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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잭슨­리사 프레슬리 결혼/도미니카 변호사,“지난5월 주례”

    【산토 도밍고(도미니카공화국) AFP 연합】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35)이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26)와 지난 5월 도미니카의 라 베가에 있는 현지 변호사의 집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다고 이 변호사가 현지 신문들에 10일 공개했다. AFP통신도 도미니카 정부의 직인이 찍힌 두 사람의 결혼증명서 사본을 입수했는데 이 증명서에는 신랑신부의 본명과 양측 부모 성명,미국내 주소와 미국 여권번호등,그리고 이 두 사람이 라 베가시 공증담당관 프란시스코 알바레스 페레스 변호사(35)의 주례로 결혼한 사실이 기재돼 있다. 알바레스변호사는 현지신문 리스틴 디아리오와 엘 나시오날지를 통해 자신이 지난 5월26일 상오10시 라 베가에 위치한 자기 집에서 15분에 걸쳐 두 사람의 결혼식을 직접 올려줬다고 밝히고 이들이 소니 레코드사가 제공한 비행기로 라 로마나에도착,흰색 미니밴을 타고 자기 집까지 왔으며 결혼식 때 잭슨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검정색 예복을,프레슬리량은 어깨끈이 없는 몸에 꼭 들어맞는 베이지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현지 법에 따라 결혼예식이 통역을 곁들인 스페인어로 진행됐고 신랑신부가 금으로 만든 결혼반지를 교환했으며 자신의 아내와 다른 변호사들,그리고 이브달링과 토머스 키오 등 두 명의 미국인이 증인으로 참석해 결혼식을 지켜 보았다고 밝혔다. 잭슨은 이번이 초혼이지만 프레슬리는 지난해 이혼한 음악가 대니 키오와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 김일성사망 북한방송발표 요지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우리의 전체 노동계급과 협동농민들,인민군 장병들,지식인들과 청년학생들,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와 조선노동당중앙군사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중앙인민위원회,정무원은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1994년 7월8일 2시에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 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우시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융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쉼없이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경애하는 어버이 수령님께서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찍이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어 80고령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을 현명하게 영도하시어 우리 민족사와 인류역사에 영원히 빛날 위대한 업적을 쌓아올리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빛나게 구현하시어 혁명과 건설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걸출한 사상이론가이시고 영도의 천재이시었으며,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오신 위대한 인민의 수령이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로지 그것을 위하여 한평생을 받쳐오신 조국의 통일과 주체의 혁명위업의 완성을 보시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서거하시었으나 우리 혁명의 계속 승리한 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가장 위력한 무기와 반석같은 토대를 마련해 주시었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당과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시며,우리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동지께서 서 계십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어버이 수령님의 거룩한 존엄과 인자하신 영상은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을 것이며 수령님께서 쌓아올리신 위대한 혁명업적은 역사와 더불어 천년만년 길이 빛날 것이다.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앙인민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1994년 7월8일
  • 콜롬비아/멕시코/베네수엘라/자유무역협정 체결

    ◎중남미 경제통합 촉진 기대/3년 협상끝 무역장벽·관세철폐 합의/1억5천만 거대시장 부상 【카르타헤나(콜롬비아) AP 연합】 중남미 자유무역지대화의 초석이 될 콜롬비아와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3국의 수출시장 촉진협정이 13일 밤 콜롬비아의 북서안 카르타헤나시에 모인 3국 정상들 사이에 체결됐다. 이 협정의 체결로 올해 발효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당사국인 멕시코가 북미 무역지대와 기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G­3 국가로 알려진 이들 3개국은 이번 협정 체결로 무역장벽 및 관세가 철폐됨에 따라 향후 10년간 1억5천만명에 달하는 소비 인구의 점진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개국 협정은 지난 3년간의 협의를 거쳐 체결된 것으로 이를 위해 콜롬비아의 세사르 가비리아 대통령은 무역장벽을 낮추는 한편 특히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역점을 두었다. 멕시코의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도 여러 난관에도 불구,이와 유사한 어려운 노력을 기울인 끝에 3억6천만명의 소비 인구를가진 NAFTA 협정체결에 성공했었다.
  • 카리모프대통령 안내로 한인농장 시찰(김대통령 북방여로)

    ◎중앙아의 「한국농업」 개척자가족 격려/사마르칸트선 실크로드 유적들 관람 ○…우즈베키스탄 방문 이틀째를 맞은 김영삼대통령내외는 5일 상오(한국시간 5일 하오) 카리모프대통령내외가 손수 안내하는 가운데 유서깊은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를 항공편으로 방문,중앙아시아 최대의 유적들을 돌아봤다.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하오 타슈켄트로 돌아와 근교의 한인농장을 돌아보고 교민들을 위한 리셉션에 참석하는등 때마침 일요일인데도 바쁜 여정을 보냈다 ▷김병화농장방문◁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하오 타슈켄트 교외에 있는 김병화농장을 방문,농장일대를 시찰. 김대통령은 카리모프대통령과 함께 농장에 도착,아크라모프 타슈켄트주지사와 김병화씨 미망인등의 영접을 받고 아디야로프조합장으로부터 농장현황을 청취. 김대통령은 농정자료전시관과 이곳에서 이름을 떨쳤던 고려인 김병화동상등을 돌아보고 대형벽시계를 농장에 선물. ▷타슈켄트 주지사 만찬◁ ○…김대통령내외는 곧 이어 아크라모프주지사가 고려인들을 위해 마련한 리셉션에 참석,2백여명의 동포및 우즈베키스탄인들을 격려. 김대통령내외는 카리모프대통령내외와 함께 나란히 입장해 서건이주우즈베키스탄대사의 안내로 헤드테이블로 가면서 주변 참석자들과 악수로 인사를 교환. 아크라모프지사의 농장방문 환영사에 이어 카리모프대통령도 『김병화농장의 기적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두나라의 친선을 상징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환영사.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1930년대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동포선조들이 보여준 인내와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중앙아시아에 새롭게 우뚝서는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 이어 농장대표가 김대통령내외에게 선물을 전달했으며 실내악이 흐르는 가운데 김대통령내외는 약10분동안 참석자들과 환담. 약 45분동안에 걸친 리셉션이 끝난뒤 두나라 대통령과 대통령부인들은 각각 차량에 동승해 타슈켄트로 귀환. ▷사마르칸트관광◁ ○…김대통령 내외는 김병화농장 방문에 앞서 이날 상오 카리모프대통령내외와 함께 카리모프대통령의 특별기편으로 실크로드 교역의 십자로 역할을 했던사마르칸트를 방문,유서깊은 유적들을 시찰. 사마르칸트는 수도 타슈켄트에서 비행기로 50여분 거리에 있는 인구 40만명의 우즈베키스탄 제2도시.약 2천5백년전 소그트인들의 손으로 건설된 뒤 기원전 4세기쯤 알렉산더대왕이 이곳까지 내습하는등으로 아시아·페르시아 문화와 그리스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문화를 탄생시켰던 중앙아시아의 역사 깊은 도시. ○…김대통령은 사마르칸트공항에 도착,흐마노프주지사와 나시로프시장의 영접을 받고 전통의상을 입은 우즈베크 여성으로부터 화환을 증정받은 뒤 8세기 이슬람교도들의 묘역인 샤히진다(살아있는 왕)로 출발. 김대통령은 묘역입구에서 사마르칸트 이슬람지도자의 영접을 받았고 11개의 묘역중 압바스묘역을 돌아보는 동안 푸른색 모자이크 타일과 돔으로 장식한 묘역의 건축술과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굉장한 문화유적』이라고 감동. ○…김대통령은 이어 레기스탄(모래의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차안에서 중앙아시아 최대의 회교사원인 「비비하님 모스크」등 시가유적들을 시찰. 15∼17세기 회교식 건축물들이 들어선 레기스탄은 왕에 대한 알현식등 공공집회가 열린 사마르칸트의 중심지로 광장 안에는 3개의 회교학교가 위치. 김대통령은 레기스탄에 도착,시르도르(용맹한 사자)회교학교 앞 광장에서 민속공연과 전통자수 시범을 잠시 관람하고 공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 김대통령은 이어 회교학교 안으로 들어가 아기사슴을 쫓는 사자의 모습과 태양처럼 빛나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내부를 관람한 뒤 15세기 티무르왕과 가족의 묘역인 구르 에미르(지배자의 묘)를 관람. 카리모프대통령이 이날 김대통령의 사마르칸트 방문에 동행한 것은 사마르칸트가 자신의 고향이자 김대통령에 대한 특별한 배려의 의미라는 풀이. 사마르칸트 관광을 끝낸 김대통령은 이어 카리모프대통령과 함께 흐마노프 사마르칸트주지사가 영빈관에서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 뒤 타슈켄트로 귀환. ◎“북의 핵투명성 입증기회 남아있다”/김 대통령 수행 고위당국자 문답 김영삼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수행하고 있는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5일 북한핵 문제와 관련,『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고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단순히 상징적인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데 미국등 우방국들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단계적인 제재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과거 핵활동의 투명성을 입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아직까지도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진게 아니다.교체연료봉에 대한 계측말고 특별사찰이나 또다른 사찰방법으로도 알 수 있다.제재가 처음부터 투명성 입증 기회를 봉쇄하는게 아니다. ­북한의 동향은. ▲특이한 게 없다.24시간 구석구석을 감시할 수 있는 최첨단 정보능력이 총동원됐다.한미간에 긴밀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고 있고 필요하면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북의 도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중국 외교부의 당가선부부장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한국을 방문,한중 외무차관회담을 가졌을 때 북한 핵문제도 논의됐다.중국도 북한이 연료봉 교체를 강행한 데 대해 우려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의 태도는. ▲강석주 외교부부부장의 최근 발언은 연료봉 교체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미·북 3단계 회담이 이루어지면 특별및 임시사찰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으로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 ­안보리 밖에서 한·미·일등 우방국들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도 검토되고 있나. ▲지금으로서는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제재를 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능하리라 본다.물론 여러가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을 통해 러시아의 확고한 지지 약속을 받았으므로 안보리 결의를 추진할 것이다.
  •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세상/차범석(일요일 아침에)

    자고나면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들이 날마나 일어나는 세상이다.그래서 세상은 살맛 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픽션의 세계보다도 논픽션의 세계가 더 흥미있게 받아들여지는지 모르겠다.그러나 문제는 세상을 흥미위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진실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사람답게 살수있는 세상을 원하는 일에는 예외가 있을수 없다.그래서 우리는 신문을 읽거나 방송뉴스에 귀를 기울이는데 인색하지 않는다.그런데 근자에 와서 나는 그 신문이나 방송에 대해서 짜증이 날 때가 있다.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울화통이 터지다 못해 당장에 신문구독을 중지해야겠다고 마음 먹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이유는 간단하다.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기 때문이다. 나는 다섯종의 일간지를 받아보고 있다.그 가운데 한 신문은 고향에서 발행하고 있는 일간신문이다.그러다보니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는데 약 한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 꼴이다.그것도 큼직큼직하게 뽑아낸 표제만을 훑어보는 식이다.자세한 기사내용은 여간해서는 들여다봐지지가 않는다.왜냐하면 사건은 날마다 새로운 사건인 데도 그 내용은 그 소리가 그 소리이고,그 얼굴이 그 얼굴에다 사회적 비리나 부정의 내막은 3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다른 점이라곤 없으니 옛날에 본적이 있는 낡은 영화를 보는 격이다.굳이 달라졌다면 그 부정의 수법이나 규모의 크기가 35㎜에서 시네마스코프로 변했다는 점일게다.속고 속이고,등치고 빼앗고,끼리끼리 돌려가며 나눠먹는 꼬락서니는 나만의 불만은 아닐게다.그래서 웬만한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시민들 가슴마다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지난 5월19일 왕년의 미국 대통령 부인이기도 했던 재클린여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가 있었다.나는 그녀의 화려했던 시절의 모습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라는,다소는 감상적이고도 허무한 생각에 잠기기도 했었다.그런데 그날부터 24일 장례식날까지 날마다 각 신문에는 그녀의 한 평생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손바닥 크기보다도 더 큰 사진을 서너가지씩 실었는가 하면,심지어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다는 남자의 사진까지도 싣고 있었다. 오나시스 재클린,그는 누구인가.그 여자의 죽음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건가.현직 대통령의 영부인인가? 아니면 여성으로서의 모든 미덕과 깨끗한 사생활이 만인의 본보기란 말인가.그 여자의 생애가 5일동안 보도될 만큼 찬란했으니 우리 한국인의 가슴마다 영원히 새겨두란 말인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동안 광주에서 날라온 신문에는 5·18정신의 계승과 진상조사 종결을 외쳐대는 함성이 귀에 들려올 정도로 생생하게 보도되었다.14년전의 광주의 비극은 광주지역 사람만의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그리고 그 진상은 다 밝혀졌으니 그만 덮어두는게 좋다는 사람도 있다.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화려하고 분망하게 살다간 외국여자의 죽음에 그토록 지면을 아낌없이 제공했던 신문이 국내인사의 죽음에는 어떠했는지 물어봐야겠다.평생을 서예와 민주항쟁에 헌신하다가 타계한 강원도 어느 가난한 선비에겐 몇줄의 기사로 마감하는 그 심사는 무엇인가.농민을 살리자면서 농민을못살게 하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우리 것을 살리자면서 외국 것에만 눈이 뒤집힌 일부 예술가들의 착각을 어떻게 볼것인가.한편에선 자연을 보호하자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그 자연을 갉아먹는 인간송충이가 큰소리치는 세상이다.5대강이 병들고 생물이 죽어가도 기업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인가. 정치가도,군인도,그리고 교육자도 돈에만 눈이 혹하여 물밑으로만 기어다니는 세상을 지켜보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번져가는 불길을 지켜보는 꼴이다.그래서 누군가가 그 불길을 잡아주고 시원스럽게 꺼주기만을 고대하는 데도 부채질만 더해가는 세상이니 어찌할 것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는 소리가 번져가는 데도 결국은 「나」만 살게해주고 「우리」만 잘 살게 하자는 이기주의의 불길이 더 가속도로 번지고 있다.그래서는 안된다고 불길을 잡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부채질만 하는 세상에서 나는 자꾸만 왜소해지는 것 같다.그러나 나는 부채질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읽기 싫은 조간신문을 펴든다.
  • 재클린/김홍명(굄돌)

    고케네디대통령과 함께 전세계의 대중앞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젊은 미모의 재클린.유창한 화술과 세련미를 갖춘 퍼스트 레이디의 표상이었던 그녀는 몇년후 달라스에서 남편을 잃고 다시 몇년후에는 선박왕 오나시스의 부인이 되었다.그리고 7년만에 별다른 유산을 상속받지 못한 채 다시 대중앞에 사라진 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이제 그녀는 죽음으로 화려하고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끝맺었다. 진정한 퍼스트 레이디,젊은이의 우상이었던 재클린.그 우아한 모습,미묘한 얼굴,헤아리기 어려운 눈빛,그리고 세련된 말씨와 몸짓은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재클린은 인생수업은 쌓았으나 정규 대학교육은 받지 않은 듯 보여진다.그녀의 아버지 부비에씨는 그녀에게 파리의 숙녀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상류사회에 걸맞는 매너와 교양을 습득시킬 것인가를 생각했었다.위대한 정치가,세계의 운명을 짊어질 사람의 반려로서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능력과 결정보다도 그에게 용기와 상식을 불어넣는 것이라는 듯 그녀는 대통령부인으로서 손색이 없었다.그러나 이제 구세대의 여인상 재클린이 떠나고 그 자리에는 독자적인 신세대의 여성상 힐러리가 들어섰다. 재클린은 비록 재혼했지만 평생을 통해 무수한 언론의 눈을 통해서도 별다른 스캔들에 휩쓸린 적이 없었다.우리 주위의 여성들이 온갖 알 수 없는 시대병을 앓고 있는 그 시간,그녀는 자신의 긍지와 케네디집안의 체면을 지켰다. 그러기에 그녀는 이제 알링턴의 케네디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추모를 받으며 진정한 퍼스트 레이디로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인의 천박한 사고 속에서는 오늘을 지켜 내일에 남는 자세가 돋보인다.재클린은 그녀의 방식으로 이 시대를 지켜간 셈이다.
  • 사나시 스커드피폭/북 예멘수도/30명 사망… 최대피해

    ◎외국항공기·선박 남예멘 진입 금지 【사나 AP AFP 연합】 북예멘군이 남예멘의 석유생산 중심지인 샤브와주 주도 아타크를 점령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23일 남예멘군이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커드 미사일 한발이 북예멘의 수도 사나시의 한복판에 떨어져 최소한 30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으며 북예멘은 즉각 이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목격자들은 이날 오후 8시20분 미사일 1발이 시내 주택밀집지역인 알카부근에 떨어져 최소한 가옥 다섯채가 붕괴되고 6층짜리 병원의 창문이 폭발음의 충격으로 박살났다고 전했다. 건물더미속에서 생존자 구출작업을 벌이고 있는 구조대원들은 공격 발생후 2시간동안 최소한 30명의 사망자를 발굴해냈다고 말했다.이들은 부상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고 이는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제각각 병원으로 부상자를 실어나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예멘정부는 이날 모든 외국 항공기와 선박들은 남부 전투지역내로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다.예멘교통부는 예멘남부의 아덴주,하드라마우트주,마흐라주의 모든 항구와 공항이 전투지역에 포함된다고 말하고 당국의 지시를 어길 경우 발생하는 『어떠한 피해에 대해서도 예멘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재키 케네디곁에 묻히다/클린턴 알링턴국립묘지서 추도사

    【워싱턴 로이터 AFP 연합】 지난 19일 타계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여사의 유해는 23일 하오(한국시간 24일 상오) 워싱턴소재 알링턴 국립묘지의 고 존 F 케네디대통령 묘소옆에 안장된다. 이에앞서 이날 상오 뉴욕 맨해튼의 성이그나티우스 로욜라성당에서는 재클린여사의 장례미사가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과 친지 몇명만 초청된 가운데 조용히 치러진다. 뉴욕에서 장례미사를 마친후 재클린여사의 유해는 전세비행기편으로 워싱턴으로 운구돼 케네디가 사람들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알링턴묘지에 안장된다. 이로써 지난 53년 케네디대통령과 결혼한 재클린 여사는 63년 케네디대통령이 댈라스에서 암살된후 30년만에 죽어서야 재결합하게 됐다. 클린턴대통령은 안장식에서 추도사를 할 예정이며 힐러리여사는 23일 상오 뉴욕으로 가 장례미사에 참석한후 재클린여사의 관을 실은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돌아오며 클린턴대통령은 공항에서 이들을 마중한다. 케네디가는 군용 제트기편으로 재클린여사의 관을 워싱턴으로 운송하라는클린턴대통령의 제의를 거절했다. 알링턴국립묘지 경비를 담당하고있는 육군은 이번 장례식의 「사적」성격을 강조하면서 기자들의 케네디 묘지 접근이 금지될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간의 관례를 깨고 대통령의 백악관 외부행사를 취재하던 보도진들의 장례식 취재도 금지되었으며 추도사 내용만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어서 장례식은 일체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다.
  • 재키,케네디묘옆에 묻힐듯/“아메리카연인” 죽어서도 화제

    ◎“생전에 알링턴묘지 희망 했었다”/“첫시댁” 보스턴시 조기게양 애도 지난 19일 타계한 재클린 오나시스 여사의 유해는 첫 남편인 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묻혀있는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대통령 묘역에 안장될 것이라고 그녀의 대변인인 낸시 터커맨 여사가 20일 밝혔다. 터커맨 여사는 이날 이같이 밝히면서 장례식은 오는 23일 뉴욕 맨해턴의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성당에서 고인의 뜻에 따라 조용한 가운데 엄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클린 여사는 지난 53년 미래의 대통령과 결혼했으며 케네디 대통령이 지난 63년 댈라스에서 암살된 후 30년만에 사후 재결합하게 된다. 재클린 타계후 4송이의 붉은 카네이션이 고 케네디 대통령 묘비에 놓여졌는데 지난 63년 조산후 사망한 아들 패트릭과 앞서 56년 사산한 딸이 아버지 곁에 묻혀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그레그 스미스 대변인은 생전의 재클린 여사도 그곳에 묻힐 것을 시사했다고 말하고 재클린여사 가족들과 수차례 협의를 가진 바 있다면서 가족들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나 묘지에 묻힐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편 고 케네디 대통령의 출신지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는 재클린여사의 죽음을 맞아 반기를 게양하는등 애도를 표시했다. 보스턴의 존 F 케네디 도서관도 조기를 게양하고 당분간 모든 공식행사를 중지키로 결정했다. 케네디 대통령 일가를 낳은 보스턴과 매사추세츠주에는 재클린여사의 시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상원의원으로 있으며 조카인 조셉 케네디2세가 보스턴지구의 연방하원의원으로 있다. 재클린여사는 로드아일랜드주 사우샘프턴 출신으로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결혼후에는 주로 뉴욕에서 살았으나 보스턴시는 항상 그녀를 그곳 출신으로 간주해왔다. 재클린 여사의 두번째 남편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조국 그리스는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죽음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나시스 재단의 한 대변인은 20일 『우리는 전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들은 재클린 여사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그녀가 사랑보다는 돈과 권위를위해 오나시스와 결혼했었음을 「시사」했다. 재클린 여사가 오나시스와 결혼할 당시 그리스는 군부독재하에 있었으며 오나시스는 군사 정권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나시스는 그리스에서 아직도 인기가 있으나 재클린여사는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 재클린여사 타계

    【워싱턴=이경형특파원】 고존 F 케네디 전미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여사가 19일 하오 10시15분(현지시간) 임파선 암의 일종인 비호지킨씨병으로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재클린여사는 지난 16일 임파선 암으로 뉴욕 코넬 메디컬센터에 입원했으나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병원측의 결정에 따라 18일 저녁 퇴원,이날 숨을 거뒀다.
  • “세기의 연인”… 미 전역이 애도

    ◎53년 12살 연상 케네디와 결혼… 68년 재혼/4개월째 암투병에 3번째 연인도 임종지텨 고 존 F케네디 전 미대통령의 미망인으로 19일 하오64세를 일기로 숨진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여사는 숱한 화제속에서도 미국인들이 사랑을 받던 「세기의 연인」이었다. 지난 1월 임파선 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는 등 투병생활을 해오던 그녀는 지난 16일 병세가 돌이킬 수 없게 되자 자택으로 퇴원,딸 케롤라인과 아들 존F케네디 2세 에드워드 케네디상원의원,오랜 친구이며 세번째 결혼설이 돌았던 보석상 모리스 템펠스먼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그녀의 대변인 낸시 터커먼이 밝혔다. 「재키」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보스턴의 케네디도서관에 즉각 조기가 게양되는 등 미전역이 애도에 들어갔다.클린턴대통령은 『그녀는 전세계와 모든 미국인에게 용기와 위엄의 모범』이었으며 『그 시대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지성과 우아함,세련미로 미국인을 사로잡았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뉴 프런티어정책의 기수 케네디 전 미대통령의 미망인으로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재혼등 숱한 화제를 뿌렸던 재클린여사는 말년에는 뉴욕에서 출판사 편집일을 하며 철저한 은둔생활을 해왔다. 1929년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조지워싱턴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타임스헤럴드지의 사진기자로 일하던 그녀는 53년 당시 메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이던 케네디와 결혼,세계의 주목을 받았다.63년11월22일 댈라스에서 케네디가 암살당할때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비극의 순간을 함께 했다. 대통령미망인으로 미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던 그녀는 68년 그리스의 거부 오나시스와 갑작스레 재혼,미국의 한 신문이 헤드라인에서 「재키,당신이 어떻게?」라고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등 비난을 받기도 했다. 75년 오나시스와 사별한뒤 2천만달러(약1백80억원)의 유산을 상속한 그녀는 최근에는 자신의 재정고문으로 재산관리를 맡았던 뉴욕의 보석상 모리스 템플스먼과 가까이 지내왔다. 타고난 미모에 밝은 성격으로 만인의 연인이었던 그녀였지만 『의사로부터 암선고를 받은 날은 댈라스에서 남편이 암살된 이후 최악의 날이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2천년 전통의 대리석업(이탈리아 중소기업 탐방:5)

    ◎대부분 가업… 돌을 나무처럼 다룬다/기계화 돼도 가공은 일일이 손으로/수입원석 써도 정교함은 추종 불허/카라라지역 장인들,돌의 색깔·생김새만으로 특성 파악 이탈리아 중서부 토스카나주,지중해 연안 카라라 지역의 아푸아네산맥.미켈란젤로가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내리며 대리석을 깎던 곳이다.수많은 조각가가 그 뒤를 따랐고 지금은 깎아지른 듯한 하얀 절벽에서 석공들이 천혜의 대리석을 캐며 대를 잇고 있다. 등록된 광산만 1백7개,석공은 1천2백여명이며 연간 1백38만t의 대리석을 생산,전세계에 판다.매장량이 30년 이상 채굴가능한 봉우리만 수십개이다. 해발 4백80m의 판티 스크리티 동굴은 1백년전 한 석공이 대리석 광맥을 발견,산을 파들어간 것이 갱구처럼 굴로 커진 곳이다.굴의 길이가 1㎞를 넘고 막다른 곳은 해발 7백m.산을 뚫고 들어가 한 복판에다 높이 1백m,너비 2백m의 인공 광장을 만들었다.대리석의 황제로 불리는 그 유명한 「화이트 카라라」가 나오는 곳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대리석의 명성이 풍부한 자원에서 나오는 것만은아니다.더 좋은 돌을 구하기 위해 수세기동안 석산을 파들어간 장인 정신이 오늘날 이탈리아 대리석을 키운 것이다.대리석을 자르는 「갱서」와 「불도저」가 망치와 정을 대신했지만 깎고 자르고 다듬는 기술은 천년전과 다름이 없다.오히려 석공들의 손을 거치면서 기술은 한층 나아졌다. ○등록된 광산 1백곳 카라라에서 지중해를 따라 남쪽으로 7㎞떨어진 마사의 코제마사.대리석과 화강암을 가공해 일본,영국,사우디 아라비아,중국 등 전세계에 수출한다.지난 80년 설립,14년만에 매출이 연간 2천만달러를 넘었다.카라라의 대리석을 쓰기도 하지만 터키,이스라엘,포르투갈,남아공 등에서 대부분의 원석을 사온다.자원의 혜택은 별로 받고 있지 않는 셈이다. 돌을 사서 10㎝간격으로 자르고 흠이 난 부분을 메운 뒤 표면을 깨끗이 다듬는다.이어 고객이 원하는 크기대로 또 자르고 칠을 해 광을 낸다.우리나라의 화강암 가공 공정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기계도 같고 일하는 근로자 수도 비슷하다.그런데도 가공된 대리석의 색깔,표면,무늬 등은 비교가 안된다.가격도 몇 곱절 비싸다. 이 회사 프랑코 주스티 사장은 『달리 비결이 없다.예부터 전해지는 기술대로 자르고 닦고 칠했을 뿐이다.다른 게 있다면 돌의 색깔과 생김새만 봐도 어느 곳에 사용해야 제 특성을 살릴 수 있는지 금방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손으로 하든 기계로 하든 돌을 알고 가공을 하느냐가 핵심이라는 얘기이다. 몇 해전 이런 일이 있었다.한국의 유명 대리석 업체가 이탈리아에서 대리석을 원석으로 수입해 가공했다.그런데 돌 자르는 톱인 「갱서」만 대면 「쩍」소리를 내며 대리석이 산산 조각이 났다.이탈리아에선 나무를 깎듯 정밀하게 잘라지는 것을 확인한 터라 불량품이라고 클레임을 제기했다. 이탈리아 기술자가 급파돼 확인한 결과 「갱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정이 났다.화강암은 대리석보다 5배 이상 단단해 특수 강철 「갱서」를 사용하는데 화강암용 「갱서」로 대리석을 잘라 산산조각이 났던 것이다.닭잡는데 소잡는 칼을 쓴 격으로 돌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다는 얘기다. 이탈리아에서 10년 이상 대리석을 수출해온 교민김충렬씨는 『한국의 석재업체들은 돌의 특성은 생각지 않고 무조건 비싼 돌만 찾는다』며 『좋은 돌보다 적합한 돌을 쓰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코제마의 기술 책임자인 기세페 밀라니씨는 『이 곳에선 돌을 안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돌을 잘 안다.게다가 2천년 이상 축적된 장인들의 기술도 있다.이 것을 고스란히 공장에 옮겼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선대의 장구 그대로 마사에서 남쪽으로 15㎞떨어진 피에트라산타시.이곳에선 3대 이상 석재를 가공한 업체가 흔하다.10대째 가업을 잇는 업체도 있다.선대가 쓰던 장구도 그대로이고 같은 제품만 반복해 만든다.정밀기계도 아닌데 1㎜의 오차도 없다.돌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이 곳 사람들은 말한다. 카라라의 마지막 장인인 콘트리 디노씨(83)는 아직도 「마르텔도(망치)」와 「스칼페다(정)」를 고집한다.아들인 프랑코씨가 사용하는 기계보다 더디긴 하지만 기계가 못내는 문양을 옛것 그대로 그려낸다.12살때인 지난 23년부터 70여년간 묘비에 문양을 새겨온 디노씨는 『기계를 반대하는 것은아니다.새 것도 좋은 점이 있다.단지 아들에게 전통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 망치를 든다』고 한다. 마사,카라라 지역의 대리석 공장은 1천2백62개.관련 종사자는 8천9백명으로 한회사의 평균 근로자는 8명꼴이다.2∼3명의 가내 수공업체도 6백여개나 된다.마사의 북쪽 포르테 다이 마르미(돌의 강함이란 뜻)에서 대리석을 가공하는 디 안젤로씨는 『대리석 가공업체가 점차 대규모,기계화되고 있다.그러나 가공 과정은 일일이 손으로 한다.손과 대리석 사이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계가 끼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북서부 베네토주에서 유일하게 대리석 가공기술이 발달한 베로나시에서 20년 이상 원석을 가공,수출해온 델리로씨는 이렇게 말한다.『대리석은 수만년에 걸쳐 형성된다.종류만 3백가지가 넘고 지역마다 색깔과 특성이 다르다.2∼3년 돌을 연구해선 색깔과 돌의 이름도 구분하지 못한다.이탈리아는 이미 2천년전부터 대리석으로 길을 내고 집을 지었다.나무 문화권인 한국,중국,일본과는 다르다.기울어도 무너지지 않는 피사의 탑이 이탈리아 대리석의 현주소이다』
  • 남예멘「스커드」공격…25명 사망/북측 휴전제의 불구 내전 혼미거듭

    【사나 AFP AP 로이터 연합】 북예멘측이 11일 즉각적인 휴전을 제의,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가운데 남예멘측이 돌연 수도 사나에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해 25명의 사망자를 내는등 예멘 내전이 8일째 혼미를 계속하고 있다. 북예멘은 이날 남예멘측이 알리 압달라 살레대통령 정부를 인정하고 반란행위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즉각 휴전을 제의했다고 대통령 특사인 압델카림 알 이리아니 기획장관이 밝혔다. 리야드를 방문중인 이리아니 장관은 『북예멘 지도부는 남예멘측이 현행헌법에 의거,살레정부의 통치를 존중하는 조건하에 적대행위를 즉각 중단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북예멘정부는 인근 아랍국들의 중재를 수용할 태세가 돼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중립감시군을 파견하겠다는 이집트 제안을 거부했다. 이런 가운데 양측은 이날 서로간의 군사적 우위를 주장하며 격렬한 비방전을 전개했다. 특히 남예멘측이 발사한 스커드 미사일 1발이 사나 중심지 공업지구와 가까운 곳에 떨어져 민간인25명이 사망했다고 모하메드 사이드 알 아타르 북예멘총리대행이 밝혔다. 남예멘측은 지난주 내전이 발발한 이래 북예멘 진영에 모두 19발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그중 13발은 수도 사나에 집중됐으며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사나시 당국자들이 전했다.
  • 패션업체:2(이탈리아 중소기업 탐방:2)

    ◎중기끼리 하청생산… 철저히 공생/완제품 납품계약… 이익 절반 배분/“전문화가 능률적”… 영역 침범안해/부채 거의 “제로”… 무리한 사업확장 생각지도 않아 이탈리아 북동부의 교통중심지 베로나시에서 동남쪽으로 20㎞떨어진 론코시 스티졸리사.지난 45년 전쟁의 폐허속에서 여성 속옷 메이커로 출발,반세기동안 세계시장에 여성 정장을 팔아온 이지역 경제의 중심체이다. 이 회사는 생산라인이 하나도 없다.소재로 쓰이는 원단을 직접 짜고 샘플을 만드는 공정은 있다.그러나 막상 소비자가 사서 쓰는 완제품을 만드는 시설은 갖추지 않았다.그럼에도 지난해 자기상표로 1백억원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50억원은 미국·영국·일본 등지에 수출했다.완제품은 전량 하청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수료를 받고 판매만 대행하는 무역업체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스티졸리사는 70년대말까지 완제품을 직접 만들었다.80년대들어 한국·대만·중국 등 후발개도국들의 저가공세가 거세지고 국내 임금이 급격히 높아지자 생산을 생산전문업체에 맡겨전문화를 모색했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대량생산을 위해 일부 공정만 하청주는 방식은 아니다.스티졸리사의 브랜드로 납품하지만 하청업체들은 모두 완제품을 만든다.생산 방식이나 기술도 스티졸리사와 똑같다.각 업체마다 만드는 옷이 전부 다르고 자기 상표로 옷을 만드는 곳도 있다.한마디로 스티졸리사의 세포를 다른곳에 이식한 셈이다. 스티졸리사는 이같은 하청업체들의 중심에서 두뇌구실을 한다.그렇다고 하청업체들이 기술이나 자금면에서 종속된 것은 아니다.똑같은 중소업체이면서 별도 법인으로 각기 독립성을 유지한다.이익도 혼자 챙기는 법이 없다.소비자 가격이 생산원가의 2배가 넘지만 유통과정에서 절반은 빠지고 나머지는 하청업체와 반반 나눈다. ○특정계층을 공략 하청업체들은 스티졸리사를 중심으로 반경 20㎞주변에 모두 자리잡고 있다.「마리 셀라」,「콜코라도」등 20여개 업체가 10여가지 제품을 만든다.언제든지 스티졸리사처럼 독자적인 판매망을 구축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스티졸리사를 정점으로 생산과 판매를이원화했다. 인구 5천명인 론코시 주민의 3분의1이상은 스티졸리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업체에서 일한다.스티졸리사는 패션의 흐름을 파악,소비자가 바라는 옷을 디자인하고 도매상으로부터 주문을 따내는 일을 한다.지난 1월에도 밀라노 전시회에 참여,2백50가지가 넘는 샘플에 대해 주문을 받았다. 아우렐리오 스티졸리(65)사장의 장남인 알베르토씨는 『하청을 통해 생산을 특화하면 일의 능률을 30%이상 높일수 있다』며 『계절적으로 유휴노동력이 많은 의류업체에 하청을 통한 생산의 전문화는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단일 품목으로 매년 1백억원 정도의 수출을 올리면서 근로자가 80명이 채 안되는 것은 생산의 전문화 때문이다. 스티졸리사가 택한 또 하나의 전략은 니치마켓(틈새시장),다시말해 다른 업체가 관심을 두지않는 특정 계층과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다.이에따라 30∼40대 여성만을 겨냥,재킷·코트·투피스에 전력을 다했다.그결과 옷의 가지수는 줄었으나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또 유행에 민감한 것보다 클래식하면서활동성이 강하고 편안한 제품을 만든 것도 주효했다.대기업을 쫓지않고 고객 스스로가 찾도록 하는 자기만의 시장을 구축,경쟁력을 키운 것이다. 베로나시에 자리잡은 로마르사도 40여개의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있다.그러나 군림하지는 않는다.중세의 길드같은 조직으로 판매망을 일원화해 상호간의 과당경쟁을 없앴다.대부분 자기상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공생관계는 철저히 지킨다.하청업체의 근로자수는 평균 10여명 안팎이다. ○근로자 10명 안팎 토스카나주의 피렌체시 남쪽 토리첼라지역에서 비즈니스 여성을 위한 정장을 생산하는 폴베레사.지난 80년 사장인 파비오 카시씨와 친구인 로베르토 키아베씨가 공동 설립했다.70년대 독자적인 생산체제를 갖고있다가 하청구조로 전환했다.근로자는 20명이고 디자인은 키아베씨가 직접 한다. 이 회사는 생산 전문화를 위해 설립초기부터 하청업체를 키우다시피 했다.자기만의 생산기술을 알려주고 자금이 부족하면 대주기도 했다.그러나 경영에 간섭하거나 납품대금을 늦춘적은 한번도 없다.가능한한 현금이나 수표로 결제했고 경영의 안정성을 위해 10년간 거래처를 바꾸지 않았다.대신 주문한 디자인이나 샘플에 맞추지 못하면 절대 납품을 받지않았다. 설립 15년만에 피렌체 지방에서 손꼽히는 중견업체로 성장했다.역시 틈새시장전략을 구사,20∼30대 활동 여성들을 위한 실용성과 패션을 겸비한 옷을 만들었다. 파비오씨는 『생산공정을 갖는 것은 비효율적이다.디자인하고 샘플을 만든뒤 전시회에 참가,주문을 받고 하청주는 데에도 손이 달린다.생산체제를 갖추거나 사업규모를 늘리는 것은 제품의 질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도움 안바라 하청구조를 택한 회사들의 또한가지 공통된 특징은 부채비율이 「0」에 가깝다는 것이다.일찍이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 전문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적정규모를 넘는 사업확대는 있을수 없다.힘들다 싶으면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게 철칙이다.따라서 자금이 쪼달리지 않고 웬만한 불황도 거뜬히 넘긴다. 경기가 좋을때 앞뒤 가릴것 없이 사업을 늘리다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맥없이 무너지는 우리 중소업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물론 산업구조적인 문제,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인력구조등 종소업체가 겪는 어려움이 산적했다.구조적인 문제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이다.다른 것은 정부의 도움은 일체 바라지 않고 재투자에 의한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중소 패션업체들이 세계시장을 넘나드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게 아니다.중소업체들끼리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을 무리하게 운영하지 않는 점,최소 인원으로 최대 효과를 보는 평범한 경제원리를 철저히 지키는게 전부이다.
  • 「충무 리조트」/해양 레저타운 국내서 첫 개장

    ◎요트마리나·유람선 터미널 일부시설 완공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한려수도의 관문 경남 충무에 요트마리나·콘도·육해상놀이공원등을 고루 갖춘 국내 최초의 해양레저타운인 「충무 마리나 리조트」가 최근 개장됐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국가이면서도 바다를 이용한 레저시설이 빈약한 점에 착안,(주)금호개발이 97년까지 총 1천7백억원을 투입,경남 충무시 도남관광단지내에 짓고 있는 이 시설은 해상 6만6천평,육상 5만7천평규모.97년을 완공 목표로한 해양리조트 시설중 요트 마리나와 유람선터미널등 일부시설의 1단계 완공에 따른 것이다. 이 곳에는 앞으로 요트를 비롯한 해양레저장비를 갖춘 부두와 클럽하우스·콘도·육해상놀이공원·상가등과 충무공전시관·해양수족관·야외스포츠센터등 교육·문화시설도 갖추어진다. 이번에 개장한 마리나시설은 우선 길이 33피트(약 10m)급 요트 3백36척 수용규모의 해상계류시설중 일부(92척규모)로 현재 도입된 18척의 요트는 8∼15명까지 승선이 가능하고 요트클럽 회원용으로 사용된다. 관광객들은 임대한 요트에 스킨스쿠버·제트스키·수상스키·낚시도구·파라세일링등의 장비를 싣고 나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기게 된다. 또 회의실과 식당·오락실·칵테일바등을 갖춘 지상 3층건물(6백40평)의 클럽하우스와 지하1층·지상15층크기의 16∼60평형 2백72개의 객실을 갖춘 콘도시설이 80%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이 리조트 시설은 회원중심으로 운영되는데 콘도·요트를 겸해 이용할 수 있는 복합회원권과 콘도와 요트중 한가지를 이용할 수 있는 단일회원권으로 나뉘어 있다.문의전화는 금호개발 758­8760∼7.
  • 쿠바/“개방만이 살길” 「늦바람」 분다(현장 세계경제)

    ◎구소원조 중단에 미 봉쇄 겹쳐 경제난/관광 육성·달러유통 허용 등 획기 조치/전력·원자재부족 등 난제많아 성과 미지수 카스트로의 나라,고립된 사회주의의 나라 쿠바가 과연 「카리브해의 진주」라는 35년전의 명성을 되찾을수 있을 것인가.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몰아닥친 심각한 경제난국 타개를 위해 개방의 빗장을 조심스레 풀고있는 쿠바는 최근 정부 고위층들이 다투어 대외개방을 바탕으로한 경제개혁을 밝히고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1959년 공산혁명 이래 북한 김일성 다음으로 오래 권좌에 올라있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대통령은 지난 6일 아바나를 방문한 아르헨티나 고위관리에게 『쿠바가 수출진흥을 위해 점진적이고 대대적인 경제개혁을 이룰것』임을 강조했다. 또 이에앞서 로베르토 로바이나 외무장관은 최근 우루과이를 방문,쿠바가 무제한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오는 22일부터 사흘간 외무부 주관으로 망명인사등 해외 43개국에 흩어져 있는 해외쿠바인 2백여명을 초청,모국의 이해및 투자유치를 위한 회의도 개최한다. 그동안 강화된 미국의 경제압력과 계속되는 경기후퇴로 최근 일련의 개혁입법을 통해 부분적인 경제자유화와 개방을 허용해온 카스트로 정부의 이같은 적극적 움직임은 쿠바가 진정으로 거듭나는 신호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관광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허용.그동안 부도덕과 타락의 상징으로 금기시해온 관광산업에 대해 정책을 전환,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섬으로써 지난해 5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으며 이들로부터 5억달러가 넘는 와화수입을 올렸다. 또 작년 7월 쿠바정부는 중대한 자유화조치의 하나로 미달러의 통용을 허용했다.달러 보유금지로 인해 번성했던 암시장으로부터 달러를 공공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이 조치이후 달러에 의한 산매거래가 전체의 70%에 이를 정도로 달러통용이 급격히 늘었다.또 8월에는 배관공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에 이르는 1백17종의 자영업을 합법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밖에도 지난 9월 쿠바정부는 국영농장을 재배와 판매를 농민자율에 맡기는 협동농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이러한 조치로 농지의 80%에 이르는 국영농장이 빠르게 협동농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쿠바 정부의 조심스런 개혁 개방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직 쿠바의 경제는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이는 아바나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길게 줄선 사람들의 모습으로 설명된다. 가장 흔한 줄은 백화점이나 식품점 앞,야채나 빵·생필품등을 사기 위해 늘어선 줄이다.다른 줄은 아바나시내의 대로 한가운데 늘어서 있는 승용차를 얻어 타려는 줄이다.구소련의 원조중단후 극심한 원유부족으로 공공교통수단이 거의 마비상태에 빠지자 정부가 모든 국유차량에 대해 의무적으로 「승용차 함께타기」를 명령했던 것이다. 또다른 줄은 쿠바가 관광분야를 적극적으로 개방키로 한뒤 나타났다.새로 단장한 호화스런 호텔을 드나드는 외국인 관광객들 뒤로 동냥을 위해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행렬이다. 지난 3년동안 전력및 원자재부족으로 수백개 공장들이 가동시간을 줄이거나 문을 닫았다.노동자의 절반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나앉았다.실직자들은 하루살이생활을 하며 오로지 먹을것을 찾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쿠바경제가 최근 이처럼 악화일로를 걷게된 것은 그동안 최대의 교역국이자 원조국이었던 소련의 몰락때문.80년대 말까지 소련은 쿠바에 대한 경제지원 방편으로 설탕과 니켈을 실제가격의 3∼4배로 대량수입하고 원유 식량등을 싸게 공급했다. 또 쿠바의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 연50억달러에 이르는 돈을 보조했다.그러나 90년대 들어 이 지원이 끊어지게 되면서 쿠바경제는 급속히 위기상황으로 빠져들었다. 32년간 계속된 미국의 경제봉쇄정책도 주요 원인중의 하나다.더욱이 92년11월 발효된 미의회의 「쿠바민주화법」은 쿠바에 대해 한단계 더 강화된 봉쇄조치를 취하는 것이어서 쿠바경제의 목을 더욱 심하게 옥죄고 있다. 그러나 쿠바 국민의 대다수는 아직도 카스트로에 커다란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경제개혁에도 혁명의 성과는 간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의료·교육등의 분야에서 선진자본주의 나라에 버금가는 혜택을 받아온 국민들로서는급격한 체제변화로 이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체제를 고수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것,다시말하면 중국과 베트남이 표방하고 있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카스트로정부의 기본목표이기 때문에 쿠바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 세계 로봇시장 50% 점유/일의 초일류기업 파낙사

    ◎무인자동화 공장… 대부분의 공정 로봇이 맡아/작년 매출 1천억엔… 연구개발비로 10% 투입 『기술에는 역사가 있다.그러나 기술자에게는 과거가 없다.오직 연구만 있을 뿐이다』 일본에서 명승지로 알려진 야마나시(산이)현 후지(부사)산 자락.도쿄에서 서남쪽으로 1백30㎞ 떨어진 오시노무라(인야촌)에 자리잡은 초일류 기업­세계의 로봇산업을 선도하는 파낙(FANUC)의 좌우명이다. FANUC은 Fujitsu Automatic Numerical Control의 약자.「사람 대신 로봇이 일하는 거대한 무인자동화 공장」,「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공장」으로 널리 알려진 파낙의 공장에 들어서면 미래사회의 만물의 영장은 로봇이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로봇 일색이다. 35만평의 부지에 자리잡은 파낙은 온통 노란 색으로 단장한 공장과 연구소로 가득차 있다.하지만 그 안에서 작업하는 공원은 4백여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공정을 6백여대의 로봇이 맡는다. 로봇들은 창고의 부품운반에서 자동차 조립과정의 용접과 도장·부품 끼워넣기,그리고 가공이 끝난 제품의 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한다.직원들이 하는 일은 로봇들이 제대로 움직이는 지를 살펴보는 감시 뿐이다. 로봇의 두뇌격인 최신 전자공장의 경우 로봇들이 삼열 횡대로 작업을 한다.첫열의 로봇 11대가 전자 회로기판을 순서대로 조립하고 둘째,셋째 열의 로봇들은 떨어진 부품을 단계적으로 공급한다.그 뒤에서 여공 한명이 공정을 지켜보며 고장시 응급처지를 한다.물론 고장률은 0%에 가깝다. 파낙은 지난 55년 후지쓰(부사통)사의 NC(수치제어) 부문이 독립해 설립된 회사.그동안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파낙은 세계 CNC(컴퓨터 수치 제어장치)와 로봇 시장에서 50%를 넘는 점유율을 자랑한다. 파낙의 성장은 창업당시 제어기술·개발팀장으로 엔지니어 출신인 이나바 세이네몬(도엽청우아문) 사장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공학박사인 그는 지금도 연구개발 과제를 직접 챙기는 영원한 기술인이다. 공장을 둘러보면 벽마다 잔소리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장 명의의 지시사항이 쓰여 있다.「품질제일」 「정리정돈 엄수」….곳곳에 이나바사장의 체취가 스며 있다.가장 이색적인 것은 「사람은 정시간 내 노동.로봇과 기계는 정시간 외 작업」이다.직원들은 퇴근해도 로봇들은 휴식없이 일한다.완전 무인자동화를 실현한 것이다. 회사측은 『매주 금요일 저녁 파낙에 주문하고 월요일 아침에 오면 물건이 다 돼 있다』고 자랑한다.물론 자동화 제작으로 가능한 일이다. 파낙의 기술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21세기를 향한 연구개발(R&D)에 총력을 기울인다.연구실마다 「보다 적은 부품으로」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부품 수를 되도록 줄여서 가격을 낮추자는 것』이라고 가토 신페이(가등진평)부사장은 설명했다. 전체 종업원 2천여명 중 연구요원은 7백여명이나 된다.전 직원의 3분의1을 넘는 셈이다.지난해에는 총 매출액 1천1백77억엔 중 10%인 1백20억엔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파낙은 벤처(모험)기업의 성공사례이다.지난 50년대만 해도 기계류는 미국·서독·스위스 제품이 일류였다.일본은 감히 기계류의 수출은 엄두도 못냈다. 파낙의 공작기계는 후진적이었던 일본의 기계산업을 뒤바꿔 놓는 계기를 만들었다.오늘날 일본 총수출액의 3분의2 이상을 일반기계,수송기계,전기·전자제품이 차지하는 밑거름이 됐다. 파낙의 모험이 성공으로 완전히 정착된 발판은 지난 80년대 중·후반기에 마련됐다.이 시점은 한국이 민주화의 대가로 노사분규라는 열병을 앓던 시점이다.한국은 87년 이후 지난 시대의 「역사」를 단죄하며 제몫 찾기에 날을 지새웠다.반면 일본의 유수한 기업은 『기술자에게는 연구 뿐』이라며 무인자동화 설비의 연구 및 개발에 매진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다.두나라 사이의 경제력 만큼이나 인식과 발상의 격차를 보여주는 것 같다.
  • 야 「쌀」 공세에 국회파행 “초읽기”

    ◎민주 이 대표 “장외투쟁 불변” 천명 이후/예산안 처리 싸고도 여·야 힘대결 태세/극적타협 없인 정국경색 장기화 될듯 「정국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여야가 그동안 수도없이 머리를 맞댔지만 묘수가 없다. ○곳곳에 충돌 변수를 새해예산안,추곡수매안,정치관계법협상에 진통을 거듭했던 여야는 이제 쌀시장개방문제라는 자신들이 주도할 수도 없는 국제적 현안까지 협상테이블에 올려 놓았다.안그래도 진통을 거듭하던 예산안등 정기국회의 현안들이 쌀시장개방문제라는 돌출변수와 맞물려 곳곳에 파행의 변수를 잉태한 것이다. 결국 정부여당은 강행처리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이를 준비중이며 야당은 실력저지및 농성전략을 수립하는 등 파행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정국을 불안하고 불투명하게 하는 요소는 이들 현안의 처리가 시간을 다툰다는데 있다.쌀시장개방여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는 UR협상은 12월 15일 끝나며,새해예산안과 추곡수매안은 하루남은 12월 2일이 법정시한이다.안기부법개정안등 정치관계법도 예산안과 병행처리한다는 것이 당초 여야의 양해사항이었다. 그러나 첫관문인 예산안처리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도 여야가 의견을 같이한 부분은 고작 정치특위의 정당법과 통신비밀보호법안 뿐이다. 오히려 여야는 30일을 시점으로 제갈길을 가겠다는 강경노선만을 확인하고 있어 국회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30일 국무위원들과의 조찬석상에서 『예산안은 법정시일내에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해야한다』면서 『이는 법을 지키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개혁적 차원의 일』이라고 못박았다.김종필민자당대표도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예산안의 법정시한내 처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고 민자당내에서는 이미 강행처리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30일부터 대기조를 편성해 예산안 강행처리에 대비한 실력저지에 나섰으며 본회의장과 예결위 농성도 불사할 태세를 갖췄다. ○선명성회복 호기로 이기택대표는 이날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최우선 현안인 쌀수입개방에 대한 정부의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을경우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고 초강경노선을 천명했으며 이미 일천만인 서명운동의 일환으로 소속의원들의 서명을 마쳤다.이대표는 쌀시장개방문제를 예산안처리와 굳이 연계하겠다고는 않았지만 이미 예결위의 예산안심의를 쌀시장개방문제에 대한 입장확인후로 지연시키고 있어 민주당은 일괄타결이 아니면 어느 한 현안에도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되어있다. 민주당이 이같이 초강경노선을 선택한 배경은 국민적인 최대관심사인 쌀시장개방문제로 잃었던 야당의 선명성을 되찾자는데 있다.또 정부여당을 궁지로 모는 정치적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정략적 기회로 십분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더욱이 당론수렴과정에서 수도없이 드러난 지도력문제나 분열상을 극복하는데는 당력을 결집한 초강경노선 만큼 효과적인게 없다는 부수적 효과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유증처리 불가피 저간의 사정으로 볼때 촉박한 일정을 뛰어넘는 여야간의 극적인 타협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결국 정기국회의 현안들은 여야의 명분싸움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가의분석이다. 그러나 결국 이 명분싸움이 현재 정쟁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여론을 감안한다면 여야는 다소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강행처리나 실력저지가 맞붙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연출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국회가 파행으로 막을 내릴 경우 정부여당은 대규모 당정개편등 후유증처리가 불가피 할 것이며 야당에서도 얻는 것없이 파행으로 끝난 책임을 국민으로부터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계적 해법에 기대 현재 민자당은 민주당이 타협적으로 나올 경우 예산안처리를 12월 6∼7일로 미루고 정치관계법에 대한 수정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내부적인 협상카드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민주당도 쌀시장개방문제는 여야가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국가적 현안이며 이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이 제시되면 나머지 현안에 대해서는 굳이 강경노선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또 정부의 쌀수입개방저지 입장천명→안기부법등의 국회협상→미타결 부분에 대한 여야영수회담 개최라는 단계적 해법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시한이 촉박한 현실로 미루어 볼때 현안들에 대한 민자당의 강박관념과 민주당의 현실을 외면한 당략적 감정을 어떻게 이성적인 협상으로 전환하느냐에 정국경색 타개의 열쇠가 숨어 있다고 하겠다.
  • 신왕오천축국전/고은지음(화제의 책)

    ◎인 불교성지 순례 부처 행적 추적 시인이자 소설가인 고은의 인도여행기.한때 승려였던 지은이의 작품에는 당연히 불교적 색채를 보이는 것이 많다.그런 불심을 가진 지은이가 불교의 발상지를 여행하면서 부처의 탄생에서 부터 입적에 이르기까지의 행적과 관련된 성지를 찾아다녔다. 지은이는 이 여행을 하며 『나의 소설 「화엄경」속의 어린구도자 선재의 편력을 떠올리면서 그 인도의 여기저기를 떠돌았다』고 밝히고 있다.여행한 곳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처음 설법을 한 사르나트,열반에 들어간 쿠시나가르등 불교 4대성지를 비롯,바라나시,아잔타,아그라등 과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의 카드만두등이다. 이 글은 물론 단순한 불교이야기가 아닌 종교와 철학등 폭넓은 사색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책에 실린 1백50여장의 사진은 불지사 김형균실장이 찍었다.고은 지음 동아출판사 올컬러 8천원.
  • 장엄한 다비불길… 큰법 남기고/성철스님 떠나시던날

    ◎해인사에 애도인파 15만/오늘 상오 사리 수습 【해인사=임시취재반】 『가고 오고 머무르심이 없는 그곳에 열반의 종소리가 울려옵니다』 한국 불교의 태고봉 성철큰스님의 가시는 길은 하늘마저 가을비를 촉촉히 뿌려 큰스님의 큰 법과 큰 덕을 아쉬워했다. 성철큰스님의 조계종 종단장이 거행된 10일 상오 경남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 일대에는 3천여 스님과 15만여명의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상오 11시 영결식에 이어 하오 2시20분 다비식으로 나뉘어 엄숙하게 진행됐다. ▷영결식◁ 이날 영결식은 「석가모니불」 독경이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상오8시 퇴설당에서 큰스님의 법구를 식장으로 운구하면서 시작,상오11시 전국 1천2백여 조계종 본·말사에서 일제히 다섯번씩 종을 울림과 동시에 개식됐다. 삼귀의와 영결법요에 이어 해인사 율주 일타스님의 큰스님 행장소개 순으로 진행된 영결식은 영결사·추도사·조사·헌화 및 분향 등 2시간동안 계속됐다. 이날 조사는 박종하중앙종회의장과 김종필 민자당대표·이기택 민주당대표·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권익현 국회정각회 회장·조기현 전국신도회장 등이 맡아 고인의 덕을 기렸다. 이어서 불교연합합창단이 추모가 「성철 큰스님 열반하시니」를 합창하는 동안 헌화 및 분향이 이어졌으며 혜암해인총림부방장의 문중대표 인사를 끝으로 인로왕번을 앞세운 장의행렬이 다비식장으로 향했다. ▷다비식◁ 영결식장에서 3㎞ 떨어진 연화대에서 거행된 다비식은 하오2시30분 큰스님 법구가 다비대에 안치되자 장례위원장 의현스님과 법전스님등 문도스님 대표들이 거화 및 하화의식을 거쳐 불을 붙이며 시작됐다. 다비장에는 비가 오는데도 5만여 신도들이 주위 산등성에 빽빽이 들어앉아 큰스님의 마지막 열반모습을 지켜봤다. 다비식은 밤새 진행되어 11일 상오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수습된 사리는 49재 후 대적광전에 임시 안치했다가 부도를 만들어 영구보존케 된다. 이날 행사에는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박찬종 신정당대표 등 정계인사 50여명과 타종단 대표,페드리스 스리랑카대사 등 주한 외교사절도 참석했다. □해인사=임시취재반 ▲문화부=나윤도기자 ▲전국부=남윤호기자 ▲사진부=유재림·황경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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