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나카소네
    2025-12-23
    검색기록 지우기
  • 상트페테르부르크
    2025-12-23
    검색기록 지우기
  • 몰래카메라
    2025-12-2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1
  •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 北미사일, 아베 지지도 쏘아올리다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 北미사일, 아베 지지도 쏘아올리다

    차기 일본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9월20일)를 앞두고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여론조사에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을 계속 앞지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라 아베 장관 등을 중심으로 ‘선제공격’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선거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두 사람이 출마 의사를 공식화하는 다음달 중순에야 선거 구도가 분명해지겠지만, 같은 모리파 소속인 후쿠다 전 장관이 대망을 접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이번 선거는 독도 영유권 문제, 신사참배, 대북 관계 등으로 외교적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선거의 안팎을 미리 점검한다. ■ 강경 아베 힘과 한계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장관은 지난달 초 94명의 현역 의원이 참여한 ‘재도전 지원 의원연맹’을 출범시켜 대중적인 인기뿐만 아니라 당 안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과시했다. 일본인들은 왜 대북 강경파인 아베 장관을 선호할까. 최측근을 자처하는 자민당 야마모토 이치타 참의원은 ▲북한에 대한 확고한 자세 ▲젊고 깨끗한 이미지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라고 짚는다. 화려한 집안 내력 자체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치적 힘으로 작용한다. 그의 아버지는 1980년대 외상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 외할아버지는 강경파의 원조 격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대표적인 지한파 아베 전 외상은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를 이을 재목감이었으나 1991년 갑자기 병환으로 눈을 감았다. 아베 장관은 대권을 눈앞에 두고 타계한 아버지의 한을 풀겠다는 뜻을 자주 내비쳤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베 장관은 정치적으로는 강경 성향의 외할아버지 기시 전 총리를 닮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그 역시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말할 정도다. 헌법 개정과 재무장론은 기시의 정치 노선을 이어받은 것이다. 왜곡된 역사교과서 채택 등 강경우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으니 일본 민족 우월주의라는 피도 물려받았다고 한다. 아베는 고향 야마구치현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야마구치는 메이지 유신과 조선 침략을 주도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리를 비롯해 야마가타 아리도모,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다케, 다나카 기이치,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등 7명의 총리를 배출했다.4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많은 수이다. 1954년 기시 전 총리의 장녀 요코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차남으로 태어난 아베는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하는 유력 집안 자제들이 다니는 세이케이 초·중·고·대학을 나왔다. 고베 제철소에서 3년 반 샐러리맨 생활을 체험한 뒤 아버지 비서관으로 들어가 정치수업을 쌓았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곧바로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37세에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상회담은 그가 총리 후보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납치 문제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 전에 ‘평양선언’에 서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평양에서 돌아온 뒤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때마침 터진 요코다 메구미 가짜 유해 사건과 북한 핵개발로 일본내 반북 정서가 확산된 것도 그의 부상에 날개를 달아줬다. 강경 성향과는 달리 심약하다는 평판도 적지 않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몸집은 크지만 대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지지하는 의원들의 응집력과 행동력도 느슨하다는 평이 있다. ■ 온건 후쿠다 저력과 약점 후쿠다 전 장관 역시 후쿠다 다케오(1976.12∼78.12) 전 총리의 아들이다. 도쿄 북부 군마현 출신이다. 해발 2000m 이상의 명산과 이를 휘감아도는 강이 수려하며 기름진 평야도 많은 이곳은 예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올 지역”으로 손꼽혔다. 후쿠다 전 총리를 비롯, 나카소네 야스히로(1982.11∼87.11), 오부치 게이조(1998.7∼2000.4) 등 총리 3명이 배출됐다. 후쿠다는 언론과 접촉을 즐기지 않고 잠행하는 스타일이어서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아버지 후쿠다파의 정치적 유산을 많이 상속한 숨은 실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후쿠다는 도쿄 학예대학 부속초등학교를 거쳐, 명문 아자부 중·고를 나왔다. 와세다 대학 경제학과 출신으로 마루젠 석유에 다니다 1976년 부친 비서관으로 정치에 첫발을 디딘 것까지 아베 장관과 똑같다. 중의원에는 비교적 늦은 1990년 2월에 처음 발을 디뎠다. 당시 53세였다. 95년 외무차관을 거쳐 2000년부터 모리·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일했다. 그는 역대 관방장관 가운데 1289일로 최고 재임기간을 기록했다. 특히 47세에 중의원에 당선돼 71세에 총리에 오른 아버지처럼 그 역시 70세가 되는 올해 총리의 꿈을 이루려 한다는 얘기들이 들린다. 후쿠다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부친의 현실적인 외교 노선(후쿠다 독트린·1977년)을 이어받은 비둘기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자민당 안에서 가장 결집력 강한 우파 모임인 모리파 소속이다. 실제로 관방장관 시절 “이론으로만 보면 일본이 핵을 보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발언을 했다가 소동을 빚었다. 그가 총리에 오른다 해도 한국·중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거니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후쿠다 지원 그룹은 자민당 중진들을 축으로 하는 ‘반(反)고이즈미, 비(非)아베’ 진영이다. 후쿠다가 출마 기치만 들면 상대적으로 느슨해 있던 이들은 응집력 강한 지지세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 등이 거들 것으로 보인다. 그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자 중진 그룹은 초조해하며 다른 후보 옹립 방안을 검토하는 등 한때 동요했다. 그러자 후쿠다는 지난달 말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한다.”며 “상황을 보고 판단한다.”라고 공언했다. 그의 장점은 17년의 월급쟁이 생활 등을 통해 체득한 상식과 균형감각의 풍부함이 꼽힌다. 반면 지나치게 신중한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특별한 좌우명도 없는 후쿠다는 시간이 나면 음악감상과 독서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히 존경하는 인물도 없다. taein@seoul.co.kr
  • “일본 아직도 제국주의시대 못잊어”

    “일본 아직도 제국주의시대 못잊어”

    일본의 석학으로 꼽히는 고야스 노부쿠니(73)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한국을 찾는다. 최근 독도사태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강한 우려와 동아시아가 힘을 합해 IMF 대신 AMF를 만들자는 논의(서울신문 5월1일자 1면 보도)가 교차하는 상황에서의 방문이라 뜻깊다. 이번 방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윤덕홍)의 ‘석학초청강좌’의 일환으로, 고야스 교수는 15∼18일 한중연과 성균관대에서 ‘일본내셔널리즘의 비판적 독해’,‘동아시아와 한자’,‘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재’,‘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를 주제로 4차례 특강을 연다. 김석근(연세대)·김경일(상명대)·윤해동(성균관대)·김기봉(경기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선다. 고야스 교수 주장의 핵심은 지금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2차세계대전 패전 뒤 일본은 제국주의를 털어내고 민주주의로 이행했다는 82년 나카소네 전 총리의 ‘전후총결산’ 선언에 일본의 정·관·학계가 암묵적으로든 공개적으로든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 비해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일본만의 것’을 추구하는 국수주의적 태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이는 일본의 역사 자체가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철저히 지우는 것에서 출발한다는데서 유래한다.7세기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記)로 일본국이 성립한 이래 면면히 흐르던 이런 전통은 일본의 근대 여명기 ‘에도 시대’에 더욱 확실해진다. 중국과 한국이 일본에 끼친 영향을 탐구한 지식인들은 지워져 가고, 일본만의 것을 강조하는 지식인만 기억된다. “모든 것을 일국사(一國史)로 환원시키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때는 아시아전쟁 대신 일본인의 희생이라는 점만, 독도분쟁은 1905년을 독도를 빼앗은 해가 아니라 러일전쟁의 승전으로만 기억하는데 따른 것이다. 그래서 고야스 교수는 지금 당장 한·중·일 협력을 말하기보다 ‘한자 문화 공동체’로서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공통점 아래 비로소 진정한 연대가 싹틀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야스쿠니신사 류슈칸 가보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전 총리와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야스쿠니신사 내 군국주의 전쟁박물관인 ‘류슈칸’(遊就館)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아사히TV 등이 보도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나카소네 전 총리 일행과 한·일 우호 방안 등을 놓고 대화하던 중 류슈칸에 언급하면서 “가보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말렸다.”며 일본측이 용인하면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일본 방문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와 류슈칸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는 의미로 풀이돼 논란이 예상된다. 류슈칸은 군국주의를 선동하고 예찬하는 전쟁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한 전쟁박물관이다. 이어 노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서게 마련”이라며 “여러분을 보니 걱정이 조금 해결되고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아사히TV는 전했다. 이에 대해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한국 국민들이 왜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지를 정확히 알리는 방법으로 일본측이 방문을 제안한다면 류슈칸을 가볼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일본측이 얼마나 역사를 왜곡했는지, 또 얼마나 전범을 미화시켰는지를 널리 알리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일본언론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해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홍기기자 연합뉴스 hkpark@seoul.co.kr
  • 日총선 고이즈미 압승

    日총선 고이즈미 압승

    |도쿄 이춘규특파원|11일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총선거에서 개표가 종반으로 접어든 가운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총재인 자민당이 압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종 결과는 12일 새벽 확정된다. NHK가 12일 0시10분 현재 집계한 정당별 의석수는 자민당 268석, 민주당 91석, 공명당 28석, 공산당 7석, 사민당 3석, 우정민영화법안 반대파 무소속 12석, 순수무소속 및 기타 6석 등이다. 총 의석은 480석이다. 앞서 모든 일본 언론들도 오후 8시에 공개한 출구조사에서 자민당이 300석 안팎을 얻어 압승, 절대 안정의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결과에 대해 “역사적인 대승”이라고 표현했다. 고이즈미 정권은 이처럼 압도적인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지난 4년 4개월여간 견지해 온 보수·우경화 노선을 한층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가 우정민영화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단일 선거쟁점이 분산화될 것을 우려해 유보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연내 강행하면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갈등심화가 예상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밤 “임기 중 다양한 개혁을 추진해왔으며 국민들이 지지로 화답해주었다.”면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임기연장론’을 부인,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면 물러날 것임을 시사했지만 임기 연장론은 공론화될 것으로 관측됐다. 반면 정권교체 실패시 퇴진하겠다고 약속한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는 이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혀, 향후 민주당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 존립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최종적으로 자민당이 300석을 넘기게 되면 1980년대 중반 나카소네 정권 이후 20여년 만이고, 과반수를 넘긴 것은 15년 만이다. 이번 총선의 원인을 제공한 우정민영화 법안은 이달 하순 재제출돼 중의원·참의원을 통과할 것도 확실시 돼 우정민영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taei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 야스쿠니 8월 두표정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 야스쿠니 8월 두표정

    일본의 패전 60주년인 8월15일 야스쿠니(靖國)신사는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찜통 더위에도 불구하고 20만여명의 참배·관람자들과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어서다. 군국주의 향수에 젖은 우익세력들은 하루종일 신사 경내를 휘젓고 다녔다. 침략전쟁을 반성하자는 양심세력은 신사 근처를 빙빙 돌다 밀려났다. 당연히 엄숙한 추모분위기 대신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이고, 왜 논란의 중심인가. |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집권한 2001년부터 총리가 매년 참배하고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더욱 더 주목을 끌고 있다.2002년 이후 일본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야스쿠니신사는 우익들에게는 군국주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징적인 곳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군국주의 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8월15일 야스쿠니신사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옛 일본군복 차림의 우익인사들이 집단으로 신사를 참배했다. 이들은 오전과 오후 수차례에 걸쳐 거대한 구령소리로 다른 관람자 등에게 위압감을 주면서 옛 일본군이 출전하기 전에 참배하던 식으로 ‘받들어 총’ 자세로 신사를 참배했다. ‘영령에 답하는 모임’ 회원들은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가세,A급 전범 분사를 요구하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도 비난하고 “일본 정부는 외부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분사반대 서명운동을 펼쳤다.‘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고이즈미에게 신벌(神罰)을’이라는 섬뜩한 깃발이 날리기도 했다. 자신을 하라사키라고 밝힌 옛 일본군복 차림의 일본인은 사람들에게 “자위대는 군대다. 따라서 헌법을 고쳐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들, 특히 우익들은 한국언론을 싫어한다. 한국어투가 섞인 일본말로 질문하면 “한국인이지….”라며 적대감을 표시한다. 사라지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그들의 속내를 듣기는 어렵다. 결국 그들간의 대화를 귀동냥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른 나라는 간섭하지 말아줘요 패전 60주년인 올해는 한국인 기자에게 더 민감했다. 평범하게 생긴 60대의 와타나베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짜증냈다. 자신도 참전했었다는 한 80대 노인은 참배 논란에 “내정간섭”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물론 가족을 기리는 참배자도 많았다. 한 80대 할머니는 “형제가 두 명 전사했다. 생명이 있는 한 참배를 계속 하겠다.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으면 우리 형제들이 불쌍하고, 오기도 싫어진다.”고 우려했다. 평소 연인들도 숲이 우거지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야스쿠니를 데이트장소로 많이 찾는다.20대 연인 한 쌍은 “유족은 아니지만, 일본인으로서 참배하러 왔다. 이분들이 일본의 주춧돌이다.”면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참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한 대학생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총리는 참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국내에도 유족은 아주 많이 있지만, 해외에도 피해자가 있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소리 안내는 사람들, 마음은 복잡 평소 사석에서 접하는 일본인들은 비교적 본심에 가깝게 야스쿠니신사 문제에 대해 토로한다. 은퇴한 뒤 4년째 각종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나카자와는 태평양전쟁에 자원 입대했던 삼촌 2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돼 있다. 그래서 야스쿠니를 특별한 의식 없이 찾는다. 다만 A급 전범 분사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확실하다. 일본인은 죽으면 신분 고하를 떠나 신이 되고,A급 전범도 그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분사해도 여전히 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분사해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인들에겐 생뚱맞게 들릴 법하다. 50대 회사원 곤노의 설명은 현실적이다. 야스쿠니에는 246만여명의 위패가 있기 때문에 일본인 전체가 먼 친척까지 포함하면 야스쿠니신사와 일정정도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계기로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초·중·고 시절 단체참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국주의 찬양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본에는 분명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분사나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중지를 요구한다. 극단적으로는 야스쿠니신사 경내의 전쟁박물관인 유슈칸만이라도 즉각 없애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야스쿠니신사가 국제적 논란의 대상이 된 뒤 호기심에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상당수 일본인들은 “야스쿠니 논란 장기화는 누구에게나 상처만 남긴다. 따라서 하루빨리 어떤 형태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며 걱정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日유족회 모리타 쓰구오 부회장|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에 위패가 안치된 태평양전쟁 전사자 유족 모임으로 자민당 최대 후원단체인 일본유족회 모리타 쓰구오(전 참의원 의원) 부회장은 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20년 이상 된 (야스쿠니 신사) 소란이 언제나 그칠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일본인이 야스쿠니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본인 중에도 참배 안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젊은이 가운데는 야스쿠니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찾는 경우가 많다. 일반 신사와 다를 게 없다. ▶고이즈미 총리 등의 참배에 한국, 중국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데. -일면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일본의 가치가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리다. 참배자 대부분이 A급 전범에 관계 없이 유족의 관점에서 참배한다. 나라를 위해 숨진 영령들을 위령하는 이곳을 국정 최고 책임자인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A급 전범 등은 다르지 않나. -일본인들은 A급 전범을 범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쿄재판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731부대 책임자가 미국의 정보에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에 전범에서 누락되는 등 의문점이 많다. 전쟁 책임은 인정하지만, 왜 14명만이 특별히 책임져야 하나. 독일도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나치나 히틀러에 대해 사죄했지, 독일 자신의 사죄는 아니었다. 일본에는 히틀러 같은 사람이 없다. ▶A금 전범 분사에 대해선. -한국과 중국을 만족시킬 해결책이 있으면 검토하겠지만 지금은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분사는 있을 수 없다. 일본을 위한 희생자인데 246만 영령에 끼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 분사 의견도 있긴 하지만 분사는 도쿄재판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반대한다. ▶무종교 추도시설 건립은. -새 추도시설을 만들어도 결국 새로운 논란만을 낳을 뿐이다. 기념비 같은 것은 해외 여론을 달랠 뿐 국내에선 새로운 논쟁이 격렬해진다. 기독교, 불교 등의 반대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이후도 130년 역사의 야스쿠니가 유일한 추도시설이다. ▶일반 국민의 유족회에 대한 생각은. -우익단체나 군국주의를 연상하며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시각에 강력히 반대한다. 우리는 피해자다.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1985년 나카소네 전 총리의 참배 이후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커지며 20년간이나 시끄러운 문제가 됐다. 유족들은 유지하고 싶은데 근린제국들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돼버렸다. taein@seoul.co.kr ■ 야스쿠니 신사는야스쿠니 신사는 왕궁, 국회, 총리관저, 관청가와 가까운 도쿄 한복판에 있다. 연간 참배·관람자는 500만여명에 달한다고 신사측은 밝힌다. 야스쿠니는 ‘편안한 나라’라는 의미다. 따라서 나라를 편안하게 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1978년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고,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가 참배하며 국제적인 논란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최근은 더 심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옛 일본군들이 “죽은 뒤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며 참배한 뒤 태평양전쟁에 나갔을 정도로 국가 신도의 상징장소였다. 일왕 중심의 군국주의의 온상이기도 했다. 따라서 연합군사령부가 야스쿠니를 없애려다,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되자 유지시켰다.1개 종교법인으로 격하됐지만 일본인들에겐 야스쿠니는 특별한 존재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무진전쟁 이후 태평양전쟁까지의 11개 전쟁 전몰자 246만 6532명(지난해 10월17일 현재)이 안치되어 있다.
  • [국제플러스] 日우정법 반대 확산… 정가 요동

    일본 참의원 우정 민영화 특별위원회는 5일 오후 우정 민영화 법안을 자민·공명 양당 찬성 다수로 가결, 본회의로 넘겼다. 이에 따라 8일 오후 참의원 본회의에서 법안 표결이 이뤄질 계획이지만 자민당에서 반대하는 의원이 속속 늘어나 일본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우정 민영화에 가장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자민당 내 가메이파 회장인 나카소네 히로부미 전 문부상은 이날 법안에 반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동향이 주목돼온 나카소네 전 문부상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자 자민당 집행부는 동조세력이 늘어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같은 파 가시무라 다케아키 방위청 정무관도 법안에 반대하기 때문에 내각에 남을 수 없다며 정무관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신격호 롯데 회장은 빚을 몸속의 열에 비유하곤 한다. “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과다한 차입경영이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신 회장의 말은 울림이 크다. 일각에서는 “껌 팔아 부자됐다.”며 롯데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기여도가 높다는 삼성·현대·LG 등이 저마다 골칫덩이 자식 한두 개 때문에 국가경제에 고통을 줄 때도 롯데는 어느 계열사 하나 그런 곳이 없었다.“실패하더라도 빚을 돌려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투자한다.”는 신 회장의 무차입 경영 덕분이다.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70.3%. 삼성(50.0%) 다음으로 재무구조가 튼실하다.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를 받아가며 부(富)를 일군 신 회장.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양국에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지금껏 과실송금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중후장대 기간산업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경박단소 첨단산업을 일으켰다면, 신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다. 몇 안되는 생존 창업주인 그는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셔틀경영’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이름 시게미쓰상 그는 홀수달에는 신격호, 짝수달에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가 된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서 일한다. 그의 셔틀경영이 언제쯤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서는 모국 투자가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라고 짐작한다. 벌써 30년째다. 월말이 되면 수행원도 없이 혼자 공항에 나가 훌쩍 비행기를 탄다. 생활철학인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한국에 머무를 때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쓴다. 집무실 겸 숙소다.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바로 옆의 롯데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 정도다. 올빼미족에게 반가운 얘기 한가지. 신 회장은 창업주 총수로는 드물게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9시에 호텔방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임원들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말수가 적다. 칭찬에도 인색하다.“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완벽주의자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에 오랜 일본생활까지 겹쳐 웬만해서는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때로 냉정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둘째아들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언론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단돈 83엔 들고 일본으로 신 회장은 1922년-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랐다-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했지만 “박봉의 삶이 싫어” 1941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다. 이 때가 열아홉살.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돈이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어가던 1944년 어느날,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친구들은 “귀국선을 타자.”고 종용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는 게 그였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럴 듯한 간판(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도 달았다.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 내친 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었다. 또다시 대박.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탄생했다. 껌회사에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붙인 발상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한 문학청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다소 풀렸다.1948년 6월28일의 일이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을 때, 일각에서는 “고국에 대한 첫 투자가 겨우 소비재 사업이냐.”며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항변한다.“한·일 수교로 모국 투자길이 열리자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렇게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고국에 진출한 그는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지난해 말 현재 자산 29조 7000억원, 계열사수 41개, 종업원수 3만 5000명이다. 일본롯데에 비교도 안됐던 매출액(26조원)은 7대3 규모로 역전됐다. ●일본인 아내와 재혼 신 회장은 조혼 풍습에 따라 1940년 둔기리의 고향처녀(노순화)와 결혼했다. 신혼생활은 신 회장의 일본행 가출로 1년여만에 끝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29살에 요절했다. 신주쿠 허허벌판에서 일본 1위의 껌업체 하리스와 10년 상전(商戰)을 벌이는 동안, 신 회장에게 큰 힘이 돼준 이는 1952년 재혼한 일본인 아내 다케모리 하쓰코(竹森初子·78)씨였다. 결혼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시게미쓰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한다. 신 회장은 노 여사와의 사이에 맏딸 영자씨를, 시게미쓰 여사와의 사이에 동주·동빈 두 아들을 두었다. 롯데가의 한 인사는 “동주와 동빈이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히로유키, 아키오라는 일본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렸다.”고 전했다. ●백화점 주역 신영자 부사장 모녀 신 회장의 맏딸 영자(63)씨는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 겸 호텔롯데 면세점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왔다. 유통업계의 라이벌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는 대학 동창이다. 지난해 말 롯데면세점 모델인 ‘욘사마’ 배용준씨의 사진전에 직접 참석했을 만큼 회사일에 적극적이다. 유통 사업가답게 의상과 화장이 화려하다. 다소 깐깐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자녀 혼사는 막내딸 정안(31)씨. 지난해 5월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37)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 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회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잡화 바이어(차장)로 일하던 정안씨는 결혼후 휴직, 남편과 함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이 변호사를 만나 2년간 연애했다. 주례는 시아버지의 절친한 ‘지기’ 한완상 한성대 총장이 맡았다. 한 총장과 이 전 회장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함께 하기도 했다. 신 부사장이 사업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이는 둘째딸 선윤(34)씨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97년 롯데쇼핑에 입사, 올해 초 이사로 승진했다. 명품관 ‘에비뉴엘’ 개관의 일등공신이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다. 성격도 소탈해 직원들 사이에 평이 좋다. 인테리어 회사 사장과 결혼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외아들 재영(38)씨는 롯데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인쇄업체 ‘재영상공’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맏딸 혜선(36)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선윤씨처럼 독신이다. ●일본롯데 이끄는 큰아들 동주 동주(51)씨는 일본롯데 부사장이다. 결혼이 다소 늦었다. 서른여덟살이던 92년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둘째딸 은주(41)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아버지를 닮아 내성적인 그는 의외로 열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아들(정훈·12)만 하나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87년 한국롯데에 입사했다.“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롯데 이끄는 둘째아들 동빈 동빈(50)씨는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역시 형이 다닌 아오야마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것도 형과 같다. 한국무대에 데뷔한 것은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증권사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치에 매우 밝다.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중국적자이던 그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했다. 처음엔 우리말이 서툴렀으나 지금은 발음이 조금 어색할 뿐,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와인을 즐기지만 폭탄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문학 기질을 이어받아 사석에서 가끔 괴테의 시를 영어로 읊기도 한다. 이승엽 프로야구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다. 세간에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인사의 얘기는 다소 다르다.“형인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다. 원래 신씨 집안 남자들이 활달한 편은 못된다.” ●한·일 넘나든 현해탄 혼맥 롯데가는 물론 재벌가를 통틀어 화려한 혼맥의 정수로 꼽히는 게 동빈씨의 결혼이다.85년 형보다 먼저 일본에서 다섯시간에 걸친 일본전통 혼례식을 치렀다. 신부는 일본의 대형 건설사 다이세이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딸 마나미(眞奈美·46)씨.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학습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일본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았다. 결혼식에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일본 총리가 세 명이나 참석해 한·일 양국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다. 마나미씨를 만나본 한 인사는 “평범하고 참한 인상”이라고 전했다. 아들 유열(19)군과 규미(17)·승은(13) 두 딸을 두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은 일본에 살고 있다. 한달에 두세번 신 부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 회장이 ‘셔틀 기업경영’을 하고 있다면, 신 부회장은 ‘셔틀 가족경영’인 셈.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은 부자(父子)가 똑같다. ●남다른 고향사랑과 초고층 건물에의 꿈 해마다 5월이면 신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 둔기리 호숫가의 너른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인다.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1971년 5월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인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모임 이름도 고향에서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처음엔 수십명이던 회원수가 아들·며느리·손자의 가세로 지금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고향 못지 않게 신 회장에게는 애틋한 대상이 있다.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여든살이 되던 해인 2002년,112층 건물 청사진을 내보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교통영향 평가 등에 걸려 지금껏 삽도 떠보지 못했다. 신 회장은 ‘건설통’ 서울시장에게 기대를 걸며 초고층 건물을 재추진하고 있다. ●유통명가 떠받치는 롯데맨들 롯데에는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설된 정책본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계열사간 조정자 역할을 한다. 호텔롯데 소속의 김병일(62) 사장이 신동빈 부회장(본부장)을 도와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73년 호텔롯데 경리부장으로 입사해 81년 그룹 기획조정실 이사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신 회장 부자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다는 핵심참모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전무가로 말수가 적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는 경리분야에서 20년 잔뼈가 굵은 한수길(64) 사장이 맡고 있다. 자일리톨껌 등 ‘연타석 홈런’으로 경영성과를 끌어올렸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삼성 출신의 장경작(62) 사장과 ‘젊은’ 이인원(58) 사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사장을 지낸 장 사장은 올 2월 롯데맨으로 변신했다. 수익사업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닌다. 평균 연령이 60대인 롯데 경영진 사이에 드물게 50대인 이 사장은 97년 CEO(최고경영자)로 파격 발탁돼 8년간 장수하고 있다. 관리·영업·매입 등 백화점 3대 요직을 모두 거쳤다. 의심나면 끝까지 파헤친다. 할인점 업계 최초로 중소기업 박람회를 연 롯데마트 이철우(62) 사장과 정통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대석유화학 인수 주역인 호남석유화학 이영일(64) 사장도 눈에 띈다. 신 회장의 가족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친동생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과 5촌조카 신동인(5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롯데를 일구는데 일조했으나 지금은 한발 물러나 있다. 음료업계 최초로 순 매출액 1조원 돌파의 대기록을 세운 롯데칠성음료 이종원(61) 대표이사 부사장,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롯데건설 이창배(58) 대표이사 부사장,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불리는 롯데삼강 이광훈(57) 대표이사 전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맨이다. 황각규(51) 롯데쇼핑 상무와 강현구(45) 롯데닷컴 상무 등은 신 부회장의 관심사업을 보좌하고 있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 이철우 사장의 회고다.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백화점을 짓기는 했는데 신세계의 세 배인 드넓은 매장을 채울 일이 걱정이었다. 회장님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타박하시더니 평창면옥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시 서울 평창동에 있던 평창면옥은 5000원짜리 밥맛이 워낙 좋아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사람들이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곳까지 가겠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문제는 절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신 회장의 이 얘기는 지금도 롯데 임직원들 사이에 자주 회자된다. hyun@seoul.co.kr ■ 절친했던 신격호·정주영 회장 신격호 회장은 생전의 정주영(왕회장) 현대 창업주와 절친했다. 왕회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직접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신 회장이 일곱살 아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매우 닮았다. 우선 대가족의 장남이다. 신 회장은 동생이 9명, 왕회장은 7명이다. 중농·빈농의 아들로 농사규모는 달랐지만 식솔이 워낙 많아 삶이 퍽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공 신화의 시작이 가출이라는 것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열아홉살 때 “앞이 안보인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사업 시작후 최대의 시련도 ‘불’이었다. 신 회장은 처음 차린 커팅오일 공장이 불에 몽땅 타버려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왕회장도 첫 사업인 자동차수리공장이 불에 타는 바람에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신 회장은 이 때문에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자나깨나 불조심을 외친다. 롯데호텔 준공 때 멀쩡한 새 건물의 복도 천장을 뜯게 한 뒤 손전등으로 직접 방화 장치를 확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죽을 고비도 한차례씩 넘겼다. 여든이 다 될 때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던 신 회장은 언젠가 밤길에 귀가하다가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왕회장도 새벽에 울산공장을 시찰하러 직접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바닷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 발상도 기발하다. 신 회장은 풍선껌에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장난감처럼 불 수 있게 했다. 왕회장은 겨울 골프에 빨간 골프공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빨간공 일화를 남긴 1970년 초봄 라운딩의 동반자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폭설이 내려 (하얀 골프공을 찾을 수 없는 만큼)의당 약속이 취소된 것으로 여겨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M&A(인수합병)보다는 직접 공장말뚝 박기를 즐겼던 것이나 귀향잔치(둔기회·소떼방북)를 벌인 점도 똑같다. 다만, 신 회장은 언제나 소리가 나지 않았고 왕회장은 늘 요란했다. 대선 출마 등 말년에 한눈을 판 왕회장과 달리 신 회장이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hyun@seoul.co.kr ■ 신동빈 부회장 ‘큰어머니’ 제사 해마다 직접 지내 지난달 21일 저녁 서울 성북동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자택. 검정 옷차림의 신씨가문 후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날은 종손인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 노순화 여사의 기일이었다. 신동빈 부회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의 제사를 주관했다. 누나인 신 부사장은 말없이 ‘생모’의 제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 회장이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동빈씨는 한국에 정착한 이후 노 여사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고 있다. 집안에서나, 그룹에서나,‘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굳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언급을 회피하던 그룹측은 이제 공공연하게 “후계구도 작업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신 부회장이 일본인 아내를 맞은 점 등을 들어 일본롯데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장남인 점 등을 들어 한국롯데를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한때 유력했지만 현재로서는 뒤집힌 셈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신설된 정책본부의 장(長)을 맡으면서 후계자 논란을 확실하게 잠재웠다. 재계는 “그룹 대권을 둘째아들에게 넘기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로 해석했다. 신 부회장은 온라인쇼핑몰·편의점 사업 등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KP케피칼·현대석유화학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아버지의 신임을 굳혔다. 현장을 중시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롯데마트 금천점에 불쑥 나타나 한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나중에 꼭 확인한다. 상장(6개사)에 인색한 기업 문화와 보수적인 토양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된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日우익, 도쿄재판 정당성 부인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패전 60주년을 맞아 2차대전 패전국으로서의 전후질서를 규정당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정당성에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일본 야스쿠니신사는 “A급 전범은 일본 국내에서는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도쿄신문을 통해 공식 밝힌 데 이어 25일에는 신사 경내에 도쿄재판 당시 모든 피고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 인도인 펄 판사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26일 후지TV에 출연, 도쿄재판의 정당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A급 전범이 범죄인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28일 발족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지지하는 자민당 국회의원 모임은 A급 전범에 대한 “유죄 판결의 문제점”을 앞으로 모임의 논의과제로 삼을 계획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주일 인도대사관 무관 등 40여명이 참석한 비문 제막식에서 야스쿠니신사측은 “일본 무죄론을 전개한 아시아의 학자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펄 판사는 도쿄재판에 참여한 11명의 판사 중 유일한 국제법 학자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을 포함한 피고 전원의 무죄를 주장했다고 산케이신문이 전했다. 야스쿠니신사는 앞서 도쿄신문에 보낸 서신에서 A급 전범은 “일본 국내법으로는 범죄자가 아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도쿄재판에 대해서도 “재판이 절대 옳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야스쿠니신사의 이런 입장은 A급 전범의 전쟁책임을 부인한 것으로 야스쿠니 참배가 “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고이즈미 총리의 설명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일본은 A급 전범의 전쟁책임을 인정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을 통해 독립국의 지위를 회복했다. 도쿄신문은 야스쿠니측의 이런 입장은 고이즈미 총리가 아무리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전몰자 추도를 위해’ 참배한다고 주장해도 참배 자체가 전쟁책임을 모호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야스쿠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taein@seoul.co.kr
  • [클릭 이슈] 日야스쿠니참배 논란 확산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가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 계속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자민당 내에선 참배 자제론이 확산되는 중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참배 강행시 연립정권 이탈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탓에 A급 전범의 분사(分祀)가 절충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야스쿠니 신사측은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접점 찾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는 올해 동북아시아 외교안정의 열쇠로 인식되고 있다.2차대전 종전 60주년이라는 특별한 해를 맞아 한국과 중국은 어느 해보다 야스쿠니 참배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서다. ●꺼지지 않는 동북亞 ‘외교 불씨’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 계속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 일본외교가 동북아시아에서 고립되는 양상이 심화되자 집권 자민당 내에서 참배 자제론이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다.A급 전범을 분사하는 방안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란 의견도 나온다. 지난달 29일 자민당 내에서는 이례적으로 나카가와 히데나오 국회대책위원장이 한·일, 한·중관계의 장애물인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 야스쿠니신사측과 유족의 협의에 따른 A급 전범 분사안을 제시했다.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전제를 달았다. 자민당 요사노 가오루 정조회장도 같은 날 한국과 중국의 야스쿠니 참배 반발이 ‘내정간섭’이라는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 등의 입장에 제동을 걸었다. 이어 지난 1일에는 고노 요헤이 중의원 의장이 전직 총리 5명을 만나 ‘참배 자제’ 요청이라는 강수를 던졌다. 보수적 색채가 뚜렷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3일 한 강연에서 “A급 전범의 분사가 현실적인 해결방법일 것”이라면서 “분사에 시간이 걸리면 참배를 그만두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결단”이라며 참배 중단을 요청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 대표도 1일 참배시 연립정권 이탈 가능성을 경고한데 이어, 공명당은 분사를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야스쿠니신사·유족측 분사 거부 이처럼 참배 중지 목소리가 커지며 분사안이 절충안으로 제시되자 야스쿠니신사측과 유족측은 강하게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측은 A급 전범이 분사되면 신사의 영향력이 급격히 퇴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유족측은 전범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는 까닭에 반대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의 유자와 다다시 전 궁사(宮司·신사의 총책임자)는 5일 후지TV 프로그램에 출연,“영구 분사는 있을 수 없다.(A급 전범의 유족 전체가 분사에 찬성해도)그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분사를 받아들이면 도쿄재판 사관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반대했다. 2차대전 패전 당시의 일본 총리로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의 유족인 손녀 도조 유후코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2차대전이 일본의 침략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분사를 거부하고 있다.”며 “도조 집안이 분사에 응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으나 결코 응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나라가 하라고 해서 할 일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앞서 야스쿠니신사측은 A급 전범을 재판했던 도쿄재판에 대해 “국제법의 관점에서 강한 이론이 남아 있으며 일본인은 이들을 전범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며 “이들을 분리해서 모시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제3의 길 모색 고이즈미 총리의 최측근 인사인 야마사키 다쿠 전 총리 보좌관은 5일 “고이즈미 총리의 성격상 (야스쿠니신사 참배의)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면서 “총리가 참배하더라도 중국과 한국이 납득할 수 있는 외교적 배려가 없는지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3의 방안을 강구 중임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이 발언은 물론 고이즈미 총리가 올해에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야마사키 전 보좌관은 이날 TV아사히 보도프로그램에 출연,A급 전범 분사를 신사측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별도의 국립 추도시설을 건립하는 문제 역시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 내 완성이 어려운 만큼 제3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이나 중국이 납득할 만한 방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taein@seoul.co.kr
  • 日 역대총리 8명 “고이즈미 신사참배 자제를”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중국 등의 반발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가운데 참배를 저지하기 위한 압박 강도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고노 요헤이 일본 중의원 의장은 1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 등 역대 총리 5명을 의장 공관으로 초청, 환담한 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중·일,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고노 의장은 회담에 참석하지 못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호소가와 모리히로, 하타 쓰토무 전 총리 등 3명과 미리 전화로 양해를 구한 결과 같은 뜻임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담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하시모토 류타로, 모리 요시로,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가 참석했다. 고노 의장은 이날의 합의 내용을 조만간 고이즈미 총리에게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들은 역대 총리가 한꺼번에 현직 총리에게 이런 식의 의사를 전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 간자키 타케노리 대표도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총리가 참배를 단행하면 “연립(정권)의 기반에 나쁜 영향이 있다.”고 경고해 귀추가 주목된다. 앞서 이날 요미우리 신문은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달 27일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국제정세에 따라 일본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면서 “그러니 (야스쿠니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어 “내가 미국 일변도라는 말을 듣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좋기 때문에 (그나마)중국과의 관계(악화)가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아베 간사장대리는 “중국은 역사인식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한 놓치지 않는다.”고 맞장구친 데 이어 다음날 삿포로 강연에서 “야스쿠니 참배는 총리의 책무”라고 한발 더 나아갔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taein@seoul.co.kr
  • 고이즈미 취임 4주년 열차 참사로 빛바래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6일로 취임 4주년을 맞았지만 효고현 열차참사로 빛이 바랬다. 경제도 상승세가 주춤,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로 재임 일수 1462일을 기록했다.8월 18일을 넘기면 이케다 하야토 내각의 1575일을 넘어 전후 4번째 장수 내각이 된다. 또 내년 4월 6일이면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내각의 1806일을 추월, 사토 에이사쿠, 요시다 시게루 총리에 이어 전후 3번째 장수 총리가 된다. 전후 최장수 내각이었던 사토 총리 정권은 2798일, 요시다 총리는 2616일을 재임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말까지여서 국회해산 등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24일의 중의원 보궐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최대 현안인 우정민영화법안을 자신의 구상대로 국회에 제출하려 하지만 당내 반발로 26일 각의 처리가 연기되는 등 진통도 적지 않다. 고이즈미 총리는 기자들에게 “자민, 공명당과 국민여러분의 지원에 감사드린다.”고 4주년 소감을 밝혔다. taein@seoul.co.kr
  • [사설] 日, 각료 문책만으론 안된다

    일본의 독도 침탈 기도와 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관계가 갈수록 악화하자 일본 쪽에서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며칠전 나카소네 야스히로·모리 요시로(일한의원연맹 회장)등 전직 총리 2명과 회합, 각료들에게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토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문책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달 말 내한하는 모리 전 총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화해의 뜻을 전하는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라고도 한다. 이같은 일본의 화해 제스처를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양국이 척지는 게 아니라, 일본이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그동안의 왜곡 행위를 사과해 선린우호 관계를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의 태도를 일단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그리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그 까닭은, 일본정부의 대책이라는 게 그동안 보여온 미봉(彌縫)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이다. 일부 각료를 문책한 뒤, 특사를 보내 수사(修辭)로 장식한 사과를 하고, 이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는 게 일본의 전형적인 화해·수습책이다. 이번에도 일본은 그 수순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봉책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일본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일본정부에 요구한다. 망언을 한 각료를 문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책만으로 끝내는 건 안 된다. 사태의 본질인 독도침탈 기도와 교과서 왜곡 문제에서 일본정부는 구체적인 약속을 해야 한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즉시 포기하든지, 그것이 당장은 어렵다면 적어도 각종 정부 문서, 검정 교과서 등에서 그같은 주장을 더이상 확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교과서 왜곡과 관련해서는 다음 검정 과정에서 근린조항 기준을 강화하고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이같은 일을 실행한 뒤 일본 특사가 방한, 고이즈미 총리의 친서를 전달할 때에야 한국 국민은 비로소 일본의 진의를 받아들일 것이다.
  • “한국자극 각료 문책등 3개항 고이즈미·모리·나카소네 합의”

    일본의 교과서 왜곡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모리 요시로(전 총리) 일한의원연맹 회장,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최근 회동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3개항’에 사실상 합의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그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인은 이 자리에서 ▲일본 각료들은 한국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고 ▲이같은 발언을 한 인사는 엄중 문책하며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해야 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이뤘다는 것이다. 아울러 모리 전 총리가 이달 말 한국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화해 메지시를 담은 친서를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져 양국 관계 회복여부가 주목된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 8일 방한한 모리 전 총리의 측근인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이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한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인 권철현 의원과의 개별 면담을 통해 ‘3인 회동’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같은 내용이 오갔다고 정치권의 한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물론 한나라당측도 이같은 사실에 대해 공식 부인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고바야시가 개별 면담에서 나눈 얘기는 대외비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해 실제로 이 내용을 전달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이달 말에 모리 전 총리가 방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이즈미 친서를 가져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문제 발언을 한 각료들을 문책하는 등 3개 항에 일본측이 의견을 모았다는 것도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도 “모리 전 총리가 고이즈미 친서를 갖고 온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3개항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다소 다른 뉘앙스로 부인했다. 문소영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日자민, 헌법 전문에 명기 추진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집권 자민당이 헌법 전문에 ‘일왕은 국민통합의 중심적 존재’라는 문구가 들어가도록 개헌안 시안을 마련 중이라고 도쿄신문이 30일 보도했다. 개헌안 시안을 만들고 있는 자민당 신헌법기초위원회의 ‘전문’ 소위원장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신문과의 회견에서 전문에 ‘일왕’의 존재를 명기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일왕은 역사·전통적 권위의 보유자이며 장군과 총리는 기능·실무적 통합을 행해왔다.”며 역사와 전통이라는 표현을 써넣기 위해서라도 일왕의 존재를 전문에 명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쟁 및 전투력 보유의 포기를 규정한 9조 개정에 대해 “전쟁 포기를 정한 1항은 그대로 두지만 2항에는 일본의 독립과 안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위군이나 방위군을 갖는다고 표기한다.”며 “개별적·집단적 자위권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밝혔다. 특히 해외무력행사로 이어질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국가방위의 범위 안에서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예를 들어 걸프만에서 송유관이나 일본의 수송선이 위해를 당했을 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국제기구와 다국간의 협조에 의한 세계평화와 인도·협력문제에서는 일본의 방위군이 참가할 수 있으며 특히 국회의 승인을 얻어 무력행사도 가능하다고 명기한다.”며 “당에서도 대체로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taein@seoul.co.kr
  • 브레이크 고장난 일본…우경화 누가 이끄나

    |도쿄 이춘규특파원|현직 각료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망언하고, 전직 총리가 ‘일왕은 국민통합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등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경화를 이끄는 일본판 ‘네오콘’의 추동세력은 누구인가. 정부와 집권 자민당에 골고루 포진해 있는 ‘전후세대’가 주축이라는 데 별 이견은 없다. 무엇보다 우경화에 제동을 걸었던 사민당 등 혁신세력이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잇달아 참패하며 지금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페달과 같은 상태다. ●고이즈미 내각, 네오콘 전방위 포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년 4월 취임 이래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핵심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와 영토분쟁 중인 북방 4개섬을 직접 시찰, 분쟁을 선도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집권 4년간 몇차례 개각을 단행하면서 강경보수 매파인 ‘네오콘’을 내각과 정당에 전방위로 배치했다. 내각 서열 1위 총무상인 아소 다로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던 것”이라는 등 망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회장도 맡고 있다. 내각 서열 3위 마치무라 노부다카 외상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두둔했다.2001년 후쇼사 교과서가 처음으로 검정을 통과할 때 문부과학상이었다. 마치무라 외상은 올 초 직업외교관 최고위직인 외무성 사무차관에 대북 강경파인 야치 쇼타로 전 관방부 장관보를 기용, 외교실무라인의 보수색채를 강화했다. 이들 강경라인이 최근의 ‘실력외교’를 실무적으로 이끌고 있다. 일본 교육을 총괄하는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일본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 출신으로 취임 후 “역사교과서에 군대위안부나 강제연행이란 말이 줄어 다행”이라는 망언을 했다. 급기야는 29일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을 퍼부었다. 산업정책을 맡은 나카가와 쇼이치 경제산업상은 “종군위안부에는 강제성이 없었다.” “반일적 교과서에서 배우는 어린이들이 맡을 차세대는 괜찮은가.”라는 망언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네오콘의 총본산 자민당 당직자 자민당은 네오콘들의 본거지이다. 차기 총리후보 1순위로 지목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북한 때리기’를 통해 성장한 인물이다. 강경 네오콘의 주축이다.“자위대는 군대다. 누가 총리가 되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호언하고 있다. 다케베 쓰토무 간사장은 “일본은 천황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30∼40대의 ‘젊은 우파의원’들은 전범국의 책임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신사참배 강행 등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들 당정의 핵심세력은 대부분 전범국으로서의 부채의식이 없는 ‘전후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A급 전범 용의로 투옥까지 됐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 간사장 대리, 아소 총무상, 나카가와 경제산업상 등 2∼3세 정치인들은 “선조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의 일본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했다. 아울러 고도성장기에 자라면서 ‘일본이 최고’라는 의식이 강해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아시아 일원이 아닌, 즉 140여년만에 다시 탈아(脫亞)를 외치며 ‘세계의 강국 일본’을 꿈꾸고 있다. ●뒤에서 미는 우익본류, 전전세대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자민당의 신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우경화의 상징인 개헌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모리 전 총리는 총리 때인 지난 2000년 9월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라고 망언해 물의를 빚었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직접적인 표현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입장을 밝힌 인물이다. 그는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의 친위부대 역할을 하는 강경 우파 ‘모리파’의 수장이다. 자민당 신헌법조사위원회의 전문분야 소위원장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천황은 국가원수”,“일본도 이제 보통국가가 될 때가 됐다.”,“방위군 보유” 등의 발언으로 전후세대들을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고이즈미총리 임기연장론 대두

    |도쿄 이춘규특파원|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가 26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나카소네(전총리)처럼 (임기를) 보너스로 1년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내년 9월로 예정된 고이즈미 총리의 자민당 총재직 임기 연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모리 전 총리는 이날 나하시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우정사업민영화 관련 법안에 대해 신중한 당내 의견조정을 촉구하며 고이즈미 총리 문제에 대해 “성숙하면 고개를 숙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 임기 만료까지 틀림없이 분투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차기총리 유력 후보로 부각된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를 하면 제일 인기가 있는 사람이 아베겠지만 총리가 되기엔 아직 빠르다고 생각한다.”며 시기상조론을 주장했다. 그는 “(아베는)아직 대신(장관)을 한 적도 없다.”며 아베가 각료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현지 언론들은 27일 “모리 전총리로서는 아베가 포스트코이즈미의 강력한 후보가 될 경우 당내 세대간 대립이 격화될 것을 우려, 아베에게 순서를 밟아갈 것을 권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taein@seoul.co.kr
  • 제주 “세계평화의 섬 됐수다”

    정부가 27일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문제를 논의하고 국제분쟁과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완충지대로 거듭나게 됐다. ‘평화의 섬’과 관련 제주도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협력 관련 주요 회담 유치 ▲국제 평화협의체 또는 경제협력기구 유치 ▲제주국제평화센터 건립 ▲동북아평화연구소 설립 ▲제주평화포럼의 아시아·태평양 대표 포럼으로의 육성 ▲모슬포 한국군 및 일본군 전적지 공원 조성 ▲남북 평화 네트워크 구축 ▲제주 4·3문제의 발전적 해결 등의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12조는 ‘국가는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고 평화관련 사업에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주도는 이날 ‘세계 평화의 섬’ 인터넷 홈페이지(www.peace.jeju.kr)를 개통했다. 내달 1일에는 ‘평화의 섬’ 지정에 공로가 큰 인사들을 초청, 기념 콘서트를 열고 9∼11일에는 44개국 주한외교사절과 가족 등 100여명을 초청,‘평화의 섬’ 지정 설명회를 갖고 한국과 제주의 전통문화를 체험토록 하는 등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임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또 13∼19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한·중·일 3개국 프로축구 A3대회를 ‘세계 평화의 섬’ 지정 기념대회로 열고 오는 6월 9∼11일 개최되는 제3회 제주평화포럼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 등이 참석하는 전직 정상회담을 추진키로 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日, 일왕 국가원수 격상 추진

    日, 일왕 국가원수 격상 추진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이끄는 정책연구기관이 방위군 보유와 방위군의 해외무력행사 용인,‘일왕’의 국가원수 규정 등을 골자로 한 헌법개정 시안을 20일 공표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현재 자민당의 개헌추진 기구인 신헌법기초위원회 위원인 데다 국가원로급 인사여서 그의 주도로 마련된 개헌안은 여야 정치권의 개헌작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회장인 ‘세계평화연구소’가 내놓은 개헌 시안은 전문과 11장,116조로 구성,‘전쟁포기’를 명기한 현행 헌법 9조 1항을 유지하는 반면 9조 2항의 ‘전력(戰力) 불보유’는 삭제하고 ‘방위군’ 보유를 명시했다. 조문에는 ‘국제평화 및 안전유지와 인도상의 지원을 위해 국제기관 및 국제협조 틀 내에서의 활동에 방위군을 참가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넣어 방위군이 유엔 다국적군 또는 미국 등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의한 해외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아울러 국회 승인을 전제로 방위군의 해외 무력행사를 인정한다는 문구를 명기, 평화헌법의 정신에 반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시안은 또 1조에서 국민의 상징으로 규정된 ‘일왕’을 ‘일본국의 원수’로 격상했다. 이밖에 ‘내각’에 속하는 현행 행정권을 ‘내각 총리대신’에게로 귀속, 총리의 권한을 강화했다. 총리는 중의원 결의를 통해 중의원 의원 가운데 지명토록 하되 중의원 선거에서 각 정당은 총리 후보를 내세우도록 해, 의원내각제를 유지하면서 총리 직접선거의 정신을 살리도록 했다. taein@seoul.co.kr
  • 日 총리보좌관 제안한 야스쿠니 분사 ‘퇴짜’

    |도쿄 이춘규특파원|야마사키 다쿠 일본 총리 보좌관이 지난 9월 야스쿠니신사측에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의 분사(分祀)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야마사키 보좌관은 당시 신사 간부 3명을 만나 “(분사 찬성론자인)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천황의 신사 참배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범을)분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제안했다고 신문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 전했다. taein@seoul.co.kr
  • [시론]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오성삼 건국대 사범대 교수·前국제교육진흥원장

    [시론]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오성삼 건국대 사범대 교수·前국제교육진흥원장

    교육인적자원부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확대를 위한 종합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1만 7000명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를 오는 2010년까지 5만명 선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일본이 지난해 외국인 유학생 10만명 유치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에 비하면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계획을 내놓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유학생 개념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떠나는 유학’이었을 뿐, 외국인 학생들을 국내 대학으로 끌어들이는 유학은 아니었다.1950년대 한국전이 끝나면서 미군 군함을 타고 유학길에 오르던 그 당시에 비하면 현재 18만명에 이르는 한국인 해외 유학생 수는 괄목할 만한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유학생의 수는 대략 200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제 유학생 유치정책은 단순히 학술전수와 문화교류의 차원을 넘어 관광객 유치처럼 국가가 나서야 할 중대 정책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현재 18만여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확보하고 있는 독일은 향후 전 세계 유학생 인구의 15% 유치를 목표로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이를 통해 명실공히 유럽의 중심 국가로 위상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있는 뉴질랜드는 유학생 10명을 유치할 경우 교수 요원 1명과 행정 직원 1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계산 아래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관련 기관의 담당자들이 자국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홍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해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나라는 아무래도 이웃나라 일본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이미 20여년 전인 1982년에 당시 나카소네 총리의 지시로 추진된 외국인 유학생 10만명 유치 계획이 목표 연도인 2003년에 그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국가는 물론 대학과 지방 공공단체들,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참여하는 범국가적, 범국민적 프로젝트의 성과인 것이다. 일본이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추진해온 유학생 정책과는 달리, 향후 5년 안에 5만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국내에 유치한다는 교육부의 추진 목표는 결코 쉬워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 추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어 극복의 과제와 외국인 학생들의 주거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보편화되지 않은 한국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유학 초기에 영어 강의 교과목들을 우선 개설해 줌으로써 선 유치, 후 한국화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국내 대학간 공동학위제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각 대학에서 영어강의가 가능한 교수진을 참여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최초로 직면하게 될 주거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 대학별 단위가 아닌 몇몇 대학들이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는 외국인 유학생 공동 기숙사의 설치도 고려해봄직하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 공동 기숙사 안에 한국어 학습센터를 운영하고 유학생 전담관리자를 고용 배치해 외국인 유학생들의 비자 연장이나 한국생활 적응을 위한 각종 상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본 시스템의 가동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의 성패는 업무를 추진하는 교육부 해당부서의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말 2조 2000억원에 달하는 유학수지의 적자 해소를 위해서라도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부디 이번에 교육부가 내놓은 외국인 유학생 국내 유치를 위한 ‘스터디 코리아’프로젝트가 착실하게 추진되길 기대해 본다. 오성삼 건국대 사범대 교수·前국제교육진흥원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