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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진·박주민·김종철 ‘97세대 트로이카’…86그룹 교체시킬까

    박용진·박주민·김종철 ‘97세대 트로이카’…86그룹 교체시킬까

    199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70년대생을 가리키는 ‘97세대’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97세대가 정치권은 물론 경제·사회 각 분야의 기득권으로 굳어진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을 상대로 세대교체의 물꼬를 틀지 관심이 모아진다. 일각에서는 97세대의 특정 인물이 주목받을 뿐 세대교체는 이르다고 평가하는 등 97세대의 전면 등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70년대생은 42명으로 전체 300명 중 14%를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이 23명으로 가장 많고 국민의힘 16명, 정의당 1명, 국민의당 1명, 시대전환 1명 등이다. 97세대 정치인 중 주목받는 건 민주당 소속 재선의 박용진(49)·박주민(47) 의원과 정의당 김종철(50) 대표 등 3인이다. 20대 국회에서 사립유치원 3법 등을 발의하며 이름을 알린 박용진 의원은 정치권 97세대 중 가장 직접적으로 세대교체론을 언급했다. 박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재벌 대기업들은 이미 세대교체가 이뤄져서 40대가 사장단을 차지했고 이들이 활력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정치가 제일 늦다. 정치권도 빨리 세대교체를 통한 시대교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박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공과 과를 별개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인이 좌우의 논리와 여야의 진영을 넘어서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 공동체의 번영을 도모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박 의원은 민주노동당 출신임에도 보수층 끌어안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세월호 변호사’로 유명세를 타며 20대 국회에 입성한 박주민 의원은 대중적 인지도가 강점으로 서울시장 후보로 꼽힌다. 20대 국회에서 초선임에도 민주당 최고위원 득표 1위를 하면서 위상이 높아진 박주민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하며 체급을 더욱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 발의하는 등 민감한 분야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정의당 김종철 대표는 현역의원을 상대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며 정의당의 세대교체를 이끌 구원투수로 주목된다. 민주당의 2중대가 아닌 정의당만의 길을 가겠다고 강조한 김 대표가 내세운 건 ‘정책’이다. 거대 여야가 언급을 꺼리는 낙태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스타 항공 문제 등에 대해 김 대표가 목소리를 내면서 정의당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아직 세력은 없지만 개인기와 정책으로 무장한 97세대 정치인이 전면에 등장한 데 대해 환영한다는 평가가 있다. 86그룹의 한 의원은 “기득권이 된 운동권 출신들이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흐름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은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동질감으로 뭉친 86그룹과 달리 97세대는 같은 나이라는 공통점 외에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없다는 이야기다. 70년대생 한 의원은 “‘이제는 70년대생이 해볼 차례’라고 말하기에는 왜 70년대생인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피임 부주의 후회하지만… 임신중단은 후회 안 해”

    “피임 부주의 후회하지만… 임신중단은 후회 안 해”

    67 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은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제가 왜 낙태를 하게 됐는지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임신을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중단했을 뿐입니다.” 김영진(35·가명)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김씨는 20대 후반 임신을 한 뒤 약물을 이용한 화학적 임신중단을 선택했다. 그는 “낙태는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고, 이를 경험한 여성이 혼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임신 당시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거부했다. 김씨는 “임신 과정을 ‘해명’하고 싶지 않다.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은 양측의 부주의함 때문이었다”며 “경제적 이유든 당시 상황이든 이를 중단한 건 제 결정일 뿐”이라고 했다. 김씨는 해외 우편으로 자연 유산 유도제인 ‘미프진’을 처방받아 먹었다. 현재 국내에서 이 약은 불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다. 외국 판매 사이트에서 주의 사항과 부작용 등을 꼼꼼히 찾아 읽어봤지만, 고통과 불안함까지 사라지진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양의 피가 뚜껑을 딴 페트병을 엎어 놓은 듯 흘러나왔다. 이 과정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는 “방문 앞에서 제 행실을 비난하는 상대방의 큰 목소리에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속으로는 ‘자기 일이 아니니까 저렇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직접 약물을 복용하며 느낀 경험이나 후기를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싶었지만, 국내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당장 임신중단에 관해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데,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불법적이고 위험한 방식으로 내몰린다”고 지적했다. 특히 임신중단 경험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흔히 낙태라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미숙한 청소년이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저처럼 충분한 정보가 있는 상황에서 고민하고 단호히 결정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물론 김씨도 후회하는 건 있다.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주의한 성관계를 후회하는 것과 임신중단을 후회하는 건 다르다”는 게 그의 말이다. 김씨는 “위험한 데서 자전거를 타다 무릎이 깨졌을 때 다른 사람에게 이를 하소연하듯 고백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로부터 ‘왜 다쳤느냐’며 추궁받을 이유는 없지 않으냐”며 “저는 너무나 멀쩡하고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다. 절대 부끄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연락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낙태죄 개정을 앞두고 임신중절을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적 처벌과 윤리적인 비난 사이에서 남몰래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clean@seoul.co.kr 으로 들려주세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한 여성의 선택은 죄가 아니라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 의원들 꺼리는 사안 ‘국민동의청원’으로 상임위 갔다

    의원들 꺼리는 사안 ‘국민동의청원’으로 상임위 갔다

    낙태죄 폐지, 세월호 참사 대통령기록물 공개,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등 정치권의 예민한 이슈들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줄줄이 국회 상임위원회로 향하고 있다. 의원들이 정면 문제 제기를 꺼리는 사안들을 국민들이 곧장 국회로 보내 버린 셈이다. 국회는 3일 “지난달 5일 공개된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이 국민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성립됐다”며 “소관 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회부됐다”고 밝혔다. 낙태죄를 새로 규정한 정부안에 대해 여성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일부 의원이 전면 폐지 법안을 발의한 이후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날 청원이 소관 상임위 등에 회부된 만큼 국회는 조만간 관련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5일에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과 세월호 참사 관련 대통령기록물 공개 결의 등 2건의 세월호 관련 청원이 상임위로 넘어갔다.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관련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도 이날 현재 9만명이 넘게 참여해 청원 성립이 유력하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는 100명 이상 사전 동의를 거친 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상임위로 넘어가는 제도다. ‘국회청원심사규칙’에 따라 상임위는 청원 관련 입법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 청와대 청원과 비교해 곧장 입법 논의가 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지만 아직은 인지도가 낮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국회사무처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청원 건수가 국회 청원보다 약 99배 많다. 이 의원은 통화에서 “청원을 하면 실제로 제도가 바뀌고 국회가 일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 줘야 한다”고 밝혔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김성호의 종교로 읽는 세상] 한국 천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보수적인가

    [김성호의 종교로 읽는 세상] 한국 천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보수적인가

    “동성애자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참해져선 안 된다. 나는 동성애 커플 보호 장치로서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로마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커플’ 지지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가톨릭의 오랜 가르침과 명백히 모순된다’는 보수 측과 ‘역사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진보 측 입장이 엇갈린다. 전통을 뒤엎는 가톨릭 최고수장의 발언에 전 세계 천주교계가 뒤숭숭하다.가톨릭 근본교리를 허물 발언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중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새 지도부가 출범했다. 6년 임기를 마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뒤를 이어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새 의장주교로 선출됐다.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가 부의장,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서기를 맡아 의장을 보필하며 한국 천주교를 이끌게 됐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로마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황청의 사목과 행정 지침을 한국 교회에 전달·집행하고 한국 천주교의 사목·신행 방향을 결정짓는, 한국 천주교 최고의 의사 결정기구라 할 수 있다.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은 그대로 한국 천주교회의 실천과 실행으로 이어지는 게 관행이다. 그런 만큼 한국 천주교계는 새 수장을 맞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전 김희중 의장 체제와 사뭇 다른 지도부 성향 때문이다. 윤리 전공인 이용훈 주교는 천주교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교회일치에 치중하며 개혁적 행보를 이어 온 전 의장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실제로 주교회의는 새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방향성을 둘러싼 ‘소리 없는 고민’이 읽히는 대목이다.지난달 16일 서울 중곡동 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있었던 신임 의장단 기자회견은 한국 천주교계의 새로운 행보를 확실하게 예시한 자리였다. 회견에서 주된 관심사는 단연 최근 큰 이슈인 ‘낙태죄 폐지’였다. 이 주교를 비롯한 의장단은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생명수호와 낙태반대’라는 변함없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반발해 “여성 입장을 이해해 달라”며 집단운동에 나선 천주교 여성 평신도들의 항의에 대해선 “교회 안에서 잘 가르치지 못한 탓으로, 책임을 느낀다”며 “생명수호와 낙태반대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준비하겠다”고 했다. ‘낙태 절대반대’ 말고도 새 지도부는 생태 환경 보호 등 전통과 윤리의 중시와 집행에 집중했다. 그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 더욱 주목된다. 보수성 짙은 우리 천주교 새 지도부의 출범 시점에 터져 나온 교황의 메가톤급 개혁 발언이 한국 천주교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세계 천주교 수장은 이제 동성애를 인정하자는데 한국 천주교 새 지도부는 낙태죄를 한발짝도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물론 낙태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앨프리드 슈에레브 주한 교황대사는 지난달 정부가 조건부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낙태 합법화 추진에 대한 가톨릭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천주교계가 목숨처럼 지켜 허물 수 없다던 그 천부의 영역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동성애 커플을 지지한다는 교황의 폭탄 선언 말이다. 이성 간 결합만 인정하던 전통을 허물고 ‘더불어 살아가자’는 현실의 ‘생명 존중’ 요구에 눈과 귀를 트고 있는 것이다. 교황의 ‘동성애 지지’에 한국 천주교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교회의 교리만 고집할 게 아니라 세상 속 사람들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목소리가 확산되면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향한 종교계 연대 움직임도 일고 있는 판국이다.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 땅을 밟자마자 가장 먼저 ‘순교자의 땅’이라며 땅바닥에 입을 맞췄다. 1만명에서 많게는 2만명의 순교자를 냈다는 그 한국천주교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평신도다. 이제 그 뿌리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kimus@seoul.co.kr
  • 교황은 ‘동성애 커플 지지’… 보수 성향 한국천주교 대응은

    교황은 ‘동성애 커플 지지’… 보수 성향 한국천주교 대응은

    “동성애자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참해져선 안 된다. 나는 동성애 커플 보호 장치로서 시민결합법을 지지한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로마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커플’ 지지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가톨릭의 오랜 가르침과 명백히 모순된다’는 보수 측과 ‘역사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진보 측 입장이 엇갈린다. 전통을 뒤엎는 가톨릭 최고수장의 발언에 전 세계 천주교계가 뒤숭숭하다. 보수 성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출범첫 회견서 ‘생명수호와 낙태반대’ 강조 가톨릭 근본교리를 허물 발언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중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새 지도부가 출범했다. 6년 임기를 마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뒤를 이어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새 의장주교로 선출됐다.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가 부의장,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서기를 맡아 의장을 보필하며 한국 천주교를 이끌게 됐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로마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황청의 사목과 행정 지침을 한국 교회에 전달·집행하고 한국 천주교의 사목·신행 방향을 결정짓는, 한국 천주교 최고의 의사 결정기구라 할 수 있다.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은 그대로 한국 천주교회의 실천과 실행으로 이어지는 게 관행이다. 그런 만큼 한국 천주교계는 새 수장을 맞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전 김희중 의장 체제와 사뭇 다른 지도부 성향 때문이다. 윤리 전공인 이용훈 주교는 천주교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교회일치에 치중하며 개혁적 행보를 이어 온 전 의장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실제로 주교회의는 새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방향성을 둘러싼 ‘소리 없는 고민’이 읽히는 대목이다. 지난달 16일 서울 중곡동 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있었던 신임 의장단 기자회견은 한국 천주교계의 새로운 행보를 확실하게 예시한 자리였다. 회견에서 주된 관심사는 단연 최근 큰 이슈인 ‘낙태죄 폐지’였다. 이 주교를 비롯한 의장단은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생명수호와 낙태반대’라는 변함없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반발해 “여성 입장을 이해해 달라”며 집단운동에 나선 천주교 여성 평신도들의 항의에 대해선 “교회 안에서 잘 가르치지 못한 탓으로, 책임을 느낀다”며 “생명수호와 낙태반대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준비하겠다”고 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 커플 지지”변화·균열 앞에 한국천주교 대응 주목 ‘낙태 절대반대’ 말고도 새 지도부는 생태 환경 보호 등 전통과 윤리의 중시와 집행에 집중했다. 그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 더욱 주목된다. 보수성 짙은 우리 천주교 새 지도부의 출범 시점에 터져 나온 교황의 메가톤급 개혁 발언이 한국 천주교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세계 천주교 수장은 이제 동성애를 인정하자는데 한국 천주교 새 지도부는 낙태죄를 한발짝도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물론 낙태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앨프리드 슈에레브 주한 교황대사는 지난달 정부가 조건부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낙태 합법화 추진에 대한 가톨릭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천주교계가 목숨처럼 지켜 허물 수 없다던 그 천부의 영역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동성애 커플을 지지한다는 교황의 폭탄 선언 말이다. 이성 간 결합만 인정하던 전통을 허물고 ‘더불어 살아가자’는 현실의 ‘생명 존중’ 요구에 눈과 귀를 트고 있는 것이다. 교황의 ‘동성애 지지’에 한국 천주교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교회의 교리만 고집할 게 아니라 세상 속 사람들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목소리가 확산되면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향한 종교계 연대 움직임도 일고 있는 판국이다.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 땅을 밟자마자 가장 먼저 ‘순교자의 땅’이라며 땅바닥에 입을 맞췄다. 1만명에서 많게는 2만명의 순교자를 냈다는 그 한국천주교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평신도다. 이제 그 뿌리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문소영 칼럼] “말려지지 않는 사람들”

    [문소영 칼럼] “말려지지 않는 사람들”

    TV프로그램 중 ‘나는 자연인이다’가 있다. 홀로 사는 늙은 남자가 주인공이다. 산과 들에서 채집하고, 화전을 일구거나, 낚시로 물고기를 잡고 닭을 쳐서 단백질도 공급한다. 늙은 남자가 홀로 요리하고 청소하는 모습은 궁상스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고 수도관도 없으니 정부로부터의 간섭에서도 자유롭다. 사실 남성들의 판타지에 가깝지만, ‘자연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 다수의 남성들이 본방을 사수하며 ‘나도 언젠가는 자유롭게!’와 같은 꿈을 꾼다. 그러나 잠시 돌아보면 세상을 등진 그 자연인에게 돌봐야 할 아내나 가족들은 없는 것일까, 의심이 생기지 않는가. 평소 저리 바지런히 일하고 협력한다면 항상 환영받고 사랑받았을 텐데 싶기도 하다. 또 남의 땅이나 국유지에서 탈법에 가까운 채집 활동이나 화전을 일군 것은 아닌가 싶어서 걱정도 되고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이 자유인인 ‘늙은 남자’들의 심정을 이해하려다가도 괘씸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자본주의에서 돈 벌고 가족을 부양하는 고통이 남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진대, ‘그림자 노동’인 집안일과 돌봄 노동, 육아 등으로 온종일 시달리는 여자의 입장, 특히 늙은 여자들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자연인에는 여자 주인공이 출현하지 않나’ 하는 의문도 생기지 않는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배우자가 외교부의 해외여행 자제 요청에도 요트를 사러 미국행을 감행했다는 보도를 보고, 정부 차원의 큰 악재가 터졌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한이틀 시끌시끌하더니만, 강 장관이 국회에서 “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뒤로, 강 장관의 ‘남편 리스크’는 싹 사라져 버렸다. 젊은 세대는 논란거리라고 평가했지만, 50대 이후 남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더는 왈가불가하지 않았다. 여러 경로로 만난 50대 이상 남자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니 아내의 만류에도 거침없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인으로 사는 남편에 대한 부러움도 있었고, ‘마누라가 장관이더라도 무슨 상관이냐’는 반발도 깔려 있었다. 평소 진영에 따라 홍해가 갈라지듯이 입장이 갈리던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해서는 너그럽기 짝이 없었다. “남자는 늙어도 철이 없어서…” 하면서 쓱 넘어가는 것이었다. 만약 정부의 정책을 거스르는 일을 장관의 아내가 했더라면 한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하루이틀 만에 사건이 가라앉지도 않을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주장은 일부종사를 강요받는 아내의 미덕일 뿐, 남편의 자유로운 영혼은 늘 존중받고 추앙받는 세상인 것인가. 그러고 보면 한국 사회는 여성들에게 진정 가혹했다. 고위직도 다르지 않다. 김영삼 정부에서 황산성 환경처 장관은 국회 답변 과정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진이 1면에 보도되면서 건방지다는 비난에 시달리다가 10개월 만에 교체된 일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장상 국무총리 지명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시어른들이 해서 본인은 모른다고 답변했다가, 자신의 잘못을 감히 시어른들에게 떠민다는 괘씸죄에 걸려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 강금실 법무장관은 자신의 지휘를 받기를 거부하던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이 문제가 돼 초대 여성 법무장관직에서 1년 5개월 만에 물러나야만 했다. 출세한 여성들도 이럴진대, 나머지 한국 여성들의 삶은 ‘지옥에서 사는 사계절’ 같기도 하다. 남자친구가 동영상을 유출하려고 해 무릎 꿇고 빌었던 구하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노브라를 탓하며 혐오 댓글을 배설하는 누리꾼에 시달리던 설리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한국 남성들은 자기 몫의 역할은 하지 않은 채 사랑과 관심이라고 포장해, 여성의 몸과 자기선택권에 대한 간섭질을 멈추지 않는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폐지를 선언한 낙태죄를 그 취지를 살리지 않고 정부가 되살리는 입법안을 내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부당한 일이다. 태중의 생명권이 소중하다면서, ‘태아의 아빠’조차 돌보지 않아 홀로 책임을 안은 여성의 고단한 삶에 대해서는 왜 이해가 부족한 것인가.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여성을 위해 배우자와 연인의 외조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유인을 빙자해 그녀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여성의 판단과 결정권은 모든 영역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여성도 ‘말린다고 해도 말려지지 않는 사람들’로 거듭나야 한다. symun@seoul.co.kr
  • 낙태는 모든 여성의 문제…“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

    낙태는 모든 여성의 문제…“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

    [#나는낙태했다-모두가 알지만 하지 않은 이야기]<5> 삶을 송두리째 바꾼 신중한 선택 67 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은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민서영(가명·40)씨는 14년 전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미역국을 끓여줬던 남자친구는 지금의 남편이 됐다. 민씨 부부 사이에 아이는 없다. 그날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도 민씨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26살 때 6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피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주가 지나자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테스트기로 확인해보니 두 줄(임신 양성 반응)이 떴다. 임신과 결혼 생각이 없던 민씨는 남자친구와 상의 후 아이를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수술비용은 남자친구가 마련하고, 병원은 민씨가 알아봤다. 여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 낯선 지역을 헤맸던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다. 수술 후 몸조리는 사치였다. 민씨는 “낙태도 출산과 마찬가지로 요양이 필요한데 그런 서비스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돈이 없던 민씨 커플은 적당한 레지던스를 빌려 몸을 추스려야 했다. 민씨가 낙태를 고민했을 무렵 미혼인 직장 동료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남자친구와 결혼 계획이 있던 동료는 임신 사실을 공개하고 직장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얼마 후 그 동료가 자연유산으로 태아를 잃자 따뜻한 위로가 쏟아졌다. 임신도 낙태도 숨겨야 했던 민씨의 사정과 너무 달랐다. 떠나보낸 아이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던 민씨는 4년 전 절을 찾아가 아기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임신과 낙태를 겪으면서 민씨는 임신 자체가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임신 초기부터 호르몬 변화 등 많은 증상이 나타났다. 민씨는 “밤에 잠을 자는데도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임신과 출산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점이 큰 무게로 느껴져 낙태를 더욱 신중하게 결정했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민씨의 낙태 사실을 모른다. 동성 친구들의 위로와 공감이 큰 힘이 됐다. 민씨는 “임신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낙태를 해본 여성도, 하지 않은 여성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낙태는 여성의 몸을 넘어 생애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험”이라면서 “처벌로써 낙태를 통제하려는 제도를 다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연락 부탁드립니다서울신문은 낙태죄 개정을 앞두고 임신중절을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적 처벌과 윤리적인 비난 사이에서 남몰래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clean@seoul.co.kr 으로 들려주세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한 여성의 선택은 죄가 아니라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 수술 한 달 후 낙태죄 헌법불합치… “죄 아니었구나” 눈물 펑펑

    수술 한 달 후 낙태죄 헌법불합치… “죄 아니었구나” 눈물 펑펑

    ‘김▲▲, 6, X, X.’ 지난해 3월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누운 정현주(25·가명)씨의 눈에 환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명단이 들어왔다. 정씨처럼 낙태를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성들이었다. 숫자는 임신 주 수를, 뒤에 적힌 O·X 표시는 돈이 들어가는 영양제 수액과 자궁 유착방지제 사용 여부를 뜻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두 가지 약제를 모두 쓰겠다고 한 사람은 정씨 한 명뿐이었다. 정씨는 “나도 수술을 받아 마음이 아프지만, 이름 뒤 X가 표시된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씁쓸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던 중 갑작스레 임신이 됐다. 항우울제를 처방해 준 의사는 “(해당 약의) 동물 실험 결과에서는 기형아 출산이 확인됐지만 사람은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고 했다. 현행법상 장애가 있어도 낙태는 불법이라는 말도 했다. 정씨의 마음은 수없이 바뀌었다. 그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덧 임신 9주차가 됐다. 사회초년생이었던 정씨는 만약 아픈 아이가 태어난다면 무사히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뒤늦게 임신중절을 결심하고 찾아간 병원은 정씨의 고민에 무관심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나요. 9주면 비용이 180만원입니다.” 임신 주 수에 따른 비용, 정씨의 몸은 그들에겐 숫자와 비용에 불과했다. 수술 부작용에 대해 메모하고 싶었지만 의사 설명을 듣는 동안 필기는 금지됐다. 병원은 약과 수술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비밀 유지 각서와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류만 두어 장 내밀었다. 정씨가 5만원, 10만원, 20만원짜리 영양제의 차이를 물었지만 “비싼 게 성분이 더 좋아요”라는 무성의한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정씨는 수술 후 악몽에 시달렸다. 차가운 수술대에 눕는 꿈을 계속해서 꿨다. 자신이 항우울제를 먹는 바람에 모든 일이 일어난 것 같아 한동안 정신과도 가지 못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정씨는 그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판결이 난 후 수술을 했다면 고민을 덜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부터 ‘내 행동이 죄가 아니구나’란 안도감과 홀가분한 감정도 들었다. 정씨는 병원에서 본 어린 여성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러 온 아이를 보면서 ‘몸에 좋지도 않은 수술인데…,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는데…’ 계속 걱정이 됐다. 정씨는 “지금은 수술해도 보호 수단이 전혀 없다”면서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합법적인 의료 시스템 안에서 수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수술 한 달 후 낙태죄 헌법불합치…“눈물만 계속 흘렀습니다”

    수술 한 달 후 낙태죄 헌법불합치…“눈물만 계속 흘렀습니다”

    [#나는낙태했다-모두가 알지만 하지 않은 이야기] <4> 수술 명단에 적힌 수많은 이름들 67 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은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김▲▲, 6, X, X’ 지난해 3월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누운 정현주(가명·25)씨의 눈에 환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수술 명단이 들어왔다. 숫자는 임신 주수를, 뒤에 적힌 O·X 표시는 영양제 수액과 자궁유착방지제 사용 여부를 의미한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O, O’라고 표시된 사람은 정씨 한 명뿐이었다. 정씨는 “나도 수술을 받아 마음이 아프지만, 이름 뒤 X가 표시된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씁쓸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던 중 갑작스레 임신이 됐다. 평소 피임을 열심히 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정씨의 항우울제를 처방해준 의사는 “(해당 약의) 동물 실험 결과에서는 기형아 출산이 확인됐지만 사람은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고 했다. 현행법상 장애가 있어도 낙태는 불법이라는 말도 들었다.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임신중절 수술을 하거나 아이의 장애 가능성을 감안하고 낳거나. 정씨의 마음은 수없이 바뀌었다. 그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덧 임신 9주차가 됐다. 아직 사회초년생이었던 정씨는 만약 아픈 아이가 태어난다면 무사히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뒤늦게 임신중절을 결심하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정씨의 고민에 무관심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나요. 9주면 비용이 180만 원입니다.” 몇 주에 비용이 얼마다. 정씨의 몸은 ‘숫자’로 치환됐다. 병원은 간단한 메모조차 불가능한 곳이었다. 수술 부작용에 대해 메모하고 싶었지만, 설명을 듣는 동안 필기는 금지됐다. 몸에 쓰이는 약이 무엇인지, 처방받은 항생제는 어떤 것인지, 영양제는 어떤 종류인지 병원은 그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병원은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채 비밀 유지 각서와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류만 두어 장 내밀었다. 정씨가 5만 원, 10만 원, 20만 원짜리 영양제의 차이를 물었지만 “비싼게 성분이 더 좋아요”라는 무성의한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정씨는 수술 후 악몽에 시달렸다. 차가운 수술대에 눕는 꿈을 계속해서 꿨다. 자신이 항우울제를 먹는 바람에 모든 일이 일어난 것 같아 한동안 정신과도 가지 못했다. 정씨의 마음 한 켠에는 아기의 마지막 초음파 사진을 받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았다. 병원 측은 초음파 사진에 병원 이름과 날짜가 찍혀있단 이유로 사진 제공을 거부했다. 정씨가 “병원과 날짜가 적힌 부분만 자르고 가져가겠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날의 일은 정씨의 기억 속에만 남고, 세상에 없었던 일이 됐다. 수술 한 달이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정씨는 그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판결이 난 후 수술을 했다면 고민을 덜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부터 ‘내 행동이 죄가 아니구나’란 안도감과 홀가분한 기분도 들었다. 정씨는 아직도 수술했던 병원에서 본 어린 여성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수술을 받으러 온 아이를 보면서 ‘몸에 좋지도 않은 수술인데…,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는데…’ 계속 걱정이 됐다.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형편없는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속상했다. 정씨는 “지금은 수술을 해도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면서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합법적인 의료 시스템 안에서 수술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연락 부탁드립니다서울신문은 낙태죄 개정을 앞두고 임신중절을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적 처벌과 윤리적인 비난 사이에서 남몰래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clean@seoul.co.kr 으로 들려주세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한 여성의 선택은 죄가 아니라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 상대에게 임신했다고 하자 “넌 낙태 경험 늦은 편이네”

    상대에게 임신했다고 하자 “넌 낙태 경험 늦은 편이네”

    “전 여친들 몇번 했는데 별거 아니래”남자는 ‘실수’… 여자는 ‘관리 못한 탓’달력엔 늘 수술 날짜 ‘잊지 않기’ 표시 “너는 낙태 처음이야? 전 여자친구들이 몇 번 했는데, 별거 아니래.” 10년 전, 최수진(가명·35)씨가 임신 테스트기에서 빨간 두 줄을 확인했을 때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오랜 친구였던 남성과의 ‘썸’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최씨는 “예기치 못한 임신 자체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임신중절 여성을 바라보는 주위의 남성중심적인 인식이 더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상대방은 책임을 회피하며 오히려 최씨에게 수술이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최씨는 “임신 이후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내게 ‘낙태 경험이 늦은 편’이라는 황당한 말을 했다”며 “깊게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너무 큰 상처였다”고 돌아봤다.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당연히 부모님에겐 말할 수 없었다. 최씨가 임신하기 몇 달 전, 공교롭게 친오빠의 여자친구가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최씨는 그때 엄마가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최씨는 “둘이 같이한 건데 엄마가 오빠에겐 ‘남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고, 여자 쪽이 ‘몸 관리를 못 했다’고 탓하더라”면서 “같은 자식인데도 아들한테는 ‘실수’라고 하고, 딸인 나에게는 ‘네 잘못’이라고 할 것 같아 무서웠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법’의 경험은 신체 변화로 제일 먼저 나타났다. 최씨는 당시 직장에 수술 날 딱 하루 휴가를 썼다. 수술이 여성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출산과 비슷한 수준인 데도 산후조리는 꿈도 못 꿨다. 수술이 끝난 뒤, 갈 곳이 없어 상대방과 함께 모텔을 찾았을 때 그는 하혈하는 최씨에게 또 성관계를 요구했다. 다음날엔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해야 했다. 수술 이후 제대로 된 처치나 진료를 받지 못하자 두 달 만에 몸무게가 10㎏이 빠졌다. 아직도 수술 경험은 트라우마다. 그는 “수술대에 누워 있는데 너무 울어서 형광등 불빛이 계속 뿌옇게 보였던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며 “임신에 대한 책임은 남녀 둘 다 져야 하는데 왜 여자만 모든 죄책감과 처벌을 짊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술 날짜는 매년 ‘잊지 않기’라는 글과 함께 달력에 적어놓는다. 혼자만 아는 일이지만, 잠시나마 배 속에 있었던 아기를 잊지 말자는 생각에서다. 그는 현재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며 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인권 운동을 하고 있다. 단체에서 여성폭력 등을 배우면서 임신중절이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란 걸 서서히 깨달았다. 그는 “낙태죄는 여성의 몸을 국가가 법으로 통치하겠다는 뜻”이라며 “임신의 모든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만 지우는 부당한 구조와 잘못된 시선이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임신은 둘이 했는데…왜 책임은 여자만 지나요

    임신은 둘이 했는데…왜 책임은 여자만 지나요

    67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은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너는 낙태 처음이야? 내 전여친들이 몇 번 했는데, 별거 아니래.” 10년 전, 최수진(가명·35)씨가 임신테스트기에서 빨간 두줄을 확인했을 때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오랜 친구였던 남성과의 ‘썸’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최씨는 “처음부터 상대방은 콘돔을 거부하는 등 피임에도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예상치 못한 임신 자체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임신중절 여성을 바라보는 주위의 남성중심적인 인식이 더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남자, 가족, 병원…누구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책임을 회피하며 오히려 최씨에게 수술이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최씨는 “임신 이후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내게 ‘낙태 경험이 늦은 편’이라는 황당한 말을 했다”며 “깊게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너무 큰 상처였다”고 돌아봤다. 그런데도 병원에선 수술을 원하면 상대방을 데려오라고 했다. 진료 과정에서는 ‘왜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며 타박했다. 수치심과 모멸감이 들었다.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당연히 부모님에겐 말할 수 없었다. 최씨가 임신하기 몇 달 전, 공교롭게 친오빠의 여자친구가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최씨는 그때 엄마가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최씨는 “둘이 같이 한 건데 엄마가 오빠에겐 ‘남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고, 여자 쪽이 ‘몸 관리를 못했다’고 탓하더라”면서 “같은 자식인데도 아들한테는 ‘실수’라고 하고, 딸인 나에게는 ‘네 잘못’이라고 할 것 같아 무서웠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갑에 넣어뒀던 ‘수술 후 주의사항 안내문’을 우연히 엄마에게 들키자 끝까지 친구 거라고 잡아뗐다. 대충 눈치는 챘을 것 같지만, 도저히 스스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법’의 경험은 신체 변화로 제일 먼저 나타났다. 최씨는 수술 당시 직장에 딱 하루 휴가를 썼다. 수술이 여성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출산과 비슷한 수준인데도 산후조리는 꿈도 못 꿨다. 수술이 끝난 뒤, 갈 곳이 없어 상대방과 함께 모텔을 찾았을 때 그는 하혈하는 최씨에게 또 성관계를 요구했다. 다음날엔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해야 했다. 수술 이후 제대로 된 처치나 진료를 받지 못하자 두달 만에 몸무게가 10㎏이 빠졌다. 수술 아픔 남았지만 “여성폭력 반대” 인권운동 앞장 아직도 수술 경험은 트라우마다. 그는 “수술대에 누워있는데 너무 울어서 형광등 불빛이 계속 뿌옇게 보였던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며 “임신에 대한 책임은 남녀 둘다 져야 하는데 왜 여자만 모든 죄책감과 처벌을 짊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술 날짜는 매년 ‘잊지 않기’라는 글과 함께 달력에 적어놓는다. 혼자만 아는 일이지만, 잠시나마 뱃속에 있었던 아기를 잊지 말자는 생각에서다. 그는 현재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며 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인권 운동을 하고 있다. 단체에서 여성폭력 등을 배우면서 임신중절이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란 걸 서서히 깨달았다. 그는 “낙태죄는 여성의 몸을 국가가 법으로 통치하겠다는 뜻”이라며 “임신의 모든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만 지우는 부당한 구조와 잘못된 시선이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연락 부탁드립니다서울신문은 낙태죄 개정을 앞두고 임신중절을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적 처벌과 윤리적인 비난 사이에서 남몰래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clean@seoul.co.kr 으로 들려주세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한 여성의 선택은 죄가 아니라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 김종철 “사기 피의자 말에 아전인수 말고 정책경쟁하자”

    김종철 “사기 피의자 말에 아전인수 말고 정책경쟁하자”

    김종철 신임 대표 체제 출범 이후 ‘금기’를 깨고 있는 정의당이 21일 창당 8주년을 맞이했다. 김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거대 양당이 산업재해와 과로사, 낙태죄를 앞에 두고 정쟁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본자산제, 전국민고용 및 소득보험 등 과감한 진보정책과 ‘진보진영의 금기’인 연금 통합, 행정구역 통합 이슈를 제시하며 여야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가 정책 경쟁을 통해 정체된 지지율을 극복하고 거대 양당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희대의 사기 피의자(‘라임 사태’의 핵심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가 오늘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양대 정당이 아전인수와 내로남불을 부끄러움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면서 “정쟁을 그만두고 보통 사람들을 위한 다른 토론을 하자. 정책 경쟁을 하자”고 강조했다. 과제도 분명히 밝혔다. 김 대표는 “내년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1년 후에 대통령 선거, 3개월 후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며 “단단한 정의당을 만들어 거대한 도전을 반드시 승리로 만들어 내자”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으면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협조,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에 대한 비판 의견 등을 전달하며 정책행보를 이어갔다.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으로 출발해 이듬해 당명을 바꾼 정의당은 원내정당 중 가장 오래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정책경쟁 내세우며 8주년 맞은 정의당… ‘금기 깨는 중’

    정책경쟁 내세우며 8주년 맞은 정의당… ‘금기 깨는 중’

    과감한 정책과 금기 깨는 정책 앞세워‘정책경쟁’ 연일 강조하는 김종철김종철 신임 대표 체제 출범 이후 ‘금기’를 깨고 있는 정의당이 21일 창당 8주년을 맞이했다. 김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거대 양당이 산업재해와 과로사, 낙태죄를 앞에 두고 정쟁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본자산제, 전국민고용보험·소득보험 등 과감한 진보정책과 ‘진보진영의 금기’인 연금 통합, 행정구역 통합 이슈를 제시하며 여야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가 정책 경쟁을 통해 정체된 지지율을 극복하고 거대 양당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희대의 사기 피의자(‘라임 사태’의 핵심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가 오늘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양대 정당이 아전인수와 내로남불을 부끄러움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면서 “내로남불, 아전인수 정쟁을 그만두고 보통 사람들을 위한 다른 토론을 하자. 정책 경쟁을 하자”고 강조했다. 과제도 분명히 밝혔다. 김 대표는 “내년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1년 후에 대통령 선거, 3개월 후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며 “단단한 정의당을 만들어 거대한 도전을 반드시 승리로 만들어 내자”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기념사에서 진보정당의 주춧돌을 놓고 세상을 떠난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오재영 정의당 원내대표 정무수석, 노회찬 정의당 전 원내대표 등을 언급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했던 이들의 역사가 정의당 8주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의미다. 기념식에는 심상정, 이정미, 김세균 전 대표도 함께했다.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으로 출발해 이듬해 당명을 바꾼 정의당은 원내정당 중 가장 오래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내 선택입니다”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내 선택입니다”

    67 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은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 프리랜서 작가 박유진(가명·23)씨에게 원래 낙태란 ‘죄’였다. 학교에서는 성교육 시간에 여학생만 음악실에 모아놓고 자극적인 낙태 동영상을 보여줬다. 길거리에선 자주 ‘낙태는 살인’이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시위를 했다. “내 몸은 내가 조심해야지”라고 생각하던 그가 바뀐 건 실제 자신이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고나서다. 5년 전, 생리가 늦어지자 불안한 마음에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임신 4주 진단을 받았다. 우리 나이로 19살, 미성년자인 그에게 닥친 인생 최대 위기였다. 나이도 어린데다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반면 평소 ‘낙태는 여성의 선택’이라던 당시 남자친구는 “네 결정에 따르겠다”면서도 함께 병원을 알아보거나, 수술 비용을 보태지 않았다. 집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던 그는 한 달 월급에 가까운 수술비를 홀로 부담해야 했다. 병원은 미성년자에겐 낙태 수술을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보호자나 파트너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씨는 유일하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은 두 살 많은 성인 친구의 신분증을 빌려서 겨우 수술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술 절차나 후유증에 대한 병원 측의 자세한 안내는 없었다. ‘불법 수술이라서 도중에 잘못되면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게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수술은 5분 만에 끝났다. 수술 후 1년은 ‘나를 미워하는 시간’이었다.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두렵고 무서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수술 후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지만, 낙태했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상세한 진찰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약만 겨우 받아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죽은 듯이 살았지만, 언제까지 이 경험을 가슴속에만 담아 둘 순 없었다. 박씨는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친구 한명에게 낙태 사실을 얘기했는데, 우려와 달리 친구가 지지를 많이 해줬다”며 “이후 용기를 내고 내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한번 시작한 이야기는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그는 현재 수술 경험을 담은 책을 만들고 있다. 낙태는 숨겨야 할 일도, 잘못도 아니라는 걸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그는 “어렸을 때는 낙태가 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서 “직접 부당함을 경험하면서 나를 힘들게 한 건 잘못된 제도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한때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오히려 지난 경험 덕분에 더 좋은 연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것도 변화다. 박씨는 “언젠가는 아이를 갖고 싶다”면서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선택의 영역이다. 낙태죄가 완전히 폐지되고 내 몸에 대한 권리가 보장될 때 임신·출산도 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연락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낙태죄 개정을 앞두고 임신중절을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적 처벌과 윤리적인 비난 사이에서 남몰래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clean@seoul.co.kr 으로 들려주세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한 여성의 선택은 죄가 아니라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 “그날 이후 나를 미워했지만… 아이 낳고, 안 낳고는 내 선택”

    “그날 이후 나를 미워했지만… 아이 낳고, 안 낳고는 내 선택”

    프리랜서 작가 박유진(가명·23)씨는 5년 전 생리가 늦어지자 불안한 마음에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임신 4주 진단을 받았다. 우리 나이로 19살, 미성년자인 그에게 닥친 인생 최대 위기였다. 낙태를 살인죄라고 생각했지만 박씨는 임신중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태는 여성의 선택’이라던 당시 남자친구는 “네 결정에 따르겠다”면서도 수술 비용을 보태지는 않았다. 집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던 그는 한 달 월급에 가까운 수술비를 홀로 부담해야 했다. ●19세 때 중절… 상대 남성 동의 있어야 겨우 수술 병원은 미성년자에겐 낙태 수술을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보호자나 파트너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씨는 유일하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은 두 살 많은 성인 친구의 신분증을 빌려서 겨우 수술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술 절차나 후유증에 대한 병원 측의 자세한 안내는 없었다. ‘불법 수술이라서 도중에 잘못되면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게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수술은 5분 만에 끝났다. 박씨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뒤 1년은 ‘나를 미워하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불법행위를 했다는 죄책감이 커 친구들에게 쉽사리 낙태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경험을 가슴속에만 담아 둘 순 없었다. 수술 1년 후 임신중절 사실을 밝히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한 이야기는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그는 현재 수술 경험을 담은 책을 만들고 있다. 낙태는 숨겨야 할 일도, 잘못도 아니라는 걸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그는 “학교 때 받은 성교육이나, 길거리에서 ‘낙태는 죄’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고 낙태는 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서 “직접 부당함을 경험하면서 나를 힘들게 한 건 잘못된 제도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숨길 일도 잘못한 일도 아니란 걸 깨달아 한때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오히려 지난 경험 덕분에 더 좋은 연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것도 변화다. 박씨는 “언젠가는 아이를 갖고 싶다”면서 “아이를 낳는 것도, 낳지 않는 것도 선택의 영역이다. 낙태죄가 완전히 폐지되고 내 몸에 대한 권리가 보장될 때 임신·출산도 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세상 밖 나오지 못하고… ‘미안해 아가야’, 매년 2월 그날이면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세상 밖 나오지 못하고… ‘미안해 아가야’, 매년 2월 그날이면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67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을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 직장인 이현지(37·가명)씨의 휴대전화 달력은 매년 2월 11일 알람을 울어 댄다. ‘미안해 아가야’ 여섯 글자가 무지근한 그날의 고통을 상기시킨다. 9년 전 이씨는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씨는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는 순간 “지구 종말이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원래 피임을 철저히 하는데 딱 하루 제대로 못 했고, 너무 순식간이라 임신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임신 사실만으로 이미 공황 상태였는데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건 더 힘들었다. 이씨는 “동네 산부인과를 일일이 돌며 물어봤는데, 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겨우 찾은 병원에서도 의사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수술 과정과 후유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대신 “어떻게 5주차까지 임신 사실을 모를 수 있느냐”며 이씨를 혼냈다. “젊은 사람이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말도 따라 나왔다. ●“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 ” 수술의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의사는 전신마취 대신 부분마취를 택했다. 이씨는 수술기구가 몸속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모습과 소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수술이 끝나자 의사는 몸에서 꺼낸 덩어리까지 보여 줬다. 이씨가 휴대전화 알람으로 매년 떠난 생명을 기억하는 것은 당시의 죄책감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씨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놀랐겠지만 솔직히 나도 충격이 커. 나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 혼자 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씨는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그의 어머니는 이씨의 동생을 가졌을 때 낙태를 고민했다. 터울이 너무 크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독교 집안인 탓에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이씨는 “원래 엄마랑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다. 돌아가실 때도 큰 감정의 동요가 없었는데 수술하고 나니 저절로 떠오르더라”면서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내 편이 돼 줬을까 하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임신중절도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봐줬으면 ” 남자친구나 당시 룸메이트 외에 이씨가 자신의 낙태 경험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이 무서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는데, 정부가 내놓은 입법예고안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이씨는 “임신중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거다. 그래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낙태도 불법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미안해’ 9년 전 지운 아기, 아직도 죄책감 시달립니다

    ‘미안해’ 9년 전 지운 아기, 아직도 죄책감 시달립니다

    67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은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직장인 이현지(37·가명)씨의 휴대전화 달력은 매년 2월 11일 알람을 울어댄다. ‘미안해 아가야’ 여섯 글자가 무지근한 그날의 고통을 상기시킨다. 9년 전 이씨는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씨는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는 순간 “지구 종말이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원래 피임을 철저히 하는데 딱 하루 제대로 못 했고, 너무 순식간이라 임신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임신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몸살과 함께 찾아왔다. 몸이 건강한 편이었는데도 그날 이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은 메슥거리고, 온몸이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 처음엔 야근이 잦아 그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게 임신 초기 증세였다. 임신 사실만으로 이미 공황 상태였는데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건 더 힘들었다. 이씨는 “동네 산부인과를 일일이 돌면서 물어봤는데, 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겨우 찾은 병원에서도 의사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수술 과정과 후유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대신 “어떻게 5주차까지 임신 사실을 모를 수 있느냐”며 이씨를 혼냈다. “젊은 사람이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말도 따라나왔다. 수술의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의사는 전신마취 대신 부분마취를 택했다. 이씨는 수술기구가 몸속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모습과 소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수술이 끝나자 의사는 몸에서 꺼낸 덩어리까지 보여줬다.이씨가 휴대전화 알람으로 매년 떠난 생명을 기억하는 것은 당시의 죄책감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씨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놀랐겠지만 솔직히 나도 충격이 커. 나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 혼자 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씨는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그의 어머니는 이씨의 동생을 가졌을 때 낙태를 고민했다. 터울이 너무 크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독교 집안인 탓에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이씨는 “원래 엄마랑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다. 돌아가실 때도 큰 감정의 동요가 없었는데 수술하고 나니 저절로 떠오르더라”면서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내 편이 돼 줬을까 하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나 당시 룸메이트 외에 이씨가 자신의 낙태 경험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이 무서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는데, 정부가 내놓은 입법예고안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7일 현행 낙태죄를 유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만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내용의 입법예고안을 내놨다. 이씨는 “임신중절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거다. 그래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통증도 부채감도 여성만의 몫인데, 법으로까지 처벌하는 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아예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도 의미 있는 선택”이라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낙태도 불법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연락 부탁드립니다서울신문은 낙태죄 개정을 앞두고 임신중절을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적 처벌과 윤리적인 비난 사이에서 남몰래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clean@seoul.co.kr 으로 들려주세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한 여성의 선택은 죄가 아니라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 낙태죄 개정, 여성 본인 의사 존중돼야

    낙태죄 개정, 여성 본인 의사 존중돼야

    낙태죄 개정 논란과 관련해 무엇보다 임신한 여성 본인의 의사를 보장하고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전윤정 입법조사관(사회학 박사)은 지난 15일 발행한 ‘낙태죄 개정의 쟁점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임신한 여성의 시각에서 성(性)과 재생산권리 보장,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의료제도의 구축, 사회정책과 서비스 제공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7일 낙태죄와 관련한 입법개선 절차에 착수했다며 개정안을 공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 낙태죄를 유지하되 의사에 의한 임신 14주 이내의 낙태는 처벌하지 않고 성범죄 등의 사유에 따라 임신 24주까지는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낙태죄 개정과 관련한 검토와 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전 조사관은 “여성계를 중심으로 낙태를 형법상 처벌이 아닌 재생산 건강, 의료서비스, 사회보장제도 적용의 영역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소개하고 “이를 위해 낙태죄에 대한 처벌 폐지 등 전면적 개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전 조사관은 특정한 사유를 지정하거나 선별하지 말고 임신한 여성의 ‘사회경제적 사유’와 신체적·정신적 건강 및 안전에 기반한 ‘여성 본인의 요청’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조사관이 인용한 2017년 낙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임신을 경험한 여성 가운데 낙태를 고려한 경우가 56.3%이며 실제 낙태 경험자는 40%에 이른다. 여성의 낙태 사유로는 ‘경제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음’이 29.7%, ‘계속 학업이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20.2%, ‘결혼할 마음 없음’ 12.5%, ‘이미 낳은 아이로 충분함’ 11.0% 등으로 나타났다. 앞선 2015년 조사에서는 전체 기혼여성 가운데 낙태경험이 있는 여성이 1회 13%, 2회 4.3%, 3회 이상이 0.9%로 나타났다. 전 조사관은 “이 조사에서는 출생자녀가 많을수록 낙태 경험률이 높으며 취업중인 기혼여성이 비취업중인 여성에 비해 높았는데 이 또한 사회경제적 이유가 반영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 조사관은 무엇보다 안전하고 신속한 임공임신중절 보장, 정보제공,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가칭 ‘성·재생산건강법’ 같은 기본법을 만들어 피임, 임신, 임신중단, 출산, 성교육, 성병 관리, 양육 등의 재생산을 포괄하는 법안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낙태제도에 상담과 숙려제도를 사전조치로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 현재 영국과 독일, 핀란드, 미국 등은 낙태절차에 상담의무제도나 숙려제도, 상담소의 확인절차, 낙태심사위원회 등을 도입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낙태결정을 숙고하도록 하고 있다. 전 조사관은 “여성이 인공임신중절을 결정할 때 안전한 낙태를 위한 지식, 정보, 환경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낙태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낙태를 위한 시스템에는 낙태 허가병원, 낙태클리닉, 상담소, 공공서비스지원, 급여지원방안 등이 포함된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낙태죄 전면 폐지” 천주교 여성신자들도 외쳤다

    “낙태죄 전면 폐지” 천주교 여성신자들도 외쳤다

    “천주교 신자이지만 낙태죄 폐지에 찬성합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소중한 삶을 위해 여성의 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합니다.”(세례명 요안나) “천주교인 모두가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은 성직자가 될 수 없는 보수적인 천주교회에서 발언의 권력을 갖지 못한 여성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세요.”(세례명 소피아) 낙태죄 전면 폐지를 지지하는 1000여 명의 여성 천주교 신자들이 임신 14주 이내에만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14일 시민단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여성 천주교 신자 1015명의 의견서를 모아 청와대와 국회,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견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약 2주간 취합됐다. 모낙폐는 “그동안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천주교가 수많은 여성 시민들의 낙태죄 폐지 요구와 상반되는 행보를 천주교 교구 이름으로 지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의견서를 낸 신자들은 ▲낙태죄 폐지 적극 찬성 ▲여성 인권은 제쳐두고 ‘태아 생명’만 부르짖는 교회와 천주교에 실망과 분노 ▲낙태죄는 여성이 겪는 문제이므로 정부·국회·교회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등의 의견을 냈다. 지난 7일 정부가 낙태죄 입법예고안을 내놓은 이후 전국 각지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까지 서울·부산·대구·광주전남·전북·경북·경남 등 전국 7곳에서 정부의 입법예고안을 규탄하고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학계에서도 정부의 입법예고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여성연구학회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근본 취지를 축소, 왜곡하고 있다”면서 입법예고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낙태죄 폐지하라”…천주교 신자 1000여 명 목소리 높여

    “낙태죄 폐지하라”…천주교 신자 1000여 명 목소리 높여

    “천주교 신자이지만 낙태죄 폐지에 찬성합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소중한 삶을 위해 여성의 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시대가, 사회가, 종교가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세례명 요안나) “천주교인 모두가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은 성직자가 될 수 없는 보수적인 천주교회에서 발언의 권력을 갖지 못한 여성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세요.”(세례명 소피아) 낙태죄 전면 폐지를 지지하는 1000여 명의 여성 천주교 신자들이 임신 14주 이내에만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냈다. 14일 시민단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여성 천주교 신자 1015명의 의견서를 모아 청와대와 국회,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견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약 2주간 취합됐다. 의견서를 낸 신자들은 낙태죄 폐지에 적극 찬성 여성 인권은 제쳐두고 ‘태아 생명’만 부르짖는 교회와 천주교에 실망과 분노 낙태죄는 여성이 겪는 문제이므로 정부·국회·교회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등의 의견을 냈다. 모낙폐 측은 “그동안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천주교가 수많은 여성 시민들의 낙태죄 폐지 요구와 상반되는 행보를 천주교 교구 이름으로 지속해왔다”고 지적했다.지난 7일 정부가 낙태죄 입법예고안을 내놓은 이후 전국 각지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부산·대구·광주전남·전북·경북·경남 등 전국 7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정부의 입법예고안을 규탄하고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학계에서도 정부의 입법예고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여성학회와 한국여성체육학회, 한국여성사학회 등 9개의 학회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여성연구학회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근본취지를 축소, 왜곡하고 있다”면서 입법예고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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