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나라 살림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자살 시도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그리스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신뢰수준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한미통상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08
  • [사설] 대통령이 일궈야 할 ‘국민자신감’

    노무현 대통령의 어제 연두회견은 “경제가 잘 되고, 미래 한국에 대해서 국민들이 좀더 자신감을 갖고 함께 출발하는 좋은 한해가 되길 바란다.”는 맺음말로 끝났다. 살림이 나아지고, 사회가 평안하고, 안보가 굳건해야 국민들이 편해진다. 거기서 국가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다. 국민자신감을 일구는 일의 절반쯤은 대통령의 리더십 몫이다. 노 대통령의 연두회견에서 희망과 우려를 같이 본다. 대체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안정감을 주었고, 경제에 매진할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한 모두연설과 달리 문답 과정에서 야당을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연설문을 앞서 보고 환영논평을 냈다가, 비난하는 논평으로 다시 바꾸었다. 대통령으로서 왜 야당에 대한 불만이 없겠는가. 그래도 경제매진, 사회통합쪽으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면서 말 몇마디로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했다. 집권 후 2년동안 노 대통령은 직설화법으로 풍파를 일으키곤 했다.‘정치적 돌출발언’ 때문에 대통령의 주된 관심이 묻혀버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새해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더욱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노 대통령이 사회통합의 방법으로 실용주의를 평가하고 부패청산의 제도적 마무리를 강조한 점은 적절했다. 내편, 네편 가르지 말고 인사탕평책을 써야 한다. 특히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안하고 있는 ‘반부패 투명사회 협약’의 성사가능성을 주목한다. 과거 회귀가 없다는 전제 아래 대사면 등 국민화합 조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부, 정치권, 기업과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반부패 협약을 채택해 선진사회 진입을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 북핵 해결을 통한 한반도 안정은 선진한국을 이루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노 대통령이 6자회담 재개에 자신감을 나타냈고, 북한도 평양을 방문한 미 의회대표단에 회담에 복귀할 뜻을 밝혔다고 한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올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전기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1945년 8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미처 봄날을 음미할 새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진출해 38선을 그었다. 그 때 어느 유명한 신종교 지도자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선포했다.“미소의 두 힘이 서로 상대하여 버티나 태양이 중천에 오르면 밝은 세계가 되리라.” 태양은 누굴까? 중천에 오른다 함은? 전후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 선언에 신도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잠깐이고, 곧 민족의 구세주가 등장하여 외세를 물리치게 된다는 것! 누가 구세주일까? 김구, 여운형, 조만식, 이승만, 박헌영…. 아니면 김일성? 세상 사람들은 거물 정치가들을 놓고 누가 믿을 만한 민족지도자인지를 점쳤다. 극좌파, 중도파, 극우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각자 선택의 폭은 넓었으나 민심의 합일점은 없었다. 지난한 시기였다. 그 때 정감록의 신봉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국난을 뚫고 나갈 진인은 어디 있는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진인, 지리산에서 뛰쳐나온 진인, 주역에 능통한 진인, 부처, 예수, 공자의 영이 내린 진인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고대해 마지않던 진인은 나오지 않았다. 해방정국은 갈수록 꼬이더니 남북분단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정감록’에 보이는 6·25전쟁 제2차대전 이후 전세계는 미소를 정점으로 한 냉전질서에 편입되었다. 양측의 긴장이 팽팽해지더니 1950년 마침내 6·25전쟁이 터졌다. 한국이 안고 있던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미소 양측의 대리전쟁이라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전쟁이 장기화될 때 괴로운 건 민중이다. 그들은 난리가 언제 끝날지, 살아갈 방도는 무언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정감록 신봉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 난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땅)를 찾아 숨는 사람도 생겼다. 정감록 예언에 따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삼풍리로 숨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긴데, 전쟁 내내 인민군은 커녕 국군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들은 정감록의 영험을 믿는 듯했지만 그곳은 어느 편 군대도 진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지독한 오지였다. 꼼꼼히 정감록을 살피던 민중의 눈엔 요거다 싶은 예언 몇 구절이 눈에 띄었다.‘호랑이와 토끼해를 당하여 남북이 서로 솥의 발 같이 대치하리라.’ 우연히도 전쟁이 터진 1950년은 호랑이해인 경인년이었다. ‘금강산 서쪽과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된다.’는 구절도 있어 강원도 북부에 있는 금강산과 오대산을 경계로 남북이 무력 대치한다는 예언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12란 숫자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남북의 대치기간이 글자 그대로 12년인가, 또는 갑자, 을축 이런 식으로 12지를 10간과 조합한 1갑자 60년인가? 총성이 멎은 지 벌써 52년째, 글자 그대로의 12년은 이미 지났고 60년 한 갑자가 되려면 8년이 남았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상징한다는 대목도 회자(膾炙)되었다.‘인천과 부평 사이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한다.’고 했다. 수도권에 ‘시체 더미’가 쌓인다고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수많은 전함을 거느리고 인천에 상륙했고 서울을 탈환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 구절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 또는 청일전쟁이 남긴 집단적 기억이 재현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연재 제1회 참고). ‘정감록’의 또 다른 구절도 민중의 눈길을 끌었다.‘두 서쪽 땅 곧 황해도와 평안도는 3년간 천 리 안에 사람과 불 때는 연기가 없을 것이요, 또한 동쪽 골짜기, 즉 강원도는 심히 꺼릴 땅이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된 까닭으로 봤고, 뺏고 뺏기는 육박전이 벌어진 장소가 강원도였다는 예언으로 해석했다. 중공군의 개입,1·4후퇴도 예언되어 있었다.‘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칠 것이다.’ 오랑캐라,1950년 한겨울 급작스레 대거 투입된 중공군으로 해석됐다. 중공군은 물밀듯 남하를 계속, 평안도 황해도를 삽시간에 휩쓸었다. 인해전술이란 말은 정감록에 안 보였지만 그 신봉자들에겐 1·4후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이해될 듯 했다. ●미국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 그런데 ‘정감록’ 예언에 대한 기발한 풀이는 따로 있었다. 전쟁 당시 미국의 원수(元首) 트루먼! 트루(true)는 참 진(眞), 먼(man)은 사람 인(人)!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眞人)은 다름 아닌 트루먼이라는 해석이다. 트루먼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의회의 자문도 받지 않고 미군의 파병을 결정했다. 트루먼이 아니었으면 공산군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일제 식민지 후반, 특히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민중의 살림살이는 참 고단했다.1945년의 해방도 반쪽짜리였고 민중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터지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미국은 각종 구호물자를 한반도에 대량으로 투입하였다. 수만의 병력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하여 전쟁도 수행했다. 사람들은 새삼 미국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구차히 살 바에야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바랐다. 국회로 보내주기만 하면 미국에 가 달러를 더 많이 동냥해 오겠다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런 판국이라 미국 대통령을 진인, 정 도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1953년 미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로 바뀌자 그가 진짜 정 도령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주고받은 민중도 많았다.“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그리고 일본은 일어난다!” 미국-믿다, 소련-속다, 일본-일어나다.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말투지만 미소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인식이 확산된 결과 생긴 민중의 구호였다. 비록 패전국이긴 해도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민중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 강대국들을 경원시했다.1894년 동학농민군이 내건 4대 구호 중에 ‘축멸양왜(逐滅洋倭, 서양놈들과 왜놈을 내쫓는다)’란 구절이 있어 그런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일제 말기 조상 전래의 성, 말까지 빼앗기자 민중은 주변국가인 중국과 소련에 다소 기대를 걸었다.‘조지로 목친다.’ 이 말이 민간에 퍼졌다. 조지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남부지방 사투리다. 그것으로 어떻게 목을 자를까? 조(조선), 지(지나, 중국), 로(로서아, 소련)가 힘을 합해 목(목인,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벤다는 예언이었다. 민중의 소망을 담았지만 꽤나 섬뜩한 내용이다.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을 수 없게,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눈치 챌 수 없게 은어에 담았다. ●‘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 ‘정감록’으로 6·25전쟁의 참혹함과 미국의 개입을 읽었다니 얼핏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 예언서에 보이는 오랑캐는 만주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때는 북쪽으로부터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의 침입이 잇따르고 홍건적의 난도 있었다. 조선 초에는 여진족의 침입이 만만치 않았다. 인조 때는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서북지역은 이민족의 침입로가 되다시피 했고, 그 지역 민중은 외침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기도 했다. 외침의 기억은 민중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되었고, 이것이 ‘정감록’에 ‘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고’ 라는 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오랑캐의 말울음 소리는 현대에 와서 중공군의 남하로 이해되었다. 이런 변화는 ‘정감록’을 처음 전파시킨 조선시대 술사(術士)들로서는 전혀 예측 못할 일이었다. ‘정감록’에는 외침과 무관하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발생할 난리가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해서 그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컸다. 순조 연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여러 고을을 휩쓸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사실 서북지방은 18세기 이후 과거시험에서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럼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정감록’이 가장 먼저 등장한 곳도 서북지방이었다. 대다수 서북지방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종말을 마다할 일이 없었고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북쪽에서 반란이 재발해 남북에 두 나라가 대치한다는 남북분국설이 정감록에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기왕 분국설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보태보겠다.‘정감록’에는 삼국 분기설도 나온다. 나라가 세 동강 난다는 예언인데, 이런 말은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유행했다. 우리 역사에 삼국시대도 있었고 후삼국시대도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고려 때도 이의민은 신라를 부흥시킨다는 구실로 경주일대를 소란케 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이 있어서겠지만, 민중은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면 3국 분기설을 들먹였다. 그런데 3이란 숫자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미륵이 하생할 장소도 산이나 물이 셋으로 나뉘는 곳이었고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吉地) 중에도 3도봉 같은 곳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알아 본 역사적 배경은 아랑곳없이 현대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정감록’에 보이는 서북지역의 혼란상을 국토분단,6·25전쟁의 참상, 또는 1·4후퇴를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중의 예언 해석에는 시대적 맥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 구절을 뭐라 해석했든, 나는 내 시대의 문제를 푸는 새 해석을 좇겠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에서 예언 문화엔 층위랄까 나이테가 보태졌다. 현대의 민중이 미 대통령 트루먼을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으로 본 것은 어떤가. 진인이란 새 왕조를 열 국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타나 계룡산 아래 도읍을 정한다고 보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진인의 도래설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세기였다. 그 때부터 오랫동안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예언)이 인기를 끌었다. 역모를 꿈꾼 사람들은 늘 진인의 출현을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진인은 기존질서에 대항해 싸울 영웅이었다. 그런 진인이 1950년대에는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지도자, 기존질서의 사령관인 트루먼으로 둔갑했다. 합리적·체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 신봉자들의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시의에 맞기만 하면 민중은 꽤 엉뚱한 해석에도 환호한다. 수백 년 동안 ‘정감록’이 생명을 이어온 까닭은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서다. ●예언서는 민중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 해방 이후 미국의 중요성은 국가 차원에서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든 날로 커졌다. 민중은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구절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던 아득한 시절에 만들어진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지만 필요는 때로 발명이나 발견을 낳는다. ‘정감록’에서 꺼낸 트루먼 진인설과 인천상륙작전설은 억지스러운 발견이었다.1970년대 이후 민중은 미국에 대한 그 이상의 예언을 요구했던지 새 예언서가 등장했다.‘격암유록’,‘율곡비기’,‘송하비결’ 등이 새로 나온 예언서다. 그 중 어떤 것은 특정 종교단체가 배후 조종하여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도 예언서를 빌려 지도자에게 절대권위를 부여한 흔적이 있다. 새 예언서에는 한·미관계가 자주 나온다. 어느 책에는 9·11사태(2001년 9월11일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도 언급되어 있다. 더욱 경악할 내용도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을 폭격하기 시작해,2005년까지 공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200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재선에 실패하고 이슬람교도의 저격으로 사망한다는 등등의 예언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은 북한을 폭격하지 않고 있으며, 부시는 보란 듯 재선에 성공해서 백악관에 건재하다.2004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관심사는 한국 민중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간 예언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친미와 반미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로 등장했는데 민중의 다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지배질서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민중은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을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부시의 낙선과 암살을 예언한 것이다. 민중은 부시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북한 폭격설까지 예언으로 등장한 것이다.50년 전엔 현직 미 대통령을 진인이라 일컫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민중이 직접 예언서를 저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중은 예언의 내용을 결정한다. 노스트라다무스든 ‘정감록’이든 사정은 똑같다. 민중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한 예언서는 민중의 사랑을 받고 그 생명도 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예언서는 곧장 버림을 받는다. 민중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감록’을 해석해왔다. 시대가 바뀌면 그 해석은 늘 달라졌다. 한 시대의 해석은 다른 시대가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내가 정감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통시대적이다.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의 계보학에 가까운 입장이다. 푸코의 말처럼 시공간이 바뀌면 지식과 기억은 변화된다. 요컨대 변화된 사물의 의미를 계보로 정리하는 것이 지식 계보학이다. 나의 정감록 산책도 그렇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백승종(푸른역사연구소장)
  • 중도파 중심 ‘朴 친정체제’ 강화

    중도파 중심 ‘朴 친정체제’ 강화

    ‘중도 실용주의 노선과 집안 단속’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1일 단행한 대규모 당직개편의 성격을 요약할 수 있는 말이다. 박 대표의 ‘2기 체제’는 당의 이미지를 ‘정책 정당’으로 쇄신하고 이를 위해 중도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당내 계파간 갈등도 중재할 전망이다. 먼저 박세일 여의도연구소장을 정책위의장으로 내정한 것은 박 대표가 정체성과 이념경쟁에 비중을 둔 1기 체제에서 벗어나 실용주의적 정책 대결로 선회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이날 “정책 정당으로 가기 위한 체제 정비”라면서 “국민들은 정당이 정책으로 경쟁하기를 원하기에 정책 정비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박세일 내정자도 기자간담회에서 “민생·교육 등 경제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여권의 책임만을 묻는 게 아니라 ‘협력적 정책 파트너’ 관계를 정립할 것”이라고 밝혀 한나라당의 정책 방향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중도 실용노선 표방 정책정당 지향 이런 맥락에서 당내 정책통인 박재완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제3정조위원장으로 포진시킨 것을 비롯, 경제전문가 이혜훈 제4정조위원장, 교육전문가 이주호 제5정조위원장 등 분야별 정책통들로 정책위의장단을 구성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무성 사무총장 기용은 그의 통합 중재력과 당 살림 관리능력을 높이 샀다는 관측이다. 당내 다양한 계파의 목소리를 중재하면서 박 대표를 중심으로 구심점을 높이기에 김 신임 총장 특유의 친화력이 적절하다는 차원이다. 김 사무총장도 이날 “당내 세대간, 제 세력간에 중간에 서서 사심없이 정권 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혀 세대와 계파를 아우르는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했다. 또 취임 일성으로 “가능한 한 여의도 가까이 가도록 하겠다.”며 당사 이전을 공식 거론했다. ●비주류·소장파 반발 무마도 숙제 신임 비서실장으로 현안마다 순발력 있는 전략적 대응을 해온 유승민 의원이 기용됨으로써 비서실의 실질적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진영 전 실장의 ‘그림자 수행’ 스타일에서 벗어나 시의적절한 대응책 마련 등 정무 기능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이해된다. 당 관계자는 “박 대표는 정책위의장단을 중심으로 한 정책 경쟁과 유 실장의 정무 능력을 겸비, 앞으로 보폭을 대폭 넓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향후 가시화될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과의 대권 경쟁에 대비, 대권 후보로서의 콘텐츠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인선에서 제외된 비주류 그룹과 중진 의원들의 불만을 안고 가게 됐다. 한 소장파 의원은 “개개인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친위체제 구축 성격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비주류의 김용갑 의원은 “박근혜 대표의 치마폭이 보이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질책하는 목소리에 더 귀를 열고 그들까지 치마폭에 싸안는 진정한 지도자로 변화하라.”고 ‘쓴소리’로 주문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새해 가장 바빠지는 사람들은 점술인이다. 개명한 세상에 누가 미신 따위에 솔깃하랴 싶지만, 일간지조차 새해를 맞아 국운이 어떠할지를 점친다. 옛날부터 이 땅에는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뿌리도 제법 깊어서 삼국통일 이전까지 소급된다.‘고려비기(高麗秘記)’,‘고경참(古鏡讖)’이 고대의 예언서라면,‘삼한회토기’ ‘삼각산명당기’는 중세의 예언서였다. 근세의 예언서로는 ‘도선비기’를 비롯해 수십종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다. 18세기부터 민중의 사랑을 받던 ‘정감록’은 국가의 탄압으로 간행되지 못한 채 다종다양한 필사본만 유행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감록’은 1923년 드디어 활자화되었고 그것이 사실상 정본 취급을 받고 있다. ‘정감록’의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이 멸망하는데, 그 때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계룡산에 세워질 새 왕조는 언제 나타나는지로 압축된다. 아무 해에 무슨 사단이 터진다는 식의 짤막한 예언이 대부분인데, 한국의 예언서가 대개 그렇듯 60갑자로 햇수가 적혀 있어 세월의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다. ●예언서에 보이는 민중의 공포 ‘정감록’의 비교적 앞쪽엔 이런 오싹한 대목이 있다. 원숭이해 봄 삼월과 성스러운 임금이 다스리는 가을 팔월, 인천과 부평에는 밤중에 배 1000척이 들어오고, 안성과 죽산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다. 여주와 광주에는 인적이 영영 끊어져버리고, 수원과 남양에는 피가 흘러 냇물을 이루리라. 한강 이남 100리에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끊어지고, 인적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전쟁영화의 섬뜩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예언은 수도권 전체가 전쟁 통에 쑥대밭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작년 2004년도 원숭이해였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먹고 살기 참 힘든 한 해였고 북한의 핵문제로 전쟁 걱정도 컸었다. 북핵문제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강경책이 화근이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땅에 그런 참극은 없었다.‘정감록’의 예언이 틀린 셈이다. 그래도 여운은 남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구절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다들 그렇단다. 과연 ‘정감록’에는 민심을 휘어잡는 묘한 힘이 있나 보다. 서울로 통하는 관문 인천 앞바다에 적을 태운 배가 1000척씩이나 들이닥친다고 했다. 그런 변고가 없다.1592년의 임진왜란, 그보다 5년 뒤의 정유재란도 이처럼 끔찍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참혹한 예언은 뜬금없이 나오는 예가 없다.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수많은 마을과 도시를 파괴했다. 바그다드 상공에 쏟아진 폭탄이 불꽃놀이 같았고, 명분 없는 전쟁에 죽은 사람만도 10만을 헤아렸다. 훗날 이라크에 예언서가 작성될 경우 미군의 무차별 폭격이 남긴 상흔은 집단적 기억이 되어 남을 것이다.‘정감록’에 담긴 이 대목도 민중의 전쟁공포증으로 헤아려봐야 한다. 우선 인명의 대량 살상을 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안성 등의 지명이 등장하는 것도 대수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정감록’의 예언은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만 같다. 1894년 7월 하순 일본군함은 인천 앞바다에 정박하다가 아산(牙山)·풍도(豊島)로 내려가 청의 해군과 한바탕 싸웠다.‘정감록’에 나오는 인천 앞바다 운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격전지 아산과 풍도는 바로 예언서에 언급된 남양의 코앞이다. 그 뒤 일본군대는 천안 부근의 성환(成歡)에서, 같은 해 9월에는 평양에서 청나라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정감록’에 나오는 안성, 죽산 등도 실제의 전쟁터 성환에서 멀지 않다. 근대식 무기가 동원된 청·일 양국간의 살벌한 전투 장면을 지켜보면서 민중은 공포에 떨었고 이것이 다소 과장된 형태로 ‘정감록’에 아로새겨졌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도 있다.19세기 후반부터 한국에는 ‘서양오랑캐’의 침략을 두려워하는 위기의식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1840년 여름, 영국은 4000명의 병력으로 중국의 다구·톈진(天津)을 위협하였고, 이듬해에 다시 1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물밀 듯 난징(南京)으로 쳐들어갔다. 아편전쟁의 놀라운 소식은 연달아 한국에 알려져 조정은 물론 민심마저 발칵 뒤집혔다. 외침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1866년 프랑스 함대가 병인양요(丙寅洋擾)를, 불과 5년 뒤인 1871년에는 미국함대가 쳐들어와서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켰다. 흥선대원군은 당황한 나머지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워 외국과 교섭을 전면 금지했지만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 속에서 각종 소문과 예언이 유행했다. 갑자기 1000척의 배가 쳐들어와서 수도권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예언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일 것이다. 거기에 청·일전쟁의 집단기억이 덧칠되었다고 보면 무리가 없겠다. ●‘정감록’에 숨겨진 비밀을 읽는 법 10년쯤 전이었다. 역사에 나타난 한국인의 이상세계를 탐구하던 내 눈길이 예언서 ‘정감록’에 닿았다. 한국역사상 대표적인 예언서라면 다들 ‘정감록’을 첫손가락에 꼽았기에 그 책을 끌어당겼던 것인데 실망이 컸다. 거기에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없었고, 성경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같은 것도 안 보였다.‘정감록’에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서술은 없고 대신 알쏭달쏭한 표현만 단편적으로 눈에 띄었다. 하지만 거듭 읽을수록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정감록’이 지닌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정감록’에는 비밀스러운 문화의 코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정감록’의 한 줄 한 줄은 수천년 동안 생성된 우리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였다. 민중은 공포와 절망에 떨면서도 예언 가운데 희망의 빛을 감춰두었던 것이다. ‘정감록’의 문화적 코드는 예언서를 예언서로서 바라보는 편협한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자구의 해석에 매달릴 경우 ‘정감록’은 그저 단편적이고 무질서할 수밖에 없다.‘정감록’을 읽는 옳은 방법은 그게 아니라고 믿는다. 역사의 앞뒤를 재고 정치와 문화를 하나로 뚫어서 읽을 때, 그 비밀스러운 코드는 비로소 풀릴 것이다. ‘정감록’의 밑바탕에는 풍수지리설과 선천후천 교대설(옛 세상이 끝나고 이제 곧 천지가 개벽한다는 주장)이 있다. 맥맥이 흐르는 미륵신앙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감록’은 한국문화의 젖줄이다. 따지고 보면 동학, 증산도, 원불교와 같은 근현대 한국의 신종교도 ‘정감록’으로부터 생명수를 제공받은 셈이었다. ●‘정감록’과 김지하 ‘정감록’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대 한국의 지식인 몇몇도 오래 전부터 ‘정감록’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인 김지하다.‘오적’이란 시를 비롯, 군사독재에 목숨 걸고 맞서 싸운 그의 투쟁담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김지하는 사상적으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생명이니 살림이니 하는 토종의 생각으로 서양의 다양한 철학과 주의 주장을 아우르고 싶어했다. 그런 김지하가 ‘정감록’을 즐겨 인용하였다면? 김지하는 사실 ‘정감록’을 본떴으며,‘정감록’의 정수를 꿰뚫어 보았다. 이 말이 쉽게 믿기지 않을 사람도 있을 테니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보겠다. 김지하의 책 ‘말뚝이 이빨은 팔만사천개’의 ‘오행’이란 시가 앞서 살핀 ‘정감록’의 예언과 매우 비슷하다. 그 해 여름 복중 큰 눈이 내리고, 큰물이 지고, 큰 흉(凶)이 들고 안성과 죽산(安竹)과 수성과 당성 사이(隨唐間)에 굶어죽은 송장이 산처럼 쌓이고 비석이 땀을 흘리고 우물에 피가 솟고 대꽃이 피고 운운. 여기서 김지하는 전쟁의 참혹상을 흉년의 비극으로 바꿔놓았지만 지명도 그대로 두었고 얼개도 ‘정감록’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앵적가’의 경우는 더 심하다. 안성과 죽산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며 하는 식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김지하의 패러디는 계속된다.‘이 가문 날에 비구름’에서는 아예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정감록’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이 작품은 동학의 역사를 한 편의 유장한 시로 풀어낸 것인데,‘정감록’을 빌려다가 최제우가 동학을 개창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왜 김지하는 ‘정감록’을 자꾸 빌려다 썼을까. 단순히 그 예언서의 몇 대목에 관심을 둔 것일까, 아니면 ‘정감록’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큰 매력을 느낀 것일까. ●‘정감록’이란 민중의 밥그릇 ‘정감록’을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정경모란 이름도 생각난다. 그는 80년대 중반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찢겨진 산하’의 저자로, 남북통일에 관한 이론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일본에서 발간한 잡지 ‘씨알의 힘’에는 ‘삼선각 운상 경륜문답’(‘찢겨진 산하’의 저본)이 실려 있다. 정경모는 그 글에서 민족지도자 김구, 여운형 그리고 장준하 세 사람이 천상에서 만나 민족의 미래를 논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마치 ‘정감록’에서 정감, 이심 및 이연이 금강산 비로봉에 앉아서 나라의 운명을 논의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정경모와 김지하가 ‘정감록’의 형식과 내용을 빌린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들은 민중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한 사상가 또는 운동가였고, 그 점이 ‘정감록’을 대한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같다. 그들로서는 ‘정감록’에 담긴 예언의 내용 못지않게 지난 수백년 동안 민중이 사용해온 비밀스러운 화법을 터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언서가 그렇듯 민중은 겉으로 절망을 말하면서도 희망의 씨앗을 남몰래 감춰두고 싶어했다. 김지하 등은 그 점을 간파하였다고 할까. 그런 그들에게 ‘정감록’은 일종의 교과서였을 것이다. 민중의 편에 선 지식인들은 실의에 빠진 민중을 고무하고 싶었고 따라서 민중의 혀로 말하는 법을 배우려 애썼다고, 그렇게 믿어진다. 조선 후기부터 오랜 왕조정치에 염증을 내고 있던 민중은 ‘정감록’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잊을 만하면 ‘정감록’을 매개로 한 역모 사건이 터졌다. 그 때마다 수십 또는 수백명의 연루자가 붙잡혀 가 매를 맞고 더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기도 했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양반들의 조선이 영영 망하고 말 것이다. 천지개벽하면 시쳇말로 개똥쇠에 불과한 이 몸도 운대가 풀릴 것이다.” 민중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움켜잡는 심정으로 예언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으리라. 집권층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불온서적이었다. 그래서 금서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정감록’은 합법적으로 출판되지 못한, 그러나 전대미문의 베스트셀러로 남았다. 일제시대까지도 그 인기는 여전해 ‘정감록’이 점지한 길한 땅을 찾아 수만명이 정든 고향을 버렸다. 일제시대 계룡산자락에는 불과 수년새 작은 읍 하나가 들어설 정도였다. 무수한 민중이 한 글자씩 ‘정감록’의 예언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난세에 살아갈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김지하가 ‘정감록’을 방불케 하는 담시를 연달아 지은 것도 민중의 마음에 희망의 싹을 틔울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정감록’은 예나 지금이나 기댈 곳이라곤 전혀 없는 민중의 희망을 퍼 담는 밥사발이다. ● 정감록이란 조선후기부터 유행한 대표적인 예언서이다. 정도전, 정여립 등이 저자란 설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영조 때 실록에 처음 등장한 뒤 조정의 금령으로 출판, 소지 및 독서가 일체 금지되었다. 지배층에게는 혹세무민의 황당한 책, 민중들 입장에선 위로와 희망의 터전이었다. 곧 조선왕조가 망한다, 살아남으려거든 복된 피난처로 가라, 정씨(鄭氏) 진인(眞人)이 와서 새 왕조를 연다는 것이 예언의 골자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수많은 역모사건과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도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 수십곳에 정감록촌이 들어섰고, 수천의 신(新)종교단체가 등장했다. 겉보기엔 정감(鄭鑑), 이심(李沁), 이연(李淵) 3인의 엉성한 대담집인데, 풍수지리설·해도진인설·미륵신앙 등이 저변을 흐른다. 그들의 대화엔 은어(隱語)가 많아 해석이 안 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제목은 달라도 내용이 엇비슷한 온갖 예언서를 ‘정감록’이라 부르기도 한다. ■ 백승종은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現 푸른역사硏 소장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독일 괴팅겐 막스·플랑크 역사硏 초빙교수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진단학회 총무이사 ●저서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돌베개,2003년)‘그 나라의 역사와 말’(궁리,2002년)‘아버지 난 누구에요’(궁리,2001년)등 다수.
  • [역사속의 을유년] 특별기고-닭의 五德/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문학박사

    또 한해가 열렸다. 그리고 을유년 한해의 살림살이를 도맡을 푸른 닭도 동숭동 낙산에 올라 우렁차게 울었다. 닭울음소리는 어둠을 쫓고 밝음을 여는 여명의 소리요, 은밀한 가운데 활약하는 온갖 삿된 것을 내치는 소리이다. 닭을 두고 희망을 노래하고, 시원(始原)을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닭이 울어대는 울음소리 때문이다. 닭은 건국신화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천지개벽을 풀어내는 무가에도 나타난다. 혁거세가 태어날 때 계룡이 나타났고, 김알지가 알로 출현할 때 흰닭이 계림에서 울었다. 이성계는 ‘꼬끼오’ 우는 닭꿈을 꾸고, 높고 귀한 자리(高貴位)인 조선 국왕이 되었다. 제주도의 천지개벽을 이야기하고 있는 ‘천지왕본풀이’에서는 이 세상이 처음 개벽할 때 천황닭(天皇鷄)이 목을 들고, 지황닭(地皇鷄)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人皇鷄)이 꼬리를 치며 크게 울자 비로소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닭이 울자 세상이 열리고, 영웅이 태어났을까? 아마도 닭이 울 때마다 어둠이 걷히고 밝은 아침이 왔던 일상의 자연현상을 보았던 고대인의 생각이 쌓여 상징화한 때문이리라. 닭의 울음을 통하여 새 나라를 건국한 영웅의 탄생을 상징화했고, 밝음으로 상징되는 이 세상의 시원을 읊은 것이다. 그것은 ‘없었던 것’에서 ‘있는 것’으로의 시작이다. 이처럼 닭울음이란 어둠을 젖히고 새벽을 알리는 희망의 하늘소리이다. 종교학적인 말로 혼란, 어둠(chaos)에서 질서, 밝음(cosmos)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소리인 것이다. 이런 닭에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다섯 가지 덕이 있다. 머리에 우뚝 솟은 볏을 달고 있으니 이는 문(文)을 상징하는 것이요,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으니 이는 무(武)를 뜻하는 것이다. 적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달려가 용감히 싸우니 이는 용(勇)이며, 먹을 것을 놓고 홀로 쪼지 아니하고 서로 불러들이는 것은 인(仁)이다. 어디 이뿐인가. 여명과 함께 어김없이 때를 일러주니 이것은 신(信)이 아니고 무엇이랴. 얼어붙은 내수시장, 항산(恒産)을 잃어버린 살림살이, 너나의 상생보다 상극을 일삼는 정치판, 이들이 지난해를 우울케 했던 우리 사회의 어둠들이다. 닭이 지닌 오덕을 본받고 닭울음소리에 힘입어 떨쳐내야 할 삿된 것들이다. 닭의 해에 닭의 오덕(五德)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닭띠해의 계명성으로 2005년이 희망차야 하는 것은 우리의 당위다.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문학박사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눈을 떴다. 문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암실에 있으면 의식도 시간도 모두 멎었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주로 암실에서 지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닥에 누워, 불필요한 감각이 퇴화된 심해의 생물처럼 눈과 귀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촉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기는 욕조 속의 더운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경쾌한 리듬의 허밍이었다. 멜로디가 귀에 익었다. 가게 안으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몸 마디마디를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눌려있었던 몸 왼쪽이 저려왔다. 암실 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손그늘을 만들고 부신 눈을 떴다. 딱딱한 알루미늄 가방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 속에 앉아있는 여자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빛 무더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스러지면서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는 얼굴빛이 유달리 희었다. 여자가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팔은 윤곽이 희미했다.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반쯤은 투명해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것인지 자신을 일으켜 달라는 것인지 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손아귀 깊숙이 손을 넣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칫하면 못 찾고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상가가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그쪽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로는 죽은 골목이 돼버렸다. 사진관은 옛 번화가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원래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을 허물고 상업용 건물을 급조해 형성된 상가였다. 지금은 가게를 연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곳은 구식 양옥의 1층을 개조해 가게로 쓰던 것이어서 밖에서 보면 가정집처럼 보였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어요. 한 달 전에 이미 매매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저에게 세 놓을 생각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대를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중고로 구입한 17분 컬러 현상기가 한 구석에 놓여있을 뿐,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진관을 하려고 산 건물이지만 한 달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암실에서 보냈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얼룩져 더러워진 벽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나뭇결을 들여다보았다. 곳곳의 정경들을 기억 속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세밀하게 보았다. 여긴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오래전에 아버지가 여기서 사진관을 했어요. 위층에 살림을 차리고요. 여자의 나이를 가늠해봤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보였지만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쯤일 것이다. 여기서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처음엔 그냥 둘러보고만 가려고 했어요. 막상 와보니 여기 있고 싶어지는군요. 세를 놓는 건 싫다고 하셨죠? 대신 일을 하겠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게를 열면 가게일도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말끄러미 보았다. 여자의 눈빛 속에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집안일과 병간을 도맡았던 아주머니와 6개월여를 함께 지내본 적은 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면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딘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와 묏자리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동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도로의 모퉁이에 나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가 느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던 자리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골목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가로수에 가려 골목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 길이 번화가였지. 세가 워낙에 비싸서 느이 아버지가 저 골목 끝에 있는 집을 사서 아래층을 가게로 개조했다.2층에다 신접살림을 차렸고, 너도 거기서 낳았어.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저기서 오래 살았을 게야. 그때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어름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생전의 아버지처럼 사진관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두운 골목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의 유순한 흐름을 따라 유유히 나의 생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49재를 치르고 어머니의 무덤에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성한 것은 지붕까지 뻗어있는 담쟁이덩굴뿐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곧장 계약서를 썼다. 다니던 잡지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사진기자로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구 곳곳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 중심의 다큐멘터리 잡지였다. 사직서는 그날로 수리되었다. 잡지는 상업성이 강한 잡지들을 출간하는 모(母)기업의 품격을 위해 창간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사진이 실리는 잡지를 다수의 대중은 외면했다. 독자가 많지 않으니 당연 광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모기업은 서서히 경영에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권고사직을 당할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통장으로 입금된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어머니의 결혼 예물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세 장의 보험증서가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는 보험증서를 쥐고 오열했다. 오십 몇 년의 삶의 흔적이라기에는 세 장의 종이는 너무도 가볍고 쓸쓸한 것이었다. 2층의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 암실에서 지내면 되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려운 조건은 아니로군요. 여자는 알루미늄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2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히는 휴대용 침대를 암실에 갖다놓고, 내 물건들은 거실에 놓았다. 여자가 식사준비를 했다. 여자는 냉장고 뒤쪽 구석에 쑤셔 넣어두었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양념통이나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주위를 서성대던 나는 머쓱해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자가 차린 상은 정갈했다. 냉장고에는 맥주와 인스턴트식품만 가득했었는데, 여자가 차린 밥상에는 찌개에 윤기가 흐르는 밑반찬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여자의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던 것과 맛이 흡사했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싱긋 웃었다. 환한 빛이 얼굴 가득 퍼졌다. 이곳에 머무는 대가로는 좀 과분하군요.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여자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암실에서 보냈다. 여자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했다. 거실로 내어 놓은 옷장 속에는 바싹 마른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여자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거칠게 그린 가게 구조도와 비용에 관한 세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관을 열었으면 해요. 여자가 건넨 종이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종이 몇 장으로는 가게의 모습이 요연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가게에 있는 17분 현상기는 되팔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사진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증명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갖추고, 현상·인화 서비스를 하면 되겠다 싶어 17분 컬러 현상기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바투 다가와 앉아 손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계획을 설명했다. 암실은 공간이 꽤 넓으니까 두 개로 나누었으면 해요. 조명기기와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요. 표준화된 QSS방식으로는 사진을 기록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만 충족시킬 수 있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서 현상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암실을 개방해서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 제가 꿈꾸고 있던 사진관이에요. 암실에서 나와 보니 벽에 호두나무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던 자동 현상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대고 엎드린 채 기름걸레로 바닥의 나무를 닦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켜켜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암실 공사하러 인부들이 올 거예요. 가벽을 세우는 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어디 잠깐 다녀오는 건 어때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내려온 후로는 첫 외출이었다.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SLR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인데, 검은 몸체의 카메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가 이물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풍경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들판에 앉아 서서히 땅에 내리고 있는 어둠을 응시했다. 구릉처럼 낮은 산의 언저리에는 스러진 햇빛이 모여 검붉은 노을로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의 윤곽이 어둠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 않았다. 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불현듯 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가게에 걸려 있는 간판에 불이 환했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암실카페 - 빛이 스며든 자리’라고 씌어 있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출입문을 열자 직사각의 탁자 세 개가 보였다. 한쪽 면을 벽에 붙인 탁자에는 어림잡아 2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실과 스튜디오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주방이 들어섰다. 주방은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바bar 형태였다.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닫이 유리문이 달린 업소용 냉장고 안에는 캔음료와 몇 종류의 맥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암실 옆의 공간에는 몇 개의 조명기구가 놓여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스튜디오를 제외한 가게의 정경은 카페에 가까웠다. 늦은 시간에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 사진관보다는 호프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어요. 어두운 방에 스며든 빛의 흔적, 그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여자는 벽의 진열장을 닦고 있었다. 이곳에 카메라를 진열해 놓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사진관에 카메라 진열대가 있었지요. 집집이 가정용 카메라를 구비해놓기 이전에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대여했으니까요. 가방 속에 묵혀두는 것보단 가게로 내오면 오래된 사진관 이미지도 풍기고, 손님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도 보여주고 좋을 것 같은데요. 진열대는 애초부터 카메라를 놓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천장에 진열대를 비추는 작은 조명이 있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형식의 진열대에는 유리문이 달려 있었는데, 먼지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가 되어 있었다. 2층에서 카메라들을 가져왔다. 케이스에 넣어 상자에 보관해왔지만,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오토포커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해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썼다. 내게는 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게 마련이었다. 클래식 카메라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카메라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게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이나 카메라처럼 정물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단 한 대의 카메라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카메라를 꺼내 닦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첩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닦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는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사막에 묻힌 수천 년 전의 미라처럼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머, 이건 콘탁스II네요.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는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이걸 썼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주로 갖고 있는 카메라는 니콘FM2였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간혹 클래식 기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콘탁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올 때 구입한 것이라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카메라의 각별한 내력을 말했으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아있던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콘탁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카메라 앞면에는 키릴문자로 киев라는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카메라는 1949년에 생산된 키예프 카메라예요. 생산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방이지만 부품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왔지요.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소비에트는 전쟁배상금으로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인 자이스 이콘(Zeiss Ikon)을 요구했어요. 공장의 모든 부품과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우크라이나로 이송됐지요. 파견된 드레스덴의 노동자들이 자이스 이콘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었으니 이 카메라는 콘탁스II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인 셈이지요. 여자는 수건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닦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여자의 손놀림은 병든 육친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애틋해 보였다. 이 카메라는 제게 존재증명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거든요.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었지요. 월남에서 번 돈으로 이 카메라를 샀어요. 지금이야 회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돈이면 읍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지요. 아버지가 월남에서 부쳐온 돈을 큰아버지가 들고나갔었다니까요. 장사를 해보겠다고요.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읍내의 모든 술집을 뒤졌대요. 동생이 목숨 걸고 번 돈인데 술맛이 나더냐고 꾸짖어 모셔왔대요. 정혼한 사이긴 했지만 결혼 전이고 손위 시숙인데, 어머니는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요. 큰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술과 여자로 평생을 보냈어요.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느 집안에나 그런 무능하고 호방한 큰아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더라면 제게 유품 같은 건 남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니까요. 이 카메라 외에는 제 존재를 증명해줄 무엇도 남지 않았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한 삶의 내력을 갖고 있는 이 여자가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혈육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이 사진관으로 온 것도 여자가 카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귀성 어류처럼 내가 태어난 이 사진관으로 흘러들었던 것인지도. 사진관에는 손님이 없었다. 몇 차례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맥주를 찾았다. 여자는 암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이라고 가게에 대해 설명한 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첫 손님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여자애는 알고 있다며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여자애는 탁자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여자애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주었다. 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자애가 중얼거리며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여자애는 기름종이로 이마와 콧등의 유분을 닦고, 콤팩트 퍼프로 꼭꼭 눌렀다. “왜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이건 증명사진이니까요. 처음 발급받는 주민등록증이거든요. 원판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숫자와 지명과 이름과 125분의 1초 동안의 모습과 소속된 나라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증명이라는 말이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졌다. 증명이 목적인 플라스틱 카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 “저는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디지털 사진은 원판이 없잖아요. 디지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삭제하는 것도 복사도 고치는 것도 쉽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떠도는 이미지들처럼 느껴져요. 상이 음각으로 새겨진 필름의 원판은 이를테면 이미지가 깃드는 집 같은 거죠.” 여자애의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었다. 작고 까맣고 윤기가 도는 점이었다. 나는 보정을 원한다면 점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고 어른들이 빼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는 이 점이 좋아요. 점도 제 몸의 일부니까요. 사람들은 이 점 때문에 저를 쉽게 기억해요. 아마 아저씨도 그럴걸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와요. 여기서 직접 현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사진을 담아두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이름을 썼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였다. 여자애는 이현아라는 이름 옆에 한쪽이 지나치게 부푼 하트 문양을 그려 넣고, 내게 찡긋 윙크를 했다. 여자애가 지갑을 꺼냈다. 첫 손님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 암실도 이용할 수 있나요?” “암실에서 직접 현상할 수도 있고, 현상을 맡길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도 사용할 수 있고요.” “좋은데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곧 손님이 늘어날 거예요.” 암실에 누워 있다가 몹시 갈증이 나 밖으로 나갔다. 진열대의 조명등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암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아요.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 암실에서는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농밀한 어둠뿐이에요. 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무서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거기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곳에 있나요? 거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두려움, 고독, 침묵, 약간의 위안, 그리고 나. 암실에 누워 있으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예요.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바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요. 암실에 누워있는 나와 나를 응시하는 나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존재하는 걸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죠.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보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 반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각각 우주와 반우주를 형성했으며, 이 둘은 서로 맹렬한 속도로 멀어져갔다고 추측했다. 반물질은 물질을 만나는 순간 백만 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상쇄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우리들은 반물질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맥주잔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여자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여자에게 닿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사진관에 온 두 번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잡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현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그가 이현아의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현아의 증명사진이 든 봉투를 건넸다. “현아 오빤 거 어떻게 아셨어요? 신기하네. 남매지만 닮은 데가 별로 없거든요.” 굳이 닮았다고 한다면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아가 다녀가고 난 후 그 다음 손님이 현재였기 때문이었다. 곧 손님이 늘어날 거라던 현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형.” 그는 가방에서 세 통의 필름을 꺼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현상·인화 작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의 필름을 그에게 다시 건넸다. 외형발색 필름이었다. 외형발색 필름은 유제층 안에 발색제가 없어서 필름제조회사에서만 현상할 수 있었다. 암실 수납장 안에는 약품부터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디지털시계, 라텍스 장갑까지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현재가 알고 있는 것은 암실작업의 일반적 과정뿐이었다. “암실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말 놔요, 형.” 현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암실 작업도 사진 찍는 것과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는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말을 놓고 보니 현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웃음기 많은 얼굴 때문인지 현재에게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었다. 세이프라이트를 켜자 현재가 암실 문을 닫았다. 작업을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열심히 이론공부를 해도 직접 찍어보기 전에는 실력이 늘지 않잖아. 암실작업도 그래. 온도와 시간을 지킨다고 발색현상이 잘 되는 건 아냐. 날씨나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가 다르니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암기가 아니라 감이야. 감을 잡으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 현재는 인화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인물사진이었다. 수준급인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사진의 노출이 대부분 오버돼 있었다. 현재는 다음 동호회 모임은 이곳에서 갖기로 했다며, 이제부터는 손님이 꽤 늘어날 거라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재와 비슷했다. 제일 먼저 현재가 현아와 함께 왔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각자의 사진을 돌려보았고, 더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는 치들도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색인 듯 보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거나 현재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격 없이 대했다. 그들은 원래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미라지Mirage’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동호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시야를 좁혔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 잔 더 해야겠다며 여관방을 잡아 나갔다. 현재가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돌려보냈다. 가게 문을 닫고 어질러진 탁자를 그대로 놓아둔 채 암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데다가 몸이 몹시 피곤했다. 구석에 접어놓은 침대를 펼치자마자 나는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든 달빛이 바닥을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자는 내 뺨을 감싸 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여자의 혀가 들어왔다. 여자는 혀로 내 잇바디를 훑었다. 여자의 혀는 복족류의 속살처럼 차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가슴이 더워졌다. 나는 팔로 여자의 등허리를 감고 입을 열어 여자의 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뜨거워진 가슴을 달랬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 나가 문을 닫았다. 늦게야 일어나 암실에서 나왔다. 여자의 둥근 등이 보였다. 여자는 암실을 등지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속의 색소가 다 바랜 것처럼 여자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당신의 사진에는 색이 없군요. 하나같이 흑백사진뿐이에요. 게다가 당신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요. 노출이 부족해요. 노출이 모두 -2스톱이군요. 글쎄요. 저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슬라이드 필름을 쓸 때에는 노출이 오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배웠거든요. 카메라는 어두운 방이죠. 무언가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해요. 조리개를 조금만 더 열고 셔터 속도를 늦춰요. 햇빛 때문일까.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스크랩하는 여자의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에 떠 있는 한천질의 자포생물처럼 손가락 아래로 사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와 입술의 윤곽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여자를 봤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탁자를 보자 여자는 여전히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자주 사라졌다. 몇 시간 또는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돌아온 여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가게를 돌봤다. 손님이 점차 늘어서 가게일이 바빴다.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느새 연기처럼 희미해져 실루엣으로만 넘늘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던 날, 현재가 현아와 함께 찾아와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사진 관련 잡지에서 루미노그램(Luminogram,光跡사진)에 대한 글을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끝에 불이 들어오는 펜 모양의 라이트를 들고 온 현아는 이민 간 친구에게 라이트 페인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거라며 몹시 들떠 있었다. 라이트 페인팅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암실에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릴리즈를 연결한 후 세이프라이트를 껐다. 셔터 속도를 Blub에 놓았다. 현아는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으며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셔터를 Blub에 맞추고 1 스톱 부족의 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조사하면 글씨를 쓰고 있는 연출자의 모습이 사진에 나온다. 현아의 작업이 끝난 후 여자가 펜라이트를 들었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천천히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켜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있던 라이트펜이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은 여전히 가게로 찾아와 암실을 사용하고 차를 마시고 더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혔다. 시간은 여전히 흘렀고, 어두울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의식은 여자에 대한 기억을 쫓고 있었다. 문밖에서 경쾌한 멜로디의 허밍이 들려왔다. 처음 내게로 왔던 날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외로움이 불러낸 환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에서 달려온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려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현상한 라이트 페인팅 사진을 꺼내보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에는 서정주의 시구가 씌어 있었다. 물 위에 뜬 유성물감처럼 글씨의 획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여자가 서 있었을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공간은 검은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시의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바람처럼 사라진 여자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여자가 택한 이별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입 맞춘다면, 거리낌 없이 이를 열어 여자가 내민 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자의 둥근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몸이 완전히 스러지고 난 후 먼먼 내생의 어느 날이어도 좋았다. 진열대에는 여자가 남기고 간 키예프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옆의 콘탁스를 꺼냈다. 노출을 오버스톱으로 다시 맞추고 뷰파인더에 키예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라고 말했던 키예프 카메라는 내게는 여자에 대한 기억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진은 어두운 방에 잠시 스며들었던 빛, 그 빛의 흔적을 기록한 한 장의 루미노그램으로 남을 것이다.(끝) ■ 당선소감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사진관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상가 2층 건물이었지요. 그 후부터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사진관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 오래된 사진기가 들어있는 곳. 증명사진을 찍으러온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웃으세요, 한 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곳. 소읍의 탄생과 죽음과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는 곳. 돈을 벌어도 좋고 벌지 못해도 좋은, 그런 사진관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사진관을 넣어두고 저는 수시로 꺼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관 안에는 허약한 식물이 자랐습니다. 제 소설은 결여의 토양에서 결핍의 양분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닌 게 없어도 너무 지독하게는 살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다독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약한 소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구효서 선생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뻐요. 한결같이 제게 여여한 미소를 보여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가족과 문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응오씨, 당신은 제 삶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승미 ●약력 1974년 강원도 양구 출생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은 각기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문학도들에게 패기와 정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이름으로건 예술의 이름으로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을 적당히 꾸려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소년’‘달을 보고 짖는 개’‘펑크로커 실종기’‘빛이 스며든 자리’ 등 4편이었다.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미래없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지만,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을 움켜 쥘때 문학적 형상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달을 보고 짖는 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주제와 구성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잘 만든 이야기, 그러나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낡은 이야기에 새로운 진실이 담기기는 어렵다. ‘펑크로커 실종기’는 누아르 서사의 형식 속에 펑크족들의 생활양태를 담은 소설로 문장이 경쾌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겉과 속을 심도있게 성찰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조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펑크족은 펑크족이다.’라는 말 이상의 매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풍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에서 온다. ‘빛이 스며든 자리’는 구렁각시의 민담과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대의 사진예술론으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실과 환상을 정교하게 봉합해서 꾸며낸 예술가 소설이다.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는 주제의 설정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현길언 황현산
  • [각계인사 신년사] 盧대통령 신년사 “경제도약의 해 만들자”

    [각계인사 신년사] 盧대통령 신년사 “경제도약의 해 만들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2005년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올해에는 여러분의 가정마다 기쁨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첨단산업과 전통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그리고 상·하위 계층간의 심화된 격차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 문제를 푸는 데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성장과 분배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공존과 번영을 위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과 첨단산업은 더욱 촉진시켜 성장을 앞서서 이끌도록 하고, 기술과 경쟁에서 뒤처진 중소기업과 서민계층에게는 폭넓은 지원을 해서 더불어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바로 ‘동반성장’입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정규직은 비정규직에게, 수도권은 지방에, 중산층 이상은 서민계층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손을 잡아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상생과 연대의 정신, 그리고 양보와 타협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올해를 그 귀중한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운 때일수록 빛을 발하는 위대한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습니다. 저와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과 희망을 가지고 다시 한번 뜁시다.2005년 새해를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해로 만들어 나갑시다.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김원기 국회의장 사회 곳곳의 갈등과 대립을 치유하고 국민통합과 대단결을 이룩해 나가는 일이 시급하고 긴요한 과제입니다. 을유년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정치, 신망받는 국회가 되는 원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온 국민이 하나로 뭉치는 ‘화합의 한해’, 남북평화 기조가 더욱 정착되는 ‘평화의 한해’, 경제가 불같이 살아나는 ‘희망의 한해’가 되기를 국민과 함께 소망합니다. ■ 최종영 대법원장 금년은 우리나라와 국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장기간 침체기에 있는 우리 경제에 상승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하고,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도 의연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여야 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적법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되어야 합니다. 사법부는 올 한해 국민 여러분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지난해에도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와 위기가 상존했습니다. 그러나 화해와 타협을 통한 정치적 통합을 기반으로 혼연일체가 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훌륭히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립과 갈등이 당장은 고통과 정체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성숙한 사회로 발돋움하는 과정에 따르게 마련인 진통이므로 지혜롭게 극복, 오히려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2005년 을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국민 여러분 모두에게 행복과 희망이 넘치는 축복의 한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희망과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는 심기일전해서 흔들림없이 국민과 함께 정진하겠습니다. 을유년 한해가 국민들에게 웃음꽃이 피어나는 희망과 활력의 한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저와 한나라당은 국민의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하고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도록 힘쓰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존중해야 할 소중한 가치를 지킴으로써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로 따뜻하게 배려하고 격려하면서 다같이 힘과 지혜를 모아 선진 한국의 꿈이 하나 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사설] 제기능 못하는 사회 안전망

    대구의 어린이 아사(餓死)사건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강력한 저소득층 대책을 주문했다. 숨진 어린이의 어머니는 장애인이고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는 영세민이어서 더 가슴 아프다. 게다가 이 어린이가 숨지기 며칠 전, 아버지가 구청에 가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신청을 했으나 서류미비란 이유로 외면당했다고 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적대로 우리의 최종 사회안전망이 멈췄던 것이다. 이 사건이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나, 일선공무원이 현장을 발로 뛰었다면 아까운 어린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한다. 왜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줘가며 공무원을 둬야 하는가. 물론 어린 생명을 잃은 1차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겠으나, 이번의 경우 가난과 장애에 지친 부모의 보호한계를 벗어났고, 이런 때 나라의 도움이 필요한 것 아닌가. 행정조직의 말초신경인 담당공무원들이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가동시키지 못한 책임이 크다. 이 기회에 사회안전망 전반을 점검해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할 것이다. 우리의 복지예산이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고, 담당 공무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예산·인력타령만 할 것인가. 현재의 자원만으로도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하고, 이를 운용하는 공무원들이 가족처럼 문제를 다룬다면 효용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법대로만 외치지 않고 재량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푸는 공무원들이 필요하다. 기초생활보장,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내년도 예산만도 10조 3600억원이다. 나라 살림살이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문제는 대상자를 정확하게 선정하고 올바르게 예산이 집행되느냐다.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운용기관들이 사명감을 갖지 않는다면 헛일이다. 대통령은 이 문제를 성장이냐 분배냐의 문제로까지 확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시스템의 정치성, 시스템 운용자의 따뜻한 열정일 것이다. 그 다음에 돈이나 경제정책의 선택을 논해도 늦지 않다.
  • [사설] ‘소득이 소망 1위’인 새해 국가경영

    새해를 열흘 앞두고 잿빛 전망을 담은 보고서와 설문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성장률 낮추기 경쟁을 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할 정도로 국내외 기관들이 발표하는 내년도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이나 정부의 목표치보다 훨씬 낮은 4%내외를 맴돌고 있다. 산업현장 사령탑인 CEO들은 성장률을 3% 수준으로 전망할 만큼 비관적이다. 우리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수출마저도 세계적인 경기 하강, 가파른 환율 상승, 원자재값 폭등 등으로 더이상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갤럽조사에서 새해 소망 1위가 ‘본인·가족 건강’에서 ‘가계소득 증가와 경제 안정’으로 1년만에 순위가 뒤바뀐 것도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우울한 전망치처럼 국민 개개인의 살림살이가 더욱 빠듯해졌다는 증거다. 정부는 틈만 나면 한국경제가 위기국면이 아니라고 강조했는데 왜 기업과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갈수록 싸늘해지는 것일까. 왜 국민들은 잘사는 반듯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정부가 쏟아낸 수많은 ‘로드맵’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일까. 때마침 여권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새해 국정기조를 경제 활성화와 국민통합, 평화번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개혁이란 결국 뿌리없는 나부낌에 불과하다는 평범한 진리에 생각이 미친 듯하다. 그렇다면 정부 인식지수와 체감지수간의 간극 해소, 실추된 신뢰감 회복에서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이고, 가장 효과적인 소득분배 방안”이라며 국정 최우선과제를 일자리 창출에 둘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이 약속은 정쟁에 파묻혀 전혀 힘을 받지 못했지만 소득이 1순위인 국민여망에 부응하려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실용주의 노선’이다.
  • 여, 3단계 전략 ‘만지작 만지작’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임시국회 등원을 끝내 거부할 경우 이라크 추가 파병안과 내년도 예산안, 국가보안법 등 주요 안건을 이달 안에 국회 본회의에서 3단계에 걸쳐 강행처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고위 관계자는 “이라크 파병안과 예산안 등은 시한이 있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 없다.”며 “한나라당과 최대한 타협을 시도하되, 안 되면 여론이 우호적인 안건부터 처리를 시도함으로써 등원을 압박하는 전략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16일 이라크 파병안 처리→23일 예산안 처리→30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4대 법안 처리 등 구체적 처리 날짜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다른 당직자는 “15일 법사위에서 국보법 강행처리를 시도할 예정이다.”고 귀띔해 강경 기류를 반영했다. 열린우리당측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3단계 시나리오에 따르면,16일 1단계로 가장 부담이 적은 이라크 파병안 처리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파병안의 경우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강행처리를 적극적으로 비난하진 못할 것이란 기대가 곁들여져 있다. 만약 그후에도 한나라당이 등원하지 않는다면 24일쯤 “나라살림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예산안을 강행처리한다는 전략이다. 그래도 안 들어오면, 여세를 몰아 30일이나 31일쯤 국보법 등 민감한 법안 처리까지 밀어붙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물론 본회의 사회권을 쥔 김원기 국회의장의 협조가 관건인데, 명분을 충분히 축적한다면 김 의장도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책꽂이]

    |유아·아동| ●나무 꼭대기를 향한 여행(알렉산드로 온라두 지음, 임은숙 옮김, 주니어파랑새 펴냄) 나무 꼭대기를 힘겹게 기어오르는 작은 달팽이가 주인공. 인내와 여유의 가치를 일깨우는 그림책.5세까지.9500원. ●개구쟁이 피카소(김순희 지음, 다빈치기프트 펴냄)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대표작들에 동시 같은 해설을 붙여 명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어린이 미술책.5세이상.8500원. ●지구의 나이테(김동광 지음, 아이세움 펴냄) 그림으로 보여주는 지구 생태계의 역사. 인간과 환경과의 뗄 수 없는 관계를 간명하게 웅변한다.7000원. |초등·청소년| ●알렉산드로스 대왕(피터 크리스프 지음, 남경태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2300여년 전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한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성취를 화보로 보여주는 ‘위대한 발자취’ 시리즈. 관련 일러스트들이 사진만큼 세밀하다. 초등생용.1만 2000원. ●피노키오(카를로 콜로디 지음, 정미애 옮김, 문학수첩리틀북스 펴냄)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의 모험담을 그린 완역본. 시원한 삽화가 곁들여져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초등저학년용.1만 2000원.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이승희 엮음, 보리 펴냄) 밀양 상동초등학생 20명이 함께 쓴 동시집. 지방도시의 생활과 넉넉한 자연의 정서가 아이들의 천진한 시선에 잡혔다. 초등생용.7000원. |실용| ●희망요리수첩(김혜경 지음, 디자인하우스 펴냄) 살림하면서, 요리하면서 느낀 것들을 솔직담백하게 써내려간 부엌일기. 요리와 연관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수필로 풀어낸 뒤 관련 요리의 조리법을 함께 실었다.1만원. ●세상에서 가장 힘든 협상(스콧 브라운 지음, 노혜숙 옮김, 세종서적 펴냄) ‘아이를 꾸짖기 전에 부모의 감정부터 다스린다’‘아이의 감정조절을 도와준다’‘귀기울이고 이해한다’등 협상전문가가 쓴 7가지 자녀교육법.1만원. ●성공하는 사람들의 다이어리 활용법(니시무라 아키라 지음, 권일영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단순한 스케줄 관리를 넘어, 숨어있는 시간을 찾아주고 인맥과 정보관리까지 겸할 수 있는 다이어리 활용 노하우.7800원. ●부모가 항상 더 문제다(찰리 앤 봄비치 지음, 조형숙 옮김, 아침나라 펴냄) 부모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아이와 함께 삶을 즐길 수 있는 365가지 방법.1만원.
  • [사설] 예산증액 졸속결정 하지말라

    국회 예결위가 새해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은 지난 2일로 이미 넘겼다. 여야의 약속대로라면 정기국회가 폐회하는 9일에는 예산안이 처리되어야 한다. 새해예산안에 대한 계수조정은 예년의 경우로 볼 때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걸린다. 사흘밖에 남지 않은 시간동안 충분한 조정이 이루어질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새해예산안 규모는 일반회계 기준으로만 131조 5000억원이나 되고, 특별회계까지 포함하면 208조원으로 사상최초로 200조원을 넘긴 규모다. 제때에 처리되지 못한 것도 안타깝지만, 짧은 시간에 졸속처리되는 것이 더 걱정이다. 이미 상임위별 예산심사에서 여야는 4조원을 증액했다. 정부·여당은 내년의 경기침체를 감안해 1조원가량을 더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적자예산을 줄이기 위해 최대 7조 500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여당의 추가증액 방침이나 야당의 삭감 주장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율배반에 가깝다. 이런 부분은 상임위에서 신중하게 다루어졌어야 할 문제다. 이것저것 다 늘려놓고 마지막에 정치적으로 뭉뚱그려 처리하겠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정부·여당이 뒤늦게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것은 수요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여야가 상임위에서는 일제히 증액했다가, 계수조정에 앞서 주장이 엇갈리는 것도 나라살림을 허술하게 다룬다는 인상만 줄 뿐이다. 과거 예산심의 과정을 보면 여당은 증액, 야당은 삭감으로 맞서다가 막판에 선심성 예산만 주고받는 선에서 졸속처리한 경우가 많았다. 새해예산안은 경제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가운데 집행될 예산이다. 얼마를 늘리고 줄이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늘리고 줄이느냐는 더욱 중요하다. 경제회복이나 민생을 위한 예산은 늘리고, 정부의 경상경비 등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예산, 나눠먹기식 선심예산 등은 과감하게 삭감하는 선에서 균형을 이루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 [사설] 예결위도 못 여는 한심한 국회

    국회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회의 의무는 무엇보다 입법과 예산심의 기능이다. 그런데 정기국회가 열린 지 90일이 다 되도록 법안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새해예산안은 법정시한이 불과 나흘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예결위조차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예결위 가동이 늦어진 이유 중 하나가 결산소위위원장 자리때문이라는 데 이르면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예결위원장이 여당몫이라면 결산소위나, 계수조정소위 위원장 가운데 한 자리는 야당에 떼어주면 그만이다. 소위위원장 자리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 나라살림이 좌우된다면 큰 일도 보통 큰 일이 아니다. 새해예산안의 법정처리 시한은 12월2일이다. 정기국회는 12월9일 끝난다. 새해예산 규모는 일반회계로는 131조 5000억원이지만, 특별회계를 포함하면 208조원에 이른다.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하는 나라살림 규모다. 열린우리당은 경기활성화를 위한 증액을 주장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재정지출이 과다하다면서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여야가 남은 법정기간동안을 꼬박 밤을 세운다고 해도 엄청난 규모인 새해예산안의 제 때 처리는 불가능하다. 또 제 때 처리된다고 해도 문제다. 결국 새해예산안 처리가 늦어지거나, 시간에 쫓겨 졸속처리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국가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여야와 국회에 있다. 오늘 여야가 민생경제원탁회의와 예결위 정상화 방안에 대해 협의한다고 한다. 입법도 팽개치고, 예산도 팽개친 국회가 파장이 가까워서야 정상화 방안을 논의한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무조건 예결위를 정상화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이유나 핑계가 있을 수 없다. 새해예산안의 지연심의와 졸속처리라는 구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 [열린세상] 화롯불 같은 민생정치를/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정책학 교수

    첫눈도 내렸다. 그런데 포근한 그림같은 눈송이는 아니었다. 내리던 빗속에 섞여 내리다 마지못해 몇 송이 보여주고는 찬 바람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그 전 날 있었던 청와대 여야합동 영수회동이 스산한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놓지 못한 아쉬움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핵문제 해결에 관하여 떠도는 의혹을 일부 잠재운 작은 성과는 있었다. 그러나 정치갈등의 본체이며 여야 모두가 선언한 ‘상생의 정치’를 소거시키고 있는 4대 쟁점법안에 대한 대립적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보스 중심의 한국정치 관성상 영수회담에서 트지 못한 영역을 실무원탁회의에서 해결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한동안 한국의 정치는 계절을 따라 갈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정치권은 경제상황을 체감하는 국민들의 우려와 근심이 얼마나 큰지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추석 때 귀향했던 의원들이 분노한 민심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왔다고 걱정하는 듯하더니 지난 정기국회를 치르면서 망각한 것 같다. 민생고에 대한 정치적 치매현상은 아예 여야의 대립구도 속에서 편안하게 합리화되는 것 같다. 만날 상황이 아니라서 논의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구실이다. 영수회담에서 민생문제는 쟁점도 아니었지 않나. 여야의 대립 이외에 각 정당이 직면해 있는 내부요인과 외부의 새로운 움직임도 차분한 민생정치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될 것 같다. 여당도 차기주자를 둘러싸고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제1야당도 소장파와 중진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자민련은 행정수도 건으로 인하여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새로운 중부권정치결사체에 대한 담론이 무성하다. 게다가 최근 뉴 라이트(new right)를 지향하는 인사들이 뉴스의 초점을 받고 있다. 모두다 4대 법안이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투자환경을 조성하여 우선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국민들의 연금이나 노인요양보험, 그리고 차상위 계층을 위한 근로연계프로그램 등 복지관련 정책이 더 중요한지를 머리 맞대고 논의하는 틀을 형성하는 데에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요인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남의 시작이다. 그리고 만남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유 있는 자세다. 어느 원로 정치가가 한국정치가 메말라가는 것은 ‘요정의 낭만’이 가라오케의 삭막함에 밀려서 여야간 대화의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농담같이 던진 말이 생각난다. 이제는 여야의 만남만이 나라를 살릴 것 같다. 여유를 갖고 자주 만나야 한다. 본원적 권력을 획득한 청와대와 여당은 자신 있게 나라살림을 이끌어 가야 한다.‘탄핵까지 한 세력이 앞으로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라는 상상에 머무는 동안 정부여당은 야당의 또 다른 공세에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고정지지층을 이해시키고 반대세력을 끌어안는 것이 종국적인 승리를 가져다 주는 전략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영국의 노동당이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일부노동자의 이탈을 감수한 중산층 끌어안기 전략이었다. 그리고 제1야당도 마찬가지다. 구체적 대안이 결여된 경성보수정당에서 ‘연성국민정당’으로 새로 태어날 때 국민들이 화답할 것이다. 만성실업을 걱정하고 있는 20∼30대의 지지를 받아내는 것은 연성화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이러고 보면 역시 중요이슈는 경제와 복지로 수렴되는 것 같다. 다음에는 기존의 정치적 울타리를 초극하여 경제와 복지를 조용히 융합시키는 정치적 연금술사를 국민들은 선택할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의 상황이 ‘해뜨기 직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기를 바란다. 여야는 자주 만나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정책학 교수
  • [서울광장] ‘표준형 국민’으로 살아가기/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표준형 국민’으로 살아가기/육철수 논설위원

    헌에는 국민의 4대 의무가 명시돼 있다. 국방·교육·납세·근로의 의무다. 대한민국 땅에서 국민 대접 받으며 살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도리는 해야 한다는 헌법적 요구일 것이다. 기자의 경우, 현역으로 군대갔다 와서 예비군 훈련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직장민방위대에서 활동 중이니, 이쯤이면 국방의 의무는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의무교육 이상 받았고 소득세·양도소득세 꼬박꼬박 다 냈으니 교육·납세의 의무도 그만하면 됐고,20년 가까이 직장생활하며 나름대로 성실히 일했으니 근로의 의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헌법이 요구하는 ‘표준형 국민’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결격사유가 거의 없다고 자부했는데, 요즘 사회 분위기로는 이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이른바 개인의 ‘색깔’도 요구받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색이 다르면 대화가 껄끄럽고 다양한 인간관계의 형성에 벽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색깔’은 양극사회에서 요구받는 또 다른 중요한, 암묵적 잣대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권이나 정책에 대한 호불호, 투표성향, 정치·경제·사회적 시각, 특히 미국과 북한에 대한 관점이 개인의 색깔을 가늠하는 주요 요소들이 아닌가 싶다. 말이 나왔으니 기자의 색깔도 한번 가려보자.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하는 나라이니 지지성향을 밝히기는 곤란하고,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때는 사태를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반대로 기울었으니 결국 친정권 쪽에 선 것이며, 수도이전에는 반대했으니 반정권 쪽에 선 셈이다. 호주제·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나, 요즘 논란거리인 과거사 규명,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언론법 개정 등 소위 ‘4대 개혁법안’에 대해서는 여권과 생각을 약간 달리한다. 기업에는 일부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으나 대체로 우호적이다. 정부·여당은 물론 야당에도 기자와 같은 성향의 정치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 색깔이 분명치 않을지 모르나, 기자는 ‘중도보수’로 자평한다. 언젠가 노 대통령이 모대학 강연에서 “별 놈의 보수 다 갖다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했을 땐 그래서 세게 열받았다. 돌이켜보건대, 이 땅에서 표준형 국민으로 살아가기란 쉬운 것만도 아니었다. 군인 출신 대통령 때는 군대식 무거움에 짓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바빴고, 민주투사 출신들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이념논쟁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모셨더니 사사건건 법리 논쟁거리여서 골치아픈 헌법책 들여다보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최근에는 골칫거리가 하나 더 생겼는데, 서울 강남(송파구)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살림에 착실하게 저축해서 정착지가 된 것인데, 여권 일각에서 걸핏하면 강남주민을 들먹이니 마음이 썩 편치 않다. 여당의 모 국회의원이 그제 국회 상임위에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대부분 강남에 살아 수도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투로 말했다는 부분에선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강남에 사는데 뭐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공개적으로, 시시때때로 적개심을 표출한다면 그것이 과연 선량으로서의 도리인지 되묻고 싶다. 암울하고 어려웠던 시기에 목숨걸고 민주화 투쟁을 한 많은 인사들이 참여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그들의 소신을 펼치고 있다. 모든 것이 민주화된 마당에 마땅히 사라졌어야 할 집단시위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한나라 국가건전재정법안

    한나라 국가건전재정법안

    지난달 기획예산처가 ‘국가재정법안’을 제출한 데 이어 한나라당도 18일 ‘국가건전재정법안’을 발표했다. 정부 여당이나 야당 모두 지난 1961년 제정한 ‘회계예산법’을 재정 환경의 변화에 따라 손볼 때가 됐다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안은 정부안보다 국회의 재정통제권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어 본격 심의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안은 ‘재정민주주의’ 원칙 아래 예산 통칙에 법률적 지위를 부여하고, 예산심의와 결산심사 과정에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납세자 소송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성과주의 예산’을 강조한 것도 특징이다. 현재 예산 편성이 사업명과 예산금액만을 밝히고 예산집행 후 쓰임새를 체크하지 않은 채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해 매년 품목별로 조금씩 늘여온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취지다. 그에 따라 예산안 편성부터 집행까지 시한을 명시하는 대상을 확대하는 등 철저한 감시에 비중을 뒀다. 먼저 4월 10일까지 정부의 예산편성 지침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예산안만 10월 초 제출해 2달동안 200조원의 ‘나라 살림계획서’를 수박 겉기식 심의 관행을 고치겠다는 뜻이다. 결산 결과를 차기 회계년도 예산심의에 반영하기 위해 결산서 제출도 9월 초에서 4월 30일로 앞당겼다. 또 통합 재정의 범위를 국제기준에 맞춰 지방정부와 산하기관, 공기업 등 준정부기관까지로 늘렸다. 현재 통합재정이 일반·특별회계, 기금과 비금융공기업에 한정돼 전체 재정규모를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재정에 대한 납세자의 감시·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납세자 소송제도’를 도입했다. 국가 재정과 관련한 위법 행위로 손해를 입은 납세자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추가경정예산의 요건도 강화했다. 편성 단계에서 남발을 막기 위해 전쟁·대규모 자연 재해, 경기 침체 등 중대 변화의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의해 국가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에 한해 추경 예산을 편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국회 통제 기능이 강화돼 예비비를 일반 예산의 1% 이내로 제한한 것이나 인건비를 예비비에서 충당할 경우 국회의 사전 심의를 거치게 한 것은 정부에서 난색을 표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안은 예산의 상시 감시를 전제로 했기에 예결산특위의 상임위화가 선결돼야 하므로 여야의 마찰도 예상된다. 기획예산처 진영곤 심의관은 “구체적 조문을 본 뒤 의견 접근이 가능한 조항은 수용하고 이견이 심한 조항은 대화와 설득을 통해 거리를 좁힐 예정”이라면서도 “재정의 경기 대응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세수 부족시 국채를 추가 발행해 보전하자는 정부안을 한나라당이 삭제한 것은 아쉽다.”고 설명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사설] 부동산 거래세 더 낮춰라

    정부와 여당이 종합부동산세의 도입과 함께 등록·취득세의 인하를 논의 중이나 여의치 않다.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인하로 부동산 세제를 선진국형으로 바꾼다는 큰 틀을 잡았지만 급격한 세수감소와 조세저항 우려에 발목을 잡힌 형국이다. 정부는 종부세 도입에 앞서 현재 3%(교육세 포함 3.6%)인 등록세를 내년 1월부터 1%포인트 낮추고 취득세(농특세 포함 2.2%)는 그대로 두겠다는 안을 내놨다. 전체 거래세율을 5.8%에서 4.6%로 내려 부동산의 공급과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거래세율을 내려도 현재 실거래가의 40∼50% 수준인 취득·등록세의 과표가 앞으로는 실거래가의 70∼90%인 기준시가로 바뀌어 실제 거래세 부담은 2배쯤 늘어난다. 정부는 거래세 인상폭을 완화하기 위해 자치단체의 감면조례를 법률로 명시해 별도의 감면분을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거래세율 인하로는 거래의 물꼬를 트기는커녕 당초의 정책목표와는 달리 ‘거래세 강화’라는 거꾸로 된 결과가 나올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거래세율을 더 내려야만 이런 정책적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거래세수는 현재 13조 5000억원에 이른다. 반면 보유세수는 2조 5000억원이며, 내년에 종합부동산세가 시행돼도 첫해에는 7000억원만이 더 늘어난다. 정부는 거래세율을 더 내릴 경우 세수 부족분 확대에 따른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를 댄다. 나라살림을 위해 세수의 안정적 확보는 중요하나, 선진국형 부동산 세제로 가려면 세수에만 매달리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세정(稅政)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우선이어야 한다.
  • 한나라 주류·비주류 ‘4대입법’ 또 파열음

    한나라당 주류와 비주류의 물밑 기(氣) 싸움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이해찬 국무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 이후 국회 등원 여부와 관련해 치열한 격론을 벌인 데 이어 열린우리당이 추진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에 대한 대응방향을 놓고 또다시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르면 17일부터 정책의총을 잇달아 열어 여당이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에 대한 당론 확정 작업에 착수한다. 그동안 4대 입법의 위헌 소지를 들어 입법철회를 주장해 왔으나 열린우리당이 이미 법안을 제출한 마당에 철회만을 주장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보다 구체적 반대 논리나 대안 모색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비주류 “대응 미숙땐 지도부 퇴진” 압박 비주류측은 지난주부터 잇따른 모임을 갖고 ‘4대 입법’ 관련 대응책을 모색하는 한편 4대 입법에 대한 당 지도부의 대응이 미숙할 경우 지도부 퇴진 등 불신임을 추진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며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비주류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의 홍준표 의원은 “당 지도부에 대한 의원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라며 “4대 입법 처리를 앞두고 지도부의 리더십을 거론하는 것이 적전분열로 비쳐질까봐 더이상 문제삼지는 않겠지만 적절한 시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성향 의원모임인 ‘자유포럼’을 이끌고 있는 이방호 의원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정을 내팽개친 상황에서 야당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데 지난번 국회 파행과정에서 보여준 당 지도부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기대 이하였다.”면서 “지도부가 4대 입법 처리과정에서도 우왕좌왕한다면 더이상 믿고 따를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자유포럼은 최근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보수진영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며 물밑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당내에선 “자유포럼의 지도부 비판은 딴살림을 차리기 위한 명분쌓기에 불과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주류 “지도부 흔들기는 해당행위” 반발 이에 대해 주류측에선 “국민 여론을 무시한 채 강경투쟁만 주문하고 있는데 결국 그렇게 해서 당이 얻는 것이 무엇이냐.”며 “비주류의 대책없는 지도부 흔들기는 선봉에 선 아군의 등에 총구를 들이대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비주류의 공세를 ‘해당 행위’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주류측은 지난 주말 잇따른 모임을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등 긴장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형오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당직자 10여명과 골프회동을 가지는 등 전에 없는 ‘스킨십’을 보여주고 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활력충전 36.5(MBC 오전 8시10분) 나이와 성별을 넘어 무서운 속도로 발병하는 골다공증과 전립선 질환은 물론 항암 효과에도 탁월하다는 마늘에 대해 알아본다. 약방의 감초처럼 만년 조연으로 식탁을 차지했던 마늘이 최근 효능을 인정받으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마늘 속에 들어 있는 비밀 알리신의 모든 것을 공개한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9시20분) 섬 전체를 단풍으로 물들인 가을의 남이섬을 찾아간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남이섬 숲길의 아름다움은 우리나라 관광객보다 외국인에게 더욱 알려져 있다. 옛날의 교실과 낡은 교과서를 보면서 1960년대의 향수를 자아내기도 하는 낭만적인 남이섬 여행을 소개한다. ●스페이스-공감(류복성과 라틴 재즈 올스타스)(EBS 오후 10시) 열일곱 나이에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해 평생을 재즈드러머 겸 타악기 주자로 살아온 류복성.2003년 재즈 인생 45주년을 기념하며 생애 첫 콘서트를 열기도 한 그는 지금도 후배 뮤지션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키워가고 있다. ●르포(시대공감)(iTV 오후 8시5분) 노동계는 정부의 법안이 96년 노동법 날치기에 버금가는 ‘노동법 개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비정규직 법안에 보호 내용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입법 정부안을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노동 현장 속에서 되짚어 보고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해 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6시50분) 맞벌이 부부 관계에서 남편이 육아에 대한 관심이 없어 이혼을 요구했을 경우 이혼사유가 되는지 살펴본다. 벨보이가 건망증 때문에 손님이 부탁한 모닝콜을 잊어버려서 손님이 중요한 계약을 놓친 경우에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본다. 염경환이 벨보이역을 맡아 연기를 선보인다. ●부모님 전상서(KBS2 오후 7시55분) 지환은 술 취한 아리를 데려다 주던 길에 아리네 집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성실은 집으로 돌아온 창수에게 옷가방을 싸놓고 집을 구할 동안 나가라고 말하지만 창수는 싸놓은 짐가방을 오히려 던져버리고, 나가고 싶은 사람이 나가라고 말한다. ●그대는 별(KBS1 오전 8시5분) 차 여사는 그동안 인경을 지켜본 결과 살림하는 솜씨가 낙제점은 아니라는 칭찬같지 않은 칭찬을 하며 살림을 맡긴다. 의사에게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정 여사는 분노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정 여사는 화연에게 가증스럽다고 퍼붓다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다.
  • [서울광장] 초선의 반란 기대한다/김경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초선의 반란 기대한다/김경홍 논설위원

    세상만사는 다 때가 있다.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일들도 부지기수다. 농사만 해도 그렇다. 땅을 갈아엎을 때가 있고,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김을 맬 때가 있고, 마지막으로 제때에 거둬들여야 한다. 어느 한 과정이라도 때를 놓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십상이다. 때를 맞춰 부지런히 일했다고 하더라도 행여 태풍이 들이닥치면 어찌할 것인가. 농부의 몸과 마음은 수확을 손에 쥐기까지는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농사도 그러한데 하물며 국사는 오죽할까. 먹고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민심, 시시각각 진로가 변하는 국제정세의 태풍들은 미리 대비하고 제때에 막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을 자초할 뿐이다. 이라크 파병문제를 보자. 파병이 미국과 동맹관계 등을 고려한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이었거나,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듯 침략전쟁에 참여할 명분이 없었거나, 논란이 있었다면 양단간에 제때에 결정했어야 했다. 질질 끌다가 결국은 파병하고, 생색도 내지 못하고, 남들은 돌아올 준비를 하는데 이제 또 파병연장 문제로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금 정기국회 회기중이다. 그런데 이해찬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막말을 했고, 한나라당은 이 총리 파면을 요구하며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까지 가세해서 온통 진흙탕이다. 결국 정기국회 100일 회기 가운데 1일까지 5일째나 놀면서 까먹고 있다. 얼마나 더 싸울지는 당사자들밖에 모른다. 이깟 일들로 국정을 팽개쳐도 되는지 분통이 치밀 일이다. 개혁이니, 상생이니, 민생정치니 하는 약속들은 ‘막말’이나 ‘색깔’만 등장하면 한순간에 사라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교과서에도 나와있듯 3권분립 체제하에서 정부감시와 입법, 예산심의는 국회의 의무이자 존재이유다. 그런데 싸움질로 의무를 팽개치는 것은 당연히 직무유기다. 새해예산안의 규모는 일반회계 기준으로만도 130조원이 넘는다. 정기국회 회기 내내 따지고, 챙긴다고 하더라도 모자라는 시간이다. 의정활동비가 적다고 아우성치는 의원들이 나라살림 정도는 우습게 보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국무총리가, 정당이,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가고 공전시킨 ‘직무유기’를 범했다고 해도 당장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시민들에게는 국회의원 소환권도 없고, 정당 불신임권도 없고, 국무총리 해임요구권도 없다. 일 안하는 국회의원을 징계해 달라는 국회윤리위 제소권도 없다. 한번 뽑아 놓으면 4년동안 속수무책이다. 불과 반년 전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은 ‘돈 먹지 말고, 싸우지 말고, 일 좀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시절 돈 좀 먹고, 잘 싸우던 사람들 상당수가 떠났다.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의석도 힘을 좀 줄 테니 개혁과 생산적인 정치를 해달라는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무엇보다 초선의원이 전체의석의 62.5%나 차지한 것은 새정치를 기대하는 민심이 반영된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원내 발언에는 면책특권이 있고, 회기중에는 불체포특권도 누린다. 기차도 공짜로 타고, 골프장에서조차 회원대우를 받는다. 일하라고 주는 특권이다. 싸우라고 주는 특권이 아니다. 지금 정치권이 진흙탕 싸움에 빠져 국정을 팽개치고 있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구시대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초선의원들이라도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정파를 초월해서 초선들이 힘을 합쳐 ‘상쟁정치’를 추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3년도 넘게 남은 17대 국회도 희망이 없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