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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도호쿠 지역 대지진 후유증 ‘이혼’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인 도호쿠 지방에 이혼율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지진으로 혹독한 생활환경에 놓인 피해 주민들이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4일 센다이시에 있는 미야기 이혼상담소에 따르면 대지진 직후인 지난 4월부터 9월 중순까지 “이혼하고 싶다.”는 상담이 100여건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약 40%가 증가했다. 이 상담소의 나카하타 도키코(65) 대표는 “대지진 전부터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지진 직후 각종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상대방에게 쉽게 상처를 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담을 의뢰하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자기 중심적이다.” “집안 일을 돕지 않는다.”라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의 경우는 “대지진으로 아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졌다.”는 내용이 많았다. 미야기현 나토리시에 사는 40대 여성의 남편은 대지진 후 자신의 가정을 내팽개친 채 “어머니가 걱정된다.”며 혼자서 시댁으로 들어갔다. 이 여성은 자녀들을 생각해 시어머니를 우선시하는 50대 남편과 헤어질 계획이다. 센다이시 변호사회는 피해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5월과 7월 법률상담회를 가졌다. 30여건의 상담 중 80%가 “남편이 자기중심적이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이혼 절차를 물었다. 반면 도쿄의 결혼정보센터 ‘노제’(NOZZE)에는 대지진 이후 결혼 상담이 대지진 전에 비해 15% 증가해 대조를 이뤘다. 대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적령기에 놓인 젊은이들이 가정을 가지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나와 통일] (31)‘獨 통일 21주년’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

    [나와 통일] (31)‘獨 통일 21주년’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

    개천절인 10월 3일이 독일에서는 ‘독일 통일의 날’이다. 개천절이 하늘 문이 열리고 나라를 세운 날이라면, 독일 역시 제2의 건국일인 셈이다. 독일 통일 21주년을 기념해 서울신문과 단독인터뷰를 가진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 대사는 “1년 중 가장 좋은 날씨에 ‘통일의 날’을 맞이해 항상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9년 9월 한국에 부임한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일 통일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문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많은 통일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됐다.”면서 “통일이 경제발전에 역동성을 준 기회가 됐다.”고 역설했다. →동·서독과 남북한 통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나라 모두 냉전 이후 분단국가가 됐지만 한국은 내전을 겪었다. 동족이 총을 겨누고 피를 흘렸다는 것은 민족 간의 내적인 화해가 매우 어렵다는 걸 뜻한다. 둘째로는 동·서독도 경제 격차가 있었지만, 남북한은 차이가 더 크다는 점이다. 셋째, 북한이 핵무기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도전 과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정책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 →독일은 통일 후 21년이 됐다. 통일 비용보다 통일 편익이 크다고 하지만,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독일은 동독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다른 동유럽 국가에 대한 투자도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로 부상했다. 독일은 부채를 통해서가 아니라 경제력으로 비용을 지불했다. 비용이 많이 들긴 했지만, (통일이) 독일을 현대화하고 경제적 역동성을 준 기회가 됐다. 한국도 대북 지원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투자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독일도 15~16년이 지난 2006년, 2007년이 되어서야 성과가 나타났다. 가장 큰 편익은 평화와 협력이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실현됐고 냉전이 종식됐다는 점이다. 병역의 의무가 사라지고, 국방예산이 크게 줄어든 만큼 예산을 더 의미있는 곳에 쓰고 있다. →21년 전으로 돌아가 독일이 통일을 맞게 된다면,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겠는가. -통일과정에서 간과했던 가장 큰 오류는 동독의 경제력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 20위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거의 파산상태였고, 특히 산업의 인프라가 거의 없었다. 또 하나는 기존 제도를 고칠 생각을 못하고 통일을 맞았다는 점이다. 현실을 오판했다고 깨달은 것이 2002년이다. ‘어젠다 2010’이라는 입법 절차를 통해 사회복지 분야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제대로 판단하면서부터는 투자에 대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작년에 평양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처럼 북한에서도 변화가 일어날까. -북한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체제유지를 원하는 북한의 정치엘리트들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현 상태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향인지 쉽게 알 수는 없다. →지난 1년 김정은의 권력 승계과정을 평가한다면. -북한처럼 소수의 최측근에 의해 권력이 움직이는 상황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동독의 경우도 최고 권력은 상당히 폐쇄된 소수에 의해 움직였다. 숫자로도 소수이고, 정치적 이해도 같았지만, 동독이 나아가야 할 정치의 방향에 대해서는 갈등이 많았다. 북한도 겉으로 봐서는 완벽하게 폐쇄된 사회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도 정체된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권력자 지위를 갖고 있고, 세대 교체도 완전히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 승계과정을 지금 판단하기는 어렵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통일을 앞당기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독일의 경우 어떤 나라가 국민들이 굶어 죽거나 얼어죽는다고 한다면, 정치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지원을 할지 말지 여부는 개별적인 상황과 데이터를 봐야 한다. 돕지 않으면 당장 죽을 만큼 응급한 상황인지, 그래서 정치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지원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냉각된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은. -올해 안으로 긴장 완화와 대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본다. 최근 몇 개월 한국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모멘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3월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린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선다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현 정부의 ‘그랜드바겐’ 정책을 지지하나. -북한 핵문제는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의제다. 핵문제를 전체 협상 패키지 내에서 다루는 것은 옳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과 대화 없이는 풀 수 없는 일이다. 핵안보 정상회의가 다국적 회의체로서 북한과 다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듯이 내년도 핵안보 정상회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는 ▲59세·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생 ▲파리 국립행정학교(ENA) ▲모스크바·나이로비·나토 상설대표부·워싱턴 등 근무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
  • 늦깎이 테너, 호세 카레라스 사로잡다

    늦깎이 테너, 호세 카레라스 사로잡다

    출발은 늦었다. 인천 부평고 2학년 때 중창단에 들어간 게 처음이다. 노래가 좋았는데 부모님을 설득하기 힘들었다. 고3 때 비로소 음대 진학을 결심했다. 한눈 팔 시간도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한양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유학도 늦었다. 음대생은 군악대에서 군 복무를 하는 게 보통. 그는 논산훈련소 조교를 했다. 대학 졸업 뒤 인천 시립합창단에서 2년. 또래들이 취업할 무렵인 스물일곱에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으로 떠났다. 국내 데뷔도 늦었다. 그런데 단박에 주역이다. 오는 13~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려지는 국립오페라단의 ‘가면무도회’가 그 무대다.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오페라 중 테너 비중이 가장 높은 탓에 대가들도 나이가 들면 꺼린다는 리카르도왕 역할이다. 내년 6월에는 세계 최고의 무대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 주역으로 데뷔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루이자 밀러’에서 주인공 루돌프 역을 맡았다. 이쯤 되면 역전 홈런. 출발은 늦었지만, 진득하게 한발씩 내딛는 ‘대기만성’의 테너 김중일(36)을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중일은 유럽 콩쿠르라면 질리도록 다녔다. 생활고를 겪는 유학생들이 관광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는 생계를 콩쿠르 상금에 의존했다. “가이드 수입이 짭짤한 건 유학생들이 다 안다. 하지만 돈 버는 재미에 빠지면 음악은 끝이다. 고기 안 먹고 파스타 먹으면 견딜 만하다. 재료를 사서 해먹는 데 1유로(약 1600원)면 충분하다.”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올 초 이탈리아 부세토 베르디콩쿠르. 만 35세의 나이 제한에 걸릴 뻔했지만, 불과 석 달 차이로 피했다. 베르디 작품에 가장 적합한 목소리를 발굴하는 콩쿠르의 올해 심사위원장은 세계 3대 테너 호세 카레라스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정통 리릭 테너(밝고 따뜻하고 윤기 있는 음색)에 가까운 김중일을 눈여겨 봤다. 올해가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이라 자국 출신을 밀어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지만, 김중일이 2위로 입상한 데는 카레라스의 지원도 한몫했다. 카레라스는 시상식 뒤 김중일에게 “더는 콩쿠르에 나가지 말고 제대로 된 일을 시작하라.”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에이전트들에게 소개도 해줬다. 덕분에 대형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다. 이탈리아에 처음 도착하던 날부터 꿈꿨던 일이 현실이 된 셈. ‘루이자 밀러’의 반응에 따라 2012~2013시즌 베르디의 대작 ‘돈 카를로’까지 출연키로 구두약속을 받아놓은 상태다. 당장은 ‘가면무도회’ 생각뿐. 그는 “테너가 가장 힘들어하는 음정이 ‘파’와 ‘솔’ 사이인데 ‘가면무도회’의 아리아 중 아름다운 라인이 파와 솔 사이에 몰려 있어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이탈리아어의 뉘앙스와 악센트는 편해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을 빼면 한국 무대에 처음 서는 터라 설렘과 기대가 교차한다. 게다가 유럽에서 활동하는 연인 정시영(소프라노) 역시 리카르도 왕의 시종인 오스카 역으로 캐스팅됐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동문인 둘은 내년 ‘루이자 밀러’ 공연 이후 결혼할 예정이다. 오후 연습을 위해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어떤 가수가 되고 싶냐고. “노래를 쉽게 하는 게 목표다. 지금은 굉장히 집중해야 노래가 나온다. 다 털어버리고 누구나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아름다운 노래가 술술 나오는 단계에 이르고 싶다. 앞으로 2~3년이 중요하다. 메이저급에 올라서느냐 아니냐는 그 시간에 달렸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가면무도회 1792년 스웨덴 구스타프 3세 암살사건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국왕 리카르도(정의근·김중일)는 충신 레나토(고성현·석상근)의 아내 아멜리아(임세경·이정아)를 사랑한다. 레나토는, 아내와 국왕의 마음을 알고 국왕 암살을 꾀한다. 1만~15만원. (02)586-5282.
  • 한국 전자정부 유럽 첫 수출

    한국 전자정부가 아시아와 중남미 국가에 이어 처음으로 유럽 국가로 수출된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레나토 브루네타 이탈리아 행정혁신부 장관과 ‘한·이탈리아 정보화 협력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유럽 국가 중 한국 정부와 정보화 협력 MOU를 교환한 나라는 이탈리아가 처음이다. 행안부는 우선 전자정부 분야 첫 번째 협력 사업으로 이탈리아(의장국), 포르투갈, 독일, 사이프러스, 스페인 등 5개 국가 간 상호 항만 물류 정보 시스템 연계 프로젝트에 한국의 이포트(e-Port) 전자정부 기술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이탈리아 정부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교육·보건·형사법 분야 전자정부에 대해서는 분야별 전문가 회의를 개최하고, 실질적인 전자정부 정책 및 기술 협력을 위해 양국 정책담당자와 기술전문가 인사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행안부는 이번 업무 협약 체결로 전자정부를 비롯한 정보화 교류 협력이 가속화되고 국내 정보산업(IT) 기업의 이탈리아 진출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 전자정부는 개발도상국과 중진 개도국 진출에 머물렀지만 이제 선진국에도 수출하게 됐다.”면서 “이탈리아의 국제네트워크 결합으로 유럽연합(EU) 지역 전자정부 시장에도 공동 진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유럽 홈리스 급증… 불황이 낳은 ‘新사회층’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홈리스다.”(그리스의 홈리스 페트로 파파도풀로스)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긴축 재정과 고실업의 여파로 영국과 프랑스, 그리스 등지에서 홈리스가 급증하고 있다. 외신들이 이들을 두고 심각한 부채 위기와 사회적 혜택의 삭감에 희생된 ‘뉴제너레이션’(새로운 세대)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 사는 페트로 파파도풀로스(40). 그는 아테네의 한 레스토랑에서 18년간 양고기와 무사카를 요리하다 지난해 실직했다. 이후 결혼을 위해 장만한 아파트도 융자금을 감당하지 못해 잃어버리고 거리로 내몰렸다. 그는 “인생이 180도 바뀌어 버렸다. 모든 걸 잃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9일(현지시간) 전했다. 홈리스 보호소에 의탁한 그는 폐허가 된 거리의 빌딩에서 잠자리를 찾으려고 떠돌던 일을 떠올리며,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현재 그는 보호소에서 홈리스 50인분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맡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그리스의 홈리스 숫자가 최근 2년 사이 20~25% 늘어 최대 2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성인이 돼서도 부모와 함께 살거나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이 연금으로 살아가는 사례가 많은 그리스에서는 충격적인 수치”라고 보도했다. 그리스의 사례는 불경기와 긴축에 허덕이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낯선 모습이 아니다. 통신은 “실업률 증가와 주택 부족, 공공 보조금의 삭감 등이 많은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고, 비교적 안전지대에 있다고 믿어 온 사람들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에서 빈곤층을 지원하고 있는 가톨릭 계열의 카리타스 자선단체는 2009년과 2010년 사이에 그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수가 25% 늘었다고 전했다. 이는 최근 수년간 최고의 증가세다. 카리타스 대변인 레나토 몰리나로는 “경제위기로 더 많은 부부가 갈라서고 있고, 실질 수입은 줄고 있으며, 실직률과 주택 사정은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업률이 21%로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높은 스페인에서는 홈리스 보호소에 몸을 맡긴 사람이 2008~2010년 사이 15.7% 증가했다. 유로존에 속하지 않는 영국에서도 홈리스 가족의 숫자가 지난 1년 동안 10% 4만 4160 가구 늘었다. 프랑스에서는 2008년 10만명 안팎이던 홈리스가 올 초 13만~15만명까지 치솟았다. 프랑스 적십자사는 가출 청소년과 구매력이 감소한 연금 수령자, 망명 신청자들로 인해 홈리스가 충격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들은 “긴급 자금은 대개 먹고 잠잘 곳이 있는 사람을 돕는 데 쓰이고, 대신 홈리스의 사회 재진입을 돕는 장기적인 계획은 지출 삭감이라는 명분으로 폐기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사르코지·캐머런 리비아행… 발 빠른 佛·英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5일(현지시간)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리비아를 방문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습전을 선봉에서 이끌며 리비아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에서 카다피군을 몰아내고, 새 정부를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준 대표적인 서방국가다. 두 정상의 발빠른 리비아 방문은 반군이 수립한 과도국가위원회(NTC)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서의 입지를 선점하기 위한 실리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는 이날 각각 헬기를 이용, 트리폴리의 메티가 공항에 도착했다. 두 정상은 NTC의 2인자 마무드 지브릴의 안내를 받으며 트리폴리의 의료원과 코린시아 호텔 등 주요 시설을 둘러봤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가 병실 3곳에 들러 부상자를 위로하자 리비아인들은 이들을 향해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두 정상은 이날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과 기자회견을 열고 리비아 사태가 끝날 때까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토의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잘릴 위원장도 “동맹국들이 리비아가 앞으로 맺을 계약에서 우선권을 가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NTC를 가장 먼저 리비아의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잘릴 위원장을 파리로 초대했으며, 캐머런 총리는 이집트 민주혁명 성공 이후 처음으로 카이로를 방문한 전력이 있다. 이번 방문에는 리비아 혁명을 지원하도록 사르코지 대통령을 설득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동행했다. 이들은 트리폴리에서 NTC 지도자들을 만나 리비아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방안들에 대해 논의했다. 프랑스 경찰은 전날 밤 트리폴리에 요원 160여명을 파견했으며 16일 본국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제프리 펠트먼 미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도 14일 트리폴리를 방문했다. 지난 8월 23일 카다피 요새 함락 이후 리비아를 방문한 최고위급 미국 관리다. 한편 반군 측은 카다피 고향인 시르테로 진격하면서 집중 포격을 가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이에 대해 카다피는 14일 시리아 아라이TV에 또다시 육성 메시지를 보내 “시르테가 고립되면 세계는 잔혹한 행위에 맞서야 한다.”면서 “리비아 반군에 포위된 고향 시르테를 지켜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中, 阿민주화 물결에 외교 주도권 흔들

    中, 阿민주화 물결에 외교 주도권 흔들

    중국의 아프리카 외교가 흔들리고 있다. 이집트·리비아 등 아프리카의 도도한 민주화 물결 앞에서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눈치를 보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중국의 아프리카 외교가 급속히 쇠락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석유개발과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의 분야에서 3만 5000여명의 인력을 파견해 188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50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원유 수입의 11%를 의존하고 있는 리비아에서만도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아프리카는 사실상 중국의 ‘안마당’이었다. 중국은 서방 국가들이 부패·인권탄압 등을 이유로 아프리카 진출을 꺼릴 때 경제성장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확보한 풍부한 달러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석유·천연가스·광산 개발권을 무차별 사들여 교두보를 확보했다. 2015년까지 중국 기업들의 아프리카 석유·가스·광물에 대한 투자가 50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고, 지난해 중·아프리카 간 교역이 11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으며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올 들어 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민주화 혁명)에 대해 정부 쪽과 반정부 쪽을 오가며 ‘눈치를 보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신뢰를 잃어 중국의 아프리카 외교가 휘청대고 있다. 올해 초 이집트 카이로의 반정부 시위대를 ‘무법자’로 규정한 데 이어,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사임하자 중국 정부는 주요 도시 전역에 경찰을 배치해 이집트 혁명의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에 급급했다. 특히 중국은 2009년 다르푸르 내전과 관련한 전쟁범죄와 인종 대량학살 혐의가 인정돼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오마르 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지난 6월 국빈 초청해 최고 지도부와 회동토록 하는 등 환대해 우려를 자아냈다. 리비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동의했다가 3월 돌연 거부하면서 나토군의 공중작전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데 전세가 반정부군에 유리해지자 중국 정부는 리비아 반군 지도부와 접촉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카다피 측근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양다리 외교’를 펼쳐 국제사회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물론 이런 외교 행보에는 다른 나라의 내부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 탓도 있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도했다. 중국이 지난 6일 발표한 평화발전백서에 따르면 다른 국가가 “독자적으로 그들 고유의 사회체제와 발전 경로를 따르는 것을 존중하겠다.”고 밝혀 여전히 ‘내정 불간섭’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탈레반, 나토 본부에 자폭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갈수록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탈레반이 급기야 12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본부와 미국 대사관 인근까지 공격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아프간 보건부는 이날 카불 시내에서 자살 폭탄테러와 총격전이 다수 발생해 경찰 한 명과 괴한 두 명 등 4명이 숨지고 시민 16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현지 경찰과 목격자들은 미국과 영국 대사관 등 외교공관이 밀집한 카불 소재 와지르 아크바르 칸 지역에 로켓포가 최소 두 번 떨어지는 등 폭발음과 총성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미국 대사관 측은 이날 공격으로 다친 사람은 없으며 직원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상태라고 말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공격이 아프간 정보 당국과 행정관청, 미국 대사관, 국제안보지원군(ISAF) 본부 등을 목표로 한 것이라며 폭탄 조끼와 소총으로 무장한 조직원들이 인근 건물을 장악하고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과 보안 당국 관계자들도 아직 3~4명의 괴한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카다피 “니제르 도주?… ‘쥐떼’의 심리전”

    리비아 반군과 미국이 ‘포위설’과 ‘망명설’이 나돌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하지만 카다피는 8일 자신이 이웃나라 니제르로 도주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거짓말과 심리전에 기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강력히 부인했다. 카다피는 이날 시리아 아라이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트리폴리와 리비아 전역에서 쥐떼(반군)와 용병(다국적군)을 상대로 공격을 가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과 과도국가위원회(NTC)를 격퇴할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현재 리비아에 있다면서 “조상의 땅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군의 트리폴리 점령 이후 카다피와 유일하게 접촉 중인 아라이TV의 소유주 미샨 알주부리도 그가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과 함께 아직 리비아에 있다고 AFP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BBC도 이 인터뷰가 리비아에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전날 NTC의 파티 바자 정치위원장은 “우리는 모든 국가에 카다피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NTC는 이와 함께 카다피 측근들도 리비아로 돌려보내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호송차량에 카다피의 자산으로 추정되는 금과 현금을 싣고 가는 것이 목격됐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제르 정부는 국경 봉쇄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모하메드 바줌 니제르 외무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경지대가 너무 넓어 폐쇄할 방법이 없다.”면서 “카다피가 입국을 요청한다면 받아들일지 아니면 국제형사재판소(ICC)로 넘겨줄지는 나중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역시 카다피 정부 관리들이 니제르 국경을 넘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카다피나 그의 아들들이 니제르로 이미 들어갔거나 입국 시도를 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카다피의 음성 메시지가 전해진 지 수시간 뒤 반군이 이번 주말까지 전투 시한을 연장한 바니 왈리드에 카디피 친위대가 최소 10여차례의 로켓포를 발사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나지 바라캇 과도정부 보건장관은 지난 6개월간의 전쟁으로 리비아 국민 3만명이 죽고, 4만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한편 루이스 모레노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카다피 체포를 위해 인터폴에 회원국에 발령하는 체포명령인 적색 경보를 카다피에 대해 발령해 달라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日 대지진 6개월] 3·11 그때 그사람들… 지금은

    [日 대지진 6개월] 3·11 그때 그사람들… 지금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도호쿠(동북) 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뒤 바닷가와 가까운 대부분의 지역이 처참하게 파괴됐다. 슬픔에 휩싸인 이재민의 모습이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던 일부 이재민의 근황을 주간지인 ‘주간문춘’ 최근호가 소개했다. 대지진 이틀째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한 장의 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한 젊은 여성이 쓰레기더미가 돼 버린 마을에서 지진이 끊어 놓은 아스팔트 도로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인공은 미야기현 나토리시에 사는 이토 아카네(29)로, 쓰나미로 인해 키우던 13마리의 개를 잃고 울부짖는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이토는 이후 개를 찾는 전단을 붙이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이트에 사연을 올렸다. 몇 주가 지난 뒤, 이토는 보호소에 맡겨져 있던 래브라도종(種) ‘메이’와 푸들 ‘모모’를 기적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바다에 떠 있던 주택 지붕에서 표류하다 구출된 개도 주목을 받았다. 3주 동안 먹지 못하고 계속 바다를 표류한 개치고는 건강상태가 너무 양호해 구출된 뒤 논란이 일었다. 이 개는 미야기현 게센누마 주민이 기르던 애완견 ‘방’으로 지금은 80대 여성인 주인에게 넘겨져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당시 주인은 TV에서 3주 만에 구출된 ‘방’을 금세 알아보고 동물 보호센터로 달려갔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등 대지진 이전의 일상적인 삶을 되찾았다고 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중국은 7월에도 카다피군에 무기 판매

    중국은 7월에도 카다피군에 무기 판매

    중국 국영기업이 무아마르 카다피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지난 수주일 동안에도 카다피군에 무기를 팔았다고 리비아 과도정부가 4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G&M)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카다피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7월 16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2억 달러어치의 중국제 무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사실은 G&M 소속 그래미 스미스 기자가 리비아 현지에서 입수한 카다피 정부 문서에 기재돼 있으며, 과도정부 측은 문서가 진본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카다피 측이 베이징에서 만난 무기제조 회사는 중국 북부산업(Norinco), 중국 국립 정밀기기 수출입공사(CPMIC), 중국 신싱 수출입 공사 등 3곳이다. 카다피군이 구매한 무기는 로켓 발사대와 대전차 미사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QW18) 등으로, 중국은 카다피군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한 유엔 결의를 위반한 셈이다. 문서에 따르면 중국 측은 무기를 알제리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통해 리비아로 반입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두 나라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대(對)리비아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나라들이자 평소 중국제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들이다. 중국 측은 무기 운송에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 급한 대로 알제리가 갖고 있는 무기를 카다피군이 가져다 쓰는 방법까지 제의했다. 리비아 반군 대변인 압둘라만 부신은 “유엔 결의를 위반한 나라는 앞으로 리비아와 사업을 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중국과 카다피가 거래한 문서와 무기 등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스 기자는 4장으로 된 문제의 문서를 카다피 정부 고위 관리들이 많이 살았던 트리폴리의 ‘밥 아카라’ 마을 휴지통에서 발견했으며, 문서는 리비아 정부 조달청 마크가 새겨진 봉투에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문제의 중국 기업과 알제리 정부 등은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고 G&M은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의 장위(姜瑜) 대변인도 5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리비아 관련 1970, 1973호 결의안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면서 “리비아에 군수품을 수출하지 않았고 그런 제안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등은 “그런 (중국과 카다피군의 무기거래) 사실을 몰랐다.”면서 “그 문서를 분석해봐야 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막판까지 카다피의 리비아에 대한 유엔 차원의 제재에 반대했던 중국은 반군이 상황을 완전 장악하자 뒤늦게 반군 측을 상대로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펴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카다피 “승리 아니면 순교… 게릴라戰 준비”

    “승리 아니면 죽음뿐이다. 항복은 없다.” 트리폴리에서 패퇴한 뒤 종적을 감춘 리비아의 몰락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1일(현지시간) 두 차례 성명을 내놓으며 지지자들에 결사항전을 촉구했다. 승기를 잡은 반군은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에 “항복 시한을 1주일 더 주겠다.”고 밝히며 친카다피 세력의 항복을 유인했다. 시리아의 친카다피 방송인 알 라이 TV는 이날 두 차례에 걸쳐 카다피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카다피가 자신이 집권한 1969년 쿠데타 42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는 “신은 우리와 함께 있다. 리비아인은 신의 뜻을 위해 순교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며 “반군 격퇴를 위해 게릴라전을 준비하고 리비아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죽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리비아를 점령하려 한다며 “억압받느니 죽는 게 낫다. 유정과 항구를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는 여자가 아니다. 투항은 없다.”고 못박았다. 카다피는 이날 자신의 위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리비아의 수도를 트리폴리에서 시르테로 옮겼다.”고 말해 시르테가 자신의 ‘마지막 요새’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틀 전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던 카다피의 셋째 아들인 알사디는 이날 같은 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말을 바꿔 “승리 혹은 순교 밖에 남지 않았다.”라며 결사항전을 예고했다. 그는 “갱단을 공격하기 위해 모두 움직여야 할 때”라면서 “밤낮 가릴 것 없이 공격하라. ”고 촉구했다. 그는 자신이 트리폴리 교외 지역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CN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반군에 투항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알사디는 아랍권 위성TV인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는 “만약 반군이 이 나라를 이끌겠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면서 “유혈사태를 막을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다만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또 포격을 멈춘다면 카다피의 항복 협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군 측 국가과도위원회(NTC)의 모하메드 자와위 대변인은 “협상 진전을 위해 시르테의 친카다피 세력에 항복시한을 10일까지로 1주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반군은 3일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시르테 진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한편,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60개국 정상과 외교사절들은 지난 1일 프랑스 파리에서 리비아 재건 및 반군 지도부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반군 “카다피 위치파악… 체포 초읽기”

    “카다피,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진격을 눈앞에 둔 리비아 반군이 “카다피의 소재를 파악했다.”며 도주 중인 ‘독재자’를 압박했다. 또 카다피의 셋째 아들인 사아디가 반군에 투항 의사를 밝혔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군 측 국가과도위원회(NTC)는 석유 생산 재개를 준비하는 등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에서 마지막 일전을 벼르고 있다. 알리 타르흐니 NTC 석유·재무장관은 30일(현지시간) 트리폴리 코린시아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카다피는 현재 도주 중”이라면서도 “카다피의 은신처를 알고 있으며 그를 체포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현재 카다피가 아들 2명과 함께 트리폴리 남동쪽 바니 왈리드에 있다는 설과 남부 사막지대인 사바로 도피했다는 설 등 각종 추측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또 반군은 도주 중인 셋째 아들 사아디가 자수 의사를 밝혀 왔다고 주장했다. 압둘 하킴 벨하지 반군 사령관은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아디가 전화를 걸어 와 투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면서 “카다피 정권의 다른 고위 관료들도 투항을 준비 중이며 항복하는 자는 적절히 대우해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벨하지 사령관은 “카다피가 항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반군은 리비아에 어떤 형태의 외국군 주둔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브라힘 다바시 유엔 주재 리비아 부대사는 “유엔이 평화유지군 파병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리비아의 상황은 특별하다.”면서 “리비아는 내전을 겪거나 정치세력 간 갈등을 빚은 게 아니다. 국민이 독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나선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내전이 끝난 뒤에도 리비아 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무기 금수 조치 등을 유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AFP통신이 전했다. NTC는 또 석유 생산이 몇 주 안에 재개돼 15개월 이내에 생산량을 내전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반군은 “리비아 사태 발생 6개월여 동안 모두 6만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항복 안하면 10일내 시르테 장악”

    무아마르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로 진격하고 있는 리비아 반군이 카다피군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차기 정권을 함께 구상하자는 카다피의 협상 제의도 일축했다. 반군은 시르테에 있는 카다피 친위대에게 29일까지 무기를 버리고 반군을 평화적으로 입성하지 못하게 하면 격전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살렘 무프타 알레파이디 반군 대령은 28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시르테 내 카다피 지지세력의 항복을 요구하는 협상이 실패하면 10일 안에 시르테를 장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반군 전사 1만 4000여명도 대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말 투날리 반군 사령관은 “시르테 서쪽 30㎞ 지점에 최전선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반군은 동쪽으로 100㎞ 떨어진 동부의 최전방 빈자와드와 소규모 마을인 노필리아도 장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전투기도 시르테 공습에 합세했다. 마무드 압델 잘릴 과도국가위원회(NTC) 위원장은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반군 지원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카다피는 여전히 리비아뿐 아니라 세계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반군에 대한 나토와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구했다. 나토는 리비아 군사작전 만료시한인 오는 9월 27일까지는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카다피 측은 NTC에 차기 정권의 구상을 놓고 협상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나 보기 좋게 묵살됐다. 카다피 측 대변인인 무사 이브라힘은 “카다피는 여전히 리비아에 머물고 있으며 셋째 아들 알사디를 통해 NTC와 과도정부 구성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 한다.”고 AP를 통해 밝혔다. 하지만 마무드 샤맘 NTC 대변인은 “우리에게 그들은 범죄자”라며 협상 가능성을 부인했다. 카다피 측이 반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시르테 교전이 트리폴리보다 더 큰 유혈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반정부 시위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 유럽연합(EU)이 시리아산 석유제품의 유럽 수입을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고 AFP가 외교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 EU는 이번 주말 안에 이 제재안을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유럽은 시리아의 전체 석유 수출량 가운데 95%를 구입해온 터라 제재안이 발효되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방탄차 6대 알제리로”… 카다피 일가 망명?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한 리비아 반군이 ‘도망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카다피가 인근 알제리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진격을 눈앞에 둔 반군은 수도 트리폴리에서 물과 식량, 연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비아와 서쪽으로 맞댄 알제리 국경의 반군들은 26일(현지시간) “방탄 메르세데스 차량 6대가 행렬을 이루며 리비아에서 알제리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고 이집트 국영통신 메나가 보도했다. 고급 차량들은 친(親)카다피 성향 유목민 부대의 호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군 소식통은 “이 차량에 리비아 고위 관리들, 아마 카다피나 그의 아들들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반군은 무기와 장비가 부족해 차량을 추적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전문가들은 카다피의 유력한 망명지로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등과 함께 알제리를 꼽았다. 알제리 외교부는 카다피의 자국 도주설에 대해 “근거 없는 정보로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짐바브웨에서도 카다피를 목격했다는 야권 정치인들의 주장이 나오는 등 망명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카다피의 대변인인 무사 이브라힘은 “카다피가 여전히 리비아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카다피 측은 반군에 협상을 하자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반군이 거절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한편 반군이 입성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난 트리폴리의 주민들은 연료와 물, 식량 부족에 더해 곳곳에서 시체가 썩어 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특히 전투와 학살로 숨진 이들의 시체가 무더위 속에 치워지지 않은 채 부패하면서 전염병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크리스천 올슨 유니세프 리비아 사무소장은 “물 부족 등이 트리폴리에서 전례 없는 (전염병) 대유행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카다피 측 저격수들이 트리폴리 건물 옥상 곳곳에 여전히 숨어 있어 환자와 의료 인력의 병원 접근이 어렵다는 증언도 나온다. 반군을 돕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은 카다피의 마지막 버팀목인 시르테 지역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 26~27일 차량 15대 등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반군 측도 시르테 서쪽 30㎞까지 진격에 성공했으며 동쪽으로는 100㎞ 떨어진 빈 자와드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AL)은 28일 회의를 열고 유엔 등에 “리비아 자산 동결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리비아 사태 장기화 우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트리폴리 요새가 함락된 지 사흘이 지났지만, 리비아 사태는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반군에 포위된 것으로 알려진 카다피의 행방은 안갯속이고, 잔존 카다피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지중해 인어의 도시 트리폴리는 유혈과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군은 정권 수립 작업에 착수했지만, 카다피는 또다시 육성 메시지를 통해 ‘반군 격퇴’를 촉구했다. 리비아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외신들은 26일(현지시간) 반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이 첨단 정찰기와 감청부대, 특수부대 등을 동원해 카다피의 행방을 좇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카다피는 이날 시리아의 방송국을 통해 전달한 음성메시지에서 “쥐새끼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며 친위세력을 독려했다. 이런 가운데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는 트리폴리에서의 업무를 개시한다고 공식 선포했다. 한편 반군 사이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리비아에 체류하고 있는 북한인들이 추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리비아에는 200명이 넘는 북한 의사와 간호사 등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英 SAS 카다피 추격 선봉 섰다

    英 SAS 카다피 추격 선봉 섰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리비아 현지에 투입된 영국 특수부대 SAS 요원들이 반군의 카다피 추격전을 선봉에서 이끌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4일(현지시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SAS 22연대 요원들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지시에 따라 반군의 추격전을 이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SAS는 이미 수주 전부터 리비아 지상전에 배치됐으며, 트리폴리 함락 작전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지 아랍인의 복장으로 변장하고, 반군이 쓰는 것과 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당초 공습 목표물 유도 역할에서 트리폴리 함락 이후 주요 임무를 카다피 추적으로 전환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현재 리비아 반정부조직인 과도국가위원회(NTC)와 나토는 카다피를 체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와 관련, 프랑스 주간 파리마치는 리비아 반군을 지지하는 의용군이 트리폴리에서 카다피의 신병을 거의 확보할 뻔했다고 25일 보도했다. 이 잡지는 전날인 24일 의용군이 카다피가 숨어 있던 것으로 보이는 트리폴리의 한 민가를 급습했지만 카다피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고 전했다. 잡지는 정보관계자들이 이 같은 정황으로 볼 때 카다피가 아직 트리폴리 내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카다피군-반군 게릴라식 교전… 트리폴리 ‘무방비 도시’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차지했다고 리비아 내전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섣부르다. 무아마르 카다피 지지세력이 트리폴리는 물론 리비아 곳곳에서 반격에 나서면서 전황은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알자지라와 AP통신 등은 전날 반군이 함락한 밥 알아지지야 요새에 카다피 친위대가 다시 나타난 것을 비롯해 트리폴리 시내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25일에는 외신기자들이 많이 머물고 있는 호텔 바로 앞에서도 대낮에 수십분 동안 시가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리폴리가 반군 수중에 완전히 들어가려면 최대 수주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리폴리에서는 전투가 게릴라식 시가전 형태로 바뀌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반군이나 카다피 측 모두 민간인 복장이라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쉽지 않고 전선도 수시로 바뀌고 있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습 지원도 마땅치 않다고 전했다. 한 나토 고위 외교관은 카다피 지지세력이 트리폴리 시내 네댓곳에 거점을 마련하고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토와 반군이 카다피 측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트리폴리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는 최대 몇 주일가량 걸릴 것이란 분석도 있다. 체제 전환기에 따른 사회 혼란도 극심해지고 있다. 카다피의 요새는 물론 카다피 아들과 딸의 집도 약탈당했다. 지난 22일 200여명이 해변에 있는 카다피의 셋째 아들 알사디의 고급 빌라를 급습해 값비싼 물건들을 들고 나갔다. AFP통신에 따르면 카다피 정부가 관리하던 각종 무기가 약탈되거나 이웃 나라 무장조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높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반군이 카다피가 아들들과 함께 카다피 정권의 심장부였던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 근처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 은신한 것으로 보고 그곳을 포위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CNN도 이 아파트단지에 카다피가 은신해 있다고 믿는다는 반군 지휘관의 발언을 인용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카다피 동상 ‘참수’… 공관 무차별 약탈

    카다피 동상 ‘참수’… 공관 무차별 약탈

    “오늘이 비로소 리비아인이 자유를 쟁취한 첫날이다.” 42년간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트리폴리 요새 ‘밥알아지지야’가 23일(현지시간) 함락되자 반군과 시민은 총을 치켜들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파죽지세로 수도를 장악해 가면서도 “밥알아지지야 안에서 자축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져 왔었다. 여섯 달의 내전, 그 사이 수많은 가족과 친구를 잃었던 이들은 쌓인 울분을 풀듯 요새 곳곳의 시설을 부수고 닥치는 대로 전리품을 챙겼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중지원을 받으며 육상저지선을 뚫은 반군은 요새에 도착, 1m 두께의 출입문과 시멘트벽을 향해 총탄을 쏟아부었다. 미스라타에서 트리폴리로 합류한 반군 최정예 부대 수백 명이 선봉에서 한참을 공격하자 대문 중 한 곳이 갈라졌다. 기세에 눌린 카다피군이 도주하면서 승부는 쉽게 갈렸다. 순식간에 알아지지야에는 반군기가 게양됐다. 요새 안에 입성한 반군은 6㎢에 이르는 경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몰락한 독재자의 흔적을 파괴하고 ‘전리품’을 수집했다. 반군과 시민 수백 명은 금빛 카다피 조형물을 찾아 머리 부분을 떼어냈고 손바닥으로 후려치다가 분이 안 풀린 듯 땅에 처박은 뒤 짓밟았다. 1986년 미군의 트리폴리 공습을 기억하려고 카다피가 세운 ‘비행기를 움켜쥔 주먹’ 조형물도 청년들의 분풀이 대상이 됐다. 요새 곳곳은 이미 5개월여에 걸친 나토군의 폭격으로 벙커 등 곳곳이 초토화된 상태였다. 카다피가 머물던 저택도 무차별 약탈당했다. 카다피를 상징했던 군모와 복장에서부터 기이한 수집품, 카다피 가족 구성원의 것으로 보이는 건강기록카드까지 남아나는 게 없었다. 반군은 금을 덧씌운 총과 트로피 등을 들고 나와 자랑하듯 외신 카메라 기자들 앞에서 흔들었다. 카다피가 TV에 등장할 때 애용하던 전동 골프 카트도 반군 차지가 됐다. 한 청년은 카다피의 희귀 모피를 몸에 두르고 집 밖으로 나왔다. 카다피가 6개월 전 반정부시위가 발생했을 때 처음 TV에 나오며 입었던 옷이다. 한 반군은 “많은 친구가 (내전 중) 숨졌다. 그들이 오늘 함께 이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밥알아지지야 요새는 1969년 카다피에게 쫓겨난 아드리스 국왕이 처음 지었다. 쿠데타 이후 카다피가 관저와 막사, 통신센터 등으로 활용해 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정권 붕괴] 구심점 없는 과도국가위… 또 다른 권력다툼에 빠지나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리비아의 앞날에 서방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42년을 이어온 전제주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순조롭게 전환되길 희망하지만 권력 다툼으로 인한 내분으로 새로운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22일(현지시간) 카다피 정권 몰락을 주도한 리비아 반군이 단결과 화합이란 진정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반군을 대표하는 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는 반정부 인사와 해외 망명자, 카다피 체제에서 이탈한 고위 인사, 아랍민족주의자, 이슬람교도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차기 지도자로 내세울 만한 구심점을 갖춘 인물도 뚜렷하지 않다. 리비아 동부 벵가지를 거점으로 활동해온 NTC가 권력 이양을 위한 위원회 재편 과정에서 리비아의 폭넓은 부족과 지역의 대표들을 포괄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NTC는 지난달 피살된 반군 최고사령관 압둘 파타 유네스 대장이 반군 내부의 반대세력에 의해 사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심각한 분열상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NTC 내부 개편 논의에 관여하고 있는 리비아 출신의 오마르 터비 미 컴퓨터회사 대표는 CNN 인터뷰에서 “현재 NTC 위원들은 대부분 동부 리비아 지역의 인사들로 임의로 구성된 만큼 위원회를 확대해 리비아 전체를 대표하는 수준으로 만들 준비가 진행 중”이라면서 “비민주주의적 시스템을 민주주의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최소 24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 반군이 정권장악 이후에도 친서방 정책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불확실하다. 로이터는 “카다피 몰락 후 리비아에 자동적으로 친서방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틀렸다는 점이 입증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재스민 혁명’ 이후 아랍과 중동 지역의 일부 국가들이 서방의 민주주의 체제에 가까워졌지만 일부에선 서방과 가깝다는 이유로 권좌에서 쫓겨난 권력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 반군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을 등에 업고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나토군의 리비아 주둔 문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서방 입장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리비아가 독자적인 길을 가며 제 목소리를 내되 이슬람 극단세력 척결과 이스라엘 지지 같은 문제에서 서방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다. 유럽외교관계이사회의 대니얼 코르스키 선임연구원은 “서방은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지원해야 하며, 카다피가 이루지 못했다고 반군 세력 스스로 생각해온 원칙들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리비아 반군 지도자와 주요 관련국 지도자들에게 향후 리비아의 권력 이양과 민주화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에서 “리비아의 미래는 이제 리비아 국민의 손에 달렸다.”면서 “미국은 권력 이양 과정에서 파트너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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