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나폴레옹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고혈압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고령화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편의시설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스케이팅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15
  • 중세 고딕건축의 걸작 ‘파리의 성녀’…연 1400만명 방문하는 인류의 유산

    중세 고딕건축의 걸작 ‘파리의 성녀’…연 1400만명 방문하는 인류의 유산

    ‘장미 창’ 극한의 아름다움과 예술성 뽐내 빅토르 위고, 소설로 노트르담 위상 높여‘고딕건축의 걸작인 ‘파리의 성녀’(노트르담)는 850여년간 프랑스 수도의 상징이었다.’ 15일(현지시간) 화마가 집어삼킨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렇게 표현했다. 1163년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재위 1137∼1180)의 명령으로 센강 시테섬에 있던 로마신전을 허문 터에 건설을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연 노트르담은 중세 고딕건축 양식의 절정을 보여 주는 인류의 유산으로 평가된다. 노트르담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모마리아를 지칭한다. 연평균 1400만명이 다녀가는 프랑스의 대표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가로 48m, 세로 128m, 높이 69m인 바실리카(장방형 회당) 건축물로, 외벽에 덧댄 아치형 지지구조인 ‘플라잉 버트레스’와 둥근 천장은 고딕 양식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이다. 성당 내부의 거대한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창인 ‘장미 창’은 특히 극한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뽐낸다.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과 파이프오르간도 보물로 꼽히며 성당 외벽에 있는 괴물 석상 ‘가고일’도 명물이다. 성당의 중심엔 이번 화마에 소실된 96m 높이의 첨탑이 있다. 첨탑은 프랑스혁명(1789~1794) 후 건축가인 외젠 비올레르뒤크가 복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와 납으로 건조된 첨탑의 훼손이 심각해 프랑스 정부는 개·보수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혁명 전까지만 해도 노트르담대성당은 가톨릭 국가 프랑스 정치의 중심지였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 메리 여왕 등 영국과 프랑스 왕가의 결혼식이 열렸고, 1804년에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됐다.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의 구국 영웅 잔 다르크가 처형된 후 재심 재판이 이곳에서 열렸다. 프랑스 문화의 정수가 집약·축적된 노트르담은 ‘파리의 심장’으로 불린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 쓴 불후의 고전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노트르담의 꼽추)는 노트르담의 위상을 만들어 냈다. 소설은 노트르담성당의 종지기로 일하는 꼽추 카지모도와 어여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등을 담아 15세기 파리 시민의 군상을 묘사했다. 혁명 당시 노트르담이 훼손되자 헐어버리자는 여론이 한때 힘을 받았지만, 위고가 노트르담을 살리기 위해 쓴 이 소설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1845년 대대적인 복원 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네스코는 1991년 노트르담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유럽의 정체성이 불탔다” 세계 곳곳서 탄식과 애도

    “유럽의 정체성이 불탔다” 세계 곳곳서 탄식과 애도

    “안 돼. 오, 신이시여…”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인류의 유산,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이 끝내 화염에 무너졌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성당을 바라보던 파리시민과 관광객들의 가슴은 큰 구멍이 났다. 대성당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가는 동안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안타까움의 눈물이 흘렀다. 외신들은 16일 일제히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자사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하며 프랑스 현지 상황을 상세히 전달했다.미국 보도채널 CNN은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 “마크롱(프랑스 대통령), 우리는 재건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을 걸어놓았다. 실시간 속보에는 ‘연간 1300만명 방문하는 파리의 850년 된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염에 그을렸다’란 제목의 글이 내걸렸다. CNN은 “노트르담의 첨탑이 불타는 지붕 위로 무너지자 파리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면서 “그들이 사랑하는 성당을 황폐화시킨 불길은 도시의 가슴에 단검을 꽂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CNN은 또 노트르담 화재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노트르담은 안 된다, 노트르담은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던 현지 분위기도 전달했다. CNN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전 세계 천주교 신자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등을 관련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UCLA의 도미니크 토마스 프랑스 담당자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갈등과 혁명의 역사를 담고 있고 프랑스의 정체성일뿐 아니라 유럽의 정체성이기도 하다”며 조속한 재건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성당은 재건될 것”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자사 홈페이지에 노트르담을 주요 뉴스로 대서특필했다. 또 “파리의 영속적인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가 어디서부터 시작돼 번져 나갔는지 등을 그래픽으로 제시하는 한편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파리시민과 관광객들의 모습을 싣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파리의 아름다움과 역사의 상징인 노트르담 성당이 섬세한 첨탑을 무너지게 하는 광범위한 화재로 인해 흉터가 났고 연기로 파리 하늘을 멍들게 했다”며 “센강을 따라 성당 근처 광장으로 몰려든 수천명의 사람들은 공포로 숨을 허덕이며 입을 가리고 눈물을 닦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장 클로드 갈렛 프랑스 소방장의 말을 인용해 2개의 웅장한 탑은 화를 면했지만 지붕의 3분의 2가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화재 원인이 즉각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성당 관계자의 증언을 인용해 성당 목조 보의 내부망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노트르담 성당에 대해 “12~13세기에 걸쳐 지어진 중세 고딕건축의 보석”이라면서 “중심이 확고하면서 우아하며 파리뿐 아닌 전 세계의 랜드마크”라고 보도했다. 이어 하루에 약 3만명, 일년에 1300만명이 방문하는 노트르담 성당은 수세기 동안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결혼한 뒤 묻혔고 나폴레옹이 1804년 황제로 즉위했던 곳이라고 전했다.영국의 BBC 방송도 노트르담 성당 화재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BBC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랜드마크가 일부 파괴된 이후 중세 성당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화재가 9시간 만에 진압됐으며 화재 원인으로 대규모 보수 공사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15일(이하 현지시간) 화마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던 파리지앵과 관광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눈물과 탄식을 쏟아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성당 주변의 다리에 진을 친 인파는 이날 오후 7시 50분쯤 대성당의 첨탑의 끝부분이 불길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오, 신이시여’라는 비명을 터뜨렸다. 곧이어 첨탑의 나머지 부분이 붕괴하자 현장은 한숨 속에 절망에 휩싸였다.파리에 거주하는 티보 비네트뤼는 CNN에 “첨탑이 무너진 순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면서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냥 너무 놀라 말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아주 오랫동안 거기 있었는데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졌다”면서 “노트르담 없는 파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충격을 표시했다. 시민 피에르 기욤 보네트(45)는 뉴욕타임스에 “가족 중 누군가를 잃은 것과 같다”면서 “내겐 노트르담 대성당에 너무 많은 추억이 담겨 있다”며 비통해했다. 프랑스 경찰은 불길이 크게 번지자 시테 섬을 비롯한 센강의 섬 2곳에서 보행자들을 대피시키려 하고 있으나, 비극적인 현장을 지켜보려는 인파들이 계속해서 몰려들며 주변 정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번 비극이 가톨릭 성주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침통함을 더했다. 성주간은 부활절 직전 일주일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리는 기간이다.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아베 마리아’를 합창하며 대성당의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원하는 한 트위터 영상은 700만 회 이상 조회되며 보는 이들에게 울림을 줬다. 어떤 이들은 고개를 떨구고, 어떤 이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위해 기도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게탄 슐랭제(18)는 AP통신에 “매주 노트르담 대성당에 왔다. 대성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워졌다”면서 “대성당은 프랑스 가톨릭의 상징”이라고 슬퍼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사진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구조는 건져 마크롱 대통령 재건 약속

    [사진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구조는 건져 마크롱 대통령 재건 약속

    연간 1400만명이 찾는 8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 발생 5시간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중앙 첨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구조물은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 시민과 프랑스 국민에게 한국인의 숭례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현장 사진을 모아봤다.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연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으로, 빅토르 위고가 1831년 쓴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의 무대이기도 하다. 1804년 1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한 가운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이 열렸고,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리는 등 중세부터 근대, 현대까지 프랑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15일 오후 11시 30분(현지시간) 긴급 발표를 통해 “최악은 피했다”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화재 원인은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방화나 테러 가능성은 배제되고 일단 첨탑 리노베이션(개보수) 작업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로랑 뉘네 프랑스 내무차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화재 원인이 무엇인지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AP 통신을 비롯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파리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가 잠정적으로 리노베이션 작업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동안 600만 유로(78억원 상당)를 들여 첨탑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에마뉘엘 그레그와르 파리 부시장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첨탑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언급한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노트르담 대성당 큰불 ‘지붕 붕괴’…공중 살수도 불가능

    노트르담 대성당 큰불 ‘지붕 붕괴’…공중 살수도 불가능

    프랑스 파리의 최대 관광명소이자 역사적 장소인 노트르담 대성당에 15일 저녁(현지시간) 큰 불이 나 지붕과 첨탑이 붕괴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소방당국은 “앞쪽의 두 탑은 불길을 피하는 등 노트르담의 주요 구조물은 보존됐다”고 전했다. 파리시와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50분쯤 파리 구도심 센 강변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갑자기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쳤다. 경찰은 즉각 대성당 주변의 관광객과 시민들을 대피시켰고 소방대가 출동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발생 시점에서 4시간 가까이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다행히 건물 전면의 주요 구조물은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클로드 갈레 파리시 소방청장은 화재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노트르담의 주요 구조물은 보존된 것으로 본다”며 “(전면부의) 두 탑은 불길을 피했다”고 말했다. 갈레 청장은 “현 단계에서 주요 목표는 성당 내부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라면서 “최종 진화까지 몇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로랑 뉘네 내무부 차관은 “불길의 강도가 누그러졌다”면서 “아직은 매우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 공사를 위해 첨탑 주변에 촘촘하게 설치했던 비계에 연결된 목재와 성당 내부 목재 장식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진화작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방당국은 건물 붕괴 위험 때문에 공중에서 많은 양의 물을 뿌리는 화재 진압 방식은 진행하지 못 하고 있다. ‘공중 살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불이 난지 1시간여 뒤 나무와 납으로 만들어진 첨탑이 무너졌을 때는 파리 도심 전역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위로 치솟는 짙은 연기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프랑스2 방송이 전한 현장 화면에서는 후면에 있는 대성당 첨탑이 불길과 연기 속에 무너지는 모습도 잡혔다.로이터통신 등은 현장에서 아직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고 검찰이 화재 원인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남쪽 정면에서 2블록 거리의 5층 발코니에서 화재를 지켜본 자섹 폴토라크는 로이터통신에 “지붕 전체가 사라졌다. 희망이 없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파리에 사는 시민 사만다 실바는 “외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노트르담 대성당을 꼭 보라고 했다”며 “여러 번 찾을 때마다 늘 다른 모습이었던 노트르담 대성당은 진정한 파리의 상징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현장에서 투입된 경찰관들도 “모든 게 다 무너졌다”며 허탈해했다. 소방당국은 오후 9시 30분쯤 “앞으로 1시간 30분이 진화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은 보수 공사를 위해 설치한 시설물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면서 사고에 무게를 두고 있다. 프랑스2 방송은 경찰이 방화보다는 실화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엘리제궁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로 예정된 대국민 담화도 전격 취소한 채 화재 현장으로 이동했다. 마크롱은 현장이동 전에 트위터에서 “매우 슬프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마크롱은 당초 이날 1∼3월 전국에서 진행한 국가 대토론에서 취합된 여론을 바탕으로 다듬은 조세부담 완화 대책 등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현장 근처에 있던 파리 시민들은 충격을 호소하며 울먹거리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현장에서 취재진에 “안에는 많은 예술작품이 있다. 정말 큰 비극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시테섬 동쪽에 있는 성당으로,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이다. 빅토르 위고가 1831년 쓴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의 무대로도 유명하고, 1804년 1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이 열리기도 했다.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연 노트르담 대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중세부터 근대, 현대까지 프랑스 역사가 숨쉬는 곳으로 하루 평균 3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각국 정상도 신속한 진화를 당부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생한 엄청나게 큰 화재를 지켜보려니 너무도 끔찍하다”며 빨리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파리에서 일어난 일에 큰 슬픔을 느낀다”며 파리 시민들을 위로했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파리 시민과 진화작업에 나선 소방대원들을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라구’라고 다 같은 ‘라구’가 아니라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라구’라고 다 같은 ‘라구’가 아니라구

    타국의 음식을 탐구할 때면 종종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용어의 정의가 그렇다. 예를 들어 서양의 스튜를 보자. 스튜란 냄비에 재료와 액체를 넣고 뭉근하게 오래 익혀 만드는 요리를 말한다. 우리의 탕이라고 보기엔 국물이 자작하고 조림이라고 보기엔 국물이 좀 흥건하다. 혹자는 찌개라고 하는데 글쎄 찌개를 그렇게 오래 끓이던가.형태로 정의하기 힘들 땐 요리의 목적을 생각해 보는 방법도 있다. 냄비에 재료를 넣고 오래 끓이는 이유는? 그냥 먹기엔 질긴 고기 부위를 푹 익혀 부드럽게 먹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스튜에는 고기가 들어 있다. 장시간 익혀 부드러워진 고기와 야채, 그 둘의 맛과 영양을 한껏 끌어안은 소스 같은 국물이 있는 요리를 스튜라 부른다. 그렇다면 수프와는 무엇이 다를까. 수프라고 하면 노란 옥수수 수프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고기뭇국 같은 멀건 수프가 있는가 하면 스튜와 경계가 모호한 수프도 있다. 국물의 양에 따라 수프와 스튜를 구분한다고도 하는데 사실상 스튜와 수프를 나누는 명확한 경계는 없다고 봐도 좋다. 이렇게 길게 스튜 이야기를 한 건 바로 라구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이때 라구는 파스타와 짝을 이루는 이탈리아식 라구(Ragu) 소스를 의미한다. 이탈리아엔 10여 가지의 라구 소스 종류가 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볼로냐식이란 뜻의 ‘라구 알라 볼로네제’다. 곱게 간 고기를 양파와 당근, 셀러리, 토마토 등과 함께 볶은 후 와인이나 육수를 부어 장시간 뭉근히 익혀 만든다. 주로 넙적한 파스타면인 탈리아텔레와 함께 버무려져 나온다. 라자냐에 들어가는 것도 바로 라구다. 이쯤 되면 궁금해질 법도 하다. 대체 라구와 스튜는 무슨 상관이라는 건지.이탈리아와 인접한 옆 나라 프랑스에도 라구(Ragout)가 있다. 이름도 비슷하지만 발음도 똑같다. 프랑스의 라구는 이탈리아와는 형태가 좀 다르다. 이탈리아의 라구가 파스타와 버무려 먹는 소스에 가깝다면 프랑스 라구는 고기뿐만 아니라 채소나 버섯, 콩, 생선 같은 다양한 재료를 오랫동안 뭉근히 익혀 만든 음식을 통칭한다. 영미권에서 말하는 스튜의 개념이 프랑스에선 라구인 셈이다. 거의 소스처럼 졸인 라구는 감자나 폴렌타 같은 탄수화물과 함께 먹기도 하기에 프랑스 라구의 정의도 영미의 스튜처럼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재료를 냄비에 넣고 오래 끓여 만든다는 점에선 유사점이 있지만 그 위상은 각기 시간 차를 두고 변화를 겪었다. 냄비에 재료를 넣고 끓이는 방식은 매우 서민적이지만 프랑스의 라구는 르네상스 이전까지 상류층이 즐기던 요리였다. 중세의 미식 기준은 재료 자체의 맛을 중시하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중세의 라구는 재료를 마구 섞고 향신료를 듬뿍 사용한 강렬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가 유럽을 강타하고 난 후 미식의 기준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얼마나 풍족하게 먹느냐 승부하는 양적 미식에서 재료의 질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질적 미식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독일의 식문화 저술가 하이드룬 메르클레에 따르면 17세기 프랑스에서 출간된 ‘훌륭한 접대의 기술’이란 책의 서문에는 ‘이제 우리는 더이상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마련하거나 라구나 프리카세를 만들거나 혹은 기이하게 여러 가지를 혼합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이것저것 넣어 만든 라구는 더이상 프랑스 상류층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는 요리로 전락한 것이다. 라구는 이탈리아에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탈리아 라구가 프랑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에는 양국 간에 큰 이견은 없어 보이지만 볼로냐식 라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18세기 볼로냐가 위치한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을 나폴레옹이 점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프랑스의 라구가 이 지역에 전해졌다는가 하면, 고기 스튜 형태의 요리로 이미 전 지역에 존재해 왔다는 주장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공식적으로 라구가 처음 언급된 건 18세기 말 무렵 각지의 이탈리아 요리를 한 책으로 정리한 펠레그리노 아르투시에 의해서다. 19세기 후반까지 이 지역에서 파스타는 서민들은 먹기 힘들었던 고급 식재료였던 걸 감안해 볼 때 한동안 라구 파스타는 고급 요리였다는 연구도 있다. 라구는 의외로 집에서 만들기 어렵지 않다. 갈비찜이나 카레를 생각하면 쉽다. 갖은 재료를 넣고 오랫동안 약한 불로 익힌다는 개념만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맛있는 라구를 만들 수 있다. 굳이 이탈리아 할머니의 라구 비법 레시피 같은 건 몰라도 말이다.
  • 강남 나폴레옹베이커리·대전 성심당 등 ‘빵지 순례’ 제과업체 20곳 위생법 위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빵지 순례’ 제과점 가운데 일부가 위생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유명 제과업체와 음식점 48곳을 점검해 ‘식품위생법’과 ‘축산물 위생관리법’을 위반한 20곳을 적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업소 중에는 최근 방송 매체와 SNS 등에서 맛집으로 소개돼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전국의 유명 제과업체도 포함됐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나폴레옹베이커리 유통과 서초구에 있는 나폴레옹 과자점은 조리 시설 등이 깨끗하게 관리되지 않았다. 대전 중구에 있는 로쏘 성심당은 식품 제조업체가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자가품질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 강릉시에 있는 강릉빵다방은 원료 구비 요건을 위반했다. 적발 업체들의 위반 사항을 보면 ▲무허가 축산물가공업 영업·무허가 축산물 사용(2곳) ▲유통기한 미표시 제품 생산·사용(4곳)등이다.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에 대해 행정처분 조치하고, 3개월 이내 재점검해 개선 여부를 확인한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바람처럼 자유롭게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바람처럼 자유롭게

    전설의 유배지 탈출기, 영화 ‘빠삐용’(Papillon)이 다시 만들어져 개봉됐다. 스티브 매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열연하던 영화 장면들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나는 새로 만들어진 영화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1973년에 제작된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 유명한 탈출 장면과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라는 주제곡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빠삐용´은 앙리 샤르에르라는 실제 인물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샤르에르는 1930년 살인 사건에 연루돼 누명을 쓰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Devil’s Island)에 유배된다. 13년간 그는 아홉 번에 걸친 치열한 시도 끝에 마침내 그 섬을 탈출한다. ‘악명 높은 세계 10대 유배지’ 가운데 하나인 ‘악마의 섬’은 1854년 나폴레옹 3세가 유배지로 지정한 이래 1940년대까지 8만여명의 죄수가 수감됐고, 사망률이 워낙 높아 사형수들의 목을 자르는 ‘건조한 기요틴’이라 불릴 정도였다. 유배지 탈출의 예는 비단 ‘빠삐용’만이 아니다. 패배한 나폴레옹은 1814년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로 유배된다. 그러나 ‘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다’던 약속처럼 10개월 후 그는 탈출해 파리로 돌아온다. 유배지에서도 황제의 복장을 벗지 않고 노심초사하던 그는 승전국들이 영토 배분 문제로 탁상공론을 벌이는 틈을 타서 탈출했던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권력자였던 스탈린은 여덟 번 체포돼 일곱 번 시베리아로 유배됐지만 여섯 번이나 탈출을 했던 기이한 경력자다. 미하일 바쿠닌은 시베리아 유배지를 탈출해 육로로 북태평양 연안까지 가서 이곳에서 일본으로 간 뒤 일본에서 미국으로 갔다가 미국에서 서유럽으로 건너가 제네바에서 무정부주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유배지 탈출 시도는 무궁무진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물러나게 된다.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한 폐모살제(廢母殺弟)의 부도덕과 명나라를 배반하고 후금과 우호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이로써 광해군과 폐비 유씨, 폐세자 이지와 폐빈 박씨는 강화도로 유배된다. 이때 폐세자 이지는 땅굴을 파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땅굴을 파서 밖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곧 발각돼 인조의 명에 따라 자진을 하게 된다. 한편 동정을 살피던 폐빈 박씨도 남편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역시 자진을 한다. 아들 부부를 잃은 충격으로 폐비 유씨 또한 세상을 하직하자 광해군은 제주도로 옮겨지고 4년 후 죽는다. 왜 그들은 탈출하려 했을까? 그러나 탈출은 쉽지 않다. 체포가 항시 뒤따르기 때문이다. 소련의 비밀경찰들은 ‘체포학’이라는 이론을 정립할 만큼 치밀했다. 소련의 민낯을 파헤친 솔제니친의 소설 ‘수용소 군도(群島)’의 제1장은 바로 체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체포! 이것은 당신 전 생애의 파멸을 뜻한다”고 했다. 그렇다. 파멸하고 싶지 않기에 우리는 탈출을 감행한다. 우리는 현재 신자유주의라는 투기적 욕망과 이기적 경쟁 체제 안에 갇혀 살고 있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과연 탈출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애초 탈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유배된 채 이것이 삶이라며 자위하고 때로 강변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삶이 과연 정상인가? 정상처럼 보이는 이상한 정상은 아닌가? 그 끝은 혹시 파멸이 아닌가?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악마의 섬을 탈출했던 빠삐용처럼 투기적 욕망과 이기적 경쟁이라는 악마의 체제를 탈출할 수는 없는가? 나는 유배인인가 탈주자인가? 대체 나는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 <상>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 <상>

    1798년 5월 19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프랑스 남동부의 툴롱항에서 출항한다. 병사가 약 4만명, 선원이 약 1만명, 도합 5만명 가까이 되는 대부대였다. 원정대에는 167명의 민간인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은 원정지에서 학술조사를 수행하게 될 공학자, 천문학자, 건축가, 화학자, 박물학자, 지리학자, 동양학자 같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총인원이 5만명이나 되는 대규모 원정대였지만,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원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이 원정이 극비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원정대에 합류한 민간인 전문가들도 대부분 목적지를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그저 어딘가에서 학술조사를 할 수 있다는 학문적 열정과 국가에 봉사하는 것인 만큼 원정이 끝난 이후에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원정대에 합류했던 것이다. 원정대가 향하고 있는 곳은 이집트였다. 유럽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는 인도로 가는 길목인 이집트를 장악해 영국에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또한 혁명 이후 프랑스를 장악한 총재 정부의 입장에서는 점차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만 가는 나폴레옹을 프랑스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보내 계속해 군사활동에 전념하게끔 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원정대는 툴롱을 떠난 지 22일 만에 몰타에 도착했다. 시간이 꽤 걸렸던 것은 영국 함대의 포위망을 피해 항해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영국 함대의 사령관이 넬슨 제독으로 널리 알려진 호레이쇼 넬슨이었다. 프랑스군은 간단하게 몰타를 점령한 뒤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원정대 대부분은 여전히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6월 28일 드디어 나폴레옹의 이름으로 포고문이 발표된다. “제군들, 우리는 이집트로 향하고 있다. 그대들은 우리 문명과 세계 무역에 미치는 효과가 산술적으로는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탐험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들은 이슬람교도들이다. 코란이 규정한 의식이나 모스크에 대해, 그대들이 수도원과 시너고그, 그리고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관용을 가져라. 로마 군단은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보호했었다.” 천 년도 더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로마 군단을 언급하면서 자신들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적, 종교적 관습을 갖고 있는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나폴레옹은 좀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인문학적 감각’이 충만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폴레옹의 뛰어난 ‘인문학적 감각’은 이집트 도착 후 맘루크 군과의 전투에 앞서 그가 병사들에게 했던 연설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수천년의 역사가 그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혹자들은 전투가 벌어진 엠바베평원이 기자 피라미드와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피라미드를 볼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이 말은 훗날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18세기보다 기상 여건이 훨씬 더 열악해진 현재에도 기자와 1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카이로 시내의 시타델에서 기자의 피라미드 3기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높이가 각각 138, 136, 65미터에 이르는 기자 피라미드들의 규모도 규모거니와 파리미드들이 세워진 곳은 주변보다 높은 고원지대다. 기자고원과 엠바베평원 사이에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프랑스 군이 맘루쿠 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혹은 전투 중에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을 까닭이 없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가 피라미드를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현장 경험이 결여된 주장일 가능성도 있다.
  • [슈퍼볼] 램스 치어리더들 틈에 남자 둘, 진작 일어났어야 할 일

    [슈퍼볼] 램스 치어리더들 틈에 남자 둘, 진작 일어났어야 할 일

    2019년인데 당연히 일어났어야 할 일이 일어났다. 4일(한국시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통산 여섯 번째 우승으로 끝난 슈퍼볼에 등장한 우람한 체격의 선수들 얘기가 아니다. 15년 만에 슈퍼볼에 진출한 로스앤젤레스(LA) 램스 선수들이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메르세데스 벤츠 스타디움 그라운드에 입장할 때 옆에서 화려한 율동으로 선전할 것을 응원한 치어리더 가운데 두 남성 얘기다. 나폴레옹 지니스와 퀸튼 페론이 미국민만 1억명 이상이 지켜보는 슈퍼볼 도중 꽃술만 들지 않았지 여성들과 똑같이 리드미컬한 율동을 선보였다. 물론 53년째인 슈퍼볼 역사에 처음 나타난 남자 치어리더다. 둘은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제시 에르난데스와 함께 올 시즌 개막과 동시에 등장해 미국프로풋볼(NFL) 역사를 새로 썼다. 4년 동안 램스 경기를 놓치지 않았다고 응원했다고 밝힌 스티븐 레슬리는 “아주 유명한 친구들”이라며 “둘은 대단하다. 올 시즌 내내 돋보였다. 살짝 당황스럽기만 하지만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지금은 2019년이잖아”라고 말했다.NFL에서 대놓고 남자 치어리더를 막은 적은 없다. 미국 고교나 대학 풋볼 경기 도중 여성들 옆에서 남자들이 치어리딩을 하는 것은 흔한 장면이었지만 그랬다. 그렇지만 올 시즌이 개막할 때까지 같은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지니스는 “아직도 내가 프로 NFL 치어리더 최초의 남자 가운데 한 명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모두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게 장난 아니다. 고맙고 가자 램스”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지금까지 몇몇 NFL 구단의 응원에 남성들이 참가한 적은 있지만 스턴트맨으로 불렸고 여성 치어리더들과는 완전 몸놀림이 달랐다. 하지만 둘은 정식으로 율동 훈련을 받았고 지난해 램스의 치어리더 선발 오디션에 참가한 300여명을 제치고 선발됐다. 둘은 전날 경기장에서 가까운 센테니얼 파크에서 펼쳐진 램스 팬들의 응원 전야제에도 완벽한 공연을 펼쳤다. 나폴레옹은 CBS 인터뷰를 통해 “전 세계, 특히 연예계는 이제 막 문호를 여는 단계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왜 마다하겠나”라고 되물었다. 퀸튼은 굿모닝 아메리카에 동화 같은 얘기라고 했다. 애틀랜타 시민인 로렌은 “지금 NFL에서 요런 녀석들을 본다는 건 진짜 멋진 일”이라면서 “내가 대학 치어리더로 활동할 때 사내들이란 필드에만 있었다. 좋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둘이 슈퍼볼 응원전에 나선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부정적인 트윗 글이 많았는데 BBC 뉴스비트가 만난 두 팀 팬들의 반응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들의 공통된 반응은 ‘지금은 2019년’이란 것이었다. 많은 남성들이 내년에는 얼마나 많은 치어리더 팀들이 자신들을 뽑아줄지 흥분하고 있다고 얘기했다고 둘은 전했다. 스티븐은 NFL에서의 남자 치어리더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대단해질 것이다. 앞으로는 모든 팀에서 남자 치어리더를 보유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030 세대] 희소성과 재개발의 가치/김영준 작가

    [2030 세대] 희소성과 재개발의 가치/김영준 작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알루미늄 사랑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식기를 쓰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왕관을 머리에 쓰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겐 금식기나 은식기로 식사를 하게 했다. 알루미늄이 너무 흔해서 쿠킹호일과 음료수 캔으로 낭비 중인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무척이나 검소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딱히 그가 검소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당시까지만 해도 알루미늄을 정련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그만큼 알루미늄 제품이 매우 귀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금보다 더 귀하고 귀금속 위의 귀금속이란 평가를 받던 알루미늄은 전기분해법의 등장으로 흔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누구도 귀금속으로 여기지 않는다. 희소성이 사람들의 선호를 뒤바꾼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건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희소성은 무언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나 여기엔 부작용도 있어서 때론 흔한 것을 지나치게 저평가하고 희소한 것을 지나치게 고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희소성에 따른 선호의 변화는 단지 상품에 끝나지 않는다. 낡은 공장지대와 낡은 건물에 대한 선호 또한 희소성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건물과 지역이 만드는 분위기는 불과 2000년대 중반까지 별달리 선호하지 않던 것이었다. 이렇게 낡고 더러운, 가난한 시절의 흔적으로 취급하던 공간은 아파트라는 주거방식이 대중화되고 노동환경이 개선되면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되었고 특색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파트란 주거공간에 대한 과소평가도 이러한 희소성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와 역사, 재개발 논란이 엮인 주제들이 최근에 큰 화젯거리다. 아마 앞으로 더 많은 논란들이 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고 아닌 것일지를 앞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라는 격언처럼 오래되었다고 모두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량생산에 대한 과소평가와 수제에 대한 과대평가는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는 저급 수제품이 시장에 넘쳐나는 결과를 만들었다. 적어도 그런 결과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희소성을 확보하여 현대인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변한 낡고 오래된 곳들은 현대인의 도심 관광용으로 선호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곳을 주거나 업무라는 생활공간으로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을 누구를 위한 공간으로 쓸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이 보존이냐 재개발이냐를 정하는 데 좋은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알루미늄은 전기분해법의 등장으로 흔한 금속이 되고 귀금속의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대신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금속으로 활용되고 있다. 만약 산업용으로 가치가 없고 정말로 희소했다면 알루미늄은 여전히 귀금속에 머물렀을 것이다. 공간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 2019년 세계는 소행성과 충돌? 푸틴과 트럼프의 운명은?

    2019년 세계는 소행성과 충돌? 푸틴과 트럼프의 운명은?

    “2019년 새해에는 미국과 아시아에 대형 지진이 닥치고, 러시아는 소행성과 충돌할 것이다. 미국·러시아 지도자들의 신변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2018년 한 해가 권력을 가진 ‘스트롱맨’들의 철권 통치가 득세하고 포퓰리즘이 몰아친 시기였다면 2019년은 세계 인류가 각종 자연 재해와 전쟁 위협의 공포 속에 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세계 유명 예언가들의 예언을 바탕으로 2019년 세계가 직면해야 할지 모르는 사건들에 대해 보도했다. 미국의 9·11 테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시각장애인 할머니 반젤리야 판데마 디미트로바는 1996년 85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 5079년까지 인류가 겪게 될 일에 대해 세세히 예언했고 2019년은 인류에게 여러 재앙이 닥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1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영적인 힘을 얻게 되면서 유명세를 탄 뒤 ‘바바 할머니’라는 뜻의 ‘바바 반가’(Baba Vanga)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익스프레스는 여태까지 바바 반가의 예언 가운데 85%가 맞아떨어졌다고 전했다.러시아 소행성 충돌 및 푸틴 암살 시도, 트럼프 청력 손실 바바 반가는 2019년에는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대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유럽에서는 경제 붕괴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러시아에는 커다란 운석(소행성)이 떨어질 것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러시아는 1908년에도 중부 시베리아에 소행성이 충돌해 나무 8000만그루가 사라지고 순록 수백마리가 몰살하는 사건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충돌의 위력은 히로시마 투하 원자폭탄의 185배로, 인간 거주 지역에 떨어졌다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뻔했다. 미국 대통령에 관한 예언도 눈길을 끈다. 바바 반가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이 의문의 병으로 쓰러져 청력을 손실할 것이며, 그의 가족 중 한 명이 교통사고 등으로 크게 다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밖에 ‘불의 고리’로 알려진 미국 서부 지역에 강진과 쓰나미와 같은 대형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바바 반가가 남긴 수많은 예언 가운데 “미국에 두 마리 강철 새의 공격이 찾아올 것”이라며 9.11 사태를 지칭한 예언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2010년부터 무슬림의 세력이 강해져 유럽을 장악할 것”이라며 이슬람 무장 단체의 테러를 예언하기도 했다. 이밖에 2043년에 무슬림이 전 유럽을 지배하게 되고 5079년에는 인류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남겼다.3차 대전 및 기후 변화 가능성도 16세기 프랑스 유명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년)가 2019년에 대해 예언한 글에도 유사한 점이 발견돼 주목된다. 익스프레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3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소행성 충돌, 기후 변화를 예견했다고 전했다.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노스트라다무스는 “두번은 일어서고, 두번은 넘어질 것이다. 동양은 서양을 약화시킬 것이다. 몇 번의 전투 끝에 적수는 어려운 시기에 실패할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는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추종자들은 이 예언을 미국과 러시아간 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3차 대전의 죽음과 공포가 지구를 파괴한 뒤 인류는 소행성의 충돌에 직면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밖에 그는 “수면이 올라오고 육지는 가라앉게 될 것이다”고 말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표면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르트라다무스는 1666년의 런던 대화재,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의 등장, 20세기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등을 예견해 유럽에서 예언가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서부 지진 및 영국 ‘노딜 브렉시트’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예측해 유명해진 영국의 크레이그 해밀턴 파커(63)도 중동에서의 전쟁, 트럼프 대통령의 신변 위협, 자연 재해,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 등이 2019년에 발생할 일이라고 예언했다. 파커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시도를 겪어도 결국 탄핵 당하지는 않겠지만 2019년에 질병을 앓게 될 것”이라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도 고조되겠지만 실제 전쟁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땅에서 상당한 지층 운동이 벌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해 지진이 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밖에 파커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의회를 설득해 브렉시트 합의문을 비준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결국 영국이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내년 3월 29일 EU를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커는 “결국 메이 총리는 내년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남산서울타워 등 14개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

    남산서울타워, 나폴레옹 과자점, 경의선 숲길 공원 등 14개가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서울 미래유산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온 서울의 근현대 유산으로, 서울역, 보신각 타종행사, 명동 예술극장 등이 대표적인 미래유산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이번 선정으로 2012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461개의 유·무형 유산이 미래유산이 됐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미래유산에는 1975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종합 전파탑인 남산서울타워, 1968년부터 2대째 가업을 이어온 제과점이자 제과사관학교라고도 불리는 나폴레옹 과자점 등 시민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서울의 명소들이 선정됐다. 아울러 1970년대 강남 개발의 흔적을 간직한 배재고등학교 아펜젤러기념관과 숙명여자고등학교 도서관도 이번에 미래유산에 선정됐다. 경복궁을 비롯한 주변 문화시설을 고려해 상부에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배치한 독특한 형태의 지하철 경복궁 역사는 1980년대 서울의 시민생활사를 추억하게 하는 건축물로 올해 미래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도 김말봉의 장편소설 ‘찔레꽃’, 최현배의 수필 ‘사주오 두부 장수’ 등 근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수필 등 문학 분야의 미래유산도 7건 포함됐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저 들판의 푸른 전나무처럼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저 들판의 푸른 전나무처럼

    눈 덮인 벌판에 전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뿌연 안개 속에 성당의 탑이 솟아 올라 있다. 뾰족한 전나무와 고딕식 탑이 대응을 이룬다. 왼편에 연한 보랏빛이 번지고, 하늘에 불그레한 구름이 떠 있다. 이른 새벽인 것 같다.건축 제도사로 경력을 시작한 프리드리히는 꼼꼼한 드로잉 솜씨를 발휘해 성당의 건축적 형태와 전나무의 바늘잎을 묘사했다. 색채는 절제했다. 흰색과 청색, 약간의 붉은색을 썼을 뿐이다. 코발트, 프러시안블루 같은 합성 안료가 널리 쓰이고 있었으나 프리드리히는 의도적으로 가라앉은 전통적 청색을 택했다. 미묘한 붓 터치가 화면에 빛을 흩뿌리고 눈가루를 날리게 한다. 이 그림은 그저 고요한 겨울 풍경화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에 십자가가 걸려 있다. 그 앞의 바위에는 한 남자가 기대앉아 두 손을 기도하는 자세로 모으고 있다. 눈 위에는 이 남자가 짚고 온 목다리가 내팽개쳐져 있다. 그는 죽을 자리를 찾아 이곳까지 걸어온 듯하다. 프리드리히가 이 그림을 그리던 때는 독일 민족주의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독일 지역은 중세 이래 여러 군주 국가들로 나뉘어 있었고, 이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자 경쟁 관계이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군은 강했다. 오스트리아는 그때까지 지배해 온 이탈리아의 영토를 거의 잃었고, 프로이센은 수도 베를린을 점령당하고 나라가 아예 없어질 뻔했다. 이러한 위기는 독일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독일이란 무엇인가, 독일인은 누구인가” 하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예술가들도 독일적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 그림에서 고딕 성당은 종교적 상징이라기보다는 독일의 중세적 전통을 환기하는 존재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대체로 침울하지만 이 시기에는 더욱 침울해졌다. 바위에 기대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은 왜소하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대 시인 노발리스가 말했듯이 “삶과 죽음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며, 죽음은 끝인 동시에 시작이다”. 푸른 전나무는 생명력의 상징이다. 원통한 죽음이 많았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곧 새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다.
  • 우울증 늪에서 건진 인류의 보석

    우울증 늪에서 건진 인류의 보석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앤서니 스토 지음/김영선 옮김/글항아리/456쪽/1만 8000원열등감은 때로 예상 밖의 큰 업적과 성취를 낳는다. 프랑스대혁명의 틈새에서 제1제정을 건설, 유럽 운명을 쥐락펴락했던 나폴레옹을 말할 때 167㎝의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이 회자된다. 독일 나치 정권을 창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인식엔 오스트리아의 평민 사병 출신이란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열등감처럼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위인 중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우울증을 앓았던 인물이 숱하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윈스턴 처칠과 프란츠 카프카, 아이작 뉴턴에 집중한다. 어릴 적 유전적, 혹은 환경적인 이유로 우울증을 갖게 된 세 인물의 생애를 우울증으로 연결하고 있다. 가정의 배려 부족 탓에 얻은 우울증이 위업과 창의성으로 승화된 과정을 촘촘하게 풀어내 흥미롭다.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에 맞서 영국과 서방 세계를 수호한 정치가로 유명한 영국 정치인 처칠. 그에 대한 인상은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호방함, 그리고 사람 마음을 휘어잡는 화려한 웅변술로 굳어져 있다. 하지만 그 좋은 인상의 바탕에 극심한 우울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평생 재발하는 우울증 발작에 시달렸고 자주 자살 충동까지 느꼈으며 결국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1895년 홀더숏 훈련기지에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보자. “제가 정신적 침체 상태에 들어가리라는 걸 알아요. 저는 절망의 늪에서 일어서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진지한 저작도 읽을 기운을 차릴 수가 없어요.” 한 지인은 1915년 다르다넬스 원정 실패로 해군성에서 사임한 뒤 우울증에 빠진 처칠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더니 절망한 듯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반항심이나 분노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간단히 말했다. 난 끝났어.” 처칠은 대대로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부모의 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애정 박탈감은 청소년기 생활에 그대로 드러난다. 성적은 바닥이었고 지각을 일삼은 데다 의욕과 야망이 없는 낙제생이었다. 처칠은 느닷없이 재발하는 우울증을 스스로 ‘검은 개’라 부르며 우울증에 빠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다른 일을 찾았다고 한다. 그 대안이었던 그림과 글쓰기는 수준급이었고,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다.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는 프란츠 카프카도 어린 시절의 홀대와 박탈감 탓에 우울증을 달고 살았다. 좀처럼 부모를 만날 수 없었던 결핍과 잇따른 동생들의 죽음으로 인해 늘 존재 불안에 휘둘렸다. 그의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도 불안과 피해자라는 의식이다. 대단히 정교한 굴을 만들어 안전을 확보하려는 한 동물 이야기인 ‘굴’은 그 성향의 대표적인 결정체다. 초기 소설을 모은 ‘어느 투쟁의 기록’에 실린 ‘기도자와의 대화’에선 “내 마음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고 확신한 때가 없다”고 쓰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카프카의 글쓰기는 인격의 병적인 부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좀더 행복했더라면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크게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아인슈타인 이전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는 아이작 뉴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태어나기 석 달 전 아버지는 죽었고, 조산아로 출생했으나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방치됐다. 어머니의 재혼과 이별을 뉴턴은 배신으로 여겼던 듯하다. 그 상실은 언제나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주변인으로 이어졌고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 뉴턴의 전기작가인 셀리그 브로데츠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뉴턴은 다른 사람들의 재촉이 없었다면 자신이 발견한 것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뉴턴은 미적분학을 당대의 경쟁자인 라이프니츠보다 10년 빨리 완성했지만, 자신의 성과를 빼앗길까봐 발표를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뉴턴의 기본적인 불신은 과학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도록 자극한 원동력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뉴턴의 말 속에 들어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고정시키기 위한 가장 사소한 세부 사항도 마음대로 그리고 마구잡이로 벗어나게 허용하지 않을 단단한 틀이 불안에 시달리는 이 남자의 근원적인 욕구였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프랑스 굴과 우리나라 굴의 공통점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프랑스 굴과 우리나라 굴의 공통점

    파리에서 기차로 세 시간, 거기서 또 자동차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캉칼이라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당일치기라는 고된 일정이지만 왕복 600㎞가 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 이유는 프랑스 최대의 굴 양식장이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프랑스의 통영’이라고나 할까.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지만 ‘브르타뉴 굴의 수도는 캉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캉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풍경은 7㎞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굴 양식장이다. 테이블 형태의 골조에 사각형으로 생긴 그물망을 올려놓았다. 우리나라 서해 일부 지역에서도 사용되는 이른바 수평망 양식법이다. 굴 유생이 부착된 줄을 깊은 바다에 매달아 키우는 우리나라 남해안의 수하식과는 다르다. 이곳에서는 6개월 정도 자란 굴을 그물망에 넣고 재배한다. 수확할 때는 그물망만 들어 옮겨 트랙터에 실으면 된다. 노점에서 파는 싱싱한 굴은 한 다스에 4.5~6유로(5800~7700원) 정도다. 가장 큰 굴조차 열두 개에 1만원이 안 된다니. 굴값이 저렴하기로 소문난 곳에 사는 한국인들조차 눈을 의심하게 하는 가격이 아닌가. 굴로 배를 채우자 싶어 네다섯 접시를 산 후 근처 아무데나 걸터앉아 까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몰랐지만 벤치 앞에 하얗게 펼쳐진 건 백사장이 아니라 노점에서 산 굴을 까먹고 버린 굴 껍데기 무더기였다. 굴 하나를 손에 들고 후루룩 마신 뒤 껍데기를 아무데나 던져버리는 쾌감이란. 세계적으로 해안가에서 종종 굴 껍데기 무덤이 발견된다는데 그 이유를 알 법도 했다.자세히 들여다보면 굴의 생김새는 맛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삼총사’를 쓴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뒤마는 굴을 두고 “연체동물 가운데 자연의 혜택을 가장 받지 못했다”고 했다. 머리도 눈, 코, 입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오로지 먹고 잠만 자는 이 생물을 기이하게 본 사람은 뒤마뿐이 아니었다. 오늘날 음식 과학자 해럴드 맥기는 “우리가 먹는 동물 가운데 가장 이상하게 생겼다”고 평했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아일랜드의 소설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굴을 맨 먼저 먹은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대체 누가 이 이상한 생명체를 먹어 볼 생각을 했을까.굴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건 고대 그리스다. 먹고 남은 굴 껍데기를 투표용지로 썼다고 하니 얼마나 그리스인다운가. 굴을 최상의 미식재료로 격상시킨 건 로마인들이었다. 전 세계 온갖 산해진미를 구하는 데 혈안이었던 로마의 귀족들은 프랑스 북부 해안가에서 자란 굴이 유독 맛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로마의 세네카와 프랑스의 앙리 4세,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등 당대 내로라하는 식도락가들은 굴에 이상하리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19세기까지도 프랑스 굴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수요가 늘자 영원히 풍부할 것만 같았던 굴의 수확량도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이미 굴 양식을 하고 있었던 프랑스였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프랑스산 토종 굴이 멸종되다시피 하자 포르투갈산 굴을 들여와 양식하기 시작했다. 한 세기 동안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굴이 아닌 포르투갈산 굴을 먹어 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70년대 포르투갈산 굴이 질병에 걸리면서 생산이 급감하자 굴 생산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시아로 눈을 돌린 그들이 찾은 것은 태평양 굴이라 불리는 참굴이다. 참굴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생산되는 굴이다. 즉 캉칼에서 먹었던 굴은 키운 바다만 다를 뿐 남해안 통영에서 먹은 굴과 같은 종이었던 셈이다. 태평양 굴은 유럽 굴에 비해 질병에 강하고 맛도 더 좋았다. 다행히 포르투갈산 굴과 태평양 굴은 모양과 맛이 비슷해 자연스럽게 프랑스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오늘날 프랑스는 매년 15만t의 굴을 생산한다. 유럽산 굴의 90%에 달하는 물량이다. 이 중에서 98%는 태평양 굴이고 나머지 2%는 껍데기가 둥근 유럽 굴이다. 유럽 굴은 확실히 익숙한 굴 맛과는 달랐다. 태평양 굴이 싱그러운 오이향, 해조류 향이 지배적이라면 유럽 굴은 약한 금속 맛이 묘한 이질감을 준다고 할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기후와 풍토가 식재료에 주는 영향은 크다. 귤과 탱자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자란 같은 식재료의 맛이 궁금하다면, 맛도 맛이지만 풍경을 생각해도 역시 캉칼에 가 볼 이유는 충분하다.
  • [금요일의 서재]색에는 ‘이야기’가 있다

    [금요일의 서재]색에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색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고개 들어 위를 보면 하늘색, 아래에는 아스팔트의 검은색, 주변에는 회색 건물과 녹색 나무를 비롯해 옷, 피부, 심지어 색을 인지하는 눈까지 색 없는 물질은 세상에 없다. 인간은 색과 함께 태어나 색 속에서 살다가 색의 세계를 떠난다. 색이 인간 심리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색을 다룬 책은 이따금 나오는데, 의외로 인기가 많다. 별 신경 안 쓰던 색에 관한 시야를 넓혀주고, 글을 읽는 재미 외에 색을 보는 재미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주 ‘금요일의 서재’는 색을 다룬 신간 3권을 골랐다. ●색의 유례를 찾아서=‘컬러라마’(이숲)는 인간이 어떻게 색을 사용했는지,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를 탐색한다. 133가지 색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 색을 어떻게 쓰는지 다룬다. 세계적 디자인 그룹 크뤼시포름이 기획한 책으로, 색상 가이드이자 색에 관한 지식서다. 책은 한 가지의 색에 관해 양쪽으로 나눠 소개한다. 왼쪽 면에는 색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짧은 글과 삽화로 소개하고, 오른쪽 면에는 해당 색으로 가득 채웠다. 예컨대 초록색 가운데에는 ‘분노의 초록‘이라는 색이 있다. 이 단어는 ‘담즙의 과잉’이라는 라틴어 ‘콜레라’에서 왔다. 답즙은 담낭에서 분비하는 초록빛이 도는 액체다. 화를 내면 담즙은 얼굴색을 변하게 한다. 이런 설명과 함께 마블코믹스의 캐릭터인 헐크를 그렸다. 그러고는 “여러분은 미국 만화 주인공 헐크가 분노하면 왜 엄청난 힘을 갖춘 초록 괴물로 변하는지 아셨겠죠?”라고 묻는다. 그리고 오른쪽 면에 헐크의 피부색과 같은 분노의 녹색으로 가득 채웠다. 오른쪽 면에 있는 색들은 이탈리아에서 직접 인쇄해 색을 정확하게 구현했다. ●매혹적인 색 이야기=색은 언제, 어디서, 누구냐에 따라 그 의미도 다르다. 예컨대 빨간색은 고상함, 영성, 미덕, 지위를 나타내지만, 질투, 도발 혹은 폭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기도 했다. 16세기 말까지만 해도 왕과 왕자들은 빨간색 옷을 거의 입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왕만이 빨간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교황, 추기경, 몇몇 고위 성직자들은 오로지 사치와 과시의 표현으로 화려하고 도드라지는 빨간색을 몸에 걸쳤다. 종교개혁을 선도했던 루터는 1520년 가톨릭교회의 타락과 탈선을 비난하면서 교황을 ‘바빌론의 빨간 매춘부’라고도 불렀다. 20년 넘게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활동해 온 미술사학자 스텔라 폴의 ‘컬러 오브 아트’(시공사)는 흙색,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금색, 검은색 등 모두 10가지 색깔을 다룬다. 각각의 색이 거친 역사와 문화적인 의미를 설명한다. 저자는 색을 나타내는 단어는 몇 개 안 되지만 그 색이 보여줄 수 있는 의미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문화의 정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색을 이야기하지만, 여기에 얽힌 역사와 문화 이야기에 깊이가 있다. ●재밌는 색 이야기=‘컬러의 말’(윌북)은 여성 패션을 연구하고 ‘이코노미스트’에서 ‘책과 미술’ 코너를 진행한 디자인 저널리스트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의 색 이야기 묶음 집이다. 매일 보는 색부터 미술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색까지, 매력적이거나 중요하거나 불쾌한 역사가 깃든 색을 골라 그 이름과 그 색에 얽힌 75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컬러 오브 아트’보다 묵직한 맛은 덜하지만, 좀 더 가볍고 화사한 책이다. 반 고흐가 사랑한 크롬 옐로, 나폴레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셸레 그린, 역사상 가장 논쟁적 색상인 누드까지 역사, 사회, 문화, 정치, 예술, 심리를 오간다. 75가지 색은 ‘엘르 데코레이션’에 3년간 실렸던 ‘색상 칼럼’ 중에서 대표 빛깔들 75가지를 엮었다. 연재 당시 패션 관련 직업군 독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빨강보다 더 빨간 어떤 색을 표현해줄 단어, 오늘 본 파란 하늘을 더 잘 묘사해줄 단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해답을 줄 책이기도 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우리 주변의 고대 이집트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우리 주변의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 문명은 학문의 영역 밖에서도 항상 인기가 높다. 이집트 유물을 소장한 세계 각지의 박물관들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고,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파라오, 오벨리스크 등과 같은 고대 이집트의 유산들은 계속해서 많은 대중 매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집트 마니아’라는 개념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뜨거운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서구 사회에서는 이집트학이라는 학문의 발전 과정과 그 궤적을 함께해 온 것인데,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은 특히 그 대중적 관심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나폴레옹은 1798년에서 1801년 사이에 프랑스혁명 전쟁의 일환으로 이집트로 원정을 떠났다. 그는 160여명에 이르는 학자들을 원정군과 동행하게끔 했고, 그 덕분에 학자들은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는 상태에서 당시 기준에서는 최고로 엄정한 방식으로 이집트 곳곳을 조사할 수 있었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온 학자들은 조사한 내용을 1809년에서 1829년에 걸쳐 총 5권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출간하는데, 그것이 ‘이집트지(誌)’(Description de l’Egypte)다. 아름다운 삽화가 가득한 이 문헌은 연구자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됐던 것뿐만이 아니라 연구자가 아닌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이집트지’의 출간이 서구 지식인들의 이집트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고 한다면, 그보다 약 120년 후에 이루어진 한 발굴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의 저변을 조금 더 넓혔다고 할 수 있다.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도굴되지 않은 왕묘를 하나 발견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유물들이 가득 찬 도굴되지 않은 왕묘의 발굴은 그때까지 유래가 없던 일이었던지라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이 발굴 소식을 연일 특보로 보도했다. 더욱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발굴팀으로 파견된 전문 사진사 해리 버튼의 사진 덕분에 유럽과 북미의 시민들은 발굴 소식을 생생한 이미지와 함께 거의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투탕카멘의 저주’와 같은 괴담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괴담들조차도 오히려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대 이집트에 관한 학문적 전통이 전혀 없는 한국에서도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상당히 뜨겁다. 그 실례로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이집트 보물전’은 총관람객 숫자가 30만명이 넘었을 정도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테마파크나 워터파크에서도 고대 이집트를 테마로 만들어진 조형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형물들은 대부분 고증을 거치지 않은 채 피상적으로 이미지만 가져와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컨대 여신 이시스나 하토르에게 사용되는 암소 뿔과 태양으로 이루어진 머리 장식을 남성 모습의 조형물이 쓰고 있는 식이다. 조형물에 사용된 모티브들이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한 맥락을 갖고 사용되던 진짜 역사적 산물임을 감안할 때 사실성이 떨어지는 이런 재현이 갖는 의미는 제한적일뿐더러 어떤 대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학문적 성취는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이런 고증이 생략된 재현은 조금 아쉽다. 그런 측면에서 2017년에 출시된 게임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은 고대 이집트 문화가 성공적으로 재현된 대중문화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게임의 제작 과정에는 전문 이집트학자가 직접 참여해 게임의 다양한 측면을 꼼꼼하게 고증했다. 언젠가는 엄정한 고증을 토대로 재현된 고대 이집트를 한국에서도 만나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뉴칼레도니아 독립 부결…프랑스와 연 끊기는 부담 컸나

    뉴칼레도니아 독립 부결…프랑스와 연 끊기는 부담 컸나

    프랑스가 남태평양에 보유한 해외 영토인 뉴칼레도니아(프랑스어로는 누벨칼레도니)가 4일 독립 지지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주민의 57%가 독립에 반대해 프랑스령으로 남게됐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투표자의 과반수가 프랑스의 일부로 남기로 결정한 것은 프랑스 공화국에 대한 뉴칼레도니아의 신뢰를 보여준다”면서 “독립을 원한 이들의 실망감 역시 이해하지만 프랑스는 모든 이의 자유와 평등, 박애를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뉴칼레도니아는 이날 오전 8시부터 10시간 투표를 했고 17만 5000여명의 유권자들은 “뉴칼레도니아가 완전한 자주권을 회복해 독립하는 것을 원하는 가?”라는 물음에 대해 의사를 밝혔다. 이날 최종 투표율은 80% 내외로 집계됐다.호주와 피지 사이에 위치한 뉴칼레도니아는 나폴레옹 3세 때인 1853년 프랑스 식민지가 됐으며 30년 전 카낙족 원주민을 중심으로 독립분리파와 유럽인 후손 중심의 잔류파 간에 폭력 충돌이 벌어져왔다. 프랑스는 1946년부터 해외 영토를 더이상 식민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독립성이 강한 뉴칼레도니아는 행정구역상 ‘특별 공동체’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 국방·외교·통화정책·사법관할권·교육 분야 이외의 모든 분야에서 프랑스로부터 완전한 자치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 프랑스 본토의 상·하원에도 각각 2명의 의석을 할당받았다. 뉴칼레도니아 자치정부는 매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13억 유로(약 1조 6600억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프랑스 입장에서도 뉴칼레도니아는 태평양에서 매우 전략적인 자산으로 평가된다. 전 세계 니켈 매장량의 4분의 1 가량을 보유한 뉴칼레도니아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2017년 기준 3만 3000 달러(약 3700만원)에 달한다. 뉴칼레도니아 거주자는 26만 8000여명으로 이 중 39.1%는 뉴칼레도니아 원주민인 카나크인이고, 27.1%는 프랑스 등 유럽에서 건너간 이주민과 그 후손이다. 나머지는 아시아, 태평양 섬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유럽 출신 정착민은 프랑스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는 반면 카나크인 중에는 독립을 원하는 이들이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었다. 하지만 과반 이상이 독립에 반대한 이번 투표 결과는 유럽 출신 정착민보다 더 많은 숫자가 프랑스와의 연을 끊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198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인근 국가 바누아투의 1인당 국민소득이 뉴칼레도니아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점에서 독립하면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독립 찬반 주민투표는 1998년 누메아 협정에 명시된 사안으로, 협정은 뉴칼레도니아가 2018년 말까지 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번 투표 이후에도 누메아 협정에 따라 뉴칼레도니아 주민들은 2022년까지 투표 기회를 두 번 더 가질 수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文, 마크롱과 밤 12시까지 브로맨스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환대받았다”

    文, 마크롱과 밤 12시까지 브로맨스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환대받았다”

    마크롱 만찬 후 김정숙 여사 팔짱 껴 엘리제궁 응접실·서재 등 직접 안내“해외 순방 과정에서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환대를 받았다.”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주최로 대통령궁(엘리제궁)에서 열린 만찬에서 각별한 환대를 받고 이처럼 소감을 밝혔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애초 만찬은 늦어도 10시면 끝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8시 30분에 시작해 마크롱 대통령 내외가 엘리제궁의 사적 공간까지 안내한 시간을 포함하면 밤 11시 30분 무렵에야 끝났다. 농어구이를 메인 요리로 한 프랑스식 코스가 끝나자 마크롱 대통령은 측근과 고위인사를 헤드테이블로 불러 문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한국 참석자까지 어우러지면서 스탠딩 환담과 ‘셀카 촬영’이 이어졌다. 밤 11시를 훌쩍 넘기자 초조해하던 양국 의전장이 두 정상에게 끝낼 것을 건의하면서 가까스로 만찬이 종료됐다. 그 순간 마크롱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의 팔짱을 끼고 엘리제궁 관저로 문 대통령 내외를 이끌었다. 마크롱 대통령 내외는 늦은 시간임에도 엘리제궁의 정원과 응접실, 마크롱 여사의 집무실, 서재 등 사적 공간으로 안내했고, 벽에 걸린 피카소의 작품 등을 설명했다. 하이라이트는 ‘나폴레옹 방’이었다.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패한 나폴레옹 1세가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에게 서명한 항복 문서가 보관된 이곳은 나폴레옹 3세가 심장마비로 숨진 곳이다. 마크롱 여사는 “나와 남편은 이 방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교수노조/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교수노조/박현갑 논설위원

    근대 대학의 전형으로 독일의 훔볼트대학을 꼽는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을 이루던 프로이센이 근대화를 통한 위기극복 방안으로 1810년 세운 대학이다. 근대화를 위한 개혁 조치로 세웠으나 기술인 양성 등 단기적 성과를 추구하기보다 학문의 자유, 진리 탐구를 추구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러다 20세기부터 대학은 학문의 상업화에 나선다. 자본주의 확산으로 인간교육보다 직업교육, 지식탐구보다 경쟁과 효율의 가치관을 우선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늘 교수가 있었다.대학교수 하면 대체로 지성과 양심을 떠올린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이미지가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제자 성희롱에 학점을 앞세운 폭언, 자기 논문 공저자에 자녀 올리기 등 일그러진 모습만이 회자된다. 노동자 이미지는 어떤가? 이 역시 쉽게 연상하긴 어렵다. 교수님은 사회구조 최상부에 자리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당사자인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3년 전 대학신문에서 조교수 이상 전임교수 785명을 상대로 교수 위상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지식인의 죽음’, ‘대학은 죽었다’는 비판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47.6%나 됐다. 대학이 지식과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업 양성소로 변하고, 인구 감소로 정원 채우기에 급급하면서 연구와 동떨어진 신입생 모집과 제자 취업 도우미로 내몰리니 걱정스러운 상황은 맞다. 그제 헌법재판소에서 대학교수노조 합법화 결정이 나왔다. 2001년 사학재단의 왜곡된 대학 지배를 위기의 본질로 규정한 교수노조 출범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헌재는 교원노조의 주체인 ‘교원’을 초·중등교육법상 교원으로 한정한 교원노조법 제2조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전국 430개 대학교원 9만여명의 단결권을 인정한 이번 결정으로 사학재단의 구조조정에 교수노조가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홍성학 교수노조위원장은 “2002년 계약임용제 시행 이후 비정규직화된 단기, 저임금 교원의 증가, 정부재정지원 사업에 따른 과중한 행정업무 증가 등으로 대학교원의 근로조건은 2001년 노조 설립 때에 비해 더 나빠졌다”면서 “국회는 속히 교원노조법 개정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비정년 트랙 전임교원은 대체로 1년 계약이 많으나 6개월짜리 계약도 있단다. 계약 아닌 위촉 형태로 일하는 비전임 교원인 시간강사도 사정이 딱하긴 마찬가지니 교원 처우개선 여론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교수노조가 노조원 임금과 처우 개선도 해야겠지만 학문 연구와 질 높은 교육 실현에 앞장서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eagledu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