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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밀한 인간삶 글쓰기 축제

    ▲사생활의 역사 1·3·4-아리에스·뒤비 엮음/새물결 펴냄. 80년대 이후 세계 역사학계는 역사연구에 대한 고정관념을깨뜨리는 기발하고 혁신적인 발상의 글쓰기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정치,왕조,민족,국가 같은 거대담론에 역사의 조명을 맞추는 대신 지금까지는 잊혀져 왔던 개인,민중,그리고인간 삶의 내밀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춰 역사를 재현해냄으로써 인간과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것이다.10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5년부터 프랑스에서 발표되기 시작한 ‘사생활의 역사’ 전 5권(필립 아리에스·조르주 뒤비 엮음,새물결)은 이러한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저서이다. 이 책은 ‘인간의 사생활’이란 내밀하고도 표준화되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로마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사적인고찰을 시도했다는 점,책임편집을 맡은 프랑스의 두 역사가를 비롯해서 각국에서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40여명의역사학자가 참여해 거대한 학문의 소통공간이 되었다는 점,사회경제사의 고전적 방식은 물론 인구학,역사인류학,심성사,미시사,문화사회학,여성학 등 다양한 접근방식을 망라해 학문의 교향곡을 연주해냈다는 점 등 화제거리가 많다.또한 주제가 주제인 만큼 사용한 자료도 공적인 문서 뿐만 아니라사적인 편지,일기,낙서,그림,소설,심지어 개인 집의 주춧돌에 씌어진 글씨에 이르기까지 내밀성의 벽을 뚫고 들어가기위한 노력이 총동원됐으며 이를 풍부한 컬러도판으로 수록,‘눈을 위한 화려한 축제’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참여자가 많은 대신 학자에 따른 시각과 글맛의 편차가 좀있다.그러나 신선한 발상,다양한 주제,방법론의 차이는 획일적인 시각만을 강요받아 온 우리에게 역으로 시사하는 바가크다고 할 수 있다.예를 들어 필립 아리에스는 중세 사회는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었으나 19세기가 되자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기 시작했다며 그 원인을 국가의 새로운 역할과 문자해독률의 증가,종교의 새로운 형태 등에서 찾는다.즉 국가가 사법권을 갖춤으로써 개인에게 사적 공간이 주어졌고 독서를 통해 ‘고독한 성찰’이 가능해졌으며 ‘내면적인 신앙심’의 형태 또한 고독한 명상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그는 또 이러한 사태들이집단적으로 침투한 지표들로 타인과의 거리를 강조하기 시작한 예절서,글쓰기 습관,고독 취향,일상생활에서 멋 찾기,사생활이 가능해진 가옥 구조 변화 등을 지목하며 독특한 접근을 계속해간다.이번에 나온 책은 1권 ’로마 제국부터 천년까지’(주명철·전수연 옮김),3권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이영림 옮김),4권 ‘프랑스 혁명부터 제1차세계대전까지’(전수연 옮김) 등 3권이다.2권과 5권은 연말에 출간될 예정이다.각권 4만3000원. 신연숙기자 yshin@
  • ‘구글’ 로고 창안자 한국계 낙서광

    [마운틴 뷰(미 캘리포니아) AP 연합] 미국 검색엔진 부문 1위 업체인 구글사(社)의 한 한국계 웹프로그래머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자사 로고에 스피드 스케이팅을 타는 여우,컬링스톤을 미는 곰 등 귀여운 이미지를 가미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데니스 황(23).특히 이들 도안이 여러사람의 합작품이 아니라 황씨 혼자서 해냈다는 데 놀라움을 더해 주고 있다.황씨의 디자인은 ‘구글(Google)’이란 로고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단순 명쾌해 호응이 높으며 특히 공휴일이나 특정 행사일에 독특한 로고를 도안해 유명세를 얻었다. 스탠퍼드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컴퓨터과학을 부전공한황씨는 한국에서 자랄 때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지 않고 몰래 낙서를 하던 실력이 발전해 이같은 도안을 하게 됐다고말했다.
  • [2002관광 월드컵 현장을 가다] 미국-뉴욕

    뉴욕을 찾는 관광객은 두번 놀란다.먼저 도시의 위압적인 외양에 놀라고 다음 모든 것이 관광자원이라는 점에 탄복한다.‘버릴게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바로 뉴욕이다. 맨하탄을 조망할 수 있는 허드슨강 건너편의 뉴저지쪽 해안도로가 필수 관광코스인가 하면 소호와 할렘의 낙서도뉴욕만의 관광메뉴로 개발돼 있다.보석가게 티파니는 물론 브로드웨이의 공연티켓 공동판매소(TKTS )와 타임스스퀘어의 상업용 전광판도 ‘세계 최대’라는 딱지를 붙여 관광상품으로 둔갑시켰다.부러울 만큼 다양한 관광자원을 가진 미국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까지도 자원화한 그들의 노력과 투자의지다. ◇관광산업은 전략이다=매년 3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드는 뉴욕은 두말할 것 없이 세계의 심장이다. 미국인들은 서울보다 적은 인구 850만명의 이 뉴욕에 ‘미국 대표도시’라는 상징성을 부여한다.양키즈 야구단과자이언츠 풋볼팀이 미국 전역에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사실은 미국인들의 이런 정서를 반증해준다. 이런 뉴욕을 지나치는 관광버스 안에서 속속들이 음미할수는 없다.그러나 미국인들은 바로 이 ‘지나치는 관광’에 승부를 걸었다.많은 외지 관광객들은 그냥 지나치면서뉴욕을 본다.물론 절대 무료가 아니다.미국에서 가장 비싼 숙박료,식대,교통비와 여행경비를 부담해야 하는 곳이 바로 뉴욕이기 때문이다. 94년 월드컵때도 뉴욕시의 관광시책은 여기에 초점이 모아졌다.일단 불러들이기만 하면 관광객들은 세계 최고의도시가 주는 현란함과 위압감에 홀린 듯 지갑을 열었다.이렇게 해서 그때 그들이 수확한 경제적 효과는 무려 4억5200만 달러에 달했다. ◇NYC & Company=뉴욕시의 월드컵마케팅은 시가 독립 공기업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NYC & Company를 통해 그 실체를볼 수 있다. 94년 월드컵때 뉴욕시의 관광홍보업무를 전담해 대외적으로 성가를 인정받은 NYC & Company는 관광객들의 숙박업소 지정은 물론 패키지 관광과 교통계획까지 전담한 뉴욕시의 외곽 부설기구로 뉴욕 관광의 요체인 이른바 ‘애플투어 플랜(Apple-Tour Plan)’을 창안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 부사장인 케이드 야즈미르씨는 “적극적인 시책을개발하는 등 월드컵행사 대행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이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반드시 달성하는 전략의결과였다.”고 소개했다.4억5000만 달러 정도의 경영수지흑자가 주먹구구로는 창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월드컵마케팅론인 셈이다. ◇뉴욕관광의 꽃 애플투어=뉴욕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물,가로,교량 등 대부분 인위적,인공적인 관광자원을 거미줄처럼 엮어 상품화한 그들의 상혼에 혀를 내두른다. 특히 뉴욕의 별칭인 ‘빅 애플’에 착안,‘애플투어’라명명한 도심 관광프로젝트에는 그들의 관광산업 방법론이고스란히 배어 있다. 애플투어 코스는 뉴욕 관광의 거점인 맨하탄에서 그리니치 빌리지∼차이나타운∼센트럴파크∼컬럼비아대학∼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을 따라 거미줄처럼짜여졌다.지금은 사라진 세계무역센터의 테러현장과 할렘을 차창 밖으로 살피고 브로드웨이를 걸어보게 하는 것도사소한,그러나 돈이 되는 관광 아이템이다. 종류도 서울의 시티투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2일코스인 ‘풀 시티투어’가 있는가 하면 ‘랭귀지투어’,‘브루클린투어’,‘나이트시티투어’에 자유의 여신상과 할렘 등 관광객들의 기호를 반영한 응용프로그램도 다양하게갖춰져 있다. ◇월드컵은 경제,투자하면 벌어라=맨하탄에서 해저터널을지나면 곧장 이어지는 뉴저지에 유명한 자이언츠구장이 있다.94년 월드컵 당시 ‘가장 멋진 축구장’이라는 호평을들었던 바로 그 경기장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위해 그들이 한 것은 이 풋볼 전용구장에 축구장 라인을 새로 긋고 인조잔디를 천연잔디로 바꾼것이 전부였다.나머지 시설은 모두 재활용했다.이렇게 해서 그들은 물경 6억 달러에 이르는 구장 건립비용을 아꼈다.당시 뉴욕시가 지출한 월드컵 관련 사업비 1억 달러를제외하고도 5억 달러라는 거액을 이 ‘재활용 아이템’으로 벌어들인 셈이다. ‘가능하면 안쓰되 쓰면 몇 곱절을 벌어들이는’ 미국인의 실용적 경제마인드.94년 월드컵은 이러한 경제마인드의 또다른 실천무대였다. 뉴욕 심재억특파원 jeshim@ ■해외동포도 값진 자산이다. 뉴욕의 우리 교민들이 이제 100일도 남지않은 2002 월드컵대회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은 대단하다.이미 99년에 월드컵 뉴욕후원회를 결성,교민은 물론 미주지역 축구팬들의 참여열기를 북돋워온 한인회는 고국의 발전상을 세계에알릴 기회라며 다양한 참여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FIFA가 해외홍보에 제역할을 못하는데다 관광공사도 주로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홍보에 치중해 불만스럽다. ”는 교민들은 “외국인들이 ‘저팬 월드컵’으로 잘못 알고 있는 실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할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후원회에서는 영어판홍보물을 자체 제작,배포하는가 하면 뉴욕 도심에서 대대적인 ‘서울월드컵 알리기 행사’를 갖기도 했다. 이문성 후원회장은 “뉴욕을 비롯해 뉴저지,메사추세츠,코네티컷주 등지에 거주하는 50만명의 교민들이 ‘이번에야말로 한국을 제대로 알리자.’는 각오”라며 “그러나월드컵조직위원회는 아직까지도 세계에 터를 일군 교민들의 결속력과 조국애를 과소평가하는 것같다.”며 서운한감정도 토로했다. 이 회장은 “지난 94년 미국대회때 동포들이 일과를 제쳐두고 경기장을 쫓아다니며 눈물겹게 응원했던 기억이 새롭다.”며 “그러나 당시 자원봉사를 위해 고국을 찾은 교민 2세들에게 일부 언론과 기성세대들이 ‘한국말도 못하는반쪽’이라며 손가락질했던 일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고 돌이켰다.그는 “이제는 고국이 열린 마음으로 세계 각처에 나가있는 교민들을 활용해야 한다.”며 “외국문화와 언어에 능통한 교민을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뉴욕 교포사회의 원로격인 김윤홍씨도 “태극기만 봐도콧잔등이 시큰거리는 해외동포들의 애국심을 고국에서 알기야 하겠느냐.”며 “우리는 조국을 위해 뭐든 하고 싶은데 조국은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같아 안타깝다.”고 말끝을 흐렸다. 뉴욕 심재억특파원. ■스퀴레스 자이언츠구장 책임자 인터뷰. “끊임없이 새로운 경영기법과 수입원을 발굴해야 합니다.” 뉴저지의 자이언츠구장 관리책임자 윌리엄 스퀴레스씨는성공적인 구장 경영을 위해서는 “적절한 투자와 투자한만큼 벌어들이는 경영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장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나. 독립경영은 아니지만독립채산이 가능한 수입은 유지하고 있다.경영상태가 좋아 부대시설인 실내체육관과 경마장에도 재정지원을 해주고있다. ◆흑자인데도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나. 개별 구장이 받는게 아니고 시설단지 차원에서 경상비와 시설투자비 등을지원받는다. ◆구장 수입규모는. 작년에는 1600만 달러를 벌었고 월드컵이 열린 94년에는 56회의 각종 이벤트행사를 펼쳐 사상최대인 1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주요 수입원은 무엇인가. 구장 소속인 프로풋볼팀 뉴욕자이언츠와 뉴욕 젯츠,프로축구팀 메트로스타팀이 시즌마다 경기를 갖고 있고 2만7000대 수용 규모의 주차장과 판매시설도 고정 수입원이다.국제 축구대회나 콘서트,공연등도 부정기 수입원이다.올해도 45회의 각종 수익성 행사를 유치할 계획이다. ◆월드컵 당시 구장은 얼마나 보수했나. 인조잔디를 천연잔디로 바꾼 것이 전부다.당시 그라운드 규격이 FIFA규정에 맞지 않았으나 FIFA가 이례적으로 예외규정을 적용해문제가 되지 않았다. ◆구장의 특성은 무엇인가.풋볼과 축구경기를 같이 치르기가 어렵지 않나. 미국 최대의 주차장에 관중들이 가장 실감나는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다.수시로 시설을 개수해 건립 26년이 지났지만 아직 건재하다.풋볼과 축구를 모두 수용하고 있으나 시즌이 달라 운영상 문제는 없다. ◆한국의 경기장 운영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수시로 경기장 매니저들이 모여 효율적인 경영방안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게 중요하다.직원들이 결코 재정적 측면에서 의존적인 자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참고했으면 한다. 뉴저지에 있으면서 뉴욕 연고 구단의 홈구장이란 점이 특색인 자이언츠구장은 지난 76년 신축때 관중 수용규모가 7만7891명이었으나 그후 규모를 늘려 지금은 8만242명을 수용할 수 있다. 뉴욕 심재억기자
  • [사설] 녹화사업 진상 밝혀야

    1980년대 초 보안사가 운동권 학생들을 군에 강제징집해특별정훈교육 명목으로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던 이른바 ‘녹화사업’이 사실상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의 지시로시작됐다는 증언이 나왔다.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이던 최경조(64)씨가 지난해 말진상위 조사에서 ‘82년 청와대에서 보안사 간부들이 만찬을 하던 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운동권 입대자들의 불온한낙서 등에 대한 강한 질책을 받고 녹화사업 계획을 수립했음’을 진술했다고 19일 밝혔다. 80년대 초 당시 군에 강제징집된 대학생은 447명으로 이가운데 265명이 녹화사업 대상자로 분류됐으며 그중 6명이 의문 속에 사망했다.진상규명위는 의문사 유족들의 신고를 받아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있으나,기무사 등 관련 기관들이 ‘관련 자료가 이미 파기됐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녹화사업 전모와 의문사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은 1988년 국회 ‘5공청문회’에서도 시도됐으나 당시 전씨는 녹화사업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그러나 이번 최씨의 진술로 전씨가 녹화사업을 지시했음이 처음 드러난 것이다.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징집돼 젊은 목숨을 잃은 의문사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녹화사업 대상 학생들이 프락치활동을 강요당해 선후배들의 동향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전씨가 집권과정에서 범한 잘못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녹화사업과 관련해서도 잘못을 반성하고 유족과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하고,그 진상 규명에 협조해야 한다.기무사 등 관련기관도 마찬가지로 협조해야 한다.다시는 그같은 잘못을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 한국미술평론 대부 이경성씨 “외로워 그리죠”

    한국 미술평론의 대부 이경성(83)씨가 전시회를 연다.오는 20일부터 3월3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갖는 ‘석남(石南)이 그린 사람들’전이 그것이다. “유희 본능으로 낙서를 하다가 그리게 된 거지요.우스개얘기같지만 진작화가가 될 걸 그랬어.평론에서 느낄 수 없는 묘미가 있거든. 시간 보내기에도 그만이고,말년에도 좋은 것같고….” 지난 1998년 이래 10여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요즘도 작업이 활발해 하루 10여점을 그릴 때도 있다.재료는 먹과붓,검정 사인펜,아크릴,종이,캔버스 등이다.빠르고 직관적인 터치로 인물들을 표현해나간단다. 그의 작품을 보면 단순화되고 중복된 이미지들이 화면을가득 채우고 있다.초서체의 경쾌함도 있다.세부묘사가 생략된 화면 속의 군상은 상형문자를 닮았다.그래서 어떤 이는 “기묘한 글씨체야.”라고 웃는단다.출품작은 80호 짜리를 포함해 100여점.모두 최근 몇달간 그린 것들이다. “외로워서 그림니다.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그리워져요.”평생 미술인들과 더불어 살아온 그이지만 그들과는 어떤간격이있는 것일까. “아내와 딸 하나가 있지만 미국에 건너가 있어 서울 여의도의 아파트에서 혼자 지냅니다.” 이번 개인전은 지인들이 마련해주는 자리다.이연수 모란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예술철학자 조요한,시인 김남조,조광호 신부,조각가 이춘만씨가 마음먹고 ‘석남전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나는 아마추어야.아마추어는 잘 그리면 안돼.그저 독서 대용으로 낙서하듯이 붓을 놀리지.” 전시를 앞두고 ‘석남이 그린 사람들’이란 제목의 350쪽분량 작품집도 펴냈다.이 화집에는 지난 10여년 동안 일기쓰듯 그려온 먹과 아크릴 작품이 실려 있다. 이씨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해방 이듬해 국내 최초의 시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을 연 것을시작으로 미술관,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에 독보적인 활동을펼쳐왔다. 지금은 석남미술문화재단 이사장,모란미술관 고문 등으로 일하고 있다. 유상덕기자 youni@
  • 대한매일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할아버지의 오동나무-김은수

    할아버지의 슬레이트 집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있었다.금모래가 질펀한 강변을 따라 녹푸른 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강에서는 늘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헌 장판을 씌워 만든 평상에서 강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집 안팎으로 빼곡이 들어찬 어린 오동나무들을 손질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낙인 것만 같았다.뒷산 꼭대기엔 장송들이 우람하게 서 있고 주위는 온통 솔 향이 넘실대건만 할아버지는 오동나무를 심어 기르면서 집 둘레에 있던 소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리셨다. “소낭구는 햇빛 욕심이 많아서 안돼.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린 묘목들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어.”사실 오동나무가 우뚝 자라려면 창이가 할아버지의 큰아드님만큼 나이를 먹어야 할까? 창이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렴풋하게 시간을 재고 있었다.하지만 할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오동나무를 돌보셨다.그런 까닭에 줄기마다 통통하니 물살이 오르고 오동잎은 사뭇 푸르렀다. 촉촉한 바람이 할아버지의 흰 머리칼을 헝클고 지나갔다. “할아부지,우리 공기놀이하자.”창이는 점을 치려고 두 손을 비틀어 모아 눈가에 갖다 대었다. “가새,바위,보재기.”할아버지가 나무 껍질 같은 손을 천천히 내민다. “히히...내가 먼저여.”할아버지는 히죽 히죽 웃으며 조약돌을 풀어 던졌다. 창이는 할아버지와 공기놀이를 할 때면 여간 신이 나질 않았다.할아버지가 너무 늙으셔서 오래 못하는 섭섭함이 따르긴하지만.그럴 때면 창이는 더 하자고 조르지도 않았다.할아버지는 한 번 뱉은 말은 두말이 필요 없는 고집쟁이니까. 할아버지에게 야속한 마음이 먹어질 땐 창이는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고집쟁이 할아방구 같으니라구.”언제인가 뒤뜰 오동나무 응달엔 하얀 꽃이 피어났다.가냘픈줄기 마저 백짓장처럼 하얀 그 꽃은 언제나 고개를 땅으로숙이고 있었다.꽃잎에 이슬이라도 맺히면 창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낙엽들이 흩어져 쌓인 곳에,가을 날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보낸 그 슬픔이 남모르게 하얀 수정초로 피어난 것만 같았다.오두마니 그 곳에 앉아 하얀 꽃을 보고 있노라면 창이는 자꾸만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그래서 마당으로 뛰쳐나와 한없이 강을 바라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늘 한결 같았다.샛바람이든 하늬바람이 불든 강물은 새처럼 활짝 펼쳐 올린 날개 선으로 상 하류를 엇갈려 흐르고 있었다. “시간은 유수 같거늘….윗물과 아랫물이 구분이 없으니…. 예전과 지금이 함께 있는 듯하구나.”할아버지가 혼자소리로 하던 어려운 말이 어슴푸레 강바람에 섞여 불어왔다. 할아버지는 아득한 시절을 꿈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을씨년스러이 굳게 닫힌 작은 방으로들어가셨다.창이는 감히 가까이도 못 가보고 방안에서 새나오는 가야금 소리를 훔쳐 들어야 했다.할아버지의 가야금 소리는 늘 생가지 같은 다리를 길게 모은 두루미가 날개 짓도못해보곤 사라지듯 뚝 그쳤다.소리는 그렇게 끝났는데 할아버지는 방 안에서 감감 나오지를 않으셨다. ‘어두운 방안에서 할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계신 거지?’어느 날 창이는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살금살금 다가가 문 창호지에 귀를 대고 들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방에서 잠이 드셨나?’창이는 검지에 침을 묻혀 창호지 위를 살살 문질렀다.콩알만하게 구멍이 뚫리자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거무룩한 방 안에서 할아버지는 가야금을 끌어안고 고개를숙이고 계셨다.어두움을 삼키는 듯 할아버지의 야윈 어깨는가늘게 떨었다.할아버지도 뒤뜰에 핀 하얀 꽃 같은 아픔을지니고 사시는 가 보았다. 창이는 서럽게 핀 수정초를 쳐다보다간 냉큼 회 벽을 보고돌아앉았다. 돌 틈에서 까만 돌을 주워 들고 창이는 회 벽에 아기 새를그렸다.언제인가 눈 먼 아기 새처럼 울고 있을 때 처음 보는 할아버지는 창이를 따듯한 품에 보듬어 주셨다.그렇게 안긴 인연으로 할아버지는 창이를 양자로 들이시고 큰아드님의집에서 나와,수십 년 전에 살던 시골에서 창이와 함께 지내는 터였다.창이는 아기 새 옆에 키 작은 오동나무를 그리고그 다음,가야금을 드리운 할아버지를 그렸다.얼핏 보면 동그라미와 작대기가 얽혀 있는 낙서 같지만 창이는 제 마음을담뿍 담아냈다. 신작로까지 내려가는 샛길 귀퉁이는 창이네 마당과 이어져있었다.샛길 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오는길인지 중노인 한 분이 버들잎새를 입 끝에 물고 마당을 기웃거렸다. “계슈우?”중노인에게서 날아온 버들잎이 뱅그르르 돌다간 댓돌,할아버지 신발 위에 살포시 앉았다.할아버지는 방문을 활짝 열고내다보았다. “아이구 이 사람아...”중노인은 할아버지를 보더니 입 언저리에 곰살궂은 웃음을걸고 두 팔을 번쩍 치켜올렸다.그리곤 단풍잎같이 손바닥을펼치곤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사뿐사뿐 춤을 추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중노인의 춤 장단에 맞추어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며 버선발로 걸어나오셨다. “기별도 없이 우짠 일이여어?”할아버지는 노랫가락을 붙여 물으셨다. “부평초 같은 이내몸 바람 따라 와았소.”“그려.그려.잘 왔네.”안부를 노래로 물으며 할아버지와 중노인은 얼싸 안고 춤사위를 벌렸다. 창이는 뒤뜰에서 쪼르르 달려 나와 희한한 광경에 입을 벌리고 웃었다. “창이야.어여 절 드려라.할아버지 친동생이나 진배없어.”창이는 중노인을 향해 땅바닥에 털썩 앉듯 서투르게 절을 했다. “네가 바로 갸 구나.”할아버지는 윗도리 속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창이에게 내미셨다. “얼른 아래께에 내려가서 소주 두어 병만 사오너라.”그러자 중노인이 배죽배죽 웃으며 안 저고리에서 술병을 꺼내 들고 찰랑찰랑 흔들어 보였다. “으이구….도깨비 같은 눔.”할아버지의 술판은 점점 여물어만 갔다.한바탕 술판이 무르익지니 강 저편에는 노을이 풀리고 있었다. “성님,가얏고를 다시 만들어보오.”할아버지는 맥없는 한숨을 뚝 떨구었다. “예끼….가당치도 않지.그게 언제 적 일인데….”“성님이 가얏고를 좀 잘 지었소? 형수님이 그렇게 가시지만 않았어도….”고개를 젓는 중노인의 이마엔 금방 움푹한 주름이 패였다. 할아버지는 엷은 노을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창이는 오동나무까지 휘휘 울리다 그쳤던 할아버지의 가야금 소리를 떠올렸다. 그 옛날 할아버지는 이 곳 강가에서 가야금을 만들며 사셨다고 한다.할아버지의 소원은 영영 시들지 않는 소리 꽃을 피우는 가야금을 만드는 거였다.할머니 또한 가야금 타는 솜씨가 빼어나 두 분은 가난했지만참 행복하게 사셨다고 한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할머니가 세상을 뜨신 이래 할아버지는 두 아드님을 데리고 도시로 나가셨다고 했다.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이곳으로 돌아올 날만을 꿈꾸며 사셨다고 했다. “다시 가얏고를 지을 수만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허나 이젠 늦었네.가슴은 그대로라고 친들 손이 너무 굳어먹어서…쯔쯔.”“그래도 그 솜씨가 어디 갔겠소? 다시 만들어 보오.나두 성님이 만든 가얏고 소리가 그리워서 그러오.”중노인은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가얏고 임자는 제가 다리를 놓아 드리지요.”할아버지는 눈을 감고“꿈이라도 꾸어봄세….”그러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여보게,실은 말일세.내가 그 분을 만난 적이 있다네.”“누구요?”할아버지는 중노인에 귓속말을 했다.그러자 중노인이 눈을크게 떴다. “우륵님을?”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에이….성님도….연세가 드니깐 별 농을 다 치네.허허허….”중노인은 할아버지를 힐끔 흘겨주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초겨울,찬바람이 문밖에서 잠을 깨우는 이슥한 새벽이었다. 창호지에 뿌리는 달빛처럼 아득하게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창이는 잠결에,씨익 미소짓다간 눈을 떴다. 할아버지가 두루마기를 두르고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게 보였다. 창이는 이상한 생각에 조용히 일어나 할아버지를 뒤따라 나갔다.여느 때와는 다른 걸음걸이로 할아버지는 마당을 가로질러 샛길로 성큼성큼 사라졌다.창이도 얼른 샛길 쪽으로 달려갔다.할아버지는 어느새 산비탈로 옷자락을 날리며 오르고 있었다.바람에 날아가 듯한 뒷모습이었다. “할아버지.할아버지.”아무리 불러도 할아버지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꼬부랑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찬바람이 낙엽을 휘날리고 발목은 가시가 할퀴는데 얼마나쫓아 왔을까? 창이는 언제인가 할아버지가 들려준 산도깨비가 떠올라 할아버지를 죽자고 따라 올라갔다.고개 하나를 넘자 장다리 장송들이 하늘을 우러르다 잠이 든 까뭇한 벼랑이 나왔다.거기를 벗어나니 강바람이 불어왔다. 쏴아…. 달빛은 밝기만 한데 할아버지는 큰 바위로 올라가 겨울,강바람을 온전히 맞고 서 계셨다.할아버지의 머리칼과 두루마기자락이 마구 휘날렸다.그 때,창이가 꿈결에서 들었던 가야금 소리가 은은히 스쳐갔다. 할아버지는 바위에서 넙죽 절을 하였다.그리고 강을 바라보았다.그러자 바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가야금의 소리 꽃이 하늘로 강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동녘이 밝아왔다.창이는 할아버지가 되돌아간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해 걸었다.내내 얼떨떨하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벌써 할아버지는 두루마기를 벗고 키 작은오동나무 숲을 돌아보고 계셨다.짚 옷이 입혀진 어린 나무줄기 마다 할아버지는 따듯하게 어루만졌다. “새벽부터 어딜 갔다 오는 겨?”할아버지는 천연덕스레 물으셨다.할아버지의 입김이 소로로오동나무 사이로 말려 들어갔다. “똥 누러.”차마 할아버지를 뒤쫓아 갔다오는 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창이를 꼭 끌어안으셨다. “내게 가장 큰 바람은 우리 창이가 우람한 오동나무처럼 잘 자라는 거여.”할아버지는 유유히 남한강을 바라보고 계셨다. 창이는 회 벽에 여우비가 내리면강 모래밭에 드리우곤 하던 무지개를 더 그려 넣었다.
  • 방치된 애국심…현충시설 훼손 심각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공훈을 기리고 호국정신을 함양할 목적으로 설치된 현충시설물 1,465개 중 71.6%에 이르는 1,049개가 설치 근거가 없는 시설물이다.또 245개는 심하게 훼손돼 개·보수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충시설물들이 이처럼 방치되고 있는 것은 설치근거가문화재보호법,기타 법령 및 조례,지침 등으로 다원화돼 있는데다 관리주체도 국가,군,경찰,지자체,민간단체,개인 등으로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1919년 3월27일 강원도 횡성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을기념하기 위해 지난 72년 횡성군 횡성읍 읍하리 3·1공원안에 설치된 ‘횡성군민 만세운동기념비’는 동네 아이들의 낙서판 겸 놀이터로 변했다. 기념비 곳곳에는 ‘김○○ 천재’ ‘왕(王)사가지’ 등동네 어린이들의 이름이나 욕설이 새겨져 있고 비석과 기단은 심하게 균열돼 있었다.기념비 주변 공터는 매년 3·1절 기념식이 열리는 것 외에는 주민들의 체육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민 황순석씨(70)는 “우리 고장 선조들의 얼이 깃든 고귀한 곳인데도 기념비를 보호하는 가드레일이나 안내표지판조차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경남 진해시 속천동 속천항 앞 대죽도 정상의 해군 UDT충혼탑도 탑신 일부가 균열되고 기단부 등이 심하게 파손돼 무너지기 직전 상황이다.해군 관계자는 “외진 곳이라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2동의 스웨덴참전비와 영도구 동삼동의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 동판과 기념비도 흠집투성이여서 매년 6월25일을 전후해 우리나라를 찾는 참전용사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서울 남산 중턱 백범광장에 건립된 백범 김구선생 동상에 부착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가운데 ‘박정희’ 이름 석자도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다. 근래 들어 중국 동북3성,러시아 연해주,미국 하와이지역등 해외 독립운동시설물 발굴에는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국내 시설물은 방치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수원대 사학과 박환(朴桓) 교수는 “정부가 현충시설물을 일일이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방자치단체에현충시설물을 지정 또는 해제할 수 있는권한을 부여해야한다”고 말했다. 순국선열유족회 남기형(南基炯) 사무국장은 “현충시설물을 건립할 때만 요란할 뿐 일단 세워지고 나면 그만”이라면서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현충시설물 중 설치 근거규정이 없는 시설물은 1,049개로 대부분 민간단체나 개인이 관리하는 탑,비석,생가,묘역기념관,사당,동상 등이다. 현충시설물의 관리주체는 군·경찰(616개) 관련 시설이가장 많고,지방자치단체(356개),민간단체(133개),개인(123개),국가(74개) 등의 순이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국가와 지자체가 현충시설물의 건립및 관리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고 공원 등에 현충시설물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국가유공자 예우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한편,현충시설물 설치 및 관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주석기자 joo@
  • 2001 길섶에서/ 묵은 것

    기분이 울적하던 날 밤 집에서 케이블TV를 틀었더니,1970년대 초 영화 ‘스팅’을 방영하고 있었다. 큰 악당을 등쳐먹는 작은 악당들의 사기극은 지금 봐도 절묘했고 주연 배우인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퍼드의 한창 때 모습이 새로웠다.거기에 마빈 햄리시가 만들어낸 배경 음악의 경쾌함이란….처음 그 영화를 보던 시절의 즐거움으로 돌아가 우울함은 금세 사라졌다. 그 며칠 전 점심시간에는 20여분을 걸어 한 설렁탕 집을찾았다.회사 근처에 수십 년 자리잡았던 본점이 몇해 전술집에 내몰린 터여서,오랜만에 옛맛을 좇아 명동에 있는분점에 간 것이다.‘아,전에도 이렇게 맛있었나’ 싶게 설렁탕은 입안을 감미롭게 맴돌았다. 묵은 것은 다정하다.사람이건,술이건,책이건,음식이건 묵은 것은 그리움을 되살리고 마음을 어루만진다.낡아 귀퉁이가 부서지는 책 한권,그 책에서 눈에 띈 밑줄 그은 한마디,그 옆에 끼적거린 낙서 하나는 오랜 친구처럼 삶을 채워준다. 이용원 논설위원
  • m.net주최 방송로고송 대상 조훈씨

    “돈 되는 일이 아니면 안해요.” 케이블 TV m.net이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한 ‘스테이션 아이디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조훈씨(24)는 직설적이고솔직했다. “‘딩∼디디딩,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이라는음악이 있죠? 15초정도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방송국을 홍보하는 멘트나 음악,로고 등이 스테이션 아이디예요.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분야지만 외국에서는 뮤직비디오 콘테스트처럼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새로운 영상예술로 각광받고 있어요.” 조씨는 15초짜리 스테이션 아이디를 위해 500여장이 넘는그림을 한달동안 공들여 그렸다.마지막 날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꼴찌로 간신히 접수했다.‘제 1회 m.net 스테이션 아이디 콘테스트’에 응모한 작품은 110편.네티즌 투표와 전문심사위원단 평가를 통해 수상작을 뽑았다. 그의 작품은 콤파스,코끼리,원숭이,펭귄,어린 아이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하얀 백지에 낙서를 하면서 시작한다.낙서가 끝난 뒤 기묘한 효과음과 함께 세로로 한줄의 낙서만남고 모두 지워진다.아무런 의미없이 보이던 남은 낙서들이순간 m.net으로 조합된다. “‘스테이션 아이디’분야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예요.전 만화 그리는 것이 좋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글보글 파마머리,홍익대 건축학과 2학년을 중퇴한 조씨에게 만화를 그리는 것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단지 생활일 뿐이다. “학교는 배우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관뒀어요.그리고 만화가 최인선 선생님 문하생으로 2년정도 일했고기업 사보 등에 만화를 연재했어요.” 지방의 비평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대 건축과에 입학한것으로 미뤄 차분한 모범생이었을 것 같다.그러나 그는 “집 근처의 고등학교가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치루는 비평준 학교를 택했어요.한문이 싫어서 이과에 갔고요.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 이과생이 건축학과밖에 갈 곳이 있나요?”라면서 모범생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일축한다. “술집에서 남·녀 대학생들이 여러명 어울려서 술마시고게임하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학교 중퇴하고 생활범위가 좁다보니 또래 친구들이 적어서 안타까와요.” 대학을 중퇴해서 아쉬운 것은 그것뿐.월수입 20∼50만원 정도의 프리랜서 만화가이지만 언젠가 떼돈을 벌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현재의 빈곤한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처음에 대상을 받고 ‘m.net’에 취직하라고 그럴까봐 걱정했어요.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근데 돈만 주고 아무 말이 없어서 오히려 섭섭하네요”하면서 함박 웃는다. “앞으로 ‘위클리 자이언트’라는 잡지를 창간해서 제 그림을 대중에게 소개할 꺼예요.독자는 제가 정해서 강매할 예정이고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송하기자 songha@
  • [워싱턴 엿보기] 두 얼굴을 가진 워싱턴

    지난 6월 초 워싱턴 남동(S.E.) 지역에서 40대의 한 남자가 머리와 가슴,팔,다리에 19발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아직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보름뒤 미 의회 공원에선 한남자가 자동소총으로 54발을 난사,여러명을 다치게 했다.지난달 말에는 마약조직간 총격이 벌어져 현장에서 3명이 죽었다. 워싱턴은 지금 ‘전쟁중’이다.그러나 백악관을 찾는 관광객들은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한다.총성을 듣기는 커녕,연방정부의 웅장한 대리석 건물과 링컨 기념관,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깔끔하게 정돈된 거리와 숲에둘러싸인 공원의 모습을 두고두고 간직할 것이다. 그러나그들이 본 것은 ‘반쪽’에 불과하다.DC는 의회를 중심으로동서남북 4개 지역으로 나뉜다. 관광객들이 찾는 곳은 대부분 서쪽 지역이다.백악관과 연방정부 건물,조지 워싱턴 기념탑 등은 모두 북서지역(N.W.)에 위치해 있다. 의회를 지나 동쪽으로 계속가면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후미진 거리에는 빈 술병과 쓰레기 더미들이 널려있고 건물은 낡은데다 벽은 온갖 낙서들로뒤범벅이다.거리를 오가는사람들은 거의 없고 서쪽에서는 보기 힘든 도난방지용 철조망들도 자주 눈에 띈다. 특히 흑인들이 밀집한 남동 지역은 단 하루도 총성이 멎지않는다. 지난 6월 1일 이후 3개월 동안 총기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무려 25명이다.DC 전체의 살인사건은 지난해보다28% 줄었으나 이곳은 전혀 변화가 없다.누가 죽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하루 일과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관할 경찰과 주민들은 서로를 비난한다.경찰은 마약과 관련된 살인이 줄긴 했지만 주민들의 상당수가 마약 밀매에관련됐으며 이로 인해 각종 사건이 발생한다고 본다.실제이곳에서 마약거래는 흑인들을 위한 ‘삶의 터전’이 됐다. 주민들은 경찰이 살인을 방치한다고 주장한다.마약거래가광범위하게 이뤄지지만 경찰의 순찰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워싱턴이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한쪽만 계속 치장하고 있다.다른 한쪽을 고치려는 연방차원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가 남의 나라 인권문제나 중동평화를 강조하기앞서 안방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인부터 멈추게 해야 한다.워싱턴의 동부전선은 분명히 이상이 있다. 백문일특파원
  • 미술대전 공예·서예부문 김성민·강선구씨 선정

    제20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문 대상은 김성민씨(32·한양여대 강사)의 ‘생’(生)이,서예부문 대상은 강선구씨(48·서예학원 운영)의 ‘율곡선생의 경포대부’가 각각 차지했다. 한국미술협회가 10일 발표한 심사결과에 따르면 공예부문의 우수상은 김민희(금속·29)의 ‘사색’,최남길(도자·41)의 ‘생의 찬가-상상’,지정용(목칠·34)의 ‘상승’,유동희(염직·29)의 ‘낙서’등이다.서예 부문의 우수상으로는김시운(한문·50)의 ‘묘법연화경방편품’,은성옥(한글·56)의 ‘모죽지랑가’,박영희(전각·55)의 ‘존덕성도문학·시서돈숙호임원무속정’이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 전시회는 16∼23일 경기도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유상덕기자 youni@
  • 신세대 지폐훼손 심각

    지폐의 여백에 빼곡히 편지를 써 보내거나 지폐로 반지나하트,복주머니 모양 등을 접어 친구에게 선물하는 등 청소년들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폐 훼손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낙서 등으로 훼손된 지폐는 은행권에 들어오면 한국은행으로 보내져 폐기처분되기 때문에 국고 손실로 이어진다.매년새 돈을 찍어내는 데 1,000억원에 달하는 국고가 소요된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 발권국.전국의 시중은행에서 들어온 수백장의 지폐들이 폐기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1,000원권과 5,000원권의 여백에는 ‘○○아 생일 추카해…’‘□□씨!사랑해…’‘I♡△△.×××-××××번으로 전화해…’ 등 깨알같은 글씨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일부 지폐의 중앙에는 붉은 사인펜으로 하트모형 등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고,화폐접기에 이용됐음직한 1만원권 지폐는 꼬깃꼬깃 접힌 자국 때문에 너덜너덜하기까지 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매일 폐기처분되는 지폐 200여만장중낙서나 절취 등 고의적인 훼손에 따른 폐기가 적지 않다”면서 “최근에는 연애편지나 종이접기 등으로 심하게 훼손된지폐들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지폐 훼손은 개성이 강한 신세대들의 독특한 사랑고백법과 무관하지 않다. 여고생 김모양(16)은 “지폐 러브레터는 상대방의 눈길을끌 수 있는데다 쉽게 버리지 않기 때문에 처음 사랑을 고백할 때 많이 쓴다”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지갑에 지폐편지를 넣고 다닌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씨(23)는 “여자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1만원짜리 지폐 3장으로 만든 하트와 1,000원짜리에 쓴 편지를 보냈다”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상품권’ 대신 지폐를 생일선물로 활용한다”고 소개했다. 한국은행 발권기획팀 이은원(李殷元)과장은 “화폐의 관리실태는 그 나라의 문화 수준과 직결된다”면서 “최근 화폐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서 처벌의 필요성도 제기되고있지만 무엇보다 돈을 깨끗하게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고강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폐기처분된 지폐는 8억700만장으로 99년(6억3,600만장)에 비해 26.9% 늘었다.폐기처분된 지폐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모두 4조4,236억원이다.지난해 새 돈을 찍어내는 데 1,077억원이나 들었다. 조현석기자 hyun68@
  • 회관 곳곳에 민노총 낙서…전경련 속앓이

    한국 재계의 상징인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이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던진 ‘페인트 달걀’과 스프레이 낙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전경련회관 기둥,현관 등에는 이달 들어 민주노총 주최로 잇달아 열린 ‘전경련 규탄 집회’때 빨간 페인트가 담긴 달걀에 맞아 생긴 얼룩이 10여군데나 된다.벽에도 ‘해체 전경련’ 등의 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재계 본산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전경련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지난 79년 10월16일건물 준공 당시 세워진 기념비.기념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가 담겨 있다. 가로 4m,세로 2m 크기의 자연석에 ‘창조,협동,번영’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해체’라는 낙서가 커다랗게 적혀 있다. 페인트와 스프레이는 이미 돌에 스며든 상태라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독자의 소리/ 터미널 스티커광고 제재를

    유동인구가 많은 역과 고속버스 대합실의 터미널 곳곳에는장기매매나 유흥업소, 사채대여 등 불건전한 성격의 광고스티커들이 여기저기 나붙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수 있다.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미풍양속을 해칠만한 낙서나 연락처 등이 적힌 곳도 많다.시설의 성격상 특정계층을 겨낭한 광고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장기매매의 경우노숙자를,유흥업소의 경우 가출청소년을 의식한 스티커 부착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당사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사회의 그늘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보호해주지는못할망정 파탄지경까지 몰아갈 수 있는 요인들까지 수수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다.시설관리자들이 이런 부류의 스티커광고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좀 더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효순 [대전 중구 문화1동]
  • 급우 7명이 집단폭행 여중생 한때 실어증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여중생이 실어증세까지 보여 충격을 주고 있다. 경남 창원시 M중학교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후 5시쯤 이 학교 2년 윤모양(14)이 자신의 집(창원시 명서1동)에서 같은반 이모양(14) 등 7명에게 집단폭행당했다. 이양 등은 “왜 친구 욕을 하고 다니느냐”며 얼음과 계란등을 던지고,얼굴과 다리 등을 때렸다.이들은 또 윤양의 사진에 낙서를 했으며,양념을 물에 타 먹으라고 강요하기도 했다.부모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윤양은 정신적인 충격과 공포로 의사 표현을 잘 못하는 등 한때 실어증을 보이기도 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 [CULTURE & JOB] 벽화미술가 유지환씨

    “벽화는 대중의 삶과 경험을 진실하게 보여 줍니다.화랑주인이나 거물급 인사들보다는 대중에게 칭찬받고 싶어요.” 유지환씨(32)는 벽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홍익대 회화과 재학시절 거리미술제의 벽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몸으로 때우는 공동작업’에 매력을 느꼈다. 95년 대학을 졸업하고 모 광고회사에 1년 반 동안 다니면서 과자 포장지를 디자인했다.그 당시 C제과회사에서 만든 과자에 들어 있는 어린이용 로봇은 모두 자신이 디자인했다며웃었다. 대학 다니면서 익힌 포토샵 등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광고회사에 다니게 됐지만 인간의 느낌을 기계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껴 100% 수작업인 벽화로 돌아서게 됐다.유씨가 벽화를 시작하면서 가장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이들의 방이었다. “외국에서는 부부가 결혼하자마자 벽화를 그리는 등 함께아이 방을 꾸미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부럽더라구요. ” 2년여동안 30군데 이상 아이들의 방에 해,달,별,동물 등 자연을 소재로 삼아 벽화를 그렸다.나비3m,높이2.5m정도의 방벽은 2명이 하루만에완성하고 값은 65만원을 받는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홀트아동복지회와 서울 농아학교에벽화를 그렸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우울하던 아이들이 벽화를 보고 말이 많아지고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그림을 접하기 힘든 농어촌 마을회관,고아원,시골 분교 등에 더욱 많은 벽화를 그려야 겠다고결심했다. 유씨가 요즘 하고 있는 일은 개그맨 서세원씨 등이 살고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진흥아파트의 색채작업이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지역성과 살고 있는 주민들의 입장을전혀 반영하지 않아요.삼성아파트,현대아파트 등 한 기업이만든 아파트는 모두 똑같잖아요.” ‘지하철 벽화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서울 을지로3가 지하철역의 140m에 이르는 환승통로의 벽화도 유씨가 작업했다. 미키마우스,오줌발,안티히어로가 등장하고 1983년 소년중앙에 실린 잡지 광고를 베끼는 등 엽기발랄한 도안은 작가 이동기,강영민씨가 했다.보름동안 30명이 달라붙어 벽화를 그리면서 지하철 역사의 문이 잠겨 밤새 쫄쫄 굶기도 했고 작업을 시작한 첫 3일은타일벽만 닦는 등 고생이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유씨가 서울시로부터 받은 금액은 약 1,500만원이다.그는 이같이 시청이나 구청등과 계약을 맺고 벽화를 그린다. 지난해 여름 지하철1호선 중동역 안의 교각에 벽화를그릴 때는 2박3일 동안 단 2시간만 자며 작업을 하는 바람에 졸다가 지하철이 다니는 철로로 떨어져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유씨의 꿈은 벽이 존재하는 모든 곳 뿐만 아니라 그림이 있으리라고 전혀 상상치 못하는 곳에도 벽화를 그려넣는 것이다.예를 들어 시커먼 아스팔트만 깔려 있는 도로에도 각 도시의 초입에 그 도시의 상징이나 특산물 등을 그려넣으면 어떨까 상상해본다.특히 지나갈때면 답답증이 나는 터널 안 내벽에도 벽화를 그려 ‘터널 갤러리’를 만들고 싶다. “제 평생 가장 감동적인 벽화는 홍콩의 한 80층 호텔의 모든 내벽에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수풍경을 그린 동양화였어요.” 유씨는 문화수준과 벽화는 비례한다고 믿는다.80층 건물벽전체를 벽화로 채우는 상상력과 결단력이 있기에 관광도시홍콩이 가능하다고생각한다. 그는 “탄광도시를 예술도시로 바꾸겠다는 정도의 도전정신과 새로운 벽화장르를 개발할 수 있는 창의력의 소유자만 벽화를 시작하라”고 큰소리쳤다. 윤창수기자 geo@. * 길거리예술 ‘그래피티' 강좌. 벽은 모두에게 열린 자유롭고 커다란 캔버스다.자신의 느낌과 의사를 개성있는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누구나 벽화가로 손색없다. 힙합문화와 함께 70년대 미국 할렘가에서 시작된 그래피티는 스프레이로 벽에 낙서하거나 만화 등을 그림으로써자신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것이었다.그러나이제 그래피티는 ‘문제많은 뒷골목 범죄자들의 낙서’에서 대중에게 친밀감을 주는 도시의 길거리 예술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피티를 하려면 약 1700∼2000원 정도 하는 스프레이를 구입한 뒤 시멘트벽에서 연습을 시작한다.아무 것도 발리지 않은 시멘트벽은 스프레이의 색상을 모두 흡수하므로 수성페인트를 2∼3번 바른 뒤 작업을 시작하면 된다.유성페인트는 스프레이와 함께 엉기므로 바르면 안 된다. 나무합판도 시멘트벽처럼 스프레이를 흡수하므로 수성페인트를 칠한 뒤 그래피티를 그리는 것이 좋다.검정색을 잘못 써서 지우려면 흰색과 라일락색,옥색 등 파스텔계열의색깔로 검정색을 덮어 씌우면 된다. 국내에서 벽화작업을 하는 업체는 대개 영세하고 사업영역도 좁다.누구나 쉽게 출발하고 망하는 분야라 오랫동안벽화사업을 지속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대부분 그림을 전공한 사람들이 벽화작업을 많이 하며 나이는 20∼40대까지 다양하다.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점점 여성의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윤창수기자
  • 서양화가 이종학 작품전…서예 필법 연상

    서양화가 이종학 화백(76)은 삶의 여백을 중시하듯 그림의여백을 강조하는 작가다.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그것은 자신을 비우고 버릴 줄 아는 달관한 삶의 철학을 지닌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다.작가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여백의 미,직관에 의해 도달하는 정신의 깊이 같은것을 추구합니다.일필주의적(一筆主義的)인 표현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작가가 1958년 서울 신세계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 때는우리나라에 비정형 추상회화,즉 앵포르멜의 열풍이 불어닥치던 시기였다.당시에 반(反)국전,반(反)아카데미즘적 성향의추상회화를 발표한 작가는 지금도 그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 70,80년대에는 비교적 다양한 색상의 추상작업을 보여줬지만 근작으로 올수록 그의 그림은 더욱 단순화한 양태를 띤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열리고 있는 ‘이종학 작품전’(18일까지)은 미세하게 변주돼온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100호 안팎의 작품 30여점이 나와 있다. 흰 바탕의 캔버스에 자유분방하게 펼쳐진 청색조의 필선들은 얼핏 서예의 필법을 연상케 한다.나아가 낙서화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는 과연 낙서가 갖는 ‘아웃사이더 아트’로서의 성격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미술대학(서울대)에서 정식으로 미술을 공부한 그이지만 그의 이력에는 좀 색다른 데가 있다.화가이기 이전에 그는 ‘꽃밭’이란 시집을 낸 시인이다.60년대 후반부터 10년 가까이 문교부 미술담당 편수관을지내기도 했다.그렇지만 이종학을 ‘소박(素朴)화가’라고할 수는 없다.‘반국전파’이면서도 어떠한 재야적 집단운동이나 그룹에 동참하지 않고 홀로 일궈온 도저한 추상세계는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때묻지 않은 감성의 예술적 반골정신이야말로 이종학 그림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02)730-0030. 김종면기자 jmkim@
  • 박노항씨 “알고보니 컴맹”수사관 허탈

    ‘병무비리 몸통’ 박노항(朴魯恒·50) 원사에 대한 수사가 27일 군·검 합동수사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서영득(徐泳得·공군대령) 국방부 검찰단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박 원사와 관련된 병무비리가 100여건이 넘는 데다 그가 소극적인 태도로 수사에 응하고 있어 수사기간도 최소한 5∼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고 장기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다른 수사관계자는 “수사의 주대상자인 정치인과 군장성의 병무청탁 등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이들의 경우 (지위를 이용해)청탁은 하되 돈은 주지 않는다”고 말해 100억원대로 추정되는 뇌물총액을 맞추기가 사실상 어렵다는점을 시사했다. 서 단장은 특히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기획체포설’과관련,검거과정의 어려움과 고생담 등을 장황하게 소개한뒤 “정치적 의도는 있을 수도 없고,있지도 않다”고 일축했다. ◆박 원사는 오전 11시7분쯤 국방부 검찰단에서 수감장소인 서울 영등포구치소로 떠나기 직전 “지은 죄가 너무 많다.잘못을 반성하고 있다”고 고개를 떨구었다.지난 25일 검거 당시 입었던 감색 운동복에다 하늘색 슬리퍼를 신고 수갑을 찬 박 원사는 초췌해진 모습으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간간이 눈을 감기도 했다. ◆박 원사는 수배중이던 98년 7∼8월 국방부 합조단에 함께 근무하던 옛 동료 4명을 만나 소주를 마시면서 신세를한탄한 것으로 드러났다.당시 박 원사를 만났던 전·현직동료 가운데 일부는 합수부 발족 이후 처벌을 받았다고 검찰관계자는 전했다. ◆박 원사가 도피생활 도중 기록한 유서성격의 낙서 수십장이 나왔다.박 원사는 연습노트와 광고전단 이면지를 활용,‘죽고싶다’‘나를 잡으면 특진을 시킨다니…’‘내가 강도질을 한 것도 아닌데…’ ‘돈도 별로 없다’는 등도피생활의 갑갑한 심정을 적어 놓았다. 군 검찰관계자는 “박 원사는 평소 TV 뉴스와 자신과 관련된 일간지 기사를 꼼꼼히 챙겼으며 그때의 심정을 글로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압수물품 가운데 전자수첩과 함께 박 원사의 ‘비리장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알려진 노트북 컴퓨터도 수사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전해지자 수사관들을 허탈해 했다.수사팀에 따르면 “조사결과 박 원사는 ‘컴맹’수준으로 평소 컴퓨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인테리어 새경향 ‘갤러리아풍’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 다음날인 지난 5일,서울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사는 40대 중반의 주부 이모씨는 큰 맘먹고 집을 ‘갤러리풍’으로 단장하기로 했다.‘갤러리풍’은 인테리어의 최신 경향.집구조나 가구 등은 그대로 두되,벽을 흰색으로 바꾸거나 액자를 걸어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방식이다.각종 장식을 최대한 절제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흑백의 조화를 강조하는 젠(zen·禪)스타일에 맞닿아있다. “흰 벽에 판화나 그림을 걸면 거실이 한결 단아하고 멋지게 보이겠죠.” 이씨의 집에 봄기운이 가득 넘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나아트의 김명선 아트팀장과 LG데코빌의 디자이너 박현진씨 등 전문가의조언을 들어본다. ◆벽면 단장=‘갤러리풍’은 먼저 집안을 단순화해야 한다.그 첫번째가 무색채·무(無)무늬·무질감의 벽면을 꾸미는 일이다.인테리어에흔히 쓰이는 띠벽지는 절대 쓰면 안된다.박씨는 “아이들의 낙서자국과 곰팡이,얼룩 등을 없애려면 흰색 페인트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너무 밋밋한듯 싶으면 낡은 벽지 위에 질감을 나타낼 수 있는 핸디코트를 펴 발라 말린 뒤 흰색 페인트를 칠한다.이때 무늬의 크기를 작게 해야 그림을 걸 때 효과적이다.‘DIY페인팅’ 1통이면 4평 정도의 거실벽은 충분히 칠할 수 있다.1㎝길이로 자른 지푸라기를 핸디코트에 섞어서 발라도 개성적이다. ◆가구의 최소화=김명선 팀장은 “TV 에어컨 소파 CD장 등 꼭 필요한 가구가 아니면 거실에서 과감히 없애라”고 말한다.그림 외에 시선을 빼앗는 군더더기를 제거하라는 것이다.벽면이 시원해야 그림이 살아난다.또 영국식의 화려한 가구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만약 소파가앤틱(antique)풍이면 액자는 단순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달력처럼 걸지말라=달력은 눈에 잘 띄어야 하기 때문에 대개 집안의 높은 곳에 걸려 있다.그러나 액자는 눈높이보다 높으면 보기에 불편하다.바닥에서 액자 못까지 높이가 130∼140㎝를 넘어서면 영 어색해진다.이미 박혀있는 못을 그대로 활용하려면 낚시줄로 그림을 낮춰 매다는 방법도 있다.아이가 너무 어려 손을 탈 위험이 있으면 작은그림을 두세점 이어서 다소 높게건다. ◆150㎝ 원칙=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50㎝를 확보해야 한다.복층아파트 등이라면 2층 계단옆과 같은 폭이 좁은 곳에 작은 그림을 연속 걸어주는 것이 보기 좋다. ◆아이들의 그림도 멋지다=한 외국인 회사의 CEO는 자녀들이 어릴 때 그린 그림을 모아 부엌에 쭉 걸어두었다.손님들이 찾아오면 “이 그림은 둘째가 5살때 그린 것”이라고 자랑한다.아이 그림은 ‘원시미술’처럼 신선한 맛이 있다.버리지 말고 모아두었다가 아크릴액자 등에 넣어 장식품으로 활용하면 따뜻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도움말 가나아트 김명선 팀장·LG데크빌 박현진] 문소영기자 symun@
  • 김경헌씨 부산시 체육기금 10억 기탁

    부산이 고향인 재일동포 사업가가 부산시의 체육발전 및 노인복지를위해 써달라며 부산시에 10억원을 선뜻 내놨다. 재일동포 김경헌(金慶憲·73·일본 낙서건설공업 회장)씨는 17일 오후 부산시를 방문해 안상영(安相英)부산시장에게 10억원을 기탁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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