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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 공개 자퇴한 장혜영씨 “밖에서 더 큰 가치 찾으려 학교와 이별”

    연세대 공개 자퇴한 장혜영씨 “밖에서 더 큰 가치 찾으려 학교와 이별”

    “딱딱한 학벌 폐지론자가 아니라 단지 자유를 더 소중하게 생각해서” 15일 서울 연세대 중앙도서관에 ‘공개 이별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인 신문방송학과 4학년 장혜영(24·여)씨가 자퇴를 결심한 이유다. 장씨는 14일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한 뒤 이별 선언문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퇴를 알렸다. 하늘색 종이 위에 검정색 물감으로 글을 쓰고, 낙엽를 붙여 장식했다. 장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학벌주의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거나 그것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라면서 “다만 학교 밖에서 더 큰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나의 신념을 전달하기 위해 대자보를 통해 알렸다.”고 말했다. 자신의 자퇴를 두고 학벌주의에 대한 반감이나 비판이라는 해석을 경계했다. 대자보에도 “학교보다 더 좋은 게 있어 학교를 그만둔다.”라면서 “학우 여러분 학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굳이 여기 있는가.”라고 썼다. 지난해 3월 ‘대학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한 고려대 김예슬(25·여)씨, 지난달 ‘대학 서열화와 입시 위주 교육을 반대한다’는 서울대생 유윤종(23)씨와는 다른 이유라는 것이 장씨의 설명이다. 장씨는 “많은 분들이 제가 쓴 대자보의 내용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단순히 ‘명문대생의 투정’이라고 치부하는 것을 보고 상처도 받았다.”면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보통의 대자보와는 다르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봐 달라는 생각에 이런 형식을 취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몰두할 계획이다. 장씨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싶다.”면서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영상물 제작 기법을 사용해 영상물을 만들거나 책을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가을 끝자락이다. 창덕궁의 나무들도 겨울을 맞이할 요량으로 나뭇잎마저 무겁다는 듯 후드득 털어낸다. 한 노(老)시인은 백발을 만지작거리며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시집을 뒤적인다. 돋보기를 꺼내 들고 책장을 넘기던 노시인은 “그래 바로 이 시야, 이거!”라고 탄성을 터뜨린다. 어떤 시일까. ‘팔삭둥이 첫 아들이 죽었을 때/그는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죽은 애 또래의 살아 있는 애들을/그리고 있었다/저승동무 길동무로/천도 따는 애며/맨손으로 물고기 잡는 애들이랑/학 타고 날아가는 애도/상기도 애비 목 틀어잡는 녀석이며/여직 애미 젖가슴 뒤지는 녀석/오오라 게한테 물린 고추녀석이 제일 늦구나/개구쟁이 코흘리개 오줌싸개 울보랑 모두 모이자/그는 잠자코 붓을 놓았다/그리고 죽은 애 목덜미에 그림을 그려주었다/십자가보다 더 빛부신 동심(童心)을’ 지난 16일 오전 창덕궁 바로 옆 바움갤러리에서 원로 시인 김광림(82) 선생을 만났다. 그는 천재 화가 이중섭과의 추억을 새삼 떠올린다. ●‘시전집’에 이중섭 연작시 8편 담아 “17살 때 함경남도 원산에서 이중섭 화가를 처음 만났어요. 그의 첫애가 죽어 애도할 때였지. 하루는 이중섭의 집에서 같이 잤는데 새벽녘에 일어나 보니 온데간데없어요. 그래서 옆방에 슬쩍 가 봤더니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뭘 그리나 어깨너머로 봤더니 애들이 하늘에서 새를 타고 다니는 거, 천상의 복숭아를 따는 아이들, 학을 타고 날아다니는 아이들, 아버지 목에 매달려 있는 애들, 게가 아이의 아랫도리를 물고 있는 모습 등을 그리더군요.” 노시인은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추억의 편린들이 가을 낙엽과 함께 머릿속을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올해가 이중섭 화가 탄생 95주년이고 작고 55주기가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시인은 “아, 그렇게 됐나요. 나보다는 13살 위였는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얘기 도중 가끔 백발을 쓰다듬는 모습이 어쩌면 천상의 복숭아를 따러 날아가 버린 이상한(?) 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는 시, 그는 시인이 부러워 시처럼 그림을 그렸지…. 은박지 그림이 생각나. 내가 군 장교로 있을 때였어. 외출을 나올 때마다 군보급품 박스에 있던 양담배 럭키스트라이크 은박지를 수집해 갖다주었어요. 아주 좋아했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 그림들을 죄다 불태워 달라고 했어. 참으로…. 은박지 그림만 200~300장 됐어.” 이중섭 화가는 1955년 서울 미도파백화점과 대구 미공보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실망과 충격으로 대구에서 만난 김 시인에게 “내 그림은 다 가짜야.”라고 하면서 불태워 달라고 했다. 이중섭 화가는 그렇게 그림을 던지고 확 가 버렸고 김 시인은 은박지 그림과 소품들을 보관했다가 이중섭 화가와 같이 머물고 있던 친구이자 소설가 최태응에게 모두 돌려줘 가까스로 은박지 그림을 살려냈다. 이 그림들은 지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노시인은 2006년 이중섭 화가에 대한 추억의 글과 시를 모은 ‘가짜와 진짜의 틈새에서’라는 책을 펴내면서 “그의 그림을 불사르지 않고 세상에 남아돌게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중섭 작품에 대한 순수한 평가보다는 그림값을 올리려는 상업적 행태가 눈에 거슬린다는 지적을 했던 것. 노시인은 지난해 1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김광림 시전집’을 펴냈다. ‘이중섭 생각’이라는 연작시 8편도 담았다. 여기에서 노시인은 ‘왜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고 우겼을까/그가 진정 진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꿈틀대는 어기찬 생명력을 더 지켜보지 않았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다하지 못한 정을 엽서에다 그리고/ 은박지에 또 그려서/고통을 환희로 바꿔 찬 한 사내가/거뜬히 시의 수렁 속을 가고 있다/갈증도 모르고 허기도 저버린 채’라고 그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이중섭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또 그런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다수의 시를 쓰게 됐어요. (다시 백발을 만지작거리다가) 연작시 말고 또 뭐 있더라….” 옆에 있던 딸 김상미씨가 얼른 기억을 돕는다. 노시인은 요즘 병원에 다니느라 딸 집에 기거하고 있다. “아마 ‘사막’일 겁니다. (딸이 시를 읊는다) ‘화가 이중섭은 사막으로 걸어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랫도리를 게의 예리한 발톱에 찝힌 것이다. 물린 순수의 피나는 이적(異蹟)을 담배 은종이에 나타내었다’ 아버지 맞죠.” 노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나.”라며 활짝 웃는다. 화제를 바꿨다. 문단 데뷔 시절을 물었다. “전쟁 2년 전인가 그래요.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을 때 새벽녘에 문득 낡은 문풍지를 보고 시를 하나 썼어. 그랬더니 친구가 ‘안양에 박두진 시인의 문하생 동인(청포도)들이 있는데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갔어.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쓴 시를 박두진 시인에게 보여줬더니 ‘10년 후면 우리나라의 시가 달라지겠네’라고 하면서 구상 시인한테 가보라고 하더군. 그때 구상 시인은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었지. 구상 시인과는 원산에서 만났던 사이였지. 어쨌든 찾아갔어.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나를 아래층으로 끌고 내려가 우동 두 그릇을 시키면서 ‘배가 고플 텐데 두 그릇 다 먹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시를 읽더니 ‘관념적이긴 하지만’이라고 말을 하더군. 그 2~3일 뒤에 ‘문풍지’라는 제목으로 시가 발표됐어. 그래서 데뷔작이 ‘문풍지’야. ●“그의 그림에서 詩 영감 많이 얻어” 이후 6·25전쟁이 끝난 1957년 전봉건, 김종삼 등과 함께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라는 3인 시집을 내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펼쳤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시작으로 2009년 제10회 청마(靑馬)문학상을 수상한 ‘버리면 보이느니’까지 통산 18권의 개인 시집을 펴냈다. 그러는 동안 평양 출신의 박남수(1918~1994) 시인과 친하게 지냈으며 문덕수(83)·홍윤숙(86) 시인 등과 절친 문우로 교류했다. 1990년 제12차 세계시인대회 때였다. 일본의 저명한 국제적 여류 시인 시라이시 가즈코가 ‘오늘의 율리시스’라는 시를 낭독하기 직전 노시인이 “나는 북에서 온 한국의 율리시스입니다.”라고 말해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낸 일화는 지금도 문단에서 회자된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 타이완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문화 교류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6·25전쟁 때는 9사단 29연대에 배속(소위)돼 백마고지와 저격 능선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전우의 죽음을 다룬 시 ‘진달래’가 ‘국방’지에 게재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으며 후에 은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슬하에 김상수(사업가)·김상일(조각가)·김상호(중문학자)·김상미(주부)씨 등 3남 1녀를 두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노시인에게 시 한편을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죽음이란 걸(주제)로 병원에 있을 때 써보긴 했는데….”라는 대답이 나지막이 돌아온다. 다음은 그가 최근에 쓴 미발표작 시.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광림은 김광림은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충남(忠男)이다. 원산공립중학을 거쳐 평양종합대 역사문학부 외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48년 12월 한탄강을 거쳐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해 안양에서 ‘청포도’ 동인과 어울리다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을 만났고 그의 권유로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던 구상 시인을 만난 것이 인연이 돼 ‘문풍지’라는 시를 처음 발표했다. 경기 여주군 북내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중 6·25전쟁을 만나 육군 소위로 9사단 29연대에 배속돼 전쟁에 참가했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으며 1961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듬해 두 번째 시집 ‘심상의 밝은 그림자’, 1965년 세 번째 시집 ‘오전의 투망’ 등 지금까지 18권의 시집을 내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83년 장안대 교수, 한양대 강사 등으로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1985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아 아시아 시인대회 서울대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등을 받았다. 2009년에는 ‘허탈하고플 때’로 청마문학상을 수상했다.
  • [길섶에서] 늦가을비/구본영 논설위원

    며칠 전 지난여름 산사태 이후 한동안 찾지 않았던 우면산에 갔다. 전날 살짝 내린 늦가을비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팍팍한 현실을 핑계 삼아 계절의 변화에 둔감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그래서 오래 전 한 선배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났다. “꽃 지고 나서야 꽃 피었었구나 아는 게 인생”이라고. 나이 지긋한 선배로부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단풍이 드는가 했더니 벌써 잎사귀를 반 이상 떨군 나무들을 보고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선배의 말마따나 누구나 크고 작은 일상사에 얽매여 ‘오고 가는 계절을 늘 한뼘씩 놓치기 일쑤’가 아닌가. 하지만 늦가을비에 얼마간 우울해지려는 맘을 추슬렀다. 아직도 남은 단풍잎들이 늦가을 햇살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문득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법어가 떠올랐다. 그렇다. 마음 먹기에 따라 평범하고 하찮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작은 생활의 기쁨은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이우환 “난 그냥 작가… ‘점’ 하나에 어떤 울림을 담았지요”

    이우환 “난 그냥 작가… ‘점’ 하나에 어떤 울림을 담았지요”

    ‘그냥’ 작가 이우환(75)이 돌아왔다. 15일부터 12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다이얼로그’(Dialogue)전을 연다. 앞서 지난 6월 23일부터 9월 28일까지 석 달 동안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무한의 제시’(Marking Infinity)를 열었다. 하루 평균 8000명의 관람객이 몰려드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스스로 “세계적이 아니라 그냥 작가”라고 하는 이유는 겸손 때문이 아니다. “세계적이니, 동양적이니, 한국적이니 그런 말 쓰지 마세요. 그런 말은 우리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겁니다. 요즘 뜬다는 젊은 작가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 그런 말은 곧 인류 보편과 무관하게 한국 사람들끼리 잘 논다는 걸 전제로 한 말입니다. 고약한 말이지요.” 다른 어떤 조건 없이 작가와 작품세계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해외가 인정해야 비로소 열광하기 시작하는 기이한 한국적 풍토에 대한 일침도 녹아 있다. 보편성에 대한 그의 열망이 묻어 있기도 하다. 개인전 제목이 다이얼로그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성, 논리를 뜻하는 로고스(Logos)의 틀을 깨부순 것이 다이얼로그(Dialogue=Dia+Logos)다. “이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게 몇 년 안 됐는데, 굳이 뜻을 밝히자면 에고(Ego)가 깨진 상태, 그 상태에서 내 안의 것과 내 밖의 것 간에 연결고리 찾기 같은 겁니다.” 너와 내가 통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굳이 소통(Communication) 대신 다이얼로그라는 단어를 골랐다. 소통은 공동체(Commune)를 전제로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 역시 공동체에 얽매이지 않는 보편성에 대한 열망이다. →구겐하임 전시는 어땠나. -아주 재미있는 공부였다. 본격 회고전도 처음이었고…. 일본,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는 처음이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회고전이다 보니 1960~70년대 작품을 다시 설치해야 했는데, 예전 걸 고스란히 갖다 놓을 수는 없고 지금 와서 다시 설치한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고민했다. 다행히 작가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도 즐겁고 재밌게 봤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즐거웠다. →회고전 제목에 ‘제시’라는 단어를 썼다. 예술가는 ‘창조’가 어울려 보이는데. -창조는 신만이 할 수 있는 거다. 옛 얘기 하나 하자면, 설총이 아버지 원효대사를 찾아갔을 때 마당 청소를 시킨다. 늦가을이라 낙엽이 수북했거든. 설총이 싹 치워놓으니 나중에 나와 보고는 나뭇잎 몇 개를 뿌리면서 이래야 제 맛이 나는 거 아니냐, 라고 한다. 싹 쓸어놓은 뒤 다시 살짝 뿌려두는 것,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 그게 예술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작품 수가 의외로 적다(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의 전시 공간에 들어선 작품은 10점이다. 그나마 지하 1층엔 영상물 하나뿐이다). -1년 반 전부터 약속하고 준비해온 거다. 쉽게 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화랑으로서는 난처하겠지만, 간략함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었다. ‘종이 울린다’고 말할 때 중요한 건 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울림이 퍼져나갈 수 있는 여백, 그러니까 공간이나 파장 같은 것이다. 극한의 점 1개가 어떤 울림을 줄 것인가, 그걸 묻고 싶었다. 작품에는 작가의 생각, 물감이라는 물질성, 그린다는 행위성 같은 게 범벅이 된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가 캔버스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그 요소들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면서 하나로 뭉쳐지는 느낌을 가장 간략하게 표현해 보고 싶었다. →점과 선에서 출발했다가 다시 점이다. 어떻게 되돌아오게 됐나. -1960~70년대엔 질서정연한 무엇을 해보고 싶었다. 서구적인 영향도 있었을 게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몸이 안 따라가더라. 그릴 흥도 나질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게 ‘바람’ 시리즈다. 남들은 자유분방하다 말해 주는데, 정작 내 자신은 곤혹스러웠다. 엄격함을 벗어나 보고 싶었던 건데, 말하자면 방황한 거다. 그러다 다시 점으로 귀환했다. 점이 더 크게 확대되면서 더 넓은 공간성에 대한, 더 큰 세상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말 그대로 점 하나 콕 찍어둔 작품이 있다. 어떤 의도인가. -티끌의 모습이다. 이런 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는 유머, 위트로 넣어둔 작품이다. 아무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은 아무나 그리진 못한다는 것, 그게 제 작품의 핵심이다.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나 추상적 작업에 굉장히 비판적인데, 그런 작품을 하는 작가로 받아들여진다. -제 작품이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 같다. 저는 안과 밖이 부딪치는 순간을 그려내기 위해 관계, 조응, 만남 이런 표현들을 쓴다. 추상이나 미니멀리즘이 자기 자신의 에고를 중시하는 것과 반대되는 생각이다. 문화라는 것은 결국 현실에서 에센스를 뽑아내 추상화하는 작업이기에 그렇게 비칠 여지는 있지만, 자기표현이라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 죽은 뒤를 어찌 알겠나. 다만 작가로서야 내 작품의 보편성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 시간 앞에서 모두 헛일이 되겠지만…. 여하튼 당분간은 좀 쉴 생각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흔히 늙으면 인생 경험이 쌓여서 진중해지고 어쩌고 하는데, 사실 그거 다 거짓말이다. 늙으면 힘 떨어져서 젊었을 때처럼 고집 부리고 하질 못하니까 지어낸 말이다. 난 죽을 때까지 아우성쳐야 한다고 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상업성엔 초연… 그들만의 의미 담긴 설치 작품전 잇따라

    상업성엔 초연… 그들만의 의미 담긴 설치 작품전 잇따라

    미술계에서 중견 여성 작가, 하면 예쁘게 다듬은 작품들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예쁘고 상업적인 작품보다 개념과 설치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들도 있다. 노란 낙엽이 쌓인 갤러리에서 이런 작업을 선보여 온 중견 여성 작가들의 전시가 잇따라 열린다. 중견 여성 작가들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우순옥 ‘잠시 동안의 드로잉’ 우순옥(53)의 ‘잠시 동안의 드로잉’전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품보다 텅 빈 공간이다. 작품 수가 적기라도 한 듯 띄엄띄엄 작품이 배치돼 있다. 당연히 작품이 없어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어슬렁대며 여유롭게 느껴보라는 의미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1층에 위치한 ‘12편의 신기루’.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베르너 헤어초크, 루치아노 비스콘티 등 작가주의 영화계의 거장들이 남긴 영화의 특정 장면을 반복해서 틀어 놓은 모니터 12대가 놓여 있다. 영화에서 발췌한 장면은 사랑, 환희, 고독처럼 살아가면서 한번은 만나게 되는 순간에 대한 것들이다. 가령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구스타프 말러를 모델로 삼은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예술 하는 사람의 뜨거운 열망 같은 것이 담겨 있다. “독일 유학 시절 뒤셀도르프에 있었는데 그곳에 영상실이 있었어요. 하루에 3편씩 상영했는데, 하루에 1편 정도는 꼭 챙겨 봤죠. 그 영화 가운데 인상적인 장면을 따와서 만든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한 100편 정도 하고 싶었는데 12라는 숫자가 주는 윤회의 느낌 같은 걸 살리고 싶어서 12편만 고르느라 고생했답니다.” 모니터 앞에 선 관객들도 영화의 한 장면을 통해 자기 인생의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감정을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 팬이라면 어쩌면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눈물을 흘릴는지도 모르겠다. 키스신은 아니지만. 모니터 옆에는 화분들이 놓여 있다. 화려한 꽃이나 멋진 잎사귀가 아니라 그냥 잡풀 같은 느낌이 나는 걸로만 골랐다. 인생에 대한 잔잔한 회고와 성찰에 걸맞은 선택이다. 12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02)735-8449. ●닿아버려 환희에 넘치는 - 김주현 ‘회로에서’ ‘회로에서’ 전시를 통해 김주현(46)이 말하고 싶은 바는 ‘소통’이다. 바닥에 알루미늄판을 대고 그 위에 전선 가닥을 한데 모아 풍성한 꽃다발 모양으로 만든 발광다이오드(LED) 다발을 드리운 뒤 약한 전류를 흘렸다. 알루미늄판에 닿으면 LED 다발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조금 유치할지 몰라도 만남이란 게, 소통이란 게 저런 게 아닐까,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났을 때 빛을 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해서 제목도 ‘회로에서-접속’이다. “원래 의도했던 건 야외에 설치해 두면 바람도 불고 해서 반짝반짝하는 거였는데, 전시장 안이라 그렇게까지는 안 되네요. 불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 같은 걸 드러내보고 싶었거든요.” 내놓은 건 미술인데 정작 쓰는 용어는 카오스, 프랙털, 확장형, 복잡계 같은 물리학·생물학 용어들이다. 쓰는 도구는 LED와 전깃줄. 전깃줄을 찢어 연결하는 방식을 통해 물리학적 느낌의 드로잉과 설치작품들을 계속 만들어 내놨다. 그 엄밀하다는 과학의 세계에서도 만남과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보고 싶었다. “한번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님들이 제 작품을 보고 이것은 프랙털 몇 차원 공간인가를 두고 열띤 논의를 하시더군요. 전 누군가 제 작업을 알아봐주고 얘기를 나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 대화에서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요.” 다른 작품 ‘토러스’에 대해 물었다. 어디서 한줄 주워 읽었던 지식으로는 토러스가 도넛 모양의 원통형인데 왜 저렇게 일그러뜨렸냐고. “위상수학에서 나오는 얘기인데요.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저게 몇 개의 차원으로 분리가 되거든요.” 설명은 조금 더 이어졌지만 괜히 물었다 싶었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는 겸손한 말에 속은 게 죄다. 상업화랑에서의 본격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12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시몬. (02)549-303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함양 황석산을 오르다…꼿꼿한 고봉 따라 흐르는 만추의 파노라마

    함양 황석산을 오르다…꼿꼿한 고봉 따라 흐르는 만추의 파노라마

    선비 고을 경남 함양. 예사롭지 않은 풍경들을 숨겨 두고 있는 곳입니다. 함양의 외관을 결정짓는 건 산세입니다. 사방을 둘러친 30여개의 1000m급 고봉들이 어깨를 맞댄 채 파노라마를 펼칩니다. 그 가운데 함양 사람들의 굄을 듬뿍 받고 있는 게 황석산입니다. 정상부의 칼날 같은 암봉이 압권인 산이지요. 멀리 덕유산에서도 누런 바위가 또렷이 보일 정도랍니다. 여기에 절정의 빛깔을 뽐내는 상림과 운곡리 은행나무를 보탠다면 만추의 함양 여정으로 모자람이 없겠습니다. ●서수(瑞獸)의 뿔을 딛다 함양은 산청(동), 전북 장수(서), 하동(남), 거창(북)과 인접한 전형적인 산악 소도시다. 기특하게도 조그만 품에 지리산과 남덕유산을 모두 품었다. 명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들 또한 어느 산군(群)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함양의 뒷산 괘관산(1252m), 지리산 세석고원과 닮은 월봉산(1279m), 육십령 북쪽 할미봉(1013m) 등 여느 도시에선 한 개도 찾기 힘든 1000m급 고봉들이 ‘발에 차일’ 정도다. 함양 사람 특유의 꼿꼿한 선비 기질 또한 이같은 자연환경에서 잉태되지 않았을까. 그 가운데 독특한 산세를 뽐내는 곳이 용추계곡 일대다. 용추계곡을 가운데 두고 기백산(1331m)~금원산(1353m)~거망산(1184m)~황석산(1190m)이 말발굽 형태로 에워싸고 있다. 산악인들이 비박 산행 황금 코스로 꼽는 이른바 ‘기·금·거·황 코스’다. 호사가들은 1000m가 넘는 네 산을 ‘부부(夫婦)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암수와 음양이 조화를 이뤘다는 게 이유다. 황석과 기백이 바위를 앞세운 근육질의 남성적인 산세인 것에 견줘 거망과 금원은 여성적인 부드러운 육산이다. 이웃한 황석과 거망, 금원과 기백이 각각 한 쌍의 부부로 엮인다. 그래서 산행을 할 때도 ‘부부 일심동체’라며 두 개 산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초보자가 두 산을 묶어 오를 경우 체력적인 부담은 각오해야 한다. 단독 산행 일순위를 꼽자면 단연 황석산이다. 오르는 길이 제법 험하지만, 등산로 주변의 인위적인 구조물이라고는 이정표 몇 개가 전부일 정도로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정상의 암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압권이다. ●거친 산세… 울퉁불퉁 근육질 자랑하다 황석산을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상 부근 황석산성의 동서남북 네 문을 향해 각각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그 가운데 경사도가 비교적 완만한 접근로가 우전마을 코스다. 마을에서 황석산 정상까지 약 6㎞. 바삐 걸어도 4시간은 족히 걸린다. 26번 국도 변의 거연정 휴게소 바로 왼쪽으로 난 도로가 우전마을 진입로다. 여기서 마을을 지나 3㎞ 정도 오르면 사방댐. 이곳부터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정표가 세워진 초입부터 너덜지대다. 완만하게 이어진 구간을 20여분 오르면 거대한 피바위와 만난다. 정유재란 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성이 함락되자 성안의 부녀자들이 적들의 칼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며 몸을 던져 순절했다는 곳이다. 부녀자들의 피로 바위 벼랑 아래가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피바위 아래를 가로질러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붙으면 황석산성 남문이다. 안내판은 황석산성에 대해 ‘2750m에 달하는 포곡식 산성’이라 적고 있다. 포곡식이란 물 확보를 위해 성벽 축조 시 계곡을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안내판 끝자락엔 황석산성 전투 당시 500여명이 순국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정대훈 서하면장은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전투 중 사망한 조선인 수는 7000여명에 달했고, 성을 포위하고 공격한 왜구의 수도 2만 7000명이 아닌 7만 5000여명이었다.”며 “이때 사망한 왜구만 2만 5000여명”이라고 지적했다. 정 면장은 또 “왜구들이 조선인을 죽인 근거로 코를 베어 오라는 명을 받았는데, 당시 왜구들이 베어 간 코가 3만개에 달했다. 그중 2만개 정도가 황석산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죽은 조선인 숫자가 7000여명이었으니, 나머지는 아군의 코였다는 얘기다. 남문에서 황석산 정상을 바라보고 오른쪽 성벽을 따라 이어지던 등산로가 샘터 갈림길에서 성벽과 떨어져 황석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구간. 산세가 어찌나 가파른지 비명 같은 거친 숨소리가 연신 터져 나온다. 정상 바로 아래, 그러니까 안부 주변의 가파른 능선을 따라 산성이 복원돼 있다. 비록 작은 산성이지만, 서수의 뿔처럼 불쑥 솟은 산봉우리를 에두른 자태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투사를 닮았다. 조총을 앞세워 밀려드는 수만의 왜구들에게 지지 않고 창칼과 낫, 그리고 투석전으로 맞섰던 조선인들의 결기가 여태 남아 있는 듯하다. 안부에서 보면 양옆으로 칼날 같은 암봉 두 개가 서있다. 오른쪽은 북봉, 왼쪽은 남봉이다. 그저 향하고 있는 방위에 따라 이름을 정한 것인데, 멋들어진 자태에 견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황석산의 정상은 왼쪽 남봉이다. 정상을 밟기 위해선 로프가 설치된 암릉을 올라야 한다. 로프를 잡고 공룡의 등껍질 같은 암릉을 오를 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정상은 두세 사람이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비좁다. 하지만 굽어보는 풍경만큼은 더없이 넓다. 가까이로는 깎아지른 북봉과 만추에 잠긴 함양 일대, 그리고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줄달음치는 거망산과 기백산, 금원산 등이 한눈에 들어찬다. 멀리 덕유산 자락과 지리산도 아련하다. ●노란 눈폭탄 날리는 운곡리 은행나무 안의면 화림동 계곡은 흔히 ‘8담(潭) 8정(亭)’으로 표현된다. 여덟 개 연못에 여덟 개 정자가 있다는 곳. 깊은 녹음과 한가로운 쉼이 한여름의 매력이었다면 가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화려함이다. 수수한 모시 적삼에서 만추의 비단 옷으로 갈아입은 계곡의 정자들이 화려하고 요염하다. 안의면에서 화림동 계곡을 되짚어 올라가면 운곡리 은행마을에 닿는다. 마을에 들면 정말 깜짝 놀랄 풍경과 맞닥뜨린다.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다. 돌담으로 멋을 낸 마을 고샅길 끝자락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데, 작은 시골 마을의 품에서 자란 나무치고는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천연기념물 제406호. 이 계절에 운곡리 은행나무는 딱 ‘크레이지 모드’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잎을 떨구는데, 노란 잎들이 꼭 폭설처럼 흩날린다. 어디서고 쉽게 만날 수 없는 장관이다. 그 많은 잎을 떨궜는데도 여전히 가지마다 나뭇잎들이 치열하게 매달려 있다. 300여년 전에 생식 능력을 상실한 고목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어느 모로 봐도 융융한 젊은이의 기상 그대로다. 높이는 38m.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39m)에 이어 국내 두 번째다. 나이는 8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판에 따르면 운곡리는 돛배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은행나무가 돛의 역할을 하고 있단다. 마을 이름을 ‘은행정’(銀杏亭)으로 바꿀 만큼 주민들의 각별한 굄을 받고 있다. 함양 여행길에 잊지 말고 찾아야 할 곳이 상림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비밀의 정원이다. 2만여 그루의 수목 사이로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지며 절정을 이루고 있다. 글 사진 함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서상나들목으로 나와 함양·안의 방면으로 우회전, 7㎞쯤 직진한 뒤 거연정휴게소 직전에서 좌회전해 1㎞쯤 올라가면 우전마을이다. 마을 끝자락 사방댐 뒤편에 승용차 3~4대 주차할 공간이 있다. 용추계곡을 들머리 삼을 경우 지곡나들목으로 빠지는 게 낫다. 장갑과 등산 스틱은 필수다. →맛집 한징기(963-9986)는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어탕국수집이다. 6000원. 민물매운탕 2만 5000원부터. →잘 곳 함양군에서 용추자연휴양림을 운영한다. 숲속의 집 4인용(5평)이 3만 5000원. 963-8702. 읍내에선 엘도라도 모텔(963-9889, 9449)이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 3만 5000원.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3) 경북 상주시 상현리 반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3) 경북 상주시 상현리 반송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1904~1987)은 신화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짚어보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도덕적 질서를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하는 사회적인 기능을 가진다.”고 했다. 현재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깨닫고 일관된 우주 질서를 회복하는 기능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신화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사람이 당장에 실현해야 할 사람살이의 가치를 담고 인구에 회자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신화를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이라고 하는 근거다. 오래된 나무들에 어김없이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도 결국은 지금 우리가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담은 이야기라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크고 오래된 나무의 줄기 안에 신화 속의 동물인 이무기가 산다는 식의 흔하디흔한 이야기는 더 이상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큰 나무의 가지를 꺾는다거나 베어내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역시 성장과 발전 위주의 산업사회에서는 우스개조차 되지 않는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반송에 얽혀 전해오는 전설은 이 같은 전설들과 조금 다르다. 물론 500살 된 이 나무에도 어김없이 이무기는 산다. 뿐만 아니라 나무 줄기 속의 이무기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사전에 큰 소리로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흉사에 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는 고마운 이무기다. 짚어보면 이 역시 흔한 전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호들갑스러워질 까닭은 없다. ●줄기속엔 전설 속 짐승 이무기가 그러나 또 하나의 별난 전설이 있다. 이 나무에서 잎을 따는 것은 둘째 치고, 저절로 땅에 떨어진 솔잎을 주워 가기만 해도 천벌을 받는다는 전설이다. 그것도 당대에 그치지 않고, 삼대에 걸쳐 이어지는 끔찍한 벌이라고 한다. 물론 천벌의 구체적 내용은 없다. 그저 공포심을 일으키는 엄포 정도이지만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나무 곁에서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떨어진 솔잎이 거름 되는 자연의 이치 물론 소나무의 한 종류인 반송은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수다. 하지만 한번 난 잎이 평생 달려 있는 건 아니다. 낙엽성 나무처럼 한꺼번에 잎을 떨구지는 않아도 오래된 잎은 하나 둘 떨어지고 새잎이 난다. 수명 없는 생명체는 없는 게 자연의 이치이고, 솔잎도 그 이치에서 예외일 수 없다. 땅에 떨어진 솔잎은 나무 뿌리 근처에 모여 잘 썩은 뒤에 나무의 거름이 된다. 쉬 썩지 않는 특징 때문에 솔잎이 썩으려면 시간이야 걸리지만, 나무에게는 더없이 좋은 거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름이 되기 전에 일쑤 솔잎을 주워 가곤 한다. 불쏘시개뿐 아니라 송편을 찔 때도 요긴해서다. 사람에게 솔잎이 쓰이면 쓰일수록 나무는 스스로 지어낸 양분을 잃는 셈이다. 요즘이야 다른 종류의 질 좋은 거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지만, 자연 상태에서 나무가 스스로 자라야 했던 옛 시절에라면 언감생심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혜로운 한 어른이 나무를 오랫동안 지켜내기 위해 솔잎을 보존하자고 생각했을 게다. 따로 거름을 주지는 못할망정 솔잎이 온전히 썩어 거름이 되는 것만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돌아보면 이는 자연의 순환 원리를 잘 반영한 매우 슬기로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사나운 짐승인 이무기가 산다는 이야기도 솔잎을 주워 가면 천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모두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 지켜내기 위한 지극한 노력의 결과이지 싶다. “그냥 보기에 좋잖아. 마을 사람들이 애지중지 지키는 좋은 나무이기는 한데, 그런 이야기는 잘 모르겠는걸. 언제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저이는 알려나?” 상현리 반송 바로 아래 첫 집에 사는 팔순의 동관댁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수십년을 살았지만 나무의 전설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거듭되는 질문이 성가셔진 할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에 접어드는 다른 노인에게 대답의 순서를 넘기고 만다. “나도 모르겠는데, 그게 어디서 나온 이야기지? 옛날에야 그런 전설이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 잊혀진 거지. 이무기가 산다는 이야기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솔잎을 주워 가지 말라는 전설은 가물가물하네.” 느릿느릿 몰고 오던 자전거를 세우고, 동관댁 할머니 곁에 주저앉은 신인재(71) 노인 역시 전설의 근원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우리 나무를 지키기 위한 옛 사람들의 지혜로운 이야기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솔잎을 주워 가면 삼대에 이어 천벌을 받는다는 별난 전설은 상현리 반송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슬기로운 이야기다. 그러나 곁에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이제는 잊힌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불과 30년 전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1982년 당시의 기록에만 화석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전설은 잊혀져도 지혜는 솎아내 지켜야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단오 때에 그네를 매고 놀던 것도 꽤 오래된 일이야. 한 20년 전까지 하고 요즘은 안 하지. 좋은 나무이니, 그냥 바라볼 뿐이지. 굳이 전설을 이야기할 겨를이 있나?” 한 그루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옛 사람들의 지혜로운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전설은 사라진다 해도 전설과 함께 나무를 지키려 한 옛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지혜만큼은 오래오래 지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첫걸음임에 틀림없다. 캠벨의 일갈처럼 ‘신화는 지금 우리가 실현해야 할 삶의 가치’인 까닭이다. 글 사진 상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50-1. 당진상주고속국도의 화서나들목에서 좌회전하여 화서면사무소 방면으로 간다. 곧바로 나오는 화령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학교 울타리를 끼고 우회전하여 250m 간 뒤에 우회전하면 하현마을이다. 여기에서 300m 남짓 더 들어가면 상현1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다시 400m쯤 더 들어가면 길 끝의 나지막한 언덕 위로 나무가 보인다. 나무가 서 있는 언덕 앞에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 [길섶에서] 11월/주병철 논설위원

    출근길 차창 너머 보도에 나뒹구는 낙엽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뭔가 갑자기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아침방송이 나를 깨웠다. 11월의 첫째날 뉴스를 전해드리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 11월이구나. 늦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문턱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입동(立冬)과 소설(小雪)도 멀지 않았다. 출근 후 책상에 놓인 달력에 눈길을 줬지만 날짜별로 칸막이가 쳐진 공간이 빈 채로 주인을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 달력에 관심을 빼앗긴 종이 달력의 못마땅함이 느껴진다. 하긴 앞뒤를 뒤적여 가며 달력을 넘기는 맛을 잊은 지 오래다. 올 초부터 약속 등 하루 일정을 스마트폰 달력으로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한달 한달 지나가도 바뀐 달을 체감하지 못하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과 다를 게 뭔가. 이래저래 지내다 보니 어느듯 한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지나간 10개월은 어쩌랴. 남은 2개월이라도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천장에 작은 구멍 내면 화재확산 방지 복원 중인 숭례문에도 고려할만 하다”

    “천장에 작은 구멍 내면 화재확산 방지 복원 중인 숭례문에도 고려할만 하다”

    “우리나라 목조건축에 대한 소방시설을 대부분 해놨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관리자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낙산사 전소(2005년), 창경궁 문정전 화재에 이어 수원 화성 서장대 전소(2006년), 숭례문 화재 사건(2008년) 등등. 요즘 산과 들에는 낙엽이 많이 쌓이고 있다. 행락객들도 많아지고 있다. 날씨는 점점 건조해진다. 깊은 산사 주변의 문화재는 목조건축이 대부분이라 어느 때보다 화재위험에 노출돼 있다. 동절기 화재예방, 그리고 화재방지시스템 등을 ‘똑 부러지게’ 점검해야 할 시기다. 목조건축 전문가로 잘 알려진 현고스님(전 송광사 주지)을 지난달 27일 송광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송광사 건물 64개동 가운데 3개동만 빼놓고 모두 개·신축을 맡아했다. 또 김천 현암사, 울진 불영사, 제주 번화사, 광주 신관사, 화순 운주사의 대웅전·요사채 등 지금까지 스님의 손을 거쳐간 목조건축물이 180여채나 된다. ‘불사(佛事)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먼저 목조건축에 대한 화재 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게 가장 좋은지를 물었다. “우선 불의 성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목조건물인 경우 마루에서 붙은 불은 순식간에 천장 쪽으로 올라갑니다. 마치 기다란 헝겊에 불이 붙었을 때처럼 말입니다. 숭례문 화재만 하더라도 불이 붙어 천장으로 곧바로 올라갔는데 천장이 꽉 막혀 있었지요. 그러자 불은 압력에 의해 옆으로 확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밖에서 물을 마구 뿌려대 오히려 산소만 공급해 주는 역할을 했지요. 부채질을 한 셈이지요. 진압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금방 벌어진 것입니다. 만약 이때 천장에 구멍이 있다면 불은 구멍 속으로 자동적으로 확 빨려 올라갑니다. 구멍이 바로 굴뚝 역할을 해주는 셈이지요. 목조건축을 지을 때 기둥이 있는 천장에 작은 구멍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로 화재가 발생해도 더 이상 확산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복원 중인 숭례문에도 화재방지를 위해 한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원형성 유지와 불가피한 변형 등을 놓고 논란이 있겠지만 미관상 처리만 잘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목조건축과 관련, 화재발생에 대한 여러 가지 단계적 실험을 거쳐 적립된 매뉴얼이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스프링클러 같은 시스템으로 100%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은 오산이지요. 화재는 0.1%의 오차도 허용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수막설비같은 것은 동절기에 작동이 안될 수도 있거든요. 소화탄과 소화기의 사정거리는 어떠한지 등의 단계적 대응시스템을 꼼꼼히 살필 때가 됐습니다.” 이어 그는 “전통 사찰의 경우 대부분 문화재가 있기 마련인데 전문적인 관리 시스템과 매뉴얼이 전혀 없다.”고 재차 강조한다. 시설이나 장비 등을 작동하는지 몰라 시간을 보내다가 노후화된 뒤 교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영국의 의사들처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급자를 두어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제안한다. 사찰인 경우 각 교구본사별로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부연한다. “제 손을 거쳐간 목조건축물들은 대부분 칸과 칸 사이에 격벽을 쳐서 불이 붙어도 옆 칸으로 못 건너가도록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목조건물들은 10분 안에 진화하지 못하면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전소되고 만다는 뜻이지요.” 스님은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1971년 송광사에서 구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94년부터 4년동안 송광사 주지를 했고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불교문화사업단장, 총무원장 권한대행 등을 거쳤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불교대중화를 위해 ‘템플스테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그는 “유럽과 미국의 석학과 지성들이 병풍 쳐놓고 자기 명상을 할 정도로 한국불교가 세계화됐다.”고 말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 있는 원각사 회주로 있으면서 불교 요양원 시설 확충에도 앞장서고 있다. 불사계획을 묻자 “우리의 전통 고건축 기법으로 한 400평 규모의 최대 목조건물을 구상중에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철 지난 낙엽’ 처리 각양각색

    거리마다 곱게 쌓인 빨갛고 노란 낙엽은 가을의 낭만을 한껏 돋운다. 그러나 낭만도 잠시, 늦가을로 접어들면 거리에 수북한 낙엽도 결국 모아서 처리해야 할 골칫덩어리로 바뀌고 만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런 낙엽을 일부 자치구에서는 퇴비로 재변신시키면서 친환경과 예산 절감 두 가지 효과를 한꺼번에 보고 있다. 1일 각 자치구에 따르면 강동구는 낙엽을 관내 친환경농산물 재배 농가와 공공 도시텃밭에 활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상일동에 5735㎡ 규모의 낙엽퇴비장을 직접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퇴비장에서는 가을에 발생한 낙엽에다 미생물을 첨가해 발효시켜 퇴비를 만든 뒤, 친환경 농업 인증을 받은 관내 62곳 농가에 매년 350t가량을 무료 공급한다. 특히 강동구는 퇴비를 도시텃밭과 상자텃밭에도 활용하는 등 ‘친환경 도시’ 만들기 사업과 적극 연계하고 있다. 또 이를 통해 매년 3억 6000만원에 이르는 처리비용도 절감하고 있다. 강동구에서 한해 발생하는 퇴비량은 1800t이나 된다. 서초구는 거리에 쌓인 낙엽을 소각하는 대신 인근 화훼농가에 무상 제공해 퇴비로 재활용하고 있다. 관내 신원동과 내곡동에 화훼농가가 밀집돼 있어 퇴비 수요가 많은 점을 감안한 것이다. 낙엽은 식물 성장의 필요한 영양이 풍부하고 병충해 예방효과까지 뛰어나 화훼농가에 유용한 자원이다. 게다가 구청에서는 소각비용 2400만원을 절감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제공되는 낙엽은 전체 발생 분량 600여t 가운데 80%쯤 된다. 나머지는 단시간에 퇴비를 만들기 어려운 은행잎으로, 이를 미리 분리해 농가에서 퇴비를 만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했다. 한편 송파구는 해마다 낙엽 200t 정도를 강원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남이섬까지 보내 관광자원으로 재활용하도록 한몫 거든다. 막바지 단풍철인 요즈음 멋지게 길을 물들여놨다. 아끼는 처리비용은 1억여원이다. 더욱이 공수된 낙엽으로 남이섬 내 ‘송파 은행길’을 꾸며 자치구 홍보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1)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1)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

    단풍도 알고 보면 나무가 이 땅에 살아남으려는 안간힘의 결과다. 고요히 사는 듯하지만, 나무는 자신의 생존을 지키고,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나무도 끝없이 이어지는 생존투쟁의 고리를 벗어날 도리가 없다. 한곳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오랫동안 살아야 하는 나무를 붉게 물들이는 단풍 빛깔 역시 자기를 지키기 위한 나무의 생존 전략이다.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풍 잎의 붉은 빛이 머금은 안토시아닌은 해충의 침입을 막아내는 중요한 성분이다. 붉은 단풍 낙엽을 나무 그늘 아래 떨어뜨리는 것은 나무가 긴장을 풀고 겨울잠에 드는 동안 가까이 찾아오는 해충을 막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붉은 단풍은 해충 막는 성분 함유 단풍의 계절이다. 도시에도 은행나무 가로수에 노란 물이 한창 올랐고, 숲에도 고로쇠나무 복자기 화살나무 잎의 붉은 색과 갈참나무 굴참나무의 갈색이 색깔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느티나무에도 단풍 물이 올랐다. 느티나무의 단풍은 독특하다. 같은 느티나무이면서도 단풍 빛이 나무마다 조금씩 다르다. 모두 붉은 계통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색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심지어 줄지어 선 나무의 경우에도 햇살이 닿는 양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다양한 빛깔로 단풍이 들기에 가을이면 어느 나무보다 먼저 느티나무를 찾게 되는지 모른다. 해마다 새로운 기대로 설레는 까닭이다. 천연기념물 제382호인 충북 괴산 장연면 오가리 느티나무에도 어김없이 가을 단풍 물이 올랐다. 조금 이르긴 해도 무성한 나뭇잎에 오른 빨간 단풍 빛은 이제 뚜렷해졌다. 바람결 더 차가워지기 전에 겨울 날 채비를 마치려 애쓰는 중이다. 해충의 침입을 막는 안토시아닌 성분을 잎 위에 잔뜩 모으는 중이라는 이야기다. 오가리 우령마을 어귀에 커다란 삼각형을 이루는 각 꼭짓점 부분에 한 그루씩 서 있는 느티나무에는 제가끔 다른 빛깔의 물이 올랐다. 어김없이 장관이다. 살아 남으려는 생명체의 안간힘이 핏빛으로 드러났다. 나무 뒤로 이어지는 서른 가구쯤 되는 마을 안쪽은 고요하다. 마침 가을걷이를 마친 농부들이 인근의 초등학교에 모두 모여 ‘장연면 농산물 축제’를 벌이는 중이어서다. 단풍으로 겨울 채비에 나선 느티나무처럼 사람들도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추운 겨울을 이겨낼 준비를 하는 중이다. ●마을의 평안 지키는 천연기념물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에 당산제를 지내. 우리 마을에선 큰 잔치인 셈이야. 느티나무가 천연기념물이어서 당산제 때, 제사음식이나 제사용품은 나라에서 보태주는 걸.”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가로 산책 나온 노파가 낯선 나그네에게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다가와 나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무에 얽혀 전해오는 별다른 이야기는 없어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을 나무라고 덧붙인다. 괴산읍 동북쪽에 위치한 이 터에 우령마을이 들어선 것은 800년 전이다. 그때 마을을 세운 옛 사람들은 마을로 들어서는 개울가에 나무를 심었다. 평화로운 살림살이가 이뤄지는 마을을 가리키는 표지도 되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정자도 되는 느티나무였다. 느티나무가 잘 자라면 마을에 찾아올지도 모를 잡귀, 잡신을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을 게다. 마을 사람들은 그래서 이 세 그루의 나무를 한데 묶어 ‘삼괴정’(三槐亭)이라 부른다. ‘세 느티나무 정자’라는 뜻이다. “나무 옆에 있던 밭을 갈아엎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나무 보러 오는 사람들이 좋아하더군. 쉴 자리가 넉넉하고 깨끗해졌으니 좋지. 하기야 우리들도 집 바깥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으니 나쁠 것 없지,” 느티나무 주위로 이어졌던 야트막한 비탈밭은 5년쯤 전에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정비했다. 멀찌감치 자동차를 세울 주차장과 간이 화장실을 세우고, 나무 가까이에는 아담한 크기의 정자도 마련했다. 마을 사람들에게야 특별히 좋을 일이라 할 수 없지만, 나무 보호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나무를 찾아보기에도 편리해졌다. 삼괴정의 세 그루 나무 가운데 가장 아래에 있는 나무를 하괴목, 중간의 나무를 상괴목이라고 부르는데, 이 두 그루를 하나로 묶어 천연기념물이 됐다. 그보다 조금 높은 곳에 서있는 다른 한 그루는 비교적 규모도 작고, 생육 상태도 떨어지는 편이어서 제외했다. 보호구역으로 정비된 자리는 상괴목과 하괴목 주변이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은 하괴목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키 19m, 가슴높이 둘레 9.4m에 이르는 큰 나무다. 나무 줄기는 2m쯤 높이에서 셋으로 갈라졌는데, 그중 가장 굵은 줄기는 오래 전에 부러져 외과수술로 메웠다. 긴 세월의 더께가 겹겹이 쌓인 하괴목의 굵은 줄기 앞에는 당산제 지낼 때 쓰는 돌 제단이 놓였고, 줄기에는 당산제 때 쳐놓은 금줄이 둘러쳐 있다. ●농부는 마을 축제, 나무는 단풍 잔치 세 그루의 나무 가운데 가장 수려한 몸집을 보여주는 건 단연 상괴목이다. 느티나무의 전형적인 품새를 지니고 있는 상괴목은 키가 25m나 되고, 가슴높이 둘레도 8m나 된다. 사방으로 고른 가지퍼짐도 여느 느티나무 못지 않다. 우리나라의 느티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나무임에 틀림없다. 이 땅의 살림살이를 오랫동안 지켜온 세 그루의 느티나무는 지금 그렇게 저마다의 단풍 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중이다. 멀리 장연 농산물 축제장으로부터 풍악 소리를 싣고 날아오는 소슬바람 따라 나무도 흥에 겨워 온 가지를 살랑인다. 나무도 농부도 한해 살림을 잘 마쳤다는 신호다. 그건 또 새 봄을 채비하는 나무의 붉은 다짐이기도 하다. 글 사진 괴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북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321. 중부내륙고속국도의 괴산나들목으로 나가서 동쪽으로 2.5㎞ 가면 추점삼거리가 나온다. 장연면 방면으로 난 오른쪽 길을 이용하여 4㎞ 조금 더 가면 장연면잡곡가공공장이 있는 우령마을입구가 나오는데, 마을 입구 도로가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마을 입구에서 200m 조금 못 미처에 장연초등학교가 있다. 그 옆으로 난 마을 길로 좌회전하여 다시 200m쯤 가면 우령마을이다. 삼괴정으로 부르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는 마을 어귀에 있다.
  • [리뷰] 2011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서 생긴 일

    [리뷰] 2011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서 생긴 일

    가을하늘이 유난히도 화창한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손꼽아 기다린 그랜드민트페스티벌2011(이하 GMF)이 열리는 날입니다. 잔디밭에 앉아 홀짝일 와인과 간단한 음식 그리고 돗자리 등을 챙깁니다. 담요가 있다면 챙겨도 좋지만, 현장에서 올해의 트렌드를 십분 반영한 ‘GMF표 패션담요’를 구입해도 좋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올림픽공원은 이미 인산인해입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잔디 사이로 텅 빈 무대가 보이네요. 조금 후부터 저 무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해집니다. GMF의 첫 무대로 ‘곰피디와 절묘한 친구들’을 만납니다. KBS 2FM ‘이현우의 음악앨범’ 연출자인 곰피디(본명 이충언)는 최근 앨범에서 최강희, 류현경 등 인기 여배우에게 노래를 ‘시킬만큼’ 마당발을 자랑하는 뮤지션입니다. 곰피디 특유의 달달하고 유머러스한 곡들이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동안, 삼삼오오 돗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정성스레 준비한 도시락을 꺼냅니다. 옆자리의 한 남성은 직접 만든 김밥과 과일 도시락으로 여자친구에게 무한 감동을 선사하네요.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 도시락이 없다면 카페존에서 칠리핫페퍼핫도그를 사먹어도 좋아요. ‘나름’ 먹을 만 합니다…… ●‘슈퍼스타’를 꿈꾸는 박솔과 ‘영원한 소녀’ 장윤주 잠시 주린 배를 채우고 오니 이번에는 ‘슈퍼스타K3’로 얼굴을 알린 박솔이 무대를 준비하네요. 박솔은 지난해와 올해 앨범을 2장이나 발표한 어엿한 뮤지션입니다. 민트페이퍼 앨범에 수록된 ‘저 잔에 담긴 물처럼’을 포함해 ‘불면증’, ‘너를 노래해’ 등은 옆구리가 시린 누나 또는 여동생 팬들의 마음을 담금질하기에 충분합니다. 무대를 옮기니 이번에는 GMF2011 레이디로 선정된 장윤주가 특유의 ‘구수함’을 뽐내며 공연을 시작합니다. 관객들에게 “이런 페스티벌에 오면 헌팅이 매우 잘 된다.”, “지나친 음주는 삼가해 달라.” 등 뼈 있는 멘트도 아끼지 않습니다. 이어 자칭 히트곡인 ‘플라이 어웨이’(Fly Away)를 열창하자 관객들이 따라 부르며 즐거워하네요. 역시 뮤직페스티벌은 ‘아는게 힘’입니다. 보고싶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열심히 공부해가면 재미가 배가 된다는 진리가 입증되는 순간입니다. ●공연장을 사우나로 만든 자우림과 “히트곡이 너무 많은”10cm 수 천 명까지 수용 가능한 실내 공연장에서 무대를 펼친 자우림은 지난 페스티벌부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유용한 곡 외에도, 8집 앨범 수록곡 ‘EV1’, 1집 수록곡 ‘낙화’등 어둡고 느리고 차가운, 축제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듯한 곡들도 빠짐없이 무대에 올려 왔습니다. 김윤아는 “이 곡들의 배경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모두 ‘검색’을 생활화 하자.”고 역설하네요. 후끈한 사우나 같은 자우림 공연장에서 빠져 나오니 이제는 ‘바쁜 몸’이 된 10cm가 특유의 끈적끈적한 곡들을 선보입니다. 권정열이“히트곡이 너무 많아서, 뭘 불러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하자 관객들의 리액션이 폭발합니다. 여기에 ‘찹쌀떡’, 아메아메아메 ‘아메리카노’가 이어지자 열기는 하늘까지 닿을 듯합니다. 역시 대세는 10cm 인가 봅니다. ●‘본능적인’ 윤종신 그리고 GMF의 가을밤 GMF민트브리즈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윤종신은 무대에 서자마자 “GMF에 처음, 드디어 나온다. 지금까지 나 없이 이 행사 어떻게들 치렀는지 모르겠다.”며 본능적으로 너스레를 떱니다. 어느덧 밤 9시를 넘긴 시각, 이젠 서늘하다 못해 쌀쌀한 가을밤에 윤종신이 ‘팥빙수’를 부릅니다. 아, 생각만 해도 이가 덜덜 떨리지만‘악동 윤종신’다운 선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가워진 바람에도 관객들의 표정에는 여전히 행복과 설렘이 가득합니다. 급한 볼일을 해결하기 위해 수 미터 이어진 화장실 줄을 기다릴 때 말고는, 즐겁지 않은 일이 거의 없습니다. 페스티벌, 축제니까요. ●2012그랜드민트페스티벌을 위해 미리 체크할 것들 티켓예매 오픈일정을 미리 확인하세요. 2011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는 10월 22일,23일 양일간 4만5000명이 넘는 관객이 모였습니다. 참고로 올해 예매분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하니, 2012GMF 티켓 예매오픈 날짜에 촉각을 기울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반드시 돗자리를 챙기세요. 2, 3개면 더 좋습니다. 잔디밭에 오래 앉아있다 보면 얇은 돗자리 위로 잔디 이슬이 스멀스멀 올라와 엉덩이가 축축해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인업 발표와 함께 뮤지션들의 음악을 공부해보세요. 음악페스티벌은 흥얼거리기만 해도 좋은 분위기지만, 함께 뛰고 따라 부를 수 있다면 흥이 배가 됩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무대에 선 뮤지션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리 멋진 애인을 만드세요. 친구들끼리 즐겨도 전혀 무방하지만,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예쁜 도시락과 달콤한 와인을 마시고 멋진 음악까지 즐길 수 있는 피크닉 데이트는 연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입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터줏대감 ‘태산이’ 숨져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터줏대감 ‘태산이’ 숨져

    한 살 연상인 짝을 잃은 슬픔에 건강을 해치고, 자식마저 하늘나라로 떠나자 그는 빠르게 늙어 갔다. 외롭게 살던 코끼리 태산이, 그가 낙엽처럼 스러졌다. 38세. 서울시설공단은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태산이가 지난 13일 낮 12시 40분 순환기장애에 의한 심장마비로 쓰러져 숨을 거뒀다고 25일 밝혔다. 태산이는 동국제강㈜이 1975년 5월 대공원 개장 2주년을 맞아 기증해 서울 시민과 인연을 맺었다. 장상태 당시 동국제강 대표가 “1973년 5월 문을 연 대공원에 코끼리가 없어 안타깝다.”며 태국에서 한 쌍을 구해 선박편으로 20일에 걸쳐 운송했다. 공단은 1986년 빨리 성장하길 빌며 태산이(수컷)·태순이(암컷)라는 이름을 붙였다. 태산이는 국내 최대의 자이언트 코끼리로 커서 대공원과 동고동락했다. 태산이·태순이 부부는 신방을 꾸몄지만 행복은 짧았다. 1996년 태순이가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떴기 때문이다. 사별 1년 전 얻은 새끼 ‘코코’를 보며 마음을 다독였다. 부자(父子)의 행복도 잠시였다. 코코가 7세이던 2002년 심낭염을 앓다가 어미를 따라갔다. 스트레스를 받던 터에 2009년 9월엔 한 여성에게 돌팔매질했다는 누명까지 썼다. 공단은 25일 태산이가 묻힌 대공원 남문 앞에서 약력과 위헌문을 읊으며 코끼리 수명 50세를 못 다한 넋을 달랬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깊어가는 가을, 그곳에 가면…] 양재천 단풍옷 감상

    서울 양재천에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낙엽의 거리가 들어선다. 강남구는 25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양재천 산책로 2곳을 ‘낙엽의 거리’로 지정해 운영한다고 24일 밝혔다. 낙엽의 거리는 양재천 보행자교~영동3교 대치중학교 앞 400m 구간과 영동5교~영동6교 개원중학교 앞 700m 구간 등 총 1.1㎞로, 이곳에는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어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낙엽은 오는 28일쯤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구는 이 기간 동안 양재천 제방 위에 있는 산책로 일부 구간의 낙엽을 쓸지 않고 자연 상태로 유지해 주민들이 낙엽을 밟고 거닐 수 있도록 했다. 또 낙엽의 거리 운영 이후에는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을 모아 퇴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주변 농가에 제공할 계획이다. 앞서 구는 지난 17일부터 삼성동 코엑스 일대 2500㎡를 형형색색의 국화 테마파크와 국화작품으로 꾸며 주민들이 가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신연희 구청장은 “회색빛 도심 속에서 주민들이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양재천을 계절별 특색에 맞게 가꾸어 지역의 명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서울플러스]

    낙엽 재활용 퇴비 농가에 공급 강동구(구청장 이해식) 지난 21일 버려지는 낙엽을 재활용해 만든 유기질 퇴비 347t을 관내 친환경농산물 재배농가와 도시텃밭에 공급했다. 화훼화분과 상자텃밭 등에도 활용할 예정이다. 지역경제과 480-1207. 새달5일 인사동 짚풀공예 겨루기 종로구(구청장 김영종) 다음 달 5일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전통짚풀공예 솜씨겨루기 대회를 개최한다. 60세 이상 노인들이 참가해 3시간 동안 짚풀을 활용한 공예품을 만들며 실력을 다툰다. 문화공보과 731-1160.
  • JYJ “동방신기 그늘 벗겠다는 생각 안해”

    JYJ “동방신기 그늘 벗겠다는 생각 안해”

    어느덧 동방신기보다 JYJ라는 그룹 이름이 더 익숙해진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 5인조 그룹 동방신기에서 떨어져 나와 2년간 담금질을 거친 이들이 최근 첫 한국어 정규 앨범 ‘인 헤븐’(In Heaven)을 내고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섰다. 타이틀곡 ‘인 헤븐’을 비롯해 ‘겟 아웃’, ‘낙엽’ 등 주요 수록곡이 멤버들의 자작곡인 점이 눈에 띈다. 음원은 아시아 공연을 통해 대부분 먼저 공개됐다. 그 덕분인지 앨범은 벌써 선(先)주문만 30만장에 이른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JYJ를 만났다. “예전에는 그려진 밑그림에 색깔만 입히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엔 밑그림부터 모든 것을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멤버들이 80% 이상 프로듀싱 및 작곡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남다르고 애착이 갑니다.”(김준수) ●녹음때 의견 적극 반영… JYJ다움 부각 “그 때문에 완성도 면에서 미숙할 수도 있지만 JYJ다운 음악은 더 부각됐습니다. 무엇보다 녹음실에서 우리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창작이 맘껏 표출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꽤 오랫동안 대중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 음반 매장에 저희 앨범만 따로 계산하는 전용 계산대까지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랍고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박유천) “투어에 필요한 음악을 만들다 보니 라이브 공연에 맞게 다이내믹한 노래가 많이 나왔습니다.”(아시아 투어 연출을 겸한 김재중) 지난 2년의 여정과 추억이 담긴 앨범을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JYJ. 그러나 행간에 동방신기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저간의 마음고생이 묻어났다. 이들의 활동은 여전히 큰 벽에 가로막혀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전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대표 이수만)와의 법적 갈등을 이유로 JYJ의 출연 섭외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식 앨범이 나오면 출연시키겠다고 했던 KBS는 수록곡 ‘피에로’의 가사 중 ‘P.S.M’이 이수만을 지칭한다며 방송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사유는 특정인에 대한 공격. “P.S.M이 ‘프레지던트(대표) 수만’의 영어 약칭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억측입니다. 가사 운율을 맞추기 위해 들어간 단어일 뿐이에요. 굳이 해석을 붙이자면 ‘퍼포먼스 석세스 뮤지엄’으로 물질적인 성공만을 좇아가는 세태를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방송사에서 창작자나 저희 회사쪽에 가사의 의도에 대해 단 한번도 묻지 않고 자의적으로 정의를 내린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재중) ●질문 않고 가사 자의적 해석 KBS에 유감 박유천도 “잡혀진 음악 방송마저도 취소되는 것을 보며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들이 돌파구로 삼은 것은 연기자로서의 개별 활동. 데뷔작 ‘성균관 스캔들’로 인기를 모은 박유천은 ‘미스 리플리’로 연기자의 입지를 다졌고, 김재중도 최근 종영된 SBS 수목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로 안방극장 신고식을 무사히 마쳤다. 뮤지컬 배우로도 명성이 높은 김준수는 SBS 주말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처음엔 가수처럼만 안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매회 연습량이 늘어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연기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어요.”(재중) “‘미스 리플리’에 출연하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재중이 형이 많이 부러웠어요. (‘보스를 지켜라’의 배역이) 제가 갈구하던 이미지였거든요. 부드러움과 강함이 공존하는…. 같은 본부장 역할이었는데 어찌나 다르던지, 하하.”(유천) “뮤지컬은 클로즈업이 없어 조금 과장된 표현이 필요한데 TV 드라마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무튼 밤샘 촬영을 해보니 섣불리 도전할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준수) ●멤버 모두 드라마 경험… 연기활동 새 돌파구 아시아와 북미 지역 10개국을 돌며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들은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스페인(10월 29일)과 독일(11월 6일)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세 사람은 “우리 노래를 따라 부르는 외국 팬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유럽 트렌드에 맞추기보다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을 선보여 인정받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동방신기(유노윤호, 최강창민)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JYJ도 동방신기에서 나온 그룹이기 때문에 꼭 동방신기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톱이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고요. 다만 저희 음악을 많은 분들에게 오랫동안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하양·노랑·빨강…전북 고창 ‘삼색 초가을’

    하양·노랑·빨강…전북 고창 ‘삼색 초가을’

    초가을 바람에 꽃들이 반짝입니다. 아직은 초록의 기운 엄연한 들녘 위로 빨강, 하양, 노랑 삼색 꽃가루가 휘날립니다. 반짝이는 모양새가 어찌나 선명하던지, 높고 찬 겨울밤의 별들을 빼닮았습니다. 전북 고창의 초가을 풍경입니다. 지금 그곳엔 하얀 메밀꽃과 샛노란 해바라기, 그리고 선홍빛 꽃무릇이 절정의 자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 청보리 지고 메밀꽃 필 무렵 두 번은 찾아야… 이른 새벽이다. 부지런한 새 삐중대며 날아가고, 저 멀리 동녘은 붉다. 옅은 새벽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메밀꽃 세상이 열린다. 하얀 소금밭이다. 붉은 황토 위로 굵은 소금이 흩뿌려진 듯하다. 이곳은 학원농장. 지난봄, 푸름을 자랑하며 6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 곳이다. 여름내 보리를 수확하고 난 황토 구릉에 메밀을 심어 순백의 세상을 만들었다. 부드럽게 솟았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구릉 위로 하얀 메밀꽃들이 흐드러졌다. 메밀밭 사이로 난 길 가운데 곧은 것은 없다. 휘어지고 돌아가는 곡선의 길.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은근하면서도 여인네의 허리께를 연상시키듯 관능적이다. “한 번 와서 고창의 가을을 어떻게 알것소. 가을에만 적어도 두 번은 와야 ‘고창 여행 제대로 했다’ 소리 듣지 않것소?” 걸쭉한 사투리를 내뱉은 초로의 사내는 새벽녘 메밀꽃밭을 촬영하러 왔다고 했다. 고창의 가을은 색으로 말한다. 선운사 꽃무릇이 선홍빛으로 가을을 알리면 학원농장에는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진다. 여기에 노란 해바라기가 늦여름의 열정을 아낌없이 불태운다. 가을이 본궤도에 오르면 오색의 단풍들이 선운사를 물들이고, 가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 절집 옆 도솔천에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또 한번 장관을 연출한다. 사내의 말은 바로 이 풍경의 윤회에 대한 은유였던 셈이다. 학원농장은 시차를 두고 메밀을 심는다. 관광객들이 좀 더 오래 메밀밭 풍경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텅 빈 황토밭 아래에서는 새로 필 메밀 씨앗들이 지금도 자라고 있다. 학원농장과 주변 농가 메밀밭을 합치면 전체 면적은 100만㎡ 가까이 된다. 광활한 메밀밭에 들면 천천히, 그리고 속속들이 살펴볼 일이다. 마실 가듯 천천히 돌아봐도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소설가 이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 ‘흐벅진 달빛 아래 굵은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하다고 썼다. 한낮도 좋지만 달빛 쏟아지는 보름밤에 찾아야 제격이란 뜻이겠다. 옅은 안개가 부드럽게 능선을 감싸는 새벽 무렵도 더할 나위 없이 서정적이다. ●아침 햇살 따라 일렁이는 해바라기의 노란 꽃멀미 메밀꽃이 거대한 들판의 위용으로 여행자의 시계를 가득 채운다면, 해바라기는 강렬한 빛깔로 여행자의 눈길을 멈춰 세운다. 메밀꽃밭이 이 계절 학원농장의 ‘메인 디시’, 해바라기꽃밭은 ‘사이드 디시’쯤 되겠다. 해바라기꽃밭은 학원농장의 구릉이 이웃 마을과 맞닿는 자리, 그러니까 농장의 끝자락에 조성돼 있다. ‘사이드 디시’라고는 하나 면적만도 3만 3000㎡(1만평)를 넘는다. 학원농장은 원래 청보리밭으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1980년대 국무총리를 지낸 진의종씨가 1960년대 초 호남평야 끝자락의 넓은 구릉지대를 개발해 조성했다. 시골 한 귀퉁이에 불과한 곳인데도 초봄의 파란 청보리밭을 찾아 관광객이 몰려 들었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경관 농업으로 방향을 틀어 메밀과 해바라기 등을 계절에 맞춰 번갈아 심고 있다. 해바라기꽃밭 한가운데에 서면 꽃멀미가 난다. 온통 노란 해바라기꽃들이 바람 불 때마다 일렁이는데, 현기증이 나서 하늘마저 노랗게 보일 지경이다. 누군들 이 현란한 색에 마음 동하지 않으랴. 소녀 시절로 되돌아간 수녀도, 꽃과 동화되려는 젊은 처자도, 저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없다. 해바라기꽃밭 또한 이른 아침에 찾아야 좋다. 미루나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해바라기들을 하나하나 비추는데, 여간 인상적이지 않다. 꽃밭 주변에 산책로와 쉬어 가기 좋은 원두막 등이 조성돼 있다. ●봄날 동백보다 더 고운 선홍빛 꽃구름 꽃무릇 선운사는 봄날의 동백과 벚꽃이 곱다. 만추의 단풍도 빼어나다. 하지만 초록이 여전한 ‘푸른 가을’에는 단연 꽃무릇이 앞줄에 선다. 단풍보다 먼저 와 가을을 알린다. 선운사는 지금 꽃무릇이 절정이다. ‘꽃폭죽’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사방이 선홍빛 꽃구름에 싸였다. 꽃무릇은 비늘줄기에서 뻗어 나온 꽃줄기에 여러 개의 꽃이 방사형으로 달린다. 붉은 선의 꽃술 여럿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루는데 꼭 속눈썹을 매섭게 치켜세운 여인의 눈을 닮았다. 붉은 꽃술에서 가녀린 듯하면서도 도도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지 싶다. 꽃무릇은 선운사로 향하는 도솔천에서부터 자태를 뽐낸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에 이르기까지 계곡 골마다 붉은 비단을 펼친 듯하다. 선운사 꽃무릇이 유독 눈길을 끄는 것도 물길을 따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햇살이 번질 때 꽃무릇이 도솔천의 물을 발갛게 물들이는 장면은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뿐일까. 노거수(巨樹)의 굵은 둥치 아래 꽃무릇 군락이 펼쳐지는 풍경은 선운사 아니면 좀처럼 찾기 어렵다. 한데 꽃무릇의 수가 너무 많아 신비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오래전 절집 안쪽 그늘진 곳에서 조금씩 피던 꽃이 이젠 절집 밖에까지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사람이 꽃을 찾던 예전에 견줘 꽃이 사람을 찾아 대처로 나선 형국이다. 꽃무릇은 이달 말부터 새달 초까지가 절정이다. 고창을 붉게 물들였던 꽃무릇은 이후 전남 함평으로 건너가 해보면 용천사와 꽃무릇 공원 일대에서 10월 17~18일 꽃무릇 축제로 다시 한번 절정을 이룬다. 글 사진 고창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선운사는 서해안고속도로→선운산 나들목→좌회전→22번 국도 선운사 방향으로 간다. 학원농장은 서해안고속도로→고창 나들목→15번 지방도→무장면→796번 지방도→학원농장 순으로 간다.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560-2457. 학원농장 www.borinara.co.kr, 564-9897. ▲맛집 선운사 초입에 40여곳의 장어구이집이 몰려 있다. 할매집(562-1542), 용궁회관(562-6464), 신덕식당(562-1533) 등이 갯벌 풍천장어를 내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조양식당(508-8381) 한정식도 일품이다. 학원농장에선 보리비빔밥(7000원), 메밀국수(5000원) 등을 맛볼 수 있다. ▲잘 곳 숙박 사정은 썩 좋지 않은 편. 선운산관광호텔(561-3377)이 제법 큰 호텔로 꼽힌다. 고창읍 내 모양성모텔(561-5009), 꿈의 궁전(561-6561) 등이 깨끗한 편이다.
  • [도심속 허파를 찾아서] (7) ‘걷고싶은 거리’ 만드는 가로수

    [도심속 허파를 찾아서] (7) ‘걷고싶은 거리’ 만드는 가로수

    청주가 고향인 남용석(45)씨는 플라타너스 길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대학시절 플라터너스 길을 걷다 주변에 있던 딸기밭에서 미팅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개발과 도시화로 어느 순간 사라졌던 가로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과 하동의 십리 벚꽃길 등 지역을 상징하는, 명품 길도 등장했다. 가로수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환갑 맞는 플라타너스 동굴 경부고속도로 청주IC를 빠져나와 시내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울창한 플라타너스 동굴(청주가로수길)을 만나게 된다. 나무마다 형형색색의 천이 달려 있다. 지난 21일 개막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기념해 작가들이 나무 옷을 제작해 입혔다. 국도 36호(보령~울진) 중 청주 진입부에 조성된 청주가로수길은 흥덕구 복대동 죽천교까지 5.3㎞에 달한다. 1952년 녹화사업으로 조성했으니 내년이면 환갑이다. 높이 20~30m의 울창한 나무들이 보기 좋지만 병해충으로 수세가 약해지는 등 세월의 피로가 느껴진다. 조성 당시 1300그루였지만 수세회복사업과 고사목 교체작업 등을 거치며 1800그루로 늘었다. 청주가로수길은 영화 ‘만추’와 드라마 ‘모래시계’에 등장하면서 청주를 대표하는 명소로 부상했다. 1970년도 경부고속도로 개통에 따라 4차선으로 확장한 초기 가로수(2.82㎞)와 지난해 8차선으로 새롭게 단장된 구간(2.48㎞)이 공존하고 있다. 도로 확장을 결정하는 데만 6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확장된 강서동~휴암동 구간은 가로수를 보존하면서 6차선 도로에 양쪽으로 자전거와 트레킹 도로를 조성했다. 청주가로수길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민들의 인내가 만들어 낸 역사다. 1970년도 도로 확장공사 당시 제거될 처지에 직면,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역개발 단골 대상지로 거론되고, 교통사고와 재해로 고사목이 늘 때는 애물단지가 됐다. 주변 농민들은 그늘과 낙엽으로 해마다 피해를 입었지만 감내했다. 2001년 아름다운숲 경연대회 대상(거리숲부문), 2006년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지역자원 도로부문 대상, 2007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청주자랑(10선)에 선정되면서 소중한 역사문화자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중훈 청주시청 공원녹지과장은 “나무들이 노령화돼 병해충에 약하고 재해에 쓰러질 수 있어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면서 “올해부터는 나무별로 이력관리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장 비싼 금강송 가로수 2008년 조성된 명품 소나무 가로수길은 강릉시의 관문으로 강릉IC에서 시청을 잇는 홍제동 경강로(1㎞) 구간이다. 이곳에는 높이 11~14m로 수령이 30~50년된 금강소나무 111그루가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소나무는 강릉시가 시유림에서 수형이 뛰어난 것 중에서 선발한 것으로 조경수 구입시 1그루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나무 가로수 조성 소식에 지자체들의 벤치마킹이 잇따랐지만 소나무를 구하지 못해 실행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소나무는 공해에 약해 가로수로 부적합하다는 속설을 깬 ‘성공신화’를 만들어냈지만 조성하고 유지하는 데 들인 노력은 치열했다. 4차선 도로의 가드레일을 비롯해 감시카메라와 안전시설 등을 철거한 뒤 토양개량, 상수도 인입시설을 설치했다. 소나무는 이식이 어려운 대표적인 수종이다. 대형 트럭으로 실어와 크레인에 옮겨 심은 나무의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새순따기 및 수분억제제, 영양제를 투여하고 뿌리 절단면에는 바세린 처방도 했다. 지표에 자갈을 깔고 다시 잔디를 식재했으며 유공관을 설치하는 등 토양 산소 공급에 만전을 기했다. 태풍과 바람이 심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나무마다 와이어 지주를 연결한 것도 눈에 띈다. 조성 후에도 해마다 네번씩 나무를 씻기고 나무종합병원을 통해 정기 검진도 받고 있다. 곽주린 산림청 동부지방산림청장은 “도로 중앙분리대에 소나무를 심어 ‘솔향’이라는 지역 상징성을 돋보이게 한다.”면서 “지역을 상징하는 수종 선택과 관리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대왕참나무·무궁화길 눈길 대구 공평네거리~중구청네거리 720m에는 대왕참나무 296그루가 수목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채보상공원, 경북대에 인접한 국채보상가로수길은 도심 녹지 공간으로 110% 기능을 발휘한다. 여름에는 녹음과 그늘, 가을에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있다. 주변 직장인 및 공원·병원 방문객들의 휴식, 산책코스가 되고 작품 전시회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연말에는 경관 조명을 설치해 이국적인 야경을 선사한다. 전남 진도의 주요 국도변 211㎞에는 무궁화길이 조성됐다. 2년여에 걸쳐 총 10만 2700여그루를 심어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9년부터 무궁화가 피는 시기에 무궁화축제도 개최한다. 무궁화는 병해충이 많다는 일제식민사관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현장 학습장이다. 조성 후 가지치기와 비료주기 등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는 등 ‘무궁화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청주·강릉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민주 서울시장 경선 4파전

    민주 서울시장 경선 4파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야권 후보군이 속속 윤곽을 드러내면서 ‘예선 대진표’가 확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선(先) 자체 후보, 후(後) 단일화’에 합의한 야권의 ‘투 트랙 경선’이 본궤도에 진입했다. 15일 민주당의 박영선 정책위의장, 천정배 최고위원, 신계륜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추미애 의원도 이날 후보 등록을 마친 뒤 16일 출마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순간 왔다” 민주노동당에선 최규엽 새세상연구소장, 이상규 전 서울시장 후보, 김종민 서울시당위원장이 후보로 나선다. 오는 17~19일 후보 등록, 21~25일 당원 투표가 진행된다. 특히 민주당은 ‘1부 리그’가 4파전으로 짜여지면서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안철수 효과’를 등에 업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멀찌감치 앞서 있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너졌던 제1야당의 자존심을 다소나마 회복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향후 지지층 결집 추이와 후보들의 경쟁력이 당내 경선의 성패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 같다. 고심 끝에 출마를 결정한 박영선 정책위의장은 ‘구당’(求黨) 의지를 앞세웠다. 이날 출마 기자회견에서 “거부할 수 없는 순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왔다고 느꼈기에 이 자리에 섰다.”면서 “1000만 시민을 위해, 민주당을 위해 기꺼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려고 한다.”고 밝혔다. 앞서 당 고위정책회의에서는 “당을 위해서 촛불이 되라면 촛불이 되고 낙엽이 되라면 낙엽이 되겠다.”고도 했다. 박 의장의 출마 기자회견장에는 당내 각 정파 관계자들이 거의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공교롭게도 박 상임이사와 고향(경남 창녕)이 같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직후 출마 의사를 밝혔던 천정배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민주개혁진보 진영의 맏이로서 소임을 다할 때만 대한민국은 전진해 왔다.”면서 “반드시 서울시장이 돼 민주당이 새로워졌다는 인정을 받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서울시는 경제, 행정, 정치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이명박 정권과 한판 승부를 벌일 적임자가 누구겠냐.”고 호소했다. ●천정배·신계륜 “내가 적임”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신계륜 전 의원은 “오랜 시간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해 온 준비된 후보”라면서 “이번 선거가 정파의 싸움이 돼서는 안 되며, 통합할 수 있는 후보가 나서서 전통지지 세력에 새로운 젊은 바람을 결합할 때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의원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와 서울시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 열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겠다.”며 출마 선언을 할 계획이다.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데스크 시각] ‘다름’에 대한 단상/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다름’에 대한 단상/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요즘 온라인 세상을 서핑하다 보면 ‘우월하다’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특히 연예인들의 외모와 관련된 글들에서 이런 표현이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우월한 기럭지’ 따위가 그렇다. 이 표현은 필경 특정 연예인의 다리가 보통 사람보다 길다는 뜻일 터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을 거리낌 없이 쓰는 사람들은 ‘우월하다’의 반대말이 ‘열등하다’란 걸 알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명확해진다. 유럽 등 서구인들은 대체로 우리보다 ‘기럭지’가 월등히 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외모와 견줄 때 열등한 걸까. ‘롱다리’들은 우월하고 ‘숏다리’들은 죄다 열등한 족속들일까. 이런 표현들이 개인 블로그뿐 아니라 언론 매체들의 홈페이지에서도 종종 눈에 띈다. 농반진반의 표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몇번을 곱씹어도 그 표현 이면에 자기비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문제로 외모지상주의 운운하며 사회학 영역까지 오지랖을 넓힐 생각은 없다. 다만 경계해야 할 건 이와 비슷한 현상이 국내 관광에서도 흔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혹시 ‘경복궁은 중국의 자금성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라든지, ‘우리나라에서 뭐 볼 게 있어’라는 등의 표현을 주변에서 들어본 적은 없는지. 혹은 우리 것이 박약하다는 생각 끝에 너나 없이 ‘유럽풍’ ‘미국식’ 짝퉁 풍경들을 억지 춘향으로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유럽 국가를 돌다 보면 그네들의 관광 자원 다루는 솜씨에 놀란다. 불필요한 시설은 드물고, 필요한 시설물이 없는 경우도 드물다. 있어야 할 것은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다. 이런 일들은 결국 제 나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다. 제 나라를 아끼는 마음들이 모여 풍경을 만들고, 거기에 문화를 덧씌운다. 이런 과정은 곧 제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최근 스위스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유럽의 지붕’이라는 융프라우는 장엄했다. 수많은 산악인들의 생명을 앗아간 아이거 북벽 또한 위압적이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낙엽송 등 침엽수들이 하늘 향해 솟아 오르며 수직 세상을 연출했다. 물 빛깔은 또 어떤가. 빙하 녹은 물이 으레 그렇듯 숫제 에메랄드빛 우유가 흐르는 듯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스위스엔 바다가 없는데, 그들이 검푸른 바다 위로 해가 솟는 풍경을 알까. 들물 날물이 반복되는 바다 위로 해가 지는 풍경을 본 적이 있을까. 옆으로 휘영청 늘어진 소나무가 바위를 뚫고 자라는 풍경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베른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현지 공무원에게 한국의 어디를 아느냐고 물었다. 한국은 알지만 다른 곳은 모른단다. 아름다운 제주 바다, 혹은 DMZ에 대해 재차 물어도 미안하다는 표정만 지을 뿐 모른다는 대답만 되풀이한다. 되레 왜 그렇게 아름다운 곳을 우리가 알도록 홍보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그에게 ‘우리나라엔 우리 것을 앞세우는 사람도 많지만,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하면, 그는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설악산 설경이 융프라우보다 ‘낫다’는 게 아니다. 다르다는 거다. ‘기럭지’로 견주자면 내 나라 어떤 산도 융프라우에 필적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규모가 작다거나 높이가 낮다 해서 풍경의 깊이가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것에 애정도 가져야겠다. 애정과 집착은 종종 헷갈리곤 한다.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나라의 풍경을 앞세울라치면 우물 안 개구리라거나, 국수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명제, 하도 자주 들어 빛바랜 수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변의 진리다. 올해 외래관광객 1000만명 달성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사상 최초의 900만명 돌파는 확실시된다. 1000만명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거나, 그 문턱에서 멈출 것이란 게 관광 당국의 예상이다. 숫자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관광 강국의 첫걸음은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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