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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는 남미] 반정부 시위하면 테러리스트?…징역 17년 논란

    [여기는 남미] 반정부 시위하면 테러리스트?…징역 17년 논란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니카라과에서 '테러 논란'이 일고 있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붙잡힌 대학생들에게 잇따라 테러 혐의로 중형이 선고되면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니카라과 사법부는 최근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 3명에게 각각 징역 17년6월을 선고했다. 사법부의 판단을 보면 대학생들은 무시무시한 범법자였다. 대학생들에겐 테러 혐의로 징역 15년, 무기거래 혐의로 징역 2년, 공공장소의 통행을 방행한 혐의로 징역 6월이 선고됐다. 그나마 검찰의 구형에 비하면 형량은 낮게 나온 편이다. 니카라과 검찰은 학생들을 위험한 테러리스트라며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황당하다는 게 국민적 반응이다. 기소된 대학생들은 단순히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을 뿐 테러를 벌이거나 테러조직에 협조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변호사는 "시위가 과격해지는 일은 종종 있지만 시위에 가담했다고 테러리스트라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며 사법권이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넘친다는 점이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난 4월 이후 니카라과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사람은 500명을 헤아린다. 이 가운데 최소한 300여 명이 테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거나 기다리고 있다. 한 인권운동가는 "검찰이 시위에 가담하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낙인을 찍고 있다"며 "사법부까지 동조하면서 니카라과가 정말 괴상한 나라로 변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니카라과에서 연금제도 개혁이 도화선이 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건 지난 4월18일이다.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지금까지 최소한 320명이 사망했다. 사진=인포바에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책꽂이]

    [책꽂이]

    친절한 파시즘(버트럼 그로스 지음, 김승진 옮김, 현암사 펴냄) 20세기 말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관찰되는 전체주의의 전조를 분석해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 등장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은 사회과학 명저. 미국 관료 출신 정치학자인 저자는 거대 기업과 거대 정부가 점점 더 강하게 결탁하며 등장할 ‘친절한 파시즘’이 교묘하게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720쪽. 3만 2000원.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김관욱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저자가 쓴 ‘무감각한 사회의 공감 인류학’. OECD 국가 중 자살률과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사회적 질병의 환자다. 가족·낙인·재난·노동·중독이 유발하는 사회적 아픔에 공감하는 순간 나를 짓누르던 아픔 또한 공감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64쪽. 1만 4000원.책물고기(왕웨이롄 지음,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펴냄)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중국 작가 왕웨이롄의 중·단편집. 작가는 덩샤오핑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실시 이후인 1980년대에 출생한 세대를 뜻하는 바링허우 세대를 대표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288쪽. 1만 3500원.백 살에는 되려나 균형 잡힌 마음(다카하시 사치에 지음, 정미애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백 살의 ‘정신과 의사 할머니’인 저자가 지금까지 만난 환자들과의 일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책. 낯선 것에 눈길 돌리기, 녹색 식물 기르기처럼 불안정한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하고 삶의 균형 잡기를 도와주는 일상 속 방법들을 알려 준다. 180쪽. 1만 1800원.우리는 모두 메이커다(데일 도허티·아리안 콘래드 지음, 이현경 옮김, 인사이트 펴냄) 만들고 싶은 물건을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제작하고 온라인으로 제작 소스를 공유하는 ‘메이커 운동’의 창시자 데일 도허티가 쓴 책. ‘메이킹’을 통해 개개인이 어떻게 수동적인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415쪽. 1만 6800원.어느 세계시민의 자발적 이란 표류기(김욱진 지음, 슬로래빗 펴냄) 코트라(KOTRA) 테헤란 무역관에서 5년을 근무했던 저자가 쓴 이란 이야기. 이란 로하니 대통령 취임 때부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핵 협상 탈퇴까지, 고립된 나라에서 보낸 1800일을 그렸다. 240쪽. 1만 4000원.
  • “저도 보육교사 그만둡니다” 맘카페 두려워 떠나는 그들

    “CCTV 감시에 학대 의심까지 하면서 오해 풀리면 유야무야…자괴감 든다” 어린이집 홈피에 동병상련 글 이어져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아동학대 교사라는 오해를 사 ‘맘카페’에서 신상이 털릴 뿐만 아니라 폐쇄회로(CC)TV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마냥 아이를 좋아해 보육교사가 된 이들이 자괴감에 빠져 일을 관두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18일 김포의 한 어린이집 홈페이지에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담은 추모글이 잇따랐다. 인터넷 맘카페에서 아동학대 보육교사로 낙인 찍혀 스스로 목숨을 끊은 A씨가 일했던 곳이다. 보육교사로 보이는 한 네티즌은 “우리를 존중해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가해자 취급을 당하다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선생님 안아드려’로 끝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번 일을 보며 현장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전남의 한 어린이집은 지난 1월 맘카페에 아동학대 제보 글이 올라와 원아 수가 20여명 급감했다. 학부모가 “아이가 다치고 왔는데 선생님이 학대한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6개월 분량의 CCTV까지 확인한 끝에 증거가 발견되지 않자 맘카페에 글을 올려버린 것이다. 해당 어린이집 교사는 “가해자로 의심받은 교사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CCTV도 보육교사들의 인권을 옥죄고 있다. 경기의 한 어린이집에서 4년간 일한 이모(25)씨는 아동학대 의혹을 받아 학부모와 함께 지켜본 CCTV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깊은 자괴감이 들어 일을 관뒀다. 이씨는 “내가 왜 감시받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학부모의 지나친 의심에 많은 보육교사가 퇴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를 안아주는 모습이 CCTV에서 학대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 스킨십을 자제한다”면서 “아이를 참 좋아했는데 점점 멀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육교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맘카페의 부작용이 결합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절대 을의 위치에 있는 보육교사들은 부당함을 호소할 곳이 없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이라면서 “자녀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맘카페 회원들이 공격 성향을 띠면 당해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서진숙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2015년 인천 아동학대 사건 이후 어린이집 CCTV가 의무화됐지만, 교사 한 명당 아동의 비율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면서 “아동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만큼 보육교사들의 노동환경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조직에 쓴소리하다 쓴맛 봤지만… 경찰, 변해야 합니다”

    “조직에 쓴소리하다 쓴맛 봤지만… 경찰, 변해야 합니다”

    “‘파면 경찰’이란 낙인이 찍혔을 때조차도 경찰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경찰 지휘부를 비판하다 내부 감찰로 파면됐던 표정목(35) 경장이 지난달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며 현직에 복귀했다. 해당 감찰은 ‘표적 감찰’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 16일 서울신문과 만난 표 경장은 “다시 경찰로 돌아온 게 좋다”면서 “오직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듬직한 경찰로 묵묵히 살고 싶다”며 수더분하게 웃음 지었다. 2007년 순경 공채로 임용된 표 경장은 시민 보호 의무보다 실적과 승진에 얽매인 경찰의 잘못된 행태를 꼬집는 글을 경찰 내부망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종종 올리며 경찰 조직 내에서 불편한 존재가 됐다. 그러다 지난해 4월 “과태료 실적을 올리라”는 취지의 공문을 내린 서장을 비판하는 글을 내부망에 올린 것이 화근이 돼 감찰을 받고 파면됐다. 내부 결속 저해, 사건 처리 지침 위반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파면 취소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표 경장의 손을 들어줬다. 표 경장은 ‘파면 경찰’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지난 1년이 오히려 마음에 새길 값진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파면 후 물류센터에서 짐을 올리고 내리는 단기직으로 일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의 제안으로 인권연대 활동가로 근무했다. 표 경장은 “시민들의 땀과 눈물을 공유하고 여러 사람의 삶을 직접 겪어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면서 “경찰로서 시민들을 위해 더 열심히 복무해야겠다고 되새긴 시간”이었다고 돌이켰다. 조직 내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다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경찰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부 개혁은 외부 요청이나 상부 지시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함께 문화를 바꿔 나가야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승진과 실적을 위해 ‘대포차를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형편이 어려워 보험금을 못 내는 사람들에게 마구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평소 사건은 서로 ‘핑퐁’하면서 집중 단속 기간 딱지 수에는 열을 올리는 등의 모습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신분을 회복했지만 경찰 내부에선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린다. 표 경장은 “돌아왔다고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분도 있고, 불편해하는 분도 있다”면서 “그러나 저는 왕따보다는 나쁜 경찰이 되는 게 더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에게 경찰력이 어떻게 발휘돼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경찰로 살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여순사건 70주년] 3살 때 국군이 철도 기관사 부친 총살… 모친 “이승만이 죽였다”

    [여순사건 70주년] 3살 때 국군이 철도 기관사 부친 총살… 모친 “이승만이 죽였다”

    여수 14연대, 제주4·3 진압 거부하고 봉기 “얘기 한 번 들어봅시다” 한마디 꺼낸 부친, 순천 장악한 국군에 체포된 뒤 29세 사살 지역사령관 계엄령에 민간인 1만명 학살 장씨 “연좌제 낙인 고통… 진실 규명돼야”“철도 기관사였던 아버지는 70년이 지나도록 아직 퇴근을 못 했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제14연대 군인들은 제주 4·3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다. ‘여순사건’의 시작이다. 장경자(73)씨는 그때 3살이었다. 14연대는 10월 20일 순천을 장악했고, 3일 후 국군이 순천을 되찾았다. 며칠 후 국군으로부터 출근 명령을 받은 장씨의 아버지는 평소대로 순천 철도국으로 출근했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군은 아버지를 철도국 창고에 가뒀다. 14연대가 순천을 장악했을 때 아버지가 동료들에게 “14연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봅시다”라고 얘기했고, 국군이 다시 순천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가 14연대를 옹호했다고 아버지를 밀고했다. 군경의 날카로운 의심은 곧장 아버지를 향했다. 장씨의 어머니는 창고에 갇혀 있던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옷을 빨아 달라며 전달한 속옷의 고무줄에 ‘군기병을 잡으시오’라고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군인 한 명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군인 중에 지인이나 친척은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그해 11월 30일 29세의 나이로 순천 이수중학교에서 사살됐다. 장씨는 “여기서 학살당한 사람만 102명이었다”면서 “계엄법도 없었는데 지역사령관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람을 죽였다”고 억울해했다. 여순사건 1년 후인 1949년 10월 전남 당국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민간인 희생자가 여수·순천을 포함해 전남 동부 지역에서만 1만 1131명에 달했다.장씨는 60세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가 정확히 어떻게 사망했는지 모르고 살았다. 여순사건 과정에서 돌아가셨다는 얘기 정도만 들었다. 환갑이 넘어서야 국군에게 살해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동안 장씨에게 말해 주는 사람도, 묻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철로 근처에 살았던 어머니는 열차 기적이 울릴 때마다 “저 소리가 무섭다. 이승만이 너희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을 되뇌었다. 장씨는 “어머니가 욕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이 학교, 경찰서, 면사무소 등 가는 곳마다 걸려 있어 혼란스러웠다”고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장씨의 시아버지는 여수에서 희생됐다. 10월 19일 여수를 장악한 14연대는 군청의 양곡창고를 개방해 시민들에게 배급했다. 여수 군청에서 근무하던 시아버지는 14연대의 지시대로 쌀을 배급한 것이 죄가 됐다.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시아버지는 1950년 7월 7일 대구 경산면에서 처형됐다. 장씨와 그의 남편은 아버지의 부재와 연좌제로 고통을 받았다. 남편은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원했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 장씨는 국방부에서 6년간 경리로 일했다. 장씨는 “아버지가 누구한테 죽은지도 모르고 일을 했다”면서 “국군이 아버지를 죽였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독신 생활을 이어 가던 장씨는 2010년 여순사건의 진실을 찾던 중 ‘동병상련’을 앓던 남편과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진실 규명이 이뤄지는 걸 보지 못하고 지난해 사망했다. “이부형제인 남편의 동생도 우리 부부를 ‘빨갱이’ 자식들이라고 욕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습니까.” 담담하게 가족의 비극사를 이어 오던 장씨는 남편 얘기를 하면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글 사진 여수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사형 49년 만에 ‘위장간첩’ 누명 벗은 이수근씨… “국가의 과오”

    사형 49년 만에 ‘위장간첩’ 누명 벗은 이수근씨… “국가의 과오”

    1960년대 말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고 이수근씨가 처형된 지 49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11일 이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등 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공문서 위조 및 행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의 일부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자이던 이씨는 1967년 3월 김일성 주석 수행기자로 판문점을 취재하던 중 유엔군 차량에 올라타 남한으로 귀순했다. 당시 탈북자 중 고위급 인사였다. 그러나 2년 뒤인 1969년 1월 이씨는 위조여권을 이용해 홍콩으로 출국한 뒤 캄보디아로 가려던 중 경유지인 베트남에서 체포됐다. 위장 귀순해 북한의 군사적 목적을 위해 기밀을 수집하는 등 간첩행위를 한 뒤 한국을 탈출했다는 게 이씨에게 씌워진 혐의였다.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같은 해 5월 사형을 선고받았고 항소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돼 두 달 뒤인 7월 처형됐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중정 수사관들이 이씨 등을 불법 체포·감금하고 수사과정에서 각종 고문과 폭행 등 가혹행위를 했다”면서 “사실 확인도 없이 졸속으로 재판이 끝났고 위장 귀순이라 볼 근거도 없다”고 발표했다. 이씨와 공범으로 몰려 함께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아 장기간 복역했던 이씨의 친인척 3명은 2008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씨의 재심은 지난해 검찰이 직권으로 청구하면서 열렸다. 재판부도 “이씨가 영장 없이 불법으로 구금됐고 중정 수사관들로부터 고문,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하게 돼 허위로 자백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씨 등이 첫 공판이 열리기 전날 중정 남산대공분실로 끌려가 “재판받을 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고, 재판 당일에는 중정 요원들이 법정 안을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는 등 위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법정에서의 이씨의 자백 진술 또한 강요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해 대한민국을 탈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에 가서 저술활동을 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씨가 당시 간첩에게 필수적이었던 암호명이나 난수표 등을 소지하지 않았고, 과거 공소사실에 기재된 암호연락문도 난수표에 의해 암호화되지 않은 점, 이씨가 홍콩에서도 충분히 북한 영사관 등을 통해 북한으로 가거나 북한 인사들과 접촉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중립국인 캄보디아로 가려다가 남베트남에서 체포된 점 등을 보면 간첩행위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당시 이씨는 주변 인사에게 “중정의 감시가 너무 심해 중립국에 가서 저술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국가에 의해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낙인찍힌 채 사형집행에 의해 생명을 박탈당했다”면서 “이제 암울했던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피고인과 그 유가족들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씨와 공범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21년을 복역한 조카 배경옥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국가에 의해 인권이 유린됐던 사건”이라면서 “무죄 판결이 났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배씨는 “오늘 판결을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뒤 이모부님 이름의 장학재단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고아를 ‘투명인간’ 취급… 인권단체 한 곳은 있어야죠”

    “고아를 ‘투명인간’ 취급… 인권단체 한 곳은 있어야죠”

    33년 만에 가족 찾았지만 과정 어려워 인권 사각 발생하지 않도록 연대 설립 “1시간 거리에 살던 가족을 33년 만에 만났습니다. 가족을 찾으면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고아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결심했죠.” 지난달 22일 서울 구로경찰서에서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만난 장성한 아들은 연신 눈물을 닦았다. 이날 가족을 만난 주인공은 전윤환(39) 고아권익연대 대표였다. 전 대표는 여섯 살이던 1985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부모님과 헤어진 뒤 18세 때까지 충청도의 한 보육원에서 자랐다. 부모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하루하루 힘든 보육원 생활에 실천에 옮길 틈은 없었다.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채 살던 전 대표가 가족을 찾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것은 지난 2월 납골당에서였다. 장애인 콜택시 기사로 일하던 중 손님을 기다리다 우연히 무연고자 납골묘를 봤는데 “이름도 없는 이 사람의 생일은 언제일까”라는 궁금증이 스쳤다. 이어 “국가는 내 흔적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그 길로 병무청,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를 뛰어다니며 자신의 기록을 찾았다. 모범운전자회 활동을 하며 알게 된 구로경찰서에도 3월 실종가족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출생연도와 이름을 근거로 추린 1만 8000개의 명단을 6개월간 뒤진 끝에 부친 전모(69)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한 살 터울인 누나도 함께 찾았다. 택시 운전사였던 그가 지난 4월 고아권익연대를 만들게 된 계기는 고아를 위한 단체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였다. 전 대표는 “고아는 통계도 없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면서 “이들이 기댈 곳이 한 곳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나섰다”고 말했다.전 대표는 단체 이름에 고아라는 단어를 앞세운 것에 대해 “고아에 대해 말하기 꺼리는 사회 분위기와 낙인을 지워야 이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대표는 가족을 만나 새 사람이 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두 딸에게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고, 가족들과 밤새 이야기하며 흩어져있던 어린시절 기억을 하나씩 맞췄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자신을 숨기며 사는 고아들이 새 삶을 찾도록 대상자 발굴과 상담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사설] 고령층 복지 사각지대 해소할 맞춤형 서비스 제공해야

    공적 부조는 당사자 신청을 토대로 정부가 혜택을 제공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 같은 공적 부조의 수혜 대상자들인 저소득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이 제도를 잘 알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가 생긴다면 큰 문제다. 이를 일선 복지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의 문제로 지적했다. 정부가 수혜 대상자에 따라 적극적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안전망에 큰 구멍이 생긴다는 의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말 시·군·구와 읍·면·동의 복지업무 담당자 600명을 대상으로 복지 사각지대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대상자들이 몰라서’라는 응답 비율이 46.2%로 가장 높았다. ‘대상자 선정 기준이 엄격해서’(22.0%)나 ‘대상자가 신청하지 않아서’(18.5%) 등에 비해 압도적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복지담당자의 52.2%가 ‘대상자 선정 기준이 엄격해서’를 가장 많이 꼽았지만, ‘대상자가 신청하지 않아서’(18.8%)와 ‘대상자가 몰라서’(17.8%)를 합치면 36.6%로 복지의 대상자가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3분의1을 넘었다. 장애인연금은 ‘대상자가 몰라서’(31.5%)를 가장 많이 답변했다. 특히 이들은 사각지대 문제가 심각한 연령층을 65세 이상 노인층(49.2%)이라고 손꼽았다. 복지 공무원들은 대상자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지 않는 이유로는 ‘복지 낙인과 수치심으로 인해’, ‘급여 신청의 절차가 복잡’ 등을 제시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대상자들이 복지제도를 모르는 등으로 사각지대가 생긴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복지 대상자 선정 기준은 엄격히 하더라도 수치심과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신청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올해 정부 예산에서 보건·복지 등 사회보장과 관련된 예산은 33.7%인 144조 7000억원이다. 2014년 서울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을 계기로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도 만들었다. 저소득층의 위기는 느닷없이 발생한다. 늘어난 복지예산을 잘 쓰려면 노인이나 장애인 등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사각지대를 축소해야 한다.
  • 교황청의 반격… “교황의 성학대 은폐 주장은 정치적 조작극”

    교황청의 반격… “교황의 성학대 은폐 주장은 정치적 조작극”

    우엘레 “중상모략”… 6주 만에 첫 대응 폴란드, 성폭행 장소 표기한 지도 발간 “정부·교회 향해 조속한 대책 마련 압박”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동안 침묵했던 교황 측은 7일(현지시간) 교황이 고위 사제의 성학대를 은폐했다는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을 ‘근거 없는 정치적 조작’이자 ‘교회를 분열하게 한 가증스러운 행위’로 낙인찍었다. 교황청의 이번 대응은 교황이 성학대 은폐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검토를 지시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으로, 일각에서는 교황 측이 비가노 대주교에게 대대적인 역공을 가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교황청의 핵심 부서인 주교성 장관직을 수행 중인 마르크 우엘레 추기경이 비가노 대주교 앞으로 3페이지 분량의 공개서한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 서한은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을 겨냥해 의혹을 제기한 지 6주 만에 나온 교황청의 첫 공식 반응이다. 반(反)교황파로 알려진 비가노 대주교는 지난 8월 25일 공개한 11페이지짜리 공개서한에서 교황이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국 추기경의 성학대 사실을 묵인했으며,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었다. 비가노 대주교는 이후 지금까지 모처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 우엘레 추기경은 이날 서신에서 비가노 대주교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을 중상모략했다고 주장했다. 우엘레 추기경은 “당신(비가노 대주교)의 비난은 어떤 사실에도 기반하지 않은 정치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렸다”면서 “교회에 상처를 남기고, 신자들을 분열하는 가증스러운 반역으로 성직자로서의 삶을 끝내서는 안 된다. 증오를 키우는 대신 피난처에서 나와 회개하고 선한 감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고했다. 우엘레 추기경은 전임 교황이 매캐릭 추기경에게 내린 징벌을 교황이 거두어들였다는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에 대해 “교황청 내부 모든 자료를 검토했으나, 전임 교황들이 매캐릭 추기경에게 제재를 부과했다는 어떤 기록도 찾지 못했다”며 “비가노 대주교의 서신은 허위”라고 반박했다. 우엘레 추기경은 비가노 대주교가 지난 2013년 6월 23일 교황에게 매캐릭 전 추기경의 성학대 사실을 보고했다는 주장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우엘레 추기경은 “교황은 그날 전 세계에 나가 있는 교황청의 모든 대사를 즉위 후 처음 만났다.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말과 글로 접한 것을 고려할 때 교황이 당시 은퇴한 지 7년이나 지난 82세의 매캐릭 전 추기경에게 특별히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지난 6일 교황청 문서 보관소에 존재하는 매캐릭 전 추기경과 관련된 자료를 모든 자료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매캐릭 전 추기경을 둘러싼 성 학대 추문에 대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AP통신은 이날 폴란드의 사제 성학대 피해자 아동 보호 단체 ‘해브노피어’가 15세 이하 어린이 255명이 성폭행을 당한 장소를 표기한 지도를 발간했다고 전했다. 단체 측은 정부와 교회에 조속한 성학대 대책 마련을 압박하려고 이 지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3년 새 상인 절반 떠나…서해대 폐교 땐 지역도 무너질 겁니다”

    “3년 새 상인 절반 떠나…서해대 폐교 땐 지역도 무너질 겁니다”

    “3년 사이 대학 주변 상인 절반이 여길 떠났어요. 학교가 폐교하면요? 지역도 같이 무너질 겁니다.”인구 27만 3498명(2018년 7월 기준)의 군산은 전주, 익산과 더불어 전북의 3대 도시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일감 부족을 이유로 문을 닫은 데 이어 지난 5월 GM군산공장도 경영 악화를 이유로 폐쇄되면서 지역 경제에 위기감이 가중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교육부가 정원 감축 등을 권고한 구조조정 대상 대학에 군산 시내 2개 대학(전문대)이 포함됐다. 군산 시민들은 “경쟁력이 없는 대학의 구조조정은 필요하지만 지역사회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대안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지난 4일 오전 군산 오룡동에 위치한 서해대학과 그 주변은 휴일처럼 조용했다. 서해대는 교육부 대학역량기본평가에서 최하위인 ‘재정지원제한Ⅱ’ 대학으로 선정된 5개 전문대 중 한 곳이다. 내년부터 이 학교의 신입생과 편입생은 국가장학금과 국가학자금대출을 받지 못한다. 학교 또한 2021학년도까지 전체 정원의 30%를 감축해야 한다. 정원 1476명의 서해대는 현재 915명이 재학 중이다.이날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그보다 훨씬 적어 보였다. 수업이 한창 진행돼야 할 평일 오전 10시쯤 본관 외 2개의 강의동 중 하나인 신실관(4개층) 전체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강의실은 4곳에 불과했다. 각 강의실에는 그나마 남은 10명 남짓의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학생식당 입구 한쪽엔 사용하지 않은 공사 자재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식당에서는 올해 새로 계약했다는 외주업체 조리사들이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식당엔 생기가 돌지 않았다. 점심시간 즈음에도 교직원과 학생으로 보이는 10명 남짓한 인원이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식당 관계자는 “많을 때는 하루 70명 정도 식당을 이용한다”면서 “작년까지는 매일 식단이 바뀐 걸로 알고 있는데 효율이 떨어져 올해부터는 몇 가지 메뉴로 통일했다”고 설명했다. 메뉴판에는 제육볶음(4500원), 수제 돈가스(4000원) 등 4개의 메뉴가 적혀 있었다.주민들은 이사장과 총장이 부정 비리를 저지른 이후 학생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지역 기독교 재단이 중심이 돼 1974년 개교한 서해대는 2013년 학교 매각 과정에서 이중학 전 이사장과 이모 전 총장이 학교자금 146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16년 구속기소돼 현재 재판 중이다.학교 정문 앞에서 32년째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고모(63·여)씨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수가 3000명이 넘었고, 밤에는 야간수업을 마친 학생들을 받기 위해 11시까지 문을 열었다”면서 “지금은 점심 한때에 10명도 받을까 말까”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맞은편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 중인 박모(64)씨는 “3년 전 이사장 비리 기사가 나가면서 학생수가 확 줄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이 주변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 절반이 떠났다”면서 “학교가 문을 닫으면 이 지역도 같이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학교 정문에서 바로 눈에 들어오는 분식점 두 곳은 간판만 남기고 폐업한 상태였다. 서해대가 위치한 오룡동은 군산의 최대 번화가인 수송동에서 10㎞도 떨어지지 않은 시내 중심가에 있다. 군산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나 한국GM 등이 문을 닫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지만 서해대가 폐교할 경우 지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내년 신입생부터 국가장학금이 중단된다고 들었다”면서 불안감과 걱정을 내비쳤다. 방사선학과 3학년 학생은 “우리는 졸업반이라 자격증을 딴 뒤에 취업하면 되지만 교육부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신입생들이 취업 등에 피해를 받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학생들은 이 학교 방사선학과가 지난해 재학생 자격증 취득률 83%로 전국 평균 합격률(75%) 대비 높아 전북 지역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는 학과로 평가받는다고 전했다. 이 학과의 다른 1학년 학생은 “전주에서 왔다”면서 “학과 취업률도 좋다고 해서 지원해 왔는데 내년부터 국가장학금을 못 받을 정도로 학교가 어렵다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 학과의 한 조교는 “재정지원제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이미 모두 공지했고,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언론의 관심이 학생들을 더 불안하게 할까 봐 걱정”이라며 취재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해대의 2018학년도 입학 경쟁률은 550명 모집에 1461명이 지원해 2.7대1을 기록했다. 전년 2.2대1(726명 모집에 1629명 지원)보다 다소 올랐다. 대학기본역량평가 결과 발표 뒤 실시된 2019학년도 수시 모집 경쟁률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학기본역량평가 최하위 등급 학교는 폐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입생 국가지원 장학금이 중단되는 내년부터 신입생이 급감하게 될 경우 학교 재정에 적지 않은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학교 운영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서해대는 45년간 학생뿐 아니라 야간 수업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평생학습을 담당하는 등 지역사회의 한 축을 이뤄 왔다”면서 “학교를 살리기 위해 전 임직원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해대는 지난 5월 취임한 서동석 총장이 이번 평가 발표 이후 사퇴하면서 아직 총장 직무대행도 결정하지 못하는 등 적지 않은 후폭풍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최하위 등급은 아니지만 역량강화대학으로 선정된 군산간호대 역시 위기감이 적지 않다. 군산간호대는 학생 정원이 1000명 미만(907명)으로 정원 감축 권고 대상에서는 제외(1000명 미만 대학은 정원 감축 미권고)됐지만 이번 평가 결과가 학교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 않을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군산간호대 관계자는 “간호대 특성상 취업률이 높아 지원 학생들은 꾸준한데도 이번 평가 발표로 장기적으로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군산간호대는 2017학년도 8.5대1, 2018학년도 13.4대1로 전년 대비 경쟁률이 50% 이상 올랐다. 교육부는 지방에 전국 학생의 52%밖에 없는데, 대학 정원의 64%가 지방에 있는 인구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등을 통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2018학년도 대학입학 정원은 48만 3000명이다. 교육부는 3년 뒤인 2021년 대학에 입학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입생은 42만 7566명으로 현 대학 정원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전국 4년제 대학 196곳, 전문대 137곳(2017년 기준) 중 38곳이 신입생을 한 명도 모집하지 못해 폐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 대학들은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부실 대학’ 낙인을 찍는 것이 오히려 자율적 구조조정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발표 이후 서해대 총장을 비롯해 박진성 순천대 총장, 박한일 한국해양대 총장, 강동완 조선대 총장 등 낮은 평가를 받은 지방 대학 총장들이 줄줄이 사퇴하거나 사퇴를 표명했다. 역량강화대학 이하 등급을 받은 한 지방 대학 관계자는 “수도권에 있는 일부 대학은 단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경쟁력이 없어도 학생이 몰려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서 “무조건 줄세우기식 평가로 ‘부실대 낙인 찍기’를 하면 결국 지방대만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미 인구가 지방보다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 대학들을 전부 그대로 두면 건실한 지방 대학까지 어려움이 확대될 수 있다”면서 “대학이 폐교하면 지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교육부가 함께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군산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신촌캠vs원주캠’ 갈등 불붙인 연세대 통합 논란

    연세대 본교인 신촌캠퍼스와 분교인 원주캠퍼스의 통합 논의로 학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최근 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원주캠퍼스의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one university, multi-campus’(하나의 대학, 복수의 캠퍼스) 구상을 밝히자 신촌 캠퍼스 재학생들이 통합에 격렬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갈등은 지난달 3일 교육부가 공개한 2018 대학 기본 역량 진단 평가에서 원주캠퍼스가 역량강화대학 명단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역량강화대학은 정원을 10% 줄여야 하고, 일부 대학만 대학혁신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반면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된 신촌캠퍼스는 정원감축을 권고받지 않고 3년간 별도 평가 없이 대학혁신지원사업(자율협약형) 지원을 받는다. 특히 고려대(서울-세종), 건국대(서울-충주), 동국대(서울-경주), 한양대(서울-안산) 등 주요 대학은 본교와 분교가 모두 자율개선대학에 들면서 연대 구성원들의 위기감이 커졌다. 이에 연세대 측에서 내놓은 방안 중 하나가 본교와 분교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지난달 27일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원주캠퍼스 학생들에게만 캠퍼스 혁신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그중 “신촌캠과의 중복학과 해소를 통해 장기적으로 본교·분교체제에서 one university, multi-campus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합니다”라는 문구가 문제가 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촌캠퍼스 재학생들은 즉각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한 재학생은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서 “신촌과 원주캠퍼스는 신입생 선발부터 학교 운영까지 완전히 독립된 체제고 성적도 수준도 너무 차이가 난다”면서 “역량이 한참 떨어지는 대학과 합치면 신촌이 훨씬 손해”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대학 입시는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제도”라면서 “신촌캠 학생들은 노력을 통해 이곳에 입학했고,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정체성이 흐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주캠퍼스 학생들의 불만도 커졌다. 한 재학생은 “학교에서 부실 행정, 부실 경영을 해서 역량강화대학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왜 욕먹는 건 원주캠 학생들이냐”고 항의했다. 또 “원주캠 학생들은 학생식당, 방만한 교직원 행정, 높은 학비 등 고질적 문제만 지적했고 통합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신촌캠 학생들이 싸잡아 욕한다”, “안 그래도 ‘원세대’라는 사회적 낙인에 상처받는데 이번 사건으로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내 갈등이 극으로 치닫자 연세대 측은 4일 “통합은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4일 오후 김 총장, 홍종화 교학부총장, 김동노 미래전략실장과 면담을 한 뒤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면담 결과에 따르면 김 총장은 “물리적인 통합은 불가능하다”면서 “이원화나 통합은 고려해본 적이 없고 실현할 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문제의 문구에 대해선 “서로 다른 두 개의 캠퍼스가 자율성을 가지고 상생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원주혁신위원회 소속 신촌캠퍼스 기획처장 이창하 교수도 “종국적으로 양 캠퍼스의 통합을 지향하는 건 맞지만 1~2년 내 생기는 변화는 아니다”라면서 “원주캠이 신촌캠과 유사한 정도의 경쟁력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게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사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최저임금 차등 적용

    고용 참사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 완화 대안으로 지역별 차등 적용 방안 검토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제 국회에서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 적용 문제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 폭으로 일정한 범위를 설정한 뒤, 지방에 결정권을 주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 대안을 만들기 위해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지난달의 언급이 구체화된 것이다. 차등 적용 문제가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영계는 지난해부터 업종과 지역에 따라 사업장의 임금 지급 능력에 차이가 있는 만큼 최저임금에 차등을 둬 사업주의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서울보다 물가 수준이나 매출 규모가 낮은 지방의 자영업자가 서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논리다.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도 지역별 최저임금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차등 적용 방안은 득 못지않게 실도 크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저임금 노동자 보호라는 최저임금제 기본 취지에 배치되고 지역에 따라 노동자를 차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임금이 높은 대도시로 노동력이 몰릴 가능성도 크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미 “하루 생활권인 우리나라에서 저임금 지역의 낙인 효과가 발생하면 노동력 수급을 왜곡할 수 있고 지역 균형발전도 해칠 수 있다”며 차등 적용에 반대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최저임금이 올해 16.4% 오른 데 이어 내년에 10.9% 추가 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차등 적용은 정부로서는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하지만 보조금 확대 등 보완책 시행 뒤 검토해도 늦지 않다. 만약 시행을 추진하더라도 부작용들이 최소화되도록 설계돼야 할 것이다.
  • ‘저임금 지역 낙인찍는다’ 여당도 반대…국회 통과 ‘가시밭길’

    ‘저임금 지역 낙인찍는다’ 여당도 반대…국회 통과 ‘가시밭길’

    정부, 악화된 고용시장 풀 카드로 검토 法엔 생계비·노동생산성 등 고려 결정 최저임금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번엔 ‘지역별 차등적용’이다. 경영계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완책으로 ‘업종별 차등적용’을 주장해 왔고,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수용 불가’를 밝혀 왔다. 하지만 경제 컨트롤타워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과정에서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확산되는 모습이다.현행 최저임금법엔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규정이 있다.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은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노동생산성 등을 고려해 정하는데 이때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최저임금법 시행 첫해인 1988년 이후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어떤 업종에 종사하는지에 따라 노동자가 차별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도 “업종별 차등화는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됐지만 부결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김 부총리는 두 자릿수 인상이 확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을 돌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자영업자들을 다독이고, 악화된 고용시장을 풀 수 있는 카드로 지역별 차등화를 꼽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역별로 물가와 주거 비용 등이 달라 합리적인 차등 조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생활임금’을 정해 발표하는 것도 참고사항이 됐다. 해당 지역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려면 어느 정도의 시급이 근로자에게 지급돼야 하는지를 산정한 것이다. 서울시는 내년도 생활임금을 시급 1만 148원으로 정했다. 경기 성남과 과천, 광명시는 각각 1만원, 전남 여수시는 9100원이다. 대부분 1만원 안팎이다. 그러나 생활임금은 엄연히 최저임금과는 다른 개념이다. 최저임금이 근로자의 최소한의 생계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생활임금은 여유로운 생활에 주목한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생활임금을 주는 것은 법적인 의무가 아니기에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가장 큰 걸림돌은 지역별 차등화가 자칫 지역별 감정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위윈회도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 과정에서 “(지역별 차등화는) 저임금 지역에 대 한 낙인 효과가 발생해 노동력 수급을 왜곡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해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법 개정 사안이라 국회 문턱을 넘기도 쉽지 않다. 지역구에 기반한 의원들이 지역 차별을 내포한 법안에 반대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여당 내에서도 반대하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저임금의 지역별, 업종별 차등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역별 차등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도 “한쪽에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번진다”며 “지역별, 분야별 차등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도 지역별 차등화는 일반적이지 않다. 최저임금위에 따르면 선진국 중에서 지역별 차등을 두는 곳은 일본과 캐나다 정도다. 일본에선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기준을 제시하면 지자체별 심의회가 최저임금을 정한다. 캐나다는 지역 외에 연령으로도 차이를 둔다. 서유럽에선 지역별로 차등을 적용하는 나라가 없다. 그나마 그리스가 생산직·사무직 여부, 결혼 여부, 근속 기간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 정도다. 개발도상국에선 인도네시아와 멕시코,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이 지역별 차등화를 하고 있는데, 이는 지역간 개발 편차가 심한 탓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당 논의가 새삼 화두가 된 것은 최근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최저임금 인상률 때문”이라면서 “이를 경제성장률 정도로 낮추는 게 오히려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최저임금 인상이 이렇게 가파르지 않았다면 지역별 차등화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한참 올려놓고 이제 와서 차등적용을 논의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신원 노출’과 ‘팩트 확인’ 사이…스쿨미투 실명조사 딜레마

    ‘신원 노출’과 ‘팩트 확인’ 사이…스쿨미투 실명조사 딜레마

    교육청·경찰 “피해자 명확해야 조사 가능” 정보제공 동의서엔 부모 연락처도 요구 전문가 “학내 조사 최소한 익명 보장해야”학생이 교사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가 일파만파로 번진 이후 진상 조사에 나선 지역 교육청과 경찰이 또 다른 갈등의 벽에 직면했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실시하는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에게 실명을 기재하라고 요구하자 학생들이 “2차 피해”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학생들은 제보자가 색출되면 미투 운동이 위축되고 ‘미투 제보자’라는 낙인이 찍혀 진학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다. 지난달 미투 폭로로 교육청의 전수조사가 진행된 충남 논산여상의 트위터 계정에는 “교사와 학생 간 위력 관계 때문에 미투가 익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시작됐는데 익명이 보장되지 않은 조사는 학생들에게 공포감을 준다”면서 “조사를 무기명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어 교육청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에 피해 학생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에 학생 이름과 부모 연락처를 적도록 한 것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교육청 측은 “경찰이 조사하려면 제보자가 실명을 밝혀야 하고, 학생이 미성년자여서 정보 제공 동의에 부모의 연락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학생들은 “제보 학생을 색출하려는 의도 아니냐”고 비판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투 폭로가 나온 서울 광남중과 충북여고의 학생들도 교육청이 설문지에 이름을 적도록 한 것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했다. 상황이 이렇자 학생들이 설문지에 아예 이름을 쓰지 않는 학교도 나왔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경찰이 배포한 설문지에 학생들이 거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무기명 자료는 피해자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참고만 한다”고 밝혔다. 학생의 실명이 절실한 교육청과 경찰은 “익명의 설문만으로는 피해 조사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피해 당사자를 모르면 경찰에서도 사건 처리가 될 수 없다”면서 “조사 때 청소년 전문 상담사를 배치해 2차 피해가 없도록 배려했다”고 말했다.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실명 기재를 학생 자율에 맡겼고 경찰 조사를 원하는 사람만 이름을 쓰라고 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실명 제보를 꺼리는 것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온 익명 제보의 필적을 하나하나 조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서 “익명 조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내 설문은 무기명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변호사는 “교사들이 진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서 학생에게 솔직한 답변을 이끌어 내려면 익명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는 “직장 내 미투 폭로자가 고용에서 불이익을 받을 때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학생은 자퇴해도 보상이 어려운 특수한 상황”이라면서 “최소한 학내 조사는 익명을 보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공무원 대나무숲]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조사, 근로감독관 가슴도 미어집니다

    매일 상반된 주장이 난무하는 가운데 가해자의 주장도, 피해자의 주장도 허투루 들을 수 없습니다. 그 속에서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죠. 아직도 생생한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에게 사실관계를 따져 물을 때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는 ‘직장 내 성희롱’ 업무를 전담하는 근로감독관입니다. 최근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직장 내 성희롱 신고가 늘고 있습니다. 2016년 558건이었지만 지난해는 885건으로 늘었고, 올 상반기엔 이미 603건이 접수됐습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선 사업주, 상급자, 다른 근로자가 직장 내 직위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행으로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규정합니다. 이에 따르지 않았단 이유로 근로 조건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증거없는데 피해자·가해자 증언 서로 달라” 성희롱 사건을 접수하면 근로감독관은 먼저 사실을 확인합니다. 사실로 드러나면 사업주에게 과태료와 함께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징계와 근무지 변경에 대한 의무를 부과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성희롱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 있을 때 발생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죠. 성희롱을 입증할 만한 물적 증거나 증인이 없는 게 다반사입니다. 가해자로 지목되는 사람의 70% 이상은 동료나 상급자입니다. 당연히 그 사람들도 근로자입니다. 성희롱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없는데 서로의 주장이 상반될 때가 많습니다. 이때 근로감독관은 철저하게 ‘합리적 이성’을 가진 ‘보통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 사람이 성적인 굴욕감을 느낄 만한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신중하게 살피죠. 피해자와 가해자만 들여다보는 게 아닙니다. 참고인 조사를 통해 직장의 환경도 들여다봐야 합니다. ●가장 가슴 아픈 말은 “왜 사장 편만 드냐” 엄정한 결론을 낸다고 끝이 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일부 민원인은 근로감독관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두둔한다”고 오해합니다. 오히려 “근로감독관의 질문이 수치심을 유발해 2차 피해를 낳았다”고 외부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죠. 민원인의 일방적인 주장임에도 대외적으로는 이미 ‘성인지 감수성이 전혀 없는 무능하고 부도덕한 공무원’으로 낙인찍힙니다.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에게 “근로자 편만 든다”는 비난을 듣는 건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근로자에게까지 “사업주 편을 든다”, “사업주에게 돈을 얼마나 받았느냐”는 말을 들을 땐 마음의 상처가 오래 남습니다. 오늘도 성희롱 사건을 처리하면서 누군가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지 않을까 가슴을 졸입니다. 근로감독관 A씨
  • ‘서울대 총장 도전’ 오세정 前의원을 보는 엇갈린 시선

    국회의원 배지를 던지고 제27대 서울대 총장에 도전한 오세정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교수직을 발판 삼아 정계에 입문한 ‘폴리페서’의 야심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는 지적과 함께 의원직을 내려놓고 도전장을 던진 것에서 진정성이 묻어난다는 의견이 상존한다. ●“국회의원 임기도 안 채워 책임감 우려” 서울대 재학생 일부는 오 전 의원의 총장 도전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7월 무산된 서울대 총장 선거 ‘학생 태스크포스(TF)’에 참여했던 한 재학생은 “의원 임기도 채우지 않은 후보가 총장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의견은 갈렸다. 서울대 인문계열의 한 교수는 “서울대 상황이 4년 전과 비교하면 매우 어려워졌는데 정치권에서 별 존재감이 없었던 오 전 의원이 당면 과제를 해결할 적임자인지, 역량이나 비전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오 전 의원은 2014년 제26대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최종 3인 후보 가운데 1순위였으나, 이사회에서 결과가 뒤집혀 탈락했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상아탑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공직선거의 결과를 저버리면서 임기 4년의 서울대 총장 자리에 도전하는 것은 잘못된 처신”이라고 지적했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오 전 의원은 기초과학연구원장을 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직을 11개월 만에 관뒀고 기초과학연구원장직도 서울대 총장에 출마하려고 얼마 못가 관뒀다”면서 “자리에 연연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장관·민정수석 등은 왜 문제 안 삼나” 그러나 의원직까지 내려놓은 오 전 의원을 ‘폴리페서’로 낙인찍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대 이공계열의 한 교수는 “대학 밖으로 나가는 교수가 문제라면 장관, 민정수석, 사회수석, 연구재단이사장 등도 모두 ‘폴리페서’라는 것”이라면서 “총장에서 낙선하면 비아냥거림을 당할 것이 뻔한데도 의원직을 사퇴하고 출마한 것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강남순의 낮꿈꾸기] 당신은 ‘이성애 합법화’를 찬성하십니까

    [강남순의 낮꿈꾸기] 당신은 ‘이성애 합법화’를 찬성하십니까

    어느 날 학교 연구실에 있는데 조교인 샘(Sam)이 불쑥 문을 두드렸다. 조교라도 미리 약속을 하지 않고 찾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웬일인가”라고 물었더니, 너무나 기쁜 소식이 있어 빨리 나누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7년 만에 어머니가 전화를 했는데, “너희 둘은 어떻게 지내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샘의 얼굴을 보니, 그림자 하나도 없는 환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그가 어머니의 이 평범한 인사말에 그토록 기뻐한 것은 바로 ‘너희 둘’(you two)이라는 말 때문이다. 게이로 커밍아웃을 한 이후 집에서 더이상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하여, 샘은 7년 동안 가족과 연락 두절을 하고 지내 왔다. 7년 만에 연락을 한 어머니가, ‘너’가 아니라, “너희 둘은 어떻게 지내니?”(How are you two?)라는 인사말을 한 것이다. ‘너’(you)에 ‘너희 둘’(you two)이라는 단어를 하나 집어넣어 두 사람의 안부를 물은 그 한마디 말로, 샘은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정당해 왔던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는 감격의 경험을 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매우 복잡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말 한마디를 덧붙이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 ‘너’라는 말과 ‘너희 둘’이라는 말 사이의 차이가, 어떤 사람의 삶에는 극과 극의 희비가 교차할 수 있는 것임을 샘은 내게 전해 준다. ●세계정신의학회 “비정상·질환 간주는 오류” 나의 학생, 친구, 동료 중에는 이른바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 트랜스젠더)들이 여럿 있다. 내가 일하는 대학교는 성소수자 중심의 동아리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다. 그런데 이들이 대학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사회는 물론이고 가족, 친구, 교회로부터 그 존재가 부정되곤 한다. 왜 그런가. 이들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정상-비정상’이라는 틀에서 시작된다. 이분법적 틀에서 보면, 이성애만이 정상이고 그 밖에 다른 방식은 모두 비정상이다. 인간의 성적 지향의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은 마치 과학자들이 ‘지구가 돈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도, 지동설을 외면하고 부인하던 중세의 인식론적 오류와 유사하다. ●1992년 WHO ‘다양한 성적 지향 인정’ 공식화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오랜 연구 끝에 인간에게 이성애만이 아니라 다양한 성적 지향(orientation)이 있으며, 이성애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성적 지향을 고쳐야 할 정신질환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였다고 결론 내렸다. 1992년 세계보건기구(WHO)도 모든 다양한 성적 지향을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 형태로 인정하는 것을 공식화했다. 2012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성소수자의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세계정신의학회는 성소수자의 섹슈얼리티가 사회적 낙인과 차별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정신질환이라는 논쟁이 계속되자, 이 모든 성적 지향들이 결코 병리현상이 아님을 분명히 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성애가 아닌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비정상 또는 질환을 지닌 이들로 간주하는 것은 분명한 오류라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오랜 연구를 거듭한 후에 이러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중세기에 많은 이들이 지동설을 외면했듯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다. 내가 학교에서 접하는 여러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누구도 이른바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병원·직장·종교 공동체에서, 또는 가족·친척·친구들로부터 다층적인 차별과 혐오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주류에서 벗어나는 성적 지향 때문에 어릴 적부터 고통 속에서 살아 왔고, 또는 자기혐오와 자기부정, 사람들의 편견과 질시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한 이들도 많다. 만약 이들의 성적 지향이 ‘치료 가능’한 것이라면, 왜 이들이 이토록 힘든 삶을 일부러 선택하겠는가. 설사 ‘선택’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존재방식을 정죄하고 부정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은 동성애를 찬성하십니까?’, ‘동성애 합법화에 찬성하십니까?’ 사람들은 정치, 교육, 종교계 등 한국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대선 주자들과 정치가들에게, 그리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사적 자리에서도 이런 질문은 끊임없이 회자된다. 그런데 이 ‘덫’과 같은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하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 질문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타당성 여부는 질문을 거꾸로 뒤집는 장치를 통해서 검증할 수 있다. ‘당신은 이성애를, 이성애 합법화를 찬성하는가?’ ●국민적 정서·합의로 정당성 결정할 문제 아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모독, 또는 정죄는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같이 들리는 ‘동성애를 찬성하는가’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섹슈얼리티가 각 사람들이 지닌 존재 방식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 그러한 각기 다른 존재 방식이 ‘찬성’ 또는 ‘반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이나 젠더의 성향이 이른바 ‘주류’의 그것과 같지 않다고 해서, 찬성·반대 또는 국민적 정서나 합의를 도출하여 그 정당성을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방식 자체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차별’이다사람들은 종교, 정치, 교육, 미디어 등을 통해서 다층적인 ‘정상과 비정상’의 논리를 끊임없이 생산·재생산하곤 한다. 이성애·동성애, 기혼자·비혼자, 유자녀 가족·무자녀 가족, 양부모 가족·한부모 가족 등을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로 재단하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비정상의 범주’로 집어넣는다. ‘정상’의 이름으로 자신과 다른 이들의 다양한 존재방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상-비정상의 레토릭은 ‘지배와 종속의 논리’를 정당화하면서, ‘타자의 식민화’ 기능을 하게 된다. 엠마뉘엘 레비나스는 ‘얼굴’이야말로 타자에 대한 책임성이 시작되는 윤리적 현장이라고 한다. 윤리란 특정한 이론적인 근거나 종교·성별·국적·성적지향·장애여부·나이·사회적 계층 등과 같은 외적 조건들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얼굴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배제는 그 어떤 이론이나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라.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그 생생한 얼굴의 존재를 거부하고 혐오할 위치에 서 있지 않다, 설사 신이라 해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성소수자 부모들이 모인 콘퍼런스에 강연자로 간 적이 있다. 2박 3일의 모임을 하면서 거의 모든 세션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이나 부모들이 눈물 없이 이야기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말의 언어만이 아니라, 인간의 ‘몸의 언어’는 강력한 전달통로이다. 어떤 이라도 재미로 또는 타락해서 성소수자가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그들이 일생 경험하는 배제, 멸시, 그리고 고통의 눈물이 너무 많다. ‘눈물’이 자신의 언어가 되어버리는 삶을 누가 선택하겠는가. ‘이성애를 찬성하십니까?’ 이것이 부적절한 것처럼, ‘동성애를 찬성하십니까’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반인권적 질문이다. 첫째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오류, 그리고 둘째 타자의 존재 부정을 이미 담고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혐오, 여성혐오, 난민혐오, 이슬람혐오, 장애혐오 등 다양한 혐오가 점점 극단화되고 있다. 이제 ‘동성애에 찬성하십니까’를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당신은 혐오를 찬성하십니까 또는 반대하십니까?’ 올바른 질문을 묻는 것, 성숙한 민주사회의 첫걸음이다.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재판 여러 건 받게 괴롭혀라”… ‘쪼개기 기소’ 남발하는 檢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재판 여러 건 받게 괴롭혀라”… ‘쪼개기 기소’ 남발하는 檢

    #1. 위조한 인감증명서로 대출을 받은 A씨는 사기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선고 뒤 검찰이 인감증명서 위조 혐의로 또 기소해 A씨는 징역 6개월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A씨 측은 “검사가 혐의 일부를 누락시켰다가 뒤늦게 기소해 한 번 받을 재판을 두 번 받았다”고 반발했다. 대법원은 “검사가 늦게 기소한 것은 검사의 태만 내지 위법한 부작위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A씨 주장을 기각했다(1996년 2월 선고). #2.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재판 과정에서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증거가 조작된 정황이 드러나자 검찰은 유씨의 과거 사건을 들춰냈다. 환치기를 한 뒤 북한으로 약 26억원을 송금해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성립됐지만, 4년 전 기소유예 처분으로 넘어갔던 사건을 다시 꺼내 기소했다(2014년 2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유씨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건에서 배심원 대부분은 검찰의 행동을 ‘공소권 남용’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유씨 사건처럼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재판에서 법원이 ‘검찰권 남용’을 인정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1996년 인감증명서 위조 혐의 기소를 정당하다고 판정한 대법원 판례가 나온 뒤 오히려 기소 재량을 발휘하는 게 효율적인 수사로 인정받는 실정이다. ■2심 재판 끝나자 기다린 듯 또 기소… 다시 1년, 재판에 매달렸다 한 검사 두 지검서 기소당한 양씨 양자수(63·가명)씨는 유령 회사의 가짜 재무제표를 동원해 은행 사기 대출을 알선하던 금융 브로커였다. 지난 2016년 함께 범행을 저지르던 주범들이 잇따라 검거되자 양씨는 서울중앙지검에 자수서를 제출했다. 양씨는 자수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2차례 대출 사기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중앙지검은 양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양씨는 지난해 6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항소하지 않아 선고가 확정됐다.●자수한 2건 중 1건만 기소한 검사 그런데 확정 선고 뒤 2주가 채 되지 않아 양씨는 새로운 혐의로 기소됐다는 통보를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받았다. 당초 남부지검은 중앙지검으로부터 1건을 넘겨받아 한 차례 조사만 진행한 뒤 더이상 양씨를 부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중앙지검 사건이 확정되자마자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남부지검이 갑작스럽게 기소한 것이다. 연이어 재판을 받게 된 양씨는 ‘사건을 묵혀 뒀다 시간차 기소를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양씨 측은 “중앙지검에서 기소에 관여한 A검사가 남부지검에도 있었다”면서 “중앙지검에서 남부지검으로 옮기면서 사건을 가져간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A검사에게 한꺼번에 자수한 2건의 사건을 시차를 두고 ‘쪼개기 기소’한 이유를 질의하려 했으나 A검사는 해외 체류 중이었다. 검찰은 A검사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검찰은 “양씨가 범행에 사용한 페이퍼컴퍼니 2곳을 각각 만든 주범들의 주소지가 달라 혐의별로 관할이 나뉜 것”이라거나 “기소는 늦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처럼 ‘행정적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양씨는 혐의를 쪼개 2번씩 심급별 재판을 받느라 이중의 부담을 느껴야 했다. 변호사 선임 비용도 배가됐다. 남부지검이 기소한 사건은 1·2심을 거쳐 지난 8월 확정 판결이 나왔는데, 징역 1년 6개월이 또 나왔다. 결국 양씨는 1년 6개월씩 2번, 총 3년의 수감생활을 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저지른 두 건의 대출 사기 범행을 한꺼번에 병합해 재판을 받았다면 형량이 줄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양씨는 자수한 2건의 혐의 중 1건에 대해서만 재판을 받으면서 다른 1건의 혐의는 무마됐다고 지레짐작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한편으론 검찰이 결정하기 전까지 자신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는 수사 구조에 무력감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할 다르다며 전출 간 지청서 재기소 양씨의 변호인은 검찰이 ‘의도적으로 시간차 (쪼개기) 기소’를 했다고 주장한다. 관할 문제로 사건이 쪼개져 배당된 것까지는 납득하겠지만, 같은 시기에 자수한 두 사건의 기소 시점이 지나치게 ‘순차적으로’ 이뤄진 데다 A검사가 두 번의 기소를 모두 담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은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했다’는 양씨 측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두 번째 기소 사건을 심리한 서울남부지법 재판부는 “양씨와 공모 관계에 있는 주범이 다르고, 검사가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자의적으로 소추재량권을 행사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판시했다. ‘태만한 검찰권’을 두둔하는 듯한 법원의 판단은 ‘여러 건의 혐의를 수사한 검사가 일부 혐의를 먼저 기소한 뒤 1심 재판이 끝날 때쯤 다른 혐의를 기소해 피고인이 재판을 여러 차례 받게 했더라도 공소권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1990년대 중후반 정립된 이후 하급심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판매·밀수 따로 기소된 마약왕… 공소권 남용 다투고 ‘6번 재판 전부 무죄’ 풀려난 마약사범 마씨 2014년 8월 검찰이 ‘수도권 최대 필로폰 판매 조직의 수괴’라고 지칭한 보도자료를 낸 뒤 필로폰 180g(6000회분)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한 마모(51)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그간 복역 기간을 합치면 20여년에 이르는 마씨는 2014년 검거 직전에는 필로폰에 취해 서울 시내에서 차량 도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마약에 손댔던 마씨를 처벌하느라 검찰은 사력을 다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 중 일부는 재판 단계에서 ‘검사의 공소권 남용’을 다투는 계기가 됐다. ‘범죄자 처벌을 위해서라면 쪼개기 기소를 해 병합(여러 혐의를 합쳐 한꺼번에 심리) 없이 재판을 여러 건 받도록 괴롭혀도 된다’거나 ‘유죄 입증을 위해서라면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공범을 선처해도 된다’는 수사 관행이 검찰의 발목을 잡았다. ●두 사건 수사 끝내놓고1심 며칠 뒤 또 기소 마약 판매 전과 7범인 그의 재판 중엔 1·2·3심 전부 무죄 판결이 나온 경우가 있다. 검찰이 국제우편 등으로 멕시코에서 필로폰을 반입한 혐의로 마씨를 2012년 기소한 사건이다. 사실 검찰은 2011년 필로폰 판매 혐의로 마씨를 6번째 기소하던 시점에 이미 마씨의 필로폰 밀수 혐의 수사를 끝낸 상태였다. 2011년 두 혐의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해 놓고 그해엔 마약 판매 혐의로만 기소하고, 이듬해 1심 재판 결과가 나오고 며칠 뒤 다시 마약 밀수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수사한 지 1년 만에 ‘쪼개기 기소’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피고인을 괴롭히려는 쪼개기 기소로 보인다”면서 “비슷한 시기 수사한 마약 판매 혐의와 밀수 혐의를 병합해 재판할 수 없도록 시차를 두고 기소, 피고인이 혐의별로 3심까지 총 6차례 재판을 받게 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마약 판매 1심은 판사 1명이 재판하는 단독 재판부에 배당되고, 이 재판 2심은 지법 형사항소부에서 심리한다. 하지만 형량이 센 마약 밀수 혐의의 경우 1심을 판사 3명이 재판하는 지법 합의부가 담당하고, 이 재판의 항소심은 고법 재판부가 심리한다. 이렇게 되면 2심 단계에서 관할 법원이 지법과 고법으로 구별되기 때문에, 두 개의 항소심이 병합될 수 없다. 2012년 마약 밀수 혐의를 기소할 때 검찰은 마약 판매 혐의 역시 더 찾아 기소했는데, 이와 관련해선 마씨의 범행을 증언한 공범 A씨에 대해 플리바게닝(사전형량조정)을 하는 방식 등으로 마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유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마씨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마약 투약 혐의로 별도 재판을 받은 A씨가 자신의 항소심 선고 8일 전 검찰 조사에서 ‘마씨에게 필로폰을 산 일이 더 있다’고 추가 증언을 했고, 이후 A씨 항소심에서 검찰이 A씨 선처를 탄원해 1심 실형이 벌금형으로 감형됐다”고 판시했다. ●법원, 檢의 압수수색 영장 미발부 등 지적 마씨의 1·2·3심 재판부는 이 같은 정황을 들어 A씨 증언에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마씨가 A씨에게 마약을 판매한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마씨의 마약 밀수 혐의에 대해 사법부는 수사 1년이 지나 마씨를 기소한 ‘검사의 태만’에 대해 “소추재량권 일탈이 아니다”라며 면죄부를 줬다. 하지만 검찰이 마씨가 들여왔다고 의심한 필로폰을 확보하면서 사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하자를 지적하며, 마씨의 밀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쪼개기 기소’를 통해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사 방식은 간첩·도박·마약 등 피의자에게 ‘범죄자 낙인’이 강하게 찍힌 사건이나 피고인이 여럿이어서 ‘죄수의 딜레마’가 작동하는 수사에서 주로 활용됩니다. 다음 회에서 혐의별로 자주 목격되는 잘못된 수사 관행을 탐구합니다.
  • 오세정 “국회 밖에서 역할 다할 것”

    오세정 “국회 밖에서 역할 다할 것”

    국회 처리… 임기 중 사직서 이례적 비례대표 14번 임재훈 의원직 승계4년 만에 모교인 서울대 총장 선거에 재도전하는 오세정 전 바른미래당 의원은 1일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서울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국회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오 전 의원은 이날 국회 본청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서울대의 현 상황을 수습하려면 제가 다시 (모교로) 와야 한다는 여러 사람의 요청이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 전 의원은 제27대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지난달 21일 국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사직안이 통과됨에 따라 그의 신분은 현역 의원에서 서울대 총장 후보자가 됐다. 비례대표가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 출마, 사건·사고 등의 특별한 사유 없이 임기 중 국회의원 사직서를 제출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오 전 의원이 이 같은 결단을 내린 건 4년 전 서울대 총장 선거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오 전 의원은 2014년 간선제로 전환된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마해 고배를 들었다. 당시 총장추천위원회는 물리천문학부 교수였던 오 전 의원을 1순위로 추천했지만 서울대 이사회는 오 전 의원 대신 2순위인 성낙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총장으로 선출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공동성명 등을 내며 선거 결과에 크게 반발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맡았던 영남대에서 성 교수가 19년간 법과대 교수로 재직했던 사실 등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청와대 개입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오 전 의원은 “이사회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며 결과에 승복했다. 지난 7월 새로 선출된 총장이 성희롱 논란으로 사퇴하자 오 전 의원은 서울대 복귀로 마음을 굳혔다. 오 전 의원은 “지난 일들은 굳이 부각시키고 싶지 않다”면서도 “단 다시 선거에 출마하는 건 그만큼 서울대를 향한 애착이나 책임감이 크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의원의 사퇴로 국민의당 비례대표 14번이었던 임재훈 전 국민의당 선거관리위 조직사무부총장이 의원직을 승계한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이름 없는 꽃들을 위한 진혼곡…‘1991, 봄’ 티저 예고편

    이름 없는 꽃들을 위한 진혼곡…‘1991, 봄’ 티저 예고편

    1991년 봄의 청춘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1991, 봄’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1991, 봄’은 1987 이후,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부터 5월 25일 김귀정 열사까지 국가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과 당시 유서대필, 자살방조라는 죄명으로 낙인찍혔던 스물일곱 살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11명의 열사와 엄혹했던 그 시절을 꿋꿋하게 견디고 민주주의 꽃을 피운 이름 없는 이들을 차분하게 조명한다. 공개된 예고편은 먼저 서현, 씨엘, 김고은 등 많은 스타가 태어난 1991년이 11명의 열사가 세상을 떠난 해임을 알리며 시작한다. 그리고 11명의 청춘이 왜 꽃 같은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전한다. 지켜야 할 국민을 탄압했던 공권력을 휘두른 국가 앞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1991년 봄의 청춘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뜨겁고 슬픈 그 시절을 소환할 예정이다. 영화 ‘1991, 봄’은 오는 10월 31일 개봉한다. 89분. 12세 관람가. 영상팀 seoult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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