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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500여년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도료나 아교 등으로 덧칠을 해 놓아 원래의 ‘모나리자 미소’를 잃은 지 오래다. 만약 무덤에서 다빈치가 일어나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장탄식을 하겠다. 좀 더 오래가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을 놓고 후회막급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고민하는 다빈치에게 우리 전통의 옻칠을 얘기해 주자. 1500년 전의 고구려 벽화나 700여년 전의 팔만대장경 글씨가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 조상의 옻칠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그저 산에 나는 옻을 사용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참에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 그만큼 옻칠은 나무의 결이나 그림을 고스란히 살려 주는 동시에 장구한 세월을 견디는 생명력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옻이란 무엇인가. 옻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옻오리탕’ ‘옻닭도리탕’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또 ‘옻이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알기 위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옻칠 예술가 전용복(58)씨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에 앞서 유명한 일화를 떠올렸다. 지난해 7월이었다. 문화재청이 주최한 ‘전통공예의 산업화·세계화 심포지엄’에서 전씨는 직접 옻칠한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옻을 입힌 제기와 상, 장롱 등은 수없이 보았으나 손목시계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확 주목을 끌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손목시계는 8억원과 3억원짜리 1개씩, 그리고 5000만원짜리 30여개. 4년 전 세이코 시계 회사의 주문을 받아서 시계 금박에 옻칠을 해 영원 불멸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 또 있다. 1991년 11월 13일. 도쿄 시내의 국보급 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1920년대 일본의 고급 문화를 담은 호텔, 연회장, 예식장으로 쓰인 복합 건물)이 오픈되는 날이다. 거기엔 이례적으로 태극기가 휘날렸다. 전씨가 3000여명에 달하는 일본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낸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60년 전 조선의 장인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며, 피와 땀을 흘렸던 과거의 한을 떠올리며 대역사를 재현해 내 일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미술관 엘리베이터나 사계절 산수화 등의 창작품에는 전씨의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은 물론이었다. 서울 화양리 네거리에 위치한 ‘전용복 옻칠예 아카데미’. 자리에 앉으면서 “옻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거봐요, 기자라는 사람이 저러니 참으로….”라고 야단부터 맞았다. “옻은 만년의 신비를 갖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지요. 첫째, 옻칠은 지구상에서 그 어떤 물질보다 오래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둘째, 옻칠은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이므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생성합니다. 셋째, 옻칠은 아름다움을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 줍니다. 옻칠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움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수액을 제공하는 옻나무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 4월 중국 문화부 중외문화교류중심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전용복 칠화전’을 가졌다. 이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축사를 통해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는 중국 땅에서 서양인들이 선망해 오던 칠공예를 아시아 문화 발신의 기점을 만든 전용복 선생에게 큰 기대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걸어간 거대한 발자국이 드디어 대륙 땅에 찍히는 순간 옻칠은 다채롭고 찬란한 아침 햇살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에서 24년을 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가 당당히 중국 문화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진 무대였으니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렸다. 중국 문화부 관계자 뤼진은 “이번 전시는 만년의 빛이라는 테마로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전시를 얘기하는 전씨에게 요즘 무슨 일로 바쁜지 물었다. “서양 가구에 옻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옻칠을 갖고 우리의 생활공간에 어떻게 아름답게 접목할까 하는 것입니다. 4년 전부터 연구해온 것을 구체화하고 있지요. 한국의 전통 옻이 친환경적 소재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전씨는 또 “옻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옻을 이용한 작품 개발 등 순수 예술도 있지만 이제는 일반 서민들도 옻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중화해야 한다.”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화에도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얘기를 하나 꺼낸다. 다름 아닌 오는 11월 세계 유네스코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방한할 때 세계 문화재 보존을 위한 전 세계 투어 전시회 협약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일대와 미국 남미 등에서 옻예술 전시회를 갖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 옻예술이 서양 세계를 향해 떠나는 최초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본에서 귀국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소식을 듣고 한 수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들 중 몇몇이 선발돼 ‘옻칠예 아카데미’에서 작품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수제자로 할 만한 사람은 15명. 전씨는 현재 세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다. 첫 번째는 창작 전시 작품, 두 번째는 주거공간에 쓰이는 생활작품, 그 다음에는 후진 양성을 위한 일이다. 그는 얼마 전 부산 영산대 석좌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올가을 학기부터는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최근에는 가구 회사인 바로크C&F와 협약을 맺어 서양 가구에 우리의 전통 옻을 입히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완성된 물건이 1만년 가는 것은 옻밖에 없습니다. 살균력이 좋고 전자파도 잘 흡수합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산업 부문에도 적용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예술적 접목도 다양할 때가 됐지요. 젊은 작가와 젊은 디자이너, 그리고 우리 공예를 지켜온 사람과 결합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실험작품을 내놓았다. 앞서 얘기한 옻칠한 금속시계뿐만 아니라 비올라·첼로 등 악기에도 옻칠을 했던 것. 특히 피아노의 경우 음향판에 옻칠을 했더니 소리가 무척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완성된 물건에 옻은 어떻게 칠할까. 오묘한 색깔은 어떻게 빚어낼까. “옻나무 수액을 처음 채취했을 때에는 막걸리 색깔과 비슷합니다. 이에 열을 가하면 맥주병 색깔로 변하지요. 이런 정제 과정에서 돌가루를 적당히 섞어 가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옻을 음용하다 보니 옻나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중국에서 수입해야 할 형편입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신 많은 1년에 70t 정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 부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길거리에서 과일과 국화빵 장사를 했다. 연탄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관심을 두었던 것은 동네 어귀마다 자리한 나전칠기 가구나 장롱을 만드는 곳이었다. 화가가 되는 꿈도 꾸었다. 소나무 판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또 손재주가 좋아 목재소에서 헌 나무토막을 주워 와 토끼집이며 개집을 직접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견디며 청년이 돼 해병대에 입대했고 전역한 뒤 목재 회사에 입사했다. 1978년 당시 월급은 57만원. 솜씨가 워낙 좋아 회사로부터 특별 배려를 받았다. 열정과 패기까지 있어 젊은 나이에 기획실장과 디자인 회사 재정까지 맡았다. 잘나가던 그에게 어느 날 ‘전용복식 가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기 마석에 예린공예사를 차렸다.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공예품을 만들어 내려는 뜻에서 예린(藝鱗)이라고 했던 것. 이후 그의 작품은 서울에 있는 고급 가구상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인 부산으로 옮기면서 가구공방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활로를 모색하던 중 도자기 위에 옻칠을 한 ‘와태칠 기법’을 생각해 냈다. 독학으로 1200년 전의 기술을 익히면서 옻칠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가구와는 점점 멀어졌고 순수한 옻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탈바꿈했다. 1986년 한국현대공예미술전에 와태칠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거머쥐는 등 타고난 실력을 발휘했다. 얼마 후였다. 일본인 무역상이 오래된 ‘오젠’ 밥상 하나를 들고 와 수리를 부탁했다. 그 일본인은 도쿄예술대학에서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밥상 윗부분에는 고운 빛깔의 나전으로 두 마리의 학이 아름다운 자태로 입혀져 있었다. 전씨는 새것처럼 깔끔하게 수리를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메구로가조엔 복원 작업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실렸으며 한때 귀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옻칠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혼의 정수(精髓)이자 영원불멸의 유산입니다. 일본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조선의 옻칠장이’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 땅의 옻칠 문화를 되살리는 데 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전용복씨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1년 일본 메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을 3년에 걸쳐 복원해 내 세계적인 옻칠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23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가 1년 전 귀국했다. 지난 4월 중국 정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져 그의 진가를 새삼 입증했다. 그의 이력은 이렇다. 1980년 예린 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3년 일본 한국문화원 초대 전시회, 1986년 한국 현대미술전 대상 수상, 일본 이와테 현 미술공방전 특상(1988),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 표창장 수상(2000), 이와테 현 가와이무라 약사도칠예관 명예관장(2000), 대통령 표창 수상 기념 개인전(2001), 이와테 칠예미술관&동관대표 취임(2004), APEC기념작품전시회(2005), 세계 최고급 옻칠 시계 발표(2008), 온스타일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공동 기획 아트도네이션 작품 기증(2009) 등이다. 현재는 서울 화양리에서 제자들과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활공간에 어떻게 옻을 적용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한국말 서툴러 취업 어려워… 임금체불·차별 여전해요”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한국말 서툴러 취업 어려워… 임금체불·차별 여전해요”

    “한쿡 생활 쉽지 않아요~.” 결혼 이민자와 외국인 근로자 등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저마다 한국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는다. 숨은 사연은 각기 달라도 낯선 이국땅에서 겪는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사소통 문제 가장 힘들어” 17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홍익동 ‘성동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네 살배기 아이와 함께 아동극 프로그램에 참여해 ‘아기돼지 삼형제’ 대본을 연습 중이던 서수분(30·여·중국)씨는 서툰 한국말로 “남편은 귀화시험을 통과해 국적을 취득했는데 저와 아이는 아직도 중국인”이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3년 전 조선족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서씨는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국적을 취득하려면 중국에 가서 가족증명서를 떼 와야 하고, 이를 제출해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서씨는 결혼 이민자에게 주는 보육비 지원 등 각종 혜택도 받지 못한다. 다문화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한쪽 부모가 한국에서 출생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현행 ‘다문화가족지원법’ 때문이다. 서씨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보육비가 한 달에 40만원이나 드는데, 지원이 정말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 1993년 한국에 온 유세프타(33·여·우즈베키스탄)씨는 “한국말을 체계적으로 교육받기 쉽지 않고, 육아와 아이 교육에 대한 걱정도 크다.”고 말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취업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했다. 구청을 통해 다문화지원센터에 취업해 9월까지 프로그램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응옥티마이(24·여·베트남)씨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성동구에서 결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생활의 힘든 점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언어 문제가 66%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자녀 양육과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 등의 순이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안산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위즈(39·나이지리아)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한국인 친구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면서도 “하지만 불법체류라는 신분 때문에 임금 차별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는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약점 탓에 돈 못받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온 김모(43)씨는 “양계 농장에서 5년간 일했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약점 탓에 돈 한 푼 받지 못했다.”며 “노동부에 신고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던 사람이 나타나 그를 믿었는데 갑자기 사건이 종결됐다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사생아 같은 존재”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같은 고향 출신인 장길성(73)씨는 “몸이 아파 고생하자 ‘중국동포의 집’ 직원들이 입원비를 마련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부인과 사별한 뒤 한국에 온 그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며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글을 쓰는 동포의 나라에 정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상담과 통역일을 하고 있는 임옥(38·여·베트남)씨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로 고통받고 가정폭력, 차별, 폭행 등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외국인들의 상담이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외국인 마을인 서초구 반포4동 서래마을에 사는 외국인들도 어려운 점이 있다. 쾌적한 분위기의 고급 빌라가 밀집된 부촌에 살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넘지 못할 벽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주민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서래 글로벌빌리지센터’는 외국인 거주자들이 겪는 생활관련 불편사항을 해결하고, 의사소통을 돕고 있다. 서래마을에는 주민 1만 3000명 중 718명이 외국인이고, 또 이 가운데 400여명이 프랑스인이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온 알리홀 마리피에(40) 센터장은 “서래마을에 사는 외국인 상당수가 비자 발급과 변경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각종 예약 시스템이 영어로 돼 있지 않아 공연과 여행 등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공서 서류에 영어 표기를 병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현석·강동삼기자 hyun68@seoul.co.kr
  • “나라살림 지킨다는 자세로 유혹 극복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부 산하 4개 외청에 ‘청백리’ 정신을 강조했다. 박 장관은 13일 이현동 국세청장, 윤영선 관세청장, 최규연 조달청장, 이인실 통계청장 등이 참석한 외청장회의를 갖고 “재정과 돈을 다루는 관청인 만큼 유혹도 많겠지만 나라살림을 책임지고 곳간을 지킨다는 자세로 유혹을 극복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겠다.”고 주문했다. 그는 “조선시대의 청백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관청은 오늘날 기획재정부와 4개 청에 해당하는 호조였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갑’의 자세를 버리고 낮은 자세로 임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박 장관은 “4개 청은 국민과 일선 현장에서 바로 접촉하는 접점”이라면서 “정책을 직접 집행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기관인 만큼 갑의 자세를 털어버리고 국민을 섬긴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아울러 재정부가 소홀히 할 수 있는 현장 중심의 정책을 보완하는 데 외청이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박 장관은 국세청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세정지원의 확대와 납세 편의 도모 노력을 지속할 것을, 관세청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따라 우리 기업이 특혜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각각 당부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7) 정선 봉양리 뽕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7) 정선 봉양리 뽕나무

    사람들이 하나 둘 보태면서 이루어진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해서 실제 모습과 가치를 압도하는 나무가 있다. 오래전부터 농경문화권에서 매우 중요한 나무로 여겨온 뽕나무가 그것이다. 듣기에 따라서 다소 우스꽝스럽게 들리기도 하는 이 뽕나무는 옛부터 청춘 남녀가 상열지사를 이루는 분홍빛 여흥의 장소로 활용돼 왔다. 게다가 성인 영화의 제목으로 나무의 이름이 이용되며 또 다른 이미지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결국 뽕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인구에 회자되는 뽕나무의 이미지는 뽕나무의 실재와 다른 게 사실이다. 복제의 복제가 실재를 압도한 결과다. 복제만 남고 실재는 사라진다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물라크르처럼. ●비단 생산 누에치기 장려하며 심어 아라리의 고장 강원도 정선의 중심 정선읍 봉양리 정선군청 앞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한 쌍의 뽕나무가 있다. 대개의 뽕나무는 누에의 먹이로 쓸 뽕잎을 따기 위해 키가 크지 못하도록 관리한다. 그래서 정선 봉양리 뽕나무만큼 큰 뽕나무가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하게 마련이다. 키가 25m나 되는 정선 봉양리 뽕나무는 정선읍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9호 ‘고학규 가옥’을 지은 옛 사람이 심었고, 지금도 그 집 후손들이 정성껏 돌보는 훌륭한 나무다. “고려 때 문인들이 정선 지방을 주유하면서 남긴 시문(詩文)에는 정선을 ‘상마십리’라고 표현한 게 나와요. 뽕나무(桑)와 마(麻)가 십리에 걸쳐 자라고 있다는 표현이죠. 선조께서 벼슬살이를 접고 이 땅에 오셔서 심은 나무예요.” 나무를 심은 제주 고씨 중시조 고순창의 34대손 고종헌(59)씨의 이야기다. 호조참판을 지낸 고순창은 단종 폐위와 함께 벼슬을 버리고, 뽕나무가 널리 펼쳐 있는 정선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보금자리를 틀었다. 자신이 살 집을 짓고 그는 대문 앞에 뽕나무 한 쌍을 마치 정원수처럼 심고 가꾸었다. “뽕나무가 많이 자라는 마을이기도 했지만, 선조께서는 비단이야말로 나라 살림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바탕이라고 생각해서 누에를 많이 칠 것을 장려하셨다고 해요. 집 앞에 뽕나무를 심은 건 누에를 치는 솔선수범의 상징이었던 겁니다.” 나랏일을 등지고 전원에 터잡았지만, 백성들의 살림을 풍요롭게 하려는 생각만큼은 내려놓지 않은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비단의 가치를 잘 알았던 그는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키워서, 나라살림을 더 풍요롭게 하고자 했다. ●국내 최고령 뽕… 강원도 기념물 7호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7호인 정선 봉양리 뽕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살아 있는 뽕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이며 크기나 생김새에 있어서도 첫손에 꼽을 만한 최고의 뽕나무다. 농사를 위주로 하는 농경문화권에서 뽕나무는 매우 귀중한 나무였다. 금은보화만큼 귀한 재산으로 여겨졌던 비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뽕나무는 없어서는 안될 나무였다. 비단 재료인 고치를 만드는 누에의 좋은 먹이인 까닭이다. 나란히 서있는 두 그루의 뽕나무는 서로 자람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잘 자랐다. 남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자란 나무는 주변의 다른 건물 위로 키를 키웠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하나가 3m, 다른 하나는 2.5m쯤 된다. 600년 세월을 지내왔다는 게 무색할 만큼 여전히 건강 상태도 좋다. 어린 시절 뽕나무 아래에서 오디를 주워 먹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만큼 큰 뽕나무에서라면 오디가 얼마나 많이 열릴 것이며, 그 맛은 얼마나 풍요로울 지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 뽕나무에서는 오디가 열리지 않는다. 뽕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데, 이 나무는 수나무이기 때문이다. ●수나무여서 오디는 열리지 않아 군청을 비롯해 의회건물과 문화예술회관, 읍사무소 등 번듯한 건물이 에워싼 정선의 중심지여서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옹색한 편이다. 하지만 뽕나무가 우리네 살림살이와 무척 가까운 나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깊은 산 속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풍경보다는 제격이지 싶다. 그러나 절반 넘는 폭을 나무가 차지한 인도의 가장자리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나무가 다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무 주변으로 낮은 턱을 올려서 세심하게 배려하기는 했으나 공간이 좁아서 뿌리의 호흡에 장애라도 생길까봐 드는 걱정이다. “정선 시내의 한 기업체가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맺고 나무 관리를 도와주지요. 높이 솟은 가지 중에 쳐내야 할 병든 가지가 생기면 그 기업체가 장비를 지원해 주고, 주변 청소와 같은 정비도 도와주지만 특별히 돌볼 일은 없어요.” 하지만 나무에서 이상한 징후가 발견되면 군의 해당 부서와 협력해서 전문가를 동원해 치료한다고 고씨는 덧붙인다. 이에 대해 군 문화재 담당 김대순씨는 “인위적인 영양 공급과 같은 지나친 보호가 오히려 나무의 생장에 장애를 줄 수 있다.”며 “평상시에 꼼꼼히 살펴보고 이상 현상이 생길 때에는 곧바로 조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선조가 심은 나무를 바라보고 태어나 백성의 풍요로운 살림을 돌보며 여전히 너그러운 선조의 품 안에서 살고 있는 고씨는 “우리 뽕나무를 바라보면, 선현들의 생각과 생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큰 나무와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건 곧 이 땅의 모든 삶에 대한 자긍이기도 하다. 글 사진 정선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강원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 217-9. 서울에서 정선에 가려면 영동고속국도의 속사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좋다. 톨게이트를 나가서 강릉 방면으로 8㎞쯤 가면 평창군 진부면에 이른다. 진부 면민체육공원 앞 사거리에서 정선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오대천을 끼고 이어지는 국도 59호선을 이용해 31㎞ 남짓 남하한다. 조양강과 만나는 나전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8.5㎞ 가면 정선 시내에 이른다. 5일장이 서는 장터 앞에서 군청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5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군청 입구가 나온다. 군청 건물보다 나무가 먼저 눈앞에 나선다.
  • [최종찬 따뜻한 사회] 가진 사람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

    [최종찬 따뜻한 사회] 가진 사람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

     작년에 초등∙중학교의 무상급식부터 시작하여 최근 대학교 반값 등록금, 하청기업과의 이익공유제, 전·월세 가격상한제 등 국민 부담을 줄이고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의 각종 대책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기업계나 경제전문가들은 이들 대책이 시장경제를 무시한 대중 인기영합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정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무상급식, 반값 대학등록금 등을 인기영합적인 정책이라고 비난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상급식 공약은 작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최근 왜 이렇게 재원 대책도 불명확한 복지 정책들이 많이 나오는가? 대다수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어지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작년에 경제 성장이 6% 되었다고 하나, 많은 국민들은 성장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수출 대기업들은 유례 없는 고성장을 누리고 있으나 대다수 중소기업, 내수기업들은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대기업 근로자는 막대한 보너스를 즐기지만 하청기업 근로자는 실질소득 감소를 겪고 있다. 명품 매출은 크게 늘어난다는데, 서민들은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식비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급속한 저출산 원인은 취직도 안 되고, 높은 육아∙교육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각 분야에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의 부담을 덜어준다는데 누가 마다할 것인가? 현재와 미래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체제에 대해 애착을 가질 리가 없다. 이대로 가면 점점 많은 사람이 시장경제체제에 대하여 불신하게 될 것이다. 양극화가 완화되고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시장경제체제가 유지될 것이다.  그러면 누가 현재의 시장경제체제 유지에 앞장서야 할 것인가? 최근 세계화와 규제 완화로 가장 혜택을 보는 계층들은 수출기업, 대기업 등일 것이다. 이들 계층이 잘나가는 것은 물론 열심히 하여 경쟁력을 확보한 결과이겠으나 국가가 이를 뒷받침한 것도 큰 요인이다. 그런데 빈부 차이가 커지고 사회 불만세력이 늘어 기업 활동을 규제하고 사유재산을 제한하는 입법들이 성행한다면, 과연 기업들이 자기만 잘한다고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예컨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같이 사기업을 국유화하고 기업 활동을 통제하는 상태가 되면 경쟁력 있는 대기업인들 제대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우리 사회가 그렇게 극단적인 사태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득의 양극화, 높은 청년실업, 저출산이 지속된다면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대중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 체제에서 혜택받는, 가진 사람들이 체제 수호를 위해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작은 것을 더 가지려다 더 큰 것을 잃게 된다. 미국의 경우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 부자들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거나 재산을 기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부유층,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절실하다. 기부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회사 이름으로 기부하면서 기업주가 생색내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은 대부분 개인 재산에서 기부한다. 하청기업에 대한 지나친 가격 인하 요구, 계열사에 대한 몰아주기로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는 행위도 자제되어야 한다. 상속∙증여세를 제대로 내 부의 정당성을 보여야 한다. 게이츠와 버핏은 미국 400대 억만장자들에게 개인 재산의 절반을 기부토록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가? 과거 경주 최부자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주변 100리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들 때 땅 사지 말라.”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 따뜻한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 빗장 풀리는 스위스銀 비밀금고

    이번 국세청의 해외 음성 자금 포착은 2009년부터 스위스 정부가 비밀금고의 빗장을 풀기 시작하면서 가능했다. 재정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스위스 정부에 대해 은행 비밀 계좌의 공개를 강도 높게 요구했고, 이 같은 국제사회의 압박에 스위스 정부가 일정 부분 손을 들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스위스 정부는 지난해 6월 미국인 탈세 혐의자의 계좌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스위스 UBS는 보관 중인 탈세 혐의자 4450명의 명단과 계좌를 미국 정부에 넘겨줬다. 독일과 영국 등도 지난해 자국민 명의의 스위스 은행 계좌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세협정을 스위스와 잇따라 맺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12월 스위스와 조세조약을 개정, 내년 하반기부터 한국인 명의의 비밀 계좌에 세금을 물릴 수 있게 됐다. 위키리크스도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를 벗기는 데 한몫했다. 지난 1월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스위스 율리우스바에르은행의 역외은행인 케이맨제도 지점장 출신인 루돌프 엘메르로부터 스위스 역외은행의 개인·기업 고객 계좌 2000여개가 담긴 CD 2장을 넘겨받았다. 어산지는 이 명단을 곧 공개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스위스가 앞으로 어느 정도 더 비밀 계좌를 공개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이 같은 비밀주의 덕분에 스위스 금융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1%, 일자리 20만명 창출이 가능했을 정도로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외국 관리는 “스위스 정부는 투명성과 정보 교환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아직도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스위스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밀 계좌 공개 압박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1분기 GNI 2년만에 감소

    1분기 GNI 2년만에 감소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2년 만에 줄었다.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3% 늘어 성장세가 지속됐지만 고유가 등의 여파로 국민의 살림살이는 더 나빠진 것이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11년 1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기 대비 1.3%, 전년 동기 대비 4.2%를 기록했다. 지난 4월 발표한 속보치와 비교해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같았지만, 전기 대비 증가율은 0.1% 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GDP가 증가한 것은 제조업이 금속제품과 전기전자 등의 호조로 전기 대비 3.1% 성장한 데 따른 것이다. 반면 건설업은 건물 및 토목건설이 모두 부진해 전기 대비 6.1% 감소했다. 서비스업은 도소매업 중심으로 전기 대비 1.2% 증가했다. 농림어업은 전기 대비 4.5% 감소했다. 특히 농업은 구제역 영향으로 축산업이 부진해 전기 대비 4.6% 줄었다. 지출 측면에서 민간 소비는 음식료품과 차량용 연료 등 비내구재 지출이 부진했지만 에어컨과 휴대전화 등 내구재 소비가 늘어 전기 대비 0.4% 증가했다. 반면 건설투자는 건물 및 토목 건설이 모두 줄어 6.7% 감소, 1998년 1분기 이후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설비투자는 반도체제조용기계와 선박을 중심으로 1.1% 감소했다. 재화 수출은 반도체와 전자부품, 자동차 등의 호조로 4.6% 증가했으며 수입은 3.1% 늘었다. 1분기 실질 GNI는 교역조건 악화 등으로 전기 대비 0.1% 감소했다. GNI가 감소한 것은 2009년 1분기(-0.2%) 이후 2년 만에 처음이다. 실질 GNI는 우리나라 국민이 국내와 해외에서 생산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의 실질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따라서 실질 GNI가 감소했다는 것은 구매력이 하락해 국민의 체감경기와 호주머니 사정이 악화됐다는 것을 뜻한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실질 GNI는 1.8% 증가했지만 GDP도 4.2% 성장한 만큼 실질구매력이 크게 늘었다고 볼 수 없다. 총저축률은 31.9%로 전분기보다 0.4% 포인트 하락했으며, 총투자율도 29.0%로 0.5% 포인트 떨어졌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데스크 시각] 걷기열풍과 지자체가 해야 할 일/최병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걷기열풍과 지자체가 해야 할 일/최병규 사회2부 차장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운 좋게도 미국 연수의 호사를 누린 지 두 달째 되던 어느 토요일. 미주리주립대학이 있는 작은 시골 도시 컬럼비아를 6개월 먼저 경험하고 있던 모 신문사 선배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자전거 타러 가지 않을래? 케이티 트레일(Katy Trail)이라고 멀지 않은 곳이 있는데….” 트레일이라니. 그저 ‘산책로’로만 알고 있던 생경한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그냥 길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따라가는 기나긴 길’이란다. 뜻을 곰곰이 뜯어 보니, 목적과 수단이 분명하고 또 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그 선배를 따라나선 자전거 하이킹은 마을을 끼고 도는 미주리강을 따라 네 시간 이상 이어졌다. 주변 이야기를 주섬주섬 모아 봤다. 이 자전거 길의 길이는 무려 365㎞나 됐다. 서쪽 캔자스시티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시작해 동쪽 세인트루이스 직전까지 굽이굽이 이어졌다. 과거엔 철길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86년 10월 클린턴이라는 마을에서 마지막 열차를 떠나 보낸 미국인들은 이후 철길을 자전거 길이자 도보 길로, 또 승마 길로 바꿔놓았고, 주립공원으로 지정했다. 10여년 전 생소했던 보통명사 트레일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하고도 익숙한 말이 됐다. 제주 올레길과 북한산·지리산 둘레길 등 주로 걷기 코스를 아우르는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엔 친환경 탐방 코스를 자랑한다는 누리길도 뛰어들었다. 지역에 따라 이름도 톡톡 튄다. 강원 바우길을 비롯해 변산 마실길, 고창 질마재길, 영덕 블루로드, 무등산 옛길, 안동의 퇴계오솔길, 강화 나들길, 남해 바래길, 군산 구불길 등 일일이 입에 올리기도 숨이 벅찰 정도다. 이 정도면 ‘미주리-캔자스-텍사스’(MKT)를 약칭했다는 미주리의 케이티 트레일이란 이름은 우리나라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어쨌든 걷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경향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이 트레일 덕에 몸과 발 모두 호강하고 있는 셈이다. 몇년 전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걷기에 대한 욕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걷기 열풍’은 주민들의 건강 욕구와 수요를 기꺼이 감당하려는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개발 노력이 보태지면서 ‘태풍급’으로 바뀌었다. 혹시라도 숨어 있을지 모르는 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여부는 일단 제쳐두자. 지난해 9월 개통된 북한산 둘레길 확장에만 올해 92억원의 예산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는 왜 걸으려 하는 것일까. 걸그룹과 립싱크가 점령한 TV에서 이른바 ‘나가수’가 진정한 노래를 갈망하는 노래 팬들의 한숨과 눈물을 짜내는 것처럼, 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 사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행케 하는 무대다. 2주일 전, 엿새 동안 마주한 제주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은 12년 만에 이뤄진 트레일과의 재회였다. 하루 평균 15~16㎞의 길을 걸었으니, 모두 90㎞ 안팎의 길을 따라간 셈이다. 걷기 좋은 계절, 평일이었지만 길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치 순례길에 떠밀려 온 것 같았다.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마치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당초 그렇게 시작된 길은 아니었다. 걷는 이도 그렇지만, 특히 길을 만드는 주체도 마찬가지다. 제주 올레길의 성공 이후 각 지자체들은 ‘길은 돈이 된다.’는 명제에 자극받아 너도나도 트레일 만들기에 나섰다. 넉넉지 못한 살림을 펴보려는 자구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길은 다니지 않으면 금세 잡초로 덮여 사라진다는 점. 길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야 길이다. ‘구불길’이든, ‘바래길’이든, 길을 만들 때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은은한 화롯불처럼 오래가는 길이 되어야 한다. 방법이야 그들의 몫이다. 불씨는 재 속에 묻어야 오히려 꺼지지 않는 법이다. cbk91065@seoul.co.kr
  • [사설] 세계잉여금 나랏빚 갚는데 쓰는게 옳다

    경기 회복으로 올해 세수(稅收)가 10조~20조원가량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면서 세계잉여금의 용처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고 한다. 정부와 청와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빚을 내어 ‘슈퍼 추경’을 편성하는 등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킨 만큼 나랏빚을 갚는 데 쓰자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의 신주류 측은 반값 등록금과 저소득층 주택문제 지원 등 복지비용으로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잉여금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돼 온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잉여금은 나랏빚을 줄이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2009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3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90.3%에 비해 월등히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외부충격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특성과 저출산·고령화, 통일비용 등 중장기 재정위험을 감안하면 나랏빚의 안정적인 관리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가 중기 재정운용 계획에서 2013~2014년 균형재정 달성을 통해 나랏빚을 30% 초반으로 낮추기로 한 것도 이러한 취약성을 감안한 목표 설정이었다. 따라서 당장 눈먼 돈이 생겼다고 해서 선심을 쓰고 보자는 식의 접근 방법은 국정운용을 책임진 여권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여력이 생겼을 때 나랏빚을 줄여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것이 현 세대의 책무다. 지난해부터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발(發)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 회복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들 국가는 벌어들이는 것보다 복지비용을 더 많이 지출한 탓에 재정 건전성이 파탄 직전까지 내몰린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라살림도 거덜났지만 빚을 떠안게 된 미래세대와 과다복지 혜택을 누리는 현세대 간에 갈등도 극심하다. 우리도 나라 곳간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으면 남유럽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나랏빚이 100조원 이상 급증하는 등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정치권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성 공약을 쏟아내더라도 정부는 재정운용의 기본 틀을 이탈해선 안 된다. 정부의 뚝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수몰 앞둔 美 남부 ‘케이 준 컨트리’의 비극

    1750년대 영국군이 캐나다의 아카디아(지금의 노바스코샤주)를 점령하면서 그곳에 살던 프랑스 사람들이 당시 프랑스 땅이었던 미국 루이지애나로 쫓겨 온다. 함께 죽을 고비를 겪은 이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프랑스어 방언을 쓸 만큼 유대감이 강했다. 아카디아라는 말이 미국 인디언들에 의해 케이준(Cajun)으로 잘못 전해지면서 이들이 사는 수천 제곱마일의 지역이 케이준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마치 나라 이름처럼 ‘케이준 컨트리’로 불린다. 연방정부는 1980년 케이준을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공식 인정했다. 케이준들은 자신들만의 ‘국기’(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고, ‘케이준 치킨 샐러드’와 같은 독특한 음식 문화로 이름을 떨쳐 왔다. ●260년 민족공동체 최대 위기에 이 케이준 지역이 지금 일시 수몰 직전의 위기에 있다. 미 정부가 뉴올리언스 등 인구 밀집 지역을 구하기 위해 홍수로 불어난 미시시피강의 물줄기를 케이준 쪽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호마, 모건시티 등의 도시가 바로 케이준 안에 있다. 미 공병대는 15일(현지시간) 저녁까지 케이준 주민들에게 대피를 완료하라고 했지만 주민들은 끝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케이준 사람들은 “수몰되더라도 집이 크게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미 공병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버트라로즈 마을에 사는 랜디 몬그리프는 이날 오후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는데도 집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는 “이 집을 리모델링하느라 너무나 공을 많이 들여 떠나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여차하면 타고 갈 작은 보트를 손으로 잡고 있었다. 주민 피에르 워터마이어는 자신의 집 외벽을 비닐로 두른 뒤 모래주머니를 덧대고 있었다. 그는 “이것들이 집을 보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크로츠 스프링 마을에 사는 제이크 놀런은 지난 며칠간 살림살이와 가구를 안전 지역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날 마지막으로 가게에 가서 케이크를 사왔다. 딸 마야의 네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놀런은 “마야한테 이 사태를 설명하기 힘들어 그저 강물이 불어나 뱀과 악어가 많아졌기 때문에 떠나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 줬다.”고 했다. 그는 물이 빠질 때까지 누이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공병대가 이날 예고했던 대로 수문 4개를 모두 열자 1초당 7만 5000갤런의 물이 쏟아졌다. 9초마다 올림픽 수영경기장 한 개를 채울 만큼의 물이 케이준 쪽으로 퍼부어진 셈이다. 공병대는 수문 개방으로 4000여 명의 주민이 직접적 피해 영향권에 들게 된다고 밝혔다. 미시시피 제방위원회 수석 엔지니어인 피터 님로드는 “수압이 높아지면 제방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면서 “모두가 잠 못 이루는 밤이 며칠은 갈 것”이라고 했다. ●4000여 주민 직접 피해 영향권에 크로츠 스프링 주민 브레트 앤슬리(24)는 “증조할머니는 1927년에 246명의 사망자와 60만 명의 이재민을 낸 대홍수를 겪었고 할머니는 1937년 대홍수를 겪었지만, 나로서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며 “정말 이건 미친 짓이다. 현실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쓰나미처럼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당하는 재난도 비극적이지만, 보금자리의 수몰을 그대로 지켜봐야 하는 것도 고문에 가깝다. 260여 년 전 시작된 케이준의 고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1)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밤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1) 평창 운교리 천연기념물 밤나무

    세상살이에는 변해야 할 것이 있는 만큼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세월 따라 빠르게 변하는 사람살이가 있는가 하면, 예나 제나 제 모습을 잃지 않는 자연이 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사람이 있다. 대개 10년쯤이면 사람이 살던 집의 풍경이 바뀌거나 그 안에 살던 사람이 달라진다. 그러나 수백 년을 꼼짝 않고 살아온 나무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 무상한 변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은 제 살림을 꾸려간다. 혹시 사람살이를 풍요롭게 도와주는 나무라면 그의 깊은 나뭇결에 동화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살가운 감동이 담기기도 한다. “이 나무 앞에서 태어나고 자랐지요. 시집 가서 잠깐 동안 재 너머 마을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왔으니까, 오십 년 넘게 저 나무에 기대어 살아온 거나 다름없어요. 그동안 나무는 많이 컸겠지만, 내가 보기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토종 밤나무로서는 가장 큰 나무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의 아름다운 산골마을 운교리. 지방도로변 한적한 식당 ‘들림집’의 주인 최정자(54)씨는 밤나무 쪽으로 창문이 난 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때 ‘밤나무집’으로 더 잘 알려졌던 이 집은 마방(馬房)이었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 이곳은 조선시대에 운교역창(雲橋驛倉)이 있었다. 당시 최씨의 집은 말을 이끌고 지나던 상인이나 나그네가 하룻밤 쉬어 가는 주막이자 말들이 쉬는 곳이었다. 집의 뒷동산에 우뚝 서 있는 밤나무는 생김새만으로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크고 우아한 자태로 자란 나무여서, 한눈에도 오래 보존해야 할 자연문화재로 여겨지는 나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밤나무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식당 집 뒷동산 밤나무’로만 이야기했다. 십년 전 처음 이 나무를 찾아보았을 때만 해도 나무 곁에는 최씨 내외가 버섯을 키우기 위해 쌓아둔 원목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고, 나무 뿌리 부분은 비좁은 돌 축대로 갑갑하게 막혀 있었다. 나름대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오히려 나무의 생육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안타까운 상태였다. 이 밤나무가 차츰 세상에 알려지면서 마침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2008년 겨울이다. 우리 토종 밤나무로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라는 가치가 인정된 것이다. 최근 나무 뿌리를 답답하게 하던 돌축대를 허물고, 땅을 고른 뒤, 주변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천연기념물로서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최씨는 가문의 자랑인 나무를 나라에서 잘 지켜 주게 돼 마음이 든든하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영명자’라고 알려진 나무 운교리 밤나무의 키는 14m가 넘고, 뿌리 부분에서 잰 밑동의 둘레는 6m가 넘는다. 키나 줄기보다 굉장한 것은 사방으로 넓게 펼친 가지들이다. 동서로는 25m를 훌쩍 넘었고, 동산의 경사면을 타고 있는 남북 방향으로는 20m를 넘었다. 이 정도면 나라 안의 밤나무 가운데 운교리 밤나무의 규모와 견줄 나무가 없다. 밤나무는 감나무만큼 우리네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나무 자체를 보기 위해 키우는 느티나무나 소나무와는 다르다. 대개의 경우 밤나무는 오로지 열매를 얻기 위해 키운다. “그네를 세 개씩이나 맸어요. 어린 아이들 타기 좋게 낮은 가지에 하나를 매고, 다른 두 개는 좀 커서 어른들이 뛸 수 있는 그네를 맸지요. 사철 내내 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밤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가지에 그네를 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밤송이의 가시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들기 어려워서다.최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같은 크기와 나이의 밤나무가 네 그루나 더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큰 나무였는데, 밤 송이가 바닥에 깔리면 옆의 밭에서 일하기가 어려워 다른 나무들은 모두 베어내고 그 중 가장 잘 생긴 지금의 나무 한 그루만 남겨 놓았다고 한다. “밤송이가 무성하게 달리는 가을에도 사람들이 모였지요. 밤이 많이 열려서 식구들이 필요한 만큼 먹어도 넉넉하게 남아서, 집안 어른들은 아무나 주워 가도록 했어요.” 세종실록지리지에 평창을 밤의 특산지로 기록했을 만큼 인근에서 자라는 밤나무는 질 좋은 밤을 생산하기로 유명했다. 밤골, 밤고개라는 땅이름이 남아 있는 것도 이를 증거한다. 그 가운데에도 특히 운교리 밤나무는 맛 좋은 밤을 맺는 나무로 이름이 나 있었다. ‘영명자’(榮鳴玆)라는 특별한 별명으로 이 나무를 부른 것은 조선시대 때 마방이 있던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이름 난 밤나무인 만큼 찾아오는 손님은 사람뿐이 아니다. 그 중에 가장 부지런한 건 청설모다. 밤이 맺힐 즈음이면, 이른 아침부터 나무를 찾아와 찍찍거리는 청설모 소리에 잠이 깰 지경이라고 한다. ●오래도록 변치 말아야 할 자연 문화재 사람들의 뜻에 맞춰 열매를 많이 맺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밤나무는 생장 에너지를 일찍 소진해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 대개의 다른 유실수와 마찬가지 이치다. 하지만 운교리 밤나무는 3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밤나무다. “우리 나무가 오래도록 잘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나 혼자 돌보기에는 너무 크고 좋은 나무잖아요. 또 내 집이 앞을 가려서 나무 풍경을 해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무를 더 잘 보이게 하고, 잘 보존할 수만 있다면 평생 살아온 집이지만 내놓을 수 있어요. 나는 이 마을을 못 떠나요.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밤나무가 바라다보이는 이 근처로 옮겨 가서 나무를 바라보며 살 겁니다.” 최정자씨의 이야기에는 태어나서 50년 동안 스스로의 삶을 지켜온 한 그루의 나무가 변함없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담겼다. 오래도록 변하지 말아야 할 나무를 위해 필경 또 다른 변화를 거치게 마련인 사람이 한 걸음 물러서겠다는 이야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앞에 살아온 ‘아낌없이 주는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지혜다. 글 사진 평창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강원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36-2. 영동고속국도의 새말나들목으로 나가서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6㎞를 조금 더 가면 안흥 면사무소와 찐빵마을이 나온다. 여기에서 1㎞ 남짓 가면 안흥초등학교 앞의 삼거리에 닿는다. 평창 방면으로 가는 오른쪽의 산길을 타고 16㎞쯤 가야 평창 운교리에 이른다.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는 한적한 산길 도로 왼편으로 ‘들림집’이라는 식당이 나온다. 나무는 식당 뒷동산에 있다.
  • [기획] 최고경영자=①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씨

    [기획] 최고경영자=①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씨

      “기업(企業)이야 말로 종합예술(綜合藝術)입니다 ” 영감(靈感)으로 시(詩)를 쓰듯 일한다는 만년(萬年) 문학(文學)소년  KAL 하나만으로도 지난 해 2백50억원의 현찰을 벌어들인「매머드」기업 한진(韓進). 그 한진(韓進)의 창업주이자 총수(總帥)인 조중훈(趙重勳·53·서울 서대문구 부암동 164)씨는 자신을 장사꾼이라기보다는 차라리「만년 문학소년」으로 보고 있다.『인생이 곧 예술』이며『기업이야말로 종합예술』이라는 조(趙)씨는 그래서『시인이 영감으로 시를 쓰듯』자신은 기업인으로 기업을 이끌어 나간다고 했다.  한진(韓進)「그룹」의 모체인 한진(韓進)상사는 1945년에 세워졌지만 한진이 우리나라 재계에 제1인자에 떠오른 것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69년부터 였다. 69년 3월 적자에 허덕이던 KAL을 한진(韓進)이 인수하면서부터『현찰 동원능력 국내 1위』의 한진은 명실공히 한국 제1위의 재벌이 된 것. 45년 창업에서 69년「랭킹」제 1위에 오르기까지 24년이 걸렸다. 짧다면 너무 짧고 길다면 인생의 절반이다.  조(趙)씨 자신은『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란 서정주(徐廷柱)씨의 시를 인용, 이 24년을 표현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 서리가 내리고 모진 비바람이 불었듯, 오늘의 한진(韓進)을 있게 하기 위한 24년이었죠. 예를 하나 들까요? 』  조(趙)씨는 6·25동란 후 군납업을 하던 시절을 이야기 했다.  지금 살고있는 서울 세검정(종로구 부암·홍지·신영·평창동을 일컬음)의 집은 당시 조(趙)씨의 별장. 조(趙)씨는 한국에 와 있던 미군 수송관들이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꼭 세검정 별장에 초대, 송별「파티」를 열어 주곤 했다. 조(趙)씨의 부인은 손수 마련한 선물을 선사했다.  몇년 뒤 월남전(越南戰)이 터졌다. 군납과 용역을 위해 한진(韓進)이 월남(越南)에 달려갔을때 상대해야 했던 미군 수송관들은 거의가 몇년 전 한국에 있었던, 그래서 조(趙)씨의 세검정 별장에 초대되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흔히들 한진(韓進)을「월남전(越南戰) 재벌」이 되기까지엔 이런 정성들이 밑거름이 되어 준 것.  『월남전을 내다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단순한 우정과 고마움의 표시였죠. 그리고 또 한사람에 대한 일종의 투자였고. 미 국방성이 아무리 방대하다지만 수송장교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언제 어디서건 다시 만나게 마련이죠』  이「언제 어디서」가 조(趙)씨에겐 월남전(越南戰)으로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것이다.  현재 한진(韓進)「그룹」에 들어있는 산하 업체는 모두 7개. 이 중 인하(仁荷)대학을 제외한 6개 업체가 모두 육(陸)·해(海)·공(空)의 운수사업체 뿐이다. 조(趙)씨가 즐겨부르듯 한진(韓進)은「수송백화점」인 셈.  고속「버스」관광·육상수송을 도맡고 있는 한진(韓進)상사를 비롯, 내년 5월부턴「점보」화 할 KAL, 한국(韓國)공항, 한일(韓逸)개발과, 바다를 누비는 대진(大進)해운과 동양(東洋)화재해상보험 등이 수송백화점 한진(韓進)을 떠받치고 있는 6개의 큰 기둥이다.  『남이 창안한 기업은 절대 좇아가지 않는다는 게 제「모토」입니다. 결국 망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또 내가 아는 사업만 한다는 게 나의 사업철학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잘 아는 수송사업에 전심전력 달라붙는 거죠』  한국 제일의 재벌이 된 조중훈(趙重勳)씨지만 젋은 시절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바이론」에 미치고 「괴테」와 함께 고뇌하고 사색했단다.「아꾸다가와」의 소설도 젊은 날의 조(趙)씨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 중의 하나.  『20대엔 여인에, 30대엔 일에 미쳐야 하고,40대엔 보람을 찾아 국가·민족 등을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하는 조(趙)씨의 말 속엔 아직도 문학청년의 체취가 남아 있다. 이 때문인지 조(趙)씨의 경영철학도『사업이야 말로 종합예술』이란 것.  『기업도 훌륭한 예술작품과 같이 균형과 조화, 개성과 창의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과 이 창의력을 밀고 나가는 끈기죠.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시인이 영감으로 시를 쓰듯 기업인에게도 기업인의 육감이 있습니다. 이 육감을 놓치지 안기 위해선 모든 일을 바로 보고 맑은 정신을 지키고 있어야죠』  시인과 같은 영감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일단 시작하면 끈기있게 달라 붙는다는 경영철학을 조(趙)씨는 기회있을 때마다 남들에게 들려준다. 여기에「플러스·알파」는「타이밍」. 말하자면 시운(時運)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긴데 조(趙)씨는『시운(時運)이 뒤따를 것을 기대하지 말고 시운을 내다볼 수 있는 예지가 필요하다』는 것.  조(趙)씨는 자신을 가리켜『인생에 3번 있다는 기회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잡았기에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한진(韓進) 산하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종업원수는 모두 6천여명.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조(趙)씨 자신이 반드시 이력서를 들추어 보고 면접을 한다.  이따금 새벽이면 인천(仁川)부두나 김포(金浦)공항 등 일선 사업장을 느닷없이 기습, 종업원들을 독려하는 등 조(趙)사장의 인사관리는 사뭇 철저하다.『사람이 곧 재산입니다. 최고경영자는 자기 식구들의 인화(人和)를 도모할 능력이 있어야죠.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쓰느냐가 그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죠. 자기 기업에 맞는 사람을 골라 내고 조직체에 맞추는 작업이 바로 최고경영자의 할 일이죠 』  『사장학의 첫발은 자기 종업원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일단 약점이 보이면 그 경영자는 파멸입니다. 약점 있는 사람이 약점 없는 부하를 요구할 수 없지 않습니까?』  조(趙)씨는『경영의 밑바탕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며 지식 』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지난 71년을 『한진(韓進) 지식투자의 해』로 삼아 여러가지 사원 자질 향상을 위한「세미나」, 일선 실무자의 해외파견 교육 등을 실시했다.  「인화(人和)」를 앞세우는 조(趙)씨의 인사관리 원칙은 우선 한진(韓進) 경영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조(趙)씨 4형제의 인화(人和)로부터 시작된다.「4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재산이 조금만 모이면 재산싸움을 벌이는 것이 상례. 하지만 조(趙)씨 4형제는 아직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자랑이다.  맏형이자 한일(韓逸)개발의 사장인 조중렬(趙重烈)씨는 KAL「빌딩」안에서 젊은 사원들에게 흔히 『인자한 아버지』로 존경받는다. 업무를 캐고 따지기 보다는『수고하는군』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던지기 일쑤다.  둘째이자 한진(韓進)「그룹」의 회장인 중훈(重勳)씨는 KAL 사장을 겸임, 대한항공의 육성에 거의 전력을 쏟고 있다. 대외적인 업무는 중훈(重勳)씨가 전담.  세째(셋째)인 중건(重建)씨는 한국공항의 사장이자 KAL의 부사장. 실질적으로 한진(韓進)의 안살림을 도맡고 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둘째 형과는 달리 미국(美國) 유학까지 마친「인텔리」라 「컴퓨터」가 무색할 정도로 냉철하고 판단력이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막내인 중식(重植)씨 역시 미국(美國)서 건축학을 전공한「엔지니어」. KAL「빌딩」건설의 공사 총감독이었으며 현재 한일개발의 상무로 아직은「견습 경영자」의 위치에 있다.  『무뚝뚝하면서도 인간미가 있다』는 평을 듣는 중훈(重勳)씨는 자수성가한 사람답게『무지하게 부지런한』사람.  『나이가 들어 그런지 새벽녘까지 철학서적이나 문학서적을 읽죠. 이상하게도 이런 책을 읽으면 사업「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8시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이죠. 대신 밤 10시면 꼭 자리에 듭니다』  13년 전부터 술은 아예 끊어버렸단다. 그 대신 단 5초도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쉬질 못하는 성미다. 1주일에 한번쯤「골프」를 치는 게 유일한「레크리에이션」.  요즘은 몸이 77kg으로 불어나 목하「다이어트」중. 기름진 음식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식후에는 과일을 꼭 먹는다. 시인과 같은 영감으로 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일단 사업을 시작하면 철저하도록 치밀하다는 것이 조(趙)씨를 아는 주위사람들의 말이다. 조(趙)씨의 이「친밀함」은 평소에도 자주 드러나는데 가령 비서실이나 응접실 문지방이나 유리창에 먼지가 조금만 끼어 있어도 당장 발견해 낸다.  또 지저분한 것을 싫어해 책상 위의 서루도 언제나 깔끔히 정리되어 있어야만 적성이 풀리는 철저하게 결백한 성품.  또 맏형 중열(重烈)씨가 모시고 있는 노모(老母)님에겐 여행 떠나기 전이나 여행에서 돌아오면 꼭 문안드리기를 잊지 않는 효자이기도.  부인 김정일(金貞一·50) 여사와의 사이에 4남1녀를 두고 있다.  오늘의 한진(韓進)이 있기까지 내조를 아끼지 않은 김(金)여사는 한마디로 현모양처(賢母良妻)형. 지금은 가정부를 한 사람 두고 있지만 70년까지는 단 한 사람의 고용원도 두지 않고 손수 식사를 마련하고 집안청소를 도맡아 해왔다.  지금도 반찬만은 손수 마련한다는 게 김(金)여사의 신조.  이따금(가능한 한 손님을 집으로 오게 하지 않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지금도 차를 내오고 과일을 깎아 내는 일만은 가정부를 시키지 않고 직접 한다.  『창의력이 없는 젋음은 무능입니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라면 틀림없이 성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잠들기 전에 그날 하루를 반성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 제1의 재벌 조중훈(趙重勳)씨가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소박한 격려이다. <昌>    @조중훈(趙重勳)씨 약력  ▲1920년 2월11일=경기도 인천(仁川)시 항(港)동 4가 3에서 탄생  ▲67년 9월=고대(高大) 경영대학원 졸업  ▲45년 11월=한진상사 설립  ▲61년 1월=한국(韓國)공항 창립  ▲61년 6월=한진(韓進)관광 설립  ▲62년 1월=경기도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조합 이사장  ▲65년 1월=한국용역군납조합 이사장  ▲65년 10월=서울와사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67년 2월=한국LPG공업협회 이사장  ▲67년 6월=대진해운 대표이사  ▲67년 9월=동양화재해상보험 이사회장  ▲68년 2월=한국공항주식회사 대표이사  ▲68년 5월=한(韓)-월(越) 재단이사  ▲68년 8월=인하(仁荷)학원 이사장  ▲68년 9월=한일개발주식회사 대표이사  ▲68년 12월=한국원면창고 대표이사  ▲69년 3월=대한항공 인수, 대표이사  ▲70년 7월=「말라가시」공화국 명예총영사  -----------------------------------------  ▲67년 11월=은탑산업훈장(73호)  ▲68년 11월=금탑산업훈장(33호), 대통령 표창창  ▲69년 11월=댜통령표창 우승기(외화획득 최고)  ▲70년 11월=대통령표창 우승기(군납부문 최고) [선데이서울 73년 1월1일 제6권 1호 통권 제22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포커스 人] IFRS 전도사 임석식 한국회계기준원장

    [포커스 人] IFRS 전도사 임석식 한국회계기준원장

    올해 본격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의 후폭풍이 산업계와 금융권을 흔들고 있다. IFRS는 쉽게 말하면 기업들이 수십년간 한국식으로 작성했던 살림 장부 대신에 쓰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작성법이다. 오는 16일까지 IFRS를 적용한 분기보고서를 공시해야 하는 기업의 재무·회계 담당자는 물론 투자자들도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유럽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IFRS의 본격 도입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인데 한국만 서둘러 밀어붙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임석식(58) 한국회계기준원장은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IFRS 도입 이전부터 국제기준에 80~90% 일치하도록 한국회계기준을 고쳐왔기 때문에 ‘대혼란’은 부풀려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에서 회계를 강의하고, 금융감독원 회계담당 전문심의위원을 지내는 등 평생을 회계학에 바친 임 원장은 ‘IFRS 전도사’를 자청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IFRS 도입은 왜 필요한가. -런던에 있는 민간전문기구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만든 IFRS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나라가 채택한 회계기준이다. 120여개국이 자국기업에 IFRS를 의무 또는 선택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IFRS는 기업이 스스로 판단해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원칙 중심의 기준이므로 기업의 사정을 가장 충실히 나타내 줄 수 있다. 국가적으로 보면 IFRS 전면 도입은 국가신인도와 회계투명성을 올려줘 한국 기업이 저평가를 받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회계투명성은 어느 수준인가. -국가 경쟁력에 비해 세계 하위권 수준의 평가를 받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경쟁력 지수를 보면 감사 및 회계부분 경쟁력이 139개국 중 95위였다. 국가경쟁력은 22위였다.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내놓는 정보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한 불이익이 연간 38조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과 일본은 도입을 미루고 있는데 한국만 너무 서두른 것 아닌가.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일본의 위상은 한국과 차이가 있다. 특히 미국의 회계투명성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개발도상국 출신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민간 독립기구인 회계기준원을 세우고 국가신인도 회복을 위해 IFRS의 단계적 도입을 추진해왔다. 서두른 것이 아니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IFRS 적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은 자회사가 거의 없고 거래가 비교적 단순해서 IFRS 적용에 따른 변화가 크지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회계전문가가 없어서 곤란을 겪을 수 있다. 회계 시스템 초기 변환 비용도 불가피하게 든다. 그러나 IFRS 도입으로 한국 자본시장에 해외투자가 늘어나면 자본 조달 등의 혜택은 중소기업에도 돌아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해운, 건설업종 등은 IFRS를 적용하면 수익이 줄고 부채가 많은 것처럼 보여 ‘IFRS 피해주’라고 불린다. -해운, 항공업 등은 환율 변동이 부채비율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원화가 선진국 통화에 비해 변동성이 심해서 우리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IFRS에 한국 상황의 특수성이 반영된 추가 지침이나 해석이 제공될 수 있도록 IASB에 건의하고 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국가미래 이끌 이공계 고급두뇌 양성을”

    “국가미래 이끌 이공계 고급두뇌 양성을”

    전쟁 통에 나라도 집안도 폐허가 됐으나 소녀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늘 눈을 반짝이던 소녀에게 당시 교장 선생님은 미국 유학을 권유했다. 이공계 전공자에게 4년 국비장학금을 지원한다는 기회를 소녀는 당당히 거머쥐었고 혼란스러운 나라를 뒤로 한 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55~1959년 필라델피아 소재 가톨릭 대학인 체스넛힐에서 화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곧바로 결혼, 살림과 육아에 묻혀 살았다. ●화학 전공한 덕에 인생의 물꼬 트여 하지만 운명은 그를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있도록 놔두지 않았다. 1970년 막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갑작스럽게 저세상으로 먼저 떠난 남편(고 채몽인 회장)을 대신해 경영을 맡아 작은 비누 회사를 대기업으로 당당히 키워냈다.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 이야기다. 그가 화학을 택하지 않았다면 미국 유학길에 오를 일도 없었으며, 성공한 여성 기업인으로 우뚝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으로서 화학을 전공한 덕에 결정적인 순간 인생의 물꼬가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기초과학에 대한 장 회장의 사랑은 깊을 수밖에 없다. 또 선진 문물을 접한 그가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기초과학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은 물론이다. 개인적 사연이 바탕이 돼 기초과학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카이스트(KAIST)와 자연스럽게 연이 닿아 2007~10년 카이스트 이사로 활동했다. 지난 2월 카이스트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도 받아 인연은 더욱 끈끈해졌다. 애정과 신뢰는 기부로 이어졌다. 2일 장 회장은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이공계 고급두뇌 양성에 힘써 달라.”며 카이스트에 30억원이란 거액을 쾌척했다. 돈이 꼭 사랑의 척도는 아니지만 종종 잣대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매출 3조 7000억원으로 아직 50대 그룹 안에 이름도 못 올린 애경이 내놓은 거액은 기초과학과 카이스트에 대한 장 회장의 사랑 크기를 가늠케 한다.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카이스트에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장 회장은 이를 의식한 듯 “이 돈이 카이스트 학생들의 안정적인 학업 환경 조성 및 복지향상에 사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젊은 인재들을 위한 장 회장의 통큰 기부는 처음이 아니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지만 한창 중국어 공부에 빠져 있던 1994년 한국외대에 10억원을 내놓고 동시통역관인 ‘애경홀’도 지어줬다. 2000년 세운 ‘애경복지재단’ 이사장으로만 활동하며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7년에는 서울 신당동 자택을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무료 창작·전시 공간인 ‘몽인아트스페이스’로 탈바꿈시켰다. ●거창한 전달식 대신 조촐한 저녁식사 회장 직함은 달고 있지만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거의 없다. 통큰 기부가 전해진 이날도 거창한 전달식 대신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을 비롯한 몇몇 관계자들과 함께 조촐한 저녁식사만 가졌다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돈 드는 ‘선심성 일방 입법’ 막는다

    정부가 내년 총선과 대선 등 정치일정에 따라 예산을 동반하는 선심성 법률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일방적 입법 추진을 방지하는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내년 나라 살림은 ‘2단계 서민희망 예산’으로 편성, 일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는 ‘일 친화적 복지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28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내년 예산안 편성지침과 기금운용 계획안 작성지침을 의결하고 이달 말까지 각 부처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정부는 균형 재정 회복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입법정책협의회’를 강화, 예산을 수반하는 법률의 일방적 추진을 적극 예방하기로 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지방자치단체 보조사업 존치평가(보조금 일몰제)를 통해 성과가 미흡한 사업은 없애거나 예산을 깎을 방침이다. 내년에도 총지출 증가율을 총수입 증가율 보다 2~3%포인트 낮게 설정해 운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매년 관리대상수지(재정) 적자를 줄여 2013~2 014년에는 균형재정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그러나 내년에 4대강 사업 등 국정과제 마무리에 대한 지출소요 확대와 취득세 인하 보전, 구제역 매몰지 상수도 확충 등 돌발 요인이 발생해 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태다. 내년 예산 배분은 ▲일과 사람 중심의 삶의 질 선진화▲녹색 성장과 미래대비▲국민안전 및 국격 제고 등을 중심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 예산에 중점을 뒀던 보육과 특성화고, 다문화 가족 등 서민희망 3대 과제를 완결(1단계)하고 서민과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2단계)을 보강할 방침이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별 맞춤형 일자리 제공을 확대하고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보육서비스가 확충된다. 일본 대지진과 금융회사 해킹 등을 계기로 국민안전에 대한 투자도 확대된다.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응하는 전력투자를 강화하고 지진과 홍수 등 대형 재난에 대비한 예방투자가 확대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공약비용 100조! 가능하겠습니까?

    공약비용 100조! 가능하겠습니까?

    4·27 재·보선에선 알맹이 없는 ‘헛 공약’들이 표심(票心)을 현혹시켰다. 2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된 38개 선거구 후보들의 주요 공약을 분석한 결과 실현 비용만 100조원에 육박했다. 강원도지사에 출마한 후보들은 도정 한해 살림 예산(3조 3251억원)의 십수배에 이르는 공약들을 쏟아냈다. 또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들은 남은 임기가 1년 남짓밖에 안 되는데도 선심성 공약 경쟁에 열을 올렸다. 한나라당 엄기영·민주당 최문순 강원지사 후보는 모두 춘천~속초 간 고속화철도(3조 6000여억원), 원주~강릉 간 복선철도화(3조 3000여억원), 광주~원주 간 제2영동고속도로(1조 1500억원), 동서고속도로(2조 2700억원)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표적인 ‘신기루’ 공약들로 꼽힌다. 원주~강릉 복선철도화는 2008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 때도 공약으로 거론됐지만 번번이 미뤄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7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엄 후보가 내건 ‘200만명 경제시대, 30만 일자리 창출, 100세 복지’, 최 후보의 ‘2배 소득, 2배 행복’ 공약도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다. 엄 후보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선 9년간 46조여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 후보 역시 공약 실현 비용으로 7년간 20조원이 필요하다. 여야 전·현 대표 간 격돌이 예고되며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경기 성남 분당을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 강재섭·민주당 손학규 후보 모두 지역 최대 현안인 노후 아파트의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를 약속했지만, 국회의원보다는 지자체장의 업무범위에 가깝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강 후보는 취득·등록세 면제, 공사를 위한 이주기간 동안 재산세 면제 등까지 내걸었다. 손 후보는 ‘반값 등록금’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한 약속이다. 한나라당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대선급 공약이라고 비판한다. 의료비 부담을 10%로 줄이겠다고도 했는데, 연 8조 1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대선급 공약으로 분류된다. 김해을의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는 김해테크노밸리 조성(1조 2125억원), 제2산업단지 추진을 약속했지만 비용 조달 방법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도 강서국제물류도시와 진해신항을 연계해 금융사와 호텔, 컨벤션센터를 유치하는 김해비즈니스파크를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타당성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어차피 내년 4월 19대 총선까지가 임기인 보궐 의원이 공약을 내놓는 것 자체가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운동 실천본부 사무총장은 “당장 지역개발 공약이 표를 얻기 좋은 데다가 안 지켜도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풍토 때문에 거짓 약속이 남발되고 있다.”면서 “공약 남발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를 부추긴다.”고 꼬집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동행(KBS1 밤 11시 40분)엄마가 집을 나간 후 엄마를 대신해 살림을 도맡아 온 정은이. 엄마의 가출 충격으로 아빠 서용씨는 알코올 중독자가 돼 갔고 폭언이 심해졌다. 열여덟살 오빠마저 가출하자 서용씨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고, 정은이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동생 정민이와 유치원에 다니는 정현이를 혼자 보살펴야 했는데…. ●TV 특강(KBS2 밤 12시 35분)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미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이 하늘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상상 거리들을 만들어 냈던 밤하늘의 실체를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학문이 바로 천문학이다. 대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애쓰는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 원장과 함께한다. ●7일간의 기적(MBC 오후 6시 50분) 새 MC 이수근에게 특별 임무가 떨어졌다. 그에게 떨어진 기상천외한 미션은 바로 자신을 물물교환하라는 것이다. 과연 이수근은 자신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이수근은 제작진과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마침내 이수근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해 자신과의 물물교환 대상을 결정하게 되는데…. ●한밤의 TV연예(SBS 밤 11시 15분) 한국의 마돈나, 웨이브의 종결자, 전설의 댄싱퀸 김완선이 다시 우리를 흔들어 놓고 있다. 컴백 소식만으로도 연일 연예계 핫이슈로 떠오르며 20년이 훌쩍 넘은 그녀의 옛 노래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6년 만에 공개하는 그녀의 새 앨범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파격적 모습으로 변신한 그녀와 함께한다. ●하나뿐인 지구(EBS 밤 11시 10분) 무분별한 불법 채취로 우리나라 400여종의 자생종 중 무려 30%에 해당되는 100여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 무관심과 부주의로 인해 위기에 놓이게 된 한반도 희귀식물의 현실과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그들의 가치를 알린다. ‘나고야 의정서’ 시대를 맞아 식물 자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개발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모색해 본다. ●생명(OBS 밤 11시)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1급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성아는 이제 14살이 됐다. 성아는 태어나 한번도 혼자서 땅을 디뎌 본 적이 없다. 마음껏 뛰어다닐 나이에 혼자서는 설 수조차 없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늘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며 생활하는 성아. 성아는 매일 반복되는 힘든 치료에도 씩씩하게 이겨 내며 세상을 향해 내디딜 준비를 한다.
  • 4·27 재보선 판세

    4·27 재보선 판세

    4·27 재·보선을 열흘 앞둔 17일 여야는 공식 선거운동 첫 주말 유세전에 집중하면서 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나라당은 지역일꾼론으로, 야권은 정권심판론으로 승부수를 띄우며 지지를 호소했다. 안상수 대표는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선거는 지역과 서민경제를 살리는 선거”라면서 “몇몇 정치인의 대권 야망을 채우기 위해 악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4월 국회 회기 중에 의원 53명을 총동원했다.”면서 “이번 재·보선은 서민 경제를 죽인 이명박 정권 심판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여야의 판세분석 결과 강원도는 한나라당이, 경남 김해을은 야권 단일후보가 각각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성남 분당을은 ‘초접전’이다. 전남 순천은 김선동 민주노동당 후보와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 6명의 난립 속에 대혼전 양상이다. ●강원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가 최문순 민주당 후보를 10% 포인트 정도 앞서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나라당 측은 “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 엄 후보가 최 후보를 10% 포인트 이상 꾸준히 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측은 “초반 지지도 격차가 25% 포인트 정도나 됐지만 이제 7~9% 포인트로 좁혀졌다.”고 말했다. 선거는 이광재 대리전으로 치닫고 있다. 엄 후보 측은 “최문순은 이광재 그림자냐.”라며 이광재 동정론을 차단했다. 이 전 지사는 18일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 정권의 ‘이광재 죽이기’를 부각할 예정이다. ●경남 김해을 야권 단일주자인 이봉수 참여당 후보가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를 10% 포인트 이내에서 우세를 보이는 데 여야의 이견이 없다. 이 후보 측 천호선 대변인은 “여론조사상 앞서고 있지만 재·보선 현실을 감안하면 박빙이라고 봐야 한다. 젊은 층의 출근 전 투표율이 당락을 가를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나라당 측은 “김 후보가 열세지만 선거 경험이 많고 중량감 있는 인물이라 곧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남 분당을 여야 모두 판세를 쉽게 가늠하지 못하는 살얼음판 승부가 전개된다. 한나라당 측은 “오차 범위에서 약간 앞선다.”며 당세를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탄탄한 부잣집에 살림 차리기가 쉽겠는가. 손학규라는 인물로 추격 중”이라고 말했다. 적극 투표층에서 10% 포인트 정도 뒤졌지만 현재 5% 포인트 안팎으로 따라잡았다고 분석했다. 구혜영·허백윤기자 koohy@seoul.co.kr
  • [발언대] 친환경 식탁으로 시작하는 ‘맛있는 기적’ /김현숙 청강문화산업대학 에코라이프스쿨 교수

    [발언대] 친환경 식탁으로 시작하는 ‘맛있는 기적’ /김현숙 청강문화산업대학 에코라이프스쿨 교수

    전 세계 어디에서도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공통적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 친화적인 먹거리,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식량생산 확보는 국가의 안보와도 맞먹는 최첨단 전략산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럼 안전한 먹거리와 참살이를 위해 바로 시작할 실천방안은 무엇일까. ‘푸드 마일리지 운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식품 수송에 의한 환경부하량 파악에 필요한 지표를 푸드 마일리지라고 한다. 즉,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까지 수송량(t)에 이동거리(㎞)를 곱한 수치를 말한다. 1994년 영국의 환경운동가 팀 랭이 처음 주장했는데, 음식재료의 이동거리를 줄여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각 나라에서 활발하게 실천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 즉 100마일 안에서 생산되는 식품만 먹자는 운동이 활발하다. 그 거리 안에서 밀이 생산되지 않아 빵을 먹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레 다이어트 효과까지 생겨 ‘다이어트 운동’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지산지소 (地産地消) 운동’, 즉 그 지역에서 난 식재를 그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뜻의 ‘지산지소’ 운동이 활발하고, 미국에서는 ‘로컬푸드 운동’이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살림이 ‘가까운 먹거리 운동’을 펼치고 있다. 착한 밥상, 건강한 식생활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적 참살이, 에코라이프의 실천으로 맛있는 기적을 이루어 나간다면, 우리의 삶이 나날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는 앞만 보고 ‘빨리빨리’ 정신과 ‘다이내믹 코리아’를 외치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고, 한강의 기적과 IT 강국의 브랜드 파워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숨 고르고 진정한 성공스토리, 인간다운 삶의 질을 높이는 ‘맛있는 기적’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 “힘있는 김태호가 땡긴대이” “정치 물 덜 든 이봉수가 낫제”

    “힘있는 김태호가 땡긴대이” “정치 물 덜 든 이봉수가 낫제”

    4·27 재·보선의 격전지로 꼽히는 경남 김해을.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 사이로 이제 막 정치의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야권 단일화의 주인공으로 결정되고 하루가 지난 13일, 지역 최대 행사인 가야문화축제가 시작된 데다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분위기까지 무르익으면서 시민들의 선거 입담이 김해 전역을 휘감았다. 김해을은 장유신도시와 내외동, 진영이 전체 인구(28만여명)의 85%를 차지한다. 유권자들의 마음에는 인지도와 지역 발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당보다는 인물 위주로 선택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인지도’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앞섰다. 봉황동 일대에서 열린 가야문화축제 현장을 찾은 주부 한모(59)씨는 “허우대도 좋고 잘생겼다 아이가. 머라 해도 김해가 발전하려면 든든한 인물이 확 땡긴대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장유신도시 대형마트 앞에서 만난 한 40대 주부도 “도백을 지낸 김 후보가 안 낫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5년째 택시운전을 한다고 밝힌 박원호(52)씨는 “이 후보가 좀 물이 덜 들어서 정치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김 후보는 어차피 김해 사람도 아이다. 중앙에서 그래 깨지고 (김해에) 올라카면 좀 일찍 오든가….”라며 말문을 닫았다. ‘지역 발전’은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대규모 개발·유치 정책보다 복지에 대한 갈증이 많았다. 장유신도시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김용식(54·대청리)씨는 “장유만 해도 인구가 12만명인데 변변한 복지관 하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파트 단지마다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예산 문제로 건립이 중단되자 주부들의 원성이 높았다. 장유 팔판마을에 사는 주부 강모(44)씨는 “문화적 자부심을 뺏긴 것 같아 속상하다. 겉 말고 속 살림살이를 책임질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해을은 또 아파트값 상승세가 전국 최상위권이고, 중소공단·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은 편이다. 지역 주민들의 고달픈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김 후보는 여당 프리미엄을, 이 후보는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나눠 가졌다. 내외동 전통시장에서 14년째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이진숙(57·여)씨는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서 사는 게 힘들다. 암만 해도 힘 있는 여당 후보가 잘 해결해 주지 않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창원공단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장유신도시의 한 대형마트에 들른 이정석(56)씨는 “이 후보가 비정규직의 고충을 잘 알더라. 김 후보는 청문회에서 발개벗겨졌으면 자숙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비교했다. ‘노무현 향수’는 여전히 김해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 노 전 대통령과의 거리로 보면 이 후보가 김 후보보다 가깝다. 내외동 중앙로의 한 공원에서 만난 김삼진(47) 씨는 “김해는 노 대통령 덕을 많이 본 곳이다. 한 획을 그은 분 아이가. 노 대통령과 같이 일한 후보에게 끌린다.”며 잠시 먼 산을 쳐다봤다. 대학생 이동현·서한울(23)씨도 “노무현 영향이 큰 건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후보와 이 후보는 장유신도시 번화가에 각각 캠프를 차렸다. 그것도 마주보는 건물에다. 캠프 사무실은 지근거리지만 두 후보를 바라보는 민심의 길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김해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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