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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너리티 리포트] (7) 자활성공 성매매피해 여성들

    [마이너리티 리포트] (7) 자활성공 성매매피해 여성들

    강은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먼저 ‘강은선’이란 가명으로 인사드리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선영씨도 저처럼 여성단체에서 일하신다니 앞으로 종종 뵐 기회가 생기겠네요. 저는 올해 스물여덟이에요.2004년 가을까지 서울시내 룸살롱에서 일했죠. 대개들 그렇지만 저 역시 어린 나이에 큰 빚을 지게 됐거든요. 장선영 저보다 두 살 언니 되시네요. 저는 서울 하월곡동에 오래 있었어요. 고등학교 마치고 직장생활을 잠깐 했는데 그때 많은 빚을 졌어요. 처음에는 단란주점에 있다가 얼마 후 그곳으로 가게 됐죠. 강 제가 룸살롱 생활을 접은 것은 2004년 9월23일 성매매 방지법이 발효되기 10여일 전이었습니다. 업주의 엄청난 협박이 있었지만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더군요. 하지만 막상 그곳을 나오니 정말 쌀 한톨을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이 어려워지더군요. 그러다 여성단체 상담소가 생각났고 그곳을 통해 쉼터(성매매 피해여성 보호시설)에 들어갔어요. 지금은 제가 여성단체에서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상담을 하고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사이버대학에도 다니고 있지요. 장 저도 쉼터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어요. 제가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난생 처음 갖게 됐죠. 술·담배 끊고 입에 밴 욕설까지 고쳤어요. 강 쉼터에서 1년간 있다가 백화점 의류매장에 취업했지만 이걸로는 미래가 불안하다 싶어 다시 쉼터로 들어갔죠. 결국 컴퓨터 자격증을 땄고 그것이 여성단체에서 일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쉼터로 들어오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아요. 경제적인 지원이 약하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거든요. 장 아직 그곳에서 못 벗어난 친한 동생이 전화를 했기에 쉼터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지원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고는 망설이더군요. 금액도 그렇지만 피해 여성들에 대한 배려도 좀 아쉬워요. 나라에서 지원받은 직업훈련 학원비는 저희들이 내지 못하고 쉼터에서 대신 내도록 돼 있는데 그 과정에서 과거에 성매매 했던 여자라는 소문이 학원에 쫙 퍼지는 수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이 학원, 저 학원 옮겨다니는 경우가 생기지요. 저는 어학 관련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 다닐 때 쉼터에 계신 분에게 학원가서 그냥 이모라고 말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답니다. 강 직장경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20대 후반에 달랑 자격증 하나만 갖고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죠. 하지만 현재 나오는 지원금 수준으로는 이런 저런 자격증을 취득하기가 힘들어요. 물론 취업난이 저희와 같은 피해 여성에 국한된 게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이긴 하지만요. 장 정부에서 성매매 피해여성의 자활성과를 실적위주로 점검하다 보니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자격증을 취득하라고 권유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어요. 강 성매매 방지법이 발효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나면서 초기의 강력한 단속이 쑥 들어간 것 같아요.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에는 예전 같진 않아도 사람들이 꽤 모이는 것 같던데요. 장 성매매 방지법 발효 이후 친구들 중 6명이 그 일을 그만뒀는데 이 중 3명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어요. 요즘 업주들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사채업자들을 알선해 대출을 유도한 뒤 이런 저런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수법을 써요.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사채업자와의 관계라고 발뺌하려는 거죠. 강 그만두기 직전 업주가 업소 소득신고를 제 이름으로 하는 바람에 지난해 몇백만원의 의료보험료를 내는 등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보았지요. 세무서와 의료보험공단에서는 자기들은 알 바 아니라고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국가에서 구제방법을 찾아줬으면 해요. 장 경찰과 성매매 업주들의 유착비리가 줄어 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적잖이 남아 있어요. 언젠가 친구와 함께 그 친구가 있었던 업소의 주인을 고발하려고 경찰서를 찾아갔는데, 업주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경찰관은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냥 넘어 가더군요. 강 성매매 방지법이 피해 여성들을 상당수 구제하긴 했지만 업주들을 처벌하는 데는 너무 약한 것 같아요. 여성들은 강압과 협박으로 성매매를 했다는 증거를 쉽게 내놓을 수 없어요. 기껏해야 협박 문자메시지 몇개, 장부에 적힌 낙서 정도인데, 이걸로는 업주의 잘못을 입증하기 어렵죠. 보통 협박이나 갈취가 인정되지 않고 업주가 시인하는 성매매 알선 정도만 적용돼 벌금 200만원 내는 게 고작이지요. 장 우리가 이렇게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아직 탈출하지 못한 여성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어요. 그 일을 그만두고 나온다는 것 자체로서 절반 이상 자활에 성공하는 것이라는 사실도요. 정부의 자활지원 내용에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새로운 삶을 여는 데는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요. 저처럼요.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파란나라를 보았니?

    파란나라를 보았니?

    직접 페인팅하며 집을 가꾸면 비용도 절감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도 있다. 낡고 색이 바랜 벽면, 주방의 칙칙한 타일, 손 때 묻은 가구 등 페인트로 변신시킬 수 있는 공간과 소품은 무궁무진하다. 봄을 맞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위기로 아이방을 변신시켜보자. 아이가 방에 더욱 애착을 갖고, 정서에 도움도 준다. 벽면을 수족관처럼 페인팅해주는 것은 어떨까. 파란색으로 벽을 칠하고 형형색색의 물고기를 그려넣거나 붙여주면 시원한 수족관으로 탄생한다. 파란색은 머리를 식혀주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안정감을 주는 파란색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에게 좋다. 지적인 이미지의 파랑으로 칠한 방에서 아이는 사고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내성적인 아이라면 더욱 우울해질 수 있으니 피한다. 아이들 방에 칠할 페인트는 낙서나 때에 강한 것으로 고른다. 냄새가 거의 없고, 인체에 해롭지 않은 친환경 수성페인트를 추천한다. 색상을 직접 만들 때는 수성페인트에 색소를 조금씩 넣으면서 색상을 만들고, 보드에 칠한 뒤 다 마르면 정확한 색을 비교한다. 색을 만들 때는 반드시 그늘 진 곳에서, 실내 조명을 감안한다. 형광등에서는 전혀 다른 색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KCC의 ‘인 캔 시스템(In Can System)’과 같이 원하는 색상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이용해도 좋다. 페인트는 다른 제품과 섞어 사용하지 않는다. 또 비나 눈이 오는 날, 습도가 높은 날(85% 이상),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은 곳(40℃ 이상,5℃ 이하)에서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아이방 페인트칠 이렇게 ■ 도움말 KCC 숲으로 기술영업팀 김창섭 과장 #준비물: 페인트, 붓, 롤러, 트레이, 면장갑과 천, 마스킹테이프(페이트를 묻히지 않을 곳을 가려주는 제품), 퍼티 제품, 사포 #과정: 1. 벽의 고르지 못한 부분을 다듬는다. 못을 뽑아 생긴 구멍은 퍼티 제품으로 메운다. 2. 손을 보호하기 위해 면장갑을 낀다. 문틀, 전등 등 페인트를 칠하지 않을 부분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인다. 3. 붓에 묻은 먼지나 풀 등을 털어내어 털을 고르게 한 뒤 아래 위로 결을 따라 골고루 모서리나 코너 부위를 칠한다. TIP:붓의 2분의 1이나 3분의 1만 페인트를 묻힌다. 너무 많이 묻혀 칠하면 막이 두꺼워지거나 흐른다. 4. 넓은 벽면은 롤러로 칠한다. 작업 순서는 천장, 벽면, 바닥 순. 흐르지 않게 골고루 바르려면 W자 형태로 칠한다. 5. 페인트가 마르면 덧바르는 것을 2∼3회 반복한다. 6. 덧바른 것까지 마르면 원하는 스티커를 붙인다. 7. 마스킹테이프를 제거하고 마무리한다.
  • 가랑비에 옷 젖듯 ‘효 알아가기’

    효(孝)는 사람 됨됨이의 기본이지만 너무 드러내놓고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쉽다. 잘못 꺼냈다간 젊은 세대로부터 ‘고리타분하다’거나 ‘진부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소설가 박덕규(단국대 교수), 아동문학가 김용희·박상재, 수필가 최원현 등 문인 4명이 엮은 동화집 ‘내 마음의 푸른 운동장’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효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는 취지로 만든 책이다. 이미 발표된 동화중에서 정채봉의 ‘눈물 담은 도시락’을 비롯해 김병규의 ‘백번째 손님’, 강원희의 ‘지워지지 않는 낙서’등 8편을 가려 뽑았다. 책을 기획한 박덕규 교수는 “효를 주제로 한 동화 작품은 많지만 어린이들이 효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을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면서 “관념적인 효보다 일상에서의 효를 잘 표현한 작품을 골랐다.”고 말했다. 기획과 실무는 문인들이 맡았지만 제작은 전국문화원연합회(회장 권용태)가 했다. 국고 지원을 받아 1만 2000부를 찍었고, 전국 224개 지방문화원(www.kccf.or.kr)을 통해 전국 초등학교에 무료로 배포한다. 청소년수련관이나 아동복지기관도 신청할 수 있다. 권 회장은 “독후감 행사 등 효 문화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겠다.”고 말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오감을 즐겁게 서울성곽

    오감을 즐겁게 서울성곽

    가슴이 탁 트인다. 서울이 오색찬란한 빛을 한껏 뽐낸다. 상큼한 봄바람이 소곤거린다. 소나무 향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나그네의 발소리가 밤의 정적을 가른다. 서울성곽 야경은 오감을 즐겁게 한다. 덕분에 직장과 일상사에서 쌓인 피로가 녹아내린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고단한 삶의 지게를 잠시 내려놓고 밤나들이를 떠나보자.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지친 오늘을 위로받고, 내일을 설계하다 보면 어느새 성곽 끝자락에 닿는다. 이끼와 넝쿨에 뒤덮여도 어느 한 곳의 기초가 내려앉지 않았다.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걸어온 옛 조상의 발자취와 닮았다. 조선 600년 세월을 지켜온 성곽이 일제침략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무너지고, 찢겨진 것이 아쉬울 뿐이다.2008년까지 성곽을 복원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역사의 숨결을 다시 느낄 날을 기대해본다. 최근 성북구가 밝힌 성곽의 야간 조명은 또 다른 볼거리다. 길이 1㎞짜리 금빛 용이 서울에 나타난 듯싶다.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이 용의 뒤틀린 모습을 연상시킨다.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해지자 서울성곽 아래 놓인 조명이 기지개를 켠다. 성곽과 그 사이로 뻗은 나무줄기가 황금 빛으로 태어난다. 나무는 눈꽃처럼 반짝인다. 밤나들이를 떠날 시간이다. 성북구(구청장 서찬교)가 서울성곽 9개 지구 가운데 처음으로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 빛을 밝혔다. 성북초교에서 삼청터널까지 1095m. 서울시는 총 연장 1만 8127m 중 복원된 1만 566m에 2008년까지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할 예정이다. 점등한 서울성곽 성북지구를 토박이 하두호(78) 할아버지와 함께 둘러봤다. 할아버지는 1952년부터 54년 동안 성북 2동에서 살고 있다.6남매를 키워 출가시키고, 아들과 며느리와 지금도 살고 있다. 건축 일을 해온 터라 주변 환경과 건물에 조예가 깊다. ●오후 4시 한성대 입구역 4호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빠져 나온다. 길을 건너 마을버스 3을 타고 서울성곽 입구까지 올라간다. 마을버스는 낡은 집들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힘겹게 달린다. 성곽이 마주보이는 공터에 버스가 멈춘다. 종점이다. 중앙에 자리한 공중화장실 뒤로 북정노인정이 보인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하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는다. ●오후 4시20분 출발 할아버지는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만한 골목길을 걸으며 성북동을 ‘양과 음이 만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높은 담을 쌓아놓고 문을 걸어 잠그고 호화 주택에 살고있는 부유한 사람과,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숟가락 수까지 공유하는 가난한 사람이 공존하는 동네란다. 성곽과 맞닿은 가난한 동네는 일제시대부터 초가집이 하나둘씩 들어선 곳이다. 사적지여서 개발이 제한된 탓에 집이 많이 낡았다. 반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개발된 성북초교 뒤편에는 호화주택이 들어섰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없이 잘려나간 뒤였다. ●오후 4시30분 성곽 도착 성곽이다. 돌로 만든 성곽은 단단해 보인다. 일제침략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됐다가 1970년대 복원됐다. 성곽 바닥에는 1m 간격으로 조명이 설치돼 있다. 해가 지면 켜졌다가 밤 12시쯤 꺼진다. “은은한 불빛이라 잠잘 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성곽 옆으로 난 흙길을 따라 내려간다. 눈·비가 많이 오면 질퍽해져 산책이 힘들단다. 3분쯤 걸어가자 성곽을 뚫은 문이 보인다. 성곽을 사이에 두고 종로구와 성북구로 나뉘는데 이 문이 통로 역할을 한다. ●오후 4시35분 와룡공원 종로구로 들어서자 와룡공원이 펼쳐진다. 돌과 시멘트로 닦은 길이 탄탄하다. 종로구 쪽으론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성북구 쪽엔 북한산이 뻗어 있다. 봄이 오면 벚꽃과 진달래가 만발해 절경을 이룬다. 성곽을 오른쪽에 두고 돌계단을 올라가자 산책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공원 정자에는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정겹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찾았다지. 저 정자에 앉아서 찍은 사진도 있더구만.” ●오후 4시50분 전망대 2년여 공사끝에 만들어진 계동산길. 이 곳은 전망대와 같다. 좌우로 서울이 한 눈에 보이고, 성곽이 낮아 아기자기하다. 종로구쪽을 바라보면 성균관대와 창경궁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그 길로 내려가면 감사원과 만난다. 중간에 종묘의 녹지를 감상할 수 있다. 성북구로 향하면 출발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위쪽으로는 더 올라갈 수 없다. 군부대가 주둔한 탓이다. 부대 뒤로는 청와대가 있고, 그 청와대를 인왕상과 북한산이 감싸고 있다. ●오후 5시20분 명륜지구로 내려가기 서울을 내려다 보며 올라오던 길을 내려간다. 한결 여유롭다. 사진을 찍는 연인이 눈에 띈다. 꽃밭에선 푸른 새싹이 고개를 빼들었다. 곳곳에 긴 의자가 있어 한숨 돌리기 좋다. 노부부가 다정히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쉬운 점은 성곽에 적혀 있는 낙서들이다. 누군가의 이름도, 욕설도 있다. ●오후 5시30분 선잠담지 과학 고등학교 뒤에서 성곽은 끊어진다. 성북지구가 끝나는 곳이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어둑해져 성곽 조명이 켜질 때까지 이웃한 문화재를 구경하면 된다. 성북초교 앞 교차로를 건너면 큰 길가에 선잠단지가 나온다.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상고 황제(皇帝)의 황후 서릉씨(西陵氏)를 누에신(蠶神)으로 모시는 곳이다. 뽕나무가 한가득 심어져 있다. 지금도 동네 어른들이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낸다. ●오후 5시50분 성락원 성북초교와 선잠단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성락원이 보인다. 조선말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만들어진 별서(別墅)정원이다.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살려 도심속의 청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구청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6000평이 넘는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낮은 담장 너머로 훔쳐볼 수 있다. ●오후 6시 ‘성북동 비둘기’를 찾아 오르다 보면 호화로운 주택단지가 나온다. 대사관 관저가 모여있는 ‘꿩의 바다마을’이다. 이 일대는 북한산 줄기로 수목이 울창하고 바위가 늘어서 있어 산새, 까치, 비둘기, 꿩들이 많이 살았단다. 시인 김광섭이 이곳 풍경을 주제로 ‘성북동 비둘기’를 지었다. 대사관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호주·스웨덴·칠레·슬로바키아 대사관이 곳곳에 숨어있다. 상당히 넓은 곳이라 적당히 올라갔다 내려와야 힘들지 않다. ●오후 6시30분 간송미술관 성북초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간송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고 전형필 선생이 1938년,33세 때 세웠다. 대지가 4000평이라 도시 속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적하고 조용하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 모은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해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부속기관으로 발족했다. 미술사를 연구하는 곳이라 일년에 두 차례,5월과 10월에만 박물관을 개방한다. 국보급 문화재도 10여 점 소장하고 있다. 허 할아버지는 “경기 광주 부자였던 간송 선생이 한국전쟁 때 가난한 주민들에게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오후 6시50분 이태준가 성북동길로 내려오면 ‘쌍문다리’를 만난다. 이 길은 예전에 다리 두 개가 나란히 놓인 냇가였다. 냇가는 차도로 바뀌었지만 쌍문다리라는 명칭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성북2동 동사무소에 도착하면 바로 붙은 찻집이 보인다. 바로 이태준가다. 이 집은 1900년대 지어진 건평 23.2평의 건물로 개량 한옥의 요소를 잘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한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되는데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집약시킨 형태다. 감나무, 사철나무로 꾸민 정원은 아담하다. 찻값은 7000원 안팎. ●오후 7시5분 이재준가 성북동 길을 횡단하면 덕수교회가 보인다. 교회 뒤편으로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이재준가를 만난다. 이 곳도 1990년대 지어진 건평 29.8평의 아담한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이에 부속된 행랑채로 이뤄져 있다. 바깥마당의 우물가 등 집터 주위에 수목은 마당 소나무와 어울려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교회가 관리하는 터라 주로 문이 닫혀 있어 아쉽다. ●오후 7시30분 야간 성곽나들이 어둑해지자 조명이 성곽을 은은하게 비춘다. 성곽에서 1m 떨어진 지점 바닥에서 성곽 위쪽으로 빛을 투사하는 방식이다.3억원을 들였다. 출발점에 다시 오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세상의 모든 빛이 성곽을 향해 달려오는 듯하다. 가로등 역할도 해 산책하기 좋다. 성곽을 가로질러 종로구로 넘어가자 서울 야경이 펼쳐진다. 멀리 서울타워가 보이고, 승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집으로 향한다. 종로구쪽 성곽은 조명이 없지만, 가로등이 많다. 허 할아버지가 꿩의 바다마을에서 성곽을 내려다 보라고 추천했다. 승용차를 타고 주택단지 위쪽으로 단숨에 올랐다. 길이 1㎞짜리 금 빛 용이 서울에 나타난 듯싶다.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이 용의 뒤틀린 마디와 닮았다. 금빛 성곽이 성북동의 음과 양을 조용히 비춘다. ●서울성곽 서울 주위를 둘러싼 조선시대 석축 건축물.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등 4대문과 홍화문(동소문·혜화문), 소덕문(서소문), 광희문(수구문·), 창의문(자하문) 등 4소문으로 이어져 있는 서울의 울타리다.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고 있다. 형태는 타원형. 조선 6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 한 곳의 기초 부문도 내려앉지 않아 우리 조상의 건축 기술을 증명하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끼와 넝쿨이 뒤덮인 성곽은 역사의 질곡을 묵묵히 견뎌온 옛 조상의 삶을 느끼게 해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여성(女性) 도와 천당가겠네

    여성(女性) 도와 천당가겠네

    성하(盛夏)를 맞은 한 남성이 내건「캐치·프레이즈」가『찌는 여름입니다. 피곤하시죠, 여성 여러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수퍼·페미니스트」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준다는 것일까. 궁금하다. 알고보니 7월 1일부터 시작한「허니문·센터」의 신종(新種)사업「캐치·프레이즈」. 그리고 그 남성은 대표 김현(金炫)씨. 『저는 애처가로 자처하지만 워낙 우리 집안은 공처가 3代를 지내 오고 있읍니다』 소박하게 웃는 안경 너머의 안광(眼光)이 아니었던들 둥글한 동안(童顔)은 나이를 가름하기 힘든 생김이다. 31세-작달만한 키의 젊은 사장이다. 지리한 여름 하오 탁자위에 벌여놓은 낙서지를 흘끗보니『대한민국 제일의 부자(富者)가 되어…』『돈은 벌면서도 만인에게「서비스」하게 되니 돈벌고 천당 가고…』. 7월1일부터 여성을 위한 본격적인「서비스」에 나설 완전 채비를 끝내 놓고 잠깐 한가한 틈을타 낙서를 끄적이던 참이다. 『여성을 지치게 하는 것은 남성들의 책임입니다. 그들을 늘 아름다운 채 두기 위해 그들의 힘든 일을 대행하려는거죠』 어느집 맏며느리는 시부모 회갑연(回甲宴)을 맞아 장소 물색에서 헌주(獻酒)를 하고 놀아줄 기생을 부르는 일까지 도맡아 동분서주하다가 잔치가 끝나면 며칠 앓아누울 마련까지 해가며 애를 쓴다. 잔치가 끝나면 뭐가 빠졌다느니 뭐는 결례(缺禮)였다느니 타박을 받는 것도 며느리다. 이때 며느리는 잠깐 이「센터」에 들러 상담을 하면 그뿐. 일체를 대행해 준단다. 사회자, 국창(國唱), 가수,「밴드」를 지정하는 대로 불러주는 일에서 자가용을 빌려주고 촬영을 해주고, 녹음을 해주는 잔일까지 어떤「파티」건 도맡아 그 분위기까지를 책임지고 이끌어 주는 일에 자신을 갖게 됐고『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 기발한「서비스」업의 착상은 우연한 연줄로 모 국영기업체의 이사회를 속리산에서 개최해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닉슨」각료회의만큼은 호화롭지 않더라도 부부동반으로 명승지 찾아 벌인 이사회의「레벨」은「세단」은 전원 소유하고 있을 정도. 번저 최고의「딜럭스」한「버스」를 빌어 각자앞에 일체의 사무도구와 수건, 머리빗, 거울등을 세밀히 갖춘 간단한 사무용「백」을 놓아두었다. 「팀웍」조성을 위해 전원을 태우고「세단」은 빈차로 뒤따르는 여행에서부터 전원을「위밍·업」시켜 나갔다. 이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조명,「백·뮤직」등을 적절하게 조절해오다 끝날때는「핑크·무드」를 조성하는 일까지「성공적인 연출」이었다고 흐뭇해한다. 『사실 5년동안 TV방송국 PD로 있으면서 배운 연출 솜씨 발휘였죠』 분위기에 약한 현대인의 약점을 파고든 연출법이 성공한 셈. 침실로 돌아 가기 직전에「핑크·무드」를 조성했다는 비결을 물었다. 『어느 노신사에게「선생님이 제일 처음 여성을 느낀 나이는 몇살때였읍니까」하고 묻습니다. 앞뒷집 단발머리 소녀, 같은 국민학교 여학생의 기억을 안가진 사람은 드물죠. 금방 노신사는 몇십년을 치올라가 소년인듯 얼굴이 붉어지죠. 그때「옆에 계신 부인을 돌아봐 주십시오」라고 얘기할 뿐이죠』 남성을 위한 모임이었더라도 끝에 가서는 여성 편에 서서 여성을 위하는 모임이 되게 하도록 매사를 매듭짓는다고 했다. 어느 회사의「파티」건 주최자는 집으로가서 그 부인과 한번쯤 의논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기막힌 상혼(商魂)에 안놀랄 수가 없다. 『그렇죠, 「서비스」를 파는 장중심으로 벌이는 장사가 잘된다는 것은 뻔하죠. 누구 만큼 돈을 벌 작정입니다』 이「바캉스」철을 맞아 내건 또다른「캐치·프레이즈」가 『여름휴가는 가족과 함께』. 남자들 끼리 가는 여행에 「가이드」를 하거나 「서비스」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장담도한다. 직원은 전부가 애처가여야 한다는 남다른 경영 방침도 쓰고있다. 전 직원이 도시락을 지참할 것도 솔선 수범하고 있는 사장이다. 도시락을 먹는 한낮의 한때 멀리서 아내의 정성을 음미하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연애 1년만에 결혼한지 1년이 지났지만 김(金)사장은 맞벌이 부인(조동현(趙東賢)·27)을 서울여상 영어교사로 내보내는 것도 경제적 뒷받침을 위해서가 아니라 흐트러지고 「루즈」해지기 쉬운 부인들의 행동에 미리 요(要)경계하기 위해서란다. 이 철저한「페미니스트」가 벌인 여성을 위한 사업이란 신부로서 신경을 써야 할 결혼준비 일체. 부인으로서 남편의 상담에 응할 수 있도록 직장 야유회「가이드」및 주관. 며느리나 부인이 주관할 각종「파티」대행. 그리고「패션·쇼」기획 및 진행이 그것. 여자가 준비해야할 일체를 자신이 애를쓰고 다녀도 못할 정도의 염가알선이 가능한 것은 직매처와 직접 손을 잡고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 외에 부정기적인 비상직원으로 「카메라·맨」, 녹음기술자들을 세사람씩 채용해놓았고 유명한 사회자, 일류 연예인 들과의 쉬운 「컨텍트」가 방송국 출신인 김(金)씨로서는 어렵지 않은일이라는 것. 2만원 짜리 옷한벌 보다는 20원어치 콩나물 값에 애착을 보이는 부인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계산서에는 몇십원까지 정확하게 거스름을 붙이고 또 정확하게 거스름하는 계산방법도 쓰고있다. 고대(高大) 국문과 재학시에는 현역 연극인들과 연극을 했고 졸업후에는 KBS-TV, TBC-TV에서 사회교양「프로」PD로 일해오면서 익혀온 기막힌 연출 솜씨가「파티·디렉터」라는 국내 신종 직업에 눈을 돌리게 만든 것. 『한여름 큰일을 치러야하는 여성은 (75)3135로 전화「다이얼」을 돌리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거죠』 [ 선데이서울 69년 7/6 제2권 27호 통권 제41호 ]
  • Google의 저력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남쪽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의 본사. 휴게실 대형 칠판에는 ‘구글러(Googler·구글 직원)’들이 그려놓은 갖가지 기괴한 그림과 낙서, 잡다한 아이디어들로 빽빽하다. 이 칠판이야말로 주식 시가 총액 1000억달러(약 100조원)짜리 ‘구글 우주선’을 움직이는 핵심 설계도다. 구글은 현재 중국의 인터넷 검열에 순응해 ‘(고객의 이득에 반하는) 나쁜 짓을 하지 말자.’던 창업 정신을 저버렸다는 질타와 함께, 한때 주당 500달러에 육박했던 주가가 360달러까지 떨어지는 등 곤경에 처해 있다. 그러나 20일자 시사주간 타임은 커버 스토리로 구글을 다루며 이러한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구글의 힘은 자유분방한 구글러들에서 나온다고 결론내렸다. 창조적인 혁신이 강조되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구글의 의사결정 신속성은 속도는 가히 독보적이다. 개발자의 아이디어는 매니저를 거쳐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곧바로 전달된다. 구글러는 1단계만 거치면 최고경영자(CEO)와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구글스러움’은 혁신적이고 빠르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창업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 스니커즈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다. 마사지와 치과 진료, 수영과 롤러 하키를 직장에서도 즐길 수 있으며 애완견도 회사에 데려와 돌볼 수 있다. 업무 시간은 ‘70·20·10’으로 짜여진다. 구글러는 70%를 회사 업무에 쓰고 20%는 업무와 연관된 개인 사무에, 나머지 10%는 자유롭게 상상하는 데 쓴다. 구글의 혁신은 바로 이 ‘10%’에서 나온다고 타임은 강조했다. 구글 직원은 6000여명으로 지난 한해동안 2배가 늘었다. 그만큼 일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구글의 입사 과정은 단순하다.‘고차 방정식’부터 ‘문학’까지 퀴즈만 풀 수 있으면 된다. 이를 테면 ‘현재까지 파생된 가장 아름다운 수학 방정식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면 된다. 페이지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가 두렵다.”며 “그들은 진정 구글이 파멸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임은 구글러들이 있는 한, 이 회사는 야후와 MS 등 라이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등대, 지역문화 불밝힌다

    어두운 밤 항만이나 포구에서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등대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13일 등대의 모양이 기존의 원통형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지역의 특성과 예술적 조형미를 갖춘 등대로 변모하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대표적인 등대로는 ▲평택시와 당진군의 화합과 번영을 기원하고 입출항 선박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는 ‘화합의 등대(평택·당진항)’▲지역특산물인 송이버섯을 형상화하고 관광객에게 바다 쉼터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송이버섯등대(양양 물치항)’▲관광객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하는 ‘인어등대(군산 선유도)’▲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을 기리고자 거북선 형상을 담은 ‘거북선등대(통영 대고포항)´ 등이 꼽혔다. 또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네델란드인 하멜이 13년 동안 살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하멜등대(여수 구항방파제)´▲낙서판을 설치해 관광객들에게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낙서등대(포항 동방파제)’ 등 지역이미지를 살린 등대도 관광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해양부는 특히 19일 개장하는 부산항 신항의 관문인 동·서방파제에 세계로 뻗어나가는 신항의 힘찬 모습을 뱃머리와 파도 그리고 전통 차전놀이와 승천하는 해룡의 모습을 형상화한 ‘차전놀이등대(조감도)’를 건립하기로 했다. 모두 20억원이 투입되면 오는 6월공사에 들어가 2008년 완공한다. 이밖에 올해 동·서·남해안에 각각 1곳을 선정, 지역특성에 맞는 예술적 조형미를 갖춘 희망의 등대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설치할 계획이다. 등대를 지역특색과 어울리는 예술적 조형물로 제작해 새로운 해양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복안에서다.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책꽂이]

    ●한국 식물명의 유래(이우철 지음, 일조각 펴냄) 개망초, 개아마, 개솔새, 개벚나무…. 여기서 접두어 ‘개’는 개불알꽃(꽃 모양이 여름에 축 처진 개의 불알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유사하다, 흡사하다는 뜻으로 동물 개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 예컨대 개망초란 이름은 그것이 망초와 비슷하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식물학자인 지은이(강원대 명예교수)가 북한과 옌볜지역에서 통용되는 이름까지 조사해 식물 이름의 유래를 소개한다.3만 5000원.●검은 천사, 하얀 악마(김융희 지음, 시공사 펴냄) 무채색인 검정과 하양은 신의 색이 되기도 하고 악마의 색이 되기도 한다. 또 시대에 따라 우울한 색이 되기도 하고 순수한 색이 되기도 한다. 서양 미술에서 사용된 흰색과 검정색의 의미를 살폈다. 폴 세잔이 그리고 싶어했던 새하얀 식탁보, 파르테논 신전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하얀색 건물에서 백설공주의 ‘백설 같았던’ 피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왔던 오드리 헵번의 검은색 지방시 드레스까지 다룬다.1만 2000원.●교황 베네딕토 16세 평전(존 알렌 지음, 왕수민 옮김, 한언 펴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광장에서 열린 한 행사에 빨간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이는 교황이 추기경 시절 ‘신의 충복’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이미지와는 달리 교황에 재임하면서 훨씬 부드럽고 소탈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전세계 10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끌고 있는 교황을 다방면에 걸쳐 분석했다. 저자는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바티칸 통신원.1만 9000원.●와일드 하모니(윌리엄 프루이트 지음, 이한음 옮김, 이다미디어 펴냄) 미국의 세계적인 동물학자인 저자가 북극과 알래스카의 광대한 자연을 직접 탐사하고 쓴 책. 아한대 침엽수림인 타이가에서 나무가 자라지 않는 땅인 툰드라 지대에 걸쳐 살아가는 순록과 늑대, 말코손바닥사슴, 회색곰과 흑곰, 스라소니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이 사냥을 위해 뿌린 독약에 순록이 죽고, 그 순록을 먹은 늑대와 늑대를 먹은 갈까마귀가 차례로 죽는 죽음의 연쇄고리가 섬뜩하게 묘사된다.9800원.●북한정권 탄생의 진실(시모토마이 노부오 지음, 이혁재 옮김, 기파랑 펴냄) 구 소련 공산당 정치국 사료(대통령궁 문서관 소장) 등을 토대로 아시아 냉전의 역사를 살폈다. 저자(호세이대 교수)는 ‘김일성이 1930년대 이후 항일 혁명투쟁을 이끌어온 결과 형성된 주체의 나라’라는 1998년도 개정 북한 헌법 전문은 정치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한반도에 진주한 구 소련 적군(赤軍, 제25군)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국가가 바로 북한이라는 것이다.9000원.●경복궁 근정전(신응수 지음, 현암사 펴냄)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이후 133년 만인 2003년 해체ㆍ보수 공사를 마친 경복궁 근정전에 대한 중수기(重修記).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인 저자는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 최원식, 조원재, 이광규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관영 건축 기문(技門)의 계승자. 근정전은 하층 190평, 상층 146평으로 이뤄진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임금이 집무를 보고 국가의식을 거행하던 조선왕조의 상징적인 궁궐 건물이다.5만원.●조영래 평전(안경환 지음, 강 펴냄) 1990년 마흔셋의 나이에 세상을 뜬 조영래 변호사에게 늘 따라다니는 형용어구가 있다. 인권변호사, 그리고 ‘전태일 평전’의 숨은 저자라는 것이다. 그를 우리 시대의 공동 기억으로 만든 이 두 가지 말 속에 그의 삶이 압축돼 있다. 인간 조영래의 다양한 면모(낙서벽, 술을 못하면서도 끝까지 술자리를 지킴, 헤비 스모커 등)도 들려준다.1만 5000원.●조선영화-소리의 도입에서 친일 영화까지(이화진 지음, 책세상 펴냄) 조선에 최초로 발성영화가 도입된 1935년부터 해방을 맞은 1945년까지의 영화사를 돌아보며 오늘날 한국 영화에 남아 있는 식민지의 흔적을 살펴본다.4900원.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서울 이야기] (32) 지하철 문화

    [서울 이야기] (32) 지하철 문화

    많은 미래학자들은 미래가 신 보헤미안(New-Bohemian)의 시대가 될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신 보헤미안이란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적 기를 발산하고자 여기저기 떠도는 15세기 체코 보헤미아 지방의 집시들처럼,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곳 저곳에 떠다니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디지털 기술과 세계화가 결합한 지금, 세계는 신 보헤미안들로 급변하고 있다. 시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는 사람들. 어디서든 어느 곳의 일이든, 무엇이든 처리하는 사람들. 그러기에 세계는 지금 ‘유목민의 시대’라 불린다. 21세기가 새로운 보헤미안이 지배하는 유목민의 시대가 된 것은 디지털 정보기술 때문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랩탑 컴퓨터, 모바일 폰, 디지털 정보의 수신이 가능한 각종 정보기기와 디지털 영상 때문에 사람들은 어디서나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각국은 어떻게 하면 디지털 정보가 무리없이 수신되고 전송될 수 있는 지역을 만들지 고민한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언제나 지배하는 세계. 바로 디지털 유비쿼티스의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 세계 모든 도시의 꿈이다. 꿈의 네트워크가 재림하는 디지털 유비쿼티스의 세계. 그런데 이 꿈은 이미 서울에 활짝 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서울의 지하철은 바로 그 현장이다. 이곳은 첨단의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계다.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멀티미디어 광고판과 각종의 영상정보기기들, 그리고 이동하는 잠시의 자투리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바일러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디지털의 현상에서만 보자면 서울의 지하철은 유비쿼티스가 완성된 세계라 할 수 있다. ●지하철은 문화의 창이다. 서울에 지하철이 놓여진 건 1974년이었다. 청량리에서 서울역까지 10㎞구간에 단선으로 운행되던 지하철은 지금 8개 노선에 304㎞의 길이를 가진 세계4대 지하철로 발전하였다. 영국에 지하철이 처음 개통된 것이 1863년이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보다 110년 늦게 개통되었으나 불과 30년 만에 우리는 세계의 지하철을 따라잡았다. 서울의 지하철은 현재 37%의 수송분담률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이 지하철을 이용, 서울과 수도권을 이동하고 문화를 보려면 지하철을 보라고 얘기한다. 지하철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자투리에 즐기는 문화가 있다는 얘기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 그것이 서울의 상이자 이미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나라의 여가와 생활문화, 일상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쿄의 열차는 만화책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일본 사람들의 일상에 만화가 얼마나 깊게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만화는 생활인 것이다. 바로 이 사람들이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을 이끈다. 자투리 시간에라도 만화를 즐기는 사람들 때문에 일본은 튼튼한 시장을 형성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경쟁력 있는 만화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의 지하철은 ‘악명높은’ 낙서예술,‘그래피티’로 유명하다. 지하철역마다 지저분할 정도로 여기저기 그려진 낙서들은 그러나 현대 뉴욕 예술의 힘을 보여준다. 많은 예술가들은 지하철의 벽과 전동차를 화판 삼아 회화의 기초를 닦는다. 때문에 여기서 많은 작가들이 나온다. 현대 회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바스키야(J.M.Basquiat)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그래피티로부터 시작하여 뉴욕 예술을 지배하는 선도자가 되었다. 아무리 지저분한 낙서라도 예술로서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태도. 그리고 그로부터 다양한 예술을 만들어 내는 뉴요커들의 힘. 뉴욕이 파리보다 앞서 현대 예술을 실험하는 장이 되고 있다는 얘기는 이 그래피티로부터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처럼 서울의 지하철도 서울의 문화와 일상, 생활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휴대전화를 갖고 전화를 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자.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정보통신 강국이고 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 1위의 휴대전화 가입률을 자랑하고 있고, 세계의 모든 게임업체들이 게임 출시에 앞서 시장 가능성과 버그 여부를 타전하는 베타테스트로 한국을 택할 정도로 가장 큰 게임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인터넷과 게임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지하철은 멀티미디어 경쟁장이다.2002년 월드컵 이후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가 지하철에 보급되면서 서울의 지하철은 아웃도어 미디어(Out-Door Medi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아웃도어 미디어란 가정 내 있는 TV와 달리 집 밖에 있는 TV와 미디어, 즉 지하철과 도시 곳곳에 설치된 하이비전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집 안에서 미디어를 즐기는 시대에서 집 밖에서, 그 모든 곳에서 미디어를 즐기는 나라가 되었다. 2002년 서울광장을 뒤덮었던 붉은악마의 물결.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아웃도어 미디어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모든 기기는 진보하듯, 지금 아웃도어 미디어는 다시 테이크 아웃 미디어(Take-out Media)에 자리를 내 주고 있다. 위성파와 지상파 DMB 등 다양한 매체들이 모바일 폰으로 시민들의 일상에 자리잡는다. 지하철은 그 대표적 공간이다. 휴대전화로 TV를 보고, 디지털 정보들을 수신하며, 게임과 오락, 이메일 등을 체크하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우리가 세계에 앞서갈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도쿄의 지하철이 일본의 만화산업을 상징하고, 뉴욕의 지하철이 뉴욕의 현대예술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우리의 지하철은 우리가 세계에 앞서나가는 정보와 디지털, 영상의 강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공간으로서 지하철 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철. 시민의 일상이 담겨 있는 지하철. 이 지하철을 문화공간화하자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 꿈이 현실화 된 것은 2002년 월드컵과 관련해서다. 2002년 월드컵 개최와 더불어 뭔가 보여줄 것이 필요했던 서울시는 2000년, 정보와 미디어 도시라는 서울의 특징을 세계에 알려 줄 ‘미디어 시티 2000’(Media City 2000) 행사를 기획하게 된다. 도심 내 하이비전을 이용, 디지털 예술의 새로운 장을 보여주고자 했던 행사는 행사 진행상의 문제점과 도심 내 하이비전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로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행사를 준비하면서 지하철 역사 곳곳을 문화공간을 조성하기에 이른다. 광화문 갤러리는 당시 기획된 지하철 문화공간 중 하나다. 이후 지하철 문화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이 높아지면서 서울시는 두 가지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하나는 광화문 갤러리와 같이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충무로에 문을 연 활력연구소(현재 오!재미동)나 혜화역의 전시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른 하나는 지하철 예술무대 개최다. 국내 및 해외 연주팀을 초청, 지하철 역사 및 전동차안에서 각종 연주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맛볼 수 있도록 한 이 정책은 시민들로 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2002년과 2004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문화정책 중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민들은 모두 ‘지하철 예술공간 조성’을 첫번째로 꼽았다. 멀리 있기보다는 가까이 있는 곳의 예술을 가장 우수한 정책으로 꼽은 것이다. 서울시는 향후 이 지하철은 점점 더 친숙한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려 하고 있다. 우선 지하철 문화공간을 확충하는 한편, 예술무대를 활성화시키는 주력하고 있다. 지금은 역사 내에 인접한 각 건물이 앞 다투어 지하철 공간과 연계된 예술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이 공간들을 예술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울시의 주요한 정책이다. 이어 서울시는 좀 더 나은 지하철 문화를 만들고자 상업적인 것보다는 예술적인 광고물의 홍보공간으로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 서울의 지하철은 정보통신과 영상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동시에 서울의 상업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지저분할 정도로 지하철 공간을 뒤덮고 있는 상업적 광고물과 미디어는 지금 당장 철거하긴 어렵지만, 앞으로 점점 공익적·예술적 용도로 사용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서울의 지하철은 조만간 9호선 개통과 더불어 강남과 강북, 강동과 강서, 서울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광역철도망으로서 거듭날 예정이다. 시민의 모든 일상은 지하철로 연결될 것이고, 대중교통 우선정책으로 서울의 지하철은 자가용보다 더 매력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지하철은 단지 교통수단이 아니다. 지하철은 그 시대, 그 나라, 그 도시의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사람들이 일상이 담긴 곳이고, 우리의 문화가 담긴 곳이다. 그러니 만큼 우린 서울의 지하철을 좀 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예술과 미학이 담긴 매력적인 얼굴로 만들어야 한다. 서울의 지하철은 바로 서울의 얼굴이자 시민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라도삼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 성탄 아동도서 출간 ‘봇물’

    아동 서가에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신간들이 속속 새로 꽂힌다. 불경기에 독자들 주머니를 배려해서일까. 올해는 조촐한 외장의 실속있는 읽을거리들이 눈에 띈다. 성탄선물로 아이에게 책 한권 선물하면 좋겠다.“산타가 골라주더라.”는 엄마아빠의 하얀 거짓말에 아이들은 오래오래 행복할 것이다. 성서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귀띔해주는 그림책으로는 숲에서 펴낸 ‘하나님 처음 만드신 세상’(브렌든 파월 스미스 글·그림, 유영소 옮김)과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있다. 이들 책의 특징은 배경그림이 레고 모형으로 이뤄졌다는 점. 레고로 만들어진 에덴 동산,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아담과 이브 등 장난감 세상으로 옮겨온 성경이야기에 아이들이 푸욱 빠질 만하다. 동화작가 유영소가 번역을 맡아 글맛도 한결 감칠맛난다.5세 이상. 명작 대접을 받는 ‘우체부 아저씨 시리즈’의 두번째권 ‘우체부 아저씨와 크리스마스’(앨런 앨버그 글, 자넷 앨버그 그림, 김상욱 옮김, 미래M&B 펴냄)도 선물용으로 깜찍하다. 투명비닐에 포장된 이 그림책 속에는 6통의 편지가 들어 있어 흥미로운 책읽기를 도와준다. 우체부 아저씨가 아기곰 가족, 빨간모자 아가씨네, 병원, 꼬마 생강빵이 사는 과자상자 등을 들러 이야기를 엮는다. 눈 내리는 창문 너머의 아늑한 실내풍경처럼 그림들이 정감있어 좋다.4세 이상. ‘화이트 크리스마스’(캐럴린 뷰너 글, 마크 뷰너 그림, 넥서스주니어 펴냄)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판타지를 꿈처럼 화사하게 그려낸 그림동화. 동글동글 눈사람들이 달빛 가득한 광장에 모여 축제의 밤을 밝히는 장면장면들이 성탄 트리를 마주하는 듯 눈부시다.4세 이상. 산타 할아버지 주인공이 빠질 리 없다. 다리를 다친 산타 할아버지를 대신해 꼬마 산타 니키와 사슴 루돌프가 선물배달에 나서는 유쾌한 이야기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파요!´(작은 울타리 글, 윤진경 그림, 느낌표 펴냄)에 담겼다.4세 이상. 초등 저학년생이라면 국산 창작동화집 ‘산타클로스를 납치하라´ (노경실·원유순 외 글, 백명화 외 그림, 리젬 펴냄)가 좋겠다. 착한 일을 하지 않는 아이의 얼굴에 낙서를 하고 다니는 ‘산타 크레파스’ 이야기가 표제작.‘산타할아버지에게는 무슨 비밀이 있을까’‘세상에서 제일 큰 양말’ 등 모두 8편의 훈훈한 단편이 묶였다. 사려깊은 아이에게 어울리는 그림동화는 ‘선물이 꼭 필요한 날’(천즈위안 글·그림, 김현좌 옮김, 베틀북 펴냄)이다. 아빠가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집안형편이 어려운 꼬마곰 가족. 근사한 선물을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최선을 다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체온이 느껴진다.4세 이상. 한 권으로 온가족을 충족시킬 실속만점의 책은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성경 이야기’(고정욱 글, 김경희 그림, 나무생각 펴냄). 부모 자식간의 이야기, 지혜나 교육 등 가족관계를 생각케 하는 성경 속 대목들을 간추린 공력이 돋보인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간부 여사원이 괴롭히는데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9)

    사연 : 상사(上司)의 구박 면하려면 석 달 전부터 저의 사무실 생활은 지옥보다도 더 비참해졌습니다. 저는 직장생활 2년의 22세의「타이피스트」입니다. 그런데 석 달 전 40대의 노처녀「타이피스트」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타이피스트」경력 20년이니까 물론 초「스피드」예요. 영어도 잘하기 때문에 외국인인 사장의 비서역할까지 합니다. 회사가 커져서 채용된 간부급「타이피스트」라나요. 그런데 이 간부 여사원이 들어오는 날부터 저를 구박하는 거예요.「미스·타이프」를 나무라는 것은 물론 전화받는 법이 못됐다는 등, 심지어는 걸음걸이까지 흉을 봅니다. 그것도 10여명 남자사원이 있는 데서 큰 소리로 빈정거려요. 요즘은 회사를 나오려면 골치가 아파지고 그 여인이 옆에 있으면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사무실에서 퇴근하면 두통과 가슴의 고통이 멎는 거예요.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처지는 못됩니다. <서울 중구 소공동 李> 의견 : 아첨, 대결 중 택일 22세 아가씨와 40대 노처녀 사이에도 질투의 감정은 생생하게 일어나는 모양이군요.「미스」리는 자기만이 피해자인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마 질투의 감정은 양편에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을 시인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이 말이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요? 문제 해결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미스」리가 태도를 돌변해서 이를 테면 옛날 소설에 나오는 기생첩이 대감마님 위하듯 아첨하는 법. 둘째, 대판 싸움을 걸어서 응어리졌던 감정을 푸는 법. 셋째, 제일 건전하고 상식적인 방법인데 낙서첩을 한 개 마련하여 틈만 나면 그 여인의 욕설, 악담을 적는 것입니다. 속이 후련해져서 정작 본인을 맞닥뜨리면 미운 감정이 약화될 겁니다. <Q> [ 선데이서울 69년 4/20 제2권 16호 통권 제30호 ]
  • [사설] 교원평가 시범학교 누가 협박하나

    교원평가 시범학교에서 해괴망측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시범학교로 선정된 48개교 중 일부 학교에서 교장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이나 협박전화 등이 난무할 뿐더러 교정에 붉은 페인트로 쓰인 협박 문구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학교의 교정은 미래를 끌고 나갈 학생들의 배움터이다. 교원평가를 둘러싼 대리 싸움터로 변질돼서는 안 되는 귀중한 곳이다. 그렇기에 교정 안에서 일어난 비방·협박·낙서 등 비교육적인 처사는 묵과할 수 없는 일임을 확실히 해둔다. 현재 드러난 시범학교에 대한 방해 및 음해는 저질스럽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현관 유리창에는 ‘교평 반대’라는 낙서가 페인트로 씌어 있고, 운동장의 단상에는 붉은 스프레이 등으로 ‘민주절차 무시하는 ××× 떠나라’라는 글씨가 휘갈겨져 있다. 또 본관 통로와 교내 입간판에는 ‘너 딱 걸렸어’라는 유인물이 나붙고, 어느 교장에게는 ‘제명에 죽으려면 시범학교 신청을 철회하라.’라는 협박 전화까지 서슴지 않았단다. 정녕 참교육의 현장인지 묻고 싶다. 더구나 교원평가에 참여하는 동료 교사들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이완용’으로 매도하는 지경이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교원평가제의 당위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시범학교는 교원평가의 본격 시행을 위한 틀을 짜는 과정이다.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시범 기간인 내년 8월까지 공론의 장은 열려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배움터를 훼손하고 학습 분위기를 해친 비교육적인 행위는 엄단해야 마땅하다. 수사를 통해서라도 누구의 짓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목적을 위해 협박을 일삼고 배움터마저 수단으로 이용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누가 참교육을 실천하는 참교사인지를 잘 알고 있다.
  • 행정수수료 최고 100배 차이

    민원인들이 같은 종류의 행정서비스를 받을 경우 자치단체에 내는 행정수수료를 전국적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행정수수료가 시·군마다 최고 100배까지 차이가 나 민원인들의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16일 전북도에 따르면 도내 14개 시·군에서 받고 있는 217가지 행정수수료에 대해 비교분석을 실시한 결과 172가지는 제각각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가지는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등 5배 이상 차이가 나는 행정수수료도 40가지에 이르고 있다. 시체운반업 허가사항 변경허가의 경우 전주시는 500원의 수수료를 받는 데 비해 남원시는 무려 100배 많은 5만원을 징수하고 있다. 유료직업소개소사업 허가 및 변경허가신청도 고창군은 500원을 받는 반면 남원시는 2만원을 받는다. 인쇄소 등록신청을 할 때 내야 하는 수수료도 진안군은 2만원, 전주시는 500원으로 40배 차이가 난다. 의료기관·약업소의 폐업확인원 발급, 식품위생업소 허가사항 및 신고증재교부도 지역에 따라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건축물관리대장 발급, 토지이용계획 열람 등도 3∼5배 편차가 있다. 일선 시·군에서 같은 수수료를 받고 있는 것은 국토이용계획 확인, 공장시설등록허가 신청, 토지사용승낙서 등 36.5%,99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이 행정수수료가 각기 다른 것은 중앙정부령으로 자치단체가 받을 수 있는 수수료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해주면 시·군이 조례로 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군마다 원가계산을 하는 기준이 다르고 정확한 기준도 없어 행정수수료가 들쭉날쭉한 주요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북도는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수수료 원가분석 시·군 합동작업을 실시, 같은 행정서비스를 받을 경우 수수료 편차가 크지 않도록 조정을 유도키로 했다. 도 관계자는 “시·군마다 행정의 자율성이 있기 때문에 강요하거나 지시를 할 수 없지만 원가계산 합동작업을 실시하면 어느 정도 공통된 의견접근을 이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부산 ‘戀街’/바닷가] 해운대·광안리·태종대로 오이소

    [부산 ‘戀街’/바닷가] 해운대·광안리·태종대로 오이소

    부산은 서울에 이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다. 사람도 많고 땅도 넓다. 효율적으로 다니지 않으면 제대로 즐기지는 못하고 몸만 피곤하기 십상이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부산시 추천 코스를 소개한다. 시간이 반나절밖에 없다면 용두산공원을 시작으로 자갈치시장-태종대-어린이대공원-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기를 권한다. 그러나 최소한 하루 이틀 정도는 다녀야 부산의 맛을 봤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하루 코스는 범어사에서 출발해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을 지나 복천박물관-충렬사-수영공원-UN기념공원-용두산공원을 거쳐 자갈치시장에서 끝난다. 사적보다는 놀거리·볼거리를 즐기는 관광객은 아시아드주경기장-해운대해수욕장-달맞이공원-벡스코-이기대공원-UN기념공원-용두산공원-자갈치시장을 둘러보면 된다. 을숙도와 자갈치시장, 태종대, 초량상해거리, 서면 등을 도는 코스도 있다. 이틀 코스는 더 다양하다. 태종대에서 시작해 자갈치시장과 PIFF광장, 국제시장을 거쳐 용두산공원에서 1박을 한다. 다음날에는 민주공원에서 시작, 어린이대공원-아시아드주경기장-충렬사-복천박물관-광안리해수욕장-UN기념공원-부산박물관을 들르면 된다. 3,4일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부산 이틀 코스에 경남 통도사, 울산 석남사, 경남 부곡온천, 경북 경주, 경남 창녕 등을 함께 다니면 훌륭한 남도 여행이 된다. 부산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부산은 항구다. 이 명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차량과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심보다는 해안가다. 넓은 백사장과 호텔, 술집 등 유흥가가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해운대. 비릿한 바다 냄새와 횟집들이 셀 수 없이 들어서 있는 광안리. 그리고 기암괴석의 천국 태종대. 이곳을 들르지 않고서는 항도(港都) 부산에 왔다고 말할 수 없다. ●설명이 필요없는 피서 1번지 해운대 해운대구 중동, 좌동, 우동 일대의 대규모 유원지다. 너무 유명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히는 명승지다. 신라 말기의 대학자 최치원이 해인사로 가던 길에 들렀다가 절경에 반해 자신의 호 해운을 따 이름을 지었다. 조선시대부터 행락지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시대 때 휴양관광지로 개발됐다. 타원형의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은 길이만 1.6㎞로 국내 최대 규모다. 동백섬, 해운대온천과 달맞이고개 등이 근처에 있다. 각종 호텔과 콘도미니엄 등 숙박은 물론 휴양시설이 완비돼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에서는 카지노도 즐길 수 있다. 국제적인 휴양지답게 축제도 끊이지 않는다.1월에는 연날리기와 북극곰 대회를 비롯해 6월 모래작품전,7월 해수욕,8월 해변걷기와 비치발리볼 대회,10월 철인3종 경기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10월 부산국제영화제는 축제의 백미다. 국내외에서 몰려든 영화 팬들이 남포동과 해운대를 가득 메운다.APEC의 현장인 벡스코도 근처에 있다. 먹을거리 또한 풍성하다. 가장 대표적인 식당은 해운대구청 인근의 금수복국(051-742-3600). 숙취에 좋은 콩나물과 미나리가 복어와 함께 뚝배기 한 가득 나온다. 해장에는 복국에 따라갈 음식이 없다. 맛 자체도 워낙 뛰어나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장기 여행자도 많다. 매운탕보다는 맑고 담백한 지리가 낫다. 냉동복국은 8000원, 황복국은 2만원. 원조할매국밥(051-746-0387)도 지나칠 수 없다. 해운대에서만 40년 가까이 이어왔다. 얼큰한 쇠고기국밥과 깔끔하고 담백한 선지국밥, 따로국밥이 이 집의 모든 메뉴다. 그러나 빼어난 맛과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놀란다. 국밥 2500원. 리베라호텔 뒤편에 있다. 이밖에 로드비치호텔 근처 서울집(051-742-6245)이나 그랜드호텔 근처 동백섬횟집(051-741-3888)도 고등어구이와 회로 일가를 이뤘다. ●“회 하면 광안리지예∼” 근처 금련산에서 내려온 질 좋은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광안리 해수욕장은 해운대, 송정 등과 함께 부산의 대표 피서지로 손꼽힌다. 이곳의 명물은 광안대교.2003년 1월에 개통됐다. 길이만 7420m다. 웅장함과 미려함을 함께 갖추고 있어 개장하자마자 부산의 명물이 됐다. 이 곳에서 회를 안 먹으면 광안리에 왔다고 말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민락동 회센터가 가장 유명하다. 회센터에서는 직접 횟감을 구입한 뒤 요리를 해 주는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긴다.1인당 2000∼3000원만 내면 회를 떠 주는 것은 물론 해물탕도 끓여준다.1인당 2만원 안쪽이면 충분히 먹는다. 광안리 백사장을 내려다보며 먹는 운치도 싱싱한 맛의 회 못지않게 감칠난다. 광안대교를 좀더 가까이서 보면서 회를 먹고 싶다면 부산횟집(051-753-8881)을 찾으면 된다. 이 집의 회는 유난히 쫀득쫀득하기로 유명하다. 비결은 ‘공기 숙성’. 회를 뜬 뒤 1시간 남짓 냉장고에 놔 두면 회 표면의 물기가 날아가면서 훨씬 쫄깃쫄깃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문어, 멍게 등 함께 나오는 음식도 맛깔나다. 모둠회가 1인당 2만∼2만5000원으로 가격도 부담스러운 편이 아니다. 민락동 회센터에서 바닷가 쪽으로 30m 정도 더 들어가면 된다. 민락동 회센터 맞은 편 새벽집(051-753-5821)은 부산에서 호남식 콩나물국밥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전남 담양산 간장으로 간을 낸 국밥맛은 깔끔하고 시원하다. 싱싱한 콩나물과 파, 그리고 생달걀이 구미를 돋운다. 서비스로 나오는 두부도 맛있다. 민락동 회센터 맞은편에 있다. ●기암괴석의 향연 태종대 부산 해안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태종대다. 해발 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암괴석이 층층이 솟아있는 기이한 절벽이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깎아내린 듯 아슬아슬한 절벽이 한번 보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원시 그대로의 태종대를 기대하며 다시 방문한 관광객은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방문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바위를 깎아 평평한 나무 계단이 설치됐다. 절벽 중간중간에 전망대, 카페 등 건물도 지어놓았다. 걷기 편하고 볼거리도 제공하지만 일부러 조성한 공원 느낌이 난다. 색색의 지층, 공룡 발자국 등 한반도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절벽에서 보이는 지층은 어릴 적 색깔 섞인 찰흙으로 빚던 모형처럼 색이 또렷하다. 유적을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 있어 미리 공부하지 않고 찾아가도 쉽게 익힐 수 있다. 다만 분별없이 써 놓은 낙서들이 눈을 찌푸리게 한다.‘며칠 철수가 다녀가다’ 유의 글씨를 페인트나 매직, 수정액 등으로 큼지막하게 써놓은 자국이 곳곳에 보인다. 추억은 마음 속에 담아두고 흔적은 일기장에나 남길 것. 동절기에는 오후 8시까지만 개방한다. 부산 이두걸 서재희기자 douzirl@seoul.co.kr
  • [씨줄날줄] ‘톨레랑스 제로’/ 이목희 논설위원

    1990년대 중반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미국 뉴욕시장은 ‘깨진 유리창 이론’을 중시했다. 사회학자 제임스 윌슨, 조지 켈링이 내놓은 주장이었다. 건물 유리창 하나가 깨진 사건을 방치하면 불량배들이 다른 유리창을 잇달아 깬다는 것이다. 이어 페인트 낙서가 뒤덮이고 그 지역 전체가 슬럼으로 변한다는 범죄발생이론이다. 줄리아니는 사소한 범죄를 일벌백계로 다스려 치안을 강화해 나갔다. 이른바 ‘톨레랑스 제로’(무관용주의) 정책이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뒤늦게 줄리아니를 모방했다. 대표적 우익지도자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2년 내무장관에 취임한 후 범죄자를 향해 ‘톨레랑스 제로’를 외쳤다.1차 범죄와의 전쟁에서 성과를 거둔 그의 인기는 치솟았다. 올 6월 내무장관으로 다시 기용된 사르코지는 차기 대권후보 인기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사르코지가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파리 교외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10여일째 계속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아프리카계 소년 2명이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가 감전사하면서 사태는 시작됐다. 과잉단속 논란이 일었지만 사르코지는 “인간쓰레기와 건달들을 청소해버리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다민족 국가의 대표격이다. 로마, 갈리아, 프랑크, 노르만 등 라틴·게르만족이 혼합되어 주류가 만들어졌다. 아직 켈트, 알자스·로렌, 플라망족 등은 독자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인종 포용과 함께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자유·평등·박애’의 선도국가가 되었다. 냉전시대 동서 양진영의 망명객, 심지어 독재자들도 프랑스는 너그럽게 받아줬다. 사르코지는 톨레랑스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른 종교, 인종, 이념을 가진 이들의 권리와 처지를 용인·이해하는 것이 톨레랑스다. 차별없이 섞여 사는 지혜인 셈이다. 근래 부쩍 늘어난 무슬림 이민자들이 차별대우를 심각하게 느낀다면 톨레랑스의 작동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근본의 톨레랑스가 깨지는 상황에서 방화·폭동의 범죄 요소만 부각시켜 ‘톨레랑스 제로’라고 위협해선 안 된다. 이민자·외국인취업자 갈등은 한국을 포함, 대부분 국가들에도 발등의 불이다. 프랑스가 과거의 톨레랑스를 회복, 모범사례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서양,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이바르 리스너 지음

    요즘 대중을 겨냥한 역사서들에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마지못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설 주인공처럼 등장해 사건을 주도해 나간다. 수동태로 쓰여진 문장보다 능동태로 서술된 문장이 자연스럽듯, 똑같은 역사라도 인물을 앞세워 펼쳐 나간 책이 좀더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서양, 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이바르 리스너 지음, 김동수 옮김, 살림 펴냄)는 서양이라는 7000년에 걸친 방대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그 주인공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간 책이다. 서양정신의 기원이 된 역사적 유산들과 사건들, 뛰어난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창조적 작품들이 어떻게 서양문화를 풍성하게 했는지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책은 바벨탑으로 상징되는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부터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문화, 중세를 넘어 20세기의 서양 정신을 넘나드는 방대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저자는 때로는 모래가 휘날리는 바빌론 사막의 한 가운데서,7000년 전 거대한 신전을 세우려 했던 고대인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에페소스에 남아 있는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집으로 알려진 곳에선 서양에 미친 그녀의 정신적 영향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같은 방식으로 저자는 서양의 문학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탐구의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최초의 동서양의 충돌로 기록되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어떤 인물들이 유럽의 운명을 결정했는지, 세계를 뒤흔든 로마의 뒷골목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 편의 다큐멘터리 프로를 틀어주듯 생생히 서술하고 있다. 자자는 역사의 주인공들을 딱딱한 동상이나 제단, 무덤으로부터 과감히 탈출시켜 생명 불어넣기를 시도한다. 책에 묘사된 각 인물들의 일화와 심리가 마치 코 앞에서 보듯 생생하다. 다른 사람의 아내로부터 유혹의 눈짓을 받는 요셉, 은신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성모 마리아, 담벼락에 영원한 사랑의 낙서를 하는 폼페이 연인들,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베아트리체의 죽음으로 사창가를 전전하는 단테,“나를 표현할 시간이 더 이상 없구나.”라며 숨을 거둔 화가 세잔 등등. 이들뿐만 아니라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민초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아 냈다. 프랑스혁명의 급진적 지도자 장 폴 마라를 암살한 25살의 처녀 샬로트 코르데이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단두대에 섰던 일, 페르시아 병사가 전쟁의 와중에서 던진 중얼거림 등. 수천년 역사속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어떻게 서양문명을 일구어 왔는지 물 흐르듯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서양 지성사 산책으로 읽어볼 만하다.3만 4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무심하니 절로 소박하더라

    흰벽에 마구 쓴 낙서 같기도 하고, 돌 지난 갓난아기의 막그림 같기도 한 그림.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이종학(80)화백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는지, 언뜻 그의 작품 세계를 보면 유아풍이다. 과거의 묵직한 추상 세계와 비교하면 너무나 단조롭다. 구도와 구성, 심지어는 색채까지 무시한, 희미한 검은 색조는 문자, 선으로 표현될 뿐 더 이상은 없다. ‘추상적 정경´ 이라는 작품에는 바람부는 날이라는 휘갈겨 쓴 글자가 화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고, 작업한 날짜인 듯한 2005년이라는 숫자도 보인다. 이런 글자와 숫자, 어지러운 선들을 그는 또다시 커다란 두개의 사과모양속에 가둬 놓았다. 화면의 간결함은 넓어진 여백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그에게 자연은 어떤 화려한 수식도 필요없는 단순·소박 그 자체로 표현된다. 단순한 선의 난무(亂舞)속에서 예술도 수행인지라 무심의 예술적 경지에 오른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세계성을 지향하면서도 전통을 추구, 소담하면서도 선명한 한국적 이미지가 드러나는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백자사발에 맑은 물을 담은 것 같다.”는 찬사를 보냈다. 서정적 추상이라는 독특한 경지를 구현한 이 화백은 팔순의 나이도 잊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화단에서는 드물게 청마 유치환 선생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시(詩) 서(書) 화(畵)에도 두루 능하다. 30일까지 서울신문사 1층 서울갤러리. (02)2000-9736.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창의력이 모든 것을 이긴다 / 김광규 지음

    무한 경쟁시대 기업의 살길이 참신한 아이디어에 있다는 것은 누구가 다 아는 사실. 어떻게 하면 반짝반짝 아이디어맨이 돼서 성공할 수 있을 까?‘창의력이 모든 것을 이긴다’(김광규 지음, 길벗 펴냄)는 한국브랜드협회 회장 출신의 저자가 알려 주는 ‘아이디어 살리기’를 위한 전략서다. 아이디어의 원천인 발상력을 강화하는 습관부터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만약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자문 ▲작은 느낌도 놓치지 않고 ▲만약 실행해 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낙서, 미술전시회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는 것 같은 일들을. 또 발상의 숨통을 막는 ▲틀에 박힌 사고 ▲부정적인 사고 ▲모험에 대한 두려움 ▲사고의 불균형 등의 사고방식을 버리도록 충고한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할 때 기회는 오는 것이고, 발상력도 풍부해지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발상의 출발은 호기심과 직감력에 있는 만큼 일상적으로 보던 사물이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2만 3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저희 결혼해요]조대희♥이인숙

    [저희 결혼해요]조대희♥이인숙

    “내 사랑 인숙씨 당신을 명랑 만화의 종신 주인공으로 캐스팅합니다.” 2004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나의 생일이었다. 과천 인근 햇살이 기분좋게 내리쬐는 레스토랑. 생일 케이크를 앞에 놓고 생일 축하 노래를 방금 끝낸 그녀. 노래를 마친 뒤 그녀는 핸드백에서 조그마한 크로키 북을 꺼내 내게 건네준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크로키 북을 펼쳐 본다. 원하는 페이지를 펼치기까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한 남자가 꽃을 내밀고 있는 그림이 있다. 말풍선 안에는 ‘나와 결혼해 주겠니? 행복하게 해줄게.’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보인다. 그녀의 말풍선 안에 수줍은 듯 조그맣게 쓰인 글씨.‘Yes!’ 순간 나의 심장은 풍선을 공중에 띄우기 위해 쓰이는 헬륨가스가 가득 차오른 듯했다.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보았다. 어려서부터 낙서 수준이긴 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남들과 다른 나만의 프러포즈를 생각해 왔다. 고민 끝에 평상시 가지고 다니던 크로키 북에 결혼해 달라며 청하는 한 남자의 모습과 대사를 그려넣고 그 다음 페이지에는 그녀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그려넣은 뒤 말 풍선을 비워놓았다. 그리곤 ‘채워서 돌려줘!’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 크로키 북을 그녀에게 건넸다. 청계산 인근 백운호수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꽃다발과 함께 건네준 크로키 북의 그림 속 말풍선이 채워져 나에게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몇달간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의미있고 소중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2004년 2월21일 학교 선배 소개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한 눈에 이 여자랑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만큼 확신이 섰다. 외모, 몸매, 말투, 성격 등 모든 면이 나의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연애에 서투른 나답지 않게 토요일 처음 만남 이후 다음 날 다시 만나자는 뜻을 전했을 정도다. 당시에는 퇴짜를 맞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절대 놓칠 수 없는 그녀를 앞에 두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중에 한번 만나 저녁 식사를 한 뒤 그 다음 주 삼일절까지 이어지는 연휴 기간동안 쉬지 않고 그녀를 만났다. 보고 또 보아도 사랑스러운 인숙이. 당시 본 뮤지컬 맘마미아는 서로에게 가까워지도록 한 계기가 되었고 이후로도 우리의 소중한 만남은 이어졌다. 데이트하는 동안 차안과 휴대전화 벨소리를 통해 맘마미아에서 들었던 아바의 노래가 쉬지 않고 울려퍼졌다. 그리고 올해 초 이뤄진 상견례 자리를 통해 오는 10월1일을 결혼식 날로 잡고 축복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지면을 빌려 나의 사랑 인숙이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태어나서 인숙이 너를 만난 일이 가장 기뻐. 그리고 이제 우리의 앞날은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명랑만화가 될 것을 맹세해! 왜냐하면… 내가 그려갈 명랑만화의 종신 주인공으로 내 사랑 인숙이 네가 캐스팅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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