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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굽이마다 절경이구나… 흑산도야, 잘 있었구나

    굽이마다 절경이구나… 흑산도야, 잘 있었구나

    전남의 보물 같은 섬… 얼마 만이냐 지난 두 해 남짓, 섬에 들어가는 걸 꺼렸다. 물론 코로나19 때문이다. 옮는 것보다 옮길 것이 걱정됐다. 거리두기가 마침내 끝났다. 섬을 찾는 것에 대한 거리낌도 해소됐다. 이제 멀고 먼 섬으로 떠날 차례다. 너무 멀어 검게 보인다는 전남 신안의 흑산도, 붉은빛 감도는 기암들의 절창이 일품인 홍도를 묶어 돌아봤다. 흑산도는 육로 관광이 보편적이다. 이웃 섬 홍도가 해상 관광 위주인 것과 다소 다르다. 흑산도엔 25㎞ 남짓한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다. 1984년 착공해 우여곡절을 겪다 26년 만인 2010년에 완공됐다. 관광택시를 탈 경우 외부 세계와의 연결 고리인 예리항에서 진리, 사리 등 순으로 돌아보는 게 보편적이다. 물론 취향에 따라 반대 방향으로 돌 수도 있다. 다만 어느 방향으로 돌더라도 해넘이는 흑산도 최고 전망대인 상라봉에서 맞는 게 좋다.●청잣빛 바다·그림 같은 풍경 먼저 사리(沙里) 마을 쪽으로 간다. 주민들 표현으로는 모래미란 곳이다. 갯마을 풍광이 수려해 호사가들은 ‘흑산도의 소렌토’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소렌토를 가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곳이 모래미를 닮았다면 청잣빛 바다와 기암절벽, 노송 그리고 예쁜 집들이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을 게 분명하다. 사리엔 흑산도를 대표하는 명소 ‘복성재’가 있다.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조선 최고의 자연과학자 중 한 명인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신유박해(1801) 때 유배 생활을 하며 ‘현산어보’(玆山魚譜, 자산어보)를 집필했던 곳이다. 꽤 오래전 생면부지의 흑산도를 가슴 깊이 각인시킨 책을 만난 적이 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이었다. 고등학교 생물 교사였던 이태원이 ‘현산어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2002년부터 이듬해까지 내리 다섯 권이 간행됐다. 생물도감 같은 책이지만 어패류에 대한 해박한 설명과 정교한 생물들의 그림, 흑산도에 머물며 촬영한 사진 덕에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유배지서 ‘현산어보’ 지어낸 정약전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정약전의 위대한 유산을 ‘자산어보’라 부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대목이다. 그 이전에도 ‘현산어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왔지만 당시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玆山魚譜’의 독음이 재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저자의 논리는 이렇다. “나는 흑산으로 유배되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이 컴컴하여 두려우니 가족들이 편지에서 번번이 ‘玆山’이라 하였다. ‘玆’ 역시 검다는 말이다.” 정약전이 ‘玆山魚譜’ 서문에 밝힌 내용이다. 여기서 ‘玆’은 ‘자’로도, ‘현’으로도 읽힌다. 한데 ‘지금’, ‘여기’ 등의 뜻일 때는 ‘자’로 읽지만 ‘검다’의 뜻일 때는 玄(검을 현)이 두 개 겹친 ‘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한문학자들의 주장이다. 이태원은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유암총서’란 책에 “금년 겨울 현주(玄州)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라는 대목이 나온다. 글 말미에는 “현주서실(玄州書室)에서 글을 쓴다”며 글 쓴 장소도 밝혔다. 여기서 ‘현주’는 흑산도를 뜻한다. 책 제목에 나오는 ‘유암’은 저자 이강회의 호다. 이태원은 유암을 “다산의 제자인 이청의 친구이며, 다산과도 친밀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흑산도를 ‘玆山’이라 처음 표현한 이도 다산이고, 그의 제자 이청과도 친하게 지냈으니 유암이 흑산을 ‘현주’로 표현한 것은 다산이 흑산을 玆山이라 부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누리집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전남 강진 사람인 유암이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의 제자였다는 것이다. 이로 미뤄 본다면 유암이 스승의 발음에 따라 ‘玆山’을 ‘현산’이라 불렀을 개연성은 더 높아진다. 현재로선 ‘자산’인지, ‘현산’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장삼이사는 그저 흑산도가 얼마나 먼 절해고도였으면 ‘검고 검다’는 표현을 썼을까 헤아려 보는 정도로 충분하지 싶다. 다만 코로나 시국에도 지난해 개봉을 감행했던 영화 ‘자산어보’는 독음을 ‘자산’으로 분명히 했다. 전문가에게 자문했다고는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상 많은 이에게 익숙한 이름을 제목으로 쓸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유배자들 흔적 남겨놓은 문화공원 사실 영화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장창대’(변요한)란 인물이다. 정약전과 더불어 ‘현산어보’의 공동 저자나 다름없는 이다. 영화 ‘자산어보’가 보여 주려 했던 수평사회, 그러니까 양반과 평민이 공존하는 평등사회는 장창대가 있어야 완성된다. 한데 그의 흔적은 흑산도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정약전(설경구)의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그게 못내 아쉽다. 이제라도 정약전 동상 옆에 장창대의 동상을 함께 세워 그를 기려 보면 어떨까 싶다. 복성재 아래는 유배문화공원이다. 1148년 고려 의종 때의 정수개부터 1898년의 뇌물수수 죄인 김홍륙에 이르기까지 흑산도로 유배된 수많은 이를 기억하는 조형물들이 조성돼 있다. 사리는 돌담(등록문화재)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앞 해변에는 봄철 산란을 앞두고 숭어들이 파리떼처럼 몰려든다. 수백년 전 정약전도 이 장면을 보며 신기해했겠지. 멀고 먼 한양의 임금에게도 진상했다는 숭어 어란은 이런 천혜의 여건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상라봉 전망대는 흑산도 최고의 조망처다.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특히 저물녘 풍경이 빼어나다. 멀리 홍도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이 장쾌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열두 굽이 ‘용고개’를 휘돌아 오르는 맛도 일품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잎이라 했던가. 상라봉 일대를 뒤덮은 늙은 동백나무 잎들이 역광 아래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상라봉 정상의 봉수대까지 오르는 것도 좋겠다. 파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배낭기미 해수욕장, 죄인을 감금했던 옥섬 등 사방이 툭 터진 흑산도 일대 전경과 마주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이미자, 46년 만에 흑산도 찾아 노래 전망대 한편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다. ‘흑산도 아가씨’는 1966년 발표된 이미자의 노래다. 흑산도 예리항에 여객선이 닿을 때면 항구 전체에 이 노래가 울려 퍼질 정도로 흑산도를 대변하는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 한데 정작 섬 주민들의 가슴을 적셨던 이미자는 흑산도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까스로 2012년 그의 공연이 흑산도에서 열렸다. 노래가 발표된 지 무려 46년 만의 일이었다. 노래비 옆에 세운 이미자 핸드 프린팅은 공연 당시 조성한 것이다. 흑산도는 세계적인 ‘철새 휴게소’다. 동아시아와 대양주에 놓여진 ‘철새 고속도로’ 경로 중 한반도를 통과하는 철새들이 쉬어 가는 중간 기착지다. 국내에 기록된 560여종 가운데 400여종이 이 일대에서 관찰될 정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정약전이 물고기가 아니라 새에 관심이 많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현산조보’를 유산으로 받았을지도 모른다. 철새 관련 시설도 들어섰다. 신안철새전시관은 진리에서 열두 굽이 도로 가기 전에 있다. 흑산도는 물론 전 세계 다양한 새의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초입에선 법정스님 사진과 동박새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난데없는 법정의 출현에 얼떨떨하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법정의 출가 이야기 듣는 철새전시관 법정은 대학생이던 1952년에 친구들과 흑산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시된 사진은 출가 전 ‘대학생 박재철’이 흑산도 진리의 모래톱에서 친구들과 찍은 것이다. 사진 속 ‘박재철’의 손엔 동박새가 든 새장이 들려 있다. 당시 흑산도 옆 다물도에 살던 친구가 법정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그런데 사진보다 후일담이 더 의미심장하다. 당시 동행했던 친구의 말을 빌리면 법정은 목포로 돌아가자마자 새장 속의 새를 풀어 줬다고 한다. 그리고 세 해 뒤 ‘청년 박재철’도 세속을 박차고 보다 넓은 정신세계를 향해 날아올랐다.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말이다. 그가 바로 ‘무소유’로 법명을 날린 법정스님이다. 철새전시관에서 모퉁이 하나 돌면 새공예박물관이다. 야외 전시장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쇼나 새 조각이 전시됐다. 생경한 나라의 작품들이 이채롭긴 하지만 실제 흑산도 권역에서 발견되는 우리 철새들을 모티브로 삼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전시관 위에 있는 진리당은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공간이다. 당각시 전설이 깃든 각시당(처녀당), 해변 쪽의 용왕당 등으로 이뤄졌다. 각시당에서 용왕당까지 약 150m 구간에 성황림이 우거졌다. 귀신을 부른다는 초령목, 늙은 소나무, 신우대 등이 제법 깊은 숲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흑산도에는 볼만한 팽나무가 세 그루 있다. 흑산성당 옆의 팽나무 두 그루는 연리지다. 회색빛 둥치가 매우 독특하다. 무심사지 삼층석탑을 품고 선 팽나무도 있다. 이 나무는 수형도 좋지만 뿌리 부분을 봐야 한다. 뿌리가 옛 비석들을 휘감고 자라고 있다. 비석의 위치에 따라 둥치가 기묘하게 휘었는데 그 모습이 더 특이하다. 흑산성당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1958년 세워진 등록문화재다. 외형도 독특하고, 다양한 빛깔로 실내 곳곳을 비추는 스테인드글라스도 아름답다. 아울러 우리나라 형태의 지도바위, 유배 온 면암 최익현이 남긴 지장암 글귀 등의 볼거리들도 잊지 말고 찾아보는 게 좋겠다.●흑산도 찾았으면 홍도 함께 2박 3일 홍도는 흑산도의 연관 검색어 같은 곳이다. 관광객 대부분이 흑산도와 홍도를 묶어 2박 3일에 걸쳐 돌아본다. 이웃 섬이라고는 해도 흑산도에서 홍도까지는 쾌속선으로 30분을 더 달려야 한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흑산도의 여러 섬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천사(1004)섬’으로 알려진 신안의 섬 중에서도 늘 수위에 오를 만큼 빼어난 경치로 소문났다. 섬은 코로나가 엄습한 2년 동안 텅 비었었다. 관광객이 찾지 않아서다. 흑산도도 그랬지만 관광객 비중이 압도적인 홍도는 특히 충격이 컸다. 그와 관련한 애처로운 이야기 한 자락. 2020년 4월 초에 대구의 관광객이 홍도를 찾았다. 당시 대구는 코로나 확진자의 폭발적 증가로 정부가 선포한 ‘특별재난지역’이었다. 외지에서 대구로 가는 것도, 대구 사람들이 외지를 방문하는 것도 극도로 꺼릴 때였다. 소식을 접한 최성진(52) 홍도 1구 이장이 서둘러 여객선에 올랐다. 이들의 입도를 만류하기 위해서였다. 멀리 대구에서 온 관광객은 결국 홍도에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비록 공포에 짓눌려 벌인 일이었다 해도, 자기 마을을 찾은 외지인을 돌려보낸 것에 대해 주민들의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사과 전화는 물론이고 미역, 멸치 등 홍도에서 나는 갯것들을 선별해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구 관광객은 아직 홍도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홍도 관광 하면 대개 유람선 관광을 백미로 꼽는다. 홍도 바다는 기암괴석들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홍도 볼거리의 으뜸이라는 1경 남문바위부터 무려 33경에 이르는 기암들과 마주할 수 있다. 안내원의 해학적인 설명을 들으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보면 2시간 남짓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유람선은 남문바위와 슬픈여바위에서 잠깐 정박한다.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취지다. 슬픈여바위엔 생선회를 파는 어선이 늘 대기하고 있다. 한 접시 3만원인데 경험 삼아 맛볼 만하다.●‘1년 탈 없이’ 염원 담은 깃대봉 365m 주민들의 삶을 엿보려면 역시 땅을 밟고 다녀야 한다. 덜 알려졌을 뿐 홍도 육로 관광도 해상 관광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홍도는 남북으로 7㎞ 정도 길쭉하게 뻗은 섬이다. 섬에 도로도, 차도 없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차가 전부다. 섬 가운데에 깃대봉(365m)이 높이 솟아 걷기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짧은 코스로는 1구 바로 옆 죽항당산을 다녀올 만하다.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당산이다. 전체 코스는 1㎞ 정도다. 죽항당산엔 동백나무가 많다. 300년은 족히 살았다는 노거수들이다. 산자락 좁은 길이 늙은 동백에서 떨어진 붉은 꽃들로 낭자하다. 당산 위엔 일출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지중해의 항구 마을을 보는 듯한 이국적인 풍경과 기암절벽들이 절경을 펼쳐 낸다. 좀더 걷고 싶다면 섬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홍도 1구에서 깃대봉을 넘어 홍도 2구 마을까지 이어지는 4㎞ 남짓한 산길이다. 깃대봉 능선 아래로 목재 데크 산책로도 있다. 해안 절벽 사이로 난 길은 완만하게 능선을 타고 오르다 깃대봉으로 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여기서 문제 하나. 홍도 깃대봉의 높이는 얼마일까. 정상 표지석엔 365m, 네이버 지도엔 360.5m, 다음 지도엔 367.8m로 표기돼 있다. 제각각이다. 최 이장의 말에 힌트가 있다. 그는 주민들이 1년에 한 번은 꼭 깃대봉을 오른다고 했다. 일 년 365일 동안 탈 없이 지나게 해 달라는 바람을 담아 산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민들의 믿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365m가 정답인 셈이다. 홍도 2구는 1구보다 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마을이다. 하지만 1구가 관광 중심지로 개발되면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상 적막한 마을이 됐다. 마을 옆엔 수형이 빼어난 소나무들이 있다. 바람에 시달리며 자라느라 이리저리 굽고 휘었다. 이 모습이 독특해 소나무 작품으로 유명한 사진작가가 촬영을 위해 2구 마을에 머물기도 했단다. 조붓한 솔숲 길을 오르면 곧 홍도등대다. 1931년 처음 불을 밝힌 등대다. 섬 끝자락에 선 말간 등대의 모습이 아름답다. 등대가 굽어보고 있는 풍경도 빼어나다.●이장, 돌려보낸 관광객 찾아 대구행 홍도는 이름처럼 붉은빛 감도는 해안 절벽이 일품인 섬이다. 특히 저물녘 햇살을 받아 절벽이 붉게 물들 때가 진수다. 할 수만 있다면, 저물녘에 유람선을 타길 권한다. 홍도를 나오던 날 쾌속선에 홍도 1구 최 이장이 함께 탔다. 그가 가는 곳은 대구였다. 코로나 때 입도하지 못했던 관광객 집에 일이 생겨 위로차 찾아가는 길이란다. 그 미안해하는 마음과 애틋한 정이 보통이 아니다. 언젠가 대구 사람들이 홍도를 방문하는 날도 오겠지. 홍도 사람들은 아마 구석구석 극진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그때 그들이 함께 보고 나누는 풍경들은 얼마나 새롭고 아름다울까. ■ 여행수첩 -흑산도까지는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2시간, 홍도는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도초도를 경유해 가는데, 도초도 이후부터 파도가 높아지며 멀미를 하는 경우가 많다. -홍도 1구에서 2구까지는 여객선 시간에 맞춰 도선이 무료로 오간다. 하지만 2구 마을 주민이 없을 경우 운항하지 않는다. 마을 주민의 배를 이용할 경우 최소 4만원이다. 1구에서 깃대봉을 넘어 2구까지 걸어서 다녀오려면 3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다. -흑산도 SUV 관광택시는 4인 기준 6만원이다. 2시간 정도 섬 곳곳을 돈다. 일반적인 택시 기능도 한다. -두 섬 모두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있다. 비수기인 요즘은 여유가 있지만 성수기 때는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흑산도와 홍도는 5월이 지나야 겨울이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일교차가 심하다. 다소 두툼한 옷을 챙겨 가는 게 좋다. -말린 홍어를 각종 양념과 버무려 내놓는 홍어무침이 별미다. 다만 양이 적어 다소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다. 생선회는 전부 자연산이다. 계절에 따라 종류도 바뀌는데, 수온이 찬 요즘은 우럭과 노래미를 맛볼 수 있다.
  • 주식투자 함께한 의사 살해·시신 유기… 부산 40대 여성 구속

    주식투자 함께한 의사 살해·시신 유기… 부산 40대 여성 구속

    부산 금정경찰서는 주식투자를 함께한 남성 동업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40대 여성 A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6일 주식투자를 하면서 알게 된 50대 남성 의사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경남 양산에 있는 지인 밭에 묻어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동업 관계였던 두 사람이 최근 억대 채권·채무 문제로 크게 다툰 뒤 이 같은 범행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B씨는 사건 발생 당일인 오후 8시쯤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고, 폐쇄회로(CC) TV 등을 분석해 추적에 나선 경찰이 지난 16일 양산의 한 밭에서 B씨가 숨진 채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A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하고 긴급체포했다. A씨는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가 경찰 추궁이 이어지자 자백했다. A씨는 범행 전에 지인에게 “좋은 나무를 가져 오겠으니 땅을 파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지인이 파놓은 구덩이에 살해 당일 시신을 묻은 뒤 “나무가 사정상 못 내려가니 다시 구덩이를 메우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자세한 범행 수법과 동기를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 “동작 장승배기 일대 행정·문화중심지로 바뀔 것”

    “동작 장승배기 일대 행정·문화중심지로 바뀔 것”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사람 사는 세상 ‘동작구 편’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남은 임기도 치열하고 간절한 시간으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민선 6·7기를 지낸 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은 지난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8년 구정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구청장은 “지방자치가 28년째를 맞이하지만, 주민들께서 지방정부의 힘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매듭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대나무가 하늘 높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간에 지탱할 수 있는 매듭이 있었던 까닭이듯이 그간의 노력이 더 훌륭한 발전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매듭을 완성하겠다”는 각오도 내보였다. 이 구청장의 대표 사업으로는 단연 ‘장승배기 종합행정타운 건립’이 꼽힌다.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이 사업은 지난해 10월 본공사에 착수해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신청사는 전국 최초로 상인들과 공생하고자 관상 복합청사 형태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종합행정타운 내에 특별임대상가를 만들고, 기존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낮춰 상가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청장은 “장승배기 일대는 구청, 보건소, 시설관리공단 등이 한데 모인 행정·문화중심지로 탈바꿈할 것”이라며 “지역균형 발전의 첫 번째 연결고리”라고 자신했다. 버려진 야산이었다가 한강 대표 명소로 재탄생한 용양봉저정 관련 사업에도 애정을 드러냈다. 용양봉저정은 조선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참배하는 길에 쉬었던 행궁으로, 구는 행궁과 한강, 사육신공원, 수산시장 등 개별 자원을 묶어 용양봉저정 일대 관광명소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이 사업이 완료되면 노량진 일대를 주축으로 여의도와 용산을 잇는 문화·관광 벨트가 구축돼 동작구 미래 먹거리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방동 근린공원 내 방치돼 온 지하벙커를 활용한 청소년 창의·혁신 체험 공간 조성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 구청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 맞춰 정보통신기술(ICT) 스포츠존, 로봇 체험 교실,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 프로그램 등 미래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벚나무와의 40년을 기억하마… 제성마을 할머니들의 슬픈 위로

    벚나무와의 40년을 기억하마… 제성마을 할머니들의 슬픈 위로

    17일 오전 10시도 되기 전에 제주공항 앞 도두2동 사수항에 제성마을 할머니들이 모여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낭싱그레가게2가 햇볕이 뜨거워 챙모자를 깊게 눌러 쓴 원주민 할머니들이 모인 가운데 ‘몰래물 혼디거념(같이 돌봐주다)길’ 행사를 열기 직전이었다. 대책위는 제주시가 지난 3월 15일 도로확장 공사를 하면서 가로수로 심어진 40년 된 왕벚나무 12그루를 주민들과 사전 상의없이 싹뚝 베어내는 바람에 할머니들이 함께 했던 삶마저 도려낸 듯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해당 벚나무는 1970년대 제주시가 마을에 제공해 주민들이 직접 마을 초입에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면신(65·前제성마을회장) 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이 자르지 말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는데 새로 온 시청 담당자가 마을회장(임기만료)의 빈 틈을 이용해 공사를 강행했다”며 “마을 주민들을 위한 세심한 행정을 펼쳐야 할 행정기관이 행정편의적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는 제성마을 입구 벚나무를 자르기 전 마을통장 등과 협의를 했다는 입장이다. 권진옥(88) 할머니는 “벚나무가 잘려 나간 후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다”며 “공항이 생기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허허벌판으로 강제 이주시키더니 이번에는 마을의 역사를 상징하고 애환이 서린 벚나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내도 되는 거냐”고 분노했다.실제 몰래물(모래나 자갈이 있는 곳에 솟는 물·沙水) 마을은 1941년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이 생기면서 지도에서 사라졌다. 주민들은 옆 마을로 터를 옮겨 새몰래물(신사수동)을 세웠으나, 40여 년 뒤인 1979년 제주공항 확장공사로 인해 다시 이주해야 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것도 모자라 남아있는 주민들은 1987년 도두 하수종말처리장이 생겨나면서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주민들은 신성마을, 명주마을, 동성마을, 제성마을 등 4개 마을로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날 몰래물 마을이었던 홀천에서 해녀생활을 했다는 이순실(96)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옛 몰래물 이야기를 꺼내며 “1980년대 연동, 노형동 등 신제주가 생기면서 거기 사는 주민들이 흘려보낸 똥물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벚꽃 심을 때 현장을 지켜본 이웃 할망(할머니)은 지금 몸져 누웠다. 낭(나무) 자르면 목 매 죽겠다며 말려도 묵살했다”고 슬퍼했다. 대책위는 이날 사수항 인근에 있는 ‘고랭이당’에서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생명 돌봄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으며 몰래물 기억의 문을 열고 생명 돌봄을 기원하는 퍼포먼스와 시낭송회도 가졌다. 행사에 참석한 부순정(녹색당) 도지사후보는 “지난 14일 시에 공문을 보내 공식 면담을 요청했는데 다음주 중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면서 “비자림로 삼나무들이 잘려 나갈 때도 느꼈지만 행정기관이 과거 권위주의적인 행정처리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통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목련의 이름은/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목련의 이름은/식물세밀화가

    이맘때면 처음 그림을 배우던 때가 떠오른다. 수업시간 내가 처음 그렸던 식물은 목련이었다. 내내 연필로 선을 긋고 점을 찍는 연습을 하던 내게 선생님은 식물 사진을 한 장 주며 지금부터 이 사진 속 식물을 그려 보라고 하셨다. 사진 속에는 자주색 꽃잎의 목련이 있었다. 꽃잎 바깥은 자주색이지만 안쪽은 흰색이었던 것으로 보아 정확히는 자주목련이었던 것 같다. 목련의 매끈한 꽃잎과 부드러운 겨울눈의 솜털을 묘사하느라 애쓰던 때가 벌써 십여 년 전이다. 내 식물 그림의 시작은 자주목련이었지만 그간 백목련과 목련, 함박꽃나무…. 목련속 식물만 해도 벌써 세 종을 그릴만큼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또다시 목련 꽃이 피는 계절이 됐고 문득 창밖을 보다가 바람에 휘날리는 백목련 흰 꽃잎을 보면서 어릴 적 열정적으로 그림을 배우러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학부를 졸업하고 들어간 국립수목원에는 무척 특별한 목련이 있었다. 육림호 앞 거대한 수고의 자주목련이다. 언제 심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목원의 다른 목련보다, 또 다른 지역의 것보다 유난히 꽃이 늦게 피었다. 나는 이 자주목련에 꽃이 피면 봄의 한가운데에 다다랐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이 나무는 유난히 북쪽 가지만 발달했다. 꽃도 북쪽을 향해 피었다. 과거 목련을 북향화라 불렀다고도 하니 꽃이 북쪽을 향해 피는 것이 이 자주목련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목련 꽃은 오래전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피어난다 해서 충절의 의미를 가진 식물로 통했다고 한다. 근처 덩굴식물원에는 이 자주목련 못지않은 거대한 목련이 또 있다. 흔히 후박나무와 이름을 혼동하기도 하는 일본목련이다. 키가 어찌나 큰지 나무가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아 한창때는 꽃을 볼 수 없다가도 꽃이 질 때 즈음 꽃잎이 땅에 떨어져서야 뒤늦게 개화를 눈치챈다. 늦가을, 단풍잎과 열매가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이 일본목련 주변 땅에는 열매에서 나온 주황색 씨앗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목련, 백목련, 자목련, 일본목련, 태산목…. 우리는 이들을 모두 목련이라 부른다. 목련은 목련속 가족 이름이기도 하지만 식물 한 종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도시에서 목련이라고 부르는 개체 대부분은 백목련이다. 백목련은 중국 원산의 식물인 반면 목련은 우리나라 제주도 숲에 분포하는 귀한 종이다. 백목련과 목련은 둘 다 꽃잎이 희어 언뜻 같은 종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목련은 꽃잎이 6장이며 꽃잎과 꽃받침 길이가 비슷하고, 중요한 것은 꽃잎 바깥 아래에 연한 자주색 줄이 있다. 백목련은 꽃잎이 6장에서 9장이며, 꽃잎이 꽃받침보다 크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도시에서 목련을 잘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둘을 식별할 일조차 많지 않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백목련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목련이라고도 하는 함박꽃나무는 화단뿐만 아니라 우리 산에서도 볼 수 있는 자생식물이며, 요즘 공원에는 꽃이 작은 애기목련과 별목련 종류도 많이 심는다. 꽃이 자주색인 목련도 있다. 꽃잎 안과 겉이 모두 진한 자주색에 만개해도 꽃이 완전히 벌어지지 않는 자목련과 꽃잎 바깥쪽만 자주색에 안쪽은 흰색이며, 꽃이 활짝 피는 자주목련이 있다.목련이 피는 계절이면 종종 나는 충남 태안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에 가곤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목련속 식물이 식재된 곳이다. 이곳의 목련속 식물들은 다양한 형태만큼 개화 시기도 달라서, 모두 동시에 피는 것이 아니라 4월 내내 순차적으로 고루 꽃피우는 목련을 볼 수 있다. 특히 정문 바로 앞의 목련 ‘불칸’이 천리포수목원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름처럼 자주색 꽃색이 강렬하다. 지난해 천리포수목원에서 목련을 보던 친구가 갑자기 “목련 꽃을 자세히 보니까 꼭 연꽃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무 목, 연꽃 연.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란 의미의 목련은 식물학자들에게도 유난히 귀한 연구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피자식물 중 목련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이라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목련이 아닌 암보렐라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피자식물임이 증명됐다. 초봄에는 유독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이 꽃을 많이 피운다. 개나리, 진달래, 매실나무, 왕벚나무 그리고 목련….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목련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지 못했다. 올봄, 목련 각자의 이름을 불러 주는 건 어떨까?
  • 고의였나?… 서귀포 고근산오름 산불 낸 50대 입건

    고의였나?… 서귀포 고근산오름 산불 낸 50대 입건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단장 고창경)은 서귀포시 서호동 고근산오름 인근 임야에 산불을 낸 50대 피의자 A씨를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대형산불 특별대책기간인 지난 3월 8일 오전 11시 40분쯤 인적이 드문 서호동 소재 임야에 들어가 담배를 피운 후 버린 담배꽁초에서 불씨가 발화돼 산불로 번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화재로 산림 2280㎡ 내 해송 80여 그루 등이 피해를 입었으며, 정확한 산림 피해액은 조사 중이다. 화재 현장은 남측 500m에 고근산, 북동쪽 2km에 서귀포 치유의 숲이 위치하고, 산불 확산 당시 풍속이 초속 2.4m로 다소 강한 바람이 불었다. 더욱이 나무가 건조한 상태라 해송의 송진 등으로 인근 산림으로 불이 확산돼 자칫하다간 더 큰 화재로 이어질 뻔 했다. 다행히 인근 주민의 초기 신고와 소방 및 시청 등 관련기관의 발빠른 대응으로 40여 분만에 완전 진화할 수 있었다. 서귀포 자치경찰대는 그간 현장에서 습득한 휴대폰 및 이동경로 CCTV, 탐문수사를 통해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해 수사를 진행해왔다.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고의로 산불을 내면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실수로 산불을 내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특히 산림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라이터 등 화기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3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전용식 서귀포자치경찰대장은 “발화추정 지점에 폐(廢)페인트 용기와 신나 등 인화물질이 발견됨에 따라 고의성 여부를 추가 조사해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벌목하던 50대 넘어진 소나무에 받혀 숨져...중대재해법 위반 조사

    벌목하던 50대 넘어진 소나무에 받혀 숨져...중대재해법 위반 조사

    8일 오후 2시쯤 경남 사천시 사남면 한 마을 인근 야산에서 벌목작업을 하던 A(50대)씨가 전기톱에 잘려 넘어지는 소나무에 부딪혀 숨졌다.경찰에 따르면 일용직 노동자인 A씨는 당시 일행들과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위해 벌목작업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A씨가 자신이 전기톱으로 자른 소나무가 넘어지면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소나무에 받힌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A씨가 소속된 원청은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직후 작업 중지 조치를 하고 원청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 과수 주산지, 화상병 예방 위해 총력 방제에 나서

    과수 주산지, 화상병 예방 위해 총력 방제에 나서

    과수 주산지 자치단체와 농가들이 ‘과수 구제역’이라고 불리는 과수 화상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총력방제에 나섰다. 과수 화상병은 주로 사과, 배나무 등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세균병의 일종으로 5∼6월 개화기에 감염 위험이 크고 작업자와 도구, 곤충 등에 의해 확산하기 쉽다. 사과나무나 배나무가 마치 불에 타 화상을 입은 둣 검게 그을린 증상을 보이다가 나무 전체가 말라 죽는다. 현재까지 치료제가 없는 고위험 식물검역병으로 사전방제가 유일한 예방 수단이다. 7일 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 안동과 영주에서 화상병이 발생해 12농가 5.98ha에서 피해가 났으며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등에서 모두 618농가가 288.9ha의 피해를 봤다. 이에 따라 경북도와 도내 22개 시·군은 올해 예산 137억원(국비 및 시군비 각 45억 6000만원, 도비 46억원)을 투입해 도내 3만 3000여 과수농가에 화상병 전용약제를 구입해 공급했다. 지원 약제는 동제와 석회보르도액, 항생제, 미생물제, 생장조절제 등이다. 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올해부터 전국 모든 사과·배 농가에서 개화 전 1회, 개화기에 2회씩 각각 의무적으로 화상병을 방제하도록 지침이 변경됐지만 경북은 도비 46억원을 추가 확보해 4회 방제하기로 했다”면서 “전국 사과 재배면적의 60%(2만 1000㏊)를 차지하는 경북에서 화상병을 막지 못하면 막대한 지역의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사과재배 농가의 생존이 위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30억원을 투입해 방제약제를 공급하는 등 방제에 힘을 쏟고 있다. 도와 시군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 까지 도내 사과, 배 과수원 1513㏊를 대상으로 궤양 제거 등 화상병 예방을 위해 정밀예찰을 진행하고 집중 홍보 기간을 운영했다. 충북 충주시도 올들어 과수화상병 예방을 위해 과원 환경개선용 미생물제를 지역 모든 사과·배 농가에 확대 공급했다. 시는 지난달 미생물제 140t을 과수화상병 발생 위험지역(350ha)에 속한 과원에 우선 공급했으며, 이달 360t을 추가 확보해 나머지 과원에도 공급한다. 과원 환경개선에 쓰이는 주요 미생물은 바실러스균(고초균)과 EM균으로 볏짚, 쌀겨, 소맥피, 당밀, 숯가루를 혼합·배양해 농가에 공급한다. 이 미생물제를 과원 토양에 뿌려주면 과수나무의 생육 여건을 개선하고 과수화상병 등 유해균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 “세계 암호화폐 억만장자” 선정된 한국인

    “세계 암호화폐 억만장자” 선정된 한국인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암호화폐 억만장자 20인 명단에 한국인 2명이 이름을 올렸다. 두나무 창업자인 송치형 회장과 김형년 부회장이다. 포브스는 5일(현지시간) ‘2022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억만장자’를 선정해 보도했다. 1위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설립자 창펑 자오(Changpeng Zhao)가 차지했다. 그의 자산은 무려 650억 달러(약 79조원)로 추정됐다. 송치형 회장은 자산가치 37억 달러(약 4조5000억원)으로 8위에 랭크됐다. 송 회장이 창업한 두나무는 국내 대표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로 알려져 있다. 포브스는 “송 회장은 170억 달러(약 21조원) 가치에 달하는 업비트의 모회사 두나무 지분 4분의1(약 4조5000억원)을 소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170억 달러라는 업비트의 가치는 두나무가 지난해 11월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의 투자를 받을 때 평가 받은 기업가치를 근거로 한 것이다.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도 자산가치가 19억달러(약 2조3000억원)로 평가받으며 암호화폐 억만장자 16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 부회장은 2012년 송 회장과 두나무를 공동창업했으며, 회사 지분 약 13%를 가지고 있다. 한편 암호화폐 억만장자 리스트에는 캐나다 국적인 창평 자오와 한국인인 송 회장, 김 부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인이 랭크됐다. ▲2위 샘 뱅크만 프라이드(240억달러, FTX 설립자) ▲3위 브라이언 암스트롱(66억달러, 코인베이스 설립자) ▲4위 게리 왕(59억달러, FTX 공동창업자) ▲5위 크리스 라슨(43억달러, 리플 설립자) ▲6위 카메론 윙클보스·타일러 윙클보스 형제(40억달러, 제미니 설립자) ▲9위 배리 실버(32억원, 디지털커런시그룹 설립자) ▲10위 제드 맥케일럽(25억달러, 스텔라 설립자) 등이다.
  • 사유·명상하는 10만평 수목원… 관람객 80%가 수도권 20~30대[윤창수 기자의 지방을 살리는 사람들]

    사유·명상하는 10만평 수목원… 관람객 80%가 수도권 20~30대[윤창수 기자의 지방을 살리는 사람들]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뜻을 지닌 사유원은 10만평의 대지에 조성된 수목원이다. 지난해 9월 사전예약제로 문을 열어 하루 140명의 입장객만 받고 있는데, 개장 첫날부터 예약 경쟁이 치열했다. 3시간 관람에 입장료가 5만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식사까지 합해 사유원에서 하루 10만~20만원을 쓰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日 팔려가는 모과나무 안타까워 시작 산으로만 둘러싸인 소담스런 언덕에 인상 깊은 장소를 만든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승효상 이로재 건축사무소 대표와 포르투갈의 알바로 시자 등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 건축상을 두 차례나 받은 시자는 ‘건축의 시인’이라 불린다. 풍경의 일부가 되는 그의 건축물을 소개하고자 CNN 여행 채널에서 사유원이 문을 열기도 전에 취재 의뢰가 왔을 정도다. 승 대표는 “사유원의 모든 건축물을 땅으로 집어넣거나 숨겨서 수목원의 배경처럼 만들었다”면서 “새들의 수도원과 물탱크에 조성한 전망대만 드러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승 대표는 생태 화장실과 스마트 가로등, 벤치까지 사유원의 대부분 시설을 설계했다. 새들의 수도원은 맨 위층에 새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달았지만 의심 많은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 아직은 새가 깃들이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사유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의 작품은 물과 돌이 삶의 의미를 묻는 명정이란 공간이다. 물이 똑똑 흘러내리는 벽을 지나면 붉은색의 벽이 이국적인 풍광을 낳는다. 건축가는 이곳을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사람처럼 묵상하는 장소로 설계했다. 사유원을 찾는 관람객의 80% 이상은 수도권에서 온 20~30대들인데 이들은 명정에서 인생 최고의 사진인 ‘인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사진은 최고의 홍보 수단인 셈이다. 비싼 대관료에도 패션 화보의 촬영장으로 인기가 높다. 승 대표는 야외 공연과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이곳을 만들었지만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공간을 즐기고 있다. 좌식 양변기는 없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화장실과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사유의 공간을 맘껏 받아들이는 것이다.사유원이란 이름은 설립자인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과 25년 지기인 승 대표의 교감 속에 지어졌다. 승 대표는 자신보다 여섯 살이 많은 유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아 10년 동안 만나지 않다가 그의 대구 집을 설계하면서 다시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일반적인 수목원이 아니라 사유하고 명상하는 수목원을 짓자는 승 대표의 제의에 그 자리에서 유 회장이 사유원이란 이름을 내놨다. 태창철강은 대구에 있는 기업으로, 유 회장은 일본에 팔려 가는 모과나무가 안타까워 땅을 사고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40년간 나무를 모아 사유원을 일군 유 회장은 일본으로부터 나무를 지켜 낸 곳으로만 수목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유원에 있는 6개의 생태 화장실에 다불유시(多不有時·WC) 같은 이름을 직접 붙일 정도로 지극한 애정을 쏟았다. 마스터플랜처럼 완벽한 계획 없이 조성돼 아직도 미완성인 수목원을 지금도 조금씩 손수 고쳐 나가고 있다. ●수억원짜리 소나무 곳곳에 자태 뽐내 수백년 된 모과나무는 풍설기천년이란 이름의 언덕에 108그루가 자리잡고 있다. 나무는 매년 4t의 모과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로 사유원 입구에서 거대한 저수지와 마주보고 있는 카페 몽몽마방의 몽몽에이드를 만들어 팔고, 태창철강 직원에게도 나눠 준다. 모과나무뿐 아니라 재선충병을 이겨 낸 한 그루당 수천, 수억원을 호가하는 한국형 소나무도 사유원 곳곳에서 굽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카페 자리에는 승 대표가 설계한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빈민촌인 달동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세상의 끝에 있는 수도원에서 건축의 이상향을 보는 이 건축가는 사유원의 호텔을 마치 수도원처럼 설계했다. 50개의 호텔 객실에는 텔레비전도 없이 작은 싱글침대 하나만 들여놔 계절마다 풍경이 다른 수목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승 대표의 바람과 달리 비용 문제 등 여러 사정으로 아직 착공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명성은 1966년 포르투갈 해변의 암석 위에 세워져 바다와 하나가 된 듯한 팔메이라 수영장으로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2006년 안양예술공원에 위치한 안양파빌리온을 처음 설계했고, 이 건물은 아시아에 최초로 들어선 시자의 작품이기도 하다. 사유원 방문객은 시자가 설계한 건물인 소요헌에서 땅과 하나가 된 건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소요헌은 긴 상자 같은 두 개의 구조물을 와이(Y) 자 모양으로 연결했을 뿐 장식이 없는 고요한 공간이다. 어두운 입구를 지나 빛과 함께 마주한 자연은 사유원을 찾은 이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시자의 건축 작품을 보려고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여행객이 개장 전에 무작정 사유원을 찾은 일도 있었다. ●서대구 기차역 생겨 교통 더 편리해져 군위군은 소보면에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이 들어서게 되면서 대구시로 편입하는 과정에 있다. 지역 간 합의로 행정구역 통합이 이뤄지는 첫 사례가 될 예정이지만 국민의힘 소속 경북 지역구의 일부 의원이 반대하고 있다. 군위군에 있는 사유원이 대구시로 편입되면 그 가치도 10배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별다른 관광 자원이 없는 군위에서 야심 차게 만든 삼국유사테마파크는 코로나19 기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유원은 예약이 꽉 찼다. 지난달 31일 서대구 기차역이 개통되면서 사유원으로 가는 교통은 더 편해졌다. 규모 면으로 따지면 국내 다섯 번째 정도지만 민간에서 조성한 수목원으로는 경기 양평의 세미원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 경북도와 대구시 등 지자체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유원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다. 대구 수성구청은 구청장 주도로 전체 공무원이 사유원을 관람했으며, 경북도는 도로 개설 등에 도움을 크게 줬다. 승 대표는 사유원을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일상의 경계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에너지를 얻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반드시 직접 가 보고 이해해야만 하는 건축은 지역 가치를 한없이 높이는 작업이며, 좋은 건축을 통해 지방이 살아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돈 많은 기업가나 생각 없는 지자체장이 외국의 건축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땅에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은 장소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생명력이 소멸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는 땅에 대한 이해와 주변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건축이 아니라 공산품을 낳았다고 했다. 그는 “사유원은 존재 자체로 군위란 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자랑스러운 장소”라며 “사유원에서 건축은 중요하지 않으니 나무를 흘깃 보지 말고 대화하도록 노력하라”고 귀띔했다.
  • 굽이굽이… 너만의 이야기가 돋았다

    굽이굽이… 너만의 이야기가 돋았다

    경남 창녕에 아름다운 옛길이 있다. 꽃가람을 따라 걷는 ‘남지개비리길’이다. 명색이 국가 문화재(명승)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길에 깃든 옛이야기를 곱씹으며 걷는 맛이 제법 웅숭깊다. 봄의 낙동강은 예쁘다. 남지개비리길 입구까지 5㎞ 남짓, 10리가 넘는 강변이 죄다 벚꽃이다. 둑방길 아래 둔치에선 노란 유채꽃이 화사하게 제 자태를 드러내는 중이다. 꽃이 있는 강을 두고 선조들은 ‘꽃가람’이라 표현했다지. 이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장면이다.●산 절벽 강가 벼랑에 난 ‘꽃가람’길 남지개비리길은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의 마분산(馬墳山·180m) 바위 절벽에 난 벼랑길을 일컫는다. 용산리 용산마을에서 신전리 영아지마을까지 편도 약 3㎞ 거리다. 원점 회귀하지 않고 마분산 등산로로 우회해 돌아올 경우 왕복 6.4㎞ 정도 된다. 이름은 ‘강가(개) 벼랑(비리)에 난 길’이라는 뜻이다. 현지 사투리를 그대로 썼다. ‘개가 다닌 벼랑’이라는 견해도 있다. 모성 가득한 어미 개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오가던 벼랑이라는 내용인데, 개연성은 다소 떨어져 보인다. 오래전엔 소금과 젓갈을 등에 진 등짐장수가 이 길을 오갔고, 주민들이 장을 보러 갈 때나 남지읍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등굣길로 쓰기도 했다. 대동여지도 등 조선시대 고지도와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옛길 경로가 기록됐을 만큼 유서가 깊다. 지난해 말 명승으로 공식 지정됐다. ●임진왜란 승전지·6·25 최후의 전선 들머리인 남지수변 억새전망대 앞은 남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이다. 이 구간만 따로 ‘강이 갈라진다’는 뜻의 기음강(岐音江) 혹은 기강(岐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음강은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와 의병들이 왜선을 격파하며 첫 승을 거뒀던 곳이다. 6·25전쟁 때는 국군이 낙동강 최후 저지선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들머리에서 용산양수장까지 1㎞ 정도는 평탄한 길이다. 낙동강을 눈높이에서 보며 걸을 수 있다. 길 양옆으로 수양벚꽃이 늘어서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도 그만이다. 다만 이 구간에 사유지가 몇 곳 있어 차량이 오가는 것이 흠이다. 실질적인 개비리길은 용산양수장을 지나 곽재우 장군의 고사가 전하는 ‘홍의장군 붉은 돌 신발’ 어름에서 시작된다. ●곽재우 애마의 이야기 깃든 마분산 개비리길은 산과 강을 거스르지 않고 난 길이다. 강물이 산을 안으면 같이 돌고, 휘어지면 같이 물러나 걷는다. 강 너머 마루금을 좁힌 산들과 너른 낙동강의 품도 시원하다. 벼랑 위의 마분산은 ‘말 무덤’을 뜻한다. 곽재우 장군이 자신의 애마에 벌통을 달아 적진에 뛰어들게 한 뒤 왜적이 놀라 허둥댈 때 기습해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 와중에 말이 죽고 말았다. 의병의 시신과 말을 수습해 산 정상에 묻은 이후 마분산으로 불리게 됐다. 마분산에는 줄기가 여럿인 소나무가 많다. 이를 마분송이라고 부른다. 곽재우 장군은 마분송에 옷을 입혀 의병 수를 많아 보이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길 곳곳에 옛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벼슬아치의 탕건에 장식된 ‘옥관자 바위’, ‘벼슬길에 오른 층층나무’,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여양진씨 감나무 시집보내기’, ‘영험한 팽나무 연리목’ 등 하나하나 읽으며 걷는 맛이 일품이다. 이 길이 문화재 반열에 오르는 데엔 이런 풍성한 역사 자료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풍성한 역사 이야기로 명승 반열 남지개비리길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진입로 주변의 강변길 전체가 벚꽃이다. 제방 아래 둔치에는 남지유채꽃 단지가 조성됐다. 무려 110만㎡(약 34만평)가 노란 유채꽃이다. 한반도 튤립정원, 태극기 정원 등 다양한 포토존도 갖췄다. 코로나19 탓에 올해도 유채꽃 축제는 취소됐지만 꽃밭 진입을 막지는 않는다. 낙동강을 가로질러 놓인 남지철교는 등록문화재다. 1933년 완공된 근대식 교량으로 형태가 매우 유려하다. 6·25전쟁 때 중앙 부분 25m가 폭파됐다가 1953년 복구된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 현재는 도보와 자전거로만 오갈 수 있다. 다리를 넘으면 함안 땅이다.●고분부터 석탑까지 ‘작은 경주’ 창녕 창녕읍내엔 ‘작은 경주’라 불릴 만큼 역사 유적이 많다. 벚꽃이 만개한 요즘 가 볼 만한 곳은 만옥정공원이다. 신라 진흥왕 때 세운 신라진흥왕척경비(국보)가 늙은 벚꽃들의 호위를 받으며 앉아 있다. 창녕객사, 퇴천삼층석탑 등도 볼거리다. 공원 아래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석탑으로 국보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필수 방문 코스다. 5~7세기에 걸쳐 형성된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군으로 알려졌다. 봉긋한 무덤의 유려한 선을 타고 흐르는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고분군 맞은편은 창녕박물관이다. 송현동 15호 고분에서 나온 뼈를 토대로 복원한 소녀 ‘송현이’ 등이 전시돼 있다. 1500여년 전 열여섯 나이로 순장됐다가 첨단과학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가야 소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 흐드러지게… 나만의 봄이 피었다

    흐드러지게… 나만의 봄이 피었다

    “꽃들은 햇살이고, 우리 영혼의 음식이자 치료제다.” ‘식물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식물학자 루서 버뱅크가 남긴 말이다. 코로나19의 길고 긴 터널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벌써 세 번째 봄을 맞았다. 몇 해 내리 영혼의 음식도, 치료제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남녘에 벚꽃이 한창이라지만, 코로나 탓에 유명 관광지는 방문할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봄 한정판 풍경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찾아봤다. 사람들과 덜 부딪치며 나만의 사연을 만들 벚꽃 루트를. 봄의 개울 위로 무지개다리가 놓였다. 황톳빛 다리 옆으로는 수양벚꽃이 가지를 늘어뜨렸다. 꼭 보석을 꿰어 만든 주렴을 보는 듯하다. 이른 아침 햇살이 줄기 하나를 비춘다. 반짝이는 꽃잎이 영롱하다. 이 장면을 거울 같은 시냇물이 그대로 비춰 낸다. 수양벚꽃과 맑은 영산천, 황톳빛 무지개 다리가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순간이다. 경남 창녕의 시골 마을인 영산면 동리는 해마다 봄이면 이 풍경 하나로 ‘스타급’ 여행지가 된다. ●무지개다리 위 인생사진 ‘영산 만년교’ 그림 같은 풍경을 갈무리한 다리의 이름은 영산 만년교(보물)다. 조선 후기의 홍예교 축조 기술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정조(4년) 때인 1780년에 처음 건립됐다가 1892년 개축하면서 영원히 무너져 내리지 말라는 뜻을 담아 만년교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만년교 옆 비석에 이런 내용들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아치 형태로 쌓은 무지개다리는 영산천에 반사되며 둥근 원을 만든다. 제방 좌우로는 노란 개나리꽃과 수양벚꽃이 만개했다. 이만 한 배경에서라면 별다른 기교가 없더라도 누구나 ‘인생 사진’ 하나쯤은 건질 수 있지 싶다.만년교 옆엔 연지못이 있다. 불덩어리 형상이라는 마을 뒤 영축산의 화기를 누르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다. 못의 형태가 벼루 모양이어서 ‘벼루 연(硯)’자를 써 연지라 불린다. 봄을 맞은 연못의 자태가 빼어나다. 연못 안에는 다섯 개의 섬이 떠 있다. 하늘에 뜬 다섯 별을 상징하는 인공섬이다. 선조들은 가장 큰 섬에 ‘항미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봄의 정취를 즐겼다. 큰 섬과 이웃 섬 사이엔 구름 같은 나무다리도 놓았다. 만년교처럼 연지못 주변에도 수양벚꽃이 많다. 분홍 벚꽃들이 늘어선 연못 주변을 자박자박 산책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연지못 안에 세운 정자의 이름은 ‘항미정’이다.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거의 모든 글들이 ‘향미정’이라 쓰는 통에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에서조차 ‘향미정’으로 검색하라고 권유할 정도다. 항미정(抗眉亭)은 물의 도시로 유명한 중국 항저우(杭州)의 미정(眉亭)에 빗댄 표현이다. ‘초승달을 닮은 눈썹’이라는 뜻의 아미(蛾眉)가 아름다운 여인을 뜻하는 것에서 보듯,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눈썹(眉)이란 단어를 썼을 것으로 보인다. 구름다리 초입의 ‘항미정 기문’에 이 같은 내용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영산면은 창녕 속의 작은 유적지다. 영산고분군, 석빙고, 신씨고가 등 차분히 돌아볼 만한 유적들이 꽤 많다. ●선교사·왕벚나무 사연 품은 ‘대구대교구청’ 창녕 인근의 대구에도 사연 많은 벚나무가 있다. 중구 남산로의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안에 있는 왕벚나무다. 조선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선교활동을 벌인 프랑스의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1873~1952) 신부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나무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에밀 타케 신부는 우리 식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에밀 타케의 선물’이란 책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55년에 걸친 그의 한국 생활을 요약하면 이렇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그는 1898년 1월 한국에 들어와 부산, 진주 등에서 사목생활을 하다 1902년 제주로 발령받아 13년을 머문다. 제주도에서 식물채집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그는 1908년 한라산 자락의 관음사 인근에 자생하던 왕벚나무(천연기념물)를 발견해 유럽, 미국 등 학계에 보고했다. 종전까지 ‘사쿠라’라며 일본의 나무로 여겼던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란 사실을 처음 밝힌 것이다. 여태껏 수많은 제주 사람들을 먹여살린 ‘제주 밀감’(온주밀감)을 1911년 들여온 이도 그였고, 이제는 제주의 자랑이 된 구상나무가 고유 특산종이란 사실을 밝힌 이도 그였다. 그의 이름을 따 ‘타케티’라는 학명이 붙은 식물만 해도 한라부추 등 2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 1922년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1952년 선종해 천주교 대구대교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에 묻힐 때까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대구대교구청 경내의 왕벚나무는 이 당시에 심은 것이다. 여러 해 동안 가슴에 담아 뒀던 왕벚나무를 마침내 직관하는 순간이다. 1930년대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는 뜻밖에 둥치가 그리 굵지 않다. 대신 늘씬하게 위로 뻗었다. 검은 나뭇가지 아래로는 수많은 벚꽃들이 매달렸다. 꽃잎은 흰색에 가깝다. 바로 앞 안익사(安益舍)의 낡고 거무튀튀한 기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구대교구청 맞은편의 성바오로수녀원에도 에밀 타케 신부가 심은 왕벚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직접 볼 수는 없었다.아, 앞산 해넘이전망대의 빨래터 공원도 잊지 말고 찾는 게 좋겠다. 주변을 밝히는 두 그루의 수양벚꽃 덕분에 이 빨래터는 봄이면 세상 둘도 없이 고혹적인 장소로 변한다. 아주 오래전엔 수많은 아낙들이 이곳에 모여 빨래를 했을 것이다. 수양벚꽃 늘어진 우물가에 다리를 드러내고 앉은 아낙들을 보며 딴생각을 품었을 남정네가 어디 한둘이었을까. 춘정 가득한 풍경을 보면서도 군자연한 남정네가 있다면 그는 분명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고즈넉함으로 물든 청주 상당산성 무심천(無心川)이 도심을 관통하는 충북 청주에도 결코 무심할 수 없는 벚꽃 명소들이 있다. 인파가 몰리는 무심천변보다는 상당산성 쪽이 고즈넉하다. 산성 남문으로 오르는 길 양옆엔 벚나무 노거수들이 늘어서 있다. 오래된 성벽과 화사한 벚꽃이 잘 어울린다. 이 일대의 벚꽃은 다소 늦게 피어 오래가는 편이다. 다른 지역에서 벚꽃이 끝물일 때도 산성 주변은 흐드러진 경우가 많다. 산성 앞에는 너른 잔디광장이 있다. 가족 피크닉을 즐기기에 딱 좋다.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 때다. 당시엔 토성이었으나 이후 조선 숙종 때 현재의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성 안쪽의 솔숲은 진달래의 영토다. 소나무 사이에 무성한 연분홍 꽃들과 만날 수 있다. 능수벚꽃이 절집과 어울린 풍경과 만나려면 우암산 자락의 대한불교조계종수도원으로 가야 한다. 대웅전, 미륵불 주변으로 능수벚꽃이 흐드러졌다.
  • 이젠 ‘民의 땅’… 상춘재·녹지원은 포토존, 내부 구경은 다음 기회에

    이젠 ‘民의 땅’… 상춘재·녹지원은 포토존, 내부 구경은 다음 기회에

    분수 지나 춘추관, 왼쪽엔 여민관 녹지원엔 170년 한국산 반송 감상관저 뒤뜰선 ‘석조여래좌상’ 구경 대통령 침실 등 건물은 추후 개방 ‘완전 개방’ 북악산 남측 등산 추천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 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 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 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 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5월 10일 청와대 문 열리면 신분증·예약·검문 없이 구경 [INTO]

    앞으로 한 달 뒤면 청와대 안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다음달 10일 청와대 문이 국민에게 열리는 것이다. 미리 예약하거나 검문검색을 거칠 필요 없이 동네 공원처럼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918년 전 청와대 터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곳은 왕조, 일제, 미군정, 국가수반이 자리한 관(官)의 땅이었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민(民)의 땅이 된다. 정부는 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원 지출안을 의결했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하고 인수위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했다. 그 계획에 따라 상상으로 청와대를 미리 방문해 본다.5월 10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두 개 정류소를 지나 효자동에 내렸다. 청와대 밖 분수를 지나쳐 춘추관의 춘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섰다.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신분증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문 가운데 정문과 연풍문, 시화문을 지나 춘추문에 도착했다. 춘추문을 통해 왼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여민관이다. 여민1~3관까지 세 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민 1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 집무실·비서실장실·정무수석실, 2관은 경제수석실·민정수석실, 3관은 홍보수석실 등이 있었다. 다만 청와대의 모든 건물 내부는 당분간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전날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비서진이 사용했기에 자료와 설비가 아직 치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민관 뒤쪽으로 녹지원과 상춘재가 보인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름드리나무와 각종 꽃나무가 손짓한다. 170년 된 한국산 반송(盤松)도 눈에 들어온다. 2013년 청와대는 ‘청와대 3대 나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송이다. 소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하다. 대통령이 주요국 정상 등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 이용하는 상춘재를 직접 보니 실감이 안 난다. 상춘재는 1983년 완공된 한옥 건물로,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했다.상춘재와 녹지원을 지나 10분 남짓 걸었을까. 역대 대통령들이 숙소로 썼던 관저에 도착했다. 한옥 건물 안에 있는 대통령의 침실, 주방, 식당 등을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관저 뒤뜰에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경주에 있던 보물이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였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1993~1994년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등 참사가 줄을 이었는데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불상을 치워 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공개된 바 있다. 이어 본관에 도착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인 1991년 완공된 건물로 왕궁건축기법을 사용했다. 15만장의 푸른 기와가 얹힌 팔작지붕 덕분에 웅장해 보인다. 100㎡(약 32.5평)에 달하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연회장 용도의 인왕실 등은 추후 건물 내부가 공개되면 관람할 수 있다. 본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영빈관이 보인다. 1978년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1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전면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를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랑채에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청와대 관람을 끝냈다. 이대로 청와대를 떠나기 아쉬운 시민들이 청와대 북쪽으로 이어진 북악산 남측면을 등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악정을 거쳐 숙정문, 서울성곽길을 통해 창의문 안내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04년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 별궁)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청와대 터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됐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이 자리에 경무대를 뒀는데,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장 기능을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에 건물을 지어 총독관사로 이용했고, 그 건물은 1945년 해 방 후엔 미군정 사령관 관사로 쓰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게 된 것이 대통령 집무실로서 청와대 역사의 시작이다. 이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말로를 겪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권력자들에게 선망하면서도 기피하는 곳이 됐다. 그래서 몇몇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지만, 경호와 대안 부재 등 한계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인지 윤 당선인은 아예 처음부터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관철하게 됐다.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시민 불편 등의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여론은 현재로서는 썩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윤 당선인 쪽에서는 청계천 복원과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은 호평받았다며 막상 청와대가 개방되면 여론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청와대는 단순히 권력자의 거처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상징물과 같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쪽 견해가 맞는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918년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바꿔 버리는 대한민국,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 국회·여의도 벚나무는 일본산… 토종 왕벚나무가 하나도 없다

    국회·여의도 벚나무는 일본산… 토종 왕벚나무가 하나도 없다

    벚꽃길 명소 국회와 여의도에 심어진 벚나무 대부분이 일본산 소메이요시벚나무로 드러났다.· 6일 사단법인 왕벚프로젝트2050(회장 신준환)은 올해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춰 국회 및 여의서로에 식재되어 있는 벚나무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같이 발표했다.이에 따르면 국회에 식재된 벚나무류 218그루 중 197그루인 90.4%가 소메이요시노벚나무였으며, 여의서로는 418그루 중 96.4%인 403그루가 소메이요시벚나무였다. 나머지는 한국 특산이 아닌 잔털벚나무, 겹벚나무, 올벚나무 등이었다. 우리나라 특산 벚나무류인 왕벚나무는 한 그루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4월 4일 이 단체 회원 18명이 국회와 여의서로에 식재되어 있는 벚나무류 전체를 조사했다. 신준환 회장(전 국립수목원 원장)은 “대한민국 민의를 상징하는 국회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축제 장소에 토종 왕벚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는게 안타깝다”면서 “연차적으로 진해를 비롯, 경주, 구례, 군산, 부산, 영암, 제주, 하동 등의 벚꽃명소와 현충원, 왕릉, 유적지 등에 심겨진 벚나무 수종을 조사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왕벚프로젝트2050은 지난 2월 국내외 벚나무류의 조사, 연구, 홍보, 그리고 자생 왕벚나무를 널리 보급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왕벚나무와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외관상으로는 매우 유사하지만 유전자를 이용한 최근의 여러 연구에서 부모종이 서로 다른 별개 종으로 인식된 바 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왕벚나무는 제주도와 해남에 자생하는 한국특산종으로서 올벚나무를 모계, 산벚나무 또는 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잡종 기원의 식물이다. 반면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일본특산종으로서 올벚나무를 모계, 일본특산종 왜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잡종 기원의 식물이다. 왕벚나무는 해남과 제주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생지가 있으며,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200여 그루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방을 살리는 건축…CNN도 주목한 군위 수목원

    지방을 살리는 건축…CNN도 주목한 군위 수목원

    경북 군위군의 사유원(思惟園)은 인구 2만여명의 작은 지방자치단체를 살리는 건축이다. 사유원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이 모인 건축테마파크이자 현대인을 위한 수도원이기도 하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한 기업가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만나 군위 산골에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수목원이자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놓을만한 자랑스러운 장소를 만들어냈다.생각하는 정원이라는 뜻을 지닌 사유원은 10만평의 대지에 조성된 수목원이다. 지난해 9월 사전예약제로 문을 열어 하루 140명만 입장객을 받고 있는데, 개장 첫날부터 예약 경쟁이 치열했다. 세 시간 관람에 입장료가 5만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식사까지 합해 하루 10~20만원까지 사유원에 쓰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산으로만 둘러싸인 소담스런 언덕에 인상깊은 장소를 만든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승효상씨와 포르투갈의 알바로 시자 등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 건축상을 두 차례나 받은 시자는 ‘건축의 시인’이라 불린다. 풍경의 일부가 되는 그의 건축을 소개하고자 CNN 여행 채널에서 사유원이 문을 열기도 전에 취재 의뢰가 왔을 정도다. 승효상 이로재 건축사무소 대표는 “사유원의 모든 건축을 땅으로 집어넣거나 숨겨서 수목원의 배경처럼 만들었다”면서 “새들의 수도원과 물탱크에 조성한 전망대만 드러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승 대표는 생태 화장실과 스마트 가로등, 벤치까지 사유원의 대부분 시설을 설계했다. 새들의 수도원은 맨 위층에 새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달았지만 아직은 의심많은 새가 깃들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사유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그의 작품은 물과 돌이 삶의 의미를 묻는 명정이란 공간이다. 물이 똑똑 흘러내리는 벽을 지나면 붉은색의 벽이 이국적인 풍광을 낳는다. 건축가는 이곳을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사람처럼 묵상하는 장소로 설계했다. 사유원을 찾는 관람객의 80% 이상은 수도권에서 온 20~30대들인데 이들은 명정에서 인생 최고의 사진인 ‘인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오는 사진은 최고의 홍보 수단인 셈이다. 비싼 대관료에도 패션 화보의 촬영장으로 인기가 높다. 승 대표는 야외 공연과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이곳을 만들었지만,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공간을 즐기고 있다. 좌식 양변기는 없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화장실과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사유의 공간을 맘껏 받아들이는 것이다.사유원이란 이름은 설립자인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과 25년 지기인 승 대표의 교감 속에 지어졌다. 승 대표는 자신보다 6살이 많은 유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아 10년 동안 만나지 않다가 그의 대구 집을 설계하면서 다시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일반적인 수목원이 아니라 사유하고 명상하는 수목원을 짓자는 승 대표에 제의에 그 자리에서 유 회장이 사유원이란 이름을 내놓았다. 태창철강은 대구에 있는 기업으로 유 회장은 일본에 팔려가는 모과나무가 안타까워 땅을 사고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40년간 나무를 모아 사유원을 일군 유 회장은 일본으로부터 나무를 지켜낸 곳으로만 수목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유원에 있는 6개의 생태 화장실에 각각 다불유시(多不有時·WC)와 같은 이름을 직접 붙일 정도로 지극한 애정을 쏟았다. 마스터플랜처럼 완벽한 계획 없이 조성되어 아직도 미완성인 수목원을 지금도 조금씩 손수 고쳐나가고 있다. 수백년 된 모과나무는 풍설기천년이란 이름의 언덕에 108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나무는 매년 4t의 모과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로 사유원 입구에서 거대한 저수지를 마주 보며 있는 카페 몽몽마방에서 몽몽에이드를 만들어 팔고, 태창철강 직원들에게도 나눠준다. 모과나무뿐 아니라 재선충병을 이겨내고 그루당 수천, 수억원을 호가하는 한국형 소나무도 사유원 곳곳에서 굽이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카페 자리에는 승 대표가 설계한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빈민촌인 달동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세상의 끝에 있는 수도원에서 건축의 이상향을 보는 이 건축가는 사유원의 호텔을 마치 수도원처럼 설계했다. 50개의 객실이 있는 호텔에는 텔레비전도 없이 작은 싱글침대 하나만 들여놓아 계절마다 풍경이 다른 수목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승 대표의 바람과 달리 비용 문제 등 여러 사정으로 아직 착공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명성은 1966년 포르투갈 해변의 암석 위에 세워져 바다와 하나 된 듯한 팔메이라 수영장으로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2006년 안양예술공원에 위치한 안양파빌리온을 처음 설계했고, 이 건물은 아시아에 최초로 들어선 시자의 작품이기도 하다. 사유원 방문객들은 시자가 설계한 건물인 소요헌에서 땅과 하나가 된 건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소요헌은 긴 상자 같은 두 개의 긴 구조물을 와이자 모양으로 연결했을 뿐 장식이 없는 고요한 공간이다. 어두운 입구를 지나 빛과 함께 마주한 자연은 사유원을 찾은 이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시자의 건축 작품을 보려고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여행객이 개장 전에 무작정 사유원을 찾은 일도 있었다.군위군은 소보면에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이 들어서게 되면서 대구시로 편입하는 과정에 있다. 지역 간 합의로 행정구역 통합이 이뤄지는 첫 사례가 될 예정이지만, 국민의힘 소속 경북 지역구 의원들이 일부 반대하고 있다. 군위군에 있는 사유원은 대구시로 편입되면 그 가치도 10배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별다른 관광자원이 없는 군위에서 야심차게 만든 삼국유사테마파크는 코로나19 기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유원은 예약이 꽉 찼다. 지난 31일 서대구 기차역이 개통하면서 사유원으로 가는 교통은 더 편해졌다. 규모 면으로 따지면 국내 다섯번째 정도지만 민간에서 조성한 수목원으로는 경기 양평의 세미원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 경북도와 대구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유원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다. 대구 수성구청은 구청장 주도로 전체 공무원이 사유원을 관람했으며, 도로 개설 등에 경북도의 도움이 컸다.승 대표는 사유원에 대해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일상의 경계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에너지를 얻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반드시 직접 가보고 이해해야만 하는 건축은 지역 가치를 한없이 높이는 작업이며, 좋은 건축으로 지방이 살아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돈많은 기업가나 생각 없는 지자체장이 외국의 건축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실패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땅에 어울리지 않는 건축은 장소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생명력이 소멸된다고 밝혔다. 대표적 사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는 땅에 대한 이해와 주변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건축이 아니라 공산품을 낳았다고 했다. 그는 “사유원은 그 존재 자체로 군위란 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자랑스러운 장소”라며 “사유원에서 건축은 중요하지 않으니 나무를 흘깃 보지 말고 대화하도록 노력하라”고 귀띔했다.
  • 오세훈 “광화문광장, 녹색 쉼터로…청와대 개방되면 시너지”

    오세훈 “광화문광장, 녹색 쉼터로…청와대 개방되면 시너지”

    식목일 맞아 광화문광장에 나무 심어 오세훈 서울시장이 “청와대가 개방되면 경복궁을 거쳐 광화문광장까지 연결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는 7월 재개장을 앞둔 광화문광장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렇게 썼다. 오 시장은 이날 식목일을 맞아 광화문광장에 나무를 심었다. 그는 “2009년 광화문광장을 처음 조성할 때에는 서울의 중심거리인 세종로를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서 광장의 기능을 되찾도록 했었다”며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기존의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숲과 그늘이 있는 공원을 겸한 광장으로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에는 광화문광장에 그늘이 없어서 햇빛을 피할 곳이 없었지만, 이제는 나무가 상당히 많이 심어지는 만큼 시민들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산책과 사색을 즐기고 문화행사를 체험할 수 있는 도심 속 녹색 문화 쉼터로 재탄생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2009년 광화문광장 조성 당시 세종로 중앙분리대에 있던 은행나무를 모두 뽑아 버렸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세종로에 있던 은행나무 29그루는 2008년에 광화문 의정부 터 앞과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옮겨 심었고, 지금도 광화문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머지않아 광화문광장 인근의 청와대도 개방을 앞두고 있다”며 “광화문광장 일대가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이용한의 절묘(猫)한 순간들] 캣타워가 된 장독대/고양이 작가

    [이용한의 절묘(猫)한 순간들] 캣타워가 된 장독대/고양이 작가

    봄 햇살이 좋긴 한가 보다. 고양이들이 저마다 장독대에 올라가 한바탕 일광욕을 하고 까무룩 낮잠을 잔다. 가끔은 여남은 마리가 하나씩 장독을 차지한 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데, 멀리서 이 광경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고양이들이 툭하면 장독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다래나무집’(고양이 책의 주요 배경)에서는 어느 날부턴가 장독대를 ‘냥독대’로 부르게 됐다. 냥독대야말로 고양이들의 취향에 맞춤한 곳이다. 점프를 하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높이에다 햇볕을 받으면 뜨끈하게 온돌 구실을 하는 소래기(장독 뚜껑)까지 그들만의 취향 저격인 것이다.녀석들은 이 자연친화적 캣타워에 올라 엉덩이 찜질을 하고 식빵(고양이가 발을 모으고 웅크려 있는 모습)까지 굽는다. 비가 내린 뒤에는 냥독대에 올라 물을 마시는 고양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목한 소래기에 고인 ‘감로수’를 녀석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겨울에도 고양이들은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이른바 납설수(臘雪水·눈 녹은 물)를 마시러 장독에 오르곤 한다. 고양이가 냥독대를 즐겨 찾는 이유 중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도 있다. 장독대 주변에는 자작나무와 벚나무, 감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서 있다. 그리고 이 나무에는 수시로 새들이 날아와 찍찍꼬꼬 수다를 떤다. 그럼 또 고양이들은 나무에서 가까운 항아리로 한 마리씩 올라와 그림의 떡인 새를 향해 캬르르 캭캭, 채터링을 한다. 한번은 여덟 마리 고양이가 장독대 맨 앞줄에 일렬로 앉아 새 구경을 하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운 좋게 나는 이런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는데, 어떤 분은 이것이 믿기지 않는지 연출이거나 조작이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고양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고양이가 ‘이렇게 일렬로 나란히 앉아 봐’ 한다고 순순히 협조할 녀석들이 아니란 걸 잘 알 것이다. 사실 고양이 사진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고양이는 풍경처럼 정지해 있는 것도, 인물처럼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은 사진가도 고양이 앞에서는 재능을 보이기 어려운 법이다. 결국 냥독대 사진은 새와 나무가 연출한 것이며, 때마침 고양이가 거기 있었고, 우연히 그 옆에 있던 내가 셔터를 눌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병원의 정원에서 받는 위로 ‘치유 정원’/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병원의 정원에서 받는 위로 ‘치유 정원’/식물세밀화가

    4년 전 다리 수술을 하는 엄마의 보호자가 돼 한 달여 긴 병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엄마 곁에서 수술 후 건강 회복을 도왔다. 내 역할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작은 병실 안에서 매일 같은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갈수록 나의 마음은 조금씩 지쳐 갔다. 그런 내가 병실을 나서 틈틈이 찾았던 곳은 다름 아닌 병원의 옥상이었다. 옥상에는 꽤 큰 규모의 정원이 있었다. 회양목과 화살나무 그리고 산딸나무와 자작나무가 자라고, 맥문동과 비비추 같은 들풀과 민트, 로즈메리 등 허브식물이 뒤섞인 정원이었다. 나는 엄마가 잠이 들면 매일 그 정원으로 가 가만히 앉아 쉬거나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웠다. 정원은 그야말로 각박한 병원 생활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 엄마는 퇴원을 했고, 나는 다시는 그 정원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 나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또 다른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목이 아파 긴 검사를 받을 때에도 병원에 갔다. 내가 가는 병원마다 크고 작은 정원이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연구되던 원예 치료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힐링 가든, 테라피 가든이라고 하는 치유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치유 정원은 이름 그대로 식물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목적에서 조성된 정원이다. 그리고 이 정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은 바로 병원이다. 여느 병원의 정원 풍경을 떠올려 보자. 환자와 보호자는 정원을 돌며 산책을 하고,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병원의 정원은 사람들을 움직이거나 운동하게 하고, 생동하는 풀과 나무를 통해 몸과 마음의 안식을 취하거나 아픔을 잊게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외로움에서 벗어나게도 한다. 이것이 병원 정원의 역할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그녀의 간호 노트를 통해 말했다. ‘사람들은 식물의 효과가 마음에만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몸에서도 드러납니다.’ 현대에 들어 수많은 논문을 통해 증명된 식물이 주는 신체 치유 효과를 그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인류가 병원에 정원을 만든 역사는 1000년이 훌쩍 넘는다. 9세기 초 한 승려가 기록했다고 추정되는 문서에는 오늘날의 병원이라 할 수 있는 수도원의 정원이 묘사돼 있다. 명상을 하기 위한 산책로, 물이 뿜어 나오는 우물과 분수 그리고 약초를 얻기 위한 허브 정원과 잔디밭. 그야말로 오늘날 병원의 정원 풍경과 동일하다. 정원에는 수도원의 성직자와 노동자, 방문자의 식량 제공을 위한 과일과 채소밭도 묘사돼 있다. 현대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의 병원이 만들어진 후에는 오랜 시간 치료에 지친 환자가 휴식할 수 있는 외부 공간과 환자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 보호자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목적의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식물 문화가 흥하던 빅토리아 시대에는 병원의 정원이 가장 활발하게 조성됐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세계대전 이후 병원 정원의 식물은 자동차에 공간을 내주어야 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병원 정원이 있어야 할 공간이 모두 주차장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 병원 정원의 경쟁자는 주차장이다. 주차 문제는 접근성의 문제다. 더 많은 차를 수용할 수 있는데 굳이 그 땅을 정원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그렇게 정원은 대부분 옥상에 조성됐다. 그뿐만 아니라 정원을 관리하려면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꾸준히 예산이 든다는 점도 병원의 정원이 확대되지 못하는 이유다. 치유 정원이 발달한 미국의 병원에는 정원뿐만 아니라 산책용 온실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정원 품질을 높여 환자의 운동을 유도하고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꾸준한 원예 활동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요양병원에 한해 원예 활동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차머스공과대학의 울리히 박사가 2002년 발표한 ‘병원 정원의 건강상 이점’ 논문에 따르면 식물은 환자의 스트레스와 통증 감소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수면의 질을 높이고 재감염 가능성을 줄여 입원 시간과 비용을 줄인다고 한다. 게다가 병원 정원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몇 번의 내 짧은 병원 생활에서 가장 위안이 됐던 공간 역시 정원이었다. 넓은 병원에서 유일하게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공간. 이것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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