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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연방 하원의원 ‘당선 유력’ 영 김, 결국 석패

    미국 연방 하원의원 ‘당선 유력’ 영 김, 결국 석패

    연방 하원의원 당선이 유력했던 영 김(김영옥·56) 미국 공화당 후보가 개표 막판에서 역전돼 낙선했다. 앞서 뉴저지에서 당선한 민주당 앤디 김(36)과 함께 한국계 최초로 하원 동반 입성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당선자는 민주당 길 시스네로스 후보로 확정됐다. 캘리포니아 39선거구에 출마한 영 김은 7일 오전 8시 개표율이 97% 진행된 시점까지만 해도 득표율 51.4%로, 민주당 길 시스네로스 후보(48.6%)를 2.8% 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우편투표까지 합산하면서 격차가 좁혀졌고 결국 석패했다. 영 김 후보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3세 때 괌으로 건너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을 졸업하고 금융기관에서 일하다 의류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친한파’인 공화당 에드 로이스 의원의 보좌관으로 21년간 일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나당동맹에서 한미동맹까지…‘빈틈없는 공조’의 그늘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나당동맹에서 한미동맹까지…‘빈틈없는 공조’의 그늘

    2015년 일본은 졸지에 ‘빨판상어’라는 듣기 거북한 별명을 얻었다. ‘미군이 시키면 무엇이든 하는 빨판상어’다. 국민감정이 안 좋은 한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다. 자국의 학자들이 붙였다.2015년 8월 19일 야마모토 다로 의원은 참의원 전체회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에게 물었다. “미군이 요구하면 헌법을 짓밟고라도, 국민의 생활을 파괴해서라도, 온 힘을 다해 따르는데…이런 나라를 독립국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아베 정권이 원전 재가동,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밀보호법, 집단자위권에 이어 안보법제까지 강행하려는 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구상 제3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2012년)를 베낀 것 아니냐며 한 질문이었다. 아미티지 보고서에는 ‘일본이 2류 국가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일본이 자신에게 강제하는 (군사력 증강, 역내 개입 등의) 제약을 풀고,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전략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일본의 TPP 참여 등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 의석에서는 이런 야유가 쏟아졌다. “그런 것쯤은 국회의원이라면 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입 밖에 내지 않으니 국회의원 노릇도 정치인 시늉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촌뜨기처럼 그런 얘기는 왜 하는가.” 여기서 ‘그것’이란 ‘미국의 속국’을 뜻했다. 일본은 한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동맹을 미국과 맺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주한미군에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작전권은 총리에게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학자나 정치인들은 미국에 대한 속국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미국과 지구상에서 가장 예속적인 동맹을 맺고도 허구한 날 ‘더 강력한 동맹’을 촉구하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사뭇 다르다.다로의 논쟁을 계기로 정치학자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는 대담 형식의 ‘속국 민주주의론’을 출간했다. 우치다는 이렇게 말했다. “속국의 입장을 수용하고, 맹세한 자만이 이 나라의 지배층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지난 70년간 일본에 자리잡은 지배구조다.” 시라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일본의 천황은 미국”이라며 “존황양이가 아닌 존미양이가 일본의 깃발이 되었다”고 말했다. 우치다의 지적처럼 많은 한국의 엘리트 집단은 “미국 정부의 환심을 얼마나 사느냐가 정치적 능력으로 인정받는다”(박태균 서울대 국제 관계학부 교수)고 굳게 믿는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만사 제쳐 놓고 미국으로 달려가 미국 대통령을 알현하고, 낙선한 자도 미국에서 소일하다 돌아온다. 김무성 의원이 미국 정치의 심장부인 워싱턴DC에서 ‘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느냐’는 투로 최근 한국 대사를 몰아붙인 것도 그런 ‘환심사기’로 읽혔다. 족벌언론들은 틈만 나면 ‘미국과 한 몸이 되라’(일체화, 一體化)고 외쳤다. 5월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이들은 환호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석을 계속 유지하면서 비핵화와 평화를 달성하려면 미국과 강력한 한 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중앙일보, 5월 23일자) “지금은 한·미가 한 몸이 돼서 북을 설득하고 때로 압박해 가면서 이른 시일 내 핵 폐기를 결심하도록 해야 할 때이다.”(조선일보, 5월 27일자) 이런 일체화론(‘한몸론’)은 ‘빈틈없는 공조’ 등 때마다 여러 가지 수사로 나타나지만, 최소한 미국의 뜻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뜻에는 차이가 없다. ‘일체화론’은 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들어오면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었다. 그 뿌리는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패망시킨 나당동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은 이 동맹을 빌미로 신라를 사실상 속국으로 만들었다. 고려는 종주국인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새로 굴기하는 명을 치려다가 왕조 자체가 몰락했다. 명과 군신관계를 맺었던 조선은 인조 때 중원의 새로운 패자 후금(청)과 맞서다가 국민과 국토를 어육으로 만들었다. 조선 말 조미수호협상 때는 청의 이홍장이 교섭을 대신했으며, 이홍장은 ‘조선은 청의 속방이다’를 제1조로 한 초안을 미국에 제시했다. ‘일체화’라는 표현이 실제로 등장한 것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부터였다. 이용구, 송병준 등 ‘일진회’가 제기한 ‘일한일체화론’이 그것이다. 절찬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제작진은 지난 7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냈다. 구한말 실제로 존재했던 일본 흑룡회를 등장시켜 친일 미화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흑룡회는 19세기 말부터 일찌감치 조선병합론을 주장했던 일본의 극우단체였다. 제작진이 이 단체의 한성지부장이란 인물을 영웅적인 무사로 등장시켰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본 군부와 정계에 넓은 인맥을 가진 흑룡회는 19세기 말 일본인보다 더 일본스러운 조선인들을 키워 조선 병탄에 앞세웠다. 이용구(진보회)와 송병준(일진회)이 1904년 12월 2일 ‘일진회’로 통합할 때 후견 집단이 바로 흑룡회였다. 통합 직전 두 사람이 내건 기치가 ‘일한일체화와 문명화’였고, 서약의 표시로 회원들에게 단발을 촉구했다. 일진회는 러일전쟁에서 ‘일본과 한 몸’임을 과시하기 위해 일본군의 병참 지원에 앞장섰다. 북진수송대를 조직해 1905년 6월부터 10월까지 무려 11만 4500명(연인원)의 회원을 동원했으며, 비용 대부분도 일진회가 부담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일진회는 11월 5일 이런 성명을 냈다. “(외교의 권한은) 차라리 우방 정부(일본)에 위임하여 그 힘에 의지하여 국권을 보유하는 것도 폐하 대권의 선양이 아닐까.…그 지도 보호 아래 국가의 독립과 안녕, 행복을 영원무궁하게 유지하고자 이에 감히 선언한다.” 흑룡회의 실력자 우치다 료헤이는 당시 일진회 고문이었다. 성명 발표 후 12일 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겼다(을사늑약). 1909년 7월 6일 일본 정부는 병탄 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이용구는 일본과 정치체제의 통합을 추진하자며 ‘정합방론’을 제시하고, 12월 4일 일진회 이름으로 ‘일한합방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직과 백성을 영원히 보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일본과 한국이 합방하는 데 달려 있다.’ 일본은 이듬해 8월 대한국을 병탄했다. 일체화론의 귀결이었다. 지난 11월 2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부지가 공개됐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에 접수당한 뒤부터 한국인에게 금단의 땅이었으니 113년 만이었다. 그곳엔 주한일본군 사령부와 일본군 20사단이 주둔했고, 조선총독의 관저가 있었다. 해방 후엔 미군에 접수돼 총독 관저는 미군 병원으로, 일본군작전센터는 미군 벙커로, 일본군 장교 숙소는 주한 미합동군사업무단 건물로 쓰였다. 일본군 병기지창엔 미군 공병대와 시설대가 들어섰다. 1905년 일본군이 접수하기 이전에도 이곳은 ‘종주국’의 기지로 쓰였다. 고려 때는 몽골군의 병참기지가,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의 군대, 그리고 1895년엔 청일전쟁의 승자인 일본군이 주둔했다. 용산 기지 터는 더 강한 동맹을 앞세운 ‘일체화론자’들의 성지였으며 한국인에겐 ‘속국’의 상징이었다. 한·미동맹에 침을 뱉으려는 게 아니다. 한·미동맹은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켰고, 이후에도 북한의 남침 의도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문제는 이 나라를 번방도 속방도 아니요, 아예 속국으로 하자는 일체화론자들이다. 전쟁 중에도 동맹의 그늘에 숨어 권력 쟁취에 여념이 없었고, 평시엔 미군과 미 정부에 충성하는 것으로 권세와 영달을 누리려는 자들 말이다. 그들은 요즘 북한을 ‘핵을 가진 적’에서 ‘핵과 침략 의도를 포기한 이웃’으로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을 필사적으로 방해한다. 일부 국민을 선동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과 한국이 한 몸이 돼야 한다고 외치도록 선동한다. 권력의 화수분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구한말 이용구와 송병준이 일진회 회원들을 앞세워 일장기를 흔들며 일한일체화를 부르짖었던 것과 판박이가 아니고 무엇일까. 논설고문 kbc@seoul.co.kr
  • ‘총기 옹호’ 美하원 24명 낙선… 규제 방아쇠될까

    묻지마 총격으로 아들 잃은 맥배스 의원 등 규제 강화 공약 17명 당선… 입법 힘 실릴듯 지난 7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직 해병대원의 무차별 총격으로 13명이 숨지는 등 총기난사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는 가운데 11·6 중간선거에서 총기 소유권리를 옹호해온 연방 하원의원이 24명이나 낙선한 것으로 집계됐다. AP통신 등 미 언론들은 10일(현지시간) 총기 옹호자들의 의회 퇴출 이후 새로 선출된 의원 중 최소 17명은 엄격한 총기 규제를 요구해 관련 입법 추진에 힘이 실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 NBC방송은 이들 17명의 의원들은 미국총기협회(NRA)의 후원을 받던 현역 공화당 소속 의원들을 물리쳤다고 보도했다. 대표적 인물이 2012년 ‘묻지마 총격’으로 17살 아들을 잃은 뒤 총기 규제를 외치는 ‘투사’가 된 루시 맥배스(58) 당선인이다. 비행기 승무원이던 맥배스는 이를 계기로 총기류 안전 및 규제를 옹호하는 시민단체의 대변인이 됐다. 흑인인 그는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40년간 독식해온 ‘텃밭’인 조지아 6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 50.5%의 득표율로 현역인 캐런 핸들 하원의원을 꺾었다. 연방 하원에서의 새로운 인물들 등장으로 총기 규제 입법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더구나 지난 7일 밤 로스앤젤레스(LA) 교외에서 일어난 총기난사로 아들 텔레마커스를 잃은 어머니 수전 오패노스가 절규하는 영상이 트위터에 게재된 지 이틀 만에 535만회를 넘는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가 지역구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도 이날 고강도 규제를 예고했다. 총기 구매자에 대한 범죄 경력 등 신원 조회 강화, 공격용 무기 금지를 포함한 규제 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美중간선거 승자는 페북?

    블룸버그 前시장, 민주 지원하는 TV광고 연설 “페이스북에 광고를 하거나 선거 패배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정치적 현실이다.” 지난 4월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를 매섭게 몰아세웠던 정치인들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페이스북 광고에 약 3억 달러(약 3371억원)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6일 중간선거에서 수성(守城)과 탈환을 노리는 상·하원 의원들이 당파를 떠나 페이스북 광고를 사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초당적 기구인 정치대응센터에 따르면 전체 디지털 광고에서 정치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현재까지 22%(19억 달러)를 기록하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4년 중간선거 때는 1%에 불과했었다. 저커버그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던 하원 의원 55명 가운데 29명(52.7%)은 페이스북 픽셀을 보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픽셀은 페이스북이 사용자들의 웹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코드 중 하나로, ‘타깃 광고’를 위한 정보수집 용도로 활용된다. 특히 청문회에서 “당신은 페이스북이 사용자 정보를 어디까지 수집하는지조차 모른다”며 저커버그를 강도 높게 압박한 데비 딩겔 민주당 하원의원조차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유권자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또 다른 테크 기업의 픽셀을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WSJ는 “페이스북에 광고하지 않으면 낙선한다는 위기의식이 워싱턴 정가를 압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당의 잠재적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이날 500만 달러(약 55억원)의 자비를 들여 민주당을 지원하는 전국 TV광고 연설에 나섰다. 블룸버그는 2분 동안의 연설에서 자신이 중도주의 노선임을 강조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겠다고 공언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한국 영화의 큰 별’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 ‘장례는 영화인장’

    ‘한국 영화의 큰 별’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 ‘장례는 영화인장’

    ‘한국 영화의 큰 별’ 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성일)이 폐암으로 별세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4일 한국영화배우협회 측에 따르면 명예 이사장인 신성일은 이날 오전 2시 25분께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앞서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를 받아오며 회복에 힘써왔다. 그러다 전날인 지난 3일부터 병세가 위독해져 그간 치료를 받아오던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전남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곁은 아들 강석현 등 가족들이 지켰다.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거행된다.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 영화계 관계자들이 유족과 영화인장의 구체적 절차를 놓고 논의 중이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6일로 예정돼 있다. 장지는 고인이 직접 건축해 살던 가옥이 위치한 경북 영천 성일각이다. 신성일은 1960~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국민적 스타 배우였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성일은 생후 사흘 만에 부모의 이사로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 1966년 건국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 신상옥 감독, 김승호 주연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1964년 ‘맨발의 청춘’으로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에 출연하며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남자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데뷔 이후 500편이 넘는 다작을 남겼다. 1963년 한 해에만 ‘청춘교실’ 등 21편에 출연했으며, 1964년에는 ‘맨발의 청춘’ 등 32편, 1965년 ‘흑맥’ 등 34편, 1966년 ‘초우’ 등 46편 영화에 출연했다. ‘안개’ 등 51편 영화에 출연한 1967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해였으니, 이해 제작된 한국 영화는 총 185편이었다. 명성만큼이나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부일영화상 공로상 등 수없이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영화 관련 단체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1994년에는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을 지냈다. 2002년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았다. 1993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1997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2000년 경희대 대학원 사회학과를 수료했다.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를 맡아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등의 저서를 남겼다. 고인은 영화계 성공을 발판으로 정계에도 진출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으며,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그러나 삼수 끝에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공식 활동은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이었다. 그는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이장호 감독, 배우 손숙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전찬일 평론가는 “신성일은 투병 와중에도 그가 아니면 소화해내기 힘들 파격적 의상과 환한 미소로 부산영화제 개막식을 빛냈다”면서 “부산영화제 개막식 주인공을 단 한 명 꼽으라면 단연 신성일이었다”고 평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배우 신성일씨 폐암으로 타계…한국 영화사 최고 스타

    배우 신성일씨 폐암으로 타계…한국 영화사 최고 스타

    ‘은막의 스타’ 신성일씨가 4일 오전 2시 25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81세. 신성일 측 관계자는 이날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이사장이신 영화배우 신성일께서 4일 오전 2시 반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 전날 오후 한때 고인이 별세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단지 위중한 상태로 전해져 오보인 것으로 정정됐다가 결국 몇 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60~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국민적 스타 배우였다. 본명은 강신영이지만 고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신성일’을 주로 썼고, 이후 본명을 표기해야 하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예명과 본명을 모두 살린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성일씨는 생후 사흘 만에 부모의 이사로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 1966년 건국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 신상옥 감독, 김승호 주연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1964년 ‘맨발의 청춘’으로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에 출연하며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남자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다작이 성행했던 시대적 특성을 감안해도 신성일씨는 출연 작품 수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데뷔 이후 500편이 넘는 다작을 남겼다. 1963년 한 해에만 ‘청춘교실’ 등 21편에 출연했으며, 1964년에는 ‘맨발의 청춘’ 등 32편, 1965년 ‘흑맥’ 등 34편, 1966년 ‘초우’ 등 46편 영화에 출연했다. ‘안개’ 등 51편 영화에 출연한 1967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해였으니, 이해 제작된 한국 영화는 총 185편이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기록적 다작 속에서 생명력 있는 행군을 펼친 것은 한국 영화사에서 그 예를 찾기 불가하다”며 “기록적 출연 편수야말로 그 스타성 증거”라고 평했다. 명성만큼이나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부일영화상 공로상 등 수없이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영화 관련 단체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1994년에는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을 지냈다. 2002년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았다. ]1993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1997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2000년 경희대 대학원 사회학과를 수료했다.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를 맡아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등의 저서를 남겼다. 고인은 영화계 성공을 발판으로 정계에도 진출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으며,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그러나 삼수 끝에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이 그의 조카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공식 활동은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이었다. 그는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이장호 감독, 배우 손숙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전찬일 평론가는 “신성일은 투병 와중에도 그가 아니면 소화해내기 힘들 파격적 의상과 환한 미소로 부산영화제 개막식을 빛냈다”면서 “부산영화제 개막식 주인공을 단 한 명 꼽으라면 단연 신성일이었다”고 평했다. 영화계에서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화인장을 거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영화인 단체 대표들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영화인단체총연합회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부인 엄앵란 씨와 장남 석현·장녀 경아·차녀 수화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4호실에 차릴 예정이었으나 23호실로 옮겨졌다. ☎ 02-3010-2000(대표번호)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전남선관위, 기초의원 선거비용 불법 지출행위자 다수 고발

    전남도선거관리위원회는 6·13 지방선거에서 선거비용제한액 초과 지출 등 다수의 선거비용 불법 행위자들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31일 선관위에 따르면 완도군의회 의원선거에서 후보자 A씨와 회계책임자 B씨는 선거비용제한액 초과를 회피할 목적으로 증빙서류 3건 420여만원을 허위기재했다. 이들은 선관위에 신고 된 예금계좌를 통하지 않고 현금으로 220여만원을 회계처리 했으며, 선거비용제한액 3800만원보다 304만원을 초과 지출했다. 구례군의회 의원선거와 관련해 후보자 C씨와 선거사무장 D씨는 선거사무원 4명에게 법정 수당 등 245만원을 초과 지급했다. 또 선거사무원으로 신고 되지 않은 자원봉사자 3명에게 선거운동 대가로 112만원을 제공하는 등 총 357만원의 금품을 제공했다. 강진군의회 의원선거에서 후보자 E씨는 거리 현수막 제작비용 등 40만원을 실명이 확인되지 않는 현금으로 지출하고, 선거벽보·공보 인쇄비 등 8건 180여만원에 대해 고의적으로 적법한 영수증 등을 구비·제출하지 않은 혐의다. 적발된 후보 중 A씨는 당선됐고, C·E씨는 낙선했다. 전남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와 관련한 대가제공과 매수행위·정치자금 위반행위는 철저하게 조사해 엄중 조치할 방침이다”며 “선거법 뿐만 아니라 선거비용 등 정치자금 관련 위반행위도 적극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노익장의 지미 카터, 공정선거 앞장

    노익장의 지미 카터, 공정선거 앞장

    지미 카터(94) 전 미국 대통령이 고향인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공화당 후보인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사임을 요구했다. 29일 CNN 등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자로 켐프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당신이 후보로 나온 상황에서 선거 과정을 감독한다면 의심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과거 인종차별 논란에서부터 시작해 연방법원까지 문제를 제기한 조지아주의 투표기기 문제까지 불거져 유권자들이 공정한 선거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의 서한은 켐프 장관이 지사 후보로 나서고도 선거관리를 맡는 주무장관직을 유지하는 데 대한 비판이다. 민주당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후보도 켐프 후보에게 주 장관직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또 켐프 후보가 과거 소수인종 투표권과 관련해 차별적인 발언을 한 이력도 들춰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당신(켐프)은 한 발 뒤로 물러서고, 대신 중립적인 감독기구에 선거관리를 맡겨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미 언론은 카터 전 대통령이 고령에도 중간선거의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 ‘선거판에 직접 뛰어들었다’라고 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이런 움직임은 조지아주 플레인스 출신인 그가 1962년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경험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배를 마셨던 카터는 당시 상원의원 선거에 부정이 개입된 사실을 입증해 추후에 당선됐다. 그는 1966년 주지사 선거에서도 처음에는 실패했다가 4년 뒤 지사로 선출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사랑의 집짓기’ 해비타트 운동 등에 참여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의원에 건넨 30만~400만원 봉투 35개…한결같이 ‘한유총’ 서명

    의원에 건넨 30만~400만원 봉투 35개…한결같이 ‘한유총’ 서명

    한유총 이사장 작성수정한 법률안교육위 3선 위원장 발의…유은혜 등 의원 34명 서명한유총, 국회 논의과정서 돈 전달신 前 의원 실형…이사장은 선거 출마 정치인과 유치원. 언뜻 별 관련 없는 사이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부 설립자와 원장이 사립유치원을 돈벌이 수단 정도로 여기는 현실에서 정치인이 유치원과 유착해 표 또는 돈을 얻는 일은 적지 않다. 사립유치원 단체는 이념을 따져 지갑을 열지 않는다. 자신의 이권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 보수·진보, 여야 가릴 것 없이 접근한다. 서울신문은 23일 정치인과 유치원 단체의 대표적 유착 사건인 ‘신학용(당시 민주당) 전 의원 입법 로비’ 판결문을 분석해 유치원의 치밀한 로비 실상을 재구성했다. 2013년 9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던 신학용(당시 3선) 의원이 자서전 격인 ‘신학용: 상식의 정치’를 내놓은 것이다. 흔한 행사 같던 이 기념회에서 35장의 수상쩍은 찬조금 봉투가 주최 측에 전달됐다. 30만~400만원씩 모두 3060만원이 나눠 담긴 봉투에는 각기 다른 찬조자 이름이 쓰여 있었지만 사실상 한 주머니에서 나온 돈임을 알려주는 힌트도 있었다. 이름 옆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라는 단체명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사립유치원에 유리한 법을 통과시켜 달라는 ‘입법 로비’였다. 한유총의 집요한 공작은 이미 1년 전 시작됐다. 석씨는 2012년 10월쯤 직접 만든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신 의원에게 보냈다. 사립유치원 설립자의 상속·양도를 쉽게 하거나 사립유치원 실정에 맞는 재무·회계 규칙을 만드는 내용이었다.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의 숙원이기도 했다. 신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처와 교육과학기술부에 “개정안을 검토해 달라”고 의뢰했지만, 두 부처 모두 부정적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신 의원은 석씨가 조금 수정해 가져온 개정안을 2013년 4월 대표발의한다. 당시 법안 발의에는 여야 의원 34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유은혜(당시 민주당 의원)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황우여(당시 새누리당 의원)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도 포함됐다. 법안이 국회 논의 테이블에 오르자 ‘쩐(錢)의 전쟁’이 시작됐다. 석씨는 노골적이었다. 2013년 6~7월쯤 법안 통과를 부탁하는 취지로 신 의원에게 1000만원을 건네려다가 거절당했다. 신 의원은 “도와줄 때가 있을 것”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석씨의 로비 시도는 한 번의 거절에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신 의원의 보좌관을 통해 “9월 출판기념회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연합회 지역 지회장, 감사 등에게 약 3000만원의 찬조금 조성을 지시했다. 개인적으로도 수백 만원을 준비했다. 한유총 측은 출판기념회 당일 의원회관에서 아예 정기이사회를 개최했고 서울, 경기는 물론 부산, 대구 등에서 올라온 임원들이 한꺼번에 기념회장에 가 신 의원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신 의원은 앞서 보좌관으로부터 “한유총이 3000만원 이상 후원하겠다고 한다”는 보고를 들었지만, “어, 그래? 근데 그거 문제 되지 않겠지?”라고 되묻고는 그대로 받았다. 성공한 로비로 보였던 한유총의 작업은 2014년 검찰 수사로 꼬리가 밟혔다. 해당 법안도 자진 철회됐다. 신 의원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석씨는 뇌물공여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화성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미국 중간선거 개입 혐의로 러시아 여성 엘레나 쿠시아노바 첫 기소

    러시아 여성이 다음 달 열리는 미국 중간선거에 개입하려 한 혐의로 미 법무부에 기소됐다. 로버트 뮬러 특검이 러시아의 지난 2016년 미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중간선거 개입 정황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무부는 19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적 엘레나 쿠시아노바(44)를 기소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쿠시아노바는 미국을 겨냥한 러시아의 정보전 ‘프로젝트 락타’의 핵심 인사다. 법무부는 쿠시아노바가 각 후보자와 미 정치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이민·총기·인종·여성 등 다양한 쟁점과 관련, 여론 분열을 조장하는 내용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뜨린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에는 지난 2016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3500만 달러(약 400억원)가 투입됐다. 러시아의 신흥재벌 예브게니 프리고친이 자금줄 역할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프리고친은 ‘푸틴의 요리사’라고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인사다.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는 뮬러 특검은 지난 2월 프로고친을 비롯해 러시아인 13명을 기소했다. 쿠시아노바는 프리고친의 ‘회계 책임자’ 역할을 했다.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해 미 국가정보국(DNI), 연방수사국(FBI), 국토안보부까지 관계 당국 공동성명을 통해 기소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성명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방해하려는 적국들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사회·정치적 분열을 조장하고 정치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높이고 특정 후보의 당선 또는 낙선을 위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안상수 전 창원시장, 창원에서 변호사 개업

    안상수 전 창원시장, 창원에서 변호사 개업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지낸 4선 국회의원 출신 안상수(72) 전 경남 창원시장이 창원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경남지방변호사회는 21일 안 전 시장이 변호사 개업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이던 그는 최근 소속을 경남지방변호사회로 변경하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어시장 인근 해안도로가 건물에 변호사 사무실을 마련했다. 안 전 시장은 최근 지인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고향에 정착하겠다는 약속대로 변호사를 하며 지역발전을 돕겠다”고 밝혔다. 창원시가 고향인 안 전 시장은 마산고·서울대를 거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7기)을 수료하고 1978년 전주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사법연수원 동기다. 1987년 변호사 개업 뒤 1996년 15대 총선에 당선될 때 까지 변호사를 했다. 안 전 시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창원시장 후보 공천을 신청했으나 당에서 조진래 전 경남정무부지사를 전략공천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한국당 ‘집단지도체제’ 회귀론 갑론을박

    오세훈 “총선 이기려면 단일성지도체제” 당 내부 64% “복원 지지”…찬성 목소리 野 “쇄신없이 모든걸 덮고 가겠다는 의도” 자유한국당이 ‘보수 단일대오’를 천명한 가운데 내부에서 논의 중인 집단지도체제 복원이 범보수 통합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당 지도부는 통합 전당대회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집단지도체제 카드를 내걸었지만 일각에선 사공이 많은 지도부가 꾸려지면 총선 전 내부 갈등이 재점화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국당의 주요 영입 대상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4일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용태 사무총장 등 한국당 사람과 만날 때마다 하는 얘기가 집단지도체제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 전 시장은 “총선 직전이 되면 공천 문제 등으로 모두가 민감해지는데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이 지도부에 함께 앉아 있으면 당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며 “지금 당장은 집단지도체제 구상이 여러 사람을 끌어모으는 유인책이 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총선 승리를 목표로 한다면 단일성지도체제를 유지해 특정인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야권 관계자는 “홍준표 지도부에 대한 반감이 커서 그렇지 단일성지도체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국민은 한국당이 새단장 하길 원하고 있는데 오히려 집단지도체제로 회귀한다면 그건 쇄신 없이 모든 걸 덮고 가겠다는 의도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내부에선 집단지도체제 전환에 대한 찬성 목소리가 더 높다. 한국당 정당개혁위원회가 소속 국회의원, 원외 당협위원장, 6·13 지방선거 당선자와 낙선자 등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지난 8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집단지도체제 복원을 지지하는 의견은 64.1%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김 사무총장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일각의 우려나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며 “하지만 보수대통합이라는 더 큰 대의를 생각했을 때 기본적으로 집단지도체제 쪽으로 가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내년 초 전당대회가 보수통합을 위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고 이 때를 넘기면 기회는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문재인 비방’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 2심서 벌금 1000만원으로 늘어

    ‘문재인 비방’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 2심서 벌금 1000만원으로 늘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연희(70) 전 서울시 강남구청장의 벌금 액수가 항소심에서 더 늘어났다. 더 많은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대웅)는 10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연희 전 구청장에게 검찰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1심 벌금 800만원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신연희 전 구청장은 2016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가지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당시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카카오톡을 통해 200여 차례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허위 글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문재인 후보가 과거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친정부 언론에만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고 대통령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적시한 부분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문재인 후보를 가리켜 ‘양산의 빨갱이’라거나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게 아닌 주관적 평가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자’라는 메시지를 전송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이긴 하지만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문재인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의 19대 대선 경선 예비후보자로 등록하기 전에 신연희 전 구청장이 보낸 메시지까지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 이전부터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국이 형성되고 있었고, 문재인 후보는 당시 제1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선거 후보로 인식되고 있었다”면서 “향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메시지를 전송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1심에서 “1대1 채팅으로만 전송한 메시지는 폐쇄적이고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진 정보 공유나 의사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던 부분도 2심에서는 뒤집어졌다. 재판부는 “1대1 채팅 방식으로만 전송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다수에게 전송한 이상 그 자체로 공연성이 인정된다. 전파 가능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피고인은 메시지 전송 당시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 위험을 용인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양형 이유에 대해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해 여론을 왜곡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범죄로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신연희 전 구청장은 직원 격려금 등을 빼돌려 만든 비자금을 사적으로 쓰고, 친인척을 관계기관에 부당하게 취업시킨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 중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혁명의용군 조작 사건, 해방 후 친일파 군부 보호의 신호탄이었다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혁명의용군 조작 사건, 해방 후 친일파 군부 보호의 신호탄이었다

    지난 5월 4일 ‘일베’ 게시판에는 이런 제목의 ‘뉴스’가 떴다. “탁현민 뒤를 졸졸 따라다닌 육사 교장 김완태(중장)/백선엽 장군 기념관 없애.” 출처는 박근혜 인터뷰로 유명한 ‘정규재TV’로 돼 있었다.“육군사관학교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념 비석을 빼서 야산에 방치” “박근혜 대통령 기념 물건 모두 폐기” “백선엽 장군 기념관 없애고” “육사의 기원은 조선 독립군이라 역사 바꾸며” “탁현민(청와대 행정관) 방문 때 3성 장군(김완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뒤를 졸졸”. 육사총동창회(회장 김병관)는 감사단을 편성해 육사로 ‘파견’했다. 이른바 감사단은 육사 안 교회에 진을 치고 김완태 교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을 오라 가라 하며 따졌다. 당시 무자격 감사단의 강짜가 얼마나 심했던지 교회가 이들에게 ‘퇴거’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확인 결과 소문은 모두 가짜였다. 그러나 김완태 교장은 지난 5월 말 결국 경질됐다. 수도군단장 시절, 훈련 중 물의를 빚은 예하 부대의 노모 중령에 대해 경징계를 찾아내 집요하게 문제 삼은 결과였다. 이들의 회를 뒤집은 것은 육사의 기원 문제. 김 교장은 육사의 정통성을 신흥무관학교나 임시정부 육군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 속에서 새로이 세우려 했다.육사는 지금까지 그 뿌리를 미군정(美軍政)이 설립한 남조선경비사관학교에 두었다. 이 학교의 전신은 미군정 군사영어학교. 육사가 이렇다 보니 국군 역시 연원을 미군정이 설립한 남조선국방경비대에 두었다. 1946년 1월 15일에 출범한 경비대는 군사영어학교 출신 장교 110명으로 출범했다. 이 가운데 87명은 일본군 출신, 21명은 일본의 괴뢰국 만주군 출신이었다. 1, 2대 사령관은 일본군과 만주군 장교였던 이형근과 원용덕이었다. 이형근의 장인 이응준(일본군 육군 대좌 출신)은 미군정 군사 고문이었다. 미군정은 1946년 말 통위부장(미군정기 국방장관)과 경비대사령관을 유동렬(광복군 총참모장)과 송호성(광복군 훈련처장) 등 독립군 출신으로 교체했다. 독립군을 우대한 것이 아니라 여론 때문이었다. ‘이게 일본군이지 대한민국 군대인가!’ 제1연대에선 “이 따위 경비대 해산시켜라. 빨갱이 노랭이 같은 놈 몰아내라”며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놀란 이응준은 미군정에 수뇌부를 광복군 출신으로 임명하자고 제안했다. 유동열·송호성 체제는 서둘러 독립군 출신을 특임 장교 형태로 충원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경비대의 뼈대는 이미 일본·만주군 출신 장교들이었다. 정부 수립 후엔 이런 노력마저 제동이 걸렸다. 초대 국방장관이 광복군 제1지대장 이범석이었지만 그는 김구와 각을 세우고 있었다. 광복군 출신은 대부분 김구 계열이었다. 그는 초대 총참모장에 이응준, 육군사령관에 이형근을 앉혔다. 이들에게 김구 계열의 광복군 출신들은 눈엣가시였다. 광복군 출신들은 친일파 청산을 물고 늘어졌다. 게다가 제헌국회가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법을 제정, 공포했으며, 10월 22일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반민특위)를 설치했다. 총참모장, 육군사령관 등 핵심 간부는 형사처벌을 당하거나 경질돼야 했다. 조병옥, 장택상 등이 장악하고 있던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특별법 공포 후 6일 뒤인 9월 28일 독립군 출신의 14연대장 오동기 소령이 체포됐다. 사흘 뒤 최능진 전 경무부 수사국장 등이 체포됐다. 10월 5일자 도하 각 신문엔 이런 경찰 발표가 실렸다. “1일 오후 3시경 최능진, 서세충, 김진섭 등이 수도청 형사대에 체포됐다. 지난해 11월경부터 국군 소령 오동기 등과 공모하여 국방군속에 혁명의용군을 조직하고 현정부를 붕괴시키려 한 바, 군자금으로 15만원을 제공한 혐의라 한다.” 해방 후 첫 조작사건인 ‘혁명의용군 사건’이다. 친일 군부와 경찰이 합작한 ‘숙군’의 신호탄이었다. 그 칼날은 정치권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오동기는 항일전선에 투신했던 독립군 지휘관이었다. 그는 경비대 감찰총감직에 있으면서 군내 일본군 출신 장교들의 부패를 단호하게 처리하려 했다. 상층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다가 결국 야전으로 밀려났다. 좌익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14연대장 시절, 김지회 중위를 요시찰 인물로 찍어 작전과장에서 포병중대장으로 전보시켰다.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능진은 일제 치하에서 2년간 복역한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소련군의 압박을 피해 월남했다. 미군정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경찰 내 친일파 청소를 주장해 친일경찰의 대부 조병옥 경무부장, 장택상 수도청장과 마찰을 빚었다. 두 사람은 노덕술, 이익홍, 최연, 최운하, 김정빈, 김홍걸, 백원교, 박경후 등 일제의 조선인 악질 경찰관들을 요직에 앉힌 터였다. 최능진은 10·1 대구사건을 계기로 미군정 당국에 조병옥과 장택상의 처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5·10선거 때는 동대문 갑구에 입후보한 이승만을 낙선시키기 위해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려다 정권의 방해로 실패했다. 두 사람은 군과 경찰의 상징적 민족주의자였다. 그 둘을 좌익과 연계한 내란음모 사건의 주동자로 엮은 것이다. 10월 19일 14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21일 이범석 국무총리는 이 사건을 공산주의자가 극우 정객들과 결탁해 일으킨 반국가적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이튿날 김태선 수도청장은 ‘혁명의용군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모자 최능진, 오동기, 서세충, 김진섭 등이 남북 노동당과 결탁해 (그들이) 숭배하는 정객을 수령으로 공산정부를 수립하려는 것으로 …이번 여수 사건을 야기했다.” ‘극우 정객’이란 김구였다. 이후 군과 경찰 친일파들은 반민특위 무력화와 군내 민족주의 계열 제거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승만은 물론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 총리가 지원사격을 하고 있었으니, 거칠 게 없었다. 만주특설대 출신의 백선엽 국장의 지휘 아래 육군 정보국은 1949년 7월까지 전체 국군의 10%에 이르는 4700여명을 제거했다. 이 중에는 좌익 외에 광복군, 학병 출신 등 친일파를 혐오하는 중간계열이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송호성 사령관도 끼어 있었다. 처형된 장교 중 김종석, 오일균, 최남근 등은 일본군 장교 출신이지만, 중간계열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김종석, 오일균은 미 군사고문관 하우스만이 구명에 앞장설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다. 그러나 ‘진짜 남로당원’ 박정희가 일관되게 두 사람을 군내 좌익 책임자로 몰아 구할 수 없었다. 그때 박정희에게 ‘스네이크(독사) 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4연대장이었던 최남근은 반란군에 잡혀 고초를 겪다가 탈출했지만, 다시 진압작전에 나서라는 요구에 ‘동족에게 총을 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들은 형장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 군내 숙청이 정리되면서 군은 정치권을 정조준했다. 육군 헌병대는 1949년 5월 이른바 ‘국회프락치 사건’을 수사했다. 친일파 처단을 앞장서 주장해 온 소장파 10여명을 국제공산당 프락치로 몰아 처벌했다. 국회가 얼어붙자 경찰은 6월 6일 반민특위를 습격해 특경대를 무장해제했다. 이승만은 10일 반민특위 해체를 명했다. 13일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군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체의 파괴행동에 대해 용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군의 정치개입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3일 뒤 육군 정보국 소속 포병 소위 안두희는 김구를 암살했다. 이른바 ‘숙군’의 대단원이었다. 당시 수사본부장으로 헌병대 실세는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으로서 경찰 최고직위에 올랐던 전봉덕이었다. 의열단 출신에 중국군 상위였던 장흥이 사령관이었지만 실권이 없었다. 장흥은 김구 암살 다음날 경질됐다. 잔불 정리만 남았다. 이범석은 ‘숙군’에 앞장섰지만, 순망치한의 화를 자초했다. 광복군 계열이 정리되자 그의 사조직 대한민족청년단(족청)도 이승만의 압박으로 해체되면서 국방장관에서 밀려났다. 전쟁 발발 이후 내무장관으로 기용돼 ‘부산정치 파동’에서 크게 이용당한 뒤 결국 ‘팽’당했다. 이른바 ‘숙군’으로부터 70년 뒤, 군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려는 작업이 육사에서 시도됐다. 그러나 불과 7개월여 만에 지휘관은 정치적으로 ‘저격’당했다. 더러운 ‘숙군’의 칼날은 여전히 자주와 독립을 겨냥한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서울대 총장 도전’ 오세정 前의원을 보는 엇갈린 시선

    국회의원 배지를 던지고 제27대 서울대 총장에 도전한 오세정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교수직을 발판 삼아 정계에 입문한 ‘폴리페서’의 야심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는 지적과 함께 의원직을 내려놓고 도전장을 던진 것에서 진정성이 묻어난다는 의견이 상존한다. ●“국회의원 임기도 안 채워 책임감 우려” 서울대 재학생 일부는 오 전 의원의 총장 도전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7월 무산된 서울대 총장 선거 ‘학생 태스크포스(TF)’에 참여했던 한 재학생은 “의원 임기도 채우지 않은 후보가 총장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의견은 갈렸다. 서울대 인문계열의 한 교수는 “서울대 상황이 4년 전과 비교하면 매우 어려워졌는데 정치권에서 별 존재감이 없었던 오 전 의원이 당면 과제를 해결할 적임자인지, 역량이나 비전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오 전 의원은 2014년 제26대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최종 3인 후보 가운데 1순위였으나, 이사회에서 결과가 뒤집혀 탈락했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상아탑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공직선거의 결과를 저버리면서 임기 4년의 서울대 총장 자리에 도전하는 것은 잘못된 처신”이라고 지적했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오 전 의원은 기초과학연구원장을 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직을 11개월 만에 관뒀고 기초과학연구원장직도 서울대 총장에 출마하려고 얼마 못가 관뒀다”면서 “자리에 연연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장관·민정수석 등은 왜 문제 안 삼나” 그러나 의원직까지 내려놓은 오 전 의원을 ‘폴리페서’로 낙인찍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대 이공계열의 한 교수는 “대학 밖으로 나가는 교수가 문제라면 장관, 민정수석, 사회수석, 연구재단이사장 등도 모두 ‘폴리페서’라는 것”이라면서 “총장에서 낙선하면 비아냥거림을 당할 것이 뻔한데도 의원직을 사퇴하고 출마한 것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도 넘은 감투’ 제주 이장님은 소송 중

    김녕리·동복리 등 주민 간 갈등 확산 부정선거·해임 무효 등 진흙탕 싸움 제주에서 개발사업을 하려는 외지 사업자들은 도지사는 몰라도 마을 이장이나 회장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한다. 공동목장 등 마을 공동소유 부지에 투자하거나 부지를 구입, 개별 사업을 하려 해도 이장이 나서 딴지를 걸면 어렵다. 커진 영향력에 따라 제주 곳곳에선 서로 ‘내가 이장하겠다’며 소송전까지 벌어졌다. 17일 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와 동복리, 조천읍 함덕리 이장, 서귀포시 하효마을회장 선거와 관련해 현재 4건의 소송이 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올해 1월 치러진 구좌읍 동복리 이장선거에선 B씨가 당선돼 임명됐지만 낙선자 측이 위장전입으로 인한 가짜 주민들의 투표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무효확인 소송을 제기, 재판이 한창이다. 함덕리는 지난해 12월 열린 이장선거에서 C씨가 당선됐지만 낙선자 측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 선거관리위원회가 당선 무효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마을회가 선관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자 조천읍은 올해 2월 C씨를 이장으로 임명했다. 그새 선관위가 재선거를 열어 또 다른 후보자를 선출하면서 당선자가 2명이 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고 나중에 당선된 후보가 임명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김녕리의 경우 직전 A이장이 지난해 1월부터 내년 12월까지 3년의 임기를 시작했지만 올해 사퇴의사를 밝혔다며 구좌읍이 A이장 해임처분을 내린 후 8월 선거로 새 이장을 선출했다. 하지만 A씨는 해임절차상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 이장해임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귀포시 하효마을에서는 지난해 4월 치러진 마을회장 선거가 부당하다며 한 주민이 마을회를 상대로 법원에 회장 직무집행정지 및 대행자선임 가처분 신청을 냈다. 제주지역 이장은 마을운영 규약에 따라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선출하고 읍·면·동장이 임명한다. 이장은 회의수당 등을 지원받고 마을회 차원에서 활동비를 지원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개발 사업자는 “개발 바람 탓에 이장 입김이 세졌고 마을발전기금을 내놓는 것은 물론, 이장을 내 편으로 만들어 놔야만 제주에서 개발사업을 할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도 관계자는 “관광객 증가와 개발바람이 불면서 봉사 성격이 강했던 이장들이 외지인의 투자사업과 풍력발전사업, 해수욕장 운영 등 마을 수익사업 등에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서 이장 자리를 두고 주민 간에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솔직한 이야기로 새 세상 상상하게 하는 것이 내 역할”

    “솔직한 이야기로 새 세상 상상하게 하는 것이 내 역할”

    민족·여성 해방 화두로 40년 넘게 집필 “내 글이 팔레스타인 변화의 첫발 되길”“작가는 정치인이 될 수 없고 선거에 나가더라도 낙선할 겁니다. 저도 ‘정당에 들어와라’, ‘문화부 장관을 맡아라’는 등의 제안을 받았지만 타협할 생각도 없고 억압도 받기 싫어 거절했죠. 솔직한 마음의 이야기를 꺼내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니까요.” ‘아랍 문학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불리는 팔레스타인 작가 사하르 칼리파(77)가 전한 작가의 책무다. 진보, 보수를 가릴 것 없는 이슬람권의 공격에도 민족 해방과 여성 해방이란 두 화두와 40년 넘게 고투해 온 작가다운 대답이었다. 그가 ‘제2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을 찾았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은 서울 은평구가 분단 문학으로 화해와 치유를 희구했던 이호철 작가를 기리려 지난해 제정한 상이다. 문학적 실천으로 분쟁과 갈등, 충돌을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일깨운 세계적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인 만큼 상에 맞는 주인을 찾아간 셈이다. 1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칼리파는 “팔레스타인도 한국처럼 분단돼 있어 제 역사적 경험이 여러분의 경험과 비슷할 것”이라며 “이 상이 통일, 평화의 의미가 깃든 상이라 더욱 감사하고 상을 통해 양쪽이 가까워지길 바란다”는 소감을 전했다. 국내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칼리파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7개국에 작품이 번역, 출간된 작가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 뒤 어른들에게 강제로 떠밀려 했던 불행한 결혼 생활을 13년 만에 끝내고 서른둘에 대학에 들어가 작가로 등단했다. 1988년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여성문제연구소를 세워 여성 인권 운동과 소설 집필을 줄곧 병행하고 있다. 민족 해방과 여성 문제를 다룬 ‘가시 선인장’(1976)으로 중동의 문제 작가로 떠오른 그는 ‘팔레스타인의 버지니아 울프’라는 수식어도 거느리고 있다. “제가 좀더 젊었다면 아주 듣기 좋은 별명이었겠죠(웃음). 하지만 작가라면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울프는 사회적, 정치적 사안을 다루지 않은 작가라 저와는 전혀 다릅니다.” 발 딛고 있는 현실은 그가 쓰는 이유이자 동력이다. “팔레스타인은 지난 50년간 이스라엘 점령하에 있었어요. 수십만 명의 이민자와 난민이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고 가족과 친구가 강제로 이별해 사는 현실이 제겐 피부에 와 닿는 문제니까요. 몸으로 겪어 온 역사니 작가로서 이런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죠. 제 이야기가 변화의 첫발을 떼는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곧 52회 생일 웨아 대통령님, 나이지리아와 친선경기 79분 활약

    곧 52회 생일 웨아 대통령님, 나이지리아와 친선경기 79분 활약

    조지 웨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11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몬로비아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에 출전, 무려 79분을 뛰었다. 다음달 1일 52회 생일을 맞는다. 아프리카 선수로는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를 최초로 수상한 웨아 대통령은 전성기 시절 등에 달았던 14번을 유니폼에 달고 주장 완장을 찬 채 뛰었다. 이날은 그의 대표팀 등번호 14번을 영구 결번하는 것을 기념했다. 그가 교체돼 그라운드를 걸어 나오자 모든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라이베리아는 웨아 대통령의 투혼에도 1-2로 지고 말았다. 웨아는 프랑스 프로축구 모나코와 파리생제르망(PSG), 이탈리아 세리에A AC밀란은 물론, 짧게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에도 몸담았다. 2003년부터 정치인으로 전업해 몇 차례 낙선 끝에 지난 1월 이 나라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이루며 대통령에 취임했다. 나이지리아는 윌프레드 은디디(레스터 시티), 피터 에테보(스토크 시티)에다 후반 교체 투입된 켈레치 이헤아나초(레스터 시티)까지 상당히 이름 높은 선수들이 출전했다. 앙리 오녜쿠루(갈라타사라이)가 선제골을 넣었고 시메온 은완코(크로토네)가 에테보의 코너킥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해 나이지리아가 2-0으로 앞섰다. 라이베리아는 크파 셔먼이 페널티킥 골로 영패를 모면하는 데 그쳤다. 웨아는 현역 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공식 경기에서 득점을 맛보기도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싫존주의 세대] 일상이 된 위험 속 ‘나’를 지키기 위한 집단의 외침들

    [싫존주의 세대] 일상이 된 위험 속 ‘나’를 지키기 위한 집단의 외침들

    ‘싫음’과 ‘존재’가 합쳐진 ‘싫존주의’란 신조어에는 풍요 속에 성장했지만 그 풍요를 계속 지켜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20대의 삶이 녹아 있다. 매우 개인적인 감정인 ‘싫음’이 집단적으로 표출될 때 사회적인 현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싫존주의’와 관련 깊은 키워드를 짚어본다.#세월호#메르스 지금의 20대는 성장하며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겪었다. 개인이 생사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나 조직이 책임을 방기했거나, 오히려 위기를 가중시킨 사건들이다. 일상을 살던 누군가가 돌연 위협받는 대상이 된 사건이란 공통점도 있다. 반사적으로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건 나’란 인식이 퍼졌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가 당연히 행해야 했던 일들을 하지 않으면서 생긴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강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옥시_아웃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해시태그(#)를 통해 ‘갑질 기업 리스트’를 공유하는 이들에게 걸린 기업은 곤혹을 치른다. 어느 시대에나 있던 불매운동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전 ‘낙선운동’을 했던 시민단체가 법정에 섰던 곳이 대한민국이란 점을 떠올린다면, 싫음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문화가 얼마나 이색적인지 알 수 있다. 특히 이들은 SNS로 불매운동 성과를 직접 확인하고 공유하며 지속적으로 결집한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대의 구매력은 다른 세대보다 낮지만, SNS로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에 기업이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평가했다. #취존#소확행 ‘싫존’에 앞서 ‘취존’(취향존중)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었다. ‘개취’(개인취향)에 따라 자신이 선호하는 대상을 공개하며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SNS의 ‘10작품 놀이’ 등을 통해 발현된 ‘취존’엔 중국집에서 일행과 다른 메뉴를 선택할 때에도 용기를 내야 하던 기존의 한국 문화에 저항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심리를 표현하는 ‘소확행’이 좌절에 빠지기보다 해보면 분명히 행복해질 실리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라면 싫존주의자들은 싫은 것을 선언하고 공개적으로 떨쳐냄으로써 행복을 추구한다.#무해함최근 TV드라마에서 ‘응답하라 1988’의 박보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정해인, ‘사랑의 온도’의 양세종처럼 여성의 손목을 낚아채고, 벽을 손바닥으로 치던 기존 남배우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무해한 남배우’들의 선전이 이어지는 것 또한 남에게 해를 입고 싶지 않아 하는 싫존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몇 십년간 사람들의 목표가 됐던 성공과 같은 가치들을 배제시킨 대신,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당장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소소한 가치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싫존주의자들의 항변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거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확인된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文정부 임명 공공기관 임원 22%가 낙하산”

    340개 기관 365명 대선캠프 등 출신 기관장엔 전직 국회의원 다수 포함 금융기관 35명 중 21명은 ‘비전문가’ 문재인 정부에서 정권과 인연이 있는 인물이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명되는 ‘낙하산 인사’ 현상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부 출범 이후 매일 1명씩 낙하산 인사가 임명된 꼴이었다. 바른미래당 정책위원회가 4일 발표한 ‘공공기관 친문 백서’에 따르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 4개월간 340개 공공기관에서 임명된 1651명 중 365명(22%)이 대선캠프·시민단체 경력이 있거나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캠코더’ 인사였다. 또 365명 중 94명은 기관장으로 임명됐다. 기관장에는 전직 국회의원이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김성주 전 의원, 한국마사회 회장에 김낙순 전 의원,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에 이미경 전 의원 등이 있다. 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과 이정환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등은 20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보자다. 특히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새로 임명된 35명 중 21명이 캠코더 인사로 분류됐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 경호처 경호본부장이었던 조용순 수출입은행 감사, 민주당 대전시당 유세지원본부 공동단장을 맡았던 곽성열 한국조폐공사 비상임이사 등은 전문성과 관계없는 인사로 지적된다. 바른미래당은 관치 금융정책을 관철하려는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낙하산 인사 현상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 취임 첫해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180명 중 최소 58명(32%)을 낙하산 인사로 분류했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에선 출범 이후 4년간 공공기관 임원 임명자 1658명 중 303명(18.3%)이 낙하산 인사로 분류됐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능력과 무관하게 정치권 인사를 주요 기관장 임원으로 내세워 신적폐를 쌓고 있다”며 “공공기관 혁신의 핵심은 전문가를 보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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