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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3)노동시인 박노해

    “긴 공장의 밤/시린 어깨 위로/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로 시작되는 시‘시다의 꿈’이 황지우·김정환이 주축이 되어 나왔던 동인지 ‘시와 경제’ 제2집에 발표된 것은 1983년이었다.그리고 이듬해 당시로서는 매우 낯 선 투박한 판화에다 시집 크기로는 약간 어색하게 국판으로 된 ‘풀빛 시선’5권으로 ‘노동의 새벽’이 나왔다. “오늘 우리의 시는 마땅히 보다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려는 몸부림의 한복판 바로 거기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풀빛 시선을 내면서’)는 이 기획의제1권은 김지하의 ‘황토’였고,이어 ‘낙화’(양성우),‘붉은 강’(강은교),‘국밥과 희망’(김준태)이 나와 있는 비중 높은 시리즈였다. 표지 날개에는 박노해를 “1956년 전남 출생.15세에 상경하여 현재 기능공. ‘일하는 사람들의 미래(‘시와 경제’ 제2집)에 ‘시다의 꿈’ 외 시 6편발표”라고 짤막하게 약력을 소개하고 있다.표4에는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박노해의 첫 시집이다”라고 소개돼 있다.해설‘노동 현장의 눈동자’에서 채광석은“70년대 중반 유동우의 ‘어느 돌맹이의 외침’ 이래 쏟아져 나온 근로자들의 체험 수기,80년대에 들어와 ‘우리들 비록 가진 것 적어도’‘모퉁이 돌’ 등을 통해 선보인 근로자들의 시·수필·소설·르뽀·마당극 대본들과 더불어 박노해의 작품은 70년대 이래이 땅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현실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의 세계를 이룩하고자 노력한 고통의 결실이다”고 선언했다. “올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갔다//작업복을 입었다고/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공장장님 로얄살롱도/부장님 스텔라도 태워주지 않아/한참 피를 흘린 후에/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손무덤’).손쓰기 늦어진 그 잘린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는 냉엄한 현실적인 장면을 비롯한 노동현장의 충격으로 이 시집은 이내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으나,베스트셀러가 되었음에도 시인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아니,그런 훌륭한 노동시를 쓸만한 시인은 존재하지 않고 기성 시인 누군가의 대필이라는 설이 파다한가운데 다시 그의 이름이 부각된 것은 계간지 ‘노동해방문학’을 창간(1989년 4월)하면서 였다. 발행인 김사인에 편집위원 백무산·정인화·조정환·정남영·임규찬·임홍배가 포진했던 이 잡지는 “이 나라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계급의 과학적 사상 위에 굳건히 선 노동자 월간 매체를 간행하면서,천만 노동형제들에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순수한 노동해방 일꾼들이 주도하는 노동자계급의 매체가 될 것”을 다짐하며 “단결합시다! 힘차게 전진합시다!”고선언하고 있다. ‘노동해방문학’은 창간호 권두 특집으로 ‘노동해방 투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젖히는 박노해 시인의 신작시 12편’을 싣는다.“제가 아직도 신분상의 이유로 공개적 활동을 하지 못하여 미력이라도 보탤 수 없지만,멀리서나마 동지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가슴 졸이며 함께 하고 있습니다.동지들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시 몇 편을 투고합니다.건투를 빕니다.1989년 3월 4일”이란 전문이 붙어있는 이 특집에서 그는 ‘머리띠를 묶으며’‘임투 전진 족구대회’ 등 ‘노동의 새벽’의 시보다 더 투쟁적인 작품을 발표했다.이어 그는 8월호에서 시사시를 제창하며 강력한 현실 고발시를 썼고,그 뒤 시뿐이아니라 산문으로도 현실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인터뷰] ‘스페인 무용’ 공연하는 원로무용가 조광씨

    원로 무용가 조광씨(70·한국플라멩코협회 이사장)가 춤 인생 50년을 자축하는 무대를 갖는다.오는 20일 오후7시30분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 오르는 ‘조광 스페인무용 공연’이 그것. “집시의 민속무용에 불과하던 플라멩코는 무대예술로서 이미 위치를 확고하게 굳혔습니다.지금도 스페인에 가면 각국에서 플라멩코를 배우려고 온 춤꾼들이 바글바글합니다.”조이사장은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인 장추화에게서 춤을 배우다 일본으로 건너가 발레를 전공했다.6년만에 귀국해 잇따라 가진 발표회가 모두성공을 거두어 발레리노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다 44살때 플라멩코를 배운다고 스페인 유학을 떠났다.“성격에 맞는 격정적인 춤을 추고 싶어서”였다.79년 돌아온 그는 국내 무용가로서는 처음으로 플라멩코를 무대에 올렸다. 이번에 세번째 ‘스페인무용 공연’을 갖는 조이사장은 ‘알레그리아스’‘세그리야스’‘카냐’등 전통적인 플라멩코 작품을 직접 선보인다.아울러 우리춤과 플라멩코를 접목,대금 가락에 맞춰 추는 ‘낙화’,재즈에 맞게끔 플라멩코를 변용한 ‘플라멩코 재즈 판타지’등 창작무용도 발표한다.그에게서 플라멩코를 배운 세종대 학생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 그는 “아직 배움이 부족해 돈이 모이면 스페인에 가 공연을 보며 공부한다”면서도 “그렇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한국의 정서와 춤사위가 깃든 조광류 플라멩코”라고 말했다.“연세가 많아 연습이 고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이사장은 지난해 11월부터 하루 서너시간씩 춤을 췄다고 밝혔다.이어 “무용수는 나이들수록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만큼도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관객 앞에 서겠는가고 되물었다. 이용원기자 ywyi@
  • [외언내언] 平壤의 ‘사랑의 미로’

    우리 국민이 많이 부르는 대중가요 가운데 10여곡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애창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국가정보원이 발간한‘최근 북한 실상’4월호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애창되고 있는 남한의 가요는 최진희씨가 부른‘사랑의 미로’인 것으로 알려졌다.또한 북한 주민들이 가장즐겨 부르는‘남한 가요 베스트 5’를 꼽는다면 ‘사랑의 미로’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 ‘바람 바람 바람’ ‘독도는 우리 땅’ ‘그때 그 사람’ 순위로 나타났다. 그리고 북한 장년층은 ‘돌아와요 부산항’을 포함해서 ‘홍도야 우지마라’ ‘낙화유수’ 등 주로 흘러간 유행가를 선호하는 반면 대학생을 비롯한젊은층은 ‘바람 바람 바람’과 ‘독도는 우리 땅’ 같은 비교적 박자가 빠른 노래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독도는 우리 땅’은 특유의 민족성 때문에 공개 석상에서 즐겨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이같은 대중가요에대한 선호도는 남한의 경우와 비슷해서‘피는 못 속인다’는 민족동질성을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필자가 지난달 금강산관광길에 온정리에 신축된 북한 교예단 전용공연장인 문화회관에서 북한 보천보악단이 연주하는 남한 대중가요 비디오테이프를보면서 휴전선 없는 유행가의 의미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지난해 중국 도문(圖們)에서 만난 40대 탈북자도 남한 대중가요 3곡을 서슴없이 부르는 것을 보면서 북녘땅에 우리 대중가요가 널리 애창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남한의 대중가요는 주로 중국 조선족 보따리장수들이 북한에 반입하는 카세트테이프에 의해 확산된다고 한다.그리고 먹고 살기도 힘든 북한 주민들이 남한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구입하는 이유 가운데는 남한을 동경하는 일면도 있다고 한다.이러한 부작용을 의식한 북한 정보당국이 강력한 단속을 펼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최근에는 당 간부 자녀들까지남한 가요가“개인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감동적인 노래”라면서 차 안에서카오디오를 통해 듣고 있는 실정이 됐다.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남한의 대중가요가 분단의 장벽을 넘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애창되고 있다는 사실은 남북주민 정서를 함께 제고시킨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통일 과정에서 남북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더욱 그렇다.이같은 맥락에서 북한 가요‘휘파람’이 대학가에서 유행하는것을 차단시켰던 우리의 경우는 아쉬움으로 남는다.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을타고 북한 가요들이 남한에서도 자유롭게 불려지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청수 논설위원
  • 대중음악-자우림 14일부터 콘서트

    ‘헤이 헤이 헤이’‘일탈’‘밀랍천사’등 음악성과 사회성을 두루 갖춘곡들로 지난해 단연 돋보였던 4인조 록밴드 ‘자우림’이 오는 14일부터 3일간 대학로 라이브극장2관에서 새해 첫 공연을 갖는다. 최근 2집앨범 ‘연인’을 낸 자우림은 이번 공연에서 전작에 비해 더욱 세련된 사운드로 영·미 록에 한발짝 다가선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번 앨범에서는 1집과는 달리 모든 멤버들이 작곡에 참여했다.모던록의 감성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적인 록발라드 ‘미안해 널 미워해’는 귀에 쏙 들어오는 김윤아의 매력적인 보컬과 어울려 벌써 인기곡으로 떠올랐다. 청소년 자살을 소재로 한 ‘낙화’,노숙자에 대한 따뜻한 격려를 담은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TV매체를 비판하는 ‘하늘로 가는 상자’등사회문제에 대한 이들의 시각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 가볍고 감각적인 곡들이 난무하는 요즘 가요계에서 자우림같은 반듯한 밴드의 활발한 활동이 반갑다.(02)539-0303.李順女
  • 충청 젖줄 금강 오염현장(4대강 上水源 긴급점검:3)

    ◎생명 잃은 비단강… 취수장 주변 악취 진동/낚시꾼 등 행락객 몰려 상류부터 몸살/지천 축산폐수 유입… 곳곳 물고기 떼죽음/하류공단서 검은 물 쏟아내 유유히 바다로 금강(錦江)은 더이상 비단강이 아니다.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에서 발원(發源)해 대청호를 거쳐 금강하구둑까지 장장 396㎞를 내달리며 충남과 전북의 젖줄 역할을 해온 금강.대청호 인근의 상류는 비교적 깨끗하지만 곳곳에 오염원이 널브러져 있고 하류는 탁류로 변한지 이미 오래다.대전 갑천,공주와 부여 등 취수지역을 거쳐 흐르는 금강의 오염현장을 상하류로 나눠 심층취재했다. 충청과 전북 일원 300만 주민의 생명수인 금강은 상류인 대청호에서부터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청호 상류인 충북 보은군 회남면.평일인데도 수백명의 낚시꾼들이 회남대교 주변을 비롯한 곳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운채 장사진을 치고 있고 호수 가장자리엔 음식찌꺼기와 빈깡통·비닐 등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주민 梁承鎬씨(35)는 “휴일에는 낚시꾼들이 상수원보호구역까지 몰려들고 있다”고 말한다.금강유원지 옥천천은 훨씬 심하다.사람들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강물 위에는 각종 오물과 쓰레기가 떠다니고 수중보를 가로지르며 차량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류로 내려가면서 금강의 몸살은 중병으로 바뀐다.생명력은 아예 찾아볼 수 없고 언뜻 보기에 흐린 먹물을 푼 것같다. 백제의 고도(古都)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드래나루터 앞 금강 본류인 백마강은 거무스름한 물로 넘실거렸다.자세히 들여다 보면 검은 깨같은 모양의 부유물질이 물속을 떠다닌다.물속 50㎝에 있는 물체조차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탁했으며 비가 오면 황토물로 뒤덮여 20㎝ 물속도 보이지 않는다는게 주민들의 얘기다. 삼천궁녀 나당(羅唐)연합군에 밀려 치마폭을 감싸안고 뛰어 내렸던 낙화암 밑은 옛날의 청정한 물빛을 잃은지 오래다. 낙화암을 구경하고 유람선에서 내려오는 관광객들도 비릿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린다. 하류로 더 내려가 백제교에 이르자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치지 않은 부여읍의 생활하수가 검은 빛을 드러내며 마구 쏟아진다. 구드래나루터 뱃사공張모씨(65)는 “비가 오든 안오든 항상 물이 흐리다”며 “10년 전만 해도 마음놓고 수영을 했는데 요즘엔 헤엄을 치면 금방 피부병이 생긴다”고 말했다.그는 10년 전 여름에는 백사장 앞에 수영장이 마련돼 하루 수백명이 찾았지만 지금은 배를 타고 공주쪽으로 가다보면 분뇨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말한다. 낙화암에서 200m 위쪽에 있는 부여취수탑은 오염상태가 더 심하다.취수탑 50m쯤 위에서는 생활하수와 밭고랑의 농약 등이 섞인 정동천이 썩은 물을 마구 토해낸다.그 물은 곧바로 금강과 섞이면서 취수탑으로 빨려 들어간다.부여읍 쌍북리 부여취수장 입구에 있는 농지개량조합의 대형 펌프장에는 지푸라기와 비닐 등 각종 쓰레기가 쌓인채 악취를 풍기며 썩고 있다. 충남 부여군·논산시,전북 전주·군산·익산시 등 주민 60만명에게 하루 27만t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는 부여취수장.대전과 공주시 등 300여만명이 매일 쏟아내는 생활하수 100만여t과 2,400여 업체가 버리는 12만t의 산업폐수가 흘러든다. 공주시민 5만여명에게 하루 2만8,000t의 물을 공급하는 공주취수장도 마찬가지다.검은 물이 취수탑으로 곧바로 빨려 들어간다.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청벽’에서 충남도산림환경연구소로 가는 비포장도로 옆의 바위틈에는 플래스틱과 종이 등 쓰레기가 볼썽사납게 처박혀 있다.여름철마다 어른 팔뚝만한 붕어 수십마리가 떼죽음당해 창자가 터져나온 배를 허옇게 드러낸채 썩어가던 곳이다. 금강은 대청호를 벗어나면서 대전시민의 생활하수와 산업폐수를 쏟아내는 갑천으로 인해 급격히 더러워진다.대전하수종말처리장이 건설돼 많이 나아졌으나 지난 95년과 96년만 해도 12*을 훨씬 넘었다.하지만 갑천은 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커먼 물줄기를 금강으로 뱉아내고 있다. ◎朴鍾奭 금강환경감시대 반장/정화시설 확충안되면 수질개선 절대 불가능 “근본적으로 수질개선을 위해서는 환경기초시설 확충과 주민들의 의식전환이 가장 시급합니다” 환경부 금강환경감시대 朴鍾奭 반장(43)의 수질개선책 진단이다.금강과 지천에 인접한 지자체가 하수종말처리장과 분뇨처리장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는 절대 수질이 개선될 수 없다며 朴반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금강 오염의 주요인은 무엇인가. ▲생활하수와 축산폐수다.총 오염 부하량의 52%와 20%를 차지한다.농지에서 흘러내리는 농약 등 농업폐수도 12.5%나 된다.산업폐수는 3.6%로 예상보다는 많지 않다. ­골재 채취는 어떤가.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데. ▲웅덩이가 생겨 물 흐름이 늦어지면서 고인 물이 썩게 된다.모래와 자갈이 갖는 특유의 자정력을 잃기 때문이다.현재 금강에는 공주시 9곳,부여군과 연기군 각 6곳 등 충남도내 8개 시·군 35곳에서 골재를 채취하고 있는데 환경영향평가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근본적인 수질개선 대책이 있는가. ▲무엇보다 지자체가 오염방지에 앞장서야 한다.하수종말처리장을 설치,생활하수와 산업폐수 등을 정화,방류해야 한다.분뇨처리장도 시급하다.폐수방류에 대한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축산폐수도 문제다.어느것 하나 심각하지않은 게 없다. ­제도적으로 보완돼야할 점은. ▲배출허용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현재 공장에서 하루 2,000t 이상의 폐수를 배출할 때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를 80ppm이하,2,000t 미만일 때는 120ppm이 기준이다.이는 지자체 하수종말처리장과 공단의 공동폐수처리장에서 배출하는 방류수질 기준인 하수 20ppm과 폐수 30ppm에 비해 너무 높다.기업의 경제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
  • 원로 이형기씨 시집 ‘절벽’/투병중 쓴 신작시 42편 담아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찍이 ‘낙화’라는 시를 통해 ‘사라짐의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 원로시인 이형기씨(65)가 새 시집 ‘절벽’(문학세계사)을 냈다. 이번 시집은 이씨가 지난 94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4년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 애면글면 쓴 신작시 42편을 묶은 것.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시인의 강렬한 의지와 존재에 대한 성찰이 전편에 흐른다. “내 가슴은 캄캄한 동굴이다/끝 닿지 않는 그 밑바닥에/섬뜩하게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통처럼 아직은 살아 있는/생명의 몸부림/말이 되기전의 안타까운 손짓발짓이다/…/그리고 침묵의 해저로/가만히 가라앉고 싶다”(‘동굴’중) 시인에게 있어 소멸이란 삶의 막다른 경계이자 우주적 흐름 속에 자아를 던져 넣는 새로운 삶의 관문을 뜻한다.이러한 시인의 ‘소멸의 미학’은 매순간 삶의 모서리를 힘겹게 건너가는 우리에게 깊은 시적 울림을 남긴다. 이 시집엔 ‘새 발자국 고수레’‘앉은뱅이꽃’‘허무의 빛깔’‘미래를믿지 않는 바다’‘센양의 아침풍경’ 등의 작품이 담겼다. 시집 끝에는 시인의 시력(詩歷) 50년을 갈무리한 경구집 ‘불꽃 속의 싸락눈’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 북방동포 인기가요/‘눈물젖은 두만강’ 1위

    ◎소양강 처녀·낙화유수·봉선화 연정순 중국 연길 등에 거주하는 북방동포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는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인 것으로 조사됐다. KBS 사회교육방송국의 북방동포 대상 프로그램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가 올들어 11월까지 접수한 북방동포 신청가요를 집계한 결과,‘눈물젖은 두만강’이 23회로 1위에 올랐다.다음으로는 ‘소양강처녀’(20회),‘낙화유수’(18회),‘봉선화연정’(15회),‘사랑의 거리’(15회),‘서울에서 평양까지’(12회),‘꿈에 본 내 고향’(12회),‘홍도야 우지마라’(11회)등이다. 한편 중국 연변방송국에 의뢰,11월15일부터 한달동안 연변지역 동포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가요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20대 젊은층에선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30∼40대에선 배일호의 ‘요점만 간단히’,50대 이상에선 ‘눈물젖은 두만강’이 가장 인기있는 가요로 꼽혔다. 또 연변대 1·2학년생 107명과 연변 재정학교 학생 150명 등 20대 257명을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존재의 이유’(57명)에 이어 HOT의 ‘캔디’(48명),영턱스클럽의 ‘정’(36명),클론의 ‘빙빙빙’(11명),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8명),젝스키스의 ‘배신감’(8명),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8명)등의 차례로 좋아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밖에 연길시 노래방 5곳에서 실시한 30∼40대 조사에선 ‘요점만 간단히’,현숙의 ‘요즘 남자 요즘 여자’,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편승엽의 ‘초대받고 싶은 남자’ 등이 인기있었다. KBS 사회교육국은 이 조사결과를 1월2일 하오 10시 신년특집으로 방송한다.
  • (주)오에스씨/데뷔작 「머털도사」 해외상장 야망

    ◎2년 공들인 대작… 「8월 출시」 막바지 준비/흥부전 등 우리고전내용 삽입… 재미 더해 95년 5월 창업한 (주)오에스씨(02­3476­3141,2)는 오는 8월 데뷔작을 내놓는다.2년을 넘게 준비한 첫 작품은 「머털도사」.인기 만화가 이두호씨의 원작으로 TV만화영화로도 만들어져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다. 하지만 게임은 원작에서 주요 캐릭터 몇 개만 따오고 스토리를 비롯한 전반적인 구성은 다시 새롭게 바꿨다. 장르는 시뮬레이션 RPG.리얼타임(실시간)전략방식에 전략적인 턴(Turn)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방식의 전투시스템이다. 무엇보다 강점은 한국적인 특징을 잘 살렸다는 것. 「단군세기」에 근거한 「한님의 나라」라는 인간계 설정뿐 아니라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민간신앙에 근거한 「십이지신」,너와집,서낭당,낙화암,흔들바위 등 한국적인 문화유산을 게임에 집어넣었다.또 「흥부전」에서 따온,새가 물어다 준 박씨를 키워서 얻게 되는 아이템,선녀의 옷을 훔치는 나무꾼 등 우리 고전의 재미있는 부분을 삽입한 것도 독특한 시도다. 한국적인 요소를 중시해서 만들었지만 정작 게임은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시장을 노려서 만들었다는 것이 개발자들의 설명이다. 도트 단위의 부드러운 스크롤을 지원,시각적인 효과를 높인 점이나,획일적인 스토리에서 벗어나 열두 나라를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게 한 것등 모두 세계적인 수준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 게임이 끝나면 역시 한국적인 캐릭터인 「장보고」를 소재로,RPG나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 생각이다.다른 개발사에서도 비슷한 소재로 준비하고 있어 게임의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다만 시대적 배경은 미래로 한다. 이처럼 한국적인 소재로 세계시장을 정복하겠다는 것이 이 회사 이장석 사장(39)의 복안.그간 게임유통을 비롯,다른 분야에 치중한 것도 한국적인 소재로 만든 「대작」을 내놓기 위해 역량을 축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동국대 전자공학과 76학번인 이사장이 졸업을 앞두고 생각했던 길은 세 가지라고 한다.유학을 가서 영화공부를하는 것,다시 국내 학교에 입학하는 길,또 하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는 것이었다.하지만 진로는 엉뚱하게 「배기가스 분석기」를 만드는 제조업체를 차리는 것이었다.그리고는 결국 게임시장까지 뛰어들게 됐다.제조업체에서 버는 수익을 게임을 만드는데 쏟아 붓고 있다. 그는 게임업체를 만들면서 장기적으로 10년 플랜을 세웠다.외형적으로는 직원 50명,매출액 2백억원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킨다는 것.구체적인 목표는 한국 게임개발업계의 기술 표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게이머들이나 유통업체들이 요구하는수준을 개발자들이 못 따라가는 것이 사실이예요.그들은 최신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대수준도 그만큼 높을수밖에 없지요.개발자는 소재선별력을 바탕으로 시장이 원하는 게임으로 승부를 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실력있는 게임 개발자의 육성이다.여기에다 유통은 대기업이,개발은 소기업이 전담하는 이상적인 구조가 정착하는 것도 국산 게임을 활성화 시킬수 있는 첩경이라고 강조한다. 이사장은 『게임산업은 앞으로 경쟁이 더 치열해지기 때문에 진정한 「프로」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적어도 일본에서 판권을 따러 올 정도의 수준작은 만들어 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 북 암시장 활성화… 배급체제 동요/안기부 국회보고

    ◎지하철역 떡·김밥 노점상… 청바지도 등장/간부계층서도 무사안일·보신주의 만연 국가안전기획부는 16일 국회 정보위에 대한 국감에서 북한사회의 변화상 평가와 국제조직범죄 실태 및 대책,사설정보 불법유통에 따른 폐해 등에 대해 보고했다. ▷북한사회의 변화◁ 북한 간부계층사이에는 「혼란시에는 몸을 사리는게 최상」이라는 인식아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만연해있는 것으로 분석됐다.주민들도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고,청소년들은 「능력껏 돈을 벌자」는 자본주의 동경현상으로 상사원·상점원등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철도나 지하철역 부근에서는 거리사진사와 금붕어·떡·김밥을 파는 노점상이 등장했고 음악은 애정을 주제로 한 우리가요인 이별·낙화유수가 유행하고 있으며,의상도 청바지등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기부는 『평양 등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가라오케·전자오락·디스코춤이 유입된 가운데 비디오·카세트테이프를 통한 지하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또 『암시장 활성화로 국가의 배급체제가 동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위조달러 유통 및 유입◁ 북한이 지난 94년 6월 보완된 초정밀 위폐를 제작,마카오 소재 북한 조광무역이 텔타은행에 25만달러를 입금시킨 것으로 드러났다.이 위조달러는 슈퍼노트로 불리는 요판인쇄(수작업)로 제작,거의 진폐와 같아 식별이 어려우며 100달러가 80∼90달러로 암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설정보기관의 실태 및 폐해◁ 증권가를 중심으로 사설정보지 발간조직(10여개) 증권투자 자문업체(50여개) 증권투자자클럽(50여개) 증권업체(33개) 등이 사이비정보지를 발간,북침준비설·경쟁기업에 대한 세무사찰 및 부도설·지도층의 축첩설 등을 은밀히 유포시키거나 고액을 받고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또 서울지역에만 200여개 심부름센터가 난립,불법도청 및 금전·남녀관계 정보와 공공기관의 인적정보등을 빼내 선거출마자 등에 매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범죄조직의 국내 침투 실태◁ 국내침투를 기도하고 있는 범죄조직은 일본 야쿠자(3천개 8만명),러시아마피아(5천700여개 3백만명),중국계 삼합회(50여개 15만명)으로 드러났다.〈양승현 기자〉
  • 국악인 김천흥(이세기의 인물탐구:89)

    ◎「춘앵전」 등 궁중무 재현에 80평생/14세때 아악생으로 입문…악·가·무 두루 갖춰/대한 국악원·민속 예술원 등 설립,후지 양성/오는 3월 미수 앞두고 “전아의 극치” 「춘앵무」공연 준비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에 노란 관과 붉은 띠,오색 한삼속에 감춘두손을 좌우로 펼쳤다가 이마높이로 들어 모으며 창사를 읊조린다.여섯자 화문석위에서 「평조회상」에 맞춰 추는 「춘앵전」은 꾀꼬리가 버들가지를 넘나들며 노니는듯 노래부르는듯 화사하고 밝은 화전태와 여의풍이 특징이다.이는 궁중정재의 마지막 한끝을 잇는 심소 김천흥이 재현한 춤으로 그는 상영산에서 잔영산에 이르는 원형그대로를 추기도 하지만 느린 가락의 상영산을 생략하고 세영산을 위시한 삼현도드리와 변주곡인 군악의 장단으로 아정한 무작을 짜고 있다. ○꾀꼬리 춤사위 일품 그의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심금을 움직인다.그것은 한낱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달 수가 있다.특히 한국무용의 기교를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처용무」는 「깊은 온축과 비범한 예술성,씩씩하고 장엄한 남무의 풍도와 낙화유수의 가녀린 애조가 두드러져 우리의 고대무용을 보다 본격적으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즉 그의 춤은 천격이나 기교가 없이 「심소가 아니면 되살릴수 없는 무격이 제격」이다.크고 광활하게 장삼을 흩뿌리는 「승무」역시 무기교의 절제미와 정제미,무념무상의 선비적인 청정이 깃들어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추는명무로 손꼽힌다.그런가 하면 그의 「살풀이」는 멈출듯 주춤한 정지속의 움직임과 여백의 미가 일품이다.명주수건을 던졌다가 다가서고 다가섰다 물러서는 흐르는 춤태는 손끝 하나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 이를 보고 「속으로 흐느끼지 않은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이 춤은 지난 연초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갔다가 배한라여사의 1주기를 맞는 추모무대에서 춘 것이 「그곳의 객석을 흐느끼게 했다」고 전해져 왔다.노예술가의 연륜을 거론하는 것은 외람되나 약관 14세에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아악생으로 입소하여 장천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를 어느덧 70여년.1923년 순종황제 탄신 오순을 경축하는 창덕궁 어전연주에서 무동으로 뽑힌 것이 인연이되어 그는 당대 명인 하규일 함화진으로부터 「악.가.무」일체를 이어받는 예인의 길에 올랐다.그가 재현하여 공연에서 선보인 궁중무만도 「춘앵전」외에 「무고」 「가인전목단」,용알을 가지고 사를 부르며 추는 「포구락」등 48종.궁중명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아악부를 떨치고 나가 교방의 무속악사로 전전한 경험때문에 민속무용과 무속음악에도 일가를 이루어 「꼭두각시」에서 「봉산탈춤」에 이르기까지 그가 추지 않은 춤은 없다.악기도 아악부시절의 전공은 해금이지만 양금 아쟁의 명수이고 곰삭고 결삭은 성대를 구사하여 남녀창인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선유가등 12잡가와 사설시조 휘모리시조를 어느 자리에서나 두루 거침없이 노래부른다.그가 춤과 국악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개인무용발표회를 가진것은 56년부터 7차례,궁중무용 재현은 10여차례가 넘지만 공연뒤 리셉션을 가진 것은 72년 「무악생활 50년」과 92년 「무악생활 70년기념」공연등 단 두번뿐이다.그만큼 그는남에게 폐스러운 일,번거로운 일을 삼가고 분수에 넘치는 것은 넘보지 않는다.첫번째 공연에서 벌써 「우뚝하고 반듯한 김천흥의 무용」으로 평가되더니「완숙의 미와 멋과 흥」등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만약 충고하는 조언이 있으면 언제라도 주춤거리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순종 오순때 무동으로 「일찍이 없었고 뒤에도 없을 그의 공업은 동료와 제자의 경의와 찬하만으로 모자란다」는 이성천교수(서울대)의 말대로 그는 참으로 많은 업적을남기고 있다.40년대초 이전에서의 국악교육을 필두로 대한국악원 국악사양성소 무용인협회 한국가면극 대한민속예술원 정농악회등 국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체를 만드는데 앞장서 왔으나 그는 이를 굳이 「창단」「결성」으로 강조하기보다 단순히 「참여」한 것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청렴했던 심소는 80평생 살림집과 무용연구소 이사를 다닌 것만도 50여번이 넘는다.살림집은 사글세 전세 전세를 전전하여 40여번,연구소는 지난 55년 낙원동에 김천흥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나서 78년 문을 닫기까지 10여번이상을 옮겨다녔다.무용발표 때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집을 가진 것은 68년 잠실주공아파트가 처음이고 그후 다시 수번을 이사한 끝에 2년반전 현재의 서초구임광아파트에 정착했다.그러나 무용연구소 시절 장구쳐 줄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하나둘 하나둘」 육성박자로 춤을 가르치는 궁핍한 생활에서도 그는 연구생들이 내는 월사금외에 별도로 작품료를 받은 적이 없고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냥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만사에 최선을 다하여 대강 넘어가지 않는 그는 60년대초 원각사 공연때는 빈혈로 쓰러지자 아침마다 신당동에 다니며 소피를 먹으면서 무대에 선 적도있고 76년 미독립 2백주년기념 축하행사는 50일간 필라델피아 워싱턴등 11개지역에서 20여회를 공연하는 동안 급작스런 복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빈틈을보이지 않았다.지금도 「국록」을 받는다는 자세로 매일 국악원에 나와 직접후진을 지도한다. ○40여회 전·월세 전전 국악계를 통틀어 『높은 스승일뿐만 아니라 인품이요 덕망,학식이고 예술에서 앞으로 누가 있어 선생을 따를 이가 과연 있을 것 같지않다』는 성경린씨(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지휘 기능보유자)의 말대로 「명확한 운궁법을 통한 정확한 표현력으로 평가되어지는 악기」를 젖혀두고라도 전통무용으로 저문한 그는 당연히 「한국무용사의 산증인」이요 「궁중정재의 대명사」이며 「정재재현의 명장」이 아닐 수 없다.아악부 시절에 만난 성경린과의 총죽지교는 「한 핏줄과도 같은깊고 짙은 우정」으로 일요일마다 「산행의 동반자」이기도 하다.가족은 그를말없이 내조해온 부인 박준주여사는 2년전 타계하고 3남3녀중 5남매는 미국에 체류중.차남 정완씨(회사원)가 극진히 모시고 있다.여전히 가볍고 날렵한 그의 몸놀림은 어느 한구석 비틀거림이나 흐트러짐이 없다.갸냘프리만치 깡마른 체구에도 강단이 세고건강해서 그에게선 「노인」의 티란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춤을 출때 그렇다.『남과 다투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 편히 늙었으니 행복하고후회가 없다』는 그는 『그러나 노장은 무용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무대에 서서 살아있는 춤을 보여주고 싶다』는 절규와도 같은 기원을 기필코지키고 싶어한다.오는 3월 30일 미수를 앞둔 제자들의 축하공연에서 심소는 또한번 「전아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춘앵무」로 우리에게 상서로운 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그것은 무용가 최현의 표현대로 「결과 멋과 흥」이 샘물처럼 어우러진 「절예의 경지」 또는 「입신의 경지」 그자체일 것이다. □연보 ▲1909년 서울출생 ▲22∼26년 이왕직 아락부원양성소 졸업(해금·양금·아쟁전공) ▲23년 순종황제탄신 오순경축공연 무동출연 ▲26∼42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아악수장 ▲40∼45년 이화여전 강사 ▲43∼45년 조선음악가협회회원 ▲45∼47년 대한국악원이사 ▲50∼88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대·숙대무용과 출강 ▲51∼95년 국립국악원 예술사,연주원,자문위원,현재 원로사범 ▲55∼78년 무용연구소 개설 ▲1956년 첫번째 무용발표회 이후 75년까지 7차례,창작무극 「처용랑」「만파식적」「흥부전」「봉산탈춤」등 발표 ▲61∼76년 한국국악협회이사,부이사장,상임고문,명예회장 ▲61∼80년 서울시 문화재위원 ▲62∼95년 미주·동남아·유럽지역등 해외공연 21차례 ▲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39호 처용무기능보유자지정 ▲73∼93년 대락회 이사장 ▲77∼현재 정농락회 회장,궁중무용발표회 이후 10여차례 ▲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92년 「심소김천흥선생 무락생활 70주년기념」공연(국악원소극장) ▲93년 무악생활 70주년기념 해외순회공연 ▲95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 한국무용의 기본무보(69년) 정악양금보(82) 정악해금보(88) 심소김천흥무악70년(95년) 서울시문화상(60년) 문화재보존공로상(68년) 한국문화대상(69년) 대한민국예술원상(70년) 국민훈장모란장(73년) 한국국악대상(83년)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92년)
  • 멸종위기의 세계적 희귀식물 「고란초」 거제도에 집단 자생

    ◎군락지 2천여㎡ 보호구역 지정/낙화암 고란사에선 거의 사라져 「고란사의 종소리」로 우리 모두의 「귀」에 익숙한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고란초가 거제도에 집단자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환경부는 3일 멸종위기에 있던 고란초가 대규모로 자라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거제시 하청면 덕곡리 산 144일대 2천17㎡를 특정야생동·식물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고란초는 원래 백제왕조 멸망때 3천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날린 충남 부여의 낙화암부근의 고란사에서 집단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몇년 전부터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이 식물은 고사리목,고란초과에 속하는 희귀종으로 그늘진 바위틈이나 낭떠러지등에서 자라는 상록다년초다. 특히 해안주변의 암벽절개지의 그늘등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이번에 발견된 지역도 거제도 북부의 폭 12m의 해안일주도로 진입로의 타원형 잡목림지역이다. 고란초는 잎이 약간 두꺼워 검은 빛이 돌고 물결모양의 무늬가 들어 있다.번식을 위한 세포덩어리인 포자낭은 둥글고 잎맥과 잎맥 사이에 하나씩 달려 있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이 지역에서는 고란초 채취가 금지되고 학술조사때 외에는 통행이 제한되며 고란초가 번성하도록 보존시설물이 설치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거제도 환경단체인 「초록빛깔사람들」이 지역내의 생태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희귀식물인 고란초 자생지를 발견해 지방자치단체에 보호를 요청했고 이를 환경부가 관계부처등과의 학술조사끝에 야생동·식물보호지역으로 지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지정은 자생지가 사유지임에도 불구하고 전주 이씨 종의군파 문중땅의 소유주인 이평화씨가 보호지역지정에 동의해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에 요청해 이뤄진 첫 사례로 지방화시대를 맞아 앞으로 지역특색의 동·식물보호를 추진하려는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 연초 보호지역을 추진하면서 거제지역 주민은 고란초의 불법체취등 자생지 훼손방지를 위해 보호망을 설치하고 자생지옆 비포장도로에 자갈포장을 해 흙 튀김을 막고 있다.또 주민 2명을 명예감시위원으로 위촉,보호할동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보호대상 특정야생동·식물은 모두 1백79종이며 이중 식물은 고란초를 비롯,풍란·금강초롱·천마 등 1백26종이다. 환경부는 이와 함께 겨울철 철새도래지인 낙동강하구 등 6곳에 불과한 자연생태계보호지역을 연내에 9곳으로 늘려 수렵이나 채취로 인한 동·식물상의 훼손을 막고 인공적인 개발에 따른 생태계의 파괴를 예방하기로 했다.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을 추진중인 곳은 민통선일대의 향로봉·대암산·두타연·철원평야 등 3곳이다.
  • 백제 금동관세음보살입상(한국인의 얼굴:36)

    ◎점잖은 웃음… “백제인의 모습”/전래 서역의 흔적 벗은 7세기 작품/두터운 눈꺼풀·부드러운 콧날… 원만한 성품 엿보여 우리나라 불교에서 「관음경」만큼 널리 퍼진 불경도 드물다.「관음경」은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별개의 경으로 만든 것이다.관세음보살의 영험은 현세의 이익적 공덕과 맞물려 많은 신도들로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이에 따라 관세음보살상은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에 크게 유행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보물 195호 금동관세음보살입상은 그러한 신앙을 뒷자락에 깔았다.머리에 쓴 화관에 화불이 들어있기 때문에 관음보살이라는 사실이 금새 드러난다.7세기께 백제인들이 만든 작품인데,원만한 얼굴과 화관이 어울려 아주 보살다운 모습을 했다.이 보살의 얼굴과 화관은 바로 작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얼굴에서 외래적인 요소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래서 백제의 얼굴로 보아도 좋을 만큼 지극히 동양적이다.6세기말 관음신앙이 뿌리를 내렸으니까,7세기가 되면 그 경배대상으로서의 관음상은 백제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졌을 것이다.백제에 관음신앙이 들어온 시기는 백제승려 발정이 서기 502∼519년 사이 중국에 머물다가 월주의 관음도량을 참배하고 돌아온 이후로 보인다. 이 7세기의 백제보살상 얼굴에는 은근한 미소가 어렸다.부여 군수리 출토 6세기 후반의 백제금동보살입상(서울신문 5월19일자 13면) 웃음에 비해 퍽 점잖다.눈꺼풀이 약간 두텁고 눈자위는 꺼지지 않았다.이른 시기의 불상에 흔히 나타나는 서역의 요소가 없는 골상이다.코도 날카롭지 않다.더 작아보일 수도 있는 입이 웃음을 머금은 탓인지 좀 커졌다.이 보살상의 미소가 엷기는 하나 입과 눈에서 웃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보살이 몸에 걸친 윗옷(천의)과 치마(군의)는 곱고 부드럽다.구술을 꿰어만든 영락을 어깨로부터 길게 늘어뜨려 배에 와서 ×자로 교차시키고 나서 다시 늘어뜨렸다.팔꿈치를 굽혀올린 오른손의 엄지와 인지가락으로 큰 구슬(보주)을 쥐고 어깨위로 쳐들었다.왼손은 내려 어린 아이들이 마치 꼬까옷을 자랑하듯 율동적 자세로 천의자락을 잡았다.참으로 아름답고 섬세한 보살상이다. 이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구한말인 1907년에 출토되었다.규암면은 부여읍 낙화암에서 바라다 본 백마강 대안의 땅이다.사비시대 백제의 영특한 군주 무왕(재위 600∼640년)이 즐겨 찾았던 왕흥사가 거기 있었다.야심만만한 정복군주로 불교에 심취했던 무왕은 서기 634년 2월 백마강 건너 오늘의 규암면 지역에 왕흥사를 세우고 몸소 찾아가 예불을 올렸다는 것이다. 일본쪽 사료를 보면 백제는 서기595년에 백제의 공장을 시켜 관음상을 일찍 만들어 주었다.그런데 규암면에서 1907년에 출토된 또다른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이 일본에 유출되었다고 한다.애석한 일이다.
  • 중기협,북한방문단 구성/박 회장 등 50명/방북신청서 금명 제출

    ◎구상무역 다시 추진키로/중기 진출방안·창구일원화 모색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14일 박상희 회장을 단장으로 하고 중소기업인 50여명으로 구성된 북한 방문단을 구성,빠른 시일내에 북한 방문을 추진키로 했다. 박 회장은 이와 관련 『현재까지 비공식적인 라인을 이용해 대북 경협문제를 추진한 결과,나름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며 『조만간 정부에 북한방문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협중앙회는 이에따라 중소기업남북경제교류협의회를 소집,▲중소업체들의 대북진출 지원 방안 ▲중소기업의 남북경협 과열을 막기 위한 창구 일원화 ▲대북경협 경험이 있는 대기업과의 동반진출 등을 모색키로 했다. 지난해 9월 통일원으로부터 북한주민접촉 승인을 받은 플라스틱조합은 북·미 핵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플라스틱 완제품을 북한에 제공하고 북한산 신덕샘물을 들여오는 구상무역 형태의 교류를 다시 추진키로 했다.92년초와 94년초 북한산 땅콩을 2차례 들여온 낙화생조합도 3차 반입을 다시 시도할 계획이며,북한내 땅콩 가공공장 설립이나 위탁재배를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완구조합은 북한의 남포공단 등에 합작 봉제완구 공장설립을,시계공업협동조합은 손목시계 케이스 등 시계부품의 임가공공장을,공예협동조합연합회는 임가공 형태의 대북진출을 검토중이다.
  • 「낙법­놀이·33」으로 본사제정 공초문학상 수상 홍윤숙 시인

    ◎“나이 70에 받는 복된 선물 기뻐요”/47년 등단… 인간의 아픔 보듬어 안는 자세로 시작 『나이 칠십 먹어 새롭게 상을 타려니 공연히 쑥스럽네요.하지만 제 문학 일생에 주시는 복된 선물로 알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문학상 제3회 수상자로 선정된 홍윤숙(70)시인은 마냥 기쁘기보다 옷 매무시를 가다듬게 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지난 47년 스물셋 나이로 시단에 데뷔,끊일듯 끊일듯 이어온 문학과의 인연이 어느새 50년이 다 되었다.문학과 함께 젊은 날과 중년을 보내고 문학에 기대 황혼을 맞게 된 셈.오랜 나날의 두터운 온축으로 시인은 이제 기쁨과 슬픔에도 큰 진폭으로 흔들리지 않는 무심의 영토에라도 들어선듯 하다. 『물론 상을 타면 좋기 한량없지요.하지만 우리 문학하는 사람 가운데 상받으려고 글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우리는 목소리가 우러나는 대로 그저 시집을 쌓아가는 것 뿐이고 그러다 찾아오는 상이란 뜻밖의 횡재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시인의 시세계는 수굿하고 초연한 평상시의 모습과 전혀다르다.그의 시는 사람으로 태어난 아픔을 누구보다 크게 앓으면서도 흠집난 그 삶을 결국 품어안고 마는 「치열한 사랑」의 세계다.시인의 이런 실존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기는 이번 수상작「낙법­놀이·33」도 마찬가지.사람된 삶의 아픔을 터득했기에 「돌무더기 무너지는 아슬한 석양의 벼랑에 서서 떨어지는 모과의 향기를 아름답게」 느끼는 역설이 가능한 것. 『젊을 때는 사는 일에 허덕여 나이 먹고 났을 때를 챙겨볼 여가가 없지요.그러나 막상 인생의 하류에 당도하고 보니 그때 그렇게 허둥대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회한이 절로 밀려오데요.담담하게 고백하는 심정으로 시를 썼어요.인생에 자신만만한 구두점을 찍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시를 포함,놀이 연작시 65편 등 78편을 수록한 시집 「낙법놀이」는 「낙화」의 아찔한 절망감과 싸워온 시인의 삶의 자취다. 이처럼 지난날을 회한속에 돌아보는 시인이지만 젊은 작가들에겐 너그러운 점수를 주고 싶단다. 『요즘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나 소설들을 나름대로 뜻있다고 생각합니다.문학이란 본디 다양성을 먹고 자라는 것 아니겠어요.하지만 마지막엔 문학의 본원적인 자리,원형으로 돌아가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써온 정통시만이 유일한 원형은 아닐테지만 결국 문학도 고향을 꿈꾸니까…』 최근엔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을 재미있게 읽었다고.후배의 작품에 대해 『단순한 듯하면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소재와 시각이 산뜻했고 필치도 신선했다』고 촌평한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탤런트를 갖고 있고 우연한 계기로 이것이 싹트면서 삶의 길을 결정하는 것 같다』는 시인은 『지나고보니 나도 스스로의 선택보다는 우연에 더 큰 부채를 진 것 같다』고 문학에 꿈을 품었던 스무살 무렵을 에둘러 회고했다. 『아무튼 문학이 없었으면 뭘 먹고 살았을지 막막해요.글쓰는 것 빼고는 재주라곤 없었으니….다시 태어나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겠지요』 「독실한」이라는 단서를 접고 카톨릭 신자라고 밝히는 홍시인은 『늘 회의하고 구속에 투덜거리는 「불량」신앙인이었다』면서도 『이처럼 끊임없이 묻고 싸웠기에 오히려 절대자에게 한발 더 다가갈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욕심이 있다면 그건 허욕일테지요.그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쓸수있는 데까지 쓸 생각이에요』 무성했던 잎을 떨쳐버리고도 거칠 것 없이 곧게 선 겨울나무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시인의 문학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다. ◎심사평/40여년 쓴 작품서 묵은 포도주 향기/수상작 「낙법…」뛰어난 상상력 발휘 시인 홍윤숙이 우리 시단에 등장한 것은 19 50년대 중반기로 알려져 있다.그러니까 이 시인의 시력은 줄잡아도 40년이 넘는다. 한 시인이 오랜 세월 시작활동을 했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긍정적인 각도에서 볼때 그의 시는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좋은 방향을 가질수 있다.그러나 이런 경우 끼어 들 수 있는 부작용도 생각될 수 있다.자칫 그의 시가 안이해질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그림자가 그것이다. 시인 홍윤숙은 후자와 같은 우리 생각을 문자 그대로 기우에 그치게 하는 경우다.오랜 시력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포착하는 그의 눈길은 여전히 매섭고 맵짜다.또한 그것을 도마위에 올려 요리하는 손길 역시 날래고 훌륭하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수상작으로 추거된 「낙법놀이」에는 한국시단이 가져야 할 좋은 시의 또하나 자격요건이 내포되어 있다.널리 알려진대로 현대에 와서 시는 서정시를 가리킨다.그런데 서정시는 그 속성이 사적인 세계를 노래하는 것과 함께 형태가 축약적인데 있다.이런 속성 때문에 서정시는 자칫 편향된 노래가 되기 쉽고 소수 호사가들의 애장품으로 떨어질 공산도 크다. 그런데 시인 홍윤숙은 그런 부정적 가능성을 정서의 보편성 확보로 극복했다.또한 신선한 시상제시로 그의 시가 많은 사람에게 애송될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낙법­놀이·33」에서 시인 홍윤숙은 모과향기의 「낙하」를 우리 자신의 한계의식과 일체화시키기에 성공했다.이 기법,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번 수상을 축하한다.
  • 김정일 「사랑의 미로」 즐겨불러(북한 이모저모)

    ○「고기딱지」 뒷거래 성행 ○…북한은 일반주민들이 「돼지고기」를 구입하려할 경우 반드시 「출고지도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출고지도서란 이 증명서를 휴대 제출한 주민에 한해 돼지고기를 판매해도 좋다는 일종의 허용전표이다.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전표는 『○○○동무에게 돼지고기 ○○㎏을 출고해 주시오』라는 내용으로 돼 있으며,소속 직장에서 발급하고 있다. 북한이 돼지고기를 구입하려는 주민들에게 출고지도서를 반드시 휴대제출토록 하고 있는 것은 돼지고기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한 데 따른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기 위한 대안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관혼상제등 집안대사에 돼지고기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은 「출고지도서」를 발급받기 위해 소속직장 지도원들에게 술·담배 등을 뇌물로 바치고 이 전표를 발급받고 있다고 한다. ○테이프 은밀히 나돌아 ○…최근 북한의 청소년들 사이에 한국가요가 은밀히 애창되고 있다고. 귀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가요는 대부분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전파되고 있으며,북한청소년들 사이에선 한국가요가 수록된 테이프를 많이 가진 사람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것. 북한의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의 가요로는 「바람 바람 바람」「당신은 모르실거야」「그때 그사람」「홍도야 우지마라」「사랑의 미로」등. 「사랑의 미로」는 김정일도 애창하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외국민요로 소개되고 있다.김정일은 「사랑의 미로」외에도 「낙화암 3천궁녀」「이별」을 좋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시조직 「인민반」 확대 ○…북한은 주민들의 동향을 감시하는 최말단 조직인 「인민반」의 조직을 확대 개편. 인민반 개편은 지난해 연초 실시됐는데 편성규모가 종전 1개반 20∼30세대에서 40여세대로 늘어났다고. 북한이 인민반을 확대 개편한 것은 평양·함흥 등 대도시를 비롯 중·소도시들에 대단위 아파트가 건립되고 이에따라 인구의 밀집화현상이 가속화된데 따른 것. ○서방 새해표정 왜곡 ○…북한은 5일 자본주의사회 근로자들의 절대다수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고 눈물과 한숨속에 새해를 맞이했다』고주장하면서 서방국가들의 새해표정을 왜곡선전. 북한은 이날 중앙방송을 통해 미국의 경우 3천6백90만명의 빈궁자들이 있는데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설날 아침부터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 방황했으며 뉴욕에서는 약 30만명에 달하는 집없는 사람들이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 등지에서 설날을 맞았다면서 일부 부랑자들의 모습을 부각,사회전반의 새해표정으로 오도.
  • 내년 북한 사과 반입/1만3천t/제3국 경유… 땅콩 5천t도

    내년부터 북한산 사과로 만든 주스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정부는 2일 물가대책 차관회의에서 내년 1월부터 북한산 사과 1만3천t을 처음으로 들여오기로 했다. 지난 여름의 폭염과 가뭄으로 작년보다 6% 정도 감산돼 24%나 오른 사과 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다.롯데칠성음료와 해태음료가 제 3국을 통해 반입하기로 하고 이미 통일원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중소 땅콩 제품 업체들의 모임인 한국 낙화생가공업 협동조합도 내년에 북한산 땅콩 5천t을 반입키로 했다.t당 7백50달러씩 지급하는 현금결제 조건이며,국적선으로 남포에서 인천까지의 직항로를 통해 들여온다. 내년 3월부터 한 번에 1천t씩 5차례로 나눠 들여다 29개 회원 업체들이 원료로 쓸 계획이다.조합은 지난 91년 처음으로 북한산 땅콩 2천t을 반입했으며,지난 1월에도 5백t을 들여왔다. 우리나라의 땅콩 수요량은 연간 2만7천여t이며,이 중 30%(8천1백t)가량을 수입한다.
  • 문화답사여행 붐/깨진 기왓장에도 역사의 숨결이…

    ◎「백제문화를 찾아서」 동행취재기/해남·공주등지 주말엔 4∼5개팀 동시 방문/우리역사 새롭게 공부하며 문화의 참멋 체험 「답사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모은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저)와 판소리 영화 「서편제」 이후 현장에서 배우고 체험하는 문화답사기행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인 요즘 전남 해남이나 백제 문화권인 공주·부여등 인기 답사지역의 경우 주말에는 4∼5개 답사팀이 방문,혼잡을 이루기도 한다. 가을색이 절정에 이른 10월 마지막 주말인 29∼30일 여성문화예술기획(대표 이혜경)이 마련한 가을문화답사기행 「백제문화를 찾아서」에 동행했다. 『그려진대로 보지말고 그 배경과 이면을 파악하고 화려한 보물찾기식 역사관을 벗어 나십시오』­.29일 하오 2시 서울을 벗어난 참가자들은 차안에서 현지 역사 길잡이 이해준교수(공주대·역사학)의 강의를 들으면서부터 「역사를 새로 보는 방식」에 흥미와 긴장감을 느꼈다. 참석자는 50명.국민학교4년생 아들과 답사여행만 수없이 쫓아다닌 고교 교사 아버지,결혼11년만에 처음으로 여행한다는 주부,낙엽따라 훌쩍 나섰다는 직장인,40·50대 부부등 다양한 면면들이다.일상을 벗어나 1박2일의 빠듯한 일정동안 한가족처럼 지내며 이웃을 확인하는 모습 또한 현장 전문가들을 만나 우리문화의 참멋을 배운다는 것 외에 답사기행이 갖는 매력임을 알게 한다. 주부 김순희씨(32)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공부할 수 있는 것 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느꼈다』며 『여행이 내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마침 공주대에서 열리고 있던 「동학농민전쟁」1백주년 기념 예술제에 참석,백제부흥에 힘쓴 장군들의 영혼을 달래는 「은산별신굿」을 참관한 일행은 숙소에서 「교육문제」「여성문제」등을 놓고 자신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활발한 토론마당을 펼치기도 했다. 이튿날 첫 일정은 진노랑색 감나무의 군집이 단풍을 압도하는 계룡산 갑사산책.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백제인의 섬세한 솜씨를 드러내보이는 부도탑과 당간지주,구리종에 깃든 역사를 음미하는 코스였다.백제 마지막 도읍 부여에서 박제된 박물관과 백마강,부소산성,낙화암이 만들어내는 애틋한 정취와 「새롭게 조명하는 백제」를 느끼며 뱃길을 따라 무량사·성주사터로 옮겨갔다.일행은 발굴 작업이 한창인 성주사지에서 길을 멈춰 부여문화원 김인권 사무국장의 열정적인 설명과 함께「찬란한 보물 유산」이 아닌 깨진 기왓장,사금파리,잡초에 묻힌 돌무덤의 의미를 되새겼다.오랜만의 여유를 찾기 위해 혼자 참석했다는 박영보씨(41·출판업)는 『다음번 겨울문화기행에는 남편·아이들과 참석해 함께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현장에서 진지하게 배울 계획』이라고 밝혔다.『이틀 동안 참석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듣고 답사활동을 하면서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동안 우리문화를 하찮게 여겨왔다는 한 참석자의 말이다.
  • 멸망의 원인(백제를 다시본다:30·끝)

    ◎한강유역 뺏긴뒤 서남부에 고립/의자왕,초기 전승에 자만 실정 거듭/대당외교 실패… 많은 충신 귀향보내/18만 나당연합군 침공때 동원가능 병력은 5천명 부소산성에 올라 금강을 굽어보노라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마냥 평화롭게만 느껴진다.1천3백년 전 이곳에서 망국의 통한을 품은 3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서기 660년 당의 침략군이 신라와의 사전협약에 따라 서해로부터 금강 하구에 소리없이 진입하여 상륙작전을 개시한 뒤 사비도성을 유린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백제는 왜 멸망했는가.이 수수께끼를 속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란 없다.백제 멸망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역사적 인과관계에서 볼 때 우리들은 많은 멸망원인을 열거할 수 있으나 이를 대내적인 것과 대외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삼국항쟁이 격화된 6세기 후반 이래 백제는 경쟁국가인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그 입지랄까 행동반경이랄까가 매우 좁았다.즉 한강유역을 송두리째 신라에 빼앗긴 뒤로부터 백제는 줄곧 한반도 서남부지역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백제가 기대를 건 잠재적인 동맹세력은 고구려였으나,양국은 다만 해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을 뿐 이었다.그런 까닭으로 백제는 자신을 ㄱ자 모양으로 포위하고 있는 신라와의 군사경계선을 돌파하기 위해 몸부림쳤다.그것은 한 때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하지만 백제는 결코 신라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처럼 백제가 신라와의 국경전쟁에서 헛되이 국력을 소모하는 동안 내부사정은 차츰 악화되어 갔다.의자왕이 641년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때만 해도,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그는 인간적으로 나무랄데 없는 성품이었고,국가중흥의 열망에 불타 있었다.왕태자 시절 지극한 효성으로 해동의 증자라는 평까지 듣던 의자왕이었다. ○신라 포위 못벗어 그가 왕위에 오른 직후에 결행한 신라 침공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마침 642년 평양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군국의 대권을 장악했는데,의자왕은 그와 손잡고 신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개시했다.백제군은 중국으로 통하는 신라의 서해 관문인 당항성(경기도 화성군)의 목을 죄는 한편 신라의 낙동간 방면 전선사령부가 위치한 대야성(경북 합천군)을 함락하여 경주를 가까이서 위협했다.이같은 전과는 의자왕의 경탄할 만한 기민성과 결단력에 힙입은 바 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의자왕의 인간적인 약점이 노출되었다.전투에 잇따라 승리한 의자왕은 어느 덧 자만심에 빠져 만기를 독재하는 통치스타일로 기울어졌다.사태를 더욱 악화시긴 것은 왕비 은고의 지나친 권력욕이었다.백제를 멸망시킨 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부여 정림사탑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했는데,거기에는 멸망 당시 백제의 정치상황을 설명하여 『의자왕이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아낙네(왕비)를 너무 믿어 형벌이 오로지 충양한 사람에게 미쳤다』고 했다.양심적인 재상인 성충이 옥사하고 흥수가 귀양을 간 것도 이같은 난정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또한 해방 직후 부여에서 우연히 탑비가 발견됨으로 해서 그 실재가 확인된 대좌평 사택지적의 정계은퇴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충신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신라의 간첩망에 포섭된 임자 같은 인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왕비 권력욕 지나쳐 무엇보다도 의자왕이 범한 큰 과오는 백제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다.당은 신라측의 끈질긴 한반도 개입 요청을 받아들여 백제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와 화평관계를 꾀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의자왕은 이같은 권고를 거듭 묵살했다.652년 이후 백제는 더 이상 사신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당과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했다.백제를 치기로 한 신라와 당 양국간의 비밀협상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절박한 때에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외교적 실책이었다.바야흐로 백제 상공에는 잔뜩 먹구름이 닥쳐오고 있었으나,의자왕은 전혀 그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서기 660년 여름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은 백제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백일하의 날벼락이었다.김유신이 이끄는 신라의 5만 대군이 국경선 깊숙이 나타났을 때 백제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결사대 5천명이 고작이었다.이 결사대는 사흘동안 황산벌(충남 연산)에서 신라군과 처절하게 싸운 끝에 전원 옥쇄했다.한편 13만명에 달하는 당나라 군대는 금강 동쪽 기슭에 상륙,7월 11일 신라군과 합세했다. 드디어 12일에는 나당연합군이 사비도성 공격에 나섰다.연합군은 도성 동쪽 20여리쯤 떨어진 곳에서 백제군의 소규모 저항을 받았으나 이를 단숨에 격파하고 염창리에서 능산리로 이어지는 나성을 통과,순식간에 도성 안으로 진입했다.적군의 강습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북쪽 웅진성(공주)으로 달아났다.이에 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권을 대행했으나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윽고 연합군이 시가지를 가로질러 부소산성을 포위하자 절망에 빠진 지배층과 백성들이 떼지어 성에서 내려와 항복했다.그리하여 부소산성 정상에는 나당 연합군 깃발이 나부끼게 되었다. ○부흥운동 무위로 그러나 백제는 그 뒤 3년간 더 살아 꿈틀거렸다.국왕의 항복결정을 거부한 지방주둔 병력이 왕족 복신의 지휘 아래 총집결하여 조직적인 부흥운동을 벌인 것이다.이들은 한때 사비도성을 포위한 일까지 있었다.주류성(서천 한산 혹은 부안으로 짐작됨)과 임존성(예산 대흥)이 당시 부흥운동군의 일대 거점이었다. 663년 가을 백제와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있던 일본이 부흥운동군을 돕기 위해 3만대군을 보냈다.그러나 왜군은 백강하구에서 신라·당 연합군에 포착되어 네차례의 접전 끝에 섬멸되고 말았다.당시 불에 탄 왜선 4백척에서 뿜어대는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붉게 하고 바닷물도 빨갛게 물들었다고 한·중 양국 사서는 기록하고 있다.왜군 격파로 사기가 오른 연합군의 일제 공격으로 주류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백제부흥운동은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처럼 백제는 가고 말았으나 그들이 창조한 문화의 가지는 신라와 일본 등지에 이식되어 그뒤 오랜 세월 생명력을 유지했다.지난해말 세상에 공개된 금동향로는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정화로,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망국의 군주/의자왕 중국 북망산에 묻힌듯/패망후 당나라에 끌려가 병사 우리가 고대사에서 만날 수 있는 큰 비극을 꼽자면백제패망을 다룬 AD660년의 기사가 그 하나일 것이다.궁녀들이 꽃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 옛 이야기와 더불어 아련히 들려오는 사비도성의 황급스러운 말발굽소리는 백제사가 간직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때에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했던 의자왕도 결국 나·당연합군에 붙잡혀 2만여 백제유민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그러나 이 망국의 군주는 생몰연대도 전해지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당에서 병사한 것으로만 되어있다.이는 의자왕과 휩쓸려 포로가 된 왕자 부여릉(AD615∼682년)이 당에서 남긴 비교적 소상한 활동기록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자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이 물음에 해답을 던져줄 가능성은 있다.의자왕의 신하로,또 왕자 부여릉과 백제부흥운동을 통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흑치상지(AD630∼689년)와 그의 아들 흑치준의 묘지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중국 하남성 낙양의 북망산에서 1929년에 발굴된 이 묘지명은 현재 남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흑치상지의 묘지명은 왕자 부여융이 주군으로 받들어지고 있음을 표현했다.또 묘지명은 AD677년 부여융이 당으로부터 「웅진도독 대방왕」에 임명되었을 때 흑치상지는 속관의 직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다만 41줄 1천6백4글자나 되는 묘지명 새김글씨에 의자왕 기록이 전혀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사학계는 당나라 왕후장상들의 묘역 북망산을 계속 주시하는 입장이다.북망산에서는 백제유민 흑치상지 부자의 묘지명 말고도 연개소문의 아들이자 고구려유민인 천생의 묘지명이 출토되었다.이로 미루어 의자왕의 무덤도 북망산 묘역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백제 최후의 군주 의자왕의 무덤을 찾는 일은 한·중학계의 협력에 따라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래서 학계는 북망산 한쪽에 묻혀있을 의자왕 묘지명을 찾아야할 큰 역사숙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 패망의 설화(백제를 다시본다:28)

    ◎의자왕 실정 등 좌절의 역사 우회 표출/천정대 전설은 흥수·성충 유폐 비판/「철 먹어치운 딱정벌레」선 멸망 암시/「계백 키운 호랑이 석달사흘 통곡」엔 백제인 자존심 깃들어 설화를 통해 백제인의 의식을 살피는 일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의 확인 여부를 떠나서 꽤 흥미있는 일이다.왜냐하면 설화는 역사 현실에 대한 민중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백제설화가 생각보다 많이 채록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런대로 지금까지 알려진 설화들이 꽤 전해지고 있다. 사비시대가 막을 내리고 유민들이 항쟁을 벌인 시기는 백제로서 비극의 시대다.그 무렵 좌절의 역사가 더러 설화로 우회되어 나타났다.의자왕이 말년 실정을 거듭한 끝에 패망한 역사와 관련한 「희녀대」전설 역시 이 범주에 속한 것이다.사비성 밖 반월성 부근에 있는 희녀대에는 전국에서 뽑혀 온 처녀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백제가 망할 때 이 여자들이 모두 희생되어 백제에는 고운 모습의 여자들이 없어졌다.이는 「삼천궁녀」전설과 통하는 이야기라고도 할수 있다. ○「삼천궁녀」 전설 비슷 부여 규암면에 있는 「천정대와 임금바위 신하바위」전설은 의자왕의 실정을구체적으로 보여준다.천정대는 임금이 정승될 신하의 이름을 적어 넣으면 도장이 찍혀나오는 곳이다.의자왕은 흥수와 성충이 직간을 하자 다른 사람의 이름만을 적어 넣었더니 도장이 찍혀나오지 않았다.그럼에도 의자왕은 이들을 유폐시켜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다. 서산에 있는 「안흥목과 불가사리」전설은 백제 멸망의 징후를 보여준다.사비성에 남편을 보내고 바느질 품삯으로 사는 여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딱정벌레가 나타나 가슴을 찌르고 사라졌다.며칠 후 그 딱정벌레는 사비성의 쇠붙이를 모조리 먹어치워 황소만해졌다가 안흥에 이르러 신진도 물살에 뒤집혀 죽었다.딱정벌레가 남편이 전쟁에 나간 여인의 가슴에 붙어있었다는 것은 전쟁에 나가 죽은 병사들의 혼과 수절하는 여인들의 한이 어우러진 것을 상징한다.또 사비성의 쇠를 모조리 먹었다는 것은 백제에서 무기를 만들 쇠가 없게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임천면에 구전되어 온 「성흥산성과 일곱왕자」는 성흥산성에서 일곱왕자와 항전하던 윤충이 사비성에 갔다가 모함을 받아서 죽었다는 내용이다.은산면에도 윤충이 나오는 「삼괴정의 세 장수」이야기가 있다.윤충이 세 장수와 함께 왕에게 충간끝에 옥에 갇혔다가 탈옥하여 은산에 은거하며 국난에 대비한다.그러나 윤충은 흑치상지의 배신으로 죽고 장수들은 왕자들의 권력다툼으로 패하고 말았다는 줄거리다. 이 두 전설은 시간적으로 맞지않지만 전설은 이를 문제시하지 않는다.요는 백제 유민들에겐 윤충이 백제의 국난을 위해 싸우려다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의자왕의 어리석음 때문에 죽는 다는 것이다.장수들이 지도자들의 권력싸움과 동료들의 배신으로 패한 것이 안타깝다는 울분을 설화를 통해 달래고 있다. ○윤충 모함받아 죽어 그러면서도 막상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을 비롯한 관료와 백성들이 당으로 잡혀간다니까 백성들이 의기투합하여 모인다.양화면의 원당산 또는 사당산이라고 불리는 곳이다.이름 그대로 당을 원망한다,또는 당을 향해 화살을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유래된 민요가 「산유화가」이다.부여지역 백제인들의 국가에 대한 집단의식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소정방과 관련된 전설로는 「조룡대」전설을 비롯해서 「석연지와 백제탑」「맹괭이방죽」「군장동」「문동교」 등이 있다.「석연지와 백제탑」은 소정방이 「대당평재국비명」을 석연지에 새기려 하자 석공이 이를 거절한다.소정방이 이번에는 백제탑에 그 글귀를 새기려하나 석공은 탑 앞에서 죽어버린다.석공의 백제혼을 이야기한 것이다.그러나 실제로는 석연지와 백제탑에는 소정방이 새긴 비명이 남아 있다.이 전설은 수모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치욕을 유민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민중의식을 담은 것이다. 「조룡대」전설은 각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된 내용은 소정방이 당군을 이끌고 조룡대에 이르러 돌풍으로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백마를 이용하여 용을 낚았다는 내용이다.각편에 따라 용의 화신은 의자왕,무왕,간신인 구가,천일장군 등으로 나온다.다만 의자왕이나 구가일 경우에는 이들에 대한 민중들의 부정적 시각이 드러나 죽은 시신이 떨어져 썩은 냄새가 난다는 구릿내로 되어 있다.그러나 무왕이나 천일장군일 경우에는 호국신답게 무왕이 밤에 도사로 변신하여 소정방을 괴롭혔다거나 소정방이 천일장군의 짝인 암룡을 잡기위해 강에 소금과 독약을 넣었다고 하여 그의 잔인성을 고발하고 있다. ○소정방 잔인성 고발 백제유민들의 국가에 대한 집단의식이 극명하게 나타난 설화는 「맹광이 방죽」이다.이름난 점쟁이 이민광이 계룡산 치마바위 아래 숨어있는 의자왕을 소정방의 위협에 못이겨 알려주고 난 뒤 뱀한테 물려죽었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이 역시 의자왕이 나라를 망친 장본인일지라도 배신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백제유민들의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표뜸과 계백장군」은 패배한 백제장수들에 관한 대표적인 전설이다.계백은 다섯살이 될 때까지 호랑이에게서 키워졌다.어릴 때는 홍수를 건너 서당엘 다녔고 성장해서는 호랑이의 도움으로 많은 무공을 세웠으며 그가 죽자 호랑이가 석달 사흘을 울었다는 것이다.백제유민의 입장에서 비록 전쟁에서 진 장수이지만 근본은 신이성 내지 신통력을 가진 존재로 그의 패배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님을 밝혀 백제유민들의 정신적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끝으로 백제유민,특히 여인들의 항거를 통해 유민의식을 보여주는 전설로 부여의 「각시바위」「가음산 궁녀바위」「낙화암과 삼천궁녀」「마가산 선녀」「연화지의 두 도령」,당진의 「영웅바위의 한」,청양의 「장수바위」「고란초」,서산의 「은행나무와 사자암」,금산의 「창평의 중바위」,대덕의 「새여울 두 처녀의 우정」 등이 전한다. ◎설화의 의미/건국·인물탄생의 사실 반영/「곰나루 전설」로 마한인의 유래 추정도 설화는 역사를 반영한다고 한다.설화의 내용이 곧 역사는 아닐지라도 역사적 사실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설화연구자들은 백제의 시조 온조가 남하하기 전 마한지역의 선래 토착인들이 누구였는지도 설화를 통해 추정하기도 한다. 공주 「곰나루전설」은 곰과 어부가 교혼을해 살다가 어부가 인간 세상이 그리워 도망가자 곰이 자식과 함께 강에 뛰어든뒤 금강에서 거룻배가 자주 뒤집어져 사람들이 곰의 사당을 짓고 곰을 제사지냈다는 이야기이다.이 설화는 이 지역의 선래 토착인들이 북쪽에서 이주한 곰 신앙 부족의 후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백제 무왕이 되었다는 서동이나 후백제 시조인 견훤의 탄생설화는 지렁이와 과부가 교혼을 해서 낳았다는 수평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이에비해 단군 주몽 혁거세 등 다른 국조 영웅들의 탄생설화는 천부지모의 수직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 두 설화는 마한지역에 온조부족 이외에 적어도 서로 다른 신화의 세계관을 지닌 두 부족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백제 초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청양군 「고금티 곰 울음」전설은 이들 서로 다른 부족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줄거리는 이렇다.백제군사에게 어미 곰을 잃은 아기 곰이 고개너머 다른 어미 곰과 아기 곰을 만났다.그러나 그 어미 곰 마저 백제군사에게 잡혀갔다.아기 곰들은 서로 의지하고 살려고 했지만 숯 굽는 사람들이 피우는 연기 때문에 고개를 넘어갈 수 없어 서로 울부짖으며 혼자 늙어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곰은 물론 마한지역에서 곰을 숭배하며 살아온 부족을 상징하는 것이다.결국 이 전설은 백제군사들이 이 지역의 곰 부족을 분열시켜 축출한 비극적인 역사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황광철·광일 형제가 말하는 「요즈음 북녘」

    ◎“허기진 채탄공 막장서 쓰러지기 일쑤”/하루 13시간 작업… 가족과 얘기할 틈도 없어/전기·갱목 등 부족… 기계놀리고 사고 잇따라/청소년 탈선 날로 늘어… 12살짜리가 담배·도박 버젓이 동생과 함께 지난 6일 귀순한 황광철씨(20·탄광채탄공)는 13일 서울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북한 광부들은 언제 막장이 무너질 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채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동생 광일군(18)은 식량난으로 서너끼 굶는 것은 예사이며 이 때문에 어린이의 40∼50%가 구루병을 앓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동안 서울을 돌아본 인상은. ▲광철=차를 타고 다니며 유심히 길가를 살폈다.사람들 표정에 활기가 넘치고 차가 무척이나 많다.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판자촌이 밀집돼 있고 깡통찬 어린이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고 배웠는데 모든게 거짓말임을 새삼 깨달았다.몰래 여섯차례 가본 평양과 비교해볼 때 규모나 시설등 모든 면에서 상대가 안된다. ▲광일=형은 서울에 와서처음 양복과 넥타이를 입어봤다.나도 처음 구두를 신어본 탓인지 뒤꿈치가 아프다. 길거리가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복무성(인사성)이 밝고 친절했다. ○구두 처음 신어봐 ­어떻게 해서 채탄공으로 일하게 됐는가. ▲광철=북한에서의 직업은 부모성분에 따라 평생 좌우된다.지난 87년 어머니(51)가 협동농장에서 『왜정시절보다 살기 더 어렵다』며 식량을 훔친뒤 개천교화소에 수감되는 바람에 대학진학이나 군입대는 엄두도 못내고 탄광에서 일하게 됐다.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탄광기공학교에서 채굴방법등을 배운뒤 92년3월부터 함북 회령시 궁심동 궁심탄광에서 채탄공과 발파공으로 중노동에 시달렸다.아버지(56)도 이 탄광에서 경리과장을 지내다 어머니 때문에 채탄공으로 전락했으며 형(25)도 채탄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탄광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광철=1천2백명이 일하는 탄광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중노동과 굶주림의 연속이었다.말로는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일하게 돼있지만 12∼13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리기일쑤이고 자고 깨나면 탄캐는 일이 전부이다.특히 부모나 형제와는 다른 갱도에 배치해 작업중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집에서도 서로 엇갈려 말조차 나누기 어렵다.작업복이 1년에 한벌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옷을 빨 때는 형과 번갈아 작업복을 바꿔 입기 일쑤이다.또 도시락을 못갖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휴식시간은 점심시간이 고작이고 그나마 30∼40분밖에 주지않는다.월급은 1백50∼1백80원을 받았으나 고작 중국제 운동화 한켤레를 살 정도이다. ○자고깨면 일… 일… ­그래 가지고는 작업능률이 오르지 않을 텐데. ▲광철=궁심탄광의 경우 지하 2천4백m 사갱에서 일하는데 갱도를 팔때 갱목이 모자라 70㎝마다 세워야할 갱목을 2m 간격으로 설치해 사고가 잦다.전기도 부족해 2백20t 전압대신 1백70t만을 공급해 기계가동률이 3분의1에 그치고 있다.자연히 작업능률도 떨어져 개인당 하루채탄량 목표가 3.5t이지만 겨우 1∼1.2t밖에 케내지 못하고 있다.지난 91년에는 갱목을 빼다 막장이 무너져 4명이 죽고 수십명이 다쳤으며 갱내의 가스폭발로4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나 역시 92년6월 막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왼손 새끼손가락을 못쓰게 됐으며 발파공으로 일할때도 불량뇌관이 터져 오른쪽 눈에 파편을 맞았는데 다행히 실명의 위기는 넘겼다. ○주체사상 안믿어 ­학교에서의 주체사상 교육은. ▲광일=주체사상을 배워도 보통 14살이 되면 이를 믿지 않는다.국경에 인접한 지역이라 중국 조선족 상인이 많이 드나들어 남한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데 『남조선 어린이들은 대부분 거지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말하면 『남조선이 거지면 북조선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남조선을 따라 잡으려면 수십년이 더 걸린다』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자력갱생을 믿지 않았다.김일성의 신년사와 회고록을 학습하라고 하지만 모두 건성으로 들으며 집에 와서는 구석에 처박아 놓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광철=신년사때마다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준다고 떠들지만 10년동안 구경도 못했다.인민학교때 1년에 두번 사탕을 주는 것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날에 그치고 있다.교과목이 15∼16과목에 달하지만대학에 진학하려면 반드시 김일성부자 혁명사와 혁명정책등 세과목의 성적이 뛰어나야 한다. ­청소년들의 생활은. ▲광철=북조선 학생들의 탈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평양의 당간부 자녀들이 집에서 디스코등 사교춤을 추다 적발돼 처형당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광일=북한에선 중학교 1학년인 12살쯤되면 담배를 피운다.아버지 담배나 꽁초를 주워 종이에 말아 피우곤 한다.집에서 갱냉이(옥수수)로 술을 몰래 담가 먹으며 화투나 중국제 트럼프로 놀이를 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 오락시간에는 TV나 남한방송을 통해 알게된 「홍도야 울지마라」 「최진사댁 셋째딸」 「독도는 우리땅」 「낙화유수」등의 남조선 노래를 선생들과 함께 부르며 춤을 추는 때도 가끔 있다. ­식량난이 극심하다는데. ▲광철=북한을 탈출하기전까지 두달반이나 식량배급이 중단됐었다.그 이전에도 하루 9백g인 식량을 절약미니,애국미니(이를 비꼬아 강압미로 부름)하며 갖은 명분을 붙여 6백50g만 주는데 그나마 쌀은 고작 10%에 지나지 않는다.그래서 산이나 들로 나가 쑥이나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일쑤이고 가을이면 들쥐잡이가 성행하곤 한다.군인들도 보초서기를 자원해 몰래 민가에 내려가 갱냉이등 식량을 훔쳐 먹고 겨울에는 땅속에 훔친 식량을 묻어놓고 꺼내 먹는다고 한다. ▲광일=얼마나 못 먹었는지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11개월 생활하는 동안 키가 7㎝,몸무게는 11㎏이나 불었다.북한에서는 일년에 보통 키는 5㎝,몸무게가 3∼4㎏밖에 늘지 않았었다.보통 대분분이 서너끼 굶는 일이 예사여서 인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40∼50%의 어린이가 다리가 휘어지는 구루병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여동생도 제대로 먹지 못해 두살때까지 걷지를 못하는등 영양실조로 많은 고생을 했다.그래서 학교를 나가지 않고 엿장사와 비누장사를 해 생계에 보태곤 했는데 이 여동생을 두고온게 가슴이 아프다. ­중국과의 접경지에서 식량때문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광철=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하고있음을 잘 알고있는 지역이라 배급사정이 갈수록 나빠지면 이에 항의해 아우성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그럼에도 안전부 지도원들은 주민들의 소란을 함부로 억누르면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통제하고 있다. ­다른 생활필수품 사정은. ▲광철=물만 흔할 뿐인데 장마철에는 그나마 방목한 소들의 똥으로 오염돼 구하기가 쉽지 않다.치약이 없어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고 비누는 구경하기도 어렵다.화장지는 커녕 종이도 없어 화장실에 가서는 강냉이잎으로 대신 뒤처리를 한다.된장과 간장은 지난 84년이후 배급이 중단된 것으로 알고있다. 그래서 주민들 사이에는 『백성 굶어 죽이는게 인민대중식 사회주의냐』라는 비아냥소리가 나돌고 있다. ­탈출동기는. ▲광철=어머니가 개천교화소에 수감된이후 발전이 불가능하고 더이상 막장에서 인생을 끝낼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다.89년 아버지 주머니에서 1백원을 훔쳐 소형라디오를 산뒤 움막에서 혼자 남조선 사회교육방송과 모스크바 조선족방송을 들으며 남조선 사회를 동경해왔다.남조선 라디오를 들을 때 『민주화,언론의 자유,인권옹호』라는 말들이 나왔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난날에는 남조선 대학생의 시위상황을 TV로 지켜보면서도 『대학생들이 저렇게 옷을 잘입나』라는 의문을 품어왔다.또 북조선 기자들이 서울에 가서 임수경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잘 사는지를 알고 놀란 일이 있다. 하루는 아버지에게 남조선 사정에 대해 물어보니 『남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이 95년까지 1만달러에 달할 것이며 북조선은 이의 6분의1에도 안된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아버지도 이미 탄광의 경리과장 시절 소련에 벌목공으로 파견갔다 돌아온 사람들과 중국상인들로부터 들어 남한의 사정을 환히 알고 계셨다.남조선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알고 기회를 엿보다 탈출했다.북조선을 탈출할때 아버지 신발안에 탈출사실을 알리는 쪽지를 써놓고 나왔는데 아버지기 지금 귀순사실을 아시면….(이때 부모생각으로 말을 잠시 잊지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국경인근 지역이라 중국상인들과 접촉이 많았을 텐데. ▲광철=하도 굶주림에 시달리다 보니 젊은 여자들이 몸을 파는 사례가 늘고있다.이들은 한결같이 빨간바지를 입어 몸을 팔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중국측 상인들이 이를보면 부채를 저으며 유혹하곤 한다.화대는 50원 가량이며 사탕 한봉지로도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또 풍기도 많이 문란해져 복면을 한 청년들에 의한 강간사례가 늘고 산부인과에는 소파수술을 받으려는 여자들이 줄을 서기도 한다고 들었다. ○가족 고통이 선봬 ­앞으로 남한에서의 생활은. ▲광철=남조선의 발전된 모습을 가족과 동포들에게 알리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가족들이 이미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이때 울먹였다)북조선에서는 중노동을 하지않는 지질기사나 측량기사 같은 일을 하고 싶었다.남한에서는 기회가 되면 건축설계사 공부를 하고 싶다. ▲광일=어려서부터 도구 만지는 일에 재미를 붙여왔는데 앞으로 자동차나 기계수리 전문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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