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낙담
    2026-06-02
    검색기록 지우기
  • 본업
    2026-06-02
    검색기록 지우기
  • 본점
    2026-06-02
    검색기록 지우기
  • 동참
    2026-06-02
    검색기록 지우기
  • 뱃살
    2026-06-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28
  • [열린세상] 한국은 진급기에 있는 나라/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은 진급기에 있는 나라/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요즘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나라냐’ 혹은 ‘한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 북한 핵 문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백두산마저 징조가 이상하고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우파들이 이렇게 걱정하지만, 우파가 정권을 잡고 있었을 때에는 좌파들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 수십 년째 듣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 경제는 항상 위기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는 꾸준히 발전하고 성장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한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진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국내외 여러 유력 인사가 했던 말이다. 이들은 한국이 크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평화 통일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말한다. 남한 주도로 통일이 된다면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5대 강국이 된단다. 그렇게 된다면 골드만삭스사가 예상한 것처럼 2050년에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잘사는 나라가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찍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을 행해 놓고 자신들은 그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기적일까? 제일 못사는 나라에서 지금처럼 선진국이 된 것이 그것이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겠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약소국 가운데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게다가 한국은 민주화까지 이룬 나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한국의 모습에 대해 근 90년 전에 예언한 분이 있다. 원불교를 세운 소태산 대종사인데 그는 1930년대에 한국의 미래를 어변성룡, 즉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금은 물고기에 불과하지만, 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나날이 발전하는 진급기에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소태산은 한국이 낳은 큰 스승이다. 그의 가르침은 광대무변하다. 그의 원융무애 사상은 원효의 그것에 버금간다. 그래서 큰 교단을 일궈 냈다. 이런 분들은 절대로 허언을 하지 않는다. 그가 한국의 미래를 이렇게 낙관한 것은 깨친 이만이 갖고 있는 통찰력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한국은 어떤 상태였나? 세계 지도에서 나라 이름마저 없어져 버린 피식민 국가 아니었는가? 당시 한국에는 아무 희망이 없었을 것이다. 일제의 지배는 더욱더 공고해지고 독립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식인들은 이런 식이라면 일제의 지배가 100년 이상 갈 것이라고 하면서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태산이 한국에 대해 이러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조차 없는 상황인데 무슨 용이 된다는 것인가 하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용이 되지 않았는가? 아니 진즉에 아시아의 용이 됐다. 그러니 그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소태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정신의 지도국’이자 ‘도덕의 부모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한국이 가장 뛰어난 종교 국가가 된다는 것 아닌가? 이게 가능한 일일까? 한국은 지금 혐오와 거짓만 판치는 사회 같은데 정신적으로 최고의 나라가 된다고 하니 실감이 안 난다. 이것은 현재의 한국이 정신의 중심 나라라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돼야 할 이상을 제시한 것이리라. 한국이 지향해야 하는 국가적 목표는 군사나 경제 강국이 아니라 뛰어난 영성 혹은 문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든 이 예언에 따르면 한국의 앞날은 밝다. 지금은 한국인들이 서로 죽어라 싸우고 있지만 크게 보면 창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만 보고 낙담하지 말자. 여기까지 왔는데 더 발전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또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을 배출한 한국이 퇴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우리가 비하한 서원, 세계인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경탄”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우리가 비하한 서원, 세계인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경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앞장선 박성진 국장이 말하는 ‘서원의 가치’“우리 한국이 서원(書院)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 신청을 했다는 소식에 중국이 많이 아쉬워해요. 서원의 시발지인 중국이 유학 내지 성리학의 종주국을 마치 빼앗긴 것처럼 못내 애석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인정하고 있고, 성리학적 전통이 한국화되어 정착한 독특한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서원 9곳이 한꺼번에 동시에 유네스코에 등재되게 된 것은 우리가 서구문화를 좇으며 소홀히 한 그 가치를 서구인들이 알아보며 깜짝 놀라 합니다. 서원이 변질되면서 훼철이라는 역사의 철퇴를 맞은 적도 있지만 그래도 민족의 혼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입니다.” 7월 3~6일 아제르바이잔서 열리는 총회서 확정朴사무국장, 9년간 무보수로 서원 세계화에 앞장덕수궁 수문장교대식 첫 고증 재연한 문화전문가 지난달14일 한국의 서원이 이코모스에 의해 등재 권고를 통지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서원 등재를 위해 9년 동안 ‘무보수’로 일한 이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소문 끝에 서원에 세계화에 앞장선 박성진(60)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국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난 28일 그를 찾아가면서 혹시 갓 쓰고 도포를 입는 사람이 아닐까 했는데 캐주얼 차림이었다. 박 사무국장은 1994년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 낸 우리 문화 전문가다.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 맞느냐’고 확인하니 그는 수줍은 듯 “먹고 살만합니다. 그 대신, 비상근으로 일하지요.”라며 살짝 웃는다.이코모스 심사평가서에는 대한민국이 등재 신청한 9곳 서원 모두를 등재(Inscribe)할 것을 권고했다. 등재되는 서원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안향)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퇴계 이황)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서애 류성룡)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회재 이언적)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한훤당 김굉필)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일두 정여창)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하서 김인후)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고운 최치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사계 김장생)이다. 이들 서원은 7월 3~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그동안 이코모스의 권고가 거부된 적이 없어 이들 서원은 등재를 예약한 상태다. 이로서 한국은 모두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서원 유네스코 등재에 中 종주국 뺏긴듯 아쉬워해서구인들, 500년 전통 사립 엘리트 교육 명맥 경탄우린 서원 가치 폄훼… 세계인 탁월한 보편 가치 인정” - 실사왔던 이코모스, 반응이 어땠나. “작은 나라 한국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엘리트 양성 사립학교 시설이 있을 수 있었나 하고 놀라워합니다. 조선시대에 서원이 900여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서원에 배향된 선현들에게 끊이지 않고 약 500년간 제향을 어떻게 이어올 수 있었는지에도 경탄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어요. 전국에 서원과 사당이 그처럼 많은 것에도 놀라워하고 있고요. 결국 수많은 외침 속에 민족의 생존을 위해 헌신한 학자나 순절한 충신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전쟁이 나도 지역 유림이 위패를 생명처럼 모시고 피란 갔다가 온 일화들이 많습니다. 근 현대화에 밀려 우리가 서원의 가치를 폄훼했지만 세계인들이 서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왜 9곳?… 국가사적 기준에 역사성·완전성 고려조광조·율곡 이이·남명 조식·황희 정승 서원 빠져‘우린 왜 뺏느냐’ 항의도 …다른 선양 기회있을 것”- 왜 하필 이 9곳 서원인가. “현재 남한에만 672개의 서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원군에 의해 훼철된 서원이 다시 복원된 것이지요. 훼철을 피한 서원 23곳 가운데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한 국가사적이면서 역사성과 완전성 등을 고려해 선택된 것입니다. 6·25 한국전쟁 때 피폭 여부도 고려되었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을 제향하는 산청의 덕천서원이나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시는 파주 자운서원, 조광조 선생을 기리는 용인 심곡서원, 황희 정승을 배향하는 상주 옥동서원이 포함됐더라면 하는 바람이 많습니다. 또 이들 서원으로부터 ‘우리도 같이 신청하지 않고 왜 뺏느냐’는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전체가 인정받은 것이니만큼 다음에 다른 방안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 개성역사유적지구에 있는 정몽주를 제향하는 숭양서원, 율곡을 기리는 황해도 소현서원도 같이 남북이 힘을 합쳐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서원에 대원군에 의해 적폐로 지목됐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설 엘리트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향교가 공공 교육기관이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 파폐(罷弊)되면서 그 역할이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이를 대신한 것이 서원입니다. 사액서원이 되어야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 등을 지원받습니다. 국왕으로부터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받은 것이죠. 성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서원당 10~20명쯤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하였지만 거의 대부분 무료였어요. 그런 만큼 재정이 취약했지요. 사액서원이 되지 않으면 서원 설립자 혹은 그 문중에서 운영비를 모두 조달하였습니다. 서원이 그 설립 정신을 잃고, 당쟁이나 붕당 정치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식 전수와 인격 도야 기관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그런 점을 높이 샀기에 대원군 시절에도 서원이 살아남았습니다.” “서원, 교육 공간 넘어 천인합일 추구한 수양처영남은 산자락… 전라·충청은 들판 시작점 위치서원, 영남에 많은 이유?… 벼슬길 막힌 학풍 탓호남엔 유학보다 의리 실천한 ‘충절 서원’ 많아”- 서원, 지역별 차이가 있나. “서원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천인합일의 경지를 추구한 수양처입니다. 건축물 배치는 전당후묘(前堂後廟·앞에는 교육강당, 뒤에는 사당 설치), 전저후고(前低後高·앞이 낮고 뒤가 높음) 질서를 따르지만 서원마다 독창성도 있지요. 풍광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지만 지역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경상도 서원이 대체로 산자락에 있다면 전락도·충청도 서원은 대개 산자락이 끝나고 들판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합니다. 영남쪽 서원이 많은 게 아니냐고 하는데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것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낸 서원을 선정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서원이 영남 쪽에 많은 것은 조선시대의 지역별 학풍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남 쪽 학자들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거나 빨리 그만두고 낙향해 후진 양성을 많이 한 편이었습니다. 인조반정(1623년) 이후 관직 진출이 막힌 남인들이 벼슬을 못하자 신분유지가 어려워졌습니다. 차선책으로 유학자를 배출하는 것이었지요. 영남 양반에겐 현실적 이해가 걸린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반면 호남엔 유학을 연구하는 서원(77곳)보다 이를 실천하는 사우(108곳)가 더 많았습니다. 의리의 실천에 중점을 두면서 충절인의 비율이 높은 것이 호남 쪽 특징입니다. 그래서 영남은 도학서원, 호남은 충절서원이 많다고들 합니다.” - 서원이 다른 나라에도 있나. “서원은 우리나라와 중국 뿐만 아니라 유사한 유산으로 일본과 베트남에도 있었습니다. 유학 문화권에 있는 것이지요. 중국은 관료시험 등과 같은 정부의 교육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통일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공부하는 과목도 정부 정책에 따라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서원에 가보면 과거시험 합격자의 명단을 새긴 제명비(題名碑)가 좍 늘어서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서원에 들어올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서원은 지방의 지식인 집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성리학을 학습하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선 중국과는 달리 오직 지역 단위의 선현에 제향을 지냈습니다. 일본의 경우 설립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커리큘럼도 서원마다 달랐습니다. 의학과 산학도 가르쳤습니다. 이게 사숙(私塾)입니다. 일본 근대화에 큰 힘을 보탰지만 한국의 서원은 지방 지식인의 구심점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주희가 중건한 중국 장시성 여산(廬山)의 백록동서원은 서원 자체가 아니라 세계자연유산의 일부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서원은 청나라 시대에 관학화되고,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그 맥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 한국으로부터 오히려 배워가고 있는 실정입니다.”박성진 사무국장은 고급스러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재현하며 관광상품화하자는 차원에서 1995년 문화행사 전문기업인 예문관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정조대왕릉 행차, 고종과 명성황후 가례 재연, 고종 황제 즉위식 재연, 과거시험 재현 등을 해마다 하고 있다. 영주선비촌과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운현궁, 남산한옥마을 등을 위탁운영하기도 했다. 10년을 투자해 강원도 영월에 단종의 유적 발굴과 기념관도 만들었다. 또 거의 10년간 준비해 고향인 경북 문경에 박열 의사와 가네코후미코 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2016년 철회 때 연로한 유림 어른신들 낙망中日 서원과 차이 보강해 재도전… 1년반 심사中, 관료 교육… 과거 급제자인 ‘제명비’ 늘어서日, 의학·산학도 가르친 사숙… 근대화 힘보태韓, 서원서 과거준비 못해… 제향 전통 中과 유사”- 유네스코 등재신청을 철회한 적도 있다던데. “3년 전인 2016년 4월 이코모스의 반려 의견에 따라 자진 철회한 적이 있습니다. 연속유산으로서의 논리 등 준비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단순한 지식전수 기관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인성을 도야하는 천인합일적 경관과 한국 성리학 정신의 독특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연로한 유림 어른신들의 기대가 엄청 컸는데, 크게 낙담하셨죠.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유산구역의 재조정,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 등을 보완해서 1년 반 동안 이코모스의 심사를 받았습니다. 재도전한 끝에 따낸 것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생각합니다.” - 어떻게 서원과 인연을 맺었나.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성균관 기획실장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당시 유행하던 사물놀이와 농악차원보다 더 고급스러운 궁중문화를 선보이고자 문화전문법인인 ‘예문관’을 설립해 운영해왔습니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 냈습니다. 성균관 유교교육원 교수, 유교방송본부장도 지냈습니다. 한국서원연합회 상임이사로 일하던 2010년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님께서 ‘우리의 교육전통인 서원 전통을 너무 모른다’며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서원은 한국의 교육전통이고, 교육은 우리 민족의 지적 자산이라는 것이죠. 작년에 등재된 산사 7곳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양 차원으로 추진했던 것이지요.” - 서원하면 엄숙, 근엄이 연상된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 없나. “서원의 학교 기능은 제도 자체가 바뀌어서 이제는 유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향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원마다 소속된 유림이 1년 두 번 향사를, 한 달에 두 번 제향을 올리는 전통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향교나 성균관에서도 이런 전통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제향 행사 한 번에 유림 40여명이 참여합니다. 경주의 옥산서원이나 장성의 필암서원 같은 곳은 지역 유림이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강학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 교육 기능 멈춰… 향사·제향 전통 계속정좌수련, 도인술, 선비체험 등 ‘서원스테이’도청소년에 친근하게 다가설 활성화 방안 고민서원의 오늘날 의미?… 타협과 조화 더욱 요구치열한 공론, 올곧은 선비정신은 되새길 기회”- 서원 활성화 방안은. “사실 그 부분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만 안동 도산서원은 ‘서원스테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간 20만명이 찾고 있습니다. 주로 교사와 공무원, 학생들이 1박2일, 또는 3박4일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영주 소수서원은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하면서 4만명 이상이 교육에 참가하고 있고요. 선현들이 했던 수양방식 따라 정좌 수련과 일종의 신체단련인 도인술도 합니다. 이외에도 비석에 아무 글도 새기지 않은 ‘백비’가 있는 장성의 필암서원도 2만명 이상이 찾습니다.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청렴교육이 됩니다. 그리고 유네스코 등재는 아니지만 일부 서원은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등재 추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사실, 문화재청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유네스코 등재 신청은 해당 지자체가 하게 돼 있습니다. 이번엔 서원이 있는 광역 및 기초 14곳이 균등하게 예산을 출연했습니다. 이 예산은 신청서 쓰고, 사례조사 하고, 연구비 지원하는데 소요됐습니다. 서원 9곳, 작년 산사 7곳 이렇게 하니 유네스코 등록이 쉽게 되는 줄 아는데 절대 그게 아닙니다. 그리고 해당 국가는 1년에 한 건 밖에 신청 못 합니다. 저 큰 서울시가 한양도성, 몽촌토성, 성균관 등을 신청하려 하지만 국내 경쟁도 뚫지 못하고 있지요. 올해 세계유산 등재 후보 목록은 총 38건이지만 이중 19건만 이코모스 등재 권고를 받았습니다. 절차 하나하나가 다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오래된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변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도덕은커녕 가치관마저 극도로 혼란해합니다. 쏟아지는 정보와 가짜 뉴스 속에 우리 사회 구성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국민이 계층으로, 이념으로 사분오열되고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타협과 조화가 더욱 요구됩니다. 진지한 토론의 과정을 거쳐 공론을 도출한 서원을 역할을 한번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치열한 논쟁을 통한 공론의 장, 공익을 위해 과감하게 결단하거나 자신을 희생했던 올곧은 선비 양심, 교육입국이 살길이라고 가르치던 서원의 역할은 앞으로도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공항 화장실 바닥에 버려진 뒤 33년 만에 친부모 찾았는데

    공항 화장실 바닥에 버려진 뒤 33년 만에 친부모 찾았는데

    세상에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영국 런던 개트윅 공항의 여자 화장실 바닥에 담요로 싸인 채로 버려졌다. 처음 발견한 이는 면세점 판매원이었다. 손을 씻으러 갔다가 처음엔 카페트가 겹쳐진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파란색과 흰색 체크무늬가 새겨진 담요 안에 사내 아이가 배부른 듯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안내 방송을 수 없이 했지만 아무도 아기 부모라고 나서지 않았다. 1986년 런던 도심에서 48㎞ 정도 떨어진 개트윅 공항에서 일어난 일이다. 공항 직원들은 곰 마스코트의 이름을 따 아이 이름을 개리 개트윅이라고 지었다. 나중에 위탁 요양을 받다가 입양됐고 그 뒤 스티브 하이즈란 이름으로 개명했다. 양부모는 아주 좋은 분들이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조경 관리사로 일하며 자녀를 둘이나 둔 어엿한 가장이 됐다. 2004년부터 자신이 공항 화장실에서 발견된 뒤 며칠 동안의 신문 기사를 오리는 등 친부모를 찾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일간 USA 투데이가 영국 일간 가디언의 보도를 토대로 재구성한 그의 뿌리 찾기 과정은 눈물 겨울 정도다. 공항 공보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돌본 모든 사람들을 만나봤다. 젖을 먹였던 여자 경관, 차값을 아껴 모아 새 옷을 사서 입혔던 공항 직원들, 그리고 자신을 발견한 면세점 판매원까지 만났는데 모두 감명 깊은 얘기를 들려줬다. 그 다음 경찰서로 달려가 사건 기록을 찾았는데 이미 보존 기한이 지나 파기돼 있었다. 해서 2010년부터 타블로이드 신문에 자신의 사연을 담은 광고를 게재하고 친어머니가 연락을 취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답이 없었다. 그렇게 낙담하다 과학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유전학적 연구 끝에 마침내 성공했다. 처음 친부모를 찾겠다고 나선 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이달 초 페이스북에 마침내 성공했다고 털어놓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자신이 왜 공항 화장실 찬 바닥에 버려져야 했는지 이유를 속시원히 들을 수 없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놓았다. 친부는 물론, 친부모 가운데 한 쪽과 피가 섞인 형제들과도 연락이 닿았는데 그들은 하이즈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이즈는 USA 투데이 인터뷰를 통해 “불행하게도 이 순간 나와 내가 태어난 가정에 대해 새롭게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고 씁쓸해 했다. 다만 그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이 순간 오랜 세월 날 도운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노무현 서거 10주기] ‘바보 노무현’ 평생의 꿈… 허물어지는 지역구도, 망언 정치는 여전

    [노무현 서거 10주기] ‘바보 노무현’ 평생의 꿈… 허물어지는 지역구도, 망언 정치는 여전

    종로 버리고 부산에서 출마 세 번 낙선 “정치인이 바보처럼 살면 나라 잘될 것” 대통령 땐 한나라당에 대연정 제안까지 김부겸 대구 당선 ‘묻지마 투표’에 종언 퇴행 정치인 선거로 퇴출이 과제로 남아“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 하는 것이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고 간곡하게 용서를 청했다. 반쪽 정권을 극복하려면 여당이 꼭 전국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왈칵 눈물이 났다. 찔끔이 아니고 펑펑 쏟아졌다.”(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1999년 2월 9일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지 반년, 총선을 1년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당시 노무현 의원은 16대 총선에 부산에서 출마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듬해 4월 부산 북강서을 선거구에서 노무현 후보는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큰 표 차로 졌다. 정치를 시작한 이후 여섯 번 중 네 번을 떨어졌고 부산에서만 세 번째 졌다. “안 되는구나”라고 낙담했지만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가서 떨어진 미련한 그를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으로 불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나는 바보가 아니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볼 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임기간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온 힘을 쏟았고 급기야 2005년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정치연합에게 내각 구성권한을 이양한다는 ‘대연정’ 구상까지 던졌다. 지역구도를 두고는 우리 정치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바보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지역주의의 공고한 벽은 많이 낮아졌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선을 할 만큼 기반이 탄탄했던 경기 군포를 버리고 2012년 ‘보수의 아성’ 대구로 내려갔다. 국회의원과 대구시장 선거에서 두 번 떨어졌지만 결국 2016년 4·13 총선에서 대구에 깃발을 꽂았다. 노 전 대통령조차 넘어서지 못했던 부산도 4·13 총선에서 민주당에 5석을 허락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오거돈 민주당 후보가 민주당 계열 후보로는 23년 만에 시장에 당선됐다. 부산시 의원 47명 중 41명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부산 기초단체장 16명 가운데 13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경남지사(김경수)와 울산시장(송철호)까지 민주당이 부·울·경을 석권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구미에서는 민주당 소속 장세용 후보가 대구·경북(TK)에서 유일하게 기초단체장으로 당선됐다. 민주당 계열이 TK에서 기초단체장 당선자를 낸 것은 20년 만이다. 그렇다고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던 지역구도가 허물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역주의 망령은 여전히 떠돌고 있다. 시민의 정치의식은 성숙해졌는데 정치인들이 지역주의에 기대 생명을 이어 가려는 행태도 눈에 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이 ‘5·18 망언’ 파문 이후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며 쟁점화를 시도하거나 황교안 대표가 5·18 39주년 기념식에 굳이 광주행을 강행한 것과 관련, 지역주의를 부추겨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다가올 총선에서 지역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려면 유권자가 눈을 부릅뜨고 퇴행적 정치인을 걸러내야 한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정당별 최종 비례대표 의석을 권역별 득표율 기준으로 배분하는 선거제 개혁안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서 결실을 맺어야 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종합] 서정희 딸 서동주, 어렵다는 변호사 시험 합격 소감

    [종합] 서정희 딸 서동주, 어렵다는 변호사 시험 합격 소감

    서동주가 미국 변호사 시험(Bar exam)에 합격했다. 서세원, 서정희 딸 서동주가 21일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로스쿨을 졸업 후 지난해 7월 변호사 자격시험을 치른 서동주는 세계적인 법률 회사인 ‘퍼킨스 코이(PERKINS COIE)’에서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정직원으로 취직해 변호사 시험을 준비해왔다. 그는 TV 조선 ‘꿈꾸는 사람들이 떠난 도시-라라랜드’를 통해 현지 로펌 생활을 공개하기도 했다. 서동주가 합격한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전역을 통틀어 변호사 시험 난이도 상위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그의 법률 전문분야는 상표등록과 저작권(Trademark & Copyright)으로 주로 대기업 사내 변호사로 진출한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끈기있게 도전하는 일이 더욱 즐거운 것 같다. 거의 마흔에도 도전하는 저를 보고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편 서동주는 지난 2015년 합의 이혼한 서세원과 서정희의 장녀로 2018년 TV조선 ‘꿈꾸는 사람들이 떠난 도시-라라랜드’에 출연한 바 있다. 다음은 서동주 변호사 합격 소감 전문 Grit...뭐든지 두번, 안되면 세번, 그리고 또 한번. 나는 뭐든 한번에 얻은 적이 없다. 대학 입학 때도 원하는 학교를 다 떨어져서 웰슬리 대학을 갔다가 나중에 MIT로 편입을 하였다. 편입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가을 학기에 편입 원서를 냈는데 떨어져서 봄 학기에 다시 원서를 냈었다. 학교 규정상 봄 학기에는 아예 외국인 학생의 원서 자체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원서를 내놓고 학교 입학 관리 본부에 찾아가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원서 내는 것만 허락해달라고 빌었다. 당시 나는 웰슬리 대학 순수미술 전공이었는데 모든 수학과 과학 과목들은 자매학교인 MIT에서 듣고 있었다. 잠도 안자고 놀지도 않고 공부만 한 덕에 모든 수업에서 A학점을 받았고 미술 전공인 내가 공대생인 MIT 학생들을 제치고 수업에서 늘 1등을 하였다. 당신들 학교 학생들보다 수학도 과학도 잘하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를 뽑아주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학교 규정인지 한 번 더 생각해달라고 편지도 여러번 썼다. 결국 MIT는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봄학기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편입을 허락했다. 편입이 결정된 날, 입학 관리 본부에서 직접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 [대니엘, 너 정말 집요하다. 붙었으니까 이제 찾아오지도 말고 편지도 쓰지마!] 이젠 좀 쉽게 가나 했건만, 졸업 후에 여러 대학원에 원서를 내었는데 또 다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나는 졸업 후 1년라는 시간동안 알고 지내던 교수님 밑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연구에 몰두해야만 했다. 되는 일이 없어 우울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 교수님의 적극 추천으로 다시 원서를 내었을 때는 다행히 두 세군데가 되어 그 중 마케팅 박사 과정으로 가장 좋다는 와튼 스쿨에 입학하게 되었다. 와튼 스쿨에 가서 좀 인생이 풀리려나 했는데 그 곳의 연구나 환경이 잘 맞지 않아 줄을 제대로 타지 못해 왕따처럼 1년을 눈칫밥 제대로 먹으며 고생하다 석사만 받고 졸업을 하였다. 마침 그 때 선을 본 사람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좀 순탄해지나 싶었다. 그런데 나는 후에 이혼이란 것을 하게 되어 또 한번의 큰 실패를 겪어야만 했다. 법대를 다니면서 인턴쉽을 구할때도 기본으로 60군데는 지원해야지만 겨우 손 꼽을 만큼의 회사들에서 연락이 왔다. 불합격 소식을 듣는 일이 얼마나 흔했는지 나중엔 상처조차 되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입사한 지금의 로펌에서도 내가 직장 상사와 자서 붙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도는 바람에 실력을 증명하려고 기 한번 못피고 쭈그리처럼 일만 해야했다. 하다 못해 정식으로 변호사가 되려면 통과해야하는 캘리포니아 바 시험도 처음엔 떨어져서 다시 봐야했다. 오피스에 1년차 변호사들이 총 6명인데 그 중 나와 다른 한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첫 시도에 이미 통과를 했기에 나는 몇 개월이나 눈치보며 기죽은 채로 일을 다녀야했다. 아무리 내가 하는 일의 성과가 좋아도 아직 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은근히 무시하는 눈길이 느껴졌다. 거기에 내 자격지심이 더해져 자신감이 말라붙어 매일 괴로웠다. 두번째 바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과정도 참 힘이 들었다. 대학교 때는 머리가 슝슝 돌아가니 뭐든 한 두번만 봐도 다 외워지고 이해가 되었었는데 이제는 10번을 보고 20번을 봐도 자꾸 까먹으니 혼자 영화 메멘토라도 찍는 기분이 들었다. 농담이 아니고 그 영화 주인공처럼 온 몸에 문신을 한다 한들 기억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일 끝나고 집에와서 공부만하고 주말에도 매일 12시간 이상 공부만 하니 우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미칠 것 같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도 불안한 마음에 한 시간 이상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의 고군분투를 한 끝에 시험을 보러갔는데 타이머를 잘못 맞추는 바람에 남은 시간을 잘못 계산하게 되어 시험을 보다가 인생 최악의 패닉이 왔다. 심장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헉헉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는 새 눈물로 두 볼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석고상처럼 뻗뻗하게 굳은 채 30분이나 되는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말았다. 내가 고생한게 몇 개월인데 이렇게 무너지나 싶었다. 시험을 끝내봤자 떨어질게 뻔한 듯 보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래도 마무리는 짓자. 질 것 같아서 포기하는 치사한 사람만은 되지 말자.] 첫 날 시험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 세 시간동안 갓난 아이처럼 통곡하며 울었다. 정말 서러워도 서러워도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세 시간을 울고나니 조금은 진정이 되어 다음 날을 준비하였다. 다음 날은 그나마 패닉없이 마무리 지었지만 첫 날의 실수가 치명적이라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옥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기도해보니 느낌이 어때? 하나님이 이번엔 나 붙여주실 것 같아?]하고 하도 매일 물어보니 엄마가 황당해했다. [기도를 니가 해야지 엄마만 시키면 어떡하니?] [난 날라리 교인이니까 열심히 믿는 엄마가 해야 소용이 있지...] 희망고문과 절망고문을 동시에 당하는 기분으로 몇 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을 때엔 술을 마시고 확인을 해야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멘탈이 약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맨정신으로 결과를 확인하였다. [합격!!!] 해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시험을 망쳤음에도 꾸역꾸역 마무리 짓고 나온 그 날의 내가 좋았다. 남들이 다 안될거라고 비웃을 때에도 쉽지 않은 길을 포기하지 않은 나란 사람이 꽤 마음에 들었다. 법대 선배이자 나의 멘토인 살 토레스가 늘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기억한다. [대니엘, 사람이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grit (그릿)이야. 그릿이 있는 사람은 뭘 해도 어딜 갖다놔도 성공하지만 그릿이 없으면 그 사람은 결국엔 실패하게 되어있단다. 난 네가 그릿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릿은 미국 심리학자인 Angela Lee Duckworth (앤젤라 리 더크워스) 교수가 개념화한 용어로서 성장 (Growth), 회복력 (Resilience), 내재적 동기 (Intrinsic Motivation), 끈기 (Tenacity)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더크워스 교수는 단순히 열정만 가지고 날뛰는 것은 성취를 끌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열정은 끈기와 투지 또는 용기로 밑받침 되어야하고 실패한 뒤에 낙담이 되어도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회복력과 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일에 몇년간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은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나만 뒤처져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지만, 오늘도 그릿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려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뭐라든 나는 그저 나의 길을 가보려 한다. 그러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와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어머나, 이걸 진짜로 핸드폰으로 찍었어?

    [그 책속 이미지] 어머나, 이걸 진짜로 핸드폰으로 찍었어?

    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권혁재 지음/동아시아/432쪽/2만 2000원근사한 해물탕이 나왔다. 싱싱한 새우며 홍합, 조개가 먹음직하다. 눈치 없이 젓가락부터 들이대는 친구에게 면박을 주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 나온다. ‘핸드폰 카메라가 다 그렇지’ 하며 낙담하지 마시길. 친구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고 10~30도 정도에서 비추게 한 뒤 찍어 보자. 멋들어진 새우의 자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이다. 비싼 카메라, 비싼 렌즈를 쓰면 좋은 화질의 사진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술 발달 덕분에 최근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아주 좋아졌다. 조금만 머리를 쓴다면 얼마든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 기자의 사진집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모범 사례를 담았다. 카메라의 수동 기능을 활용해 초점을 정밀하게 맞추고, 셔터속도를 맞춰 보고, 노출과 감도에 신경 쓴다면, 그리고 여기에 자신만의 감성을 더한다면 어떤 사진이 나올 수 있는지 잘 보여 준다. ‘이걸 진짜 핸드폰으로 찍었어?´ 하고 놀랄 만한 사진 298장을 참고하고, 멋진 사진 찍기에 도전해 보자.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민주 “진정성·리더십 돋보여”, 한국 “오만의 폭주 예고”…문 대통령 대담 극과극 평가

    민주 “진정성·리더십 돋보여”, 한국 “오만의 폭주 예고”…문 대통령 대담 극과극 평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한 KBS 특집 대담 프로그램 ‘대통령에게 묻는다’에 대해 여야는 극과극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10일 “진정성과 리더십이 돋보인 문 대통령의 대담은 정부의 국정 비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극찬했다. 이해식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당일 있었던 북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며 “한미 공조는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고 든든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 보탬이나 숨김없이 진솔하고 겸허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며 “국정 전반에 대해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꿰뚫고 있어 한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대통령으로서의 역량과 리더십도 잘 드러냈다”고 밝혔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의 대담을 지켜본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낙담이고 절망”이라며 혹평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대통령의 담화는 앞으로도 경제, 안보 모두에서 망국에 이르는 길을 걷겠다는 오만의 폭주를 예고한 것이자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말했다. 전 대변인은 “그간의 평화 타령을 사죄하고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한 변화된 대북정책을 약속하기는커녕 여전히 대통령은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급급했다”며 “경제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낙제점을 받은 경제 정책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정현 대변인은 “북한문제를 푸는데 최대 과제 중 하나가 남남갈등이라는 점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위해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고 여야 대표회담을 제안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그러나 경제, 일자리 등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인식과 국민들의 체감지수가 많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튤립 짓밟혀..네덜란드 밀려드는 관광객 조절에 골머리

    튤립 짓밟혀..네덜란드 밀려드는 관광객 조절에 골머리

    ‘튤립’과 ‘풍차’, ‘반 고흐’로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가 몇몇 도시에만 쏠리는 관광객의 수를 조절하고자 특단의 조치를 고민하고 있다. 관광객에 추가 세금을 물거나 유명 관광지를 폐쇄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네덜란드가 강력한 관광 억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6일(현지시간) 전했다. 지난해 네덜란드를 찾은 관광객은 1800만여명으로 네덜란드 전체 인구(약 1730만명)를 웃돌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매년 관광객의 수가 늘어나 2030년에는 4200만명이 네덜란드를 방문할 것으로 전망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유명 관광지가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자 관광 정책을 ‘증진’에서 ‘관리’로 선회한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관광에서) ‘더 많은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면서 “방문객의 흐름을 통제하려면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이 드러나 있다. 일부 유명 관광지의 관광위원회는 해당 지역을 개발하되 관광객을 (오지 못하도록) ‘낙담’시키는 정책을 취하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많은 관광객으로 지역 주민들이 불편을 겪거나 오히려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잃은 장소들은 ‘관광세’를 매김으로써 방문자 수를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네덜란드 관광위 대변인은 “수도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몇몇 주요 관광지들은 정말 발 디딜 틈이 없다”면서 “풍차가 많은 ‘히트호른’은 인구가 2500명에 불과하지만 매년 35만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말했다. 히트호른의 주민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는 관광객의 방문을 환영하면서도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들이 제대로 된 관광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주목한다. 실제 보트를 타고 좁은 수로를 따라 도시 곳곳의 풍광을 볼 수 있었던 예전의 방식대로 관광할 수 없는 상황이다. 110만명이 사는 암스테르담은 한 해 동안 17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반 고흐 미술관은 올해 말 미국에서 열리는 대규모 여행박람회에 불참하기로 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방문객 유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국립미술관은 또 방문객 관리 조치로 지난해 12월 미술관 건물 정면에 있는 랜드마크인 ‘아이암스테르담’ 조형물을 철거하기도 했다. 관광객이 현 추세대로 증가하면 네덜란드 기후변화 정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관광위는 2030년 예상대로 42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면 그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7년 대비 49%가량 줄이겠다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내신 좋은 ‘수시파’ 학생부 집중… 내신 불리 ‘정시파’ 수능 올인

    내신 좋은 ‘수시파’ 학생부 집중… 내신 불리 ‘정시파’ 수능 올인

    3월 개학과 함께 “이제 진짜 수험생”이라는 압박감이 채 가시기 전에 치르는 1학기 중간고사 이후엔 자칫 고3의 긴장감이 느슨해지기 쉽다. 그러나 중간고사 이후 전략을 어떻게 세우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대입에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본인이 목표로 하는 대학이나 혹은 자신의 성적에 따라 어떤 전략을 세워야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1학기 중간고사 이후 고3 입시 전략’을 정리했다. 1학기 중간고사가 지난 시점에 내신 등급은 사실상 정해진 것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따라서 수시에 불리한 내신 3등급 이하 학생이라면 내신 중심의 학생부전형 준비에 시간을 빼앗기기보다 수능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6월 4일에는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모의고사가 실시된다. 6월 모의고사는 시·도 교육청이 돌아가며 주관하는 4월 모의고사와 달리 처음으로 재수생과 함께 치르는 시험이다. 따라서 4월 모의고사에 비해 성적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반면 6월 모의고사에서 준비를 철저히 해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남은 수험 기간 자신감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다만 6월 모의고사는 실제 수능과 출제 범위가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자연계열의 경우 수험생들이 다소 어려워하는 기하와 벡터에서 일부 단원이 출제된다. 인문계열도 미적분Ⅰ의 일부 단원이 출제되기 때문에 이후 학습에 따라 충분히 성적이 달라질 수 있다. 과학탐구Ⅱ 과목은 출제 범위가 넓지 않아 6월 모의고사 이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실제 수능에서는 점수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모의고사 성적이 낮게 나왔다거나 생각만큼 점수가 곧바로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표본조사 결과 실제 본수능에서 1등급을 받았던 학생들의 60~70%는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는 2등급 이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면서 “일단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본인의 취약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본 수능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중간고사 이후 대학별 모의논술에 응시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학별 출제 경향, 유형을 미리 파악하고 사전에 감을 잡에 놓으면 수능 이후 논술 준비에 보다 편하게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신이 높지 않은 학생이라면 전략적으로 논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5월 24일 모의 논술을 치르는 연세대의 경우 올해 전체 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고, 논술고사를 수능 전에 실시해 논술의 중요도가 더 커졌다. 6월 모의고사를 치른 이후엔 곧바로 기말고사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수시와 정시 중 어느 곳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 명확하게 정한 뒤 움직이는 ‘선택과 집중’에 들어가야 한다. 우선 내신이 우수해 수시에 지원할 학생이라면 기말고사를 차분히 준비한 뒤 여름방학 기간인 7~8월에는 학생부종합전형 준비를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과 학생부 관리를 해야 한다. 반면 내신이 상대적으로 불리해 정시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여름방학 기간에 부족했던 수능 공부를 최대한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여름방학을 보낸 뒤 학교로 돌아오는 9월은 이른바 ‘정시파’와 ‘수시파’가 학교 안에서 본격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하는 시기다.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수능 준비에 ‘올인’하는 반면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내신에 계속 집중하거나 학생부나 논술 준비 등에 분주해지기 때문이다. 정시파 학생들은 학교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수능에 대비해 학습 패턴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학교 내 자율학습 공간이나 독서실 등 어떤 학습공간에서 주로 공부할 것인지도 정해 두는 편이 좋다. 이 시기에는 수능에서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을 한 개 이상 확실하게 만들어 두는 게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수시파 학생들은 내신과 학생부에 집중하되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대비해 어느 정도는 수능 준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9월에 평가원이 실시하는 모의고사는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본인이 지원하는 대학의 수능 최저학력 기준에 맞출 수 있을지 미리 확인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수능을 한 달 앞둔 10월이 되면 정시파 학생들은 실전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 실전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가능하면 매주 실전 모의고사를 치르며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또 그동안 만들어 왔던 오답 노트를 바탕으로 실수를 최소로 줄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수시파 학생들은 연세대 등 일부 대학이 10월에 논술과 면접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준비 전략을 세워야 한다.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수능에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길섶에서] 정신건강 메시지/박현갑 논설위원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좋은 날”하고 3번 외쳐라. 욕을 먹어도 화내지 말라, 그가 한 욕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잠 잘 때 좋은 기억만 떠올려라, 밤 사이에 행운으로 바뀌어진다. 동네 약국에 내걸린 정신건강 메시지다. 사람 마음을 꿰뚫어보는 심령술사의 주문인 양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라는 육체건강과 달리 현대인의 정신건강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부모나 자녀 문제, 직장 내 인간관계, 경제적 이유 등 현대인의 마음을 괴롭히는 적은 한둘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스트레스가 똬리를 틀고 있다. 자신을 나무라는 사람도 없는데 중년 여성이 갑자기 흘리는 눈물이나, 의학적으론 문제가 없는 데도 아침이면 생기는 입시 준비생의 복통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이를 제때 풀지 못하면 폭음이나 과식, 새벽 잠 깨기 등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게 된다.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나를 괴롭히는 게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니 이처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불만이나 비관, 낙담, 슬픔 등을 떨쳐내기 어렵다면 더 큰 불행을 예방하는 ‘건강백신’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자.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세상,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마음까지 무겁게 할 게 뭐 있나.
  • 코레일·강원도 ‘어게인, 고 이스트’ 캠페인 개최… “여행이 바로 자원봉사”

    코레일·강원도 ‘어게인, 고 이스트’ 캠페인 개최… “여행이 바로 자원봉사”

    코레일과 강원도가 산불 피해 지역 관광객 유치를 위한 캠페인을 열었다. 19일 오전 서울역에서 열린 ‘어게인, 고 이스트’(Again, Go East) 캠페인 참석자들은 ‘여러분의 강원도 관광이 바로 자원봉사입니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관광 독려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손병석 코레일 사장을 비롯한 강원 지자체 및 여행업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강원도 관광홍보대사인 배우 이동욱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손병석 코레일 사장은 “피해 주민에 대한 진정한 위로, 지역 경제의 빠른 복구, 그 길이 강원도 여행에 있다. 국민 여러분의 강원도 여행길을 코레일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말했다. 최문순 도지사는 “가자, 동해안으로” 구호를 선창하고 참석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유도했다. 배우 이동욱은 “산불 피해를 TV로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웠다”며 “강원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이 자리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 지역 주민들이 낙담하고 있을까봐 미안한 마음에 방문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여러분께서 와주시는 게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강원도 방문을 독려했다. 강원도 관련 퀴즈 등 이벤트가 열렸고 오후 12시에 강릉으로 출발하는 KTX 특별 기획상품 투어단 환송회가 이어졌다. 한편 코레일은 강릉행 기차관광 상품으로 속초, 동해 등 피해지역에 특화된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22일부터 강릉에 도착하는 기차여행 상품 구매고객 선착순 2000명은 강릉역 여행센터에서 강원상품권 1만원권을 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 앱 ‘코레일톡’에서 강릉역 도착 승차권을 구입하면 5월 말까지 숙박, 렌터카, 카셰어링 등 최대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달 말까지 강릉선 전 구간 KTX는 30% 할인된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다. 글·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여기는 중국] 하루 16시간 일하는 택배기사, 알고보니 부동산 거부

    평소 고가의 수입산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택배 기사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중국 후베이성(湖北) 우한시(武汉) 외곽에 소재한 대형 별장에 거주하는 커따 씨. 올해 48세의 커 씨는 지난 2013년부터 이 일대에서 평범한 택배 배달원으로 근무해오고 있다. 매일 오전 5시에 집을 나서는 커 씨는 저녁 9시까지 일평균 약 130개의 택배 배달을 담당해오고 있다. 그와 함께 근무하는 동료 택배 배달원들 사이에서도 커 씨의 근무 시간과 배달 양은 가장 많은 것으로 소문나 있다. 커 씨의 직장 동료 엄 씨는 “그는 야간 당직 시간에도 가만히 앉아서 쉬는 법이 없다”면서 “그가 하는 일의 양은 보통의 배달 직원 5명의 할당량과 맞먹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커 씨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허약해진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커 씨는 지난 2016년부터는 중국 최대 명절 기간인 춘제(春节)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료 직원들을 대신해 연휴 기간 동안 일체의 휴가를 반납해왔다. 커 씨는 “동료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모처럼 춘제 기간 동안 부모님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셈”이라면서 “우리 가족은 모두 우한 도심에 거주하고 있고, 아내의 친척들은 춘제 기간 동안 오히려 우한으로 여행을 오는 것을 선호한다. 이 기간 동안 연휴 당직을 자처하는 것은 동료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커 씨의 노고에 택배 업체 측은 지난 2017년 ‘오성 배달원(五星配送员)’이라는 칭호를 수여하기도 했다. ‘오성배달원’은 매년 택배 업체가 고객 만족 점수 및 동료 직원들의 점수를 합산해 최고의 배달원에게 수여하는 상장이다. 하지만 일평균 16시간 이상 근무하는 커 씨가 알고보니 10채의 별장과 아파트 등 부동산을 소유한 부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이목은 더욱 집중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커 씨는 평소 이른 아침 출근 길에 본인 명의의 캐딜락을 타고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소유인 캐딜락은 고가의 미국산 대형 자동차로 중국 현지에서 구입할 경우 70만 위안(약 1억 200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이는 현지에 소재한 중대형 아파트 1채 가격과 유사한 수준이다. 더욱이 커 씨가 소유한 고가의 수입 자동차는 총 4대로, 가장 고가의 제품은 그의 아들이 평소 이용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커 씨와 그의 가조들은 현재 우한시 외곽에 소재한 대형 별장에 거주, 그 외의 10여 채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임대를 한 상황이다. 하루 평균 100개를 훌쩍 넘는 택배 물량을 소화하는 등 고단한 업무에 매진해왔던 커 씨가 사실상 이 일대에서 내노라 하는 부호라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그의 과거에도 관심이 집중된 것. 알려진 바에 따르면, 커 씨는 공무원 시험 응시부터 중대형 규모의 업체 사장까지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한 인물로 전해졌다. 커 씨가 가장 처음 경제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가 대학 시절 교내 복사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 시작됐다. 당시 그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 학비 및 생활비 등 일체의 비용을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 졸업 이후 그가 선택한 첫 번째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그의 고향에서 치러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 안정적인 생활을 꿈꿨던 커 씨는 당시로는 지나치게 낮은 연봉에 낙담하고 곧장 대도시에 소재한 대기업에 취업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2001년 무렵, 중국에 분 영어 학습 열풍에 따라 그는 우한 시내에 국내 첫 영어 학습기 전문 대리점을 열었다. 당시에는 저장성 내에 약 80여 곳의 대리점을 커 씨가 직접 운영했다. 또, 2005년 무렵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대리점을 후베이성(湖北) 일대에 개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2011년 무렵 중국 전역에 불어 닥친 온라인 유통 업체의 등장으로 커 씨의 대리점 사업도 사향길에 접어들었다. 커 씨는 “컴퓨터와 휴대폰 등 상품을 문의하고 구매하는 고객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당시 건강 상태도 최악이었다”면서 “가게에 고용됐던 많은 직원들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회상했다. 이 시기 커 씨의 건강도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는 “사업이 사향길에 접어든 이후 줄곧 건강 상태가 악화됐다”면서 “당시에는 계단으로 걸어서 2층 건물을 올라가는 것도 힘겨울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생수가 들어 있는 박스를 들고 8층 건물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난 2012~2013년 당시 100kg에 육박했던 몸무게는 60kg를 넘는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면서 “택배 기사로 새 삶을 시작하겠다는 결정에 대해 아내와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지만,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아내와 가족들 역시 올해로 약 7년째 택배 업무를 담당하는 것에 놀란다”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해가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택배 업무의 매력에 빠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월드피플+] 아이 도우려 먹지도 않는 무를 10만㎏이나 산 남성

    [월드피플+] 아이 도우려 먹지도 않는 무를 10만㎏이나 산 남성

    중국 랴오닝성 다롄(大连)에 거주하는 한 남성이 10만㎏의 ‘무’를 대량으로 사들인 뒤 곧장 인근 양로원 기증한 사실이 화제다. 더욱이 이렇게 많은 무를 구매해 기증한 사유가 부지불식 3세 아동의 수술 비용 마련을 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목이 쏠렸다. 현지언론 다련르바오(大连日报)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3일 산둥성 지난(济南)에 거주하는 남성 당샤오룽씨는 그의 외동아들(3)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지갑 하나를 발견했다. 당씨가 주운 지갑에는 현금 2만위안(약 340만원)과 신용카드 등이 들어 있었다. 당시 당씨는 아들의 수술 비용이 턱없이 부족했던 상황. 당씨는 ‘하늘이 내린 기회’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곧장 마음을 다잡고, 지갑에 있던 연락처를 통해 주인에게 지갑을 돌려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갑을 잃어버린 뒤 낙담해 있었던 지갑 주인 정이륭씨는 당씨의 연락을 받은 뒤 무사히 지갑을 돌려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정씨는 지갑 안에 들어 있었던 현금 뭉치와 신용카드 등이 변함없이 들어 있었다는 점에서 당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현금 사례를 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씨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며 정씨의 사례금을 한사코 마다했다고 현지언론은 전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지갑을 돌려받은 정씨는 당씨에게 3세 아들이 있으며, 그가 이른바 ‘비대 유문협착증’으로 불리는 질환으로 수술이 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전해 듣게 됐다. 더욱이 당시 당씨의 아들은 6개월 동안 무려 7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으나, 추가 수술이 급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씨에게는 아들을 위한 수술 비용 20만위안(약 3400만원)이 없었고, 때문에 추가 수술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지갑 주인 정씨는 당씨 부자를 돕고자 했으나, 그 역시 20만위안이라는 거금을 단기간에 마련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다만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정씨에게는 자신이 직접 기르고 생산한 무 20만㎏이 냉장고 저장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곧장 당씨 부자에게 연락을 취한 지갑 주인 정씨는 전량의 무를 기증, 이를 재판매하는 방식 등으로 그의 아들 수술을 하루 빨리 진행하도록 도왔다. 이 소식은 곧장 현지언론 등을 통해 일반에 알려졌다. 하지만 정씨의 선행에도 불구, 기증받은 무를 판매할 적당한 판매처를 찾지 못했던 당씨 부자는 여전히 수술 일정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출장 중 기내에서 제공되는 무료 신문을 통해 당씨 부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다롄 출신의 한 남성이 등장, 대량의 ‘무’는 수술 비용을 위한 ‘현금화’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갑 주인 정씨와 당씨의 사연이 현지언론을 통해 공개될 시기에 비행기를 타고 산둥성 지난시 일대로 출장 중이었던 남성 주씨(다롄 거주)는 큰 감동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이른바 ‘주 사장’으로 불리는 이 남성은 다롄에서 중대형기업을 운영 중이었던 기업가로 확인됐다. 주씨는 곧장 자신이 소유한 회사 명의로 10만㎏의 무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당시 그가 10만㎏ 무의 구매 대금으로 지급한 현금은 약 30만위안(약 5100만원)에 달한다. 주씨는 소식을 접한 이튿날 오전 직접 당씨의 아들이 입원해 있는 산둥성 소재 ‘천불산병원’ 소아 병동을 찾아 현금 30만위안을 전달했다. 당시 주씨는 당씨와 그의 아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이의 후속 치료 비용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기부할 것”이라면서 “이후 완치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회사 임원진 회의와 직원 성금 모금 등 다양한 방식을 강구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씨는 주씨에게 받은 대금 중 20만위안으로 이달 2일 아들의 수술을 무사히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이후 다롄에 거주하는 주씨는 자신이 소유한 회사 명목으로 구입한 무 10만㎏을 곧장 인근 양로원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한편, 이번 사례는 유력 언론들이 ‘생명을 살린 무’라는 제목으로 앞다퉈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수술 비용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주운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준 당씨의 선행과 지갑 주인 정씨, 다롄 거주 주씨 등 세 명의 남성의 선행이 선순환하고 있다는 점이 화제다. 당씨는 이 같은 주목에 대해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갑을 주웠고, 지갑 안에 들어있던 현금 뭉치를 보는 순간 유혹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아이의 수술 비용이 절박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순간에 이 돈이 누군가에게 나처럼 절박한 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다리 쩍 벌린 여성 “나 똑바로 앉은 거야” 파키스탄 논란

    다리 쩍 벌린 여성 “나 똑바로 앉은 거야” 파키스탄 논란

    국제 여성의 날 행진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쩍벌녀’ 플래카드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파키스탄 남성들을 격분시키고 있다고 영국 BBC가 6일 전했다. 올해 스물둘의 여대생 루미사 라카니와 라시다 샤비르 후사인은 카라치에 있는 하비브 대학에서 행진에 들고 나갈 포스터를 어떻게 그릴까 고민하다 한 친구가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저거다 싶었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루미사는 여자가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가 늘 문제였다고 털어놓았다. “얌전하게 굴어야 하고 몸의 골격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하는 반면, 남자들은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그녀는 부러 쩍벌녀가 선글래스를 낀 채 오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게 그렸다. 사회개발과 정책을 전공하는 라시다는 “여성들은 늘 어떻게 앉고 걸으며 얘기해야 하는지 얘기를 듣는다”며 “이봐요들, 나 똑바로 앉은 거야”라고 도전적인 문구를 적었다. 루미사는 매일 시집이나 가라는 가족의 성화에 맞서 싸운다. 결혼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개인적인 승리”라고 말할 정도. 라시다는 줄곧 거리에 나서면 희롱을 당한다. 그녀 역시 결혼하란 성화를 들으며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지난달 파키스탄 전역에서 진행된 우르두 말로 여성을 뜻하는 아우랏(Aurat) 행진에 참여하는 여성들 가운데 돋보이는 주장을 내보이고 싶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149개국 가운데 젠더 평등 지수가 예멘 다음으로 가장 나쁜 나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은 물론, 강제 결혼, 성희롱에다 명예살인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예상했던 대로 반응이 뜨거웠다. “우리 딸들에게 이런 사회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란 댓글이 있는가 하면 “나도 여자지만 이런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슬람 사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는가 하면 “여성의 날이지 계집애들의 날이 아니다”란 반응도 나왔다. 물론 지지하는 여성들도 많다. “파키스탄 여성들이 겪는 예속에 역겨워해야 할 사람들이 포스터에 등장한 몇몇 문구들 때문에 놀라는지 진정 이해가 되지 않는다.”루미사를 개인적으로 아는 이들은 “너처럼 좋은 집안 출신 아이가 이런다니 믿기지 않는구나”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친척 중 몇몇은 루미사의 부모들에게 앞으로는 딸을 어떤 시위에도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부모들은 개의치 않고 딸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포스터 중에는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같은 자극적인 문구도 있었는데 만주르 아흐메드 멩갈 박사는 온라인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네 몸이니까 네 마음대로라면, 남자도 내 몸 내 마음대로다. 그래서 오르고 싶은 누군가의 몸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간을 암시하는 표현 때문에 여성들의 공격을 불러왔지만, 살해나 강간 위협은 일상 다반사다. 정작 더 문제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는 것이다. 루미사는 “여자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된다고 꾸짖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내 친구조차 포스터가 불필요한 반발을 일으킨다고 꾸짖었다”고 털어놓았다. 저명 페미니스트 키시와르 나히드도 둘의 플래카드가 전통 가치관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며 나아가 지하디스트의 공격을 유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간 돈의 사디아 카트리 칼럼니스트는 키시와르의 지적이 페미니스트들을 오히려 낙담하게 만든다고 반박했다. 이 정도 “점잖지 못한” 표현도 포용하지 못하면 페미니스트 진영이 앞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美원폭에 日 항복했지만… 광복 직전 ‘독립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美원폭에 日 항복했지만… 광복 직전 ‘독립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일본은 오늘 정오를 기해 미국에 항복한다.”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1901~1989)가 떨리는 목소리로 종전을 선언했다. 광복을 기뻐하는 국민의 만세 소리가 거리에 가득했다. 그러나 이날 저녁 중국군으로부터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들은 김구(1876~1949)는 크게 낙담했다. 그는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의 항복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일본 항복 받아낸 미국의 ‘리틀보이’ 이날 히로히토가 발표한 종전 방송은 “짐은 제국정부(일본)로 하여금 미·영·소·중 4국에 대해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하게 했다”로 시작한다. 히로히토가 말한 ‘공동선언’이란 1945년 7월 26일 발표한 독일 포츠담 선언을 가리킨다. 연합군이 일본에 항복을 권고한 이 선언에는 전후 일본 처리 문제 등이 담겼다.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이미 연합군에 항복했다. 포츠담 선언 당시 일본은 혼자서 연합군과 싸우고 있었다. 사실상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결국 미국은 일본 도심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코드명 ‘리틀보이’가, 9일 나가사키에 ‘팻맨’이 투하됐다. 10일 일본은 스위스에 있던 국제연맹(유엔의 전신) 본부에 포츠담 선언 수락 의사를 전달했다. 일본이 항복한 직접적 이유는 원자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히로히토가 발표한 종전 방송에도 “적국은 잔학한 원자폭탄을 사용해 수많은 국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그 참상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더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하고 인류의 문명까지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짐작할 만한 구절이다. 민중운동가 함석헌(1901~1989)은 원자폭탄 투하 뒤 찾아온 광복에 대해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고 했다. 그만큼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뉴라이트’ 계열의 일부 학자는 “우리의 광복은 미국의 원자탄 두 발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는 미국의 폭탄이 없었다면 나라를 되찾지 못했을까. ●독립단체 “광복 위한 결정적 시기 온다” 확신 1930년대 후반부터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은 일제가 패망하고 한국이 독립하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며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이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상대로 국외 무장운동 세력과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격하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폭동과 무장봉기에 나서면 충분히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1908~ 1932)의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뒤 중국 각지를 떠돌다가 1940년 충칭에 터를 잡았다. 김구는 이때부터 한국광복군을 훈련시키며 국내에 진입할 준비를 했다. 광복군은 지청천(1888~1957)을 총사령관으로 1940년 9월 결성된 임정 최초의 정규군이다. 초기에는 장교 30여명으로 이뤄진 ‘사병 없는 부대’였다. 1942년 김원봉(1898~1958)이 조선의용대 300여명을 이끌고 합류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광복군은 1945년 4월쯤 340여명, 같은 해 8월 700여명 정도였다. 아무리 많아도 1000명을 넘지는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은 군속을 포함해 최대 750만명으로 추산된다. 임정이 일대일로 맞붙어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일부 언론에서 “원자탄이 없었어도 김원봉 등 걸출한 혁명가들이 일본을 몰아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우리의 역량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 연구위원은 “광복군의 규모와 전투 능력을 아무리 높게 쳐도 일본을 몰아내기는 어려웠다. 광복군은 그저 항일투쟁의 상징적 존재였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일본군 750만… “광복군이 몰아내긴 힘들어” 그렇다고 임정이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체념에만 빠져 있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 지위를 확보해 우리 스스로 독립을 얻어내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44년에는 버마(현 미얀마) 임팔전투에 참가해 1945년 7월 일본군이 패배해 철수할 때까지 영국군을 도왔다. 1945년 8월 중국에 있던 미국 정보기구 육군정보전략본부(OSS)에서 광복군 38명이 특수요원 훈련을 마치고 국내 잠입을 기다렸다. 미군과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도 추진했다. 역사소설 전문 이원규(72) 작가는 “일본이 일주일만 늦게 항복해 광복군이 한반도에서 독립전쟁을 수행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전후 일본 처리 문제를 두고 국제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장제스(1887~1975) 중국 국민당정부 총통은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1874~1965) 영국 총리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국의 독립을 명문화했다. 김구 등 임정 수뇌부의 간절한 청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애초 한국은 카이로 회담의 논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장제스가 예외 조항까지 만들어 우리를 도왔다. 독립을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인도의 독립운동가로 훗날 총리가 되는 자와할랄 네루(1889~1964)는 한국을 “아시아 식민지 국가 가운데 열강에게 독립을 보장받은 유일한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장 연구위원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어도 일본은 소련의 참전 등으로 결국은 패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당시 한반도는 (임정의 다각적 노력 등이 맞물려) 광복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국 덕에 해방? 독립노력 폄하해선 안돼” 일부 학자들은 “연합국이 해방을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일제를 이길 힘이 없었고 국제사회도 임정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제패를 꿈꾸며 전 세계로 세를 넓혀 가던 강대국 일본을 우리 혼자 막지 못했다고 해서 독립을 위한 선조들의 노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연합국이 임정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은 일본이 항복한 뒤 전리품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한시준(65)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오래 그리고 치열하게 일제와 싸웠다. 대한민국은 임정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 세력의 길고 긴 투쟁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복 이후 우리를 기다린 것은 ‘한반도 분단’이었다. 당시 소련은 8월 9일 일본에 선전포고한 뒤 거침없이 한반도로 진격했다. 당시 미군은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어 한반도로 바로 들어오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은 소련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에 나눠 들어오자”고 제안했다. 당시 임시로 친 철조망이 지금까지도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놨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우리가 좀더 주도적으로 독립을 얻어냈다면 해방 이후 한반도 분단과 전쟁, 이념 갈등 등은 없었을 수도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톰 소여의 페인트칠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톰 소여의 페인트칠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 톰은 밤늦도록 놀다가 창문을 통해 몰래 방으로 기어들어 가던 중 폴리 이모에게 딱 걸린다. 다음날은 휴일인 토요일. 화창한 휴일 톰은 높이 3미터에 길이 30미터나 되는 담장에 페인트칠을 하는 벌을 받는다. 한숨을 길게 내쉰 톰은 붓을 페인트통에 담갔다가 꺼내 담장에 칠한다. 한참을 칠한 다음, 방금 칠한 부분과 앞으로 새로 칠해야 할 대륙처럼 광활한 나머지 부분을 비교한다. 산다는 것이 괴롭고 팍팍하기만 하다. 톰이 낙담하고 있을 때, 멀리서 벤 로저스가 사과를 맛있게 먹으면서 온다. 저만치서 벤이 톰을 보고 놀린다. “야! 너 정말 딱하게 됐구나!” 그러나 톰은 시침 뚝 떼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마치 화가처럼, 칠한 부분을 살펴보면서 세심하게 덧칠을 한다. 벤이 톰 옆으로 가까이 온다. 톰은 벤의 사과가 먹고 싶어 입에 침이 고였지만 꾹 참고 일에 몰두하는 척한다. 벤이 말한다. “저런, 너 지금 일해야 하는 거야?” 그제야 톰은 고개를 휙 돌리며 대꾸한다. “야, 벤이로구나! 네가 오는 걸 못 봤어.” “어때? 지금 헤엄치러 가는 중인데 함께 가고 싶지 않니? 하지만 너는 일을 해야겠지?” 톰은 잠시 벤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한다. “일이라니? 뭐가?” 벤은 “그럼 이게 일이 아니고 뭐야?”라고 대꾸한다. 톰은 다시 칠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한다. “아이들에게 담장에 페인트칠할 흥미로운 기회가 날마다 있는 줄 아니?” 톰은 화가처럼 잔뜩 멋을 부려 가며 몇 발짝 뒤로 물러서 칠한 것을 지긋이 바라보고 다시 덧칠을 한다. 벤이 사과를 베어 먹던 동작을 멈춘다. 부럽다. 자기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진다. “톰 나도 좀 해 보자.” “안 돼!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아이는 아마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할걸.” “정말이니? 한번만 하게 해 줘. 이 사과 몽땅 다 줄게.” 톰은 못 이기는 척 붓을 넘겨준다. 벤이 뙤약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칠하는 동안, 톰은 그늘에 걸터앉아 맛있게 사과를 먹는다. ‘호지자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 공자 말씀이다. 즐기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뜻. 벤처럼 즐기며 일하는 삶이 최고 아닐까.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 정준영 “팬티 아직 안 젖었잖아” 29금 발언

    정준영 “팬티 아직 안 젖었잖아” 29금 발언

    정준영 용준형 과거 발언까지 화제다. 11일 승리가 성접대 의혹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 가운데 정준영을 중심으로 불거진 몰카 공유 연예인에 용준형까지 이름을 올리며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준영과 용준형이 지난 방송에서 19금 발언을 한 사실이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 2015년 방송된 SBS ‘정글의 법칙 in 사모아’편에는 정준영과 용준형이 함께 출연했다. 바다 탐사를 나갔지만 큰 수확 없이 낙담을 하고 있던 윤두준은 “바람만 안 불면 돼 지금은”이라 입을 열었다. 이에 정준영은 “팬티 아직 안 젖었잖아”라 말했고 이어 윤두준이 “나 팬티 안 입었어”라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노팬티야?”라는 용준형의 질문에 윤두준은 “레깅스 입었어”라며 “팬티 대신 레깅스”라 변명하였고 이에 용준형은 지지 않고 “팬티가 없는 거니까 노팬티잖아”, “내일 자고 일어났을 때 윤두준 클로즈업해 달라”며 19금 발언을 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한편 SBS ‘8뉴스’는 11일 “정준영이 동료 연예인과 지인들이 있는 카톡방에 불법 촬영한 영상을 여러 차례 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길고 깊은 경기침체에 대비하는 자세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길고 깊은 경기침체에 대비하는 자세

    지난 7일 유럽중앙은행의 드라기 총재는 유럽 경제에 대해 불확실성이 퍼지고 취약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유로 지역의 부정적인 경기 전망을 반영하며 유럽중앙은행은 적어도 2019년 말까지 기준금리를 현 상태로 유지하는 통화정책을 취할 것이라 밝혔고, 금융기관에 저렴한 금리를 제공하는 제3차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시행도 발표했다. 이러한 금리 동결과 추가 경기부양책은 경기 악화를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지난 1월 전미경제학회에서 미국중앙은행 총재인 파웰 현 연준 의장은 버냉키와 옐런, 두 명의 전직 의장과 함께 인터뷰에서 물가가 안정적이라면 금리 인상에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긴축 발작에 대한 공포를 완화시켰는데, 이 발언 역시 그동안 강한 성장세를 보이던 미국 경제의 둔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중국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해 지난해 실질경제성장률 수치인 6.5%보다 낮은 6.0~6.5%를 올해 전망치로 제시하며 경기하강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이마저 과대평가된 것으로 현재 중국 경제가 경험하는 생산성 부진을 고려하면 실제는 더 낮은 성장률이 전망된다는 의견도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경제성장률이 5%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더구나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최근 나온 ‘중국 국민계정에 대한 포렌식 검사’라는 올해 3월 콘퍼런스 보고서에 따르면 이렇게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수치도 과대 보고된 것은 아닌지 신뢰도 문제가 제기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16년 중국의 GDP 성장률은 평균 1.7% 포인트(명목), 2% 포인트(실질) 높게 산출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럽,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경제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우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권역들이 모두 전반적인 침체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다. 미국과 관계가 나쁘거나 경제 여건이 취약한 신흥국 중심이던 2018년의 부정적인 상황이 이제는 경제 규모가 큰 주요 국가를 향하고 있다. 현재의 글로벌 경기 침체는 여러 대표적인 경제권역들이 함께 휘말리고 있어서 생각보다 단기에 끝나지 않는 긴 어려움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가해진 강력한 노동비용 상승의 충격으로 이미 국내 경제주체의 활동성이 떨어져 상태이다. 경직적인 경제 구조에 대한 개혁이 지연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의 재편과 효율적인 자원 재배치가 진행되지 않아 경제의 내부 적응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글로벌 경제 침체라는 외부 위협 요인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경기 회복을 위한 우호적인 외적 환경은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각오로 대비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경기가 회복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론은 버리고, 어려운 현실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베트남 전쟁 포로 생활을 견디고 생환된 후 미국 해군대학 총장을 지낸 스톡데일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어려운 시기를 버텨 낸 이유로 ‘언젠가 그곳을 벗어나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되 지금의 가장 가혹한 현실은 직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그 상황을 이겨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크리스마스 전에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이 되기 전 석방될 것이라고 믿다가 부활절이 지나면 다시 크리스마스 전에 나갈 것이라고 믿었고, 반복되는 낙담 속에 세상을 떠났다’고 회고한 바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국내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경기침체는 길고 험난한 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여름이 되면 나아질 것이다. 하반기에는 좋아진다. 내년에는 개선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낙관주의와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는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반복되는 실망과 좌절만 안겨 줄 뿐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들은 끊임없는 구조개혁과 생산성 향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비용 절감, 비핵심 사업의 정리 등 혹독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 역시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를 경계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해 가기 위해, 경쟁력 있는 신산업이 탄생하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정책과 규제 환경이 필요한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 평창 스노보드 金 클로이 킴 경기 도중 발목 부러져 수술대에

    평창 스노보드 金 클로이 킴 경기 도중 발목 부러져 수술대에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금메달리스트인 클로이 킴(19·미국)이 경기 도중 발목이 부러져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고 AFP통신과 영국 BBC가 전했다. 한국 이름 ‘김선이’인 클로이는 2일(이하 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베일에서 열린 버튼 US오픈 1차시기에서 부상을 입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세 차례 시기를 모두 뛰어 매디 마스트로(미국)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녀는 최근 3년 연속 이 대회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이번에 처음 놓쳤다. 마스트로는 여자로는 처음 ‘크리플러 인디’(더블 백 플립)를 두 차례나 선보이며 84.74를 받아 클로이(84.62)를 0.12점 차로 따돌렸다. 그녀는 다음날 트위터에 “불행하게도 발목이 부러졌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됐다. 해서 이걸 바로잡으려면 수술해야 하게 됐다”고 알렸다. 클로이는 지난달 유타주 파크 시티에서 열린 하프파이프 세계선수권을 처음으로 제패하는 등 평창 대회 이후 네 대회의 예선과 결선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등 최고의 컨디션을 보였던 터라 안타깝게 됐다. 아직 복귀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오는 9일 맘모스에서 열리는 미국 그랑프리 하프파이프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가을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할 예정인 그녀는 쾌활하고 낙천적인 특유의 성격을 반영해 트위터에 “맘모스 대회엔 나가지 못해 낙담하지만 응원하러는 그곳에 갈 것”이라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북미회담 결렬에 문 대통령 오히려 “우리의 역할 더욱 중요해졌다”

    북미회담 결렬에 문 대통령 오히려 “우리의 역할 더욱 중요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2차 북미 정상회담 비핵화 합의 결렬에 낙담하지 않고 한국이 더욱 주도적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많은 고비를 넘어야 확고해질 것”이라며 “2차 북미정상회담도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또 “특히 두 정상 사이에 연락 사무소의 설치까지 논의가 이뤄진 것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성과”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지속적인 대화 의지와 낙관적인 전망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보였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우리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신한반도 체제’ 구상으로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새로운 100년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100년이 될 것”이라며 “‘신한반도 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해 통일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신한반도 체제 구상은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구축해나가겠다는 게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 체제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공동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문 대통령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 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다”며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 간에 ‘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남북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 관계의 정상화와 북일 관계 정상화로 연결되고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평화안보 질서로 확장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신한반도 체제를 언급하며 이날 3·1절 기념사에서 이에 대한 자세한 생각을 밝힐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전날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이날 신한반도 체제 구상을 밝히는 데 다소 수정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강조하는 등 미국과 협의를 전제로 남북 경제협력을 흔들리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문 대통령은 “이제 곧 비무장지대는 국민의 것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그곳에서 평화공원을 만들든, 국제평화기구를 유치하든, 생태평화 관광을 하든, 순례길을 걷든, 자연을 보존하면서도 남북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 공동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