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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부족함과 모자람의 축복/오한숙희 여성학자

    사고로 발을 다쳐 두 달 반 동안 깁스를 했었다. 깁스를 푸는 날, 골다공증이 심하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운전면허가 없는 덕에 다리 힘 하나만은 장담하는 바였는데 고작 두 달 반 사이에 골다공증이라니. 탓할 대상도 없이 야속하기만 했다. 부지런히 걷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굳은 재활의 결심을 했지만 굳어버린 근육은 움직일 때마다 심한 통증을 일으켜 발을 딛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내 하소연에 물리치료사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부지런히 두드리라면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다리를 안 쓰고 가만 놔두니까 영양공급이 오질 않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앉아서라도 마사지나 안마로 자극을 주세요. 그러면 혈액순환이 되면서 영양분이 오게 되지요.” 우리 몸은 냉정하게도 활동하지 않는 신체부위에는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학생때 생물시간에 외웠던 용불용설(안 쓰는 신체기관은 퇴화된다는 이론)의 정확함에 무릎을 칠 수밖에. 그러나 사고의 후유증은 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걷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다리근육도 많이 되돌아올 무렵 나타난 후유증은 자식농사의 이상기후였다. 입원으로 인한 어미의 부재기간이 아이에게는 해방공간이었다. 엄마에게 사후 승인을 받겠다는 단서를 달고 할머니 대행체제의 틈새를 횡행했다. 가불해 간 용돈은 요상스러운 옷들로 쌓여 있었고 고무줄이 되어버린 귀가 시간과 외출시간은 지저분한 방과 열혈 자유주의자의 불안한 눈빛을 만들어 냈다. 반성은커녕 자신의 개성이라고 합리화하며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사춘기적 저항정신 앞에서 나는 아연했다. 이건 골다공증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의 엄청난 공백이었다. 뼈의 공백은 다리를 쓸수록 메워지건만 자식의 공백은 노력할수록 오히려 커져만 갔다. 그 무렵 거실에서 키우던 나무 한 그루가 죽어나갔다. 공교롭게도 그 나무는 재작년에 아이의 생일 선물로 내가 사 준 것이었다. 제 키보다 더 큰 나무에 감탄하는 아이에게 나는 ‘이 나무가 곧 너라는 생각으로 잘 길러라.’라고 말했었다. 큰나무가 남긴 거실의 공백은 설 쇠고 마을온 이웃집 할머니의 눈에도 확연했다. 그렇잖아도 쓰린 가슴을 애써 달래던 어머니가 예의 자위적 발언을 펼치셨다.“오래전부터 비실비실하더라고. 갑자기 죽은 게 아니니까 수명이 고만큼인가 보다 받아들여야지.” “에이구, 물 많이 줬구먼. 처음 비실거릴 때 물을 딱 끊어서 바짝 말리지 그랬어.” “비실거리니까 물이 모자라 그런가 하고 또 줬지.” “모자라면 지들이 알아서 아껴 쓴다고. 넘칠 때가 문제야. 주체를 못하니까.” 이 말에 내 정신이 버쩍 들었다. 나무가 죽은 원인, 어쩐지 거기에 아이의 공백을 채우는 열쇠가 있을 것만 같다고 여겼던 마음에 ‘넘칠 때가 문제’라는 말이 꽂힌 것이다. 인생선배들의 말대로 사춘기의 시한부 시대정신일 뿐이라고 애써 믿으면서 그럴수록 아이에게 관대하게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왔음을 명료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쓰지 않으면 퇴화되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생명의 자연이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며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가능하면 몸을 쓰지 않도록 하는 편의주의 시대는 내 몸을 퇴화시키고, 맘만 먹으면 쏟아부을 수 있는 물질 풍요의 시대는 자식농사를 망친다. 자연을 착취하고 오염시키면서 만들어내는 몸의 안락과 물질적 풍요는 결국은 인간에게 재앙이 된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관계는 오히려 불편함과 부족함 속에서 나온다니, 생명체의 신비는 얼마나 엄숙한 것인가. 오한숙희 여성학자
  • [이집이 맛있대] 후다닥 한그릇 ‘뚝닭’

    [이집이 맛있대] 후다닥 한그릇 ‘뚝닭’

    “남한산성내 즐비하게 늘어선 닭볶음탕 집 가운데 어디를 가야 할까.”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도립공원 내 자리잡은 ‘완도집’은 매운 닭볶음과 온갖 약재가 들어간 닭도가니탕으로 유명하다. 여기다 전라도 명물인 갓김치와 총각김치, 갓담은 겉절이가 입맛을 한껏 돋운다. 닭도가니탕에는 남한산성 엄나무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 신경통과 관절염, 요통에 좋고 보혈효과가 뛰어나다 한다. 엄나무는 처음 닭을 삶아낼 때 사용한다. 이때 대추와 밤, 은행, 잣, 황기, 인삼, 녹각, 쑥뿌리, 생강, 마늘 등 20여가지 약재가 함께 들어간다. 직접 기른 토종닭은 배를 갈라 약재와 함께 2∼3시간 가마솥에 푹 삶는다. 그동안 찹쌀로 미지근한 불에 죽을 쑤고 쌀이 퍼지기 시작할 때쯤 삶은 닭과 죽을 별도의 도가니에 담아 다시 끓여낸다. 도가니탕에는 삶아낸 밤과 은행, 잣, 인삼 등이 함께 나간다. 이렇게 끓인 닭도가니탕은 맛이 담백하고 구수하며, 약재가 우러난 향이 어우러져 군침을 돌게 한다.“점심식사로도 좋지만 술먹은 후 해장에도 그만이다.”는 게 주인 김인기(53)씨의 자랑이다. 남한산성내 매운 닭볶음은 업소마다 제각각 특유한 맛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곳은 닭도리탕에 도가니탕 국물을 사용해 맛이 더 진하다. 또 청량고추와 후춧가루를 넣어 느끼한 맛을 없앴다. 엄나무 백숙도 일품이다. 엄나무로 장시간 우려내 고기가 검은 빛을 낸다. 대추와 은행, 잣, 인삼 등이 곁들여져 맛이 진하고 개운하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꿩회·꿩파전·꿩산적…꿩따리 샤바라

    꿩회·꿩파전·꿩산적…꿩따리 샤바라

    ■ 춘천꿩농장서 꿩먹고 알먹고 우리의 가장 대표적인 겨울 전통 먹을거리가 꿩이다. 함박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덫을 놓고 불린 콩을 뿌려 꿩사냥을 했다. 이렇게 잡은 꿩으로 냉면과 만두 등 갖가지 별미도 만들어 먹었다. 꿩은 그 자태가 아름다운 만큼이나 맛도 일품이다. 담백하면서도 감칠 맛이 돈다. 육질은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탄력이 있다. 꿩은 가슴살로 배·오이 등을 채 썰어 넣고 참기름을 조금 넣어 육회로도 먹었다. 쫄깃한 맛에서 ‘꿩 대신 닭’이란 표현이 왜 나왔는지 느껴진다. 옛날에 주로 혼례, 제사, 감사의 표시로 꿩이 쓰였다.‘있는 집’에선 치적제일(雉炙第一)이라 하여 제사에 빠지지 않았다. 정월 대보름엔 꿩알을 복란(福卵)이라며 귀하게 여겨 찾기도 했다. 나라님도 꿩의 맛을 즐겼다. 오죽하면 조선시대까지 매를 길러 꿩을 잡는 관청을 뒀겠는가. 조현진 봉래정 조리사는 “꿩은 겨울철 궁중의 보양식”이라며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다이어트나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말했다. 이런 꿩 맛보기가 요즘엔 쉬워졌다. 꿩을 사육하는 까닭이다. 꿩은 사육된다고는 하지만 닭이나 오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야성이 강하다. 소리에 민감하고 경계심이 무척 높다. 반면 병해에 강해 웬만한 조류독감에도 끄떡없다. 꿩 사육 농장인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창촌리의 춘천꿩농장을 찾았다. 사방에 눈이 쌓이고 얼어붙은 산간마을의 겨울,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칼처럼 매섭다. 하지만 농장의 꿩들은 추위를 잊은 듯 재빠르고 활기찼다. 사육장 안으로 발자국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들어섰지만 수백 수천마리의 꿩이 한꺼번에 푸드득거리며 날아올랐다. 먼지와 깃털, 정면으로 돌진하는 꿩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주인 동영삼(50)씨는 “막무가내로 사육장에 들어서면 꿩이 정면으로 달려들어 발톱에 할퀴거나 다친다.”고 주의를 줬다.“닭은 먹이를 주면 달려들어 먹지만 꿩은 경계심을 품고 접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 꿩은 모두 부리가 몽땅하게 짧았다. 꿩은 성질이 거칠어 서로 싸우는 경우가 많아 생후 20∼30일 사이에 부리를 절단한 까닭이다.15년째 꿩을 기르는 그는 “꿩을 수십대째 순치시켜며 길들이려고 했지만 여전히 실패”라며 “닭이나 오리는 꿩과 비교하면 너무나 순해 ‘온실 속의 화초’”라고 말했다. 그는 꿩이 인삼밭을 찾으면 쑥대밭으로 만드는 걸 보고 꿩을 건강하게 기르기 위해 인삼과 목초액을 먹였다. 항생제는 전혀 먹이지 않는다. 꿩 전문식당을 운영하는 동씨 부인 정향순씨는 “꿩의 요리법은 닭과 비슷하지만 기름기가 없어 훨씬 더 담백하다.”며 “꿩의 감칠 맛을 살리려면 파·마늘 등 강한 향신료를 많이 넣지 않는 요리법이 좋다.”고 말했다. 꿩고기로 육수를 우려낼 땐 꿩 한 마리에 물((8ℓ), 생무(400g), 양파(200g), 마늘(3쪽)만 넣고 30여분간 푹 끓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육수는 식혔다가 냉면을 말거나 다른 음식을 만들 때 넣고, 살은 소금에 찍어 먹거나 칼국수·만두 등을 끓일 때 넣으면 된다. 그는 꿩에 인삼·대추 등을 넣고 삼계탕처럼 끓여 먹으면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닭백숙처럼 통마늘·대파 흰 부분을 넣고 닭보다 더 오래 익혀 먹는 꿩백숙도 좋단다. 정씨는 배추·무·호박·숙주나물·부추 등을 꿩고기와 다져 넣은 꿩만두도 빚어 판다. 꿩만두 1봉지(100알)에 3만원, 냉동 꿩고기(장끼·1㎏)는 2만원에 택배도 한다. 식당 메뉴는 꿩냉면(5000원), 꿩백숙, 육회(이상 2만 5000원), 꿩샤부샤부(3만 5000원·4인분) 등이 개발되어 있다. 문의(033)262-5335. ■ “겨울에 먹어야 제맛” 수컷 장끼의 자태는 고혹적이다. 목에는 흰 링을 찬 듯 하얀 목털을 둘렀다. 우리나라의 꿩에만 흰 테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꿩이 전세계 50여종의 꿩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흰 테 위쪽은 녹색을 띤 푸른 빛이 나고, 아래쪽는 붉은 색이 감도는 보랏빛과 황색이다. 밤색 광택이 있는 청동색 몸에 흑색에서 황색까지의 갈색 빛깔로 얼룩져 있다. 긴 꼬리 깃은 짙은 밤색에 검은 마디가 있다. 예로부터 모자 등에 장식으로 많이 달았다. 암컷인 까투리는 꼬리가 짧으며 갈색으로 얼룩져 있다.‘꿩 대신 닭’,‘꿩 구워 먹은 소식(소식이 없음)’,‘꿩 잡아 먹은 자리(흔적이 없음)’,‘꿩 먹고 알 먹고’ 같은 우리 속담도 꿩의 맛과 관련이 있다. 장동민 하늘땅한의원장은 “봄 산란기를 앞두고 겨울은 꿩이 가장 맛있을 때”라며 “꿩고기는 몸에 좋은 오메가3지방산을 갖고 있으며, 소화흡수가 잘 되며 기력을 돋운다.”고 말했다. 춘천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새’맛찾아 전문점으로 서울 김포공항 옆 메이필드호텔의 한정식당에선 2월 말까지 겨울 특선 궁중보양식으로 꿩요리(5만 5000원)를 내놓고 있다(02-6090-5800). 꿩요리 특선 메뉴로는 꿩육회와 꿩완자전골·꿩만둣국·꿩산적(꼬치) 등이 코스로 나온다. 꿩완자전골은 야채와 꿩살로 완자를 빚어 육수에 끓이는 것으로, 여러가지 재료가 어우러진 깊고도 시원한 맛을 낸다. 옛날 궁중에선 이를 봉오리탕으로 불렀다. 봉래정의 단아한 전통한옥에서 겨울 궁중음식 꿩을 즐기는 맛이 그만이다. 한양대학교에서 성동교를 건너 화양로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꿩 전문 음식점이다(02-468-0110). 12년 전에 문을 연 이 집의 가장 대표적인 메뉴는 꿩 한마리(3만 9000원·4인분). 꿩파전·꿩육회·꿩샤부샤부와 꿩만두, 꿩탕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 금수강산의 꿩샤브샤브는 꿩 뼈를 우려낸 육수에 꿩앞가슴살을 얇게 저며 넣은 것이다. 여기에다 배추·호박·감자·쑥삭·버섯류 등 7∼8종의 야채가 풍성해 국물이 시원하면서도 감칠 맛이 깊다. 강화도에서 기른 꿩을 가져와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잡아준다. 도심과 강남에서 별미를 즐기려는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 꿩을 제대로 먹으려면 예약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 전국 제일의 꿩요리집이란 자부심이 가득한 식당이다(043-846-1757). 메뉴는 한 가지. 꿩 한마리(5만원)를 주문하면 꿩회·꿩생채·꿩산적(꼬치)·꿩불고기·꿩만두·꿩수제비매운탕이 차례로 나온다. 어른 두세 명이 푸근하게 먹을 수 있다. 꿩회는 꿩고기를 양념에 무치지 않고 생선회처럼 내고, 꿩생채는 꿩을 야채와 양념에 버무려 내온다. 안주인 박명자(56)씨는 꿩요리로 향토음식 기능보유자로 선정됐다. 한번 맛본 사람은 다시 찾는다. 위치는 충북 충주시 상모면 안보리, 수안보온천에서 월악산국립공원 미륵사지쪽으로 2.5㎞쯤 가야 한다. 의왕의 청계사로 가는 코스 중간에 있는 꿩고기 전문점. 꿩고기 칼국수와 꿩고기 꿩만둣국 각 5000원(031-426-2494). 얼큰해 닭도리탕과 비슷한 꿩탕(4만 5000원)과 담백한 꿩샤부샤부(5만원)는 꿩 한 마리로 푸짐하다. 모두 4인기준. 새로 지은 건물이 깨끗하다. 목장을 하던 주인 박종인씨가 25년 전에 황소 한 마리와 바꿔 심었다는 등나무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변화를 준다. 대중교통 편이 불편한 곳이라 차편을 항시 대기시켜놓고 인덕원 전철역까지 교통편의를 제공해준다. 경기도 용인시 용인문예회관 근처의 금촌집은 꿩탕을 내놓는다(031-335-3808). 얼큰한 국물 맛이 꿩고기 속에 잘 배어든 꿩탕(한 마리 3만 5000원)은 이 집의 별미다. 봄철에는 국물 안에 넣은 달래향이 향긋하게 풍기며 입맛을 자극하다. 꿩구이(9000원·1인분)는 부드럽고 담백한 육질이 좋다. 뼈가 억세지만 뼈를 발라먹는 재미가 그만이다. 고기와 양파, 대파, 양송이버섯 등을 같이 굽는 냄새가 향긋하다. 이외에도 메추리구이·토끼탕과 토끼구이 등 다소 야성적인 메뉴를 내놓는다. 꿩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냉면이다. 꿩과 김칫국의 조화로운 맛이 그만이다. 꿩 가슴살이나 날개살, 다리살을 발라내 국물에 띄우고, 뼈는 고아 육수를 내 김칫국이나 동치미국에 섞어 냉면국물을 만든다. 서울 강동구 고덕사거리 E마트를 끼고 우회전하는 평안도 오부자집(429-2515)에선 꿩냉면과 꿩만두를 낸다. 꿩육수를 진하게 맛보려면 3∼4명의 한 가족이 우선 꿩만두전골(1만 3000원·1인분)을 한 냄비 주문해 먹은 다음 꿩냉면(6000원)으로 시원하게 입가심하면 평안도 겨울 별미의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동두천의 터미널근처의 평남면옥(031-865-2413)도 꿩냉면(6000원)으로 이름이 높다.
  • “소나무 재선충 방제 자리 걸라”

    “소나무 재선충 방제 자리 걸라”

    “소나무 재선충병을 정리하지 못하면 산림청의 존재 가치도 없다.” 박홍수 농림부장관이 14일 지난해부터 확산되면서 소나무 멸종 우려까지 대두된 재선충병에 대해 강력한 방제 의지를 밝혔다. 취임 후 처음으로 산림청을 방문한 박 장관은 업무보고 후 조연환 산림청장 등 간부들에게 “자리를 걸고 소나무를 지키라.”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어 전국 6개 시·도와 40개 시·군·구 부기관장 등이 참석한 ‘확산저지 특별방제 대책회의’에서는 ‘정리’라는 용어를 수차례 강조하며 지자체의 적극성을 촉구했다. 박 장관은 지자체들이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잇따라 제기하자 “예산타령하다 산이 망가져서는 안 된다.”면서 “지자체 의지에 문제가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박 장관은 “재선충병을 막지 못하면 우리 산은 끝장난다.”면서 “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산림청 책임하에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강력한 방제 대책이 제시됐다. 산림청은 재선충 집중 발생지역인 경남 남부지역 섬진강∼지리산∼비슬산∼가지산을 연결하는 ‘확산방지대’를 설정, 항공 감시와 살선충제 주입, 소나무 제거 등의 대책을 추진키로 했다. 연 3회 원칙인 항공방제를 5회로 늘리고 신규 발생지역에는 방제비를 100% 국비 지원키로 했다. 한편 소나무 재선충병은 지난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보고된 후 현재 40개 시·군·구로 확대됐고 피해면적 1만 7000㏊에 60만 그루가 잘라져 나간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현 추세대로라면 오는 2112년쯤 우리나라 산림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양화동

    [우리동네 이야기] 양화동

    “버들꽃 눈은 가득차려고 하고(楊花雪欲漫)/복사꽃 붉어 타는 듯하네(桃花紅欲燒)/저녁강 그림 수를 놓았어라(繡作暮江圖)/서쪽하늘에는 지는 해가 남았네(天西餘落照)” 조선시대 선조때 문과에 급제한 차운로(車雲輅)가 읊은 ‘양화석조(楊花夕照)’라는 한시다. 행정구역상으로 옛 양천현 남산면 양화리였던 양화나루 주변의 석양풍경을 노래한 시다. 주변에 버드나무가 많아 양화나루로 불린 것이 오늘날 영등포구 양화동(楊花洞)의 어원이 됐다. 양화동은 행정동인 양평2동에 속해 있는 법정동이다. 양화동은 ‘신선이 노닐던 섬’이라는 뜻을 담은 선유도(仙遊島)로 유명하다. 선유도는 양화대교 중간에 있는 하중도(강위에 있는 섬)로 조선시대 화가인 겸재 정선이 세 편의 진경산수화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1978년 정수장이 들어서면서 옛모습이 파괴됐으나 2002년 정수장 구조물을 재활용한 공원으로 꾸미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선유도공원은 양화대교뿐만 아니라 양평동에서 길이 469m의 무지개모양 다리인 ‘선유교’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시내에서 영등포방향 양화대교를 타면 승용차로 진입할 수 있으나 주차장이 10여면에 불과해 도보로 가는 것이 낫다. 전망대, 선유정, 시간의 정원, 선유나루, 열린마당, 만남의 숲 등 여러 가지 테마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색색 조명이 설치되어 환상적인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영등포구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산인 ‘쥐산’도 양화동에 있다. 먹이를 앞에 두고 있는 쥐가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발 50.5m의 야산으로 정상에서 한강, 남산, 북한산, 인왕산, 상암 월드컵축구장 등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지만, 입산금지 상태다. 쥐산 아래에는 높이 18m, 폭 98m의 ‘양화인공폭포’가 설치되어 있어 여름철에 시원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폭포연못에는 180개의 수중등·투광등을 설치해 황홀한 야경을 이루고 있으며, 폭포 주변에는 300여평의 녹지대가 있다. 한강시민공원의 양화지구(당산철교∼경기 김포시 전호리,11.7㎞)에서는 여름철에 요트, 고무보트, 윈드서핑 등 수상스포츠 활동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어린이놀이터, 운동장, 유람선선착장, 양화꽃동산 등이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녹색공간] 숲을 숲답게/조연환 산림청장

    “공무원 같지 않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가끔 듣는 말이다.‘공무원 같지 않다.’는 말이 칭찬일까 흉일까? 말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보아 흉 같지는 않다. 공무원은 공무원다워야 하는데 공무원답지 않다는 말이 칭찬이라면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학교마다 교훈이 있다. 초등학교의 교훈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사람다운 사람이 되자.’였다.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다. 모름지기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듯이 공무원은 공무원다워야 하고 선생은 선생다워야 하며 제자는 제자다워야 한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고 나무는 나무다워야 하며 나무들이 모여 이루어진 숲은 숲다워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산림녹화 성공 국가다.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는 ‘애국가를 부르며 산으로 가자.’라고 외치며 산에 나무를 심고 또 심었다. 나무를 심고 기르는 것은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과 같다. 자식에게 때에 맞게 교육을 시켜야 훌륭한 인재가 되듯 나무도 때에 맞게 가꾸어 주어야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있다. 나무는 한 평에 한 그루 정도를 심는다. 하지만 나무가 커 갈수록 보다 많은 햇빛과 양분이 필요하므로 심은 지 10년 정도 지나면 솎아주기를 시작하여 30년이 되면 세 그루 중 한 그루 정도만 남겨 두어야 제대로 생장할 수 있다. 왜 처음부터 세 평에 한 그루만 심지 않고 한 평에 한 그루를 심는가. 나무는 빽빽하게 심어야 서로 경쟁을 하며 위로 곧게 자라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심으면 가지를 옆으로 뻗어 과수나무같이 자란다. 어느 정도 키를 키운 다음 굵게 하는 것이 나무를 키우는 기술이다. 그리고 질 좋은 목재를 얻기 위해서는 나무가 어릴 때 잔 가지를 잘라 주어야 한다. 자식을 키우면서 잘못된 버릇은 어릴 때 고쳐 주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 우리는 나무를 심기만 하고 가꾸지 않아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 평에 한 그루씩 빽빽이 들어 서 있다. 마치 만원 버스 안에 끼인 것처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햇빛마저 넉넉히 받을 수 없어 밑가지부터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나무들이 한창 자라는 청년기에 이르렀는데도 왕성하게 자라지를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형편이 어려워 아들만 공부시키고 딸은 교육을 시키지 못해 한숨짓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똑똑하고 어여쁜 딸자식을 가르치지 못해 안타까움에 늘 한숨을 쉬던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요즈음 자꾸 어머니가 생각난다. 숲은 숲답게 가꾸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고 미루면 우리 숲은 쓸모없는 숲으로 버려지게 될 것이다. 잘 가꾸어진 숲은 좋은 목재를 제공할 뿐 아니라, 공기를 깨끗하게 해 주고 홍수를 막아 주며 야생동식물의 서식지가 된다. 며칠 후면 교토의정서가 발효된다.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하여 숲을 숲답게 가꾸어야 한다. 국토의 64%를 차지하는 숲이 숲다울 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나라의 격(格)에도 걸맞아질 것이다. 다행이 올해부터 일자리 창출을 위해 ‘숲가꾸기 공공정비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우선 2000명의 실업자를 고용해 숲을 숲답게 가꿀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숲을 가꾸며 목재도 생산하는 1석3조의 사업이다. 새해에 듣고 싶은 인사말이 있다.“우리 숲이 숲답습니다. 그 속의 한 그루 나무 같으십니다.” 조연환 산림청장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7) 수라상에 진상한 영덕대게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7) 수라상에 진상한 영덕대게

    서울에서 가장 먼 바닷가를 손꼽는다면 영덕도 빠질 수 없는 곳이다.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먼 길. 이필제가 ‘영해작변’을 통해 조선 후기 변혁운동의 엄중한 파고를 예고했던 곳, 그리고 상놈 출신 신돌석이 의병장으로 나서 신출귀몰 왜군을 무찔렀던 일 등 민중의 역사가 강하게 요동쳤던 옛 예주(禮州)의 땅. 오늘날은 역사의 진실과 무관하게 그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대구·부산은 물론이고 수도권에서도 차량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되었다. 오로지 영덕대게를 현장에서 먹겠다는 집념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에게는 민망한 소리겠지만 사실 ‘남의 살’처럼 맛있는 것이 있을까. 더군다나 딱딱한 껍질 속에 연한 살을 감추어둔 갑각류는 전반적으로 맛이 특별하다. 게나 바다가재가 고급요리인 까닭은 그럴 만 한 이유가 있다. 명태나 기타 잡어로 만드는 게맛살도 기실 대게맛의 복사판이다. 봄철에 서해안의 꽃게가 진미라면 겨울철 동해안에는 대게가 단연 상석이다. 대게는 울진, 영덕, 포항, 울산 등에서 두루 잡히는데 영덕대게가 브랜드를 선점했다. 흑산도 홍어처럼 수산물에서 브랜드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리라. ●길거리서 파는 붉은 게는 영락없는 홍게 길거리에서 붉은 게를 영덕대게라며 팔고 있다. 영락없이 홍게다. 홍게는 수심 600∼1000m의 동해 심해에서 잡힌다. 껍데기가 두껍고 살이 적어 다리를 뜯어 보면 그야말로 ‘꽝’이다. 이 게는 사계절 잡히며 껍질에서 키토산 등을 채취하는 데 이용된다. 가격은 대게와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홍게를 대게로 잘못 알고 사먹거나 속여파는 일은 없어야겠다. 홍게가 심해저 생물이라면 대게는 울진의 왕돌짬으로부터 영덕의 무아짬에 이르는 짬(바위)에서 주로 자란다. 약 120m 이하의 바위밭이 동해변에 이어지고 있으며, 무아짬 안쪽은 고운 자갈과 모래밭이다. 영덕대게는 무아짬 안쪽, 즉 강구와 축산 사이의 3마일 근역이 집중적인 서식지다. 덕분에 게의 내장이 펄을 먹고 자라서 검은 빛을 내는 여타 지방의 대게와 달리 푸른빛이 감돈다. 12월부터 5월까지 5개월여를 조업한다고 하지만 집중적인 어획 시기는 2∼3월이다.11월은 산란이 끝나서 살이 빠져 있고 또 탈피를 하기 때문에 맛이 없다. 게들은 매미처럼 생태적으로 허물을 벗기 때문에 한자로 ‘벗을 해’(蟹)라고 쓴다. 풀어 보면 ‘解+蟲’이다. 김려는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서 당대 조선 후기의 속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이곳 사람들은 큰 게는 천년에 한번 껍질을 벗는다고 말한다.’그러나 김려는 ‘천년에 한번 껍질을 벗는다는 말은 너무 신비롭게 꾸며진 것 같다.’고 정확히 인식하였다. 당시에 영남지방의 어촌에서는 ‘게 껍질로 염전집과 밭의 원두막, 주점의 지붕을 덮었다.’고들 했다. 큰 게가 엄청나게 잡혔다는 증거다. ●큰 게 껍질로 지붕 덮어 대게는 2월 초부터 3월 말까지 살이 바짝 오르면서 알도 꽉찬다. 봄빛이 무르익어 가는 4월부터는 산란을 위해 모래나 펄로 기어들기 때문에 맛이 덜하고 잡히는 숫자도 준다. 대게잡이는 강구, 축산, 대진 세 포구가 중심이다. 보통 1∼2t, 크다고 해야 5t 미만의 작은 배들로 2∼3인이 조를 짜서 출어한다. 현재 법적으로 9㎝ 이하는 못 잡도록 규제하고 있다. 작은 놈은 잡혀도 무조건 방류해야 한다. 일명 ‘빵게’라 부르는 암컷도 방류하기는 마찬가지다. 폭 70m짜리 그물을 15∼16폭이나 놓으니 1㎞에 이르는 그물이 바다에 드리워진다. 수많은 배들이 저마다 이 정도씩 그물을 놓을 터이니 바다밑은 가히 그물밭이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잡아댄다면 대게의 앞날도 어둡기만 하다. 척당 어림잡아 150여마리씩을 잡는데 9㎝짜리는 6000∼9000원,10㎝짜리는 3만원을 호가한다. 뚜껑 크기가 1~2㎝ 차이가 남에 따라서 값이 천양지차다. 실제로 시식해 보니 맛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작은 놈을 선택하여 싸게 먹는 것도 경제적이겠다는 생각이 든다.3인 기준 9마리를 먹으면 7만∼8만원이 들어가니 웬만한 회값보다 세지만 턱없는 값은 아니니 비싸다고 미리 주눅들 일은 아닌 듯싶다. ●영덕대게 으뜸은 검은빛 띤 박달게 영덕대게의 으뜸은 박달게다. 수심이 조금 깊은 곳에서 약간 검은빛이 도는 딱딱한 박달게가 잡힌다. 오랜 경험을 지닌 어부들은 이구동성으로 박달게야말로 ‘진짜 영덕게’라고들 말한다. 마리당 최소 5만∼6만원은 주어야 먹을 수 있으니 웬만한 용기가 아니면 맛보기 어렵다. 강구로 모든 게들이 집산되면서 어느 결에 영덕대게란 브랜드가 탄생했다. 대게는 관행적으로 영덕의 강구항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산물이 집중화된다. 다른 수산물과 달리 이 자그마한 시장에 수요와 공급의 집중이 이루어진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려 수도권까지 나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강구항에서 거래되는 대게가 반드시 영덕에서 잡히는 게만은 아니다. 울진이나 울산에서 잡힌 게도 일단 강구로 들어오면 영덕대게가 된다. 업자들은 단번에 알아내지만 일반인들이 이를 무슨 재주로 구분하랴. 수요가 부족하다 보니 러시아산 킹크랩, 일본산, 북한산 등이 동해의 수족관을 그득 채운다. 북한산이나 일본산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영덕대게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다. 북한산은 전반적으로 박(껍질)이 크다. 동해안 묵호항으로 직접 들어와서 그대로 서울로 직항한다. 서울에서 큰 게를 만나면 십중 팔구 러시아산이거나 북한산일 것이다. 영덕대게는 껍질이 얇고 노란 분홍빛이 돈다. 그래서 단연 다른 게들과 구분된다. 게 껍질에는 아스타산틴이 단백질과 결합되어 있다. 단백질과 아스타산틴의 결합도는 그다지 강하지 않아 섭씨 70도만 가열해도 쉽게 끊어진다. 삶은 게의 색조가 붉게 변하는 것은 이 아스타산틴이 단백질과 분리되면서 본디 자기 색깔을 되찾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게가 인기를 모으면서 대게를 둘러싼 지자체 간의 싸움도 치열하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울진대게를 임금에게 진상한 것으로 방영되자 영덕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대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관광 수입이 영덕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울진에서도 대게가 많이 잡히고, 포항 구룡포는 물론 울산의 정자에서도 다량 포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람들은 영덕대게라고 부르고 있다. 수산물도 브랜드를 선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여기에서도 실감하게 된다. ●차유마을앞 죽도 근역서 많이 잡혀 영덕군은 축산면 경정리의 차유마을을 ‘영덕대게 원조마을’로 지정하고 원조 싸움의 기선을 선점했다. 오랫동안 어촌계장을 해온 김수동씨는 차유마을의 경우 배 한척으로 벌어들이는 연간 어획고가 1억여원에 이른다고 말한다. 출어비를 포함한 제반 경비를 제하면 5∼6개월 동안 5000만∼6000만원을 버는 셈이니 상당한 고수입이다. 봄이 오면 자연산 미역이 출하되므로 그야말로 자본을 별로 들이지 않고 그대로 바다에서 건져서 내다팔면 돈이 되는 일이다. 가을에는 연안 오징어가 대량으로 잡히며, 다시 겨울이 오면 대게잡이에 나선다. 즉 미역, 오징어, 대게가 삼박자로 돌면서 차유 사람들의 생계를 이끄는 것이다. 차유마을에서 바라보자면 축산항 쪽으로 돌출된 죽도가 보인다. 대나무가 빼곡하게 우거진 가파른 섬이다. 죽도같이 연륙된 동해의 섬들이 숱하게 존재함을 볼 때, 동해안에 섬이 없다고 함부로 단언할 일이 아니다. 죽도 주변으로부터 차유마을 근역까지는 같은 영덕에서도 대게의 으뜸 서식지. 그래서 죽도에서 비롯됐다는 의미에서 대게(竹蟹)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그런데 김려는 대게의 붉은빛을 보고 조선 후기에 이를 자해(紫蟹)라고 이름 붙였다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대게의 껍질 속에는 능히 7∼8말이 들어간다. 게의 넓적다리와 집게발은 살지고 맛이 좋아 이곳 사람들은 포를 만들어 먹는다. 색깔이 선홍빛이어서 보기 좋으며, 맛도 달콤하고 부드러워 정말로 진귀한 음식이다.’고 했으니 당시에도 게는 진귀하고 값진 고급음식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고관대작들의 술안주로도 단연 인기일밖에.‘진해 남문 밖에 있는 두 군데 화류거리, 거리 입구 초가집에는 집집마다 술집 간판, 새로 온 예쁜 아가씨 고운 흰 손으로 검은 소반에 대게 살 담아 내온다.’고 우산잡곡(牛山雜曲)에 적혀 있다. 오늘의 영덕만이 아니라 저 멀리 진해에서까지 두루 잡혔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만큼 대게 분포가 좁아졌다는 뜻이다. 영덕을 찾는 이들이 반드시 들렀다 가는 영해장은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거래 규모가 큰 시장이었다. 멀리 영천은 물론 울진·영양·진보·안동에서까지 상인들이 찾아들었다. 조선 후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도 주거래 품목에 해산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말하자면 동해 남부의 유력한 수산물 거점이 영덕이었다는 증거다. ●영덕대게와 쌍벽 이루는 털게도 멸종위기 대게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잊을 수 없는 게가 있으니 영덕대게와 쌍벽을 겨눌 만한 털게다. 한류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통이며 다리가 온통 털로 뒤덮인 주먹만한 털게를 쪄서 먹는 맛이란 그야말로 식도락의 으뜸이다. 그런데 겨울철 털게는 휴전선 근역 고성 근처에서나 어쩌다 볼 수 있을 뿐 서울 같은 도회의 저자거리 시장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조선의 수산’(1930·조선수산회 발간)을 보면 1928년 1년간 수출 수산물의 6할이 털게와 대게 통조림이라고 했다.1910년 겨울에 이미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에서 처음으로 털게 통조림공장이 설립되었다. 이렇듯 흔하던 털게들이 남쪽에서는 희귀종이 되었고, 북한쪽에서 겨우 잊지 않을 정도로 잡힐 뿐이다. 적절하게 보호·통제하지 않으면 쉽게 멸종한다는 섭리를 털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덕대게의 미래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대게의 원조인 박달게가 거의 잡히지 않음은 자원고갈을 방증한다. 그러니 알이 꽉찬 ‘빵게’를 먹으면서 “역시 대게는 맛있다.”고 즐거워할 일이 아니다. 빵게잡이 자체가 불법이니 판매도 불법이고, 먹는 것 또한 불법이다. 맛있다고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빵게 어획을 신고하는 정신’도 함께 기를 일이다.
  • [열린세상] 현충사에 대한 단상/이덕일 역사평론가

    아산이 고향인 필자 같은 사람은 현충사에 대한 감회가 조금 남다르다. 아산 사람들은 4월28일을 잊지 않는다. 이순신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4·28이 토요일이었는데 학교에서 갑자기 금요일과 맞바꿔 오후 수업까지 연장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시골 초등학생들이 기웃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나와 몇몇 급우들이 10리 길을 걸어서 찾아간 현충사는 땅거미가 짙게 깔려있었고, 잔치는 이미 끝나 있었다. 이런 현충사가 우리를 부른 것은 중학교 방학 때였다. 중간 점검하는 날 학교 대신 현충사에 가서 현충사와 충무수련원을 청소해야 했다. 몇 년 선배들은 나무 한 그루씩을 할당 받아 키워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현충사의 아름다운 조경은 이렇게 아산에 사는 어린 아이들의 노력동원도 일부 들어간 결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산에 살 때 새해 첫날이면 필자는 주위의 친한 사람들과 현충사를 방문하곤 했다. 현충사 입구의 “반드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반드시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必生卽死 必死卽生)”는 이순신 장군의 입석 앞에서 한 해의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순신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자연적으로 떠올려지던 영웅이었다. 인질생활을 했던 북벌 군주 효종은 홍문관에서 지어올린 이순신의 비문을 읽다가 순절하는 대목에 이르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고 회고했다. 아산의 유생들이 백암리에 사당을 세운 것은 숙종 32년(1706년)이었고, 그 이듬해 조정에서 현충사란 현판을 내려주었다. 사액서원 현충사는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문을 닫았으나 을사늑약 이듬해인 1906년 아산의 유생들은 그 터에 유허비를 건립해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슬퍼하며 왜군을 수장시킨 이순신을 기렸다.1931년에 동아일보사가 주도해 충무공유적보존회를 결성하고 성금을 모금해 이듬해 사당을 짓고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것도 일제 지배하에서는 의도적인 행위였다. 광복 이후의 이순신 기념사업은 박정희 정권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자유당 때의 기념사업회 회장은 정권의 2인자 이기붕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Lee line)을 넘은 일본 어선을 나포해 기념사업기금으로 쓰라고 주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순신 기념사업이 국가적 행사로 격상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애국군인의 표상인 이순신 장군에 대입시켜 군사쿠데타를 합리화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런 구도에 따라 현충사 강역은 1967년도에 16만 3096평(34만 2111㎡)으로 크게 확장되었고,1969년에는 노산 이은상이 ‘성웅 이순신’을 발간하면서 ‘영웅’ 이순신은 ‘성웅’ 이순신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면서 앞서 말한 대로 아산의 어린 학생들도 노력봉사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노력봉사한 아산시민 중에 10리길을 걸어와서 돌봐야 했던 나무를 뽑아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은 없다. 오히려 그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며 대견해한다. 현충사를 정권 합리화의 장으로 이용했던 정권은 사라졌지만 현충사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휴식공원으로 남아 아산 시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권은 짧고 역사는 길다는 방증이다. 예수는 자신을 정치로 끌어들여 잡으려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고 절묘하게 답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었다. 가이사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어찌 구분하느냐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런 사람들이 사랑을 받기도 하는 분열의 시대지만 역사유적만큼은 정치에서 초월해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과 더불어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소박한 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문화정책을 기대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그 영지가 아이들 미래…” 지율스님 단식중단

    ”그 영지가 아이들 미래…” 지율스님 단식중단

    고속철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하며 100일째 단식을 해 온 지율(48) 스님이 3일 단식을 풀었다. 이강진 국무총리 공보수석은 이날 밤 “정부는 3일 오후부터 밤 늦게까지 지율 스님측과 최종 협상을 벌인 결과, 3개월 동안 환경영향 공동조사를 벌이되 정부는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지율 스님은 단식을 중단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율 스님은 이날 밤 10시40분쯤 단식을 풀고 정토회관에서 요양에 들어갔다. 또 공동조사단의 조사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사를 진행하되 정부와 지율 스님측이 인선한 공동조사단이 3개월간 환경영향공동조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동안 지율 스님이 요구해 왔던 ‘3개월간 터널 발파공사 중단’이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공동조사단의 요청에 따라 필요시 부분적인 공사의 중단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공보수석은 “정부는 공동조사단의 활동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필요하다면 일시적으로 발파를 중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실제로 조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공사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는 3개월간의 환경영향 공동조사기간 동안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면서 “지율 스님측과 정부측의 공동조사단이 구성되면 정부로서는 조사단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수용할 것을 정부와 지율 스님측이 동의했다.”면서 “공동조사단의 결과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없더라도 관습적으로는 구속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정부측 인사 7명과 지율 스님 등이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 7명 등 14명으로 구성키로 합의했다고 남영주 국무총리 민정수석이 밝혔다. 서울 서초구 정토회관의 법륜 스님은 “지율 스님이 정부와 국회, 종교 지도자, 국민의 여망을 받아들여 단식을 끝내고 건강을 회복하기로 했다.”면서 “한국 사회에 많은 갈등이 있어왔는데 이 문제가 해소됨으로써 화해와 희망이 꽃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경호 이효용기자 jade@seoul.co.kr ■ “그 영지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길…” 지율 스님은 정부와 합의를 한 3일 밤 ‘단식을 풀며’라는 제목의 편지를 써 공개했다. 다음은 편지의 전문이다. 힘겨운 시간에 함께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든 생명과 우리들이 둘이 아니라는 데서 천성산 이야기를 시작했으며 지금은 대립되는 듯 보이는 정책과 저희들이 동화처럼 쓰는 도롱뇽의 이야기가 둘이 아니라는 데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미숙함으로 인해 많은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이제 마른 땅에 심어진 생명의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그 영지가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함께하여 주신 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일어서겠습니다. 2005년 2월3일 지율 합장
  • 연휴 어디로? 외암리 민속마을

    연휴 어디로? 외암리 민속마을

    설에는 추억이라는 즐거움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재미가 쏠쏠하다. 금방 동심으로 빠진다. 마을 앞 개울에서 썰매를 타며 뛰놀던 일, 마을 동산에서 그네타고 널 뛰던 일…. 기억 저편에 있던 아련한 추억으로, 향수로 젖어든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전통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아득한 옛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고향 마을에는 이미 아파트 등 콘크리트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도심과 다를 바 없다. 이럴 때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민속마을이나 한옥마을을 돌아보면 어떨까.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땐 이랬다.’며 어린시절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아이들은 이번 설을 특별히 추억할 것이다. 어느때 보다 긴 설 연휴. 고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옥마을을 체험하며 하루를 보내도 좋고, 자투리 시간으로 민속마을을 둘러봐도 좋을 듯하다. 설을 앞두고 옛 모습을 간직한 채 60여 가구가 다정하게 모여사는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을 찾았다.500년 전의 정취가 살아 숨쉬는 외암리의 풍경속에 빠져보자.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전 과거 속으로 충남 아산시와 천안시의 경계인 광덕산 밑에 자리잡은 외암리 민속마을은 어린시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주민들이 충청지방 고유 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 등 옛 모습을 지켜나가고 있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외지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소박한 충청도의 인심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개울 돌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의 환호성이 다정하게 메아리쳤다. 마을을 흐르는 개천에서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과 뒷산에서 그네와 널을 뛰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마을은 생동감이 넘쳤다. 겨울 민속마을은 쓸쓸하고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던 전자홍(15·천안 목천중 2년)양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초가과 장승, 연자방아를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돌담장을 따라 들어가자 고향의 정취가 느껴진다. 일부러 만든 민속마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일부 고택을 빼놓고 모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삶의 정취가 묻어난다. 어른 키 높이의 돌담 길이는 모두 5.3㎞. 가옥은 주인의 관직에 따라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교수댁, 종손댁, 송화댁 등 택호가 정해져 있으며 곳곳에 있는 장승과 연자방아 등이 정겨운 장면을 연출했다. 메주가 널려있는 흙담벽의 초가에 들어가자 주인 내외가 반갑게 맞았다. 전형적인 농촌 가옥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군직(39) 이은숙(39)씨 부부. 마을 총무를 맡고 있다. 이 곳에서 자란 이씨 부부의 마을 자랑이 시작됐다. 이씨는 “옛 사람은 집터를 정하는데 바람과 물, 주변 환경과 지리, 나아가 인심까지 두루 살폈다.”면서 “외암마을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삶터를 정해 수백년을 살아왔는지 읽을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이 곳은 지난 2000년 1월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 326호로 지정돼 보존중이다. 이씨가 마을을 안내했다. 먼저 찾은 곳은 참판댁. 조선말기 규장각 직학사와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공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아 지은 집이다. 이 집에서는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민속주인 연엽주를 만들어 팔고 있다.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연엽주는 누륵에 연근과 솔잎을 넣고 발효시킨 술로 예전에는 매년 봄에 고종에게 진상되던 술이다. 인근의 송화댁은 최근 도둑이 들어 바깥 문짝을 떼가는 바람에 복원하는 홍역을 치렀다. 마을이 보존된 유래도 들을 수 있었다. 이씨는 “초가를 없애던 새마을운동의 개량사업 바람이 덜 미쳤기 때문에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면서 “당시 주민들은 초가지붕만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해 왔다.”고 설명했다. ●외암리에서는 시인이 된다 외암리의 아침은 고즈넉했다. 닭울음소리가 꿈결인 듯 들려왔다. 조금 뒤 개짖는 소리와 동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선잠속에 들렸다. 아침밥을 짓는 장작불의 연기가 구수했다. 늦잠을 청했으나 머리맡으로 다가온 햇살이 잠을 깨웠다. 따끈한 구들방을 뒤로 한 채 벌떡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초가지붕에 소담하게 쌓인 눈과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65가구가 모여사는 외암리에서는 초가 체험을 할 수 있는 민박집이 10여가구에 불과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집이 그리 넓지 않아 한 집에 1∼2가족만 묵을 수 있다. 가격은 4만원. 인심좋은 주인을 만나면 아침에 토종 청국장과 된장, 두부 등을 맛볼 수 있다. 예약은 마을 공방(041-541-0844)이나 외암리 민속마을 홈페이지(www.oeammaul.co.kr)에서 하면 된다. 때마침 마을에서 열린 ‘맹사성 시조캠프’를 찾았다. 인근에 조선시대 청백리로 이름난 맹사성의 고택이 있어 올해 처음 개최된 행사. 마을 서당에 모여 앉아 한복을 입고 한시 백일장에 참가한 아이들의 모습이 이채롭다.2박 3일간의 캠프가 끝나고 열린 백일장에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일곱살짜리 소년 윤무창군이 ‘신나는 겨울’이라는 제목의 시조를 지어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글을 깨치기도 어려운 나이에 운율에 맞춰 시조를 지어냈기 때문. ‘겨울에/친구들과/형들과/함께논다/눈싸움/하고놀고/눈사람/만들면서/너무나/재미있는날/춥지않은/겨울날.’ 무창군은 “형들과 초가에서 잠을 자고 썰매타며 논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인 한국시조문학진흥학회 김준 자문위원장은 “중학생들도 운율에 맞추지 못하는데 취학전 어린아이가 시조를 지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놀라워했다. 무창군은 이날 심사위원들로부터 장원에 버금가는 ‘차상’을 받았다. 무창군의 형 무제(12·아산 송남초등교 5년)군도 ‘하얀 겨울’이라는 시조로 함께 차상을 받았다. ‘저는요/송이송이/눈같은/마음될래요/불타는/내가슴을/차갑게/지울래요/저같은/검은마음도/하얀마음/될래요.’ 외암리의 아름다운 풍광이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시인으로 만들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한편 이 곳은 넉넉한 충청도 인심만큼이나 후하다. 주차료와 입장료가 없다. 또 마을 주민들이 다른 민속마을처럼 상업화가 되는 것을 꺼려 흔한 음식점이나 토산품점도 없다. 마을 주차장 앞에는 전통음식인 솔뫼장터(544-7554)가 있는데 수수에 동부콩을 넣어 만든 수수부꾸미(4개 4000원)와 잔치국수(3000원)가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해준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할 경우 아산(옛 이름은 온양)버스터미널에 내린 뒤 강당골행 버스를 타고 가다 외암리에서 내리면 된다.40분 간격이며 40분이 걸린다. 승용차로는 경부고속도로 천안IC와 서해안고속도로 평택IC에서 빠져나와 온양, 송악방면으로 국도를 따라 오면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문의는 외암리 민속마을 관리사무소(041)544-8290. 외암리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이곳도 들러보세요 민속마을에는 아련한 향수가 있다. 고향의 멋과 맛이 스며 푸근한 곳이다. 설 연휴 잠시 짬을 낸다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생활모습과 전통, 문화를 고소란히 만끽할 수 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멋스러운 한옥을 돌아보며 신명나는 전통공연과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번 설에는 ‘만사형통만복래 설날 한마당’을 벌여 설 연휴기간인 8∼10일 민요 농악공연과 민속놀이 체험뿐만 아니라 차례상 차리기 강좌, 한복 입는 법, 세배하는 법 등도 배울 수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복을 입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에게는 우리집 가훈을 써주는 행사도 열린다.(02)2266-6937. 강원도 고성군 왕곡마을은 북방식 전통한옥인 양통집 21동이 옹기종기 모여있다.19세기 전후에 지어진 가옥들은 송지호 호수 뒤편에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5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6·25때도 폭격 한번 당하지 않았다. 속초에서 7번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송지호를 지나 왕곡마을에 이른다. 문의는 고성군 홈페이지(www.goseong.org)나 대표농가(033)631-1902. 충북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이 생기고 마을이 물에 잠기자 청풍면 일대에 있던 유물을 옮겨와 재현한 마을이다. 마을에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옛 농가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볼 수 있다. 보물 528호인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때인 1317년 연회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 이 곳에서 보는 호수 풍경이 일품이다.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에서 82번 지방도를 따라 청풍방면으로 가면 된다. 제천시 홈페이지(www.okjc.net)나 관리사무소(043)640-5711. 조선시대 경주지방의 유교문화를 볼 수 있는 마을. 고풍스러운 가옥 150채와 정자와 비각, 강학당 등 전통 가옥 15곳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남부지방 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중요민속자료 제 189호로 지정돼 있다. 관리사무소(054)762-4213.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마을. 낙동강변의 기암절벽과 송림을 배경으로 양진당과 충효당, 북촌댁 등 사대부 전통가옥과 함게 흙벽 초가집 등 130호가 모여 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인 하회탈로 유명하며 병산탈과 양반탈 등 9개의 하회탈이 국보 제 121호로 지정돼 있다. 문의는 홈페이지(www.hahoe.or.kr)나 관리사무소 (054)854-3669.
  • 아시아 6개국 ‘어린이 드라마’

    아시아권 어린이들이 함께 보며 ‘또래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성장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선보인다. EBS는 8일부터 3일 동안 오후 7시15분에 아시아 6개 나라가 모여 함께 만든 ‘ABU 어린이 드라마 시리즈 6부작’을 연속 방영한다. 이 시리즈는 지난 2002년 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ABU) 어린이 TV 프로그램 아이템 교환회의에서 “어린이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 공감해 본격적으로 구상된 것. 아시아권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어린이 프로그램 공유 프로젝트다. 이번에 참여한 국가와 방송사는 한국의 EBS를 비롯해 중국 CCTV//RTPRC, 홍콩 RTHK, 일본 NHK,, 말레이시아 RTM, 몽골 MRTV 등이다. 이들 6개국가들은 ‘어린이의 정신적인 성장’을 주제로 지난해 초부터 의기투합, 드라마의 내용과 이야기 구조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7∼9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15분짜리 드라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문화 속 어린이들이 화면과 표정을 통해 드라마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대사는 가능한 한 줄였고, 더빙과 자막은 넣지 않았다. 필요한 이야기 전개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통해 진행된다. 1부에서 소개될 드라마는 한국 작품인 ‘겁쟁이 내 이’. 축구를 좋아하는 8살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은 이빨 빠진 동네 꼬마들이 만든 일명 ‘빠진 이 축구팀’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이가 빠지지 않아 들어가지 못한다. 소년은 겁이 나지만 축구팀에 들어가려고 이를 빼기로 결심한다. 2부는 홍콩 작품 ‘나무의 숨소리’. 시끄러운 홍콩의 소음 속에서 나무가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3부는 중국의 ‘메이찌앙의 약속’으로 한 시골소녀가 여배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고군분투한다는 내용.4부 몽골 작품 ‘망아지와 나’는 늪에 빠진 망아지를 구출하려는 한 몽골인의 이야기를 다뤘다.5부 일본 작품 ‘오믈렛’은 아빠를 감동시키기 위해 오믈렛을 만드는 두 소년의 모습을 그렸으며,6부 말레이시아 작품 ‘나무타기’는 또래그룹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무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소년의 용기와 인내심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EBS측은 “해외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는 게 대부분인 아시아권 국가에는 아시아 어린이를 그린 드라마들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올해 부터는 이란·이집트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와,20여개 국이 18년째 비슷한 제도를 운영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도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5만평 동백숲 만들기 23년 양언보씨

    “세계적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주인공 비올레타가 번갈아 들고 나오는 흰 꽃과 붉은 꽃은 바로 동백입니다. 그래서 ‘춘희’(椿姬), 즉 ‘동백아가씨’로 번역되지요.” 양언보(61·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상창리 271)씨는 ‘동백아저씨’로 통한다.23년 전 어느날 굴삭기를 동원,‘대학나무’로 불리는 자신의 감귤나무밭을 확 갈아 엎었다. 이어 동백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미친 사람’이라고 다들 손가락질했다. 극구 말린 부인과는 이혼의 위기까지 갔다. 하지만 오로지 동백나무 심기에만 전념했다. 또 중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기름을 짜는 동백나무 씨앗을 주머니에 슬쩍 넣어오기도 했다. 내친 김에 사업을 해 번 돈을 몽땅 ‘동백언덕 만들기’에 쏟아부었다. 집념의 결실이 맺어졌다. 지난해 상창리 일대에 ‘카멜리아힐’이라는 5만여평 규모의 동백나무숲이 장관처럼 조성된 것. 제주도 자생의 동백을 비롯,180여종의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원래 동백나무는 거제도 등 남해안 섬지방에 군락지로 널리 퍼져 있으나 양씨처럼 개인이 동백나무 수목원을 가꾼 것은 극히 드문 일이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양씨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근 ‘동창아, 동창아 노오올자’라는 주제로 ‘춘(椿)페스티벌’을 열었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임동창, 아쟁 연주자 김영길, 사물놀이패 진쇠 등을 초청해 한바탕 동백축제를 벌인 것. 그가 동백나무에 애정을 쏟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감귤나무의 수익성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최소 10여년 뒤의 감귤나무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두번째는 어릴 때부터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을 너무 좋아했던 까닭이다. “동백은 우리 생활과도 친숙하지요. 혼례식에서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굳은 약속의 상징으로 통합니다. 또 옛 여인네들의 머릿기름으로도 사랑받아왔지요.” 그는 동백사랑 실천을 위해 “비올레타 같은 ‘동백아가씨’ 축제를 매년 열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카멜리아힐(www.camelliahill.co.kr)을 사랑하는 ‘카사모’를 결성했다. 제주 김문기자 k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6) 김제 심포갯벌과 망해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6) 김제 심포갯벌과 망해사

    고깃배 두어척이 심포항에 닻을 내린다. 어선이 겨우 닿는 자그마한 포구가 제법 커져서 민박집, 횟집이 즐비하지만 불황 탓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제땅에 들어서면 늘 찾게되는 곳, 바로 심포갯벌이다. 심포갯벌은 새만금 갯벌의 깊숙한 안쪽을 말한다. 사실 ‘억만금’을 발견이라도 하 듯 억지로 지어진 새만금이라는 명칭부터 작위적이고 거북스럽다. ●심포갯벌은 새만금갯벌의 깊숙한 안쪽 군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까지 망망대해로 이어지는 흑갈색의 ‘바다 들판’이 펼쳐지고,‘징게멩게 외야미들’의 누런 들판이 비슷한 넓이로 뭍을 덮는다. 1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치수시설인 벽골제가 지척이니 예로부터 쌀농사와는 불가분인 곳이다. 지평선 없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러나 일제의 수탈적 농업정책에 의해 동진 만경강이 간척되고, 가난한 농민들이 피땀을 흘리면서 일본인 농장주와 척식회사의 채찍에 내몰리면서 개간한 들판이다. 전국 각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면서 개딱지 같은 집에서 짐승처럼 살면서 울부짖던 통한의 땅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산된 쌀은 지금의 새만금을 빠져나가 군산에 집결돼 모조리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황금들판의 끝에 황금갯벌이 이어지다가 이윽고 갈색의 바다로 수렴되는 심포갯벌의 망해사를 찾아든다. 바다를 굽어보는 뛰어난 절이라면 으레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 따위를 내세우리라. 바위 끝에서 그대로 부서져 내리는 낙산사의 씩씩하면서도 장엄한 우조, 미려청고(美麗淸高)하고 애원처절한 향일암의 계면조, 이 모두 빼어난 절창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망해사의 해조음(海潮音)도 그에 못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 망망대해로 펼쳐진 갯벌을 마주보고 있어 밀물 썰물에 따라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까닭이다. ●앞마당이 갯벌인 망해사 망해사에는 앞마당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기도 하고, 무한히 넓기도 하여 무량(無量)이다. 무망한 갯벌이 모두 앞마당인 탓이다. 그래서 망해사 앞에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바다가 절을 부르고, 절이 바다를 부르나니!” 김제땅 진봉반도의 윗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 처처불불(處處佛佛)인데 초가삼간이면 어떻고, 거창한 내력이 또한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곳에 눈발이 나부끼고 절집의 큰나무가 바다로 굽이쳐서 흔들린다. 눈발에 감싸인 낙서루에 앉아 눈을 감는다. 그 옆에는 청조헌(聽潮軒)이 있다. 말 그대로 물결의 소리를 듣는 곳. 소녀들의 시구에 등장하는 해조음보다도 청조음은 얼마나 걸찍한가. 가히 서해다운 표현이다. 계곡물이나 강물소리를 듣는 정자나 불당은 널렸지만 앞마당에서 밀물 썰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하던가. 질퍽거리는 갯벌로 나간다.20분쯤 걸었을까. 북쪽으로 군산항이 손 끝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고군산열도의 섬들이 줄지어 서 있는 그곳에 새만금간척지의 둑방이 멀리 시야를 가로지른다. 해가 지고 있다. 망해사 앞마당 갯벌에서 마주하는 일몰, 서해 낙조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갯벌 위에 깔리고 있다. 끝내 갯벌이 사라지고, 아스팔트 포장이 깔릴지 모른다. 서해는 애초부터 바다가 아니라 중국과 연륙된 뭍이었다. 빙하가 흘러내려 서해가 창조되었다. 운동은 사물을 변화시켰다. 뭍에서 실려온 미세한 퇴적물이 쌓이면서 갯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8m에 이르는 조석간만의 차이는 드넓은 조간대를 형성했다. 오랜 조석운동의 결과는 질과 양의 변화를 가져와 바닷가에 변증법의 지평을 쌓았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갯벌이 형성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억겁이지만 지구 나이로 보자면 이 갯벌의 나이는 청년기에 불과한 고작 8000년. 갯벌 생성은 서해안의 조석 변화를 끊임없이 반복해 온 ‘청년운동’이라고 표현함이 어떨른지. 너무 흔하면 소중한 줄을 모르는 법일까. 영국, 독일,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해 해안, 캐나다의 동부 해안, 미국 동부의 조지아 해안, 남아메리카 아마존 하구 등 일부 지역에서만 갯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배운다. 수차례 새만금을 찾았던 독일 홀스타인갯벌센터의 켈러만 박사는 새만금의 종다양성에 관해 “세상에, 이런 갯벌이 있다니….”라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증산·수출·건설을 지고의 좌표로 삼고 자란 우리는 간척지가 우리를 먹여 살릴 유일한 해법인 줄로만 알았다.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바다는 이미 결단이 나있었다. 갯벌이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동죽을 캐던 심포 아낙들이 부지런히 서두르는 것을 보니 물이 들어올 시간인가보다. 망해사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흡사 등대처럼 느껴진다. 갯벌을 마구 없애버리는 혼돈을 일깨우는 등대 같다. 동죽을 하나 집어든다. 나이테가 분명하다. 나무만 나이테가 있는 게 아니다. 여름 나이테는 성기고, 겨울에는 촘촘하게 선이 그어져서 삶의 흔적을 분명히 보여준다. 연륜뿐 아니라 조석에 따라 물이 들어오고 빠질 때 나타나는 성장의 결과물인 일륜까지 온몸으로 보여준다. ●토양 정화시키는 수많은 게 구멍 물이 들고 나는 매일매일의 일기를 자신의 몸에다 직접 쓰는 셈이다. 고작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생일잔치, 출생신고 따위의 통과의례로 연륜을 확인할 수 있는 인간과는 그런 점에서 확연히 대비된다. 하찮은 조개같은 미물 하나에도 생명의 숨겨진 역사가 각인되어 있다. 물이 들어오자 갯벌의 수많은 구멍마다 난리가 난다. 먹이의 사슬 속에서 적자생존의 삶을 체득해 살아남기 위해 갯벌에 은신처를 마련한 게. 그 구멍 깊숙이 밀물이 채워지자 마침내 그 은신처에서 몸을 뺀 미물들의 시간이 된다. 그들이 죽도록 파헤치는 노동 덕분에 신선한 물이 구멍을 통해 갯벌 지층의 썩은 흙을 정화시킨다. 구멍들의 어마어마한 정화작용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무심코 잡는 갯벌의 게, 별다른 경제적 이득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게들을 잡아다 파는 무심한 ‘살인’은 이제 그만 둘 일이다. 심포갯벌만 하더라도 게들이 정화공장 수십개 이상의 역할을 공짜로 해준다. 갯벌전문가 서울대 고철환 교수(지속가능발전위원회위원장)는 “찬반 논란을 떠나 생명체를 살리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정리한다. 서해안 갯벌 연구의 메카로 나아가고 있는 서해수산연구소 갯벌연구센터 조영조 소장은 “만경강 동진강은 탯줄, 갯벌은 태반”이라고 말한다. 탯줄과 태반, 그보다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새만금 일대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찬반 논란을 넘어서 실사구시적으로 데이터를 축적, 분석하고 있는 송재희 박사는 “해수 유통만 제대로 보장된다면 새만금을 충분히, 그것도 일시에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천만 다행이다. 마침 법원에서 선택을 요구하고 있으니, 새만금을 살리는 문제는 이제 국민 모두의 손으로 공이 넘어온 셈이다. 해수를 유통시켜 갯벌과 생명체들을 영구히 살릴 것인가, 아니면 갯벌을 땅으로 만들어 농사라도 지을 것인가. 환경운동연합의 장지영 갯벌팀장은 “쌀이 남아도는 마당에 갯땅으로 국가적 투기판이라도 벌일 것인가.”고 되묻고 있다. 반면에 ‘새만금완공연대’라는 지역조직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이기’를 선언하고 있다. 이제 새만금을 둘러싸고 각각의 다른 시각을 보였던 이들에게 마지막 답이 제시될 시간이 착착 다가오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모든 선택 권이 양측에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법원도 사실 최종적 결정권한이 없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왜 갯벌의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가. 정작 그들이야말로 이 갯벌의 주인 아닌가. ●죽어가는 생태자원의 보고 완강하기만 한 ‘토건(土建)국가’에서 풍전등화의 석양을 지켜보는 망해사의 저 등대 불빛은 언제 꺼질까. 서해안의 8000년 청년운동사를 우리는 단 몇 년의 간척사로 대체시키고 있다. 법원 결정을 놓고서 사회적 논란이 재연되고 있으나 토론하고 동의를 구할 시간은 거의 없다. 죽어가는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들에게 남은 시간, 선택의 여지는 아예 없다. 문득 망해사와 인연을 맺은 진묵스님을 떠올린다. 비승비속처럼 살다간 그의 행장은 거의 알려지지 않다가 다산 정약용과 늘 마주하였던 대둔사의 초의선사가 편찬한 ‘진묵조사유적고’를 통해 겨우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다. 조선 중기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한 소리를 남기고 떠난 거인. 초의는 그를 두고 ‘석가여래의 응신(應身)’이라는 헌사를 올렸다. 남은 기록이 몇 줄이라면 민중의 구전 역사책은 수십권이니 그를 생불(生佛)로 여기는 전설이 지금껏 유전되는 것 아니겠는가. 김제 만경의 심포에서 지척인 불거촌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을 잊는 법(得魚忘筌)”이라고 했다. 토건국가를 그만 지향해도 될 법한데 여전히 토건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에 관하여 그는 무어라 했을까. 끝내 바다를 굽어보는 망해사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망륙사(望陸寺)’를 택할 것인가! 잘못되면, 훗날 이곳에 다시 와 관해기가 아닌 관륙기(觀陸記)를 써야할지도 모른다. 그 얼마나 참담하고 민망한 일이겠는가.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재산만 챙기고 부양 떠넘기는 형수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재산만 챙기고 부양 떠넘기는 형수

    저는 2남 2녀의 차남입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드셔서 형과 함께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이 살면서 지내다 보니, 형수가 아버지를 조금 불편하게 생각했습니다. 형수는 부모님께 재산을 조금 달라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며느리의 부탁도 있고 며느리에게 잘보일 마음에 새로 산 아파트를 며느리 이름으로 등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등기를 마친 2∼3개월 뒤 저는 형으로부터 “부모님을 너도 좀 모셔야 할 것 아니냐. 모시고 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모실 수 있지만, 아버지가 맏며느리에게 준 그 아파트를 도로 찾고 싶습니다. - 한명수(가명) - 참으로 한심한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찾지 못하겠군요. 맏며느리는 시부모로부터 재산을 받고나서는 “이제는 부모를 모실 필요가 없어졌다.”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재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재산 없는 부모님은 누가 모실 것인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부모는 재산을 주었을까요. 앞으로 노인들도 자식들에게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독립해 살아갈 방도를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은 교육의 기본이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효도하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성공한 사람치고 집안에서 부모에게 불효하였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혼례식 주례를 하면서 노상 인용하는 말은 부디 효도하라는 말입니다. 얼마전에 한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해 80세의 노인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입니까.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만 있어도 이런 비극은 면할 수 있었을텐데…. “나무가 조용히 서 있고 싶으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樹慾靜而 風不止 )자식이 봉양하고 싶으나,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도다.(子慾養而 親不在)”라고 읊은 효자도 있는데 오늘날은 왜 이 모양인지….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풍습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아들이나 딸이 모두 부모를 모실 형편이 못된다고 핑계를 댈 때, 부모는 가정법원에 부양조정이나 부양심판을 청구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요. 그러면, 법원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ㆍ검토해 부양의무자, 부양방법(같이 살면서 부양할 것인가, 아니면 요양시설에 모시고 부양료를 지급하도록 할 것인지 여부), 부양정도 등을 결정하게 되지요. 만일 법원에서 부양에 관한 심판을 내렸는데도 의무자들이 이를 지키지 아니할 경우는 강제조치가 내려집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나 며느리, 사위에게 재산을 미리 증여한 경우 이를 도로 찾을 수 있는가. 증여계약은 일단 이행돼 버리면 이를 도로 찾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새로운 판례가 나와 이를 도로 찾을 길이 열렸습니다. 판례를 보면,“너는 부모를 잘 모셔라. 병원에도 모시고 가야 한다. 만일 내가 죽거든,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붙여서 부동산을 넘겨줬는데 넘겨받은 자식은 약속을 어긴 사건이었어요. 이 질문의 사건에서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는 있으나, 그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고 나아가 과연 그와 같은 조건부로 주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증명할 수 있을지…. 사실, 자녀들이 재산을 바라거나 재산의 대가로 부모를 모신다면 진정한 효도라고 말할 수 없지요. 이 사건과 같이 부모를 모신다고 재산을 받고는 돌아서서 안 모신다고 하는 경우, 부모는 물론 다른 자녀들도 맘속으로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꼭 그 재산이 탐나서가 아니라, 그 며느리가 미워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모든 문제를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마시고, 우선 대화를 시도해 보고 최후로 부모님의 의견도 들어본 후, 법에 호소하는 길을 모색하시기 바랍니다. 법적분쟁 그 자체가 불효가 되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으니…. 필자가 취급한 사건 중에는 부자간의 소송 도중 연로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건도 있었어요.
  • [녹색공간] 새해에 부르는 ‘컵의 노래’/오한숙희 여성학자·방송인

    “그래, 우리도 이제부터는 절대 종이컵을 쓰지 맙시다.” 손에 잡히는 환경운동의 실천을 호기롭게 결의하긴 하였으나 종이컵을 쓰지 않기로 한 첫날부터, 우리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더니 사흘쯤 지나자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요. 컵을 씻을 곳도 너무 멀리 있고….” 화근(?)은 신년특집 프로그램에 있었다.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명사들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희망제안’을 듣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나무를 베어 만드는 종이컵을 쓰지 않기 위해 개인컵을 가지고 다니자.’는 의견을 냈다. 헤아려 보니 우리가 한달에 쓰는 종이컵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방송시간 2시간 반 동안 초청연사가 평균 5명이니 일요일 쉬고 한달에 25일을 치면 무려 175개의 컵을 소비하고 살았던 것이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맡은 다음부터만 쳐도 500개가 넘는 종이컵을 잡아먹은 터였다. 공동 진행자와 나는 개인컵을 쓰지만 출연자들에게는 종이컵에 음료가 제공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내심 걸리더니 눈에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나도 별 생각없이 종이컵을 쓰는 날이 야금야금 늘기 시작했다. 한묶음이 되는 방송 원고와 자료뭉치에 신경을 쓰다 보면 아차 컵을 놓치는 수가 왕왕 있었다. 개인컵에 비하면 종이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탱탱한 새 것을 부담없이 꺼내 쓰고 손으로 구겨버리면 설거지가 끝이니 관리에 따른 스트레스 대신 원스톱으로 처리되어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방송이 끝난 스튜디오에서 종이컵을 구겨 들고 나올 때면 오지여행가 한비야씨의 말이 떠올라 괴로웠다. “아마존 밀림에 사는 사람들 중에 요즘 실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나무그늘 아래 사는 데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무가 베어져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서 시력을 잃는 거예요. 특히 노인과 아이들은 면역성이 약해서 치명적이에요. 우리가 톡 뽑는 부드러운 화장지 한 장, 생각없이 쓰는 종이컵 하나가 그 사람들의 눈과 맞바꾸는 거라는 생각을 해봐요. 너무 무섭지 않아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명사의 제언을 계기로 합의를 본 다음날 나는 집에 있는 머그잔 다섯 개를 가져갔다. 그러자 우리 팀에서 누구 하나는 스튜디오로 그 컵들을 나르느라 손이 묶였다. 운반하는 컵의 개수를 줄인 날은 중간에 한번 씻으러 가야 했는데 수도가 있는 곳은 스튜디오의 반대편 끝에 있었다. 청취자 참여 전화를 받다가 컵을 씻으러 가야 하는 ‘환장할’ 순간에는 종이컵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작심삼일의 현대적 해석은 사흘마다 결심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렷다. 또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볼멘소리 다음의 작심삼일 앞에 빨주노초파 다섯가지 색깔로 다정하게 포개앉은 플라스틱 컵세트가 우리를 찾아왔다. 컵 오총사를 내미는 우리는 떳떳하다. “자, 원하는 색을 뽑으세요. 저흰 일회용 컵 안 쓰거든요. 방송부터 앞장을 서야지요.” 작심삼일 다섯 번을 넘긴 지금, 오색 컵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불편하지만 가야 할 길입니다. 가다보면 길이 듭니다.” 오한숙희 여성학자·방송인
  • “남산 소나무 단일 군림… 보전가치 높아”

    “남산 소나무의 수령을 측정한 결과, 기존 소나무 128주는 평균 39.3년생, 식재 소나무 41주는 평균 26.7년생으로 조사됐습니다.” 박인규(51) 서울시 녹지사업소장이 오는 2월 서울시립대에서 ‘서울시 남산 소나무의 특성 및 생태적 관리방안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남산 소나무 박사가 탄생하는 셈이다. 그는 “남산 소나무는 국내 소나무 6가지 생태 가운데 중남부 고지형에 속하며, 유전적 특성으로 따지면 국내 전역에 분포하는 20개 소나무군림과 구분되는 단일그룹”이라고 밝혔다. 남산 소나무의 관리책임을 맡은 박 소장은 훼손 실태와 쇠퇴 원인을 분석했으며 소나무의 유전적·생태적 특성을 규명, 행정책임자의 입장에서 남산 소나무의 보전과 복원을 위한 생태적 관리방안을 제시했다. 평소 ‘아이디어 뱅크’로 꼽히는 박 소장은 그동안 남산 소나무숲을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북측순환로 석호정 주변에 ‘남산소나무 탐방로’를 개설해 36년만에 개방했으며, 남산소나무 유전자 조사, 남산소나무 후계목 재배, 소생물 서식 공간 조성,GIS시스템 등으로 남산공원을 위해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박 소장은 “우리 민족의 상징인 남산 소나무는 아쉽게도 일제시대 때에 일본인들이 사찰을 짓는 데 사용하느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 “소나무 주변의 잡목을 제거해주고 진달래 등 어울리는 수종을 심어줘 소나무가 잘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건국대 임학과를 졸업한 박 소장은 지난 1981년 기술고시(17회)에 합격, 공직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으며 영국 셰필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거쳤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天上 그곳, 앙코르와트에 가 볼까

    天上 그곳, 앙코르와트에 가 볼까

    앙코르는 ‘느낌’이다. 형언할 수 없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배어 있다. 보는 순간마다, 보는 장소마다, 보는 기분에 따라 각각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유적지의 웅대함에 놀라고, 고색창연한 건축물의 신비로움과 인류의 위대함에 매료된다. 캄보디아인의 인자한 미소가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13세기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던 앙코르 왕조의 몰락과 폐허로 변해버린 유적지는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만든다. 또 유적지 곳곳에서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앙코르 유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사전 지식없이 무작정 찾았다가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돌무더기’의 지루함만을 느낄 수도 있다. 신들이 사는 세계를 이땅에 재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왕조가 멸망된 뒤 수세기동안 역사의 어둠속에 묻혀있다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앙코르의 느낌속으로 들어가 보자. # 설렘 앙코르 유적과의 만남은 설렘으로 시작됐다. 캄보디아 시엠레압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신들의 땅을 직접 본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늦은 밤에 도착한 탓에 유적지 인근 호텔에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뒤척임 속에 새벽을 맞아야 했다. 호텔을 출발해 처음 찾은 곳은 ‘거대한 도시’라는 뜻의 앙코르톰. 시엠레압 주변 1000여개 유적지 가운데 앙코르와트와 함께 최고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유적지 매표소에서 3일 동안 자유롭게 유적지를 볼 수 있는 앙코르 패스(40달러)를 끊은 뒤 앙코르톰의 관문인 남문에 도착하자 장엄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교도로는 처음 왕위에 오른 자이야바르만 7세(1181∼1201)때 지은 정사각형 도성이다. 입구에는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몰려 사진을 찍느라 복잡했다. 각 변이 3㎞로 돌벽과 해자(성곽 주변의 못)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힌두교의 창조신화인 유해교반(乳海攪拌)이 형상화돼 있다. 다리 난간에는 일곱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몸통을 부여잡고 있는 54개의 반인반수의 나가(크메르인이 믿었던 뱀 신)상과 입구인 남문에 새겨진 관음보살의 얼굴, 코끼리 조각과 비슈누 등 화려한 장식물이 먼저 발길을 사로잡았다. #웅대함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 남문을 통과하자 본격적인 신들의 안식처가 눈앞에 펼쳐졌다. 앙코르 톰의 중심에 있는 바이욘 사원은 ‘크메르의 미소’라고 불리는 관음보살의 얼굴이 새겨진 사면 돌탑이 있는 곳.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 수백m에 이르는 회랑 벽화에는 다른 앙코르 유적과 달리 당시의 생활상과 위대한 왕의 전투장면이 관광객을 맞는다. 벽화에는 창을 들고 전쟁에 나서는 크메르인과 밥을 짓느라 분주한 여성의 모습, 투견과 투계에 빠져있는 남자들의 모습 등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복원 공사를 잘못해 무너져 내린 수많은 석축물들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했다. 바이욘 사원 북쪽에 있는 바푸온 사원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13세기 이 곳을 방문한 원나라 사신이 쓴 ‘진랍풍토기’에 ‘아침에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도성을 비추던 곳’으로 묘사된 힌두 사원이다. 바로 위에는 3층 피라미드 형식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피미야나카스(천상의 궁전) 사원이 버티고 서있고,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열병식을 거행했던 광장과 코끼리 테라스, 라이왕 테라스를 볼수있다. 앙코르 톰 동쪽에 있는 타프롬 사원(왕의 수도원)은 복원이 어려워 발견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1861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어에 의해 발견될 당시 ‘앙코르 유적은 거대한 나무뿌리로 뒤덮여 있었다.’는 말 그대로 스퐁(열대 무화과 일종)이라 불리는 나무가 사원 곳곳을 뒤덮고 있다. 나무 뿌리가 돌틈 사이를 파고 들어가 사원이 무너져 내렸다. 현재로서는 나무를 베어낼 수도 벽돌을 다시 세우기도 어려워 유네스코에서도 복원보다는 현상을 유지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 곳은 영화 ‘툼레이더’의 매력적인 여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가 사원에서 나오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로 알려져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 경외로움 그동안의 앙코르 유적은 서막에 불과했다. 다음날 새벽 5시. 짙은 어둠을 가로질러 앙코르와트로 향했다. 숨죽일 만큼 아름답다는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해자를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는 폭 12m, 길이 540m의 참배도로 주변에는 일찌감치 관광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길은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갈림길. 죽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잠시 뒤 수미산(세계 중심에 있는 산)을 상징하는 중앙탑 등 5개의 탑 뒤로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사원이 시시각각으로 붉게 물드는 장면은 마치 신들이 자신의 세계를 인간들에게 조금씩 내어주는 듯했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건축과 예술이 집대성돼 있으며 앙코르의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장엄한 규모와 균형, 조화 그리고 섬세함에 있어 최고로 꼽힌다. 이 사원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 다른 사원과 달리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고려인 듯하다. 수리야바르만 2세(1112∼1152)때 3만명의 숙련된 장인들이 3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7t짜리 돌기둥 1800개, 높이가 67m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 3개의 회랑 벽면과 기둥에 새겨진 정교한 벽화는 힌두교 2대 경전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이야기. 라마야나 이야기는 비슈누(힌두교 3대 신 중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화신인 라마 왕자가 팔이 스무개인 악마 라바나에게 강탈당한 아내 시타 왕비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내용으로 캄보디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표적인 신화다. 3층으로 된 앙코르와트의 중앙탑에 오르는 길은 70도 경사도. 손과 발을 이용해 기다시피 해야 올라설 수 있다. 신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찌 인간이 두발로 걸어 갈 수 있겠는가. # 아쉬움 앙코르 유적지에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쿨렌산은 앙코르의 발원지. 앙코르의 건립자 자야바르만 2세(802∼850)가 최초로 도읍을 정했던 곳. 돌무더기 유적에 질린 관광객들이라면 꼭 한번 다녀와 볼 만한 코스다. 정상에서 약 10m크기의 와불상과 함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또 툼레이더가 촬영된 멋진 폭포도 구경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반테아이스레이 사원도 볼 만하다. 이 사원은 왕들이 세운 다른 사원과 달리 고위 관료가 지은 사원. 붉은 색 사암으로 지어진 핑크빛의 사원은 규모가 작지만 다른 사원과 비교해 어느 한군데 빠지지 않는 화려한 조각품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곳은 프랑스 문화장관을 지낸 전위작가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사원내에 있는 데비상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돼 실형을 받은 일화도 있다. 앙코르 관광의 마무리는 프놈바켕의 일몰. 앙코르와트와 바이욘의 중간지점에 있는 높이 60m의 작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고 가파르지만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 길고도 짧은 앙코르 관광이 끝났지만 신들이 새겨놓은 장엄한 잔상들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원들을 돌아보느라 밀려드는 피곤함보다는 다시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특히 9∼15세기에 걸쳐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서 번성하던 앙코르 왕조와 내전으로 피폐해진 현재의 캄보디아 모습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사원 곳곳에서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여행 내내 마음을 무겁고 아프게 했다. 과연 역사란, 삶이란 무엇일까. 알고가면 편해요 앙코르와트 여행은 겨울철이 가장 좋다.11∼2월이 건기로 이 기간이 가장 시원해서 유적을 둘러보기 적합하다. 고온 다습한 열대몬순 기후지만 하루에 몇번 스콜이 지나가는 정도일 뿐 금방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반면 3∼4월은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혹서기이며,5∼10월은 고온다습한 우기다.시차는 2시간으로 한국이 오전 10시면 캄보디아에서는 오전 8시다. 화폐는 리엘(Riel)이지만 시엠레압 등 대도시에서는 달러가 유통돼 환전할 필요는 없다. 소규모 상점에서는 거스름돈이 부족하므로 1달러짜리 소액권을 많이 준비해야 한다.1달러는 약 4000리엘 정도.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여행을 떠나기전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거나 현지 도착후 공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여권과 여권용 사진 1장, 비용 20달러가 필요하다. 종교는 상좌부불교(소승 불교)이며, 인종은 크메르족이 80%를 차지한다. 유의 사항으로는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생사정이 좋지 않다. 반드시 생수를 사먹는 편이 좋다. 관광지에서는 돌 하나도 가져가면 밀반출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며, 하루종일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므로 모자는 필수다. 전화가 거의 없으며, 호텔에서도 1분당 6달러 정도로 비싸다.전압은 220V로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유적지에 들어 가려면 앙코르 패스를 구입해야 한다.1일권 20달러,3일권 40달러,7일권 60달러이며,1일권 외에는 사진을 찍어 함께 코팅해 준다. ‘쏙 싸바이’(안녕하세요),‘쭙닙수’(반갑습니다),‘옥꾸운’(감사합니다) 등 기본적인 캄보디아어를 외워두면 편하다. 가는 길은 시엠레압까지는 직항편이 없어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에서 방콕까지는 4시간 20분, 방콕에서 시엠레압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이르면 3월부터 아시아나항공에서 주 2회 직항편을 준비하고 있다. 숙박은 공항과 앙코르 유적지에서 각각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르 메르디앙호텔’이 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리조트형 5성급 호텔로 223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www.lemeridien.com, (02)794-4011. 여행 상품으로는 가야여행사(www.kayatour.co.kr·(02)536-4200)에서 앙코르 문화유적지를 충분히 둘러보는 3∼5일 여행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공항서 급행료 주지마세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는 연간 10만여명의 우리나라 관광객이 찾는 곳. 그러나 이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엠레압 공항에서 한국 단체관광객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입국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고 통과하는 특권을 누린다. 공항 직원에게 일종의 ‘급행료’(?)를 지불했기 때문. 실제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우리 일행에게 공항직원이 “10달러를 주면 빨리 통과시켜 주겠다.”는 요구를 했다. 거부하자 한명에 5∼10분가량의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거쳐야 했다. 급행료를 만든 것은 한국인. 좁은 공항에서 다소 오래 걸리는 입국 시간을 줄이기 위해 뇌물을 건넨 것이 관행화됐다는 게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설명이다. 유적지를 훼손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지 한국인 관광안내원이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유물을 훼손하지 말라는 말이다. 얼마전 한국인 관광객이 유적지내 돌탑을 흔들며 심한 장난을 치다 부숴뜨려 벌금 800만원과 함께 한달간 실형을 산 뒤 영구 추방조치되기도 했다. 캄보디아인들은 평소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앙코르 유적지를 모독하거나 훼손, 파손할 경우 엄하게 처벌한다. 또 현지인들이 우리보다 못 산다고 무시하거나 종교적으로 모독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신들의 세계를 관광하기에 앞서 좀더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시엠레압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버스타고 ‘신의 걸작품’ 금강산 겨울여행

    버스타고 ‘신의 걸작품’ 금강산 겨울여행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그 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금강산은 부른다.’ 고귀함이 묻어나는 금강산(金剛山), 녹음이 깔리는 봉래산(蓬萊産), 단풍으로 물든 풍악산(楓嶽山),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앙상한 뼈와 같은 개골산(皆骨山), 눈 덮인 설봉산(雪峰山)…. 때마다 철마다 모습과 이름을 바꿔가며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금강산. 특히 겨울이 아름답다는 이곳을 살짝 맛보고 왔습니다. 오색찬란한 화려함은 없지만 봉우리의 자태가 빼어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웅장함에 넋이 나가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새해 첫 여행으로 겨울에 더욱 아름다운 금강산이 어떨까요. 지금 바로 비무장지대를 거쳐 출발합니다. ●보이지 않는 남북의 선을 넘어 오후 4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있는 남측출입국관리소(CIQ)에서 간단한 출국 수속을 마쳤다.(한 나라의 땅인데도 ‘출국’이라니, 왠지 서글프다.) 비무장지대를 건너, 북녘을 향한다. 비무장지대의 임시도로로 33인승 미니 버스가 신나게 달렸다. 금강통문과 남방한계선을 지나 출발한 지 15분만에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이제부터 북한이다. 함께한 ‘관광조장(관광가이드)’에게는 2003년 9월에 육로관광이 시작된 후 오늘까지 452번째로 넘는 군사분계선이란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리민족을 갈라놓은 선은 없다. 그저 도로 구석에 철책도 아닌 녹슬어버린 표지 하나가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며 민족을 갈라놓고 있을 뿐이다. 북방한계선을 지나 구서통문에 차가 멈췄다. 겨울 찬바람에 빨갛게 언 볼과 오래된 듯한 군복의 북한군인 두 명이 버스에 올라 “모두 몇 명입네까.” 짧게 한마디 묻고는 내려버린다. 통관 절차다. 도로 옆 연두색 철책은 관광지역과 북측 마을의 경계다. 철책 너머로 북측 마을에 북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갈 수는 없다. 개발되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떠난 지 45분만에 금강산에 도착했다. 정말 가까워졌다. 배로 무려 4시간이 걸린 길을 이렇게 단숨에 달려오다니. 벅찬 감흥을 가슴에 담고 북녘에서의 첫날은 지나간다. ●신의 걸작, 계절의 명산 개골산 둘째날 아침 8시30분에 금강산의 구룡연으로 출발했다. 금강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미인송. 옆으로 늘어진 소나무가 아니라 하늘로 쭉쭉 뻗은 자태가 미인처럼 아름다워 미인송이라 이름 붙였다. 미인송 숲을 빠져나와 10여분만에 도착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북한 해설원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한반도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와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상팔담을 볼 수 있으며 산행시간은 왕복 4시간입네다.” 맑은 공기가 가득한 계곡을 따라 걷는다.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니 겨울 금강산을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흙이라고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산. 그래서 인간의 뼈처럼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바위산. 그것이 개골산이다. 커다란 바위를 깎고 다듬어 만들어 놓은 신의 걸작품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그 바위에 자라고 있는 ‘배지하늘솔’. 땅을 배신하고 하늘을 향하는 소나무란 뜻으로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다. 신기하다 신기해. 어찌 저렇게 단단한 바위덩어리에 생명이 자라고 있을까. ●아름다운 금강산을 눈에 가득 담으시라요 30분 정도 걸어가 도착한 양지대에서 여자 해설원이 말한다. “저 앞에는 거북선 모양의 거북선바위, 뒤에는 개구리 바위예요. 선생, 거기가 아니고 저기라요. 이쪽 보시라요.” 말투는 약간 퉁명스럽지만 정감이 느껴져 “원래 북측 여성동무들은 다 예쁩네까.”하고 묻자 “심한 농하면 안됩네다.”하고 정색이다.“죄송합니다.” 꼬리를 확 내리고 다시 걷는다. 삼록수는 추운 날씨에 얼어버렸다. 산삼과 녹용이 흘러내린다는데…. 마시지 못해 아쉽다. 땀으로 젖은 머리는 금세 얼어버린다. 진한 에메랄드빛부터 연한 옥빛까지 다양한 초록이 어우러진 유명한 옥류동계곡도 얼음으로 변해있어 물빛의 아름다움은 감상할 수 없다. 대신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설 때마다 펼쳐지는 금강산의 비경을 눈에 담는다. 이래서 금강산을 느끼려면 사계절을 와야 한다는 건가. 1시간을 걷자 나타난 웅장한 비룡폭포. 얼어버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던진 번개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다. 중간중간 비석에 김일성교시를 적어 놓은 ‘표식비’와 봉우리마다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들이 즐비하다.15분을 더 걸어 관폭정에 도착했다. 구룡폭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정자다. 북측안내원들이 “수고하셨습네다. 여기가 조선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입네다.”라며 설명한다. 이곳에서 파는 차 한잔에 1달러. 따뜻한 차를 마시며 얼어버린 웅장한 폭포를 감상하는데 ‘쩌억!쩍!’ 소리가 들린다. 계곡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다. 깊고 깊은 금강산, 이곳 아니면 또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언 몸을 잠시 녹이고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가진 상팔담으로 향했다. 가파른 절벽을 향하는 길에 ‘아휴, 다리야. 그냥 갈걸.’하는 후회가 간절하다. 도대체 뭐가 있기에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르려 했나.30분을 올라 도착한 구룡대. 아까의 후회는 사라진다. 커다란 바위로 발아래 계곡에 비록 얼어있지만 멋진 소와 담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고 내려오는 길에 점심을 먹으러 목란관에 들렀다. 아침에 10달러를 내고 산 표(식권)를 건네며 주문을 하는데 북한여성이 “여기는 무조건 냉면이라요.”라며 돌아간다. 추어탕,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더니만. 10분,2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인내의 한계를 느껴 냉면 언제 나오냐며 불평하자 “참고 기다리시라요.” 한마디하고 돌아간다.30분만에 나온 물냉면, 육수는 심심하고 면발은 그럭저럭이다. 양념이 적은 북한음식은 입맛에 잘 안 맞는다. 저녁에는 물이 좋다는 금강산 온천에 몸을 담근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향긋한 미인송의 냄새를 맡으며 금강산의 정기를 맨몸으로 느끼는 노천온천이야말로 최고다. 피로가 가시며 여유가 생긴다. 금강산에는 음기가 강해 한달에 한번씩 남탕과 여탕을 바꾸는데 오늘이 그날이란다. 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곳이 어제는 여탕이었다! ●만물상을 품에 안고 셋째날은 만물상코스다. 미니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미인송이 가득한 길을 간다. 마치 옛날 대관령을 오르는 것 같다. 내금강과 외금강을 연결하는 온정고개는 모두 106굽이, 이중 만물상까지가 모두 77굽이다. 온정각에서 떠난지 30분만에 주차장에 도착한다. 왕복 2시간 코스. 구룡연과 다르게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깎아지른 절벽과 솟구쳐 오른 봉우리, 그 위에 아슬아슬 올라선 바위들. 토끼 호랑이 거북이는 기본이고 독수리 곰 허수아비 등 저마다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펼쳐져 ‘만물상’답다. 삼선암 귀면암 절부암을 지나 30분을 오르니 안심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발아래는 수길 낭떠러지이고 그만큼 또 위로 봉우리들이 솟았다. 울퉁불퉁 근육질 남자의 벗은 몸처럼 아릅답고, 힘이 느껴진다. 금강산을 보지 않고 산세를 논하는 것은 허무하다고 했던가. 역시 민족의 명산이란 칭송이 아깝지 않은 산이다. 철사다리를 의지하며 천선대에 오르자 눈 앞에 펼쳐지는 만물상에 또 한번 놀란다. 나도 모르게 조물주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망향대까지 오르고 싶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다. 그림같은 만물상을 가슴에 담은 채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에서 북한해설원들이 따뜻한 두부와 막걸리를 판다.5달러. 산행 뒤에 마시면 더욱 시원한 막걸리 한잔과 함께 금강산 일정이 끝났다. 몇 해전, 여름 금강산에서 “반드시 겨울에 오리라!”던 꿈을 이뤘더니, 또다른 욕심이 생긴다. 금강산은 바로 그런 민족의 산이다.‘언젠가 내 다시 너를 품으러 오마. 좀 더 자유롭게….’ ● 이렇게 가세요 금강산 관광 선택의 폭이 좀 넓어졌다.2박3일,1박2일, 당일 등 세가지의 형태로 진행중이다. 당일은 2월말까지 토요일만 출발하며 1인당 12만원.1박2일은 매주 토, 일요일 출발 1인당 20만원,2박3일은 매일 출발한다.29만원. 단 교예공연(25달러), 온천욕(12달러)과 식사(중·석식, 보통 10달러)비용은 별도 부담. 또한 통일부에 방북승인신청 등을 해야 하므로 출발일 기준 10일 전에 현대아산 영업부나 금강산관광에 예약해야 한다.(02)3669-3000,www.mtkumgang.com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녹색공간] 아,겨울나무여!/조연환 산림청장

    언제부터였을까? 겨울나무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하나뿐인 아들이 입대하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바람도 많았다. 보초를 서고 있을 아들 생각에 새벽잠을 깨어 뒤척이고 있을 때면 창밖 느티나무는 나보다 먼저 깨어 울고 있었다. 저도 내 맘을 아는 듯 나도 홀로 밤새우는 저를 아는 듯 그렇게 그해 겨울 새벽 바람에 아픔을 같이한 후로 겨울나무가 좋아졌다. 신부 화장을 막 끝낸 봄 숲도, 성숙한 여인의 여름 숲도, 떠나 보낼 자식 위해 고운 옷 입혀 놓은 가을 숲도 아름답지만 겨울 숲의 그 단아함이 더욱 좋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덮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오늘도 겨울바람 타고 이원수님의 ‘겨울나무’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한 겨울을 벌거벗은 몸으로 바람과 눈비 맞으며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노라면 불쌍하다는 느낌보다는 그 의연함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겨울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나무를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잎과 꽃에 가려 나무 그 자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은 나무보다는 꽃과 잎을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잎 떨구고 바람 앞에 서 있는 겨울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리디 여린 가지를 수없이 매달고 하늘 향해 기도하고 서 있는 느티나무, 아까시나무. 굵고 힘찬 가지를 뻗어 지나가는 바람을 잡으려는 물푸레나무, 감나무. 나뭇가지보다 큰 꽃눈을 꼭대기에 매단 채 바람아 불어라 눈아 오거라 그래도 봄은 오리니 내 먼저 오는 봄을 맞으리라며 꿈에 젖어 있는 목련나무. 겨울나무가 아름답다. 소나무·잣나무처럼 늘 푸른 나무보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이 더 아름답다. 내가 화가라면 맑은 하늘을 떠받들고 서 있는 한 그루 겨울나무를 화폭에 담고 싶다. 겨울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 다 벗어 주고도 당당한 그 모습 때문이리라. 겨울나무에겐 부끄럽거나 감추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이런저런 흉허물에 남들이 알까 봐 불안해하거나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지는 속마음을 생각하면 겨울나무를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워진다. 그러기에 이 겨울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누렇게 변색한 잎새를 달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노라면 아둥바둥 손아귀에 감싸 쥐고 놓지 못하는 미련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측은하다. 겨울나무가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다. 겨울나무는 새 봄에 피워 올린 잎과 꽃들을 겨울눈(芽)속에 간직한 채 한겨울을 지낸다. 겨울눈 중에는 꽃으로 피어날 꽃눈이 있고 잎으로 피어날 잎눈도 있다. 꽃눈과 잎눈을 함께 가지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이미 겨울눈 속에서 꽃으로 피어날 준비를 다 하고 있다. 준비한 자만이 오는 봄을 먼저 맞을 수 있음을 나무는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겨울나무가 세찬 눈바람을 맞으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봄에 피워 올릴 꿈과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자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 법이다. 한 해가 시작되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걱정들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도 남의 일만이 아니다. 힘겨워도 겨울나무처럼 꿈과 희망을 품고 이 한 해를 시작하자. 한해를 시작하며 불러본다. 아, 겨울나무여, 본받아야 할 나의 표상이여! 나의 꿈이여! 조연환 산림청장
  • [이주일의 어린이책] 모치모치 나무/사이토 류스케 글

    ‘모치모치 나무’는 겁많고 소심한 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그림동화책이다. 일본에서 30여년 한결같이 사랑받아온 인기동화(일본 국어검정교과서 수록).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정서에도 딱 맞아떨어질, 쉬우면서도 은유가 많은 이야기다. 한밤중 마당의 큰 나무가 머리 풀어헤친 귀신처럼 오싹했던 유년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할아버지랑 단둘이 사는 다섯살짜리 사내아이 마메타에게도 그렇다. 집 밖에 버티고 선 덩치 큰 ‘모치모치 나무’가 너무너무 무섭다. 한밤중에 오줌이 마려우면 곤히 잠든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워야 하니 할아버지도 난감하고, 마메타도 창피하고. 그런데 당장은 달리 방법이 없으니…. 줄거리를 따라가는 맛만큼이나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흑백과 천연색이 조화를 이룬 선굵은 판화그림이 꼭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강렬한 인상을 안긴다. 겁쟁이 마메타가 어떻게 될까? 이불에다 지도를 그리지나 않을까? 물음표를 몇개씩 찍고 있을 어린 독자들을 위해 마메타는 예상을 깬 모험극을 펼쳐보인다. 첫눈이 내리는 겨울밤, 그러니까 동짓달 스무날 한밤중.‘쉬’가 마려운 마메타가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를 깨우려는데 글쎄, 할아버지가 큰 곰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누워서는 끙끙 앓고 계시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메타에게 그런 용기가 숨겨져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산기슭 의사 할아버지를 향해 혼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리기 시작한다. 잠옷바람에, 맨발로, 오 리나 되는 밤길을…. 한 컷의 간명한 이미지가 두 페이지에 걸쳐 길게 누운 그림이, 뒤로 갈수록 조금씩 풍성해진다. 먹선에 화려한 천연색이 하나둘 보태지고, 마메타의 가슴에도 한뼘한뼘 없던 용기가 움트고…. 의사할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는 모치모치 나무의 모습에 독자들이 “와∼” 탄성을 터뜨릴 것 같다. 그날밤은 모치모치 나무에 불이 켜지는 산신령의 축제날. 아름드리 나무에 색색깔의 등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라니! “용기있는 아이 눈에만 보인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갑자기 마메타의 머릿속을 휙 헤집고 지나가는 대목이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누는 진한 사랑과 용기, 희생의 마음. 찡한 감동에다, 서정넘치는 묘사도 동심을 건드릴 만하다.7세까지.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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