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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폴레옹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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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 크렘린(세계 문화유산 순례:45)

    ◎탑·성곽·성당 어우러진 ‘종합건축의 완성품’/이반3세,512년전 통일러시아 과시위해 건립/탑높이 20∼95m… 나폴레옹 침입땐 진군나팔 크렘린을 어디서부터 얘기할 것인가.무척 힘든 일이다.고딕양식인 20개의 크고 작은 탑,바로코와 로코코양식을 대표하는 4개의 대성당,1천45개의 총안을 가진 둘레 2천235m의 성벽 등 모두가 값진 보물이다.모스크바 강 건너편에는 고성의 탑들이,붉은광장에는 아름다운 성벽들이,성벽사이로는 금장의 돔들이 여기 저기 솟아올라 저마다 색다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크렘린의 유적군을 굳이 분류한다면 탑,성곽,성당건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이 가운데 크렘린다운 상징건조물은 진홍빛의 크고 작은 탑과 노란 성곽이다.탑들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마르코 루포와 알레비오소 프리아지네 등이 설계했다.단순히 외장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전투용,평시용등 그 쓰임새가 다양한 건조물이다.관광객들이 입장권을 끊고 나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쿠타퍄 탑이다.그리고 총안무늬의 다리를 지난 다음 트로이츠카야 탑에 다다른다.모두 5개이상 전투용 총구를 가진 이들 탑 지하2층에는 크렘린방어용 탄약을 비축하도록 설계됐다.16∼17세기에는 러시아 다른 지역의 탑들과 마찬가지로 죄수를 가두는 감옥역할도 해냈다.이들 탑 맞은편 스파스카야 탑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들을 맞는 개선문으로도 사용됐다.19세기 초 나폴레옹 군이 진입할 때 진군 나팔소리를 울렸던 곳도 여기다.높이가 20∼95m까지 다양한 이들 탑을 지을 당시 용도는 전투용의 감시초소였다. ○성벽둘레 2,235m 1937년 스탈린시대 크렘린은 사치가 대단했다.건축물에 박힌 루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루비가 크렘린안의 5개 탑 꼭대기에 설치됐기 때문이다.대형 별 모양의 이 보석은 당대 러시아 최고의 건축설계사인 표드르 페도로브스키가 제작한 것이다.가장 큰 루비별은 니콜스카야와 스파스카야 탑 꼭대기에 설치됐다.직경이 3·75m,무게는 1·5t이 넘는다.이처럼 엄청난 무게의 붉은 별보석은 바람이 부는대로 돌도록 설계됐다. 크렘린 성곽에는 노란빛이 감돌았다.원래 크렘린의 벽은 갈참나무였으나 13세기 몽고 침입후 한세기쯤 지나 화강암으로 바꾸기 시작했다.크렘린을 한때 ‘흰돌도시’로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탑과 탑사이를 잇는 크렘린 벽에는 모두 1천45군데의 총구가 있다.총구는 가로 세로 2m나 돼 적들이 크렘린을 둘러싸면 총구를 나무방패로 막았다.그 대신 이웃의 작은 구멍을 통해 화염을 내뿜었다고 한다.성벽의 두께는 3.5∼6.5m로 현대식 화기에도 끄덕없다는 것이다. 12세기 유리 돌고루키 왕자때 시작된 크렘린 역사는 1382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이때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모든 것이 불에 탔다.그래서 재건에 들어가 이반3세 때인 1485년쯤 오늘의 크렘린이 완성됐다.성곽은 벽돌로 다시 치장됐고 우스펜스키 성당 등 내부 주요건물이 1백여년간에 걸쳐 복원됐다.이반3세가 크렘린을 전력투구해 복원한 까닭은 통일 러시아의 힘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탑은 전투용 감시초소 이반3세는 블라디미르와 같은 전국 각지에서 토목기사·건축가들을 동원했다.그리고 르네상스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던 이탈리아의 아리스토텔레 피오라반테,피에트로 안토니오 솔라리,마르코 루포등을 러시아로 불러들였다.이 가운데 12세기 러시아건축물의 대표격인 우스펜스키 성당은 바로 피오라반테가 감독한 건축물이다.이반3세는 피오라반테에게 러시아 전국을 여행시켜 주며 러시아식 건축양식으로 성당을 짓도록 독려했다.우스펜스키 성당은 조밀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면서도 현대식 공법이 아니면 뽑아내기 힘든 넓은 내부공간을 지금도 자랑하고 있다. 크렘린 안 4개의 대성당은 모두 르네상스시대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화려했다.르네상스양식의 벽화와 성화,금은 상들리에로 가득차 있다.12세기의 성화 ‘세인트 조지’‘삼위일체’,11세기 비잔틴양식으로 그린 ‘블라디미르의 여인’등은 크렘린 관광객을 사로잡는다.아르항겔스키 성당,블라고베쉬첸스키 성당에는 복원하지 못한 각종 프레스코와 성화가 아직도 많다.크렘린역사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르네상스시대 예술품 복원이 한창이다.이 대성당들은 화려했을 뿐더러 사치를 한껏 누렸다.1812년 나폴레옹이 크렘린을 점령했을 때 부하들이 마굿간에서 대량의 금·은괴를 약탈할 정도였다. ○4개 대성당 내부 화려 옛소련과 러시아정부의 크렘린 복원노력은 대단했다.재미있는 사실은 레닌조차도 혁명후 1918년 포고령으로 크렘린안의 모든 건축물과 예술품울 보호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제2차 세계대전이후 스탈린 시대에는 5개의 주요 탑 상층부 모두에 금과 구리를 입혔다. ◎여행가이드/대회의당서 ‘백조의 호수’ ‘호두까지 인형’발레 관람 크렘린은 붉은 광장과 바로 이웃했다.내부정원은 물론이지만 붉은 광장,모스크바 강위에 세워진 교각에서 크렘린을 보는 경치는 각별하다.밤시간의 조명도 화려해 모스크바 강 수면 위로 드러나는 야경 또한 일품이다.그리고 러시아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옐친대통령이 근무하는 ‘대통령궁’에도 관광객들이 15m 전방까지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다.크렘린내 대회의당은 발레프로그램을 직접 관람할 수 있게 해놓은 유명한 극장 가운데 하나.크렘린 관광객들은 여름 휴가철만 빼놓고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 등 러시아 고전발레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 이집트 룩소르(세계 문화유산 순례:40)

    ◎고대 애 최대신전 ‘아몬라’ 우뚝/길이 260m 탑문너비 65m ‘거대한 궁전’/1천개의 스핑크스 좌우로 3㎞ 행렬 ‘장관’ 고대 이집트의 부와 영화는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1100년 사이의 신왕조때 절정에 이르렀다.이 번영기때 이집트의 영토는 북으로 유프라테스강에서 남으로는 지금의 북수단에 이르렀다.그리고 람세스왕조 때처럼 걸물의 파라오들이 등장해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불세출의 파라오 람세스 2세도 이 기간중인 기원전 1279년부터 기원전 1212년까지 67년을 재위했다.그래서 아부 심벨 신전을 비롯한 숱한 신전과 기념물들을 남길수 있었다. 이 1천여년동안 왕조의 수도는 바로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테베이다.그리스의 작가 호머도 람세스 2세의 배려로 이집트에 머물렀다.호머는 대서사시 ‘일리야드’에서 테베를 ‘1천개의 출입문을 가진 도시’라고 묘사했다.파라오들은 공들여 신전을 지었다.외부의 적으로부터 왕국을 지키고 왕권을 넘보며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는 내부의 적들로부터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그래서 파라오들은 신전건축을 가장 중요한 국사중 하나로 삼았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해가 솟는 동쪽은 생명과 번영의 땅이었다.대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음의 땅으로 여겼다.풍요와 재생의 상징인 신들의 거처를 나일강 동쪽에 세웠던 까닭도 여기 있다.파라오들의 최후의 안식처인 ‘왕들의 계곡’,‘왕비들의 계곡’,피라미드는 나일강 서안에 세웠다.수도 카이로에서 나일강 동안을 따라 남쪽으로 700㎞에 위치한 테베는 운하로 양분돼 있다.그 운하 북쪽에 신전들의 도시 룩소르가,남쪽에는 역시 신전들로 들어찬 카르낙이 자리했다. 오늘의 현대 도시 룩소르에서도 지난날 영광의 흔적을 볼 수 있다.가장 대표적인 곳은 ‘신들의 왕’인 태양신 아몬 라의 신전이다.고대 이집트인들이 ‘아몬신의 남쪽 궁전’이라고 불렀던 곳이다.출입문에서 뒷편 끝까지의 길이가 260m에 달하는 고대 이집트의 최대 신전인 것이다. 신전 출입문은 필론이라는 탑문으로 장식됐다.탑문 좌우의 너비는 65m에 달한다.탑문에는 람세스 2세를 기리는 그림과 글씨가 들어 있다.히타이트인들을물리친 유명한 카데슈 전투장면을 릴리프로 처리하면서 그의 전공을 상형문자로 새겼다.출입구 좌우에는 높이 25m의 쌍동이 오벨리스크를 나란히 세웠는데 지금은 왼편 것 하나만 남았다.1833년 나폴레옹군대가 뺏아간 오른쪽 오벨리스크는 지금 파리의 콩코드광장 중앙에 서있다.탑문 앞쪽에는 역시 람세스 2세의 거대한 대리석 석상을 세웠다.왕비 네페르타리와 공주 메리타몬의 석상도 세웠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신전 입구에서 북쪽 카르낙의 신전에 이르는 3㎞는 ‘스핑크스의 길’이다.사자의 몸에 양의 머리를 한 1천개의 스핑크스들이 좌우로 늘어섰다.양은 신들의 왕인 아몬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지금 이 스핑크스 거리에 나온 유물은 먼저 출토한 일부 출토품에 지나지 않는다. 카르낙의 신전도 태양신 아몬 라에 바쳐진 것이다.테베에 있는 신전들 중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거대한 돌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카르낙 신전은 모두 3부분으로 구분됐다.주신전은 신들의 왕인 아몬 라의 신전,왼편으로 그의 아들 혼슈,맞은편 것은 아몬의 부인 무트신의 신전이다.고대 이집트의 주신들은 이후 탄생한 기독교 교리의 성부·성자·성신처럼 성가족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카르낙 대신전은 기둥의 숲이다.세계 최대의 기둥 신전이기도 한 카르낙 대신전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보다도 더 큰 규모다.그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길이 102m,너비 53m에 달하는 홀에는 높이 23m에 이르는 사암 돌기둥 134개가 서있다.활짝 핀 파피루스 꽃모양의 기둥머리 장식을 한 돌기둥들인데 기둥머리 위쪽에는 대형 돌 원판을 얹어놓았다.기둥의 웅장함과 기둥 사이를 통해 간간히 들어오는 햇빛,그리고 그 햇빛이 만들어내는 돌기둥의 그늘이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해낸다.파라오 세티 1세때 증축을 시작해 그의 아들 람세스 2세때 완성한 신전으로 8만여명이 넘는 석공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신전의 돌기둥과 벽면을 장식한 그림들은 매우 독특한 기법으로 처리됐다.신체를 그릴때 이집트 화가들은 상형문자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신체 각부분을 하나의 독립된 상형문자처럼 그렸다.그리고신체 각부분은 화가 자신들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쪽에서 그렸다.머리는 측면,어깨와 상반신은 전면,신체는 허리에서 약간 틀어져 배꼽이 보이도록 했다.다리와 발은 측면에서 바라본 행태로 그렸다.신체 각부분을 여러 면에서 보이는대로 그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매우 신비스런 인상을 안겨주었다. 돌기둥의 숲 옆에는 신들의 호수를 만들었다.한변의 길이가 120m에 달하는 인공호수는 창조주 아몬신이 소유한 ‘영원의 대양’을 상징한 것이다.매일 아침 신관들은 이 신들의 호수에 몸을 담그고 제의를 올렸다.신전을 축성하는데도 이 호수물을 썼다.이집트는 신들이 다스리는 왕국이었고 파라오는 신의 대리인이자 살아있는 신이었다. ◎여행 가이드/나일강변 유적 즐비… ‘왕들·왕비들의 계곡’ 볼만 나일강 상류 일대에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유적들이 산재돼 있다.수도 카이로에서 아부 심벨사원이나 카르낙·룩소르로의 여행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좋다.카이로 공항에서 카르낙을 왕복하는 항공편이 수시로 있다. 소요시간은카이로 공항에서 아스완까지 약 1시간 30분.다시 남으로 30분쯤 내려가면 아부 심벨이다.아부 심벨 공항에서는 약 1시간 정도 기착하는데 이 시간을 이용해 아부 심벨 신전을 구경한다.기다리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40분 정도 올라가면 룩소르 공항에 도착한다.룩소르에서는 각자의 여행 사정에 따라 주변에 산재한 유적들을 돌아보면 된다.카르낙에서 나일강 건너편 사막지대로 들어가면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등 수많은 무덤들이 있다.투탄카멘왕의 무덤,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 등이 도처에 분포됐다. 여유가 있으면 아스완 하이댐과,이 댐으로 생겨난 인공호수 낫세르호의 위용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 독선과 아집의 역사/바바라 터크먼 지음(화제의 책)

    ◎권력욕에 사로잡힌 통치자들의 탐욕 세계의 권력자들에 의해 자행된 숱한 어리석음의 역사를 기록.권력욕에 사로잡힌 통치자의 탐욕과 독선이 어떻게 한 나라를 망치고 역사의 비극을 부르는가,또 그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어떤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아둔함의 전형을 보여주는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개혁보다는 타락을 택한 르네상스시대의 교황들,야당과 여당의 정쟁으로 날을 지새다 미국을 잃어버린 대영제국,정권 재창출에 골몰하다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한 존슨과 닉슨 등 세계사의 네가지 결정적인 사건을 다룬다. 조지 3세 치하의 영국 내각은 왜 식민지 아메리카와 평화롭게 지내지 않고 억압하는 쪽을 택해 화를 자초했으며,카를 12세와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는 역사상 되풀이된 비극적인 결과를 알면서도 왜 러시아를 침공했을까,장개석은 왜 숱한 경고와 개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을까….지은이는 이 책에서 통치자의 독선과 아집이 악정을 낳았던 사례들을 낱낱이 소개한다.이를 통해 통치라는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가 어떻게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낳는지,그 현상과 원인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조민·조석현 옮김,자작나무,전2권 각권 7천800원.
  • 과학자들 존중하는 사회/류재천 KIST 책임연구원(굄돌)

    미국의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가 무사히 화성에 착륙하여,약간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순조롭게 화성탐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몇 년 후에는 유인 화성 탐사선이,그리고 또 얼마후에는 인류의 화성여행이 가능해지리라는 매우 밝은 뉴스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절대적 힘은 물론 과학기술의 힘이었을 것이다.나폴레옹은 여러곳을 원정다닐때 여러 과학자들을 대동하고 출정하여 그 지방에 관한 연구조사를 철저히 했다고 하며 그의 원래 꿈이 과학자여서 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고 한다.최근엔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이용하여 복제양을 탄생시킨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연구자들이 인간혈액의 주성분들을 양과 같은 동물체내에서 생산,분리하여 여러 의학적 용도로의 이용 가능성 타진을 하고 있다는 외신을 접한바 있다.또한 앞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1백억명에 도달할 전 인류를 먹여살릴수 있는 식량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도 유전공학기법을 이용한 과학기술이라는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다. 이렇듯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가깝게는 일상생활에서의 편리함,품질,가격이란 의미들로서 우리 주위에 늘 있으며,길게는 미래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또 우리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서 역설되고 있는 것이다.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무한 경쟁이란 말을 많이 한다.과학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있다.우리나라 내부에서야 경쟁력 제고의 일환으로 무한경쟁을 한다 하더라도,국가간의 먹느냐 먹히느냐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뼈 아픈 과거의 치욕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과학기술에서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일이다. ‘There is no great genius without some touch of madness’ 즉 무엇엔가 미치지 않고서는 위대한 천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획일화된 기존의 잣대와 변하지 않는 시선보다는,미친짓 같아 보이더라도 보다 넓은 사고와 다양성을 가질수 있도록 자유도(degree of freedom)를 넓혀 주어 날로 성숙하고 발전하는 우리 과학기술자를 포용해 주자.우리 과학기술자들의 밝은 웃음과 끊임없는 노력에 이제는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에 대한 큰 기대를 해도 되지 않을까?
  • 독일 뷔르츠부르크(세계 문화유산 순례:37)

    ◎13세기 축조 거대한 성채요새 우뚝/왕족겸 주교가 외세막기위해 강언덕에 세워/70여년 걸쳐 건설한 사찰관 ‘레지덴츠’ 한눈에 모차르트는 말년에 독일 중남부 뷔르츠부르크(Wurtzburg)를 들른 적이 있다.‘진혼미사곡’을 작곡하고 숨을 거두기 2년전인 1789년의 일이다.자신의 활동무대 비엔나를 떠나 레오폴드 2세의 황제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이었다.지친 말을 갈아 타고 커피나 한잔하면서 휴식을 취할 요량이었는데,그만 1년동안을 뷔르츠부르크에 눌러앉고 말았다. 모차르트 자신이 뷔르츠부르크에 머물렀다기보다는 이 도시의 강렬한 인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는지 모른다.뷔르츠부르크에 매료된 사람이 어디 모차르트 뿐이겠는가.12세기초 문인 고트프리트 폰 비에트로는 뷔르츠부르크를 ‘지상낙원’이라고 찬양했다.또 헤르만 헤세가 1930년 “만일 내가 출생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뷔르츠부르크를 택할것”이라고 부러워했던 곳도 여기다. ○모차르트의 휴식처로 여름 한 철을 빼고는 잿빛 하늘로 뒤덮인 뷔르츠부르크.그러나 ‘지상낙원’으로 꼽혔던 까닭을 뷔르츠부르크에 들어서면 곧 바로 알아 차릴수 있다.풀잎이라는 뜻의 ‘뷔르츠(Wurz)’와 언덕이라는 의미의 ‘부르크(burg)’에서 알 수 있듯 뷔르츠부르크는 ‘풀잎이 많은 언덕’이다.마인츠 강이 도시의 중심을 가로 질러 흐르고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포도나무는 옛날 약초언덕의 명성을 그대로 떠올려 주었다. 뷔르츠부르크에 들어서면 산위에 우뚝한 마리엔부르크 요새가 사람들을 압도한다.1천200년전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고성이기도 한데,옛 이름은 뷔르츠부르크요새였다.그러니까 요새는 뷔르츠부르크라는 도시 역사의 시원이다.요새의 주인은 당시 세력을 떨치던 왕족이면서 주교직을 겸한 이른바 ‘왕족­주교’들이었다.일반 시민들이 감히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을 정도의 위세를 누렸던 그들은 위세와 명성에 걸맞는 거처를 필요로 했다.그래서 1253년 거처이자 성채이기도 한 요새를 축조했던 것이다. 마리엔부르크 성채의 권력자들은 물론 주민들을 호령했고 성채는 행정보다는 튼튼한 요새의 성격이 강했다.마리엔부르크 성채는 중세 유럽의 암흑기에 빈번했던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요새였지만 유지비 조달과 주민 통치에 불편에는 많은 문제점이 뒤따랐다.그러는 사이 분열된 독일연방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침입자의 위험성도 점차 사라졌다. 그래서 요새의 권력자들은 산에서 내려왔다.마리엔부르크 요새에서 내려다 보면 도심 한 가운데 성당으로 둘러싸인 레지덴츠가 한 눈에 들어왔다.왕족 출신의 쇤보른 주교가 1719년부터 1795년까지 70여년동안에 걸쳐 평지에 건설한 새로운 권력의 아성이다.주민들의 부역과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다는 레지덴츠의 위용은 지금도 대단하다. 레지덴츠 입구의 분수대는 무심히 넘길수 없는 유적이다.분수대에는 레지덴츠를 만든 건축가와 화가·조각가들이 서 있다.중세풍의 고압적이고 투박한 여느 건축물과는 달리 레지덴츠는 우아한 바로코풍을 자랑한다.오죽했으면 프랑스의 나폴레옹황제조차 혀를 내둘렀을까.레지덴츠에 들러 하루밤을 보낸 황제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제관”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풀잎이 많은 언덕’으로 건축가 빌타자르 노이만이 기둥없는 특수공법으로 건축한 레지덴츠는 2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건축가들로부터 격찬의 대상이 되고 있다.레지덴츠 입구에서 50마르크짜리 지폐를 새삼스레 꺼내 보았다.왜냐하면 그 속에 독일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건축가 노이만의 얼굴이 들어있기 때문이다.뛰어난 음향효과를 가진 황제의 방에서는 지금도 모짜르트 음악만을 주제로 한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티에폴로는 당대의 미켈란젤로와 쌍벽을 이루는 화가였다.미켈란젤로가 로마 중심의 화가였다면,티에폴로는 독일을 주무대로 활약했던 거장이었다.티에폴로가 천정화를 만드는데 사용된 비용은 요즘 독일 화폐로 따져 150만마르크(한화 약 7억5천만원)로 추산됐다. ○나폴레옹 황제도 감탄 정원을 거닐다 만나는 조각들은 거의가 틸만 슈나이더의 작품이다. 우아하고 섬세한 선을 조화롭게 표현한 독일 후기 고딕시대의 대표적인 조각가의 작품인 것이다.왼팔이 떨어져 나간 ‘아담과 이브’에서는 슈나이더의 뛰어난 손길을 느낄수 있다.지금은 레지덴츠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로 등록돼 마리엔베르크성의 박물관에 보관됐다.레지덴츠는 지난 1945년 2차세계전쟁 당시 전파됐으나 독일이 갖고 있던 자료로 거의 원상에 가깝도록 복원해 해놓았다. ◎여행가이드/프랑크푸르트서 동남쪽 100㎞ 위치 프랑크푸르트에서 남동쪽으로 약100㎞ 떨어진 뷔르츠부르크는 유명한 로만티크가도의 시발점.로만티크가도는 낭만가도라는 뜻이 아니라 알프스 산을 넘어 로마에 이르는 통상로라는 의미이다.하지만 오스트리아와의 접경 마을 퓌센까지 350㎞에 이르는 로만티크 가도는 낭만에 젖어있다. 뷔르츠부르크 시내의 넘치는 활력은 독일 도시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노상 카페가 늘어선 거리는 독일이라기보다는 프랑스에 와있다는 착각을 전해줄 정도이다.성자들의 석상이 늘어서 있는 돌다리 알테마인다리(18세기초) 아래로는 뷔르츠부르크의 낭만이 흐른다.
  • 「우리시대의 어른」은 정녕 없는가(박갑천 칼럼)

    얼마전 한 백화점이 올해 「성년의 날」에 성년이 되는 남녀 200여명에게 설문조사한 내용이 알려졌다.그 가운데 우리 시대에 참다운 어른은 없다는데 많은 응답이 나와서 주목을 끌게 한다.여기서의 「어른」은 「사회지도자」를 뜻한다. 성년이 되는 우리 젊은이들은 임란때의 구국영웅 이순신 장군을 염두에 두었을수 있다.외국사례긴 하지만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점령당하여 기죽어있는 독일국민에게 횃불을 비친 피히테를 생각했던건지도 모른다.그는 서슬퍼런 총칼앞에서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란 논제아래 14번에 걸쳐 강연하는 가운데 독일혼을 불어넣었다.그후 베를린대학 초대총장이 되고서 독일해방전쟁이 일어났을땐 종군을 자원했던 실천의 지식인이었다. 그렇긴해도 그들의 행적은 국난속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졌다고 할수도 있다.이는 일제강점 35년을 뒤돌아보면서도 느낄수 있는 일.「어른」으로 받들어 고개숙여야할 이름은 한둘이 아니잖은가.하나,개중에는 흠은 가리워진채 공적만 돋보이게된 경우도 없진 않을 것이다.「존경받을어른」은 그렇게 시대상에 관계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학의 자세로 학의 소리내는 어른.우리 새 성년들이 느낀 그대로 그런 어른 찾기 어려운게 오늘의 현실이긴 하다.하지만 우리사회 풍토가 그같은 어른의 자리를 뺏어버리고 있는 측면은 없는지.고독한 패배자로 만들어 내치거나 지기를 빼내고 속진으로 멱감기는 분위기.그래서 참다운 어른은 악화에 쫓긴 양화로서 「여항의 산속」에 숨어들어 가뭇없어진것 아닐까. 아니,사실은 우리곁에서 빛을 뿜고있건만 이욕에 찌든 눈들이 제대로 못보고 있을수도 있다.준마도 태마속에 섞이면 밝은 눈이 없는 한 옴나위없이 노마신세 면치못하는 법.옛날 한명이라는 세객이 춘신군에게 했던 말도 그것이다.천리마(기)가 짐말과 함께 소금짐 나르노라 땀흘리며 산길을 오른다.마침 그곳을 지나던 백락이 보고서 눈물흘리며 제옷을 벗어 입혀준다.기쁨에 거늑해진 이 준마는 히힝 큰소리쳐 운다(「전국책·초」).이 천리마같은 어른을 우리가 못보는건 아닌지. 어른을 기구있게 받들 줄부터 알아야 한다.그런 가정·사회만이 어른을 제대로 볼 수 있고 그 소리도 들을수 있다.없다고 한 눈으로 우리 마음자리를 살펴보자.가정의 달도 이울어가누나.〈칼럼니스트〉
  • 이집트 피라미드:중(세계 문화유산 순례:30)

    ◎돌덩이 230만개 입체퍼즐 짜맞춘듯/직선과 각에만 의존하여 영원을 향해 쌓아올린 돌계단/그 완벽한 설계는 불가사의/파라오의 5천년 동행자 「공포의 아버지」 스핑크스는 현대 공해앞에 기력을 잃고… 쿠푸왕의 대피라미드가 안겨주는 불가사의함은 무덤의 내부로 들어가 돌들이 짜맞춰 쌓여진 구조를 보면서 점점 더 생생하게 실감하게 된다.대피라미드에는 북면에 단하나뿐인 입구가 나있다.출입구가 발견된 경위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으나 기원후 9세기 이슬람에 정복됐을 당시 마아문이라는 칼리프(왕)의 명령으로 찾아내 내부통로를 막은 돌들을 치웠다는게 정설이다.현재 이 출입구는 봉쇄돼있고 그밑에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임시출입구가 나있다. 내부에서 보면 피라미드를 쌓은 돌들이 일정한 규격으로 다듬은 다음 차곡차곡 쌓은게 아니라 돌의 크기가 제각각임을 알수 있다.서로 크기가 다른 돌들을 사방으로 이가 맞물리듯 짜맞추어서 구조물의 안정성을 크게 높였다.돌의 기울기도 바깥쪽을 안쪽보다 조금 높게 쌓아 바깥으로 무너짐을 막았다.그래서 전체적으로 돌을 쌓은 방식은 마치 입체 퍼즐을 짜맞추어 놓은 것같은 느낌을 준다.그렇다면 퍼즐조각을 준비하듯 애초에 완벽한 설계도를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는 말인가.피라미드와 관련된 여러 불가사의중 좀체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이다. 출입구부터 난 통로는 가운데 무덤방인 현실까지 이어진다.가로세로 1.2m쯤 되는 정사각형 통로를 한참 들어가면 통로 높이가 9m정도로 높아진 뒤 이어 「왕비의 방」이라 부르는 작은 방이 하나 나온다.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피라미드에는 현실을 포함해 모두 3개의 방이 만들어져 있다.이 「왕비의 방」은 원래 파라오의 현실로 만들었는데 왕이 예상보다 오래 살게 되자 피라미드를 확장하고 현실 위치도 더 높은 곳으로 옮기며 빈방으로 남게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파라오의 시신이 안치됐던 현실은 지상에서 42m높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 묘실은 「왕비의 방」에서 긴 회랑을 통과해서 올라가게 돼있다.묘실의 천정은 총중량이 400t에 이르는 9개의 석재들이 수직으로 놓여져 있는데 이 엄청난 부하를분산시키기 위해 위쪽에 따로 떨어진 모두 5개 층의 격실을 만들어 놓았다.왕의 석관은 평편한 돌조각을 깐 바닥위에 놓여져 있다.원래 이 석관안에는 쿠푸왕의 미라가 안치됐다. 미라는 값진 목걸이와 보석 장신구들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황금가면을 썼다.주위에는 파라오가 저 세상에서 먹을 식량도 준비했고 가구까지 준비해 두었으나 지금은 모두 도굴당해 뚜껑도 없이 텅빈 석관만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석관이 놓인 위치는 바로 무덤의 모든 기가 한곳으로 모이는 자리라고 한다.종이 따위로 소형 피라미드 모형을 만든 다음 무딘 면도칼을 바로 이 위치에 놓으면 날이 날카롭게 선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증명된바 있다고 안내인은 말하나 사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장례의식이 끝나면 묘실입구는 커다란 바윗돌로 막았다.신관들은 수직 갱을 통해 밖으로 나왔으며 갱은 안쪽에 미리 마련해둔 커다란 바위돌로 차례차례 막아 외부에서는 다시 묘실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피라미드 내부의 미로같은 통로들을 오르내리다 보면 오줌 지린내같은 심한악취가 나는데 관광객들이 내뿜는 숨과 땀등이 돌벽에 부딪쳐서 일으키는 화학변화 탓이라고 한다.돌 표면에 붙은 이 화학물질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개월에 한번씩 해주는데 이 작업기간중에는 관광객들의 피라미드 내부 출입을 막는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인간의 불멸에 대한 자신들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만든 돌 구조물이다.이 돌 구조물들은 단순함과 장엄함이 어우러져 흠잡을데 없이 완벽한 조화를 연출해내고있다.직선이 이처럼 완벽히 다스려져 표현된 건축물이 언제 또 있었던가.고대 이집트인들은 오직 직선과 각에만 의존해 차곡차곡 영원불멸을 향해 올라가는 돌 계단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3개의 거대 피라미드를 완성시킨뒤 이집트인들은 이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임을 알리고 싶어서였던듯 지상의 존재들을 형상화시킨 거대한 석상을 그 앞에 만들어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스핑크스」였다.가운데 피라미드의 주인공인 케프론왕의 얼굴과 용맹의 상징인 사자의 몸체를 가진 이 돌조각의 일차적인 임무는 피라미드의수호신이었을 것이다.이 수호신은 역사의 여명부터 지금까지 5천여년 동안 파라오의 동행자였고 한편으로는 신의 위치에 있었던 파라오 자신이었다. 스핑크스는 기자 모래언덕의 석회암 바위돌을 깍아 만든 것으로 표면을 장식한 돌 타일조각이 떨어져나가 몸통 곳곳에서 지층이 그대로 드러나있다.원래 무슨 이름으로 불렸는지 기록은 없지만 이곳에 들어온 아랍인들은 「아블 홀(공포의 아버지)」로 불렀고 스핑크스란 이름은 사람과 사자 「둘이 합쳐진 것」이란 뜻으로 그리스인들이 붙였다.지금은 코와 턱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입술도 절반이 짤려나간 흉한 모습이지만 높이 20m,머리에서 다리끝까지의 길이가 78m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수호신이다.얼굴 폭만 4m15㎝에 이른다. 스핑크스가 손상된 첫째 원인은 무엇보다도 서부사막에서 불어오는 세찬 모래바람이었다.이 모래바람에 덮여 한때 스핑크스는 몸체 전부가 땅속에 파묻여 있었는데 후세에 이를 발굴해 지금의 모습으로 보존하게 된 것이다.역설적이지만 스핑크스를 5천년이 넘도록 지켜준 것도 바로이 사막의 모래바람이었다.주위에 쌓인 모래로 하중이 분산돼 무너져내림을 막았고 풍화에 의한 마모도 막아주었기 때문이다.모래를 치운뒤 외기에 노출되고 하중을 수직으로 받으면서 이 돌조각은 급속히 마모되고 곧곧에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아울러 인근 마을에서 쏟아내는 생활하수들이 지하암반으로 스며들고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자동차의 진동과 매연,그리고 서울 못지 않게 지독한 카이로의 대기 오염이 한번씩 비가 올때마다 내려않아 스핑크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고 한다. 파라오와 함께 5천년을 여행해온 존재.알렉산더,시저,나폴레옹등 기자의 모래언덕을 지나간 숱한 정복자들의 꿈이 낙엽처럼 사막에 나뒹굴 때도 기자 언덕을 지켜온 「공포의 아버지」가 현대의 공해 앞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오늘도 밤이 되면 스핑크스는 화려한 인공조명과 음향속에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장엄하게 버티고 서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 무성의·동상이몽… 「청문회는 춤춘다」(박갑천 칼럼)

    1814년 나폴레옹이 허방친 러시아 원정끝에 가라앉자 유럽 여러나라의 임금하며 장관들이 오스트리아의 빈에 모여든다.전쟁의 뒷수쇄를 위함이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1세,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등등이 그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꿍꿍이속이 있었다.이기회에 영토를 넓혀 보겠다는,혹은 배상금을 좀더 많이 울거내겠다는 따위. 이를테면 프랑스대표 탈레랑같은 경우는 각국 대표들의 사이를 가리틂으로써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들었다. 그러니 낮에는 사냥이나 하고 밤이면 무도회를 열면서 뒷거래흥정에 타울거릴뿐 회의가 제대로 진행될리 없었다.그러구러 그해가 저물자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회의는 크게 춤춘다. 그리고 나아가진 않는다』는 명언을 만들어낸다. 이해가 다르면 함께 자면서도 꿈이 달라진다. 같은 곳에서 같은 목표의 일을 하건만 손발이 맞지 않는다.이게바로 동상이몽. 이말은 진양의 「주원회에게 드리는글」에 나온다.원회는 주희(주자) 의자. 함께 일을 하면서도 생각이 다르면 옛날의 성인 주공(이름은단)이라해도 그속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라면서 빗대어 썼다.회의를 춤추게 한 것은 그같은 동상이몽 때문이었다. 이른바 한보청문회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문득 동상이몽이란 말을 떠올린다. 답변하는 쪽은 더 말할 것이 없지만 질문하는쪽 또한 이해의 엇결 때문인가, 「꿈」이 다른 냄새를 풍기면서 파사현정의 명분을 엷게 만든다. 증인들의 성의없고 방자한 태도도 그런 분위기와 무관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청문회는 춤춘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게 하잖은가. 그옛날의 「회의는 춤춘다」회의는 그래도 몇가지 결정을 본다. 유럽을 프랑스혁명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것,유럽의 황폐해진 정신을 제자리로 되찾고 도량하는 자유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자는 따위. 이 유명한 회의는 1백여년이 흐른 1933년 독일에서 그를 주제로한 영화 「회의는 춤춘다」 가만들어지면서 더 유명해진다. 그리고 지금도 불리는 주제가가 「단한번,두번은 없지」. 그런데 단한번이 아닌 우리의 두번째 열린 청문회는 어떤 결과를 낳을건지. 어째,쓰렁쓰렁한 냉소가 가장짙은 앙금으로 처지는 것만 같다. 국민들 마음엔 어느새 불쾌와 불신과 울분이 한켜 더 쌓여버린것 아닌가.
  • 큰 물결/미 데이비스 피셔(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역사를 「물가혁명」 4단계로 분석/인플레 시작→악화→사회불안→질서붕괴 구분 「큰 물결」이라는 제하에 수세기에 걸친 역사적 관점속에서 현재를 파악하면서 미래에 닥쳐올 수 있는 위기를 헤쳐나가려고 시도한 책이 나와 관련학자들에게 흥미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브랜다이스대학의 역사학교수인 저자 데이비드 해킷 피셔는 이 책에서 물가혁명(Price Revolution)의 결과로써 각 사회와 정치문화가 겪은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평등사회 단계적 진행 피셔에 따르면 세계는 지금 1896년에 시작한 물가혁명의 후반단계에 있다고 진단한다.그는 물가혁명은 4단계를 거쳐 진행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먼저 급격한 인구성장과 기대치의 상승으로 인한 수요증가에 의해 인플레이션이 유발됨으로써 물결이 일기 시작한다.2단계로 물가는 안정기동안 오르내리던 한계치를 벗어나게 되고 사회는 인플레이션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각 정부들과 개개 시민들은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한다.그러나 물가의 상승과 통화공급의 팽창은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킨다. 세번째 단계는 이같은 상황을 맞아 부자가 자신의 이익을 더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은 증가하고 또한 불안정이 잇따른다.마지막으로 물결은 최고조에 달하고 부서지면서 기존의 사회질서도 붕괴된다. 「큰 물결」의 주된 관심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물가혁명에 있다.피셔는 세계는 현재 확산되고 있는 불안정의 단계에 있으며 위기에 처해있는 것 같다고 진단하고 있다.그는 따라서 사회질서의 붕괴를 이끄는 불평등의 심화를 막기 위한 활발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그는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재난을 피할수 있게 하도록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재앙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그의 사고는 물결의 가장 커다란 상승이 물결로 표현되는 역사분석에서 물결의 후반기에 오기 때문에 일리있는 것이다.그는 재난을 피하는 한 방법으로서 정부가 단기적인 물가통제정책을 인위적으로 실시하고 비축된 상품들을 방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하고 있다.그는 또한 이같은위기를 극복키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교육의 개선을 제안하고 있다. 피셔가 역사적 자료들을 계량적으로 분석한 이 책에 따르면 물가가 상승한 뒤 문화를 뒤흔드는 위기가 닥쳐와 구질서가 붕괴되고 그 이후 물가상승의 다음 물결이 일기 시작하기 전까지 단기간의 안정된 시기와 사회적 발전이 찾아오는 것이 일반적 패턴이다.그는 과거 약 800여년간의 시기를 연구·분석,이 기간을 4개의 시기로 나누고 있다. 중세의 물가혁명은 1180년에 시작돼 페스트가 창궐하던 때인 1350년에 폭발했으며 그 이후에는 르네상스라는 안정기가 뒤따랐다.그 다음에 온 물가물결(Price Wave)은 1470년에 비롯돼 1680년에 끝난 30년전쟁(독일 신·구교도간의 종교전쟁)과 함께 종막을 고하고 계몽주의시대라는 안정기가 도래했다.세번째 물가혁명은 1730년에 시작돼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종막을 고한뒤 빅토리아시대의 안정기를 가져왔다. ○가족붕괴도 물결서 연유 피셔는 범죄의 물결과 가족의 붕괴를 최종적인 위기가 도래하기 전인 불안정단계의 증거로서 제시하고 있다.그는 한편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을 최종단계와 관련된 구질서붕괴의 긍정적인 일부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피셔의 분석이 완전하고 정확한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뉴욕타임스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 새로운 통찰력을 주는 흥미있는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피셔가 과거와 현재를 기술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이 신문은 다른 어떤 역사가가 이보다 더 나은 기여를 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하고 있다.원제는 「The Great Wave」,뉴욕의 옥스퍼드대 출판부 간행,30달러.
  • 중국과의 분쟁이 다가온다(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미 러처드 번스타인­로스 먼로/중의 「아주최강국 패권주의」 경계/군사력 증강·민족주의 우려… 미 적극대응 촉구 시장경제도입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 중국이니만큼 느리지만 자연스럽게 서구와 비슷한 민주주의국가가 될 것이리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고 경고한 책.특히 미국은 형편이 나아진 중국이 부드러운 용의 미소를 띠고 있는데 안심하다간 나폴레옹의 말처럼 어느날 「이미」 잠에서 깨어난 사자의 발톱에 채이고 말 것이라고 단단히 단속하고 있다. 저자인 리처드 번스타인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초대 북경특파원을 지냈으며 로스 먼로 역시 캐나다의 글로브 앤드 메일지 북경특파원을 거쳤다.현재 뉴욕타임스 서평담당자인 번스타인은 마침 이 책이 서점에 나올 무렵 등소평이 사망하는 통에 미 주요방송국 대담프로에 인기 중국전문가로 초대되어 「중국의 미소에 속지 말고 숨겨진 발톱을 경계하자」는 자신의 논점을 전파했다.최근 미 대통령 의회선거에 로비성 불법자금을 살포했다는 의혹을 받고있는 중국은 미국에서 큰반향을 얻고있는 이 책을 「편견과 인종적 차별주의에 사로잡혔다」며 강력히 성토하고 나설 정도다. ○중 “인종차별·판견” 성토 저자들의 중국경계론을 살펴보자.지난 4반세기동안 미국의 대중국 정책결정자들과 전문가들 대부분은 중국이 필연적으로 서구처럼 비이념적,실용주의적,물질주의적이 되어 점차 그들의 문화와 정치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믿어왔다.중국에 대한 이같은 비전은 80년대 중·후반까진 그런대로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낡아빠지고 잘못된 것이다.현재 중국의 여러 행동과 발언들은 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라이벌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지금 중국은 1949년 공산혁명이후 어느 때보다 열려있고 국제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말이래 등소평의 반은퇴와 함께 국정을 맡게 된 그룹들을 필두로해서 중국지도자들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목표를 꾸준히 세워오는 중이다.민족주의 감정,과거 역사의 수모를 만회하려는 열망,국제적 대국이고자 하는 욕구 등에 자극되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최강자역을 맡고자 하는 것이다. ○국제문제 사사건건 개입 80년대말이후 중국은 미국을 전략적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전략적 야망을 가로막은 제일의 장애물로 보게 된다.이에 따라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일본과 미국이 「중국견제」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을 저지하며 군사력을 크게 증강하고 이 지역 주요항로를 통제하기 위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의 입지확대를 열심히 꾀해 왔다.말 그대로 거대한 영토,내재된 힘,세계문화의 중화라는 자부심,굴욕스런 약자 취급의 수백년간을 벌충하고자 하는 열망 등이 중국을 아시아 패권쟁탈로 내몰고 있다.이 지역 어느 나라도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국제적인 일,예컨대 일본이 동중국해에서 석유채굴권을 갖고자 하고 대만이 달라이 라마를 초대할 때라든지 태국이 미국 함정의 정박을 허용하는 것 등을 할 수 없다. ○연 국방예산 870억달러 아시아에서 최고의 지위를 얻고자 하는 중국의 목표는 어느 한 나라가 아시아에서 압도적인 힘을 보유하는 것은 저지돼야 한다는 미국의 전통적 정책과 상충된다.중국의 군사력 현대화만큼 아시아의 패자가 되려는 중국의 목표와 자기 이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은 없다.중국의 공식 연 국방비는 최근 87억달러로 2천6백50억달러의 미국,5백억달러의 일본에 크게 뒤지지만 이는 숫자상의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국방에 들어가는 중국예산을 미국식으로 계산하면 최소 공식수치의 열배인 8백70억달러로 미국의 3분의1이며 일본보다 75%가 더 많다. ○중 최혜국대우 중단 필요 결국 저자들은 상당수가 믿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 변화를 거듭한 끝에 평화적이며 자유적인 민주자본주의국가가 되는 대신 『일종의 협조 조합주의적,군사대국적,민족주의적 국가로서 무솔리니나 프랑코의 파시즘과 유사한 체제가 될 것』이라는 아주 도발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인권문제를 보다 큰 소리로 제기해야 하며 현재의 지도층들과는 「냉정하며 따질 것은 따지는」 관계만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도 중단하고 세계무역기구 가입 역시 들어주지 말아야 하며무엇보다 미국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시아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중국 견제요충인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반중국적인 이 책에 대해 중국은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미국은 아시아 패권장악에서 「힘센」 중국이 장애가 되리라 싶어 마치 범죄를 저지른 악한이 자신이 기소되기 전에 희생자를 고소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이 책이 주장하는 논지가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다는 평도 많다.그러나 그동안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중국이 「힘세지만 민주적인」 사자로 변신하리라는 시나리오를 선호하던 습관을 한번 짚고 넘어가게 해주는 책이다. 원제는 「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이며 출판사는 알프레드 크놉(Alfred Knopf),300쪽,23달러.
  • 「퇴학없는 학교」… 방향감각이 옳다(박갑천 칼럼)

    신문기자 생활도 거친 현대의 미국작가 제임스 서버.그는 기계문명속에 사는 인간의 뒤웅스러움과 곰팡스러움 등을 꼬집고 비아냥거리는 유머감각으로 인기를 끌었다.초기 단편소설에 「조제핀의 영광스런 날」이 있다. 어떤 부부가 새끼불테리어를 산다.한데 이 암캉아지는 지저분하고 깡마른 주제에 빠득빠득 빙충맞다.밤에는 깽깽대다가 한숨짓기까지.오라고 손짓해도 찡그리며 마룻바닥만 볼뿐이다.「황공하게도」 이름은 조제핀.나폴레옹 아내이름이었다.부부는 강아지 키우기에 관한 책도 보면서 정성을 쏟지만 정은 갈수록 멀어지기만.남에게 넘길 생각을 한다. 조제핀은 목장주인한테 넘겨진다.정이 없었으니 이로써 만사 해결된 셈이었다.하건만 그게 아니었다.며칠안가 부부는 조제핀을 떠올린다.새주인이 제대로 먹일까,잠자리는 편할까 하는 마음으로.어느날 부부는 목장으로 찾아갔지만 강아지는 야나친 파락호한테 넘어가버린 뒤였다.이들 착한 부부는 파락호와 타협끝에 강아지를 되돌려받는다. 이 단편은 비록 개얘기기는 하지만 우리 학교교육문제를 생각하게도 한다.그 볼테리어를 「문제아」라고 생각할때 말이다.어리뜩하면서 사고내는 학생이 골치 아픈건 사실이다.하지만 버린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이 단편은 「문제아」를 다시 찾아 거둔다.한데 지금까지의 우리 학교교육은 그들을 매정하게 쫓아내고 잊어버렸다.「퇴학」이라는 이름아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참회록」들이 있다.읽어보면 정말 그랬을까 싶어지는 대목들이 적잖다.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만 봐도 그렇다.그는 그리스도교 고대교부 가운데 최대의 사상가.책머리에 『거짓과 육욕으로 영혼이 썩은 지난 날을 기억하면서』 이 글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학교도 그만두고 도둑질을 즐기던 콩켸팥켸시절이 있었다.그 고비를 넘기고서 보법있게 영혼을 맑혀나간다. 교육마당이 『품행방정하고 학업우수한 학생』만 가르치는 곳이어야 할것인가.오히려 비뚤어진 학생,새끼불테리어같이 버리고싶은 학생을 바르게 이끄는데 보람을 느껴야 하는것 아닐까.어른들이 「하수상한」본을 보이는 우리사회에서 「문제아」를 버리기로 들때 결과는 뻔하다.사회의 환부로 곪아나갈밖에 없잖겠는가. 앞으로 「퇴학없는 학교」를 만들어나가겠다는게 교육부의 생각.옳은 방향감각이다.『사랑은 모든것을 이긴다』.힐티의 묘비명이 떠오른다.〈칼럼니스트〉
  • 로버트 조얼릭 내셔널 인터리스트 기고(해외논단)

    ◎미국,장기적인 대중정책 수립해야/중국의 현실인정… 미 입장 강요 말아야 새해들어 미·중 관계의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는 가운데 로버트 조얼릭 전 미국 국무차관(부시행정부)은 미국의 보수계 계간지 「내셔널 인터리스트」 최신호 기고를 통해 미국은 보다 장기적이고 사실에 바탕을 둔 중국정책을 세울 때라고 주장했다.「관여정책의 요건」이란 제목의 그의 글을 요약한다. 미국은 20년동안 통일된 중국정책을 지녀왔지만 그러한 일관성은 천안문사태로 끝났다.그러나 이제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의 도전으로 미국은 일관되고 굳건하며 장기적인 관점의 중국 전략이 필요하다.미국은 장래의 대통령들과 의회가 계속적으로 지지할 전략에 바탕을 둔 초당적인 중국정책을 재건할 때다. 미국의 과거 중국정책은 중국과 관련한 두가지 상이한 전통을 반영해왔다.하나는 미국의 선교활동 경험에서 중국,중국인 및 그들의 궁극적인 구원 등의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전통이다.다른 전통은 세력,국익 및 강대국간의 균형관계 등 현실주의자적 관념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접근방법이다.미국은 가끔씩 이 어울리기 어려운 두 전통을 섞어 교묘한 조합품을 빚는데 성공하곤 했다. 미국은 중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시계추처럼 번갈아 가면서 중국을 낭만적으로 좋게 그리기도 했고 악마인냥 여기기도 했는데,이같은 상반된 태도들은 정책변경으로 이어졌다.미국의 중국선교 경험이 이같은 관점을 형성하는데 큰 역을 맡았다.중국인들이 미국과 미국적 방식을 포옹하면 미국은 중국에 홀딱 빠진다.그러다가도 미국이 당연히 그러리라고 상상했던 것처럼 되는 것을 중국이 거절하거나 더 나아가 미국을 거부하면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으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의 중국관은 중국의 혼이 아닌 힘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닉슨 전 대통령과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당시 중국의 힘이 옛소련과의 균형에 활용될 수 있다고 인식했다.정치체제에서 미국과 중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이들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라는 현실주의자의 철칙을 적용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옛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경이로운경제성장은 현실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중국은 이제 더이상 옛소련에 대항한 지구적 게임의 「카드」가 아닌 것이다.어떤 의미로 이 카드가 새 게임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잠자는 사자,중국이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릴 것이라는 나폴레옹의 예언이 들어맞았다. 여러 면에서 오늘의 중국은 지난 세기말의 독일과 유사하다.세계적 영향력이 잠재된 신흥 지역강대국인 당시의 독일과 지금의 중국은 모두 오만함과 불안정함을 특징으로 드러낸다.이 두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이 진지하고 중요하게 취급될 것으로 기대했고 기대한다.세계는 이들 국가들이 지역및 세계의 체제안으로 통합하면 혜택을 볼 것이나 이 체제의 규칙을 인정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독일의 부상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에 실패함에 따라 70년간의 갈등과 45년간의 유럽분단이 뒤따랐다. 미국은 이와 비슷한 실수를 피할 중국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이제 시계추같은 중국 정책과 노선을 중단할 때다.미국은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인정해야 한다.중국은 거대하고,복잡다단한 나라이며 거창한 변신의 와중에 있는 고대문명의 상속자인 것이다.동시에 미국을 있는 그대로,미국이 상징하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접근법이 요구된다.미국은 특수한 전통의 목표에 접목된 현실적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정책 재조정과정을 통해 「적극적 관여」(engagement)라는 용어를 내놓았다.이는 올바른 방향이긴 하나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다룰 통합된 전략이 갖춰지지 않는 미국과 중국간의 임시변통적 상호관여는 위기 미봉을 위한 단기적이며 근시안적인 정책만을 양산할 따름이다.또 이는 두나라간에 정치적 마찰을 증가시킨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신이 상상하는 중국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인정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현실적 정책추구는 미국의 특별한 국가 주체성에 기반을 둔 원칙·주장을 장려하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또 이 원칙들은 미국의 이미지가 반영된 낭만화한 중국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할때 가장 효과적으로 뻗어나갈수 있다.중국을 지역및 세계 그룹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자유시장 이념의 힘과 매력을 십분 활용하면 보다 큰 효과를 볼 것이다.〈정리=김재영 워싱턴특파원〉
  • 대우의 「세계경영」:9(테마가 있는 경제기행:30)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사람들/임원 170명 403개 해외사업장 포진/월드마케터 석진철·최정호 사장 등 “세일즈 귀재”/박동규·이관기 사장 등 부실기업 살리기 전문가 세계경영의 최전방거점인 4백3개 해외사업장에 나가있는 대우의 임원만도 1백70명.세계경영의 핵심인 자동차쪽에 대표선수들이 많다.대우관계자는 이들을 세계경영의 나폴레옹들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크게 둘로 나눠진다. 첫째가 월드마케터들이다.70∼80년대 세계 곳곳을 누볐던 「수출 대우」의 대표주자들을 말한다.그리고 두번째가 생산 및 기술파트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던 현장 경영 전문가들이다.즉 부실기업 살리기의 전문가들로 국내에서 끊임없이 이뤄졌던 부실 인수기업을 정상화시키면서 노하우를 쌓아 온 인물들이다.따라서 어떤 인재가 어느지역에 최고경영자로 있는지를 보면 그곳의 최대 현안과 목표가 무엇인지도 금방 알 수 있다. 월드마케터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석진철 사장을 들 수 있다.그는 대우의 해외거점 사업중 규모가 가장 큰 FSO의 사장직을 맡고 있다. 삼성물산 출신으로 (주)대우에서 무역을 배우고 대우중공업 사장을 거쳐 공장경영을 배운 뒤 올해 특명을 받고 해외로 나갔다.대우 직원들로부터 세일즈와 경영능력을 겸비한 국제 비즈니스맨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직원들에게 비즈니스맨의 국제화에 독특한 3가지 조건을 강조하는 인물이다.첫째가 외국어에 능통해야 하고 둘째가 해당지역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번째 요건은 색다르다.해당 지역의 전통춤을 비롯,정통 사교춤에 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전통춤은 그나라 문화의 결정체이며 현지인과 친해질 수 있는 도구가 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본인은 세가지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독일 대우 입술광고의 주역이었던 최정호 (주)대우유럽 현지법인 사장도 같은 월드마케터 계열이지만 주특기는 다소 다르다. 최사장은 영어는 물론이고 독일어 일어 등에도 능통하다.특히 미술 오페라 등 문화에는 문화적 우월감을 갖고있는 유럽인들이 혹할 정도로 조예가 깊다.국제매너와 감각도 갖추고 있어 대우가 그룹차원에서 주최하는 세일즈관련 행사나 이벤트를 거의 주관한다. 그동안 서유럽지역 자동차판매에 주력하다 이번달부터 폴란드지역의 자동차판매를 담당할 센트롬 대우 사장직을 맡았다.그러면서도 유럽지역 대외업무를 담당,비즈니스 외적인 코디네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주)대우 모스크바법인장인 김억년 사장,(주)대우 베이징 지사장인 정민길 사장,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지사장인 유태창 부사장,인도 DCM 대우모터스 회장인 이철수 부사장,(주)대우 홍콩법인장 범철수 부사장 등도 내로라하는 세일즈의 귀재들이다.이들이 맡은 지역은 뛰어난 마케팅력으로 최소한 한두차례이상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현장경영전문가로는 루마니아 로대공장의 박동규 사장이 우선 꼽힌다.지난 89년 적자에 시달리던 대우조선의 옥포조선소 소장을 맡아 당시 상주하던 김우중 회장을 보필,흑자로 돌려놓는데 일조를 한 인물이다.군 출신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로대공장을 세트업하던 시절 도장을 하는 직원들에게 방진마스크를 사주겠다고 약속한 뒤 세계유수제품을 직접비교,가장 성능이 우수한 스위스제를 사준 일화가 있다.우즈대우회장직을 맡고있는 이관기 사장,대우모터 폴스카 사장인 유춘식 부사장,베트남 대우모터사장인 이종기 부사장,베트남 대우하넬사장인 남홍 상무 등이 같은 계열이다.
  • 기능음료 시장 폭발적 성장/미용·숙취해소·혈액순환 등 기능다양화

    ◎「나폴레옹 화이바」 등 섬유음료 성장 주도/대추·솔잎추출물 등 원료개발 “캐내면 금”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능성 음료」가 급성장하고 있다. 갈증해소라는 본래적 기능에 미용,숙취해소,혈액순환,콜레스테롤 수치 조절 등 기능도 다양해져 약국에서 취급하는 드링크류와 구분이 모호할 때도 있다.특히 제일제당과 LG화학 등 대기업들과 제약·제빵회사까지 시장에 가세하면서 종류도 다양해지고 그만큼 시장규모도 서서히 커가고 있다.여타의 음료와는 달리 미용에 민감한 여성과 30대 이상의 남성으로 차별화시켰다.올해 매출 규모는 전체 음료시장 2조4천억원의 17%선이 4천억원. 기능성 음료의 대표 주자는 섬유음료.지난 89년 현대약품이 첫 선을 뵌 섬유음료 「미에로화이바」를 필두로 동아오츠카와 일양약품이 「화이브미니」와 「나폴레옹화이바」를 각각 내놓으며 4년정도 연평균 1백%가 넘는 신장세를 보였다.다이어트 음료로 알려진 섬유음료의 시장점유율은 전체 기능성 음료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알로에양파 철분 비타민 아미노산에서 대추 솔잎 당근 호박 쑥 게껍데기 감식초 해조류에 이르기까지 원료도 각양각색이다.세분화·다양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대추음료는 지난해 말 출시,올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웅진식품의 「가을대추」를 선두로 해태음료 「큰집대추」,롯데음료 「홍대추」,대웅제약 「대추촌」,신동농협의 「참대추」 등 20여개 업체가 경쟁적으로 대추음료시장에 뛰어들었다.식혜의 성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통음료라는 개념에 건강에 좋고 달지 않다는 점을 접목,시장 공략에 성공한 사례다. 당근을 원료로 한 「당근주스」도 건강음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지난해 7월 건영식품이 「가양당근농장」을 내놓은 뒤 롯데칠성의 「캐로플」,비락의 「비락당근주스」등 신상품이 줄을 잇고 있다. 기능성 음료 시장의 새로운 총아는 솔잎추출물음료.대기오염에 시달리는 도시 직장인들을 겨냥,머리가 맑아지고 피로가 풀린다는 솔잎추출물 음료는 제일제당의 「솔의 눈」이 선도하고 있다.LG화학의 「그린솔」,산가리아의 「푸른솔잎」 등도 매출이 꾸준히 늘고있다. 여성을 타깃으로 한 기능성 음료들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 다이어트 등 미용과 관련이 깊지만 출산경험이 있는 기혼여성들의 몸매관리에 초점을 맞춘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제일제당은 체지방 분해를 촉진하고 흡수를 억제한다는 「뷰렙」,LG화학은 감식초로 만든 「마이빈」을 각각 내놓았다.20대 이상의 출산경험이 있는 주부층을 대상으로 한 쑥음료로는 제일제당의 「쑥의 순」과 남양유업에서 내놓은 「내몸에」 쑥음료가 있다. 동원산업은 미역·다시마와 같은 해조류에서 추출한 알긴산으로 만든 피부미용음료 「해조미인」으로 틈새를 노리고 있다. 이밖에 남성들을 위한 건강지향 기능성 음료도 많다. LG화학의 「엘키토」는 바닷게의 껍데기에서 추출한 키토산을 함유한 기능성 건강음료.키토산은 면역성 강화,콜레스테롤 조절,질병예방및 회복등의 효능이 있어 성인 남자들이 겪는 스트레스,숙취,콜레스테롤치 증가,간장기능 저하 등을 개선하는데 적합하다고 한다. 93년초부터 등장,대표적인 기능성 음료중 하나로 자리잡은 숙취음료로는 제일제당의 「컨디션」을 비롯해 미원 「아스파」,LG화학 「비전」등 20여종이 넘는다.〈김균미 기자〉
  • 무덤속 베토벤 「비밀」 밝혀질까

    ◎머리카락 분석… 「매독」 여부도 곧 판가름 루트비히 반 베토벤이 1827년 사망했을 때는 무덤까지 비밀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하지만 그는 잘못 생각한 것이다.베토벤은 사랑하는 도시 빈에 정중하게 묻혔지만 그의 머리카락만은 그렇지 못했다.수집광들이 그를 매장하기 전에 갈기 같은 은발의 대부분을 싹둑 잘라서 챙겼기 때문이다.베토벤은 무덤에 들어갈 때는 거의 대머리가 됐을 정도였다. 베토벤의 사후에 머리카락을 자른 것으로 어떤 비밀을 풀 수 있을까. 법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많은 것을 밝혀냈다.우선 머리카락에는 DNA정보가 담겨 있다.이것으로 친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애너 앤더슨이라는 여인이 그녀의 주장처럼 러시아 공주인 아나스타시아가 아니라는 것도 머리카락 분석을 통해서 확인됐다. 유전적인 질병도 이 방법으로 알 수 있다.링컨대통령이 키가 비정상으로 커지고 호리호리해지는 유전자이상으로 생기는 질병인 「마펀 신드롬」에 걸렸는지를 확인할 때도 머리카락 분석으로 가능했다. 약물이나 인체외부에서 흡수된 다른 물질의 성분도 분석할 수 있다.나폴레옹황제의 머리카락에서는 저단위의 비소가 검출되어 그가 독살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됐다.아직 몇몇 사가는 그의 독살설을 굳게 믿고 있지만… 이제는 베토벤의 차례다.애리조나에서 온 두 명의 음악광은 94년 경매에서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구입,과학적인 분석을 의뢰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베토벤은 기생충이 없었고 신장결석이나 간경변치료를 위해 모르핀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요즘 그들은 베토벤을 귀머거리로 만들 수 있는 성분인 수은과 납성분을 추적하고 있다.수은이 검출된다면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그 당시 수은은 매독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일부 학자가 줄기차게 주장해온대로 베토벤이 매독환자였는지 여부도 곧 판명될 것이다. 또 베토벤이 알려진대로 끔찍한 설사병을 실제로 앓아서 약을 복용했었는지도 밝혀질 것이다. 모든 해답은 그의 머리카락에 들어 있다.〈김성수 기자〉
  • 「한·일 월드컵조약」 모델 엘리제조약

    ◎불­독/“과거 청산” 63년 화해조약 체결/외교·국방·교육 등 전반적 분야서 협력관계 규정/30여년후 양국국민들 “가장 가까운 나라”로 꼽아 한·일 양국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프랑스와 독일간의 엘리제조약과 같은 화해·협력조약(월드컵 조약)의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한·일관계를 불·독관계와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지적도 있으나 양국의 노력에 따라 결실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다. 조약이 체결되면 한·일 두나라의 긴장,협력의 무드는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나폴레옹 3세 당시의 보불전쟁이후,제1차·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양국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이러한 두나라 국민간의 적대적 감정을 해소하고,통합유럽의 정치·경제를 이끌어가는 두 주역으로 프랑스와 독일을 우뚝 서게한 기반은 1963년 양국간에 맺어진 화해·협력조약이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당시 프랑스의 드골대통령과 서독의 콘라드 아데나워총리는 모두 누구못지 않은 민족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54년 체결된 파리강화조약으로 2차대전의 수습책은 마무리됐지만,양국간의 포괄적 관계발전을 위한 조약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불·독간의 화해·협력조약은 1963년 1월22일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서명됐기 때문에 주로 엘리제조약이라고 불린다. 조약은 양국의 외교·과학·문화·환경·교육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의 협력관계를 규정하고 있다.우선 양국의 국가원수와 외교·국방·교육·문화장관이 조약에 따라 정기적인 회담을 갖고 있다. 또 ▲교류재단을 통한 양국 청소년간의 빈번한 교류 ▲연료순환·원자로등 핵분야 공동연구 ▲우주항공산업 기술 교류 ▲환경협의회 설치 ▲불·독 교육대학 설립 ▲TV아르트(문화체널) 설립 ▲불·독 문화협의회 설치등이 조약에 의해 이뤄졌다.엘리제조약에 따른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양국은 이제 단순히 우호·친선의 단계를 넘어 통합된 유럽을 공동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약체결 30주년이되는 지난 93년 양국은 『유럽공동체 가운데 어느 나라가 가장 밀접한 느낌을 주는가』라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그 결과 프랑스는 독일을,독일은 프랑스를 가장 친근한 국가로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도운 기자〉
  • 월드컵 2002­한·일 협약 추진 배경

    ◎“불·독 과거청산” 엘리제조약이 모델/「불행한 과거」 덮고 우호·화합 도모/일 정계지도자 명확한 인식 우선 한국과 일본 사이에 프랑스­독일간의 엘리제조약과 같이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를 정리하는 포괄적인 관계개선 조약체결이 검토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정부는 지난 80년대초에도 일본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불·독간의 엘리제조약 체결과정을 점검했다.그러나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그릇된 역사인식을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 조약 체결이 어렵다고 판단,추진하지는 않았다.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한다고 해서 일본의 역사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그러나 2002년은 21세기를 여는 시점이고,양국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게 되면,어차피 양국 정부차원에서도 행사 지원·협조 방안을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월드컵조약」의 체결이 검토되는 것 같다.조약에는 우호친선을 다짐하는 내용만을 담을수도 있고,월드컵 공동개최에 따른 양국 정부간 공식협의 채널 마련을 위한 실무 근거규정이 삽입될 수도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엘리제 조약은 프랑스와 독일이 나폴레옹 시대이후 1세기에 걸친 적대감을 해소하고,화합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63년 1월22일 체결됐다.그후 양국은 올해까지 60여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양국의 외무·국방·문교 장관들도 매년 두차례씩 회담을 갖고 주요현안을 협의하고 있다. 양국은 또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간의 교류확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불독청소년교류재단을 설립했다. 지난해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을 맞아 한일의원연맹에서도 이같은 취지로 한일청소년교류재단의 설립에 합의,일본측이 기금을 내고,한국측이 장소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그러나 지난해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과거사 망언이 거듭 이어지면서 사업추진은 저조한 상황이다.또 지난해 9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2차 한일포럼에서도 엘리제조약과 같은 한·일간의 포괄적 조약의 체결 필요성을 논의한 바 있지만,같은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21세기를 여는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인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느냐하는 것은 일본의 명확한 역사인식 확립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이도운 기자〉
  • 고야 탄생 250돌/스페인화단 대대적 특별전

    ◎각국에 흩어진 작품 171점 마드리드 집결/프라도미술관 등 6곳서 연말까지 전시회 스페인이 떠들썩하다.스페인 호단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탄생 2백5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대미술관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서 『고야와 걸작들』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또 프라도미술관을 비롯해 모두 6개 미술관에서 대대적인 전시회를 연말까지 개최할 예정이어서 올해 스페인문화계는 사실상『고야의 해』로 로 지정된 셈이다. 유럽 각지에서는 특별전을 관람하는 문화관광객도 대대적으로 모집하고 있어 올여름을 고비로 외국관람객도 엄청나게 몰릴것으로 예상된다. 특별전을 위해 미국에 있던 유화 40여점이 대서양을 건너왔으며 프랑스·영국·독일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고야의 작품 1백71점이 스페인에 모아져 있다. 스페인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화가중의 한명인 고야는 궁중화가출신.궁중화가출신이던 처남의 추천으로 궁중에 들어간 그는 18세기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왕조풍의 화려함과환락의 덧없음을 다뤘으며 그의 초기작품의 특징으로 꼽힌다. 노랑과 빨간색을 주로 사용한『소풍』이나 파란색을 이용한『자기』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하지만 그는 동시에 일반서민들의 애호나을 그린 민중화가이기도 했다. 바스크지방의 민속경기인 펠라경기의 모습을 그리고 『연』『작은양산』『죽마』등을 남기고 있다.『옷을 입은 마야』『나신의 마야』등의 작품은 강한 리얼리티를 표현하고 있다. 『나신의 마야』는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을 생생히 담았다는 이유로 외설시비에 말려 고야를 법정에 서게 하기도 했다.고야의 작품은 스페인 특유의 정열적이고 급한 터치로 아직 끝내지 않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림에는 원칙이 없다』는게 고야의 철학이었다.『아들을 잡아먹는 괴물 사투르누스』는 인간의 무지와 미신,탐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스페인화단에서는 낭만주의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꼽히고 있다.그의 작품세계는 말년에 귀를먹게 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어린이와 같은 천진난만함과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기고 한다.고야는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시 공포,고문,살인,강간등의 모습을『나는 이것을 보았다』에 담아 전쟁의 잔학성을 고발했다.프랑스에서는 그런 고야를 곱지 볼리 없지만 말년에 정치사건에 휘말린 그는 불행히도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보냈다.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고야의 특별전을 보는 눈도 곱지 않은 듯하다.르몽드지는 고야의 작품가운데 1백50점은 가짜라고 보도하고 있다.
  • 책 읽는 사람이 세계를 이끈다/김영진 지음(화제의 책)

    ◎출판·잡지계 30년 몸담으며 터득한 독서론 지난 30년동안 출판·잡지계에서 일해온 지은이의 독서칼럼집. 단순히 독서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독서가 인생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진솔하게 설명한다.3부로 나눠 1부에서는 나폴레옹·시저·링컨등 위인들에게 책읽기가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2부에서는 책읽기 방법론을 경험에 비춰 들려주며,3부에서는 동서고금 독서에 관한 명언들을 소개하고 소감을 짤막하게 덧붙였다. 「독서는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전편을 흐르는 주제지만 지은이는 결코 지식을 뽐내거나 도덕률을 강조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다만 설득력있는 예를 들어 독자 스스로 느끼게끔 할 뿐이다.연령·직업에 담이 없는 책이지만 「왜 청소년기에 독서를 많이 해야 하는지」를 강조해 특히 청소년과 그 부모에게 훌륭한 독서 지침서가 될 듯. 어린이잡지인 「새벗」발행인이자 잡지협회 회장인 지은이는 20대 초반에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그동안 독서전문지,일간지등에 꾸준히 연재해 온 독서칼럼 2백여편 가운데 39편을 골랐다.이어령 전문화부장관이 『드물게 탁월한 독서론』이라고 격찬한 추천사를 써주었다. 웅진출판 6천5백원.
  •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공연/한국오페라단 내일부터 예술의 전당서

    ◎이 무대감독·지휘자 초청… 본고장의 「참맛」 선사 이탈리아 오페라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푸치니 작 「토스카」(La Tosca)가 7일부터 10일까지(하오7시30분)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한국오페라단(단장 박기현)의 시즌 첫 기획인 이번 「토스카」는 세계적인 무대감독과 성악가를 초청해 마련한 초대작.이탈리아 푸치니페스티벌의 상임 감독 비비안 휴잇이 무대감독을 맡고 베르디극장·바리극장 지휘자인 프랑코 바셀리가 지휘자로 나서 이탈리아 본고장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피렌체극장 프리마돈나로 활동중인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클라우디아 팔리니가 진귀옥·김인혜 등 한국의 정상급 소프라노들과 함께 주인공 「토스카」역을 맡았다.유럽의 각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중인 바리톤 알렉산드로 팔리아가는 고성현과 함께 「스카르피아」역을 맡았다.테너 임정근과 김영환은 「카바라도시」역. 전3막으로 된 「토스카」는 「라보엠」「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3대 걸작중 하나로 190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초연됐다. 1800년대 프랑스 나폴레옹군이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점령한 직후 정정이 극도로 불안했던 로마가 배경.오페라여가수 토스카와 연인인 화가 카바라도시,토스카를 짝사랑하는 경시총감 스카르피아 남작 사이에 정치범 안젤로티가 매개되면서 이들 사이의 애증과 갈등이 팽팽히 전개된다. 극중 총살형에 처해질 카라바도시가 토스카와의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부르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과 「미묘한 조화」를 비롯,토스카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오페라 아리아 가운데서도 백미로 꼽히는 곡들이다. 관객석과 무대를 다리로 연결,출연자들이 객석에서 등장하게 무대 설계를 한 것도 이번 「토스카」무대의 특징.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와 서울필하모니 오페라코러스·서울리라초등학교 어린이 합창단등 모두 5백여명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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