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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안전문화 추진協’ 출범

    대구시가 안전한 도시 만들기에 발벗고 나섰다.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지하철 참사 등으로 낙인 찍힌 사고도시란 오명을 벗고 새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안전한 사회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24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대구교육청과 대구경찰청 등 유관기관 및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전문화운동 추진 협의회’를 출범시켰다. 김범일 시장과 이기환 전 소방방재청장 등 공공기관·시민단체 관계자 47명으로 구성됐다. 안전협의회는 통합안전관리체계 구축, 안전 인프라 및 투자 확충, 안전문화 확산 및 안전교육 활성화, 안전강화를 위한 선진제도 도입 등 4대 전략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16개 중점 추진 과제를 선정했다. 또 사회 전반의 안전 불감증 해소와 시민 안전의식 향상 등을 위한 다양한 범시민 안전문화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짐짓 속내를 떠보려다가 짐을 떠안게 된 배고령이 봄 꿩 제 울음에 놀라듯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치는데, 켕기는 구석이 있다 보니 손사래가 과장되어 대중이 없었다. 정한조는 아니래도 짐을 떠안길 작자가 나타나서 잘되었다 싶어 손사래를 치는 배고령의 손을 허공에서 잡아 앉히었다. 정한조는 발명할 틈도 주지 않고 윽박지르고 들었다. “아니 임자, 부리는 먼저 헐어놓고 발뺌은 왜 하나? 나로 말하면 오지랖 챙길 겨를도 없다는 것을 임자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구월이 중신애비는 자네가 맡아서 혼사를 성사시키도록 하게. 성사만 시킨다면 술값 용채는 내가 책임을 짐세.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우리 행중에 임자같이 신실한 중신애비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네.” “아닙니다요. 월천댁에게 허튼소리 몇 마디 했다가 쥐어박히고 나면 그 망신살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호랑이를 그리려다 똥개를 그려 면목이 없게 된 배고령이 머쓱한 얼굴로 아닌 보살하고 간신히 접소를 빠져나오긴 하였는데, 등골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울타리 밑에 앉아 담배를 연거푸 두 대나 죽이고 나서 도방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자리에 있는 이웃 숫막을 찾았다. 천봉삼은 무릿매를 맞아 얻은 장독이 삭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휘진 몸뚱이에 간혹 가다가 뒤틀린 오장육부를 죄다 쏟아낼 듯 토하곤 했지만 치명적인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간병이 알뜰하던 월이는 아직까지 몰골이 파리하고 초췌하였으나 다소 기운을 차리고 도방에서 시키는 대로 동자치 노릇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적굴에서 붙잡혀 와서 엄살을 부리는 늙은이들 수발에도 품앗이를 아끼지 않았다. 음성도 침착하고 두길보기하지 않는 처신이 처량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정한조도 뒤를 싸주는 것 같았다. 배고령이 머쓱한 얼굴로 나간 뒤에 턱을 고이고 앉아 있던 정한조가 뒤뜰에서 궁싯거리는 만기를 불러 앉히었다. 불러 놓고 만기의 기색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정한조의 입에서 천만뜻밖의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만기… 자네 본래 이름이… 연임이 아니던가?” 그 말이 떨어지자, 멀뚱한 얼굴로 앉아 있던 만기가 금방 파랗게 질려 얼른 고쳐 앉으며 정한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적당을 소탕한답시고 북새통을 벌이느라,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네만, 샛재 비석거리에 있는 월천댁 말일세. 얼마 전에 임자를 데릴사위 삼겠다고 나더러 정색하고 중신애비가 되어 달라는 청을 넣었다네.” 느닷없고 어처구니없어 말구멍이 막혀버린 만기가 대꾸를 못 하고, 처연하게 정한조를 쳐다만 보는데, “임자의 본색이 계집사람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 행중에서 나 하나뿐이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소금 상단에 끼어들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소년 때부터 변복으로 사내 행세하고 있지만, 나 역시 이런 생뚱맞은 일이 생기리라고는 미처 예측을 못 했네.” 평소에는 정한조 앞에서 우물쭈물 얼버무리기 잘하던 만기가 그 대목에 이르자 분명한 어조로 말하였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는데, 하찮은 일로 본색을 드러낼 까닭이 없습니다.” “임자의 심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차제에 본색을 밝혀 월천댁이 일찌감치 단념토록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가. 월천댁으로 말하면 십이령길을 넘나드는 우리 행중과는 20년 가까운 인연을 맺고 있어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아닌가. 식솔이나 다름없지. 그런 사람에게 오래도록 딴청 피워 속내를 괴롭힌다는 것도 도리가 아닐세. 뿐만 아니라, 지금 접소에서 동자치 노릇하는 월이란 아낙네 말일세. 그 여인네를 지켜보자니 매우 총기도 있고 심덕도 무던해서 같은 계집사람으로서 서로 심금을 털어놓고 의지하고 살아도 무방할 것 같으니 내가 권할 때, 아주 본색을 밝혀버리면 마음 편할 것 같지 않은가.” “지금 와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니? 그럼 평생 동안 남장으로 행세하며 살겠다는 것인가? 언젠가는 본색을 밝혀야 하지 않겠나. 본색을 밝혀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월천댁 일은 시생이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밖에서 서성이다가 엿듣게 되었습니다만, 배고령이 그 댁 구월이에게 정분을 둔 것 같습니다. 배고령이 야밤에 월이의 손목을 낚아채서 집 밖으로 나가 정분 나누는 것을 우연히 엿본 일도 있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세상에 비밀이 없군그려. 그 말이 적실한가?” “뉘 앞이라고 거짓 발고하겠습니까.” “그것 참…그런 일이 있었군.” “월천댁 일은 시생에게 맡겨주십시오. 사내 행세하는 것이 몸에 배어 그지없이 편안할 뿐 아니라, 딱히 염두에 둔 남정네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 행중과는 한 식솔이나 다름없는 나귀들에게도 정이 들어서 떨어져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생에게 낙이 있다면 나귀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나귀들도 시생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마도 뿔뿔이 흩어져 사방으로 튈 것 같습니다. 말이 없어 그렇지 눈치와 속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시생과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이번 일은 더이상 거론하지 말아주십시오. 나귀들과 동행으로 도감 어른을 모시고 작반하는 것이 시생에겐 더없는 낙인데 어찌 하찮은 일로 시생을 내치려 하십니까.” 그때, 정한조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만기를 나무랐다. “그만 하게…임자의 고집도 어느새 나귀들 뺨치겠군그려. 그렇다면 만기가 배고령과 구월이 혼사가 무사히 맺어지도록 중신애비가 되어주면 좋겠군. 하냥다짐을 해도 좋겠지?” “도감 어른께서 더이상 시생을 두고 거론하지 않으시면 주선하겠습니다.”
  • ‘이대 스타벅스 변태남’ SNS서 논란

    ‘이대 스타벅스 변태남’ SNS서 논란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있는 커피숍에 자주 온다는 이유로 한 남자가 ‘변태남’으로 낙인찍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일 이화여대 대학원생인 정모씨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이화여대 다니는 사람은 다 아는! 이화여대 ECC 스타벅스 변태남. 광화문 스타벅스 앞에서 대 발견! 헐! 사회생활도 하시고, 여자친구 분도 있으신? 아 나 진짜 미친다 눈썰미”라는 글을 올렸다. 특히 정씨는 이 남자가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성과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공개해 논란이 됐다. 정씨는 “왜 이 남자가 변태냐”는 질문에 “특별히 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것 같은데 맨날 노트북 가지고 굳이 학교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 온다. 7~8년은 된 듯 하다”고 답했다. 이 글은 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논란이 됐다. 사진 속 남자가 특별히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여대 커피숍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변태’로 몰아붙이며 얼굴까지 공개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정씨는 페이스북을 탈퇴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순례는 안단테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순례는 안단테

    Pilgrimage 길 위를 걷는 자에게 서두름은 독이 될 뿐이다. 순례자임을 표시하는 가리비 하나 달고 마음을 의지할 지팡이 하나 짚고 걸음을 내딛는다. 느릿하게 울리는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步行記. 순례가 범람하는 시대에 길을 나서다 분명한 건 ‘철학’도 유행을 탄다는 점이다. 많이 생산하고 빨리 소비하는 게 절대적 선으로 여겨졌던 세상에 반기를 드는 가치들이 출현하고 있다. 버리고 줄이고 좁히고 늦추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은 웰빙을 부르짖고 로하스, 다운시프트 같은 삶의 방식을 발 빠르게 차용했다. 그에 따라 여행 철학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정복한 나라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한 해외여행이라고 자부했던 때도 있다. 밤낮없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에서 이제는 되도록 천천히, 느리게 여행하자 한다. 때마침 ‘걷기 여행’은 강력한 트렌드가 되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맞춤형 소비재가 되어 빠르게 소모돼 갔다. ‘그럴듯한 새로움’을 갈구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순례는 구미 당기는 소재였으리. 서점에 넘쳐나는 순례 에세이들, 열흘짜리 순례길 맛보기 여행상품까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한 유행 앞에 순례의 본래 의미나 목적은 사장된 듯했다. 그래서였나. 내 딴에 순례란 단지 시대의 산물에 불과할 뿐이고 유행이 식으면 그 다음 주자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할 위태로운 ‘전염’이라 취급했으니. 이제야 심성이 삐딱한 여행자였노라고 인정해야 할 듯하다. 한 해 몇천명의 순례자들이 거쳐 가는 프랑스 남부 미디피레네Midi-Pyrenees 순례길에서 길의 매력에 전염되다 못해 여행 후 강력한 후유증까지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번 여행기는 기도문이 될 것 같다. 나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에만 있는 줄 알았던 여행자가 있다면 그 오만으로부터 얼른 구원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리. 말뿐인 순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나는 ‘순례’를 알지 못했다. 그 길 위를 걷기 전까지 말이다. ▶미디피레네 Midi-Pyrenees 프랑스, 안도라공국, 스페인에 걸쳐 있는 피레네산맥 일부 지역에 위치한 프랑스 남서부 주. 주도인 툴루즈Toulouse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680km 떨어져 있다. 프랑스에서 만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수만 갈래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St.James. 그가 묻힌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수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에 이르는 모든 길은 순례길이다. 야고보를 찾아가는 길에는 축복과 기쁨보다는 성자를 향한 연민과 참회가 가득하다. 성자를 지키지 못한 신도들의 원죄가 깊고도 깊기 때문이리라. 야고보는 예수 사후 이스라엘에서 참수를 당했는데 신도들은 성자의 억울한 죽음을 맞고도 그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유해를 싣고 스페인으로 향하던 배가 난파된 것. 9세기 들어서야 발견된 그의 시체는 그간의 험난한 여정을 증명하듯 노오란색 가리비가 다닥다닥 붙은 채였다고 한다. 뒤늦게 야고보의 묘지 위에 성당을 짓고 증축을 거듭해 산티아고를 조성했다. 그들이 성지를 세우는 것만으로 미안한 감정을 달랬다면 오늘날의 순례길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다. 성직자와 신자들은 단지 그의 묘를 참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가리비를 머리에 달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성 야고보처럼 길을 나섰다. 아무리 구불구불한들, 제 아무리 험준하다 한들 당신이 걸음을 내딛으면 나만의 참회와 구원이 담긴 길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알고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일반인에게까지 유명세를 떨친 건 최근의 일. 파울로 코엘료가 <순례자>를 집필하면서 전세계적인 열풍을 낳은 산티아고 순례길은 제주 올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올레가 ‘휴식’이라는 이미지와 맞물린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난’으로 수렴된다. 현재 유럽에는 12갈래의 대표적인 순례길이 있는데 순례자 10명 중 8명은 일부러 프랑스 남부서부터 일정을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는 험준한 길을 택한다. 놀멍쉬멍 걷든 지팡이를 짚고 걷든 ‘걷는다’는 행위는 동양과 서양 어디서든 구도의 길과 이어지나 보다. 고단한 순례자의 안식처 콩크Conques 모든 순례길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로 통칭되는데 프랑스 남부도시 생장 피드 포르에서 출발해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는 루트가 가장 유서 깊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걸은 길은 프랑스 남부 도시 르 퓌Le Puy에서 출발해 미디피레네주의 유명 순례도시를 관통하는 구간의 일부였다. 나를 포함해 미국, 라트비아, 중국, 크로아티아, 캐나다 등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을 이끌 가이드는 러시아계 프랑스인인 엘리나. 말 그대로 다국적 ‘순례단’인 우리는 미팅 포인트였던 툴루즈Toulouse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속사포같이 질문을 쏟아낸다. ‘예순이 넘은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이냐, 하루에 몇 시간을 걷는 거냐, 너무 힘들면 도중에 포기해도 되냐’라는 질문에 엘리나는 빙긋 웃으면서 답했다. “마음을 먹은 성직자들은 이 길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간답니다.” 차분한 한마디였지만 ‘엄살떨지 마시오’라는 엄포가 분명했다. 동행인이 있어도 또 가이드가 붙는다 해도 긴장되는 초행길이었다. 사람들의 경직된 표정을 읽었는지 엘리나는 이 길을 가는 데 있어 꼭 경건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일러준다. 단지 마주치게 될 프랑스의 대자연, 봄과 여름 사이를 가르는 바람, 작은 마을들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즐기라 했다. ‘순례’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렸는데 어느덧 경직된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린 건 헤픈 성격보다는 ‘끝내줬던’ 날씨에 책임이 있으리. 미디피레네를 횡단하는 갸론Garon강에서 첫 번째 목적지 콩크Conques까지 3시간 가량 차로 이동하는 동안 첩첩산중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건 바로 건축자재였다. 주변에 암석으로 된 산이 없는 탓에 갸론강에서 길어 올린 붉은 모래를 이용해 벽돌을 구워 건물을 올리고 길을 닦은 툴루즈와는 달리 암회색 집들이 눈에 띈다. 언덕 위 석회석을 이용해 튼튼히 쌓아올린 건물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 앞에 일행을 태운 차가 멈췄다. 콩크는 불어로 조개를 뜻하는데 마을 전체가 조개껍데기를 엎어놓은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 겨우내 잠잠했던 콩크는 4월 부활절과 함께 모여드는 순례자들로 다시금 활기를 찾는다. 중세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산티아고를 찾아가는 길목길목에는 순례자를 위한 마을이 조성됐고 콩크도 그 마을 중 하나다. 각 순례 도시는 종교적인 기능과 생활적인 기능 모두를 담당했다. 전망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교회나 수도원이 들어서 있다. 매일 평균 8시간 동안 길을 걷는 순례자가 안락한 밤을 지새울 수 있도록 숙박업소가 등장했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이 갖춰졌다. 90가구가 전부인 이 작은 마을에 한 해 3만명의 순례자들이 모여든다. 기사들도 말 위에서 내려와 걸어야 했을 만큼 좁은 골목길, 손으로 일일이 쪼개 얹은 기왓장은 천년 동안 고단한 순례자를 반겨 왔다. 느린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돌아보는 마을이지만 세계 각국에서 출발한 순례자에게 콩크는 없는 것 빼고 다 갖춘 마을일 거다. 작디작은 마을에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켜켜이 앉은 시간이 스쳐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12사도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순교지라는 게 정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이며 콤포스텔라는 ‘별의 들판’이라는 뜻의 라틴어campus stellae에서 유래했다. 예루살렘·로마에 이은 유럽 3대 순례지의 하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비롯해 성당·교회·대학 등 중세의 건물이 남아있어 번영했던 때를 보여준다. 척박한 땅에서 드리는 기도 로카마도르 Rocamadour 순백의 도시가 언덕 끄트머리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계령 뺨을 칠 정도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나니 로카마도르Rocamadour가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잠깐 머뭄의 시간을 갖는 데 일행 모두가 동의했다. 마을 입구를 2km 앞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하염없이 마을을 바라본다. 오체투지로 순례길에 나선 성직자들은 물론이고 순례로서 죗값을 치르던 이들까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마을을 굽어보고 한시름 놓았을 게 틀림없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덕에 자꾸 발걸음이 늦춰진다. 이 마을은 석회질이 다량 포함된 토질 덕분인지 유난히 흰 빛을 뽐낸다. 석회바위산 꼭대기에 이 같은 마을을 만들려면 평지보다 몇 배 노동력이 투입됐을 텐데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입지였다. 듣자하니 이 ‘석회’가 바로 순례마을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6만년 전 이 일대가 바다 밑에서 융기하며 바다생물이 퇴적된 땅이 드러났다. 토양의 주성분은 석회석과 같은 탄산칼슘. 하지만 물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토질 탓에 나무를 심어도 과실이 나지 않고 곡식을 심어도 추수할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돼 버렸다. 성직자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땅,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이곳에 주목했다. 12세기부터 도시를 일궈 한때는 8,000명 가까이 머무는 ‘기도하는 마을’을 만든 것이다. 지금은 800명 규모로 축소됐지만 한 해 방문객만 100만명에 이르는 관광지다. 가장 유명한 순례마을 중 하나였던 로카마도르는 악명 높은 곳이기도 했다. 삶이 고단한 자들은 유복한 내세를 보장받기 위해, 범죄자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어떤 이들은 기적을 간구하기 위해 마을의 맨 꼭대기 성당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구원을 얻고자 필시 223개의 계단을 오르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어떤 성직자는 구불구불한 14개의 고갯길을 택해 무릎으로 오르기도 했다.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던 건 성당 내 위치한 ‘검은 성모상’을 알현하기 위함이었다. 106년 기적을 행했다는 검은 성모상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적으로 검게 변했다고 하는데 프랑스 내 많은 검은 성모가 있지만 로카마도르 것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페인트를 칠한 것도 많다 한다. 가끔 아무도 치지 않는 종이 울리는 건 이 성모의 힘이라고 로카마도르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두런두런 얽힌 로카마도르 이야기를 들으며 223개의 계단을 올랐다. 로카마도르 터가 머언 옛날 바다 아래 잠겼던 땅임을 증명하듯 계단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화석이 박혀 있다. 아름다운 길이지만 시간이 흘렀어도 악명은 여전했다. 최영미 시인은 아침마다 내뱉는 마른 기침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고통으로 생이 자각되긴 마찬가지였으니. 건조한 모래바람이 호흡기를 훅 틀어막고 심장은 튀어나올 듯 펌프질을 해댔다. 온몸의 기관들이 벌떡 잠에서 깼을 무렵에야 검은 성모의 성당 앞에 겨우 발을 디뎠다. 언덕 꼭대기에는 대성당 외에도 자연 동굴을 활용해 만든 예배당이 있었는데 건조한 기후 탓인지 외벽에는 13세기에 그려진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럭비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미디피레네 사람들을 위한 럭비의 신 예배당도 갖추고 있다. 엄숙하게만 보인 순례 마을의 귀여운 재치라고나 할까. 다시 떠나는 길 오슈Auch 마지막 행선지 오슈Auch에 도착하기 전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라 알려진 라르상글Larressingle에 들렀다. 목적은 라르상글에 있는 교회에서 순례자들에게 찍어 주는 도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데 각 순례 마을은 이들 여권에 방문자임을 증명해 주는 도장을 찍어 준다. 그러나 한때 주교가 거주할 정도로 큰 마을이었던 라르상글에는 을씨년스런 바람이 불었다. 교회 역시 군데군데 파손된 흔적이 역력했고 벽에는 커다란 엑스 표시가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엑스 표시는 ‘팔렸음’을 뜻하는 표식이란다. 20세기 병적으로 ‘프랑스’적인 것에 탐닉한 미국인들은 오벨리스크를 유럽으로 옮긴 로마인처럼 프랑스의 와인이나 예술품뿐만 아니라 건물을 통째로 뜯어 부지런히 신대륙으로 날랐다. 혁명정부 이후 나폴레옹 제정이 들어서면서 교회는 더 이상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군자금을 충당하려는 약탈자들이 전국의 교회로 몰려들면서 온전히 제 모습을 보존하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 당시 프랑스인에게 교회를 뜯어 파는 일은 아무런 죄책감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왠지 교회 내부에 바깥보다 더 추운 공기가 도는 것 같다. 별 기대 없이 여권을 대고 한 켠에 마련된 도장을 꾸욱 눌러 보는데 선명한 글씨가 찍혀 나온다. 한동안 이용하지 않았다면 잉크가 말랐을 게 분명하지만 도장은 아직 촉촉했다. 분명 바로 얼마 전 순례자가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가운 마음에 길을 재촉했다. 순례자의 행선지가 우리와 같다면 길 위에 마주칠 것이다. 한걸음에 달려 오솔길 위를 걷고 있는 두 명의 사내를 발견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 길 위의 동지였으므로 안면몰수하고 둘을 잡아 세웠다. 순례에 나선 지 한 달이 넘었다는 미국인 칼과 브라이언트는 40년지기 친구사이. 군에서 제대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먼저 걸었던 칼이 브라이언트를 끈질기게 설득해 성사된 여행이라고 한다. “부인과 자녀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친구 녀석 믿고 한번 와보기로 했지.” 결국 브라이언트는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보스에게 장기 휴가를 얻는 데 성공해 길에 나섰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도장을 찍었다는 그는 여정이 빼곡히 담긴 여권을 자랑한다. 남이 보지 않을 땐 꼭 붙어 걷던 두 사람에게 어깨동무를 요청하니 쑥스럽다며 발을 뺀다. 나머지 여정도 건강하게 마무리짓길 바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오슈에 다달았다. 오슈라는 도시명은 아우구스투스에서 유래했는데 이곳은 중세 유명한 종교도시였다. 도시 어디에서나 고딕양식의 오슈대성당Auch Cathedral이 시선에 걸린다. 성당 내부는 26m 높이로 프랑스에서 가장 큰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오르간축제가 펼쳐지고 6월부터 8월까지 매주 일요일에는 무료 콘서트가 열린다. 가장 좋은 것, 귀한 것을 집약해 천국에서의 행복한 나날을 암시하고자 했던 의도대로 교회 내부는 화려했다. 믿음을 확인한 순례자는 교회를 빙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동력을 얻는다. 오늘날 프랑스의 순례 마을과 관련 건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많은데 단지 시간이 오래 되어서라거나 보존이 잘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차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믿음의 힘만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걸었던 장면은 그 당시에도 장관이었을 테니. 반면 기독교가 쇠락하고 신보다 인간이 앞서던 시대가 도래하고 또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순례길이 쇠퇴해 갔다는 점도 유럽인의 역사가 이 길 위에 오롯이 반영되는 것 같다. 다시 성찰의 기회를 물색하던 현대인에게 조용히 길을 내준 사람들 덕분에 순례마을은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삶과 역사의 교차점에 서 있다. 그리고 내 삶의 좌표는 그 어디쯤엔가 찍혀 있다.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rendezvousenfrance.com 02-776-9142 ▶travie info 어디서 출발하면 좋을까 출발점을 선택하는 건 순례자의 몫이다. 프랑스길Camino Frances을 걷는다면 파리, 르퓌Le Puy, 아를Arle, 생장St. Jean Pied de Port이 관문지다. 특히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에 이르는 코스에 70%의 순례자가 모인다고 한다. 미디피레네 코스를 걷고 싶다면 주도 툴루즈Toulous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무엇을 준비할까 가리비와 나무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초라한 행색도 시간이 흐르며 변모됐다. 기본적인 아웃도어 트레킹 물품을 준비하자. 편한 신발, 스틱, 수통 등을 챙기자. 빗물로 인해 무릎 아래 부분이나 등산화가 젖는 것을 방지하는 스패츠도 유용하다. 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하려면 우비는 필수다. 어디서 먹고 씻고 잘까 일단 먹는 것은 알아서.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조리도 가능하다. 알베르게는 도미토리 형식의 유스호스텔이라 보면 되는데 순례길 전역에 분포해 있다. 위생상태는 천차만별. 때로는 침대 진드기에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 다음 순례자를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다만 몸이 아픈 경우는 예외다.
  • 술마시고 구토 참다가 식도 파열된 남성

    술마시고 구토 참다가 식도 파열된 남성

    술을 마시던 한 남성이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다가 식도가 파열됐다. 중국 장쑤(江蘇)성에 사는 30대 남성 시(史)씨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 참석했다. 친구들이 권하는 술을 거절할 수 없어 300㎖ 맥주 두 병을 마셨고 이것이 화근이 돼 식도가 파열됐다고 중국 펑황왕(鳳凰網)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씨는 맥주를 마신 후 곧바로 속이 좋지 않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먹은 것을 게워내고 싶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술 못 마시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싫어 계속해서 참았다. 그러던 중 시씨는 갑자기 복부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시씨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검사를 받았다. 수술을 담당한 장쑤성 인민병원의 의사는 “음식이 배를 폭격한 듯 엉망인 상태였다”며 “식도가 파열돼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한 “위의 강한 수축력이 음식과 맥주에 들어있는 기체를 밀어올려 결국 식도까지 닿았다”며 “그 이후에도 계속 구토를 참다 보니 기체의 압력을 식도벽이 버티지 못해 파열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불륜 女배우’ 새 남친도 약혼을…

    ‘불륜 女배우’ 새 남친도 약혼을…

    감독과의 불륜설로 몸살을 앓았던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32)가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상대 남자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17일(한국시간) 스튜어트가 9살 연상의 배우 마이클 피트(32)와 열애 중이라고 전했다. 스튜어트의 측근은 “피트는 스튜어트가 전 남자친구 로버트 패틴슨(27)을 잊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두 사람은 이달 초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에 함께 참석해 열애설은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라이프는 “피트는 약혼자가 있으며 스튜어트와의 열애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피트의 측근 역시 “피트는 2005년부터 모델 제이미 부커트와 열애 중이며 파리 패션쇼도 런웨이에 서는 부커트를 보기 위해 참석한 것”이라고 전했다. 스튜어트는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함께 출연했던 패틴슨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던 중 지난해 7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감독인 루퍼트 샌더스(41)와 바람을 피워 논란을 일으켰다. 더욱이 샌더스 감독은 두 자녀를 둔 유부남이기 때문에 ‘불륜녀’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남자친구인 패틴슨은 스튜어트의 불륜 스캔들이 불거지자 결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시 재결합과 결별을 반복하다 최근에야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스튜어트는 동거를 하던 패틴슨과 완전히 헤어진 뒤 갈 곳을 찾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탈리아 출신 감독 지아니 아넬리의 집에서 함께 생활해 또 다시 염문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번에 스튜어트의 새로운 열애 상대로 지목된 마이클 피트는 미국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에 출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북 군위보건소 지열 냉난방 말썽

    경북 군위군보건소의 신재생에너지인 ‘지열(地熱) 냉난방 시스템’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보건소 신축 과정에서 에너지 절감 명목으로 도입됐지만 정작 효과가 의문시되면서 예산 낭비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15일 군에 따르면 2010년 11월까지 군위읍 동부리 675번지 일대 부지 9980㎡에 총 150억원을 투입해 지상 3층, 지하 1층 연면적 5003㎡ 규모의 보건소를 신축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절감을 위해 예산 13억 8000만원을 들여 지열 냉난방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보건소의 전기 사용료가 지열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군 본청사보다 되레 많은 실정이다. 최근 8개월간 군 본청사(연면적 7708㎡)의 ㎡당 월평균 전기 사용 요금이 1654원이었던 데 반해 보건소는 1738원으로 더 많았다. 물론 각종 행정사무 장비 및 의료장비 가동 시간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 보건소의 연간 전기 사용량도 당초 예상 목표를 2배 이상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보건소 개소 이후 지난 6월까지 30개월간 총전기 사용료는 1억 9200만원이었다. 월평균 640만원인 셈이다. 이는 당초 목표로 잡았던 월 사용료 300만원을 2배가량 초과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열 냉난방 시스템의 무용지물 논란과 함께 보건소는 에너지 과소비 청사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특히 군은 이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사전 예산 확보나 사업성 분석 없이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최근 보건소의 지열 시스템과 관련한 논란이 커져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면서 “에너지 전문 기관에 용역을 의뢰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생각나눔] 헌재 ‘강력범 DNA 채취법’ 위헌 여부 공개변론

    “무차별적인 DNA 채취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 “재범 방지 및 과학수사 등에 활용해 공익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11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는 강력범죄자들을 상대로 DNA를 채취하도록 규정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의 위헌 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이날 헌재 공개변론은 향후 DNA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마련한 것이다. DNA법은 살인·강도 등 11개 유형의 범죄를 저질러 구속된 피의자나 형이 확정된 사람에 대해 DNA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상자가 동의하면 임의채취 방법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영장을 통해 채취한다. 2011년 검찰이 쌍용자동차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와 용산 철거민 등 강력범죄자가 아닌 이들의 DNA를 채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의 오남용 문제와 함께 인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용산 철거민 김모씨 등은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공개 변론에서 청구인 측은 “DNA 채취는 적법절차의 원칙 및 영장주의에 위반되고, 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어 DNA를 채취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또 “성폭력 범죄자의 재범 방지를 위해 도입된 DNA법이 재물손괴·주거침입 등 비교적 경미한 범죄와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까지 채취 대상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현행법의 모순을 지적했다. 이어 범죄를 예방하고 과학 수사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수사기관의 편의를 위해 인권 침해적인 수사기법을 합법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법무부와 경찰 측은 최근 용인 살인사건 등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내세우면서 “조속한 범인 검거와 무고한 용의자의 배제 등 신속한 수사와 범죄 예방을 위한 것이라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면서 “DNA 채취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이 그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보다 훨씬 크다”고 반박했다. 또 대상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영장에 의한 DNA 채취가 이뤄지는 점 등을 근거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거나 신체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날의 공개 변론 등을 토대로 향후 DNA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묻지마 범죄, 8월의 수도권 길거리 노린다

    지난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유없이 저지른 ‘묻지마 범죄’의 키워드는 ‘8월·수도권·야간·길거리·무직·음주’인 것으로 분석됐다. 대검찰청 강력부(부장 김해수)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발생한 묻지마 범죄 55건의 유형 및 특징, 지역 등을 분석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묻지마 범죄 분석-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책은 전국 주민센터 등 자치단체 3700여곳과 지구대 2200여곳 등에 배포된다. 책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서울 24%, 경기 18%, 인천 9% 등 수도권에서 전체의 51%가 발생했다. 시기상으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에 25%가 발생해 가장 많았고, 범행 시간은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의 야간 시간대가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장소는 길거리가 28건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했으며 공원, 도서관, 버스터미널, 지하철역 등이 뒤를 이었다. 가해자 특징을 보면 55명 중 35명이 무직이거나 일용 노동직에 종사하는 남성이었고, 연령대별로는 30대가 20명, 40대가 15명으로 30~40대가 60% 이상을 차지했다. 또 재범 이상의 전과자가 76%를 차지했으며, 가해자의 절반 정도가 술을 마신 뒤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피해자는 여성이 58%로 남성보다 조금 더 많았다. 대검찰청은 자료를 통해 “대부분의 묻지마 범죄는 빈곤층이나 정신질환자 중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면서 “향후 범정부적 협력체계를 구축해 공동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자료집 발간이 빈곤층이나 소외계층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일부 사건들만으로 빈곤층 전체를 잠재적 범죄군으로 분류하는 것은 자의적 해석”이라면서 “국민들에게 소외계층에 대한 편견을 양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제2의 대구지하철 참사 막아야죠”

    “제2의 대구지하철 참사 막아야죠”

    2003년 2월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지하철 참사. 이 사건으로 대구는 그동안 사고의 도시로 낙인이 찍혔다. 이 같은 대구의 오명을 씻기 위해 10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사람이 있다. ‘소방안전 지킴이’란 닉네임을 얻은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최영상(53) 교수는 지하철 참사 이후 350회가 넘는 특강을 해 왔다. 방송에도 250여회 출연해 화재예방의 중요성과 사고 발생 시 대처요령 등을 강의했다. LG전자 구미공장 등 이달 들어서 특강만 10차례에 이른다. 21일에는 대구도시철도공사에서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도시철도시설의 소방안전’이란 주제로 특강했다. 특강은 매주 한차례씩 4회에 걸쳐 진행된다. 최 교수는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1993년 대구보건대에 부임했다. 대기업 현장에서 사고나 화재의 원인이 대부분 시설의 노후나 부주의에 의한 경우라는 것을 경험한 그는 이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소방과 안전을 주제로 한 특강이었다. 최 교수가 특강을 한 기관은 100곳이 넘는다. 그의 특강이 호평을 받으면서 초중고는 물론 유치원까지 그에게 특강을 요청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뿔난 민심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조사를”

    뿔난 민심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조사를”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지난 18대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국정조사를 실시하라는 움직임이 거세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지난 14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린 ‘국정원 게이트,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한다’는 청원글에는 이틀 만에 5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서명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국정원에 대한 비난과 함께 국회가 국정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blue******), “열받고 심장 벌렁거려서 트위터 계속하다간 수명 단축되겠네. 내가 준 표 돌려다오”(nema********) 등의 비판적인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12만명의 팔로어를 가진 표 전 교수의 트위터는 실시간으로 리트위트되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6일 페이스북 등 현장 경찰들의 SNS 계정에는 ‘대한민국 현장 경찰관이 국민여러분께 사과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일선 경찰서 직원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그림 파일에는 ‘사과’ 모양의 그림과 함께 세 가지 항목의 사과 이유가 담겨 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윗물은 썩었는데 그나마 아랫물은 낫군”, “정권 개 노릇하면서 사고는 위에서 치고, 아랫사람들만 죽어라 사과하니 불쌍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학가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시국 선언을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에는 지난 15일 “국가 기관이 선거에 개입해 여론을 호도했고,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에게 치욕적인 낙인을 찍고 조롱했다”면서 “서울대 시국선언 합시다”라는 글이 올라왔고 찬성 댓글이 100여개 달렸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최근 국정원 수사에 상부의 외압이 있었던 점을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도 준비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대로 시국 선언을 포함해 의견을 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대와 부산대 총학생회는 “학내에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수사 과정에 대해 성토하는 목소리가 크다”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고 회의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이를 표명할지 밝히겠다”고 전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여야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해야”

    여야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해야”

    국회 대정부 질문 마지막 날인 13일 교육·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역사 교육’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는 한국사 교과서 이념 논란에 대해 공방을 벌였지만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있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검정 교과서에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로 표현됐다는 뜬소문을 민주당이 사실인 양 퍼뜨렸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최근 검정 심의를 통과한 교과서를 놓고 ‘극우 교과서’라는 루머가 유포되고 전교조는 불매운동을 벌일 태세”라면서 “여기에 야당까지 나서서 해당 교과서를 ‘왜곡 교과서’로 낙인찍으려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10일 대정부 질문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백범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냐”고 질의한 뒤 “뉴라이트 교과서에 이렇게 적혀 있고 이것이 통과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올해 8월 말 최종 채택되기까지 검정 결과를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해당 내용도 허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검정 과정 중인 일부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12·12 군사쿠데타’를 ‘12·12 사태’로 표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붙은 ‘역사 왜곡 논쟁’도 국회로 옮아왔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부분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발포한 사실을 게재하지 않고, 고교 교과서들은 12·12 군사쿠데타를 12·12 사태로만 표기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런 역사 왜곡을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로 반(反)민주 세력의 역사 왜곡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역사 논쟁이 불거지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극심한 분열과 갈등만 생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야 모두에서 나왔다. 이용섭 의원은 “아이들이 이완용의 매국 행위에 분노하고 성삼문, 안중근의 충절을 배우면서 정의감과 애국심을 키워 가야 함에도 대학입시에 매몰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대입에서 외면받고 있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서 “말로만 역사가 중요하다고 할 게 아니라 정부가 청소년들의 역사관 확립을 위해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도 잇따라 제기됐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전 전 대통령 자녀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1000억원이 넘는다”면서 “국회에 제출된 추징금 시효를 연장하는 ‘전두환 추징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추징금은 징역 등 본형에 대한 부가형인데, 본형을 집행하고 부가형인 추징을 집행하면서 그게 안 됐다고 해서 징역(형)을 내리면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가족에게 책임을 물리는 문제도 연좌제나 자기책임주의에 반하지 않느냐는 이론적 논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주말 영화]

    ■백인 추장(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 부부 이반과 완다는 로마 근교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이반은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하고, 꼼꼼한 성격이다. 이반은 아버지에게 정보를 얻어 치밀하게 여행 계획을 세워 놓는다. 그에 반해 완다는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좋아하는 ‘백인 추장’이라는 영화 속의 무명 배우 페르난도 리볼리를 찾아나선다. 결국은 해변을 거니는 추장의 모습을 찾아 낸다. 이반은 부모와 친구들에게 완다가 도망간 사실을 숨기고, 그녀를 찾아서 온 도시를 헤맨다. 한편 해변에서 자신의 우상을 만난 완다는 그의 실상이 자신이 꿈꿔 오던 것과 너무 달라 실망을 하게 된다. 사실 백인 추장은 가난한 공처가였던 것이다. 사진과 소설 속에 나오던 세상의 실제는 그녀가 상상하던 것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완다는 실망으로 테베레 강에 빠져 죽으려다 간신히 살아난다. ■독립영화관-약탈자들(KBS1 토요일 밤 1시 5분) 오랜만에 장례식장에 모인 동창들이 선배이며 역사학도인 상태라는 인물의 뒷담화를 하고 있다. 속물적이고 여자를 밝히고 거대한 얘기를 즐긴다는 상태는 동창들에게 기이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대화에 어수룩한 감독 지망생 병태는 끼어들지 못해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고, 동창들의 뒷담화는 점점 상태를 성토하며 과격해진다. 한편 그들의 회상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잉태된다. 이젠 동창들의 회상 속 인물이었던 연쇄 살인범 택시기사와 무술 뫄한뭐루의 창시자인 무술의 달인마저도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의 사슬은 사람들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서사의 미로를 만들어 내는데…. ■핸콕(OBS 토요일 밤 10시 15분) 핸콕(윌 스미스)은 X맨,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가지고 있던 모든 능력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겸비한 슈퍼 히어로다. 그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슈퍼 히어로지만 과격하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까칠한 슈퍼 히어로로 낙인찍힌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피 대상 1호로 떠오른 핸콕은 어느 날 PR 전문가 레이 엠브레이(제이슨 베이트먼)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는 핸콕의 추락하는 이미지를 회복시켜 주기로 약속한다. 그러던 중 핸콕은 레이의 아내 메리(샤를리즈 테론)가 자신이 탄생하게 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알게 되고, 메리와 가까이 있을수록 자신의 초능력이 약해져 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열린세상] 사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사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제비 한 마리는 분명히 봄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취업 경쟁이 대학가를 휘몰아치는 와중에 순수 사회학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기특한 학생들을 전보다 자주 마주치게 된다. 금융 분야 자격증 따기, 공무원 시험 준비, 영어 점수 올리기라는 생존 경쟁 계획표에 맞추어 돌아가는 학생들 가운데 “사회학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요” 하는 한 마디가 주는 울림은 크다. ‘사회가 되돌아온다’는 새 시대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다이내믹 코리아’이지만 변화의 속도가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국제정세를 알아차리지 못해 이웃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과거사의 회한을 만회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20세기는 농촌에서 도시로, 아시아에서 서구로,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자연에서 개발로, 협동에서 경쟁으로 삶의 패러다임을 숨 가쁘게 바꿔왔다. 이 질주에서 앞선 사람 또는 집단은 승자로 추앙되었고 속도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개인 또는 집단은 가차없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앞만 보고 달리게 되면 가속도가 붙게 된다. 근대화에 이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눈치 빠른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녀를 유학시켰고 기러기 가족 만들기도 불사하였다. 전 지구적 차원의 무한 경쟁을 개인적 적응으로 대응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약육강식은 동물계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예외 없는 철칙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우리가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세상은 소리 없이 방향을 바꾸고 있다. 글로벌 대신 로컬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자유 대신 공정을, 경쟁 대신 협동을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가 주목을 받고 심지어 슬로 시티도 등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여대생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환경에 피해를 주거나 아동을 불법으로 고용하면서 만든 것은 아닌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소위 가격 대비 품질을 중시하는 합리적 소비이론과는 달리 제품 생산 과정에서의 사회적 영향과 책임을 묻는 소비방식이다. 이런 흐름이 점점 커져서 이제는 대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을 묻는 행동지침이 유엔에서까지도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실패한 국가의 자리, 실패한 시장의 자리에 사회, 그리고 사회적이라는 차원이 들어서고 있다. 이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한 시차로 나타난다. 헌법 조문에만 있었던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가 지난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공론으로 등장하지 않았던가. 사회가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뿐인가. 수많은 논쟁을 거쳐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했다. 세종은 봉건시대에도 ‘여민동락’(與民同)이라는 소셜 거버넌스를 실천했던 성군이다. 선거공약과 공론을 통해 도시가 탄생한 것을 전에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공공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사회적 경제, 소셜 커머스, 등 사회 또는 소셜이라는 형용사가 끝 간 데 없이 쓰이고 있다. 19세기엔 목욕탕 이름에서부터 과자 이름까지 ‘자유’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도쿄대 교수의 분석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런 새로운 흐름에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등은 이 변화의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옛 문법대로 행동하고 말하다가 변화된 세상의 공분에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한 번 단추를 잘못 끼우면 계속 어긋난다. 지난 100여년의 흐름이 큰 폭으로 바뀌고 있는데 방향 전환이 어렵다. 과거가 흘러가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는 상태에서 새것이 오고 있다. 게다가 따라잡기 바쁜 질주에 가속도가 붙어 방향을 바꾸기도 어렵다. 식민지시대, 냉전, 신자유주의의 유제가 사라지지 않고 사회 구석구석에 얽혀 있다. 새것이 들어설 틈이 없어 보이는데도 사회가 돌아오고 있는 징표는 분명하다. 우리 모두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시차 적응이 필요한 때다.
  • [금거래소 설립 추진] 재산은닉 수단 변질 金시장 개혁… 무자료 거래 줄여 세수확대 기대

    [금거래소 설립 추진] 재산은닉 수단 변질 金시장 개혁… 무자료 거래 줄여 세수확대 기대

    국제 금값은 떨어지고 있는 반면, 최근 한국에서는 ‘금테크’가 각광 받는 등 금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의 금 거래는 꾸준히 양성화되고는 있지만, 음성 거래의 규모가 정상 거래를 압도하고 있어 대표적인 지하경제로 낙인찍혀 있다. 새누리당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금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1차적으로는 금 시장을 양성화하면 부족한 세수의 상당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거래소 신설에 앞서 정부가 가정 먼저 할 일은 시장의 규모 파악이다. 정부도 불법 시장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06년에 추산한 것은 대략 연간 150t 정도로, 최근 시세로 따지면 7조원 이상이다. 이 가운데 지하경제 규모는 60~70%로 추산된다. 특히 수출용 금제품 원재료로 사용되는 금지금(순도 99.5% 이상 금괴) 거래에 부가세를 매기지 않는 특례 제도가 집중적으로 악용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업자 간 거래는 2008년부터 ‘금지금 부가가치세 매입자납부제도’ 도입 등으로 점차 양성화됐지만, 여전히 개인 구매 시에는 신고나 세금 부담이 없다. 한국귀금속유통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 시장은 세금계산서가 없는 무자료금과 자료금의 유통시세가 별도로 형성돼 있는 이중 가격구조로 돼 있다. 또한 국내 현물시장에서는 아직 브랜드와 순도가 제각각이다. 금지금의 표준화가 안 돼 있다 보니, 국내 투자자들도 신뢰하고 금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앞으로 금거래소가 설립되면 이런 문제점들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합법적인 금 거래 유통시장의 확립을 위해 무엇보다 금거래소에서 투자용 금과 일반상품으로서의 금에 대한 세금 체계를 따로 관리하는 체계를 갖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유동수 한국귀금속유통협회 회장은 최근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금 시장 현황 및 양성화 방안’ 간담회에서 “돌반지를 살 때 현금으로 사는 관행이 뿌리박혀 있어 소매점에서 부가세를 낼 수 없는 시장이 형성됐다”면서 “무자료 거래 관행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정부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금거래 시장이 양성화되면 세무조사를 꺼리는 관행도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금 도매시장에서 현재 0.2~0.5%의 수익률인데도 금이 고가이다 보니 매출액이 많아 세무조사의 표적이 되고 있는 불합리한 점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매출이 증가하면 세무조사의 위험성이 높아져 점점 음성 시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귀금속 업계를 불량 유통업계로 볼 게 아니라 공정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거래소 설립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1차적으로는 정부부처 간 의견 조율이 이뤄져야 하지만, 설립 장소 선정에도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는 전남·광주에 설치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다른 쪽에서는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있는 부산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광주광역시와 광주상공회의소가 주축이 된 ‘상품거래소 광주설립추진위원회’는 4일 제1차 회의를 열고 “거래소의 광주 유치를 위해 민·관의 역량을 결집해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전방위적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십이령은 행상인들의 행로만 번다한 곳이 아닙니다. 내륙에서 동해에 흩어진 여러 포구를 드나드는 행차와 길손 들이 비좁도록 내왕하는 유일한 행로입니다. 소금은 물론이거니와 해산물과 염장품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십이령이나 고초령을 넘지 못하면 그들 물산도 한낱 허섭스레기에 불과합니다. 포구 어름에는 60여 호나 되는 염호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손수 거둔 소금 짐을 내륙까지 나르지는 않습니다. 적경이 있더라도 그들이 몸소 겪는 우환이 아니니까, 행상인들의 고초를 강 건너 불 보듯 합니다. 그러나 한수가 모두 녹두죽이라도 국자 없이는 쓸모없다는 말이 있듯이 울진 포구의 물산이 아무리 풍부하다 한들 내왕 길목에 화적떼가 지키고 앉아 봇짐을 털고 살육을 저지른다면 머지않아 울진 포구와 십이령은 승냥이 울음소리만 낭자한 적막강산이 될 터이지요. 십이령길을 적당들의 폐해로부터 지켜내고 가꾸는 일은 부평전봉(浮萍轉蓬)하는 행상인들뿐만 아니라 관아에서도 발 벗고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령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진력나도록 침묵만 지키다가, 우물쭈물 발명을 하였다. “질청을 지키는 이서배들을 자칫 잘못 다루었다간 십중팔구 얼굴을 쳐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수령의 체모를 구겨놓기 일쑤입니다. 간교함과 거짓이 횡행하는 근원인 그들의 권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수령이 도임하자마자 교활한 향리들의 폐해를 줄이려고 심지를 다잡아먹고, 정사를 엄중히 닦달하고 평소에도 사리에 그름이 없는데도 저들의 구미에 맞지 않고 성가시다 해서 삽시간에 수탈을 일삼는 탐학한 수령으로 낙인 찍어 버립니다. 더욱이나 안동을 비롯하여 상주, 예천, 의성의 이서배들이 매우 투박하고 교활합니다. 세습이기 때문에 콧등에 흙이 쓸리도록 허리가 굽어도 이서배의 복장을 벗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을의 소상한 사정을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환하게 꿰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요. 잡기와 투전에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온갖 계략과 농간, 술책 따위로 수령과 백성들 사이를 간교한 몸짓으로 넘나들며 개처럼 꼬리를 칩니다. 착취에 이골이 나서 돛단배 일곱 척을 날탕으로 삼킨다 해도 돛대도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염막이나 어물 도가를 찾아가 수령을 빙자해 억지로 돈을 맡기고 이듬해 가을에 거액의 이자를 붙여 받아 챙깁니다. 살림이 결딴나서 기황(饑荒)이 뼛속까지 스민 세궁민들을 보살펴 긍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수령을 큰소매 속에 넣고 주무르는 솜씨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수령이 그들의 토색질을 저지시키겠다고 작정하고 모조리 잡아들여 저지른 범증을 낱낱이 증거한 다음 치도곤을 내려도 그 모든 고통과 수모를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냅니다. 참으로 바퀴벌레 같은 존재들이지요. 파직이 되더라도 전혀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고 끈질기게 관변을 배회하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수령의 동정을 살핍니다. 호장이란 놈은 농염한 미술을 가르친 관기를 동헌 골방에 집어넣고 수령이 미색에 빠져들게 주선하고는, 저희들끼리 담벼락 밑에 숨어서 눈짓을 주고받으며 킥킥거립니다. 조롱거리가 된 수령이 여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동안 저들은 고을을 휘젓고 다니면서 마귀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냅니다. 어리숙한 수령이 도임하자마자 거짓 분부를 만들어 선정비나 공덕비를 세운답시고 고을의 세궁민들에게 초장료다 무명잡세다 하며 징구하여 저들의 복장을 채우고 나머지를 수령에게 바쳐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은혜와 의리와는 거리가 먼 늙은 아전들이 물들기 쉬운 병이 탐욕밖에 더 있겠습니까. 낙정하석(穽下石)이란 옛말처럼 남의 밥에 바늘 넣기를 예사로 저지르지요. 걸핏하면 어깃장을 놓고 나아가서는 죄안을 날조하여 수령으로 하여금 견책을 받게 하거나 수렁으로 빠뜨려 골탕을 먹입니다. 보복이 미진하면 야차처럼 뒤따라다니면서 개인과 가문을 결딴내려 듭니다. 수령의 면전에서 주둥이로는 사또, 사또 하면서 감히 턱을 쳐들고 변설이 도저한 것은 대저 그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작청에 나와서는 청빈을 가장하고 수령이 보랍시고, 키 얕은 솔소반에 밥사발 하나와 장찌개 한 그릇으로 중화를 때우곤 합니다. 수령이란 사람들은 산 설고 물 선 고을에 어느 날 느닷없이 단신으로 뚝 떨어졌으니 고을의 풍속과 물정에 어두워 숙맥일 수밖에 없지요. 바람 따라 돛 달더라고 그래서 작청의 이서배들이 하자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 패역(悖逆)의 무리야말로 수령을 잡아먹는 저승판서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령 역시 언제 과만이 닥쳐 신연 행차가 들이닥칠지 모를 판에 정사에 정신을 기울일 겨를이 없지요. 대중없는 여항간 풍설이나 주워들으며 거짓으로 고개만 끄덕이다가 거둬들인 초장료나 챙겨들고 다음 도임지로 발행하는 것이지요. 조정에서는 목사, 유수, 군수, 현령, 현감을 막론하고 지방관아 수령들을 내키는 대로 갈아치우기 때문에 이서배들이 수령 행세한 지는 오래전부터입니다.”
  • 성폭력 막아야죠 거미줄 같은 홍보로 인식, 꼭 바꿀겁니다

    성폭력 막아야죠 거미줄 같은 홍보로 인식, 꼭 바꿀겁니다

    “젊고 빠르다.” “학습 속도가 굉장하다.” ‘민생’과 ‘현장’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애정을 담아 임명한 조윤선(47)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한 여가부 직원들의 평이다. 조 장관은 3월에 취임하자마자 미혼모 시설,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등 각종 현장을 20곳 이상 찾을 정도로 숨가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변인으로 전국을 누비던 대통령 선거 때도 변함없던 체중이 빠질 정도다. 세계 108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성 격차지수다. 조 장관은 한국 여성의 위상 제고를 위해 이제 행보를 국제적으로 넓혔다. 15~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5차 동아시아 양성평등 장관회의에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데 이어 이달 말에는 프랑스 파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을 찾는다.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성 격차지수를 관리하는 부처를 만나 우리의 내부적 노력을 알리고, 지수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조 장관은 밝혔다.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성가족부의 큰 역할 가운데 하나다.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한다. 1994년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 전혀 사회적 기반이 없었다. 일·가정 양립의 만병통치약은 없다. 일하는 여성에게 최대한 많은 옵션을 제공하겠다. 집 근처에 맡기거나 돌보미, 직장 어린이집, 육아휴직 등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경력에 치명적 불이익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게 목표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사태에서 보듯이 공직자의 양성평등 의식 수준이 낮다. -대통령 업무보고 때 올해를 ‘성폭력 예방교육 원년’으로 삼아 국민 대상 홍보 콘텐츠를 개발하고, 모든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거미줄처럼 짜기로 했다. 모아서 교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동통신사, 카드회사, 대형할인점 등에서 고객들에게 보내는 편지나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 반상회보, 은행창구의 모니터, 회사 사보 등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통해 인식 개선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메시지 내용은 성폭력, 다문화, 미혼모, 일과 가정의 양립 등이다.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 여가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뜻밖에 가장 효과 있는 것이 또래상담이다. 여가부는 청소년상담개발원에서 선생님에게 또래상담 동아리 활동 지도법을 교육한다. 한영고에 가서 또래상담반을 만났는데 상담자로 나선 한 학생이 ‘중학생 때 왕따를 당했다. 점심시간에 식판을 걷어차이고 음식이 엎질러지는 모욕을 당했다. 도서관 서가에서 울곤 했는데, 한 친구가 이야기를 들어줘서 치유됐다’고 말해 눈시울을 적셨다. 또래상담을 하는 학생도 고민이 있지만, 소통을 통해 치유된다고 하더라. 대통령 업무보고에 초청됐던 태안여고는 또래상담으로 문제아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 사랑받는 학교로 바뀌었다. →유리 천장 앞에서 좌절하는 여성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조언은. -유리 천장은 자꾸 여러 사람이 부딪쳐야 실금이 가서 드디어 깨진다. 직장생활하며 아이 키우고 조직에서 자리 잡는 게 쉽지 않다. 이번 정부에서는 유리 천장을 없애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여서 지속 가능한 성장 터전을 만들자는 게 큰 과제다. 이 과제를 모든 부처가 공유하고, 대통령도 강조하고 있어 유리 천장을 깨기에 더 좋은 계기는 없는 것 같다. 경쟁력 있는 회사일수록 여성직원이 육아휴직을 쓰면 ‘저 친구는 우리 회사에서 승부를 걸 생각이 없고, 대강 다니려는구나’란 낙인을 찍는다. 이런 낙인을 찍는 문화가 없어야 한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일·가정 양립을 잘하는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받고 나서 입사 경쟁률이 100대1에서 1000대1이 됐다고 하더라. 결혼해도 되느냐, 애 낳아도 되느냐고 묻는 후배들에게 일단 시작하라고 한다. 산도 오르다 보면 이정표가 있고 길이 보인다. 저도 일 시작하고 애를 낳았더니 친정부모, 시부모께서 도와주셨다. 국가가 마음먹고 엄마가 돼주겠다고 했으니 일단 시작하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일하거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뛸 생각은. -장관 한 지 두 달하고 사흘 정도 됐는데,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은 화장실 가는 시간밖에 없을 정도다. 대통령께서도 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 등 전 생애에 걸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가져오라고 첫 국무회의에서 말씀하셨다. 눈 뜨면 어떻게 잘할까 그 생각밖에 없다. →대통령의 기대가 각별한 것 같다.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정홍원 국무총리가 모두 ‘백’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조정할 수 있는 경제장관회의에 현안이 없어도 꼭 참여해서 부탁을 많이 드린다. 여성 인재 활용은 남성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 새로운 창의적 일자리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을’로 일한 경험이 있는가. -‘갑’이었던 경험은 별로 없다. 변호사로 일할 때 갑을 관계 중에 ‘병’이나 ‘정’ 정도로 일했다. 기업변호사로 보통 소송만 하던 변호사와 달리 정말 서비스 정신을 투철하게 배웠다. 국회의원 할 때도 을로 일했다. 의원은 국민에 대해서는 영원한 을이지 않느냐. 대변인으로 일할 때도 언론인 앞에서는 ‘정’쯤 됐다. 여가부 장관은 다른 부처 장관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송금후 라면 값만 남아”… 기러기가구 115만 ‘우울증 빨간불’

    “송금후 라면 값만 남아”… 기러기가구 115만 ‘우울증 빨간불’

    기러기 아빠인 나길록(43·서울·가명)씨는 얄팍한 주머니 탓에 끼니를 숱하게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운다. 일터인 중소기업 연봉이 4000만원쯤 되지만 필리핀 마닐라에서 조기유학 중인 초등생 두 딸과 아내에게 다달이 300만원씩 부치고 나면 빈손이다. 혼자 오래 지내면서 우울증 낙인까지 찍혔다. 그는 “올해 초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필리핀에 갔더니 ‘비행기표값 있으면 차라리 돈을 더 부치지 그랬느냐’는 말만 비수처럼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밤늦게 집에 혼자 앉아 창 밖을 보다가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족을 해외로 보내고 홀로 사는 기러기 아빠들은 해마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도리어 가장 슬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 행사 때 다른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노라면 외로움은 극에 달한다. 더욱이 요즘 TV·영화 등에서 부성애 코드의 작품이 쏟아지자 “가족 생각이 사무치게 간절해진다”는 기러기 아빠가 많아졌다. 예전엔 기러기 아빠의 고충은 이른바 ‘가진 사람’들의 얘기로만 들렸지만 이제 전 계층의 문제로 확산됐다. 동남아권이나 중국 유학이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중산층·저소득층의 기러기 아빠가 덩달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배우자와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가구’는 전국 115만 가구였다. 50만 가구 이상이 기러기 아빠만 사는 가구로 추정된다. 조기유학에 따른 기러기 아빠는 20만~30만명이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엄명용 교수는 “2000년대 들어 매년 2만명 안팎의 기러기 가족이 생겨 꾸준히 쌓이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퇴직을 앞두고 노후를 준비하려고 가족들을 먼저 동남아 등으로 보내 적응시키는 교육 이외 목적의 기러기 아빠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러기 아빠들은 ‘홀로 살아간다며 슬프게 바라보는 연민의 눈초리를 받기 싫다’는 이유 등으로 사적 모임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 대표는 “이처럼 고립을 자초하면서 마음의 병은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 대구에서는 10년째 기러기 아빠로 지내던 치과의사 A(50)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대표는 “독거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낸 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 자조 모임을 만들어 서로를 보듬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한편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실은 오는 13일 기러기 아빠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2007년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들의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009년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시급 4500원에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세가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 남성 쪽에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하지만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한숨과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년 만에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칠 여유도 생겼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을 일했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상이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 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 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로 남성 쪽에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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