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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대영박물관 파업에 전 홍콩 행정장관 “약탈품 반환하고 폐쇄하라”

    英 대영박물관 파업에 전 홍콩 행정장관 “약탈품 반환하고 폐쇄하라”

    영국에서 1일(현지시간) 12년 만에 최대 규모인 약 5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파업을 진행했다.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에 걸맞는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 이번 파업은 영국 전역으로 번졌고,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대영박물관도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접한 홍콩의 전 행정장관이자 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이하 정협) 부주석인 렁춘잉(梁振英)은 1일 자신의 개인 소셜미디어에 “도둑질로 빼앗은 소장품을 이번 기회에 원래 주인인 각 국가들에게 돌려주고 대영박물관은 영구히 문을 닫으면 될 일이 아니냐”고 반문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국 최대 공무원 노조인 공공상업서비스노조가 임금 상승과 근로조건 개선, 연금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오는 2월 또 한 번의 파업을 예고한 상태에서 이 같은 발언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셈이다. 대영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국립박물관이자 800만 점이 넘는 유물을 보유한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약탈해온 전리품 수장고라는 불명예도 동시에 안고 있다. 특히 프랑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빼앗은 로제타스톤(Roseta Stone)을 영국이 다시 빼앗아 박물관에 옮겨다 놓았고, 이집트의 미라와 조각품 등 인류 문화사적으로 가치 있는 최고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을 렁 부주석이 직접 SNS에 거론하며 꼬집은 것. 대영박물관 근로자들은 오는 2월로 예고된 대규모 공무원 파업에 동참할 의사를 밝힌 상태다. 주로 대영박물관을 찾는 방문객 서비스 지원팀과 보안부서 등에 속한 100여 명의 근로자들이 오는 13일부터 시작되는 전국적인 규모의 파업에 함께 할 의사를 밝혔다. 해당 파업은 약 7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대영박물관 측은 앞서 “파업 문제로 인한 인력난에 대비해 파업 기간 중 박물관 시설을 일부만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등의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지 매체들은 대영박물관이 시설 일부만 제한적으로 개방할 경우 오는 19일로 예정된 고대 이집트 유물 전시 행사가 조기에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특히 해당 전시에 포함된 ‘로제타’(Roseta) 비석은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쥔 열쇠라는 의미를 가졌는데, 이 유물 반환을 위해 무려 10만 명이 넘는 이집트 국적의 민간, 학계 인사들이 수차례에 걸쳐 대영박물관 측에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왔다.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를 운영했던 영국이 불법적인 방식으로 약탈한 ‘전리품’이니 원래 주인인 이집트 국민들에게 반환해달라는 요구였다. 렁춘잉 부주석은 이 사안을 언급하며 “대영박물관이 이렇게 파업이 예고된 상황에서 이 일을 기점으로 원래 주인들에게 약탈해온 전리품을 돌려주면 파업과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문제를 꼬집었다.  
  • 워털루 전투 200년 뒤, 다락방에 40여년 방치됐던 유골 세상으로

    워털루 전투 200년 뒤, 다락방에 40여년 방치됐던 유골 세상으로

    워털루 전투는 1815년 6월 18일 오늘날의 벨기에 남동쪽 워털루 근처에서 벌어졌다. 나폴레옹이 복귀한 백일천하 때 브뤼셀에서 남쪽으로 15㎞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서 프랑스 군과 영국-프로이센 연합 세력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나폴레옹 군대는 7만 2000명이었고,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 군은 6만 8000명,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의 프로이센 군대는 4만 5000명이었다. 나폴레옹의 병사 2만 5000명이 죽거나 다쳤고, 9000명이 포로 신세가 됐다. 웰링턴 부대는 1만 5000명, 프로이센 동맹군은 8000명이 죽거나 다쳐 양측 합쳐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나흘 뒤 나폴레옹은 두 번째로 왕위에서 쫓겨났고, 23년에 걸친 프랑스와 유럽 국가들의 지긋지긋한 전쟁이 마침표를 찍었다. 새삼스럽게 200년도 전에 벌어진 워털루 얘기를 끄집어낸 것은 벨기에의 한 가정집 다락방에 40여년 방치됐던 유골 두 점이 이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미국 CNN 방송의 25일(현지시간) 보도 때문이다. 당시 희생된 1만여명의 병사 대부분이 약탈에 취약했던 공동묘지에 묻히는 바람에 지금까지 유골로 전해지는 것은 단 둘 뿐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최근에야 연구를 통해 현지 농민들이 유골 대부분을 파내 설탕 정제업체에 팔아 넘겼다는 끔찍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벨기에 국가기록원의 버나드 윌킨 선임연구원은 한 강연을 마친 뒤 믿기 어려운 말을 듣게 됐다. 한 남자가 워털루 전장 근처 왈롱 플랑세누아의 자택 다락방에 프로이센 병사의 유골을 방치해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폴레옹 시대의 유물을 수집해 오던 이 남자는 1980년대 한 친구에게 건설 현장에서 발견된 유골들을 선물 받은 일이 있었다. 작은 전시를 주관해 오던 그였지만 유골 전시는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해 유골들을 다락방에다 놔뒀는데 40년이 훌쩍 흘렀다는 것이었다. 보관하던 유골 중 하나는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윌킨은 유골들을 직접 확인한 뒤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며 “일부 유골은 칼이나 총검으로 깊이 손상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다락방에 있던 유골은 최소 네 명의 병사 것으로 추정됐으며, 함께 발견된 가죽과 단추, 최초 발굴지 위치를 따졌을 때 프로이센 병사일 것으로 추정됐다. 척추 뼈를 비롯해 유골 곳곳에 남겨진 상처는 칼을 사용하는 근거리 전투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월킨의 작업을 돕는 독일 군사학자 롭 셰퍼는 “심각한 얼굴 외상을 입은 이 두개골은 그 시대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실증한다”고 말했다. 유골은 브뤼셀로 옮겨져 왈롱 유산기관 소속 고고학자 도미니크 보스케 등이 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구진은 추출된 유전자(DNA)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DNA가 남아있을 확률은 20~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셰퍼는 “가능성은 작지만 성공한다면 다음 목표는 DNA를 데이터 베이스로 만들어 관련 있는 사람들(후손들)이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골 연구가 끝나면 적절한 장례 절차를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다락방 주인의 또 다른 친구는 영국군 병사의 유골 네 구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윌킨에 따르면 이 친구는 워털루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격전이 펼쳐진 벨기에 진영의 일명 ‘사자(死者)의 언덕’ 근처에서 금속탐지기를 통해 유골들을 발견했다.
  • 현직 교황의 배웅… 베네딕토 16세 잠들다

    현직 교황의 배웅… 베네딕토 16세 잠들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 묘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5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수만명의 인파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염수정·유흥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 신우식 신부 등 한국 대표단도 현장에서 함께 추모했다. 그간 역대 교황의 장례미사는 수석 추기경이 집전했지만 생전에 사임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했다. 1802년 비오 7세 교황이 전임 교황인 비오 6세의 장례식을 집전한 이후 교회 역사상 두 번째 사례다. 당시는 나폴레옹 군에 의해 프랑스에 납치돼 선종한 전직 교황의 장례를 3년이 지난 뒤 치러 지금 상황과는 달랐다. 장례미사를 40분 앞두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누인 목관이 성 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 앞으로 운구됐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관 위에는 성경책 한 권이 놓였다. 장례미사는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의 성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 시작됐다. 무릎이 좋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단 옆 의자에 앉아 무거운 표정으로 장례미사를 주례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신자와 성직자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훔쳤다. 미사가 끝날 무렵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하신 하느님 베네딕토 전임 교황을 당신 자비에 맡겨 드리나이다. 간구하오니 그를 당신 천상 거처에 맞아들이시어 영원한 영광 누리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미사를 마친 관은 ‘교황의 신사들’로 불리는 교황 수행원들의 어깨에 실려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있던 바로 그 묘역에 안장됐다.
  • 영면에 든 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 봉헌

    영면에 든 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 봉헌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하 묘역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5일 오전 9시 30분(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수만명의 인파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염수정·유흥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 신우식 신부 등 한국 대표단도 현장에서 함께 추모했다. 그간 역대 교황의 장례미사는 수석 추기경이 집전했지만 생전에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장례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했다. 1802년 비오 7세 교황이 전임 교황인 비오 6세의 장례식을 집전한 이후 교회 역사상 두 번째 사례다. 당시는 나폴레옹 군에 의해 프랑스에 납치돼 선종한 전직 교황의 장례를 3년이 지난 뒤 치러 지금 상황과는 달랐다. 배네딕토 16세는 즉위 8년 만인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생전 퇴위한 뒤 명예교황으로 남아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간소한 장례식을 원한다는 뜻을 생전에 밝혔지만 교황청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하며 전임 교황을 예우했다. 장례미사를 40분 앞두고 베네딕토 16세를 누인 목관이 성 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 앞으로 운구됐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관 위에는 복음서 한 권이 놓였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는 펼쳐진 복음서에 입을 맞추며 그를 추모했다.장례미사는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의 성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 시작됐다. 무릎이 좋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단 옆 의자에 앉아 무거운 표정으로 장례미사를 주례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신자와 성직자들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훔쳤다. 미사가 끝날 무렵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하신 하느님 베네딕토 전임 교황을 당신 자비에 맡겨 드리나이다. 간구하오니 그를 당신 천상 거처에 맞아들이시어 영원한 영광 누리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미사를 마친 관은 ‘교황의 신사들’로 불리는 교황 수행원들의 어깨에 실려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운구 행렬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잠시 멈추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의자에서 일어나 성호를 긋고 관 위에 손을 올린 뒤 잠시 묵상했다.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있던 바로 그 묘역에 안장됐다. 장례 미사에는 추기경 125명, 주교 200명, 성직자 3700명이 참석했다.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니기에 교황청은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이번 장례 미사에 공식 초청했다. 이탈리아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조르자 멜로니 총리·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 독일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올라프 숄츠 총리,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 등이 참석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 등 왕족들과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토고, 가봉 등 유럽과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광장 중앙 귀빈석에서 장례미사를 지켜봤다. 대부분의 국가는 주교황청 대사가 자국을 대표해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톨릭 신도와 로마 시민 등 약 5만명도 광장에 운집했다. 수많은 신자들은 장례 미사가 끝난 뒤 “즉시 성인으로!”(Santo Subito!)를 외쳤고 같은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다.
  • 현직 교황의 전임 교황 장례미사 집전 “1802년에 딱 한번”

    현직 교황의 전임 교황 장례미사 집전 “1802년에 딱 한번”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식이 5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 미사를 집전하면서 거행된다. 교황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건강 문제로 스스로 교황 직에서 물러나면서 초유의 상황이 됐다고들 생각했다. 교황의 사임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가 아비뇽 유수(유폐)로 서방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끝내기 위해 퇴위한 이후 598년 만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4일 교황청 관영 매체 ‘바티칸 뉴스’는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이 역대 두 번째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교회의 2000년 역사에서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에게 마지막 축복을 전한 사례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1802년 2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비오 6세 교황의 장례 미사가 후임자인 비오 7세 교황의 주례 속에 엄수됐다. 비오 6세 교황(재임 1775∼1799)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 납치돼 유배된 프랑스 발랑스에서 선종했다. 발랑스에서 장례식이 열렸고,그 뒤를 이어 1800년 3월 14일 교황 직에 오른 비오 7세는 전임 교황의 유해가 이탈리아 로마로 송환되길 원했다. 1801년 12월 발랑스에서 발굴된 비오 6세 교황의 유해는 마르세유를 거쳐 배를 통해 이탈리아 제노바로 옮겨졌다. 마침내 1802년 2월 17일 추기경들이 로마 폰테 밀비오에서 유해를 기다리는 가운데 “로마로의 위대한 승리의 입성”이 이뤄졌다고 ‘바티칸 뉴스’는 전했다. 그 뒤 비오 6세 교황의 장례 미사가 후임자인 비오 7세의 주례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됐다. 한편 교황청은 일반 조문 사흘간 약 20만명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고 이날 밝혔다. 교황청은 오후 7시 일반 조문을 마무리하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을 삼나무관으로 옮기는 입관 예절을 올렸다. 입관식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와 가사를 도운 수도회 수녀들이 참관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이 들어간다.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도 철제 원통에 봉인해 관에 넣었다. 한국 천주교 성직자들은 일반 조문 마지막 날인 이날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조문했다.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인 신우식 신부 등 한국 천주교 대표단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장례 미사 참석차 전날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휴가차 세밑에 귀국해 한국에 머물던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도 한국 대표단과 같은 항공기를 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장례 미사는 5일 오전 9시 30분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사가 끝나면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역대 교황 91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 로제타석 ‘비밀의 문자’ 풀리기까지 20년… 英·佛 문화 전쟁 있었다

    로제타석 ‘비밀의 문자’ 풀리기까지 20년… 英·佛 문화 전쟁 있었다

    지난 11일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맞닥뜨렸다. 호사가들은 14세기부터 15세기까지 116년 동안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이 벌인 전쟁을 빗대 ‘축구 백년 전쟁’이라며 경기에 주목했다. 진짜 백년 전쟁이 끝나고 약 350년이 지난 뒤, 19세기의 시작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는 또 한 번 전쟁을 벌였다. 이번에는 총칼을 앞세운 것이 아니었다. 바로 1799년 7월 어느 무더운 날 이집트 서북부에 위치한 라시드 지역의 로제타 요새에서 발견된 ‘로제타석’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 ‘문화 전쟁’이었다.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 전쟁에 따라나섰다가 로제타 요새 공사를 맡았던 피에르 프랑수아 부샤르 중위의 눈썰미 덕분에 로제타석은 요새 어느 구석에 처박힐 운명에서 주목해야 할 인류 최고 문화유산으로 부상했다. 군인이면서 학자였던 부샤르는 공사장에서 발견된 무거운 돌 한쪽면에 이상한 부호들이 가득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대단한 발견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로제타석에 새겨진 부호들은 그림 중심의 성체자(聖體字), 가운데는 속체자(俗體字), 맨 아래는 고대 그리스 문자였다. 로제타석의 존재가 유럽의 학자들에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신비의 고대 이집트 문자는 길어야 보름이면 해독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비밀의 문자가 풀리기까지는 20년이 넘게 걸렸다. 대중들에게는 영국의 토머스 영이 로제타석 해독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프랑스의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최종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알려졌다.강산을 두 번이나 변하게 만든 세월이 지나는 동안 앙숙 국가의 학자들이 수행한 작업이 그저 한 문장으로 표현될 정도로 간단할까. 로제타석 해독에 나선 영은 다재다능한 천재이면서 차분하고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이었고 이집트의 미신과 타락을 비웃는 사람이었다. 반면 샹폴리옹은 이집트에만 관심을 두는 외골수 천재였고 분노조절 장애라고 할 정도로 항상 분노와 조바심에 가득 차 있었으며 고대에 가장 강력했던 이집트 제국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이런 전혀 상반된 두 명의 천재가 조국에 영광을 안기기 위해 20년 동안 경쟁을 벌인 것이다. 저자는 미국 저명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과학기자 출신답게 언어학과 고고학계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로제타석 해석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를 소설보다 더 박진감 있게 구성했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난공불락의 암호로 알려졌던 독일 나치의 에니그마도 2~3년 만에 풀렸는데 로제타석 문자 해독에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성체자에 대한 오랜 편견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여기에 기원전 440년 역사학의 아버지인 그리스 헤로도토스가 이집트에 관한 글을 쓸 당시에도 이집트 글자들은 1000년 전에 사라졌다는 점이 더해졌다. 이 때문에 성체자는 일상적인 내용이나 목록에 사용되지 않고 우주와 시간의 본질, 철학에 관한 글을 쓸 때만 사용됐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오랫동안 믿고 있었다. 영과 샹폴리옹이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은 학계에 깊숙이 자리잡은 선입견을 떨쳐냈기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는 과학과 학문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발전도 선입견과 편견을 버릴 때 가능해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암호나 수수께끼, 퀴즈 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저자 그리고 영, 샹폴리옹과 함께 문자를 해독해 가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네시의 모델…호주 목장서 1억 년 전 ‘바다 공룡’ 화석 발견 [핵잼 사이언스]

    네시의 모델…호주 목장서 1억 년 전 ‘바다 공룡’ 화석 발견 [핵잼 사이언스]

    호주에서 1억년 전 바다를 누비던 해양 파충류 '엘라스모사우루스'(elasmosaur)의 화석이 발견됐다. 특히 이 화석은 긴 목과 몸통이 거의 온전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돼 관련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은 사람으로 따지면 청소년 나이의 엘라스모사우루스 화석이 호주 퀸즐랜드 서부 목축장에서 발굴됐다고 보도했다.길이가 약 6m에 달하는 이 화석은 긴 목을 가진 수장룡인 플레시오사우루스(plesiosaur)의 일종으로 지난 8월 아마추어 화석 사냥꾼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이후 전문가들이 동원돼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됐고 최근 엘라스모사우루스의 상징과도 같은 긴 목과 몸통이 그대로 드러났다. 실제 공개된 사진을 보면 누워있는 여러 명의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엘라스모사우루스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난다.발굴에 참여한 퀸즐랜드 박물관 고생물학자인 에스펜 크누센은 "지금까지 엘라스모사우루스의 머리와 몸통이 함께 발견된 적은 없었다"면서 "그 이유는 플레시오사우르스와 같은 수장룡은 목이 전체의 3분의 2이기 때문에 죽은 후 보통 머리가 몸에서 분리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발굴팀은 이를 '로제타스톤'으로 비유하며 엘라스모사우루스가 유년기에서 성인기로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로제타스톤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이 진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으로 이후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의 열쇠가 됐다.한편 중생대 최강 포식자라고 하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같은 육식 공룡을 떠올리지만, 사실 바다에는 이보다 더 거대한 파충류들이 존재했다. 이 시기 바다로 진출한 거대 파충류 무리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플레시오사우루스와 같은 수장룡이다. 목길이만 최대 14m에 달할 만큼 덩치가 큰 플레시오사우루스는 특히 영국 네스호에 산다는 전설의 괴물 네시의 모델이기도 하다. 플레시오사우루스는 노처럼 생긴 다리를 가져 수상 생활에 적합하게 진화했지만 허파로 숨을 쉬기 때문에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 푸틴이 ‘강한 남자’ 어필하는 이유 있었다…‘작은 남자 증후군’ 실존 (연구)

    푸틴이 ‘강한 남자’ 어필하는 이유 있었다…‘작은 남자 증후군’ 실존 (연구)

    키가 165~170㎝ 정도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자신을 강한 남자라고 어필하고 싶어 하는 키 작은 남성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잘 드러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이른바 ‘작은 남자 증후군’이라고 하는 나폴레옹 콤플렉스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은 남자 증후군은 키 작은 남성이 열등감 탓에 주위에 고압적이거나 허세를 부리는 경향이 있음을 빗댄 말이다. 폴란드 브로츠와프대 등 국제 연구진이 미국 성인남녀 367명을 대상으로 ‘자기 뜻대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경향이 있느냐’와 같은 문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묻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참가자는 모두 답변을 통해 이른바 ‘어둠의 성격 3요소’에 속하는 사이코패스(정신병질)와 나르시시즘(자기도취증), 마키아벨리즘(권모술수)을 얼마나 드러내는지 점수를 받았다. 또 각 참가자는 자신의 키를 공개하고 얼마나 만족하고 만족감은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 기록했다.그 결과 자신의 키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남녀 중 키가 작은 이들은 어둠의 3요소 모두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의 경우 키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남성들에게만 강하게 나타났다. 여성에게서는 이런 성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같은 결과는 사람의 진화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보고 있다. 연구 주저자 모니카 코즐로브스카(폴란드 브로츠와프대 심리학과)는 “사람은 신체적으로 강해질 수 없을 때, 대신 심리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어둠의 3요소가 강한 키 작은 남성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고 대가를 강요하는 데 이는 잘 보이고 싶은 이성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키 작은 여성은 자신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보호나 지지를 받고자 속임수를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은 강해 보이는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키를 실제보다 더 크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심리적 강함은 신체적 강함의 손실을 상쇄해 생존과 이성에 대한 어필에서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는 국제 학술지 ‘성격과 개인차(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2023년 3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 프랑스 격침시킨 하즈리 “난 100% 튀니지·프랑스·코르시카 사람”

    프랑스 격침시킨 하즈리 “난 100% 튀니지·프랑스·코르시카 사람”

    튀니지가 1일(한국시간)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D조 최종 3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1-0으로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켰다. 마지막 경기에서 식민 지배를 했던 프랑스에 일격을 먹였지만 튀니지는 1승1무1패(승점 4)로 조 3위에 그쳐 사상 첫 16강 진출이란 염원을 이루지 못했다. 튀니지는 16개국만 출전한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뚫지 못했고, 1998년 프랑스, 2002년 한일, 2006년 독일, 4년 전 러시아 대회에서도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튀니지가 프랑스를 꺾은 것은 51년 만의 일이다. 프랑스는 1971년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종합 스포츠 이벤트인 지중해 게임에서 튀니지에 1-2로 진 것이 마지막 패배였다. 결승골의 주인공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고향인 지중해의 프랑스령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난 공격수 와흐비 하즈리(31)다. 그는 0-0으로 맞선 후반 13분 센터서클에서부터 공을 몰고 가더니 페널티아크까지 단숨에 전진했다. 프랑스 수비진들이 뒤늦게 따라오자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왼발로 반대편 골대 하단 구석을 향해 공을 넣었다. 이삼 지발리(30·오덴세)와 교체하기 직전 터진 득점이라 더욱 극적이었다. 세리머니를 펼친 뒤 그는 튀니지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을 받고 동료, 코칭 스태프의 환호 속에서 유유히 벤치로 향했다.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1) 몽펠리에에서 뛰고 있는 하즈리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와 같은 조가 되길 바랐다.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프랑스에서 주말마다 튀니지를 대표했다. 내가 태어난 코르시카를 대표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그는 또 “나는 국기를 많이 들고 다닌다”며 “나는 100% 튀니지인이고, 100% 프랑스인, 그리고 100% 코르시카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기념비적인 승리를 이끈 하즈리는 두 나라의 복잡한 역사를 드러내는 산증인이기도 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하즈리 외에도 튀니지 대표팀에서 프랑스 태생만 아홉 선수가 더 있다. 프랑스에는 약 70만명의 튀니지인이 살고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한 튀니지는 1956년에야 독립 국가로 섰다. 그만큼 많은 문화적 교류도 이뤄졌고, 하즈리처럼 조국을 둘로 여기는 선수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식민 지배를 받은 튀니지 사람들의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는 없다. 특히 튀니지계 이주노동자들이 프랑스에서 겪은 좌절감은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돼, 특히 축구장에서 활활 타오르곤 한다. 2008년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두 나라 평가전에서 튀니지계 관중들은 프랑스 국가가 흘러나올 때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이에 격분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자국축구협회에 다시는 튀니지와 홈에서 친선경기를 치르지 말라고 지시했고, 이 경기가 프랑스에서 열린 두 나라의 마지막 대결이 됐다. 당시 총리였던 프랑수아 피용은 “프랑스와 대표팀 선수들을 모욕한 것이다. 용납될 수 없다”며 튀니지 관중들을 질타했다. 14년이 흐른 뒤에도 이런 모습은 되풀이됐다. 이 경기를 앞두고 프랑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일부 관중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방해한 것이다. 프랑스에 뿌리 깊은 적개심을 드러낸 튀니지 관중은 16강 좌절이란 허탈함을 ‘그래도 프랑스는 꺾었다’는 자긍심으로 대신했을 것이다.
  • 겨울바다 향과 맛이 입안 가득[이미경의 슬기로운 집밥 생활]

    겨울바다 향과 맛이 입안 가득[이미경의 슬기로운 집밥 생활]

    얼마 전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온 지인이 미국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굴 요리에 불만을 가득 드러냈다. 특별한 요리법도 아닌 생굴에 레몬즙을 곁들인 굴 요리 몇 개를 먹고 받은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 레스토랑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 11월의 굴을 두고 미국에서 굴 요리를 먹은 지인의 잘못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동양에서는 ‘보리가 패면 굴을 먹지 않는다’ 했고 서양에서는 알파벳 ‘R’이 들어가지 않은 달인 5~8월에는 굴을 먹지 않는다.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굴에 독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오는 굴은 겨울철이 되면 그 맛과 향이 절정에 달한다. 그뿐만 아니라 값도 착해 굴을 접시에 가득 담아 놓고 마음껏 먹게 된다. 유럽이나 북미 등은 한국과 달리 갯벌이 거의 없어 양식이 어렵고, 잘 잡히지 않기에 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굴은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는 최고급 요리로 여겨진다. 굴은 맛도 좋지만 영양가도 매우 높은 식품이다. 칼로리와 지방 함량이 적고 칼슘이 풍부하며 굴에 함유된 아연은 성장 호르몬을 활성화시키고 스테미나 증진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를 비롯해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등 세계를 정복했던 많은 남성들과 고대 로마 황제들도 굴을 극성스럽게 챙겨 먹었다는 야담이 차고 넘치게 전해지는 것도 굴의 효능과 무관하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굴을 좋아하지만 우리 밥상에서처럼 다양한 굴 요리법은 없을 것이다. 굴찜, 생굴회, 굴무침, 굴전, 굴튀김, 굴보쌈, 굴국, 굴떡국, 굴죽, 굴국밥, 굴밥이라는 기본 굴 요리 카테고리에 더해지는 재료에 따라, 곁들이는 양념에 따라 굴의 맛도 무한히 변신한다. 바다 향기 가득한 날것 그대로 또는 익혀서 감칠맛이 나게 하는 수많은 요리법들이 준비돼 있으니 싱싱한 굴만 장바구니에 담아 오면 된다. 오늘의 집밥은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굴밥이다. 굴은 오래 익히면 향이 사라지고 질겨질 수 있다. 밥이 뜸 들기 시작할 때 넣어야 굴이 부드러워지고 밥에 굴향이 가득 담기게 된다. 가끔 겨울철이 너무 따뜻해 굴이 폐사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올해 겨울은 이상고온 없이 겨울다워서 싱싱한 굴을 맛있게 먹기를 기대해 본다. 요리연구가·네츄르먼트 대표 ●재료: 굴 200g, 쌀 2컵, 무(5㎝ 길이) 1토막, 참기름 약간, 양념장(송송 썬 실파 2큰술, 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깨소금 2작은술) ●만드는 방법 1. 쌀은 씻어서 20분 정도 불린 후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2. 무는 일정한 두께로 썰고 굴은 옅은 소금물에 두 번 정도 흔들어 씻어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3. 돌솥이나 두꺼운 냄비에 쌀과 무를 넣고 물 2컵을 부어 뚜껑을 덮어 끓인다. 끓어오르면 중간 불로 줄여서 5분 정도 끓이다가 약한 불로 줄인 상태에서 굴을 넣고 5분 정도 뜸을 들여 골고루 섞는다. 4. 분량의 양념장 재료를 모두 섞어 곁들인다. ●레시피 한 줄 팁: 굴은 우윳빛을 띠며 탄력이 있는 것을 고르고 소금물에 살살 흔들어 씻어 굴 껍질과 불순물을 제거한 후 물기를 빼고 밥을 짓는다.
  • [정승민의 막론하고] 핵 위기로부터의 희망/북튜버

    [정승민의 막론하고] 핵 위기로부터의 희망/북튜버

    다시 원자폭탄이 동원될 것인가. 77년 전 일본을 패망시켰던 버섯구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솟아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서방 세계의 핵위협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지낸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전략핵무기를 쓸 수 있다고 대놓고 겁박한다. 워싱턴의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이 잇달아 방송에 나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심각하게 경고한 것도 핵전쟁 시나리오가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번개가 잦으면 천둥을 한다’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폭탄이 핵폭탄으로 이어질 것을 국제사회는 걱정한다. 물론 핵의 활용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전세를 결정짓는 ‘한 방’임에는 틀림없지만 전 지구적 후폭풍을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방사능 피해로 인해 오염된 땅과 강은 전리품이 될 수 없다. 수지가 맞지 않는 승전은 패배를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서구를 겁주려는 러시아의 블러핑(bluffing) 전략으로 무시하는 시각도 많다. 핵단추를 눌러서 얻어 낼 이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최고권력자의 결정은 비이성적 판단에서 종종 나온다. 전쟁과 같이 국가와 국민의 자원과 능력이 총동원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영토를 넓히고 배상금을 받고 권력을 강화하는 합리적 목표는 어느새 증발되고 전쟁 그 자체가 목적이 돼 버린다. 무엇보다 나폴레옹 이후 근대적 전쟁은 새로운 주체를 발견했다. 바로 국민이다. 적을 향한 무한한 분노와 증오는 군대와 정부를 쉬임 없이 전선으로 밀어붙이는 에너지가 된다.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는 개인과 사회의 에로스는 죽음과 전쟁에 집착하는 타나토스에 압도돼 꼼짝달싹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정권이 전쟁을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다루려고 해도 이성적 통제가 쉽지 않게 된다. 이미 피를 본 이상 끝장을 내자는 집단 심리가 구동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파괴와 절멸의 욕망은 나라와 민족을 넘어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 핵폭탄이라는 최종병기가 손아귀 안에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에게는 핵무기야말로 세계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핵전쟁은 인류는 물론 생물을 말살시키는 대파국을 야기한다. 특히 핵겨울이 도래하면 식물의 광합성이 차단돼 동식물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 핵의 벼랑 끝에 다가선 지금, 미러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러시아는 구소련 흐루쇼프 서기장 시절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더라도 케네디 대통령이 반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판해 제3차 세계대전 전야까지 달려 본 과거가 있다. 제한적인 위력의 핵탄두를 쏘아서 전황을 뒤엎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면 의도치 않은 상호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미러의 수뇌부가 상호불신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상황에서 무기 시스템의 오류가 일어나는 경우에도 ‘아마겟돈’은 이뤄질 것이다. 1947년부터 작동한 지구종말시계는 현재 자정 전 100초를 가리키고 있다. 최후의 순간에 가장 근접한 시각이다. 핵전쟁에 대한 불안이 커져 갈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핵을 사용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전을 벌여 왔다. 공멸의 자충수를 두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자기 억제는 해 왔던 것이다. 희망을 버릴 때는 아니다. 수학자 겸 문명비평가였던 김용운 박사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도구가 바뀌면서 대량살상이 일어났지만 사회의 민주화도 부분적으로 성취됐다고 평가한다. 철로 만든 창과 칼을 쥔 평민들이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면서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었다. 또한 위기의 시대를 타개하려는 정신적 움직임이 세계 4대 성인이 출현하는 축의 시대를 낳은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핵 위기가 가장 고조된 지금 이 순간이, 인류가 대망하는 세계정부를 만들어 가는 역설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자치광장] 공무원과 구청장/이성헌 서울 서대문구청장

    [자치광장] 공무원과 구청장/이성헌 서울 서대문구청장

    얼마 전 주말 이른 아침 서대문구립 인조 잔디 구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구청 축구 동아리 직원들과 함께 경기를 즐겼다. 구청장이 한가롭게 직원들과 축구나 한다고, 또 함께 뛴 직원들이 얼마나 불편해했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다. 정말 그럴까? 철 지난 유머가 있다. 군인들을 이끌고 한 산에 도착한 나폴레옹이 말한다. ‘어? 이 산이 아닌가 봐.’ 산에서 내려와 옆 산에 오른 나폴레옹이 다시 말한다. ‘어? 아까 그 산이 맞나 봐.’ 우스갯소리지만 곱씹어 볼 대목은 있다. 왜 어느 군인도 ‘장군님, 이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나폴레옹과 군인들이 평소 원활히 소통했더라면 불필요한 수고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거 어느 지자체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부서로부터 사업계획 보고를 받았는데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던 지시사항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그에 대한 보고서를 공들여 작성해 오니 해당 부서 공무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계획서가 정책에 반영됐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정말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어느 조직에서라도 한정된 인력과 그 인력의 정해진 근로 시간을 최대한 가치 있게 활용하는 것은 리더의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직접 구정을 맡고 보니 구청 공무원들의 높은 역량과 맡은 업무의 다양함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다. 그리고 결국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건 공무원들이다. 최근 서대문구는 직제개편인사, 교통혁신·군부대 이전, 인생케어, 신통개발 등 4개 태스크포스(TF)로 구성된 ‘서대문 행복 100% 추진단’을 구성했다. 해당 분야의 공무원들이 외부 전문가와 함께 참여한다. 누구나 시켜서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신바람이 난다. 구청 직원들도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만들어 갈 때 의욕과 보람, 성과가 높아질 것인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소통이다. 구청장실이 같은 구청 건물 안에 있는데도 구청장의 생각이 무엇인지 직접 되묻는 것이 어려워 행정력을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근 MZ세대 공무원의 퇴직이 이전보다 늘어난 이유 중 하나로 경직된 공직 문화가 꼽히는데 서대문구는 비대면 화상회의 확대와 자율 출퇴근제 시범 실시 등 이를 유연화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공무원 채용 경쟁률이 하락 추세에 있다고는 하지만 공직은 여전히 인기 있는 일자리다. 그리고 역량 있는 인재들이 모인다. 뛰어난 직원들과 소통하며 함께하기에 나 역시 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서대문구 민선 8기가 더욱 기대된다.
  • 한동훈이 쏘아올린 ‘40대 검사장 전성시대’

    한동훈이 쏘아올린 ‘40대 검사장 전성시대’

    한동훈(49·사법연수원 27기)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이래 검찰이 ‘40대 검사장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과거 기수와 위계질서를 중시해왔던 검찰 문화에도 변화의 계기가 생길지 주목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권순정(48·연수원 29기)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송강(48·연수원 29기)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황병주(48·연수원 29기) 대검 형사부장, 양석조(49·연수원 29기) 서울남부지검장, 정영학(49·연수원 29기) 서울북부지검장, 예세민(48·연수원 28기) 춘천지검장, 홍승욱(49·연수원 28기) 수원지검장 등이 검찰 내 40대 검사장으로 꼽힌다. 검찰청법상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 뿐이지만, 대검 검사급 직위인 검사장 보직은 ‘검찰의 꽃’으로도 불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 장관은 지난 4월 검찰 조직 연소화에 대한 우려에 대해 “나이나 기수를 말씀하신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여야 공히 20·30대 대표를 배출한 진취적인 나라”라며 “기수문화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철저히 아주 지엽적인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그러나 정치권이 ‘79세대’(70년대생·90년대학번) 체제 변화에 미온적인 한편 MZ세대를 각각 대변했던 20·30대 대표를 배격한 데 반해 검찰의 기수 파괴는 현재 진행형이란 평가다. 검찰 조직의 연소화는 윤석열(62·연수원 23기) 대통령이 다섯 기수를 건너뛴 검찰총장에 임명되면서 시작됐다. 이원석(53·연수원 27기) 검찰총장 후보자도 김명수(63·연수원 15기) 대법원장뿐 아니라 오석준(60·연수원 19기) 대법관 후보자와 10기수 안팎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 부장판사는 “과거 법원과 검찰은 기수를 맞춰서 승진하는 문화가 있었다”며 “최근에 검찰 쪽에서 기수가 많이 파괴되면서 법원과 기수가 많이 달라졌다”고 언급했다. 통상 암묵적으로 승진 기수를 맞춰왔던 관행이 검찰의 연이은 기수 파괴로 10기수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법조계에선 검찰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이나 중국 삼국시대의 오나라, 소련의 미하일 투하쳅스키 같은 젊은 리더십으로 대변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직후 왕당파 장군들이 숙청된 가운데 젊은 나이에 대장에 올라 뛰어난 군사전략과 정치력으로 프랑스의 위기를 극복했던 인물이다. 후발주자였던 오나라도 조조, 유비를 상대로 주유, 노숙, 여몽 등 젊은 영웅을 등용하며 삼국시대의 패권을 다퉜다. 소련군 원수였던 미하일 투하쳅스키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젊은 장교 중심으로 러시아 내전을 진압하고 소련군을 현대적인 군대로 탈바꿈시키는 대변혁을 이뤘던 인물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40대 검사장을 중심으로 역동성과 혁신의 문화를 갖는 대변혁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 19세기 제국주의에 저항한 미술가[그 책속 이미지]

    19세기 제국주의에 저항한 미술가[그 책속 이미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그림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그림·1867~1868)은 프랑스 나폴레옹 3세 황제가 멕시코를 침략한 뒤 멕시코 황제로 옹립한 막시밀리안이 멕시코 원주민 군인들에게 총살당하는 장면을 담았다. 나폴레옹 3세가 벌인 부당한 제국주의적 침탈에 따른 결과를 비판한 그림이다. 급진적 공화주의자로서 회화를 저항의 수단으로 삼았던 마네의 면모가 드러난다. 홍일립의 저서 ‘모더니스트 마네’는 이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마네의 삶과 예술세계를 보여 준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나 ‘올랭피아’ 같은 그의 초기작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대중은 시대를 앞서가는 마네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을 통해 시대와 불화한 저항으로 일관한 마네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예술과 정치를 연결한 문화적 담론을 제시했는지를 읽어 낼 수 있다.
  • [책꽂이]

    [책꽂이]

    국익의 길(박승찬 지음, 체인지업 펴냄) 중국 전문가의 시각에서 미중 패권 경쟁의 기원과 이에 대응하는 한국의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와 반도체를 둘러싼 지경학적 중요성이 합쳐진 자산이 있는 한 한국은 더는 약소국이 아니며,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의 영국처럼 ‘패권적 균형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424쪽. 2만 2000원.환율 비밀 노트(최재영·오정석 지음, 시공사 펴냄) 경제 관료와 금융 전문가 출신인 저자들이 환율의 기본 개념부터 환율 변화 예측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환율이 경제성장률이나 주가 등에 미치는 영향을 변수 중심으로 설명하는 저자들은 선물환, 외환 스와프, 통화 스와프, 통화옵션, 콜옵션, 풋옵션, 스와프포인트, 스와프베이시스 등의 개념도 쉽게 풀어낸다. 428쪽. 2만원.선거인가 추첨인가? 추첨의 역사(올리버 다울렌 지음, 이지문 옮김, 북코리아 펴냄) 시민들에게 기본 권력을 배분할 방법으로 ‘추첨 민주주의’를 소개한다. 고대 아테네로부터 시작해 17~18세기 서구 사회의 추첨제를 살펴본 뒤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가능성을 모색한다.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비리를 폭로한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이 번역했다. 368쪽. 2만원.나, 프랜 리보위츠(프랜 리보위츠 지음, 우아름 옮김, 문학동네 펴냄) 재담가로 유명한 미국 작가이자 비평가의 글을 모은 에세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마음의 평화라는 건 없다. 초조감 혹은 죽음이 있을 뿐’, ‘진정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이는 극히 드물다’ 등의 촌철살인과 언어유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408쪽. 1만 8000원.머문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김경한 지음, 보이스프린트 펴냄) 법무부 장차관 등을 역임한 저자가 일평생 쓴 글을 엮은 책.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작성한 서신, 신문에 연재한 칼럼 등부터 어린 시절 추억, 결혼 주례사까지 다양한 주제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와 미래 세대에 전하는 조언을 담았다. 318쪽. 1만 5000원.헤어질 결심 각본(정서경·박찬욱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정서경 작가가 집필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오리지널 각본. 칸영화제 수상작인 영화 속 명대사들을 재확인하는 것은 물론 영화에서는 편집된 서래(탕웨이)와 두 번째 남편 임호신(박용우)의 만남의 계기 등을 엿볼 수 있는 등 최종 극장 상영판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184쪽. 1만 5000원.
  • 개혁 앞에서 민의는 모았고 행동은 빨랐다

    개혁 앞에서 민의는 모았고 행동은 빨랐다

    “영국에서는 나폴레옹을 호전적 정복자이자 히틀러의 선구자 같은 인물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그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지도력을 보여 준 계몽주의적 인물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시기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 1821)는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유럽을 전쟁터로 만든 전쟁광이면서도 위대한 군사 지휘관으로 세계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세계 그룹 ‘지식 향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 번역 출간된 전기 ‘나폴레옹’(김영사)에서 영국 역사학자 앤드루 로버츠(59)는 국적을 넘어 나폴레옹의 일생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부활시켰다. 1일 서면으로 만난 로버츠는 “나폴레옹의 주요 업적은 (오늘에도 유효한) 법 앞의 평등, 능력주의, 종교의 자유를 고취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런던 킹스칼리지 전쟁연구학과 방문교수인 로버츠는 나폴레옹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8세기 군사 전략·전술 패러다임을 전환한 군사적 혁명가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간과됐던 포병대를 전술의 핵심으로 만들었으며, 신속한 기동전을 중시하는 대담한 공세로 전투의 주도권을 놓지 않은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군대 지휘 방식은 통치에도 적용돼 유럽의 구체제를 해체하고 프랑스 혁명의 근대 정신을 불어넣었다. 로버츠는 “나폴레옹은 당대 각계 지도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다음 ‘나폴레옹 법전’으로 대표되는 법률을 제정해 프랑스인들의 생활을 개혁할 수 있었다”며 “경청 의지를 보여 주고 일단 의견을 모은 뒤에는 단호하게 행동함으로써 개혁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이끌어 간 인물로 오늘날 지도자들에게도 귀감”이라고 강조했다. 한글판으로 약 14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집필하고자 15개국 기록 보관소 69곳을 찾아 현존하는 나폴레옹의 편지 3만 3000여통을 분석했다. 또 53곳의 전장을 답사하며 나폴레옹의 전략·전술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그는 “조사하고 집필하는 데 6년이 걸렸다. 결과물을 최대한 짧게 정리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에서 개인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처칠이 말했듯 역사에는 국정 운영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고, 역사 공부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나폴레옹은 경청한 뒤 단호하고 신속하게 개혁을 이끌어간 지도자”

    “나폴레옹은 경청한 뒤 단호하고 신속하게 개혁을 이끌어간 지도자”

    “영국에서는 나폴레옹을 호전적 정복자이자 히틀러의 선구자 같은 인물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그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지도력을 보여 준 계몽주의적 인물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시기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유럽을 전쟁터로 만든 전쟁광이면서도 위대한 군사 지휘관으로 세계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세계 그룹 ‘지식 향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 번역 출간된 전기 ‘나폴레옹’(김영사)에서 영국 역사학자 앤드루 로버츠(59)는 국적을 넘어 나폴레옹의 일생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부활시켰다. 1일 서면으로 만난 로버츠는 “나폴레옹의 주요 업적은 (오늘에도 유효한) 법 앞의 평등, 능력주의, 종교의 자유를 고취했다는 것”이라며 “이는 그가 당시 군사적 정복자였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런던 킹스칼리지 전쟁연구학과 방문교수인 로버츠는 나폴레옹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8세기 군사 전략·전술 패러다임을 전환한 군사적 혁명가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간과됐던 포병대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술의 핵심으로 만들었으며, 병참과 보급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했을 뿐 아니라 신속한 기동전을 중시하는 대담한 공세로 전투의 주도권을 놓지 않은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군대 지휘 방식은 통치에도 적용돼 유럽의 구체제를 해체하고 프랑스 혁명의 근대 정신을 불어넣었다. 로버츠는 “나폴레옹은 당대 각계 지도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다음 ‘나폴레옹 법전’으로 대표되는 법률을 제정해 프랑스인들의 생활을 개혁할 수 있었다”며 “경청 의지를 보여 주고 일단 의견을 모은 뒤에는 단호하게 행동함으로써 개혁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이끌어 간 인물로 오늘날 지도자들에게도 귀감”이라고 강조했다. 또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승리했다면 오늘날까지 그의 후손들이 프랑스 왕좌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글판으로 약 14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집필하고자 15개국 기록 보관소 69곳을 찾아 현존하는 나폴레옹의 편지 3만 3000여통을 분석했다. 또 53곳의 전장을 답사하며 나폴레옹의 천재적 군사 전략·전술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그는 “조사하고 집필하는 데 6년이 걸렸다. 결과물을 최대한 짧게 정리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로버츠는 나폴레옹 외에도 윈스턴 처칠, 네빌 체임벌린, 아돌프 히틀러 등의 인물에 대한 역사서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에서 개인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처칠이 말했듯 역사에는 국정 운영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고, 역사 공부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열린세상] 병참의 중요성과 시스템 사고의 필요성/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열린세상] 병참의 중요성과 시스템 사고의 필요성/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일주일도 가지 못할 것이라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5개월째다. 대다수 군사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이처럼 전쟁이 오래가는 원인은 뭘까. 대통령부터 촌부까지 전 국민의 일치단결된 애국심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의 첨단 전투체계 및 훈련 프로그램 지원이 우크라이나가 선전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세계 2위의 군사 대국인 러시아 군대가 환경 변화에 기인한 취약점을 인식하지 못한 점 등도 한 원인이겠다.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하면 항공기나 전차 같은 화력을 먼저 떠올릴 듯하다. 하지만 화력은 부대의 순간 전투력을 나타내며, 이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물류다. 전투부대에 필요한 물자를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것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군대에서 이러한 역할을 통틀어 ‘병참’(military logistics)이라 한다. 병참의 중요성은 여러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폴레옹 이전의 프랑스군은 전쟁 지역에서 약탈하거나 상인에게 구매해 물자를 보충했다. 충분치 못한 공급은 부대를 기근에 시달리게 하거나 병사들의 이탈을 불렀다. 반면 나폴레옹은 물자를 중앙 체제로 관리, 전략지에 재고를 비축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공급을 실현했다. 이는 유럽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의 승리 전략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이 병참 전략은 모든 상황에서 만능은 아니었다. 장거리 이동을 요하는 러시아 원정에서는 오히려 실패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이동성을 생각하지 않은 군수 물자의 재고로 인해 다량의 대포가 버려졌고, 포병대가 주전력이었던 나폴레옹 군대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병참은 체계적 관리를 필요로 한다. 미군의 경우 현대전의 다양한 상황을 감안해 정비에 필요한 부품 규격을 통일하고 군수 자동화 운영체계를 도입하는 등 병참 능력을 적극적으로 개선했다. 그 결과 걸프전 당시 8일 소요되던 수송 기간을 이라크전에서 40시간으로 단축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전에서 병참은 예전처럼 전투식량, 무기의 물리적 공급을 넘어 전쟁 환경에 부합하는 병참 작전 고도화가 중요하다. 우크라이나전에서의 또 하나의 교훈은 시스템적 사고의 필요성이다. 최근 우리 군은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을 전투체계에 접목하는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육군은 ‘아미타이거 4.0’, ‘드론봇 전투체계’, ‘워리어 플랫폼’의 3대 전투체계 추진을 통해 제4차 산업혁명 기술로 지상군의 혁신적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공군은 ‘에어포스 퀀텀 5.0’ 비전하에 지능형 지휘 결심 체계를 구축하고 병참 효율화를 추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까?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의 요소 기술들을 전투체계에 도입하는 것 자체로는 부족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전쟁 패러다임과 신기술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전술 자원을 효과적으로 지휘할 시스템적 사고가 가능한 전문인력 양성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군·산학연 협력 기반을 두텁게 해 군의 기간(基幹)인 장교들이 학계와 산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습득하고 지속적인 보수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각군 장교들이 시스템적 사고에 입각한 상황 분석 능력과 과학에 기반한 의사결정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는 안보 위기 속에서 평소에도 전쟁에 대비해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검증하고 위급 상황 대비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가상 상황 훈련을 통해 실전 대응력을 강화하는 것이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를 국가 재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하자.
  • SCMP “시진핑, 유럽 지도자 초대해 나폴레옹 대관식 원해” 진실 공방

    SCMP “시진핑, 유럽 지도자 초대해 나폴레옹 대관식 원해” 진실 공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1월 유럽 주요 4개국 정상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나폴레옹 3세처럼 화려한 대관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가 진실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SCMP는 20일 “‘고위 외교 소식통’이 유럽연합(EU)의 해당 국가들이 11월 베이징 방문 초청을 받았음을 확인했다”고 재차 보도했다. 이어 이 소식통이 EU-중국 문제에 밀접하게 관련된 ‘믿을 수 있는 소식통’이라고 설명했다. 이틀 전 이 매체는 유럽발 기사를 통해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유럽 정상들이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남에 초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SCMP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중국의 초청을 받았다”며 “그러나 아직 수락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초청 날짜가 오는 10월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 직후라는 사실은 시 주석이 3연임을 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 보도에 대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튿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정보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다”며 “그건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그러자 다음날 SCMP는 후속 보도를 통해 “‘믿을 수 있는 소식통’은 이들 EU 회원국이 11월 방문 가능성에 대한 접촉을 받았고 현재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지 숙고하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소식통에 따르면 시 주석이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20차 당대회 이후 베이징에 이들 지도자가 당도하는 일정을 놓고 베를린과 파리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내 생각에 시 주석은 나폴레옹 3세처럼 세계 지도자들이 베이징으로 와서 자신의 3연임을 축하하는 대관식 같은 것을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정부의 초청은 여전히 비공식이며 추후 공식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유럽 정상들이 베이징을 방문하게 되면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3년 가까이 중단됐던 중국의 대면 외교가 재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식통은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해당 회담에 대한 준비를 위해 오는 9월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길에 유럽을 들를 것이라며 “실현 가능한 게 무엇인지 가늠하는 것은 왕 부장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EU 주요 회원국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문제에 중국과 건설적으로 협력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전쟁의 원인과 영향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있고 그것은 잘 알려져 있다”며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중국과 유럽의 궁극적인 공통분모가 있다면 무엇이겠느냐”고 되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중국과 유럽이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분야로는 대량살상무기 사용 반대, 분리주의 공화국 승인 거부, 식량 안보와 인도주의적 지원 등이라고 SCMP는 전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점 하나. 문제의 소식통이 왜 시진핑 주석이 바라는 대관식을 나폴레옹 1세(보나파르트)가 아니고 나폴레옹 3세(루이)의 대관식이라고 지적했을까 하는 점이다. 루이는 보나파르트의 직계가 아니었다. 보나파르트의 첫 부인 조세핀이 데려온 딸과 보나파르트의 동생 루이가 결혼해 낳은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헌법에 누구도 해산시킬 수 없던 의회를 강제 해산하고, 헌법 개정을 국민투표에 부쳐 10년 임기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된 뒤 다시 국민투표를 실시해 제정의 부활을 승인받고 제2공화정을 끝장 내고 제2 제정을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뜻에서 보나파르트보다 루이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시 주석이 구상하는 대관식에 가깝다고 본 것이다.
  • 권력을 위해… 神까지 이용한 정복자 [그 책속 이미지]

    권력을 위해… 神까지 이용한 정복자 [그 책속 이미지]

    나폴레옹은 왜 십자가를 붙들고 있을까. 나폴레옹은 “이슬람교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고 “종교를 가져야 한다면 태양을 숭배하겠다”고 했던 인물이다. 게다가 당시는 교황이 프랑스혁명을 ‘악마의 혁명’이라고 비난하고, 혁명군이 바티칸에 쳐들어가 교황을 체포했던 일까지 벌어졌던 시기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영리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지지자 중 상당수가 신앙을 버리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영향력이 남은 가톨릭이 자신의 대의명분을 지지해 주는 그림도 그렸다. 십자가를 붙들면 정치적으로 얻을 것이 더 많던 그는 1802년 교황 피우스 7세와 정교협약을 맺었다. 이는 나폴레옹이 펼친 정책 중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평가받는다. 지난 4월 프랑스 대선에 나선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나폴레옹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왜 여전히 나폴레옹일까.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방대하게 다룬 나폴레옹의 전기를 읽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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