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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터 션샤인을 따라간 안동의 두 정자

    미스터 션샤인을 따라간 안동의 두 정자

    드라마에서 눈에 익숙한 풍경이 어딘지 궁금하던 차에 역사다큐에 연산군과 무오사화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만휴정이라는 이름이 번뜩 떠올랐다. 스파트폰으로 “만휴정”을 검색해보니 ‘미스터 션샤인’ 촬영장소라는 제목으로 우르르 정보가 쏟아진다. 같은 안동에 ‘고산정’도 함께 나온다.실제로 그 경치가 신선놀음하기 딱 좋은 곳이라 두 정자를 소개하는 것도 괜찮다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평일 낮시간에 갑자기 가려니 동행을 못 구해 혼자 청승을 떨었다. 우리 전통조경은 마치 바람이 씨를 뿌린 듯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창덕궁의 후원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라 분수를 만들지 않았다. 나무와 꽃은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제 위치라 분재를 만들지 않았다. 우리 건축물 중 자연 속에 있는 정자는 조경에서 나무의 위치가 그렇듯 그렇게 자연스러운 위치에 지어졌다.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되어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을 듯한 위치에 앉아있다. 그래서 그 정자에 가지 못해도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큰 아쉬움이 없다.안동에 있는 두 정자 역시 산을 오르다 멀리서 보고 지나쳐도 자연 속의 일부라는 느낌을 주는, 마치 화룡점정을 찍은 듯하다. 만휴정(晩休亭)은 글자 그대로 느지막이 쉬는 정자다. 무오사화로 친구 김종직과 제자들을 잃은 후 청렴과 강직함으로 많은 정적이 생겨 각종 모함으로 출사와 파면을 반복하던 보백당 김계행이 낙향해서 70이 넘어 지은 정자다.이이와 이황의 계보를 따라가면 김종직이 있고 김계행은 김종직과 뜻이 제일 잘 통하는 친우며 학문적 교류도 많았으니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이와 이황에게도 그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소나무와 바위가 많아 송암계곡이고 만휴정 아래의 폭포이름 또한 송암 폭포다. 폭포의 아래쪽에서 보면 마치 낙수장(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한 폭포위의 집)을 연상시킨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기 5분 후에 송암폭포를 만난다. 멀리서 보기 아까워 계곡으로 내려가면 폭포 위에 떠 있는 듯 정자가 하나 보인다. 그 순간 관심은 폭포에서 정자로 옮겨간다. 50여 미터를 더 오르니 만휴정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소박하게 숨어있다.만휴정이라는 푯말이 없어도 폭포와 너럭바위가 궁금해서 들어가 볼 수밖에 없는 진입로다. 진입로를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나무에 가려졌던 풍경이 드러나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예쁜 또 하나의 폭포가 보이고 폭포 아래 계곡을 건너는 날렵한 다리와 건너편 정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누구라도 영화를 찍고 싶을 만한 경관이다. 다리 앞에 서니 난간도 없이 겨우 한 사람 지나갈만한 반듯한 통나무 다리는 마치 대문에 꽂힌 듯 방향성이 뚜렷하여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딛게 한다. 좀 여유가 생기는 것은 다리의 끝이 대문과 살짝 비켜있고 몇 단을 올라 서서 문이 있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여유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드라마속 유진초이가 고애신에게 ‘나와 같이 러브하지 않겠냐’는 대사가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라 화면 속에 잘 녹아들어 있다. 좁고 높은 다리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에 대한 암시가 있는 듯하다. 김계행이 내려다보며 두 젊은이의 사랑이 시작되는걸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겠다 싶다.정자 자체는 소박하다. 소박한 주인공이 예뻐 보이는 걸 방해하지 않을 만큼 간결한 다리를 만든 사람은 참 배려심이 많은 사람일 듯하다. 정자는 정면이 여덟자 세 칸 합이 스물네자 7.2m에 측면 역시 여덟자 두 칸 열 여섯자 4.8m의 소박한 정자다. 여섯 간 중 뒤 협간 두 간이 방이고 네 간은 마루며 정면 세간은 기단 없이 기둥을 지반에 직접 내려 누각의 효과를 높였다. 뒤로 돌아가 정자에 오르니 물소리 새소리에 주변은 온통 녹색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폭포가 보이고 왼쪽에는 폭포에서 떨어지기 직전 겁에 질린 물줄기가 바위 뒤로 숨는 것이 보인다. 뒤의 양쪽 협간에 방을 꾸몄다. 앞뒤 간 두 개의 대들보에 동자주를 얹어 가운데 기둥을 건너지르는 종보를 건 조금 색다른 양식이다. 평일 낮시간에도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것을 보니 이제 방안에 비가 새어 흉한 모습은 곧 고쳐지겠지 싶다.고산정은 이황의 제자 금난수가 지은 정자로 그 절경에 시가 저절로 나오는 곳이라 스승인 이황을 비롯한 많은 학자가 이곳을 찾아 함께 시를 짓고 학문적 교류를 하던 곳이다. 가송마을을 지나니 작은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 왼편으로 하천을 따라 가다보면 고산정의 왼쪽 면이 보인다. 정자 옆의 절벽과 강의 풍경에 정자가 살짝 파고들어 제 집인양 앉아있다. 가송마을과 낙동강 가송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청량산을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다. 자연석 축대를 높이 쌓아 정자를 만들었다. 전면 세 칸에 측면 두 칸의 정자에 왼쪽 후면은 처마 밑을 달아내었다. 정자의 마루는 높지 않고 마루의 모든 변을 판문으로 막았다. 강 건너 적벽바위 옆 정자는 그 풍경을 더 아름답게 한다. 자연 속에 짓는 건축은 이런 것이다. 자연경관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건축이어야 한다. 많은 화가가 고산정의 풍경을 그렸으며 정자 안에는 이황을 비롯한 당시 내 노라 하는 문호들이 이곳에서 쓴 시들이 걸려 있다. 이 정자 역시 같은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곳이다. 강 건너 나루터에서 애신과 유진이 배를 타고 가마로 출발하는 곳이다. 이곳과 가마터로 나오는 만휴정은 실제 한 시간 거리지만 드라마에서는 마치 고산정이 만휴정인 듯 보인다.칸 수는 전면 세 칸에 측면 두 칸이라 멀리서 보면 만휴정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한 간의 폭이 조금 넓고 뒤 간의 한쪽 방을 처마 밑으로 달아내었다. 전면의 판문을 열면 강이 보이지만 문이 없는 만휴정에 비하면 개방감이 떨어진다. 두 정자를 보면서 우리 건축문화유산이 현대의 문화를 만나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니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의 장소를 찾아낸 제작진의 심미안에 박수를 보낸다. 안동에 있는 이황의 묘역을 찾아 인사하는 것으로 두 정자의 기행을 마친다.글: 최세일 한건축 대표
  • 경북도 민선 7기 로드맵, 8대 분야 100대 과제 추진

    경북도는 민선 7기 목표와 구체적 실천방안을 담은 ‘도정 운영 4개년 계획’을 확정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3일 도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자리, 문화관광, 저출산 극복, 농촌 공동체 회복 등 핵심 사업을 담은 8대 분야, 100대 과제를 발표했다. 도는 이를 위해 2022년까지 4년 동안 총 13조 5000억원(국비 9조 1000억원, 도비 1조 1000억원, 시·군비 1조 7000억원, 기타 1조 600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기업과 관광 서비스, 스마트 농업, 건설, 사회적 경제 등을 중심으로 좋은 일자리 10만 개를 만들고 투자유치 20조원, 농업 수출 7억 달러, 내국인 관광객 2000만 명, 외국인 관광객 200만 명 시대를 연다는 구상이다. 우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산업단지 혁신과 경쟁력 향상, 청년 일자리 종합지원시스템 구축, 취약계층 맞춤형 일자리 창출 등을 추진한다. 문화관광공사 설립과 관광기금 1000억원 조성, 천년고도 경주 본모습 재현, 낙동강 글로벌 문화관광 거점화, 환동해 마리나 루트 개발 등으로 관광산업도 키운다. 주민 복지를 위해서는 아이 돌봄 대상을 저소득층에서 일반 아동까지 확대하고 국공립어린이집 100곳, 공공형 어린이집 61곳을 추가로 늘릴 계획이다. 인구교육 시범학교 운영, 미혼남녀 축제, 다복 가정 대축전 등 다양한 사업도 추진한다. 지방소멸 극복 모델로 청년이 농촌에 정착해 생활하는 이웃사촌 시범마을,경로당 중심 이웃사촌 복지공동체 조성에도 힘을 쏟는다. 농축산분야 과제로는 농식품 유통전담기관, 스마트 팜 혁신 밸리, 6차 산업화 전진기지 구축, 두레 공동체, 생태복지 축산단지 등을 확정했다. 또 SOC 16개, 안전 7개, 상생협력과 정체성 분야 7개 과제도 추진한다. 100대 과제 실천을 위한 세부 사업은 277개로 이 가운데 신규 119개, 기존사업 확대 88개, 기존사업 보완 70개다. 도는 이철우 도지사 취임 직후인 지난달 9일 도정 설계를 위해 민간 중심으로 잡아위원회를 구성해 이 같은 과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그동안 경북을 이끌어 왔던 전자와 철강 등 주력산업이 매출 급감 등으로 무너지고 있고 연간 1만 3000여명의 인구가 감소하는 등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극복을 위해 300만 도민과 함께 새로운 각오로 변화와 혁신에 과감히 나서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북도는 이날 민선 7기 도정 슬로건을 ‘새바람 행복 경북’으로 확정, 발표했다. 도정 4대 목표로는 ?일터 넘치는 부자 경북 ?아이 행복한 젊은 경북 ?세계로 열린 관광 경북 ?이웃과 함께 복지 경북을 선정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연일 폭우로 이재민 300명 넘어서…팔당댐 등 수위 상승

    연일 폭우로 이재민 300명 넘어서…팔당댐 등 수위 상승

    26일부터 연일 계속된 폭우로 이재민이 300여명을 넘어섰다. 3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현재 전국에서 192가구 31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중 서울 93명, 경기 24명 등 136명이 아직 귀가하지 못 하고 대피소 등에 머무르고 있다. 도로 252곳 등 779개 공공시설에 피해가 발생했다. 이 중 750곳에서는 응급조치가 끝났지만 29곳은 조치를 하고 있다. 전북과 대전에서 각각 주택 1채가 반파된 것을 비롯해 주택 1860채가 침수됐으며 공장 66곳, 상가 247곳도 침수 피해를 봤다. 부산 동래구 세병교와 연안교 하상도로 각 0.5㎞ 구간이 이날 오후 10시 10분쯤부터 통제되는 등 도로 4곳이 통제 상태다. 지리산과 북한산, 월악산, 소백산 등 국립공원 8곳의 탐방로 176개도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전북 무주와 경북 문경에는 산사태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이번 폭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망 3명, 실종 1명, 부상 4명으로 집계됐다. 비가 오면서 댐 수위도 상승하고 있다. 오후 9시 기준 한강수계 광동댐과 팔당댐, 괴산댐, 금강수계 대청댐과 용담댐, 낙동강 수계 남강댐, 섬진강 수계 섬진강댐과 주암댐, 영산강 수계 보성강댐 수위가 상승했다. 다목적댐 20곳의 저수율은 오후 11시 기준 평균 63.8%로 예년의 112.9% 수준까지 올라갔다. 정부는 이날 밤과 9월 1일까지 남부지방에 천둥과 돌풍을 동반한 시간당 40㎜ 이상의 많은 비가 예상됨에 따라 해당 지역에 24시간 상황관리체제 유지를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골… 낙동강 전투 참혹함 잊지 못해”

    “강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골… 낙동강 전투 참혹함 잊지 못해”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정대연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4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규원 치과 3층) 대담 정대연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 실종된 인천 학생들 나(정대연)는 인천 화도진 고개 넘어 화수동 111번지 쌍 우물 앞 배급소 집 외아들로 태어나 창영국교를 졸업하고, 인천동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서대문에 있는 감리교 신학대학교 2학년 때 6·25 사변이 터졌다. 인천을 점령한 북한괴뢰군들은 인천 지역에서 중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인민의용군에 입대시켰는데, 강제로 끌려간 중학생들은 그 후 모두 실종이 되었다. 9·15 인천수복과 인천학도의용대의 창설 UN군의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수복이 되어서, 고려대 2학년생 이계송을 대장으로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를 조직하여 치안 유지, 피난민 안내 등 호국(護國)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인천학도의용대의 부연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50년 늦은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우리 국군과 UN군은 후퇴하게 되어, 또다시 인천이 적화(赤化)가 되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우리들은 걱정만 하고 있었다.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 남하 1950년 12월 초 국방부 정훈국 인천파견대에서는 인천 지역의 중학생들도 남쪽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50년 12월 18일 제일은행 인천지점 건너편에 있었던 경기도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 소속 국민방위군 소위가 선두에서 인천학도의용대 3000명 대원을 이끌고 경상남도 통영의 국민방위군 수용소(통영충렬국교)를 향하여 우리들은 걸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1950년 12월 24일 대전역 도착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하여 처음 1박을 한 곳은 안양이었다. 우리들은 1950년 12월 20일 수원에 도착하여 수원역에 안내판을 만들어 성탄절 날까지 대전으로 오라고 알렸다. 1950년 12월 24일 인천학도의용대 본대는 대전에 도착하여 성탄절을 대전역에서 맞았다. 1950년 12월 29일 마산 도착 대구를 지나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논밭에 버려진 수많은 얼거나 굶어 죽은 국민방위군 시체를 보면서 그 머나먼 남쪽 끝까지 모진 고생을 하면서 내려온 우리들은 부패한 국민방위군의 제3수용소(통영충열국교)에 어린 대원들을 입소시킬 수 없어서 마산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통영으로 남하하는 것을 정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참모회의를 신마산역 중앙여관에서 하여, 대구 육군본부를 찾아가서 담판 짓기로 하였다.대구 육군본부에서 황헌친 인사국장 만남 이계송 대장과 나는 걸어서 대구를 가게 되었다. 낙동강에 도착했을 때는 생전에 잊지 못할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강변에 많은 유골이 널려있는 것이 낙동강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보여 주는 끔찍한 장면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계송 대장과 나는 육군본부 인사국장 황헌친(黃憲親) 준장을 만나서 우리가 육군본부에 찾아오게 된 동기를 인사국장에게 설명하고 인천학도의용대의 진로에 대한 각서를 받았다. 황헌친 준장이 만들어준 각서 내용 ①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의 이동함에 있어 차량이나 선박을 이용할 수 있는 차량·선박 징발권(徵發權)을 준다. ②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까지 입소하고, 포병사관학교에 응시할 기회를 준다.中 4~6학년생들이 먼저 해병으로 자원입대 이계송 대장과 나는 다시 걸어서 낙동강을 건너 인천학도의용대원들이 수용돼 있는 마산 임시 거처에 와서 보니까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마산에서 가까운 진해 해병교육대 신병으로 중학교 4~6학년생들 600여명이 자원입대했고, 인천에서 같이 출발한 국민방위군 소위가 나머지 중학교 1~3학년 대원들을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경남 통영출열국교)로 데리고 갔다. 中 1~3학년생들 부산 육군 제2훈련소 입소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에 수용돼 있는 우리 대원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이 계송 연대장과 나는 마산에서 출발하여 통영을 향하여 배를 타고 가서, 통영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인 충렬국민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 대원들이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게 된 경위는 인천에서부터 우리와 같이 행동했던 국민방위군 인솔 소위가 자기가 받은 명령대로 2000명이 넘는 대원들을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에 입소시킨 것이었다. 육군본부에서 받은 징발증(徵發證)을 수용소 소장에게 보여주고, 우리들은 모두 배에 나누어 타고 통영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였다. 1951년 1월 10일 인천학도의용대원 1500여명은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입소하였으며 훈련병이 된 이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의 조직은 사라지게 되었다. 1951년 2월 1일 육군통신학교 입교 부산육군 제2훈련소를 마치고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간 날이 1951년 2월 1일이다. 우리가 지휘관 옆에서 조금 안전하게 근무하는 통신병이 된 데에는 인천상업중학교 물리 교사 출신의 부산육군통신학교 신봉순 교육대장님 덕분이었다. 신봉순 교육대장님은 1951년 2월 1일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중 500명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입교시켰으며, 오갈 데 없었던 여학생 120명의 숙식을 해결해 주고, 다시 인천으로 여학생들이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신 인천학도의용대의 영원한 스승이시다. “반드시 살아서 고향에서 꼭 다시 만나자”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통신교육을 마친 나는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걸어와서 함께 자원입대한 고향 후배들에게 반드시 살아서 인천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울면서 헤어졌다. 처음에는 육군 제8사단으로 배치받았다. 다음에 나는 육군본부 내의 통신부분을 담당하는 561부대로 가게 되었다. 그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서, 1953년 3월 9일 군에서 명예제대하였다.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진 학창시절’ 1997년 6월 25일 자 인천일보에서 6·25 특집(特輯) ‘전쟁터 이슬로 사라진 학창시절’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내 가슴에 와닿는 것은 나하고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했던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이경종(인천상업중학교 3학년때 자원입대)의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이 우리 인천학도의용대의 6·25 참전역사 찾기를 시작했다는 기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또한 나의 기억을 글로 남기게 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경종규원 2부자(父子)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편찬 사업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14회를 마치며 23살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정대연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님은 육군 중위로 장교 현지임관 제의도 거절하고, 중학생 동생들과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습니다. 많은 인천의 중학생들을 위기에서 구했지만,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섭섭해하지 않았던 인천의 훌륭한 형입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정 대 연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 1951년 10월 5일 강원도 향로봉전투에서의 정대연(가운데). 1928년 9월 3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9년 2월 15일 인천동산중학교 졸업 1950년 6월 25일 서울감리신학대학 2학년 1950년 9월 25일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으로 추대 1951년 1월 10일 통신병으로 입대(군번 0246202) 1953년 3월 9일 의병 제대
  • 중랑천 홍수주의보·동부간선도로 통제 해제…기습폭우로 1명 사망

    중랑천 홍수주의보·동부간선도로 통제 해제…기습폭우로 1명 사망

    28일 서울에 폭우가 기습적으로 쏟아지면서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29일 행정안전부 상황총괄반에 따르면 28일 오후 7시 50분쯤 서울 노원구 동부간선도로 월릉교 부근에서 차량이 침수되면서 40대 남성이 숨졌다. 이 남성은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 41가구 6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중 서울 은평구 이재민 22가구 31명 등은 아직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 과천과 시흥, 하남에서도 일부 시민이 주민센터와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했다. 서울과 인천, 경기, 대전에서 주택과 상가 764곳이 물에 잠겨 배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석축과 담장 109곳이 무너져 일부 응급 복구가 진행 중이다. 국립공원 13개 공원 379개 탐방로가 통제되고 있으며 서울과 대전, 경기, 강원에서 교량과 지하차도 9곳의 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청계천 시점부터 중랑천 합류 구간까지, 잠수교 보행로가 각각 통제 중이다. 다만 중랑천 홍수주의보는 해제됐다. 동부간선도로 통제도 해제됐다. 경기 포천에는 산사태 경보가 내려졌으며 인천, 경기, 강원, 경부 일부 지역에는 산사태 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정부는 16개 다기능보 모두를 개방해 물을 방류하고 있다. 20개 다목적댐 저수율은 평균 56.1%로 예년 55.7% 수준을 넘어섰다. 한강 수계 팔당댐과 괴산댐, 의암댐, 청평댐, 영산강 수계 보성강댐, 낙동강 수계 운문댐이 수위 조절을 위해 방류 중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국지성 폭우 전국 강타…경남 창녕 360㎜·함안 300㎜

    국지성 폭우 전국 강타…경남 창녕 360㎜·함안 300㎜

    28일 쏟아진 폭우로 한때 낙동강 하류가 범람했다. 경찰은 북구 덕천배수장 앞 도로 50m, 강변대로 화명생태공원 진입로 60m, 삼락생태공원 입구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낙동강 하굿둑을 활짝 열고 만약의 사태에 대응했다. 이날 낙동강 상류인 경남 창녕에 360㎜, 함안 300㎜, 거창 276㎜, 울산엔 170㎜가 내렸다. 또 전남 담양 봉산면에는 시간당 73㎜나 되는 비를 뿌렸고, 광주 조선대 일대엔 시간당 65㎜가 내리면서 광주 도심에 피해를 집중시켰다. 광주시에 따르면 도로 침수 132건, 상가 침수 91건, 주택 침수 46건, 차량 침수 34건, 토사 유실 10건 등 326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낙과 128㏊, 농경지 침수 248㏊, 벼 쓰러짐 49㏊ 등 농작물 피해도 적잖다. 광주시는 재난안전특별교부세 15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이날 행정안전부에 건의했다. 강원 지역에도 영서 지역을 중심으로 시간당 10∼30㎜의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이날 오후 6시 30분까지 원주 부론 141.5㎜, 영월 상동 136.5㎜, 원주 문막 103.5㎜, 영월 112.8㎜, 태백 47.9㎜ 춘천 18.7㎜를 기록했다. 오후 3시쯤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에서는 벌초하러 온 김모(57)씨 부부가 계곡에 고립됐다가 소방대원에 무사히 구조됐다. 충북 북부권엔 시간당 최대 30㎜를 웃도는 강한 비가 내리면서 주택 침수와 하천 범람 등 피해를 낳았다. 전날 오후 6시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단양 영춘면 215㎜, 제천 백운 189㎜, 단양 172㎜, 충주 130.7㎜, 제천 124㎜, 음성 90㎜, 보은 66.5㎜, 증평 59㎜다. 서울에서도 호우경보가 발령됐다. 서울시는 이날 저녁 8시 30분 중랑교 일대에 홍수주의보를 발령했다. 시 재해대책본부는 “서울 지역에 호우경보가 발령돼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최근 폭우는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해 간 뒤 북쪽에서 찬 고기압이 내려와 남해안과 일본 남쪽에 걸쳐 있는 북태평양고기압을 만나면서 비구름을 만들어 생긴 것으로 기온과 습도 등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고기압이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형세”라고 말했다. 이번 비는 내륙 지방의 경우 31일까지, 제주도엔 다음달 1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인사]

    ■법무부 ◇3급 승진△법무부 범죄예방기획과장 황진규△치료감호소 행정지원과장 한상익◇3급 전보△법무부 보호관찰과장 이영면△광주보호관찰소장 이태원◇4급 승진△광주소년원 교무과장 이국희△대구보호관찰소 행정지원과장 남두화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 생명윤리정책과장 이수연△인구정책실 요양보험운영과장 박민정 ■환경부 ◇과장급 전보△자연보전정책관실 국토환경정책과장 이승환△자원순환정책관실 폐자원에너지과장 임수영△환경보건정책관실 생활환경과장 최남호△낙동강유역환경청 환경관리국장 유태철△낙동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김대만
  • 심각한 녹조 현상에도 수돗물은 안전

    심각한 녹조 현상에도 불구하고 수돗물은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는 ‘조류 경보’가 발령된 낙동강과 팔당호 등 10개 지점 수계에 있는 정수장 35곳을 대상으로 조류 독소와 소독 부산물 등을 검사한 결과 검출되지 않거나 기준치 이내였다고 22일 밝혔다. 전국 정수장 483곳 중 녹조가 발생한 곳에 위치한 정수장은 35곳이다. 조류 독소(마이크로시스틴 LR)는 정수장 규모나 고도처리, 표준처리 등 정수처리 공정에 관계없이 총 190건 검사에서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 정수장의 염소 소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총트리할로메탄(THMs)은 총 245건 검사에서 ℓ당 평균 0.03㎎ 수준으로 기준 이내(0.1㎎/ℓ)로 평가됐다. 맛·냄새 물질(지오스민·2 MIB)은 350개 시료 중 335건에서 검출되지 않았다. 나머지 15건에서는 최대 0.007㎍/ℓ까지 검출됐지만 수질감시 기준(0.02㎍)보다 훨씬 낮았다. 이 물질들은 독성이 없어 인체엔 무해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들어 있으면 흙 냄새 등을 유발한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 5~6월 녹조 영향이 예상되는 전국 정수장 101곳을 대상으로 사전 점검을 실시했고 개선 조치도 완료했다. 한편 지난 20일 기준 조류 경보가 발령된 곳은 한강 1곳과 금강 2곳, 낙동강 7곳 등 총 10곳으로 파악됐다. 조류 경보는 유해 남조류 세포수가 1000세포/㎖ 이상이면 ‘관심’, 1만 세포 이상은 ‘경계’, 100만 세포 이상이면 ‘대발생’이 발령된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남명-퇴계를 통해 보는 조선 선비의 아름다움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남명-퇴계를 통해 보는 조선 선비의 아름다움

    우리 옛시조보다 조선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문학작품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들이 쓴 몇 줄의 평론문이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더 조선선비의 내면을 잘 비춰주기도 한다. 먼저, 유학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남긴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인물평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송시열은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거물이다. 우리나라 유학자 중 ‘자(子)’자가 붙은 유일한 인물로, 송자(宋子)라 불린다. 말하자면 성인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함께 당대의 유학을 영도한 두 거두 중 한 사람으로, 그야말로 조선 선비정신의 화신이라 할 만한 강직한 인물이다. 그는 나라의 정치가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상소문에서 왕의 모후 문정왕후와 명종에 대해 “대비는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국왕은 아직 어리니 돌아가신 왕의 한 고아일 뿐이다”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거리낌없이 쓰기도 했다. 임금이 그 문구에 진노했다지만, 그래도 조식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못한 것을 보면 조선의 위대함이 새삼 느껴진다. 일개 신민으로서 조식을 능가하는 강골(强骨)은 동서고금에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같은 남명에 대해 한 세기 뒤의 후학 송시열이 쓴 인물평은 다음과 같다. “천길 절벽에 우뚝 서서 일월(日月)과 빛을 겨루는 기상은 지금까지도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품게 하여, 완악한 벼슬아치들을 청렴하게 하고 나약한 선비들을 떨쳐 일어나게 한다.” 이처럼 서릿발 같은 인물이었지만 남명이 남긴 시조 한 편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진경산수화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겨세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지리산의 딴 이름. *두 갈래 물줄기 재미있는 것은 위의 시조와 똑같은 소재와 주제로 짝이 될 만한 시조 한 수를 퇴계도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 닮음이 자못 신선하고 재미있다. 청량산 육륙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수다스러우랴. *고기잡이 남명 조식은 평생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산림처사로 자처하며 살았다. 처사(處士)란 세속에 발을 들이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이 시조에서 보듯이 자연에 완전 귀의하여 처사로 살다가 동갑인 퇴계가 죽은 이듬해 표표히 떠났다. 앞으로는 큰 여울이 흐르고, 뒤로는 수려한 산을 등지고 있는 산청의 덕천서원이 남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다른 평론은 퇴계 이황(1501~1570)이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어부가’를 평한 것으로 이 또한 명문인데, 우선 농암이 살았던 곳의 빼어난 풍광부터 일별해보자. 안동 도산서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예안의 농암 고택은 운치 넘치는 고가로, 앞으로는 낙동강 상류인 분강(汾江)이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는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다. 이 강에서 고향 선후배간인 농암과 퇴계는 가끔 배를 띄우고 술잔을 물에 흘려보내면서 음풍농월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두 사람은 나이차가 34년이나 되는데도 함께 즐김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퇴계의 집에서 농암 종택은 강을 따라 두어 시간은 좋이 걸어야 하는 거리로, 참으로 아름다운 강변 길이다. 퇴계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은 이 길의 아름다운 풍광이 빚어낸 노래이다. 농암은 서른 둘에 벼슬길에 올라 일흔 넷이 되어서야 겨우 병을 핑계로 낙향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조선조 5백 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은퇴식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그의 은퇴식에는 임금과 당시 정계, 학계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전별시들을 지어 그를 전송했다. 배 타러 한강으로 가는 길에는 장안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와 그를 전송했다. 평생을 벼슬살이했지만 배에 실은 짐이라고는 화분 몇 개와 책보따리 그리고 바둑판 한 개뿐이었다고 한다. 청춘에 집을 나서 백발에 귀향길에 오른 농암이 ‘정승 벼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며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분강촌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어부사’의 한 편이 그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굽어는 천심녹수 돌아보니 만첩청산 십장 홍진*이 언매나 가렸는고 강호에 월백하거든* 더욱 무심하얘라 *열 길이나 되는 속세 먼지. *달이 밝거든 밤이 되어 강과 호수에 달빛마저 휘영청하면 마음은 무욕, 더없는 평화로움을 누리는 심경을 농암은 담담히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10여 년을 더 유유자적 자연 속을 노닐다가 떠났다. 참으로 복 받은 삶이라 하겠다. 이 농암이 남긴 연시조 ‘어부사’의 발문을 퇴계가 썼는데, 그 평론이 실로 멋스럽기가 한량없다. “부귀를 뜬구름에 비기고, 고상하고 품위 있는 생각을 물외(物外)에 부쳐 낚시터를 노니는 선생의 강호지락(江湖之樂)은 가히 진의(眞意)를 얻었다.” 이보다 멋스러운 평론이 또 있을까. 역시 사람들이 멋스러우니 이런 멋스런 글도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의 선비들은 실로 아름다웠다. (위 시조들은 ‘우리 옛시조 여행(이광식 저)’에서 인용)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사설] 타들어 가는 한반도, 녹조와 가뭄 대책 마련해야

    불볕더위에 콩, 고구마, 깻잎, 고추 등 밭작물의 줄기와 잎이 말라 비틀어지면서 죽어 가고 있다. 섭씨 20~25도에서 잘 자라는 무, 배추 등 채소류는 폭염 탓에 출하량이 대폭 줄었다. 방울토마토와 복숭아, 사과 등 과일도 햇볕뎀 현상 때문에 농민이 울상이다. 낙동강, 금강 등 전국 주요 상수원 28곳 중 낙동강 강정고령, 창녕함안, 금강 대청호 등 상수원 7곳에는 지난 10일부터 조류경보가 발령돼 안정적 수돗물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폭염에 가뭄이 겹쳐 전국 저수지는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지며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비 온다는 소식은 없다. 최근 가뭄과 폭염은 근본적으로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한국은 6월 말부터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랭한 오호츠크해 기단과 만나 형성된 장마전선이 한반도 위로 북상하면서 비가 내렸는데 최근 들어 갈수록 심해지는 엘니뇨 현상 탓인지 장마전선이 일찍 북상해 버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한 달(7월 12일~8월 11일) 전국의 평균 누적 강수량은 32.9㎜다. 지난 30년간 평균 강수량(273㎜)의 13.2%에 불과하다. 여기에 계속되는 35도가 넘는 폭염으로 수분 증발량이 증가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부는 낙동강 녹조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조만간 안동·임하·합천댐 환경대응용수 방류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강 수계도 팔당호와 한강친수활동구간(잠실대교~행주대교)에 15일 앞뒤로 조류경보를 내릴 예정이다. 정부는 이 같은 조류 대책뿐 아니라 축산 오·폐수 등 오염원이 강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수자원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폭염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커지는 만큼 저수지, 양수장 등 농업용 수원 수리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또 정부가 폭염을 재난에 편입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재난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재난안전법 개정도 서둘러야 한다.
  • [관가 블로그] 4대강 조사·평가단장에 누구?

    [관가 블로그] 4대강 조사·평가단장에 누구?

    위상 약화 속 ‘4대강 보’ 운명 결정4대강 보의 운명을 결정할 환경부의 4대강 조사·평가단이 ‘1실 1국 4과’로 축소 출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첫 수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조사·평가단은 환경부로 물관리가 일원화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4대강 보의 처리 계획을 마련할 한시 조직입니다. 7월 출범 계획이 늦어진 데다 ‘1실 2국 6과’으로 설계된 조직도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거치며 축소돼 위상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나마 내부에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환경부 공무원들은 “정부뿐 아니라 높은 국민적 관심을 고려할 때 미흡하다”고 토로합니다. 조사·평가단은 단장과 조사평가지원관을 두고 기획총괄·유역소통·평가총괄·개방팀(과)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기존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 현장대응팀을 뒷받침하고 모니터링팀도 운영합니다.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지 않는 대신 그간 운영한 물포럼과 상황실 등의 인력풀을 활용해 민관이 참여하는 기획위원회와 민간 중심 전문위원회를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환경부 간부는 “전체적으로 아쉬움은 있지만 정무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1급이 단장을 맡은 것은 다행”이라며 “구체적인 조직과 역할은 운영 세칙을 통해 확정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첫 조사·평가단장을 누가 맡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시민단체 등 외부 영입설이 돌기도 했지만 환경부 공무원이 맡는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정부와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해 기존 3명의 실장 중에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당초 계획보다 조직이 축소되면서 1급 승진자가 갈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조사·평가단이 보 개방 계획을 정하고 개방 영향 평가를 거쳐 처리 계획안을 마련하면 내년 6월 국가 물관리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할 계획입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경세·문장 모두 탁월… 임진왜란 위기 헤쳐나간 명재상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경세·문장 모두 탁월… 임진왜란 위기 헤쳐나간 명재상

    낙동강 물줄기가 태극 모양으로 감싸고 돌며 수려한 긴 모래사장을 형성한 마을, 고색창연한 한옥과 전망 좋은 정자가 즐비한 마을, 산세가 험하지 않고 그늘이 없이 밝은 마을, 바로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이다. 조선 명재상으로 꼽히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을 배출한 곳이다.#이름을 짓기 어려운 큰 그릇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 신흠은 서애를 수행했을 때 기억을 이렇게 술회했다. “공은 내가 글씨를 빨리 쓴다는 이유로 반드시 나에게 붓을 잡으라고 명하고 입으로 불러주어 문장을 이루게 하였다. 줄줄이 이어지는 문서나 편지를 비바람 몰아치듯 신속히 지었는데, 붓이 멈추지 않고 문장에 점 하나 더하지 않았어도 찬란하게 격을 이루었다.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까지도 또한 그렇게 하였다.” 우리가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선현 중에는 경세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고, 문장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고, 학문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한 인물이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커다란 능력을 드러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 문장이나 학문에 능한 사람은 경세나 행정에 어둡고, 경세에 밝은 사람은 문장이나 학문이 얕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애는 그런 상식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영의정, 도체찰사(都體察使)로서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경세가이자 ‘맹자’의 문체를 체득한 이름난 문장가였다. 주자학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당시 학자들이 이단시하던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설에까지 관심의 범주를 넓혔던 학자이자 병법에 밝은 실무형 이론가이기도 했다.#퇴계 수제자… 병법에도 밝은 실무형 이론가 퇴계 이황의 수제자를 꼽을 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서애다. 21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퇴계의 문하에 들어 ‘근사록’(近思錄) 등 성리서를 배웠는데, 퇴계는 그를 만나 보고 나서 하늘이 낸 인재라고 찬탄했다 한다. 퇴계의 예언대로 서애는 임진왜란 당시 국가가 위난에 빠졌을 때 크게 공을 세웠다. “임금께서 한 발자국이라도 이 땅을 벗어나시면 조선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두려움에 떨던 선조는 여차하면 중국으로 넘어갈 요량으로 국경과 가까운 곳으로 피란하려 했다. 조정의 일부 신하들도 이에 동조하였지만 서애는 극구 반대해 자칫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민심의 동요를 잠재웠다. 선조가 장수로 삼을 만한 인재를 천거하라고 했을 때는 지방 수령으로 있던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해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세를 역전시키게 만들었다. 소극적이던 명나라 원군을 설득해 끝까지 왜적을 몰아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명나라의 신병법인 기효신서법을 배워 군사들을 조련했고 훈련도감을 설치해 군사력 향상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파에 따라 서애의 활약상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이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그의 탁월한 안목과 기여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사상의 정수가 담긴 잡저 서애의 문집은 가장 먼저 ‘잡저’(雜著) 부분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서애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글들을 모아 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잡저는 송(宋)나라 역사를 읽으면서 당대에 귀감이 될 만한 사건들에 대한 평설(評說)을 기록한 ‘독사여측’(讀史測)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정주학(程朱學) 계통의 이론을 담은 ‘주재설’(主宰說) 등과 양명학을 비판하는 ‘왕양명이양지위학’(王陽明以良知爲學) 등은 서애의 학문적 사상을 논할 때 필수적으로 인용되는 글들이다. 일견 여타의 정주학자들과 비슷한 견해를 보이지만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읽어 보면 양명의 주장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은연중 보여 주기도 한다. “왕씨의 의도를 잘 살펴보면, 대개 당시 세상의 학문이 외면적인 것으로만 치닫는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결같이 본심(本心)을 위주로 하여, 무릇 마음을 써서 강구하는 행위를 모두 행(行)이라고 여겼던 것이니, 이는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게 곧게 된 경우이다.” #벼슬을 버리고 은거를 결심하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국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서애는 부단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선조는 계속해서 윤허하지 않았다. “의리상으로는 비록 임금과 신하였으나 정으로 볼 때에는 친구 사이와 같았다. 나만큼 경을 잘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 당인들은 집요하게 그를 공박했다. 마침내 그가 57세이던 1598년에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때 관작을 삭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애초에 벼슬에 초연했던 서애로서는 이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전란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유비무환의 교훈을 담은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을 담고 있어 숙종 연간에 이미 일본에서 입수해 출판하기도 했다. 이후로 다시는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향한 서애의 충정은 죽는 날까지 식지 않았다. “나라 위한 마음은 늙어서도 그대로라 세모(歲暮)에 빈산에서 비장하게 읊조리네 노년이라 매사에 감회가 일어나니 무단히 눈물이 홀연 옷깃을 적시네.” #사관(史官)도 놀란 조문 행렬 대신이 세상을 떠나면 사흘 동안 조정은 공무를 중지하고 시장은 문을 닫는 것이 전례였다. 서애가 고향 풍산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는데, 시장 상인들은 애도의 뜻으로 하루 더 문을 닫았다.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선조실록 사관의 평이 흥미롭다. 1000여명이나 되는 조문객이 한때 서애가 살았던 묵사동 빈집에 모여 조곡(弔哭)을 하였던 일을 전례가 드문 일이라고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 인물이 조정에서 발자취가 끊어졌고 상(喪)이 천리 밖에서 났는데도 온 성안 사람들이 빈집을 찾아 모여서 곡을 하였으니, 아마도 시사(時事)가 날로 잘못되어 가고 민생이 날로 피폐해지는데도 후임으로 수상(首相)이 된 자들이 모두 전 사람만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추억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의 백성 역시 불쌍하다.” 선조실록은 북인이 중심이 돼 기술했기 때문에 서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내용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 사람들이 서애를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서애집’은 서애집(西厓集)은 조선 선조 조의 명재상이었던 류성룡의 시문집이다. 원집(原集) 20권 10책, 별집(別集) 4권 2책, 연보(年譜) 3권 2책 등 총 27권 14책으로 구성됐다. 인조 11년(1633년) 봄에 합천 해인사에서 원집과 별집을 합쳐 초간했다. 고종 31년(1894년) 가을에 하회의 옥연정사에서 연보를 추가 중간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1982년에 번역, 출간했다. 류성룡의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영구조망권 보장…대구국가산단 영무예다음 잔여세대 분양 시작

    영구조망권 보장…대구국가산단 영무예다음 잔여세대 분양 시작

    조망권을 영구적으로 누릴 수 있는 대구국가산단 영무예다음이 잔여세대 분양을 시작했다. 영무예다음이 들어서는 사업지에는 근린공원이 바로 인접해 있으며 남서측으로는 낙동강이, 북측 방면에는 대니산이 위치해 있다. 대구산업단지에 조성된 근린공원은 약 4만 평으로, 국제축구장 17배이며 인근 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의 중앙공원보다 2배 큰 규모이다. 낙동강과 대니산의 경우 2016년부터 기존 관광자원과 연계한 관광벨트화를 도모하고 있다. 단순한 조망뿐만 아니라 풍성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도 보장되는 것이다. 또한 지난 5월 ‘물관리 기술발전 및 물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대구국가산업단지에 조성 예정된 국가물산업클러스터 사업도 탄력을 받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약 158개의 첨단 기업들의 1단계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입주시기 대비 현재 약 7천만 원의 시세가 올라 프리미엄 가치를 명백히 드러냈다. 향후 2단계까지 개발이 완료되면 더 큰 가치상승이 예상된다. 직주근접의 장점 또한 크다. 대구국가산업단지 인근에는 테크노폴리스를 포함한 산업단지들이 밀집해 있으며 대부분 10분대 이동이 가능하다. 또한 현재 예비 타당성 검토 중인 대구국가산단 산업철도가 확충되면 대구 도심과 동일한 생활권을 형성할 수 있다. 대구산업단지 메리트와 쾌적한 주거생활 환경을 고루 갖춘 대구국가산단 영무예다음의 잔여세대는 선착순 계약중이며 동호 지정이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대구·경북 상생 ‘맞손’… 경제공동체의 길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13일 오후 4시 안동 경북도청 화랑실에서 한뿌리상생위원회 총회를 열고 ‘대구경북 한뿌리 공동선언문’을 채택한다. 이 자리에서는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상생방향과 목표를 밝힌다. 선언문에선 기업 투자유치와 역외유출 방지, 특화산업 육성, 농산물 유통촉진 등을 위해 협력하고 양 지역 문화관광자원을 활용한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대학과 기업 등이 참여하는 인재양성 시스템을 가동하기로 했다. 또 통합 신공항 건설, 낙동강 맑은 물 공급 등 양 지역 현안 해결에 속도를 내고 인접 시·군 간 도시계획을 공동으로 세우기로 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현재 행정부시장·부지사가 맡고 있는 한뿌리상생위 공동위원장을 시장·도지사로 격상한다. 자생적 기구로 2014년 11월 출범한 ‘대구경북한뿌리위’는 지금까지 23개 신규 과제를 발굴하고 2015 세계 물포럼 성공 개최 등 많은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양 지역 현안 해결이 미흡했고 경제 분야 협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하나의 공동체같이 움직여 치열해지는 지역 간 경쟁에 맞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낙동강 상수원 등 7곳 ‘녹조 라떼’ 경보 발령

    연일 폭염으로 낙동강 상수원에 녹조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전국의 주요 상수원 28곳(친수활동구간 1곳 포함) 가운데 낙동강 강정고령·창녕함안·영천호·칠곡·운문호·안계호, 금강 대청호 등 7곳에서 조류경보가 발령 중이라고 12일 밝혔다. 이 중 강정고령과 창녕함안은 조류 경보제 3단계(관심, 경계, 대발생) 중 ‘경계’로 가장 높다. 다른 5곳은 모두 관심 단계다. 녹조에는 사람 몸에 치명적인 마이크로시스티스, 아나배나, 아파니조메논, 오실라토리아 등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녹조는 물 흐름 속도가 느리고 인과 질소 같은 물질이 많은 환경에서 수온이 2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왕성하게 자라난다. 특히 상수원에 녹조가 번식하면 맛이나 냄새에 영향을 끼치는 물질이 정수 처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환경부는 “올해 조류경보를 발령한 낙동강 등에서 117건의 수돗물 수질을 검사한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이달 넷째 주(20~26일)까지 낙동강을 중심으로 녹조가 강한 강도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넷째 주 이전에 안동·임하·합천댐 환경대응 용수를 방류하기로 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창원시 안전한 수돗물 공급 위해 낙동강 보 개방 요구, 녹조로 수돗물 불안감 커

    창원시 안전한 수돗물 공급 위해 낙동강 보 개방 요구, 녹조로 수돗물 불안감 커

    낙동강물을 정수해 수돗물로 사용하는 경남 창원시가 안전한 수돗물 공급 대책의 하나로 정부에 낙동강보 수문 개방을 공식 요청했다. 폭염으로 낙동강 녹조가 심각해지면서 수돗물 안전성에 대한 시민 불안감이 커지자 녹조 발생을 줄이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보 수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허성무 창원시장은 9일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돗물 수질개선과 안전성 확보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한 수돗물 공급 대책’을 밝혔다. 허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낙동강 창녕함안보 수문 개방과 수돗물 정수과정에 건강유해물질 관리 강화, 수돗물 정수비용 국비 확보 등을 통해 안전한 취수원을 확보하고 고품질 수돗물을 생산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전한 수돗물 공급 근본 대책으로 환경부에 낙동강 보 수문 개방을 정식으로 요구한다”면서 “앞으로 도와 지역 국회의원 등과도 공조해 수문개방을 강력히 촉구하겠다”며 낙동강 원수 수질 개선을 위한 보 개방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는 보 수위가 취수에 영향이 없는 2m까지 낮게 유지 되도록 수문을 상시 개방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이날 환경부에 보냈다.허 시장은 “수돗물 정수과정에 유해물질 관리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염소 소독 과정에서 생기는 총트리할로메탄은 현행 먹는물 수질 기준인 ℓ당 0.1㎎의 40% 수준까지 낮추어 정수장에서는 0.04㎎, 가정에서는 0.05㎎으로 관리를 강화한다. 이를 위해 통상 3년마다 교체하는 활성탄 교체 주기를 2년으로 앞당긴다. 연간 30억원인 교체비용이 45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수질분석 주기도 주 1~2회에서 주 5회로 늘리고 분석결과는 시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녹조가 심할 경우 나타나는 맹독성 마이크로시스틴 분석도 경남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주 1~2회 하던 것을 이달 중순부터는 시 상수도사업소에서 자체 분석장비를 갖추어 직접 분석한다. 조류 경보 발령기간에는 매일 원수와 정수를 분석해 결과를 공개한다. 허 시장은 중앙정부에 연간 정수처리비용으로 국비 100억원 지원도 요청했다. 시는 해마다 수자원공사에 원수대금 90억원, 낙동강유역환경청에 물이용부담금 140억원을 납부하는데도 수질이 나쁠 때 수자원공사와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지원하는 고도정수처리 비용은 지원 조건 등이 현실과 맞지 않아 지난해에는 한푼도 지원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시는 현행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 기준으로 돼 있는 지원금 지원 조건을 조류경보발령일 기준으로 변경을 요구하고, 정수처리비용으로 수자원공사에 30억원, 낙동강유역환경청에 70억원 등 모두 100억원 지원을 요구했다. 창원시는 모두 3개 정수장에서 하루 수돗물 35만 1000t을 생산한다. 낙동강 창녕함안보 상류에서 취수한 강물로 칠서정수장에서 하루 23만t, 석동정수장에서 5만 6000t을 각각 생산한다. 대산정수장에서는 강변여과수를 취수해 하루 6만 5000t을 생산해 북면·동읍과 대방·성주·안민·남양·가음정동 등의 지역에 공급한다. 창녕함안보 상류지역은 지난 1일부터 조류경보 경계단계가 발령된 가운데 녹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영남권 40여개 시민단체 “영풍제련소 즉각 폐쇄하라” 촉구

    대구·경북, 부산, 경남, 울산 등 영남지역 4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영풍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피해 공동대책위원회는 8일 성명을 내고 “영풍석포제련소를 즉각 폐쇄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대책위는 “기준치의 180배나 되는 카드뮴에 오염된 낙동강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으며 이제 국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1300만 영남인의 이름으로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어 “영풍제련소 노동자와 석포면 주민의 생계 대책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영풍제련소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기구를 국가가 시급히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제련소 인근 하천 바닥 토양을 조사한 결과가 나와 있는데도 회사 측은 허위사실 유포라며 소송으로 공동대책위를 겁박하고 있다”며 “영남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제련소 폐쇄를 외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환경단체로부터 폐쇄·이전 압박을 받고 있는 영풍제련소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지역의 한 환경단체 관계자 A씨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로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풍 한 관계자는 “A씨는 석포제련소가 낮에는 조업량을 줄이고 밤에 대폭 늘리는 꼼수를 부려 밤마다 유해한 가스가 석포 하늘을 뒤덮는다는 ‘괴담’을 주장했다”며 “현재 공장 시설과 제련 공정에서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48년간 자신들이 저질러 온 온갖 불법적인 환경오염 행위에 일말의 반성도 없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용감하게 하고 있다”며 “이 같은 영풍의 만행에 개탄을 금치 못하며 영풍의 잘못된 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반발했다. 봉화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뜨거운 바닷물에 치어 방류 ‘얼빠진 지자체’

    뜨거운 바닷물에 치어 방류 ‘얼빠진 지자체’

    양식 물고기 폐사 주의보 아랑곳 않아 “어린 고기 고수온에 취약… 탁상행정”기록적인 폭염으로 전국 연안에서 양식 물고기가 대량 폐사하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등이 고수온에 아주 취약한 어린 물고기를 대량 방류해 도마에 올랐다. 6일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3시를 기해 경북 포항~울산 연안, 부산 해운대 청사포~경남 통영시 학림도 연안에 고수온 주의보를 발령했다. 이로써 강원 고성군에서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에 이르는 동해 연안 전체와 청사포에서 전남 해남군 갈도에 이르는 남해 연안 전체로 고수온 주의보가 확대됐다. 동해 연안의 수온은 22~29도로 평년보다 최고 7도 이상 높다. 남해와 제주 연안 수온은 최고 27~29.5도, 서해 연안도 해역별로 28~29도의 최고 수온을 기록했다. 이런 탓에 이날까지 포항과 영덕, 울진 등 경북 동해안 양식장 21곳에서 넙치와 강도다리 등 14만 3600마리가 죽었다. 전남 장흥에선 3개 어가의 넙치 25만 마리, 함평 1개 어가 돌돔 19만 마리 등 모두 44만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사용하는 육상 양식장 인근 바다 수온은 지난 1일부터 30∼32.7도로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경북도 수산자원연구소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5일까지 경주, 포항, 울진 영덕, 울릉 등 동해안 연안 5곳에 어린 가자미류 52만 마리를 방류했다. 돌가자미, 문치가자미 2종으로 지난 1월 자연산 어미로부터 인공 수정·부화시켜 7개월간 실내에서 사육한 몸길이 5~6㎝의 새끼들이다. 부산시 수산자원연구소는 지난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낙동강 하구에 황복 치어 3만 마리를, 전남 해양수산과학원도 지난달 말 무안 현경면에 어린 주꾸미 40만 마리(육상 14만, 해상 26만 마리)를 각각 방류했다. 모두 연안 수산자원 조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한 어촌계 관계자들은 “큰 물고기도 죽어 나가는 통에 적응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 물고기를 풀어 놓으면 과연 몇 마리나 살아남겠느냐”면서 “의례적인 연례 행사로 여겨 일어난 일인 듯하다”고 꼬집었다. 송정헌 부경대 해양수산경영학과 교수는 “연안 고수온 주의보 발령 땐 어린 물고기를 방류하면 안 된다는 점을 알면서 실효성보다는 행정편의를 앞세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안동·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대법원장 출신 의병장 허위… 日헌병사령관도 존경한 기개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대법원장 출신 의병장 허위… 日헌병사령관도 존경한 기개

    1908년 10월 21일 정오. 허위 선생은 경성감옥의 교수대에 올라갔다. 안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고 태도는 당당했다. 왜승(倭僧)이 불경을 읽으며 명복을 빌어 주려 했다. 그러자 선생은 “충의(忠義)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로 올라갈 것이요, 혹 지옥으로 떨어진 대도 어찌 너희의 도움을 받아 복을 얻겠느냐”고 꾸짖었다. 검사가 시신을 거둘 친족이 있느냐고 물었다. 선생은 “죽은 뒤의 염시(斂屍)를 어찌 괘념하겠느냐. 옥중에서 썩어 문드러져도 좋으니 속히 형을 집행하라”고 일갈했다. 털끝만큼의 흔들림도 없었다. 곧 사형이 집행됐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내고 전국 의병을 총지휘해 서울 진격을 노렸던 13도 창의군 대장 허위의 최후였다. 나이 53세였다.대한매일신보는 ‘天日無光’(천일무광·하늘의 태양이 빛을 잃었다)이라며 선생의 죽음을 애도했다. 왕산은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였다. 선생은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國恥民辱 乃至於此 不死何爲 父葬未成 國權未復 不忠不孝 死何瞑目(국치민욕 내지어차 불사하위 부장미성 국권미복 불충불효 사하명목·국치민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하리오.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 불충불효한 몸이 죽은들 어찌 눈을 감으리오.)” 죄수들과 도성(都城) 안팎의 백성이 통곡했다. 시신을 수습한 사람은 제자 박상진이었다. 박상진은 하얀 천으로 시신을 감싸 안고 나와 금오산 아래에 묻고 장례를 치렀다. 상주인 장남 허학을 비롯한 유족들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있어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회유하는 이완용에게 “넌 죽일 것” 호통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을사늑약 직후 의병을 일으켰던 선생은 일제가 정미 7조약 체결을 강요하고 군대를 해산하자 세 번째로 의병을 일으켰다. 선생에게 거사 밀명을 내린 사람은 고종이었다. 강제로 퇴위당하기 직전인 1907년 4월 ‘거의’(擧義)라는 두 글자가 쓰인 의대조(衣帶詔·옷 속에 넣어 비밀리에 전하는 임금의 편지)가 선생에게 전달됐다. 을미의병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이인영도 다시 뛰어들었다. 이인영은 전국에 격문을 띄워 1907년 12월 각도의 의병부대를 경기도 양주에 집결토록 했다. 경기도에서 거병한 허위도 의병들을 이끌고 동참했다. 의병 총수가 1만명을 헤아렸다. 이인영을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하는 연합의병대(13도창의대진소)가 결성됐다. 1908년 1월 연합의병대는 서울진공작전을 개시했다. 그러나 화승총에 짚신을 신은 의병은 애초에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군(日軍)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더욱이 서울 진공 계획을 알아챈 일제는 동대문에 기관총을 설치하는 등 방어망을 펼치고 있었다. 선생은 선발대 격인 감사병(敢死兵) 300명을 지휘해 선두에 서서 서울로 진격했다. 동대문 밖 30리 지점에서 일본군과 마주쳤다. 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일본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패퇴하고 말았다. 이인영이 이끄는 본대도 뒤이어 1월 28일 동대문 밖에 도착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이인영에게 부친의 부음이 날아든 것이다. 이인영은 후사를 허위에게 맡기고 급히 경북 문경으로 돌아갔다. 서울진공작전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의병들은 부대별로 흩어져 유격전에 들어갔다. 선생은 주로 임진강 유역에서 일본군의 진지를 습격하고 관공서를 덮쳐 친일파들을 처단했다. 선생의 의병들이 수많은 전과를 올리자 이완용은 사람을 보내어 관찰사, 내부대신 직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그러나 선생은 “너(이완용)는 반드시 죽일 것이로되 심부름 온 놈이야 죽여서 뭐하겠느냐”고 크게 꾸짖어 돌려보냈다. 1908년 6월 11일 아침 오오타 기요마쓰 등 일본 헌병 수십 명이 영평군(지금의 포천) 서면 유동에 있던 선생의 은신처를 덮쳤다. 헌병들이 의병 한 사람을 붙잡아 회유와 협박을 해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 선생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체포에 응했다. 13년 의병투쟁은 그렇게 끝났다. 선생은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찌하랴. 지금 내가 죽을 곳을 얻었으니 너희 형제간이 와서 보도록 하라.” 선생은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군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의 심문을 받았다. 선생은 아카시에게 “일본이 한국의 보호를 부르짖는 것은 입뿐이요, 실상은 속으로 한국을 멸할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적은 힘으로나마 의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아카시가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것이 마치 병자 몸뚱이를 주무르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마침내는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자 선생은 책상 위의 연필을 가리키며 “이 연필은 붉은 빛깔이지만 내면은 남색이지 않은가. 귀국이 한국을 대하는 것도 껍질과 내면이 크게 다름은 다툴 것도 없이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아카시는 선생의 강직한 성품과 늠름한 태도에 감복하여 ‘국사’(國士)라고 칭하며 선생에게 존경을 표했다. 또 선생의 목숨을 구하려고 데라우치 통감에게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재판에서 일본 재판관이 “의병을 일으키게 한 것은 누구이며 대장은 누구냐”고 물었다. 선생은 웃으면서 “의병이 일어나게 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이며 대장은 바로 나다”라고 대답했다. “왜냐”고 묻자 “이토가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토가 아니고 누구겠느냐”고 반문했다.선생은 1855년(철종 6년) 경북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7세 때 “달은 대장이 되고 별들은 군사가 되어 따른다”(月爲大將軍 星爲萬兵隨·월위대장군 성위만병수)라는 글을 지을 만큼 한학에 능통했다. 관직에 나선 것은 44세의 늦은 나이였지만, 평리원 재판장(지금의 대법원장 격), 의정부 참찬, 칙임 비서원승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선생의 본관과 고향은 김해다. 임은동에는 낙동강 물길을 따라 김해에서 서울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허위의 증조부 허돈이 1807년에 정착했다고 한다. 임은동은 박정희 생가가 있는 상모동과 붙어 있다. 드넓던 평야는 구미산업공단으로 바뀌었고 공단 아래쪽 허씨 일가가 모여 살던 마을은 빌라와 주택이 들어서 고가(古家)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1962년 건국훈장 추서… 서울시 ‘왕산로’ 명명 다행히 생가터는 남아 있었다. 선생의 장손 허경성(91·둘째아들 허영의 장남)씨가 자신은 전세를 살면서도 큰돈을 대출받아 1990㎡의 터를 사들여 2005년 구미시에 기부했다. 생가 건물은 자료가 없어 복원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왕산허위선생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생가 건너 쪽 야산에는 선생의 묘소와 유허비가 있고 그 바로 옆에 2009년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이 세워졌다. 김교홍 기념관장은 “선생의 집안은 논 3000마지기(60만평)를 팔아 군자금으로 쓰는 등 의병투쟁과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고 말했다. 묘소 옆에 위패를 모실 사당 경인사(敬仁祠)가 조성되고 있지만, 예산 편성이 미뤄져 공사가 답보 상태다. 기념관 아래에 선생의 호를 딴 왕산초등학교가 있다. 선생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서울시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청량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가로를 ‘왕산로’라고 명명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호수 조망권 공동체마을, 의성 레이크뷰빌리지 입주자 모집

    호수 조망권 공동체마을, 의성 레이크뷰빌리지 입주자 모집

    경북 의성군 안계면 개천지 호숫가에 공동체마을 ‘의성 레이크뷰빌리지’가 들어선다. 2019년 12월 입주를 목표로, 8월 중 입주자 모집을 시작한다. 의성 레이크뷰빌리지는 31,658㎡의 토지에 29세대, 마을회관 1동으로 구성된다. 각 세대는 입주자의 개성과 취향을 고려한 자유로운 주택건축이 가능하다. 또한 호수 조망이 가능하고 여유로운 전용면적을 누릴 수 있으며, 빠른 입주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마을회관에서는 주민편의와 교육, 문화공간으로서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된다. 공동체마을이라는 취지에 맞게 이웃 간 친목을 도모하고 마을기업 활동기반 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의성 공동체마을 레이크뷰빌리지가 조성되는 의성군 서부의 중심지역인 안계면은 청주영덕고속도로 서의성 IC가 위치한 곳으로 종합병원 등 생활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낙동강의 맑은 물과 안계평야의 비옥한 토지에 인접해 있어 쌀 특산물 지역으로도 유명하며, 봄에는 연날리기 대회, 가을에는 쌀 문화축제가 열려 유동인구의 유입도 활발하다. 한편 의성군은 귀농귀촌인 정착을 위한 농림부 시범사업인 의성군 활기찬 농촌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의성지역에 자두마을과 고운마을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바 있으며, 이번에 의성 레이크뷰빌리지 역시 개천지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이에 레이크뷰빌리지 입주민들에게는 단촌면 활기찬 농촌 프로젝트 임대주택 입주 신청 자격이 부여되고 조합원 신청 자격도 주어진다. 민들레코하우징은 공동체 주거단지 계획 및 컨설팅을 담당하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의성 레이크뷰빌리지 공동체 마을에 두꺼비학교를 통한 교육 및 마을 운영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컨설팅을 제공하여 발전적인 공동주택 운영이 가능하도록 도울 예정이다. 관계자는 “의성 레이크뷰빌리지는 지역사회와 더불어 소박한 삶과 보람있는 일터가 있는 새로운 공간이 될 것”이라면서 “입주자들은 사회적 일자리 지원, 교육, 문화, 복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입주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의성 레이크뷰빌리지 네이버 카페 또는 8월 11일, 25일 안계면사무소에서 진행하는 현장설명회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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