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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희연 아들 아고라 “아버지,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 고승덕 딸 “교육감 안돼”

    조희연 아들 아고라 “아버지,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 고승덕 딸 “교육감 안돼”

    조희연 아들 아고라 “아버지,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 고승덕 딸 “교육감 안돼” 서울시 교육감 후보 자녀들의 글이 화제다. 조희연 후보의 아들들은 아버지 응원을, 반대로 고승덕 후보의 딸은 아버지의 낙선을 바라는 글을 올려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29일 조희연 후보 아들 조성훈 씨는 다음 아고라 정치토론방에 올린 게시글에서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아버지로서의 조희연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조씨는 ”인간으로서의 조희연은 고통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어느 순간에서나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 “제가 20년 넘게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지켜온 바로는, 다른 것은 모르지만 적어도 교육감이 돼 부정을 저지르거나 사사로이 돈을 좇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정반대로 고승덕 후보의 장녀라고 밝힌 고희경(캔디 고)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에게(To the Citizens of Seoul)’라는 글을 통해 아버지의 낙선을 호소했다. 고씨는 ”고승덕 후보는 자신의 자녀의 교육에 참여하기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감 후보로서 자질이 없다. 정확한 진실을 서울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고승덕 후보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갖고 “제 부덕의 소치”라고 사과했다. 네티즌들은 “조희연 아들, 고승덕 딸 너무 대조적이다”, “조희연 아들, 고승덕 딸 뭐지”, “조희연 아들 대단하네. 고승덕 딸 마음 속에 응어리가 많은 듯”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희연 아들 “아버지는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 고승덕 딸 “교육감 당선 안돼”

    조희연 아들 “아버지는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 고승덕 딸 “교육감 당선 안돼”

    서울시 교육감 후보 자녀들의 글이 화제다. 조희연 후보의 아들들은 아버지 응원을, 반대로 고승덕 후보의 딸은 아버지의 낙선을 바라는 글을 올려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29일 조희연 후보 아들 조성훈 씨는 다음 아고라 정치토론방에 올린 게시글에서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아버지로서의 조희연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조씨는 ”인간으로서의 조희연은 고통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어느 순간에서나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 “제가 20년 넘게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지켜온 바로는, 다른 것은 모르지만 적어도 교육감이 돼 부정을 저지르거나 사사로이 돈을 좇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정반대로 고승덕 후보의 장녀라고 밝힌 고희경(캔디 고)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에게(To the Citizens of Seoul)’라는 글을 통해 아버지의 낙선을 호소했다. 고씨는 ”고승덕 후보는 자신의 자녀의 교육에 참여하기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감 후보로서 자질이 없다. 정확한 진실을 서울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고승덕 후보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갖고 “제 부덕의 소치”라고 사과했다. 네티즌들은 “조희연 아들, 고승덕 딸 너무 대조적이다”, “조희연 아들, 고승덕 딸 뭐지”, “조희연 아들 대단하네. 고승덕 딸 마음 속에 응어리가 많은 듯”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朴心은…

    朴心은…

    김기춘 대통령실 비서실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권 내부 깊숙이 번지며 청와대를 향한 여권의 압박도 점점 가중되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충남지사 후보는 30일 성명에서 “정부의 잘못으로 채 피어 보지도 못한 어린 영혼들이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스러져 갔다”면서 “이 역사적 비극 앞에 최소한 대통령 보좌라는 총체적 책임을 지고 있는 비서실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 빼고, 국정 운영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분은 다 물러나야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광역단체장 후보이자 ‘박심’(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받고 있는 인사 가운데 김 실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한 것은 정 후보가 처음이어서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앞서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과 홍일표·김성태·이철우 새누리당 의원도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김 실장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특히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 낙마 이후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의 입장도 김 실장 사퇴 쪽으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하며 눈물의 사과를 했고,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등이 물러난 상황에서 김 실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편으로는 여권에 불리해진 선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김 실장 사퇴 카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청와대의 고심은 깊다. 국무총리가 공석인 상황에 비서실장까지 공석이 되면 국정을 운영하는 데 박 대통령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차기 총리 후보자를 놓고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여권 안팎에서는 “총리 제안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언급과 함께 몇몇 인물들의 실명도 거론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유력한 당권 주자인 김무성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부산 영도 유세에서 “여러분, 말씀 하나 드리겠다”고 운을 뗀 뒤 “저보고 총리 하라고 한다. 하지만 저는 영도를 지키고 새누리당 대표가 되어 영도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에 정치권은 “그가 청와대로부터 총리 제안을 받은 사실을 폭로한 것 아니냐”며 들썩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 측은 “친박계 의원들이 김 위원장에게 ‘총리 하라’고 얘기한 것을 언급했을 뿐 청와대로부터 공식 제의를 받은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전당대회 출마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이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이와 함께 “김문수 경기지사도 청와대로부터 총리 제안을 받았지만 아직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정치권에 나돌았다. 그런가 하면 원로급 총리설과 함께 최병렬 새누리당 상임고문도 인사 검증 동의서를 제안받았다는 설이 나왔다. 국회의장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도 풍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강운태·이용섭 광주시장 후보 여론조사 결과 통한 단일화 놓고 공방

    강운태·이용섭 광주시장 후보 여론조사 결과 통한 단일화 놓고 공방

    강운태·이용섭 광주시장 후보 여론조사 결과 통한 단일화 놓고 공방 무소속 강운태·이용섭 광주시장 후보가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단일후보를 선정하기로 한 가운데 윤장현 후보 측이 “명분 없는 야합”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강운태 후보 측은 “여론조사 결과를 통한 광주시장 후보 단일화는 광주시민의 요구”라고 반박하는 등 공방이 일고 있다. 윤장현 후보 측 이광이 대변인은 25일 논평을 내고 “가치도 철학도 다른 두 사람의 단일화는 오직 권력에 대한 탐욕일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운 필설로 서로 헐뜯고 물어뜯고 했던 것이 엊그젠데 이제 와서 표정을 바꾸고 환심을 사려는 것은 광주시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말했다. 이광이 대변인은 강운태 후보에 대해서는 “4차례의 탈당과 (광주시장 재직 당시 시청이) 5차례의 압수수색을 당해 광주의 자존심을 짓밟은 장본인”이라고도 했다. 이광이 대변인은 이용섭 후보에 대해서는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청와대에서 녹을 먹은 자 아닌가, 당의 이름으로 권력의 양지만을 좇지 않았는가”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강운태 후보 측 조경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시민 70%가 원하는 단일화가 야합이냐”고 반박했다. 조경완 대변인은 “강운태·이용섭 후보는 추악한 밀실 야합으로 공천된 후보를 낙선시키고 광주의 자존심을 되살리라는 시민요구에 따라 단일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주요 언론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강운태·이용섭 후보 단일화 요구가 70%에 육박하는데 그렇다면 광주시민은 야합을 주문하고 있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조경완 대변인은 “두 사람의 단일화는 광주시민을 모독한 안철수를 심판하고 민주성지의 정치적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라면서 “윤장현 후보는 광주시민의 심판을 기다리고 시민의 참정권을 무시한 오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궁에 울려퍼지는 우리 가락

    고궁에 울려퍼지는 우리 가락

    고즈넉한 고궁의 품에 안겨 우리 음악을 만끽한다. 경복궁·창덕궁·덕수궁·종묘를 무대로 하는 ‘고궁에서 우리음악듣기’가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린다. 24~25일 경복궁 집옥재에서는 왕과 대신들의 행차에 따르는 행진 음악 ‘대취타’와 조선시대 유쾌한 놀이 문화를 담은 궁중무용 ‘포구락’을 감상할 수 있다. 창덕궁 낙선재음악회(25일~6월 15일)에서는 정희왕후, 김만덕, 경빈 김씨 등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조선 여인들의 이야기에 산조, 가곡, 판소리, 궁중무용 등 풍류를 더한다. 황병기·안숙선 명인과 국립국악원이 공연하고 배우 유인촌, 임성민 전 아나운서가 이야기를 이끈다. 매회 티켓 오픈 10분 만에 매진되는 ‘창덕궁 산책’(25일~6월 22일)은 역사 인문학 강의로 꽉 채웠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실장 등이 ‘국왕과 세자의 사랑 이야기’, ‘정조와 세종 가운데 누가 더 훌륭한 왕이었을까’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효명 세자가 만든 춤 ‘춘앵전’, 대금독주 ‘요천순일지곡’ 등이 어우러진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홈페이지(www.kotpa.org)에서 매회 40명씩 신청을 받는다. 덕수궁 함녕전에서는 애니메이션 동화와 퓨전 국악이 어우러진 ‘동화음악회’(31일~6월 15일)가 열린다. 무료. (02)580-3275.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제주도지사] 원희룡 vs 신구범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제주도지사] 원희룡 vs 신구범

    ■ 원희룡 후보, ‘島心’ 택한 중앙통 원희룡 새누리당 제주지사 후보는 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했다. 2007년 대선과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이 아닌 고향 제주에 출마하자 대권을 향한 우회로를 택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원 후보는 “중앙 정치에서 쌓은 정치적 자산을 제주를 먼저 변화시키는 데 활용한 뒤 나중에 국가 발전에 매진해 달라는 도민들의 염원에 따른 것”이라는 논리로 응수했다. 원 후보는 1964년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쌀밥 구경을 하기 힘들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그의 부모는 고무신 장사, 잡화상, 농약방, 서점 등을 운영하다 망하기를 반복하며 빚 독촉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원 후보는 어릴 적 리어카 바퀴에 오른쪽 발가락이 끼어 거의 잘릴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때 발가락 2개가 뒤틀리는 장애를 얻어 ‘군 면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원 후보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 ‘공부’라고 믿었다. 변변찮은 책상 하나 없어 사과 상자를 책상 삼아 공부했다. 여건은 열악했지만 그의 학업 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1982년 제주제일고를 졸업한 원 후보는 학력고사 전국 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화제가 됐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가하면서 6개월간 유기정학을 당하는 등 잠시 학업에 소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스타일의 원 후보는 1992년 사법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원 후보의 학창 시절 공부 실력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시험 성적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원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우스개가 따라붙을 정도다. 원 후보는 거대한 사회악과 싸워 보겠다는 각오로 법원이 아닌 검찰행을 택했다고 한다. 1995년부터 4년간 서울지검·수원지검·부산지검 검사로, 이후 2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 시점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동시에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선택을 놓고 고민하던 그에게 운동권 출신으로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던 김부겸 전 의원(현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넘치는 민주당에 한 방울 더 보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한나라당행을 권유했고 원 후보도 “보수 정당을 개혁하는 게 한국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더 크겠다”는 판단 아래 제의에 응했다고 한다. ‘우등생 중의 우등생’ 출신이었던 원 의원은 초선 때부터 정치권의 기대를 모으면서 ‘잘나가는’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이회창 당시 총재로부터 “당의 개혁을 주도해 달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다. 재선 의원이었던 2004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시 3선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40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최고위원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이어 당 사무총장 등의 주요 요직을 거쳤으며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당시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2011년 6월 전당대회에서는 2012년 19대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쳤고 4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다. 그러나 그해 10월 재·보선 때 일어난 디도스(DDoS)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유승민, 남경필 의원과 함께 최고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원 후보가 고향인 제주로 ‘정치적 회귀’를 감행한 것은 ‘첫 제주도 출신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결단이라는 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해석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신구범 후보, ‘安心’ 품은 제주통 “신구범은 제주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선한 싸움꾼입니다.”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제주지사 후보는 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신 후보는 1942년 제주 북제주군(현 제주시) 조천읍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서울 용산역에서 손님을 끄는 호객꾼(삐끼) 노릇을 하기도 했다. 제주 오현고를 나와 육사에 진학했으나 4학년 때 결혼하기 위해 중퇴했다. 육사 생도는 재학 중에 결혼을 할 수 없다. 신 후보는 낙향해 농사를 짓다가 1967년 독학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제주도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제주도 기획관, 지역계획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중문관광단지 개발 계획,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등의 지역 숙원 사업들을 해결했다. 1974년에는 6년간 제주도청 근무를 끝내고 중앙 부처인 농림부로 전근한다. 축산국장, 농업정책국장 등의 요직을 거쳐 기획관리실장에까지 올랐지만 공직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친·인척 가운데 일본 조총련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있던 탓에 공직 생활 초기에는 ‘신원 특이자’로 분류돼 승진에서 계속 누락되는 쓴맛을 봤다. 그는 이 같은 연좌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유학을 통해 역량을 강화한 그는 이후 주이탈리아 대사관 농무관으로 발령받았다. 이탈리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있어 농무관 겸 FAO 한국 측 교체수석대표로 활동하는 기회를 잡는다. 이는 농림부 축산국장에 오른 배경이 됐다. 축산국장 때인 1989년 말 한·미 소고기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은 그는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다. 당시 미국은 자국산 소고기 수입을 밀어붙였지만 그는 끈질긴 협상력을 발휘해 저지시켰고 축산농가와 축산업자들의 열렬한 환영과 지지를 받았다. 이 덕분에 그는 뒷날 축협중앙회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1993년 그는 관선 제주도지사로 금의환향했다. 1995년 첫 지방선거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임기 3년이던 첫 민선 제주도지사에도 올랐다. 그는 관선과 민선 도지사 4년 3개월간 제주도지사로 재임하면서 제주삼다수, 관광 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 교역, 제주세계섬문화축제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9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이던 국민회의(새정치연합의 전신) 경선에서 패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도지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2년에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축협중앙회장 때인 1999년 농·축협 강제 통합 입법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할복하기도 했다. 친환경 농축산물 매장 ㈜삼무(三無)를 설립하기도 했으나 ‘30억원 뇌물 수수’ 혐의로 그가 2년여를 감옥에서 보내는 사이 도산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 전 제주도 내에 퍼져 있는 ‘제주도지사 세대교체론’의 퇴진 대상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도지사선거를 겨냥한 신종 공작 음모”라며 출마를 단행했다. 국민회의를 탈당했던 전력과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이력들이 야권 후보로서의 대표성에 흠이 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신 후보는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 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 측 인사로 분류되는 그는 “낡은 정치판에 뛰어들어 원칙과 정의의 싸움을 불사하고, 밟히고 상처받으며 패배의 길을 감내한 정치적 경험을 가질 때 비로소 새 정치는 가능하다”는 논리로 호소하고 있다. 신 후보는 외교, 국방, 사법을 제외한 국가의 모든 권한을 제주지사가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는 완전 분권과 읍·면·동장은 주민자치의회를 구성해 자치의회에서 선출하는 완전 자치 시대를 열어 특별자치도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기본을 지키자] 정치, 공약을 지켜라

    [기본을 지키자] 정치, 공약을 지켜라

    이번 6·4 지방선거에서도 여야 가릴 것 없이 선심성 공약 남발과 재탕·삼탕 끌어온 정책들은 여전하다.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장밋빛 공약을 앞세워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지만 정작 투표가 끝나고 나면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던진 표의 향방에 대해 알 길이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 틀인 선거문화가 바로 서려면 일회성에 그친 ‘투표 심판’이 아니라 ‘공약 감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선거 이후에도 유권자들이 공약 이행 상황을 계속 감시하는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정치인의 기본은 유권자와 약속한 공약을 잘 지키는 것”이라면서 “하드웨어 측면에서 상향식 공천 정착으로 유권자들이 거짓말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다음 선거에서 응징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선거에 임박해서야 후보가 확정되는 현 선거 시스템으로는 공약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공약 이행실행 계획서를 통해 정치인들의 약속을 계속 감시할 수 있는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후보 공약에 대해 최소한의 검증이 가능토록 선거 준비 기간을 조정하고, 잘못된 공약을 내세운 후보에 대해선 낙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선거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당의 6·4 지방선거 공약을 살펴보면 공약 검증은 물론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여야 모두 안전공약을 급하게 전면에 내세우긴 했지만 새누리당은 퍼주기식 지방 사회간접자본(SOC) 공약이 태반이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재원 조달처가 불분명한 복지 공약들이 눈에 띄었다. 새누리당은 10대 공약 중 1번 공약으로 ‘대한민국 안전, 기본부터 제대로 챙기겠습니다’를 제시했다. 세부 공약으로는 ▲국가 재난안전관리 시스템 전면 개편 ▲안전 관련 잘못된 관행과 비리 철폐 ▲다중이용교통시설의 안전 대책 강화 등이 눈에 띈다. 세월호 사태에 대한 사후 대책으로 ▲퇴직 공직자 유관단체·협회 등 재취업 엄격 제한 ▲대형 재난에 대한 유형별 안전진단, 대책 마련 ▲노후 교통수단 운행 기준 강화 ▲노후학교 시설 긴급 개선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사고 이후 언론을 통해 나온 지적사항을 공약으로 급조한 티가 역력했다. 그러나 지역별 주요 공약을 살펴보면 ‘안전 관련’ 사항보다 SOC 관련 공약이 압도적이다. 새누리당은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별로 5개씩 80개의 지방공약을 내놨지만 안전 정책은 거의 없다. 그나마 80개 공약 가운데 17개(20%)만이 신규 공약이고 나머지는 대선 때 제시됐던 계속성 공약이거나 지역 SOC 공약이다. 당장 지역 유권자 표를 의식하다 보니 상업단지 인근 미니복합타운 확대, 신공항 건설 추진, 구도심을 살리는 도시재생사업 지원, 서울~세종 고속도로 건설, 해양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국책사업성 대형 공약들이 여전했다. 지역개발을 위해선 불가피하게 규제를 푸는 부분도 많아 전체적으로 안전 기조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났다.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판박이성 공약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신규 사업을 대폭 늘리기보다는 지난 총·대선에서 국민과 약속한 지역 공약이 빠른 시일 안에 차질 없이 추진되는 데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3일 ‘여유는 더해주고, 부담은 줄여주고, 안전은 지켜준다’는 뜻의 ‘더·줄·지’라는 제목의 생활 공약집을 발표했다. 우선 안전 공약으로 재난 발생 시 골든타임 내에 현장에 도착해 구조활동이 가능하도록 재난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키로 했다. 하지만 백화점 나열식에 그쳐 급조했다는 인상이 짙다. 법적·제도적 보완책 등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빠져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방안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의료 분야에선 간병서비스를 제공해 보호자가 필요 없는 병원을 전국적으로 확대, 간병 부담을 절감키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 후 도입한 서울 의료원의 ‘보호자 필요 없는 환자 안심 병원’을 모델로 했다. 소요 재원은 연간 약 3조 887억원으로 추산했다. 정부와 국민이 공동 부담하면 1인당 월 5520원을 부담하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건강보험 재정상황을 낙관적으로 본 추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 부문 최저임금을 30% 이상 인상하는 ‘생활임금제 도입’도 주요 공약으로 내놨지만 고용노동부로부터 위헌 논란까지 나왔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선거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4년간 27조원으로 추산했다. 주요 재원조달 방안은 재정지출 절감, 재벌·대기업 법인세 과세 정상화, 부자 감세 등 여야 논란으로 현실화가 높지 않은 방안이 대부분이다. 광역단체장 후보 공약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진다. 면밀한 사전검토나 관계부서 협의 없이 졸속으로 먼저 발표하고 보는 방식이 많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경전철 사업이 도마에 올랐다. 박 시장은 자체 용역조사 뒤 경전철 사업을 발표했지만, 국토교통부에선 관계 법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해 1월 승인을 거부하면서 유관기관 협의 없이 사업안만 무리하게 발표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가 발표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개발지역 지정 해제 후 5개월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졸속 개발 공약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후보 간 경쟁 과열로 ‘공약 베끼기’ 논란도 불거졌다. 특히 야권의 경기지사 경선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새정치연합 예비후보였던 원혜영 의원이 ‘버스공영제’를 내세우자 후발주자인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무상버스’를 들고 나와 베끼기 논쟁이 뜨거워졌다. 김 전 교육감은 무상버스 공약이 ‘공짜 버스’ 논란으로 비화돼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 경선에서 김진표 의원에게 패배했다. 경기북부 평화특별자치도 공약 역시 김진표 후보와 예비후보 원 의원,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간에 서로 ‘내 공약’ 논쟁을 빚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후보자 인터뷰] “육아에서 청년까지 ‘엄마 편한 도시’ 만들 것”

    [후보자 인터뷰] “육아에서 청년까지 ‘엄마 편한 도시’ 만들 것”

    “2010년 낙선 이후 4년은 진지한 반성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주민이 옳다는 생각으로 주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약속합니다.” 20일 이해돈 새누리당 서울 서대문구청장 후보는 이렇게 운을 뗐다. 인터뷰 내내 담담한 어조였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 후보는 “2005년부터 5년간 부구청장, 구청장 권한대행을 하며 보람 있는 정책을 추진했다”며 “재개발·재건축 민원을 조율했고 맑은 물이 흐르는 홍제천·불광천,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서부 경전철 유치, 홍제고가도로 철거 등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민선 5기에 굵직한 변화나 대형 프로젝트를 찾지 못했다”면서 “특히 재개발·재건축 사업 진행 속도가 더뎌지며 지역발전을 지체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4년간 준비해 내놓은 2대 핵심 가치는 ‘착하게 살아도 손해 없는 구민’이다. 그는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이 그에 걸맞게 대우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우리들 문제는 항상 현장에 답이 있다(우문현답)는 생각으로 현장 중심으로 구정을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부구청장 시절 서대문구를 이끄는 주역은 구청장도, 간부도, 직원도 아닌 묵묵히 봉사하는 단체와 주민이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는 “희생, 봉사, 노력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짜 힘”이라며 “그들을 보며 ‘참 착하게 사는구나’라고 느꼈고 구청장에 당선된다면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손해보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핵심 가치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목표를 5개 잡았다. ▲육아에서 청년에 이르기까지 걱정 없이 자녀를 키우도록 돕는 ‘엄마 편한! 내 사랑 서대문’ ▲시니어센터 건립 등 어르신 일자리와 복지를 위한 ‘어르신 흐뭇! 내 고향 서대문’ ▲주민자치센터를 일자리 연결 허브로 만들어 전문변호사와 노무사를 통해 사후 관리하는 ‘일자리 많은! 내 희망 서대문’ ▲한강~홍제천~안산~인왕산~북한산을 잇는 서대문 둘레길을 조성하는 ‘문화중심! 내 행복 서대문’ ▲북가좌동과 마포구 상암동 간 연결 도로 개설 등 ‘살기 좋은! 내 자랑 서대문’이다. 끝으로 이 후보는 “당선되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과 30년 이상 공직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정직한 행정을 펼칠 것”이라며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삶의 모토에 걸맞게 나 하나로 인해 상처를 입는 주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대구시장] 권영진 vs 김부겸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대구시장] 권영진 vs 김부겸

    ■ ‘텃밭 혁신’ 非朴의 실험 권영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는 TK(대구·경북) 출신이긴 하지만 비박근혜계로 통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쟁쟁한 친박계 후보들을 제치고 후보로 선출된 것은 그 자체로 ‘반란’이라 할 만하다. 그는 이번 경선에서 ‘변화의 리더십’을 앞세웠고, 이에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호응하면서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권 후보는 1962년 경북 안동에서도 40여리 떨어진 남선면 원림리 양지마을에서 태어났다. 50~60가구가 모인 두메산골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닌 후 안동 시내로 전학하고, 고등학교는 대구로 진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낯선 유학생활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배짱을 몸에 익혔다. 그는 “촌놈 자존심을 지키려고 친구들과 싸움도 많이 하고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오기도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한 1980년은 ‘서울의 봄’이 한창이었고 캠퍼스는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다. 그 역시 공부보다는 길거리 시위로 최루탄 연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친구들이 사회·노동운동에 투신할 무렵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총학생회 초대 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전국 대학원 학생회 설립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좌파성향으로 흐르는 학생운동에 염증을 느끼게 됐고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공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게 됐다. 그는 1990년 통일부 사무관 공채로 입사해 1992년 남북 총리회담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정치권에는 1999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보좌역으로 입문했다. 그는 원외 신분이었지만 남경필·김영선 의원 등 초선 의원들과 함께 한나라당 소장파 그룹 ‘미래연대’를 결성해 초대 사무총장을 맡는 등 리더십을 보였다. 당시 그가 영입했던 이들 중에 원희룡, 오세훈 등 훗날 쟁쟁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들도 끼어 있었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 보좌역으로 임했던 2002년 대선에서 패배의 고배를 든 뒤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탄핵 역풍이 매서웠다. 그는 서울 노원을에서 선전했지만 1.9% 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그는 도약의 계기를 맞는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비서실장으로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사석에서 오 시장이 “정말 비싸게 모셔온 부시장”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그는 부시장직을 끝까지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부시장직을 맡아서는 자원회수시설 광역화, 용산부지의 자연생태공원 보존 등의 실적을 남겼다. 18대 총선에서 노원을에서 당선된 뒤 초선들의 쇄신 모임인 ‘민본 21’ 간사를 지냈다. 비박계였지만 합리적 성향으로 한나라당 재창당 위기 때 박근혜 대통령과 쇄신파 간 만남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19대 총선 때 당시 민주당 우원식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패배했지만 기획력을 인정받아 2012년 대선 때 여의도연구소 상근 부소장에 임명된다. 이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기획조정단장 등을 맡으며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지난해 암중모색 시기를 거친 그는 자신에겐 정치적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에서 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후 100여일 만에 후보 자리를 꿰차는 저력을 보였다. 권 후보는 자신의 경선 당선에 대해 “변화를 바라는 대구 시민들의 열망이 분출된 결과”라면서 “대구 시민·당원들이 친박·비박을 놓고 선택한 게 아니라 30년 넘게 발전이 지체된 대구를 바꿀 능력을 누가 갖고 있는지를 따져본 결과”라고 주장한다. 비주류인 그의 정치 실험이 성공할지 이번 선거에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불모지 꽃’ 두 번째 도전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낙선했지만 40%가 넘는 득표율로 기염을 토했다.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거둔 의미 있는 성과였다. 그에게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지역주의의 벽을 깨기 위한 두 번째 ‘겁없는’ 도전인 셈이다. 김 후보는 1956년 경북 상주군 상주읍 오대리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5대 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성화에 고교 2학년 때 결혼하고 이듬해 김 후보를 낳았다. 그는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대학 시절 대부분은 유신 반대 시위, 이에 따른 두 번의 실형과 제적으로 점철됐다. 입학 이듬해인 1977년 유신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을 당했고, 1978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았다.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복학했으나 다시 학생운동 지도부로 활동하다가 5·17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또다시 제적됐다. 그가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쯤이다. 신군부와 학생 간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서울대 학내는 재학생과 복학생이 온건파와 강경파 등으로 나뉘어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였다. 그는 당시 복학생 대표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모인 1만여명의 학생을 향해 “민주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우리 각자가 결단해 열어나가자”는 내용의 연설을 토해냈다. 그의 연설은 학생들이 상호 불신을 털어내고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명연설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2년 그는 민주화운동 동지이자 친구인 이용재 목사의 동생 이유미씨와 결혼했고, 딸만 셋을 낳으면서 ‘딸 바보’ 아빠가 됐다. 그의 둘째 딸이 탤런트 윤세인(본명 김지수)이다. 김 후보는 1988년 ‘반(反)지역주의 개혁정당’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현실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91년 민주당에 들어갔지만 민주당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으로 분당되면서 ‘꼬마 민주당’으로 세가 약화됐다. 김 후보는 꼬마 민주당에 남아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3김 청산, 지역주의 극복 등을 외치며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결성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참여와 한나라당 합류라는 두 개의 노선으로 갈라섰다. 김 후보는 한나라당 행을 택했고 고(故) 제정구 당시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군포를 물려받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김 후보는 이후 한나라당에서 소장 개혁파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와 대북송금특검법안 반대 등을 주장, 당내 강경보수파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결국 2003년 김영춘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독수리 5형제’라 불린 이들의 합류로 전국 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은 창당의 명분을 얻었지만 그에게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됐다.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김 후보가 혹독한 도전을 다시 시작한 것은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아성인 대구에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김 후보는 당시 “세 개의 벽인 지역주의, 기득권, 과거의 벽을 뛰어넘겠다”면서 민주통합당 간판으로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과 맞붙었지만 끝내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거둔 40.4%의 득표율은 새누리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김 후보는 지난 3월 대구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대구에서는 야당 시장의 당선이야말로 대박이 될 것”이라면서 “대구 출신 대통령에 야당 대구시장이라는 하늘이 내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기를 드러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부산시장 야권 후보 오거돈으로 단일화

    부산시장 야권 후보 오거돈으로 단일화

    6·4 지방선거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16일 부산시장 선거 야권 후보가 무소속 오거돈 후보로 단일화됐다. 김영춘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양보함에 따라 부산시장 선거는 새누리당 서병수 후보와 오 후보의 맞대결로 재편돼 결과 예측이 어려워졌다. 2004년, 2006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던 오 후보는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김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제 몰락할 대로 몰락한 사랑하는 부산을 위해, 새누리당 일당 독점 구조를 깨려고 제 팔을 잘라 내는 심정으로 나보다 지지율이 높은 오 후보에게 양보한다”면서 “오 후보를 범시민 단일 후보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오 후보는 “이 자리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시민의 뜻을 받은 아름다운 역사로 남으리라고 확신한다”며 “부산 발전과 대개혁을 위한 김 후보의 결단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오 후보는 당선되면 무소속 시장으로서 김 후보와 합의한 ‘원전 없는 부산’ 등 부산 대개혁을 위한 7가지 공동 실천과제 실현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김 후보가 단일화 논의 진통 끝에 결국 후보직을 포기한 건 지지율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부산MBC 여론조사에 따르면 후보 단일화가 되지 않을 경우 새누리당 서 후보가 지지율 35.7%로 1위, 오 후보가 23.2%로 2위, 김 후보가 10.7%로 3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야권이 오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지지율이 40.8%로 서 의원(39.3%)을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새누리 새 사무총장에 윤상현 의원

    새누리 새 사무총장에 윤상현 의원

    새누리당이 15일 신임 사무총장으로 재선의 윤상현 의원을 내정했다. 직전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윤 의원은 당내 친박근혜계 핵심으로 꼽힌다. 당 관계자는 “황우여 대표 체제가 끝났고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작업도 마무리돼 홍문종 사무총장이 물러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홍 사무총장은 보도자료를 내고 “16일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이 끝나는 대로 당 사무총장직을 사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재선 의원이 여당 사무총장직을 맡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윤 의원은 인천 남을이 지역구로 17대 총선 낙선 이후 18, 19대 내리 당선된 재선이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했고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 당 대변인과 원내수석부대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을 지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막냇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사위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 사위다. 충남 청양 출신인 이완구 원내대표와는 동향이기도 하다. 윤 의원은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 지도부가 구성되면 두 달 임기 사무총장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당무 전반을 관리하는 사무총장으로 미니총선급 7월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인천시장] 유정복 vs 송영길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인천시장] 유정복 vs 송영길

    ■유정복 후보는… 朴心 충만 ‘엘리트 리더’ 박대통령 그림자 수행 ‘행정의 달인’… “중앙 정부와의 소통 최대 강점”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인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은 친박근혜계 핵심으로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3선 정치인이다. 3선의 국회의원에 앞서 행정고시 출신으로 중앙부처와 지방 행정 관료 경험을 두루 쌓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2번의 장관직을 지냈다. 1957년 인천에서 태어난 유 전 장관은 인천 송림동 달동네와 간석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은 황해도에서 월남한 이산가족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TV에서 이산가족 상봉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펑펑 쏟았던 부모님 때문에 남북문제에 대해 남다른 의식을 갖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의 부모는 국경일 뿐 아니라 보통 날에도 늘 대문 앞에 태극기를 걸어놨다고 한다. 가난한 집의 7남매 중 여섯째인 그는 이런 집안 분위기 덕에 자연히 공직에 대한 꿈을 품고 자랐다. 선인중과 제물포고를 나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그는 22살 때인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엘리트 공무원의 길로 들어섰다. 강원도청과 내무부를 거쳐 1993년 경기도 기획담당관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지방행정 경험을 쌓게 된다. 이듬해 제33대 김포군수로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 기록을 세운 이후 1995년부터 제5대 인천서구청장, 초대 민선 김포군수, 1·2대 김포시장을 연이어 지내면서 전국 최연소 구청장·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리고 2004년 47세의 나이에 중앙정치 무대에 도전하며 변신을 시도한다. 당시 탄핵정국의 17대 총선에서 그는 경기·인천 지역에서 초선으로는 한선교 의원과 함께 단둘이 당선되며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 띄었고 이듬해인 2005년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박 대통령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박 대통령을 그림자 수행하며 명실상부한 ‘박근혜의 남자’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중국특사로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2010년 친박계 몫으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입각할 때에도 박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다. 2012년 대선 때는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장으로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국민생활체육회 회장, 국회 생활체육과 국민행복 포럼 대표 등으로 전국 직능단체들을 관리해 온 경험을 발판 삼아 대선 때 다양한 직능단체들의 박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엔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냈다. 유 전 장관의 조직 관리는 철저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신중하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일 처리와 무거운 입을 가진 성향 때문에 그를 아는 이들은 ‘박 대통령의 복사판’이라고들 말한다. 한편에선 유 전 장관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갖지 못하고 ‘박근혜의 남자’ 이미지에 기대는 것을 놓고 비판론도 나온다. “뼈를 묻겠다”던 경기도(지역구 김포)가 아니라 인천에서 출마한 데 대해 실망하는 경기 지역 유권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유 전 장관은 “인천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지방·중앙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 정부와의 소통력도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송영길 현 시장 체제에서 ‘부채, 부패, 부실로 얼룩진 인천’의 위기를 극복해 ‘대한민국 중심도시 인천’을 만들겠다”는 게 출마의 변이다. 특히 그는 “공항에서 서울로 가기 전 스쳐 지나가는 도시 인천이 아니라 경제활력 도시, 시민행복 도시를 반드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재난 대응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의 전임 장관으로서 세월호 참사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송영길 후보는… 야심만만 ‘차세대 리더’ 야권내 입지 탄탄한 차기 대선주자…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 포부 밝혀 새정치민주연합 인천시장 후보인 송영길 현 인천시장은 야권 내 입지가 단단한 차세대 대선주자로 꼽힌다. 1963년 2월 26일 아버지 송영수씨와 어머니 김광순씨 사이 4남 2녀 중 넷째아들로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1981년 광주대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떠꺼머리 촌놈’ 송영길은 대학에 들어가 급성장했다. 1984년 서울대 이정우, 고려대 김영춘 등과 함께 학도호국단 해체 운동을 주도한 뒤 초대 직선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투신한다. 1984년 12월에는 민정당사 점거농성사건으로 구속됐고, 제적됐다. 시대가 송 시장을 민주화운동 대열에 합류시킨 것이다. 투옥으로 군대는 면제됐다. 1985년 석방된 송영길은 인천 대우자동차 르망공장 건설현장에서 배관용접공 일을 시작하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7년에는 인천 부평에 노동자들의 인권탄압 ’관련 법률상담과 교육 등을 하는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를 열었다. 1987년부터는 운수노조 노보 상담실장을 하며 택시노동조합 운동을 시작했다. 1988년에는 사면 복권됐고, 대학교도 졸업했다.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택시·버스·화물자동차 운전기사 등 운수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들을 전개했다. 노동운동을 하던 1987년 대학 때부터 사귄 남영신씨와 결혼했다. 냉전시대의 종결은 송영길의 인생 항로를 틀게 했다. 1991년 동유럽으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간 송영길은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들이 연쇄적으로 붕괴된 현장을 지켜봤다. 그리고 재야 노동운동보다 제도권에 들어가 개혁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1992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한다. 2년간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 1994년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1997년에는 다시 인천으로 내려가 인권변호사로서 지역 운동에 뛰어든다. 1998년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인천시지부 정책실장 겸 고문변호사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는다. 1999년 6월 3일 국민회의 후보로 인천 계양구·강화군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6·3 보궐선거 출마 당시 연세대 선배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영수증 처리 없이 후원금 1억원을 받은 일로 홍역도 치렀다. 송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첫 당선됐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적극 참여했고 2004년 17대 총선 뒤 당내 재선그룹의 선두주자가 됐다. 18대 총선에서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지만 그는 인천 계양을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그는 2007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 차세대 주자로 입지를 다졌다. 2010년에는 인천시장직에 도전, 고전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당선돼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정치인 송영길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대선 도전 얘기가 나오지만 그는 “시장 재선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선 도전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때를 기다린다는 인상을 준다. 송 시장은 “정치는 힘든 일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말로가 대부분 아름답지 못했다. 대통령 다수가 퇴임 뒤 홍역을 치렀고, 일반 국회의원들도 존경 속에 은퇴한 경우가 드물다”면서 조심한다. 그러나 “함께 꿈꾸면 꿈이 현실이 된다”는 그의 정치관(觀)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도 한다. 송영길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 민주정치를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고 통일을 이루어, 대한민국이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데 조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6·4 지방선거 D-20] 판 커지는 7·30 재·보선… 거물급 복귀 무대 될 듯

    6·4 지방선거에 여야 현역 의원들이 대거 출마함에 따라 지방선거 이후 치러지는 7·30 재·보궐 선거가 ‘미니 총선’이라 할 만큼 판이 커졌다. 지방선거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제2의 중간평가 성격이 짙다 보니 여야 모두 거물급 인사를 총동원한 전면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현역 의원 7명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나선다.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정몽준 의원은 14일 의원직을 사퇴했다. 앞서 유정복(인천시장), 서병수(부산시장), 김기현(울산시장), 윤진식(충북지사), 박성효(대전시장) 의원은 일찌감치 사퇴서를 제출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진표(경기지사), 이낙연(전남지사) 의원이 본선에 진출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현역 의원은 후보 등록과 함께 의원직을 잃기 때문에 이들 9명의 지역구는 모두 보궐선거 대상이 된다. 여기에 지난 1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받은 이재영 전 새누리당, 신장용 전 민주당 의원 지역구 2곳의 재선거까지 추가하면 모두 11곳의 재·보궐 선거가 확정됐다. 지역도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이런 가운데 새정치연합이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을 광주시장 후보에 전략 공천한 데 반발해 탈당한 이용섭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다면 1곳이 더해지고, 현재 뇌물수수·선거법 위반 등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정두언·성완종 새누리당, 배기운 새정치연합,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에 따라 재·보궐 선거는 최대 16곳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여야는 재·보궐 선거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사력을 다해 임할 태세다. 현재 156석인 새누리당의 국회 의석 과반 붕괴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새정치연합은 여당의 과반을 무너뜨리고 19대 국회 후반기 의정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과반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이번 재·보궐 선거는 원외로 빠졌던 거물급 정치인들의 화려한 복귀 무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권에서는 서울시장 경선에서 낙선한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이혜훈 전 최고위원을 비롯해 차기 대선주자인 김문수 경기지사,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이, 야권에서는 손학규·정동영·김두관 상임고문 등이 출마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의 김 지사와 새정치연합 소속 정동영 상임고문 간의 ‘빅매치’ 성사 여부도 관심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서울시장] 정몽준 vs 박원순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서울시장] 정몽준 vs 박원순

    ■7선의 ‘새 꿈’ 의정 생활 26년 대부분 비주류… “공직은 봉사하는 자리”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정몽준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중 최다선인 7선으로 26년 정치 인생 대부분을 비주류로 보냈다. 정 의원은 1951년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8남 1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식사 시간에 늦으면 먹을 게 금방 없어질 정도로 식구가 많은 집안에서 단체 생활을 하듯 컸다고 정 의원은 회고한다. 그는 학창 시절 조용하고 튀지 않는 우등생이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재벌가 아들인지도 모를 정도로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열정적 기질을 지닌 소년이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ROTC 13기로 병역을 마친 정 의원은 미국 컬럼비아대를 거쳐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80년 현대중공업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훗날 각각 국무총리, 외무부 장관이 된 이홍구·한승주 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딴 이후 국제적 안목을 키우게 된다.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본산인 울산 동구에서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무소속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자진해서 선택한 비주류의 길에 대해 그는 ‘정치 노무자’란 단어로 대신 설명한다. “공직이란 말 그대로 공적인 서비스로, 여러 사람에게 봉사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당구도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비주류로서의 정치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정 의원과 축구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1993년 1월 대한축구협회 제47대 회장에 취임했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추진하기 시작했을 때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일본에 승산이 없어 보나 마나 안 된다”는 회의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듬해 5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선거에 출마해 극적으로 당선되면서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정 의원은 1년 중 3분의1 이상을 외국을 돌며 월드컵 유치 강행군을 펼친다. 1996년 5월 31일 일본에 절대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 결정을 따낼 때까지 정 의원이 다닌 거리는 150만km, 지구를 37바퀴 도는 거리였다고 한다.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치솟은 대중적 인기를 발판 삼아 정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을 창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대선 막바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뤘지만 선거 하루 전날 ‘노무현 지지 철회’를 선언한 후 한동안 정치적 침체기를 겪었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그해 대선 때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으로서 10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 이어 2009년 9월 한나라당 대표에 선출돼 정치적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2012년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박근혜 대세론’에 밀려 일찌감치 하차했다. 정 의원은 자신을 소개할 때 “(7선 의원이 아닌) 서울 재선 정몽준”이라며 ‘서울시민’임을 강조한다. 국회에선 주로 한·미, 남북 관계 등 외교 문제에서 목소리를 내 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시장의 ‘큰 꿈’ 1세대 시민운동가·인권 변호사 명성… 재선 뒤 새 도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박원순 현 시장은 인권변호사를 거쳐 ‘1세대 시민운동가’로 명성을 떨친 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박 시장은 이번 6·4 지방선거에선 새정치연합 소속으로 시장직 재선에 도전하며 더 큰 꿈을 그리고 있다. 박 시장은 1956년 3월 경남 창녕에서 평범한 농부의 2남 5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박 시장은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3개월이나 두문불출하며 공부할 만큼 어릴 적부터 노력가형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경기고를 졸업한 뒤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진학했지만 유신 체제에 저항해 학생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4개월 복역하고 제적당한다. 이듬해인 1976년 박 시장은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고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대구지검 검사로 임용된다. 하지만 검사 생활은 그의 적성과 거리가 멀었다. 결국 검사 생활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인권 변호사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다 박 시장은 일생일대의 멘토인 조영래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들의 모임인 ‘정법회’를 결성했고, 이 모임은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으로 확대 개편됐다. 박 시장은 민변의 창립 멤버로도 활동했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와 함께 ‘권인숙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구로동맹파업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시국사건을 주도하며 명성을 떨쳤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가 1990년 별세한 뒤, “해외에서 넓은 문물을 접하라”던 조 변호사의 권유로 1991년부터 이듬해까지 영국 런던 정경대 국제법 대학원 1년 과정을 마쳤다. 런던 정경대 유학 시절과 하버드대 객원연구원 1년여 시절 동안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현재 샘솟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됐다고 한다. 한국 상황에 맞는 새로운 시민사회의 모델을 고민하던 박 시장은 1994년 귀국,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며 시민운동가로 변신한다. 박 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인 2000년 16대 국회를 앞두고 ‘국회의원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했고,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1인 시위’ 등 다양한 시민운동을 창안했다. 2000년에는 ‘1% 나눔운동을 위한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했고, 2006년에는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 등을 설립했다. 2009년에는 제3세계의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공정무역 커피회사 ‘아름다운 커피’를 연이어 설립하는 등 각종 시민운동 경험이 서울시장 준비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 박 시장은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확정되면서 후보 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초 5% 내외의 미미한 지지율이었지만,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의 단일화 등으로 지지율이 50%대로 뛰었고 결국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박 시장은 2년 반의 재임 동안 ‘서울의 살림살이’를 개선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임 기간 서울시의 채무를 3조 2500억원 감축했고, 지하철 9호선을 재구조화하면서 3조 2000억원의 낭비를 막았다”고 주장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유정복, 송영길과 ‘동문 혈투’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로 친박근혜계 핵심인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이 선출됐다. 유 전 장관은 본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송영길 현 시장과 ‘동문 혈투’를 벌이게 됐다. 유 전 장관은 9일 인천 남구 아레나파크컨벤션에서 열린 인천시장 후보자선출 대회에서 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 합산 결과 총 1772표(65%)를 얻어 946표(35%)에 그친 안상수 전 인천시장에 압승을 거뒀다. 유 전 장관과 송 시장은 연세대 동문이다. 1957년생인 유 전 장관은 정치외교학과 76학번으로 1963년생에 경영학과 81학번인 송 시장보다 여섯 살이 많다. 하지만 걸어온 길은 뚜렷이 다르다.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 시장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을 하는 등 재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을 통과하며 노동 변호사로 변모했다. 1999년 인천 계양구 보궐선거에서 한 차례 낙선한 뒤 이듬해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의원 배지를 달았다. 18대까지 3선을 거치며 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고 2010년 민선 5기 인천시장에 당선됐다. 반면 유 전 장관은 22살인 1979년 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에 첫발을 디딘 이후 정통 행정 관료의 길을 걸었다. 김포군수와 인천 서구청장, 초대·2대 김포시장 등을 지내며 지방행정도 두루 몸에 익혔다. 당시 전국 최연소 기초단체장 신기록을 연거푸 갈아 치우기도 했다. 2004년 17대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2005년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인연을 맺은 뒤 원조 친박으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는 후보 비서실장, 2012년 대선 때는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장으로 당시 박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명박 정부 때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지난해 안전행정부 장관 등 장관을 두 차례나 역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박지원 “안철수는 DJ가 아니다”

    박지원 “안철수는 DJ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6·4 지방선거 광주시장 후보에 안철수계인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을 전략공천한 것과 관련, 호남의 좌장격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8일 안철수 공동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전날 손학규 상임고문에 이어 중진들이 잇따라 안 대표 비판에 나서면서 파문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도부에서 연휴가 시작되는 밤중에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함으로써 광주 시민을, 국민을 우롱한 결과로 나타나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면서 “심지어 광주에서는 ‘안철수는 김대중이 아니다’, ‘그런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막말도 나오는 형편”이라고 비난했다. 윤 후보에 대해서는 “그가 만약 새정치연합과 함께하고 있지 않고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전략공천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세 사람의 후보 중 지지도가 가장 낮은 분인데 계속 전략공천 없이 경선을 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전략공천으로 바꾼 것은 궁색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대표 측 인사를) 당연히 배려해야 한다”면서도 “새 정치, 개혁정치도 당선이 됐을 때 가능한 것이지, 낙선을 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민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재차 전략공천의 잘못을 꼬집었다. 앞서 전날 손 고문은 동아시아미래재단 주최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700만 자영업자, 살길을 찾는다’ 토론회에 참석해 “광주에서 국민과 당원의 선택권을 빼앗는 전략공천은 민주주의 정신, 민주당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부고] 지역구 9선 최다 박준규 前국회의장

    [부고] 지역구 9선 최다 박준규 前국회의장

    국회의장을 세 차례나 지내고 지역구로만 국회의원 9선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최근 혈관계 지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1948년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창설 당시 외무부 사무관으로 조병옥 박사를 도운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3, 4대를 낙선하고 5대에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2000년 정계 은퇴까지 40년 가까이 굴곡의 정치에 몸담았다. 고인은 5~10대,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낸 9선 의원 출신으로 헌정 사상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과 함께 최다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대구 달성과 서울 성동을 등 지역구에서만 9선을 했다. 지역구 9선은 우리 헌정사상 유일한 기록으로 기네스북 한국판에도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1988년 민정당 대표위원과 1990년 민자당 상임고문을 지냈으며 13, 14, 15대 국회에서 내리 세 번이나 국회의장을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5·16 후 공화당으로 당적을 이적, 공화당 정책위의장과 당의장서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0·26 직후 정계에서 은퇴하기도 했다. 이후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 경북고 후배인 노태우 후보의 요청을 받고 민정당에 참여, 정계에 복귀해 13대와 14대 총선 대구 동구에서 당선했다. 1989년 말에는 민정당 대표위원직에서 물러나기도 했으나 5개월 만에 국회의장으로 복귀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후 2000년 스스로 당적을 이탈하는 첫 사례를 남겼으며 16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 은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동원 여사와 1남 3녀가 있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김재철 낙선, 사천시장 새누리 후보 당원투표 96표 득표 그쳐

    김재철 낙선, 사천시장 새누리 후보 당원투표 96표 득표 그쳐

    김재철 낙선, 사천시장 새누리 후보 당원투표 96표 득표 그쳐 김재철(61) 전 MBC 사장의 낙선에 네티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남 사천시장에 출마한 김재철 전 사장은 지난달 30일 사천 근로자복지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원 선거인 투표에서 16표를 얻어 여론조사를 환산한 80표를 합쳐 총 96표를 얻는 데 그쳤다. 현직인 정만규(73) 시장이 1081표(당원 544표, 여론 537표)를 얻어 후보로 선출됐고, 차상돈(56) 전 사천경찰서장이 725표(당원 391표, 여론 334표)로 2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MBC에서 해임된 김재철 전 사장은 지난 1월 28일 사천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해 “방송인으로서 경험과 연륜을 통해 내 고향 사천을 새롭고 강한 도시로 디자인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준규 전 국회의장 숙환으로 별세

    박준규 전 국회의장 숙환으로 별세

    박준규 전 국회의장 숙환으로 별세 박준규(朴浚圭) 전 국회의장이 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최근 혈관계 지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1948년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창설 당시 외무부 사무관으로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를 도운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3,4대를 낙선하고 5대에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2000년 정계 은퇴까지 40년 가까이 굴곡의 정치에 몸담았다. 고인은 5~10대,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낸 9선 의원 출신으로 헌정 사상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과 함께 최다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8년 민정당 대표위원과 1990년 민자당 상임고문을 지냈으며, 13대, 14대, 15대 국회에서 내리 3번이나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5·16 후 공화당으로 당적을 이적, 공화당 정책위의장과 당의장서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0·26 직후 정계에서 은퇴하기도 했다. 이후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 경북고 후배인 노태우 후보의 요청을 받고 민정당에 참여, 정계에 복귀해 13대와 14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에서 당선했다. 1989년 말에는 정계개편 구도를 발설, 민정당 대표위원직을 물러나기도 했으나 5개월 만에 국회의장으로 복귀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후 2000년 스스로 당적을 이탈하는 첫 사례를 남겼으며 16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스스로 정계 은퇴를 선택했다. 고인은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에 정치적으로는 감각이 뛰어나고 합리주의와 ‘상생의 정치’를 강조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구 달성 출신으로 ‘TK(대구·경북) 원로격’이지만 계보정치를 싫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VIP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8시다. 장지는 대전국립현충원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재철 낙선…96표 얻어 ‘굴욕’ 낙선

    김재철 낙선…96표 얻어 ‘굴욕’ 낙선

    ‘김재철 낙선’ 김재철 낙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남 사천시장에 출마한 김재철(61) 전 MBC 사장은 지난달 30일 사천 근로자복지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원 선거인 투표에서 16표를 얻어 여론조사를 환산한 80표를 합쳐 총 96표를 얻는 데 그쳤다. 현직인 정만규(73) 시장이 1081표(당원 544표, 여론 537표)를 얻어 후보로 선출됐고 차상돈(56) 전 사천경찰서장이 725표(당원 391표, 여론 334표)로 2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MBC에서 해임된 김재철 전 사장은 지난 1월 28일 사천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해 “방송인으로서 경험과 연륜을 통해 내 고향 사천을 새롭고 강한 도시로 디자인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뒤 지역구 관리에 매진했지만 사천 민심을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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