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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TV와 함께하는 구정인터뷰] 김영종 종로구청장[동영상]

    [서울신문TV와 함께하는 구정인터뷰] 김영종 종로구청장[동영상]

    “도시란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지론을 절대 굽히지 않겠습니다.” 건축사와 한양대 행정학 교수로 활약해 자치단체장 가운데서도 도시계획 분야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영종 종로구청장이지만 단체장으로서 부릴 고집(?)만 앞세운다. 언제나 주민들이 중심에 서는 구정을 목표로 해 2010년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공약서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15일 김 구청장을 만나 올해 구정 목표를 들어봤다. →폭넓은 복지와 평등한 교육을 내세웠다. -틈새를 잘 찾아서 차상위 계층처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분들을 도우려 노력하고 있다. 또 청소년이 임금을 떼이지 않게 하고 일하는 청소년을 지원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최상의 복지는 일자리다. 그래서 쪽방촌 주민에게 택배사업을 맡게 했다. 아이 키우기 좋은 종로를 만들기 위해 삼봉서랑이라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이용자가 넘쳐 비명을 지를 정도다. 올해는 각 동에 있는 마을문고를 도서관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참여형 마을 만들기에 주력한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주민자치위원회가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치위원 교육도 하고 전문가가 마을을 만들어 가도록 했다. 참여형 마을 만들기는 예를 들어 나무가 하나 있는데 담을 넘어갔다고 하면 주민들이 대화하면서 갈등을 풀어가는 것처럼 골목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관광객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지 직접 논의하는 것이다. 북촌가꾸기 사업 모임과 세종마을이 그것이다. 이젠 주민들이 나서서 한옥도 수리하고 가게도 예쁘게 지어 손님을 맞는다. 주민이 직접 예산을 투입하고 집행하는 형식이다. 주민 참여가 없으면 지역사회·문화 발전도 없다. →관광·상권 활성화 방안은 무엇인가. -수요 조사를 해 보니 외국인 1000만명 가운데 67%가 종로로 온다. 이어 내국인 관광객을 조사해 유치 정책을 수립하겠다. 또 권역별 관광해설사를 더 육성해서 지역에 사는 사람이 역사와 문화, 풍습을 해설하도록 하고 내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겠다. 북촌·인사동·삼청동·대학로 등 중요한 문화상권이 많은데 개발하더라도 상권을 생각해 골목길을 유지해야 한다. 서울시와 협의해 봉제박물관을 만들어 문화와 삶이 공존하는 공간을 가꿀 것이다. 디자인 지원, 인력공급을 위한 교육에도 주력하고자 한다. →광화문광장에 벼를 심는 파격을 예고했다. -도심 곳곳에 텃밭을 지어 이웃이 농산물을 나눠 먹으면 얼마나 좋겠나. 옥상에 텃밭을 만들면 아름다운 공간도 마련되고 열섬현상이 사라져 에너지 절약도 할 수 있다. 우리 직원들이 빈 땅을 다니며 650t이라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치우고 텃밭을 만들었더니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광화문에서 비싼 꽃이 아닌 농사를 짓는다면 아름다운 조경공간이 되지 않겠나. 식량에 대한 중요성도 일깨우고 아이들이 도심에서 농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외계생명체 닮은 ‘이티 나무’ 영국서 발견

    최근 영국에서 영화 속 외계인인 ‘이티’(ET)를 닮은 희귀한 외양의 나무가 발견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더 선이 14일 보도했다. 위텀에 사는 맷 스미스(35)라는 남성이 발견한 이 나무는 몸통 전체에 기이한 굴곡이 있으며, 중앙에는 영화 속 이티의 눈,코,입을 연상케 하는 두 개의 구멍과 큰 무늬가 있다. 스미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측면에서 보면 평범한 나무 같지만, 정면에서 바라보니 영락없는 ‘이티’였다.”면서 “올해 8살인 내 딸이 유독 이 나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나무를 보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나무”라고 덧붙였다. 최근 영국에서는 ‘이티 나무’ 외에도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나무 정령’을 꼭 빼닮은 나무가 발견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런던에서는 긴 수염을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사색하는 듯한 모습의 나무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자연의 신비가 따로 없다.”, “정말 영화 속 외계인 또는 정령의 모습과 똑같이 생겨 매우 놀랐다.” 등의 댓글을 올리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6)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6)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사람의 시간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긴 세월을 살아가는 나무의 침묵은 언제나 견고하다. 역사의 침묵을 닮았다. 결코 스스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과거에 대한 관심에 기대어서야 비로소 숱한 사실들이 생명을 얻고 일어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침묵하는 생명이지만, 그를 둘러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은 마침내 나무가 세월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지나온 많은 이야기들을 드러내게 한다. 이 땅의 큰 나무를 찾아보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결국 사람의 역사를 찾아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현재의 질문들이 긴 역사를 풀어내고, 나무의 견고한 침묵도 깨뜨릴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무를 찾아야 하는 확실한 이유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옛 절집… 오롯이 그 곁을 지키다 남도 끝자락, 진도의 임회면 상만리에는 내력이 정확하지 않은 절터가 있다. 흔히 ‘상만사지’(上萬寺址)라고 부르는 폐사지다. 한때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했을 전각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남은 건 오로지 오층석탑 한 기뿐이다. 사라진 옛 절집의 이름도, 그 절을 스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남지 않았다. 그곳에 비구니 스님의 절집, ‘구암사’가 있다. “탑이 남아 있어서 절터라고 짐작할 수는 있지만, 절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어요. 1950년대 초반에 마을 사람들이 근처의 밭에서 돌부처를 찾았다고 해요. 그때 초가를 지어 절을 일으키고, ‘만흥사’라고 한 게 구암사의 시작이에요.” 아담한 절집 구암사의 용운(庸芸) 스님은 세월 속에 흩어진 구암사의 토막난 역사를 퍼즐 맞추듯 가만가만 꿰어 맞춘다. 그러나 빈 자리는 여전히 크기만 하다. 밭에 나동그라져 있던 돌부처 외에 절집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이 상만리여서 사라진 옛 절을 상만사라고 하는 건데 근거는 없어요. 그보다는 구암사라는 이름이 맞지않나 싶어요. 진도 향토사에는 아주 옛날에 구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에 있던 절인지는 모르죠. 그런데 이 뒷산의 바위를 마을에서 ‘비둘기 바위’라고 부르더군요. 그렇다면 비둘기바위라는 뜻의 이름인 구암(鳩巖)사는 이곳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절집은 사라졌지만, 그 부침의 역사를 지켜본 나무가 한 그루 있다. 비자나무다. 전하는 이야기처럼 옛 절집이 사라지기 전부터 있던 나무라면 필경 절집 앞마당, 최소한 담벼락쯤에 있던 나무라고 볼 수 있다. 절집의 자취가 없어 지금은 마을 당산나무, 혹은 ‘천연기념물 제111호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라고 부른다. #넉넉하지 않은 시절 영양간식으로 비자나무 심어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는 구암사가 깃든 그 비둘기 바위와 마을 사이의 언덕 길가에 서 있는 큰 나무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옛 절과 이 나무가 일정한 관계를 가졌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절집에 주석(駐錫)한 스님이 직접 심고 키운 나무까지는 아니라 해도 최소한 절집의 흥망성쇠를 또렷이 지켜본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절집의 흔적인 오층석탑은 대략 고려 후기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바탕으로, 사라진 사찰의 역사는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오래됐다고 보아야 한다. 1000년쯤 전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근거다. 오층석탑에서 불과 100m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비자나무는 600년쯤 이 자리에서 살아왔다. 적잖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큰 절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에 결코 모자란 세월이 아니다. 누구도 그 시절의 자취를 알 수 없지만, 나무는 필경 이 자리에서 절집의 살림살이를 빤히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비자나무는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예전에는 절집의 스님들이 공들여 키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비자 열매는 영양이 풍부해서 먹을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에 좋은 간식거리였을 뿐 아니라, 구충제 성분까지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스님들은 비자나무를 심고 열매를 거둬서 절집 식구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장성 백양사, 고흥 금탑사, 화순 개천사 등의 비자나무 숲이 모두 그런 까닭으로 스님들이 조성한 곳이다. “비자나무에 대한 기록도 있을 리가 없지요. 나무가 있는 위치를 절집 마당쯤으로 볼 수도 있다지만, 사실 절집의 위치가 정확한 건 아니거든요. 비자나무와 옛 절과의 관계는 어떤 내용으로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12m 옹골찬 품… 마을의 쉼터이자 수호신으로 상만리 비자나무는 키가 12m쯤 되고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의 둘레는 6.5m, 밑동 부분의 둘레는 7.5m 가까이 된다. 얼핏 봐서 그리 큰 나무는 아니지만, 유난히 옹골찬 수형을 가졌다. 키에 비해 굵직한 줄기는 물론이고 나뭇가지도 매우 촘촘하게 돋았으며, 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바늘잎도 무성하다. 사방으로 펼친 품 또한 만만치 않다. 동서 방향으로 12m, 남북으로는 8m를 펼친 품은 무척 넉넉한 모습이다. 절집의 기억을 줄기 안 깊숙이 간직한 채 나무는 이제 마을의 정자나무로 살아간다. 나무 줄기에 바짝 붙여 놓은 평상은 십여 년째 그대로다. 나무는 마을의 쉼터이면서 사람들의 안녕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매달렸다가 떨어져도 별로 다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을 위할 줄 아는 나무라는 이야기다. 용운 스님도 한마디 덧붙인다. “비자 열매는 마을 사람들이 잘 거둬서 이용하는 모양이에요. 옛날에는 당산제도 지내고 나무 앞에서 줄다리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안 해요.” 종종 세월은 사람살이의 흔적을 송두리째 삼키곤 한다. 그러나 세월보다 더 강한 힘으로 나무는 사람살이를 지킨다. 옛 절터에 살아남은 비자나무의 속내가 점점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글 사진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681-1: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를 건넌 뒤 ‘진도대로’로 불리는 국도 18호선을 이용해 진도군청이 있는 진도읍까지 간다. 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5㎞쯤 가면 임회면으로 들어서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2.5㎞ 더 가면 다시 진도대로와 만나게 되는데, 오른쪽 길을 이용해 6㎞ 가면 송월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1.5㎞ 가면 상만리에 이른다. 나무는 왼편의 마을 안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350m쯤 들어가면 있다.
  • [지방행정의 달인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5) 전기·기계-시설환경-소방 분야

    [지방행정의 달인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5) 전기·기계-시설환경-소방 분야

    달인 릴레이 인터뷰 5편에서는 겨울철 눈을 신속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제설특수차량을 만든 공무원을 만났다. 낙동강 하류 지역 원수요금 차등제를 적용해 34억원의 재정 수익을 올리고, 섬진강 댐 맑은 물을 골고루 이용활 수 있게 한 주인공도 소개한다. 신재생 에너지의 대부, 구조견과 함께 실종·재난 현장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구조견 핸들러의 활약상도 들어봤다. 6편에서는 행정·정보통신 분야 달인을 소개한다. 김동찬 서울 성동구청 토목과 제설현장 관리팀장 친환경 다목적 제설차량 개발 ‘제설 박사’. 서울 성동구청 토목과 김동찬(58·기계6급) 제설현장 관리팀장의 별명이다. 겨울이면 몸값이 훌쩍 더 올라가고, 폭설이 쏟아지는 날이면 몸이 열이라도 모자라는 사람이 그다. 김 팀장은 레미콘 차량을 개선한 염화칼슘 자동 살포기를 개발, ‘제설의 달인’으로 선정됐다. “누구한테 인정 받자고 덤벼든 일은 애당초 아니었어요. 그래도 여기저기 알아주는 데가 많으니 새삼 큰 보람을 느끼게 되네요.” 김 팀장은 내부의 권유로 달인에 도전했다. 제설작업에 관한 한 그의 아이디어와 노력을 당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확신을 주변에서 먼저 했다. “천성적으로 기계를 다루는 일에는 재주가 좀 많았던 것 같다.”며 웃는 그가 공직에 발을 들인 건 1978년. 군 운전병으로 제대한 뒤 모셨던 장군의 ‘연줄’로 동대문구청에서 운전 일을 시작하게 됐다. 2년 뒤 지금의 성동구청으로 옮겼고 1990년 기계직으로 직역을 바꿨다. 성동구청에서 그가 계속 맡았던 업무가 제설이었다. 8t 덤프트럭 적재함에 올라타 모래와 염화칼슘을 일일이 섞어가며 도로에 뿌리는 고된 수작업을 도맡았다. 미끄러운 눈길에서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긴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워커힐 고개에서는 바퀴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타고 있던 제설 트럭이 인도를 덮쳐 인명사고를 낼 뻔하기도 했다. 제설작업 이후 염화칼슘이 닿은 쇠물질이 부식되고 나무가 말라죽는 등의 환경피해도 늘 고민거리였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기를 10여년. 2006년 레미콘을 개량해 그 모든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다목적 제설차량(로드렉스)을 개발해 특허를 내는 데 성공했다. 로드렉스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기존의 제설장비가 한번에 고작 염화칼슘 4t과 소금 5t만 실을 수 있었던 것을 단박에 염화칼슘 10t에 소금 14t으로 적재량을 두세배나 끌어올렸다. 특히나 밀폐형인 로드렉스에는 제설제를 미리 실어둘 수가 있어 업무효율 만점이었다. “이전에는 눈예보를 듣고난 뒤에 제설제를 차에 싣고, 눈발이 쏟아질 때 부랴부랴 현장출동하면 도로사정은 이미 엉망이곤 했다.”면서 “로드렉스는 미리 제설제를 실어놓고 항시대기할 수 있어 기동성이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나다.”고 자평했다. 염화칼슘 살포량을 48단계 디지털 기능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다 토양오염을 크게 줄이는 소금을 염화칼슘과 동시에 뿌릴 수 있어 친환경 기능도 주목받았다. 100년 만의 폭설이 서울을 덮친 2010년 1월에는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그해 6월엔 서울창의상 우수상을 받았다. 구청 수입에도 적잖이 기여하고 있다. “용산구청, LH공사에 로드렉스를 임대해 주고 있고 얼마전엔 완주시청과 달성군에서도 장비 문의를 해왔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어느새 정년도 몇해 남지 않았네요. 앞으로는 이상기후로 폭설도 잦아질 거라는데, 제설 노하우가 부족한 지방에 열심히 기술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고말석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정수계장 낙동강 식수 ‘차등요금제’ 주도 시설환경분야 달인으로 선정된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고말석(54·6급) 정수계장은 부서를 옮길 때마다 반드시 한 가지 이상 업무 개선을 하는 아이디어맨이다. 2003년부터 시행한 낙동강 물 요금 차등요금제 등 수많은 그의 ‘작품’이 행정 곳곳에 있다. 차등요금제는 이전만 하더라도 낙동강 하류지역인 부산시민은 대구 등 상류지역 주민과 똑같이 물값을 내고도 갈수기 때 수질이 떨어지는 원수를 먹어야 했다. 낙동강 물을 독점 공급하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상·하류 구분없이 원수 동일요금제를 적용해서다. 갈수기가 되면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기준 3급수 이하로 수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하류의 3급수를 먹는 부산과 경남 일부 지역 주민은 동일요금제에 불만이 커졌다. 고 계장은 이 문제가 부산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지역인 마산, 창원 등 전체의 문제로 접근하도록 방향을 바꾸어 낙동강 하류 9개 지자체가 공동대응에 나서는 한편,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무릎을 꿇은 정부는 2003년 BOD 기준 3급수 이하일 때 원수요금 차등요금제를 적용하도록 댐용수 공급규정을 고쳤다. 그는 “이 제도 시행으로 지난해까지 34억원의 재정수익을 올렸고, 수자원공사로 하여금 낙동강 상류댐 운영을 선진화해 하류지역에도 맑은 물을 공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부산명지소각장에 근무할 때인 2006년에는 당시 전국에서 소각폐열 이용률 꼴찌인 이 소각장의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당시 소각장은 주변에 폐열사용 인프라가 없고 원거리 산업체 폐열판매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었다. 이를 안 그는 폐열수송배관과 관련 시설을 설치하기로 하고 민자기업을 유치해 100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2008년부터 본격 소각폐열 생산 판매에 들어간 명지소각장은 그의 아이디어 덕분에 연간 40억원의 재정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 20여명의 일자리창출과 연간 1300만t의 LNG 수입대체효과를 거뒀다. 이를 싼값에 공급받은 녹산공단의 제조업체들도 매년 20억원 상당의 연료비 절감혜택을 보고 있다. 앞서 2000년에는 민간부분의 환경경영체제(ISO)를 상수도행정에 접목시켜 정수장의 공정별 표준운영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는 이런 업무개선 공로로 2007년 사무관(5급) 특별승진 우선권을 받은 것을 비롯해 환경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등 장관급 표창 3회, 부산시장 표창 3회 등을 받았다. 또 쓰레기매립장 침출수 처리공정 개선으로 환경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고 계장은 “공무원이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시민에게 다가가는 행정을 한다면 시민편익을 더욱 증진시킬 수 있다.”며 “앞으로 더 안전하고 맛있는 수돗물을 시민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최덕용 순천소방서 산악구조대 전국 최고 ‘인명 구조견 핸들러’ 순천소방서 산악구조대 소속 최덕용(39) 소방교는 국내 최고의 구조견 핸들러다. 전남에서 유일한 인명 구조견 핸들러인 최 소방교는 다른 소방대원과 달리 열악하고 험난한 구조 현장에서만 모습을 보이는 억센 사나이다. ‘소방분야 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된 최 소방교는 지난달 소방방재청 주관으로 열린 전국인명구조견 경진대회에서 최고의 인명구조견 핸들러에게 수여되는 ‘탑독’(Top Dog)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탑독은 인명구조견의 복종, 장애물, 산악수색 등을 평가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구조견과 핸들러에게 부여하는 명칭이다. 그는 경력 8년의 베테랑으로 인명구조견 ‘무한’이와 함께 각 분야에서 최고 득점을 얻어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핸들러에 선정됐다. 핸들러는 전문적으로 개를 다루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최 소방교는 2003년부터 험난한 산악 등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조난 사고 현장 등에서 인명 구조견을 활용한 구조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전국 구조견 경진대회에서 종합우승을 2회 차지하고, 2010년 중앙119구조단에서 실시한 산악구조 교육과정에서는 1등으로 수료했다. 수난사고 시에는 전문다이버로 활약하는 등 만능 구조 요원이다. 지금까지 2000여건 2300여명을 구조했다. 실종·재난 현장에 빠짐없이 출동해 20여만명에게 도움을 주는 탁월한 구조 능력을 발휘했다. 사고 예방 홍보 활동에도 열성이다. 인명구조견을 활용한 홍보 활동도 300여차례나 펼쳤다. 그의 활약은 해외로까지 발을 넓혔다. 국제구조대원 인명 구조견 핸들러 분야 구조대원으로 선발돼 중국, 아이티, 일본의 지진과 해일 등 11곳의 대형 참사 현장에서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등 해외 재난 시 민간외교관 역할도 성실하게 수행했다. 여름철에는 인명구조견을 활용한 ‘섬진강 안전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구조견을 이용한 전국 최초 119수상 구조견 순찰대를 운영해 시각 효과를 이용한 효율적인 물놀이 안전 예방과 인명구조견과 함께하는 이색적인 안전홍보로 섬진강 주변의 사고 우려 지역의 순찰을 강화하는 등 피서객을 지키는 수상안전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조활동 이외에도 지역의 소외된 독거노인 가정을 찾아 가스·전열 기구에 대한 점검과 소화기 무상증정, 단독경보형 감지기 설치로 화재예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3년 6개월 동안 독거노인 봉사 활동을 300회 이상 펼치는 등 주변의 불우이웃돕기와 농번기 일손 돕기로 따뜻한 소방상 구현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 소방교는 “사람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힘든 환경을 헤쳐 구조구급 활동을 했을 때 어려운 여건 이상의 큰 보람을 느낀다.”며 “핸들러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목숨을 던지고, 소방 조직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사진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이상록 원주시 청사관리계장 ‘지열 냉난방’ 국내 첫 도입 강원 원주시 청사관리계 이상록(52·지방공업6급) 담당은 지열과 생활폐기물을 활용한 국내 신·재생에너지의 대부로 통한다. 국내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국가정책이 발표되기 훨씬 이전부터 공공건물에 지열과 생활폐기물을 이용한 냉난방시스템을 도입하고 전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땅속의 지열을 활용한 냉난방시스템 도입은 2003년 원주 국민체육센터 신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비싼 도시가스요금으로 체육관 안에 마련할 수영장의 규모를 절반으로 줄여야 할 만큼 운영비 문제는 심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설비를 담당하던 이씨가 나서 처음으로 지열 냉난방시스템을 도입, 에너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나갔다. 지열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연간 에너지 비용의 52%(2억 5000만원)를 줄일 수 있었다. 국민체육센터는 일반 건물보다 2배 가까운 16시간을 운영하고 자연녹지지역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이곳에서 지열이 실패하면 앞으로 지열은 발 붙일 곳이 없다.’는 신념으로 추진한 것도 성공요인이다. 그 뒤 지열 설비의 공공기관 워크숍과 에너지관리공단 주관의 지열 성공사례 발표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지열의 장점을 알리면서 지열 냉난방시스템이 국내에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열은 그 뒤에도 원주종합체육관 등 공공건물에 속속 적용되며 획기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2008년부터는 생활폐기물을 건조, 압축, 성형해 연료로 사용하는 생활폐기물(RDF) 전용보일러 냉난방시스템을 시청사에 도입해 에너지를 절감하고 있다. 시청에서 사용하는 냉난방 에너지원 가운데 가스가 여전히 6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40%의 냉난방 에너지원으로 생활폐기물을 사용하며 에너지 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 절감 효과는 2010년 21.1%, 지난해 22.2%에 이른다. 원주 RDF에너지센터는 이후 전국에서 모여드는 초등생, 대학생, 각종 연구소 연구원, 해외 바이어들의 견학과 학습장소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만 해도 미국 뉴욕주 상원의원을 비롯해 요르단, 브라질, 태국, 중국 등 다양하다. 이밖에 겨울철 미끄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파이프 매설공법을 개발, 시청사 진입광장에 온돌구조의 파이프를 깔았다. 이 같은 신재생에너지 성공사례로 이씨는 2007년 국무총리상, 2008년 에너지 대상, 지난해 원주시 베스트공무원, 청백봉사상 수상 후보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노하우 전파를 위해 전문강사와 연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씨는 “영구 배수시설을 이용한 냉난방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그동안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도 온힘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사진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5) 전남 강진 당전마을 푸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5) 전남 강진 당전마을 푸조나무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재감은 뒤늦은 상실감과 함께 다가온다는 아쉬움을 드러낸 옛말일 게다. 빈 자리에 남은 상실의 아픔을 메워 주는 건 언제나 나무다. 한번 뿌리내린 뒤로는 제 명을 다할 때까지 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게 나무의 운명인 까닭이다.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이 그리울 때면 그와 함께했던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찾아가 잊혀가는 기억의 실마리를 떠올리려 애쓰게 마련이다. 또 떠났던 사람이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고향의 푸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큰 나무이기 십상이다. ●고려 최대 규모 가마터에 뿌리 고려 때 신비의 빛을 가진 청자를 굽던 가마터로 유명한 전남 강진 대구면 사당리 당전마을. 내로라하는 전국의 도공들이 모여 저마다의 작품을 빚어 내던 곳이다. 당대 최대 규모였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왜구의 잦은 침범으로 가마터는 차츰 폐쇄되고 도공들은 하나둘 흩어져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한 그루의 나무가 지켰다. 푸조나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경기도 이남의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우리 나무다. 중부지방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남해안 지역을 여행할 때면 느티나무나 팽나무 못지않게 마을 어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고려청자 가마터인 당전마을 어귀에 서 있는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는 키 16m, 가슴높이 둘레 8.5m의 큰 나무이지만, 중심 줄기가 없어 조금은 허전한 느낌도 준다. 줄기는 300년 전에 불어온 태풍에 부러졌다고 한다. 그 빈 자리 곁에서 새로 자란 6개의 새 줄기가 굵고 튼튼하게 솟아 올라 웅장한 모습을 이뤘다. 사방으로 가지를 고르게 펼쳤는데, 서쪽의 무성한 나뭇가지는 스스로의 무게가 버거운 듯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불균형의 아름다움을 갖췄다. 전체적으로 펼쳐진 넓은 품은 마치 거대한 짐승이 웅크려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줄기가 부러져 나간 뒤 생긴 상처를 나무는 스스로 감싸 안았다. 깊은 상처는 살아남은 다른 줄기의 껍질이 부드럽게 덮었고, 곁에서 자란 새 줄기들은 꿈틀거리며 안쪽의 빈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아픔의 세월을 거치며 나무는 오랜 안간힘으로 부러지기 전의 모습 못지않게 근사한 수형을 이뤘다. 부러진 줄기를 바라보면서도 생명을 놓지 않고 새 가지를 틔워 생명력을 회복한 질긴 인내가 볼수록 신비롭다. ●300년 전 태풍에 부러진 가운데 줄기 문화재청 자료에는 천연기념물 제35호인 이 나무는 고려 도공이 살펴 키운 것으로 나이는 300살 정도로 추정된다고 나와 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일단 고려 도공이 살핀 나무라는 사실과 300년 전에 심은 것이라는 시간의 불일치가 그렇다. 게다가 300살 된 여느 푸조나무에 비해 클 뿐 아니라, 300년 전에 부러졌다는 사실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처럼 큰 피해 뒤에도 살아남는다는 건 웬만큼 큰 나무가 아니고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푸조나무는 마을에 태풍이 닥친 300년 전에도 이미 큰 나무였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고려 청자 가마터가 스러지던 즈음인 600여년 전에 도공들이 심고 키웠던 나무일 수 있다. “박물관이 들어오면서 살림이 많이 달라졌어요. 농사 짓던 땅에 박물관을 지으니 농사 규모가 줄었지요. 그 바람에 마을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아요. 지금은 마흔 가구 남짓 있지만, 농사일도 옛날 같지 않아요. 변하지 않은 건 당산나무뿐입니다.” ●마을 어귀 지키며 귀향객 맞아 수도권에서 공장 일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는 조규남(54)씨 이야기다. 조씨가 지친 몸을 끌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에는 청자박물관이 세워진 뒤였다. 논과 밭이 풍성하던 고향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나마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건 당산나무뿐이었다. “우리 당산나무가 대단한 나무야. 옛날에 어떤 가난한 나무꾼이 그 나뭇가지를 꺾은 적이 있었다고 해. 그 사람이 제 명대로 살았겠어? 급살을 맞고 죽었지. 그만큼 우리 나무가 신성한 나무라는 말이야. 아직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올리지.” 조씨의 집 조붓한 앞마당으로 불쑥 찾아든 옆집 박정임(86) 할머니가 나무 이야기를 덧붙인다. 박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아직까지 마을을 떠나지 않아, 사당리 당산나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조씨가 거든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잘 지키려고 날을 잡고 모여서 얘기하곤 했어. 나무에 거름이라도 줘야지 싶으면 마을 사람들이 돈도 십시일반으로 추렴하고, 일도 거들면서 지켜온 나무인걸.” 열아홉 살에 이 마을로 시집 왔다는 조씨의 어머니 하금댁(84)도 한마디 보탠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면서부터 굳이 마을 사람들이 나무 관리를 위해 별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해마다 칠월칠석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무의 건강을 살폈다고 한다. ●해마다 칠월칠석에 나무의 안부 살펴 극진한 보호 속에 살아온 사당리 푸조나무는 사람들의 들고남을 모두 바라보았다. 처음엔 우리 민족의 자랑 가운데 하나인 고려 청자를 빚어내던 옛 도공을, 다음에는 가마터가 스러진 자리에 깃든 농민을, 이제는 간단없이 찾아오는 관광객의 들고남을 바라보며 나무가 보낸 계절이 1000번을 넘는다. 긴 세월 동안 말없이 사람살이를 지켜보는 나무에게서 사람살이의 모든 추억을 되살리게 되는 까닭이다. 글 사진 강진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51-1. 서울에서 강진을 가려면 서해안고속국도의 종점까지 간 뒤 국도를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목포톨게이트에서 3㎞ 쯤 가서 나오는 죽림분기점에서 국도 2호선으로 빠져나가면 강진군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강진군청 못 미쳐 강진의료원 앞 남포사거리에서 3.5㎞ 직진하면 목리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국도 23호선으로 우회전하여 15㎞ 정도 남진하면 미산삼거리에 이른다. 좌회전하면 곧바로 고려청자도요지와 청자박물관이다. 나무는 박물관 부지 끝 건너편 도로변에 있다.
  • [2일 TV 하이라이트]

    ●한국인의 밥상(KBS1 밤 7시 30분) 먹을거리가 없었던 시절, 궁여지책으로 먹었던 음식은 시래기였다. 무청을 60일 정도 말리게 되면 시래기가 된다. 겨울철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식재료였다. 그중 우리나라의 보기 드문 고산분지라 일컫는 강원도 양구 해안면은 극심한 일교차로 시래기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지닌 곳인데…. ●호루라기(KBS2 밤 8시 55분) 지난주 야생동물 불법유통 현장을 고발한 ‘김남훈의 원펀치’. 그의 야생동물 불법유통 단속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야생동물 판매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버젓이 불법을 자행하는 업주들과 합법의 탈을 쓰고 은밀히 이뤄지는 야생동물 불법 유통. 해결책은 없을까. 야생동물 불법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고향을 부탁해(MBC 오후 6시 50분) 질 좋은 참나무가 1300도가 넘는 가마 속에서 꼬박 일주일을 견뎌야 완성된다는 숯. 그 동안 숯쟁이들도 가마 밖에서 숯과 함께 밤낮을 견딘다. 강원도 횡성에서 16년째 숯가마를 운영하는 박영환씨는 고된 일에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자신을 위해 시골로 돌아온 아들이 고맙고 대견하기만하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밤 8시 50분) 세 살 이후 단 한번도 머리카락을 잘라본 적이 없다는 소년이 있다. 그 소년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다. 남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입대 영장이 날아왔다. 20여년간 기르며 정든 머리카락들과 헤어질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그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모습부터 입대모습까지 생생하게 담았다. ●극한직업(EBS 밤 10시 40분) 여기저기 벌목한 대나무를 내다팔기 위해 모인 사람들. 강 하류에 한꺼번에 모인 뗏목이 장관을 이룬다. 오로지 대나무에 의지해 살아가기 때문에 작업공들은 매주 월요일 마켓데이를 기다린다. 하지만 장이 열린 지 오래지 않아 폭우가 쏟아진다. 그 양이 심상치 않고, 마을의 유일한 대나무 다리마저 위험한 상태인데…. ●검색녀(OBS 밤 11시 10분) 영화배우 김기방. 그가 절친 조인성을 잔소리꾼이라고 폭로한다.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그는 조인성 때문에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배우가 된 이후 고민은 조인성이 자신을 혼낸다는 점이다. 조인성은 항상 그에게 ‘얼굴이 못생겼다’, ‘털을 깎아라’, ‘살을 빼야지’등의 이유로 혼낸다는 사연을 털어 놓는다.
  • 홍대 리치몬드제과, 대기업에 밀려 추억속으로...

    지난 28일 트위터에서는 한 제과점의 폐업 소식이 이슈가 됐습니다. 대기업의 골목시장 잠식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31일을 끝으로 홍대에서 문을 닫는다는 그 제과점을 찾아갔습니다.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제과점에는 마지막을 알리는 듯 추억을 간직하려는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20대부터 다녔는데 없어진다고 하니깐 서운하네요.” [김경숙(62)/주부] “지역에 이러한 것들이 오래 남는 게... 돈도 중요하고 장사도 중요하지만 너무 아쉽네요.” [신현기(52)/직장인] “홍대에서 친구들 만날 때는 여기가 오래되고 유명한 곳이니까 ‘여기서 만나자.’ 하면 됐을 정도로 의미 있는 곳이다.” [배진홍(31)/직장인] 30년째 한 자리에서 이곳을 운영해 온 제과명장 권상범씨.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제과명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빵 맛이 좋아 단골 손님도 많았다고 합니다. “가까이 계시는 전 대통령 사모님(이희호 여사)이 자주 오셨었어요. 조용히 오셔서 조용히 빵을 사셨던 기억이 나요.” [권상범(67)/리치몬드 대표] 남편과 함께 가게를 운영해 온 부인 김종수씨는 단골 손님을 만나자 애써 참았던 눈물을 흘립니다. “아쉬운 점이야 말할 수 없겠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고, 본점도 있고 계속 과자는 영원히 만들 거니깐...” [김종수(60)/권대표 부인] 5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권씨. 국내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제과점이 들어 오려하자 힘들게 보증금과 월세를 100% 인상하며 막았습니다. 또한 2010년 10월에는 점포 리모델링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년 4월 건물주가 아무런 상의 없이 올해 1월 31일로 계약이 완료되니 가게를 비우라고 통보 했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네들이 어떤 조건인줄 모르겠지만, 지금은 봐서는 조건을 들어줄 수 없으니깐... 그 조건에는 우리가 사업을 할 수 없으니깐 비워드리겠다고 최종 서로 합의했습니다.” [권상범/리친몬드 대표] 이곳에는 롯데에서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기업이 들어오면 발생되는 여러 가지 이익에 건물 주인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최근 대기업의 영세상권 잠식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면서 입점을 하려는 롯데측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집니다. 현재 리치몬드 제과점 반경 50미터 이내에는 스타벅스, 카페베네등 국내외 유명 커피전문점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산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는 권씨. 누구보다 뛰어난 제과 기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자본과 힘에 밀려나는 권씨의 뒷모습에서 영세 상인들의 탄식이 들려옵니다. 글 /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영상 / 문성호PD songho@seoul.co.kr
  • 나무와 詩, 그리고 사람살이

    품 너른 나무 아래 서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기 마련이다. 어줍은 솜씨로라도 글 한 자락 풀어내려 애를 쓴다. 시인 묵객들이야 더 말할 게 없다. ‘나무가 말하였네 1·2’(마음산책 펴냄)는 작가들이 나무 곁에서 쓴 시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가 사람살이에 맞춰 풀어낸 책이다. 시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다. 하지만 나무가 가진 속성과 정한을 사람살이에 빗대 풀어내는 일 또한 나무에 관해 어지간한 내공이 쌓이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나무의 성품을 알고 나무가 사람 틈에 섞여 지내온 이력을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나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저자의 나무에 대한 애정은 넓고 깊다. 서울신문 목요일 자에 꼬박꼬박 연재되고 있는 여행 에세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를 읽다 보면 단박에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단 한 줄도 자신의 현학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데 나무를 돋보이게 하는 일이라면 재거나 가리지 않는다. 불원천리, 풍찬노숙이 나무를 좇는 그의 행보를 설명하는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책은 저자가 나무 여행을 떠나는 길에서 만난 시들에 자신의 감상을 덧대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무화과’를 통해 이은봉 시인과 저자는 중년의 삶을 본다. 시인이 “꽃 피우지 못해도 좋다/열매부터 맺는 저 중년의 生!”이라 노래하면 저자는 보다 쉬운 언어로 자분자분 설명을 보탠다. “무화과 나무에서도 꽃이 핀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무화과나무는 오월쯤 잎겨드랑이에 도톰한 돌기를 돋운다. 영락없는 열매지만 꽃이다./(중략)/꽃주머니는 그대로 열매가 된다. 무화과는 사람의 입 안에 달콤한 기억을 남긴다. 꽃 피우지 않고, 누가 알아보지 않아도 좋다. 비바람 몰아쳐도 수굿이 열매 맺는 중년의 삶이 그렇다.” 김영무의 ‘연잎’을 읽으면서는 연잎의 소수성(疏水性·물과 결합하기 어려운 성질)을 떠올린다. 잎자루의 보이지 않는 진동 때문에 물방울은 연잎을 적시지 않고 연잎은 물방울을 깨뜨리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처럼 서로를 품으면서도 구속하거나 해치지 않는 것임을 저자는 연잎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1권은 정지용·윤동주에서 김춘수·신경림을 거쳐 나희덕·문태준까지, 나무를 곁에 두고 사랑한 우리 시인들의 절창 70편을 찾아간다. 2권은 폭을 넓혀 이백, 조운과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리고 우리나라의 젊은 시인을 아우르는 81편의 시를 담았다. 1세트 2만 2500원, 각 권 1만 15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군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군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의 생존법은 나무나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자연의 순리를 벗어나기 십상인 사람으로서는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나무살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깨우칠 때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나무들이 모여 사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나무들은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제대로 살 수 있다. 최소한 자신의 나뭇가지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뿌리를 뻗고 양분을 흡수해야 할 땅도 필요하고, 아울러 들이마실 공기도 넉넉해야 한다. 때문에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 숲에서 나무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숲에서 모여 사는 나무들은 평균 200년 정도를 넘게 살기 어렵다는 게 관련 학계의 정론이다. 그러나 나무들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정론을 깨뜨리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전남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산서마을 마을회관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후박나무가 그런 경우다. 천연기념물 제481호인 이 후박나무는 세 그루가 아주 가까이 붙어서 자랐지만, 마치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 형상을 이룬, 매우 특별한 나무다. “나무가 제 살길을 찾아서 어찌 저렇게 어울려 자라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그저 튼튼하게 잘 자라 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지. 나무가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속내야 알 도리가 없지.” 매운 겨울바람을 피해 마을회관에 모여 정담을 나누던 마을 노인 가운데 이오현(70) 노인은 세 그루의 나무가 보여 주는 신비로운 생김새에 대한 감탄에 너털웃음으로 대꾸한다. 혹시 서로를 배려하며 평화롭게 자라는 마을 분위기를 닮은 게 아니냐는 허수로운 질문을 잇대어 내놓자,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재남(70) 노인이 “그런 게 어딨어. 나무가 알아서 크는 거지.”라며 눙치고 만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는 조붓한 도로 가장자리의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는 큰 나무여서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라도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한 번 보고는 잊기 어려울 만큼 크고 아름답다. 겨울에도 초록의 잎을 떨구지 않는 싱그러운 나무인 데다 사방으로 넓게 펼친 나뭇가지의 품이 매우 넓어서 한눈에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한 나무다. 그러나 흘긋 스쳐 지난 사람이라면 이 나무가 한 그루가 아니라 세 그루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한 그루의 큰 나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경주 이씨 선조가 마을 경계에 심은 나무… 천연기념물로 우뚝 나무의 위용에 압도돼 다가서면 그제서야 울창한 나뭇가지 아래로 정체를 드러내는 나무 줄기가 셋임을 확인하게 된다. 세 그루 가운데 비교적 어려 보이는 한 그루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다른 두 그루는 바짝 붙어 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서의 고유 명칭은 여러 그루임을 표시하는 ‘군’(群)을 붙여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군’이다.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서서 세 그루의 나무가 나뭇가지를 펼친 방식을 살펴보면 놀라움은 훨씬 커진다. 세 그루의 나무는 마치 서로의 삶을 배려하고 심지어는 적당히 상의하면서 자신이 가지를 뻗어 나갈 자리를 찾은 듯하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공간을 살갑게 배려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짝 붙어 있는 두 그루의 큰 나무는 서로 만난 방향으로는 가지를 뻗지 않았고, 반대편으로만 가지를 뻗었다. 그리고 한 그루의 작은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가 가지를 펼치고 남은 빈 공간을 메우듯 가늣한 가지를 큰 나무 사이로 뻗어 전체적으로 완벽한 반원형을 이뤘다. 더욱 놀라운 일은 서로에게 살아갈 공간의 일부분을 양보하고, 몸피를 키우며 세 그루가 이룬 풍경이 한 그루의 나무가 이루기에도 어려울 만큼 단정하다는 것이다. 셋 중 어느 한 그루도 웃자라거나 삐죽 솟아 나오지 않았다. 솜씨 좋은 예술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빚어 낸 조각품처럼 보인다. “400년 전에 마을을 처음 일으킨 우리 경주 이씨 선조가 마을 동서남북 가장자리에 나무를 심었지. 그 가운데 동서 양쪽에서 자라던 두 그루는 옛날에 죽었고, 지금까지 남은 나무가 두 곳에 있어.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후박나무고, 다른 한 그루는 마을 남쪽에 있는 소태나무인데, 당산제는 그 소태나무에서 지내지.” 노인들 가운데 비교적 연로한 축에 속하는 이동희(86) 노인은 후박나무에 새겨진 마을의 역사를 짚어 낸다. 지금도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는데, 뜻밖에도 당산나무는 마을에서 가장 큰 이 후박나무가 아니다. “당산제를 올리는 소태나무는 너무 늙어서 볼품이 없어. 하지만 그 나무가 오랫동안 우리 마을을 지켜 준 당산나무야. 일제 때 순사들이 당산제를 못 지내게 했을 때도 우리 마을에서 소태나무 당산제는 빼놓지 않았어.” ●마을 안녕 지켜주는 당산나무… 넉넉함 주는 정자나무 후박나무에서 남쪽으로 400m쯤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정자와 함께 서 있는 소태나무는 노인의 이야기대로 키도 크지 않고 볼품도 없지만, 후박나무와 함께 이 마을을 일으킨 선조가 처음 심은 마을의 상징이자 살림살이를 지켜 주는 마을의 중심이라는 이야기다. 마을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세 그루의 후박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정자나무로 살아왔다. 사람이나 나무나 자신의 생김새에 삶의 내력을 담게 마련이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살아온 내력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처럼 나무도 자신의 생김새에 살아온 내력을 두루 담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을에서 자라는 나무가 그 마을 사람들의 성품을 빼닮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 주는 당산나무, 그리고 지친 살림살이에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는 정자나무가 살아 있는 농촌 마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겨울 풍경이다. 글 사진 장흥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길] 전남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 324-8. 서해안고속국도의 목포나들목에서 영암·강진을 거쳐 장흥까지 간다. 장흥군청 조금 못미처에서 탐진강을 건너는 작은 다리 탐진2교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사거리에서 국도 23호선을 이용해 14㎞쯤 가면 관산읍에 닿는다.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사거리에서 정남진 방면으로 직진한다. 5㎞쯤 가서 삼산방조제 삼거리가 나오면 방조제 방면으로 좌회전해 700m 정도 간다. 나무는 도로변에 버티고 서 있어서 지나는 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3) 전남 무안 석용리 곰솔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3) 전남 무안 석용리 곰솔

    스물 남짓한 가구가 모여 사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이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구 밖 나무 곁에 노인이 나타난다. 나무 앞에 놓인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쉬노라면 마을 앞 저수지 건너편 조붓한 도로에 노란 색 미니버스가 나타난다. 조무래기 아이들 서넛이 버스에서 내리자 고요하던 들녘에 왁자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어찬다. 노인은 고개 너머의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아이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배어난다. 저수지 옆 길을 달려온 아이는 노인의 가슴에 가방을 내던지듯 팽개치고 쪼르르 몰려서 마을 골목 안으로 달려간다. ●마을 어귀서 주민의 살림살이 주관 전남 무안군 해제면 석용리 감정마을 동구 밖의 저물녘 풍경이다. 서너 해 전의 어느 봄 날, 이 마을의 당산나무인 곰솔 앞에서 맞이했던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아이들이 그새 중학생 고등학생이 됐어요. 이제는 노란 색 학교 버스가 아니라,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죠.” 불과 서너 해 사이지만, 아이들은 훌쩍 컸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그때 그 노인도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곰솔 앞에 나오지 않는다. 석용리 곰솔의 풍경은 적잖이 달라졌다. 그러나 나무는 달라진 게 없다.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나무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할 수야 없겠지만, 느릿한 변화이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사람의 깜냥으로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다. 석용리 곰솔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어귀에 홀로 서서 마을의 모든 살림살이를 지켜왔다.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감정마을 풍경의 중심이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곰솔을 빼놓고는 감정마을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마을 살림살이를 이야기하기 위한 마을회관도 그래서 나무 앞에 세웠다. 싸락눈 흩뿌리는 겨울 오전, 마을 아낙들이 바로 그 곰솔 앞의 마을회관에 모였다. 그중에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강산댁(65)은 나무를 ‘할머니나무’라 하지 않고, 그냥 ‘할머니’라고 부른다. “우리 할머니가 아주 영험한 할머니예요.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거든요. 마을에 홍역을 앓던 어린 애들 일곱 명이 한꺼번에 죽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모두 모여서 며칠 동안 건강히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렸지요. 그 뒤로는 마을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모두 잘살게 됐지요.” ●사람의 생사여탈권까지 쥐락펴락 강산댁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도 있다고 이야기를 잇는다. 이 마을에 살던 한 사내가 땔감을 하려고, 이 나무의 가지를 꺾어 갔는데, 그날 밤에 사내의 음부에 종기가 났다. 온갖 처방을 동원했지만, 종기는 낫지 않고 3년 동안 고생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석용리 곰솔은 언제 누가 심은 나무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나무라는 믿음은 마을 모두에게 공통적이다. 나무는 사람살이를 바라보고 지키기만 하는 게 아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삶과 죽음에 개입하는 신비로운 나무가 됐다. 해마다 음력 이월 초하루에 당산제를 지내는 것도 그래서다. 300살 된 석용리 곰솔은 키가 11m, 줄기둘레는 3m를 조금 넘는다. 나무의 중심인 굵은 줄기가 곧게 솟아오른 뒤에 사람 키를 조금 넘는 부분에서는 사방으로 가지를 넓게 펼쳐서, 매우 우아한 자태를 이뤘다. 높이 솟아오르는 생김새로 자라는 바닷가의 여느 곰솔과는 사뭇 다르다. 약간 비탈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오래전에 나무 뿌리 부분에 약간의 흙을 돋우고, 주변에 돌축대를 정성껏 쌓았다. 얼핏 보아도 마을에서 이 나무를 얼마나 공들여 지키는지 알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생김새에 사람들의 정성이 보태져 나무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됐다. 담양전씨들이 모여 사는 감정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라고 부르는 건 이 마을에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는 여인이 많았던 까닭이라고 한다. 강산댁은 감정마을이 열녀가 많이 나온 마을이라며, 나무 바로 앞에 세운 두 기의 열녀비가 그 증거라고 가리킨다. 상세한 내력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마을의 정신과 도덕률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여인들이 대를 이어온 마을이라고 자랑한다. ●나무와 사람이 이뤄가는 소박한 지혜 “얼마 전에는 누가 우리 할머니 앞에 돼지머리와 제수를 차려놓고 밤새 고사를 지내고 갔더라고요. 워낙 영험하다는 게 동네방네 소문이 나니까, 몰래 찾아와서 소원을 빌고 간 거죠.” 강산댁의 나무에 대한 자부심은 끝없이 이어진다. 마을이 넉넉하게 사는 것도 모두 이 나무 덕분이라고까지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어디 이 마을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을 이루며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의 모든 살림살이가 이뤄지는 것 역시 농촌 마을에서라면 결코 생경한 일이 아니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나무 앞에 모여 흥겹게 잔치를 벌이고, 궂은 일이 생기면 나무 앞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살림을 이어가는 게 거개의 농촌 풍경이다. 300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나무의 오랜 수고, 그리고 그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지혜가 이룬 넉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글 사진 무안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전남 무안군 해제면 석용리 422-1 감정마을회관 앞. 무안~광주 간 고속국도의 북무안나들목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난 국도 77호선을 이용해 현경면사무소까지 간다. 해제면 쪽의 국도 24호선을 타고 북서쪽으로 14㎞쯤 가면 토치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여 해제면 소재지까지 간 뒤, 오른쪽의 낮은 봉대산을 끼고 고개를 넘어간다. KT 기지국을 지나면 왼쪽으로 조그마한 저수지가 나오고, 뒤편으로 마을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그 앞에서 우회전하여 170m쯤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어귀에 나무가 있다.
  • 세계 5번째 최장수 3,500년 된 나무 ‘화르르~’

    세계 5번째 최장수 3,500년 된 나무 ‘화르르~’

    무려 3,500년 동안 생명을 이어온 나무가 화마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난 16일 새벽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3,500년 된 38m 높이의 싸이프레스 나무에 불이 붙었다. 현지 소방대가 출동해 불길을 잡기위해 안간힘을 쏟았으나 결국 나무는 불에 탄 흔적만 남긴채 사실상 길고 긴 생명을 다했다. 세계에서 다섯번 째로 오랜 산 나무로 알려져 관광객들의 사랑을 독차지 해 온 이 나무는 그간 허리케인, 가뭄 등 가혹한 자연재해 등을 굳세게 견뎌왔다. 현지 소방대는 “산속에 나무가 있어 호스를 들고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면서 “채 3시간도 되지 않아 불에 타버렸다.”고 밝혔다. 삼림국 등 정부관계자들은 발화 원인을 조사중이나 일단 방화의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있다. 삼림국 관계자는 “자세한 발화 원인을 조사중이며 방화의 가능성은 적다.” 며 “낙뢰에 의한 사고가 아닌가 추측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깔깔깔]

    ●사회에 나오면 알게 되는 것들 1 1.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2.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3. 참고 참고 또 참으면 참나무가 된다. 4. 포기하면 편하다. 5.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6. 아니면 말고. 7.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8. 목숨을 버리면, 무기만은 살려 주겠다. 9.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 10. 잘생긴 놈은 얼굴값하고, 못생긴 놈은 꼴값한다. 11. 공부는 실수를 낳지만, 찍기는 기적을 낳는다. 12. 까도 내가 까. 13. 사회에 나가기 전 애인이 최고다. 14. 동정할 거면 돈으로 줘요. 15.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을 해주세요.”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2)해남 녹우당(錄雨堂)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2)해남 녹우당(錄雨堂) 은행나무

    집에는 주인의 이름을 표시한 문패를 건다. 문패에는 단순히 주인의 이름을 적을 뿐 아니라, 몇 가지 장식을 덧붙여 그 집의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옛 선비들은 주인의 삶과 철학을 상징하는 집 이름, 즉 당호(堂號)를 붙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집을 효과적으로 표시하기 위해서 집 안팎에 크고 작은 나무를 심었다. 집안에서 즐기는 정원수 외에도 옛 선비들은 대문 앞에 높이 솟구치는 큰 나무를 심어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한 집안의 상징으로 키워지겠지만, 이 나무가 오래 살아남으면 마을 전체를 가리키는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그 나무 안에 집 주인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의 사람살이가 담기는 건 당연한 순서다. ●비자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초록의 빗소리 땅끝마을 해남에는 초록빛 비가 내리는 집이 있다. ‘초록 비의 집’으로 해석되는 ‘녹우당’(雨堂)이라는 당호의 이 집은 조선시대의 시인 윤선도가 머물던 유서 깊은 살림집이다. ‘초록 비’를 느낄 수 있는 열쇠는 이 집의 사랑채에 걸린 편액 ‘정관’(靜觀)에 담겼다. ‘고요하게 바라보라.’는 뜻대로 집 안에 들어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열면 사철 어느 때에라도 싱그러운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빗소리는 집 뒤로 이어지는 덕음산 숲의 초록 비자나무들이 바람에 스치며 지어내는 소리다. 그래서 녹우(雨)다. 국어사전에는 ‘녹우’를 “늦봄과 초여름 사이 잎이 우거진 때 내리는 비”라고 풀이하지만, 이 집에서만큼은 사전적 뜻보다 비자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잎새들의 소리를 빗소리에 비유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진다. 송강 정철과 함께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윤선도의 시심(詩心)이 살아있는 집인 까닭이다. “뒷산은 바위 산이에요. 선조들은 이 산에서 바위가 허옇게 드러나면 부락이 융성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바위를 초록 빛으로 덮기 위해 나무를 심으셨죠. 자연히 사철 푸른 잎을 떨구지 않는 비자나무를 고르신 겁니다.” 녹우당에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자 이 집을 처음 지은 어초은 윤효정의 18대 종손인 윤형식(80) 노인의 이야기다. 녹우당의 뒷산 숲은 천연기념물 제241호인 해남 연동리 비자나무 숲이다. 이 비자나무 숲은 예전만큼 무성하지 않다. 윤 노인은 나무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일인 모양이라며 아쉬워한다. 센 바람에 맥없이 쓰러지는 나무도 있고, 더러는 저절로 나이가 들어 죽는 나무도 있다고 사정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여전히 3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무성한 뒷산은 한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숲이다. ●윤선도 선조, 아들 과거급제에 심은 나무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땔감으로 쓰던 옛날에도 선조들은 뒷산의 비자나무만큼은 절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했다는 게 윤 노인의 이야기다. 선조들은 비자나무의 열매를 모아 마을 사람들에게 구충제로 쓰도록 나눠 주기도 했다. 또 집안에서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비자 열매 강정을 만들어 손님의 다과상에 내놓기도 한다. 녹우당은 원래 조선 효종이 윤선도를 위해 수원 화성 지역에 지어준 살림집이다. 만년의 윤선도가 이곳 해남에 머무르게 되자, 옮겨온 것이다. 그동안 녹우당을 비롯한 주변 유적지 일원을 녹우단이라 했지만,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공식적으로 ‘녹우당’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했다. 녹우당을 찾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대문 앞에 우뚝 서서 나그네를 반기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다. 주변에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지만 이 집을 대표하는 나무는 단연 대문 앞에 우뚝 서 있는 이 은행나무다. 윤선도의 4대조인 어초은이 이 집에 살던 때, 그의 여러 아들이 과거에 급제한 걸 기념하며 심었다. ●줄기 둘레만 5m… 나이보다 젊은 나무 나이는 500살, 키는 20m까지 컸다. 줄기 둘레도 5m 가까이 된다. 단아한 기와 돌담으로 이어진 대문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는 이 나무는 이 집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때 어초은 할아버지는 은행나무를 네 그루 심으셨다고 해요. 그 중 한 그루는 오래전에 불이 나서 수세가 형편 없게 됐어요. 하지만 그 나무들 모두가 여전히 뒷동산에 살아 있어요. 물론 그 중에 제일 튼튼하고 잘생긴 나무가 대문 앞의 이 나무이죠.” 윤 노인은 비자나무와 은행나무를 심은 어초은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선조들이 대를 이어 집 주위에 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덧붙인다. 녹우당 주변에서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론 윤 노인은 대문 앞의 은행나무를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다. 나무는 단지 집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였을 뿐 아니라, 지체 높은 가문의 살림집임을 알리는 상징이기에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 나무가 500년의 세월을 거쳐 이제는 가문의 자랑을 넘어 마을의 랜드마크가 됐다. “누가 따로 돌봐 줄 필요는 없어요. 한눈에 봐도 건강하고 싱그럽잖아요. 그래도 나이가 많으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암나무이지만 열매가 자잘하고 많이 맺지도 않아요. 하지만 해남군에서 때맞춰 영양도 보충해 주고, 병충해도 방제하며 철저히 관리하니,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아갈 겁니다.” 나무가 아름답게 살아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선조들의 믿음은 확고했다. 나무가 죽고 뒷산이 헐벗어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융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긴 것도 그래서다. 지금 눈 감고 초록의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준 옛 선조들의 보살핌에 고개가 숙여진다. 글 사진 해남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번지 녹우당. 서울에서 목포를 잇는 서해안고속국도를 이용해 남도에 들어서서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군청까지 간다. 해남군청에서 남쪽으로 난 지방도로 806호선을 이용해 대흥사 방면으로 간다. 곧게 난 아름다운 길을 따라 4㎞쯤 가면 ‘고산윤선도 유적지’로 들어서는 마을 길과 연결되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조붓한 농로를 따라 1.3㎞ 가면 숲 사이로 주차장과 매표소가 나온다. 은행나무는 매표소에서 200m쯤 걸어 들어가면 녹우당 대문 앞에서 만날 수 있다.
  • [서울신문 보도 그후] 숭례문복원 목공사 한 달여 만에 재개

    문화재청은 9일 목수들 노임 문제로 한 달째 중단된 숭례문 복원 목공사를 10일부터 재개한다고 밝혔다. 시공사인 명헌건설㈜과 실제 복원을 맡은 신응수 대목장이 기존 계약대로 공사를 재개하기로한데 따른 것이다. 신 대목장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목공사 노임이 명헌건설과 애초 계약했던 3억 8500만원보다 이미 지난해 12월 초에 1억원 이상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4월까지 공사할 경우 더 늘어날 텐데 추가되는 노임을 받지 않더라도 일을 진행하겠다.”면서 “숭례문 목공사 전체를 기부하겠다고 서울신문에 밝힌 마당에 더 이상 목수들의 노임을 가지고 계속 갈등한다면 서로 상처만 입게 돼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다만 이후에 들어오는 나무들은 통나무가 아니라 제재목으로 들어오는 방향으로 명헌건설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8일 오후 3~6시 3시간 동안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과 면담하고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최 국장도 “공정이 한 달여간 중단된 상태였지만 문화재청과 공사 관계자들은 국민의 관심사인 숭례문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숭례문 복구 목공사가 당초 예정한 대로 4월 말 완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숭례문 복구는 크게 성곽 복원과 문루 복구공사로 구성되며 이 중 문루 복구는 목공사, 기와공사, 단청공사로 진행된다. 현재 목공사는 1층 조립과 2층 목재 가공을 70%가량 완료한 상황에서 지난달 8일 이후 중단된 상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계약엔 손질된 각재 쓰기로 돼 있어…원목 손으로 다듬으면 노임 더 들어”

    “계약엔 손질된 각재 쓰기로 돼 있어…원목 손으로 다듬으면 노임 더 들어”

    “170억원에 달하는 숭례문을 복구하는 국보 일을 하면서 나와 목수들이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문화재청하고 싸우는 것처럼 비치면 국민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차라리 이미 받은 노임 3억 8000만원을 돌려주고, 목공사를 국가에 기증하겠습니다.” 신응수(70·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은 숭례문 복구 공사 중단 보도가 나간 6일 오후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그동안 답답했던 속을 털어놨다. 신 대목장과의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창성동 신 대목장의 ㈜한국전통건축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숭례문 목공사가 중단된 이유는. -지난달 1일 목수 노임 1억 6000만원이 연체됐다는 공문을 보냈다. 4월까지 목공사를 다 마치면 2억 3000만원의 노임이 더 들게 되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요구했다. 목수 노임에 대한 명헌건설과의 계약이 당초 5억 4000만원이었다. 답신은 그달 19일에 왔는데, 설계가 변경됐기 때문에 전체 노임은 3억 8000만원이라고 했다. 만약 시공사 측 주장대로 하면 노임은 벌써 1억원이 초과된 상태다. 연체된 노임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일을 더 못 하게 됐다. →문화재청 보도 자료를 보면 명헌건설과 신응수 대목장의 계약이 13억 2300만원이라고 돼 있던데. -그것은 목재를 포함한 가격이다. 문화재청에서 명헌건설에 공사를 맡길 때 목공사의 당초 계약은 약 13억원이었지만 설계가 변경돼 1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10억원 중 목재 가격이 6억 8000만원이고, 노임은 3억 8500만원에 불과했다. 167억 8500만원짜리 복구 공사에서 목수들 노임 3억 8500만원 때문에 공사가 중단됐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노임은 예정보다 왜 더 늘어났나. -1962년 숭례문 증수 공사가 있었는데 나도 20살 언저리에 그 공사에 참여했다. 그때 적용한 품셈표가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 50년 전에는 각재를 켜 가지고 온 1차 가공 목재를 목수들이 손으로 파고 깎고 했다. 서까래 대자귀질도 했다. 이번 숭례문 목공사는 가공이 안 된 통나무에 도끼질을 해서 나무를 다듬는 방식이다. 지금 숭례문 복구 방식은 150년 전 경복궁 복원(1865~1868) 때의 방식과 같다. 통나무 다듬기부터 시작하니 하루에 해야 할 일이 3일이나 더 걸리는 것이다. →명헌건설과의 계약은 어떻게 돼 있나. -명헌건설과의 계약에서도 나무가 손질된 각재로 들어온다고 돼 있다. 그러데 원목이 들어왔다. 폐쇄회로(CC)TV로 진짜 도끼질을 하는지 다 감시당했다. 나무 다듬을 때 전동기계 안 쓰고 일일이 손으로 다듬으면 앞으로 목수 노임이 2억 3000만원이 더 들어간다. 즉 목수 노임이 모두 7억원으로 불어나는 것이다. 물론 손으로 하면 정성이 들어가고 좋다. 그러나 통나무 다듬기까지 원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나. 도끼질하고 나무 다듬는 것을 숭례문 현장에서 하면서 시민들에게 보여 준 것도 아니라서 안타깝다. →문화재청에서는 목수들이 자귀질도 못하고, 숙련이 안 됐다고 하더라. -숙달된 목수는 자귀질도 금방 배운다. 3일이면 배운다. 통나무 깎는 것부터 시작해서 해야 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해결책이 뭔가. -문화재청이나 명헌건설이 목수의 노임을 지불할 수 없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내가 3억 8500만원을 내놓겠다. 나는 처음부터 도편수는 무료 봉사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무료 봉사 중이다. 또한 문화재청에서 명헌건설 직원이 되라고 해서 직원이 됐지만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은 적이 없다. 나도 돈 쌓아 두고 살지는 않지만 목수로 평생을 먹고살고 자식들 교육까지 다 시켰으니 우리 목수들하고 목공사 부문을 기부하고 싶다. 나중에 불탄 숭례문 목공사를 신응수와 목수들이 기증했다고 한다면 나도 보람이 있지 않겠나.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신응수 대목장은 1942년 충북 청원 출신으로 199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경복궁, 숭례문, 불국사, 수원성 등을 복원했다. 대목장 혹은 도편수는 고건축의 으뜸이 되는 궁궐, 사찰, 성곽 건축의 목공사 책임자를 뜻한다. 신 대목장은 이번 숭례문 복원에 목수 20여명을 이끌고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1) 해남 두륜산 천년수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1) 해남 두륜산 천년수

    해를 가리키는 네 자리 숫자 가운데 한 자리만 바뀌었지만, 새해가 되면 늘 새로운 마음으로 부풀게 마련이다. 설레는 마음 한편에는 분명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도 담겨 있다. 한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채 이루지 못한 사람살이의 꿈이 남기 때문이다. 결국 넘어가는 해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세월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달력을 바꿔 걸 즈음이면 새해의 설렘과 함께 지난해에 대한 안타까움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지는 해를 붙들어 안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적지 않은 게 사람살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월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꼭대기의 절터에 홀로 남아 “두륜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어요. 해를 붙잡아 두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가 있거든요.” 전남 해남의 대흥사 주차장 앞에 자리한 식당 주인의 너스레다. 그는 환하게 웃음 지으며 두륜산 정상에 서 있는 신비의 나무 ‘천년수’를 천천히 소개했다. “올라가서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예요. 1200년이나 됐다니까요. 높이 뻗은 나뭇가지가 산을 넘는 해를 붙잡고도 남죠. 나이 먹기 싫으면 그 나무에 해를 붙잡아 놓으면 돼요.” 대흥사 인근 마을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두륜산 천년수는 이름처럼 1000년을 넘게 산 매우 큰 느티나무다. 대개의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에서 살아가는 것과 달리 산 꼭대기에 홀로 서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1000년이라는 믿기 어려운 나이와 해를 붙잡아 둔다는 전설까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나무다. 천년수가 있는 자리는 천년고찰 대흥사의 산내 암자인 만일암 마당이다. 만일암은 17세기 후반에 지은 대흥사의 산내 암자라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더구나 만일암의 모든 전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겨우 고려 때의 석탑 양식을 볼 수 있는 오층석탑만 남아 있을 뿐인 폐사지다. 그 만일암 터 바로 앞, 암자가 있던 시절이라면 법당 앞마당쯤 되는 자리에 서 있는 느티나무가 바로 해를 붙잡아 둘 만큼 큰 천년수다. 만일암이 있던 시절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암자가 사라지면서 한 그루는 죽어 없어졌다. ●느티나무 가운데 가장 늙은 나무 천년수를 찾아가려면 대흥사를 거쳐 해발 703m인 두륜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다. 두 시간쯤 산길을 올라 정상인 가련봉 가까이에 이르면 만일암 터를 찾을 수 있다. 한 기의 초라한 오층석탑만이 옛 자취를 보여주는 쓸쓸한 폐사지 아래쪽으로는 무성한 대숲이 이어졌다. 천년수는 그 대숲 길 20m쯤 아래에 있다. 무려 1200살이나 된 느티나무다. 산림청 보호수로 등록된 느티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나이가 많다. 규모도 식당 주인의 표현처럼 어마어마하다. 키가 22m나 되고,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둘레도 9.6m나 된다. 천연기념물 가운데 가장 큰 느티나무인 전남 장성의 단전리 느티나무보다 2m나 키가 더 크다. 줄기둘레는 10.5m인 단전리 느티나무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이지만, 한눈에도 그 장대한 규모에 감탄사를 내놓을 만하다. 비좁은 자리에서 나뭇가지를 사방으로 15m나 펼쳐서 실제보다 더 우람해 보인다. 산 정상 가까이에서 이처럼 큰 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뜻밖이지 않을 수 없다. 나무와 어우러지는 주변 풍광을 함께 바라보기 위해서 물러설 공간도 없다. 나무를 온전히 바라보려면 그저 나무 앞에 서서 고개를 한껏 젖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나무 앞에 서면 단박에 나무의 위용에 압도당할 만큼 융융한 나무다. 깊은 산 정상이라고 해서 느티나무가 자라지 못할 이유야 없지만, 함께 어울릴 다른 나무도 없이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이토록 우람하게 자랐다는 건 나무가 사람과 더불어 살아왔다는 분명한 증거다. 사람이 심어 키우지 않고서는 느티나무가 이토록 멋지게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전에 만일암 스님들이 암자의 너른 마당에 손수 심고 정성껏 보살펴 온 나무임에 틀림없다고 보는 근거다. ●지는 해 붙잡아 두고 하루를 늘려 두륜산을 넘어가는 해를 이 나무에 붙잡아 둘 만도 하다는 생각이 생뚱맞지 않은 건 거칠 것 없이 빈 하늘에 한가득 펼친 나뭇가지 탓이다. 이 나무에 전하는 흥미로운 전설도 바로 그런 생각에 알맞춤하게 지어진 이야기다. 옛날 하늘에 천녀와 천동이라는 두 젊은이가 죄를 짓고, 두륜산으로 쫓겨 왔다. 옥황상제는 그들을 땅으로 보내면서 용서의 마음으로 하루 만에 불상을 짓는다면 하늘로 다시 올려주겠다고 했다. 천녀와 천동은 하루라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해를 붙잡아 나무에 매어두고 불상을 조각했다. 얼마 지나 불상을 완성한 천녀는 느티나무 앞에 돌아와 천동을 기다렸지만 천동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다급해진 천녀는 홀로 밧줄을 끊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때까지 불상을 완성하지 못한 천동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서 나중에 두륜산의 신령이 됐다는 이야기다. 흔히 마을에서 보던 나무를 산 위에서 보게 된 생경한 느낌이 자연스레 이루어낸 이 이야기에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야속해한 옛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세월이 무정한 건, 늙는 게 아쉬운 때문만은 아니다. 지나온 자취를 새겨 둘 여유도 없이 새해를 맞이하는 게 안타까운 건 아닐까. 두륜산 천년수에 넘어가는 해를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은 옛사람에게만 드는 건 아니지 싶다. 글 사진 해남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도립공원 내 만일암 터. 출발지에 따라 해남을 가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서울에서 가려면 서해안고속국도를 이용해 종점인 목포 나들목까지 가야 한다. 목포에서 국도 2호선과 13호선을 이용해 해남군청까지 간다. 해남군청에서 지방도로 806호선을 이용해 남쪽으로 10㎞ 남짓 가면 대흥사 입구 주차장이 나온다. 두륜산 천년수를 보려면, 대흥사 경내를 거쳐 등산로를 이용해 두륜산 정상으로 3㎞쯤 올라가야 한다. 나무는 만일암 터 아래의 비좁은 공간에 우뚝 서 있다.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저무는, 집/여성민

    저무는, 집/여성민 지붕의 새가 휘파람을 불고, 집이 저무네 저무는, 집에는 풍차를 기다리는 바람이 있고 집의 세 면을 기다리는 한 면 이 있고 저물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저무는 것들이 저무네 저물기를 기다리는 시간엔 저물기를 기다리는 말이 있고 저물기를 기다리지 않는 말이 있고 저무는 것이 있고 저물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저물지 못하네 저물기를 기다 리는 말이 저무는 집에 관하여 적네 적는 사이, 집이 저무 네 저무는 말이 소리로 저물고 저물지 못하는 말이 문장으 로 저무네 새는 저무는 지붕에 앉아 휘파람을 부네 휘파람 이 어두워지네 이제 집 안에는 저무는 것들과 저무는 말이 있네 저물지 못하는 것들과 어두워진 휘파람이 있네 새는 저물지 않네 새는 저무는 것이 저물도록 휘파람을 불고 저 무는 것과 저물지 않는 것 사이로 날아가네 달과 나무 사이 로 날아가네 새는 항상 사이를 나네 달과 나무 사이 저무는 것과 저물지 않는 것의 사이 그 사이에 긴장이 있네 새는 단단한 부리로 그 사이를 찌르며 가네 나무가 달을 찌르며 서 있네 저무는 것들은 찌르지 못해 저무네 달은 나무에 찔 려 저물고 꽃은 꿀벌에 찔려 저물고 노을은 산머리에 찔려 저무네 저무는, 집은 저무는 것들을 가두고 있어서 저무네 저물도록, 노래를 기다리던 후렴이 노래를 후려치고 저무 는, 집에는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있네 다, 저무네
  • 한·중 관계 한단계 더 발전하는 한 해로

    한·중 관계 한단계 더 발전하는 한 해로

    중국과 수교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역사인식 문제, 북한 문제, 서해 불법 조업 문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그 동안 한·중 관계는 정치와 경제, 문화를 망라한 모든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다. 한국은 중국의 제3위 교역 상대국이자 최대 인적 교류국이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투자 상대국이자 인적 교류국이 됐다. 한·중 관계는 이런 급속한 발전을 기반으로 2008년 5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양국 관계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이다. 지난해 한·중 교역액은 2010년보다 20% 이상 증가한 2400억 달러(약 277조원)로 추정된다. 이런 증가추세라면 머지않아 양국 교역량 3000억 달러, 4000억 달러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중국은 1978년 개방 이후 2011년까지 33년간 연평균 9.8%의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으며, 2010년에는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이 됐다.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자동차 및 컴퓨터 시장이기도 하다. 지난해 9%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은 ‘현재 진행형’인 유럽발 세계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요 증가에 힘입어 올해에도 8% 이상의 고도경제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경제성장에서뿐만 아니라, 우주정거장 발사와 우주선 도킹, 초고속열차 제작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필요하고, 이 지역 평화와 안정의 확보를 위해서는 상호 가장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 한·중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이 긴요하다. 주요 2개국(G2)의 하나인 중국과 세계 제10위권의 경제력을 갖고 있고 전략적 요충에 위치한 우리나라 간 관계는 동아시아 지역을 넘어 세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역사적 과업을 갖고 있다. 이는 우리의 과업이지만,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이 안고 있는 시대적 과제이면서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세계의 안정 및 평화 유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수천 년의 교류역사를 갖고 있는 한·중 간 소통과 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북한 지도자 사망 이후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 가능성 속에서 연초부터 준비하고 있는 양국 지도자의 교차 방문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한·중 간 전략적 이해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어려운 국제경제 환경 속에서 양국 지도자 간 격의 없는 의견 교환과 협력 증진 방안 모색은 한·중 양국 모두에게 긴요하고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직 공식적인 협상 단계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한·중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두 나라의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만들 것이다. 한·중 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입각해 경제와 문화, 인적교류는 물론 정치와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더 신뢰하며, 서로의 입장을 더 존중하며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면, 두 나라의 관계가 보다 안정적이고, 호혜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나아가 세계의 안정과 평화 유지,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믿는다. ‘소나무가 잘 자라면 잣나무가 기뻐한다’(松茂栢悅)는 말이 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진심으로 바라며, ‘좋은 이웃’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와 세계의 아름답고 희망찬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한·중 국교 회복 20주년이 되는 2012년이 한·중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뜻깊은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 [‘나눔정신’ 실천하는 기업] 삼성

    [‘나눔정신’ 실천하는 기업] 삼성

    삼성은 공동체 발전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 꿈과 희망을 전파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성은 ‘토양이 좋은 곳에서 나무가 잘 자라듯 기업이 커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가 튼튼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상생 추구의 경영 철학을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의 토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 보존과 문예 진흥 활동을 펼쳐 왔고, 이후 ▲삼성복지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호암재단 ▲삼성언론재단 ▲성균관대학교 및 중동학원 등을 설립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사회공헌 활동을 좀 더 실천적으로 펼치기 위해 1994년 10월 국내 기업 최초로 사회공헌 활동 전담 조직인 ‘삼성사회봉사단’을 창설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사회공헌 활동을 사회 복지, 문화 예술, 학술 교육, 환경 보전, 국제 교류, 체육 진흥 등 6대 분야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또 희망의 공부방 만들기, 열린 장학금, 소년소녀가장 지원, 밝은 얼굴 찾아주기 사업 등 사회공헌 중점사업을 펼치고 각 사마다 ‘업의 특성’을 살린 공헌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사회봉사단은 사회공헌 중점사업을 종합적으로 기획, 운영하고 있으며 각 지역 사업장별로 이루어진 100개의 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삼성 임직원은 총 3700여개의 봉사팀에서 자신의 업무 특성과 취미, 특기를 살린 봉사 활동을 펼치며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제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희망의 4계절(미국), 볼쇼이극장 지원(러시아), 일심일촌행동(중국) 등 해외 사회공헌 활동도 펼치고 있다. 2009년에는 지역사회의 정확한 요구를 파악해 국민에게 호응받는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하는 한편 지역 자원봉사센터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공동 대처했다. 회사 보유 경영 자원과 경영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봉사 활동의 몰입도를 높이는 동기 부여 방안을 마련해 ‘국민과 호흡하는 따뜻한 삼성’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삼성은 ‘해피투게더, 더불어 행복한 미래를 창조한다.’는 비전을 갖고 희망, 화합, 인간애의 가치 실현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나눔으로 사회에 희망을’, ‘지역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임직원 참여 인간애 구현’이라는 임무로 구체화되고 있다. ‘희망’은 삼성이 희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이고, ‘화합’은 삼성이 펼치는 모든 사업을 지역사회 파트너단체와 연계해 지역사회와 함께 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인간애’는 삼성 임직원 모두가 나눔 활동을 통해 더욱 밝은 사회를 함께 가꾸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0)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0)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네덜란드 출신의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의 작품 중에 ‘잠잠이’(최근 ‘프레데릭’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가 있다. 주인공인 새앙쥐 잠잠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햇살 좋은 양지 녘에 쪼그리고 앉아 낮잠만 즐긴다. 일은 안 하고 졸기만 하는 잠잠이를 모두들 불만스러워하지만 잠잠이는 끈질기게 잠만 잔다. 그리고 새앙쥐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대지에 찬란하던 빛깔도 요란하던 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침묵에 들었다. 새앙쥐들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권태를 견디기 힘들었다. 잠잠이가 그때 모두의 앞에 나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모아두었던 빛깔과 소리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잠잠이는 결국 침묵과 권태의 계절인 겨울에 모두에게 봄의 희망, 생명의 노래를 전해 주는 아름다운 시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 사람의 마을에 매운 바람이 불어오면 세상은 침묵으로 잦아든다. 하얀 눈까지 소복이 쌓이는 날이면 시골 들녘은 적막이 감돌 만큼 고요해진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찾아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들녘이 꼭 그랬다. 찬바람 맞는 게 결코 좋을 수 없는 노인들만 사는 마을이어서 대문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다. 눈 내리는 단전리 마을에는 들녘의 커다란 느티나무만 홀로 겨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키 20m, 줄기 둘레 1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다. 사람 없는 들녘에서 나무는 하얗게 침묵으로 잦아드는 겨울의 권태와 적막을 덜어 내기 위해 가물가물 잊혀 가는 옛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림책 속의 새앙쥐 ‘잠잠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도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줄기 안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서리서리 펼쳤다. 나무 이야기는 이곳 단전리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던 400년 전의 옛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단전리는 임진왜란 직후에 도강김씨(도강은 전남 강진의 옛 이름) 가문이 삶의 터전으로 일구고 살아온 오래된 집성촌이다. 마을을 일으키는 중심 역할을 한 이 마을의 입향조(入鄕祖)는 김충로라는 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자리에 보금자리를 근사하게 일구긴 했으나 그에겐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었다. 함께 하지 못한 형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충로의 형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전장에서 산화한 김충남이라는 장군이다. 보금자리를 이루기는 했으나 함께해야 할 가족을 잃은 김충로는 설움을 달래지 못했다. ●단전리 입향조가 처음 심고 키운 나무 그가 마을 들녘에 나무를 심은 건 그래서였다. 물론 마을을 처음 일으킨 기념으로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오랫동안 크게 자라서 마을에 들고 나는 악한 기운을 막겠다는 뜻도 있고, 마을 상징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김충로라고 그런 뜻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가 나무를 심을 때에는 전사한 형, 김충남 장군의 넋을 기리자는 생각이 더 컸다. 집성촌인 이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가문의 선조이기도 했으니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무를 심은 김충로도 전쟁터에 나가서 형처럼 목숨을 잃었다. 전사한 형제를 나라에서 선무원종공신으로 제수한 게 그나마 가문의 한을 위로할 뿐이었다. 장군으로 불리던 사람도 그를 기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그의 동생도 장군이 되어 똑같이 전쟁터에서 사라졌다. 들녘의 나무만 주인을 잃은 아픔을 안고 무럭무럭 자랐다. 장군 형제의 넋이 담긴 들녘의 느티나무를 사람들은 그때부터 ‘장군 나무’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은 나무 앞에 모였다. 장군 형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음력 정월 초닷샛날 치른 당산제가 그것이었다. 단전리 당산제는 유난히 즐거웠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사람들은 우마제(牛馬祭)를 지냈다. ●애국 충정의 찬란한 기억으로 살아남아 농사의 동반자인 소와 말의 먹이를 나무 뿌리 주위에 가지런히 내려 놓고 소와 말의 건강을 빈 것이다. 우마제 뒤에는 나무가 바라다보이는 공터에 나무를 쌓고 불을 피웠다. 이글거리는 불 가장자리에서는 농악대가 풍물을 쳤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을 췄다. 사람의 풍경을 바라보는 나무도 따라서 즐거웠다. 평화롭게 세월이 흐르던 1950년, 장군의 넋과 장군 나무가 지켜 주는 단전리에 다시 전쟁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마을을 떠났다. 참혹한 전쟁의 폭풍이 지나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멀리 떠난 뒤였다. 그때부터 누가 결정하지도 않았건만 우마제도 풍물놀이도 당산제도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단전리에는 전쟁 전에 70가구가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20가구와 일흔 고개를 넘나드는 노인들만 남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입향조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젊은 시절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한 많은 어른들이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세월은 마치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리는 하얀 눈처럼 세상살이의 흔적을 하나둘 덮을 것이다. 노인들만이 알고 있는 마을의 기억도 종작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을에는 하릴없는 적막감이 찾아오고, 견디기 힘든 권태감이 휩쌀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어도 나무는 옛 마을의 영화를 온전히 기억하고 우뚝 서서 찬란했던 옛 마을의 평화로운 빛깔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은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마치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에 나오는 새앙쥐 주인공 잠잠이처럼. 글 사진 장성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291. 호남고속국도의 백양사나들목으로 나가서 백양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호남선 백양사역을 조금 지나면 사가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백양로를 타고 5㎞쯤 가면 장성호 관광지에 닿는다. 장성호를 끼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을 3㎞ 가면 북하면 소재지인 약수리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3.5㎞쯤 고갯길을 넘어가면 처음으로 나오는 주유소 맞은편에 나무가 있다. 주유소 근처의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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