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불타는 발칸, 무기와 시간의 전쟁
세계의 화약고 발칸반도가 다시 불타고 있다.미국언론들은 밀로셰비치의 낡은 민족주의와 세르비아인의 인종청소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며,이 전쟁은 인권을 주권보다 중요시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전쟁’이라고 평가한다.우리 언론들도 대체로 이에 추종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세르비아인들을 청소한 마케도니아에서는 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쿠르드족을 청소하고 있는 터키는 전쟁의 징벌은 커녕 쿠르드족 지도자 오잘란의 체포를 선물받았는가? 게다가 터키는 이 전쟁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인권 전쟁론’으로는 도대체 설명되지 않는다.
전쟁사가의 대가 클라우제비츠가 일찍이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고 명명한 바와 같이,세기말의 유고전쟁도 표면의 구호와는 다른 보다 중요한 이유가 이면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구 동구지역을 서방질서에 편입하는 것,발칸지역의 지정학적 주도권을 차지하는 것 등 정치·경제·지정학적 이해관계이다.이것은 단지 코소보문제가 아니라 유고연방,나아가 발칸반도 전반과 관련된다.전쟁의 이유가 된 ‘랑부예 협정’을 보면 나토군이 유고 전지역을 사실상자유롭게 이동·감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유고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협정이다.미국은 브레진스키가 주창하던 바 세계최대 대륙인 유라시아대륙의 쟁패에 나서고,독일은 서방의 동구 포섭에는 동의하지만 미국의 절대적인 헤게모니는 반대하여 평화협상에 나서고,터키는 발칸의 패권을 노리고,러시아는 동구와 발칸의 일방적인 서구화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가 유고전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이해관계와 더불어 전쟁의 추이이다.인류의 발전사는 무기의 발전사라고 할 정도로,전쟁에서 무기는 중요한 수단이다.더욱이 걸프전에 대한 요란한 TV중계와 토플러의 ‘제3의 물결전쟁론’에서 보듯,선진 언론은 첨단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하이테크무기가 전쟁을 결정짓는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전쟁에서 결정적 조건은 여전히 무기가 아니라 인간이다.일찍이 마오쩌뚱은 일본제국주의의 최신무력에 시간으로 맞서는 지구전(持久戰)전략을 개념화하였다.전쟁은 무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지상군의 투입으로정리되는데,이 지상군은 인간의 삶과 결합되고,대중의 삶은 다시 시간과 역사의 바다에 존재한다.이에 따라 강대국은 전쟁에서 흔히 무기의 우세를 선전하고,대중과 시간의 바다에 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냉전시기 미·소 양 강대국은 이런 시간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미국은 베트남전에서 각종 신종무기를 선보였지만,정글과 시간의 바다에 빠져 결국에는 패배하였다.소련 역시 부족적 수준의 발전단계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지만 패배했다.냉전 해체 이후 벌어진 걸프전에 대한 독해(讀解)도 서로 상반되었다.미국은 최신무기로 전쟁에 완승하였다고 선전하고,부시대통령과 파웰사령관은 걸프전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시야확보가 좋은 넓은 사막에서 최신예 무기의 명중률도 전쟁 당시의 보도와는 달리 그리 성공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고,그 잘난(?) 무기도 그렇게 우스운(?) 후세인을 권좌에서 끌어내리지 못했다.아무튼 걸프전은최신무기의 새로운 위력보다는 전쟁에서 지상군,더 나아가 대중과 시간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이제 유고에 대한 나토의 공습도 석달째 접어들어,유고는 중세시기로 퇴보하였다고 한다.서방의 최신무기가 승리한 것도,그렇다고 밀로셰비치가 정당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이 전쟁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장담하기가 힘들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쟁은 무기로 결판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점차 전쟁의 이면 동기들이 부상할 것이고,그리고 그것은 다시 시간과 역사의 평가를받게 될 것이다.
[都珍淳 창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