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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플린 두번째 부인 이혼서류 경매...’16세 신부’와 결혼 등 기록

    채플린 두번째 부인 이혼서류 경매...’16세 신부’와 결혼 등 기록

    찰리 채플린(1889-1977)은 코미디 역사상 최고의 희극 배우로 평가받지만 그의 부인에게는 최악의 남편이었던 것 같다. 최근 영국의 골동품 회사 퍼레이드 앤틱 측은 과거 채플린의 50페이지 짜리 이혼 서류를 경매에 출품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 2만 5000달러(약 2700만원)의 가치가 매겨진 이 이혼 서류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채플린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이혼 서류 속 주인공은 채플린의 두번째 부인인 리타 그레이다. 채플린은 자신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밀드레드 해리스를 시작으로 총 4번의 결혼을 했다. 놀라운 사실은 1924년 결혼한 그의 두번째 부인인 그레이가 당시 불과 16세 소녀였다는 점이다. 당시 '돌싱남' 채플린의 나이는 35세로 20년 연하의 '어린 신부'를 맞이한 셈.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이 서류에 왜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됐는지도 기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채플린은 처녀인 그레이와 잠자리를 갖기위해 결혼하자고 유혹했으며 결국 임신까지 시켰으나 낙태를 종용한 것으로 적혀있다. 또한 결혼식 날 저녁 채플린은 친구에게 "감옥가는 것 보다 결혼하는 게 낫다" 며 본심을 드러냈으며 어린 신부에게도 "이 결혼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 때문에 아프게 될 것" 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결국 두 사람은 3년 후 이혼하며 짧은 결혼생활을 마쳤다. 이후 채플린은 한 번 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뒤 자신보다 36년이나 어린 신인 배우 우나 오닐과 결혼해 마지막을 함께 했다. 퍼레이드 앤틱의 존 카벨로는 "이 이혼서류는 미국의 지인으로 부터 구매한 것" 이라면서 "채플린은 당시로서는 최고 액수인 80만 달러를 리타에게 이혼 합의금으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비너스가 되지 못한 ‘르네상스 소녀’들

    비너스가 되지 못한 ‘르네상스 소녀’들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니콜라스 터프스트라 지음/임병철 옮김/글항아리/436쪽/2만원 르네상스기의 피렌체.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상업이 발달했던 역동적인 세계의 이면에는 쉽게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했다. 1544년 피렌체의 가장 열악한 동네에 집 없는 소녀들을 위한 자선 쉼터 ‘피에타의 집’이 설립됐다. 하지만 자선 쉼터라는 말이 무색하게 처음 문을 연 뒤 14년 동안 그곳에 수용됐던 526명의 소녀 가운데 202명만이 살아남았다. 캐나다 역사가인 저자는 이 예외적으로 높은 사망률에 주목한다.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는 무엇이 이 소녀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미스터리의 이면에 어떤 충격적인 진실이 숨어 있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훗날 도미니코회와 같은 특정 교단에 흡수되어 엄격한 운영체계를 갖추게 되면서 ‘피에타 집 자매들의 연대기’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이는 수도사들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가공된 기록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는 왜곡된 사료의 행간을 읽으며 당시 피에타의 집에 입소한 소녀들의 이름과 부모 직업 등을 기록한 두 개의 필사본 등록부, 회계장부, 처방전 등 극도로 제한된 당대의 자료들에서 찾아낸 파편화된 증거들을 그러모아 그녀들의 삶을 재구성해 나간다. 그가 추론해 낸 소녀들의 운명은 어둡고 황망하기 그지없다. 피에타의 소녀들은 어떤 단순한 이유 때문에 죽음에 노출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소녀들은 자신들의 쉼터를 유지하기 위해 가혹한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세속 종교단체인 피에타회의 후견인들이 기부한 지원금만으로는 구호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윤이 높은 모직물 제조업은 남성 노동력이 이미 특권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소녀들은 물레 앞에 앉아 하루종일 누에고치에서 견사를 뽑는 일을 해야만 했다. 피에타의 집 소녀들은 한 해에 500㎏가량의 견사를 뽑아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위해선 30만 마리의 누에를 길러야 했고, 무려 100t의 뽕나무잎을 공수해야 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 섭취하며 좁은 공간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했던 소녀들은 쉽게 호흡기 질환과 피부병에 걸렸고,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다. 저자는 성병과 낙태에 의한 죽음이 피에타 소녀들에게 일상화됐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피에타의 집 몇몇 소녀들에게서는 수수께끼 같은 질병이 빈번했다. 두통과 무기력감, 우울증, 분노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식욕감소, 빈혈 등의 증세가 동반되는 이 질병은 ‘처녀들의 병’이라고 불린 위황병이었다. 당시의 의학서적에서는 이 병의 치료법으로 매질을 가하거나 어두운 방에 가두고 빵과 물만 먹이는 것, 그리고 성관계를 맺도록 하라고 이르고 있다. 순결한 처녀와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성병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의 풍토에 비춰 최하층이었던 피에타의 소녀들은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물질적 대상으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피에타의 집은 위험한 삶의 단계를 거쳐야 했던 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쉼터의 형태로 출발했지만 결국 소녀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죽음으로 내몰았던 셈이다. 과도한 노동, 성병과 관련된 가설들이 추측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소녀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성적,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철저하게 계층화된 피렌체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하층 소녀들의 삶을 지배했던 르네상스 특유의 ‘젠더의 정치학’이 작동한 결과”라고 결론짓는다. 화려한 문화와 예술이 꽃핀 르네상스라는 거대 서사의 그늘에서 많은 소녀들이 고통스럽게 사라져 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화려한 시대의 이면에 피에타 소녀들과 같은 운명에 처한 소녀들이 없으리란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까.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찰리 채플린 두번째 부인은 16세 소녀…이혼서류 경매

    찰리 채플린 두번째 부인은 16세 소녀…이혼서류 경매

    찰리 채플린(1889-1977)은 코미디 역사상 최고의 희극 배우로 평가받지만 그의 부인에게는 최악의 남편이었던 것 같다. 최근 영국의 골동품 회사 퍼레이드 앤틱 측은 과거 채플린의 50페이지 짜리 이혼 서류를 경매에 출품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 2만 5000달러(약 2700만원)의 가치가 매겨진 이 이혼 서류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채플린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이혼 서류 속 주인공은 채플린의 두번째 부인인 리타 그레이다. 채플린은 자신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밀드레드 해리스를 시작으로 총 4번의 결혼을 했다. 놀라운 사실은 1924년 결혼한 그의 두번째 부인인 그레이가 당시 불과 16세 소녀였다는 점이다. 당시 '돌싱남' 채플린의 나이는 35세로 20년 연하의 '어린 신부'를 맞이한 셈.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이 서류에 왜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됐는지도 기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채플린은 처녀인 그레이와 잠자리를 갖기위해 결혼하자고 유혹했으며 결국 임신까지 시켰으나 낙태를 종용한 것으로 적혀있다. 또한 결혼식 날 저녁 채플린은 친구에게 "감옥가는 것 보다 결혼하는 게 낫다" 며 본심을 드러냈으며 어린 신부에게도 "이 결혼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 때문에 아프게 될 것" 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결국 두 사람은 3년 후 이혼하며 짧은 결혼생활을 마쳤다. 이후 채플린은 한 번 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뒤 자신보다 36년이나 어린 신인 배우 우나 오닐과 결혼해 마지막을 함께 했다. 퍼레이드 앤틱의 존 카벨로는 "이 이혼서류는 미국의 지인으로 부터 구매한 것" 이라면서 "채플린은 당시로서는 최고 액수인 80만 달러를 리타에게 이혼 합의금으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어벤져스 호크아이’ 제레미 레너, 초췌한 외출 포착

    ‘어벤져스 호크아이’ 제레미 레너, 초췌한 외출 포착

    영화 ‘어벤져스’에서 슈퍼 시력을 가진 캐릭터 ‘호크아이’로 열연해 온 할리우드 스타 제레미 레너의 초췌해진 모습으로 거리에 나타났다. 제레미 레너는 지난 해 9월 전 아내인 소니 파체코와 비밀 결혼을 고백해 화제를 모았으나, 결혼한 지 10개월 만에 이혼소송을 제기해 또 한번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TMZ, 할리우드리포터 등 현지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제레미 레너는 이혼소송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양육권을 둘러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처음 드러낸 모습을 담고 있어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 속 제레미 레너는 매우 편안한 캐쥬얼 복장으로 로스앤젤레스 거리에 나섰다. 통이 넓은 반바지와 몸에 핏 되는 티셔츠 차림이었으며 얼굴은 매우 초췌해 보인다. 소송의 여파 탓인지 야구 모자를 푹 눌러썼음에도 불구하고 수심이 가득한 표정은 가려지지 않는다. 제레미 레너의 고민은 단순한 이혼 및 양육권 소송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국 연예매체인 피플은 현지시간으로 25일, 제레미 레너의 룸메이트의 말은 인용해 “제레미 레너가 전 부인인 소니 파체코에게 이용당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제레미 레너와 20년 간 우정을 쌓아 온 룸메이트 크리스토퍼 원터스는 캐나다 출신의 파체코가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레너와 결혼했으며, 딸을 임신했을 때와 출산 이후에도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제레미 레너의 사적인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협박의 도구로 삼았으며, 아이 역시 낙태를 고려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출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제레미 레너의 전 부인인 파체코는 미국 연예매체와 한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미국 TMZ닷컴은 파체코가 제레미 레너에게 딸의 양육권 및 고액의 양육비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제레미 레너의 자산은 1300만 달러(약 144억 원)이며, 영화 ‘어벤져스’의 성공 이후 지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은 350만 달러(약 38억 원)에 달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미래를 향한 공론

    미래를 향한 공론

    인권과 소수자 보호에 앞장서 왔던 지미 카터(91) 전 미국 대통령이 여성 인권 신장에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밝혔다. 카터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내와 세 딸, 세 명의 손녀, 5명의 증손녀는 물론 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인 보코하람에 납치된 200명 이상의 여학생, 이슬람국가(IS)의 성 노예로 전락한 중동 지역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은 기회와 안전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낙태된 아시아 대륙의 1억 6000만 태아와 성폭력의 희생양이 된 미 여군, 이라크·시리아·아프가니스탄 등 남성 위주의 이슬람 문화에서 고통받는 여성에게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미국은 (여러 나라를) 선도하는 국가이지만, 전 세계 여성의 인권 보호를 확대하기 위해 충분한 일을 하지 않았다”며 미국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어 “딸이나 손녀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 것”이라면서 “시 또는 국가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교육 평등권과 구직권리를 빼앗는다면 해당 공동체는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최근 여성 인권 철학을 담은 ‘작전 개시 상황: 여성, 종교, 폭력, 권력’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1977년부터 4년간 미국을 이끈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중동 평화, 북핵 문제에서 평화 전도사로 활약했고 무주택 서민에게 집을 지어 주는 해비탯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한 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강제 낙태·정관수술 피해 한센인 183명에 국가배상”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심우용)는 12일 국가로부터 강제 낙태·단종(정관수술) 조치를 당한 한센인 20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83명에게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한센인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은 지난해 광주고법 순천지원 항소심에 이어 두 번째다. 재판부는 단종 피해자 171명에게 3000만원씩, 낙태 피해자 12명에게 40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센인 피해 사건 진상 규명 위원회’ 운영이 끝나 피해자로 규명받지 못한 나머지 20명은 청구가 기각됐다. 한센인총연합회는 이날 선고 뒤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은 항소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연합회 측이 추산하는 낙태·단종 피해자는 650명 정도다. 2011년 전남 순천에서 19명이 첫 소송을 낸 뒤 나머지 피해자들은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이날 선고가 이뤄진 사건 외에 서울중앙지법에 여러 건이 계류 중이다. 정부는 1937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센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던 강제 정관수술 등을 해방 이후 폐지했다가 1948년부터 전남 고흥 소록도 내 부부 동거자들에게 다시 시행했다. 동거 중 임신한 여성은 강제로 낙태시켰다. 이 같은 일은 소록도 외에도 인천 성혜원, 전북 익산 소생원, 경북 칠곡 애생원과 안동 성좌원, 부산 용호농원 등 내륙에 설치된 국립요양소와 정착촌에서도 1990년대까지 반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09년 3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한센인에게서 피해 신고 1만여건을 접수해 진상 조사를 벌였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더원 피소, 양육비 문서 위조 왜? 전 여자친구 충격 발언 “아기 생겼다고 했더니..”

    더원 피소, 양육비 문서 위조 왜? 전 여자친구 충격 발언 “아기 생겼다고 했더니..”

    ‘더원 피소’ 가수 더원이 양육비 관련 문제로 피소된 사실이 알려졌다. 4일 한 매체에 따르면 가수 더원은 최근 양육비 문제를 놓고 다투다 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했다. 보도에 따르면 더원은 아이를 낳은 전 여자친구 이 씨(35)에게 양육비를 주기 위해 전 여자친구를 자신의 소속사 직원으로 등록해 소득을 받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 여자친구 이 씨는 인터뷰를 통해 “소득명세서를 떼어보고 지난 2013년부터 사업소득이 지급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일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네 직원으로 일했다고 꼼수를 부린 것이다. 내 명의를 도용한 거고 월급 받는 서명이 들어가야 하는데 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 씨는 “2010년 말, 더원의 아이를 낳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양육비를 요구했다. 양육비를 띄엄띄엄 받았다. 많이 받을 때는 130만원, 못 받을 때는 몇십만원 띄엄띄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처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책임지라고 했더니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 예를 들면서 임신했다고 전화가 왔는데 알아서 낙태를 했다. 자기는 책임을 못 진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이 씨에 대해 한 차례 조사를 마친 경찰은 조만간 더원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더원 피소, 양육비 아끼려 문서 위조 ‘충격’ 과거 딸 고백한 발언 보니..

    더원 피소, 양육비 아끼려 문서 위조 ‘충격’ 과거 딸 고백한 발언 보니..

    더원 피소, 양육비 아끼려 문서 위조 ‘충격’ 과거 딸 고백한 발언 보니.. 가수 더원이 양육비 관련 문제로 피소된 사실이 알려졌다. 4일 한 매체에 따르면 가수 더원은 최근 양육비 문제를 놓고 다투다 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했다. 보도에 따르면 더원은 아이를 낳은 전 여자친구 이 씨(35)에게 양육비를 주기 위해 전 여자친구를 자신의 소속사 직원으로 등록해 소득을 받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 여자친구 이 씨는 인터뷰를 통해 “소득명세서를 떼어보고 지난 2013년부터 사업소득이 지급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일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네 직원으로 일했다고 꼼수를 부린 것이다. 내 명의를 도용한 거고 월급 받는 서명이 들어가야 하는데 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 씨는 “2010년 말, 더원의 아이를 낳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양육비를 요구했다. 양육비를 띄엄띄엄 받았다. 많이 받을 때는 130만원, 못 받을 때는 몇십만원 띄엄띄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처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책임지라고 했더니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 예를 들면서 임신했다고 전화가 왔는데 알아서 낙태를 했다. 자기는 책임을 못 진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한편 더원은 지난 12월 MBC ‘세바퀴’에 출연해 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다. 이날 더원은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아이가 있다”고 고백하며 “방송에서 처음 말하는 건데 제가 삶이 바닥을 쳤을 때 집, 차, 건물까지 다 잃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더원은 “MBC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에 인정을 받고 더 열심히 살기 위해 힘든 시절을 함께 헤쳐 나가려고 했지만 삶이 너무 힘들다보니 아내와 헤어졌다”며 “4살 딸 아이가 있다. 내년까지 열심히 하면 어둠에서 빛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쌍용차 구조조정 등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과연 정당화 가능하나

    쌍용차 구조조정 등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과연 정당화 가능하나

    ‘제동장치가 고장난 전차(트롤리)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바로 앞 철로 위에는 다섯 사람이 묶여 있다. 마침 당신 앞에는 철로 변경 조종기가 있어 전차의 진행 방향을 지선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지선 위에도 또 다른 사람 한 명이 묶여 있다. 당신은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킬 것인가.’ 1967년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풋이 낙태와 태아의 도덕적 지위 문제를 다룬 논문에서 내놓은 ‘트롤리 사유 실험’이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제러미 벤담, 이마누엘 칸트, 버트런드 러셀 등의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을 빌려 인간의 도덕 본능과 의무감의 심리적 기저 및 행위의 근본을 결정하는 요인을 밝히려 했다. 수년 전 한국 사회에 열풍이 불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트롤리 사유 실험을 소개하며 딜레마적 상황 속에서의 가치 판단에 대한 문제, 사유의 여러 갈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로 사용하기도 했다.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가. 아퀴나스는 ‘이중 효과의 원리’를 제시하며 의도한 효과는 아니지만 예견된 효과라는 측면에서 정당화한다.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이 정상참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하는 벤담이라면 행위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으므로 단호하게 다섯 명을 살리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반면 칸트는 인격체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는 명제 아래 절대적 도덕을 강조한다. 칸트라면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사실 이는 고약한 윤리 퍼즐이 맞다. 공포영화 ‘쏘우’ 시리즈에서 매번 제시하는 잔혹한 딜레마적 상황과 비슷하다. 가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타인의 다리를 잘라야 하는 상황, 또는 갇힌 동료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그중 한 명의 배를 갈라야 하는 상황 등이다. 한 철학자는 트롤리 사유 실험에 대해 “도덕철학에 나타나는 질병처럼 보인다”고 말하며 실험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리철학의 사유를 뛰어넘어 인식론, 형이상학, 심리학, 경제학, 인지과학, 심경생리학 등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다른 분야의 학문으로 전파되면서 트롤리 사유 실험은 조금씩 다르게 변주됐다.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등 실제 생활의 고민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제는 아예 ‘트롤리학’(trolleyology)으로 불릴 정도가 됐다. 물론 여전히 학제에 포함되는 정식 연구 학문이라기보다 철학의 하위 장르로 자리 잡는 추세다. 실제로 트롤리적 사유는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와도 밀접하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2009년 TV 프로그램 생방송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해일이 닥치고 있다. 한쪽에는 나이지리아인 다섯 명이 살고 있고, 반대쪽에는 영국인 한 명이 살고 있다. 한 곳밖에 구할 시간이 없다. 어느 쪽을 구할 것인가?” 방청객들은 키득거렸고, 브라운 총리는 “현대적 의사소통 기술로 두 곳에 다 경고를 줘서 탈출하도록 하겠다”는 궁색한 답을 내놨다. 이 밖에도 1844년 대서양을 항해하다 폭풍우에 조난당한 선장은 선실 보이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인육을 먹었다. 교수형이 선고됐으나 선원들 다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이 가장 약한 소년을 살해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참작돼 6개월형으로 감형됐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개인의 생명이 갖는 무게감의 정도, 개인과 집단의 상관성 등 사회정의와 정책 결정 과정의 공공성 등 딜레마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도, 쌍용자동차가 엄청난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도, 정부가 대기업의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간접세목을 스멀스멀 늘려 가는 것도 트롤리 사유 실험에서 자기 확신을 하며 나타난 결과로 이어진다. 현실의 문제를 합리화하거나 비판하는 데 철학이 얼마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샌델에 이어 지난해 말 ‘누구를 구할 것인가’(문학동네), 최근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이마) 등 트롤리 사유 실험에 대한 책들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교황 “토끼처럼 계속 아이 낳자는 것 아니다”

    교황 “토끼처럼 계속 아이 낳자는 것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낙태와 인공피임법 반대 입장을 설명하면서 ‘토끼처럼’ 계속 출산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해 화제가 되고 있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19일(현지시간) 필리핀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가톨릭 신자가 되려면 마치 토끼처럼 (출산을 많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으며 안전하고 책임 있게 낳고 키울 수 있는 범위에서 출산하면 된다”고 말했다. 교황은 최근 제왕절개로 일곱 차례 출산을 하고 여덟 번째 아이를 가진 여성을 만나서 나무란 일화를 소개했다. 교황은 “이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면서 “고아 일곱 명을 두고 세상을 떠나려는 것이냐?”고 이 여성에게 물었다고 전했다. 그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알아서 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는 “하느님을 시험하는” 무책임한 말이라며 “하느님께서는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나 인공피임법 외에 가톨릭 교회가 인정하는 출산 제한 방법이 많다”며 “책임질 줄 아는 부성(父性)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지난 16일 필리핀 방문에서 “수태에서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찬양하면서 1968년 바오로 6세 교황이 낙태와 인공피임법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반대 입장을 확인한 점에 찬사를 보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낙태 목적으로 쓴 ‘결혼 각서’ 안 지켰다면…

    ‘낙태를 목적으로 한 결혼 각서와 지급 능력을 넘은 손해배상 약속은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부산가정법원 가사1부(부장 김문희)는 1일 미성년자인 여고생을 임신시키고 낙태를 목적으로 결혼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A(28)씨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0년 당시 여고생이던 B(22)씨와 수차례 성관계를 하고 B씨가 임신하자 ‘결혼하겠다’는 각서를 쓴 다음 낙태수술을 강요하고는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소됐다. B씨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B씨 어머니는 A씨에게 “딸이 임신 20주가 넘었으니 책임지라”며 결혼하라고 요구했다. A씨는 낙태수술을 하자며 맞섰으나 결국 ‘2011년 5월까지 혼인신고를 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2억원의 위자료를 지불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B씨 어머니에게 작성해 줬다. B씨는 각서를 받은 다음날 병원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았으나 A씨는 연락을 끊고 결혼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에 B씨는 A씨가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했다면서 1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에 결혼 이야기가 없었던 점과 A씨가 혼인할 의사도 없이 낙태시킬 목적으로 결혼하겠다는 각서를 써 준 점 등을 들어 두 사람 사이에 약혼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A씨가 미성년자인 B씨와 성관계를 가져 원치 않은 임신을 시킨 것과 각서를 써 주면서 임신중절수술을 하도록 유도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각서에 정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B씨도 임신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고 위자료 2억원은 A씨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손해배상금 중 1000만원을 초과한 부분은 무효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재자 암살 가능할까... ‘인터뷰’ 계기로 본 역사속 작전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재자 암살 가능할까... ‘인터뷰’ 계기로 본 역사속 작전들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사이버 공방까지 낳게 만들었던 미국 소니 픽처스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미국 전역의 320개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면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북한의 강력 반발과 해킹 사건 등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가 상영을 포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주제는 B급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과거 개봉되었던 암살 영화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역사극이거나 특수부대와 같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뷰'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의 어린 지도자를 암살하는 스토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관객들이 시종일관 폭소를 터트릴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 결말 역시 김정은이 헬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우스꽝스럽게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독재자 암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려진 것만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쿠바 배후의 소련,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Fabian Escalante)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Cigar)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였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카스트로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음료에 독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Marita Lorenz)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하고,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反)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살고 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작전명 : 발키리 성공했다면 세계사를 바꿀 뻔 했지만, 나무 테이블 하나 때문에 실패해 5,000여 명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발키리 작전’ 역시 유명한 암살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부터 나치의 군 장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교들은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 암살과 나치 체제 전복을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다. 독일군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신망을 받고 있던 루트비히 베크(Ludwig Beck) 대장 등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이 암살 및 쿠데타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폭탄을 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면, 국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예비군조직을 이용해 베를린과 독일 각지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나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친위대 조직을 제압한 뒤 베크 대장을 임시 수반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항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암살 임무는 국방군본부 예비군 참모였던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 대령이 맡았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비밀 지휘소였던 ‘늑대굴(Wolfschanze)'에서 히틀러가 주재한 전시 작전회의에 예비군 동원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 늑대굴에는 아무리 고위장교라도 무기 등 금속을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액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폭탄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이 폭탄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레지스탕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한 특수 폭탄이었다.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캡슐을 깨뜨리면 시한신관이 작동하면서 정확히 10분 후에 폭발하는 구조였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장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작전 테이블 아래에 폭탄가방을 내려놓았고, 발을 뻗어 다른 참석자들 몰래 그 가방을 히틀러 발 앞에까지 밀어 넣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속부관인 하인츠 브란트(Heinz Brandt) 대령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히틀러가 발견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방을 옆으로 치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창문이 깨지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자기 쪽으로 치웠던 브란트 대령 등 3명이 즉사하고 참석자들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히틀러 역시 고막이 터지고 팔과 다리에 나무 파편이 박히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침 폭탄이 터질 때 히틀러가 작전지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테이블 깊숙이 몸을 숙인 상태였고,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폭발의 충격을 상당부분 막아주면서 히틀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나치 조직은 사건 직후 병력을 동원해 친위대 사령부를 포위하고, 예비군 사령관이었던 프롬 대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날 오후 히틀러가 자신의 건재함을 발표하자마자 반란군에 대규모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직후 히틀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총동원해 가담자 색출에 나섰고, 약 7,0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 5,000여 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반란 세력으로 몰려 강제 자살로 내몰린 에르빈 롬멜(Erwin J.E. Rommel) 장군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 최근 김정은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몰래 숨겨 놓은 기관총이 발견되어 관계자가 숙청당했다는 소식처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위해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정보기관과 대규모 경호부대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수십 겹의 안전장치를 깔아 놓은 김씨 일가의 조심성 때문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김씨 일가에 대한 암살 모의 사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92년에 있었던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이다. ‘프룬제 아카데미아’란 우리나라의 합동군사대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급장교 보수교육 기관으로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나 공산국가들의 고급 장교들이 가장 많이 유학했던 교육기관이다. 북한은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예 장교를 육성을 목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소련 각 학교기관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했는데, 이들 유학생들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최우선 포섭대상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을 확실히 옭아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학 장교들은 유학 장교들 나름대로 유학 생활을 통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 이후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는 소련 체제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세습적 봉건왕조화 되어가던 북한을 이대로 두면 동구권 국가들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들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혁명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만경봉대학원과 남산학교를 거쳐 프룬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안 상장(한국군 중장 계급에 해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프룬제 출신 장교들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거사는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전차부대 지휘관을 맡고 있었던 김일훈 소장(한국군 준장 계급에 해당)이 맡기로 했다. 인민군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는 전차부대가 김일성 부자가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주석단 정면을 통과할 때 포탑을 돌려 전차포로 주석단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열병식에 자신의 부대인 제820기계화군단을 내보내 김정일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박기서 상장이 인민무력부에 압력을 넣어 열병식 참가 전차를 평양방어사령부가 아닌 820군단 전차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사 직후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던 KGB의 배신 역시 치명적이었다. 김일성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던 김정일에게 접근한 KGB는 “1,000만 달러를 주면 프룬제 아카데미아 유학파 가운데 소련에 포섭된 자와 반란 모의에 가담한 자의 명단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수용하면서 암살 계획 전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소련 유학파, 특히 프룬제 아카데미아 출신 고위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에서 소련 유학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파들이 득세하면서 김정일 시대는 ‘철저한 자주노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엘리트 장교들이 가담한 암살 모의 사건에 경악한 김정일은 이후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평양을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를 이어 자신의 최측근으로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경호 부대를 만들어 자신의 주변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무작정 경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 군인들도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이며, 폭정(暴政)이 계속되어 인민들의 한(恨)이 쌓이면 자신의 경호원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기획] 영화 ‘인터뷰’를 통해 본 김정일·카스트로·히틀러 암살 사건

    [기획] 영화 ‘인터뷰’를 통해 본 김정일·카스트로·히틀러 암살 사건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사이버 공방까지 낳게 만들었던 미국 소니 픽처스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미국 전역의 320개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면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북한의 강력 반발과 해킹 사건 등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가 상영을 포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주제는 B급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과거 개봉되었던 암살 영화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역사극이거나 특수부대와 같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뷰'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의 어린 지도자를 암살하는 스토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관객들이 시종일관 폭소를 터트릴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 결말 역시 김정은이 헬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우스꽝스럽게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독재자 암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려진 것만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쿠바 배후의 소련,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Fabian Escalante)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Cigar)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였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카스트로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음료에 독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Marita Lorenz)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하고,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反)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살고 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작전명 : 발키리 성공했다면 세계사를 바꿀 뻔 했지만, 나무 테이블 하나 때문에 실패해 5,000여 명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발키리 작전’ 역시 유명한 암살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부터 나치의 군 장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교들은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 암살과 나치 체제 전복을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다. 독일군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신망을 받고 있던 루트비히 베크(Ludwig Beck) 대장 등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이 암살 및 쿠데타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폭탄을 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면, 국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예비군조직을 이용해 베를린과 독일 각지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나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친위대 조직을 제압한 뒤 베크 대장을 임시 수반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항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암살 임무는 국방군본부 예비군 참모였던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 대령이 맡았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비밀 지휘소였던 ‘늑대굴(Wolfschanze)'에서 히틀러가 주재한 전시 작전회의에 예비군 동원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 늑대굴에는 아무리 고위장교라도 무기 등 금속을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액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폭탄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이 폭탄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레지스탕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한 특수 폭탄이었다.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캡슐을 깨뜨리면 시한신관이 작동하면서 정확히 10분 후에 폭발하는 구조였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장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작전 테이블 아래에 폭탄가방을 내려놓았고, 발을 뻗어 다른 참석자들 몰래 그 가방을 히틀러 발 앞에까지 밀어 넣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속부관인 하인츠 브란트(Heinz Brandt) 대령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히틀러가 발견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방을 옆으로 치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창문이 깨지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자기 쪽으로 치웠던 브란트 대령 등 3명이 즉사하고 참석자들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히틀러 역시 고막이 터지고 팔과 다리에 나무 파편이 박히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침 폭탄이 터질 때 히틀러가 작전지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테이블 깊숙이 몸을 숙인 상태였고,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폭발의 충격을 상당부분 막아주면서 히틀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나치 조직은 사건 직후 병력을 동원해 친위대 사령부를 포위하고, 예비군 사령관이었던 프롬 대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날 오후 히틀러가 자신의 건재함을 발표하자마자 반란군에 대규모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직후 히틀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총동원해 가담자 색출에 나섰고, 약 7,0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 5,000여 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반란 세력으로 몰려 강제 자살로 내몰린 에르빈 롬멜(Erwin J.E. Rommel) 장군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 최근 김정은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몰래 숨겨 놓은 기관총이 발견되어 관계자가 숙청당했다는 소식처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위해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정보기관과 대규모 경호부대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수십 겹의 안전장치를 깔아 놓은 김씨 일가의 조심성 때문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김씨 일가에 대한 암살 모의 사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92년에 있었던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이다. ‘프룬제 아카데미아’란 우리나라의 합동군사대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급장교 보수교육 기관으로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나 공산국가들의 고급 장교들이 가장 많이 유학했던 교육기관이다. 북한은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예 장교를 육성을 목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소련 각 학교기관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했는데, 이들 유학생들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최우선 포섭대상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을 확실히 옭아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학 장교들은 유학 장교들 나름대로 유학 생활을 통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 이후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는 소련 체제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세습적 봉건왕조화 되어가던 북한을 이대로 두면 동구권 국가들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들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혁명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만경봉대학원과 남산학교를 거쳐 프룬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안 상장(한국군 중장 계급에 해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프룬제 출신 장교들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거사는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전차부대 지휘관을 맡고 있었던 김일훈 소장(한국군 준장 계급에 해당)이 맡기로 했다. 인민군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는 전차부대가 김일성 부자가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주석단 정면을 통과할 때 포탑을 돌려 전차포로 주석단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열병식에 자신의 부대인 제820기계화군단을 내보내 김정일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박기서 상장이 인민무력부에 압력을 넣어 열병식 참가 전차를 평양방어사령부가 아닌 820군단 전차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사 직후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던 KGB의 배신 역시 치명적이었다. 김일성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던 김정일에게 접근한 KGB는 “1,000만 달러를 주면 프룬제 아카데미아 유학파 가운데 소련에 포섭된 자와 반란 모의에 가담한 자의 명단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수용하면서 암살 계획 전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소련 유학파, 특히 프룬제 아카데미아 출신 고위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에서 소련 유학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파들이 득세하면서 김정일 시대는 ‘철저한 자주노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엘리트 장교들이 가담한 암살 모의 사건에 경악한 김정일은 이후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평양을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를 이어 자신의 최측근으로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경호 부대를 만들어 자신의 주변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무작정 경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 군인들도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이며, 폭정(暴政)이 계속되어 인민들의 한(恨)이 쌓이면 자신의 경호원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재판관 보수 성향…“예견된 결과”

    통합진보당 해산은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1년 넘게 이번 사건을 심리해 온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성향이 대체로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한철 소장을 비롯해 9명 모두 보수 성향의 박근혜·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됐다. 2011년 1월 이 대통령 지명으로 헌재에 입성한 박 소장은 지난해 4월 박 대통령의 지명에 따라 검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헌재 수장에 올랐다. 대검 공안부장을 역임할 만큼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꼽힌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와 미네르바 사건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헌재에서는 낙태죄 처벌, 야간 옥외집회 금지 등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 의견을 냈다. 2012년 9월 합류한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은 양승태 현 대법원장이 지명했고, 안창호 재판관은 새누리당이 추천했다. 안 재판관도 박 소장과 마찬가지로 대표적 공안통이다. 대검 공안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냈다. 2006년에는 일심회 간첩 사건 수사를 직접 지휘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4월 헌재에 입성한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은 박 대통령이 지명했다. 이번 사건 주심으로 유일한 여성인 이정미 재판관은 2011년 3월 헌재에 합류해 박 소장을 제외하면 최고 선임이다. 진보 성향인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지명했지만 진보 세력의 바람을 외면하고 다수 의견에 한 표를 보탰다. 여야 합의로 선출된 강일원 재판관은 중도 성향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정당 해산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베니스위원회 산하 헌법재판공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돼 기각 의견을 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예상을 벗어났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사랑을 실천하는 숭실사이버대 연합동아리 ‘따스아리’ 화제

    사랑을 실천하는 숭실사이버대 연합동아리 ‘따스아리’ 화제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정성이 더욱 절실한 계절이다. 서울시민의 기부액이 3년 연속 줄어들 정도로 불황의 여파로 기부 문화나 봉사 문화가 위축되고 있지만, 학생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는 교수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숭실사이버대학교 노인복지학과 학과장 조문기 교수. 노인복지 분야의 석학인 조 교수가 숭실사이버대학교의 연합봉사동아리 ‘따스아리’의 지도교수까지 맡으며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조 교수는 “한센병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중 사회복지 특히 노인복지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소록도에서 3박 4일간 지내면서 복지의 신념을 세우게 됐다”며 “ 돌림병으로 오인 받기도 하고 무차별 낙태 및 모든 차별의 원인으로 그분들의 삶을 보면서 복지와 나눔, 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조문기 교수가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따스아리’는 숭실사이버대학교의 노인복지, 사회복지, 소방방재, 상담심리, 법학과 학생들의 연합동아리다. ‘따스아리’는 최근 소방방재학과의 이창우 교수님의 조언으로 화재경보기도 무상으로 지원받아 화재에 취약한 저소득가구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위한 소방방재학과 재학생들이 구로노인종합복지관과 협조해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돌며 취약점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경보기 외에도 각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도움을 확인하고, 5가정에 말벗, 가사지원, 복지정보제공, 간식제공, 방충망설치 등의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또한 화재경보기를 설치하고 난방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가정용 뽁뽁이도 설치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도왔다. 조 교수는 “아직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몇 가정 뿐이지만, 독거노인의 생애주기에 맞춰 작은 일들을 실천하고, 구로구와 동작구로 자원봉사의 영역을 넓혀 나갈 생각”이라며 “숭실사이버대학의 특성에 맞추어 본 대학의 중심지인 동작구의 복지기관과 연합하여 좀더 많은 어르신을 마주하며 자원봉사 영역을 넓혀서 어르신들의 생애주기에 맞춘 탄력있는 자원봉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숭실사이버대학교는 다양한 인재들의 신•편입을 돕기 위해 저렴한 등록금과 다양한 장학혜택 제공 등의 혜택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입학 지원자 중 특별장학 대상자는 직장인, 개인사업자, 주부, 전문계 고등학교 졸업자 등을 비롯해 현역군인 및 예비역 이르는 군장학제도, 목사, 전도사 등 그 가족까지 포함한 교역자 장학제도까지 도입하는 등 다양한 전형별 장학혜택을 제공한다. 숭실사이버대학교는 2015학년도 1학기 신•편입생 모집을 12월1일부터 진행한다. 자세한 입학전형 및 상담은 전화(02-828-5501) 또는 숭실사이버대학교 입학홈페이지(http://go.kcu.ac)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집단 성폭행당하고 낙태 강요까지…인도 실태

    인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해 임신까지 한 16세 소녀가 해당 마을 장로들로부터 낙태 수술을 강요당했다고 인도 일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등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은 비하르주(州) 키산간즈 지역에 있는 팍콜라 팔라시마니라는 마을에서 발생했다. 현재 임신 7개월째인 이 소녀는 지난 5월 이 마을에 사는 4형제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소녀는 라자스탄주(州)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의 딸로 알려졌다. 피해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마을 자치회의 조직인 판차야트에 공정하게 평가할 것을 주장하고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도록 요구한 결과, 일부 장로가 5만 루피(약 90만원)를 건네며 낙태 수술을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협박 사건은 피해 소녀 어머니의 신고로 드러났다. 경찰은 신고 내용을 토대로 낙태 수술을 강요한 판차야트 회원을 찾기 위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에서는 어린 소녀가 집단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달에만 5명의 소녀가 성폭행당해 임신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인도의 판차야트는 1명의 의장을 포함한 최소 5명의 장로가 회의를 통해 마을 내 대소사를 처리한다. 사실 법적 효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마을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인도서 집단 성폭행당한 16세 소녀, 낙태 강요당해

    인도서 집단 성폭행당한 16세 소녀, 낙태 강요당해

    인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해 임신까지 한 16세 소녀가 해당 마을 장로들로부터 낙태 수술을 강요당했다고 인도 일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등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은 비하르주(州) 키산간즈 지역에 있는 팍콜라 팔라시마니라는 마을에서 발생했다. 현재 임신 7개월째인 이 소녀는 지난 5월 이 마을에 사는 4형제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소녀는 라자스탄주(州)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의 딸로 알려졌다. 피해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마을 자치회의 조직인 판차야트에 공정하게 평가할 것을 주장하고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도록 요구한 결과, 일부 장로가 5만 루피(약 90만원)를 건네며 낙태 수술을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협박 사건은 피해 소녀 어머니의 신고로 드러났다. 경찰은 신고 내용을 토대로 낙태 수술을 강요한 판차야트 회원을 찾기 위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에서는 어린 소녀가 집단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달에만 5명의 소녀가 성폭행당해 임신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인도의 판차야트는 1명의 의장을 포함한 최소 5명의 장로가 회의를 통해 마을 내 대소사를 처리한다. 사실 법적 효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마을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설] 부실 통일교육 안 하느니만 못하다

    각급 학교에서 이뤄지는 통일교육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일부 학교통일교육 강사 중 절반 가까이는 북한이나 통일 등 관련 전공자가 아니다. 더구나 외부 인사가 진행하는 통일교육의 경우 정부 부처 간 조율도 제대로 안 돼 혼란을 빚기 일쑤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통일부 주관 학교통일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인원은 지난 9월 기준 58명이다. 이 가운데 북한·통일 등 관련 전공자는 55%인 32명에 불과하다. 애당초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통일교육 전문강사에 대한 처우도 그리 좋지 않아 이직이 잦다 보니 업무의 연속성도 떨어진다. 우리의 통일교육은 그야말로 안팎곱사등이 신세인 것이다. 통일교육 전문강사로 선발되면 통일교육원에서 20일 동안 교육을 받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시스템상의 문제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비전공자가 이처럼 속성 교육을 받고 학생들에게 복잡다단한 통일 문제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통일부가 양성한 전문강사가 전국 초·중·고등학교를 찾아가 통일교육을 실시하는 이른바 ‘찾아가는 학교통일교육’은 2012년부터 본격화돼 올해는 전국 468개 초·중·고에서 교육이 이뤄졌다. 내년에는 1000여개 학교에서 통일교육을 할 예정이다. 양적 확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수준 이하의 통일교육으로 그릇된 북한상이나 통일관을 심어 준다면 차라리 백지 상태로 놔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지난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강제낙태·영아살해 등 잔인한 내용이 담긴 북한 인권유린 관련 영상이 여과 없이 소개돼 논란을 낳기도 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상당수는 남북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에도 민족공동체의 회복이나 한반도의 평화정착 같은 당위론적 이유보다는 통일 후 누리게 될 경제적 효과 등 현실적인 이유에 관심이 쏠려 있는 게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이라는 자극적인 용어까지 구사하며 통일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준비 없는 통일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통일이라는 국가적 어젠다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미래의 주역인 학생 세대에 대한 통일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참에 통일부가 주관하는 학교통일교육, 교육청이 관여하는 보수단체 중심 안보교육, 군 당국의 교육 등 여러 갈래로 진행되는 통일교육 체계 전반에 대해 총체적으로 재검토해 보기 바란다.
  • 프란치스코 교황 “안락사는 잘못된 동정심”

    프란치스코 교황 “안락사는 잘못된 동정심”

    “인간 존엄을 위해 안락사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동정심에서 나온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뇌종양을 앓던 미국 여성 브리트니 메이너드의 자살로 관심을 끌었던 존엄사 논란에 대해 선을 그었다고 1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동성애에 대한 전향적 태도로 논란을 일으킨 적은 있지만 안락사, 낙태, 시험관 시술 등의 생명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교리에서 전혀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교황의 이날 발언은 바티칸 교황청 요한6세홀에서 이탈리아가톨릭의사회 소속 의사들 4000여명을 만났을 때 나왔다. 구체적으로 메이너드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교황은 의사들이 생명의 존엄함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생명으로 장난치는 것은 창조주의 뜻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고대에서든 현대에서든 ‘살인’이라는 말의 뜻은 똑같다”고 반박하는가 하면, 존엄사를 “병자와 노약자들을 사회의 하수구처럼 바라보는 것으로, 저 멀리 내쳐야 할 현대 문화의 나쁜 증상”이라고 비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美18세 여대생, 최연소 주 의원 등극

    美18세 여대생, 최연소 주 의원 등극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의 18세 여대생이 하원의원에 당선해 역대 최연소 주 의원 기록을 세워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새러 블레어(18). 공화당 의원으로 출마한 그녀는 지난 5월 치러진 예비경선에서 3선을 노리던 래리 검프 하원의원을 눌러 크게 주목받았다. 웨스트버지니아대학 1학년생인 블레어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63%의 표를 얻으며 민주당의 래인 디엘 후보를 물리쳤다. 의정 활동을 위해 첫 학년을 휴학할 계획이다. 미 50개 주 가운데 절반가량은 선거일 당일 18세 이상이면 선거권을 주고 18개 주의 경우 피선거권을 21세 이상에게만 주고 있다. 지난 1998년 이후 지금까지 10대 주 의원은 모두 6명이 배출됐는데 블레어가 오는 2015년 1월에 정식으로 취임하면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 의원이 된다. 새러 블레어는 하원의원 출신으로 2년 전 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부친 크레이그 블레어의 영향을 받으며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녀는 낙태 반대, 총기소지 찬성 등 공화당 전통 보수 전략을 구사하고 일자리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있다. 한편 그녀는 이번 선거를 위해 대학 기숙사에서부터 선거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가 이번에 쓴 선거 자금은 1만 달러에 달하며 지난 예비경선에 쓴 자금은 4900달러로 알려졌다. 사진=새러 블레어 홈페이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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