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낙인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구미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차도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천연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뉴욕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486
  • 계파주의 못 없애, 북핵 ‘초당적 협력’…文 “나는 F학점”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5·4 전당대회를 끝으로 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친다. 문 비대위원장은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114일간의 비대위 활동에 대해 “내가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F학점”이라면서도 “열심히 했다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계파주의 타파에는 결국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24 재·보선 전패 역시 뼈아픈 실책이다. 하지만 북핵 위기에 대한 초당적 협력과 여야 합의로 이뤄진 정부조직법 개정안 국회 통과, 여야 6인 협의체 정례화 등은 성과로 꼽힌다. 문 위원장은 이어진 오찬간담회에서 ‘안철수 신당’과 관련해 “안철수 의원이 당을 만들어 민주당을 뿌리째 가져가면 공멸하는 것”이라면서 “안 의원이 새 정치에 가장 반하는 ‘의원 빼가기’를 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순간 50점 감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안 의원은 국회 상임위를, 희망해 오던 교육문화체육관광위(교문위)로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용섭 의원이 자신이 속한 교문위를 안 의원에게 양보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전북도의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안 의원이 동의한다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제가 떠날 용의가 있다”면서 “안 의원은 새 정치를 실현시켜야 할 동지적, 동반자적 관계”라고 말했다. 안 의원 측은 이 의원의 제안에 대해 “조금 더 논의해 결정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보육교사 “성 범죄자 취급하나” 부모들은 “인성 검증도 해달라”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의한 영아 학대 사건이 연이어 생기면서 어린이집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려는 관련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이해 당사자들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육교사들은 아동학대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보육교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낙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일반 학부모들은 이런 방안에 찬성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30일 아동을 학대한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르면 올 연말부터 영유아에게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입힌 원장 및 교사의 명단이 공표된다. 또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과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의 보육 담당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어린이집 단속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이에 대해 보육교사들은 아동 학대는 근절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쏟아져 나오는 대책이 단속이나 처벌 일변도라는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서울의 한 보육교사 A(31·여)씨는 1일 “아이를 학대한 교사는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명단까지 공개돼야 한다면 성범죄자와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다”면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해도 아이들을 보면서 버텼는데 사명감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이러한 방안에 찬성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2세 아이를 둔 최선화(34·여)씨는 “CCTV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볼 수 있게 하고, 아이를 학대한 교사는 보육에 종사하지 못하게 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원(33·여)씨는 “근본적으로 사명감이 있고 인성 좋은 교사들을 검증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감시와 처벌이 약해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CCTV가 설치되면 오히려 사각지대에서의 학대가 늘 수 있다”면서 “어린이집의 처우와 노동조건이 열악해 우수한 교사들이 떠나고, 보육교사 자격증이 남발되는 가운데 재교육과 인성 검사 등 관리는 뒷전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가물치가 ‘프랑켄 피시’라고?…美서 공포의 대상

    가물치가 ‘프랑켄 피시’라고?…美서 공포의 대상

    산모의 보양식으로 애용되는 가물치가 미국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둔갑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국 NBC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뱀 머리’ (스네이크헤드) 물고기가 뉴욕시 센트럴파크 호수에서 발견됐다고 뉴욕 환경 당국이 밝혔다. ‘뱀머리’ 물고기는 가물치의 영어 이름으로, 가물치의 머리 부분이 뱀을 닮았다고 하여 위와 같이 불리며 이종 간에 특징이 섞여 있어 ‘프랑켄 피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가물치는 2002년 메릴랜드주(州)의 한 연못에서 발견된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뉴욕에서는 수년 전 처음 발견됐고 이번에 센트럴파크 ‘할렘 미르’ 호수 내에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물치는 미국에서 천적이나 상위 포식자가 없는 최악의 외래종으로 낙인찍혔다. 당국은 시장에서 가물치 거래를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놨으며 낚시 도중 가물치를 잡게 되면 놓아주지 말고, 당국에 인계하길 권고하고 있다. 한편 가물치는 몸길이 1m가 넘는 것이 발견될 정도로 몸집이 크며 보조 호흡 기관을 이용해 물 밖에서도 수일간 숨을 쉴 수 있어 한때 아이들과 애완동물을 습격한다는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사진=NBC 뉴스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영화 프리뷰]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폭스파이어’

    [영화 프리뷰]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폭스파이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로랑 캉테 감독의 신작 ‘폭스파이어’는 거장의 숨결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미권의 대표적인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보수적인 남성 중심사회에 저항하는 소녀 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08년 도시 빈민가의 한 중학교를 배경으로 교육과 사회의 문제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은 이번에는 소녀들의 성장 드라마뿐 아니라 1950년대 미국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영화 제목인 ‘폭스파이어’는 부모와의 불화를 경험하고 성폭력을 당한 소녀들이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자신들만의 공동체. 어리고 가난하다고 성적으로 추근대는 성인 남성에 대해 단체로 복수하는 모습은 그동안의 영화 속에서 늘 약자로 그려지는 10대 소녀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통쾌한 재미마저 준다. 이들은 ‘폭스파이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고 갈등하면서 작은 사회를 경험한다. 어깨에 함께 문신을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의를 맹세하고 상처를 감싸 안는 소녀들. 적어도 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빈부나 계급의 차이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뭉친 이들은 점차 사회의 불온 세력으로 낙인찍힌다. 소녀들은 ‘갱’으로 불리고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점차 멀어져 간다. 단절된 공동체 속에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영화는 마치 한국 영화 ‘써니’처럼 ‘폭스파이어’ 활동을 했던 소녀 매디(케이티 코스니)가 자신들의 10대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반세기 전의 이야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소녀들의 감성이 현대 사회와 잘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클래스’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 10대들의 이야기를 그린 캉테 감독은 “그들이 모순과 대립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감독은 10대들의 방황과 저항 심리를 섬세하게 담았다. 프랑스 출신이지만 영어로 영화를 만든 감독은 화려한 아메리칸 드림의 그늘 속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그는 “1950년대 미국을 희망차게 그리는 고착화된 이미지에 저항하고 싶었고 화려한 꿈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다”면서 “당시는 매카시즘이 유행했지만 소외된 계층을 상징하는 소녀들은 공동체 속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 소녀의 감성이 지금도 똑같이 존재하고 전해 내려온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소 긴 러닝타임과 철학적인 주제가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연기 경험이 전무한 배우들을 잘 지휘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연출력은 곱씹어 볼 만하다. 상반기에 국내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전주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개성공단 어디로] 北, 체불임금·세금 등 문제 제기… 최후의 7인 해결 후 귀환

    개성공단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우리 측 인원 가운데 43명이 귀환하면서 이제 개성공단에는 북한과의 미수금 정산 문제를 처리할 7명만 남았다. 북한이 적십자 채널과 군 통신선을 차단한 이후 그나마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유지돼 오던 남북 간 소통 채널도 개성공단 공장 기계 소리와 함께 작동을 멈췄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끊어지지 않았던 남북 간 대화 채널이 완전히 단절되고 서로 스피커에만 의존한 일방적 메시지 전달만이 가능해졌다. 사실상 남북관계의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남북은 28일 개성공단 잔류 인원 50명의 마지막 철수 문제로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우리 측 인원들은 오후 5시 귀환을 희망했지만,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의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며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이 문제를 협의할 7명만 남긴 채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개성공단을 빠져나왔다. 공단에는 홍양호 위원장 등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직원 5명과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남측과의 통신 문제를 담당할 KT직원 2명이 남았다. 우리 업체들은 매달 10일을 기준으로 북한 근로자들의 월급을 계산해 북측 개성공단사업 총괄기구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 달러와 현금으로 지급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을 제한하면서 지난 9일 현금수송 차량의 출입까지 막아 북한 근로자 5만 3000명의 지난달 월급과 수당 800여만 달러(약 88억원)는 미지급된 상태다. 북한은 여기에 통신료, 기업소득세 등 밀린 세금 납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입주기업과 협의해 미수금이 얼마인지 파악한 뒤 현금수송 차량을 들여보내 지불할 예정”이라며 “이 밖에 북한이 다른 요구를 해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남북은 미수금 정산 문제와 관련해 상당 부분 이견을 좁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은 7명은 완제품 및 차량 반출 문제까지 해결해야 해 다음 달 초에나 귀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를 완료한 이후 공단에 공급되는 물과 전기를 차단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북측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전력이나 용수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30일 공단에 들어가 완제품과 자재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의 요구에도 북측은 가타부타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리위 측은 완제품 반출이 가능하도록 북측에 강하게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우리 측 차량 반출 문제는 등록을 하지 않고 개성공단에 들어간 근로자들의 차량이 몇 대 있어 기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근로자 통근버스 276대도 가져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북한은 이날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 인원 전원 철수 조치를 ‘파렴치한 망동’으로 비난하면서 “계속 사태 악화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경고한 대로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재차 위협했다. 또 “개성공업지구가 끝내 완전 폐쇄될 경우 현 괴뢰 정권은 이명박 역적패당보다 더한 대결 정권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7일 우리 근로자 126명(중국인 1명 포함)이 귀환했을 때도 우리 측이 통지한 귀환 시간인 오후 2시 직전에야 입경 승인을 하는 등 체류 인원 철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5월, 그날 뒤 33년… 아직,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5월, 그날 뒤 33년… 아직,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때가 되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 있다. 5월이라면 한국 현대사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33주기를 맞는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연극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유쾌하게 해석했지만 가볍지 않고, 마냥 엄숙하지 않으면서 가슴 찡한 감동과 메시지를 남긴다. 5·18민주화운동과 6·25전쟁을 먼 옛날의 사건쯤으로 여긴다는 어린 세대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먼저 관객을 만나는 ‘푸르른 날에’는 당시 광주를 살았던 남녀의 사랑과 30년 후 재회한 그들의 애달픈 인생을 이야기한다. 남산예술센터와 신시컴퍼니가 공동제작해 2011년에 첫선을 보였고 지난해에는 전회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경진 작가는 이 작품으로 제3회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했다. 극은 고즈넉한 암자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수행 중인 여산 스님은 자신의 친딸이자 조카인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들으면서 30여년 전 전남대 학생 오민호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호는 전통찻집 아르바이트생인 윤정혜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이 터지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둘은 헤어졌다. 가혹한 고문에 투항한 민호는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힌 데다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까지 겪게 되면서 불가에 귀의했다. 정혜는 민호의 딸을 낳아 홀로 키우다가 그의 형인 진호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다. 딸의 결혼식에서 만난 민호와 정혜는 상처의 시작이 된 그날의 기억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이 작품을 두고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이라고 표현하는 고선웅 연출가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소재의 특수성보다는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에 대한 가치가 이 작품의 주제”라고 설명한다. 고통이나 갈등이 고조되는 곳에서 엉뚱하고 유치한 대사와 동작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고 연출가의 특징이 녹아들어 있다. 가라앉으려는 분위기를 위트로 끌어올리다가 찡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게 작품의 매력이다. 서정주 시에 곡을 붙여 부른 송창식의 노래 ‘푸르른 날’이 들려오면 감동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새달 4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다. 2만 5000원. (02)758-2150. 이어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명륜동 대학로 달빛극장에서 연극 ‘짬뽕’을 공연한다. 중국집 춘래원을 삶의 터전 삼아 사는 소시민들이 뜻하지 않게 5·18민주화운동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극단 산이 제작한 이 작품은 2004년 초연한 뒤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1980년 5월 17일 중국집 배달원 만식은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주인장에게 떠밀려 짬뽕 배달에 나섰다. 잠복근무 중인 군인 둘이 음식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고, 만식은 악착같이 거부하다가 빨갱이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군인들과 만식이 실랑이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총까지 발포되고, 만식은 줄행랑을 쳐서 위기를 모면했다. 다음날 TV에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리자 만식은 전날 사건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사랑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 힘없고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빌려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전한다. 연극은 유쾌발랄한 포장지를 두르고 있지만 “오늘은 이 동네 곳곳이 제삿날이요. 이놈의 봄만 되면 미쳐 불겄어. 봄이 봄이 아니라 겨울이요”라는 독백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진한 여운이 전해진다.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게 ‘그날’을 전하는 윤정환 연출가의 깔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윤영걸, 김원해, 최재섭, 김준원, 이건영 등 10년 동안 공연을 함께 한 배우 18명이 각각의 색깔을 담은 인물을 보여준다. 6월 30일까지. 2만 5000원. (02)6414-7926.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명사가 걸어온 길] 한국 신무용의 큰 어른 김백봉(상)

    그의 춤을 일컬어 “몸으로 만든 최고의 문명”이라고들 한다. 서 있기만 해도 무장(舞裝)한 위엄으로 무대가 꽉 찬다. 낮게 달린 풍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손짓조차 춤이 된다. ‘한국 신무용의 대모’로 불리는 김백봉(86) 선생은 인생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한국춤을 꾹꾹 새겨놓고 꽃을 피워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운동회에서 추었을 법한 부채춤부터 화려무쌍한 화관무까지, 그가 만든 한국춤은 6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무용계에 난다 긴다 하는 무용인들을 길러낸 대가 중의 대가로 추앙받는다. 하얀 피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풍경을 건드리면서 “아이고, 소리가 참 좋다”고 하는 모습은 곱디고운 ‘뽕할머니’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수제자로, 한국 신무용 80년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백봉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하로 나눠 들어본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이 사람이 훌륭한 무용가이고 한국의 보배다’라고 하셨죠.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인데, 참 아름다웠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여섯 살 때였다. 춤을 본 적도 없고, 최승희가 누군지도 모르던 꼬마 충실은 잠결에 본 사진 하나로 한평생 한 길을 걷게 됐다. 얼마나 강렬했으면 옹근 80년 전에 본 그 사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평양 시내에 자동차라고는 도지사 전용차와 기업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두 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기업에서 외국 관계자들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서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 기회는 충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충실을 춤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을 접한 지 7년쯤 흘렀을까. 평남 진남포에서 ‘세계적 무희 최승희 귀국 서양무용공연’이 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충실을 데리고 트럭을 몰아 공연장에 갔다. 김 선생은 그 공연을 당시에는 매일신보였던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공연이었다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감히 만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아버지께서 부탁을 하니까 신문 기자가 자리를 주선해줬어요. 대기실에서 아버지가 호적등본까지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조선사람이라고 좋다고 했지. ‘키가 참 크네’라면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많이 시키셨어요.” 이후에 중국 공연을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평양 명륜실업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1941년 6월,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용이란 예술이 아니라, 그저 유희이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춤을 춘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반대를 했죠. 혈혈단신 도쿄로 건너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호통을 쳤어요. 그때 도쿄에 큰아버지가 유학을 하고 계셨거든. 조카가 가면 좋아하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큰아버지도 ‘여기가 어디라고 춤을 배운다고 오느냐’면서 야단이셨죠.” 아버지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열네 살에 홀로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드디어 최승희의 춤 세계에 빠지는가 했는데, 그건 고된 생활의 시작이었다. 김 선생은 ‘집제자’라는 표현을 썼다.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무용 이외의 것까지 다 배우는 제자였죠. 수건 하나 빨아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큰 빨래를 다 했어요. 무대와 관련된 빨래는 다 제자들 몫이었지.” 김 선생은 대뜸 오른손을 펴보였다. “여기 손에 새카만 점, 보이죠. 이게 그때 남은 흔적이에요. 옛날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서 빨래를 했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를 하니 동상에 걸리는 건 다반사야. 이 점을 보면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기억나요. 후배라도 있으면 이런 일을 넘길 수 있을 텐데, 어디 후배들이 들어와야지.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싶어서 가출하는 소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춤에 대한 환상을 품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도쿄까지 오는 아이들을 최승희는 다 받아줬다. 그런데 그냥 놔둬도 알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제자 생활이 워낙 고되다 보니 버티는 아이들이 몇 안됐던 것이다. “선생님은 빨래까지 직접 다 해봐야 공연에 대한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특별히 개인 교습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승과 함께 무대에 서고 순회공연을 하면서 그 자체를 고스란히 전수받는 거죠.” 김 선생을 버티게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만든 건, “너 참 잘한다”라는 최승희 선생의 칭찬 한마디였다. 같은 집제자라도 언니와 동생의 구분이 분명하고 규율이 엄격해 감히 앞에 나서서 연습을 하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는 없었다. 선생은 수업을 받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언니들이 동작을 익힐 때는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사람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어릴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지요. 그러려면 실력이 먼저더군요. 손을 돌리는 동작을 한번 가르쳐주면 다 나갈 때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선생님처럼 하려고. 굉장한 연습벌레였죠.” 1년쯤 지나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194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단의 공연에서 김 선생은 ‘초립동’을 출 기회를 얻었다. 최승희가 1930년대에 만든 ‘초립동’은 어린아이가 장가 가는 것을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두둑하게 용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제기차기를 하는 발랄하고 경쾌한 모습을 그렸다. 무용수에게는 다소 과격한 동작이었다. 원래는 최승희가 추어야 했지만 담에 걸리는 바람에 누웠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제자 중 한 명을 대신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누가 할 수 있겠냐.” 모두 머뭇머뭇거렸다. 그때 김 선생이 용기를 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김 선생은 “현장에 같이 있던 안막(안필승, 1910~?) 선생이 ‘너 심장에 털났니?’라고 물을 정도로 대범한 도전이었다”고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 안에서 해보라며 개인지도를 해주셨죠.” 김 선생은 그때를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시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를 온 기자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다”고 칭찬할 정도로 잘해냈다. 최승희의 일본 지역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무대 훈련은 꾸준히 했지만, 이 공연이 김 선생의 공식적인 데뷔무대가 됐다. 무엇보다도 김 선생을 벅차오르게 한 건 처음으로 아버지가 자신의 공연을 봤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고향땅을 떠난 뒤 한 번도 밟아보질 못했다. 최승희무용단은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으니 집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일가친척이 돈을 모아 줘서 아버지가 도쿄로 오실 수 있었죠. 정말 오랜만에 뵈었는데, ‘무대에서 고개를 너무 쳐들지 마라’는 지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 보시니 그랬나봐요. 섭섭하면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이후 김 선생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조리 따라하고 무대 진행을 도맡아 하는 스승의 수족이 됐다. “수족은 제일 믿는 사람인 거죠. 집제자로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선생에게 옷을 챙겨주고 갈아입히고 모든 것을 함께하게 된 거예요. 스승과 지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된 데다 예술의 완성을 함께 할 수도 있게 된 거죠.” 김 선생은 1944년 최승희의 시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2~1996, 전 경희대 교수)과 결혼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김 선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안씨가 학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면서 서둘러 백년가약을 맺었다. 1945년 중국 순회공연을 할 때 해방 소식을 듣고, 이듬해 7월에는 스승 최승희-안막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 6·25전쟁 후 김 선생은 스승과 갈 길을 달리해 1951년 1·4후퇴 때 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실 친정이 평양인 김 선생에게는 ‘사상적 월북’이 아니라 집을 찾아간 것뿐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월북’ 무용가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사상적으로도 등진 시기에 스승 최승희가 북한 정부로부터 무용연구소까지 하사받은 ‘인민’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선생은 당시 일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스승을 떠난 데 대해서는 “예술적 차이”라고만 했고, 당시 일에 대해서는 그저 “어려웠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 서슬 퍼런 감시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예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1950년대 초 김 선생은 서울에서 박기홍의 승무와 이동안의 태평무·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하편에 계속).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김백봉은 1927년 2월 12일 4남 3녀 중 맏딸로 평남 기양에서 출생 1941년 일본 도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1944년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스승 최승희와 동서 관계) 1946년 6월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부소장 겸 상임안무가 1947년 평양 국립극장에서 제1회 김백봉작품발표회 1953년 서울 낙원동 김백봉무용연구소 설립 1954년 서울 시공관에서 김백봉 작품발표회(남한에서 창작활동 시작) 1965 ~ 1992년 경희대 무용과 교수 1981 ~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 ~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2005 ~ 2007년 서울시무용단 단장 2004년 최승희춤연구회 이사장 <수상> 서울시문화상(195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1981년), 서울올림픽 공로 대통령상(1988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1999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5년)
  • [열린세상] 진품, 가품(佳品) 그리고 창조경제/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진품, 가품(佳品) 그리고 창조경제/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꽃 피는 봄에 전북 남원을 다녀왔다. 대를 이어 온 장인이 만든 과일 깎는 칼과 주방용 부엌칼을 샀다. 품질에 비해 값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최근에 해외 유명 브랜드의 주방용품 판매점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색색으로 단장된 고급 주물 냄비가 그에 걸맞은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주물이라면 집집마다 하나쯤 있었던 가마솥의 전통이 있는 우리가 아니란 말인가. 무겁고 투박하다고 한편으로 밀려난 주물냄비가 비싼 고가로 수입되고 있단다. 무거울 텐데도 해외 유명 브랜드의 힘은 ‘가볍고, 편리함’의 실용을 당당히 뛰어넘고 있었다. 해외 명품가방, 구두가 시내 중심가 고급 백화점 안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버티고 있는데 우리의 수제화 장인들은 서울의 염천교 옆 꾀죄죄한 건물에서 우리 사회 ‘발전’의 울타리 밖에 있는 것처럼 박제화된 과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디자인과 브랜딩을 통해 소위 단순 고가품이 아닌 ‘명품(?)’이라는 후광까지 만들어 주면서 고수익을 올리도록 부추겨 주는 것도 모자라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진품 같은 가품을 구별해 가품을 찢어버리기까지 하고 있다. 진품 같은 가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인의 솜씨를 북돋아 그들도 자기 이름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도록 도와주기는 커녕 위조품을 만드는 범죄자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더 나아가 상류층들이 소비하는 해외 명품들의 천문학적인 가격을 공개하면서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제품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진품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숙련 과정 없이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소위 서구의 명품들은 다 전통을 기반으로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혁신을 거친 제품들이다. 반면에 비서구 국가들은 ‘전통’을 부정하면서 근대적 발전을 추구해 왔다. 그 결과 ‘ 따라잡기’에 급급하다 보니 진품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근대적인 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고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전통은 새롭게 들어오는 것이 자리잡을 빈 공간을 내주지 않는 방해물로 여겨졌다. 자국에서 버려진 비서구국가의 ‘전통’은 서구의 눈 밝은 디자이너나 사업가의 눈에 띄어 저작권과 특허의 법적 보장을 받고 다시 비서구 지역에 고가의 상품으로 등장한다. 전통의 기반 없이 무조건 따라잡는 것으로는 진품을 만들기가 어렵다. 최근 창조경제라는 말이 유행이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전통을 부정했듯이 창조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지워버릴지 걱정이다. 해오던 것을 더 다듬고 가치를 더 부여해 주는 것이 창조이지 다 지우고 나서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소위 선진국 유명 브랜드의 사례가 증명해 준다. 게다가 전통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동네 단아한 찻집에 장식되어 있는 전통 가구의 주물 손잡이 장식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있다. 주인이 고물로 나온 전통가구에서 장식만 떼어 다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손잡이의 아름다움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직했을 뿐 아니라 비율이나 균형 면에서도 완벽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도 않으면서 최선을 다해 무쇠를 두드리고 갈아서 아름다움을 다듬었을 장인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돈이나 명예와 관계없이 문고리에 자신의 인격, 자신의 느낌 그리고 우리가 공유했던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실었던 것 같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들인 정성에 대해서는 드라마에서까지 홍보해 주고 고가이지만 척척 소비도 해주면서 우리 장인들의 정성과 이야기에는 우리가 너무 인색하다. 그들은 전통사회에서는 신분제의 굴레에 갇혔고, 현대사회에서는 시대와 맞지 않는 것으로 낙인 찍혀 스러지고 있다. 수입 명품(?)을 대접해 주는 것의 반만이라도 우리의 진품을 만들어 낸 사람, 만들어 낼 사람, 그리고 그 ‘물건’에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전통은 박제된 채로 박물관에 모셔두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혁신을 가하는 것 그리고 정성을 들여 다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진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원하고 북돋아 주는 것이 창조경제가 아닐까?
  • [주말 인사이드] 쫀디기·꿀맛나 “우리가 4대악이라고?”… ‘문방구 과자’ 눈물의 폐업

    [주말 인사이드] 쫀디기·꿀맛나 “우리가 4대악이라고?”… ‘문방구 과자’ 눈물의 폐업

    “씁쓸하죠. 요즘 같아서는 차라리 잘 그만뒀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26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주택가. 1970~80년대 학교 앞 ‘불량식품’으로 이름을 날렸던 A제과의 공장은 텅 비어 있었다. A제과는 ‘빨대과자’로 등하굣길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과자업체. 2010년 공장 가동을 멈춘 김모(58) 전 사장은 3년간 남겨둔 공장 기계를 지난주 고물상에 내다 팔았다. 김 전 사장은 “아버지가 회사를 세웠을 때부터 40년 넘게 해온 일인데 아쉬움때문에 쉽게 기계를 정리할 수 없었다”면서 “자식 같은 기계들을 용광로에 밀어 넣은 것 같아 며칠을 끙끙 앓았다”고 했다. 문방구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과자업체가 문을 닫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 전 사장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먼저 학교 앞 문방구와 구멍가게가 꾸준히 줄어들면서 판로가 막혔다. 게다가 대기업 제품이 확산되면서 ‘영세 업체에서 만든 과자들은 깨끗하지 않고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정기적으로 품질 검사를 받으며 식품위생법 등 관련 법령을 충실히 지켰지만 한 번 덧씌워진 ‘불량’의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김 전 사장은 “불량식품을 단속할 때만 되면 구청 직원 등이 만만한 우리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면서 “대기업에서 만드나 영세 업체에서 만드나 과자의 성분은 같다. 전기밥솥에서 만들든 가마솥에서 만들든 같은 밥 아니냐”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한 가지 악재가 더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성폭력과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과 함께 이른바 ‘4대악’으로 규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의 단속 강화에 애먼 영세 과자업체들도 불똥을 맞은 것이다. 김 전 사장은 “처벌받아 마땅한 비위생 업체도 있지만 양심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장사하는 곳도 많다”면서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고 일했는데 요즘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현재 소규모 과자업체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도 열변을 토했다. ‘맛기차콘’과 ‘호박 꿀맛나’ 등을 만드는 한진식품의 김영기(42) 대표는 “‘영세 업체는 더러울 것’이라는 편견 탓에 중소기업 매출은 줄고 대기업 매출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적법한 신고 절차와 위생 검사 등을 마쳤는 데도 ‘불량식품’이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 직원들까지 ‘불량직원’이 되는 기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쓰거나 원산지를 속여 파는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 대기업보다 부족한 것은 포장과 마케팅뿐”이라면서 “영업 허가를 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불량식품이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쫀디기’를 만드는 남일제과의 박성렬(42) 부장도 “몇 년 전부터 규제가 심해져 위생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다”면서 “대기업 제품과 공정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온다는 사람 없다고 마음이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천에서 옥수수 과자를 만드는 한모(45) 사장은 “위해식품과 영세업체 제품은 구분해야 하는 데 불량식품으로만 매도되고 있다. 상인들끼리 모여 호소문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얼마 전에 경찰들이 공장에 찾아왔다가 소득 없이 돌아가면서 자기들도 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처럼 영세 과자업체가 때 아닌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범정부 차원의 불량식품 단속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검찰청, 지방자치단체 등은 상설 합동단속체계를 구축해 올 6월까지 집중적인 단속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경찰 역시 100일동안 부정·불량식품 집중단속을 실시하겠다며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300여명을 식품 위해사범으로 적발했다. 문제는 ‘불량식품’의 애매한 정의와 실적 중심의 단속이다. 식약처는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불량식품을 ‘사전적으로는 비위생적이고 품질이 낮은 식품을 의미하나, 통상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장하는 모든 식품을 의미한다’고 모호하게 정의해 빈축을 샀다. 서울 시내의 한 일선 경찰은 “솔직히 어디까지 단속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면서 “문책까지 운운하며 압박하는데 실적이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한 구청의 단속 담당자는 “실적 때문인지 불량식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달라는 경찰 등 관계 기관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세 업체의 제품을 불량식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오세욱 국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느낌상의 불량식품과 실제 불량식품은 다르다.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거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함유된 제품이 불량식품”이라면서 “똑같이 지자체 등의 관리·감독을 받는 제품인데 단순히 값이 싸고 문방구에서 판매한다는 이유로 불량식품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창순 중앙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도 “천연색소와 합성착향료 등은 대기업이 만드는 과자에도 똑같이 들어가는 성분”이라면서 “특정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만 주의를 기울이면 섭취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식약처가 품질 검사 기관으로 공식지정한 한 대학 산학협력단의 연구원 역시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은 모두 자가품질검사를 통과한 제품들로 이른바 ‘불량식품’들도 절대 다수가 검사를 거친다”면서 “검사를 통과한 제품들은 식약처에서 ‘이 정도면 판매해도 된다’고 허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속 때문에만 추억의 과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준비물 없는 학교’ 등의 시행으로 주요 판매처였던 문방구 수가 크게 줄어든 것도 타격이 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2만 4881개였던 소매문구점은 2011년 1만 5750개로 약 37% 감소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45년째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구(75)씨는 “안 그래도 장사가 안됐는데 식품 단속 때문에 더욱 힘들어져 가게를 급매로 내놨다. 젤리와 껌 등 5개를 팔던 과자류도 1개로 줄였다”면서 “슈퍼에서는 팔아도 되는 과자를 학교 주변 문방구에서는 팔면 안 된다는 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충남 공주에서 과자를 만드는 조모(34) 과장은 “문방구가 줄어들면 판로가 막힐 수밖에 없다. 동네 슈퍼에라도 납품을 해볼까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시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김희연(41·여)씨는 “문방구 등에서 파는 과자들은 색깔도 자극적인 데다 성분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들이 많다”면서 “대기업 제품은 문제가 생기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만 영세 업체들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 우리가 불량식품들을 먹었던 것도 먹을 게 그것밖에 없어서였던 게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최정은(32·여)씨는 “이런 과자들을 먹고도 잘만 컸는데 불량식품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면서 “4대악이라면서 과자업체만 단속하기 보다는 다른 중요한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찬반을 막론하고 사라져가는 추억에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같다. 직장인 홍민규(26)씨는 “볼 때마다 학창시절이 떠올랐는데 추억의 먹거리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광(39)씨는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면서 “‘달고나’도 ‘쫀드기’도 아쉬워하는 것은 언제나 나이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여전히 집 밖에 나서기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장애인연금 등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를 꾸준히 확충해 왔지만 지난해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부실한 장애인 복지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보건복지부가 가족 중 장애인이 있는 3만 8231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소득과 취업률 등은 비장애인들의 절반 수준이다.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8만 2000원으로 당시 전국 월평균 가구 소득(371만 3000원)의 53.4%였으며 장애인의 취업률은 35.5%로 전체 취업률(60.1%)의 절반을 약간 웃돌았다. 장애인이 일하는 직종은 단순 노무 종사자(30.1%), 기능원 및 기능 종사자(12.5%), 장치·기계 조작 조립(12.4%) 등 단순 노무 위주였으며 이들의 임금은 월 142만원에 그쳤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중증장애아동 돌봄서비스 등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가 확충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일상생활과 사회 활동에서 불편을 경험하고 있었다. 장애인 중 27.5%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사람의 84.2%가 가족 구성원이었다. 집 밖에서 활동할 때 불편하다는 장애인은 40.7%에 달했으며 불편한 이유는 장애인 편의시설 부족(54.9%), 외출 시 동반자가 없어서(31.9%), 주위 사람들의 시선(11.1%)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정부에 가장 요구하는 사항은 소득 보장(38.2%), 의료 보장(31.5%), 고용 보장(8.6%), 주거 보장(8.0%) 등이었다. 복지부는 새 정부 국정 과제에서 ‘장애인의 권익 보호 및 편의 증진’이라는 구호 아래 다양한 계획을 내놓았다. 장애 유형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올해 안으로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기로 했으며 그동안 장애인들에게 낙인감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된 장애등급제는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그 이전에 6등급으로 세분화된 등급 체계가 경증과 중증의 2단계로 단순화되고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와 환경적 요인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변화된다. 그 밖에 활동지원제도의 대상과 급여가 확대되며 중증 장애인을 위한 응급 안전 시스템이 구축된다. 정충현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은 “장애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다른 부처의 장애인 국정 과제도 원활히 이행되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여전히 집 밖에 나서기도, 입에 풀칠도 어렵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장애인연금 등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를 꾸준히 확충해 왔지만 지난해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부실한 장애인 복지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보건복지부가 가족 중 장애인이 있는 3만 8231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소득과 취업률 등은 비장애인들의 절반 수준이다.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8만 2000원으로 당시 전국 월평균 가구 소득(371만 3000원)의 53.4%였으며 장애인의 취업률은 35.5%로 전체 취업률(60.1%)의 절반을 약간 웃돌았다. 장애인이 일하는 직종은 단순 노무 종사자(30.1%), 기능원 및 기능 종사자(12.5%), 장치·기계 조작 조립(12.4%) 등 단순 노무 위주였으며 이들의 임금은 월 142만원에 그쳤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중증장애아동 돌봄서비스 등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가 확충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일상생활과 사회 활동에서 불편을 경험하고 있었다. 장애인 중 27.5%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사람의 84.2%가 가족 구성원이었다. 집 밖에서 활동할 때 불편하다는 장애인은 40.7%에 달했으며 불편한 이유는 장애인 편의시설 부족(54.9%), 외출 시 동반자가 없어서(31.9%), 주위 사람들의 시선(11.1%)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정부에 가장 요구하는 사항은 소득 보장(38.2%), 의료 보장(31.5%), 고용 보장(8.6%), 주거 보장(8.0%) 등이었다. 복지부는 새 정부 국정 과제에서 ‘장애인의 권익 보호 및 편의 증진’이라는 구호 아래 다양한 계획을 내놓았다. 장애 유형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올해 안으로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기로 했으며 그동안 장애인들에게 낙인감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된 장애등급제는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그 이전에 6등급으로 세분화된 등급 체계가 경증과 중증의 2단계로 단순화되고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와 환경적 요인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변화된다. 그 밖에 활동지원제도의 대상과 급여가 확대되며 중증 장애인을 위한 응급 안전 시스템이 구축된다. 정충현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은 “장애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다른 부처의 장애인 국정 과제도 원활히 이행되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보수와 진보 뛰어넘은 종교와 피부색 극복한 새 공동체, 만들 수 있을까

    문제의식은 제목 그대로다.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알폰소 링기스 지음, 김성균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저자는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이들이 공동체를 구성할 가능성을 탐구해 보자고 제안한다. 연대, 연합, 코뮌 같은 기존 논의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다. 저자는 미국인임에도 유럽에서 현상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몇몇 단어나 문장은 원문의 복잡함 때문인지 아니면 번역 수준이 고르지 못한 탓인지 읽기 쉽지 않지만, 대부분의 문장들이 좋다. 특히 3장 ‘얼굴들, 우상들, 물신들’, 4장 ‘세계의 잡음’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는 합리적 공동체의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숭고한 소통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모든 소통과정에는 상대에 저항하고 상대를 침묵시키기 위해 행사되는 강제력이 존재”한다. 그래서 “폭력을 단념하고 소통을 시작하는 두 개인”은 문명화된 것이기도 하지만 “국외자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 폭력적 관계로 진입”한다. 저자는 이를 소크라테스 공동체, 투명한 루소주의 공동체라고 부른다. 억압적 정치권력일수록 동원을 소통이라 우겨대면서 자신의 진정성을 유달리 강조하는 현상은 여기서 벌어진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은 비국민으로 낙인 찍힌 자들에겐 오직 공포, 절망, 포기만 안겨 주겠다는 것인데도. 그래서 재밌는 비유가 나온다. “녹음된 백색소음이 우주캡슐들에 추가됐고, 백색소음이 녹음된 음반들이나 테이프들이 방음처리가 된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인간이나 생물들에 판매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바흐의 음악에는 음악만 있는 게 아니라 “신을 찬양하고, 공덕과 구원을 얻으며 자신이 낳은 열두 자녀의 무사안녕을 기도하고, 텔레만과 퍼셀과 경쟁하며, 자신의 후원자들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모든 도시의 성공적인 크리스마스 축제에 공헌하는” 소리가 담겼기에 명작이다. 이런 요소를 제거한 오늘날 전자음악은 그냥 일회용이다. 잡음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경청 대상이란 주장이다. 가장 미약한 잡음은? 죽어가는 이들이 내는 소리다.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이 유일하게 공유하는 것은 오직 ‘죽음’이다. 그래서 “병원에서든 빈민촌들에서든 외롭게 홀로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하는 사회는 급속히 자멸하는 사회다.” 그래서 새로운 공동체의 출발점은 죽음이다. 요즘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쇄 결정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1만 5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북치는 아이들… 제가 오히려 ‘힐링’ 받죠

    북치는 아이들… 제가 오히려 ‘힐링’ 받죠

    “아이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자신의 인생을 바로 볼 때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서 ‘힐링’을 받습니다.” 11일 ‘2013년 사람, 사랑 세로토닌 드럼클럽 합동 창단식’이 열린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북 영주에 있는 영광중학교 드럼클럽 1기 멤버들의 축하 공연이었다. 한때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 아이들의 모습에선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이 여기에 있기까지 그들 곁에는 영광중 황재일(54) 교사가 든든히 서 있었다. 황씨는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친다. 하지만 인도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램 니쿰브 같은 미술 교사의 모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2007년부터 3년 동안 학생주임을 도맡아 했다. 니쿰브와 공통점도 하나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제 학생들을 위한 드럼클럽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황씨는 문제 학생 대부분이 평범한 가정환경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한 부모 가정이거나 생계 문제로 부모가 오랜 시간 집을 비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학생들이었다. 황씨는 “아이들이 집에 가면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PC방이나 노래방에 자주 간다”면서 “그 시간에 북이라도 치게 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피곤함 때문에 일찍 자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황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세로토닌 드럼클럽’ 1기 멤버인 김태현(17)군도 중학교 입학 첫날부터 학급 친구들에게 48만원의 ‘삥’을 뜯었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다. 황씨에게는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 현재 드럼클럽 멤버인 김모군이 올해 안에 오토바이 절도에서 손을 씻는 일이다. 1년에 오토바이를 50대씩 훔치던 김군이 지난해엔 5대로 줄였다고 한다. 황씨는 “김군이 드럼클럽에 가입한 후 농땡이도 안 피우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면서 “소년원에 갈 뻔했던 아이들이 바로 자라 주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감리교회, 일제강점기 개신교계 가장 먼저 신사참배 77년만에 공식 회개

    일제강점기 국내 기독교 교단 중 가장 먼저 신사참배를 했던 감리교회가 뒤늦게 회개 결의를 했다. 77년 만의 공식 결의인 이번 감리교회의 회개가 교단 전체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회개 결의가 나온 건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은평교회에서 개최된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제33회 서울 연회에서다. 연회에 참석한 1500여명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신사참배 회개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이와 관련한 공동기도문을 함께 낭독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할 우리 감리교회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강요에 무릎 꿇고 제일 먼저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다”면서 “감리교회가 일제 군국주의 이념을 선전하는 나팔수가 됐고 젊은이들을 전쟁 마당으로 내몰아 고귀한 생명들을 희생당하게 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해방 이후 감리교회의 행보와 관련해서도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정권에 빌붙어서 부패한 독재정권 연장을 위해 애썼다. 독재정권을 진리의 말씀으로 심판해야 할 교회가 예언자적 사명을 잃어버리고 부정과 부패구조의 일원이 되는 큰 죄를 민족과 역사 앞에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감리교회가 최초의 신사참배 교단으로 낙인 찍힌 건 1936년 6월 양주삼 총리사가 감리회보에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닌 국민의례”라는 일제 논리를 그대로 따른 글을 발표하면서다. 1938년 구세군과 장로교, 천주교가 신사참배를 총회에서 결의하기 이전의 일이다. 이후 1938년 10월 양주삼 총리사와 총대 및 목회자 평신도들이 남산 조선신궁에 찾아가 신사에 참배한 것으로 기록된다. 감리교단은 이번 서울 연회의 회개 기도문 채택을 놓고 논란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감독회장 선거사태로 교단이 혼란스러운 만큼 새 감독회장 선출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 연회 김영헌 감독이 “신사참배가 서울 연회 안에서 일어난 일인만큼 서울 연회부터 머저 참회한 뒤 총회 차원에서도 회개하자”고 강력히 주장해 회개 결의가 성사됐다. 따라서 연회 차원의 회개가 감리교단 전체로 확산될 수 있을지 여부는 새 감독 선출의 과정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국제규범 지켜 ‘불법 조업국’ 낙인 벗어나야

    한국이 원양어선 불법조업국가로 지정돼 국제 망신을 샀다. 원양어선들이 남극해와 아프리카에서 불법조업을 일삼다 미국 상무부에 의해 불량조업국으로 지정돼 대책을 마련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받은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엊그제 국회에 보고함으로써 밝혀졌다. 가나, 탄자니아, 에콰도르 등 저개발국들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니 세계 3위의 원양강국인 우리로선 창피한 일이다. 이래서야 우리가 어떻게 중국 어선들의 서해 불법 조업을 떳떳이 단속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나타난 우리나라 20개 원양업체, 34개 선박의 불법 어업 행태는 바다의 무법자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인성실업의 인성7호는 2011년 남극해에서 세계적 보호어종인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메로)를 어획 제한량의 4배가량 초과 남획한 사실이 적발됐지만, 불법조업 선박으론 지정되지 않았다.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에 따르면 불법조업에 대한 제재는 만장일치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서부 아프리카 해역에서는 어업권을 위조하거나 연근해에서 현지 어민들이 사용하는 카누로 조업하는 등 여러 가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동원산업의 참치어선 프리미어호는 라이베리아 수역에서 위조 영업허가권으로 불법 어업을 하다 적발됐으며, 우리 정부에는 문제없다는 위조공문을 보내 무마하려 했다. 그린피스는 이 지역의 수산물은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 주민들의 주요 식량 자원이라며 불법조업은 식량 안보와 연안 마을주민들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원양어선의 불법조업 근절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원양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불법어업에 대한 과태료를 무겁게 물리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또 원양어선에 위치추적장치를 설치하는 등 원거리에서도 점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원양업계도 법망을 피해가며 조업해도 괜찮다는 개발시대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 각국이 해양자원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 서로 힘을 모으고 있는 마당에 국제규범을 어기며 조업하다간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보스·조직원-학폭 친구… 화해할 수 있을까

    보스·조직원-학폭 친구… 화해할 수 있을까

    누구나 쉽게 용서를 말하는 시대다. 하지만, 누구도 쉽지 않은 게 용서다. EBS에서 11일 밤 9시 50분 방송하는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용서’는 갈등 당사자들이 사과와 용서를 위해 애쓰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다. 1987년 이른바 ‘용팔이 사건’으로 불리는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이 있었다. 통일민주당 지구당에 난입한 폭력배들의 중심에는 전주파 보스 김용남(일명 ‘용팔이’)이 있었다. 그의 밑에서 칼잡이로 활동한 길정운은 폭력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15년 옥살이를 했다. 길정운은 보스 김용남이 자신을 돌봐주지 않은 것에 대해 복수의 칼을 간다. 최근엔 김용남이 금전적으로도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에 실제로 칼을 품고 찾아간 적도 있다. 반면, 김용남은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 그는 진실한 사과를 한다면 길정운이 받아주리라 생각한다. 과연 길정운은 지난날을 잊고 그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열여덟 동갑내기 정욱과 정헌. 문제아였던 정욱의 괴롭힘으로 정헌의 학창시절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정욱은 4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재혼한 아버지마저 가족을 돌보지 않아 할머니, 형과 어렵게 생활해 왔다. 방황의 길에 들어선 정욱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공갈과 갈취, 폭행을 서슴지 않는 비행청소년이 되었고 소년원에 6개월 수감됐다. 소년원에서 나온 후 정욱은 잘못을 반성한다. 특히 친구 정헌에게 어떻게든 사과를 하고 싶지만 용기 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정헌의 학교생활은 정욱 탓에 꼬였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문제아로 낙인 찍힌 정헌은 갑작스러운 정욱의 사과를 의심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1972년 춘천파출소장 딸(9세)이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정적인 증거는 동네 만화가게 주인이었던 정원섭 씨의 친아들 정재호 씨(당시 10세)의 증언. 졸지에 범인으로 몰린 원섭씨는 15년간 억울한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1987년 출소하고 검찰과 소송 끝에 39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감옥에 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큰아들에 대한 원망을 누를 길이 없다. 한편, 아버지의 15년 옥살이로 자신도 ‘죄책감의 감옥’에서 살았다고 하는 아들 정재호 씨. 사건 당시 경찰이 시키는 대로 연필 한 자루에 이빨 자국을 낸 것이 아버지를 감옥에 가게 했다는 사실을 안 후, 재호씨 역시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했다. 둘은 과연 용서와 화해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국민생활안전지도 공개 신중해야 한다

    안전행정부가 최근 범죄·사고 다발 지역을 표기한 ‘국민생활안전지도’(안전지도)를 제작해 공개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안전지도가 만들어지면 범죄·사고 다발 지역을 손쉽게 파악해 범죄나 사고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지역별 격차가 드러나 주민 반발 및 위화감을 불러오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 만큼 안전지도를 범죄와 사고 방지에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일반 공개는 여론을 수렴해 신중히 결정해야 하리라고 본다. 안전지도에는 학교폭력이나 성폭력 범죄, 교통사고는 물론 산사태와 폭설 같은 자연재해 등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모든 정보가 지역별로 담긴다. 올해 말까지 세부 계획을 확정한 뒤 내년에 일부 지역에 시범 운영, 2015년 이후엔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게 안행부의 복안이다. 부처별로 분산·관리되던 안전 관련 정보가 통합되면 안전사고 대응과 예방에 요긴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범죄지도를 만든 뒤 범죄 예방 정확도가 71%에 이르는 등 성과를 거뒀다고 하니 안전지도의 효용성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안행부는 안전지도가 만들어지면 안전에 대한 지역 주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지역 간 비교도 가능해져 지방자치단체의 안전 확보 노력이 강화되는 부수적 효과도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에 유의해야 한다. 안전지도를 만들면 지자체별 순위가 매겨져 서열화되게 된다. 범죄나 재해 다발 지역은 안전취약 지역이라는 오명을 쓰게 돼 기피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집값 하락 등 재산상 불이익을 당하면 지역 주민들은 반발할 게 뻔하다. 그나마 재해 지역은 예산을 들여 보강할 수 있지만 범죄 취약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범죄가 확산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우범 지역으로 낙인찍히면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지도 모른다. 안행부는 소방방재청이 2006년 ‘재해지도’를 작성하려다 지자체들의 반발로 실패한 것을 교훈으로 삼기 바란다. 범죄 예방이라는 눈앞의 효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지역에 대한 낙인이 가져올 부정적 요인 등도 면밀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 성폭력등 ‘범죄지역 지도’ 추진…”예방 효과”’낙인 부작용” 논란

    정부가 ‘생활안전지도’라는 이름으로 범죄 다발 지역을 표시하는 ‘범죄 지도’를 만들겠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범죄 예방 및 적극 대응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는 반면 개인정보 침해, 해당 지역 기피 현상 등의 문제가 우려된다.  안전행정부는 5일 청와대에서 ‘국민생활안전지도’ 제작을 비롯해 학교폭력과 성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등 4대악 감축목표관리제, 공공정보 데이터 공개 확대, 지방소비세 10% 확대를 통한 지방재정 건전성 강화 등을 담은 올해 업무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안행부는 올해 일부 시·군·구 등 시범지역을 선정해 생활안전지도를 제작한 뒤 성과를 분석하고 향후 대상 지역을 늘려 갈 계획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범죄 지도 및 현재 시행되고 있는 상습 침수지역지도의 모델을 원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 두 차례에 걸쳐 경찰청, 국회 등에서 범죄 지도 제작을 검토했다가 시민사회, 지역사회 등의 반발 속에 무산됐음을 감안하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찬우 안행부 제1차관은 “생활안전지도 제작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의 범죄 예방 및 대비 노력이 강화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행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는 등 심층 검토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안행부는 또 지자체별로 분산 관리되고 있는 과세자료에 대해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증세 없이도 지방세입을 연간 7000억원 확충할 수 있도록 하고, 부가가치세 중 지방소비세 비중을 현재 5%에서 10%로 확대해 지방세입을 2조 2000억원 늘리는 방안도 기획재정부와 협의할 예정이다. 또 지방세 비과세 감면 비율을 현행 22.5%에서 국세 수준인 15%로 줄여 연간 2000억원을 더 확보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의 연간 세입은 모두 3조 1000억원이 더 늘어나게 된다. 2011년 기준 28조원에 달하는 지자체 채무는 2017년까지 25% 감축해 21조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인재풀 25%’ 굴레 벗자/오승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인재풀 25%’ 굴레 벗자/오승호 논설위원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로 유명한 토머스 프리드먼은 우리나라에서 열린 ‘2009년 그린 포럼’에서 “한국으로선 천연자원이 없는 게 오히려 행운”이라고 역설적 주장을 했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땅을 파서 발전하려고 하지만, 한국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는 두뇌를 개발해 앞서갈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해 녹색혁명을 시도해야 할 시기이며, 한국은 두뇌 개발로 녹색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설파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어떤 부처는 이명박 정부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몇몇 부서 명칭에서 ‘녹색’이라는 용어를 빼버리기는 했지만, 여하간 우리나라 인재(人材)의 우수성을 극찬한 예일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예로 들며 미국의 교육 개혁을 강조하곤 했다. 2009년 3월에는 “미국의 어린이들은 한국의 어린이들보다 매년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1개월가량 적다”고 지적했다. 미국 교육 개혁의 본보기로 한국을 거론했다. 우리 교육이 입시 및 주입식 위주 등 개선할 점이 적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우리의 교육 열정을 부러워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김용)를 한국인이 맡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공직사회에도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 있다. 지금 장차관급들이 20대였을 때는 공무원들의 인기가 더했다. 그런데 왜 정권이 바뀌면 인재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곤 할까. 인재들을 소홀히 여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부처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고위공무원 A씨는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것에 맞춰 청와대를 나와 지금은 놀고 있다. 일을 잘해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됐건만 이젠 공무원 신분이 언제 없어질지 모를 상황에 처했다. 청와대로 파견됐기에 원래 근무 부처에서 ‘초과 인원’에 해당된다고 한다. A씨와 비슷한 사례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약삭빠른 공무원들이 정권 후반기 청와대 파견을 기피하는 이유다. 묵묵히 일하는, 정무직도 아닌 일반공무원이 정권 교체로 하루아침에 이방인 취급을 받는 풍조는 사라져야 한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돼 있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충성을 다한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 사람으로 낙인찍는다면 공무원을 정치적 인물로 만들기 좋은 토양을 제공하는 꼴이 된다. 이러다가 공직자 출신들이 외국계 기업으로 눈을 돌리기라도 하면 국가적으로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 사외이사로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인사는 대선이 끝나자 일찌감치 사의 표명을 한 선배 공무원으로부터 “미리 사표를 던지지는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러나 기관장 자리를 좀 지키다 스스로 물러났다. 일반 대기업에서는 임원이 먼저 사표를 쓰겠다고 하는 것이 총수를 배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이 때문에 총수가 먼저 그만두라고 하기 이전에는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공직사회는 알아서 사표를 쓰는 것이 미덕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공기업 인사 태풍이 예고돼 있다. 최고경영자(CEO)들은 좌불안석이고, 직원들의 관심은 CEO 교체 여부에 쏠려 있다고 하니 생산성은 떨어질 것이다. 인사검증 시스템이나 인력 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재풀의 모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여야를 구분하면 인재풀은 어림잡아 절반으로 줄어들고, 다시 계파를 따지면 4분의1, 즉 전체의 25%로 쪼그라든다. 우수한 두뇌들이 아예 검증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인적 자원의 낭비다.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인사 난맥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연임제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경영 실적이나 전문성, 도덕성 등에서 문제가 없다면 임기를 채우게 하고, 후임자는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물을 임명하는 식으로 인사를 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으면 한다. osh@seoul.co.kr
  • “전국노래자랑 296번 갔죠”

    “전국노래자랑 296번 갔죠”

    11년 동안 296차례나 KBS 전국노래자랑을 직접 참관한 노부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달 말이면 300회를 채운다. 일요일 낮에 방영되는 KBS 전국노래자랑 ‘광팬’은 전북 익산시 오산면 이병철(75)·박정자(73)씨 부부. 이 부부는 1993년부터 11년째 전국노래자랑이 열리는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이 부부는 노래자랑 녹화가 열리는 날이면 모든 일을 제쳐놓고 현장에 나타난다. 현장에 도착하면 바로 빨간 커플티로 갈아입고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신나게 춤을 춘다. 노부부가 나타나면 사회를 맡은 송해씨가 “이분들이 바로 전국노래자랑 홍보대사”라고 주민들에게 소개할 정도다. 이씨 부부가 전국노래자랑과 인연을 맺은 건 의사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아내 박씨에게 운동하라고 권하자 취미 삼아 녹화현장을 찾으면서부터다. 농사일에 지친 이들에게 유일한 낙인 전국노래자랑 구경은 최저 비용으로 이뤄진다. 철저한 원칙은 ‘무박 여행’이다. 자가용 차량이 없는 노부부는 경비 절감 차원에서 열차와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식사는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이 때문에 부부가 전국노래자랑을 구경하는 데 드는 경비는 회당 평균 3만 3000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씨 부부는 “우리가 돈이 많아 전국노래자랑 구경을 다닌 게 아니라 열정과 부지런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