린다는 점이다. 동해안에서 군생활을 한 독자라면 기억날 것이다. 이 시내버스가 달리는 옛길이야말로 일제시대부터 있던 바로 그 ‘신작로’다. 왜 느닷없이 버스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30여년 전에 이곳 동해안 포구마다 가득 쌓여 있던 명태 생각이 떠올라서다. 거진항에도 당시 거짓말 보태지 않고 무슨 동산처럼 명태가 쌓여 있었다. 거진항이 한 눈에 굽어보이는 산동네 성황당에 오르면 명태를 말리느라 읍내 전체가 명태밭이었고, 그래서 낯선 이에게 생태 한두마리 건네 주는 것으로는 셈도 치르지 않았다. 30여년 전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나.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명태가 그런 대로 잡혔다. 그러다가 최근 5년여 전부터는 급격히 어획량이 줄어 지금은 그 ‘동해명태’를 구경하기도 어렵다. 서울 등지의 값비싼 생태는 대부분 북한산 아니면 일본산이다. 온난화 때문에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떤 문제만 생기면 온난화를 앞세우는 그런 주먹구구식 견해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노가리와 명태는 다른 종자? 근자에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노가리는 명태와 다른 종자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잡아 먹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 바람에 명태가 씨마를까 걱정하던 어부들도 주저없이 노가리를 잡았으며, 해마다 엄청난 양이 술안주로 사라졌다. 정부의 공식 견해도 “노가리는 명태새끼가 아니다.”는 것이었으니 민·관 합동으로 명태의 씨를 말린 꼴이다. 결론은 뻔하다. 노가리의 부모가 틀림없이 명태임이 확인되었다. 그렇게 새끼들을 잡아들이고서야 어찌 큰고기가 남아 잡히기를 기대할 수 있으야. 남획은 어김없이 인간에게 보복을 가하여 ‘국민의 생선’이었던 명태는 이제 특수 계층의 생선이 되고 말았다. 만약에 원양태마저 사라진다면, 명태는 역사책에서나 만나게 되리라. 명태는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이다. 그 자리를 넘보는 생선은 없다. 서해안 조기가 여기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기는 하지만, 미안하게도 굴비는 총어획량에서 북어에 훨씬 못미친다. 조기와 명태의 공통점은 ‘절받는 물고기’란 점이다. 조기는 제사상 같이 격식이 필요한 곳에서나 대접을 받지만 명태는 시도때도 없이 상전대접이다. 전국 어딜 가나 ‘북어 대가리’ 하나 안걸린 곳이 없으며, 굿판·고사판의 단골이기도 하다. 의례의 주역으로 자리잡았음은 그만큼 품격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이며, 그 사실 만으로도 역사문화적 권위를 담보한다. 고려나 조선 전기에는 명태라는 말이 확인되지 않는다. 문헌상의 ‘무태어’가 명태라는 주장이 있으나 입증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300여년 전 명천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최초로 잡았다 해서 명태라고 부른다.”는 속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전설이 최소한의 진실은 가진다. 함경북도의 명산인 칠보산에 면한 명천에서 남쪽의 원산 근역까지가 천혜의 명태잡이 어장이었다.“함경도 명천군에서는 주로 낚시로 잡다가 어장이 남북으로 넓혀진 것”이라고 일본 학자들은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북청 신포는 지금도 북한의 동해어업 전진기지이며, 그 앞에 마량도가 있다. 이 마량도에 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북어’란 본래 북쪽 바다에서 잡은 것 일제 때부터 명태잡이 본산으로 이름난 섬. 신포읍에서 불과 10리 거리다. 섬에는 12곳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인구는 300여호에 달했다. 동해에 섬이 없다는 통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문암리만의 마천포 등이 유명했으며 도민들 대다수가 어업에 종사하였으니, 한국전쟁 와중에 월남해 속초 청초동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이들 중에 상당수가 바로 마량도와 신포 출신들이다. 그들이 함경도식 어법도 가지고 내려와 남한땅에서 함경도식 어법으로 명태를 잡았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 마량도 근역은 산란을 위해 몰려온 명태들로 ‘물반 고기반’이었다. 말린 건태를 북어, 생태를 명태라 부른다. 그러나 원래는 북어와 명태는 동의이어(同意異語)였을 것이다. 리만영의 ‘재물보’에는 “북쪽 바다에서 잡으므로 북어”라고 했으며, 유희는 ‘물명고’에서 “대구어의 작은 것인데 동해의 북쪽 끝에서 잡으므로 북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우리나라 동북해 중에 일종의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북어라 하며 세속에서는 명태라 한다.”고 했다. 그런 것이 오늘날에는 말린 것을 북어라고 부르니 어찌된 일인가. 본디 남쪽에서는 생태 구경을 못하고 고작해야 말린 것만 먹었다. 이 때문에 북쪽에서 내려온 북어라면 오로지 말린 건태만을 뜻하는 것이 되어 급기야는 북쪽에서까지 건태를 모조리 북어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에서 “생것을 명태, 마른 것을 북어라 한다.”고 한 것을 보면 적어도 18세기부터 그렇게 구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태는 대구과에 속하는 한류성 어종이다. 일본의 중부 이북, 중국 연해, 북대서양의 동서 연해에도 분포한다. 일본 것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같은 종이지만, 베링해의 명태는 길이와 몸집이 크고 맛도 많이 달라 일부 수산학자들은 종이 다르다고 여기기도 한다. 명태는 여름에는 200m 이상의 바다 깊은 곳에서 살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떼를 지어 몰려든다. 산란기는 1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보통 한마리가 낳는 알 수는 25만∼40만개 가량. 그러니 우리가 즐겨먹는 명란젓 한 젓가락이 얼마나 많은 명태의 생명인지 스스로들 가늠해 볼 일이다. ●명태는 ‘밑물고기’… 낚시·그물 늘어뜨려 잡아 명태는 ‘뜬고기’가 아니라 ‘밑물고기’이기 때문에 잡는 방식도 이에 따라 발달했다. 낚시를 밑으로 늘여 놓는 연승바리, 그물을 밑으로 드리우는 그물바리로 잡는 게 일반적이다. 전통적으로 명태잡이배 선장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낚시나 그물을 어느 깊이로 드리우는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명태 떼가 노는 적절한 수심을 노련하게 잡아내야 속칭 ‘대박’이 터지기 때문이다. 같은 어장에서도 이 배는 만선인데, 저 배는 텅 비어 있는 수도 있다. 명태축제 현장체험에서 명태낚시 찍기대회가 열렸는데, 이는 바로 연승낚시를 준비하는 여성들의 노동분업을 놀이화한 것이다. 연승배 선장의 노하우는 고단수의 경험적 지식체계인지라 만만찮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GPS 같은 어군탐지기가 등장하면서 어부들의 체험적 지식은 뒷전으로 밀렸으며, 잘 나가던 선장들은 실업자로 전락했다. ‘바리’라는 말은 고기잡는 방식을 뜻하거나 아니면 ‘다금바리’처럼 어종 자체를 뜻하는 독특하고 순수한 우리 말이다. 낚시의 경우는 명태어족이 감소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줄어들어 지금은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낚시로 그때그때 잡아올리는 연승바리 명태가 그물에 걸린 채 밤새 뻣뻣하게 죽어 나오는 그물바리 명태보다 값이 비쌀 것은 뻔한 이치다. 비교하면서 먹어보니 신선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명태는 동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고, 그래서 산업적 가치가 가장 큰 어족자원이었다. 생태는 물론 냉동, 말림, 소금절임을 해서도 먹는다. 명태지리, 고명지짐이, 매운탕, 무왁찌개, 알탕, 생태김치, 아가미깍두기, 생태김치, 창란젓, 명란젓, 명태식해, 아가미식해, 명태전, 명태완자 등등 요리법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간장에는 비타민A가 많아서 간유를 뽑아 낸다.1911년에 308만여 관을 잡았던 것이 1919년에는 무려 2066관이나 잡았다. 짧은 사이에 어획량이 무려 7배나 증가했다. 건어물은 이동성이 좋아 북어는 전국 각처로 실려 나갔으니, 명태와 상관없는 서해안에서도 명태는 사람들의 입을 떠나지 않았다. ●다양한 이름만큼 널리 사랑받은 물고기 이 즈음의 명태축제 때 잡히는 명태는 ‘춘태바리’다.‘동태바리’는 음력 시월부터 동지·섣달에 잡히는 것,‘춘태바리’는 설날을 지나 잡히는 명태를 말한다. 크기에 따라서도 대태, 중태, 소태, 그리고 아주 작은 앵태, 혹은 노가리로 나뉜다. 본디 노가리는 부산지역 말이다. 이 밖에 산란을 마쳐 뼈만 남은 꺾태, 마지막 어기에 잡힌 막물태, 초겨울 도루묵을 쫓는 은어바지, 섣달에 잡히는 섣달바지 등 다양한 이름이 존재한다. 낚시로 잡은 조태, 그물로 잡은 망태, 여기에다 싱싱한 생태, 말린 북어(건태), 얼었다 녹은 황태, 딱딱하게 마른 깡태, 내장과 아가미를 빼고 4∼5마리씩 한 코에 꿰어 반쯤 말린 코다리까지 가지각색이다. 북한의 민속학연구소 김희권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명태의 다른 이름도 들려준다.4월의 사태,5월의 오태, 아침해가 올라오기 직전과 저녁에 해 떨어질 무렵 잡은 때기물, 강원도에서 잡은 강태, 배를 가른 피태 등등이 그것이다. 이름이 다양함은 명태가 보편적 어류여서 서민 생선으로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오죽하면 이규경이 “일상 반찬에 쓰이며 여염집과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마른 고기를 제사에 쓸 정도로 흔하고도 쓸모있는 물건이다.”고 했을까. 축제에는 20여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려든다. 화려했던 옛 추억을 기려서일까. 축제의 팡파르는 우아하게 바다로 퍼지는데 정작 주인공은 그곳에 없다. 만약 거진항이 폭파된다면 온 국민이 난리일 것이나 오랫동안 먹어온 ‘국민생선 제1호 명태’가 사라졌는데 아무도 말들이 없다. 명태의 소멸은 바로 한때 흥청거리던 거진읍내를 여지없이 폭파시킨 꼴이니, 일손 빼앗긴 어민들은 시름없이 방황만 하고 있다. 누구의 책임일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많던 명태는 모두 어디 가고, 값비싼 금태만 남아 있을까.
  • 안산 풍도·화성 도리도 앞바다 ‘어린 물고기 보호해역’ 지정

    경기도 안산시 풍도와 화성시 도리도 해역이 어린물고기 보호해역으로 지정돼 향후 3년동안 낚시 등 어로행위가 전면 금지된다. 도는 23일 어린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올해부터 이들 지역을 어로 및 개발행위가 한시적으로 금지되는 ‘어린 물고기 보호 해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달 중 어린 물고기 보호 해역으로 지정되는 곳은 안산시 풍도앞 해역 300㏊와 화성시 도리도 해역 300㏊로 이 지역에서는 낚시 등 어로행위를 하거나 매립·준설 등의 공사를 할 수 없다. 이러한 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풍도 및 도리도 앞 바다에는 지난해 우럭과 넙치 등 각종 어종의 치어 360여만마리가 방류됐다. 수산업법에 따라 지정되는 어린 물고기 보호구역내에서는 방류한 치어가 성어로 성장할 때까지 3년동안 각종 어로행위는 물론 매립·준설 등 개발행위도 전면 금지된다. 도는 어업지도선 등을 동원, 해당 해역에 대한 순찰활동 및 홍보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도 관계자는 “어린 물고기 보호 해역 지정은 해당 지역 어민들도 크게 찬성하고 있는 사업”이라며 “앞으로 치어방류 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보호구역 지정 확대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실종 낚시객 4명 이틀째 수색

    완도해양경찰서는 13일 선박충돌로 실종된 낚시객 4명을 이틀째 수색하고 있다. 앞서 12일 오전 7시22분쯤 전남 완도군 청산도 북서방 6.5㎞ 해상에서 전남 강진 마량선적 7.93t급 낚시어선 해마레저호(선장 조진상·45)와 중국 활어운반선 884t급 푸위안위호(선장 렌첸·40)가 충돌해 낚시어선에 타고 있던 4명이 실종되고 선장 조씨는 중국선박에 구조됐다. 완도해경은 경비함정 14척과 관공선, 민간선박 등 모두 48척의 선박과 제주, 목포해경에서 지원한 헬기 2대를 동원, 사고현장 주변 반경 20㎞를 집중적으로 수색하고 있으며 경찰관, 민간인 80여명도 해안가를 수색하고 있다. 완도해경은 또 수색을 통해 침몰된 해마레저호의 선박신호포판과 실종된 낚시객의 것으로 추정되는 낚시가방 2개, 쌍안경 등을 인양했다. ◇실종자 명단 ▲박성용(46·전남 강진군 강진읍) ▲김옥서(46·전남 강진군 강진읍) ▲곽수호(34·전남 해남군 해남읍) ▲최주호(38·전남 강진군 군동면)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儒林(282)-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2)-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내가 묻자 운전사는 대답하였다. “두향의 무덤이 남아있다고 내가 말하였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500여 년 전에 죽은 기생 두향의 무덤이 아직 남아있다니, 기생이라면 어쨌든 천민이 아닌가. 한갓 천민이었던 두향의 무덤이 아직 남아있다니. “정말입니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운전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세상을 속아서만 살아오셨습니까. 두향의 무덤이 아직 남아있다니까요.” “안내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운전사는 쾌활하게 말을 받았다. “타세요.” 나는 서둘러 택시에 올라탔다. 차는 곧 출발하였다. “두향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 단양에 오셨다면 너무 일찍 오셨습니다. 해마다 5월 단오날이면 두향제란 축제가 열리는데, 그때 오시면 추모제를 함께 보실 수 있을 텐데요.” 매년 5월초에 기생 두향이를 위해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는 운전사의 말도 내겐 놀라운 것이었다. “일제시대 때에는 이 일대의 기방패에서 무덤에 술을 따라 올리고 제향을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향토사연구소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운전사는 나이가 듬직하였으므로 이곳 일대의 지리뿐 아니라 지역에 얽힌 사연에 대해서도 풍부한 상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점은 내게 다행이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만 해도 무덤가에서 낚시질도 하고 뛰어놀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가깝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어째서요.” “1985년도엔가 이곳 일대에 댐이 생기고 큰 호수가 생겨 수몰로 하마터면 두향의 무덤이 물에 잠길 뻔하였지요.” 운전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곳 일대가 인공호수로 수몰되기 전 청년시절 나는 스승과 더불어 수석을 캐러 이곳 남한강 강가를 몇 차례 찾은 적이 있었다. 그 무렵에는 수심이 깊지 않아 무릎까지만 바지를 걷으면 강가에 펼쳐진 수석은 얼마든지 채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여년 전 이곳 일대의 계곡에 댐을 쌓은 후부터는 모든 수재민들을 새로운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켜 신단양읍이 형성되고 수심 40m의 깊은 다목적 호수가 생긴 것이었다. “그러면 두향의 무덤도 함께 수몰되었다는 겁니까.” 다급한 목소리로 내가 묻자 운전사는 머리를 흔들며 대답하였다. “원래는 마을 전체와 함께 물에 잠길 운명이었는데, 마을사람들이 들고일어나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산위로 이장하여서 간신히 보존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옛날처럼 나룻배를 타거나 물이 마를 때면 걸어서 찾아갈 수 없게 되었지요. 굳이 두향의 무덤을 찾아가시겠다면 나루터에서 배를 빌려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운전사의 말은 정확하였다. 조선중기의 문인이자 실학자였던 이광려(李匡呂·1720∼1783)는 두향의 사후 150여 년이 지난 후 이곳 두향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두향의 묘가 있는 위치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외로운 무덤이 관도변에 있네.(孤墳臨官道)” 관도라면 오늘로 말하면 국도를 가리키는 말. 따라서 두향의 무덤은 관도변에 있었던 것이 충주댐의 공사에 따른 수몰로 산위로 이장된 것이 분명하였던 것이다.
  • [연휴엔 어딜갈까] 싱하형, 쓰나미 헤치고 말레이시아 가다

    [연휴엔 어딜갈까] 싱하형, 쓰나미 헤치고 말레이시아 가다

    형이다. 한동안 형 없었다고 한강굴다리 점령했던 넘들 긴장해라. 형 어딨었냐고? 말레이시아로 여행 다녀왔다. 쓰나미 사태로 동남아시아가 난리인데 무슨 말레이시아 여행이냐고? 지금은 다 복구됐다. 형은 거짓말 안한다. 말레이시아 절대 안전하다. 못 믿겠다고? 지금 한강굴다리로 냉큼 뛰어와라.10초 주겠다.8초나 9초 이런 건 소용없다. 정확히 10초다. 인터넷 스타 ‘싱하형’ 버전으로 운을 띄웠다. 다소 거칠지만 정감있는 말투로 인기를 끈 싱하형 캐릭터가 마치 말레이시아같다. 그렇게 다이내믹하면서 편안한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다. ●페낭섬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페낭섬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왔으니 선탠부터. 페낭섬 북쪽에 자리잡은 리조트마다 바다가 보이는 실내 풀장을 가지고 있다. 한밤에 호텔 방구석에서 무리한 허니문 부부들! 낮엔 그냥 실내 풀장 주변에서 선탠하고 쉬어라. 겨울에 그을린 피부 자랑하고 싶어도 선탠을 추천한다. 리조트 주변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노상 음식점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 거기에다 기상 천외한 물건이 넘쳐나고 깎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벼룩시장도 있다. 무조건 부르는 가격에 10분의 1부터 흥정을 시작해야 적정선에서 살 수 있다. 페낭섬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페낭힐이다. 스위스에서나 봄직한 미니 산악열차를 타고 710m 정상에 오르면 페낭섬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열대우림 위를 나무판자에 의지해 건너는 구름다리(Canopy Walk)로 재밌다. 큰소리 떵떵 치다가 오금이 저려 달달 떠는 사람 여럿 봤다. ●랑카위 해상레포츠를 경험해 보고 싶으면 랑카위섬으로 가라.104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랑카위는 주민의 90% 이상이 말레이계로 이슬람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동 중에 신호등을 발견한다면 사진을 찍어볼 것. 랑카위섬에 있는 전체 6개의 신호등 중 한 개를 발견한 것이니까. 랑카위섬에는 해상레포츠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달랑 물안경만 가지고 산호초와 열대어를 구경하는 스노클링이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 강력 추천한다. 이밖에 스쿠버다이빙, 산호섬 보트 여행, 바다 낚시, 카누, 제트스키까지 완전 해상레포츠 백화점이다. 총길이 950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가 전망대 역할을 한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열대우림 위로 바람에 좌우로 흔들리는 케이블카 안에 앉으면 내가 돈 내고 왜 이걸탔나 살짝 후회도 된다.950m가 이렇게 길 줄이야. 마하트르 전 수상이 임기동안 세계 각국에서 받은 선물을 퍼다나른 갤러리아 퍼다나(Galleria Perdana), 억울한 죽음으로 랑카위에 7세대 동안 저주를 내렸다는 마하수리 전설로 유명한 마하수리 박물관(Mahsuri’s Tomb Museum)도 갈만한 곳이다. ●쿠알라룸푸르 쿠알라룸푸르도 안들르고 말레이시아 갔다왔다고 말도 꺼내지 마라. 특히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는 꼭 봐야한다.452m 높이로 지난해까지 6년간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로 꼽혔다. 우리나라의 건설업체가 이 타워의 두 동 중 한 동을 지은 이 곳에 가봐라. 가슴 뿌듯함에 애국가가 서라운드 입체음향으로 울려퍼진다. 빌딩 내부를 구경하려면 아침 8시30분부터 빌딩 입구에서 입장 시간을 배정받아야 하는데 하루 선착순 150명만 관람할 수 있다. 이곳의 지하쇼핑몰은 부킷빈탕과 차이나타운과 함께 쇼핑하기 좋은 곳이다. 약간 접은 우산 모양의 천장과 이슬람스타일로 화려하게 장식한 예배당으로 유명한 국립회교사원(National Mosque)도 추천하는 코스다. 이곳에 입장하려면 여성의 경우 이슬람 전통의상인 두건모양의 ‘두동’과 가운 형태의 ‘바주쿠롱’을 입어야 한다.(입구에서 무료로 대여해준다.) 예배시간에는 방문이 금지되므로 방문시간을 잘 고려해야 한다.(금요일:15:00∼16:00시,17시30분∼18시30분), 토∼목요일:10:00∼12:00시,15:00∼16:00시,17시30분∼18시30분). 이 정보는 인터넷에서도 찾기 힘든 고급 정보다!잘란 술탄 이스마엘 거리는 쿠알라룸푸르의 밤문화를 알 수 있는 곳. 각종 바와 클럽에서 신나게 노는 건 좋지만 술마시고 주정부려서 어글리코리안의 오명을 쓰지 말도록 하자. ■ 이것만은 알고가라 마지막으로 필요한 정보 몇가지 더. 말레이시아의 통화는 링깃(RM)이다. 원화를 현지에서 바꾸기 힘들 수도 있으니 US 달러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1RM=310원 정도,1USD=3.7M) 여권은 만료일부터 6개월 이상 여유가 있어야 할 것.6개월 이하면 입국이 취소될 수도 있다. 페낭과 랑카위에선 대중교통을 찾아보기 힘드므로 택시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기본요금이 2RM 정도 (600원). 돈 걱정 말고 신나게 타고 다녀라. 더운 열대지방이긴 하나 실내에는 에어컨 바람이 세고 실외 역시 덥다기보다는 햇빛이 강하므로 긴팔 옷을 하나 꼭 챙겨갈 것. 그래도 궁금한 거 있으면 말레이시아 관광청(02-779-4422,www.mtpb.co.kr)에 전화해 문의해보자. 말레이시아 글 사진 전현석기자 ace@seou.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제3지대(KBS1 밤 12시) 30년 만에 찾아온 최대 풍어, 거제도에 금대구가 돌아왔다. 경남 거제 외포항은 부쩍 늘어난 대구로 온통 들썩이고 있다.10년 전, 갑자기 대구가 사라지면서 많은 어부들이 외포항을 떠났지만 바다와 항구를 지켜온 사람들은 요즘 대구떼와 반갑게 재회 중인데, 그 현장을 찾아가 본다. ●세잎 클로버(SBS 오후 9시55분) 성우는 세형의 집에 진아가 있다는 얘기를 듣자 오토바이를 타고 데리러 간다. 성우는 진아가 세형의 집에서 의사의 진료까지 받으며 극진히 대접받는 것을 보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진주할머니는 성우를 부려 먹으며, 진아를 자기 손녀처럼 보살피며 목욕까지 시킨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이 버스를 타고 미국에서 코스타리카까지 환경 문제를 일깨우는 여행을 하고 있다.70년대에 제작된 이 에코 버스는 멕시코에서 체류하는 일주일 동안 아보카도 기름만으로 달렸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야채 기름으로 달리는 에코버스를 소개한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탐구력이 쑥쑥, 신나는 과학놀이 시간을 갖는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에는 수많은 과학 원리들이 숨어있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이번 시간에는 물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물에 대한 이해의 기회를 갖는다. 또 과학 관련 정보사이트도 안내한다. ●TV특종 놀라운 세상(MBC 오후 7시20분) 낚시를 너무 좋아해 일도 그만 두고 낚시도구 도매업을 새로 시작한 ‘낚시 기인’ 윤여영씨의 낚시이야기를 듣는다. 하루 밥은 굶을 수는 있어도 콜라를 안 마실 수는 없다는 김현숙씨. 몸이 아플 때도 콜라만 마시면 낫는다는 김현숙 아주머니의 콜라 사랑을 소개한다.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아내가 비행사들이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훈련을 시작하면서 남편 정준영 대위는 느닷없이 홀아비 신세가 됐다. 혼자 있을 남편이 걱정된 아내 박 대위는 훈련 중 틈틈이 전화를 해 남편을 챙긴다. 한편, 사격비행을 마친 정 대위는 평가에서 사정없이 혼이 나는데….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어진다고 했던가. 한 청년, 독문학도였다. 어느 여름날 시골의 느티나무 아래였다. 청년은 차마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또 아니 들었던 것을 듣고야 말았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속세의 풍진을 훌훌 털어냈다. 번뇌도, 욕심도 없다. 끊어질 듯하면 이어진다. 점점 눈이 부신다. 귀가 떨린다. 쿵쾅쿵쾅, 가슴이 요동친다. 어쩔거나, 어쩔거나. 늪이다. 헤어나올 수가 없다. 인간사 삼세번,3일 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청년은 고독한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김명곤(53) 국립극장장.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소리꾼으로 열연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딸(오정해)에게 약을 먹여 장님이 되게 한 후 소리를 가르치는 ‘아버지’는 더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김명곤’ 하면 평소 1980년대 민중예술계를 대표하는 배우·연출가·판소리 이수자 등으로 꼽힌다. 지금은 문화CEO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 국립극장 사상 처음으로 공채(2000년)로 극장장에 임명된데다 연임의 기록까지 세운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이밖에 ‘광복60돌60인위원회’ 위원을 비롯, 올 11월에 열릴 APEC행사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춥고 배고픈 재야 연극인 생활을 할 때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을 터이다. “오는 4월이면 국립극장이 개관 55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에 맞춰 국립극장은 지난해 10월 해오름극장에 이어 나머지 극장시설에 대한 리모델링 작업이 완전히 끝납니다. 모두 17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지요. 예쁜 새옷을 입고 좀더 편한 모습으로 국민들과 호흡하겠습니다.” 그의 집무실, 탁자 위에 놓인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잃어버린 나, 그리고 잊었던 우리와 다시 만나는 그런 무대를’ ‘무대와 친숙하지 않은 소외된 대중 속으로 더 가까이 더욱 뜨겁게’ 어떤 철학으로 극장을 운영하는지 짐작이 갔다. 글의 주인공은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극장의 단골고객이며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국립극장장에 처음 취임할 때 모든 것을 (기존과)반대로만 하자고 다짐했단다. 즉 권위와 폐쇄, 관료적인 국립극장에서 탈권위적인 국민 속의 극장으로 개혁시키고자 했던 것. 스스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우선 공연장 명칭만 하더라도 대극장을 ‘해오름’, 소극장을 ‘달오름’, 실험극장 ‘별오름’ 등 부드럽게 변화시켰다. 또 무지개 길과 은하수 쉼터 등의 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기존의 연평균 관객 30만에서 50만명으로 늘어났다. 수입도 3배 가까이 증가해 재정자립도를 7%에서 18%까지 끌어올렸다. 해외 유명 국립극장의 재정자립도가 대부분 15∼25%인 점을 감안하면 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국립극장은 6·25 발발 두달 전에 처음 출발했습니다. 국립극장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굴곡의 현대사나 다름없습니다. 어쨌든 올 한해는 우리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로 쭉쭉 뻗어나가게 할 생각입니다.” 화제를 돌렸다. 진보성향이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약간 웃으며 “대학시절, 순수지향적 사회운동이 시작될 때 동료가 잡혀가는 것을 보고 예술과 현실사회 사이에서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당시 임진택·채희완·김석만씨 등과 함께 민족극 운동1세대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진보적 행보는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넓힌다. 연극 ‘갑오세 가보세’ ‘점아점아 콩점아’ ‘인동초’ 등 민족민중극을 연달아 선보였다. 주로 인권과 평등, 분단의 아픔을 고민했다. 예술에의 집착도 이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연극인으로 진보적인 문예운동을 펼칠 때 다섯가지 마귀, 즉 주마(酒魔), 병마(病魔), 수마(垂魔), 궁귀(窮鬼), 색마(色魔)에 시달리느라 좌절도 많이 겪었습니다.”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2학년 때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은 아예 먹고 자는 곳이었다. 첫 역할은 데모하는 학생을 데려다가 두들겨패는 정보과 형사였다. 교수의 첫째딸 역을 맡은 여학생이 예뻐서 더욱 신났다. 특히 연극이 끝나면 라면과 소주가 나왔다. 밤새 친구들과 소주마시며 얘기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잤다. 아침에 선배가 머리맡에 갖다놓은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세수는 늘 학교 우물가. 그런 생활이 계속됐다. 주마의 결과는 곧 병마로 돌아섰다.2학년 말 폐결핵이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약을 먹고 매일 잠만 잤다. 이제는 수마가 시작된 것.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던 처지였다. 하지만 꼼짝조차 하기 싫었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방안퉁소’(방안에서 하루종일 퉁소만 부른다는 뜻)로 불렸을까. 결국 약도 못 사먹는 궁귀의 상태로 빠졌다. 색마에 대한 설명으로 그는 “연극을 하다 보면 늘 여성과 어울리게 된다.”며 웃는다. ●명창 박초월선생에 판소리 배워 대학 3학년 때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몸이 안 좋아 휴학 중이던 여름날. 전북 김제에서 친구를 만났다. 전북대 영문과에 재학 중인 그는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다. 심심해서 친구를 따라나섰다. 시골의 큰 느티나무아 래의 정자. 한 여인이 아이들 4∼5명을 앞에 앉혀놓고 북을 치며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여인의 소리는 마디마디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이런 것이 있었단 말인가. 사흘동안 그렇게 정자에 있었다. 그의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음악이란 오페라나 가곡이 전부인 줄 알았죠. 난생처음 판소리를 듣고 왜 학교에서 한번도 안 배웠는지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종로3가의 단성사 건너편에 위치한 명창 박초월 선생의 학원을 찾았다. 학원비를 겨우 마련한 뒤 등록했다. 두어달 후 학원비가 바닥났다. 사정을 안 박 선생은 그냥 다니라고 했다. 대신 전화도 받고 학생들의 가사를 받아쓰는 일 등을 했다. 나중에 박 선생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이렇게 광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또한 마당극과 민요 등을 어떻게 하면 창작극에 잘 접목시키고 삽입시켜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기자·교직 거쳐 연극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가 된다. 하지만 연극과 판소리의 끼는 버리지 못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방학 때면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독일어과목 첫 수업 때 김 극장장은 “너희들이 독일어를 왜 배우냐, 먼저 우리것을 잘 알아야 한다.”며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한 여제자가 이에 쏙 반해버렸다.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다행히 15년 앓아오던 폐결핵은 아내의 헌신적 간병 덕분에 결혼 2년만에 말끔히 나았다. 지금도 이는 기적이라고 여긴다. “국립극장장이 됐을 때 아내는 이제야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무척 좋아했지요.” 어릴 적 그의 집은 전주시 중앙동. 하지만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장원이 기울어지면서 큰 집에서 작은 집, 중앙에서 변두리쪽으로 자꾸 밀려나갔다. 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한 낚시광이었다. 김 극장장은 모진 세월을 이겨내는 어머니와 인내심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좋아 독일어를 택했다. 가난한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한번도 ‘파우스트’를 잊어본 적이 없다. 올해가 극장장 연임의 마지막해. 내년에 다시 실업자가 된다는 그는 “자유로워지면 꼭 파우스트 같은 작품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전주 출생 ▲76년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졸업 ▲77년 뿌리깊은나무 기자 ▲78∼79년 배화여고 교사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대표 ▲98∼99년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회장 ▲99년 9∼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 ▲2000년1월∼현재 국립극장장 ▲2000년11월∼현재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추진위원회 위원 ▲저서=광대열전, 점아점아콩점아, 꿈꾸는 퉁소쟁이 등 ▲연극=장산곶매, 나의살던 고향은, 장사의 꿈 등 ▲영화=일송정 푸른솔,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등 ▲상훈=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서편제), 자랑스런 서울시민상(1994), 제1회 현대연극상 연출상(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5)겨울 동해 별미, 도루묵·양미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5)겨울 동해 별미, 도루묵·양미리

    사람들은 왜 기를 쓰고 ‘고급 어종’만 찾을까. 고급 어종만이 고급화한 스스로의 미각을 만족시킨다고 믿는 것일까. 평범 속에 진리가 있듯, 흔하디 흔한 물고기들이 외려 우리의 미각에 들어맞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구한 세월, 그 맛의 유전자가 혀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동해에서 겨울철 진미를 찾아 나섰다. 동해안 겨울 진미는 단연 명태다. 그러나 이곳 명태잡이는 ‘사형선고’를 받은지 오래다.‘북양태’와 ‘일본산’이 득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만만치 않은 어획량을 유지하면서 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선 ‘도루묵’과 ‘양미리’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런데 정작 도루묵과 양미리에 관한 일반인의 지식 수준은 의외로 낮다. ●미끈한 생김새에 비린내도 없는 ‘도루묵’ ‘실컷 일을 해놨더니 망조가 들어 그르치는 상황’을 일컬어 ‘말짱 도루묵’이라고들 한다. 도루묵이 오죽 하찮게 보였으면 속담에서조차 이렇게 허투루 비교되고 비하될까. 일설에는 전쟁통에 피란가던 임금이 이걸 먹고는 너무 맛이 있어 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 후 전쟁이 끝나 환궁해서 그 맛을 다시 보려고 이걸 청해 먹었는데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루 물리라.”고 한 데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 임금이 선조라는데,‘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말짱 도루묵’은 없다. 값이 비싸져 ‘도루묵이나 먹자.’는 말도 쉽게 할 수 없다.‘도루묵을 먹다니….’정도로 바뀌어야 격에 맞게 됐다. 도루묵은 깔끔한 신사 같다. 비린내가 거의 없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외출에 나선 미끈한 멋쟁이 같은 생김새다. 맛도 외모를 닮았다. 비린내를 풍기면서 뭉기적거리는 생선이 아니라선지 일본인들은 이 도루묵을 보면 군침을 삼키며 달려든다. 더군다나 알 밴 도루묵은 금값이다.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도루묵은 상당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도루묵 값이 비싼 것은 바로 일본 수출 때문이다. 정의철 동해수산연구관은 “우리 수산물 값은 일본으로의 수출 여부가 좌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 후 일본 수출길이 막히자 값도 눅어졌다.2년 전쯤의 일이다. 도루묵은 일본 시마네현 쪽에서도 많이 잡힌다. 우리 바다의 도루묵이 산란한 뒤 일본쪽으로 회유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생태 조건을 가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기호도가 높은 만큼 일본 학자들의 도루묵에 대한 관심은 높다. 점착성 침성란을 가진 도루묵은 연안 저층성 어종으로 보통 수심 200∼300m 사이에서 서식한다.2003년 연간 생산량은 1900t이었다. 지난 70년대 초반만 해도 해마다 2만 5000t까지 잡혔으나 요즘은 1500∼5000t 정도가 고작이다. ●서해안 전통어법 동해안에서도 행해져 도루묵은 산란기가 가까워지면서 딱딱해진 알을 듬북 같은 해초에 잔뜩 산란해 놓는다. 바람이라도 불 양이면 파도에 밀려온 도루묵알이 거품일 듯 해변을 뒤덮는다. 알을 주워다 파는 일은 불과 얼마전까지 흔했던 해변 풍습. 아예 유리상자로 물 속을 들여다 보며 작업하는 ‘창경바리’로 해초에 붙은 알을 채취해 내다팔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조업 반경은 고성으로부터 속초, 양양, 강릉 등 강원 북부다. 물고기마다 제 집과 고향이 있듯 강원 북부가 도루묵의 원적지쯤 된다. 그 밑에서도 잡히기야 하지만 양도 적고, 맛도 덜하다. 속초항에서 만난 어부 노만선(52)씨는 “예전에는 개도 안 물어갔다.”고 회고한다.‘말짱 도루묵’이란 표현은 그만큼 흔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으리라. 도루묵은 유자망(흘림그물)이나 기선저인망으로 잡는다. 그런데 강릉 사천진의 김덕중 어촌계장이 재미있는 증언을 했다.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려온 놈들을 ‘주벅’으로 잡았단다. 고문헌에 ‘주박(柱泊)’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전통 정치망이 동해에서 확인되는 순간이다. 굵은 말뚝을 박고, 그물을 걸쳐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전통적인 서해안 어법이 동해안에서도 행해졌다는 새로운 발견. 사천진에서는 ‘물밑 주벅’이라고 하여 닻을 물밑에 고정시켜 그물을 놓았다. 대략 35년 전까지 행해지다 사라진 어법이니, 잊혀지기 전에 이를 기록해 둔다. 주벅으로 잡던 시절에는 부둣가에 가마니를 깔고 잡힌 도루묵을 산처럼 쌓아 뒀다. 오늘날은 기선저인망으로 100m가 넘는 바다 밑을 샅샅이 훑고 다니니 어족고갈은 불보듯 뻔하다. 도루묵 조리법은 의외로 다양하다. 찌개와 구이, 찜은 익히 알려져 있고, 살짝 말려서 볶기, 그리고 뼈째로 토막낸 도루묵회도 별미다. 도루묵회는 도시인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먹어보니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통통하게 알이 밴 도루묵을 석쇠에 올려놓고 노릇노릇 구워 ‘톡톡’ 알터지는 소리를 음미하며 먹는 미각이야말로 겨울철에 동해를 찾아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닐까. 예전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획 어종인 도루묵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는 이 없으니, 이른바 ‘고급 어종’이라는 무식한 선별 기준의 비객관성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흔해서 대접 못 받는 ‘양미리’ 이곳의 또 다른 별미 양미리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속초 청초호변의 ‘삼숙이 생선구이집’을 찾았다. 주인장 이름이 삼숙이란다. 생선 장사 수십년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이름을 쓴 간판을 내걸었다. 그녀의 생선장사 스케줄을 보면 동해 어종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5월 초에 시작한 산오징어 장사가 추석 전까지 이어진다. 추석이 지나면서는 양미리 장사를 하고, 이어 11월20일을 전후해 양미리 성어기가 되면 서서히 도루묵이 잡히기 시작한다. 도루묵 장사는 양미리보다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난다. 도루묵 장사는 11월에 시작해 12월 중순이면 대충 끝나며 그 이후에 파는 것들은 모두 냉동 도루묵이다. 양미리 장사도 12월이면 ‘종을 치며’ 그 후로는 냉동 양미리를 말려서 시장에 낸다. 양미리가 제 대접을 못 받는 이유는 단 하나,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양미리는 동해안 전역에 세력을 펼친다. 그렇게 흔해선지 사람들은 양미리의 진가를 제대로 모른다. 말려서 볶거나 구워먹기도 하며, 날것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그런데 양미리를 추어탕처럼 곱게 갈아서 탕으로 끓여먹는 조리법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수입 미꾸라지탕을 둘러싼 논란이 많은 처지에 동해에서 지천으로 잡히는 100% 국내산 양미리탕에 아무도 관심을 돌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필자가 음식 장사라면 반드시 염두에 둘 건강식 메뉴다. 확실히 우리는 우리 해산물에 관한 활용도와 이해도가 실망스러울 만큼 저급할 뿐더러 보수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식해도 만들어 먹는다. 가자미식해처럼 좁쌀을 사용해 시원하게 담가 먹는다. 해산물 요리에 관한 고정관념을 이제는 깨끗이 버릴 일이다. ●양미리는 본디 ‘까나리’가 맞아 동해안 수산연구 전문가인 동해수산연구소의 양용수 박사는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완전히 까뒤집는다. 그에 따르면 양미리는 본디 까나리가 맞다. 양미리는 동해안에서 붙인 이름일 뿐이다. 양미리가 까나리라면 그 누구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우리라. 까나리답게 양미리는 여름잠을 잔다. 모래밭에 기어 들어가 시원한 여름잠을 즐기는 별난 족속이다. 이 즈음에는 먹이를 먹으려고 잠시 외출했다가 잡히곤 한다.‘발치기’라고 해서 해저의 모래바닥에 그물을 깐 뒤 잠수부가 들어가 발로 모래밭을 밟으면 양미리들이 놀라서 튀어나오는데 이걸 잡아들인다. 산란 전까지는 계속 모래 속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가까워 ‘외출’이 시작되면 이 때부터는 ‘누인 그물’이 아니라 ‘세운 그물’로 잡아들인다. 물고기의 삶과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교묘한 머리싸움이 이처럼 어법까지 발달시켰으리라. 그 양미리 값은 얼마나 될까.20마리 1두름에 2000∼2500원 선이다.1마리에 200원꼴이니 이보다 값이 눅은 생선이 있을까. 전국에서 양미리가 가장 많이 건조되는 주문진의 덕장을 찾아가니 줄에 엮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두름당 인건비가 고작 300원이란다. 손이 날랜 이가 200두름, 즉 하루에 4000여마리를 엮고서 6만원 정도를 받는다. 평균은 이보다 못해 고작 100여두름을 엮어 일당 3만원 정도를 번다. 한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봐야 100만원 벌이도 안된다. 낮은 양미리 가격이 이처럼 어촌의 저임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미리는 명태를 비롯한 각종 낚시미끼로 팔려 나간다. 양식장에서는 광어 등을 시장에 내기 전에 보신용으로 양미리를 먹인다. 그만큼 영양가가 높고 먹을거리로서도 종합적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이다. ●도루묵·양미리에서 평범 속의 진리 깨달아 한가한 ‘생선타령’이나 하려고 양미리와 도루묵에 얽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고급 어종’ 운운하며 그릇된 상식으로 해산물에 관한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 밥상문화를 뒤집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말짱 도루묵’은 더 이상 없다. 마리당 불과 200원에 지나지 않는 양미리, 아니 동해까나리의 전방위적 품격과 용도에서 평범 속의 진리를 깨닫는다. 겨울 별미를 찾아 떠난 동해 여행에서 양미리와 도루묵을 살폈으니, 그 새로운 재발견의 기쁨을 어찌 홀로만 즐길 수 있으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거늘, 관해의 즐거움 중에는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 하찮은 먹을거리 하나도 제대로 알고 먹을 일이다.
  • 겨울나라 가볼까…화천 산천어축제

    겨울나라 가볼까…화천 산천어축제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그만의 멋과 재미가 있다. 눈이 많이 내리고 얼음이 두껍게 얼수록 겨울의 즐거움은 더욱 살아난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위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얼음 낚시와 나뭇가지마다 피어 있는 눈꽃송이를 보는 즐거움은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재미다.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겨울 축제는 이달 주말이 최절정에 이른다.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 축제와 경기도 포천의 도리돌 동장군 축제를 비롯해 이번 주말 태백산 눈꽃축제가 시작된다. 이어 인제 빙어축제, 대관령 눈꽃축제가 이달 말까지 계속된다. 산천어 축제에서는 얼음낚시와 얼음썰매 등 다양한 즐길거리와 함께 1급수에서만 사는 ‘웰빙’ 어종 산천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움츠렸던 몸을 펴고 산천어 축제의 현장 속으로 떠나 보자. ●추위를 날리는 짜릿한 손맛 ‘얼지 않은 인정, 녹지 않는 추억’을 테마로 강원도 화천천 일대에서 열리는 산천어 축제장 일대에서는 즐거운 탄성이 곳곳에서 메아리쳤다. 두툼한 점퍼와 따뜻한 목도리로 중무장한 가족단위 여행객들은 한뼘 남짓한 얼음 구멍위로 올라오는 산천어를 보며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 잡았어요.” 강원도 원주에서 부모와 함께 놀러온 박길연(10·강원 원주 학성초등교 3년)군은 얼음낚시용 견지대에 걸린 팔뚝만한 산천어를 자랑스럽게 들어보였다. 아빠 박효태(47)씨와 엄마 유영희(47)씨도 처음 보는 산천어를 이리저리 만지며 눈을 떼지 못했다. 유씨는 “고기 잡는 재미에 추운 줄도 모르겠다.”면서 “어린 시절 얼음판에서 뛰어놀던 시절이 생각난다.”며 활짝 웃었다. 얼음 구멍을 통해 수심 2m 깊이 물밑 속의 산천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근 얼음 썰매장은 동심이 가득하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썰매를 지치는 등 즐거움이 가득했다. 지푸라기로 엮은 2인용 썰매에 다섯살배기 딸아이를 앞에 앉히고 타던 박지연(33·인천 서구)씨는 “아이도 즐거워하지만 썰매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처음 알았다.”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그만”이라며 즐거워했다. 안가혜(13·춘천 남부초등교 6년)양은 “얼음썰매가 너무 재미있어 아빠 친구분들을 따라 또다시 왔다.”면서 “각종 이색 썰매를 모두 타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다.”며 웃었다. 또 다른 즐거움은 산천어 맨손잡기 체험장. 오후 3시 행사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영하의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참가자 10여명이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물속에 풀어놓은 산천어를 잡는 재미에 추위를 잊은 지 오래다. 잠시 후 양손에 산천어를 번쩍 치켜올린 한 참가자는 “산천어를 손으로 잡는 짜릿한 손 맛에 물이 차가운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축제장에는 시인 이외수의 곡에 그룹사운드 ‘이남희와 철가방’이 부른 ‘산천어 송’이 울려퍼져 더욱 흥을 돋운다. ●즉석에서 구워 먹는 산천어 별미 잡은 산천어를 주변 식당에 가져가면 즉석에서 회를 쳐주거나 구워 먹을 수 있다. 산천어는 1급수 이상에만 사는 청정 어종. 연어과로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온 것은 송어, 강에서 성숙한 것은 산천어라고 한다. 서울에서 온 김상태(31)씨는 “여자 친구와 아침 일찍 낚시를 시작해 반나절 만에 3마리를 낚았다.”면서 “즉석에서 구워 먹는 산천어는 말 그대로 겨울철 최고 별미”라며 치켜세운다. 산천어를 못 잡더라도 조직위원회에서 운영하는 물빛누리 식당에서는 산천어로 만든 햄버거와 탕수육, 만둣국을 비롯해 회와 훈제, 구이 등 저렴한 가격의 산천어 요리를 맛 볼 수 있다. 회는 1㎏에 2만 5000원이며 훈제와 통구이는 1만 2000원, 탕수육은 1만 5000원이다. 주의할 점은 식사는 반드시 제2얼음 낚시터에서 출렁다리까지 행사장 내의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어느 행사장에나 있기 마련인 외지의 장사꾼들이 많아 간혹 바가지를 쓰는 일도 발생한다. ●저렴한 가격, 바가지 없는 축제 산천어 축제는 평일에는 무료로 진행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평일(월∼목요일)에는 얼음낚시와 루어낚시, 썰매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관람객이 몰리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얼음낚시 대회가 열려 성인 1만원, 여성·중/고생, 장애인 등은 8000원의 입장료를 내지만 꼬리표가 붙은 산천어를 잡으면 푸짐한 부상이 주어진다. 국민카드를 이용하면 10%가 추가 할인된다. 초등학생은 행사기간 내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산천어 얼음낚시는 초보들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겨울 레포츠로 간편하고 값싼 도구를 이용하여 산천어의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견지대는 2000∼3000원 정도로 미끼를 포함해 4인 가족이 1만원이면 장비를 갖출 수 있다. 산천어는 마리당 5000원을 호가하는 고급 어종으로 행사기간 중 30∼40t,20만여마리를 방류해 초보자도 1∼2마리는 잡을 수 있다. 낚시 외에도 여러 가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눈으로 만든 얼곰이성과 얼음나라 도깨비굴, 얼음나라 열차를 비롯해 즉석 댄스와 노래자랑, 얼음축구, 콩닥콩닥 봅슬레이, 빙판줄다리기 등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행사도 푸짐하게 준비돼 있다. 화천군 숙박시설의 총 객실 수는 2500여개에 불과해 평일에는 2만 5000∼3만 5000원선이지만 주말에는 5만원 이상 줘야 한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산천어는 눈이 큰 물고기로 연초에 산천어를 잡으면 집에 도둑을 막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면서 “무엇보다 가족들이 저렴한 가격에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200∼300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행사진행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문의는 화천군나라축제조직위원회 1688-3005나 www.icefestival.co.kr. ■ 화천, 여기도 가보세요 화천은 물의 도시다. 평화의 댐에서 시작해 파로호와 화천댐, 북한강(화천강)으로 이어지는 강변 경관이 아름답다. 평화의 댐은 북한의 임남댐 문제로 현재 2단계 증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화천읍에서 이 곳까지 꼬불꼬불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서는 눈꽃을 볼 수있다. 평화의 댐 인근의 비목공원은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국민가곡 ‘비목’의 발상지다. 비목은 1960년 중반 평화의 댐 북방 백암산 계곡 비무장 지대에서 근무하던 한명희(전 서울시립대 교수)씨의 시에 장일남씨가 곡을 붙여 70년대 중반부터 널리 애창돼 오고 있다. 화천을 대표하는 호수는 ‘산속의 바다’로 불리는 파로호. 아침 일찍 호수가 잘 보이는 언덕에 서서 바라보는 그윽한 물빛과 수면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화천강 중간의 붕어섬 휴양지는 해마다 6월이면 비목문화제가 열리는 명소로 호수의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며 산책하기에 좋다. 이 밖에 한국 100대 명산으로 꼽히는 용화산과 비경 광덕산, 북한땅을 1.5㎞ 앞에서 볼 수 있는 최전방 전망대인 칠성전망대가 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춘 국도를 따라 춘천이나 춘천댐 방향으로 가다 5번 국도나 407번 지방도로로 진입해 화천읍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행사장을 만날 수 있다. 춘천∼화천 도로 곳곳에 행사장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동서울터미널이나 상봉터미널에서 화천행 버스를 타면 3시간 정도 걸린다. ■ 전국 얼음축제 스리스리 冬冬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색을 이용해 혹한과 결빙을 즐기는 다양한 겨울 축제를 마련, 추위에 움츠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백운계곡 입구에서 열린다.4000평 규모의 논에 만들어진 행사장에서는 눈썰매와 전통썰매 등 즐길거리와 함께 15m에 이르는 동장군 얼음기둥과 고드름터널 등 다양한 볼거리도 있다. 수도권에서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에 베어스타운 스키장과 일동온천이 있어 가족단위 여행코스로 손색이 없다.1월29일까지. www.dongjangkun.co.kr,(031)535-9942. 태백산 도립공원 당골광장과 황지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하는 태백산 눈축제는 화려하고 환상적인 볼거리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겨울 눈축제. 올해에도 특별 눈조각, 눈조각 경연대회 등 다양한 눈조각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특별 눈조각 ‘상상속의 동물과의 만남’에서는 스핑크스와 유니콘, 공룡 등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고 전국 대학생 눈조각 경연대회에는 16개팀 80여명이 참가해 각축을 벌이게 된다.1월22∼30일. snow.taebaek.go.kr,(033)550-2081. 설악산과 방태산 내린천이 합류하는 인제군 남면 부평리 소양호 신남선착장에서 열린다.300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소양호 얼음판에서 빙어낚시를 즐기고, 먹으며 다양한 겨울 체험을 할 수 있는 축제다. 빙어낚시대외화 빙상볼링, 얼음축구대회, 스노자전거대회 등이 열린다. 눈썰매장과 눈조각 전시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펼쳐진다.1월27∼30일. www.injefestival.net,(033)460-2086.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에 조성된 축제장에서 열린다. 행사에서는 서양의 유명 건축물을 옮겨 놓은 눈조각전, 얼음성 등 얼음조각전, 눈꽃백일장, 설상 풋살대회, 스노카레이싱 등이 펼쳐진다.30일 오후 2시에는 찬바람 속에 상의를 벗고 달리는 국제알몸마라톤대회가 열린다.1월27∼30일. www.snowfestival.net,(033)335-8880. 화천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미리 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미리 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1. 미국의 24시간 뉴스채널 CNN이 서울 한강 노들섬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를 화면에 띄웠다.CNN은 뉴스 프로그램 사이에 방송국로고와 함께 각국의 랜드마크를 브라운관에 내놓는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던 광화문과 남대문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대신 ‘노들섬 오페라하우스’가 CNN의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2. 노들섬에는 공연 관람외에도 산책하기 위해 찾아오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공연이 끝나는 오후 10시쯤에는 인근 노천카페에서 예술과 문화를 논하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매주 한번씩 노들섬에서 오페라와 공연 등을 즐긴다는 회사원 김민서(31)씨는 “노들섬 주민이 다됐다.”고 말했다. 위의 두 장면은 ‘노들섬 오페라하우스’가 성공적으로 조성됐을 때를 그려본 가상 시나리오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조개껍질 모양의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을 짓겠다고 언급했다. 최근 이 시장은 “국제 공모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겨 2007년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규모와 예산은 한강에 세워지는 오페라하우스는 어느 정도 규모에 예산은 얼마나 소요될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오페라극장은 영국의 로열오페라하우스와 프랑스의 바스티유오페라극장,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등이다. 이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바스티유오페라극장이나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규모로 세워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국제현상공모로 건축설계를 완성하면 외관이나 내부시설 등 세부적인 사항은 달라진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2679석의 콘서트홀을 비롯 오페라, 발레, 현대무용 공연용 1547석의 오페라극장,554석의 드라마극장과 300∼400석 규모의 소극장 2개를 갖추고 있다. 지난 1993년 완공된 서초동 예술의 전당내 오페라하우스는 규모면에서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비슷하다. 연면적 1만 3200평에 말굽형 객석으로 234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을 비롯해 정통연극을 중심으로 무용, 뮤지컬, 오페라 부파, 오페레타 등을 소화하는 710석의 토월극장, 실험적인 소규모 공연을 위한 300∼600석의 자유소극장이 들어 있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은 연건축 4만 6000여평의 9층 건물로 지난 1989년 세워졌다. 본극장이 2700석, 좌석가변극장 600∼1000석 등 공연장 3곳과 11개의 연습시설을 갖추고 있다.1984년 착공했으며 1989년에 완공됐다. 하지만 오페라하우스의 규모는 입주기관이나 산하 단체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유럽의 여러 오페라하우스나 세종문화회관처럼 극장에서 직접 오페라단과 발레단, 교향악단 등을 운영하면 연습공간 등이 추가로 필요해 규모가 늘어난다. 대신 브로드웨이의 상업극장이나 예술의 전당처럼 공연장만 지은 채 외부공연을 계속 유치하면 공연시설만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은 무대에 세울 소프트웨어를 계속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점도 있다. ●2007년까지 완공가능할까 오는 12월 개관하는 고양시 일산아람누리(문화센터)는 총공사비가 1250억원 정도 들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2000석의 오페라극장을 비롯 1500석의 콘서트홀,300석 정도의 실험극장, 야외공연장, 도서관, 전시시설 등이 계획돼 있다. 연면적은 1만 6300여평으로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들섬 부지매입 비용과 건축설계 공모금, 공사비용 등을 고려하면 줄잡아 1500억∼200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 셈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건축물로 평가받으려면 보다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 경기불황의 여파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의 객석 점유율은 50∼60%에 불과하다. 게다가 오페라하우스가 제대로된 역할을 하려면 화려한 건축물 이외에 관객들을 흡수할 공연물도 필수다. 이 때문에 이 시장이 밝힌 2007년 완공은 무리라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아무리 빨리 지어도 공연장의 공간배치 등 기초 타당성조사와 국제공모에만 2년이 소요된다. 순수 공사기간에 최소 2∼3년이 걸리는 데다 노들섬은 한강위에 놓인 섬인 탓에 만만치 않은 물막이 공사까지 더해져야 한다.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계획하면서 설계에서 완공까지 기간을 3년으로 정한 것은 공사가 부실해질 소지를 안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노들섬은 어떤곳인가?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서는 노들섬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 302의 146에 위치한 면적 1만 3700여평의 타원형섬이다. 현재 테니스연습장인 일부분을 빼면 모래더미와 갈대숲으로 뒤덮인 황량한 모습이다. 조선시대부터 물맛이 빼어난 우물물을 왕궁에 바쳐오던 노들섬은 1917년 한강인도교가 놓이면서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에는 수영장과 낚시터, 겨울에는 스케이트장 등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휴양지이던 노들섬이 모래산과 쓰레기더미로 바뀐 것은 지난 1997년 섬의 소유주인 ㈜건영이 부도를 내면서 부터다. 지난 1986년 섬을 불하받은 건영은 1996년 유람선센터와 식당, 스포츠시설 등을 갖춘 유원지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 1983년 도시계획용도상 자연녹지지역 유원지시설로 이미 지정된 상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조성사업 인가를 받은 뒤 건영이 부도를 내 무산됐다. 이후 노들섬을 서울에서 대전을 잇는 헬리콥터 정기운항기지와 미군 헬기장 등을 조성하는 방안이 제시됐으나 모두 무산됐다. 현재 섬의 공시지가는 평당 200만원 정도로 섬 전체의 가격은 273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서울시는 최근 건영측과 매입의사를 타진하고 있으나 매입비용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건영은 섬을 공시지가로 매입해 달라는 주장인 반면 서울시는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를 밑도는 만큼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이 이곳을 오페라하우스의 최적지로 꼽은 만큼 서울시가 매입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청계천 복원과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통해 ‘문화시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는 이 시장의 의도가 함축돼 있다. 서울의 한 가운데 위치한 노들섬은 강남과 강북을 잇는다는 상징성까지 내포하고 있어 오페라극장의 위치로는 최적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2월초∼중순이면 매입 여부에 대해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면서 “노들섬은 서울시의 랜드마크를 세우기에 매우 좋은 입지이기 때문에 매입이 이뤄지면 국제적인 건축 공모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물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영과 채권사는 “가격만 맞으면 매각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부지 구입예산 등으로 이미 400억원을 편성한 상태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안동환기자의 현장+] 등대지기 지원 45명의 사연

    [안동환기자의 현장+] 등대지기 지원 45명의 사연

    “망망대해의 섬에서 어떻게 외로움을 극복하겠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지원자들은 낚시나 스킨스쿠버를 하겠다느니, 인터넷 채팅으로 충분하다느니 갖가지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무인도에서 가족과 떨어져 평생을 근무해야 한다. 낭만이나 환상을 갖고 지원한 것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지자, 시험장에는 이내 침묵이 흘렀다. 13일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별관 대회의실. 말단 기능직 등대원 1명을 채용하는 면접 시험장에는 응시자가 무려 45명이나 몰렸다.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 28.5대1의 경쟁률을 가뿐히 넘어선 것이다.1999년 2명 채용에 2명이 지원하고,2001년 1명 모집에 5명이 지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달라진 풍경이다. 전국에서 고루 찾아온 20∼30대 지원자들은 학력도 높았다. 고졸이 17명, 전문대졸 19명, 대학 재학 2명, 대졸 7명 등 이공계 출신의 고학력자가 62%에 이르렀다. 전원이 무선설비, 전기공사 등 기능사 자격증 소지자들이다. 면접관으로 나선 강모(50) 사무관은 섬생활을 쉽게 생각하거나 취업난에 쫓긴 지원자가 많은 것 같다.”면서 “학력보다는 인성과 적성을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면접은 75평 크기의 면접 시험장에 마련된 3개의 테이블에서 3명의 면접관이 지원자 4명씩 모두 12명을 1시간 동안 차례로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 면접관은 등대원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즉석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근무조건 등 사전지식이 없는 지원자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등대원 업무를 등대의 불만 켜고 끄는 일’로 생각한 지원자부터 사무직으로 착각한 지원자, 심지어는 섬에서 근무하는 것조차 모르는 지원자도 많았다. 인천해양수산청이 관할하는 섬은 모두 100개. 이 가운데 무인도가 75개다. 이날 뽑힌 등대원은 주민이 살지 않는 팔미도, 부도, 선미도 등 3곳의 무인도 유인등대나 어민들이 있는 소청도 가운데 한 곳에 배치된다. “3호봉으로 시작하는 등대원은 군 제대자라도 대우는 연봉과 수당을 합쳐 1500만원에 불과합니다. 한 달에 육지에 나올 수 있는 날은 4∼5일 정도이고요.”이쯤에서 ‘일단 붙고 보자.’던 ‘거품족’은 ‘이게 아닌데….’하고 마음을 고쳐 먹게 마련이다. 한 20대 지원자는 면접 도중 “자신이 없다.”며 뛰쳐 나갔다. 다음달 전문대를 졸업하는 김모(24)씨는 취업 갈망형. 김씨는 “고졸 출신을 뽑는 데는 전문대 졸업자가 몰리고, 전문대 출신을 뽑는 데는 대졸자가 몰려 번번이 낙방했다.”면서 “생산직에도 대졸자가 몰리는 판국에 노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고 너무도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아 면접관을 당황케 했다. 최고령 지원자 김모(40)씨는 “음파표지와 전파표지를 비교해 설명하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19년 만에 치르는 시험에 긴장한 탓이다. 김씨는 15년 경력의 전직 공무원. 새로 뛰어든 사업이 절단나자 등대원을 지원했다. 김씨는 “등대원은 내 나이에도 지원자격을 주는 희귀한 자리”라면서 “섬에서 산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리겠느냐.”고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 물론 전자정보를 전공한다는 대학 재학생 강모(26)씨처럼 “등대원을 다룬 소설을 읽고 지원을 결심했다.”면서 “험한 세상을 벗어나 마음 편히 살고 싶다.”고 낭만적인 지원 동기를 밝힌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취업난에 기고, 가족이나 주위의 눈길에 기는 초조한 표정의 응시자들을 돌아보면서, 등대지기를 더 이상 ‘휴머니스트’로 그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바다를 보며 삶을 관조하고, 고독의 풍미를 즐기는 등대지기란 과거형이지 절대로 현재형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천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남해군 ‘보물’ 다랭이마을…민박등 ‘체험 프로그램’ 마련

    남해군 ‘보물’ 다랭이마을…민박등 ‘체험 프로그램’ 마련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리 ‘다랭이마을’. 농촌체험마을의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이 마을에는 연중 관광객이 붐빈다. 지난 2002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 농촌체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775차례 실시된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2만여명이 참가했다. 처음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 2002년에는 참가인원이 2010명에 불과했지만 2003년에는 6820명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웰빙’붐을 타면서 급증했다. 체험객들을 상대로 민박과 체험활동, 농산물 판매 등으로 소득도 짭짤하게 올렸다. 첫해에는 2060만원이었으나 이듬해는 1억 2527만원으로 늘었으며, 지난해에는 2억 2075만원이나 됐다. 다랭이마을에는 바닷가에서 시작된 가파른 절벽에서 산중턱까지 108층이나 되는 ‘다랑논’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다랭이마을의 전체 주민은 65가구 154명. 논두렁에 앉아 낚시질 할 수 있을 정도지만 배를 댈 수 없어 배 한척, 그물 한 코 가진 주민이 없다.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13명으로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녀회와 노인회, 청년회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주민들은 프로그램의 내실을 위해 친절교육을 받았으며, 해외연수를 통해 중국·일본·유럽 등지의 우수사례를 발굴해 접목했다. 마늘과 벼에 국한했던 작물도 체험객들의 구미에 맞도록 찰옥수수와 두릅·미나리·갓·감자·고구마 등으로 늘리고, 편의시설도 보강했다. 체험프로그램도 계절별로 다양화했다. 대표적인 체험프로그램은 시골학교 운동회와 삿갓배미 찾기, 손그물 고기잡기, 논갈이 등으로 10명 이상이면 참가할 수 있다. 체험비용은 종류에 따라 종목당 1000원∼1만원. 숙식비는 1박3식에 1인당 어른 2만 5000원, 초·중생 2만원이며 유치원생은 무료다. 남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서울 곳곳 수도동파…한강도 얼었다

    서울 곳곳 수도동파…한강도 얼었다

    10일 서울의 아침기온이 영하 10.8도까지 떨어지며 올 겨울들어 한강에 첫 얼음이 얼었다. 한강의 결빙은 평년보다 3일 이른 것이다. 평년값은 결빙이 1월13일, 해빙이 2월5일이다. 지난해는 1월23일 언 뒤 같은 달 28일에 녹았다. 한강의 결빙은 1906년부터 관측했다. 한강대교 노량진 쪽에서 두번째와 네번째 교각 사이 상류 100m 지점이 얼면 결빙한 것으로 본다. 한강의 결빙 시기를 살펴 보면 1945년 광복을 전후한 시기까지는 12월 중순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한강이 어는 시기가 조금씩 늦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1981년 이후에는 12월에 한강이 결빙한 사례가 한 차례도 없다. 이해는 1월15일에 얼음이 얼어 불과 사흘 뒤인 1월18일 풀리는 등 결빙 기간도 짧아졌다. 한겨울 얼어붙은 한강에서 챌견지낚시를 하던 풍경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한강의 결빙이 가장 일렀던 해는 12월5일에 얼음이 언 1937년이었다. 반면 가장 늦었던 해는 1977년으로 다음해 2월1일에야 한강에 얼음이 얼었다.1960년과 1971년,1972년,1978년,1988년,1991년에는 아예 얼음이 얼지 않았다. 얼음이 풀리는 시기도 1940년대는 3월초순이었으나,1960년대는 2월중순,1990년대 이후는 1월이 대세를 이루는 등 갈수록 일러졌다. ●온난화로 결빙시기 점차 늦어져 기상청은 한강이 어는 시기가 늦어지는 원인을 놓고 “결빙 시기는 강물의 오염, 강폭, 유속 등에도 영향을 받지만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기상청은 “하수물이 흐르던 청계천에는 한겨울에도 얼음이 얼었다는 기록이 없었다.”면서 “한강의 수질오염도 지구온난화만큼이나 결빙시기를 늦추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부지역에서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가 3일째 계속되면서 곳곳에서 수도 동파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시 수도사업소는 “9일 저녁부터 하룻밤새 1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면서 “공사장이 10건이지만, 성북구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수도관 동파 신고도 3건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손병대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 월동대책 상황실 직원은 “지난해 12월20일까지는 동파신고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지만 이후부터 9일까지 478건이나 접수됐다.”면서 “단독주택뿐 아니라 공동주택도 수도관과 계량기의 보온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상청은 “11일에도 아침 최저기온이 수원 영하 9도, 서울 영하 8도, 대전 영하 7도, 전주·대구 영하 5도까지 내려가는 등 추울 것”이라면서 “한파는 수요일인 12일까지 이어지겠다.”고 예보했다. 기상청은 “10일 오후부터 중부·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눈이 내림에 따라 도로가 얼어붙는 11일 아침에는 큰 혼란이 우려된다.”면서 “아침 출근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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