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낙인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저도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커버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신당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아베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536
  • 여야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해야”

    여야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해야”

    국회 대정부 질문 마지막 날인 13일 교육·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역사 교육’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는 한국사 교과서 이념 논란에 대해 공방을 벌였지만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있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검정 교과서에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로 표현됐다는 뜬소문을 민주당이 사실인 양 퍼뜨렸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최근 검정 심의를 통과한 교과서를 놓고 ‘극우 교과서’라는 루머가 유포되고 전교조는 불매운동을 벌일 태세”라면서 “여기에 야당까지 나서서 해당 교과서를 ‘왜곡 교과서’로 낙인찍으려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10일 대정부 질문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백범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냐”고 질의한 뒤 “뉴라이트 교과서에 이렇게 적혀 있고 이것이 통과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올해 8월 말 최종 채택되기까지 검정 결과를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해당 내용도 허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검정 과정 중인 일부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12·12 군사쿠데타’를 ‘12·12 사태’로 표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붙은 ‘역사 왜곡 논쟁’도 국회로 옮아왔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부분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발포한 사실을 게재하지 않고, 고교 교과서들은 12·12 군사쿠데타를 12·12 사태로만 표기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런 역사 왜곡을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로 반(反)민주 세력의 역사 왜곡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역사 논쟁이 불거지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극심한 분열과 갈등만 생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야 모두에서 나왔다. 이용섭 의원은 “아이들이 이완용의 매국 행위에 분노하고 성삼문, 안중근의 충절을 배우면서 정의감과 애국심을 키워 가야 함에도 대학입시에 매몰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대입에서 외면받고 있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서 “말로만 역사가 중요하다고 할 게 아니라 정부가 청소년들의 역사관 확립을 위해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도 잇따라 제기됐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전 전 대통령 자녀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1000억원이 넘는다”면서 “국회에 제출된 추징금 시효를 연장하는 ‘전두환 추징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추징금은 징역 등 본형에 대한 부가형인데, 본형을 집행하고 부가형인 추징을 집행하면서 그게 안 됐다고 해서 징역(형)을 내리면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가족에게 책임을 물리는 문제도 연좌제나 자기책임주의에 반하지 않느냐는 이론적 논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주말 영화]

    ■백인 추장(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 부부 이반과 완다는 로마 근교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이반은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하고, 꼼꼼한 성격이다. 이반은 아버지에게 정보를 얻어 치밀하게 여행 계획을 세워 놓는다. 그에 반해 완다는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좋아하는 ‘백인 추장’이라는 영화 속의 무명 배우 페르난도 리볼리를 찾아나선다. 결국은 해변을 거니는 추장의 모습을 찾아 낸다. 이반은 부모와 친구들에게 완다가 도망간 사실을 숨기고, 그녀를 찾아서 온 도시를 헤맨다. 한편 해변에서 자신의 우상을 만난 완다는 그의 실상이 자신이 꿈꿔 오던 것과 너무 달라 실망을 하게 된다. 사실 백인 추장은 가난한 공처가였던 것이다. 사진과 소설 속에 나오던 세상의 실제는 그녀가 상상하던 것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완다는 실망으로 테베레 강에 빠져 죽으려다 간신히 살아난다. ■독립영화관-약탈자들(KBS1 토요일 밤 1시 5분) 오랜만에 장례식장에 모인 동창들이 선배이며 역사학도인 상태라는 인물의 뒷담화를 하고 있다. 속물적이고 여자를 밝히고 거대한 얘기를 즐긴다는 상태는 동창들에게 기이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대화에 어수룩한 감독 지망생 병태는 끼어들지 못해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고, 동창들의 뒷담화는 점점 상태를 성토하며 과격해진다. 한편 그들의 회상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잉태된다. 이젠 동창들의 회상 속 인물이었던 연쇄 살인범 택시기사와 무술 뫄한뭐루의 창시자인 무술의 달인마저도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의 사슬은 사람들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서사의 미로를 만들어 내는데…. ■핸콕(OBS 토요일 밤 10시 15분) 핸콕(윌 스미스)은 X맨,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가지고 있던 모든 능력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겸비한 슈퍼 히어로다. 그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슈퍼 히어로지만 과격하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까칠한 슈퍼 히어로로 낙인찍힌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피 대상 1호로 떠오른 핸콕은 어느 날 PR 전문가 레이 엠브레이(제이슨 베이트먼)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는 핸콕의 추락하는 이미지를 회복시켜 주기로 약속한다. 그러던 중 핸콕은 레이의 아내 메리(샤를리즈 테론)가 자신이 탄생하게 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알게 되고, 메리와 가까이 있을수록 자신의 초능력이 약해져 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열린세상] 사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사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제비 한 마리는 분명히 봄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취업 경쟁이 대학가를 휘몰아치는 와중에 순수 사회학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기특한 학생들을 전보다 자주 마주치게 된다. 금융 분야 자격증 따기, 공무원 시험 준비, 영어 점수 올리기라는 생존 경쟁 계획표에 맞추어 돌아가는 학생들 가운데 “사회학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요” 하는 한 마디가 주는 울림은 크다. ‘사회가 되돌아온다’는 새 시대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다이내믹 코리아’이지만 변화의 속도가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국제정세를 알아차리지 못해 이웃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과거사의 회한을 만회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20세기는 농촌에서 도시로, 아시아에서 서구로,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자연에서 개발로, 협동에서 경쟁으로 삶의 패러다임을 숨 가쁘게 바꿔왔다. 이 질주에서 앞선 사람 또는 집단은 승자로 추앙되었고 속도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개인 또는 집단은 가차없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앞만 보고 달리게 되면 가속도가 붙게 된다. 근대화에 이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눈치 빠른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녀를 유학시켰고 기러기 가족 만들기도 불사하였다. 전 지구적 차원의 무한 경쟁을 개인적 적응으로 대응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약육강식은 동물계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예외 없는 철칙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우리가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세상은 소리 없이 방향을 바꾸고 있다. 글로벌 대신 로컬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자유 대신 공정을, 경쟁 대신 협동을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가 주목을 받고 심지어 슬로 시티도 등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여대생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환경에 피해를 주거나 아동을 불법으로 고용하면서 만든 것은 아닌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소위 가격 대비 품질을 중시하는 합리적 소비이론과는 달리 제품 생산 과정에서의 사회적 영향과 책임을 묻는 소비방식이다. 이런 흐름이 점점 커져서 이제는 대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을 묻는 행동지침이 유엔에서까지도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실패한 국가의 자리, 실패한 시장의 자리에 사회, 그리고 사회적이라는 차원이 들어서고 있다. 이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한 시차로 나타난다. 헌법 조문에만 있었던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가 지난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공론으로 등장하지 않았던가. 사회가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뿐인가. 수많은 논쟁을 거쳐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했다. 세종은 봉건시대에도 ‘여민동락’(與民同)이라는 소셜 거버넌스를 실천했던 성군이다. 선거공약과 공론을 통해 도시가 탄생한 것을 전에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공공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사회적 경제, 소셜 커머스, 등 사회 또는 소셜이라는 형용사가 끝 간 데 없이 쓰이고 있다. 19세기엔 목욕탕 이름에서부터 과자 이름까지 ‘자유’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도쿄대 교수의 분석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런 새로운 흐름에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등은 이 변화의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옛 문법대로 행동하고 말하다가 변화된 세상의 공분에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한 번 단추를 잘못 끼우면 계속 어긋난다. 지난 100여년의 흐름이 큰 폭으로 바뀌고 있는데 방향 전환이 어렵다. 과거가 흘러가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는 상태에서 새것이 오고 있다. 게다가 따라잡기 바쁜 질주에 가속도가 붙어 방향을 바꾸기도 어렵다. 식민지시대, 냉전, 신자유주의의 유제가 사라지지 않고 사회 구석구석에 얽혀 있다. 새것이 들어설 틈이 없어 보이는데도 사회가 돌아오고 있는 징표는 분명하다. 우리 모두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시차 적응이 필요한 때다.
  • [금거래소 설립 추진] 재산은닉 수단 변질 金시장 개혁… 무자료 거래 줄여 세수확대 기대

    [금거래소 설립 추진] 재산은닉 수단 변질 金시장 개혁… 무자료 거래 줄여 세수확대 기대

    국제 금값은 떨어지고 있는 반면, 최근 한국에서는 ‘금테크’가 각광 받는 등 금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의 금 거래는 꾸준히 양성화되고는 있지만, 음성 거래의 규모가 정상 거래를 압도하고 있어 대표적인 지하경제로 낙인찍혀 있다. 새누리당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금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1차적으로는 금 시장을 양성화하면 부족한 세수의 상당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거래소 신설에 앞서 정부가 가정 먼저 할 일은 시장의 규모 파악이다. 정부도 불법 시장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06년에 추산한 것은 대략 연간 150t 정도로, 최근 시세로 따지면 7조원 이상이다. 이 가운데 지하경제 규모는 60~70%로 추산된다. 특히 수출용 금제품 원재료로 사용되는 금지금(순도 99.5% 이상 금괴) 거래에 부가세를 매기지 않는 특례 제도가 집중적으로 악용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업자 간 거래는 2008년부터 ‘금지금 부가가치세 매입자납부제도’ 도입 등으로 점차 양성화됐지만, 여전히 개인 구매 시에는 신고나 세금 부담이 없다. 한국귀금속유통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 시장은 세금계산서가 없는 무자료금과 자료금의 유통시세가 별도로 형성돼 있는 이중 가격구조로 돼 있다. 또한 국내 현물시장에서는 아직 브랜드와 순도가 제각각이다. 금지금의 표준화가 안 돼 있다 보니, 국내 투자자들도 신뢰하고 금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앞으로 금거래소가 설립되면 이런 문제점들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합법적인 금 거래 유통시장의 확립을 위해 무엇보다 금거래소에서 투자용 금과 일반상품으로서의 금에 대한 세금 체계를 따로 관리하는 체계를 갖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유동수 한국귀금속유통협회 회장은 최근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금 시장 현황 및 양성화 방안’ 간담회에서 “돌반지를 살 때 현금으로 사는 관행이 뿌리박혀 있어 소매점에서 부가세를 낼 수 없는 시장이 형성됐다”면서 “무자료 거래 관행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정부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금거래 시장이 양성화되면 세무조사를 꺼리는 관행도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금 도매시장에서 현재 0.2~0.5%의 수익률인데도 금이 고가이다 보니 매출액이 많아 세무조사의 표적이 되고 있는 불합리한 점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매출이 증가하면 세무조사의 위험성이 높아져 점점 음성 시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귀금속 업계를 불량 유통업계로 볼 게 아니라 공정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거래소 설립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1차적으로는 정부부처 간 의견 조율이 이뤄져야 하지만, 설립 장소 선정에도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는 전남·광주에 설치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다른 쪽에서는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있는 부산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광주광역시와 광주상공회의소가 주축이 된 ‘상품거래소 광주설립추진위원회’는 4일 제1차 회의를 열고 “거래소의 광주 유치를 위해 민·관의 역량을 결집해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전방위적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십이령은 행상인들의 행로만 번다한 곳이 아닙니다. 내륙에서 동해에 흩어진 여러 포구를 드나드는 행차와 길손 들이 비좁도록 내왕하는 유일한 행로입니다. 소금은 물론이거니와 해산물과 염장품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십이령이나 고초령을 넘지 못하면 그들 물산도 한낱 허섭스레기에 불과합니다. 포구 어름에는 60여 호나 되는 염호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손수 거둔 소금 짐을 내륙까지 나르지는 않습니다. 적경이 있더라도 그들이 몸소 겪는 우환이 아니니까, 행상인들의 고초를 강 건너 불 보듯 합니다. 그러나 한수가 모두 녹두죽이라도 국자 없이는 쓸모없다는 말이 있듯이 울진 포구의 물산이 아무리 풍부하다 한들 내왕 길목에 화적떼가 지키고 앉아 봇짐을 털고 살육을 저지른다면 머지않아 울진 포구와 십이령은 승냥이 울음소리만 낭자한 적막강산이 될 터이지요. 십이령길을 적당들의 폐해로부터 지켜내고 가꾸는 일은 부평전봉(浮萍轉蓬)하는 행상인들뿐만 아니라 관아에서도 발 벗고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령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진력나도록 침묵만 지키다가, 우물쭈물 발명을 하였다. “질청을 지키는 이서배들을 자칫 잘못 다루었다간 십중팔구 얼굴을 쳐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수령의 체모를 구겨놓기 일쑤입니다. 간교함과 거짓이 횡행하는 근원인 그들의 권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수령이 도임하자마자 교활한 향리들의 폐해를 줄이려고 심지를 다잡아먹고, 정사를 엄중히 닦달하고 평소에도 사리에 그름이 없는데도 저들의 구미에 맞지 않고 성가시다 해서 삽시간에 수탈을 일삼는 탐학한 수령으로 낙인 찍어 버립니다. 더욱이나 안동을 비롯하여 상주, 예천, 의성의 이서배들이 매우 투박하고 교활합니다. 세습이기 때문에 콧등에 흙이 쓸리도록 허리가 굽어도 이서배의 복장을 벗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을의 소상한 사정을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환하게 꿰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요. 잡기와 투전에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온갖 계략과 농간, 술책 따위로 수령과 백성들 사이를 간교한 몸짓으로 넘나들며 개처럼 꼬리를 칩니다. 착취에 이골이 나서 돛단배 일곱 척을 날탕으로 삼킨다 해도 돛대도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염막이나 어물 도가를 찾아가 수령을 빙자해 억지로 돈을 맡기고 이듬해 가을에 거액의 이자를 붙여 받아 챙깁니다. 살림이 결딴나서 기황(饑荒)이 뼛속까지 스민 세궁민들을 보살펴 긍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수령을 큰소매 속에 넣고 주무르는 솜씨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수령이 그들의 토색질을 저지시키겠다고 작정하고 모조리 잡아들여 저지른 범증을 낱낱이 증거한 다음 치도곤을 내려도 그 모든 고통과 수모를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냅니다. 참으로 바퀴벌레 같은 존재들이지요. 파직이 되더라도 전혀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고 끈질기게 관변을 배회하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수령의 동정을 살핍니다. 호장이란 놈은 농염한 미술을 가르친 관기를 동헌 골방에 집어넣고 수령이 미색에 빠져들게 주선하고는, 저희들끼리 담벼락 밑에 숨어서 눈짓을 주고받으며 킥킥거립니다. 조롱거리가 된 수령이 여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동안 저들은 고을을 휘젓고 다니면서 마귀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냅니다. 어리숙한 수령이 도임하자마자 거짓 분부를 만들어 선정비나 공덕비를 세운답시고 고을의 세궁민들에게 초장료다 무명잡세다 하며 징구하여 저들의 복장을 채우고 나머지를 수령에게 바쳐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은혜와 의리와는 거리가 먼 늙은 아전들이 물들기 쉬운 병이 탐욕밖에 더 있겠습니까. 낙정하석(穽下石)이란 옛말처럼 남의 밥에 바늘 넣기를 예사로 저지르지요. 걸핏하면 어깃장을 놓고 나아가서는 죄안을 날조하여 수령으로 하여금 견책을 받게 하거나 수렁으로 빠뜨려 골탕을 먹입니다. 보복이 미진하면 야차처럼 뒤따라다니면서 개인과 가문을 결딴내려 듭니다. 수령의 면전에서 주둥이로는 사또, 사또 하면서 감히 턱을 쳐들고 변설이 도저한 것은 대저 그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작청에 나와서는 청빈을 가장하고 수령이 보랍시고, 키 얕은 솔소반에 밥사발 하나와 장찌개 한 그릇으로 중화를 때우곤 합니다. 수령이란 사람들은 산 설고 물 선 고을에 어느 날 느닷없이 단신으로 뚝 떨어졌으니 고을의 풍속과 물정에 어두워 숙맥일 수밖에 없지요. 바람 따라 돛 달더라고 그래서 작청의 이서배들이 하자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 패역(悖逆)의 무리야말로 수령을 잡아먹는 저승판서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령 역시 언제 과만이 닥쳐 신연 행차가 들이닥칠지 모를 판에 정사에 정신을 기울일 겨를이 없지요. 대중없는 여항간 풍설이나 주워들으며 거짓으로 고개만 끄덕이다가 거둬들인 초장료나 챙겨들고 다음 도임지로 발행하는 것이지요. 조정에서는 목사, 유수, 군수, 현령, 현감을 막론하고 지방관아 수령들을 내키는 대로 갈아치우기 때문에 이서배들이 수령 행세한 지는 오래전부터입니다.”
  • 성폭력 막아야죠 거미줄 같은 홍보로 인식, 꼭 바꿀겁니다

    성폭력 막아야죠 거미줄 같은 홍보로 인식, 꼭 바꿀겁니다

    “젊고 빠르다.” “학습 속도가 굉장하다.” ‘민생’과 ‘현장’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애정을 담아 임명한 조윤선(47)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한 여가부 직원들의 평이다. 조 장관은 3월에 취임하자마자 미혼모 시설,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등 각종 현장을 20곳 이상 찾을 정도로 숨가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변인으로 전국을 누비던 대통령 선거 때도 변함없던 체중이 빠질 정도다. 세계 108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성 격차지수다. 조 장관은 한국 여성의 위상 제고를 위해 이제 행보를 국제적으로 넓혔다. 15~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5차 동아시아 양성평등 장관회의에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데 이어 이달 말에는 프랑스 파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을 찾는다.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성 격차지수를 관리하는 부처를 만나 우리의 내부적 노력을 알리고, 지수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조 장관은 밝혔다.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성가족부의 큰 역할 가운데 하나다.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한다. 1994년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 전혀 사회적 기반이 없었다. 일·가정 양립의 만병통치약은 없다. 일하는 여성에게 최대한 많은 옵션을 제공하겠다. 집 근처에 맡기거나 돌보미, 직장 어린이집, 육아휴직 등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경력에 치명적 불이익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게 목표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사태에서 보듯이 공직자의 양성평등 의식 수준이 낮다. -대통령 업무보고 때 올해를 ‘성폭력 예방교육 원년’으로 삼아 국민 대상 홍보 콘텐츠를 개발하고, 모든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거미줄처럼 짜기로 했다. 모아서 교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동통신사, 카드회사, 대형할인점 등에서 고객들에게 보내는 편지나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 반상회보, 은행창구의 모니터, 회사 사보 등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통해 인식 개선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메시지 내용은 성폭력, 다문화, 미혼모, 일과 가정의 양립 등이다.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 여가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뜻밖에 가장 효과 있는 것이 또래상담이다. 여가부는 청소년상담개발원에서 선생님에게 또래상담 동아리 활동 지도법을 교육한다. 한영고에 가서 또래상담반을 만났는데 상담자로 나선 한 학생이 ‘중학생 때 왕따를 당했다. 점심시간에 식판을 걷어차이고 음식이 엎질러지는 모욕을 당했다. 도서관 서가에서 울곤 했는데, 한 친구가 이야기를 들어줘서 치유됐다’고 말해 눈시울을 적셨다. 또래상담을 하는 학생도 고민이 있지만, 소통을 통해 치유된다고 하더라. 대통령 업무보고에 초청됐던 태안여고는 또래상담으로 문제아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 사랑받는 학교로 바뀌었다. →유리 천장 앞에서 좌절하는 여성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조언은. -유리 천장은 자꾸 여러 사람이 부딪쳐야 실금이 가서 드디어 깨진다. 직장생활하며 아이 키우고 조직에서 자리 잡는 게 쉽지 않다. 이번 정부에서는 유리 천장을 없애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여서 지속 가능한 성장 터전을 만들자는 게 큰 과제다. 이 과제를 모든 부처가 공유하고, 대통령도 강조하고 있어 유리 천장을 깨기에 더 좋은 계기는 없는 것 같다. 경쟁력 있는 회사일수록 여성직원이 육아휴직을 쓰면 ‘저 친구는 우리 회사에서 승부를 걸 생각이 없고, 대강 다니려는구나’란 낙인을 찍는다. 이런 낙인을 찍는 문화가 없어야 한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일·가정 양립을 잘하는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받고 나서 입사 경쟁률이 100대1에서 1000대1이 됐다고 하더라. 결혼해도 되느냐, 애 낳아도 되느냐고 묻는 후배들에게 일단 시작하라고 한다. 산도 오르다 보면 이정표가 있고 길이 보인다. 저도 일 시작하고 애를 낳았더니 친정부모, 시부모께서 도와주셨다. 국가가 마음먹고 엄마가 돼주겠다고 했으니 일단 시작하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일하거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뛸 생각은. -장관 한 지 두 달하고 사흘 정도 됐는데,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은 화장실 가는 시간밖에 없을 정도다. 대통령께서도 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 등 전 생애에 걸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가져오라고 첫 국무회의에서 말씀하셨다. 눈 뜨면 어떻게 잘할까 그 생각밖에 없다. →대통령의 기대가 각별한 것 같다.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정홍원 국무총리가 모두 ‘백’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조정할 수 있는 경제장관회의에 현안이 없어도 꼭 참여해서 부탁을 많이 드린다. 여성 인재 활용은 남성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 새로운 창의적 일자리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을’로 일한 경험이 있는가. -‘갑’이었던 경험은 별로 없다. 변호사로 일할 때 갑을 관계 중에 ‘병’이나 ‘정’ 정도로 일했다. 기업변호사로 보통 소송만 하던 변호사와 달리 정말 서비스 정신을 투철하게 배웠다. 국회의원 할 때도 을로 일했다. 의원은 국민에 대해서는 영원한 을이지 않느냐. 대변인으로 일할 때도 언론인 앞에서는 ‘정’쯤 됐다. 여가부 장관은 다른 부처 장관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송금후 라면 값만 남아”… 기러기가구 115만 ‘우울증 빨간불’

    “송금후 라면 값만 남아”… 기러기가구 115만 ‘우울증 빨간불’

    기러기 아빠인 나길록(43·서울·가명)씨는 얄팍한 주머니 탓에 끼니를 숱하게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운다. 일터인 중소기업 연봉이 4000만원쯤 되지만 필리핀 마닐라에서 조기유학 중인 초등생 두 딸과 아내에게 다달이 300만원씩 부치고 나면 빈손이다. 혼자 오래 지내면서 우울증 낙인까지 찍혔다. 그는 “올해 초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필리핀에 갔더니 ‘비행기표값 있으면 차라리 돈을 더 부치지 그랬느냐’는 말만 비수처럼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밤늦게 집에 혼자 앉아 창 밖을 보다가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족을 해외로 보내고 홀로 사는 기러기 아빠들은 해마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도리어 가장 슬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 행사 때 다른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노라면 외로움은 극에 달한다. 더욱이 요즘 TV·영화 등에서 부성애 코드의 작품이 쏟아지자 “가족 생각이 사무치게 간절해진다”는 기러기 아빠가 많아졌다. 예전엔 기러기 아빠의 고충은 이른바 ‘가진 사람’들의 얘기로만 들렸지만 이제 전 계층의 문제로 확산됐다. 동남아권이나 중국 유학이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중산층·저소득층의 기러기 아빠가 덩달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배우자와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가구’는 전국 115만 가구였다. 50만 가구 이상이 기러기 아빠만 사는 가구로 추정된다. 조기유학에 따른 기러기 아빠는 20만~30만명이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엄명용 교수는 “2000년대 들어 매년 2만명 안팎의 기러기 가족이 생겨 꾸준히 쌓이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퇴직을 앞두고 노후를 준비하려고 가족들을 먼저 동남아 등으로 보내 적응시키는 교육 이외 목적의 기러기 아빠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러기 아빠들은 ‘홀로 살아간다며 슬프게 바라보는 연민의 눈초리를 받기 싫다’는 이유 등으로 사적 모임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 대표는 “이처럼 고립을 자초하면서 마음의 병은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 대구에서는 10년째 기러기 아빠로 지내던 치과의사 A(50)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대표는 “독거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낸 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 자조 모임을 만들어 서로를 보듬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한편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실은 오는 13일 기러기 아빠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2007년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들의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009년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시급 4500원에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세가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 남성 쪽에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하지만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한숨과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년 만에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칠 여유도 생겼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을 일했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상이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 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 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로 남성 쪽에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사설] SAT 취소까지 부른 ‘부정 한국’ 부끄럽다

    4일로 예정됐던 미국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SAT) 한국 시험이 전격 취소됐다. 이 시험을 주관하는 비영리기관 칼리지보드는 “한국 시험에 출제될 수 있는 문제의 일부가 유출돼 많은 응시자들이 이미 시험문제를 접했기 때문에 5월 시험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소수가 저지른 부정 행위로 갑자기 시험이 취소되는 바람에 정직하게 공부한 수험생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다급한 학생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부정 한국’의 낙인이라니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SAT 문제 유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6년엔 시험문제 유출 의혹으로 한 외국어고의 시험장소 자격이 박탈됐고 2007년 3월 한국에서 치러진 시험의 경우 학원 강사 일당이 두 달 전 태국에서 시험을 치르고 문제를 빼낸 것으로 드러나 응시자 900여명의 성적이 전원 무효처리되기까지 했다. 지난 2월엔 서울의 일부 어학원이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동남아에서 시험을 치르게 한 뒤 문제를 유출한 혐의를 놓고 검찰이 수사 중이다. 다른 시험도 마찬가지다. 토플시험에서 유사한 부정행위로 2000년 이후 시험방식이 두 차례나 변경됐고, 미국 대학원시험(GRE)은 2002년 문제가 유출돼 국내에서 전산망을 이용한 시험을 치를 수 없다. 해커스 교육그룹의 임직원들은 2007년 이후 100차례 이상 토익과 텝스 문제를 빼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런 전과에도 불구하고, 문제 빼돌리기가 점점 더 대담하고 교묘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험 부정을 심각한 범죄로 여기지 않는 사회분위기, 돈이 된다면 무슨 수단이든 동원하는 학원들의 부도덕성, 어떻게든 단기간에 점수를 올려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면 된다는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비뚤어진 의식이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수사당국의 소극적 자세도 문제다. SAT와 같은 국제인증시험 부정은 응시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국가신뢰도를 실추시키는 심각한 사안임을 인식해야 한다. 점수만능주의에 대한 사회적 각성과 함께 앞으로 이런 부정행위가 발붙일 수 없도록 일벌백계를 당부한다.
  • 계파주의 못 없애, 북핵 ‘초당적 협력’…文 “나는 F학점”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5·4 전당대회를 끝으로 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친다. 문 비대위원장은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114일간의 비대위 활동에 대해 “내가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F학점”이라면서도 “열심히 했다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계파주의 타파에는 결국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24 재·보선 전패 역시 뼈아픈 실책이다. 하지만 북핵 위기에 대한 초당적 협력과 여야 합의로 이뤄진 정부조직법 개정안 국회 통과, 여야 6인 협의체 정례화 등은 성과로 꼽힌다. 문 위원장은 이어진 오찬간담회에서 ‘안철수 신당’과 관련해 “안철수 의원이 당을 만들어 민주당을 뿌리째 가져가면 공멸하는 것”이라면서 “안 의원이 새 정치에 가장 반하는 ‘의원 빼가기’를 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순간 50점 감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안 의원은 국회 상임위를, 희망해 오던 교육문화체육관광위(교문위)로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용섭 의원이 자신이 속한 교문위를 안 의원에게 양보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전북도의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안 의원이 동의한다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제가 떠날 용의가 있다”면서 “안 의원은 새 정치를 실현시켜야 할 동지적, 동반자적 관계”라고 말했다. 안 의원 측은 이 의원의 제안에 대해 “조금 더 논의해 결정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보육교사 “성 범죄자 취급하나” 부모들은 “인성 검증도 해달라”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의한 영아 학대 사건이 연이어 생기면서 어린이집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려는 관련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이해 당사자들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육교사들은 아동학대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보육교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낙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일반 학부모들은 이런 방안에 찬성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30일 아동을 학대한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르면 올 연말부터 영유아에게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입힌 원장 및 교사의 명단이 공표된다. 또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과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의 보육 담당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어린이집 단속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이에 대해 보육교사들은 아동 학대는 근절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쏟아져 나오는 대책이 단속이나 처벌 일변도라는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서울의 한 보육교사 A(31·여)씨는 1일 “아이를 학대한 교사는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명단까지 공개돼야 한다면 성범죄자와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다”면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해도 아이들을 보면서 버텼는데 사명감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이러한 방안에 찬성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2세 아이를 둔 최선화(34·여)씨는 “CCTV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볼 수 있게 하고, 아이를 학대한 교사는 보육에 종사하지 못하게 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원(33·여)씨는 “근본적으로 사명감이 있고 인성 좋은 교사들을 검증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감시와 처벌이 약해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CCTV가 설치되면 오히려 사각지대에서의 학대가 늘 수 있다”면서 “어린이집의 처우와 노동조건이 열악해 우수한 교사들이 떠나고, 보육교사 자격증이 남발되는 가운데 재교육과 인성 검사 등 관리는 뒷전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가물치가 ‘프랑켄 피시’라고?…美서 공포의 대상

    가물치가 ‘프랑켄 피시’라고?…美서 공포의 대상

    산모의 보양식으로 애용되는 가물치가 미국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둔갑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국 NBC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뱀 머리’ (스네이크헤드) 물고기가 뉴욕시 센트럴파크 호수에서 발견됐다고 뉴욕 환경 당국이 밝혔다. ‘뱀머리’ 물고기는 가물치의 영어 이름으로, 가물치의 머리 부분이 뱀을 닮았다고 하여 위와 같이 불리며 이종 간에 특징이 섞여 있어 ‘프랑켄 피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가물치는 2002년 메릴랜드주(州)의 한 연못에서 발견된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뉴욕에서는 수년 전 처음 발견됐고 이번에 센트럴파크 ‘할렘 미르’ 호수 내에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물치는 미국에서 천적이나 상위 포식자가 없는 최악의 외래종으로 낙인찍혔다. 당국은 시장에서 가물치 거래를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놨으며 낚시 도중 가물치를 잡게 되면 놓아주지 말고, 당국에 인계하길 권고하고 있다. 한편 가물치는 몸길이 1m가 넘는 것이 발견될 정도로 몸집이 크며 보조 호흡 기관을 이용해 물 밖에서도 수일간 숨을 쉴 수 있어 한때 아이들과 애완동물을 습격한다는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사진=NBC 뉴스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영화 프리뷰]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폭스파이어’

    [영화 프리뷰]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폭스파이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로랑 캉테 감독의 신작 ‘폭스파이어’는 거장의 숨결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미권의 대표적인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보수적인 남성 중심사회에 저항하는 소녀 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08년 도시 빈민가의 한 중학교를 배경으로 교육과 사회의 문제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은 이번에는 소녀들의 성장 드라마뿐 아니라 1950년대 미국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영화 제목인 ‘폭스파이어’는 부모와의 불화를 경험하고 성폭력을 당한 소녀들이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자신들만의 공동체. 어리고 가난하다고 성적으로 추근대는 성인 남성에 대해 단체로 복수하는 모습은 그동안의 영화 속에서 늘 약자로 그려지는 10대 소녀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통쾌한 재미마저 준다. 이들은 ‘폭스파이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고 갈등하면서 작은 사회를 경험한다. 어깨에 함께 문신을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의를 맹세하고 상처를 감싸 안는 소녀들. 적어도 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빈부나 계급의 차이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뭉친 이들은 점차 사회의 불온 세력으로 낙인찍힌다. 소녀들은 ‘갱’으로 불리고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점차 멀어져 간다. 단절된 공동체 속에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영화는 마치 한국 영화 ‘써니’처럼 ‘폭스파이어’ 활동을 했던 소녀 매디(케이티 코스니)가 자신들의 10대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반세기 전의 이야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소녀들의 감성이 현대 사회와 잘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클래스’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 10대들의 이야기를 그린 캉테 감독은 “그들이 모순과 대립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감독은 10대들의 방황과 저항 심리를 섬세하게 담았다. 프랑스 출신이지만 영어로 영화를 만든 감독은 화려한 아메리칸 드림의 그늘 속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그는 “1950년대 미국을 희망차게 그리는 고착화된 이미지에 저항하고 싶었고 화려한 꿈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다”면서 “당시는 매카시즘이 유행했지만 소외된 계층을 상징하는 소녀들은 공동체 속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 소녀의 감성이 지금도 똑같이 존재하고 전해 내려온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소 긴 러닝타임과 철학적인 주제가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연기 경험이 전무한 배우들을 잘 지휘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연출력은 곱씹어 볼 만하다. 상반기에 국내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전주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개성공단 어디로] 北, 체불임금·세금 등 문제 제기… 최후의 7인 해결 후 귀환

    개성공단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우리 측 인원 가운데 43명이 귀환하면서 이제 개성공단에는 북한과의 미수금 정산 문제를 처리할 7명만 남았다. 북한이 적십자 채널과 군 통신선을 차단한 이후 그나마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유지돼 오던 남북 간 소통 채널도 개성공단 공장 기계 소리와 함께 작동을 멈췄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끊어지지 않았던 남북 간 대화 채널이 완전히 단절되고 서로 스피커에만 의존한 일방적 메시지 전달만이 가능해졌다. 사실상 남북관계의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남북은 28일 개성공단 잔류 인원 50명의 마지막 철수 문제로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우리 측 인원들은 오후 5시 귀환을 희망했지만,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의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며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이 문제를 협의할 7명만 남긴 채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개성공단을 빠져나왔다. 공단에는 홍양호 위원장 등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직원 5명과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남측과의 통신 문제를 담당할 KT직원 2명이 남았다. 우리 업체들은 매달 10일을 기준으로 북한 근로자들의 월급을 계산해 북측 개성공단사업 총괄기구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 달러와 현금으로 지급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을 제한하면서 지난 9일 현금수송 차량의 출입까지 막아 북한 근로자 5만 3000명의 지난달 월급과 수당 800여만 달러(약 88억원)는 미지급된 상태다. 북한은 여기에 통신료, 기업소득세 등 밀린 세금 납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입주기업과 협의해 미수금이 얼마인지 파악한 뒤 현금수송 차량을 들여보내 지불할 예정”이라며 “이 밖에 북한이 다른 요구를 해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남북은 미수금 정산 문제와 관련해 상당 부분 이견을 좁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은 7명은 완제품 및 차량 반출 문제까지 해결해야 해 다음 달 초에나 귀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를 완료한 이후 공단에 공급되는 물과 전기를 차단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북측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전력이나 용수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30일 공단에 들어가 완제품과 자재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의 요구에도 북측은 가타부타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리위 측은 완제품 반출이 가능하도록 북측에 강하게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우리 측 차량 반출 문제는 등록을 하지 않고 개성공단에 들어간 근로자들의 차량이 몇 대 있어 기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근로자 통근버스 276대도 가져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북한은 이날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 인원 전원 철수 조치를 ‘파렴치한 망동’으로 비난하면서 “계속 사태 악화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경고한 대로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재차 위협했다. 또 “개성공업지구가 끝내 완전 폐쇄될 경우 현 괴뢰 정권은 이명박 역적패당보다 더한 대결 정권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7일 우리 근로자 126명(중국인 1명 포함)이 귀환했을 때도 우리 측이 통지한 귀환 시간인 오후 2시 직전에야 입경 승인을 하는 등 체류 인원 철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 [열린세상] 진품, 가품(佳品) 그리고 창조경제/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진품, 가품(佳品) 그리고 창조경제/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꽃 피는 봄에 전북 남원을 다녀왔다. 대를 이어 온 장인이 만든 과일 깎는 칼과 주방용 부엌칼을 샀다. 품질에 비해 값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최근에 해외 유명 브랜드의 주방용품 판매점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색색으로 단장된 고급 주물 냄비가 그에 걸맞은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주물이라면 집집마다 하나쯤 있었던 가마솥의 전통이 있는 우리가 아니란 말인가. 무겁고 투박하다고 한편으로 밀려난 주물냄비가 비싼 고가로 수입되고 있단다. 무거울 텐데도 해외 유명 브랜드의 힘은 ‘가볍고, 편리함’의 실용을 당당히 뛰어넘고 있었다. 해외 명품가방, 구두가 시내 중심가 고급 백화점 안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버티고 있는데 우리의 수제화 장인들은 서울의 염천교 옆 꾀죄죄한 건물에서 우리 사회 ‘발전’의 울타리 밖에 있는 것처럼 박제화된 과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디자인과 브랜딩을 통해 소위 단순 고가품이 아닌 ‘명품(?)’이라는 후광까지 만들어 주면서 고수익을 올리도록 부추겨 주는 것도 모자라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진품 같은 가품을 구별해 가품을 찢어버리기까지 하고 있다. 진품 같은 가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인의 솜씨를 북돋아 그들도 자기 이름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도록 도와주기는 커녕 위조품을 만드는 범죄자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더 나아가 상류층들이 소비하는 해외 명품들의 천문학적인 가격을 공개하면서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제품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진품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숙련 과정 없이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소위 서구의 명품들은 다 전통을 기반으로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혁신을 거친 제품들이다. 반면에 비서구 국가들은 ‘전통’을 부정하면서 근대적 발전을 추구해 왔다. 그 결과 ‘ 따라잡기’에 급급하다 보니 진품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근대적인 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고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전통은 새롭게 들어오는 것이 자리잡을 빈 공간을 내주지 않는 방해물로 여겨졌다. 자국에서 버려진 비서구국가의 ‘전통’은 서구의 눈 밝은 디자이너나 사업가의 눈에 띄어 저작권과 특허의 법적 보장을 받고 다시 비서구 지역에 고가의 상품으로 등장한다. 전통의 기반 없이 무조건 따라잡는 것으로는 진품을 만들기가 어렵다. 최근 창조경제라는 말이 유행이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전통을 부정했듯이 창조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지워버릴지 걱정이다. 해오던 것을 더 다듬고 가치를 더 부여해 주는 것이 창조이지 다 지우고 나서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소위 선진국 유명 브랜드의 사례가 증명해 준다. 게다가 전통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동네 단아한 찻집에 장식되어 있는 전통 가구의 주물 손잡이 장식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있다. 주인이 고물로 나온 전통가구에서 장식만 떼어 다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손잡이의 아름다움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직했을 뿐 아니라 비율이나 균형 면에서도 완벽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도 않으면서 최선을 다해 무쇠를 두드리고 갈아서 아름다움을 다듬었을 장인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돈이나 명예와 관계없이 문고리에 자신의 인격, 자신의 느낌 그리고 우리가 공유했던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실었던 것 같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들인 정성에 대해서는 드라마에서까지 홍보해 주고 고가이지만 척척 소비도 해주면서 우리 장인들의 정성과 이야기에는 우리가 너무 인색하다. 그들은 전통사회에서는 신분제의 굴레에 갇혔고, 현대사회에서는 시대와 맞지 않는 것으로 낙인 찍혀 스러지고 있다. 수입 명품(?)을 대접해 주는 것의 반만이라도 우리의 진품을 만들어 낸 사람, 만들어 낼 사람, 그리고 그 ‘물건’에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전통은 박제된 채로 박물관에 모셔두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혁신을 가하는 것 그리고 정성을 들여 다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진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원하고 북돋아 주는 것이 창조경제가 아닐까?
  • 5월, 그날 뒤 33년… 아직,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5월, 그날 뒤 33년… 아직,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때가 되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 있다. 5월이라면 한국 현대사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33주기를 맞는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연극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유쾌하게 해석했지만 가볍지 않고, 마냥 엄숙하지 않으면서 가슴 찡한 감동과 메시지를 남긴다. 5·18민주화운동과 6·25전쟁을 먼 옛날의 사건쯤으로 여긴다는 어린 세대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먼저 관객을 만나는 ‘푸르른 날에’는 당시 광주를 살았던 남녀의 사랑과 30년 후 재회한 그들의 애달픈 인생을 이야기한다. 남산예술센터와 신시컴퍼니가 공동제작해 2011년에 첫선을 보였고 지난해에는 전회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경진 작가는 이 작품으로 제3회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했다. 극은 고즈넉한 암자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수행 중인 여산 스님은 자신의 친딸이자 조카인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들으면서 30여년 전 전남대 학생 오민호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호는 전통찻집 아르바이트생인 윤정혜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이 터지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둘은 헤어졌다. 가혹한 고문에 투항한 민호는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힌 데다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까지 겪게 되면서 불가에 귀의했다. 정혜는 민호의 딸을 낳아 홀로 키우다가 그의 형인 진호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다. 딸의 결혼식에서 만난 민호와 정혜는 상처의 시작이 된 그날의 기억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이 작품을 두고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이라고 표현하는 고선웅 연출가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소재의 특수성보다는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에 대한 가치가 이 작품의 주제”라고 설명한다. 고통이나 갈등이 고조되는 곳에서 엉뚱하고 유치한 대사와 동작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고 연출가의 특징이 녹아들어 있다. 가라앉으려는 분위기를 위트로 끌어올리다가 찡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게 작품의 매력이다. 서정주 시에 곡을 붙여 부른 송창식의 노래 ‘푸르른 날’이 들려오면 감동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새달 4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다. 2만 5000원. (02)758-2150. 이어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명륜동 대학로 달빛극장에서 연극 ‘짬뽕’을 공연한다. 중국집 춘래원을 삶의 터전 삼아 사는 소시민들이 뜻하지 않게 5·18민주화운동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극단 산이 제작한 이 작품은 2004년 초연한 뒤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1980년 5월 17일 중국집 배달원 만식은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주인장에게 떠밀려 짬뽕 배달에 나섰다. 잠복근무 중인 군인 둘이 음식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고, 만식은 악착같이 거부하다가 빨갱이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군인들과 만식이 실랑이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총까지 발포되고, 만식은 줄행랑을 쳐서 위기를 모면했다. 다음날 TV에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리자 만식은 전날 사건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사랑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 힘없고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빌려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전한다. 연극은 유쾌발랄한 포장지를 두르고 있지만 “오늘은 이 동네 곳곳이 제삿날이요. 이놈의 봄만 되면 미쳐 불겄어. 봄이 봄이 아니라 겨울이요”라는 독백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진한 여운이 전해진다.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게 ‘그날’을 전하는 윤정환 연출가의 깔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윤영걸, 김원해, 최재섭, 김준원, 이건영 등 10년 동안 공연을 함께 한 배우 18명이 각각의 색깔을 담은 인물을 보여준다. 6월 30일까지. 2만 5000원. (02)6414-7926.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쫀디기·꿀맛나 “우리가 4대악이라고?”… ‘문방구 과자’ 눈물의 폐업

    [주말 인사이드] 쫀디기·꿀맛나 “우리가 4대악이라고?”… ‘문방구 과자’ 눈물의 폐업

    “씁쓸하죠. 요즘 같아서는 차라리 잘 그만뒀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26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주택가. 1970~80년대 학교 앞 ‘불량식품’으로 이름을 날렸던 A제과의 공장은 텅 비어 있었다. A제과는 ‘빨대과자’로 등하굣길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과자업체. 2010년 공장 가동을 멈춘 김모(58) 전 사장은 3년간 남겨둔 공장 기계를 지난주 고물상에 내다 팔았다. 김 전 사장은 “아버지가 회사를 세웠을 때부터 40년 넘게 해온 일인데 아쉬움때문에 쉽게 기계를 정리할 수 없었다”면서 “자식 같은 기계들을 용광로에 밀어 넣은 것 같아 며칠을 끙끙 앓았다”고 했다. 문방구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과자업체가 문을 닫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 전 사장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먼저 학교 앞 문방구와 구멍가게가 꾸준히 줄어들면서 판로가 막혔다. 게다가 대기업 제품이 확산되면서 ‘영세 업체에서 만든 과자들은 깨끗하지 않고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정기적으로 품질 검사를 받으며 식품위생법 등 관련 법령을 충실히 지켰지만 한 번 덧씌워진 ‘불량’의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김 전 사장은 “불량식품을 단속할 때만 되면 구청 직원 등이 만만한 우리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면서 “대기업에서 만드나 영세 업체에서 만드나 과자의 성분은 같다. 전기밥솥에서 만들든 가마솥에서 만들든 같은 밥 아니냐”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한 가지 악재가 더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성폭력과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과 함께 이른바 ‘4대악’으로 규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의 단속 강화에 애먼 영세 과자업체들도 불똥을 맞은 것이다. 김 전 사장은 “처벌받아 마땅한 비위생 업체도 있지만 양심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장사하는 곳도 많다”면서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고 일했는데 요즘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현재 소규모 과자업체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도 열변을 토했다. ‘맛기차콘’과 ‘호박 꿀맛나’ 등을 만드는 한진식품의 김영기(42) 대표는 “‘영세 업체는 더러울 것’이라는 편견 탓에 중소기업 매출은 줄고 대기업 매출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적법한 신고 절차와 위생 검사 등을 마쳤는 데도 ‘불량식품’이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 직원들까지 ‘불량직원’이 되는 기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쓰거나 원산지를 속여 파는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 대기업보다 부족한 것은 포장과 마케팅뿐”이라면서 “영업 허가를 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불량식품이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쫀디기’를 만드는 남일제과의 박성렬(42) 부장도 “몇 년 전부터 규제가 심해져 위생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다”면서 “대기업 제품과 공정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온다는 사람 없다고 마음이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천에서 옥수수 과자를 만드는 한모(45) 사장은 “위해식품과 영세업체 제품은 구분해야 하는 데 불량식품으로만 매도되고 있다. 상인들끼리 모여 호소문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얼마 전에 경찰들이 공장에 찾아왔다가 소득 없이 돌아가면서 자기들도 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처럼 영세 과자업체가 때 아닌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범정부 차원의 불량식품 단속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검찰청, 지방자치단체 등은 상설 합동단속체계를 구축해 올 6월까지 집중적인 단속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경찰 역시 100일동안 부정·불량식품 집중단속을 실시하겠다며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300여명을 식품 위해사범으로 적발했다. 문제는 ‘불량식품’의 애매한 정의와 실적 중심의 단속이다. 식약처는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불량식품을 ‘사전적으로는 비위생적이고 품질이 낮은 식품을 의미하나, 통상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장하는 모든 식품을 의미한다’고 모호하게 정의해 빈축을 샀다. 서울 시내의 한 일선 경찰은 “솔직히 어디까지 단속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면서 “문책까지 운운하며 압박하는데 실적이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한 구청의 단속 담당자는 “실적 때문인지 불량식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달라는 경찰 등 관계 기관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세 업체의 제품을 불량식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오세욱 국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느낌상의 불량식품과 실제 불량식품은 다르다.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거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함유된 제품이 불량식품”이라면서 “똑같이 지자체 등의 관리·감독을 받는 제품인데 단순히 값이 싸고 문방구에서 판매한다는 이유로 불량식품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창순 중앙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도 “천연색소와 합성착향료 등은 대기업이 만드는 과자에도 똑같이 들어가는 성분”이라면서 “특정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만 주의를 기울이면 섭취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식약처가 품질 검사 기관으로 공식지정한 한 대학 산학협력단의 연구원 역시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은 모두 자가품질검사를 통과한 제품들로 이른바 ‘불량식품’들도 절대 다수가 검사를 거친다”면서 “검사를 통과한 제품들은 식약처에서 ‘이 정도면 판매해도 된다’고 허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속 때문에만 추억의 과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준비물 없는 학교’ 등의 시행으로 주요 판매처였던 문방구 수가 크게 줄어든 것도 타격이 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2만 4881개였던 소매문구점은 2011년 1만 5750개로 약 37% 감소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45년째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구(75)씨는 “안 그래도 장사가 안됐는데 식품 단속 때문에 더욱 힘들어져 가게를 급매로 내놨다. 젤리와 껌 등 5개를 팔던 과자류도 1개로 줄였다”면서 “슈퍼에서는 팔아도 되는 과자를 학교 주변 문방구에서는 팔면 안 된다는 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충남 공주에서 과자를 만드는 조모(34) 과장은 “문방구가 줄어들면 판로가 막힐 수밖에 없다. 동네 슈퍼에라도 납품을 해볼까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시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김희연(41·여)씨는 “문방구 등에서 파는 과자들은 색깔도 자극적인 데다 성분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들이 많다”면서 “대기업 제품은 문제가 생기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만 영세 업체들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 우리가 불량식품들을 먹었던 것도 먹을 게 그것밖에 없어서였던 게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최정은(32·여)씨는 “이런 과자들을 먹고도 잘만 컸는데 불량식품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면서 “4대악이라면서 과자업체만 단속하기 보다는 다른 중요한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찬반을 막론하고 사라져가는 추억에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같다. 직장인 홍민규(26)씨는 “볼 때마다 학창시절이 떠올랐는데 추억의 먹거리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광(39)씨는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면서 “‘달고나’도 ‘쫀드기’도 아쉬워하는 것은 언제나 나이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여전히 집 밖에 나서기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장애인연금 등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를 꾸준히 확충해 왔지만 지난해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부실한 장애인 복지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보건복지부가 가족 중 장애인이 있는 3만 8231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소득과 취업률 등은 비장애인들의 절반 수준이다.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8만 2000원으로 당시 전국 월평균 가구 소득(371만 3000원)의 53.4%였으며 장애인의 취업률은 35.5%로 전체 취업률(60.1%)의 절반을 약간 웃돌았다. 장애인이 일하는 직종은 단순 노무 종사자(30.1%), 기능원 및 기능 종사자(12.5%), 장치·기계 조작 조립(12.4%) 등 단순 노무 위주였으며 이들의 임금은 월 142만원에 그쳤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중증장애아동 돌봄서비스 등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가 확충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일상생활과 사회 활동에서 불편을 경험하고 있었다. 장애인 중 27.5%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사람의 84.2%가 가족 구성원이었다. 집 밖에서 활동할 때 불편하다는 장애인은 40.7%에 달했으며 불편한 이유는 장애인 편의시설 부족(54.9%), 외출 시 동반자가 없어서(31.9%), 주위 사람들의 시선(11.1%)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정부에 가장 요구하는 사항은 소득 보장(38.2%), 의료 보장(31.5%), 고용 보장(8.6%), 주거 보장(8.0%) 등이었다. 복지부는 새 정부 국정 과제에서 ‘장애인의 권익 보호 및 편의 증진’이라는 구호 아래 다양한 계획을 내놓았다. 장애 유형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올해 안으로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기로 했으며 그동안 장애인들에게 낙인감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된 장애등급제는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그 이전에 6등급으로 세분화된 등급 체계가 경증과 중증의 2단계로 단순화되고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와 환경적 요인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변화된다. 그 밖에 활동지원제도의 대상과 급여가 확대되며 중증 장애인을 위한 응급 안전 시스템이 구축된다. 정충현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은 “장애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다른 부처의 장애인 국정 과제도 원활히 이행되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