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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곳곳마다 깃든 구국정신… 저마다의 삶에 스민 예술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곳곳마다 깃든 구국정신… 저마다의 삶에 스민 예술

    1년간 연재해 온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이 어느덧 마지막 마을까지 왔습니다. 그동안 아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전남 해남 우수영 마을은 많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갖는 가장 뜨거운 역사의 현장을 관통했던 곳이다. 세계 3대 해전으로 꼽히는 명량대첩(1597)이 치러졌던 곳이다. 당시 조선 수군 사령부인 우수영이 있었던 이곳을 중심으로 명장 이순신과 조선군은 일본군에 맞서는 전쟁을 준비했다. 조선 수군에게는 단 12척의 배만 남아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민관이 힘을 합쳐 일본에 맞섰다. 마을에서 3㎞ 떨어진 울돌목에서 133척의 배를 갖고 있던 일본 수군을 대파했다. 명량대첩의 격전지였다는 것은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명량대첩비’가 증명한다. 전쟁이 끝난 후 숙종 14년(1688년) 세워진 이 기념비는 마을의 자랑이자 마을 주민들의 자긍심을 상징한다. 대첩비는 이후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서울 경복궁에 버려지는 수난을 당했고 해방 후 주민들이 이를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대첩비를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는 마을의 영광과 수난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마을사이기도 하다. 해남 우수영 마을이 갖는 군사요충지로서의 역할은 조선시대를 끝으로 사라졌지만 진도를 비롯한 주변 섬과 목포 등을 잇는 선박 교통 요지로서의 역할은 근현대까지 이어졌다. 우수영 마을이 속한 문내면은 인구가 한때 1만 5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이었지만 진도대교 개통(1984년) 이후 급격히 쇠락해 갔다. 도로와 다른 교통편의 발달로 배 운항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목포와는 하루 왕복 14회, 수시로 배가 드나들던 포구는 이제 제주나 흑산도 등을 오가는 배가 하루 서너 차례 드나들 뿐이다. 인구도 5000여명으로 3분의2가 줄었다. 그러던 마을은 2014년 영화 ‘명량’의 대성공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명량대첩에 관심을 갖던 이들이 현장을 찾아왔다. 울돌목 부근에 우수영 관광지가 있지만 실제 해전을 준비하던 사령부가 있던 마을도 보조를 맞췄다. 마을에는 격전지 당시에 마을을 형성했던 성터가 남아 있고 무엇보다 명량대첩비가 있다. 우수영 마을은 명량대첩 이후 퇴각하던 일본군에 대패의 분풀이로 유린당했던 참혹한 역사도 갖고 있다. 마을과 주민들은 마을을 알리기 위해 ‘예술’을 끌어들였다. 마을 미술 프로젝트 공모전에 선정돼 전문 예술가들과 마을이 협력을 시작했다. 한창 번화했던 시기 큰 번화가였던 길을 중심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예술작품들을 설치했다. 2015년 1차 프로젝트에는 16개 팀이 40점의 작품을, 올해 진행된 2차에는 12개 팀이 12점의 작품을 남겼다. 우수영 마을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비어 있는 건물을 최대한 활용해 집에 잠자고 있던 스토리에 예술을 입혔다는 것이다. 과거 여관, 잡화점, 문방구, 분식집, 복덕방, 포목점, 가정집 등이었던 곳이 예술과 결합해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50년 된 여관은 생활사 갤러리 겸 카페,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몸만 겨우 누이던 작은 방들은 전시관이 됐고 오가는 사람들이 모였던 큰 방은 1920년대 지역 초등학교 교실을 재현한 공간이 됐다. 과거 술집 등으로 이용됐던 집은 마을 미술에 대해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관으로 변했다. 1938년 지어져 상점 등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술래공작소라는 간판을 달고 도자기를 이용한 전시관과 체험 공방으로 변신했다. 비디오와 만화 등 첨단 예술 장르가 결합한 것도 인상 깊다. 옛날 복덕방이었던 집은 복덕방 간판을 그대로 남긴 채 명량대첩 때 왜군을 교란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강강술래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공연으로 형상화한 비디오아트를 전시하는 곳이 됐다. 한 건물에는 마을 이야기를 만화로 엮은 백아형, 이강산 작가의 ‘울다 피다 날다’를 소재로 한 만화갤러리가 들어섰다. 올해 만들어진 ‘불멸의 이순신’관에는 이순신 장군을 형상화한 철제 작품을 만들어 머리와 몸통에 모니터를 달았다. 머리에선 우수영 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가슴 모니터에서는 우수영 마을 풍경이 보인다. 이순신도 빼놓을 수 없는 마을 미술의 소재이지만 영웅만을 형상화하기보다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삶과 이야기를 작품들로 그렸다. 민족사에 길이 남는 대첩 이후 수난당했던 마을 주민들의 역사도 오롯이 마을 미술로 기록돼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2차 프로젝트에는 시각 예술뿐만 아니라 소리 예술도 한 작품으로 포함됐다. 강강술래, 부녀농요, 들노래 등을 부르던 마을의 소리꾼들을 전문가의 도움으로 조직화해 정기적으로 공연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녁이면 모여서 연습을 하고 5일장 등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공연을 해 주목받았다. 이전한 마을의 초등학교에서는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아트캠프가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수영 마을은 2016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400여년 전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구했던 이들의 역사를 간직한 해남 우수영 마을은 또 다른 울림을 던진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자동차로 서해안고속도로에서 고하대로, 관광로 등을 이용해 우수영 마을에 이른다. 우수영 여객선터미널에서 우수영 예술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해남읍 종합터미널까지 시외버스로 이동 후 우수영 마을까지 해남군내 버스를 이용한다. 해남에서 출발해 진도까지 가는 버스도 우수영 마을을 경유한다. 광주송정역에서 출발해 나주역과 해남버스터미널을 거치는 시티투어도 우수영 마을을 경유한다. 격주 토요일마다 운행한다. 관광안내소 532-1330. 마을 생활사갤러리에는 마을 문화해설사가 상주해 있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넬 만큼 적극적이다. 마을과 예술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해 준다. →함께 둘러볼 곳:명량대첩 격전지인 울돌목이 바로 보이는 우수영 관광지가 마을에서 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충무공 유물전시관과 명량대첩기념공원, 강강술래전수관 등이 있다. 매년 10월 명량대첩 축제가 열린다. 진도대교 건너 진도타워에서 울돌목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우수영 마을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우항리 공룡박물관은 아이들과 함께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공룡 발자국을 따라 지구의 역사를 배워 볼 수 있다. →맛집:우수영 마을 안쪽의 선두식육식당(532-1206)은 관광객이 아닌 마을 주민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삼겹살과 돼지갈비, 돼지불고기 등 돼지고기 요리가 푸짐하고 맛있다. 특히 점심으로 내놓는 김치찌개는 두툼한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 칼칼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문내면사무소 앞 삼거리에 있는 둥지식당(533-5595)은 소고기국밥이 맛있다.
  • 文 “민심은 하야·퇴진”… 安 “더이상 대한민국 대통령 아니다”

    文 “민심은 하야·퇴진”… 安 “더이상 대한민국 대통령 아니다”

    야권 대선주자들은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일부 개각을 단행한 데 대해 일제히 비판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대선주자는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야권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규정한 국정농단 사건 이후 강경해진 민심을 대변하려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전남 나주학생운동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 국민들의 압도적인 민심은 박 대통령이 즉각 하야하고 퇴진해야 된다는 것”이라면서 “저는 그 민심을 잘 알고 있고 그 민심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광주를 방문한 문 전 대표는 이번 개각이 박 대통령이 사실상 2선 퇴진하고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내치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는 이원집정부제 식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청와대 설명에 대해 “‘셀프거국내각’을 만든 거다. 이런 말 아니냐”면서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나 절차가 중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안 전 대표는 “국민께 헌법파괴 사건의 죄를 고백하고 백배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버젓이 총리를 지명했다”면서 “이것은 국회에서의 총리 인준 논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얄팍한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긴급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조각권을 행사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면서 “박 대통령도 헌법유린과 국정농단과 관련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이날 오후 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대통령 퇴진 시국촛불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퇴진’ 을 외쳤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이날 국회에서 “대단히 실망스럽다”면서 “야당의 지도자들과 의회의 지도자들에게 정국 수습에 대해 대통령이 협의하고 또 특히 야당의 지도자들에게 향후 정국 운영을 맡겨야 한다. 그 길만이 지금의 국정 표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도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은 과도정부를 구성한다는 자세로 거국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혼탁한 나라…운주사 와불, 언제 일어서시려나?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혼탁한 나라…운주사 와불, 언제 일어서시려나?

    '장길산은 천불천탑 전설 속 불상들의 얼굴처럼 우리들 각자가 시대 속에서 그려나간 자신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제 새로운 독자들은 여기서 다시 자신의 얼굴을 하나둘씩 발견해나가게 되리라' 황석영은 2004년에 재출간된 자신의 소설, ‘장길산’(1984)의 서문에서 운주사(雲住寺) 절집에 무더기로 펼쳐 앉은 각각의 돌부처 얼굴들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듯 작품을 만나라 하였다. 우리가 운주사를 방문해야 할 깊은 이유 중의 하나다. 소설의 마무리를 살펴보면 관군에 석패한 길산이 남도의 ‘천한 생명’들인 진도, 나주, 함평, 섬 노비들과 함께 능주로 숨어든다. 그리고 그들의 새 세상 도읍지를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한 절멸(絶滅)의 장소, 억한(億恨)의 공간으로 작가는 어렴풋하게 운주사를 그려낸다. 전라남도 화순에 위치한 운주사는, 방문하는 문인이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수많은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기이한 절집이다. 흔히들 불가사의한 내력을 지닌 한반도 유일의 사찰이라는 기명(奇名)과 아울러 누구든 입 쩍 벌려 놀란 한숨 세 번은 들이켜야 뒤돌아보지 않고 나갈 수 있다는 희한한 사찰이기도 하다. 장길산이 꿈꾸었던 미륵(彌勒) 세상인 용화세계(龍華世界)를 못내 이룬 절집, 운주사다. ●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운주사의 창건배경 참으로 기이하고 놀랍다. 운주사를 만든 이는 도대체 누굴까라는 의문은 절에 발을 디딘 모든 사람들의 머리위에 말풍선처럼 떠있다. 우선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千佛山)에 자리 잡아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라는 지위를 지니지만 이름값은 본사인 송광사에 버금간다. 이런 유명세는 바로 운주사의 창건 배경과 연혁에 대한 미스터리 때문이다. 시중에 많이 회자되는 창건 배경은 신라 말의 고승(高僧)이었던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절을 지었다는 설이다. 도선국사가 하루 밤낮에 절을 창건하려 하였으나 일하기 싫던 제자가 낸 거짓 닭울음소리에 천불천탑을 만들던 석공들이 하늘로 돌아가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전설은 지금도 유명하다. 이외에도 운주(雲住)가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중국의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 풍수사상에 입각하여 배를 운행한다는 뜻인 운주사(運舟寺)로 불려야 한다는 의견 등등 참으로 이야기는 분분하다.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박물관 등지에서도 발벗고 나섰지만 딱히 정확한 절의 창건연대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불교 유적은 주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이라는 사실과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 보아 그 시기에는 석불 석탑이 천기씩 실존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정유재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전쟁 등을 거쳐 1980년대까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폐사(廢寺) 상태에서 수백 년의 세월동안 운주사의 귀한 석불과 석탑들이 전국 각지와 일본으로 옮겨갔으리라 추정이 된다. 결국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는 상태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마도 옮길 수 있는 것, 떼갈 수 있는 것, 돈이 될 만하고 모양 곧은 것은 여지없이 사람들의 손을 탔을 것이다. 만약 그대로 천불천탑이 보존되어 있었다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나 미얀마의 만달레이사원들 같이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허망한 상상은 발걸음을 뗄 때마다 아쉬움을 키운다. ● 세계에서 하나뿐인 형태의 유일무이한 와불(臥佛)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들의 특성은 푸른 잔디와 산 능성이 곳곳에 점을 찍듯, 뿌려 놓은 듯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흡사 불교 조각공원에 온 느낌이다. 이곳의 석불(石佛)은 한마디로 ‘서민적’이다. 늘상 우리가 보아오던 불교 도상(圖像)에 걸맞는 정통의 그것들과 달리 서민적이고, 비례가 맞지 않는 투박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토속적이면서도 해학적이고, 해학적이면서도 기품이 있으며, 기품 속에서도 도전적이다. 모든 불상과 불탑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네 얼굴처럼 못났다. 그러기에 황석영 작가의 바람처럼, 이 곳에서 자기 얼굴 하나 빼닮은 부처 한 분 정도는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석탑 역시 마찬가지다. 산허리와 들판 곳곳에 서있는 석탑들의 기단은 말 그대로 자연적이다. 특이하고, 원반모양부터 항아리모양까지 기존 석탑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듬지 않은 판석과 옥개석은 동그랗기도 하고, 마름모 모양이기도 해서 애당초 탑 맵시는 정형에서 벗어나 있다. 아마도 당시 석탑을 포개어 쌓은 석공들의 마음속에서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의식이나 변혁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으리라. 운주사를 방문하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이채로운 불상이 있다. 와불(臥佛)이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형태의 유일무이한 부처님이다. 이는 열반상(부처님이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상)과는 다르게 좌불(앉은 모습)과 입상(선 모습)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그대로 누워있다. 좌불12.7미터, 입상10.26미터의 대단히 큰 불상으로 나침반을 갖다 대면 정확히 남북으로 향하고 있다. 곤륜산의 정기를 받아 와불이 일어나면 미륵의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열리듯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러하기에 한 때 일제 강점기나 독재 정권에 항거하던 울분찬 젊은이들이 이 부처 옆에 앉아 맘을 삭혔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한편 와불 아래 산등성이에 지금도 미스터리하게 남아있는 불적(佛跡)이 있다. 바로 칠성바위다. 원반형 칠층 석탑의 옥개석으로 쓰였던, 하나하나 바닥에 붙은 둥근 돌들의 배열은 북두칠성의 방위각이나 밝기와 흡사하다. 이는 불교에서 우리 민간 신앙인 삼신각이나 칠성각을 짓고 받아들인 것처럼 불교에 수용된 칠성신앙의 한 모습으로 보인다. 또한 운주사 경내 푸른 잔디밭에는 특이한 형태의 불상이 또 하나 있다.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이 있고 그 안에 두 분의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는 특이한 불상이다. 이 두 석불은 정확히 남북을 바라보고 있는 데, 도저히 이 석조불감 제작의 베일을 풀 방법은 지금도 찾을 수 없어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신기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게 한다. 이 외에도 운주사 경내에는 백제계, 신라계, 고려계 형태의 다양한 석불과 석탑이 펼쳐져 있어 방문한 모든 이들에게 사찰이 지닌 신앙적 의미를 넘어서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누구든 운주사를 한 번이라도 방문한다면, 천불천탑 조성을 통해 삶의 회한을 승화시키려 하였던, 잊혀진 우리네 조상들의 소박하지만 뜨거운 예술혼을 가슴 깊숙이 담게 될 것이다. <운주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무조건 방문하길 권한다. 방문하는 모든 사람마다 느끼는 생각은 하나다. 좀 더 진작 올걸! 2. 누구와 함께? -누구나 좋지만, 삶에 지친 그대여! 운주사 와불에 그대의 고뇌도 같이 놔두고 오길. 3. 가는 방법은? -광주(12km)→ 화순(10km)→ 능주(5.1km)→평리사거리(2.4km)→클럽900(2.8km) →도장리8km) → 도암삼거리(3km)→ 운주사 (50분 소요)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20 / (061) 374-0660 4. 감탄하는 점은? -모든 것이 다 경탄스럽지만, 그 중 와불과 와불 언저리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남도 땅의 풍광은 압권이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당연히 유명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종교사찰로만 인식되어 안타깝다. 종교를 넘어서 조상들의 순수한 민간신앙의 한 모습도 엿볼 수 있는 삶의 공간이다. 6. 꼭 봐야할 석불이나 석탑은? -와불, 석조불감, 9층 석탑, 칠성바위, 시위불 등 시간이 남는다면 한 개라도 다 둘러보면 좋다. 그 중 와불은 기본 중의 기본!! 7. 먹거리 추천? -의외로 인근에 식당을 잘 찾지 못한다. 화순 시내로 나와서 식사를 하는 것도 좋다. 경내에서 판매하는 솔잎차나 기타 간단한 먹거리가 있기 때문에 다리품 쉴 곳은 넉넉하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unjusa.org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바로 옆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갑사라는 절, 그리고 인근에 다산 초당, 녹차밭도 들릴 만하다. 도곡 온천에서 묵은 때를 벗기고 오는 것도 추천! 10. 총평 및 당부사항 -화순 다탑봉 운주사를 방문하는 그대! 모든 고뇌를 경내에 떨쳐버리고 돌아오시게!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쇼핑앱도 빅데이터 기반... 3040-성별 따른 추석선물 선호도 보니

    쇼핑앱도 빅데이터 기반... 3040-성별 따른 추석선물 선호도 보니

    빅데이터 기반의 쇼핑 큐레이션앱 ‘쇼닥’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3040세대들의 선호도가 높았던 추석선물 리스트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남성들의 경우 김영란법 실효를 앞두고 고가의 선물보다는 실속형의 선물 세트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3040 남성들의 선물 리스트 검색 1위는 롯데마트의 ‘정성담은 고당도 사과와 배 세트’였으며, 2위는 11번가의 ‘농협 안심한우 1++ 등급 1.2kg 불국장 정육선물세트’, 3위는 ‘정관장 홍삼정 에브리타임’이었다. 3040 남성들의 경우 차례상에 올릴 수 있는 과일 세트와 산적, 갈비찜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정육세트에 관심이 높았다. 또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며 홍삼 등 건강식품에 대한 선호도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3040 여성들의 선물 검색 리스트 1위는 G마켓의 ‘해피콜 아르마이드 세라믹 주물냄비 5종 세트’였으며, G마켓의 ‘(한수위)5구 용기 견과 세트’가 2위, 역시 G마켓의 ‘(한수위)나주 신고배 세트’가 3위를 기록했다. 여성들의 추석선물 검색 비율은 견과류가 22%, 주방용품 및 과일이 각 20%를 차지했으며, 제수 음식 준비에 필요한 주방용품에 대한 관심도도 상당했다. 특히, 최근 프라이팬 코팅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코팅이 없는 주물냄비에 대한 선호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쇼닥 측은 12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3040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유통업계는 물론 소비자들도 다양하게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쇼닥은 쇼핑(Shopping)과 닥터(Doctor)의 합성어로, 쇼핑몰과 구매자의 상품 정보를 빅데이터 기반으로 연결해 원하는 상품을 제공하는 쇼핑 큐레이션 앱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순득 누구? 홍어장수가 조선시대 종2품 된 사연

    문순득 누구? 홍어장수가 조선시대 종2품 된 사연

    조선 후기 우이도의 홍어상인 문순득이 9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에 소개됐다. 문순득은 1801년 류큐(오키나와)에 표류하여 필리핀, 마카오, 중국을 거쳐 3년 2개월 동안 각국의 문물을 접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상인으로서는 드물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인물이다. 홍어 장수였던 문순득은 나주에 가던 중 표류하게 됐다.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한 곳에 있었는데, 그곳은 지금의 오키나와였다. 문순득은 환대 속에 1년을 보냈다. 그로부터 1년 후, 문순득은 청나라 배를 탔는데 또 필리핀 루손 섬에 표류하게 됐다. 그는 필리핀에서의 삶을 즐겼고, 1년 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1801년 제주에 갑자기 이방인이 나타나 조정은 골머리를 앓는다. 이를 전해 들은 문순득은 제주를 찾았고, 이방인들과 대화를 했다. 그들은 바로 필리핀 사람들이었던 것. 문순득은 이같은 공을 인정받아 종2품 가선대부로 임명됐다. 정약전의 ‘표해시말’에서 문순득은 조선 최초 필리핀 통역관으로 기록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내일 전기 얼마나 만들까… 한전 아닌 거래소 결정

    내일 전기 얼마나 만들까… 한전 아닌 거래소 결정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를 포함해 20개 중앙부처가 밀집한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세종 신도시에는 ‘전봇대’가 없다. 당연히 어지럽게 얽혀 있는 전선도 없다. 땅속으로 전선을 넣은 ‘지중화’ 덕분이다. 올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전기요금 누진제로 전기에 대한 국민의 민감도와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스위치만 누르면 나오는 전기, 대체 어떻게 만들어져서 우리 집까지 오는 건지 전기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들여다봤다. 전기가 발전소에서 집까지 오는 경로는 ‘발전소→송전용 변전소→배전용 변전소→가정’으로 요약된다. 매일매일 새롭게 생산되는 전기는 경제적 저장이 어려운 만큼 정확한 수요 예측이 중요하다. 전력 산업을 감독 기획하는 건 정부이지만 내일의 전기 수요를 예측하고 얼마만큼 전기를 생산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력거래소다. 전력거래소가 다음날 필요한 전기 수요를 예측, 설계하면 석탄과 원자력 등 여러 발전소들은 이에 맞춰 전기를 생산한다. 도매사업자이자 유통업체인 한국전력이 이 전기를 사들인다. ●갓 태어난 전기, 2만 볼트 전압으로 여행 시작 한전은 발전소에서 갓 만들어진 전기(전압 2만V)를 멀리 있는 소비자에게 보내기 위해 송전용 변전소를 통해 초고압(15만 4000V, 34만 5000V, 76만 5000V)으로 올려 송전 선로로 내보낸다. 이를 전국 각지의 배전용 변전소가 받아 배전선로를 통해 공장이나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전압(2만 2900V)으로 적절히 낮춰 보내고, 가정은 전봇대의 변압기를 통해 최종 220V로 전기를 사용한다. 전기가 운반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 송전, 변전, 배전을 알면 전력 산업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우선 전압은 전류를 흐르게 하는 힘이다. 단위는 볼트(V)를 쓴다. 물이 낮은 곳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힘이 세듯이 전압 또한 전압이 높으면 흐르는 전기의 힘이 강해진다. 송전은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고압의 전기를 먼 곳까지 보내기 위해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크게 올리는 과정이다. 전기는 송전 철탑과 고압선(송전선)을 이용해 2~3단계의 변전소를 거쳐 도시 부근의 3차 변전소까지 온다. 경남 밀양에서 주민과 한전이 갈등을 빚었던 게 바로 이 송전탑이다. 배전은 변전소로부터 소비자까지 전기가 전달되는 과정을 말한다. 변전은 전기를 송·배전하기에 적당한 전압으로 올리거나 내리는 것을 말한다. 배전용 변전소에서는 전기가 각 가정이나 소규모 공장 앞까지 갈 수 있도록 전압을 낮춰 준다. ●세종시 ‘지중화’ 뒤 올 정전사고 2건뿐 세종시나 한전 본사가 있는 전남 나주 혁신도시, 경기 화성시 동탄 신도시 등에는 송·배전 선로가 땅 위가 아닌 땅 밑에 깔려 있다. 예를 들어 세종시의 경우 도로 밑 2.2m, 인도 밑 0.6m에 32개의 송·배전 회선 케이블이 매설돼 있다. 도로 쪽 케이블이 더 깊은 이유는 오가는 차량 무게로 인한 전선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 케이블 길이는 79㎞로 케이블당 3개의 회선이 들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송·배전선로의 총길이는 237㎞에 달한다. 한 회선의 전력량은 1만㎾다. 한전 관계자는 “가구당 전력소비량이 평균 3㎾인 점을 감안하면 32개 회선에 흐르는 전력량은 총 32만㎾로, 10만 6700가구가 한꺼번에 동시에 쓸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 왜 지중화를 하는 것일까. 땅 위에 전봇대를 세우면 수리도 편하고 비용도 땅을 파야 하는 지중화 공사비의 10분의1밖에 들지 않는다. 1㎞당 지중화 비용은 15억원으로 전봇대를 세웠을 때(1억 4000만~1억 7000만원)보다 10배가량 비싸다. 결정적인 이유는 미관 개선과 안정적인 전기 공급에 있다. 노건기 산업부 전력산업과장은 7일 “지중화는 도시 미관에도 좋지만 낙뢰나 이물질로 인한 정전 우려가 훨씬 낮다”고 설명했다. 감전 등 안전사고도 줄일 수 있다. 한전 세종지사에 따르면 세종시는 2009년부터 기존 전봇대를 지중화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2011년에는 낙뢰, 차량 충돌 등으로 인해 15건의 정전이 발생했지만 지난해는 인구가 크게 늘어났음에도 정전 건수가 4건에 그쳤다. 올해 정전 건수는 2건이었다. 그만큼 지중화가 전선망 보호에 효과적이었다는 얘기다. 40m당 하나씩 전봇대를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수천~수만개의 전봇대가 도시에 들어선다면 비용 절감 효과는 떨어지고, 미관도 좋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중화율은 송전 11.1%, 배전 16.0%로 땅 밑으로 4만 6504㎞에 달하는 ‘전기길’(지중선로 케이블)이 존재한다. 지구 둘레(4만㎞)와 맞먹는다. 지중선로에는 원격으로 고장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문제가 생겨도 해당 케이블만 교체하면 된다. ●지중화된 전기길 모두 이으면 지구 한 바퀴 상시 발전설비를 돌리는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남동·중부·남부·동서·서부발전 등 6개 발전사는 한전이 100% 출자했다. 발전사가 화력, 수력, 원자력 등을 이용해 실제 전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공장’이라면 한전은 이들이 생산한 전기를 전력거래소의 입찰을 통해 사들이는 ‘유통업체’ 역할을 한다. 한전은 사들인 전기를 가정과 기업 등 소비자가 필요한 곳에 되팔아 전기요금을 받는다. 전력 수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송·배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한전이 전담한다. 전기를 만들고 파는 역할은 한전과 6개 발전사만 하는 건 아니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등 민간 발전사(총 433개)에서도 전기를 생산한다. 다만 늘 가동하는 건 아니고 여름철 전력예비율이 급격히 떨어져 기존 6개 발전소만으로 전력 공급이 부족하다고 전력거래소가 판단했을 때 비정기적으로 발전기를 가동시킨다. 2011년 9월 15일 ‘대정전’이 발생한 이후 LNG 발전소가 크게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민간 발전사 중에 특정 허가구역 안에서 전기를 독립적으로 생산, 공급하고 판매까지 하는 구역전기 사업자도 있다. 이들은 한전처럼 전기요금 청구서를 발행, 청구하고 수금까지 한다. 보통 열병합발전 형태를 띤다. 전기 판매는 주로 한전이 담당하지만 3만㎾ 이상의 대용량 소비자가 직접 전기를 사거나 판매도 한다. 형식적으로는 부분 경쟁 체제로 볼 수 있지만 한전의 역할이 커서 사실상 독점적인 시장 구조인 셈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전 발전자회사와 민간 발전사의 설비용량 비율은 75%대 25%였다.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는 우리와 달리 다양한 전력회사와 발전사들이 발전과 송·배전, 판매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영국은 6대 메이저 전력사 외에 13개 판매회사, 독일은 4대 메이저 회사를 포함한 900여개 회사, 일본은 도쿄전력 등 10대 전력회사 등이 전기를 팔고 있다. 공기업 자산 1위인 한전(175조원)은 올 상반기 6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남겼다. 독점 효과에 더해 연료비, 인건비 등 생산원가에 일정 수준의 적정이윤(적정투자보수금)을 더한 총괄 원가방식으로 전기요금을 매기기 때문이다. ●한전 발전량 민간보다 83% 많아 ‘독점적’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전력발전 형태별 발전량 비중은 석탄(38.6%)이 가장 높았다. 이어 원자력(31.2%), LNG(19.1%), 석유(6.0%) 순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4.0%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년)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석탄 발전량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29년까지 11.7%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선진국들의 에너지원별 발전량 비중을 보면 지난해 미국은 석탄(38.8%), 천연가스(27.4%), 원전(19.5%), 신재생에너지(13.2%) 순이었다. 일본은 화력(89.7%)이 압도적이었고 수력(9.2%)이 뒤를 이었다. 스위스는 수력과 원자력이 6대4의 비율이었다. 핀란드는 원자력이 전체 전력 생산량의 3분의1로 가장 많았고 수력·바이오연료·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40%대였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한전 순이익 10兆 넘고 유보금 50兆인데, 사장은 “전기료 누진제 폐지 동의 안 해”

    한전 순이익 10兆 넘고 유보금 50兆인데, 사장은 “전기료 누진제 폐지 동의 안 해”

    올 3622억 정부에 배당잔치 자회사엔 3800억 일 몰아줘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5일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이날 전남 나주의 한전 본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전기요금 누진제는 ‘슈퍼 유저’(전기요금 과다 사용자)를 위해 있어야 한다”며 이처럼 답했다. 조 사장은 “현재 누진구간 6단계를 대폭 줄이고, (누진제 6단계 구간 간 전기요금 단가의) 급격한 차이는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한홍 새누리당 의원은 “4인 가구의 연간 전력 소비량이 2004년 269㎾h에서 2013년 348㎾h로 29% 증가하고, 올해 6월 대비 8월 전기요금이 2배 이상 증가한 가정이 298만 가구에 이르는 등 전기 사용량이 크게 늘고 있다”며 “한전이 국민에게 부담과 고통만 안겨 주는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를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전의 당기순이익이 10조원을 넘었고, 정부가 수천억원대의 배당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한전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10조 1657억원을 올렸다. 이 중 3622억원을 지난 2월 정부에 배당했다. 반면 지난해 한전의 부채 규모는 107조원으로 이에 따른 이자 비용만 2조원을 냈다. 빚을 갚기보다 주주 이익만 챙겨 줬다는 얘기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진제 폭탄으로 얻은 당기순이익으로 정부와 외국인에게 배당 잔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전의 사내유보금은 49조 5224억원으로 집계됐다. 삼성(144조원)과 현대차(101조원)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한전과 전력 자회사 11곳을 합친 사내유보금은 무려 75조 5257억원에 달한다. 이훈 더민주 의원은 “공기업 한전과 자회사는 사내유보금을 전기요금 개편에 필요한 원가 책정 등에 적절하게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 마피아’ 논란도 제기됐다. 송기헌 더민주 의원에 따르면 한전은 자회사인 한전KDN과 한전 퇴직자 모임 출자회사인 ‘전우실업’에 2012년부터 올 7월까지 각각 1162억원, 2675억원의 일감을 몰아주는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한전 순이익 10兆 넘고 유보금 50兆인데 사장은 “전기료 누진제 폐지 동의 안 해”

    한전 순이익 10兆 넘고 유보금 50兆인데 사장은 “전기료 누진제 폐지 동의 안 해”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5일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이날 전남 나주의 한전 본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전기요금 누진제는 ‘슈퍼 유저’(전기요금 과다 사용자)를 위해 있어야 한다”며 이처럼 답했다. 조 사장은 “현재 누진구간 6단계를 대폭 줄이고, (누진제 6단계 구간 간 전기요금 단가의) 급격한 차이는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한홍 새누리당 의원은 “4인 가구의 연간 전력 소비량이 2004년 269㎾h에서 2013년 348㎾h로 29% 증가하고, 올해 6월 대비 8월 전기요금이 2배 이상 증가한 가정이 298만 가구에 이르는 등 전기 사용량이 크게 늘고 있다”며 “한전이 국민에게 부담과 고통만 안겨 주는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를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전의 당기순이익이 10조원을 넘었고, 정부가 수천억원대의 배당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한전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10조 1657억원을 올렸다. 이 중 3622억원을 지난 2월 정부에 배당했다. 반면 지난해 한전의 부채 규모는 107조원으로 이에 따른 이자 비용만 2조원을 냈다. 빚을 갚기보다 주주 이익만 챙겨 줬다는 얘기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진제 폭탄으로 얻은 당기순이익으로 정부와 외국인에게 배당 잔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전의 사내유보금은 49조 5224억원으로 집계됐다. 삼성(144조원)과 현대차(101조원)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한전과 전력 자회사 11곳을 합친 사내유보금은 무려 75조 5257억원에 달한다. 이훈 더민주 의원은 “공기업 한전과 자회사는 사내유보금을 전기요금 개편에 필요한 원가 책정 등에 적절하게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 마피아’ 논란도 제기됐다. 송기헌 더민주 의원에 따르면 한전은 자회사인 한전KDN과 한전 퇴직자 모임 출자회사인 ‘전우실업’에 2012년부터 올 7월까지 각각 1162억원, 2675억원의 일감을 몰아주는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지역경제 활성화 포럼-광주 전남] 스토리텔링 송정역 시장·친환경차 특화… ‘역발상의 가치’ 빛나

    [지역경제 활성화 포럼-광주 전남] 스토리텔링 송정역 시장·친환경차 특화… ‘역발상의 가치’ 빛나

    ‘반전 그리고 대역전.’ 광주·전남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해 29일 열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창조·혁신 순회 포럼’을 공동 주최한 서울신문사와 광주시, 전라남도는 과거 애로 사항이 미래 산업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의 가치’를 찾아냈다. 오전 세션의 조봉환 창조경제추진단장·유기호 광주 창조센터장·박성호 포스코 창조센터장·이종렬 전남 창조센터장의 성공사례 발표, 오후 들어 오일근 광주그린카진흥원장·문승일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주제발표까지 ‘과거엔 약점이고 지금은 가능성인’ 광주·전남의 저력이 거론됐다. 광주·전남 내 창조센터가 이뤄 낸 대표 성과인 ‘광주1913 송정역 시장’ 이야기는 ‘반전’의 묘미를 잘 보여 준다. 외면받던 전통시장에 청년들이 뛰어들어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입히자 이전보다 열다섯 배 넘는 인파가 방문한 사례다. 조 단장은 “지역의 특색을 잘 지키며 창조경제 영역을 적극 개척하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광주의 친환경차 특화 전략’과 ‘저조한 업황을 개의치 않는 전남의 에너지 신산업 육성 전략’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오 원장은 “민주·인권·평화의 도시인 광주가 친환경차 산업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면, 독일의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나 프랑스의 친환경 교통도시 스트라스부르와 같은 친환경 도시의 길까지 내다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토론자로 나선 김영삼 산업통상자원부 시스템산업정책관은 “2010년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차가 지난해 말 전 세계에 131만대 보급됐다”면서 “정부는 배터리 개발, 충전 인프라 구축, 전기차 기술개발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을 통해 지자체의 전기차 육성을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김기선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친환경차의 메카를 넘어 친환경 도시까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다면, 그 비전을 수행할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교수는 “광주·전남 경제 도약의 마지막 골든타임을 맞아 인접한 두 지역이 에너지 신산업 개척을 놓고 경쟁하기보다 국가를 넘어 글로벌 발전이란 큰 틀에서 상생·협력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토론자인 임채영 전남 경제과학국장은 “2025년까지 에너지 자립섬 50곳을 구축하고 나주시를 전기차 중심 에너지시티로 조성하며 전기차 부품·소재기업을 적극 유치하는 데 광주와 협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전남 행정부지사를 지낸 박재영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장은 “한국이 국가가 주도하는 요소투입 방식에 의한 불균형 발전전략을 오랫동안 편 결과 경부축 이외 지역이 발전에서 소외되는 불균형 상태가 됐다”면서 “새가 부화할 때 어미새가 바깥에서 돕지만, 새끼도 안쪽에서 힘차게 알을 깨듯이 광주·전남이 스스로 먼저 균형발전 노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400여명의 참석자들은 포럼을 통해 희망을 얻어 갔다고 밝혔다. 김현철 금호터미널 대표는 “창조·혁신 경제와 전략산업을 아우르는 알찬 내용의 포럼”이라고 총평했다. 고흥군청에 근무하는 조청미씨는 “광주와 전남이 제살 깎기 경쟁을 할 때도 있었는데 이번 순회포럼처럼 함께 발전하는 길을 모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주시의 손경종 자동차산업과장은 “지금까지는 외국 기업을 추격하고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 국내 산업을 육성했다면 신산업 육성 시대에는 상생을 염두에 둔 산업 육성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광주·전남이 신산업 육성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광주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전력거래소, 대학생 맞춤 취업 지원 교육 서비스

    전력거래소, 대학생 맞춤 취업 지원 교육 서비스

    2001년 4월 한국전력에서 분리 독립한 비영리법인 전력거래소는 2014년 10월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전국에 뻗어 있는 송·변전설비의 ‘관제탑’인 전력거래소는 실시간 급전 운영과 전력시장 운영, 전력수습기본계획 수립 지원 등을 수행하고 있다. 나주로 이전해서는 청년 구직자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다양한 지역 상생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이달 취업을 준비하는 지역 대학생들에게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의 취업 지원 교육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맞춤형 이론과 현장 교육은 물론 찾아가는 취업 클리닉도 열었다. 또 생활 여건이 어려운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평일 일과 후 개별 학습지도를 해 주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신재생에너지 창업 준비자들에게 사업 절차와 경제성 분석을 도와주는 창업 지원 교육 서비스를 열었다. 전력거래소는 나주시 산정마을과 ‘1사 1촌’ 자매결연을 하고 농촌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명절에 전통시장 장보기와 사회복지시설을 후원하는 한편 지역특산품인 배를 명절 선물로 대량 구매했다. 저소득 가정에 연탄을 배달하고 보훈 가족에 1400㎏ 규모의 쌀을 후원하는 등 사회 공헌도 활발하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IT와 친환경의 동거…‘태평양 전초기지’ 광주·전남의 밝은 내일

    IT와 친환경의 동거…‘태평양 전초기지’ 광주·전남의 밝은 내일

    화학·철강·조선 등 전통 주력 업종에 친환경·신재생에너지 접목 ‘산업혁명’ “15억 인구의 中 공략 등 교두보 될 것” 광주와 전남은 지리적으로 환(環)황해 경제권의 중심축이다. 한반도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좌우로 중국 상하이와 일본 오사카·도쿄 등이 지척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기점이자 해양으로 진출하는 관문이다. 전남 광양과 여수·목포는 태평양과 뱃길로 이어지고, 광주는 내륙의 금융·교육·첨단산업 도시로서 배후 기능을 담당한다. 이 지역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5·18민주화운동 등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올바른 선택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변화시킨 의로운 고장이다. 그럼에도 산업화는 뒤처졌다. 1960~1980년대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다. 근대 산업화에서는 다소 밀렸지만 지금은 ‘아껴 놓은 땅’으로서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개통한 호남고속철(KTX)과 전남 광양의 컨테이너 부두, 목포 신외항과 무안 국제공항 등 교통·물류 인프라는 이 지역을 수도권과 일일생활권으로 묶어 놓았다. 바닷길과 하늘길은 중국·일본 등 해외로 연결된다. 이는 사람이 모여들고 비즈니스가 활발히 펼쳐지는 토대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생산되는 깨끗한 공기와 물, 친환경 농수축수산물 등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자연적 여건은 향후 경제·산업적으로도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클 것이란 판단이다. 바이오 산업과 관광 분야 등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로도 꼽힌다. ●광주 지난해만 光관련 매출 2조 2000억원 달성 광주전남발전연구원 김종일 미래전략연구실장은 “정보기술(IT) 융복합 시대를 맞아 친환경 자동차와 농생명, 신재생에너지, 문화관광 산업 분야 등이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들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광주·전남은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올 다보스포럼의 주제이기도 했던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loT), 로봇기술, 무인자동차, 생명(바이오)기술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일컫는다. 미래학자 등 상당수 전문가는 이 분야가 앞으로 10년 이내에 세계 경제의 흐름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광주와 전남은 이처럼 새로운 변화 추세에 맞춰 주력 산업에 대한 재편성을 서두르고 있다. 기존 자동차와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는 IT 접목 기술 도입과 융복합 등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신소재와 친환경자동차, 신재생에너지, 금형, 농생명 분야 등에 대한 집중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광주는 2000년부터 전략적으로 추진한 광(光)산업이 친환경자동차 등 미래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시는 2000~2012년 국비 등 900여억원을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한국생산성기술연구원·고등광기술연구소·한국광기술원·전자부품연구원 등 각급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유치했다. 이에 힘입어 광·전기전자, 자동차부품, 신소재 분야 등 기업 부설 연구소도 잇따라 들어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광 관련 288개 기업이 2조 2000여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광소자, 광센서, 광섬유, 발광다이오드(LED) 등을 망라하고 있다. 광주는 이같이 첨단과학의 산업적 토대가 마련되면서 최근 국가산업으로 지정된 ‘친환경자동차 부품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탄력을 받고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은 연간 62만대의 차량을 생산, 북미 지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해 미래형 전기차인 ‘쏘울’ 1만 1000여대를 생산했다. 삼성전자 광주공장도 프리미엄급 백색가전으로 세계 시장의 활로를 넓히고 있다. 이처럼 첨단과학과 IT가 결합된 친환경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첨단산단, 하남산단, 소촌산단, 진곡산단, 평동외국인전용단지 등은 이미 포화 상태다. 산업용지 부족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현재 조성 중인 400여㎡ 규모의 ‘빛그린 국가산단’이 ‘자동차전용 산단’으로 변경된다. 이곳에는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기술지원센터,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등이 들어선다. ●2020년 나주 ‘에너지밸리’ 완공 땐 더 활기 전남은 기존의 화학, 철강, 조선 등 3대 주력산업 이외에 신재생에너지, 농생명, 섬 자원을 활용한 관광 분야 등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전남은 ‘공기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산소 음이온이 수도권의 ㎤당 200개보다 8배나 많은 1736개 이르고, 공기 중 유해 중금속도 기준치의 30분의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상청이 분석한 일조시간도 연간 2138.8시간으로 전국 평균 2122.5시간보다 많다. 연평균 기온은 섭씨 14도로 전국 평균보다 1도가량 높다. 이 같은 지리적·자연적 조건은 새로운 산업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전력이 나주혁신도시에 이주하면서 광주·전남이 공동 참여한 ‘에너지밸리’ 조성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8월 현재 133개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이 투자 협약했다. 투자액 6500여억원, 고용은 4500여명에 이른다. 에너지밸리는 나주와 광주 경계지역 일대에 2020년까지 500개의 관련 기업을 유치해 특화단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전남도와 한전 등은 협약한 업체들이 실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주택, 교육 등 정주 여건 조성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풍부한 일조량으로 곳곳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들어서고 진도 장죽수도 일대의 조류발전, 영광·신안 일대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무궁무진한 갯벌·섬… 관광산업도 활짝 생물의약과 항공·드론 등의 분야도 미래 지역의 먹을거리를 해결할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남생물산업연구원은 식품, 천연자원, 생물의약, 나노바이오, 해양바이오, 생물 방제연구 시스템 등을 구축했다. 백신산업특구로 지정된 화순에는 녹십자 화순공장을 유치했다. 2021년까지 미생물 실증지원센터를 구축한다. 나주와 장흥에는 한방·식품과 통합의학·천연자원 등을 활용한 ‘바이오메디컬기지’를 조성한다. 도서 지역과 갯벌을 테마로 한 관광산업은 무궁무진하다. 전남도 내 섬은 2165개로 전국의 65%를 차지한다. 갯벌은 1044㎢, 해안선은 6743㎞로 전국에서 가장 넓은 갯벌과 긴 해안을 갖고 있다. 흑산도 일대에는 조만간 소규모 공항이 들어서고, 최근 여수 경도에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서남해안 관광 시대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대불산단 일대의 광활한 ‘J프로젝트 예정지’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땅과 청정 해역, 유기 농산물과 친환경 수산물 등도 경쟁력 있는 아이템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광양만·목포항과 여수산단을 중심으로 탄탄한 물류와 제조업 산업 기반이 구축돼 있고, 신안~진도~완도~고흥~여수에 이르는 풍부한 섬과 바다 생태 자원을 갖고 있다”며 “이런 여건을 발판 삼아 15억 인구의 중국 등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버락 오바마(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홍수 피해를 당한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를 찾아 한 어린이를 위로하고 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루이지애나주에 홍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여름휴가를 즐기다 업무 복귀 후 홍수 지역을 찾았으나 때늦은 방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루이지애나주 남부에서는 홍수로 이날까지 최소 13명이 사망하고 주택 11만채 이상이 침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배턴 루지 AFP 연합뉴스
  •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전남 나주시는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이 시가지를 관통하고, 광주 산업권의 근교로 목포, 함평, 무안, 영암, 강진, 해남군 등 10개 시·군의 관문인 교통의 중심지다.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선열이 많이 배출됐다. 임진왜란 의병장 김천일 선생과 조선의 석학 신숙주의 태생지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고려의 건국에도 토대 역할을 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부인은 나주 출신 오씨가문의 딸로 그가 낳은 아들은 2대왕 혜종이다. 왕건은 나주 오씨 세력과 손을 잡고부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나주는 전국 12개 주요도시에 목이 생길 때 나주목이 돼 구한말까지 1000여년 동안 큰 도시의 지위를 이어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천년목사 고을’로 불린다. 전라도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유래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의 향기와 자연의 감동이 살아 숨 쉬는 ‘호남의 천년고도’로 알려졌다. 나주는 영산강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풍요한 맛과 멋, 여유를 주는 고장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도시의 지세가 한양과 비슷하다고 적었던 나주는 당시 한양 구경하기가 힘든 전라도 백성들에게 ‘나주읍성에 가면 한양 갔다 온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서울’로 불렸다. 이 같은 역사문화도시인 나주는 금천·산포면 일대에 한국전력공사 등 14개 공공기관이 들어선 ‘빛가람 혁신도시’가 건설돼 호남권 중심도시로 재도약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나주역까지 KTX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수도권 등지 관광객들이 역사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가족 단위로 부담 없이 찾아온다. >>볼거리 ●영산강 추억 실은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바닷물이 영산강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시절 과거 영산강 물길을 이용해 쌀, 소금, 미역, 홍어 등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를 말한다. 영산강 황포돛배는 육로교통이 발달한 데다 1976년 상류에 댐이 들어서고 영산강 하굿둑이 만들어지자 1977년 마지막 배가 떠난 후 자취를 감췄다. 2008년 30여년 만에 웅장하고 위엄 있는 옛 모습 그대로 부활한 황포돛배는 추억을 싣고 영산강을 오르내린다. 영산강변을 따라 자연경관을 보면서 물살을 가르는 황포돛배 체험은 자연이 주는 큰 선물이다. 옛 목선을 그대로 재현한 빛가람 1호와 2호, 한옥 지붕이 멋스러운 나주호, 발굴된 고려시대 배 조각을 복원해 놓은 왕건호,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 영산강호까지 황포돛배 투어가 풍성하다. 영산강 비단 물결을 따라 유람하는 황포돛배투어는 나주 여행의 백미다. 영산강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돛배를 타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해설사가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놓고 미끄러지듯 배는 강을 거슬러 오르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좋은 일 생기는 한옥 체험 ‘목사내아’ 나주목은 전남도를 관할하는 중심고을이었다. 전라도 최고의 곡창지대인 나주 일대를 관장하는 나주목사 자리는 조정의 정3품 당상관이 맡던 고위직이었다. 1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목사가 한양에서 나주로 내려왔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 나주목사로 내려온 중앙관리가 살던 살림집이 나주목사내아다.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훼손되자 한옥체험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금학헌’으로 이름 지었고 명소로 자리잡았다. 목사내아는 정적인 문화재에서 관광객이 직접 숙박을 통해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바뀌었다. 특히 나주목사 중에서 존경을 받았던 유석증 목사와 김성일 목사의 이름을 딴 특별한 방을 마련했는데 이곳에서 숙박을 한 뒤에는 좋은 일들이 생겨서 소원을 이루는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체험부터 전시까지 ‘천연 염색박물관’ 나주는 예로부터 비단 직조 기술과 쪽 염색이 발달한 곳으로 오늘날에도 샛골나이와 염색장이라는 인간문화재가 활동하는 천연염색 문화의 중심지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리적 환경 덕에 쪽과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좋았던 게 큰 이유다.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살려 건립한 천연염색 문화관은 다양한 전시와 교육, 염색 체험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염색 문화를 알 수 있는 장소다. 200명이 동시에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관과 세미나실, 연구실 등을 갖췄다. 어린이 등 가족 단위 체험을 위한 상설 체험장을 운영, 천연염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천연염색 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방도 있다. ●고대왕국 반남고분군·복암리 고분군 반남고분군은 나주시 반남군 자미산(98m)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지에 산재해 있다. 신촌리 8호분, 덕산리 14호분, 대안리 12호분 등 총 34호분으로 이뤄졌다. 이곳에는 대형 옹관고분 수십 기가 분포한다. 대형 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구별되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이다. 대형 옹관고분은 기원전 3세기부터 6세기까지 4세기 동안 영산강 유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3세기쯤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하며 이때에는 분구의 규모가 훨씬 대형화돼 그 규모가 40~50m에 이른다. 또 1996년 인근에서 발견된 총 4기의 복암리 고분군도 신비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복암리 고분군 중 제일 큰 3호분은 도굴을 당하지 않아 금동신발, 은제장식, 환두대도 등의 유물이 나왔다. 40여기의 다양한 묘가 한 봉분 안에 촘촘히 조성돼 일명 아파트 고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남면 고분로에 세워진 국립나주박물관은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을 비롯해 출토된 유물 1500여점을 전시한다. ●드라마 ‘주몽’의 감동 영상테마파크 나주시 공산면 일대 14만㎡의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주 영상테마파크는 35억원을 투입해 특화한 영상촬영지다. 드라마 ‘주몽’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은 옛 고구려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그동안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 및 영화에 출연했던 송일국, 한혜진, 전광렬, 이계인, 진희경, 최정원, 정진영, 김정화, 오윤아 등 주연배우의 핸드 프린팅과 출연 사진을 배너로 표현한 ‘스타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테마파크 안에 들어가 고구려궁 맞은편에 있는 성루에 올라서면 S자로 굽이치는 영산강과 넓게 펼쳐진 다야뜰을 볼 수 있어 막혀 있는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2005년 건립 후 1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 초가집으로 조성됐던 저잣거리를 너와 형태로 개조해 천연염색, 죽물, 소목, 한과, 한지, 비누, 점토공예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방으로 조성했다. 세트장 입구에는 ‘삼족오의 비상’ 조형물과 광장이 조성됐고, 망루와 누각·성문 주변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실내 스튜디오 한쪽에는 밀레, 고흐, 뭉크, 마티스, 클림트, 신윤복, 김홍도 등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실사(實寫)한 그림을 내건 명화미술관이 있다. 규모가 방대해 테마파크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맑고 담백한 국물 ‘나주곰탕’ 소뼈를 고아 낸 물에 소고기, 양지와 내장을 썰어 넣은 뒤 다시 푹 고아서 낸 국물로, 맑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윤기가 자르르한 나주쌀밥을 넣어 먹는 나주곰탕은 이제는 전 국민의 영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곰탕은 어디나 있지만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에서 넘볼 수 없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하다. 흔히 곰탕 하면 우윳빛 뽀얀 국물을 떠올리지만 나주곰탕은 국물이 말갛다. 색깔부터 다르다. 소뼈를 우려내는 일반 곰탕과 달리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나 사태 등 좋은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 맛이 짜지 않고 개운하다. 소고기는 단백질과 양질의 지방이 풍부하며 소뼈에서 우러난 풍부한 칼슘이 성장기 아이들과 여자들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나주곰탕은 고기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무, 파, 마늘 등을 많이 넣기 때문에 비타민과 무기질도 충분한 영양식이 된다. 나주답사1번지인 금성관 인근에 곰탕거리가 조성돼 있다. 하얀집, 노안곰탕, 남평할매곰탕, 제일곰탕 등 전통 있는 음식점이 많이 있다. ●임금님 진상품 ‘나주배’ 나주는 배로 유명한 고장이다. 예로부터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는 기록(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우수성을 오래전부터 인정받았다. 2400여 농가가 매년 6만여t을 생산해 1200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영산강 유역 양질의 토양과 연평균 기온 14도 내외 최적의 기후조건,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기술로 재배해 향이 좋고 당도가 높다. 연하고 부드러우며 과즙이 많고 색깔이 고운 게 특징이다. 전국에서 배 수확이 가장 빨라 추석 제수용품으로 나주배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출하된다. 이때 전국으로 유통되는 배의 대부분이 나주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들의 입맛도 잡으면서 미국, 대만, 베트남 등지로 수출된다. 지난해 미국에 1530t이 팔렸다. ●세상만사 좋을시구 ‘영산포 홍어’ 영산포는 홍어의 고장이다. 영산포 선창가 일대에는 홍어 전문점 30여곳이 성업 중이다. 톡 쏘는 홍어에 잘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곁들이면 유명한 홍어삼합이 된다. 여기에 막걸리 한잔이면 ‘세상만사 좋을시구’가 절로 나온다. 과거에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영산강을 따라 올라오는 일주일간 자연 발효되면서 독특한 맛의 홍어가 됐다. 지금은 웰빙식품으로도 많이 알려진 전라도 대표 음식이다. 홍어는 홍어회와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탕 그리고 나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홍어애보릿국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참으로 이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소설가 황석영이 홍어를 처음 먹어본 후 토해낸 말이다. ●미꾸라지 먹고 자란 ‘구진포 장어’ 영산포를 지나 다시면 회진마을로 가는 길목에 구진포가 있다. 구진포는 영산강 뱃길이 끊기기 전까지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나루터였다. 구진포 장어는 구진포가 번성하던 시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포구 주변에서 잘 잡히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다. 장어는 민물에서 살지만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나가고 부화한 장어들이 민물로 들어온다. 포구는 기능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옛맛이 그리워 구진포 장어집을 찾는다. 1940년대부터 들어선 장어 음식점들로 장어구이촌이 형성, 지금도 구진포 도로변에는 고소한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친조카 살해 20대, 욕조에 머리 담그고 발에 골절상 입히는 등 학대

    3살 조카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A(25·여)씨는 조카를 상습 폭행하고 물을 채운 욕조에 담그는 등 학대를 일삼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전남 나주경찰서는 11일 “피해자 사체를 부검해 사인을 규명한 뒤 A씨를 살인 또는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전날 오후 3시30분쯤 자신의 안방에서 “화가 난다”는 이유로 조카 B(3)군을 목을 졸랐다. 이어 유아용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B군의 머리를 5차례가량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A씨는 이날 설사 증세를 보인 B군이 변을 가리지 못하고 침대까지 더럽히자 이를 나무라는 과정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가 지난달 말쯤에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B군의 팔을 발로 밟아 골절상을 입히는 등 수차례 때린 사실을 확인했다. 지적장애 3급인 A씨는 현재 정신과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3~4월 언니와 조카와 셋이서 함께 살았으나 최근 언니가 충북의 한 공장에 취직하면서 홀로 조카를 돌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B군의 이마, 머리, 배에서 발견된 다수의 멍 자국이 생겨난 시기와 원인,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 상처와 발육 상태 등을 밝혀내 학대가 오랜 기간 지속했는지 규명할 예정이다. B군 친모 또한 자매인 A씨와 마찬가지로 지적장애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자체 등 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장애 판정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나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오랜 건물·젊은 상인 조화…기찻길 옆 시장은 오늘도 ‘북적’

    [명인·명물을 찾아서] 오랜 건물·젊은 상인 조화…기찻길 옆 시장은 오늘도 ‘북적’

    1913년 개업… 90년대 쇠락 KTX 뚫려 하루 수천명 방문 광주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이 최근 새롭게 단장하면서 남도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100년이 넘은 시장의 성공적인 대변신이다. 지난 4월 문을 연 이 시장 안 카페에는 젊은이들이 몰리고 빵집은 줄을 서야 빵을 살 수 있을 만큼 북적인다. 송정역을 통해 유입된 관광객들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식료품을 사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낡은 건물과 텅 빈 상점 등 예전 모습은 간데없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국밥, 인절미, 호떡, 계란밥, 닭발볶음, 초코파이, 양갱 등 전체 상가의 70% 이상이 먹거리 점포로 채워졌다. 건물 내·외벽은 옛것을 그대로 살리고 차양막, 새시, 간판 등 일부를 손봤을 뿐인데 현대와 전통이 조화를 이룬 깔끔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새로 이름이 바뀐 가게는 옛날 가게의 이름과 흔적 등의 히스토리를 출입문 등에 기록했다. 시장 안에 열차 시간표를 알리는 전광판이 설치됐고 입구 벽면에 대형시계를 세워 랜드마크로 활용했다. 시장 외관의 리모델링을 맡은 현대카드 디자인팀 관계자는 “시장 경기가 가장 좋았던 1960~70년대 모습을 살려 추억과 스토리가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콘셉트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다시 문을 연 뒤 하루 평균 방문객은 평일 2000여명, 주말엔 4000여명에 이른다. 그 이전엔 고작 하루 200여명에 불과했다. 특히 17명의 청년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시장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광산구와 중소기업청은 공모를 통해 청년창업자를 선정했고 이들에게 11개월치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창업 교육 등을 지원했다. ‘또아’ 빵집을 운영하는 유양우(38)씨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한두 시간 간격으로 빵을 굽는데 갓 구워낸 빵을 사려는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룬다”고 말했다. 그는 15년간 빵집에서 제빵사로 일하다가 최근 송정역시장에서 창업했다. 그는 “하루 손님이 500여명, 매출이 250만원에 이른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 밖에 청년 창업주들이 시장에서 운영하는 점포는 느린먹거리, 카페1913, 갱소년, 꼬지샵, 계란밥, 무등산 보리밥, 또바기 농부, 동네호떡 등 다양하다. 이 시장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송정역 개설과 함께 ‘송정역전 매일시장’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레 형성됐다. 당시엔 인근 전남 나주, 함평 등지에서 푸성귀와 수산물 등을 팔러 온 상인들로 북적였다. 산업화 시기엔 바로 옆 블록에 ‘1003번지’로 알려진 홍등가가 생기면서 매일 시장이 열릴 정도로 성업했다. 닭집, 방앗간, 옷가게, 식료품 상점 등이 즐비했다. 송정역을 통해 들어온 주변 농어촌 사람들과 많을 때는 600여명에 이르던 업소 ‘아가씨’들이 생필품을 구입하고 농수축산물이 거래됐던 곳이다. 이 시장 역시 다른 전통시장처럼 1990년대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63개 점포 가운데 17개가 텅 빈 채로 방치됐고 물건을 구입하는 손님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생활 잡화와 음식점, 농수산물 판매점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호남고속철(KTX)이 지난해 4월 개통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광주 관문역인 송정역 하루 이용객이 1만 3000명을 웃돌면서 주변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시장은 송정역 길 건너편(200m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향후 송정역복합환승센터 등 역세권 개발이 이뤄질 경우 전통 식자재, 음식, 토산품과 숙박·관광서비스 산업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광산구와 중소기업청,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현대카드), 상인회가 손을 잡고 이 같은 환경 변화에 맞춰 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구와 중소기업청은 문화와 전통이 공존하는 추억의 명소로 육성한다는 복안을 세웠다. 구와 중소기업청 등은 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지난 3월까지 10억여원을 들여 시장이 형성된 골목길 200m 구간의 전선 지중화와 대리석을 사용한 바닥 정비 사업을 마쳤다. 현대카드 디자인팀이 빈 점포와 시장 외관 리모델링을 맡았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시장 운영 비결과 노하우를 외부에 전파하고 교육·홍보·지속적인 콘텐츠 개발 등을 지원한다. 구와 중소기업청은 주차타워, 상인교육관 등 시설 확충 등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각계의 노력에 힘입어 재래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다. 시장 현대화 작업 이후 기대 이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원주민들과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외지인들의 입소문도 보태졌다. 이 시장 인근엔 송정5일시장과 송정매일시장 등 걸어서 10분 거리에 2개의 대형 전통시장이 자리한다. 관광객 중 청소년층은 이곳에서 먹을거리 등을 즐기고, 노장년층은 인근 재래시장의 방앗간에서 직접 짜낸 참기름 등 토산품을 구입할 수 있는 ‘쇼핑 동선’도 잘 갖춰진 셈이다. 지속적인 시장 활성화를 위해 건물주들도 힘을 보탰다. 광산구는 지난 5월 시장에 입주한 청년 창업주 17명과 상가 건물주 16명 등이 모인 가운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협약’을 맺었다. 이들은 임대료 인상으로 상인들이 내몰리는 서울 ‘홍대 거리’의 전철을 되밟지 말자고 결의했다. 건물주 배모(68)씨는 “청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장이 살아나고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며 “멀리 내다보고 서로 배려하면서 좋은 기회를 잘 살려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년상인 손경재(33)씨는 “사업에 임대료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된 만큼 좋은 아이디어와 상품으로 1913송정역시장 활성화에 앞장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며 상생 의지를 내보였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선진국형 농업의 리더 될 것…광주 정서로 전북 판단 말라”

    “선진국형 농업의 리더 될 것…광주 정서로 전북 판단 말라”

    “호남이 아니라 전주와 나주·제주도를 합쳐 전라도였고, 전라도의 원주인은 전북이고 전주입니다.” 송하진(64) 전북도지사는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한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구한말 전국 3대 도시였던 전주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북 지역 국회의원 10명과 정책협의회 조찬 모임을 막 마친 그는 “광주 정서로 전북의 정서를 평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행정고시 24회로 전북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해 전주시장을 거쳐 전북지사가 된 덕분인지 ‘전북 DNA’로 꽉 차 있다. ‘명문가의 자제’로 알려졌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수성가의 길을 밟았을 뿐”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기회가 적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2006년 전주시장 시절부터 뛰어 10년 만에 ‘탄소산업’에 시동을 건 송 지사는 “‘삼락농정’으로 선진국형 농업대국의 길을 전북이 열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북은 정치적으로 광주·전남을 쫓아가지 않나. -언론에서 전북을 호남의 일부로 다루는 데 불만이 크다. 전북과 광주는 정서도 민심도 완전히 다르다. 현대에 와 광주가 커졌다고 형 대접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옳지 않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제주도를 합한 것이다. 그 전라도의 수부가 전주다. →전주·전북이 광주와 호남으로 묶여 피해를 봤나. -피해가 많다. 공공기관과 기업의 호남 본부가 광주에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국민 화합을 위해 ‘동진정책’ 하느라고 전북이 역차별받고 소외됐다. ●자수성가 정치인… 전북 떠난 적 없어 →명문가·금수저 출신 아닌가. 강암 송성용 선생의 막내 아들이고, 송하철 전 전북부지사, 서예가 송하경 성균관대 교수, 송하춘 고려대 교수와 형제다. -김제의 가난한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강암 선생이 비석 글씨 써 주고 쌀 한 말 받는 식으로 사시다가 서예가로 이름난 것은 60세가 넘어서다. 그때 친구들 도움을 받아 전주로 나왔다. 근대 교육을 받은 큰 형님이 9급 공무원이 돼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전북 공무원으로 있다가 붓글씨 잘 쓴다고 상장에 글씨를 쓰라고 8급 때 서울 내무부에 불려 올라갔다. 둘째·셋째 형님에 나까지 ‘응팔’에 나온 쌍문동 산비탈에 있는 큰형님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송하경 교수도 돈 없어서 김제에서 농사짓다가 아버지 몰래 성균관대 시험 봐서 장학생으로 학교 다녔다. 명함만 보면 그럴듯한데 형제들이 이렇게 자수성가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출세 모형이다. 나도 도지사가 되고 보니까 엄청 출세한 것 같은 사람이 됐다. 하지만 벅차다. →성공에 가슴이 벅차다는 것인가. -능력이 벅차다. 도민의 선택으로 여기까지 왔다. 부족한 사람은 채우려고 노력한다. 금수저란 생각을 안 하니까 빈자리를 채우려고 뼈 빠지게 노력했다. 정치적으로도 자수성가했다. 시골 바닥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 국회의원 한 번도 안 해 보고 도지사 된 사람이 나밖에 더 있나.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있다. -국회의원 안 했어도 대통령 만든 사람인데…. →요즘 20대들이 ‘흙수저’라며 절망하는데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조언한다면. -사회 구조적인 측면이나 경제적 시스템을 수정하는 것은 중앙정부가 할 일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돌아보면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는 길이 가장 빠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때보다 기회가 적어졌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국민들이 골고루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 농업이 중요하다. →왜 농업이 중요한가. -미래에 농업, 농식품, 농생명 산업으로 가지 않으면 무궁무진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 농촌 인구 감소는 농업을 키우지 않고 막을 수 없다. →선진국은 농업대국이다. -당연하다. 궁극적으로 선진국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나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농업은 안 하고 2·3차 산업만 하면 경제대국으로 갈 것으로 믿는다. 잘못됐다. 농업, 농민, 농촌 세 가지가 다 즐거운 ‘삼락농정’이 필요하다. 기아에 허덕이는 인류가 10억명이 넘는 만큼 양적인 농업 증대와 농산물의 질을 높이는 농생명, 농식품 산업을 함께해야 한다. →행정고시 출신인데 전북도청에서 공무원을 시작했다. -원래 목표가 전북이었다. 부처를 선택할 때 1순위 내무부, 2순위도 내무부, 3순위는 문화부라고 썼다. 큰형님의 영향이 컸다. 이왕이면 고향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다. 여산 송씨인데 본관도 전북에 있고 전북을 떠나 본 일이 없다. 그렇다 보니 전북이 보였다. ●‘농도’서 선진농업 꿈… 청년에도 기회 →전북이 어떤 모습으로 투영됐나. -적자인데 서자 취급받는 아픔이 보였다. 산업화 이전에는 전북이 농도로서 최고였다. 그런데 265만명이던 인구가 187만명으로 줄었다. 조선 말에 전주는 3대 도시였다. 오늘날에는 20대 도시를 넘어섰다. 내가 태어나고 뿌리를 박았던 내 고향이 낙후되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전주시장 8년을 하면서 느낀 점이 너무 많았다. →전북도 DNA만 가진 행정가처럼 발언한다. -전북을 살리려는 사람은 전북을 정확히 냉철하게 봐야 한다. 금수저는 흙수저 심정을 모른다. 당해 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친하다는 소문이다. -대학 선배다. 총학생회장 할 때 난 고시 공부했다. 공교롭게 그분이 당직을 맡고 계실 때 정치에 입문했다. 출마하라고 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53세 때 명퇴했다. →어떻게 출마를 결정했나. -전북도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할 때 나에게는 정치인이 될 DNA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북도 기획관리실장을 하며 시야가 넓어져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서울에서 출마하겠다는 각오를 밝히지 않고 정치인 100여명을 만났다. 국회의원, 시장·군수 당선자, 낙선자, 시·도 의원까지 두루 만났다. 당시 가장 궁금한 게 정치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나, 조직은 무엇을 조직이라 하는가, 배경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등이었다. 하지만 다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선거에 나가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조직은 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책학에서 ‘느슨하게 연결된 조직’이란 게 있다. 우호 세력이 많으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우호 세력을 비교적 많이 보유한 사람 중 하나다. →비결은 뭔가. -성격과 출신이다. 성격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남들과 잘 섞이되 내 주관을 잃어버린 일이 없다. 남들이 나를 너무 물렁하고 사람 좋아 보인다고 하지만, 자신에겐 서릿발 같고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 같은 ‘지기추상 대인춘풍’(知己秋霜 對人春風)을 체화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는 김제, 중학교는 익산, 고등학교는 전주,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외가는 완주다. 전북 180만 인구 가운데 120만은 나와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하려고 어려서부터 그렇게 돌아다녔냐”고 농담하는 분도 있다. →국내 탄소산업의 선구자로 알려졌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탄소산업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전주시장 8년 동안 연구개발비로 1200억원을 투입했다. 금방 성과가 나오는 일도 아닌 일에 기초정부가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는 어려웠다. 정치적 오해, 방해, 모함, 협박까지 받았다. 중앙 부처는 물론 광역정부인 전북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지방정부 단체장 혼자 설쳐 2년 전 발의한 탄소산업육성법이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자랑스럽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전북의 미래는.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다. 지금까지 방식으론 경제 흐름을 잡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전북이 가장 유리하다. 탄소, 농생명, 관광, 새만금 등이 키워드다. 관광도 막연한 관광이 아니다. 전주시장 때 한옥마을을 키운 이유다. ●새만금 후퇴 안 해… 드론 산업 추진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한 새만금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지금이라도 발 빼야 하지 않나.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10년이 지났다. 절대로 후퇴할 수 없다. 같은 해 착공한 상하이 푸둥지구는 이미 완공돼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 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좌고우면이 아니라 속도다. 한·중 경협단지 추진, 규제 특례지역 조성 등으로 개발의 호기다.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새만금 기본계획대로 2020년까지 완공돼야 한다. →새만금에서 추진할 새로운 사업은. -드론산업이다. 주변에 공장도, 주택도 없어 하늘과 땅이 모두 필요한 드론을 연습할 수 있는 천혜의 여건을 갖췄다. 가상현실 산업도 좋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 가능성은. -새만금은 여의도 140배의 새 땅이다.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새만금 공항과 연계하는 건 부적절하다. 국토부의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새만금 신공항 건설계획이 반영됐다. 공항은 건설돼야 한다. →2023 세계잼버리 유치 전망은. -새만금은 천혜의 야영지다. 경쟁지인 폴란드 그단스크에 앞선다는 평가다. 폴란드는 전·현직 대통령과 노벨평화상 수상지 바웬사 등 정부가 적극 나섰다. 2015년 일본에서 열린 대회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우리에게 부담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 개최 결정까지는 1년 정도 남았다. 유치에 최선을 다하겠다. 대담 문소영 사회2부장 정리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충남산 배, 1년 새 수출 64% 급증

    ‘충남배’ 수출이 크게 늘었다. 나주배, 울산배 등 전국 유명 배의 수출이 지난해보다 대폭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충남도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모두 797만 9000달러어치의 충남배를 수출했다고 23일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늘어났다. 충남배 수출이 전국 수출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34%였으나 올해는 50%로 확대됐다. 충남은 천안, 아산, 논산이 배 주산지다. 충남배는 대만에 385만 달러, 미국에 210만 달러, 인도네시아에 155만 달러가 수출됐다. 이처럼 충남산 배의 수출이 증가한 것은 기존 대만과 미국 외에 인도네시아 시장을 뚫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물량 과부하 및 과실파리 유입 우려 등을 이유로 2012년부터 자카르타 항구에 신선 농산물 반입을 금지했으나 충남산 배가 2014년부터 이 항구 수출통관 자격을 획득했다. 게다가 올 들어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출업체 등록제를 시행해 중국산 배 물량이 감소했다. 심훈기 천안배원예농협 상무는 “중국산 배보다 품질이 훨씬 뛰어난 것도 경쟁력을 확보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송 충남도 농정국장은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등 개방화에 대비해 신선 농산물 수출을 중점 지원한다”면서 “해외 홍보 판촉 활동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충남 배’ 수출 64%나 급증해, 저장된 재고 배도 중국 배보다 맛있어

    ‘충남 배’ 수출 64%나 급증해, 저장된 재고 배도 중국 배보다 맛있어

    ‘충남배’ 수출이 크게 늘었다. 나주배, 울산배 등 전국의 유명 배의 수출이 지난해보다 대폭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충남도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모두 797만 9000 달러어치의 충남배를 수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늘어난 것이다. 충남 배 수출이 전국 수출물량에서 지난해 34%에 그쳤으나 올해는 50%로 확대됐다. 충남은 천안, 아산, 논산이 배 주산지다. 올해 충남산 배 수출 주요 국가는 대만이 385만 달러, 미국이 210만 달러, 인도네시아가 155만 달러이다. 이처럼 충남산 배의 해외 수출이 많이 증가한 것은 기존 대만과 미국 외에 인도네시아 시장을 뚫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물량 과부하 및 과실파리 유입 우려 등을 이유로 2012년부터 자카르타 항구에 신선농산물 반입을 금지하고 있으나 충남산 배가 2014년부터 이 항구 수출통관 자격을 획득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충남산 배만 자카르타 항구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올 들어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출업체 등록제 시행으로 중국산 배의 수출 물량이 감소하자 이것이 충남산 배 수출로 이어졌다. 특히 인도네시아로 수출된 배는 모두 2015년에 딴 저장 배로 재고물량 소진 효과와 함께 농민 소득 증대라는 일석이조 효과를 봤다. 심훈기 천안배원예농협 상무는 “중국산 배에 비해 품질이 훨씬 뛰어난 것도 경쟁력을 확보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면 안성배를 중심으로 한 경기산 배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가 늘었을 뿐 상주배로 대표되는 경북산은 32%, 나주배 등으로 유명한 전남산 배는 52%포인트, 울산시 울주산 배는 78%나 각각 감소해 대조를 보였다. 정송 충남도 농정국장은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등 개방화에 대비해 신선 농산물 수출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면서 “해외홍보 판촉활동을 한층 더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한양 가던 배 한 해에 66척 침몰 쌀 썩는 냄새에 운하 만들었지만…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한양 가던 배 한 해에 66척 침몰 쌀 썩는 냄새에 운하 만들었지만…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고선박 마도 4호선은 조선시대 조운선이었다. ‘광흥창’(廣興倉)이라고 적힌 목간과 ‘내섬’(內贍)이라고 쓰인 분청사기 등 유물과 견고한 선박 구조로 미뤄 조선 초기 조운선으로 보인다는 것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설명이다. ●태안 앞바다에서 분청사기 등 유물 발견 조운선이라면 삼남지방에서 걷은 세곡을 한양으로 나르던 배다. 60점 남짓한 목간에는 대부분 출발지인 나주와 종착지인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州廣興倉)이 적혀 있었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 배가 1410∼1420년 침몰한 것으로 추정했다. 잔해는 대부분 마도 북동쪽 해역의 수심 9∼15m 지점에 파묻혀 있었다. 태안은 삼국시대 중국을 오가는 수운의 요충지였다. 고려시대 태안에는 개경을 오가는 송나라의 사신이 머물다 가는 객관 안흥정이 자리잡은 국제항로의 일부이기도 했다. 안흥정에 관한 기록은 송나라 사람 서긍(1091~1153)의 ‘고려도경’에도 보인다. 안흥 해역은 조석 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가 빨라 침몰 사고가 빈번했다. 통과하기 어렵다고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릴 정도였다. 서긍도 이곳을 지나며 ‘격렬한 파도는 회오리치고, 들이치는 여울은 세찬 것이 매우 기괴한 모습이어서 무어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고 적었다. 침몰선과 수중 유물은 이 뱃길의 역사적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발굴된 유물의 시대와 국적은 매우 다양하다. 고려자기는 11세기 해무리굽 청자부터 14세기 후반의 상감청자까지 질과 양에서 풍부하다. 조선시대 것도 15세기 분청사기와 17~18세기 백자가 다채롭다. 중국 것은 송·원 시대 청자, 15~16세기 명나라 시대 복건성 남쪽에서 만들어져 동남아시아로 많이 수출됐던 청화백자, 18~19세기 청나라 시대 백자가 망라되고 있다. ●뱃길 낯설고 화물 무거워 3분의1 침몰 난행량은 조운선에 더욱 두려운 뱃길이었다. 상선은 그래도 전문적인 뱃사람들이 익숙한 뱃길로 오가는 만큼 사고 위험이 덜했지만, 각 지역에서 징발된 세곡선의 일꾼들은 뱃길이 익숙지 않았고 화물도 무거웠으니 항해는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서해안에서 침몰한 세곡선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태조 4년(1395)에는 경상도 조운선 16척이 가라앉았다. 태종 3년(1403)에는 5월에 경상도 조운선 34척이, 다시 6월에는 경상도 조운선 30척이 잇따라 피해를 입었다. 태종 14년(1414)에는 전라도 조운선 66척, 세조 원년(1455)에는 전라도 조운선 54척이 침몰했다. 많을 때는 전체 세곡선의 3분의1 가까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한강 하류의 교하와 강화도 앞 교동에서도 조운선이 침몰한 기록이 있지만, 대부분은 난행량과 안면도 서남쪽의 쌀썩은여였다. 쌀썩은여는 세곡선의 침몰로 쌀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평안하게 번성한다’는 의미의 안흥(安興)이라는 지명이 태어난 것도 조운선의 안전을 빌고자 난행량을 안흥량으로 고친 결과라고 한다. 난행량을 피해 태안반도를 관통하는 운하를 파는 계획은 일찌감치 고려시대부터 추진됐다. 당시에도 세곡선의 잇따른 침몰이 국가재정을 크게 위협할 정도였으니 운하 건설까지 궁리한 것이다. 고려 인종 12년(1134) 군졸 수천 명을 풀어 운하 공사를 벌였고, 의종 8년(1154)에도 운하 개착 시도가 있었다. 공양왕 3년(1391) 공사를 재개했으나 화강암 암반이 나타나는 바람에 중단됐다. 태안반도 남쪽의 천수만과 북쪽의 가로림만을 잇는 굴포운하였다.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를 연결하는 12㎞ 구간이다. 갯벌이 8㎞ 정도로 난공사 구간인 육지 부분은 4㎞ 정도다. 운하가 완성되면 천수만으로 진입한 세곡선은 쌀썩은여와 난행량을 모두 피해 북상할 수 있었다. 굴포운하는 조선시대에도 태종과 태조에 이어 세조까지 줄기차게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안면도 인근 운하 만들어 ‘쌀썩은여’ 피해 가 대안은 태안군 소현면 송현리와 의항리를 잇는 의항 운하였다. 안흥에서 가까운 의항운하는 2㎞만 파면 난행량을 피할 수 있었다. 중종 32년(1537) 승려 5000명을 동원해 완성하지만, 토목기술의 한계로 둑이 계속 무너지는 바람에 다시 메워지고 말았다. 태안반도와 남쪽의 반도였던 안면도 사이에 운하를 파는 공사가 마지막 대안이었다. 북상하는 세곡선은 천수만으로 진입한 다음 안면도를 가로질러 다시 큰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난행량 통과는 불가피했지만 쌀썩은여는 피해갈 수 있었다. 대(大)토목공사였던 안면운하 개착은 인조연간(1623~1649) 본격 추진되어 17세기 후반 마무리됐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1대1 결연’ 민간 참여 활발… 더 강력해진 동대문 복지

    [자치단체장 25시] ‘1대1 결연’ 민간 참여 활발… 더 강력해진 동대문 복지

    1970년 어느 추운 겨울날, 16살 소년은 상경한 동네 형 주소 하나만 들고 전라남도 나주에서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4남 1녀의 셋째인 그는 ‘농사를 지으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싶었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낮에는 신문을 돌리고 저녁에는 신문보급소 한쪽에서 공부하며 고달픈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얄팍한 침낭에 의지한 채 추운 겨울을 몇 해 보냈다. 낮에 돈 벌고 저녁에 공부하는 청년이 혼자만은 아니었겠지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1976년 어렵게 부산 동아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1979년 부마항쟁의 주동자로 몰리면서 보안사 지하실에서 36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헌병대와 교도소를 거쳐 다시 사회로 나왔다. 덕분에 대학 졸업까지 12년이 걸렸다. 참담한 심정이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사람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1985년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협)의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김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러던 그에게 김 전 대통령이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휘호를 써주었다. 동대문과는 당시 최훈 국회의원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우여곡절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추위와 외로움에 떨던 신문팔이 소년이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의 뜻을 행하며 이제는 37만 서울 동대문 주민을 책임지는 지역 수장이 됐다. 민선 2기에 이어 5기와 6기를 이어가며 동대문 발전을 이끄는 유덕열 구청장이 그 사람이다. ●부마항쟁 소용돌이 속 12년 만에 대학 졸업 허기진 배를 수돗물로 채우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의 고통을 알 수 있을까. 흙수저로 태어나서일까. 유 구청장은 구정의 방점을 ‘복지’에 찍었다. 그는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다. 이는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동대문구청장을 하는 동안은 춥고 외로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주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유 구청장은 민선 2기부터 1대1 희망결연 등 ‘동대문형 복지공동체 보듬누리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실 자치구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이웃 모두를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소외계층을 위해 민관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보듬누리 사업’은 구 직원들과 소외계층 간 결연을 민간으로까지 확대한 ‘희망의 1대1 결연’에 이웃의 복지를 주민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자 꾸려진 ‘동(洞) 희망복지위원회’를 결합했다. 구 직원과 어려운 이웃을 연결한 ‘희망의 1대1 결연’만으로 복지사각 지대를 완전한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4개 동별 희망복지위원회를 만들어 지역 자체적으로 각종 현안을 풀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30~80명 주민으로 구성된 희망복지위원회는 십시일반 자체 기금을 마련해 직접 어려운 이웃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돕고 있다. 복지의 그물망이 촘촘해지고 사각지대가 줄었다. 이런 노력으로 보듬누리는 ‘2013 지방 3.0 공모사업’ 대한민국 대표 60개 사업에 선정됐을 뿐 아니라 ‘2012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 최우수상’, ‘제9회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 복지서비스부문 최우수상’, ‘제1회 지방정부정책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유 구청장은 “다 같이 잘사는 동대문, 누구나 희망을 품고 사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성취도 평가 성적 향상… 교육투자 ‘결실’ 신자유주의 물결이 몰아치면서 우리 사회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하고 있다. 한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 구청장은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공교육’ 정상화에서 찾고 있다. 그는 “올바른 교육만이 가정의 행복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이라면서 “지역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청소년을 위한 교육예산을 줄이지 않고 있다. 유 구청장은 “우리 구는 교육지원에 과감한 투자와 관심을 기울인 결과 학생 1인당 지원액이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 다음으로 가장 많다”면서 “학생들의 학력 신장뿐 아니라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각종 방과 후 프로그램 등에 우선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동대문구가 속한 동부교육지원청이 서울시 11개 교육청 중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민선 5기 구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유 구청장은 가장 먼저 교육경비 보조금 지원 범위를 8%에서 10%로 올릴 수 있도록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따라서 2010년 68억원이던 교육예산을 2011년에는 112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렸고, 2012년에는 123억원 등으로 점차 늘려갔다. 학생 1인당 지원액 기준으로 서울에서 강남구 다음까지 늘렸다. 그 투자의 결과로 동대문구가 속해 있는 동부교육지원청이 서울시 11개 교육지원청 중에서 3년 연속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교육 으뜸도시로서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무엇보다 학습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고 보통학력 이상인 학생은 증가하는 등 학생들의 성적이 지속적으로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고 싶어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지역 학생을 위해 지역 학원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돕는 ‘희망드림 스터디 학습나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 학습나눔사업으로 현재 23개 학원에서 70여명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울러 구 교육비전센터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진로·학습상담 등 전문화된 교육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고, 동대문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서는 자유학기제 지원프로그램, 진로탐색과 체험프로그램, 진로동아리, 직업체험페스티벌 등 총 6개 분야 19개 진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청소년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고 있다. ●약령시 한방메카 개발 땐 ‘K의학’ 한류 동력 유 구청장은 동대문의 미래 먹거리 만들기도 고민한다. 사실 복지와 교육도 지역 경제발전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 그는 “2017년이면 청량리역사 주변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고 국내 한방재료의 메카 약령시와 바이오·의료 연구단지인 홍릉 주변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라면서 “꿈꾸던 동대문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속칭 청량리 588 주변에 197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사라지고 호텔과 공연장 등을 갖춘 42층 랜드마크 타워가, 인근 동부청과시장 부지에는 50~59층 4개 동, 1160가구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 등 대표적인 구도심이었던 동대문구가 변신할 예정이다. 또 오는 12월 한방 공방과 카페, 족욕 체험장 등 다양한 체험 공간 등으로 꾸민 한방진흥센터가 들어설 약령시도 국외관광객을 모으는 동대문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유 구청장은 “케이팝, K푸드 등에 이어 한약과 침술, 뜸 등 ‘K의학’이 한류를 이어가는 힘이 될 것”이라면서 “한방진흥센터가 문을 열면 여행사와 관광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총력전을 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1만 3900가구가 들어서는 전농·답십리 재개발 사업은 입주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동대문=낙후지역’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유 구청장은 “45년 전 배고프고 외로웠던 신문팔이 소년의 꿈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면서 “동대문구를 지역주민과 함께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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