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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플러스]

    ● 낙산사 화재4년 회고와 전망 포럼 강 원도 양양 낙산사(주지 정념 스님)는 10일 오후 1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낙산사 화재 4년, 회고와 전망’ 주제의 포럼을 연다. 강원도유형문화재 제75호 낙산사 공중사리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를 비롯한 불교 성보의 문화재적 가치를 조명하는 자리. 탑에서 수습된 사리 1과와 원형 청동합(靑銅盒) 등 사리함과 다라니 19장, 불탑봉안문 4장에 대한 학술, 문화사적 검토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지구의 날 기념 생태신학 세미나 한국교회환경연구소(소장 장윤재)는 23일 이화여대 진관에서 ‘기후 붕괴와 신앙적 응답’이란 주제의 ‘2009 지구의 날 기념, 생태신학 세미나’를 개최한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신학적 차원의 해결방안을 집중적으로 모색하는 자리. 우택주(침신대), 김기석(성공회대), 김경재(한신대), 김은혜(장신대) 교수가 발제자로 참여한다. (02)711-8905.
  • 봄이 왔건만 겨울은 아직도 그 곳에

    봄이 왔건만 겨울은 아직도 그 곳에

    손에 잡힐 듯 다가온 봄은 이제 한동안 지겹도록 즐길 수 있다. 오히려 아쉬운 것은 가버리는 겨울. 겨울의 뒤꿈치와 봄의 파릇한 약속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강원도 낙산사로 떠나보자. 겨울과 봄이 형체를 바꿔 순환하는 것이 자연과 생명의 섭리다. 또한 참 슬프고 황망했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희망의 약속으로 바뀌어지게 마련이다. 자연을 닮은, 닮고자하는, 사람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동해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대관령에 들어서자마자 여행객을 맞이하는 것은 여전한 설산(雪山), 그리고 바람이다. 대관령 4터널과 5터널 사이를 지나다 보면 200m 남짓밖에 되지 않을 그 짧은 틈새에서 대관령 눈가루 섞인 바람이 휘몰아치며 차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봄은 아직 먼 듯하다.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양양을 지나 속초 가기 전 오른쪽에, 망망한 동해를 면하고 자리잡은 낙산사는 두말이 필요없는 천년사찰이다. 2005년 4월5일 강풍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불덩어리가 낙산사로 옮겨붙었고 삽시간에 번지면서 나무 몇 그루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 꼬박 4년. 낙산사는 지금 조선시대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도’에 근거해 조선 시대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다. 새로 지은 원통보전을 비롯해 보타전, 해수관음상 주변 등 곳곳에는 소나무 4500그루와 활엽수 1만 2000그루가 새로 심어졌다. 연둣빛을 감추지 않는 댓잎 사이로 시커먼 그루터기들이 군데군데 베어져 있고, 그 곁에 새로 심은 나무들이 있다. 생멸(生滅)은 그렇게 공존해 있었다. ●의상대에 오르면 동해 바다 한눈에 조만간 지천을 이룰 할미꽃, 벚꽃, 개나리, 명자나무는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주지 혜안 스님에게 물었다. “언제 봄을 느끼시나요.” 그랬더니 스님은 “날 풀리면 봄이고, 겨울 승복 벗으면 봄”이라며 허허 웃었다. 이런. 머쓱하다. 우문에 현답이라는 게 바로 이거구나. 혜안 스님은 “낙산사의 봄은 복수초다. 복수초가 핀 것을 보면 아무리 눈발이 휘몰아치고 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어도 봄이 거의 다 왔음을 실감한다.”고 무안함을 지워 주려는 듯 얼른 덧붙인다. 복수초는 눈속에서 피는 꽃으로 유명하다. 보타전 뒤쪽으로 돌아가 언덕배기를 올려다보거나 홍예문 지나 원통보전 오른쪽 산책길을 따라걷다 보면 깡그리 불타고 덜렁 시커멓게 남은 그루터기 곁에 둘씩, 셋씩 무리를 지어 복수초가 노랗게 삐죽삐죽 피어 있는 것을 만날 수 있다. 울창했던 아름드리 낙락장송은 이제 그루터기로만 남아 과거의 영화로웠음을 보여주지만 그 곁의 앉은뱅이꽃 복수초는 끝까지 살아남아 낙산사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언해주고 있다. 복수초의 꽃말은 ‘슬픈 추억’ 또는 ‘영원한 행복’이다. 슬픔 또는 행복이라니…. 차가운 겨울과 따뜻한 봄처럼, 그리고 끔찍한 화재와 끈질긴 복원처럼, 이처럼 모순의 성질을 가진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 낙산사 총무 법인 스님에 따르면 하루 평균 1000~2000명이 낙산사를 찾는다 한다. 점심시간 무료 공양(국수)은 주말에만 하루 700그릇에 이른다. 템플스테이도 올해부터 다시 시작했다. 전통가옥 축조 방식으로 ‘취숙헌’을 새로 지어 손님맞이에 나섰다. 아쉽게도 1박2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단체에만 제공되고 있다. 일반인은 절에서 묵을 수 없다. 어쨌든 3월의 낙산사는 펄떡거리는 왁자지껄함이 존재하는, 분명한 봄이다. 여기에 관음성지로서 낙산사가 가진 본연의 자산인 망망한 동해 바다와 함께 화마의 피해를 입지 않은 의상대와 홍련암이 1000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뛰었다. 콘크리트 더미에서 지내던 도시 사람들에게는 눈과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게 한다. 또 농번기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계모임으로 관광버스를 빌려 온 농촌 아저씨·아주머니 앞에 놓인 풍경은 한 해 농사의 새로운 시작을 예감케 한다. 여기에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는 끝없이 펼쳐진 망망한 바다가 무념정진의 장이기도 하다. 의상대 앞에서 사진 찍으며 연신 탄성을 감추지 않던 김현정(65·경북 의성군)씨는 “답답했던 가슴이 확 열리는 것 같다.”면서 “농사로 계절을 짐작하는 것이 농사꾼이지만 이렇게 어울려 다니는 것만으로도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옴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템플스테이 체험을 위해 낙산사를 찾은 독일인 사브리나(31)는 “절에서 바라보이는 바다 풍광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면서 “한국을 체험하고 봄을 체험하기에 제격인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남애항 등 경매시장 재미 쏠쏠 강원도 동해안까지 가서 낙산사만 달랑 보고 오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7번 국도 주변에 촘촘히 있는 크고 작은 포구 중 하나에 들러 아침 경매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양양과 주문진 사이에 있는 남애항에서도 아침부터 분주하게 고깃배가 들어오고 갈매기도 손쉬운 아침식사를 위해 몰려든다. 100원이라도 싸게 사려는 중개상인의 소리 없는 함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온다. 오전 7시30분부터 50~60척의 고깃배가 밤새운 수확물을 쏟아내는 1시간 남짓 경매는 숨 돌릴 틈이 없다. 주로 물가자미, 문어 등이 많이 나오지만 대게, 물곰(곰치), 복어, 광어, 도다리, 가리비 등 종류는 다양하다. 펄떡거리는 봄을 느끼기에 맞춤이다. 구경만 해도 좋지만 직접 참여하는 것도 짜릿하다. 일반인은 원칙적으로 경매에 참가할 수 없지만 등록된 중개인을 통해 경매가의 4.5~7%를 수수료로 주면 동해에서 갓 잡아올린 해산물을 상상할 수 없는 싼값에 푸짐하게 실어갈 수 있다. 글ㆍ사진 양양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꼭 알고 가세요 ▲가는 길: 서울을 나선 뒤 경기 양평에서 44번국도를 타고 강원도 홍천, 인제 등을 지나 미시령과 한계령 갈림길에서 한계령 방향을 따른다. 한계령을 내려서면 양양이다. 양양 시내에서 속초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시간이 넉넉하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현남 나들목에서 속초 방향 7번 국도를 타고서 동해의 비경을 찬찬히 즐길 수 있다. ▲맛집: 낙산사사거리 주유소 옆에 욕쟁이할매칼국수(033-672-4434)가 있다. 안동 출신 서정순(76)씨가 하는 안동식에 홍합, 새우 등 해산물을 넣어 독특한 맛을 낸다. 짭쪼롬한 순두부도 별미다. 하지만 진짜 군침 돌게 하는 것은 텃밭에서 가꾼 무공해 겉절이 김치다. 누리꾼를 사이에 맛집으로 이미 호평이 나있다. 욕쟁이집이라지만 욕은 거의 들을 수 없다. 각 6000원. 간밤의 숙취가 남았다면 아침은 동호해수욕장 곁 오산횟집(033-672-4168)의 섭국(홍합국) 또는 섭죽이 ‘강추’. 추어탕처럼 걸쭉한 느낌에 누리튀튀한 색깔이지만 담백하다. 섭국 1만원. 섭죽 8000원. ▲묵을 곳: 낙산사 유스호스텔(033-672-2447)이 있지만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다. 철야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만 2박3일까지 숙소로 제공한다. 낙산사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쏠비치 호텔&리조트(1588-4888)는 약간 비싸지만 최고의 시설과 확 트인 동해 전망을 확보하고 있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2) 남해 금산 상주리~상사바위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2) 남해 금산 상주리~상사바위

    지리산의 옆구리를 스쳐 바다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던 섬진강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 있다. 남쪽 바다에 문을 여는 섬, 그래서 이름도 그냥 남해다. 남해를 한 바퀴 돈 섬진강은 금산의 배웅을 받고서야 비로소 망망대해로 떠나간다. 남해 금산은 먼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우뚝 서 있다. 이름에서부터 바다 냄새가 풀풀 나는 남해 금산을 오르는 길은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상주리 금산탐방안내소 쪽이 좋다. 금산 북쪽 복곡탐방안내소 쪽은 보리암 근처까지 도로가 나 있어 걷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금산탐방안내소에서 보리암까지는 거친 돌길이지만, 뒤를 돌아보면 눈부신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보리암부터는 순한 길을 따라 느긋하게 기암괴석과 봄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끽해 보자. ●칡차 파는 행상도 써붙인 시 ‘남해 금산’ 남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금산(錦山·681m)은 대부분 사람들이 금산이라 부르지 않고 꼭 ‘남해 금산’으로 부른다. ‘남해’라는 발음에서 눈부신 바다가 떠오르고, ‘금산’이란 말에서 느닷없이 솟구친 산을 그려보기 때문이다. 물론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로 시작하는 이성복의 시 ‘남해 금산’의 유명세도 그 이름이 굳어지는 데에 한몫을 했다. 이 시는 한때 금산에서 칡차를 파는 젊은 행상이 가판에 써 붙였을 정도로 유명했다. 산행은 상주 매표소 앞에서 금산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산마루에는 바위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데, 하나같이 고개를 들어 먼바다를 바라보는 듯하다. 휘파람 절로 나는 호젓한 숲길이 돌계단으로 바뀌면서 숨이 가쁘다. 뒤를 돌아보니 일렁이는 미조 앞바다가 금산의 발목을 적시고 있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두어 번 쉬다 보면 거대한 바위가 길을 가로막는다. 꼭 손기정 옹이 마라톤으로 올림픽을 제패하고 받았던 그리스 투구처럼 생겼다. 이름은 쌍홍문, 길은 왼쪽 구멍 안으로 나 있다. 바위굴이 뿜어내는 서늘한 기운에 마음을 다잡고 통과하니 보리암이다. 보리암은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과 서해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이다. 금산의 본래 이름은 이 암자에서 나왔다. 683년 원효대사가 보리암 자리에 보광사(寶光寺)를 지으며 산 이름도 보광산이 되었다.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구하는 관세음보살이 있는 보광궁의 뜻을 담은 것이다. ●먼바다 굽어보는 관세음보살의 미소 “이 땅의 왕이 되겠습니다.” 그 옛날 이성계 역시 이곳에서 간절한 백일기도를 올렸다. 자신이 왕이 된다면 그 보답으로 산을 비단으로 두르겠다고 굳게 약속한다. 조선이 건국되자 이성계는 정말로 산을 비단으로 덮으라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신하들이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이름을 바꾸자는 상소문을 올린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산 이름이 보광산에서 금산으로 바뀌었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보리암 앞마당의 해수 관세음보살상에 연방 절을 올린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세음보살은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남해 먼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보리암을 지나 돌계단을 좀 더 오르면 금산 정상이다. 봉수대가 있는 정상의 조망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정상에서 내려와 저두암과 코끼리바위 아래 있는 금산산장을 지나면 가장 풍광이 빼어난 상사바위다. 이곳은 아찔한 낭떠러지다. 상사병으로 죽은 머슴의 혼백이 뱀이 되어 주인집 딸의 몸을 칭칭 동여맸다가 이곳에서 한을 풀고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다. 어쩌면 이성복은 상사바위에서 시의 모티브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해 금산은 실연의 산이다. 그는 금산의 아름다운 기암괴석에 슬픈 염원이 담겨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그것을 사랑 노래로 신비롭게 풀어낸 것이다. 금산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자신만의 염원을 품게 마련이다. 아련하게 일렁거리는 먼바다는 그 염원을 반드시 들어줄 것 같다. 상사바위의 벼랑 쪽으로 한 발짝 나아가자 환하고 눈부신 봄바다가 울컥 밀려온다. 금산탐방안내소를 들머리로 쌍홍문~보리암~정상~상사바위~제석봉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는 약 5㎞, 3시간가량 걸린다. ●가는 길과 맛집 승용차는 대전통영고속도로 진주인터체인지(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사천IC에서 빠져나온 뒤 3번 국도를 따라가면 창선~삼천포대교와 만난다. 남해대교로 가려면 진교IC로 나와 19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서울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부터 하루 6차례 고속버스가 운행되며 소요시간은 4시간30분 정도. 남해의 먹거리는 미조항의 갈치회와 멸치회가 유명하다. 삼현식당(055-867-6498)과 공주식당(055-86 7 -6728)은 단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산행 중에는 금산산장(055-862-6060)에서 산채정식을 맛볼 수 있다. 산악전문작가
  • 천 년의 시간을 건너는 방법

    천 년의 시간을 건너는 방법

    “이 사람아! 나는 종을 위해 한쪽 눈을 바쳤어. 혼을 담아야 천 년의 소리가 나오는 거지. 잔재주 부리면 끝이야, 끝!”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천 년의 소리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 증권회사 CF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주철장 원광식 씨(중요무형문화재 112호, 68세). 그를 만나기 위해 충북 진천의 작업장으로 찾아갔을 때, 느릿느릿 마당으로 걸어 나온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뭐 들을 말이 있다고 기어코 온다는 거여.” 열일곱 살에 종 만드는 일과 인연을 맺었으니 그가 종에 미쳐 보낸 세월도 50년이 넘었다. 결혼하고 석 달 만에 쇳물이 튀어 한쪽 눈을 잃었을 땐 다 접자고 마음먹기도 했다. 그런데 밤에 눕기만 하면 자꾸 귓가에 종소리가 맴돌았다.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 땅덩이가 생기고 나만치 종 많이 만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전국 방방곡곡, 아시아 여기저기에 그가 만든 종이 7천 개가 넘는다. 새해 첫날을 여는 보신각종도 그의 작품이고, 화재로 소실되었던 낙산사 종도 그의 손을 거쳐 복원되었다. 무엇보다 그를 명실상부 대한민국 명장으로 만든 것은, 맥이 끊겼던 전통적인 종 제조기법인 ‘밀랍 주조 공법’의 재현이다. “죽어라 파고들면 뭐라도 생긴다”는 게 그가 50년 외길인생에서 몸으로 얻은 진리다. 그는 여태껏 제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가져본 적 없다. “헌다고 맘을 먹었으면 딸라 빚 아니라 땡빚을 얻어서라도 해야 하는 겨.” 그는 돈 많이 주는 사람보다는 뜻이 맞는 사람과 하는 일이 즐겁고, 그렇게 만든 종이 더 좋은 소리를 낸다고 믿는다. 오로지 그의 마음속엔 한 가지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의 소리. 그런 종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기존 방식으로는 아무리 해도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천 년여 전 신라 장인들의 비법을 찾아, 7~8년간 중국과 일본을 떠돌며 자료를 모으고, 이를 토대로 수없이 종을 만들고 또 부수었다. 그를 애태웠던 ‘밀랍 주조법’의 비밀은 흙에 있었다. 경주 감포 지역에 있는 활석과 이암만이 1,200도의 쇳물 온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신라의 기술을 이어받은 고려 종이 신라 종만 못한 것도 흙의 문제였다. ‘날개’를 단 그는 돈이 생기는 대로 옛 종들을 복원하는 일에 몰두했다. 누가 돈을 주는 일도 아니었다. 문화재 훼손을 이유로 본을 뜨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인간문화재를 박탈한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그깟 인간문화재 가져가라고 혀. 언제 그런 거 보고 종 만들었나.” 그렇게 만든 150개의 종들은 모두 진천군에 기부, 2005년 진천종박물관을 세웠다. “미쳐야 미친다”던가. 그는 이제 종소리만 들어도 구조 설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당좌의 위치가 높은지, 낮은지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배가 고프다. 사형 주물법을 주로 쓰는 일본의 국보 종들을 밀랍 주조법으로 복원해보고 싶기도 하고, 아시아의 불교국가들을 무대로 제대로 된 종을 선보이고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에밀레종을 복원해 이제는 녹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그 소리를 모두에게 들려주는 것이 평생의 숙원이다. 올해는 동국대박물관에 소장 중인 실상사종을 복원할 계획이다. 천 년을 간다는 범종은 긴 세월 동안 그 입자가 서서히 부서지며 더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리고 쇠로서의 수명이 다하는 그날, 마지막으로 내는 소리가 그 종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다. “내 마지막 수명이 다하는 날 당신의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겨.” 길어야 백 년을 사는 우리가 한 생을 다해 부서지고 또 부서져 내는 마지막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그런 의미에서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 평생을 바쳐 만든 종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천 년의 세월 동안 울리고 또 울려, 숨 가쁘게 앞으로만 달려가는 중생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고,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토닥일 테니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천 년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 목조문화재 화재 대책 ‘공염불’

    목조문화재 화재 대책 ‘공염불’

    국보·보물급 목조문화재에 대한 방재 대책이 여전히 허술하다. 지난해 2월10일 숭례문이 70대 노인의 방화로 전소된 뒤 불에 취약한 목조문화재에 대한 소방시설이 부분적으로 보강됐지만 방재 대책으로 미흡한 실정이다. 해당 문화재에 적합한 ‘맞춤식 소화도구’는 물론 소방인력 관리도 허점으로 지적된다. ●화재경보기 없는 곳 72% 서울신문이 최근 1주일 동안 쌍계사 대웅전, 마곡사, 안동 충효당, 해인사 장경판전, 송광사 국사전 등 전국의 주요 20개 국보·보물급 문화재에 대한 소방대책을 확인한 결과, 화재 때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상수도가 없는 곳이 14곳이나 됐다. 앞으로 설치할 계획도 없었다. 스프링클러 설치 계획이 없는 곳도 17곳이었다. 개인이 작동할 수 있는 방수총이 없는 곳은 5곳이었으며, 이곳에는 목조문화재를 방염처리할 계획조차 안 돼 있었다. 이번 확인 작업은 낙산사 화재 이듬해인 2006년 문화재청의 의뢰로 전국 124개 목조문화재에 대한 안전실태를 조사한 전문기관 ‘건국ENI’가 펴낸 당시 보고서를 토대로 이뤄졌다. ●경비·진화 매뉴얼 일선에선 몰라 특히 문화재청이 지난해 12월 전국의 목조문화재의 안전실태를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화재경보기가 없는 곳은 88곳(71.5%),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은 72곳(58.5%)이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개정된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지난 6일에야 공포돼 이제부터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내에 보물 1434호 계단(戒壇·계율을 받는 단상)을 소장하고 있는 전북 완주군 안심사 관계자는 “CC TV는 고장났고 소화전도 없다.”고 말했다. 숭례문 화재 직후 소방당국이 중요대책으로 제시한 ‘다굴절 파괴 방수차’ 는 서울과 제주에만 1대씩 도입된 게 고작이었다. 이 장비는 리모컨으로 지상 16m까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파괴용 장비 및 호스를 탑재해 방재 대책에 효과적이다. 대당 16억원짜리인데 국가와 지자체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도록 돼 있어 정작 중요 목조문화재가 많은 지역의 지자체들은 도입할 엄두를 못낸다. 소방당국은 목조문화재가 있는 지역의 모든 소방서에 문화재 맞춤 화재진압 매뉴얼을 지난해 5월 배포하고 훈련도 마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등사(대웅전 보물 178호)를 관할하는 강화소방서 관계자는 “경비·진화 매뉴얼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수서원(보물1402호) 관계자도 “경내에서 소방훈련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설 확충보다 더 중요한 게 유사시 장비를 사용할 인력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지자체가 사찰에 파견한 경비인력은 대부분 60~70대 노인이었다. 경기 안성 청룡사(대웅전 보물 824호) 주지는 “소방관끼리만 훈련할 게 아니라 감시요원이나 스님에게도 사용법 등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말했다. 화재 책임자도 불분명하다. 사찰측은 시·군청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지만, 시·군청은 관리책임자는 사찰 주지라고 답했다. 이경주 강병철 최재헌기자 kdlrudwn@seoul.co.kr
  • [Let’s Go] 동해안 품은 양양 암자 3곳

    [Let’s Go] 동해안 품은 양양 암자 3곳

    ‘조고각하(照顧脚下). 이 길을 걷는 자는 네 발밑을 살피라’.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 절집 홍련암 들어가는 절벽길 팻말에 써 있는 글귀다. 단순히 산길이 험하니 조심해서 건너오라는 충고에 그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순간순간 스스로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뒤돌아보라는 가르침으로 쓴다. 그래서 법당이나 승방의 댓돌 위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7번국도를 따라 강원도 양양 땅을 주유하다 보면 이처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암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나같이 관음신앙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불경에서 관음보살이 흰꽃이 만발한 바닷가의 산에 상주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바로 그렇게 돌아서면 바다, 돌아서면 절집이다. 귀와 눈 그리고 폐부를 씻기에 맞춤한 곳. 입춘도 지났고 봄은 이미 멀잖은 곳에 와 있다. 바닷바람이 차긴 하나 한겨울의 매서운 맛은 사라졌다. 새봄을 준비하는 당신, 이 바람에 겨우내 묵은 기운을 훌훌 털어내시라. 대가람 낙산사의 산내 암자인 홍련암(紅蓮庵)은 의상대에서도 북쪽으로 300m 정도 더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암자 옆자락으로 철책선이 필요할 정도로 바다와 맞닿아 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더불어 3대 관음도량이라 일컬어진다. 여기에 여수 향일암을 더하는 이도 있는데, 숫자야 어찌 됐건 바닷가 절벽을 주춧돌 삼아 선 홍련암의 자태가 더없이 신비하다. 홍련암은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낙산사 창건에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려 했던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하자, 바다 위에서 관음보살이 탄 붉은 연꽃이 솟아났다고 해서 홍련암이라 이름 지어졌다. 바다에 접해 있던 덕에 2005년 낙산사 화재 당시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앞이 아닌 옆에 달려 있는 것이 독특하다. 절벽 위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언뜻 봐서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것 같지만, 실은 파도가 들이쳤다가 나오는 바닷가의 자연동굴 위에 서 있다. 법당 마루에는 8㎝ 크기의 사각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바다와 절벽 그리고 해조음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창건 이래 수많은 보수공사를 벌이면서도 이 구멍만은 손대지 않았다고 절집 관계자는 전했다. 양양8경의 하나인 의상대를 거쳐 홍련암에 이르는 구간은 내 나라 안에서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상쾌한 바닷가 풍경을 펼쳐 보인다. 특히 의상대는 일출 감상 명소로 새해 첫날이면 5000명의 해맞이 인파가 몰려들곤 한다. 겨울철만 되면 임연수어 낚시터로 유명세를 떨치는 동산항과 인구항 사이에 죽도라는 섬이 있다. 둘레 1㎞, 높이 54m로 섬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크기다. 예전에는 뭍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잇닿아 있다. 이름대로 장죽(대지팡이)으로 쓰이는 대나무가 사시사철 울창하다. 죽도암(竹島庵)은 섬 뒤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면 절집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려운 곳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주지 도경 스님과 비구니 우성 스님 그리고 젖먹이 때부터 키웠다는 동자 셋이 가족처럼 어울려 산다. 죽도암 옆으로는 죽도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세찬 바람이 불 때면 파도가 멍석처럼 둘둘 말린 채 밀려오는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죽도암에 건물이라고는 관음전과 요사채뿐이다. 해수욕장에서 섬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요사채가 먼저 눈에 띈다. 관음전은 오른쪽 커다란 바위 위에 터를 잡았다. 요사채 앞마당은 곧바로 검푸른 바다. 간혹 큰바람 불 때면 요사채까지 파도가 들이친다. 건물 자체로야 대단할 것 없지만 앞마당만큼은 세상 어느 부호의 저택과 견줘도 부럽지 않을 크기와 경관을 가졌다. 관음전의 문을 열면 동해 만경창파가 법당 안을 가득 채운다.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와 어우러진 청아한 독경소리는 외지인의 가슴을 청량하게 씻어낸다. 암자 주변 바닷가에 늘어선 다양한 형태의 갯바위들은 풍취를 보태기에 모자람이 없다. 7번국도를 따라 주문진 방향으로 가다 남애 못미처 인구해수욕장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죽도암이 나온다. 표지판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주의해서 찾아가야 한다. 죽도암 주변 갯바위에 올라 남쪽을 향해 서면 거대한 불입상이 눈에 띈다. 휴휴암(休休庵)에서 조성 중인 관음보살상으로, 낙산사 해수관음상에 견줄 만한 크기다. 휴휴암은 죽도암에서 7번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쯤 내려가다 만날 수 있다. 온갖 번민일랑 바다에 떨궈 버리고, 쉬고 또 쉬어 가라는 뜻에서 절집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97년 묘적전이라는 법당 하나로 창건된 휴휴암은 바닷가에 누워 있는 듯한 와불 형상의 바위가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후 불사가 크게 일어 비룡관음전과 요사채 등의 건물이 들어섰고, 이젠 제법 번듯한 가람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더불어 고즈넉했던 풍경도 요족하고 번다한 풍경으로 바뀌었으니, 여행자들이 예전처럼 편히 숨 한자락 내려놓고 쉬어 가기란 쉽지 않게 됐다. 절벽 위에 세워진 ‘비룡관음전’을 내려서면 커다란 너럭바위에 닿는다. 연화법당이라 불리는 곳으로 휴휴암의 가장 큰 볼거리다. 너럭바위 20m 앞 오른쪽 해변에 있는 긴 바위가 해수관음보살이 감로수병을 들고 연꽃 위에 누워 있는 형상이란 게 이 절집 사람들의 설명이다. 너럭바위 주변의 와불, 발가락 바위 등도 이채롭다. 저마다 사연을 감추고 있는 바위들이어서 흥미를 더한다. 묘적전 옆의 동굴 법당에서는 대다라니경에 등장하는 85보살상과 만날 수 있다. 범종각 오른쪽에 세워지고 있는 16m짜리 관음보살상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 경기도 양평에서 44번국도를 타고 강원도 홍천, 인제 등을 지나 미시령과 한계령 갈림길에서 한계령 방향을 따른다. 한계령을 내려서면 양양이다. 양양 시내에서 속초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낙산사, 우회전하면 죽도암, 휴휴암으로 향한다. 영동고속도로→현남 나들목→속초방향 7번국도→양양 등 역순으로 갈 수도 있다. ▲맛집 : 양양군 손양면 수산리 수산항 수산횟집(671-1580)은 사골국물로 육수를 낸 물회(1만원)가 일품이다. 휴휴암 인근 갑산메밀국수(671-1833)는 쫄깃한 막국수가 별미. 6000원. 서면 송천리 떡마을(673-7020)에선 장작불로 떡쌀을 삶고 떡메로 쳐 만드는 전통 떡을 맛볼 수 있다. ▲잘 곳 : 쏠비치 호텔&리조트(1588-4888)는 비수기에도 투숙객들이 몰리는 곳. 오산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아쿠아월드’에서 동해의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인근 관광지 : 일출 명소로 유명한 하조대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기암괴석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아름다운 항구로 손꼽히는 남애항도 찾을 만하다. 글ㆍ사진 양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시티투어버스 타고 설악권 관광하세요

    시티투어버스 타고 설악권 관광하세요

    강원 설악권을 순회하는 시티투어 버스가 선보인다. 속초시는 설악권을 끼고 있는 속초·고성·양양 3개 시·군을 돌며 관광할 수 있는 시티투어사업을 내년 3월 시작한다고 26일 밝혔다. 시민과 사회단체,관광사업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노선 답사 결과,속초 엑스포장 순회 구간은 각종 축제 개최 등을 감안해 당초 엑스포상징탑에서 석봉도자기미술관으로 조정하기로 했다.또 장사항 횟집단지의 협소한 도로여건으로 인해 옛 국도 7호선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 가운데 한 곳을 승·하차 장소로 활용키로 했다.영랑호리조트는 2층버스 운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지적에 따라 영랑호 진입로에서 초소 입구 호수쪽 도로를 통해 범바위로 이동하기로 했다.화진포 구간은 운행 시간이 많이 걸려 피서철 성수기에만 운행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속초시는 고성권 시티투어 구간의 경우 대명콘도를 출발해 한화콘도(대조영세트장)∼영랑호리조트(범바위)∼영금정∼장사항 횟집단지∼청간정·피서성수기 화진포(반환점)∼장사항∼중앙시장∼석봉도자기미술관∼엑스포상징탑을 거쳐 대명콘도로 돌아오는 노선을 확정했다. 양양권은 대명콘도∼한화콘도∼설악파인리조트∼척산온천∼목우재∼설악산소공원∼낙산사입구∼낙산대교∼쏠비치(반환점)∼설악해맞이공원∼대포항입구∼속초해수욕장 입구∼엑스포장∼석봉도자기미술관∼대명콘도 노선으로 결정했다. 채용생 속초시장은 “이미 40인승 고급형 1층 관광버스(구입가격 1억 5000여만원)를 도입한 데 이어 중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2층 관광버스도 내년 2월까지는 인도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속초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Local] 강원, 산소길 5곳 1200㎞ 조성

    강원도는 27일 자연 속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산소길(O2)’ 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도내 5곳에 1200㎞를 산소길로 조성하기 위한 탐사활동을 벌인 뒤 2011년까지 도로나 등산로 등과 연결해 관광상품으로 만들 예정이다. 산소길로 검토되는 곳은 북한강(인제 미산계곡~내린천~합강~소양강댐~공지천~의암댐)과 남한강(태백 검룡소~선 임계~영월 동강),DMZ(철원 노동당사~평화의댐~제4땅굴~건봉사~통일전망대), 해안가도(삼척~강릉 경포대~양양 낙산사~속초~고성), 백두대간(태백산~오대산~대관령~대청봉~진부령) 등이다. 도는 28일 도청 광장에서 ‘산소길 강원 3천리 탐사대’ 발족식을 갖고 춘천 공지천까지 100대의 자전거로 퍼레이드를 펼칠 예정이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광장] 국보1호 교체 공론화할 때다/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국보1호 교체 공론화할 때다/노주석 논설위원

    숭례문이 숯덩이로 변한 지 열달이 다 돼간다.‘국보1호’의 공백기가 너무 길다. 국보1호를 잃은 국민들의 상실감을 나 몰라라 하는 당국의 무신경이 한심할 따름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국보1호를 교체하거나 문제 많은 문화재지정제도를 손보기 위한 국민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문화재는 전소되면 국보나 보물에서 해제된다.2005년 화재로 녹아버린 양양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도 복원했지만 해제됐다.1984년 불탄 화순 쌍봉사 대웅전(보물 163호)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았다. 국보1호 교체 논의는 숭례문 소실 이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숭례문은 순서가 1호였을 뿐 가치나 의미, 상징성 차원에서의 1호가 아니라는 점이 이유였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행정관리상 번호이지 문화재의 우열을 뜻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무엇보다 19 62년에 만들어진 현행 문화재지정제도가 일제 잔재라는 점이 작용했다. 첫 논의가 1996년에 점화됐고,2005년에 재시도됐다. 지난 1월 의미심장한 정책변화도 모색됐었다. 1996년 국보1호를 훈민정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세차게 일었지만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됐다. 문화재 지정체계 전반을 고쳐야 하는데 교과서, 백과사전 개정 등 여파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국보1호만 부분 교체한다면 사회적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됐다. 2005년 문화재청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지정된 문화재 지정번호가 답습되고 있다며, 모든 지정문화재번호를 다 바꿀 수는 없지만 상징성이 있는 국보 1호와 보물 1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국보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화답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경주 석굴암(국보 제24호), 해인사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 훈민정음(국보 제70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등 쟁쟁한 세계적 문화유산들이 국보1호 후보로 거론됐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화재가 나기 한달 전인 1월10일 국보와 보물에 한해 일련번호를 없애는 방향으로 문화재 등급·분류체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대로라면 ‘국보1호’라는 호칭은 저절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어찌 보면 숭례문은 ‘국보1호 무용론’‘국보1호 교체론’에 저항해 온 몸을 태워버렸는지도 모른다. 숭례문은 지정 이후 50년 가까이 ‘의전상 국보 1호’에 불과했지만 소신공양을 통해 진정한 국보1호로 국민 품에 돌아온 것이 아닐까. 국보1호의 참의미를 일깨워준 것이 아닐까. 다른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국보1호의 상징성을 온 국민들의 가슴에 심어준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국보1호는 화려하게 부활돼야 한다. 학계 및 전문가의 동의와 국민적 합의,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한민국 국보1호’를 재선정해야 하는 까닭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훈민정음을 국보1호감으로 선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우리 말, 우리 글의 소중함을 되돌아보자는 의미다. 지금 한글은 영어에 앞차기당하고, 한자에 뒤차기당하는 딱한 처지다. 아이들이 “ㄱㄴㄷ…”을 익히기도 전에 “ABC…”를 배우는 세상이다. 명실상부한 국보1호의 자리를 훈민정음이 차지해 대대손손 우리 말, 우리 글사랑이 꽃피었으면 하는 절절한 심정에서다.‘숭례문의 전설’을 되새기면서.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낭독의 발견(KBS2 밤 12시45분) ‘왕의 남자’,‘괴물’ 등의 영화음악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이병우. 소년 같은 순수함으로 음악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가 낭독무대에 오른다. 천상병 시인의 시 ‘새’를 읊으며 무대를 열면 뒤이어 이병우 씨가 자신이 20대 초반에 작곡한 ‘새’를 연주하며 스튜디오를 달군다. ●황금어장(MBC 오후 10시50분) ‘내 생애 첫 가요’ 코너를 특별무대 삼아 SG워너비, 윤하가 화끈한 미니공연을 펼친다.‘무릎팍 도사’ 코너에서는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의 모든 것을 뜯어 본다. 과연, 신승훈의 최대 고민은? 그의 모창도 해보고, 셀카사진도 공개한다. 또 신비주의로 무장한 그의 루머들도 집중 해부한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5분) 지난 9월 불거진 중국 멜라민 파동이 한 달째 접어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중국산 과자 10개 제품에서 최대 271.4ppm의 멜라민이 검출됐다. 정부는 뒤늦게 수입식품 검역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불신과 불안은 여전하다. 허술한 식품 검역 시스템과 식품위생사범 처벌에 대한 문제점을 살펴 본다.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요즘 우리 경제는 무척 어렵다. 올해는 무역수지도 11년 만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환율은 연일 요동치고 있고, 주가는 흔들리고 있다. 기업, 특히 수출업체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다고 울상이다. 향후 우리 경제의 전망을 민간경제단체인 한국무역협회 이희범 회장에게 들어본다. ●큰 언니(KBS1 오전 7시50분) 학규의 청혼에 인수는 대답을 망설이지만, 학규는 가족들 앞에서 인수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평생 인옥 자매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황씨는 기를 쓰며 반대하지만, 학규는 학인처럼 어머니의 반대로 사랑에 실패하진 않을 거라며 맞선다. 인옥은 인수가 독일행을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화마에 쓰러진 낙산사의 주요 전각인 원통보전 앞 누각과 행각 등이 한창 복원 중이다. 현재 50% 가까운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낙산사가 옛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는 다름아닌 목수들이다. 낙산사 복원 작업에 참여한 목수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엿본다.
  • 양양 낙산사 등 사적 지정예고

    문화재청은 22일 강원 양양군 낙산사와 전북 김제시 금산사 두곳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해인사·불국사·법주사 등 고찰이 주변 일대 풍광과 함께 ‘명승’이라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적은 있으나 사찰구역 전체가 사적으로 지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 의상대사가 창건한 뒤 여러차례 중창됐다. 백제시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금산사는 통일신라때 진표율사가 중창해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법맥을 이어오고 있다. 대사구·봉천원구·광교원구 등 3구역의 삼원 체제 가람으로 건물 125동을 갖췄다.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7) 헝가리 출신 청안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7) 헝가리 출신 청안 스님

    2005년 입적한 숭산 스님은 생전 5만여명에 달하는 외국인을 제자로 삼았다. 한낱 공허한 말에 얽매여 머물지 않는 그의 실천행 법문에 감화된 많은 지식인들이 출가해 수행 중이거나 한국불교 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헝가리 출신의 청안(42·淸眼) 스님도 그중 한 사람. 헝가리에 머물면서도 틈틈이 불교TV 강의와 법문집 ‘꽃과 벌´(김영사)을 통해 국내에 이름이 알려져 숭산 제자 중 가장 대중에게 인기높은 ‘스타 스님´이다. 출가 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무명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본래불성(本來佛性)´을 찾아 주기 위해 고국 헝가리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 원광사(www.wonkwangsa.net)를 짓는 불사에 매달려 있는 청안 스님. ‘나의 마음이 깨끗해지면 세상이 하나가 된다.´는 숭산 스님의 ‘세계일화(世界一花)´ 사상을 몸으로 펴가는, 한국불교의 대표격 국제포교사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방하´ 한마디에 깨달음 얻어 하안거(夏安居) 결제를 사흘 앞둔 16일 오전. 수소문끝에 조계사 일주문에서 만난, 훤칠하게 키가 큰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모았다. 나란히 찻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스타 스님´을 알아본 신도가 거푸 인사를 하는 바람에 여러 번을 멈춰서야 했다. 지난해 11월 숭산 스님 3주기 행사 때 한국에 들어온 이후 6개월 만의 방한. “안거를 나기 위해 들어 왔느냐.”고 묻자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며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에 짓고 있는 원광사 이야기부터 꺼낸다. “한국식 그대로 절을 지으려니 꼼꼼히 챙길 게 많아요. 벌써 두어차례 다녀갔지만 공을 들일수록 손볼 것이 생겨납니다. 이번엔 서까래와 기와 때문에 헝가리 와공들을 대동하고 절집들을 돌면서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양양 낙산사에서 대목장을 만나 ‘한 수´ 배웠지만 출국하는 23일까지 찾아야 할 사찰과 만날 사람들이 많아 바쁘단다. 헝가리의 신도 6명도 함께 들어와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백담사에서 지냈다. 백담사는 숭산 스님이 조실로 주석했던 곳. 스승의 흔적과 정신이 고스란히 스며 있으니 응당 여느 사찰과는 달리 각별할 것이다. 헝가리 중산층 가정, 의사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난 그가 숭산을 만나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 왔던 혼란을 단박에 털고 벼락 같은 깨침에 닿았을까. 숭산의 제자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청안도 그 유명한 법문 ‘방하(放下)´를 입에 올린다. “오직 모를 뿐, 그저 내려 놓아라. 그런 다음 그냥 하라(Just do it).” ‘내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이곳에 이렇게 살고 있느냐.´는 보편적인 의문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품었을 터. 하지만 그냥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는 ‘방하´ 한마디에 벼락 같은 해법을 찾았으니 예사 법기(法器)는 아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에서 영어와 헝가리어를 전공한 어학도.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더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냐는 삶에 대한 고민과 의심에 끊임없이 시달렸단다. 이런저런 철학·심리학 책들을 뒤졌고 종교인들의 조언도 받았지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절친한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관음선종 선방을 다니며 참선을 하다가 선방을 찾은 숭산 스님 법문 자리에서 문답을 통해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한다. “실체가 아닌 나와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진짜 나를 보게 된다. 본디 내 안에 있는 이 불성을 닦게 되면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도 밝아지게 된다.” 헛된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볼 때 나와 세상에 얽힌 매듭과 관계가 풀린다는 말은 당시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대학시절 영어 교생으로 있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 무심코 학교 잔디밭에 환하게 쏟아지는 빛을 보면서 불현듯 ‘스님´될 생각이 들었고 참선 수행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통역사로 일하던 중 숭산 스님이 세운 관음선종의 본산인 미국 프로비던스 선원 겨울 안거를 나면서 결국 출가를 결심, 해인사에서 행자교육을 받고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서울 화계사에서 2000년까지 수행 끝에 고국 헝가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숭산스님의 ‘세계일화´ 이어 유럽에 한국불교 전파 한국불교가 좋아 한국 비구가 되었으니 한국에 머무는 게 바른 길이 아닐까. 비구계를 받은 ‘한국 스님´으로 꼬박꼬박 안거도 참여했지만 굳이 헝가리를 택한 이유를 들려 준다. “비구계를 받고 나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출가 전의 나같은 속인들을 위해 길잡이를 할까, 아니면 헝가리를 터전삼아 유럽 포교에 나설까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1999년 숭산 스님으로부터 외국인 스님으론 사실상 최고 경지인 지도법사 인가를 받고 이듬해 결국 고심 끝에 헝가리를 택했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체코, 폴란드 등 발닿는 대로 유럽 각지를 돌며 포교에 나섰다고 한다. “고국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뜻도 있지요. 헝가리서 받은 내 몸과 교육, 집, 음식…. 이런 것들을 부처님 법(佛法)으로 갚자는 것이지요.” 헝가리에서 처음 3년간은 집시들을 위한 작은 선원에서 기거했다. 그러던 중 숭산 스님이 세운 관음선종 사찰들이 유독 유럽에만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스님과 주민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원광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대웅전이며 크고 작은 선방, 탑, 요사채 등 한국 전통사찰 양식 그대로 지으려니 공사가 더디다. 2006년 선방 상량식을 갖고 식당이며 목욕탕 같은 우선 필요한 부대시설을 갖추었지만 주 건물인 대웅전과 명부전, 선방을 다 세워놓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한국불교를 온전히 담고 알리려면 그 그릇(원광사)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단다. 불교 십이인연(十二因緣)의 하나로 모든 사물이 무상(無常)·무아(無我)함을 모르고 갈애(渴愛)를 일으켜 윤회(輪廻)의 원인이 된다는 근본적 번뇌 무명(無明). 24년간의 무명에서 깨어나 한 줄기 빛과도 같은 깨침을 얻었다는 뜻이 담겼을까. 스님이 그토록 애착을 갖는 원광사의 이름 뜻이 궁금해졌다.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관세음보살이 이름을 점지해 주셨다.”며 웃음을 피우더니 이내 정색을 한다.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은 한국불교와 일본, 티베트 불교의 차이점을 모르지요. 그 모르는 상태에서 제가 숭산 스님에게 받았던 것처럼 한국불교를 통한 깨침을 얻게 해주는 게 제 소명입니다.” 예상대로 그랬다. ‘모든 사람이 각자 갖고 있는 불성을 닦아 지혜와 자비, 보시행을 이뤄 세상을 밝히자.´ 본래의 빛, 불성을 찾아가는 공간이다. 출가의 원을 세운 지 어언 20여년.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과 무명의 번뇌는 말끔히 소멸한 것일까. 오래 전에 제 이름을 잊어 버렸다는 청안 스님. 그는 스님의 본분은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뿐이라고 거듭 말한다. “끊임없이 버리고 내려 놓는 것이지요. 오직 모를 뿐 그냥 할 뿐입니다.” 한국불교를 삶의 또 다른 길로 선택한 푸른 눈의 납자가 가꾸는 ‘세계일화´의 꽃은 소문대로 튼실했다. 끊임없이 ‘스타 스님´을 찾는 손 전화의 울림들이 인터뷰를 힘들게 한다. 결국 스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누구인가의 전화를 받고는 서둘러 일어서며 한 마디를 남긴다. ‘Just do it´. 글·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청안 스님은 ●1966년 헝가리 출생 ●1990년 참선 수행 시작 ●1991년 숭산 스님 법문 듣고 불교 귀의 ●1992년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 졸업 ●1993년 미국 프로비던스 선 센터서 동안거 중 출가 결심 ●1994년 한국 입국 ●1995년 해인사서 사미계 수지, 이후 2000년까지 화계사서 수행 ●1996년 통도사서 비구계 수지 ●1999년 숭산스님으로부터 지도법사 인가 ●2000년 헝가리 귀국, 관음선원 주지 취임, 유럽 각지 돌며 참선지도 ●현재 부다페스트 외곽에 원광사 건립 불사 중
  • [Local] 낙산사서 29일 ‘숭례문 49재’

    소실된 국보1호인 숭례문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49재가 29일 강원 양양군 낙산사에서 치러진다. 원통보전 앞에서 올려질 49재는 1부 추모제와 2부 문화유산보존 선포식,3부 공연 등으로 나눠 오전 9시부터 2시간30여분 동안 진행된다.1부 추모제에서는 숭례문의 넋을 기리는 추모의식 행사와 함께 소실된 숭례문과 2005년 4월 산불에 피해를 본 낙산사의 모습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고 2부 문화유산 선포식에서는 문화재 친구되기 캠페인인 ‘문화재 씨밀래’ 운동이 예정돼 있다.3부에는 강원대 무용단의 ‘꽃처럼 피어나리’의 공연이 펼쳐지며 행사장에서는 숭례문과 낙산사의 화재 전후 모습을 담은 사진 전시도 있을 계획이다.양양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Local] 설악권 시티투어버스 7월 시동

    빠르면 올 여름부터 강원 속초에서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한 설악권 관광이 가능해진다. 20일 속초시에 따르면 관광객 및 주민들이 속초·고성·양양지역의 축제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도록 시티투어버스 운행을 추진하고 있다. 새달 초 2층 버스와 리무진 등 버스 2대를 구입한 뒤 7월부터 시범운행에 들어가 관광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관광코스는 설악산과 신흥사, 낙산사 등 각종 관광지와 시·군 축제 등 대형 행사 지역을 경유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오색약수, 하조대, 화암사, 건봉사 등 코스 연계가 어려운 관광지는 관광객들의 예약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투어버스 운행은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의 절반이 주말 운행을 희망하고 있는 것을 감안, 주말과 연휴기간에 운행을 한 뒤 사정에 따라 확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속초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양구 등에 금강소나무림 육성

    강원 백두대간의 금강소나무림 육성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북부 및 동부지방산림청은 10일 대형 산불과 산림 병해충, 지구 온난화 등으로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한 금강소나무림을 복원하고 울창한 숲으로 가꾸기 위해 강원지역 백두대간의 금강소나무림 육성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북부산림청은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양구와 인제·홍천지역 2600㏊의 산림을 금강소나무 육성단지로 지정한 데 이어 올해 300㏊의 금강소나무 군락지에 대해 육성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동부산림청도 대관령 지역의 산림 138㏊에 대해 앞으로 5년 동안 솎아베기와 가지치기 등 금강소나무림 육성사업을 추진한다. 솎아베기 등을 통해 생산되는 원목은 문화재 복원 및 보수용 등으로 공급할 방침이다. 또 후계림 조성을 위해 소규모로 군집을 이뤄 자라고 있는 금강소나무 주변의 활엽수를 모두 제거하는 한편 인공조림 등을 통해 금강소나무림을 육성하기로 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금강소나무는 곧고 재질의 강도가 높아 옛날부터 건축재로 널리 사용됐으며 최근 낙산사와 숭례문 등의 화재로 소실된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사용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열린세상] ‘경제’가 ‘울화’를 누그러뜨릴까/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열린세상] ‘경제’가 ‘울화’를 누그러뜨릴까/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국보 1호가 타고 있을 때 나는 네팔에 있었다. 숭례문이 탄 다음날 새벽 인터넷을 통해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짧은 여행이든, 장기 체류든 이국에서는 더 애국의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 나는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 뉴스가 확고부동한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이튿날 출근길의 시민들이 불에 탄 숭례문을 바라보며 그랬듯이 엄청난 거리를 격하고 있던 나 역시 충격에 휩싸였다.‘한국인’이라 말할 수 있는, 이 행성에 살고 있는 누군들 그 소식을 듣고 그러지 않았으랴. 그 비보를 접하던 즈음에는 마침 네팔에서 치러야 할 연구소의 몇가지 일들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누구를 만나도 머릿속은 불타버렸다는 숭례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곧 돌아갈 내 나라는 국보를 태운 나라이고, 나의 세대는 원치 않았지만 육백년 동안 같이 살아오던 국보 하나를 잃어버린 세대가 되고 만 것이다. 수원성 화재나 낙산사 화마 때와는 또 달랐다. 이내 숭례문 방화범이 잡혔고, 범행 동기가 재산이 저가로 수용된 데 대한 울화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가 한국사회 고속성장기의 부패와 졸속증을 상징했다면, 이번 방화는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충격과 상실감만큼이나 불길한 생각이 계속 마음을 어둡게 덮었다. 국가란 무엇이고, 문화재는 무엇인가? 군대와 경찰을 마련한 국가는 영원하리라는 믿음에 휩싸여 있지만 일시적인 권력 형태라 자주 국명이 바뀌곤 한다. 하지만 문화재는 시간의 침식을 버텨낸 감성적 재화로서 그것이 탄생하고 존속하고 있는 대지에 속하는 어떤 것으로 느껴진다. 흐르는 강물을 그대로 놔둬야 하는 것처럼 문화재를 잘 보존해야 하는 이유도 그 존재에 우리 삶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정신 생리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는 차라리 ‘짧은 기억’이고 문화재는 ‘긴 기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졸지에 긴 기억 한 올이 타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잿더미에 꽃을 바치는 일을 오버하고 있다고 쉽게 폄하할 일이 아니다. 민초들이 바치는 그 꽃 한 송이보다 문화재가 인간의 심성에 끼치고 있는 영향을 잘 드러내는 행위도 따로 없을 것이다. 귀국하기 직전 메일을 한 통 받았는데,“무슨 일로 가셨는지 모르지만, 그 나라는 설마 국보를 태워 없애지는 않겠지요?”라고 묻고 있었다.7년여 내전을 치른 네팔은 자생 마오이스트의 노력과 거기 동조한 민초들에 의해 300여년 지속된 왕정을 종식시키기 위한 변화 속에 있었다. 비록 가난하고 여러 가지로 엉망진창인 나라이긴 하지만, 인도나 중국 같은 강대국과 미국의 은밀한 간섭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적합한 정부형태를 선택하려는 자존심 있는 나라였다. 거기 사람들도 온 세상이 그렇듯이 돈에 환장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처럼 개인적 복수심 때문에 나라의 문화재를 태울 지경으로 망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귀국한 다음날 방화범의 현장검증이 있었는데, 방화범이 말했다.“사람은 안 다쳤고, 문화재는 복원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그래서 우리 모두 그에게 “너무나 고맙다.”고 감사해야 할까. 이건 방화만큼 충격적인 답변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방화범과 같은 울화를 지닌 이들을 너무나 많이 양산하지나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서둘러 복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도 불태워버릴 곳을 찾고 있는 이웃들이 저지를 수 있는 ‘다른 끔찍한 일’에 대한 공포가 결여된 성급한 호들갑으로까지 여겨진다.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온 세상의 나라들 중 한국이 가장 높다고 한다. 경제를 더 키운다고 잠복되어 있는 울화들이 누그러뜨려질까. 단언컨대, 아니다. 그래서 불길하고 무섭다.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 낙산사서 숭례문 49재 열기로

    낙산사서 숭례문 49재 열기로

    국보 제1호 숭례문의 넋을 기리는 49재(四十九齋·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가 3년 전 화마(火魔)에 휩싸였던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에서 치러진다. 낙산사는 17일 낙산사와 양양군이 숭례문 소실 49일째인 3월29일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에 있는 이 사찰의 대웅전에서 숭례문 추모제를 지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희대 관광대학원 안경모 교수가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과 이진호 양양군수에게 제안해 열리게 된 추모제에서는 숭례문과 낙산사 등의 문화재 소실 후 남은 부재(部材)와 관련 영상물이 전시될 예정이다. 안 교수는 “숭례문 소실로 인해 무너진 국민의 자존심을 치유하고 국보의 얼을 기리며, 귀중한 문화재 보존과 철저한 관리의 교훈을 일깨우려고 49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문화재 미세 불꽃도 잡는다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보호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강원 강릉시의 한 연구센터가 개발한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 주목을 받고 있다. 17일 강원임베디드소프트웨어연구센터에 따르면 불꽃과 연기, 온도, 습도, 움직임 등을 감지하는 무선감지기(센서노드)를 문화재에 설치,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실시간으로 중앙모니터와 휴대전화 등에 경보음을 울려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무선센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주먹 크기의 이 시스템은 문화재에 화재, 연기 등의 특이 상황이 발생하면 중앙서버 등에 무선으로 알리는 것은 물론 영상정보까지 전송, 오작동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첨단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라이터 불꽃과 미세 먼지까지 감지할 수 있어 신속하게 수막이나 스프링클러를 가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거동수상자의 침입과 붕괴 등 이상징후도 조기 감지, 관리자나 경찰, 소방서 등에 동시에 알린다. 이 시스템은 서까래 등 곳곳에 무한정으로 설치할 수 있고 중계기를 통하면 멀리 산속에 있는 문화재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특히 전원으로 배터리를 사용하고 크기도 작아 훼손우려 때문에 실내에 전기시설을 할 수 없는 문화재 시설 방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스템은 이달 중 대형 산불로 소실됐던 양양 낙산사에 설치된다. 이는 특정 데이터만을 주기적으로 중앙서버에 전송하는 기존 단방향, 소용량의 데이터 전송방식과 달리 센서노드에서 감지한 무한정의 영상정보를 양방향으로 수시 전송하는 신기술로 이 연구센터는 20여개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해외 특허도 출원해 놓고 있다. 박판종 팀장은 “이 기술은 문화재 방재뿐 아니라 산불, 인공구조물 감시, 군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며 “낙산사 설치 후 문화재 방재시스템으로 본격 가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문화재 미세 불꽃도 잡는다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문화재 보호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강원 강릉시의 한 연구센터가 개발한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 주목을 받고 있다. 17일 강원임베디드소프트웨어연구센터에 따르면 불꽃과 연기, 온도, 습도, 움직임 등을 감지하는 무선감지기(센서노드)를 문화재에 설치,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실시간으로 중앙모니터와 휴대전화 등에 경보음을 울려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무선센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주먹 크기의 이 시스템은 문화재에 화재, 연기 등의 특이 상황이 발생하면 중앙서버 등에 무선으로 알리는 것은 물론 영상정보까지 전송, 오작동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첨단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라이터 불꽃과 미세 먼지까지 감지할 수 있어 신속하게 수막이나 스프링클러를 가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거동수상자의 침입과 붕괴 등 이상징후도 조기 감지, 관리자나 경찰, 소방서 등에 동시에 알린다. 이 시스템은 서까래 등 곳곳에 무한정으로 설치할 수 있고 중계기를 통하면 멀리 산속에 있는 문화재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특히 전원으로 배터리를 사용하고 크기도 작아 훼손우려 때문에 실내에 전기시설을 할 수 없는 문화재 시설 방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스템은 이달 중 대형 산불로 소실됐던 양양 낙산사에 설치된다. 이는 특정 데이터만을 주기적으로 중앙서버에 전송하는 기존 단방향, 소용량의 데이터 전송방식과 달리 센서노드에서 감지한 무한정의 영상정보를 양방향으로 수시 전송하는 신기술로 이 연구센터는 20여개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해외 특허도 출원해 놓고 있다. 박판종 팀장은 “이 기술은 문화재 방재뿐 아니라 산불, 인공구조물 감시, 군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며 “낙산사 설치 후 문화재 방재시스템으로 본격 가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시론] 숭례문,이제는 복구가 문제이다/김홍식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문화재위원

    [시론] 숭례문,이제는 복구가 문제이다/김홍식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문화재위원

    정권 교체기, 새해 벽두, 설 연휴의 끝 날 저녁, 숭례문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모든 재앙이 그러하듯 방화범은 불을 지르고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불을 잡지 못했다. 건축물의 내화 기준은 한 시간을 목표로 한다. 건물은 화마에 한 시간만 견뎌 주면 불을 끄던가 아니면 사람이 최소한 대피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재는 다르다. 인명 피해가 문제가 아니라 건축물이 국(가)보(물)인 까닭이다. 그동안 여러 건의 문화재 화재가 있었다. 영암 도갑사 대웅전, 화순 쌍봉사 대웅전, 금산사 대적광전, 화성 서장대, 가깝게는 낙산사 동종 등등. 하늘은 이렇게도 여러 번 경고를 했는데도 방비하지 못한 걸 나무라는 것은 아닐지…. 이미 여러 문화재가 방화로 불탄 경험이 있으므로, 공개된 국보 1호는 방화범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예견되었다. 몇 가지 방비책을 썼는데도 결과적으로는 부족했다. 더구나 불길이 슬금슬금 타올라서 천장 위 지붕 속의 덧서까래(적심)를 태우고 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집을 지으면서 목수들이 무심코 버린 톱밥과 외부에서 들어간 섬유질이 불쏘시개가 되어 화로불처럼 연기만 뿜어내는 불씨를 그 누군들 예견했겠는가? 더구나 도시의 소방관들은 처음으로 당해본 화마에 목숨을 걸고 노력은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지금도 지붕 속의 불씨를 어떻게 사전 예방할 수 있을까에 대해, 전문가인 우리도 확실한 방법을 모르겠다. 이웃 일본만 해도 국보 1호쯤에 해당하는 호류지(法隆寺) 금당과 킨가쿠지(金閣寺)가 타버리고 나서야 지금과 같은 훌륭한 방화설비를 갖추었다. 일체의 외부 사람은 국보, 보물 안에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제하며 전기도 차단하고 있다. 심지어 종교건물인데도 내부의 부처님은 볼 수 없고 밖에서만 기도를 올릴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을 겪고 나서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난이 문화재의 활용까지 막아서 국민들이 문화재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는 소극적 문화재 보호 정책으로 회귀하면 안된다.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 자체가 대국민 홍보이며 문화재가 국민들로부터 계속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문화재의 노화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방재 시스템은 이것을 방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1층은 거의 남아 있고 2층도 일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는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아래에 떨어져 있는 부재들도 큰 부재들은 꽤 있으며 1963년 수리 시 교체되었던 부재는 지금 충남 부여의 한국 전통문화학교에 가 있으니 이를 활용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이번의 복구는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구재(舊材)를 철저히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불에 탄 부재는 남은 부분이 강도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조사를 철저히 하고 단 10%라도 남아 있다면 이를 이용하여 보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 부재에 남았던 부재를 강력 접착제로 붙여서 쓰는 것이다. 만약 강도가 부족하다면 탄소섬유 등으로 보강하는 방법도 바람직하다. 전통문화학교에 가 있는 부재도 다시 쓸 수 있다. 당시에는 기술이 부족하여 쓰지 못 했으나 지금은 부재를 잇거나 붙여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1962년도에 부족했던 수리 방법을 보완할 수도 있겠다. 기와도 철저히 가려내서 1900년도 이전의 기와는 보완해 쓰든가 아니면 전시관에 이전하여 보존할 수도 있다. 김홍식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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