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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관위 국회 제출 정치관련법 개정안 주요내용

    중앙선관위(위원장 李容勳)가 18일 확정한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에는다양한 정치개혁 의지가 담겼다.의원들의 지역편중 현상을 완화하고,지역감정조장 행위를 처벌토록 하는 한편 고비용의 정당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인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선거제도는 1인1표제,지역구 비례 대표 중복입후보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국민회의안과 차별성을 띠고 있다.선관위는 이같은 내용의 의견을 19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소선구제를 유지하고,7개 권역별 비례대표 선거제를 도입한다.단 제주도는 지역구만으로 선출한다.비례대표 의석수는 지역구의석의 3분2로하고 하고,‘1인1표제’를 실시한다.지역편차를 완화하기 위해 특정 정당에 비례 대표의 80%이상을 배분할 수 없는 상한제를 실시한다.대안으로 7개권역별 비례 대표를 실시하되 1구 2∼3인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실시하는 것도 검토 할 수 있다.이 때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는 2대1로 하며 특정정당의 상한제는 폐지한다.특히 지역구에 낙선하더라도 비례대표선거구에서 당선될 수 있도록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복입후보를 허용하고,동시입후보 당선은 명부순이 아니라 지역구 득표율에 따라 결정하도록 했다.비례대표 후보는 3석이상 의석을 얻거나 유효 투표수의 3%이상 득표한 정당에 배분한다. ▒지역감정 조장 금지 후보비방 흑색선전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행위는최하 200만원 이상의 형에 처할 수 있도록 지역감정조장 처벌조항을 신설한다.선거일전 30일전부터 지역내에서 향우회 동창회 종친회 등 명칭여하를 떠나 출신 연고별 모임을 개최할 수 없고 선거일 180일전부터 출신연고별 인구나 그 비율을 공표하거나 보도할 수 없다. ▒선거의 투명성 확보 선거에 앞서 관할 선관위에 신고한 정치자금 관리인(대통령선거는 선거일 1년전,나머지 선거는 선거일 180일전 신고해야 유효)은 공개된 장소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명함을 교환하는 행위,전화를 이용하는 행위,컴퓨터 통신을 이용하는 행위 등 사전 선거운동을 허용토록 한다. 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정당한 사유없이 투표에 불참한 선거인에게 5,000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보궐선거의 투표 마감시간은 밤 9시까지 3시간 연장한다.선거법 위반행위를 신속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당선무효와 관련된 선거범죄의 1심 재판은 고등법원이 관할하도록 하고,양형이 부당할때는 상고를할 수 있으나 대법원에서 직접 심리,판결한다.
  • [제2공화국과 張勉] (6) 尹潽善과의 갈등(上)/장면·윤보선

    1960년 8월19일 오후 1시24분 ‘張勉총리 인준’투표를 막 끝마친 민의원 본회의장에는 긴장과 흥분이 감돌았다.두번째로 총리 지명을 받은 장면이 인준에 성공해 취임할 것인가,아니면 그마저 실패해 정국이 계속 표류할 것인가. 1시37분 郭尙勳 민의원의장이 결과를 발표했다. “총투표수 225,가(可)에 117,부(否)에 107,기권 1.가가 정족수인 과반수이상이므로 가결된 것을 선포합니다.”4·19가 일어난 지 딱 4개월 만에 민주혁명 수행의 대임(大任)이 장면에게맡겨지는 순간이었다.총리가 된 장면은 곧바로 그를 지명해준 尹潽善대통령을 청와대로 찾아가 취임인사를 한다. 장면과 윤보선의 이날 만남은 유쾌해야 마땅한 자리였다.통합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한 지 5년 만에 ‘李承晩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치의 주역이 된 두 사람이었다.같은 당의 오랜 동지인 총리와 대통령은 ‘4·19정신’을현실정치에 구현하고자 서로를 격려하고 협조를 다짐했을 법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분위기는 어색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다.‘총리 지명’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된 민주당 신·구파간 갈등이 앙금으로 짙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4월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유일했다.민심도 이를 인정해 7월29일 치른 민의원·참의원(상원)선거에서민주당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은 무려 172석(78.5%)을 차지했다. 문제는 민주당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의석 분포를이룬 사실이었다.따라서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려고 암투에 들어갔다. 그즈음 민주당 지도층의 면면을 보면 장면이 단연 으뜸이었다.그는 56년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선출됐고,‘3·15선거’에서는 자유당의 부정 탓에 낙선했지만 민주당의 대표주자였다.게다가 59년 11월부터 당수인 대표최고위원을맡아왔다. 반면 구파쪽은 조병옥 서거 후 명확한 리더가 없었다.당시 구파였던 高興門(국회부의장 역임,98년 작고)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조병옥이 없는 민주당은 곧 신파인 장면의 천하가 될게 분명해 보였다.민주당 내에서 국민적 인기로 보아 그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평소 말이 없는 윤보선과 고집이 센 金度演이 있었으나 장면의 맞수는 아니었다.”국민 여론이나 당내 인식이 이같았는데도 구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김도연을 총리로 밀어 두 자리를 독점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그 까닭은 국회 부의장선거에서 표대결로 신파를 누른 적이 있어 자신을 가진 데다 구파 내 세력이 윤보선·김도연으로 양분돼 양쪽을 함께 배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신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추대해 구파에게 일단 한 자리를 준 뒤 총리는 자파의 장면이 차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8월12일 열린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윤보선은 208표(재석 259명)를 얻어당선된다.이제 관심은 윤대통령이 누구를 총리로 지명할 것인가에 쏠렸다.신파의원들이나 국민 대다수는 ‘설마 구파가 총리까지 차지하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고 구파 내에서도 鄭憲柱·閔寬植의원 같은 이들은 정치 도의를 내세워 독점에 반대했다. 8월16일 윤대통령은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한다.통보를 받은 민의원의장 곽상훈은 장면을 지명하리라는 믿음이 깨지자 즉시 청와대로 쫓아가 항의한다.윤대통령의 해명을 들은 그는 “아마 김도연씨는 안 될거요” 라고 말하고는물러나와 김도연의 총리 인준을 적극 방해한다(회고록에서 발췌). 김도연은 다음날 총리 인준 투표에서 정족수보다 3표 모자라게 득표해 인준에 실패한다.8월18일 윤대통령은 장면을 총리로 2차 지명했고 장면은 다음날 인준을 받는 데 성공한다. 60년 8월 민주당의 선택은 마땅히 장면이어야 했다.그런데도 당내 파벌의 이익을 앞세워 김도연을 1차로 총리 지명하는 바람에 신·구파의 갈등은 깊어졌다. 그렇다고 신·구파 갈등이 장면총리와 윤보선대통령에게 그대로 옮겨갈 이유는 없었다.내각제 하에서 대통령은 당적(黨籍)을 떠나 국내정치에 초연하게끔 자리매김돼 있었다. 하지만 윤대통령은 이후에도 구파의 지도자처럼 행세하며 장면총리와 팽팽한긴장관계를 유지한다.그리고 그 긴장은 정치불안의 주요소로 작용한다. 이용원- 張勉과 尹潽善 장면과 윤보선은 제2공화국의총리와 대통령으로 만날 때까지 외형상 비슷한 삶을 살아온 듯 보인다.둘 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해외유학을 다녀오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서 차근차근 위상을 높여나간다.그러나 그같은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장면은 인천세관 간부인 張箕彬의 맏아들로 출생해 21살때 카톨릭측의 주선으로 도미,뉴욕 맨해튼대에서 교육학·종교철학 등을 공부한다.귀국해 잠시카톨릭 평양교구 일을 보다 서울 동성상업학교에서 교직을 시작,그 학교 교장으로서 광복을 맞는다. 윤보선은 구한말 중추원 의관을 지낸 尹致昭의 장남으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다.본인말고도 6촌 이내에 집권당 당의장서리,장관,서울대총장 등 장·차관 이상만 13명이 나온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이다.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고고학을 배웠다. 둘은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만 장면만 당선된다.윤보선은 54년 3대 의원 선거때 비로소 국회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이 출범하자 장면은 UN총회 한국수석대표,초대 주미대사,제2대 국무총리를 잇따라 하며 건국의 기초를 닦는 데 큰 공을 세운다.이 기간 윤보선은 4대 서울시장,2대 상공장관을 지내지만 각각 재임기간이 1년도 안돼 물러난다. 두 사람은 55년 출범한 민주당에서 한식구가 된다.장면은 처음부터 최고위원 5명 가운데 하나였고 신파의 지도자였다.56년 부통령으로 당선된 데 이어 59년 전당대회때는 대통령후보 경쟁에서 조병옥에게 지지만 대표최고위원 선출에서는 조병옥을 누른다.윤보선은 이 대회에서 조병옥의 구파 몫을 이어받아 처음으로 최고위원이 된다. 60년 8월 제2공화국이 출범할 때까지 정치적인 경력에서 장면은 단연 윤보선을 앞선다.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다른 데 있다. 장면은 삶의 어느 시점에서 무슨 일을 했건 ‘성실하고 근면했다’는 점에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반면 윤보선은 달랐다.이는 66년에 발표한 회고록(‘사실의 전부를 기술하다’에 수록)에서 스스로 밝힌 심경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윤보선은 상공장관에 취임해 “업무를 거의 파악한 서너달 후엔 벌써 입맛이 떨어져 버렸다”고밝혔으며,국회에 진출해 원내총무를 맡고는 “사임을 해도 안받아줘 병 난 것을 기화로 부산에 내려가 요양하며 겨우 수리시켰다”고 회상했다.심지어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찾은 민원인들로부터 들은 여러가지 하소연 내용을 설명하고는 “이같이 되풀이되는 고통은 하루빨리 청와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굳혀줄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던 그가 5·16쿠데타 후에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열달 동안 대통령직을유지한다.청와대를 떠난 뒤 반(反)朴正熙 투쟁의 선봉에 서지만 박정희 사후 또 한차례 변신한다.全斗煥정권을 인정하고 87년 대선에서 盧泰愚를 지지한 것이다. 이같은 윤보선의 정치역정을 두고 학자들은 ‘명사(名士)정치’의 한 행태로 풀이한다.劉載一 대전대 정외과교수는 “명사정치의 특징은 시대적 과제를고민하기 보다 권력 획득,품위유지에 더 집중하는 데 있다”면서 “따라서명사 정치인들은 종종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궤적을 걸은 듯한 장면과 윤보선의 삶에는 이처럼 본질적인 차이가있었다.이는 제2공화국 붕괴의 책임을 재조명할 때 필히 고려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이용원
  • 金대통령,대졸자206명 초청오찬 이모저모

    11일 낮 청와대에서는 뜻깊은 오찬이 마련됐다.金大中 대통령이 전국 141개 대학이 추천한 ‘자랑스런 대학졸업생’ 206명을 초청한 것이다.지난해까지만해도 각 대학 수석졸업생들이 ‘자랑스럽게’ 초대받던 자리를 이날은 신체적,경제적,가정적인 어려움을 딛고 훌륭하게 학업을 마친 학생들이 대신한 것이다.전공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우수한 벤처기업을 창업한 학생들도 신지식인 차원에서 함께했다. 金대통령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시절 아래층에 살던,전신마비의 장애를 딛고 세계적인 인물이 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의 얘기로 화제의 실타래를 풀어나갔다.“그는 인생을 낙관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고,참으로 유머있는 사람이었다”고 소개한 金대통령은 “바로 이런 점이 호킹박사를 성공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며 역경을 뚫고 꿋꿋이 학업을 마치거나 도전정신을 지닌 이들을 격려했다. 金대통령은 이들의 어려움을 의식한 듯 “행운의 여신은 언제나 미소를 띠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험악하고 으르렁거리면서 오기도 한다”며 “이를극복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수차례 죽을 고비와 낙선의 고초를 겪은 자신의 역정을 ‘외람되지만’이라는 전제를 달고 소개했다. “이제 졸업장이 아닌 실력의 시대”라고 역설한 金대통령은 “대학을 나왔건,나오지 않았건 정보산업분야에서 발명을 하면 순식간에 억만장자가 된다”며 시대의 변화를 예고했다.“21세기는 벌거벗고 뛰는 능력을 겨루는 시대이지 졸업장이 좌우하는 시대는 아니다”고 표현했다.즉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발휘할 신지식인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날 오찬에는 78세의 고령으로 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를 올해 졸업한 장선희씨(여)와 지체부자유자로서 약사고시에 합격한 김소현양(부산대 약학과),전국대학생 벤처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동아대 컴퓨터공학과 정윤태군,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속에서도 재학중 중앙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한 서울대동양학과 고영훈군 등이 초대됐다.특히 시각장애를 딛고 올해 경희대 정외과를 졸업한 崔大煥씨는 안내 맹도견 ‘웅대’와 함께 초대를 받았으나 오찬장안내는 어머니가 해 ‘웅대’는 오찬장소에까지는 들어오지는 못했다. 이들은 모두 뜻밖의 초대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또 金대통령의 격려가 가슴에 와닿을 때는 어려운 시절이 상기되는 듯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보는 이들도 눈시울을 붉혔다.曺圭香 청와대교육문화수석은 “참으로 뜻깊고,눈물이 앞을 가린 자리였다”고 소개했다.
  • 한나라 진통끝 재·보선후보 확정

    한나라당이 오는 30일 서울 구로을 재선거와 경기 시흥 보궐선거 후보로 구속된 李信行전의원의 부인 趙恩姬씨와 張慶宇 당 홍보위원장을 사실상 확정했다.4일 총재단회의 추인에 이어 5일 당무회의 의결을 거칠 예정이다. 후보선정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막판까지 저울질을 거듭했다.당내 이견을조율하느라 진통도 겪었다. 특히 趙씨의 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섰다.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李전의원의 이미지가 새정치를 지향하는 당의 정치 이념이나 노선에 배치된다는 주장이 만만찮았다.金德龍부총재를 비롯한 개혁 성향 인사는 “차기 총선이나 정체성을 감안,지더라도 명예롭게 지는 길을 선택해야한다”며 난색을 표했다.그러나 끝내 외부영입이 여의치 않자 李會昌총재가‘차선의 대안’으로 趙씨를 낙점했다. 최근 옥중(獄中)남편을 대신해 ‘명예회복’에 나선 내조자는 지난 92년 14대 총선 당시 李鶴捧전의원의 부인 李雪惠씨,94년 ‘8·2보궐선거’당시 朴哲彦의원의 부인 玄慶子씨 등이 있다.李씨는 밀양에서 낙선했지만 玄씨는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됐다.특히 李씨는 유세 현장에서 동정표를 얻기 위해 딸과 함께 소복 차림으로 읍소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지도부는 한때 시흥에서도 고(故)諸廷坵의원의 부인 申明子씨가 나서도록설득했으나 申씨가 고사했다.미국에 체류중인 孫鶴圭전보건복지부 장관에게도 ‘S 0 S’를 보냈다.그러나 孫전장관은 3일 李총재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당내 후보경선에서 張위원장을 누르고 공천을 얻었는데 이번에도 張위원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마당에 또다시 내가 나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며 완곡하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제2공화국과 張勉](2)-국토건설사업(下)

    張勉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국토개발이라는 고유목적 외에도 공공사업을 통한 고용증대,산업활성화,국가 인재충원제도 확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제도적 파급효과를 거두었다. 국토건설사업본부(이하 본부)는 중앙청 서남쪽의 목조 2층 건물에 자리잡았다.민(民)과 관(官)이 함께 참여한 이질적인 집단이지만 당대 엘리트를 모은 데다 대우도 좋아 본부는 활기차게 돌아갔다.본부 간사이던 朴敬洙씨(69·작가)는 “월간 ‘사상계’에서 받은 봉급이 일반직장인보다 훨씬 많았는데본부는 그 두배 정도를 주었다”고 회고했다. 본부가 처음 한 일은 국토개발사업을 현장에서 지휘·감독할 일꾼을 뽑는 것이었다.국무원사무처(총무처 격)는 ‘병역을 마친 30세 미만의 대학졸업자’를 대상으로 국토건설추진요원(이하 건설요원)을 공개 모집했다.석달 동안건설현장에서 근무하고 나면 국가공무원 4∼5급이나 지방공무원 3∼4급으로임용한다는 조건이었다.말하자면 공무원을 공채로 뽑은 것인데 이는 해방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모집공고가 나자 대졸자 ‘1만수천명’(당시 鄭憲柱국무원사무처장 증언)이지원했다.그 무렵 전국에 대학이 63군데,대학생 정원이 9만7,819명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였다.합격자는 사무직 1,614명,기술직 452명 등 모두 2,066명이었다.여성도 21명 포함됐다. 건설요원들은 61년 1월9일부터 교육을 받았다.교육장에는 종교인 咸錫憲과朴鍾鴻 서울대 교수 등 당대의 지성들이 나와 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이들은 2월27일 중앙청광장에서 수료식을 가진 데 이어 각 군(郡)에 15∼17명씩 배치돼 3월1일부터 현장근무에 들어갔다. 국토건설사업은 전국 각지에서 커다란 성과를 불러왔다.건설현장에는 배고픈 국민들이 새벽 5시쯤부터 몰려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섰다.하루 일을 끝내면 이들은 품삯으로 돈과,쌀·보리·비누·광목 같은 물건을 섞어 받고 만족한 표정으로 귀가했다.품삯에 현물(現物)이 포함된 까닭은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이 사업의 주요 재원이기 때문이다. 장면정부는 잉여농산물을 품삯으로 지급하면서도 다른 산업에 미치는 효과를 계산했다.쌀·보리는 정미소에서 찧었고 면화는 방직공장에 보내 광목으로가공했다.유지(乳脂)는 비누로 만들었다.따라서 건설현장에 나온 국민은 구하기 힘든 생필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정미소나 방직공장·비누공장 등은 가동률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그만큼 장면정부의 경제정책은 정교했다고평가해줄 만하다. 국토건설사업은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나갔다.일부 지역에서 잡음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3월30일 농림부는 25일까지의실적을 공개했다.2만6,089정보에 조림(造林)을 해 계획의 50%를 달성했으며,산·바닷가의 흙·모래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막고자 나무를 심거나 돌을 쌓는 사방(砂防)사업도 목표의 51%인 2만8,958정보를 끝마쳤다. 국토건설사업은 이같은 업적말고도 공무원 공채의 초석이 됐다는 점에서 큰의미를 갖는다.당시는 공개 채용 없이 기관장이 발탁해 쓰면 시일이 지남에따라 자동 승진하는 구조였다. 정헌주옹(84)은 “건설요원 선발 이후 공무원사회에 공채제도가 자리잡았다“면서 그 뒤 일반기업체에도 퍼져 나갔다고 회고했다.또 “공채가 공고되자 61년 들어 대학가에서 시위횟수가 크게 주는 등 사회안정에도 큰몫을 했다”고 강조했다. 첫 공무원 공채는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이는 당시 재무부 예산국장이었고 그 뒤 숭전대총장·부총리를 역임한 李漢彬의 논저 ‘사회변동과 행정’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전부총리는 건설요원 채용이 “관료제에 새로운 사회세력,특히 젊은이들을 흡수하는 기본적인 통로로서 활용됐으며 이 젊은이들은 점진적으로 승진해 관료제 전반에 걸쳐 눈에 띄는 활력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공무원 공채 1기’는 5·16쿠데타 후에도 지위를 보장받았으며 우리 사회 정·관계,경제계를 주도하는 인물로 성장했다.鄭寅用전부총리,金泰鎬국회의원(내무장관 역임),崔同燮전건설부장관,金昌甲전교통부차관,朴進球울주군수들이 ‘1기 출신’이다. 그러나 장면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5·16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기는 바람에끝을 맺지 못했다.사업을 이어받은 쿠데타세력은 61년 말 “연인원 2,500만명을 고용해 계획의 94%를 완수했다”고 공식발표했다.장면정부의 공을 가로챈 것이다. 그 과정은 安京模전교통장관(82)의 증언에서 분명해진다.안옹은 본부 기술부 차장으로 일하다 5·16세력에게 불려가 국토건설사업 계획을 브리핑했다.이후 같은 업무를 계속하다 64년 교통부장관,67년 수자원개발공사사장으로 발탁돼 소양강댐 충주댐 안동댐 대청댐 등을 직접 건설했다. 60년대 국토개발의 주역인 안옹은 “장면정부도 국토건설사업을 완수할 수있었다”고 단언하고 그 근거로▒정부 의지가 굳건했고▒미국이 적극 지원했으며▒사업에 참여한 관료들이 능력을 갖추었음을 들었다.그는 쿠데타세력이 국토개발에 성공한 것도 장면정부의 사업계획을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張勉총리의 생애▒1899년 8월28일=인천세관에 근무하는 張箕彬과 黃누시아 사이에 장남으로출생.본관 玉山,호는 雲石▒1906년=인천성당 소속 박문학교 입학▒14년=수원농림학교 입학▒16년 5월20일=金商集의 딸 金玉允과 결혼▒17년=수원농림 졸,서울 중앙기독청년학관 영어학과 입학▒20년=청년학관 수석 졸업,도미▒21년=뉴욕 맨해튼가톨릭대 입학▒25년=맨해튼대 졸업(교육학),한국천주교청년회 대표로 로마에서 열린 ‘한국 79위 시복식’에 참석 후 8월 귀국▒29년=천주교 평양교구에서 교회 일에 전념▒31년=동성상업학교 교사 시작▒36년=동성 교장으로 취임(광복 때까지 근무)▒46년=민주의원·입법의원으로 피선▒48년=서울 종로 을구에서 제헌의원 당선,9월 파리에서 열린 제3차 UN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12월 맨해튼대에서 명예법학박사 받음▒49년=초대 주미대사 부임▒50년=6·25 발발하자 유엔군 파병에 큰몫▒51년=2월에 제2대 국무총리 취임,11월 제6차 UN총회 한국수석대표▒52년=총리 사임▒55년=申翼熙 趙炳玉 등과 함께 민주당 창당,최고위원 피선▒56년=민주당 후보로 부통령 당선.9월에 피격,경상▒59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피선,▒60년 3월15일=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낙선▒4월22일=李承晩 규탄하며 제4대 부통령직 사임▒7월29일=서울 용산 갑구에서 국회의원 당선▒8월19일=국무총리 인준▒8월23일=1차 조각 마치고 내각 출범▒61년 3월1일=국토건설사업 기공▒5월16일=쿠데타로 정권 빼앗김▒이후=신앙생활 몰두하다 66년 6월4일 서거,국민장으로 포천 가톨릭묘지에 안장됨■張勉은 누구인가 한국 현대사에서 張勉이 갖는 위치는 독특하다.그는 4월혁명의 결과로 태어난 제2공화국의 총리였다.尹潽善대통령이 있었지만 내각책임제였기에 제2공화국을 장면정부라고 부른다. 장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훌륭한 인격자요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무능하고 나약했다”는 평도 따른다.이는 5·16세력이 조작해 전파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장면은 어떤 사람인가.장면은 부모 양쪽 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세례명 요안인 그는 인천성당 소속인 박문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기 시작해 이후 해방 전까지 신앙인·교육자로서 충실한 삶을 산다[연표 참조].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면모는 5·16이 나자 피신처로 선택한 곳이 수녀원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그만큼 그의 신앙심은 남다른 측면이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장면은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였고 온건하고 합리적인 길을 택했다.따라서 그가 이끈 민주당 신파 출신 중에는 기나긴 朴正熙시대에도뜻을 굽히지 않고 민주화투쟁에 앞장선 이들이 유난히 많다.金大中대통령을비롯해 金相敦 鄭一亨 鄭憲柱 金判述 金應柱 吳洪錫 등이 그들이다. 해방 후 장면은 미 군정하의 민주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한다.건국 직후 열린UN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는 법통(法統)을 인정받은 것과 초대 주미대사를 지내면서 6·25때 UN군 파병에 큰몫을 한 것은 그를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상케 했다.그 결과 제2대 총리로 취임하지만 이제는 정치적으로 너무 성장한 그를 李承晩이 견제하는 바람에 1년여 만에 총리직을 사퇴한다. 그후 야당지도자로 변신해 55년 창당한 민주당의 최고위 지도자 중 한사람이 됐고 56년에는 부통령에 당선됐다.부통령 시절인 1956년 9월28일 장면은 명동 시공관에서 암살범의 저격에 왼손을 맞았다.그런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썼다.민주당 최고위원인朴順天은 훗날 회고록에서 “그때 지켜본 장박사의 모습은 태연자약했고 너무도 의연했다”면서 거인다운 풍모를 소개했다. 4·19혁명 후 제2공화국을 맡은 장면은 8개월23일 만에 쿠데타를 만나 정권을 빼앗긴다.교과서에 나오는,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던 그의 꿈은 좌절되고 그는 “국민 앞에 저지른 잘못을 속죄의 심정으로 사과할 뿐”(회고록 표현)이라며 신앙생활에 몰두하다 66년 6월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서거한다.李容遠
  • 동서를 껴안고 통일로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살자(3회)

    3개 인종과 4개 언어가 뒤섞여 있는 스위스는 매우 이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돼 있음에도 1인당 국민총생산(GNP)에서 세계 정상을 일궈냈다. 23개주 출신 장관 7명이 임기 1년의 대통령직을 돌아가면서 맡고 지방정부에 자율성을 부여,‘지역 할당식’의 공정한 인사를 통해 지역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실적제보호위원회(MSPB)를 만들어 중앙정부의 인사가 실적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졌는지를 심사하고 있다. 상당수 선진국들은 ‘호루라기 제도(whistle blowing)’를 도입,인사 불이익 등 내부의 비리나 불만을 고발토록 해 인사의 공정성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공직사회는 그동안 지연·학연에 얽힌 인사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인사의 지역편중 문제가 사회통합의 암적 요소로 작용해 왔다.능력과 적성을 외면,고위 공직자 자리가 특정 지역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등부작용이 잇따랐다.‘집권하면 고향사람만 보인다’는 냉소적인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공직자 인사를 앞두고는 항상 특정지역과 인맥이 거론됐다.공직자들도이에 편승,좋은 보직이나 승진을 위해 출신 지역 및 학교를 중심으로 줄서기를되풀이했다. 실제로 건국 후 6공화국까지 장관과 차관,1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지역편중 현상은 심각했다. 3공화국 이후 1급 이상 공직자 가운데 영남 출신이 35∼41%를 차지한 반면호남출신은 10∼12%에 불과했다. 특히 경제기획원 내무부 상공부 건설부 등 국토개발 관련 부처의 장관급 인사 1,870여명 가운데 영남출신이 55.1%에 이르렀다.지역별 부가가치 생산비율도 영남 25.1%,호남 6.2%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96년 金泳三 정부 당시에는 1급이상 행정직 공무원 215명 가운데 부산·경남(20.4%)과 대구·경북(17.9%)의 순위가 바뀌었을 뿐 영남출신이 38.3%를차지,호남 16.3%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새정부 출범 이후 1급 이상 공무원은 호남출신 27.6%,영남 출신 24.1%로 역전이 됐고 이에 따른 시비는 한동안 정치권의 쟁점이 됐다. 지난해 6·4 지방선거가 끝난 뒤 현직 구청장이 낙선한 서울 Y구청에서는기획실장과 총무국장 등 고위 간부들이 “다른 구청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이유는 지연·학연으로 얽힌 기존 구청장의 ‘충신’ 노릇을 하다가 새 구청장 밑에서 똑같은 역할을 하기가 난처하다는 것이었다. 학계 및 시민단체 인사들은 사회통합을 위한 최우선 순위로 공정한 인사를꼽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金用學교수는 “편중된 공직 인사는 정권의 정통성이 없는 3공화국의 산물”이라면서 “편중인사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투명한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즉 인사절차를 공개하고 잘못된 인사를시민단체와 언론이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성대 행정학과 李成佑교수는 “고위 공직자들의 약력란과 인사기록 카드에서 출신지역에 대한 기록을 없애야 한다”면서 “시민단체와 학계,내부의공직자들로 구성된 인사자문위원회를 만들어 잘못된 인사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金萬欽박사는 “이질적인 민족과 언어로 구성된 선진국들도 지방분권 및 공정한 인사제도를 통해 지역갈등을 극복했다”면서“관료 조직내의 지역적인 대립을 선의의 경쟁으로 바꿔야 하며 업무 실적에 따라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는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행정연구원 徐源錫박사는 “지역편중에 따른 인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지역인사할당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趙炫奭 全永祐hyun68@
  • 국내/대한매일 선정 1998년 10大 뉴스

    ◎국민의 정부 출범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룩한 金大中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2월25일 출범했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로 국가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정을 맡아 경제난 극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외환보유고와 주가지수,금리,환율 등이 회복·안정세로 돌아섰다. 새정부는 이와함께 정부조직 개편,행정규제 철폐,대기업 및 노사 구조조정 등 총체적인 국가 개혁작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햇볕정책과 금강산 관광 ‘국민의 정부’는 올해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을 일관되게 펼쳐 왔다. 인적·물적 교류 확대로 남북 화해를 앞당긴다는 취지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안팎의 도전도 받았다. 보수층의 반발과 북한 잠수정과 간첩선 침투 등이 그 사례였다.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은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소떼 방북,50년만의 역사적 금강산관광 성사 등으로 마침내 대내외적인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北 인공위성발사 파문 북한은 8월 31일 낮 12시7분쯤 동해안 소재 대포동 미사일 시험장에서 사거리 1,700∼2,200㎞의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북한은 미사일이 아닌 ‘광명성 1호’로 명명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과 우리 정부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용 로켓발사를 통해 소형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대량실업과 노숙자 IMF 터널은 대량실업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몰고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현재 실업률은 7.1%,실업자는 153만6,000이지만 불완전고용자를 포함하면 200만명은 넘어설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량실업은 노숙자의 양산이라는 또다른 그늘을 드리웠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증가세는 주춤했지만 아직도 3,000여명의 노숙자가 거리를 헤메고 있다. ◎프로골퍼 박세리 돌풍 여자 프로골퍼 박세리 돌풍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5월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선수권에서 우승,혜성처럼 등장한 박세리는 7월 US여자오픈에서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를 연출하며 메이저대회를 연속 제패했다. 이어 제이미파크로거대회에서 LPGA투어최저타 신기록을 세웠고 자이언트이글틀래식마저 거머쥐며 데뷔 첫해 4승의 신기록을 이룩했다. ◎대기업 빅딜과 금융개혁 98년은 경제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한해이다. 5대 그룹 ‘빅딜’(사업 맞교환) 성사와 은행 불사론(不死論)의 신화 붕괴로 특징지을 수 있다. 재벌 구조조정과 금융개혁을 차질없이 이뤄냄으로써 외환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동화 경기 충청 대동 동남 등 5개 부실은행의 퇴출을 선언한 ‘6·29’ 발표와,5대재벌의 구조조정안에 합의한 ‘12·7 정·재계 간담회’는 경쟁력 있는 은행과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출발점이 됐다. ◎미사일 오발 등 軍사고 빈발 12월4일 오전 10시35분 인천의 공군 방공포대에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1발이 훈련 중 오발돼 공중에서 자동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날 밤에는 군 영내에서 불발탄을 잘못 건드려 폭발해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이틀 후에는 조명탄 캡슐이 민가에 떨어지는 사고가 이어지면서 군 기강해이 문제가 정치권의 쟁점으로까지 확산됐다. ◎사상 최악의 水災 7월31일 지리산 폭우를 시작으로 20여일 동안 한반도 곳곳에서 기습적으로 쏟아진 게릴라성 호우는 240여명의 사망·실종자와 16만여명의 이재민,2조원의 재산손실 등 엄청난 피해를 냈다. 서울에서 18일동안 한해 강수량과 맞먹는 1,202㎜의 비가 내리는 등 새 강수기록도 세웠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중요성과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이웃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우쳐 주었다. ◎日 대중문화 개방 우리 대중문화가 보호막을 벗고 일본 대중문화와 경쟁하게 됐다. 정부는 지난 10월20일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해방 이후 53년만이며,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33년만이다. 영화,비디오,출판만화가 먼저 개방돼 지난 5일에는 영화 ‘하나비’가 국내에서 상영됐다. 가요, 애니메이션(만화영화)등은 ‘즉시 개방이후’로 분류돼 추후 적정한 시기에 개방되도록 늦춰졌다. ◎북풍·세풍·총풍 수사 올 초부터 이른바 ‘북풍(北風)·세풍(稅風)·총풍(銃風)’으로 이어진 ‘3풍사건’은 온통 나라를 뒤흔들었다. 지난 해 대선과정에서안기부와 국세청,한나라당 등이 국민회의 金大中 후보의 낙선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건들이다. ‘북풍’으로 權寧海 전 안기부장 등이,‘세풍’으로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李會晟씨 등이 구속됐다. 현재 ‘3풍 사건’과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며 검찰의 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 DJ 낙선 획책 ‘尹泓俊회견팀’/北京서 ‘銃風팀’과 한호텔 투숙

    ◎당시 안기부 간부 개입 가능성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기소된 韓成基씨(39·전 포스데이터고문)가 중국 베이징(北京) 캠핀스키호텔에 머물 때 당시 金大中후보 낙선을 모의했던 안기부의 ‘尹泓俊 기자회견팀’도 이 호텔에 투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3일 이에 따라 당시 안기부 간부들이 이 사건을 미리 알았거나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중이다. 안기부팀은 지난해 12월10일 베이징에 도착,11일 홀리데이호텔에서 尹泓俊씨의 기자회견을 주선했지만 실제 투숙한 곳은 韓씨와 張錫重씨(48·대호차이나 대표) 등이 머물며 북한측 인사를 만났던 캠핀스키호텔이라는 것이다.
  •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첫 공판­재판 속기록

    ◎“서류전달땐 윤원중·신경식씨 봤다”/한씨 “북측과 만남 주선은 장씨 전공이라 했다”/오씨 “진로 장진호 회장이 자금지원 의사밝혀”/장씨 “북측인사 만나 후보별 지지율 얘기했다” 30일 오후 서울지법 법정에서 열린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첫 공판에서 검찰의 직접신문에 대한 피고인들의 답변을 간추린다. ▷韓成基 피고인◁ ▲吳靜恩 피고인에게 진로 화의신청에 대해 부탁한 적이 있나. 있다. ▲吳피고인의 소개로 張錫重 피고인을 알게 됐나. 그렇다. ▲97년 10월 초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하비비 다방에서 吳피고인을 만났을 때 吳피고인이 정치활동을 한번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말한 적이 있나. 그렇다. ▲李會昌 후보 비선참모조직은 각종 보고서를 작성할 목적으로 조직됐나. 당시에는 몰랐다.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에게 청년홍보단 계획과 소요비용으로 15억원의 자금지원을 약속받은 사실이 있나. 있다. ▲李후보 자택에 가서 보고서를 직접 전달한 적이 있나. 있다. ▲경호원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만날 수 있었나. 경호원에게 사전에 양해를 받았다고 말해 만날 수 있었다. ▲중국에 갈 때 가지고 갔던 보고서가 吳피고인과 함께 李후보에게 전달한 보고서인가. 그렇다. ▲서류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尹源重 후보 비서실장과 辛卿植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본 일이 있나. 있다. ▲97년 12월5일 朴燦鍾씨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할 때 직접 전달했나. 운전기사에게 전달한 적도 있었다. ▲보고서를 받은 운전기사는 서류를 어떻게 처리했나. 차량 뒷좌석에 놓아두었다. ▲97년 9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3회에 걸쳐 李會晟씨와 張震浩 진로그룹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한 적이 있나. 그렇다. ▲만남을 주선한 목적은 선거자금 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었나. 그렇다. ▲97년 11월 하순쯤 탈당 움직임을 보인 朴燦鍾씨의 탈당을 막기 위해 李후보와 朴씨와의 회동을 주선한 적이 있나. 주선한 것은 아니다. ▲97년 11월 하순쯤 吳靜恩 피고인의 소개로 張錫重 피고인 등과 만나 金順權 박사의 방북 추진건을 대선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한 적이있나. 그렇다.▲97년 11월 하순쯤 서울 삼청동 하비비 다방에서 吳靜恩 피고인을 만나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있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국민회의가 ‘李후보 죽이기’ 1,2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나. 내가 한 말은 아니다. ▲張피고인이 북한 군부를 움직이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나. 張피고인이 정보를 감지하고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자신의 전공이라고 말한 적 있다.북풍은 분명히 일어난다.북풍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베이징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총풍 3인방’이 능력있는 인물로 포장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나. 李會晟씨와도 적극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그렇게 하는 것이 북한과의 접촉을 위해 좋다고 판단했다. ▲金順權 박사의 방북은 결국 이루어질 것이지만 吳피고인에게 金박사의 방북을 늦추어 달라고 한 적이 있나. 吳피고인이 그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吳피고인에게는 그냥 당신이 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정도가 아니라 꼭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아주 강한 톤이었다. ▲吳피고인은 뭐라고 말했나. 대선을 이기기 위해서는 북한의 무력시위 여부와 시기 등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張피고인이 북한의 리철운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가. 그런 적 있다. ▲베이징에 가는 여비와 경비는 내가 책임진다고 한 적이 있나. 무력시위 건은 아니고 다만 대북사업 경비 일반을 이야기한 것이다. ▲吳피고인이 베이징에 가거든 팀워크를 이루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는가. 그런 말 들은 적 있다. ▷吳靜恩 피고인◁ ▲대선 사조직을 만들자는 말은 누가 먼저했나. 韓成基 피고인이 했다. ▲張震浩 회장으로부터 15억∼20억원 지원을 약속받은 적 있나. 받은 적 없다.지원의사는 밝혔지만 정확한 금액은 얘기하지 않았다. ▲朴寬用 한나라당 의원에게 金順權 박사의 방북을 도와 달라는 협조요청을 했나. 안했다. ▲金박사를 방북시키면 대선에도 좋으니 대선 활용방안을 모색하자고 했나. 지난해 11월30일 우리 세명이 처음 만났을 때 金박사를한나라당에 입당시켜 대북 화해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지난해 11월 하순 韓피고인을 만났을 때 韓피고인이 李후보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을 한 적이 있나. 없다. ▲李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은 한 적이있나. 없다. ▲韓피고인이 국민회의의 공작이 성공하면 李후보는 한방에 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는데. 없다. ▲지난해 11월 말 張·韓피고인을 만났을 때 張피고인이 북은 李후보쪽으로 선회한 것 같다는 설명을 한 적 있나. 있다. ▲韓피고인에게 북한측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해보라는 말을 한 적이있나. 있다. ▲판문점에 카메라를 설치하면 무장시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 총기난사나 카메라 등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 ▲韓피고인에게 북측과 韓피고인을 연결시켜 주겠다고 말한 적은 있나. 있다. ▲韓피고인이 북측에 경력을 부풀려 말하려 한 적 있나. 무역이 잘 되기 위해 그랬다. ▲韓피고인에게 李후보 특보 같다고말한 적 있나.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張피고인이 베이징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나. 94년 서로 알기 시작한 이후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북풍요청을 지시한 적은. 없다. ▲金박사의 방북허가를 통일원으로부터 책임지고 받아내겠다는 말을 했나. 알아보겠다고 했을 뿐이다. ▲韓피고인은 베이징에서 북측 인물과 접촉해 무력시위를 요청키로 했나. 전혀 모의한 적 없다. ▲지난해 12월 초 코리아나호텔에서 張·韓피고인을 만나 金박사 방문과 대북접촉시 보안유지 등에 대해 논의한 적 있나. 나는 인사만 하고 갔기 때문에 전혀 모른다. ▲비슷한 시기에 하비비 다방에서 韓피고인이 베이징 방문에 대한 상황보고를 한 적이 있나. 아마 했을 것이다.나는 잠시 있다가 갔다. ▲그 자리에서 북한주민 접촉신청과 비행기표 예약 등에 관한 상황을 듣지 않았나. 들은 것 같다. ▲그날 張피고인이 북에서 중요한 사람이 나올지 모르니까 이쪽에서도 비중있는 사람을 보내야 겠다는 말을 했나. 그렇다.그러나 대선 문제에 대해선 얘기 안했다. ▲金박사의 방북허가가 15일까지는 나와야 북측에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을 했나. 그렇다. ▲지난해 12월 초순과 하순 두차례 통일원에 전화했나. 초순에 한번 했다. ▲베이징에 가기 전인 지난해 12월 초순 저녁 7시쯤 오복집에서 張·韓 피고인을 만나 베이징에 대해 최종 점검한 적이 있나. 기억이 안난다. ▲떠나기 전에 만난 적이 없단 말인가. 기억이 안난다. ▲당시 張피고인이 金박사 방북허가를 받아 북측이 우리를 믿도록 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했나. 있었던 것 같다. ▲북풍과 관련,북측 의도를 파악한 뒤 우리 의도를 전달하라고 지시한적 있나. 없다. ▲韓피고인이 金박사 방북허가가 제때 안 나오면 모든 것이 안된다며 방북문제를 피고인에게 책임져 달라고 했나. 그렇다. ▲북풍이 공안기관에 드러나면 金박사를 연관시키면 된다고 한 적 있나. 기억이 안난다. ▲韓피고인 등이 베이징에 있는 동안 이들로부터 계속 보고를 받은 적이 있나. 기억이 안 난다.베이징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 나는 당시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 ▲張피고인이 귀국 후 피고인과 만나 베이징 방문 무마에 대해 논의한 적 있나. 전혀 없다. ▲韓피고인이 “안기부가 베이징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 것 같다.張피고인이 알려준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나. 張피고인이 알려줬다는 말은 없었다. ▲조선호텔에서 張震浩 회장을 만난 적 있나. 있다. ▲그때 張회장으로부터 韓피고인이 베이징에 가서 대선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을 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 있다. ▷張錫重 피고인◁ ▲吳靜恩 피고인을 안 뒤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나. 한달에 2번 정도 만나고 2번 통화하는 정도였다.그러나 吳피고인을 통해 편의를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吳피고인과 朴寬用 의원에게 金順權 박사의 방북추진을 요청했나. 金박사의 방북을 추진한다는 사실만 알렸지 부탁한 적은 없다. ▲지난해 11월 하순 韓피고인을 만나 현대에 진 채무 2억원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나. 부탁한 적은 있다.알아봐 주겠다고만 했지 해결해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吳피고인이 金박사 방북과 대선상황을 연결시키려고 했나. 모르겠다. ▲지난해 11월30일 吳·韓피고인과 만난 자리에서 북측이 DJ는 거부감을 느끼고 처음에는 이인제 후보를 선호하다가 이회창 후보쪽으로 돌아섰고 DJ를 낙선시키기 위해 DJ후보쪽에 북한자금 유입설 등 모종의 음모를 꾸밀지 모른다는 말을 했나. 기억나지 않는다. ▲韓피고인이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있으니 이럴 때 ‘쾅’ 하고 터져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나. 아니다. ▲韓피고인이 선거가 임박해서 무력시위가 있으면 국민회의가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나. 아니다. ▲이때 吳피고인이 북풍을 북측이 자진해서 일으키는 방안을 알아보라고 대안을 제시했나. 들은 적 없다. ▲吳피고인에게 북측 군부인사를 잘 아니까 한번 알아봐 주겠다고 제의했나. 아니다. ▲베이징에서 북측인사를 만날 때 金박사의 방북은 성사되지만 아직 승인은 나지 않았으니까 이점을 이용하라고 吳피고인이 지시했나. 그런 적 없다. ▲吳피고인이 韓피고인에게 북측인사를 만나게 되면 “나 대신 왔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나. 아니다. ▲지난해 12월 초 북측의 리철에게 전화해 대선문제 등을 논의했나. 리철과 전화통화는 거의 매일 했지만 전적으로 사업얘기만 했지 대선문제는 언급한 적 없었다. ▲吳피고인에게 지난해 12월15일까지는 金박사의 방북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우리들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나. 아니다.지난해 말까지 金박사의 방북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약재배권을 따내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방북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韓피고인이 진로그룹 고문과 李후보의 특보역도 맡고 있으며 金박사의 방북에 막강한 힘을 쥐고 있다고 소개했나. 韓피고인은 진로그룹 고문이고 나보다는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만 소개했다. ▲북측인사들을 만나 국내 대선 상황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나. 후보별 지지율을 얘기한 적은 있지만 도와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다.
  • 美 중도노선 떠오른다/국민의식 변화… 보수강경파 무더기 낙선

    ◎복지정책 우선 등 정책변화 가능성 미국에 강경 보수주의의 물결이 퇴조하고 있다.최근 유럽을 휩쓸고 있는 제3의 물결 등 새로운 중도노선이 미국에서도 일기 시작했음을 말한다.이번 중간선거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중도노선을 표방한 민주당이 16년만에 보수 성향의 공화당 ‘텃밭’ 캘리포니아주에서 주지사 등 주의회 대부분을 휩쓸었다.그러나 공화당의 강경 보수성향을 지닌 인물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미 최대의 인구를 가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민주당 그레이 데이비스 부지사가 ‘보수주의의 기수’ 공화당의 데이비드 런그런 주 법무장관에 압승했다.접전이 예상되던 바버라 복서 상원의원도 최저임금 인상·낙태 옹호 중도노선 구호를 내걸어 공화당의 매트 퐁 주 재무장관을 가볍게 따돌렸다. 대표적인 강경 보수파로 알려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보브 잉글리스와 위스콘신주의 마크 뉴먼 등도 중도파 후보들에게 고배를 마셨다.반면 고전이 예상되던 일리노이주의 피터 피츠제럴드는 중도노선으로 선회한 데 힘입어 당선됐다. 정치분석가들은미 유권자들이 지금의 호황기조의 연장이나 연금·의료·교육 등 복지부문의 확충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보수주의 물결을 밀어내고 있다고 밝혔다.성추문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승리한 것도 클린턴 행정부가 호황기조를 이어가라는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도노선의 부각은 다급해진 공화당의 내홍(內訌)을 자연스레 부채질하고 있다.공화당 내부에서 ‘강경 보수파의 거두’로 각인돼온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 등 현 지도부를 몰아내려는 움직임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당내 최대 라이벌인 보브 리빙스턴 하원 세출위원장은 “깅리치는 선거의 패배를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같은 보수주의 퇴조로 미국도 복지정책 우선 등에 초점을 맞추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주창하는 ‘제3의 길’과 같은 조류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 클린턴 탄핵 위기 탈출/美 중간선거 이모저모

    ◎한국관련 대외정책 변화 없을듯/林龍根씨 등 아시아계 쓰라린 패배/프로레슬러 출신 주지사·레즈비언 의원 탄생 미국의 이번 중간선거는 클린턴의 승리였다.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공화당은 성추문을 정략적으로 공격하며 승부수로 띄웠으나 미국 국민들은 공화당을 질타했다. 당초 예상을 깬 민주당의 선전으로 상원이나 하원의 의석 분포는 예전과 거의 같다.의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미국의 외교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특히 한국과 관련된 대외정책은 지금까지의 틀을 유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의 이번 중간선거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콤플렉스를 해소해 줄 것 같다.클린턴이 주도한 선거에서 민주당이 사실상 승리를 거둠으로써 공화당 주도의 의회 탄핵조치를 면할 것이기 때문.그러나 성추문 사건을 주도해온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헨리 하이드 하원 법사위원장 역시 당선돼 클린턴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제대로 넘길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관심을 모았던 공화당의 林龍根 오리건주 상원의원은 민주당의 론 와이든 연방 상원의원에게 밀려 낙선.그러나 당초 예상했던 차이가 크게 좁혀져 다소 위안이 되기도. 한편 중국계로 2차례 상원 진출을 노렸던 공화당의 매트 퐁 후보도 바버라 복서 민주당 상원의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 아시아계 후보들에게는 쓰라린 선거가 됐다.장녀가 힐러리의 남동생과 결혼한 바버라 복서는 이번 선거에서 ‘표’를 의식해 어쩔 수 없이 클린턴의 성추문을 공격해야 했다고. ○…최대 접전지로 관심을 끌었던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찰스 슈머 후보가 승리.무려 18년간 막강한 상원자리를 독차지해온 공화당의 알폰스 다마토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한편 최초의 여성 흑인 상원의원이자 클린턴의 측근인 민주당의 캐롤 모슬리 브라운 의원은 재선에 실패.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서 ‘몸뚱어리’라는 별명을 가진 프로 레슬러 출신의 군소정당 후보인 개혁당 후보로 나선 제시 벤추라가 공화당의 놈 콜먼 세인프폴 시장과 민주당의 허버트 험프리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을 꺾고 당선돼 눈길. 브루클린 파크의 전직시장이기도 한 벤추라의 당선에는 재미있는 광고와 우렁렁한 목소리가 한몫 단단히 했다는 후문. 또 위스콘신주 하원 선거에서는 사상 최초로 레스비언 의원이 탄생. 레스비언인 민주당의 태미 볼드윈 후보는 55%를 얻어 45%에 그친 공화당 후보에 낙승.
  • 내일 실시 美 중간선거 점검

    ◎정책대결 실종 비방전 난무/공화,TV광고 물량전… 성추문 부각/민주,깅리치에 집중포… 자금난 부심 미국 중간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오면서 정책대결보다는 상호비방이 난무하고 있다. 선거 광고에 큰 비중을 두는 쪽은 공화당측.넉넉한 선거자금으로 TV에 광고 물량전을 펴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 TV광고에서는 성추문을 죽 설명하고는 “클린턴을 표창하기 싫으면 공화당에 투표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민주당측은 화살을 차세대 대권주자로 꼽히는 깅리치 하원의장에 집중시키고 있다.깅리치 하원의장이 클린턴을 헐뜯는 광고를 만들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앨 고어 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깅리치의 계획이란 개인적 비난뿐이며 궁극적으로 개인 파멸의 정책”이라고 공격을 폈다.특히 클린턴 성추문 공격에 맞서 “공화당이 생각하는 것이라곤 조사와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 뿐이다”고 반박하고 있다. 민주당측의 선거 광고전이 유권자들을 설득시키고 있는 지는 미지수다.상대적으로 선거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라디오 광고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선거 광고의 성과에 대한 회의는 공화당측도 가지고 있는 것같다. 유권자들은 이미 지나친 상호비방에 식상해 있기 때문이다. ◎도박업계 750억원 뒷돈 제공/정당·후보들에 거액 정치자금 헌납/도박반대자 낙선·업계홍보 열올려 【뉴욕 연합】 미국의 도박업계가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이번 중간선거에 무려 8,500만달러(750억원)의 정치자금을 썼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신문은 도박업계가 도박의 중심지인 네바다주를 넘어 다른 지역에도 돈을 뿌리고 있으며 선거를 앞두고 공화,민주 양당 정치인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자금은 정당 및 후보에게 정치헌금을 주는 이외에도 도박에 반대하는 후보의 낙선운동,중간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도박업에 대한 주민투표에서 업계 이익보호를 위한 광고비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 연구단체는 카지노 업체들이 올들어 10월 중순까지 출마자와 정당에 기부한 정치헌금만도 490만달러에달하며 이중 상당액이 공화당측에 흘러들어갔다고 밝혔다. 미국 의회의 ‘도박영향 연구위원회’ 제임스 돕슨 위원은 “양당 모두 도박업계의 정치헌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도박업계의 워싱턴 정가에 대한 영향력은 막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도박에서 벌어들인 ‘검은돈’이 정계와 유착,의회를 더욱 좌우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커가고 있는 것이다.
  • 의원 면책특권 악용땐 처벌/與圈

    ◎자체징계 강화·관련법 개정 적극 검토 여권은 1일 일부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면책특권을 이용해 근거없는 폭로를 하고 있다고 보고 면책특권 악용 방지 대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여권은 이에따라 의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발언 등에 대해서는 국회 윤리위원회 차원의 자체 징계를 강화하는 한편 면책특권에 관한 외국의 사례를 수집해 관련법 개정 등 제도적 보완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민회의 고위 당직자는 “일부 의원들이 단순한 시중 루머를 근거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질의와 발언으로 악용하고 있다”며 “의원들의 무책임한 원내발언은 물론 각종 선거에서 자행되고 있는 흑색선전도 정치불신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엄중히 처벌하도록 관계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직자는 “아직 사법처리 선례는 없으나 국회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이라 할지라도 허위사실로 개인의 명예를 명백히 훼손시켰을 때는 사법처리가 가능하다는게 지금도 헌법학계의 통설“이라고 밝혔다. 정치개혁 참여연대 등 일부시민단체들도 이날 “대의민주주의 활성화라는 면책특권 고유의 역할을 악용하는 의원들에 대해 16대 총선부터 합법적 낙선운동을 보장하는 선거법 개정을 국회와 관계당국에 청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면책특권과 책임성/국감 취재수첩

    정치인의 생명은 ‘신뢰성’에 있다.더욱이 국민의 대표로서 국정을 다루는 의원들로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치적 신조로 삼아야 한다.하지만 요즘의 국정 감사장에서는 정치인의 제1 수칙이 곳곳에서 무너지는 느낌이다.‘면책특권’을 앞세워 무책임하게 쏟아져 나오는 한건주의 폭로성 발언들이 바로 그런 예다. 국감 초에 터진 ‘YS 1,000억원 비자금조성의혹’(재경위 鄭漢溶 의원·국민회의)과 최근 ‘朴智元 청와대공보수석,洪仁吉 전 의원으로부터 2억원 수수설’(법사위 洪準杓 의원·한나라당)이 대표적이다.鄭의원과 洪의원은 고소를 당하거나 당할 처지에 놓여있다.특히 洪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 상고심이 계류중이다.어찌보면 ‘시한부 의원’이어서 더욱 신뢰도가 떨어진다. 두 의원은 현행법상 사법처리가 어려운 ‘면책특권’을 방패막이로 악용한 면도 있다.그동안 많은 원내발언들이 면책특권에 숨어 특정인의 명예훼손으로 악용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면책특권은 국민의 대표로서 입법활동과 ‘행정부 견제’라는 의회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라는 ‘국민적 합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반면 지금 국감장에서 진행되는 상황은 어떠한가.자신들의 엄청난 특권을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한건주의나 정치적 공세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때문에 면책특권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명예훼손의 경우 허무맹랑한 설이나 루머를 근거로 했다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 헌법학계의 다수설이다.법을 떠나서도 면책특권에 걸맞은 책임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姜倞求 변호사(40)는 “원내 발언에 대해 사법처리가 어려운 만큼 정치적 책임과 반드시 연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일부 시민단체들도 “무책임한 의원들에 대해 합법적인 낙선운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 吳誠洙 前 성남시장 수뢰 구속

    ◎재임중 업체서 억대 받아… 청백리 소문 퇴색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27일 상가 인허가 과정에서 억대의 뇌물을 받은 吳誠洙 전 성남시장(63)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吳전시장은 시장으로 재임중이던 지난 91년 5월 시장관사로 찾아간 성남상가개발(주) 회장 全길동씨(60)로부터 수정구 신흥동에 조성중인 성남중앙지하상가 인허가 및 상가공사 등과 관련해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1,000만원을 받은 것을 비롯,95년 9월까지 13차례에 걸쳐 모두 1억6,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또 吳씨를 연행 조사한 26일 밤 吳씨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양도성 예금증서 12장(액면가 합계액 5억원)을 압수,출처를 조사하고 있다. 한때 청백리를 상징하는 잠롱 전방콕시장을 본떠 ‘한국의 잠롱’으로 불리기도 했던 吳전시장은 지난 91년 관선시장을 거쳐 95년 민선시장에 당선됐으나 올 6월말 지방선거에 낙선한 뒤 분당지역 국회의원 출마를 꿈꿔왔다.
  • 호주 이민정책 체계 갖추자/金三五 韓·濠지역문제연구소장(발언대)

    호주에 대해 몰라도 백호주의(White Australia)는 알려져 있다. 폴린 핸슨이란 초선 여성 하원의원이 일국가당(One Nation Party)을 만들어 호주는 한 민족,한 문화의 단일국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의 인종주의 이미지가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일국가당은 몇달 전,퀸즐랜드주 의회선거에서 11개 의석을 차지하며 주요 야당으로 일약 등장,호주가 백호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이 여세를 몰아 핸슨당은 지난 10월 3일에 있었던 연방의회 총선거에서 대부분 지역구에서 입후보자를 내세웠다.결과는 참패였다.상원의원으로 단 한 사람이 당선됐을 뿐이었다.핸슨 자신도 낙선했다. 이곳 아시안 커뮤니티들은 안도의 숨을 돌렸다.어떤 사람은 일국가당의 와해를 점치기도 한다.그러나 그것은 매우 안일한 생각이다.핸슨세력의 패배는 호주 주류층이 편협한 인종주의 이미지가 국제시장에서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그러나 군소정당이 전국적으로 유권자의 8%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호주와 캐나다는 국토에 비해인구가 적다.출생률의 저하와 인구의 고령화 때문으로,안보차원에서도 인구증가가 절실히 필요하다.호주가 이민을 받는 것은 자선이 아니다.그런데 왜 아시아 이민을 대폭 못받는가? 유권자들의 정서가 문제이다.경제에 대한 깊은 지식과 국제감각이 없는 서민들,특히 노인층은 왜 이민이 필요한지를 모른다. 이민과 인종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한국의 학자,정책연구가,실무자에게 제언한다. 1.작년 핸슨이 반(反) 아시아 발언을 하고 다닐 때 이임하게 된 호주 한국대사가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기자들로부터 논평을 요청받았다.그런데 엉뚱하게도 ‘호주는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대답,교민들의 빈축을 샀다. 이는 한국외교의 관행이다.반면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정부와 단체들은 핸슨주의를 비난했고,대만의 한 회사는 투자선을 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우리만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2.국가정책으로 백호주의는 1960년대에 끝났다.어느 나라도 인종차별을 정책으로 내놓는 나라는 없다.그러나 인종차별과 같은 미묘한 문제는국민의식 문제이다. 3.호주의 인구 1,800만중 25%가 비영국계 이민자이다.아시아인 비율은 6% 정도.호주의 아시아인 이민 비율은 연 30%로 높아졌으나 한국이민은 아직 미미하다.호주에서 한국인 불법체류자 문제가 심각한 것이 바로 이 이유다.한인사회의 성장없이 한인들의 성공은 불가능하다.이민으로부터도 국익을 찾겠다면 체계적인 연구와 외교교섭이 있어야 한다.
  • 구청장과 17살 연하 주사보 화촉/부산 서구 김영호·정인옥씨

    ◎카톨릭신자모임서 만나 밀애 金永五 부산 서구청장(58)이 17살 연하의 공무원과 백년가약을 맺는다.반려자는 시 보건위생과 간호주사보(7급)인 鄭인옥씨(41). 두 사람은 24일 오후 2시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 송도성당에서 화촉을 밝힐 예정이다. 金구청장과 鄭씨는 올초 가톨릭신자 내무공무원들의 모임인 ‘등대회’에 참여하면서 사귀기 시작해 결혼에까지 이르게 됐다. 金구청장은 관선 서구청장과 부산시의원을 지냈고 지난 95년 초대 민선 서구청장 선거에서 낙선했으나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재도전해 당선됐다.
  • 조계종/총무원장 선거 4파전 예고

    ◎새달 12일 투표 앞두고 잇달아 출마 표명/월주­‘현직’잇점 최대활용… ‘3선 출마’ 걸림돌/설조­송 원장 출마저지 다른 후보와 연대 모색/월탄­원로들 지지바탕 4년전 패배설욕 별러/지선­오랜 재야활동… 진보적 승가단체서 후원 불교 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 선거일이 11월12일로 확정됐다.그러나 4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송월주 현 총무원장의 3선출마를 놓고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뜨거운 선거열기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총무원장 후보 출마를 직간접적으로 밝힌 사람은 송월주 총무원장을 비롯,설조 전불국사 주지,월탄 전법주사 주지,지선 백양사 주지 등 4인. 한편 송원장의 3선 출마에 대해서는 ‘3선 반대 범불교도 연대’와 ‘3선 추대위원회’가 발족,대립하고 있다. 올해초 기자회견에서 “종도들이 판단할 일”이라며 일찌감치 출마의사를 내비친 송원장은 ‘현직’이라는 프리미엄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선거일이 임박하면 단기전으로 대세론을 확산시키면서 승리를 굳힌다는 전략이다. 송원장은 또 “재임기간중 종단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얻고 있지만 “개혁정신이 실종됐다”는 진보적인 승가단체들의 비판과 ‘3선 기도’라는 일부의 주장(80년 4월 총무원장에 선출되었으나 11월 신군부에 의해 강제 퇴임당함)이 걸림돌이다. 8월 하안거 해제와 함께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미연제’(邇蓮齋)란 이름의 사무실을 낸 설조스님은 ▲교구중심제 강화및 총무원 조직 축소 ▲종단의 법통확립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설조 스님은 “송월주 원장은 비구계 수지 사실이 없는 무자격자인데다가 3선을 금지하는 종헌에 따라 출마할 수 없다”고 주장한 뒤 “송원장의 출마 저지를 위해 다른 후보들과 연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3번째 도전하는 월탄 전 법주사 주지는 4년전 낙선후 한철도 빼놓지 않고 선방에서 안거에 참여,수좌들의 지지를 넓혀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최근 불교 집안 큰일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월탄 스님은 “원로와 도반들의 출마권유를 받고 있다”며 “송월주 원장의 이력시비나 위헌논란을 떠나 종단화합을 위해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도록 건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종단안팎에서 “이젠 월탄이 한번 할 때도 됐다”는 여론이 많다. 후보자들 중 가장 연하인 백양사 주지 지선 스님은 최근 민족문화수호를 위한 교구본사주지모임의 2대 회장에 선출된 이후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이미 여러차례 출마의사를 밝혔으나 공식적인 출마선언은 자제하는 입장.오랫동안 재야단체에서 활동해 진보적인 승가단체의 지지가 있으며 김대통령과 친분도 무시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 21세기 지도자/知詵 스님·백양사 주지(서울광장)

    독일 전역에 걸쳐 치러진 총선거에서 사민당이 기민당을 노르고 승리하였음을 보도를 통해 접하였다.16년동안 독일 총리로서 비스마르크에 비교되던 콜 총리가 그 영광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물러났다. 언론을 통하여 보도된 내용을 접하면서 독일 국민들 모두가 승리하는 선거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를 생각해 본다.콜 총리는 89년 독일 통일을 이끌었고,21세기 유럽을 만들어가는 유렵연합 건설의 핵심 인물이다.선거에서 콜 총리의 업적을 뒤로한 채 사민당은 승리하였고,콜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조차 낙선하는 수모를 겪었다.(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의해 의원직은 계속 유지) 독일이 1,2차 대전의 패전 후에도 세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국가로서 건재한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느낀다.아무리 업적이 뛰어나고 그가 갖고 있는 카리스마가 비스마르크에 비유된다 할지라도 새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음을 독일 국민들은 판단하였고,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무릇 선거를 통해 여야간의 정권이왔다 갔다하고,좌우를 넘나드는 이념의 스펙트럼이 유연할 때만이 국민들은 시대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질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독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할 것이고,통일 이후 통일국가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강을 건널 때의 선장과 강을 건넌 이후 고지를 향하여 진군하는 지도자가 다르듯이 독일 국민들은 통일 이라는 강을 건널 때는 콜 총리를 선택하였고,강을 건넌 이후 21세기라는 고지를 향할 때는 사민당의 슈뢰더를 선택하였다.이것은 독일만의 바람이 분명아니다.멀리는 미국이,가까운 시기에는 프랑스·영국이 21세기로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분단 이후 최초로 여야간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21세기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아니 지도력이 검증된 인사가 “나 여기있소”하는 자신감이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물밀 듯 밀려오고 있다. ○화합정신이 제1덕목 통일을 준비하고,21세기를 향한 지도자의 첫째 덕목은 화합이다.부처님께서도 나라를 이끌어가는 첫째 덕목을 주변사람들과 항상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려 하는가,어른들을 공경하고 약한 자를 배려하는가 등의 화합을 주요 골자로 하셨다.분단 조국의 총체적 모순속에서 대립과 분열을 종식시킬 수 있는 고민과 실천속에 미래를 이끌어갈 대안의 가치를 갖춘자만이 국민들을 뭉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덕목은 젊음이다.이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수십년을 갈등과 분열의 토대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미래를 향한 가치가 도대체 나올래야 나올 수 없다. 지금 이땅에서 분단과 지역감정을 양날개로 하여 온갖 출세를 위해 추하게 살아온 사람들,좋은 세상 만들자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주던 사람들은 참회하고 반성해야 한다.먹을만큼 살면 그만이지 무얼 더 해먹겠다고 난리들인지…?
  • “경악”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여권 반응

    ◎“한나라 수뇌부 몰랐을지 의구심”/이회창 총재 겨냥 공세수위 높여 여권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 비선조직의 판문점 총격전 사주 의혹과 관련,경악을 감추지 못하면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특히 지난 정권 때부터 청와대에 근무하다 지난 6월 퇴직한 민정비서실 吳靜恩 행정관 이름이 등장하자 놀라움을 표시했다. ▷청와대◁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수뇌부를 겨냥하면서 진상 파악에 초점을 맞췄다. 朴智元 대변인은 “참으로 놀랍고 비통한 심정까지 든다”며 “대선 당시 한나라당 수뇌부가 몰랐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몰아붙였다. 특히 朴대변인은 지난 3월 초 吳씨를 불러 96년 4·11 총선 당시 부천 소사에 출마한 자신을 낙선시키려는 흑색선전물 제작에 관여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는 “모두 용서할테니 사실대로 얘기해보라”며 다그쳤으나 吳씨가 부인했다고 전했다. 李範觀 민정비서관은 “본인이 사표를 냈다”고 말해 불똥이 청와대로 튀는 것을 차단했다. 그러나 吳씨가 사표를 내기 전 안기부에서 J그룹 고문 韓成基씨를 수사하면서 吳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자민련◁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북풍공작의 절정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라며 “한나라당 李총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인지 여부를 해명하고 북측과 접촉한 인사들이 李총재와 어떤 관계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鄭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한나라당 의원과 안기부 간부,후보 비선조직 등 여권인사와 공안기관이 총동원돼 벌인 범죄행위로서 국민과 역사앞에 고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련 邊雄田 대변인도 “李총재는 세도사건 의혹에 이어 적과의 내통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국민의 지도자나 야당의 총재로 있을 자격이 없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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