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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숙 여사가 독일 ‘윤이상 묘소’에 동백나무 품고 간 사연

    김정숙 여사가 독일 ‘윤이상 묘소’에 동백나무 품고 간 사연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있는 고 윤이상(1917~1995년·음악가)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올해는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날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공수한 동백나무 한 그루가 윤이상 선생 묘비 앞에 심어졌다. 통영에서는 동백(冬柏)나무가 유명하다. 통영시목도 동백나무로 지정돼 있다. 윤이상 선생 묘비 앞에 새로 심어진 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져 있다.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면서 “그 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면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는 윤이상 선생이 태어난지 100년이 됐다. 이 동백나무는 윤이상 선생이 고초를 겪었던 ‘동백림(東伯林)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사건은 50년 전인1967년 7월 8일 당시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당시 중앙정보부는 한국에서 독일·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의 유학생과 교민들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 교육을 받으며 대남 적화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동백림’은 동베를린을 한자로 음차(音借)해 표기한 말이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윤이상 선생과 화가 이응로 선생이 포함돼 있었다. 천상병 시인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했다. 1967년 12월 당시 3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2년 뒤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확정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1월,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혔다. 동백림 사건이 허황되게 부풀려진 간첩단 얘기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불법 연행과 가혹 행위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정숙 여사, 故윤이상 묘소 참배…통영→베를린 ‘동백나무’ 수송

    김정숙 여사, 故윤이상 묘소 참배…통영→베를린 ‘동백나무’ 수송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세계적인 작곡가 고(故)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윤이상 선생은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다. 이날 참배에 앞서 동백나무 한 그루가 윤이상 선생의 묘비 앞에 심어졌다. 윤이상 선생은 1967년 ‘동백림(東伯林·동베를린의 한문식 표기)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으로 문화예술계의 윤이상 선생 등이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정부가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김정숙 여사가 동백(冬柏)나무를 가져간 것은 당시 동백림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나무는 이날 베를린에 도착한 문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공군1호기를 타고 한국 통영에서 공수됐다. 통영은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다. 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며 “그 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면서 저도 통영에 가면 동백나무 꽃이 참 좋았는데, 그래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다행히 검역도 통과된다고 해서 이렇게 큰 나무를 심어도 되나 물어봤는데 된다고 해서 ‘아 선생님하고 저하고 뭔가 마음이 맞나’ 하면서 심었다”며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어른 어깨높이의 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졌다. 김 여사가 헌화한 원형 모양의 꽃다발 리본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조국과 통영의 마음을 이곳에 남깁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김 여사는 “통영의 나무가 잘 자랐으면 좋겠다. 꼭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며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저도 관심이 많았다. 학창 시절 음악 공부할 때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김 여사는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김 여사는 이날 참배에서 사회자의 ‘묵념’ 구호에 따라 묵념을 하다가 ‘바로’라는 신호에도 혼자서 20여초간 더 묵념을 이어갔다. 이날 참배에는 발터 볼프강 슈파러 국제윤이상협회장과 박영희 전 브레멘 음대 교수, 피아니스트인 홀가 그로숍 등 윤이상 선생의 제자들이 함께했다. 그로숍은 “윤이상 선생님은 저희에게 음악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셨다. 매우 훌륭한 (한국을 알린) 대사이셨다”고 말했다. 박씨는 “윤희상 재단이 2008년 고인의 생가를 매입했지만, 예산 문제로 기념관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제자들이 김 여사께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고 김 여사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그늘 주는 암석원… 평온한 역삼공원… 도심속의 경쾌함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그늘 주는 암석원… 평온한 역삼공원… 도심속의 경쾌함

    집결 장소로 가면서 4대문 안과 달리 역사가 길지 않은 강남에 어떤 미래유산이 있을지 궁금했다. 강남이 형성된 배경에 대한 박정아 해설사의 조리 있는 설명이 이해를 도왔다. 국기원을 둘러보았다.국기원에서 받은 품·단증 소지자만이 세계태권도연맹에서 주최하는 국제 태권도 경기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태권도의 위상이 이 정도인 줄 처음 알았다. 낡고 비좁은 국기원 건물에서는 그런 품격이 느껴지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경기장 안에서 태권도를 하는 아이들의 기합 소리가 우렁찼다. 국립어린이청소년 도서관이 있는 역삼공원으로 이동했다. 강남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어린이도서관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계획된 도시이기에 공원으로 남아 있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역삼공원, 도서관, 허바허바 사진관을 둘러보는 동안 강남을 실감하지 못했다. 테헤란로로 내려오니 넓은 차도와 인도, 자동차들이 지나는 소리에 갑자기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삼역 쪽으로 걸어갔다. 테헤란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빌딩들이 즐비하다. 강남 하면 삭막한 빌딩숲을 떠올리기 쉬운데 막상 이렇게 길을 걸어보니 저마다 다른 외양을 가지고 있는 빌딩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은 반짝반짝 뽐내는 듯이 서 있었고, 둥근 테두리를 가진 석재 건물은 무던함이 느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길 건너편 포스코 P&S 타워를 보았다. 하늘을 향해 사다리꼴 모양으로 뻗어 있었다. 인도는 넓어 걷기 편하고 양쪽에 서 있는 가로수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고등교육재단 앞 인도에는 강남구가 설치한 ‘암석원’이 있었다. 걷다 보니 한옥 기와 담장에 대나무가 있는 정원도 보였다. 어느 빌딩 앞 작은 화단에서는 분홍색 접시꽃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남의 삭막함보다 경쾌함이 느껴졌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차창 밖으로만 테헤란로를 보았던 사람들과 바쁜 일과로 부지런히 앞만 보며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오늘 우리가 보고 느낀 것들을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정찬주의 산중일기] 1004달러

    [정찬주의 산중일기] 1004달러

    소록도로 가려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다. 김밥은 안사람이 아침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소록도는 승용차로 내 산방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상예보를 보니 비 소식이 있어 마음이 좀 급해진다.가뭄 끝이므로 논밭의 작물들에는 감로수이리라. 며칠 전부터 텃밭에 물을 주곤 했던 얼치기 농사꾼인 나의 수고도 덜어질 것이다. 조금 전에도 텃밭을 다녀왔지만 시들시들하던 고추와 가지, 아욱 등이 응급 치료를 받은 환자처럼 이제는 조금 풋풋해진 듯하다.소록도는 한센인과 성직자, 의사와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이 살고 있는 섬이다. ‘작은 사슴 섬’인 소록도는 내 산방과 지척에 있으니 그분들이야말로 이웃사촌인 셈이다. 한센인에게 43년간 봉사하고 오스트리아로 떠난 마리안느 스퇴거(83)와 마가렛 피사렛(82) 두 분은 이 지상에 잠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싶다. 20대 후반의 꽃다운 나이에 자원봉사자 간호사로 와서 70세가 넘어 떠날 때 두 분이 남긴 말은 단 한마디였다. ‘헤어지는 아픔을 줄까 봐 말없이 떠납니다.’ 문득 재작년 가을이 떠오른다. 오스트리아 ‘코닉 추기경 하우스’로 강연하러 갔을 때, 나를 초청한 분에게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뵈려고 하니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안사람이 빈의 ‘암파크 갤러리’에서 도예 초대전 중이었으므로 두 분에게 도자기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알프스 밑의 인스브루크에 사는 두 분과 연락은 닿았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마가렛은 치매 치료 중이었고, 마리안느는 나서기를 꺼렸기 때문이었다. 두 분은 수녀가 아니므로 수녀원 생활을 못한 채 친척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희소식이 들렸다. 고흥군에서 두 분에게 매월 1004달러씩 노후생활 안정자금으로 지원한다는 소식이었다. 2026년 10월까지 10년간 지원한다고 해서 혼자 손뼉을 쳤다. 1004달러에다 고흥 군민의 따뜻한 마음까지 보태졌을 것을 생각하니 고흥 가는 길이 행복하기만 하다. 녹동항까지 뻥 뚫린 외길 곳곳에 고흥을 자랑하는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 ‘우주항공 중심도시 고흥’. 바다를 배경으로 한 승경(勝景)과 나로도의 우주센터를 홍보하려고 내건 광고판일 것이다. 소록대교를 건넌 뒤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왼편의 언덕 위에 두 분이 살았던 단층 벽돌집이 보인다. 과묵한 낙락장송들이 묵상 중이다. 소록도 본당 신도이자 ‘마리안느, 마가렛 사택’ 관리자인 서(徐)스텔라님이 현관문을 열어 준다. 신발장 위에 두 분께서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주워 온 소라고둥, 조개껍데기, 조약돌들이 있다. 작은 거실은 외국인이 사용했던 공간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벽에는 매화나무가 그려진 한국화와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다. 더구나 두 분이 남기고 간 카세트와 테이프들이 있기에 아무 곡이라도 듣고 싶어 하자 서스텔라님이 테이프 하나를 빼서 틀어 주는데 국악 명상 음악이다. 내가 놀라자 “저는 1981년부터 뵀는데 마리안느 큰할매는 육자배기를 좋아하셨어요. 저 액자는 마가렛 작은할매가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수녀님한테 선물받은 거고요”라고 알려 준다. 두 분의 침실은 각각 3평 정도다. 마리안느 방의 유리창으로는 낙락장송이 보이고, 마가렛의 창호에는 하심(下心)과 사랑이란 글씨가 붙어 있다. 천등산 금탑사 비구니 스님들이 왕래하면서 한 스님이 써 준 글씨라고 한다. 두 분이 살았던 집은 현재 헌신과 봉사의 삶을 기려 등록문화재 제660호로 지정돼 있고, ‘마리안느, 마가렛 사택’이라는 패가 붙어 있다. 그러나 나는 ‘천사의 집’이라 부르고 싶다. 천사는 구름 위가 아니라 지상에 있어야 한다고 갈망해서다. 어제 비가 내렸는지 땅은 촉촉하나 하늘은 푸르다. 오스트리아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비 갠 뒤 해가 나자 어느 파란 눈의 수녀분이 ‘천사가 소풍 가는 날’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두 분이 후원받아 지은 숲속의 결핵 병동과 호젓한 치유 숲길로 언젠가는 두 분의 맑은 영혼이 소풍 올 것만 같다.
  • 숲이 말을 걸었다… 정복할 생각 말고 그저 쉬다 가라고

    숲이 말을 걸었다… 정복할 생각 말고 그저 쉬다 가라고

    우리나라 산은 4440개다. 연 1회 이상 등산인구가 3200만명, 월 1회 이상 산을 찾는 마니아도 1300만명이나 된다. 각종 꽃과 풍경, 단풍에 설경까지 유명한 명산·명소가 수두룩하다. 과거 황폐한 산림에 심은 나무들이 수십년의 시간이 흘러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는 ‘숨겨진 숲’도 있다. 80년 된 낙엽송, 90년이 넘은 소나무,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자작나무 등 사람 발길이 아직은 많지 않아 거칠지만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전문가들은 ‘좋은 숲’과 접촉하는 자세가 달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래에서 꼭대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경쟁적으로 산을 오르는 정복이 아닌 숲에 머물며 온몸으로 기운을 받아들이는 소통을 강조한다.●100년 숲의 ‘자화상’… 강원 횡성 ‘낙엽송숲’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강원 횡성 안흥 상안리에는 숨겨진 ‘낙엽송숲’(낙엽송·소나무 명품숲)이 있다. 산림 공무원 중에서도 일부만 알고 있는 명소다. 공개된 숲이지만 유명세를 타지 않아 안내표지판이나 주차장도 없어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좁은 진입로와 임도를 한참 올라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횡성 낙엽송숲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이다. 단기 국토녹화 성공지이자 조림·숲가꾸기 등 미래 숲 관리의 교육장소로 선정됐다. 숲은 인공림 48㏊, 천연림 12㏊ 등 60㏊로 축구장 84개 규모다. 낙엽송(38㏊)은 목재 생산을 위해 1938년부터 심었으니 대부분 71~80년 수령을 자랑한다.숲은 20분에서 3시간 40분까지 걸을 수 있도록 4개 코스가 조성돼 있는데 다양한 임상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숲 초입은 높이가 18~26m, 흉고 직경(가슴 높이 지름)이 30~40㎝에 달하는 곧게 자란 낙엽송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능선에는 자연적으로 자란 소나무들이 자리를 잡았다. 천연림이다 보니 인공림과 같은 수려함은 없지만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 온 당당함이 읽혀진다. 능선을 걸을 때는 맨발 산행을 권한다. 능선 아래쪽으로는 잣나무(10㏊) 조림지가 펼쳐져 있다. 낙엽송과 소나무, 잣나무를 한곳에서 비교하며 숲을 향유할 수 있다. 신정숙 숲해설가는 “낙엽송은 연두색 잎이 나오는 4월과 단풍이 노랗게 지는 11월이 가장 아름답다”면서 “비가 온 직후 숲에서는 피톤치드와 바람의 상쾌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준다”고 말했다. 낙엽송숲은 다른 숲과 달리 하층 식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걷기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생태적으로 건강한 숲의 모습을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북부지방산림청은 등산객 유치를 위해 시설 설치 및 개량, 하부 정리사업 등에 대한 건의를 받지만 ‘현상 유지’를 견지하고 있다. 목재 생산을 위한 숲 가꾸기도 실시하지 않는다. 목재 생산자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지름 30㎝, 70년생 이상의 우량 대경재가 즐비하지만 좋은 숲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녹아 있다. 이미라 북부청장은 “지역 학생들이 참여해 가지치기 등을 체험하고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미래세대들이 숲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하는 학습의 장”이라며 “강원권에서 가장 오래된 낙엽송 조림지이자 잘 가꾼 숲의 모델이 될 수 있는 100년 숲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수려한 백색의 장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나무의 수피가 하얀, 이국적인 풍광으로 잘 알려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만나기 위해서는 1시간 이상 산을 올라야 한다. 방문객은 숲 입구에서부터 선택해야 한다. 해발 900m 숲을 오르는 데 정리된 원정임도를 걸을지, 숲길인 원대임도를 오를지 시작점이 갈린다. 김달환 숲해설가는 “자작나무숲의 백미는 밑에서 보면서 올라오는 것”이라며 “원대임도를 따라 오르다 힘들고 지루한 산행이란 불만이 터져 나올 때쯤 눈앞에 백색의 장관이 펼쳐지는데 이때부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고 전했다. 자작나무숲은 아픔과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낸 역사의 현장이다. 원래 이곳은 소나무숲이었는데 솔잎혹파리 피해를 당해 나무들이 모두 베어졌다. 대신 목재 생산용 낙엽송을 심을 계획이었으나 묘목이 부족해 대체 수종으로 북한 압록강변에서 채취한 자작나무 묘목을 1989~1996년에 심었다. 전체 조림 면적지(138㏊) 중 핵심 군락지는 25㏊다.자작나무숲이 알려진 것은 2006년 유아숲체험원으로 지정된 후 방문했던 유치원 교사가 블로그에 소개한 것이 계기다. 봄철 산불위험 기간에 입산을 통제하는 데도 2012년 1만 4000여명이던 방문객이 지난해 22만 4000여명으로 5년 만에 16배 증가했다. 탐방객 증가로 안내소가 설치됐고 지난해부터 숲해설가, 숲길체험지도사 등을 배치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자작나무는 20~30년생으로 높이는 16m, 흉고직경은 16~18㎝로 북유럽이나 북미의 큰 나무에는 못 미치지만 녹색의 숲과 수만 그루의 하얀색 자작나무가 그려내는 풍경에 탐방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자작나무는 음양의 조화가 잘 이뤄져 “사랑이 잘 이뤄지고 오랜간다”는 속설이 있어 웨딩 촬영지로 인기다. 특히 한겨울, 추위와 눈길을 뚫고 산길을 오르는 예비 신혼부부들에게는 경외감이 들 정도다.숲에 앉아 있으면 평화롭고 편안함이 느껴진다. 폐를 상징하는 흰색이 피부를 상쾌하게 해주고, 간을 표현하는 초록색이 눈을 맑게 해 준다. 숲에 들어가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나무 껍질을 훼손하면 안 된다. 벗겨진 하얀 껍질은 복원이 안 돼 나무를 볼품없이 만든다. 풍경에 취해 길을 잃을 수 있다. 자작나무숲에서는 한 달에 1~2건씩 조난 사고가 발생한다. 입산 시간을 하절기에는 오후 3시, 동절기에는 오후 2시로 제한하는 이유다. 자작나무숲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더이상 자작나무를 심지 않는다. 양묘가 힘든 데다 기계 파종도 안 돼 대량 식목에 따른 부담이 커졌다. 고기연 동부지방산림청장은 “희귀성과 아름다운 경관, 스토리텔링이 있는 숲으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면서 “자작나무숲에서는 등산이 아닌 2시간 이상 체류해야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고 권했다. ●소나무 풍욕의 최적지… 대관령 금강송 군락지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산등성에 그는 있다.’ (유자효의 소나무) 대관령은 경북 울진 소광리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강송 군락지다. 1922~1928년 소나무 씨앗을 뿌려 조성한 인공림(789㏊)과 천연림(1953㏊)이 어우러져 ‘송해’(松海)를 이룬다. 대관령휴양림 인근에는 지난해 8월 국립대관령 치유의 숲이 개장했다. 주차장에서 금강송전망대까지 600m 구간은 무장애 데크(치유데크로드)를 설치했다. 국내 유일로 나무 사이에 만들어 숲속을 걷는 느낌을 준다. 데크를 걸으며 다양한 꽃과 나무, 풀 등을 만날 수 있는데 숲태교 참가자들이 꼽는 최고의 프로그램도 숲길 산책이다. 최근에는 대관령 소나무에서 피톤치드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전망대에서는 대관령 옛길을 비롯해 금강송 군락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풍욕’에 최적지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치열한 자리 경쟁이 벌어진다. 전망대에서 대관령 옛길을 연결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김진숙 국립대관령 치유의 숲 산림치유지도사는 “난이도가 다른 7개 숲길이 조성돼 있는데 완주하려면 3일 정도 걸린다”면서 “혈압이 있는 중년에게는 고난이도 숲길을 추천하는데 등산이 아닌 풍욕과 명상이 치유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릉·횡성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주아민, 방송 최초 집 공개..정원만 30평 ‘아파트 맞아?’

    주아민, 방송 최초 집 공개..정원만 30평 ‘아파트 맞아?’

    방송인 주아민이 자신의 집을 공개했다. 29일 오전 방송된 SBS ‘좋은 아침’에 주아민이 게스트로 출연,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를 공개했다. 방송에서 공개된 주아민의 집은 아파트 1층에 위치해 있으며,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특히,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아파트 외부에 딸린 정원. 정원 마당은 무려 30평으로,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넓은 식탁이 있으며 주위에는 아이가 놀기에 적합한 천연잔디가 바닥에 깔려있다. 또, 마당에는 잔디와 더불어 과실나무가 심어져 있어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한편, 주아민은 지난 2013년 6월 미국 교포 남편과 결혼했으며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에너지·기업 경영] CJ대한통운, 전기 택배차·에너지숲·옥상 태양광 선도

    [에너지·기업 경영] CJ대한통운, 전기 택배차·에너지숲·옥상 태양광 선도

    CJ대한통운은 친환경 전기 택배차 도입, 공간 활용을 통한 녹색사업 등으로 물류 분야의 에너지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CJ대한통운은 지난해 11월부터 제주에서 국내 최초로 전기택배차 운영을 시작했다. 차량 내부에 운행정보 수집 장비와 블랙박스를 설치해 기후, 운전패턴, 충전시간 및 횟수 등 데이터를 축적해 최적의 운영 방안을 개발하고 있다. 앞서 같은 해 9월에는 광주시, 조이롱코리아와 전기화물차 생산을 위한 3자 협약을 맺기도 했다. 또 CJ대한통운은 2013년 산림청, 한국도로공사, 녹색연합과 ‘고속도로 폐도 에너지숲 조성 사업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숲 조성에 협력하고 있다. 현재 강원 원주시, 횡성군, 평창군과 전남 담양군 등 5곳의 폐고속도로 부지에 약 3만 9000㎡ 규모로 에너지숲이 조성돼 있으며, 약 2만 3000주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는 국제 규격 축구장 5개보다 큰 넓이다. 에너지숲에서 키운 나무는 2~3년 정도 뒤에 벌목해 목재 펠릿으로 가공, 복지시설 등에 난방 연료로 공급한다. 유휴 공간인 물류센터 옥상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도 눈길을 끈다. CJ대한통운은 경기 군포와 경남 양산 복합물류터미널에 있는 물류센터 8개 동의 옥상에 전체 면적 3만㎡(약 9000평)에 이르는 태양광 발전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연간 2㎿에 달하며,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간 1300여t 절감할 수 있다. 이는 소나무 묘목 27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저마다 감춘 비밀, 그 섬에 가고 싶다

    저마다 감춘 비밀, 그 섬에 가고 싶다

    동백·후박나무 울창한 외연도, 해안선 기암괴석 일품 삽시도 조선 최초 선교사 온 고대도 등 각양각색 섬 여행 즐길 수 있어‘화살 꽂은 활과 장구처럼 생긴 섬, 독일 선교사가 조선에 처음 입국한 섬, 물안개 낀 충남 최서단 유인도…게다가 비경.’ 피서철이 다가오자 충남도가 27일 특별한 스토리를 품은 섬 5곳을 추천하고 홍보에 나섰다. 이홍우 도 관광마케팅과장은 “섬 여행은 번잡한 육지를 떠나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져 저절로 휴식이 되는 매력이 있다”면서 “충남 섬에서는 뭔가를 하지 않아도 눈앞에 그림 같은 풍경이 있고 스토리도 숨어 있어 재미를 준다”고 말했다. 보령에는 섬이 많다. 충남 최서단 유인도인 외연도는 동쪽 끝 봉화산과 서쪽 끝 망재산 사이에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하다. 섬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있다. 물안개가 자주 끼어 이름이 붙여졌다. 화살 꽂은 활처럼 생겨서 이름이 붙은 섬은 삽시도다. 해안선을 둘러싼 기암괴석이 일품이다. 진너머·밤섬 등 호젓한 해수욕장이 많다. 낚시하기에도 좋다. 고대도는 1832년 독일인 카를 귀츨라프가 영국 무역선 ‘로드암허스트’를 타고 들어와 조선에 입국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된 곳이다. 그는 조선에 친선활동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가 거부되자 이 섬을 떠났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조개도 잡을 수 있다. 장고도는 장구처럼 생겨 이름이 붙었고 등바루놀이 등 민속놀이가 많이 전승된다. 하얀 모래와 푸른 소나무가 해안을 덮고 있다. 썰물 때 연결되는 명장섬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는 독립문바위 등이 비경이다. 가의도는 태안군 신진도항에서 떠나고 나머지 보령시 4개 섬은 대천항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고 간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퍼블릭 뷰] 정조가 賢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퍼블릭 뷰] 정조가 賢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흑산도에서는 닥나무가 나지 않습니다. 닥나무가 나지 않는데 어찌 종이를 만들어 상납할 수 있겠습니까.” 조선 정조 때 흑산도에 사는 김이수라는 사람이 정조의 행차를 막고 했던 얘기다. 정조는 이 일이 있은 후 일부 대신들의 반대에도 흑산도의 종이 상납 부역을 폐지했다.# 금융위 현장점검반 ‘찾아가는 정부’ 좋은 예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임금님을 만나려고 징을 치고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이 바로 조선시대 격쟁(擊錚)과 상언(上言)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중국 등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221년 위·진·남북조시대의 등문고 제도나 이를 발전시킨 조선시대 신문고 제도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직접 임금이 행차할 때 그 앞에서 격쟁과 상언을 하는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다. 지금은 어떨까? 정부가 시장과 소비자 목소리를 듣고자 인터넷을 통해 민원을 접수하고 해결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문제를 어디에다 물어야 하는지 알기 어렵고, 안 다 하더라도 정부를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느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먼저 찾아가서 어려움을 듣고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듣는 대표적인 것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현장점검반이다. 현장점검반은 2015년 3월부터 금융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금융소비자 또는 금융회사의 어려움을 청취하고 있는데 올해 5월까지 2년 2개월간 무려 6333건의 민원을 접수했다고 한다. “신용카드 3장을 동시에 분실했는데, 해당 카드사별로 분실 신고를 하느라 전화기를 붙잡는 동안 다른 사람이 사용할까봐 불안합니다.” “벌어 먹기도 어려운데 소액의 보험금을 받으려면 직접 보험사에 찾아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답니다. 누가 보험금 청구하겠어요?” 이러한 사례는 현장에서 직접 소비자를 만나서 들은 의견 중 일부다. 이러한 의견들을 과연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들을 수 있었을까. 현장점검반은 신용카드를 분실했을 때 한 번의 전화로 모든 분실신고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소액의 보험금이면 이메일이나 팩스로 서류를 제출함으로써 직접 보험사에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해결했다. 6333건의 사례는 아주 일부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생활에서 느낀 불편한 점을 어디에 하소연할지 모른다. “군 복무 중이라 실명 확인이 안 돼 체크카드를 안 만들어 줘요”와 같이 생활하면서 겪는 크고 작은 불편함이나, “왜 이것은 안 되나요”와 같이 금융회사가 실제 영업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일일이 알기 어렵다. # 밑바닥 민심 반영 노력이 공직자의 참자세 어느 정부에서나 현장을 중시하고 이를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의 위대한 역사는 이미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있을 것이고 이러한 어려움을 현장에서 계속 듣고 반영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모든 공직자가 가져야 할 자세라고 할 수 있다.
  •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난데없는 제주어 ‘비밀 작전’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난데없는 제주어 ‘비밀 작전’

    “글로 죽 가당 보믄 큰큰헌 소낭이 나옵니다게. 그듸서 노단펜으로 돌아상 돌으멍갑서” “알아수다. 온 덴 헌 건 어떵 됨수과?”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강원도 도솔산 고지 쟁탈전에서는 난데없이 이같은 말들이 무선 교신을 타고 오갔다. 암호문 같지만 제주도 말이다. 연대와 대대 등 각 통신병을 제주사람으로 두고 제주어로 교신하도록 하는 ‘비밀 작전’이 있었다. 인민군이 교신을 들어봤자 뜻을 모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교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리로 죽 가다가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아서서 달려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지원 온다고 한 것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도솔산 전투는 무전기를 적에게 빼앗기는 일로 우리 해병의 작전상의 비밀 유지가 어려웠다. 당시 대대장이던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2008년 3월 국방일보 기고문에서 “몇 대의 무전기를 빼앗겼다고 해서 연대 전체의 통신기를 다 바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며 “우리의 통신 내용을 적이 훤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걱정이 큰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평소 태평양전쟁사를 즐겨 읽었다는 공 전 사령관은 태평양전쟁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군이 인디언 ‘나바호(Navajo)’ 족의 언어를 암호로 이용했던 것을 떠올렸다.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미 해병대에 배치된 나바호족 인디언 400여명은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유 언어를 구사하며 전령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 대대장은 제주어 교신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후 포대 지원, 병력 이동 사항, 부상병 발생 사항 등 모든 교신이 제주어로 대대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대대로 전달됐다. 당시 해병대의 주축인 해병 3기와 4기생 3000명이 모두 제주사람이어서 제주어로 대화가 가능해 지휘 체계에서 메시지 전달이 수월했다.제1연대 1대대 통신병을 한 강용택(86)씨는 “당시에는 제주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많이 진출하지 않았던 데다, TV 등 미디어가 없어서 제주어를 난생처음 듣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강씨는 “제주어는 ‘~라고 햄쪄’(한다) 등 서술어가 짧고 표준어와 전혀 달라서 무슨 말을 하든 제주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부의 결정에 따라 중요사항이든 가벼운 사안이든 모든 교신을 전부 제주어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비밀 교신작전은 해병대 역사관에 전시되거나 해병대 70년사 등에 수록되지 않았다. 당시 참전한 장교 등 장병들의 증언은 있으나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작고한 해병대 종군기자인 고영일씨는 해병대 3·4기 전우회가 발간한 ‘인천상륙·서울수복 작전의 주역’에서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적에게 점령되었을 때 염리동의 미군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무선전화기가 적에게 뺏겨 부대 간 통화는 도청됐을 것”이라며 제주 출신 해병대가 작전에 동참한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제주어 교신 작전이 진행됐다고 증언했다. 해병대 역사관 관계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3·4기생 가운데 제주 출신이 많았고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 등 장병들의 증언으로 제주어 교신작전은 사실로 확인됐다”며 “이런 사실에 대한 채록 등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선 선비들 삶에 밴 ‘나무의 가르침’

    조선 선비들 삶에 밴 ‘나무의 가르침’

    나무를 품은 선비/강판권 지음/위즈덤하우스/328쪽/1만 6000원“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경구이다. 공자는 사계절에 상관없이 잎이 시들지 않고 지지도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에서 변치 않는 우정과 충절을 가르쳤다. 이렇듯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진리를 깨우쳐 준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늘 자신이 사는 공간에 나무를 심어놓고 관찰하고 공부했던 이유다. ‘나무를 품은 선비들’은 역사학자인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가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남긴 나무에 관한 시와 문집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이 서린 공간과 나무를 찾아가 남긴 기록이다.조선의 선비들은 그가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가까이하는 나무가 달랐다. 조선 중기 지성사를 상징하는 남명 조식은 평생 거의 벼슬을 하지 않고 성리학의 기본을 실천하며 살았다. 조식은 예순한 살인 1561년 경남 산청군의 산천재에 자리를 잡고 선비정신의 상징인 매실나무를 심었다. 세 편의 시와 함께 남은 450년 수령의 산천재 매실나무는 ‘남명매’라고 불린다. 조선시대 최고의 역관 이상적은 추사 김정희와의 인연으로 후세에 이름이 알려졌다. 1830년 중국에 처음 다녀온 후 추사 김정희를 만난 이상적은 훗날 제주 유배 중인 추사에게 중국에서 구한 귀한 서적들을 전해 준다. 추사가 글과 그림으로 이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 것이 그 유명한 ‘세한도’다. 꽃이 100일 동안 피어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조상을 향한 후손들의 일편단심을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던 조임도는 거처를 정할 때 조상의 묘소를 먼저 생각했다. 마흔아홉 살이던 1633년 창녕군 영산의 용산마을에 자리잡은 것은 조상의 묘소를 늘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임도는 묘소에 직접 배롱나무를 한 그루 심고 집을 마련한 뒤에는 팔을 굽힌다는 뜻의 ‘곡굉’(曲肱)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그는 팔베개하고 누워 배롱나무의 꽃 그림자가 질 때까지 부모의 묘소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조성한은 1674년 연천현감에서 물러나 홍주, 즉 지금의 홍천 녹운동 동산촌에 거처를 정했다. 집 앞에 회화나무 두 그루를 심고 집 이름을 쌍괴당이라 불렀으며 자신의 호도 쌍괴당이라 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즐겨 암송했던 그가 나무와 함께 즐긴 것은 소요의 삶이었다.조선 중기 최고의 문장가 신흠은 자신의 공간에 형제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를 심었다. 조선말의 성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곽종석은 그의 ‘면우집’에서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했다. 조선의 농업을 집대성한 ‘임원경제지’를 집필한 서유구는 바위 위에 사는 단풍나무를 상징하는 풍석(楓石)을 호로 삼았다. 감나무는 효도와 관련이 깊다. 가사로 유명한 박인로는 홍시를 통해 어버이에 대한 효도를 노래했다. 우리나라 감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산청군 단성면의 감나무는 600년 전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경재 하연이 홍시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심은 것이다. 윤선도가 남긴 ‘오우가’에는 강직함과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절대나무가 포함돼 있다. 저자는 나무를 매개로 조선의 지식인들과 조우하는 것이 가슴 설레는 일이지만 역사 속 성리학자들의 정신이 서린 공간들이 방치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보면 늘 유쾌한 것은 아니라고 적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과테말라 태평양 연안서 규모 6.8 강진 발생

    과테말라 태평양 연안서 규모 6.8 강진 발생

    중미 과테말라의 태평양 연안에서 22일 규모 6.8의 강진이 일어났다고 미국지질조사국(USGS)이 밝혔다.현지 시간으로 아침 6시30분쯤 발생한 이번 지진은 수도 과테말라시티와 인근 나라 엘살바도르와 멕시코에서도 감지될 만큼 진동이 강력했다. 진앙에서 약 100㎞ 떨어진 과테말라시티에서는 건물이 흔들리고,나무가 쓰러지기도 했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진앙은 푸에르토 산호세에서 남서쪽으로 38㎞ 지점이며,깊이는 지표에서 10㎞ 지점으로 관측됐다고 발표했다.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PTWC)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경보는 발령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피해 보고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차산 소나무 훔쳐간 일당 경찰 검거…2년여 사전 준비도

    아차산 소나무 훔쳐간 일당 경찰 검거…2년여 사전 준비도

    서울 아차산에서 자라던 희귀한 형태의 소나무를 한밤중에 훔쳐간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이들은 뿌리를 손상하지 않고 나무를 캐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2년여에 걸친 사전 준비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야간에 산에서 소나무를 훔친 혐의(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최모(62)씨 등 2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 등은 4월 25일 오후 10시 30분쯤 광진구 아차산의 산책로 주변 바위틈에서 자라던 소나무 한 그루를 정과 망치 등으로 파내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이 소나무는 높이가 60∼70㎝로 크지 않지만,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모양이 독특해 등산객들이 자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아차산을 자주 오르던 최씨는 2년 전 등산객들이 해당 소나무를 가리켜 ‘용틀임 모양을 하고 있어 분재로 만들어 팔면 비싸겠다’고 말한 것을 듣고 범행을 결심했다. 최씨는 아차산에 있는 또 다른 소나무를 훔치려 시도하기도 했다. 최씨는 나무를 훔친 뒤 분재 전문가 등에게 “일본에서 20억원 정도에 팔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때에 따라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차산을 관리하는 광진구청으로부터 소나무가 없어졌다는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은 탐문 수사 끝 충북 음성의 한 농장에서 분재 작업 중이던 소나무를 발견하고 최씨 등을 검거했다. 최씨는 직업도 일정치 않고 개인 빚도 있어 ‘돈이 된다’는 말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최씨 등이 훔친 소나무를 차에 실어 농장으로 옮기고 보관하는 등 범행을 도운 A(33)씨 등 2명도 함께 붙잡아 장물 운반 및 보관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해당 소나무를 구청에 돌려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성 무인도 2곳 해양관광지 개발

    고성 무인도 2곳 해양관광지 개발

    강원도 최북단 고성군 앞바다에 청정지역으로 남은 무인도 2곳이 대단위 해양관광지로 변신을 꾀한다.20일 고성군에 따르면 죽왕면 오호리 송지호해변 앞 죽도(소죽도 포함)와 토성면 봉포리 봉포항 앞 죽도(소죽도 포함) 등 무인도 2곳이 사계절 휴양과 체험을 할 수 있는 해상 관광지로 추진된다. 오호리 죽도 개발사업에는 149억여원, 봉포리 죽도 개발에는 26억 5000만원 등 모두 175억 5000만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이달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연내에 국비(80%)와 도비(10%)를 신청하고 늦어도 202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송지호해변에서 530m 거리에 있는 면적 5만 2500여㎡의 오호리 죽도에는 스카이워크 산책로를 깔아 명품화할 계획이다.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 발아래로 바닷물을 바라보며 걸어 다니고, 섬 주변에는 나무데크를 깔아 산책로를 만들 예정이다. 섬 가운데 대나무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높이 21m의 봉우리가 있고 섬 주변에는 기암괴석들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된다. 해안침식으로 죽도에서 분리된 인근 소죽도에는 자갈해안까지 형성돼 힐링 장소로 제격이다. 봉포항에서 1㎞ 남짓 떨어진 2만 2700여㎡의 봉포리 죽도에는 관광선을 위한 접안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해상데크를 조성하고 아름다운 해상 경관 및 다양한 모양의 기암괴석을 스토리텔링화 한다. 어촌계가 정기 운항선을 운영하도록 해 주민소득사업으로 연계할 계획이다. 특히 이곳을 처음으로 무인도에 가상·증강현실을 도입한 스마트게임 관광지로 만들 예정이다. 김남정 고성군 관광정책과 주무관은 “사람 때가 묻지 않은 무인도를 사계절 탐방이 가능한 이야기가 있는 관광지로 만들어 지역 명소로 삼겠다”고 말했다. 고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도로 위 車까지 덮친 산불… 포르투갈서 62명 사망

    포르투갈 중부에서 17일(현지시간) 대형 산불이 발생해 최소 62명이 숨지고 약 60명이 다쳤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포르투갈 내무부는 희생자 상당수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도로가 불길에 휩싸이면서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고 밝혔다. 조르제 고메스 내무부 장관은 “최소 16명이 화염에 갇힌 차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부상자 중에는 소방대원이 포함됐으며 이 중 일부가 중태에 빠졌다. 화재가 처음 시작된 레이히아주 페드호가우 그한데 지역에는 소방대원 수백명과 소방차 160대가 출동해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산불이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번지는 바람에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사상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다. 불길은 밤사이 전국으로 번져 숲 60곳을 추가로 태웠다. 당국은 전국 화재 발생 지역에 소방대원 1700명을 급파했다. 아직 전체적인 피해 규모는 집계되지 않았다. 포르투갈 당국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당국은 나무가 번개에 맞으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지 관계자는 “담당 조사관들이 페드호가우 그한데 지역에서 마른 뇌우를 맞은 나무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마른 뇌우는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는 폭풍우의 하나로 고온으로 인해 물이 땅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버릴 때 주로 발생한다. 산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건기에 흔하게 발생한다. 포르투갈은 다른 남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건조한 여름철 산불이 자주 발생한다. 포르투갈은 이날 일부 지역 기온이 40℃를 넘어서는 등 불볕더위에 시달렸다.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는 “이번 화재는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한 산불 중 인명 피해가 가장 큰 비극”이라며 “산불이 진압되면 화재 경위 등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주민 일부를 대피시켰으며 스페인 정부가 물 폭탄 비행기와 구조대원을 보내 진압을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르투갈 정부는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주례 미사에서 포트투갈 산불 피해 희생자를 위한 침묵 기도를 올렸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한 컷 세상] 반려나무가 있는 삶

    [한 컷 세상] 반려나무가 있는 삶

    서울로7017 한 화분에 ‘반려나무’를 권유하는 팻말이 설치돼 있다. 예부터 조상들은 집 안에 나무를 심으며 이야기를 담았다. 직접 다듬으며 키우는 나무는 개인에겐 새로운 가족, 미래 세대에는 미세먼지를 막는 보호막이 될 것이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뭍과 하나될 섬, 섬이 그리울 섬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뭍과 하나될 섬, 섬이 그리울 섬

    이달 말이면 인천 강화에서 석모도로 가는 바다 위로 다리가 놓입니다. 이미 2014년 교동대교가 ‘은둔의 섬’ 교동도의 문을 열었고, 이제 석모도까지 빗장을 풀고 나면 몇몇 작은 섬을 제외한 강화의 섬들은 죄다 뭍과 연결됩니다. 석모대교는 길이 1.5㎞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다리입니다. 하지만 기능은 어마어마할 겁니다. 많은 사람과 차들이 쏟아져 들어가겠지요. 그 와중에 석모도로 가는 뱃길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수많은 장삼이사에게 일상에서의 해방감과 교감의 기쁨을 알게 해 줬던 ‘새우깡 갈매기’ 역시 이 여정에서 사라지겠지요. 막배 끊기고, ‘부득이’ 한뎃잠을 자야 하는 상황을 내심 기다렸던 ‘청춘들’에게도 그리 반가운 상황은 아니지 싶습니다. 뭍으로의 변신을 앞둔 석모도를 돌아봤습니다. 앞으로 뭍의 습속이 다리를 따라 빛의 속도로 밀려들고 나면, 한때 이곳에 어부가 살았고 작은 갯마을도 있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겠지요.카페리를 타고 석모도 들어가는 길. 갈매기들이 앞다퉈 몰려든다. 이른바 ‘새우깡 갈매기’다. 녀석들의 배짱이 보통 아니다. 선객들의 코앞까지 거침없이 넘나든다. 이건 뭐 동냥이 아니라 막무가내로 빼앗겠다는 심보다. 모양만 비슷하다면 나무젓가락도 새우깡인 줄 알고 들이댈 기세다. 남도에도 ‘새우깡 갈매기’는 있지만, 녀석들에 비하면 ‘수줍은’ 편이다. 하지만 앞으로 석모도 여정에서 ‘새우깡 갈매기’는 볼 수 없게 된다. 이달 말에 다리가 들어서고 나면 석모도 뱃길이 끊기기 때문이다. 새우깡에 길들여진 녀석들은 이제 어느 곳을 찾아 제 ‘기량’을 선보여야 할까.●쓸쓸한 석포리 선착장… ‘새우깡 갈매기’도 아듀~ 석모도는 한때 주말 정체로 악명이 높았던 섬이다. 뚜벅이족이야 문제될 게 없었지만 자가용족은 달랐다. 느지막하게 나오려다 낚시객, 관광객 등의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낭패를 겪는 경우가 허다했다. 제때 배를 못 타는 건 그렇다 쳐도 막배는 탈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곤 했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을 터. 내심 “배 끊겼다”는 말에 반색했던 ‘청춘’이 은근히 많았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 온다. 석모대교(삼산연륙교)는 왕복 2차로, 1.5㎞ 길이의 다리다. 강화 본섬과 석모도를 연결하는 다리인데 왜 연도교가 아닌 연륙교라 부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차량들이 오가는 건 오는 28일 0시부터다. 앞서 25일께 주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다리 위에서 마라톤 대회와 걷기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카페리가 닿는 곳은 석포리 선착장이다. 아직은 번다한 모양새지만 어딘가 파장을 앞둔 장터처럼 쓸쓸한 분위기다. 제 역할이 끝나고 퇴장하는 배우의 뒷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제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때다.석모도 안쪽으로 들면 제법 큰 섬이란 느낌을 갖게 된다. 치솟은 상주, 상봉, 해명산이 남북으로 물결치고, 그 아래로 파릇한 논이 광활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작은 섬이 어떻게 이리 너른 뜰을 가질 수 있었을까. 답은 지역 이름에 있다. 오래전 이 일대는 갯벌이었다. 조선 숙종 때 간척사업을 벌여 매음도, 어유정도 등 사이의 갯벌을 메웠고, 현재의 기름진 농토를 이루게 됐다. 당시 섬 이름은 현재 매음리, 어유정리 등의 지명으로 남았다.●‘기도발’ 좋다고 소문난 화강암 절집 보문사 섬에서 가장 이름난 관광지는 보문사다.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도량’이라고도 하고, 여수 향일암을 보태 ‘4대 관음성지’라고도 한다. ‘기도발’이 좋다고 소문나 먼 곳에서 부러 찾아오는 이도 많다. 주변의 화강암을 잘 이용한 절집이기도 하다. 석모도의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이다. 석재로서 품질이 뛰어나 조선시대 경복궁 등 궁궐의 판석으로 곧잘 이용됐다고 한다. 보문사 경내 와불전의 와불상, 석실(석굴법당), 마애석불좌상 등 이름난 볼거리들은 모두 낙가산 기슭의 화강암을 활용해 조성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면 진신사리 봉안탑과 오백나한상이 객을 맞는다. 바로 옆은 와불상을 모신 와불전이다. 이 일대가 1000여명의 신도가 모여 설법을 들었다는 천인대다. 와불전 아래는 석실이다. 거대한 화강암 동굴 안에 미륵보살상, 나한 등을 모셨다. 석실 앞에선 수백년 묵었다는 향나무가 용틀임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대한 크기의 맷돌(인천시 민속자료 1호)이 인상적이다. 석실이 조성된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맷돌이다. 한때 수백명에 달했다는 보문사 승려들의 공양을 위해 이 맷돌로 곡식을 찧었다고 한다. 크기가 일반 맷돌의 서너 배는 족히 될 듯하다. 가장 큰 볼거리는 절집 뒤편의 마애석불좌상과 눈썹바위다. 다소 팍팍한 오르막을 10분 정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마애석불좌상은 화강암 눈썹바위 아래 조각돼 있다. 1928년 조성된 것으로 높이 9.2m, 폭 3.3m다. 마애불의 시선과 방향을 같이하면 너른 풍경이 두 눈에 담긴다. 발아래 보문사와 멀리 바다 위의 섬들이 걸개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일대에서 맞는 저물녘 풍경도 빼어나다. 사위를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와 마주할 수 있다. ●한옥온천마을 족욕장에 발 담그면 여행 피로 싹~ 절집을 나서면 온천을 알리는 여러 개의 입간판과 만나게 된다. 석모도엔 특이하게 온천이 많다. 강화군에서 투자한 미네랄 온천을 비롯해 네댓 개의 민자 온천이 개발되고 있다. 대부분의 온천 이름에 ‘미네랄’을 내걸고 있지만, 일본의 온천처럼 유황 냄새가 짙다. 한 건설업체가 조성 중인 한옥온천마을에 족욕장이 마련돼 있다. 누구나 무료로 온천수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여정에 지친 다리를 쉬어 가기에 맞춤하다. 민머루해변은 섬 내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모래가 많지 않아 해수욕장보다는 갯벌 체험장으로 더 인기다. 물이 빠지면 1㎞ 정도의 갯벌이 드러난다. 남도의 갯벌처럼 푹푹 빠지지 않고, 다소 딱딱한 편이어서 걷기 어렵지 않다. 장화를 신고 들어가면 조개, 게 등 다양한 갯것과 마주할 수 있다. 해변 뒤 언덕을 넘어가면 장구너머포구다.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발아래로 굽어보는 민머루해변 모습이 제법 넓고 시원하다.●붉게 물든 갯벌… 7번 빛깔 달리하는 칠면초 가득 갯벌 일부엔 벌써 칠면초가 피기 시작했다. 아직 붉게 여물지는 않았지만 이마저도 예쁘다. 칠면초는 갯벌 등 염분이 있는 토양에서만 자라는 염생식물이다. 해마다 일곱 번 빛깔을 달리한다고 해서 이처럼 고운 이름을 얻었다. 봄에 연둣빛 싹을 틔워 차츰 붉어지다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11월이면 하얗게 말라 죽는다. 머지않아 여름이 절정을 지날 때면 절정에 이른 칠면초로 섬 이곳저곳이 붉게 물들 터다. 꼭 빨간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모습일 테지. 그때까지 석모도가 섬으로서의 풍경과 습속을 유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2) →가는 길 : 28일 이전까지는 외포리 선착장에서 카페리를 타고 가야 한다. 오전 7시~오후 9시 운항한다. 1인 왕복 2000원, 차량은 승용차 기준 왕복 1만 6000원(탑승자 불포함)이다. 배에 오를 때 왕복 승선권을 받는다. 섬에서 나올 때는 그냥 타면 된다. 석포리 선착장 앞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맛집 : 보문사 입구 만복성(933-8253)은 간짜장이 맛있는 집이다.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아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맛은 깊다. 짬뽕에서도 제법 불의 맛이 난다. 요즘 밴댕이가 제철이다. 석포리 선착장과 보문사 일대에 횟집들이 몰려 있다. 다만 민감한 이들은 밴댕이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강화도의 해산물 가운데 새우젓은 예부터 임금님께 진상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 새우젓으로 만든 향토 음식이 젓국갈비다. 돼지갈비에 두부, 호박, 청양고추 등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전혀 비리지 않고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강화 본섬의 일억조갈비(933-4224), 신아리랑집(933-2025) 등이 이름났다. →잘 곳 : 석모도 자연휴양림은 강화군청에서 운영해 값이 저렴하다. 다만 주말 예약은 쉽지 않다. 932-1100. 섬내 곳곳에 펜션은 많다.
  • 대구 가정집에서 바나나 열매 열렸다

    대구 가정집에서 바나나 열매 열렸다

    대구의 한 가정집에서 바나나가 열려 화제다.12일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는 지금’에는 일반 가정집에 바나나가 열렸다는 글과 함께 5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게시된 5장의 사진에는 집 앞 마당에 바나나 나무가 심어져있는 모습과 자그마한 바나나 열매가 맺혀있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해당 페이지 관리자는 “대프리카 이젠 진짜 현실이다. 바나나가 자람” “이제 대구에서도 바나나 자연 수확 가능함” “일반 가정집에 이렇게 바나나가 열렸다는데 이젠 솔직히 좀 무섭다. 아열대 커밍순”이라는 글을 덧붙였다. 대프리카는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성한 단어로 ‘대구가 아프리카만큼 덥다’는 뜻의 말이다. 해당 게시물은 본 네티즌들은 “대구가 이 정도” “실화냐 대프리카” “여름에 바나나를 키워볼까” “이제 국산 바나나 먹을 수 있겠다” “나도 바나나 재배하고 싶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역사속 공무원] 세종이 찾던 석유황이 성냥!

    [역사속 공무원] 세종이 찾던 석유황이 성냥!

    지난 4월 8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폐철도 부지에서 천연가스로 추정되는 가스가 분출돼 두 달 넘게 계속 불타고 있다. 포항시는 이곳을 ‘불의 공원’(가칭)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포항과 인근 지역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유전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75년 포항시 남구 상대동 주택가 땅속에서 한 드럼(200ℓ)가량의 석유가 발견되었고, 1988년에는 포항시 흥해읍 성곡리 주택 마당 한가운데서 천연가스가 나와 이를 연료로 썼다. 이 지역의 가스 분출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진평왕 31년인 609년 지금의 어느 지역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경주 모지악(毛只岳)에서 정월쯤 땅에 불이 나 같은 해 10월 15일에야 꺼졌는데, 불이 붙은 면적이 가로 4보(1보는 약 60㎝), 세로 8보, 깊이 5자(1자는 약 30㎝)였다. 태종 4년인 657년 7월에도 경주 토함산 동쪽 땅에서 불이 났는데, 무려 3년이나 탔다. 이번에 가스가 분출된 포항과 인접한 경주와 영해부(경북 영덕, 영양군 일대)에서는 이후로 지진기록은 수없이 많으나, 땅에서 불이 나 짧게는 며칠부터 몇 년까지 꺼지지 않는 지화(地火) 또는 지소(地燒), 지연(地燃)현상은 800여년간 나타나지 않다가, 조선시대 들어 부쩍 늘었다. 세종 27년인 1445년에는 이 일대에 대한 탐사도 있었다. 같은 해 실록 4월 12일 두 번째 기사이다. 경상도 감사가 보고했다. 영해부(寧海府, 지금의 경북 영덕군 영해면) 남쪽 산록에서 병진년(1436년) 2월부터 땅에 불이 나 임술년(1442) 3월에야 꺼져, 반경 270척(약 8m) 이내에는 풀과 나무가 나지 않았는데, 올해 2월 6일 이곳에 또다시 지소가 발생하여 지금까지 타고 있다. 불이 타는 면적은 길이 8척(약 240㎝), 너비 4척으로 낮에는 푸른 연기가 나고 밤에는 불꽃이 인다. 냄새는 석유황과 같고, 비가 와도 꺼지지 않는다. 이에 임금은 “땅이 타는 곳에 석유황이 난다고 하니 경이 깊이 파서 잘 살펴보고 아뢰라”고 명했다. 세종은 또 1445년 1월 22일 함길도 경성에서도 땅에 불이 났다는 보고를 받고 조사할 것을 명했다. 경성절제사와 병마사로 6년여를 지낸 최윤덕이 자신의 경험을 더해 보고했다. “소신이 근무할 때도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는 불이 수년씩 계속되었으며, 5진에서도 여러 차례 땅에 불이 났습니다. 경상도 민간에서는 땅에 불이 나는 곳에서 석유황이 난다 하옵고, 동해의 목양산(牧羊山)에서 나는 것을 최고로 칩니다. 양기를 돋우고, 통류(通流)와 해독에 효험이 높아 약품 중에 장군으로 칩니다” 이에 임금은 구슬아치와 관노 10여명을 보내 깊이 파내어 시험하도록 했다. 그러나 세종은 끝내 석유황 채취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 여러 차례 상금까지 내걸고 석유황 확보에 나섰으나, 충분히 구하지 못하다가 성종 때에 이르러 채취와 가공에 성공했다. 성종실록 1477년 2월 3일 세 번째 기사가 그것이다. 사섬부정(司贍副正·종3품) 윤사하와 선공첨정(繕工僉正·종4품) 임중을 공주의 집을 건축하는 데 사용할 목재 채취를 위해 충청도에 파견했는데, 임중이 청풍군(충북 제천시 청풍면)에서 석유황을 채취하여 올려 보냈다는 것. 두 달여가 지난 4월 2일에는 화약제조에도 성공했다.약재와 화약제조에 쓰이던 석유황이 18세기 들어 생활용품으로 발전하는데, 요즘도 사용하는 성냥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가정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생필품이었지만, 석유황 →석뉴황 →석뉴왕→셕냥의 음운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성냥이 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섬 위 관음의 권능,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보듬다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섬 위 관음의 권능,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보듬다

    관음보살(觀音菩薩)은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에게 부처를 대신해 대(大)자비심을 베푸는 존재다. 관세음보살, 혹은 관자재보살이라도고 한다. 불교경전인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세존이시여. 관음보살은 어떤 인연으로 관음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까.” “만약 무량한 백 천 만억 중생이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 관음보살에 대해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면, 관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觀)하여 모두 해탈시키기 때문이니라.”●중요 관음성지 바닷가 섬이나 산에 자리 관음보살은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 중생이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존재다. 옛날 할머니들이 뭔가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되뇌인 것도 관음이 가진 이런 권능 때문이다. 당연히 관음의 신통력은 개인의 고통을 해소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불교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관음에 의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또 다른 불교경전인 화엄경의 입법계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여기서 남으로 가면 보타락가(補陀洛迦)산이 있고, 거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관자재니라. 그에게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그다음 보타락가산의 정경을 묘사했는데 ‘바다 위에 산이 있고 갖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매우 깨끗한 곳에 꽃과 과일나무가 가득 차고 샘과 연못, 시냇물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고 했다. 관음보살이 ‘남쪽 바닷가의 아름다운 산이나 섬에 머물고 있다’는 믿음은 여기서 비롯됐다. 보타락가는 산스크리트어의 포탈라카(potalaka)를 음역한 것이다. 흔히 낙가산이나 낙산이라고 줄여 부른다.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觀音聖地)로 양양 낙산사와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을 꼽는데, 여수 향일암을 합쳐 4대 성지라 부르기도 한다. 이렇듯 중요한 관음성지들이 모두 바닷가의 산이나 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강화~석모 ‘연륙교’ 빠르면 이달 내 개통 오늘 찾아가는 보문사는 이름부터가 관음성지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담긴 끝 간 데 모를 관음보살의 권능이 이 땅의 모든 중생에 미치기를 소망하며 발원한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관음도량인 보문사가 낙가산에 자리잡고 있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는 섬 안의 섬이다.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잇는 연륙교가 놓인 것은 벌써 오래전이지만, 보문사에 가려면 아직은 배를 타야 한다.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연륙교 공사는 지금 마무리 단계다. 빠르면 이달 안에 개통될 것이라는 뉴스도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지만, 역설적으로 탐방객이 ‘배 타는 재미’까지 맛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강화 외포리 포구에서 카페리에 오르면 석모도까지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배에 오르기 전 새우과자 한 봉지쯤 준비하면 입맛을 다시며 몰려드는 갈매기들에게 미안하지 않게 된다. 석모도 선착장에서 보문사까지는 다시 8㎞ 남짓 차를 달려야 한다. 자주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버스도 오간다. 주차장에 내리면 ‘낙가산 보문사’라는 편액이 달린 일주문이 보인다. 보문사의 창건과 관련해서 ‘전등사본말사지’에 ‘신라 선덕여왕 4년(635) 금강산에서 옮겨온 회정대사가 세웠다’는 대목이 보인다. 하지만 ‘유점사본말사지’의 보덕굴조에는 ‘회정선사가 고려 의종 10년(1156) 고구려 보덕화상이 창건한 금강산 보덕굴을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다. 학계에서는 두 회정을 같은 인물로 보고 고려시대 창건설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대장경 3질 봉안 기록… 관음도량의 중심지 ‘전등사본말사지’에는 ‘신라 진덕여왕 3년(649) 마을사람들이 보문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부처와 나한 등 22구의 돌조각을 그물로 걷어올려 절의 석굴에 모셨다’는 설화도 실어놓았다. 그 석굴이 절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석실(石室)이다. 천연동굴에 3개의 문을 만들고 석가모니와 나한을 모셨으니 일종의 나한전(漢殿)이다. 하지만 모셔진 불상의 연대는 그리 오래지 않은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석굴 좌우로는 극락보전과 용왕전, 삼성각, 범종각, 선방 등이 규모 있게 자리잡고 있는데, 대부분 최근 지은 것들이다. 관음도량으로 보문사의 상징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절 뒤편 바위 절벽에 새겨진 관음보살좌상이다. 높이 9.2m, 폭 3.3m의 당당한 관음보살이 절 앞에 드넓게 펼쳐진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관음보살은 지붕처럼 앞으로 내민 눈썹바위 아래 좌정하고 있다. 부처님이 새길 자리를 준비해 놓은 것이 아닐까 싶게 절묘한 자연과의 조화다. 불교신자라면 그만큼 관음보살의 영험이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관음보살상은 금강산 표훈사의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문화재적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갈 것이다. 관음도량으로 보문사의 역사적 의의가 극대화된 것은 고려시대다. 고려는 고종 19년(1232) 몽골에 대항하고자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겼다. 강화는 원종 11년(1270) 환도하기까지 38년 동안 피란 수도 역할을 했다. 강화경(江華京) 시대다 이른바 강도고려(江都高麗)가 부처의 가피를 입어 몽골군의 살육과 약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팔만대장경을 판각하고 선원사에 보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나라 간섭기의 문인 민지가 지은 ‘고려국대장이안기’(高麗國大藏移安記)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1304년 고려에 왔던 원나라 승려 철산(鐵山)이 강화 보문사에 봉안한 대장경 3질 가운데 1질을 중국 강서행성(江西行省) 대앙산(大仰山)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원나라를 세운 몽골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대장경의 안타까운 유전(流轉)이기도 하다. ●가는길목에 ‘고려 대찰’ 선원사터도 볼만 보문사(普門社)라는 표현도 눈길을 끈다. 고려시대에는 사(寺)보다 격이 낮은 도량을 사(社)라 불렀던 듯하다. 하지만 두 표현을 뒤섞어 쓴 사례도 적지 않다. 어쨌든 보문사가 팔만대장경을, 그것도 여러 질 봉안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절의 위상이 크게 높았음을 의미한다. 고려를 망국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 ‘국가적 관음도량’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고려 말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최씨 정권의 문객 이수는 칠언시 ‘보문사’에서 ‘장엄한 전각들은 천세계를 다 삼키고 높이 솟은 누대는 허공에 달려 있네’라고 읊었다. 당시의 보문사가 한적한 섬의 작은 암자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에는 이수를 비롯한 최씨 정권 인사들이 정기적으로 보문사를 찾아 재를 올렸음을 짐작게 하는 내용도 있다. 팔만대장경의 비장처였던 보문사를 찾는 길에는 강화읍에서 멀지 않은 선원사 터도 들르면 좋을 것이다. 강화로 도읍을 옮긴 뒤 최우가 창건한 선원사는 당대에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양대 사찰로 손꼽히던 대찰(大刹)이었다. 오백불상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빈터만 남았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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