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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한국무용가 최현씨(이세기의 인물탐구:14)

    ◎절제된 몸짓… “여백의 미” 표현 일품/고고한 기품 넘치는 타고난 재능의 예인/김해랑문하서 승무·태평무 등 두루 이수/완벽주의적 성격… 대선배와의 불화 “천추의 한”으로 갓쓰고 도포입고 부채들고 최현이 무대에 나타나면 이도령이 광한루에 나선듯 화사하고 눈부시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헌칠하고 단정한 매무새,운신의 폭이 조용하면서도 민첩하다.삭풍이 이는 한겨울에도 그의 분위기에는 오월 단오같은 싱그러운 신록이 묻어있다. 부채끝으로 오작교(오작교)를 가리키고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리면 그때마다 한양의 풍류와 선비의 기품이 동시에 엇갈린다. 무용계에서 「푸르름을 몰고다니는 예인」으로 불리는 것처럼 그는 20대 미장부의 멋과 미를 변치않는다.나이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젊고 기개에 넘쳐있다.언제 어디서나 누구앞에서나 당당하다. 우선 그의 춤솜씨부터가 그렇다.타고난 재능과 기량으로 그는 빠르고 느린 어떤 곡조에도 절묘한 춤의 경지를 보여준다. 정중동이 절제된 그의 「승무」나 「살풀이」등 그의 춤의 매력은 그 움직임마다에 여백의 미를 살리는데 있다.뿌리치고 내뻗는 손짓하나에도 선과 배경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듯 하다.힘이 들어가지 않은,몸속으로부터의 흥취가 절로 살아나 어느땐 멈추고 어느땐 다시 흐른다.그리고 조각처럼 푸르고 흰 얼굴에는 한과 슬픔을 자제한 인고가 담겨있다. 그는 춤뿐아니라 춤과 관련된 영화와 연극,창극과 뮤지컬을 두루 섭력한 예술가다. ○춤관련 영화·연극 출연 완벽주의자인만큼 한가지를 알아도 끝까지 파고들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쌓고있다.대강대강 그럭저럭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사람을 사귀어도 한번 사귄 사람은 절대로 놓지않는다. 이렇게 흑백이 분명하기때문에 무용계에서의 그의 위치는 자칫 외롭기 십상일수가 있다.그러나 서로서로 인맥·학맥,제자 스승으로 얽히고 설킨 속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타고난 재능,탁월한 춤솜씨 하나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춤추는 사람이 춤잘추는데야 누가 뭐라하겠는가.위로는 막강한 선배들이 기라성처럼 좌정하고 이리저리 끈이 닿는 무용풍토에서 최현자신은 그런 자부심과 오기 하나만으로 고고하게 버티어왔다 할수 있다. 그가 춤으로 무용계에 어필하기 시작한 것은 65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초라니」에서다.조택원이후 송범 김진걸 이매방으로 이어지는 남자무용수중 수려한 춤과 미모마저 갖춘 그의 출현은 무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51년이후 한때 영화에 심취하여 조미령 김승호 허장강 등 당대 스타들과 영화 「춘향전」「시집가는날」등에서 주연,이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춘향전」「마의태자」「황진이」등은 노련미 넘치는 춤기교와 함께 영화에서 닦은 연기솜씨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비상」은 그 자신이 끊임없이 추어왔고 지금도 무용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의 하나다. 소매가 긴 백삼에 상투관 차림,부채 하나만으로 무대를 누비는 이 「비상」은 희로애락의 일상사를 살고있으나 저 하늘을 향한 끝없는 의지,꿈을 잃지않으려는 인간의 끈질긴 열망이 춤속에 담겨져 「마음을 비운 춤」「생의 환희와 승리를 득도의 경지로 이끈 춤」「아무도 비상을 최현만큼 출수 없다는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을수 있다」고 시인이며 무용평론가인 김영태가 쓴적이 있다. 영화·연극 못지않게 그의 음악취미또한 광적이다. 76년 호암 이병철회장의 도움으로 독립문쪽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최현무용단을 창단했을때 그의 연구소는 무용연구소라기보다는 마치 음악연구소처럼 사방벽이 온통 오리지널 디스크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의 오디오 취미는 「마니아」급으로 오디오전문지들은 걸핏하면 드보르자크에서 수재천에 이르는 그의 음악취미·오디오기기들을 탐방취재하고 있다.이 방면에서는 특히 김영태와 의기투합하여 두사람은 충무로에서 용산전자상가를 곧잘 기웃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취미도 “광적” 최현은 마산에서 성장했지만 본래 부산사람이다.본명은 최윤찬,후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최현이란 예명을 가졌다. 16세때 전국가요경연대회에서 특상한 것을 계기로 「천재소년가수」가 되어 지평선 가극단을 쫓아 마산에 정착,마산의부호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김해낭문하에 입문하여 그곳에서 궁중무에서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를 고루 이수했다. 그러나 스승이 초기엔 장작이나 패게하고 집안청소를 하게 할뿐 도무지 춤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때도 당돌했던 그는 『왜 춤을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항의하곤 했다. 『예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네가 보고 느끼고 깨달아라』그는 머리속에 꽉 찼던 안개가 걷힌 듯 스승의 이 말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때부터 춤이 몸속에서 피돌기처럼 돌고 흥이 기운처럼 솟구치기를 기다렸다.스승은 그제서야 그에게 춤 한자락씩을 지도해나갔다. 예술의 겸손을 엄숙하게 익히고도 인격수양이 덜 됐거나 춤을 잘 춘다는 주변의 칭찬에 우쭐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잊히지 않을 큰 「잘못」을 하나 저지른 적이 있다. 58년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스승 김해랑 안무로 「독무」를 출때였다. 당시 명고수인 지영희씨가 장단,그의 부인인 성금련씨가 가야금을 연주,진양조에서 중머리 중중머리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영희씨가 그만 잦은몰이 장단을 잘못친 것이다. 박자와 호흡,시간조절에 의해 손의 움직임을 감을 수도 펼수도 있는 그로서는 리듬이 맞지않아 크게 당황했고 무대는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지영희씨에게 덤벼들었다. 『무대는 생명입니다.단 한번의 실수도 있어선 안돼요.관객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나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지영희씨는 『최선생 내가 정말 잘못했네.큰 실수였다』고 백배사죄했으나 그로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망발.당대의 명인이자 대선배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방만함을 후회했다고 탄식한다. 이제 그는 참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다.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고 진지하게 나를 점검하여 「몸짓」하나 「소리」하나에도 자연의 질서가 깃든 지혜와 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그리고 내 춤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나의 한과 정취와 풍류의 빛,내가 살아온 춤의 굽이굽이를 함께 향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현의 많은 이야기중에서 그가 54세때 27세 연하의 신부를 맞아들인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화제중 하나다. ○54세때 27세 신부 맞아 84년 12월,일밖에 모르던 까다로운 성품의 최현이 갑자기 결혼을 발표,더구나 신부는 서울예고를 졸업,그가 지도위원으로 있던 국립무용단 단원이라고 해서 주변의 놀라움은 한층 컸다. 신부인 원필녀씨는 나이보다 깊고 의젓한 성품으로 춤추는 스승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혼자서 그를 사모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두사람의 결혼은 올해로 만 9년.제자로서 스승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결혼초기때의 사랑과 정성과 존경을 변함없이 나누고 있다. 최현씨는 그동안 부인을 한성대와 이대대학원에 다니게 했고 지금은 한성대에 출강.『내가 아프면 밤새 내 머리맡에 앉아 나를 지켜준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6월엔 제1회 원필녀개인무용발표회를 주선해 주었다.그리고 그가 사랑해마지않던 그의 춤 「비상」을 부인에게 추게 했다. 그는 88올림픽 폐막식때는 10만군중과 수천명의 출연자들에게 청사초롱 「안녕!」을 추게 하여 방대한 스케일로 각계의 시선을 모았었다.지난해엔 청소년예술제에 「파란풍선」에 이은 「비단안개」를 안무,서울예고 무용단을 이끌고 일본 도쿄 무장야시민문화회관에서 「시집가는날」을 공연,올해는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기금을 받아 그의 개인발표회를 준비중이다.작품은 정철의 「사미인곡」. 차범석극본·최종원음악의 이 작품은 그의 춤 60평생을 정리한 집대성의 일환으로 그의 특기인 「춤에서의 여백의 미」를 유장하게 전승시킨다는 집념을 담고 있다. 그는 아무리 춤을 잘추어도 훈련된 춤,숙련된 춤은 단호하게 부정한다.긴 세월 스스로 깨달아 마음속에서 몸속에서 자연스러운 율동으로 우러나오는 극미(극미)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기를 축적시키면서 이를 어느 한순간 우주의 무한한 공간속에 힘차게 내뿜는다.장삼자락을 낙화로 흩날리며 탄식의 숨결을 하공에 흩뜨려놓듯,그래서 그의 춤의 한끝은 결국 끝없는 비상임을 그는 알고 있다. □연보 ▲1929년12월 부산 영도 출생.최재용씨와 이말념씨의 2남5녀중 장남 ▲1946년 마산으로 이사 ▲1953년 마산상고졸업 ▲1959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 졸업 ▲1988∼1990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예술학과 수학 ▲1946∼1953년 마산 김해랑 무용연구소 입문 전통무용 유형과 기법사사 ▲1953년∼ 오광대일인자 장재봉,민속춤의 김숙자씨등에게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 등 이수 ▲1955년 최윤찬무용연구소 개설 ▲1961∼1962년 서울대 음대 무용강사 ▲1965∼1985년 서울예고 강사 ▲1967∼1974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강사 ▲1976년 최현 무용단 창단 ▲1980∼1981년 중앙대 예대 무용과 강사 ▲1981∼1985년 서울예전 무용과 주임교수 ▲1982년 최현 무용연구실 개설,한국무용협회이사,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예총)이사,문공부 문화재 전문위원,국립무용단지도위원,한국무용협 부이사장,대한민국 무용제 심사위원 문예진흥원 지원기금 심사위원역임 (영화)「삼천리의 꽃다발」 「시집가는날」 「춘향전」 「불멸의 성좌」 (무용·안무출연)무용극 「초라니」 「춘향전」 「시집가는날」 「마의태자」 「황진이」국립창극 「심청가」 「강릉매화전」 「광대가」 「변강쇠타령」 「시집가는날」 「대춘향전」 「허생전」 「심청」 「서동가」 「이춘풍전」 「놀부전」 「소태산」 「아리랑」 ▲1970년 일본 EXPO70 한국의날 안무·출연 ▲1971년 국립무용단 유럽지역 10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5년 국립무용단 일본 10개도시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예술제 「녹」 「비상」안무·출연 ▲1980년 국립무용단 동남아 9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82년 시립무용단 「한국 명무전」에 「비상」출연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초청공연 「헌화가」안무·출연 ▲1987년 88서울예술단 창단공연 「새불」구성·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안무총괄 「안녕」 ▲1990년 국제문화협 주최 일본 지역 공연 창극 「심청전」안무 ▲〃 동아일보창간70주년기념 모스크바지역등 5개국 순회공연 창극 「아리랑」안무·출연 ▲1991년 국립극장주최 청소년예술제 「파란풍선」안무 ▲1992년 국립극장주최 「비단 안개」안무 ▲〃 서울시립무용단 무용극 「춘향전」객원안무 ▲현재 문화부 문화재 보호협회 「한국의집」예술총감독,서울예고 무용과장 서울올림픽 안무총괄 공로 대통령 표창
  • “북한산이다” 국내반입 농수산물/거의 대부분 중국·구소산

    ◎무관세통관·소비자향수 악용/수입업자사기 기획원 등서 대책 부심 국내에 북한산으로 반입되는 농산물등의 상당부분이 실제로는 중국산 또는 구소련산으로 밝혀져 당국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11일 기획원과 관세청등에 따르면 북한과의 교역이 늘어나면서 일부업자들이 북한산에 대한 일반소비자들의 호기심과 무관세통관의 이점을 악용,제3국 생산물을 북한산으로 속여 통관,판매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원산지 속이기는 북한산에 대한 향수가 강한 농수산물에 집중되고 있으며 점차 원목등으로 사례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들어서만도 모업체가 중국산 낙화생·참깨·잣을 북한산으로 속여 무관세 통관하려다 적발됐으며 다른 한수입업체는 남지나해에서 잡힌 냉동홍어를 북한근해에서 잡힌 것으로 위장기재,통관하려다 적발됐다. 또다른 업체는 구소련산 낙엽송원목을 백두산에서 벌채한 원목으로 통관서류를 꾸며 통관시키려다 역시 적발됐다.정부당국자들은 적발된 사례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북한산 수입품에 대한 통관절차를 대폭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당국자들은 다른나라산 농수산물등을 북한산으로 속여 반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국내소비자들이 북한산 농수산물에 대한 소비욕구가 강한데다 무관세라는 점을 이용,업자들의 이윤폭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북한산 농수산물은 아직 국내반입량이 그다지 많지않아 대부분 북한에서 남한으로 직수송하지 않고 중국항구등을 경유하는데다 북한 당국이 남한과의 거래에서 원산지표기를 원치않아 업자들이 이를 악용할 경우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낙화생이나 벌꿀·생선 참깨등은 중국산이 워낙 싸 이를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국내산과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할 경우 엄청난 폭리를 취할수 있기 때문에 업자들이 쉽게 이같은 유혹에 빠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산 농산물에 대한 통관절차를 강화한 것과 관련,『김달현 북한부총리일행이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관계자들이 남북한 교역현황을 설명듣고 북한에서 이처럼 많은 양의 농수산물을 남쪽에 내려보낼 여지가 없다며 의문을 표시해 문제가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북한 교역은 남북한 관계악화와 통관절차강화로 최근들어 크게 위축돼 지금껏 들어온 북한산 농수산물의 상당부분이 다른나라 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10월중 대북반출은 22만1천달러로 지난해 같은달보다 85%가 줄어들었고 대북반입도 1천1백57만7천달러로 32%가 감소했다 그러나 올들어 누계로는 대북반입은 1억7천21만9천달러로 28%가 늘어났다.대북반출은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7%가 줄어든 1천42만달러에 머물렀다.
  • 보호대상 동·식물 108종 추가 지정

    ◎환경처,내년 시행위해 관련부처와 협의/수원 청개구리·고란초 등 멸종될 위기/무분별 포획·채취따른 폐해 방지키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기위해 정부의 특별관리를 받는 보호대상종이 내년부터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처는 국내에서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가운데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자연환경파괴와 무분별한 포획 채취등에 의해 날로 희귀해지는 동·식물을 보호하기위해 현재 92종인 특정야생동식물대상종에 수원청개구리 보춘화(춘란)등 1백8종을 추가로 지정,보호할 예정이다. 이에따라 우리나라의 특정야생동식물은 2백종으로 늘어나게되는데 환경처는 이를위해 산림청등 관계부처와 협의중이다. 특정야생동식물로 추가 지정키로 한 동식물가운데 양서류가 수원청개구리 아두르산개구리등 4종,파충류가 표범장지뱀 줄장지뱀등 6종이다. 그리고 곤충류는 왕소똥구리 수염풍뎅이등 10종,식물이 고란초 보춘화 대성쓴풀등 88종으로 모두 1백8종이다. 특히 이번에 새로 보호종으로 지정키로 한 동·식물가운데 수원청개구리는 수원근처에서 서식하고있는 동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한때 수원지역에서는 어디에서든지 흔히 볼수있었으나 수원근처가 도시화·산업화되면서 서식지인 늪지가 매립등으로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살곳을 잃어버리면서 최근에는 거의 찾아볼수없게 됐다. 또 10년전만해도 웬만한 시골에만 가도 볼수있었던 자라 살모사등이 보호대상에 들게 된것은 건강식품으로 이들이 인기를 끌면서 보이는데로 잡아들이는 통에 그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남획이 근절되지 않은데 따른것이다 이와함께 충남 부여 고란사와 낙화암부근에 일부 서식하는 고란초는 관광객등이 무분별하게 베어가 멸종될 지경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고란초는 고사리과에 속하며 10 ∼ 30㎝높이로 잎위쪽은 녹색이고 뒤는 거의 흰색으로 벼랑에 붙어 서식하며 부여외에 울릉도 목포 제주도등에게도 찾아볼수있다. 고산지대에 사는 특산식물인 노각나무는 보기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관상수로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수가 크게 줄어 이번에 보호대상에 포함되게 됐다. 보춘화의 경우에는 현재전국적으로 흔하게 발견되는 식물인데도 앞으로의 무분별한 채취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보호종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보춘화는 건조한 숲속에서 자라는 난의 일종으로 길이 20 ∼ 35㎝크기로 꽃은 3 ∼ 4월에 피며 연한 황록색으로 난 수집가들에게 인기도 있다. 구상나무는 전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잎뒷면이 흰색이며 6월에 짙은 자색꽃이 피고 열매는 녹갈색으로 9 ∼ 10월에 맺는데 무등산 덕유산 지리산 가지산 및 제주도에 분포하고 있는 특산종이다. 한편 현재 보호대상으로 지정된 동식물은 92종으로 양서류 5종,파충류 7종,곤충류 21종,식물류 59종등이며 이가운데 멸종위기종은 붉은점모시나비등 14종이며 감소추세종은 사슴풍뎅이를 비롯,12종이다. 또 금강초롱등 24종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서식하고있는 한국특산종이라는 이유로 지정됐고 비단벌레등 42종은 개체수가 희소하고 학술적인 연구가치가 높아 보호되고 있다.
  • 「시인의 마음」 그림으로 형상화

    ◎시의 날 기념 「시가 있는 그림전」 개막/유명시인들 작품 화가들이 재구성 매년 시의 날인 11월1일을 기념하여 열리는 서림화랑(514­3377)의 「시가 있는 그림전」이 지난 1일 개막됐다. 시인이며 화랑대표인 김성옥씨가 시와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하나로 묶은 전시회를 꾸몄다.이 그림전은 오는 11일까지 서림화랑 벽면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시의 날」이 제정된 지난 87년 시작하여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이번 전시에는 시인 19명의 대표작을 15명의 유명화가가 그림으로 형상화했다.정지용시인의 「불사조」와 김기림시인의 「못」을 원로 서양화가 김영주씨가 특유의 환상적인 화면으로 재해석을 시도했다.또 변종하씨는 김광섭시인의 「성북동비둘기」를 그렸고,강우문씨는 서정주시인의 「무등을 보며」를 향토성넘치는 화면으로 구성해냈다. 여류화가 석란희씨는 같은 여류인 강은교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를 그렸고,40대의 인기작가 이두식씨는 이형기시인의 「낙화」와 황동규시인의 「조그만 사랑노래」를 열정어린 붓자국으로 옮겼다. 이밖에 김종학 정건모 이숙자 안병석 장순업 김병종 김일해 윤장렬 장이규 이원희씨등 장르를 초월한 화단의 인기작가들이 시심을 모아 전시에 동참하고 있다.이 「시가 있는 그림전」은 일반적으로 시와 그림이 한 화폭안에 담겨진 작품을 전시하는 시화전과는 사뭇 다르다.시를 사랑하는 화가들이 평소 애송시를 깊게 되뇌며 떠올리는 이미지를 고유의 형상으로 나타낸 그림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애!/너는 모양할수도 없도다/너는 나의 가장 안에서 살었도다/너는 박힌 화살/날지 않는 새/나는 너의 슬픈 울음과 아픈 몸짓을 진히노라」 이 정지용시인의 시 「불사조」에 맞추어 화가 김영주씨는 애절한 염원이 엇갈리는 새로운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 고도 부여/백마강 굽이굽이 백제향기 물씬(주말여행)

    ◎부소산 오르니 낙화암이 반기고/절경에 취하면 3천궁녀 환영이…/정림사지5층석탑 이르면 여심은 절정 산이 거기에 있어 산을 오른다지만 거기에 있는 건 산이나 자연만이 아니다.강토의 옛 왕궁과 왕국이 여기저기서 우리의 발길을 기다린다. 잊었던 역사의 고도를 찾아가는 길은 산을 탈 때보다 평탄하다.그러나 백제로 가는 길은 쉽지가 않다. 길잡이가 되어줄 유물 유적이 다른 왕조에 비해 드물고 조촐한 까닭이다.그러나 백제가 우리에게 잃어버린 왕국일 리는 만무하다.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성이 자리잡았던 충남 부여읍을 찾는다.그럴사한 복제품을 빚어볼 밑바탕마저 대부분 멸실된 형편이지만 흔적과 흔적을 이어가면 백제의 숨결이 모아진다. 이 숨결은 희미하나 분명 복제품이 아니었다.부여읍에서 북쪽으로 30여㎞ 위에 있는 공주시내를 가로지르는 금강이 이 애잔한 숨결의 첫 판막을 연다.고구려에 금싸라기 한강유역을 뺏긴 백제는 475년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가 538년 사비(부여)로 재천도 했다. 부여땅을 적시면서 금강은 백마강으로 불린다.660년 신라·당 연합군에 패망하기까지 후기백제는 금강에 운명의 닻을 던졌지만 이 닻은 백제를 권토중래시키기엔 힘이 모자랐던 셈이다. 그래선지 금강은 한강에 비해 속절없이 부드러운 인상이다.부여 사비왕궁의 진산인 부소산과 맨살을 부딪치며 흐르는 백마강에 이르러선 이 느낌이 극도로 고양된다.부드러움이 극에 이르면 젊은 꽃잎이 스스로 떨어질 수도 있으리라.여기가 낙화암,3천 궁녀가 강물로 투신한 곳이다. 부여에 입성하면 누구나 맨먼저 부소산 절벽의 낙화암에 발을 디뎌보고 백마강 유람선에 오른다.부소산은 높이가 고작 1백6m에 그치고 군데군데 가설된 영일루 반월루 백화정 사비누 등의 누각은 일제시대나 해방후 작품이지만 백마강과 낙화암의 전설적인 만남이 있기에 서운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그러나 부여에는 왕궁은 물론 흔한 중창 사원건축 한동 없다.커다란 초석이 즐비해 사비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소산 남쪽 기슭에 대신 국립부여박물관이 번듯하게 서있다.고대 건물을 하나도 닮지 않은 외양이 처음엔 눈에 거슬리지만 한참 지나면 원형이 멸실된 백제건축이나 문화에 대한 그리움이 잡혀질 듯하다. 박물관 전시품은 눈여겨 볼만하다.특히 도기류의 독특함과 기와·전 문양의 선진성에 주목하라고 전문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부소산에 등을 돌리면 부여읍이 널찍하게 펼쳐진다.읍내 외곽에 위치한 능산리 고분군과 동남리 궁남지가 손짓한다. 뭔가 미진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읍내 중심지에 위치한 정림사지 5층석탑을 참관한다.통틀어 3기뿐인 삼국시대 제작 탑파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아 1천4백년전 건립당시의 원형을 거의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거기에 정림사터는 담장을 두른 경내가 1만평에 달하지만 5층탑과 고려시대 불상외에는 다른 건조물이 일체 없다.삭막하고 허허롭게 여겨지던 넓은 공지가 5층탑의 건축미에 공명돼 꽉 차오른다. 1천년을 건너뛴 백제와의 교감이다 ▷길잡이◁ ○…서울∼부여행 버스는 양재동 남부터미널에서 20분마다 출발한다.천안 대전 논산 등의 터미널에서도 부여행 버스가 5∼10분 간격으로 있다. ○…부여박물관은 일요일에 문을 여는 대신 월요일 휴관한다.
  • 월북시인 조명암작품 곧 해금/킹레코드사 한국가요사 출반계기

    ◎「무정천리」·「바다의 교향시」등 33곡 선보여 월북시인인 「바다의 교향시」작사자 조명암시인(80)의 작품이 곧 해금된다. 지난 88년 정부의 해금조치에서 제외됐던 조시인의 작품이 이번에 해금되는 것은 (주)킹레코드사가 오는 8·15광복특집 「레코드로 듣는 한국가요사」(1925∼1945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조씨의 작품이 33곡이나 포함된 점을 감안,문화부에 그의 작품을 풀어줄 것을 청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문화부는 관계기관과의 협의가 끝나는대로 조씨의 작품에 대한 해금을 공식발표할 예정인데 지난 한달간 그의 작품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사상면에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거쳐 취해진 조치다. 이번 조명암작품의 해금이 있게한 「레코드로 듣는 한국가요사」는 신나라레코드 기획에 킹레코드가 제작하는 것으로 1925년부터 1945년까지 당시 SP음반으로 나왔던 우리가요를 20장의 콤펙트디스크(CD)에 담아 출반하는 것.우선 10장이 8월초에 나오고 나머지 10장은 내년초에 출반되는데 여기에 조씨의 작품 「무정천리」「바다의 고향시」「잘있거라 단발령」등 33곡이 포함된다. 조씨는 1912년 충남 아산출신으로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 「동방의 태양」으로 등단했다.모더니즘계열의 시를 주로 썼고 광복후에는 희곡작가로도 활동했다.옛 가요팬들의 사랑을 받는 「낙화유수」「진주라 천리길」등 그는 수많은 우리가요의 생생한 노랫말을 남긴 인물이다. 지난 48년 월북해 북한에서 교육문화성 부상,평양가무단 단장,문예총중앙위 부위원장등을 지냈고 지금은 공직을 떠나 시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농산물 4억불 수입/4개월간/작년 동기비 50.6%늘어

    ◎팥 3백91%·당면 2백65% 증가 올들어서도 중국산 농산물의 수입이 계속 늘고 있다. 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중국산 농산물의 수입은 4억1천1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6%가 증가했다. 이 기간중 전체수입액 증가율은 4.4%였다. 지난해에는 대중국 농산물수입이 10억7백만달러에 이르러 전년에 비해 무려 76%가 늘어났다. 이처럼 중국산 농산물의 수입이 급증함에 따라 지난해 농산물이 대중국 전체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7%에 달했다. 지난해 대중국 농산물 수입은 사료가 전년보다 1백.3%가 급증한 4억8천6백만달러로 전체수입의 48.2%를 차지했고 섬유원료 및 모피가 2억2천8백만달러로 22.6%,식품류가 1억3천4백만달러로 13.3% 증가했다.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는 것은 일부 품목의 가격이 국내 가격에 비해 10분의1 정도밖에 안되는 등 전반적으로 값이 싸기 때문이다. 수입증가율이 가장 높은 품목은 팥으로 3백91.7%에 달했고 당면 2백65.9%,낙화생 1백31.6%,양가죽 95%,한약재 89.9%,나무젓가락 74.4%의 순이었다.
  • 중국제/골동품서 반도체까지 “밀물”

    ◎새 수입선 중국과의 교역실적은/올 수입 21억불·적자 7억불/농산물이 전체의 29% 차지/옥수수 2억7천만불·술 3백만불 들여와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건이 점차 늘어나면서 대중국교역도 적자를 보이고 있다.5일 상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전년 동기보다 54.4%가 늘어난 14억7천만달러를 중국에 수출하고 61.8%가 증가한 21억4천9백만달러를 중국으로부터 수입,6억7천9백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은 지난 89년 14억3천8백만달러(15.4%감소),90년 15억5천3백만달러(8%증가)로 그 해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및 1.5%였고 올해에는 1·3%로 큰 변화가 없다. 반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89년 17억5백만달러(22.9% 증가),90년 22억6천8백만달러(33.1%증가)로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및 3.2%에서 올해에는 4%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올해의 수입을 품목별로 분류하면 농산물이 28.9%로 가장 많고 화공품 22.2%,섬유류 18.8%,철강·금속제품 12.1%,광산물 10.9%등이다. 개별 품목으로 보면 전년 동기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옥수수가 2억7천50만달러로 전체 대중수입의 12.6%를 차지했고 역시 5배 이상 증가한 시멘트가 2억4천5백60만달러로 전체 대중수입의 11.4%를 차지했다.옥수수의 경우 과거의 수입국이던 미국에 비해 가격이 6∼7%가 싼데다 품질이 좋고 납기가 짧아 수입선이 바뀐 품목이며 시멘트 수입의 급증은 국내 건설경기의 과열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 국내 물가안정을 위한 품목으로 참깨 8백만달러(48.8% 증가),낙화생 1천3백40만달러(3백41.8% 증가)가 들여왔고 중국의 저가공세로 판유리 2천1백10만달러(34.9% 증가)가 수입됐으며 주류(3백20만달러)고사리(5백50만달러)골동품(3백30만달러)등도 포함돼 있다. 국내의 기능공 부족및 인건비 부담 증가등으로 국산이 모자라거나 중국산의 값이 싼 기계및 전자전기 부품의 수입도 상당히 큰 폭으로 늘어나 재봉기 농기계부품 건설중장비 자동차부품 특장차등의 기계류가 4천5백20만달러(1백70.9% 증가),건전지 반도체 라디오카셋트 조명기기등의 전자·전기류가 2천7백80만달러(1백46% 증가)어치씩 수입됐다. 상공부는 수송거리나 납기,국산품의 경쟁력 상실등으로 미루어 앞으로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중국산땅콩 북한산으로 위장반입/면세관례 악용,관세 5억 포탈 기도

    ◎가공협회 무역부장 구속/관세청 서울세관은 27일 한국낙화생가공협동조합 무역부장 김용대씨(42)를 관세법위반등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 2월6일 중국 연변의 대외경제무역공사 홍콩지사인 키트닝상사로부터 13억원어치의 북한산 낙화생 콩 2천t을 수입하기로 했으나 선적이 늦어져 국내 수요자들의 독촉이 심해지자 대외경제무역공사 박광수씨와 짜고 중국 난산항에서 선적한 낙화생을 북한산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지난 22일 부산항으로 들여와 관세 5억원을 포탈하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물자교류를 내국간 거래로 인정,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 남북혈육·사제상봉 “부푼 기대”

    ◎북명창 김진명옹,오늘 서울 동생 만나/“김진명옹은 내 스승” 양소운씨 잠 설쳐 평양민족음악단 단원 가운데 최고령자이자 인민배우인 서도소리의 명창 김진명씨(78)와 서울 강서구 공항동 53의34에 사는 친동생 학명씨(74)의 상봉이 11일 이루어진다. 이는 서울의 학명씨가 북에서 온 진명씨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남북연락관이 접촉,공연스케줄이 없는 이날 상오9시 코스모스홀에서 상봉을 주선키로 합의함으로써 헤어진지 42년만에 혈육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보도를 통해 진명씨가 형임을 확인한 동생 학명씨는 10일 상오 부인 이영애씨(69)와 큰아들 성만씨(46·회사원),손자 등 가족을 데리고 북한 단원들이 묵고 있는 쉐라톤 워커힐호텔을 찾았으나 형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평양 민족음악단의 원로 소리꾼 김진명씨(78)가 서울에 사는 동생 학명씨와의 상봉을 기다리는 가운데 또다른 사람의 같은 고향 제자가 나타나 극적인 해후의 순간이 겹치기로 기다리고 있다. 김씨의 제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기능보유자 양소운씨(66). 양씨는 9일 밤 「예술의 전당」에서 베풀어진 평양민족음악단 공연 녹화중계방송 화면을 통해 김씨가 스승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직감했다. 마침 양씨는 인간문화재 자격으로 10일 밤 국립극장 2차 공연에 초청장을 받았기 때문에 밤잠을 설친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하고 일찍 국립극장으로 달려와 자리를 잡았다. ◎공훈배우 김관보씨/남편의 전처 딸 찾아 한편 북한의 공훈배우 김관보씨(69)도 서울에 가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월북작가 조영출씨(필명 명암)의 두번째 부인으로 두 사람은 지난 49년 결혼했는데 남편 조씨가 해방전 남한에서 결혼,딸을 두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김진명씨가 서울에 있는 친동생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남편의 전처 딸을 찾을 수 없겠느냐고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남한에 사는 조영출씨의 딸은 민희씨(45·인천시 청천동 300 삼익아파트 2동). 민희씨는 『아버지가 월북할 당시인 지난 48년 어머니 장경옥씨,그리고 나와 언니 용희,동생 남희 등을 남겨 놓았다』면서 『3년뒤인 지난 51년 어머니가 나를 경기도 고양에 사는 할머니에게 맡기고 언니와 동생만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 월북했다』고 전했다. 현재 개인사업을 하는 남편 주경환씨(49)와 결혼,1남1녀를 둔 민희씨는 10일 새어머니 김관보씨를 만나기 위해 워커힐로 달려갔으나 김씨가 이미 공연장으로 떠나 만나지 못했다. 조영출씨는 1913년 충남 아산출생으로 월북하기 전까지 시와 소설로 잘 알려진 인물. 특히 조명암이란 필명으로 「신라의 달밤」 「진주라 천리길」 「서귀포 칠십리」 「낙화유수」 등 많은 대중가요를 작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승영희씨 친척 주장/70세 노인 면담 신청 또 평양민족음악단의 유일한 저음독창으로 황병기교수와 북측 성동춘단장의 합작곡 「통일의 길」을 불렀던 승영희씨(45)의 부친 승용운씨(75)와 고종사촌이라는 강한진씨(70·서울 양천구 신정동 1015의4)가 10일 하오 승씨의 면담을 요청.
  • “증시 공황 아니냐”허탈/“마의 목요일”… 객장 이모저모

    ◎시위대 닥칠라”증권사 셔터내리고 영업/전광판은 온통 녹색뿐… “큰일났다”한숨만/서툰 기금조성안에 장외불안이 하락 부채질 ○…26일의 주가 대폭락은 「경악」바로 그것이었다. 종합주가지수는 매몰찬 폭풍앞에 놓인 연약한 꽃잎처럼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후장들어 지수의 하락 속도는 낙화 정도가 아니라 그저 허공에서 떨어뜨린 돌멩이의 낙하였다. 주가시세 걱정에 전전 긍긍하다 잠든 주식투자자들의 악몽에서나 일어날 급전직하의 형상이었다. 꿈이라면 식은땀과 함께 가위눌린 채 깨어나기 마련이지만 화창한 봄날에 일어난 엄청난 현실이었다. 초시계처럼 지수 숫자가 금방금방 변하기만 하는 무정한 전광판을 멍하니 응시하던 객장 투자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 망할놈의 전광판을 꺼버리라」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증권사 지점마다 전광판끄기를 명령했다. 지점들은 사람들이 요구하기 전에 녹색(하락표시) 천지인 전광판 스위치를 내렸으며 셔터까지 내린채 뒷문출입으로 전화주문만 받기도 했다. 창구에는여자들만 남아있고 격앙된 투자자들의 시비 표적이 되기 쉬운 남자직원들은 거의 모조리 몸을 피했다. 물리적으로는 큰 마찰은 없었으나 이날 객장 투자자들은 어느때보다도 공황 심리에 몰린 군중의 양태를 드러냈다. 주가가 저 지경으로 실성한 마당에 이판사판이라고 성질이 받친 사람들도 꽤 됐다. 증권거래소는 이날 올들어 처음으로 시위 투자자들을 맞았는데 사람들도 1백명이 채 안되고 큰일은 없었지만 거래소가 주식시장의 상징이듯 이곳에 삼삼오오 떼지어 찾아와 말없이 서있는 사람들은 투자자의 가눌 길 없는 불안과 허탈감을 웅변해줬다. ○…증권사 창구는 이날 영업다운 영업을 하지 못했는데 투자자들의 모습이 어른거린 탓도 있겠으나 직원들 자신들조차 이런날 영업을 한다는게 몹쓸 짓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일할 마음이 내키기는 커녕 맥이 탁 풀리고 만다는 말이었다. 이들 중에는 주가대폭락이 투자자에 끼칠 공황심리의 만연도 문제지만 대폭락이 계속 될 경우 불가피해질 경제 전반의 공황 상태가 눈앞에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주가동향분석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큰일났다」 「괴롭다」는 말만 연발하는 실정인데 전날의 증권업협회와 증권감독원거래소의 증시부양조치를 『서툴고 섣불렀다』고 매도하는 목소리가 컸다. 협회가 증권사공동출자로 2조원의 증시안정기금을 맘먹고 조성한다는 결의를 했다지만 투자자들은 『속히 빤히 들여다보이는 말을 하고 있다』는 반응이라는것. 증권사 모두가 자금난 때문에 두손이 묶여 쩔쩔매는 판국인데 어디서 그돈을 염출하겠느냐며 믿지를 않는다고. 또 협회의 기금안은 무엇보다 증권사의 자율성 및 자구책이란 좋은 명목을 내걸고 있으나 허울뿐이고 돈줄을 쥔 정부가 기금조성에서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것이 투자자를 실망으로 몰고갔다. 기금의 조성 계획에서도 증시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앞에서는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돈마련 일정을 보면 한달뒤의 일로 미룬데다 그것도 고작 5천원이라는 불평이 대단하다. ○…협회의 기금은 어떻다해도 당국의 대용증권 대납비율 변경조치는 「타이밍 감각」이 제로로써 증시부양이 아니라 증시붕괴를 위한 「멍청한 짓」이라고 일갈하는 증시관계자가 많다. 대납제도 변경은 그동안 증권사나 투자자들이 시장개선 사항으로 줄기차게 요구해 온것은 사실이나 협회의 기금안과는 시차를 두어 실시해야 마땅하다는 분석. 상품주식을 팔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유부동산을 처분할 리 없는 증권사가 기금에 출자하기 위해선 미수매물을 반대매매시켜 돈을 모으는 수 밖에 없다. 미수금이 걸린 투자자들은 서둘러 매도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됐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대납비율 변경으로 외상거래가 어려워져 그나마 장을 지킨 가수요가 사라져 매수세의 격감이 필연적이었다. 협회와 당국 양쪽으로부터 매도로 몰리게끔 협공당한 미수물량은 1조1천억원에 가까운 사상최대치이며 반대로 이를 소화해낼 고객예탁금은 1조3천억원 밖에 안돼 쏟아지는 「팔자」를 제대로 받아낼리 만무해 지수 대폭락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액수는 그런대로 모양을 갖췄지만 암만봐도 숫자놀음일 것같은 기금조성에 투매가 속출한 이날 노사분규와 KBS사태등 정치ㆍ사회적 불안요인이 매도세를 한층 부풀리고 말았다. 이날의 투매는 증시 앞길에 대한 비관적 판단이 장을 휩쓸면서 나타난 것이나 우리사회전반에 스며들고 있는 「기둥뿌리가 어쩐지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의 표출로도 볼 수 있다. 증시내적으로 보아서 이날 투매로 나선 미수물량은 최소한 6천억원 선까지 소화되어야 조금 장이 안정을 되찾는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들의 구호인 「폐장,아니면 대통령의 회생책발표」가 무리한 주문이더라도 투자심리를 쓰다듬어줄 방안이 강구되지 않으면 투매는 계속될 전망이다. 어느 증권사는 7백선을 1차 저지선,6백70선을 2차 저지선으로 제시하고 있다. ○…봄기운이 난만하기만한 목요일 증시에서 터지고만 대폭락 「불랙」파동은 하루로 그친다기 보다는 당분간 계속 몰아칠 성격의 것으로 이에따라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질 예상이다.〈김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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