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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①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윤종순 씨

    ‘2022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①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윤종순 씨

    행정안전부는 ‘제17회 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을 맞아 ‘2022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자원봉사자의 날’은 자원봉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원봉사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85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상 기념일로 지정됐다.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오랜 기간 헌신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개인과 단체·기업·지방자치단체에 훈·포장과 표창 239점을 수여했다.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에는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 연무대봉사회 윤종순(66) 씨와 희망나눔터봉사단 단장 이경연(56) 씨가 선정됐다. 윤 씨는 100여회에 달하는 재난·재해현장 피해 복구 활동을 펼쳤고, 이 씨는 2005년부터 양주시 가족봉사단 초대 단장을 맡아 가족단위 봉사문화 정착 및 확산에 기여했다고 행안부는 전했다. 국민포장은 오영(54) 글로벌제주문화연구원장과 고성군 지역자율방재단 윤용호(74) 씨가 수상했다. 다음은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윤종순 씨. ●주요 프로필 나이 : 66세거주지역 : 논산시직업 : 사회단체소속요원소속 :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 연무대봉사회봉사기간 : 43년 7개월 ●공적 내용 서술 모든 움직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를 맞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우산 하나를 건넬 때도 용기 없이는 전할 수가 없다. 어떤 일이 다른 사람의 칭송을 받을만한 일일지라도 쉽게 손 내밀 수 없는데,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일에 43년을 먼저 손 내밀어온 윤종순 씨가 있다. 1987년 논산, 부여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무려 1000여명의 이재민은 가재도구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동성초등학교에도 실의에 빠진 채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던 이재민이 있었다. 소식을 들은 윤종순 씨는 육군훈련소와 국군 논산병원의료팀과 침수된 빨래를 수거해 세탁하고 임시진료소에서 진료를 돕는 등 40여 일간 봉사를 지속했다. 서해안에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 매미, 곤파스, 볼라벤 등 사나운 태풍이 휩쓸고 갔을 때도 그는 이웃을 찾아가 따듯한 식사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시급한 복구활동에 힘을 보탰다. 대형 산불이 나고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든 재해 현장으로 달려가 급식봉사를 하고 구호품을 전달하며 흙을 퍼내고 버려진 살림살이를 씻었다. 때로는 직접 구운 빵을 들고 봉사자들을 인솔해 갔다. 2021년 3월 논산시에는 겪은 적 없던 재해가 발생했다. 화학약품이 유출되었고 폭발로 화재도 발생했다. 이때도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현장으로 가 방역요원과 대피한 주민, 복구활동을 하던 봉사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심리적 불안을 겪는 이들에 심리지지 상담을 진행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홀몸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조손가정에는 쌀, 라면, 김장김치 등을 정기적으로 전달하고 희망풍차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아홉 세대와 결연을 맺는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홀로 생활하는 어른들을 위해 잔치를 열고 어르신들을 모시고 안면도, 곡성, 음성, 함평, 태안 등 아름다운 관광지와 축제 현장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를 위해 지역 기관과 인사들의 도움을 끌어내고 방문하는 지역의 자치단체와 봉사회 등과 유대관계를 맺는 등 서로 돕는 세상을 만들고자 힘썼다. 다문화가정을 위해서는 전통 차례상 차리기를 시연하고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전통 장 만들기를 통해 이주 여성들이 정서적 고립과 문화적 차이를 줄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경주, 안동 하회마을, 거제도 등을 함께 탐방하며 한국의 문화와 전통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대한민국의 구성원이 된 그들이 소외당하지 않고 자긍심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다문화 봉사회를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실크로드푸드축제’ 등을 열어 각국의 전통음식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주여성들이 가진 능력을 개발하여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코로나19로 사회적 위기가 왔을 때는 예방접종센터에서 안내를 하고 마스크와 방호복, 장갑과 한라봉 등 지원품을 전달하는 일까지 그의 눈과 손은 언제나 어려운 이웃을 향했다. 논산딸기축제와 논산·강경젓갈축제까지 지역을 살리는 일에도 적극적인 한편 라오스와 캄보디아 오지마을에 화장실과 정수공급시설을 짓는 국제 봉사활동도 하였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쉼 없이 공부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해 미술치료사, 레크리에이션지도자, 심리상담사 등의 자격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심리지지 상담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적인 활동으로 매월 조손가정을 방문해 어려움에 처한 조부모와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의미 있는 활동이다. 가진 것을 나누고 변함없이 이웃을 위해 마음을 쓰는 윤종순 씨 봉사의 시작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용기 있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 “베이밸리 핵심은 나야 나” 충남 4개 도시 총력전

    베이밸리 메가시티에 포함된 천안, 아산, 당진, 서산 등 충남 4개 지역이 베이밸리에 올라타 지역 발전을 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베이밸리 메가시티의 핵심 도시를 차지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당진시 정상열 주무관은 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아산만의 중심은 당진평택항이 있는 당진”이라면서 “베이밸리 충남 권역에서 수소도시로 지정된 곳은 당진뿐”이라고 말했다. 정 주무관은 “베이밸리에 반영된 사업에 최선을 다하면서 민자로 당진~경기도를 잇는 고속도로를 충남도에 적극 건의하고 있다”며 “국비 확보를 통해 해저터널로 구상 중인 제2서해대교보다 더 빨리 완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진시는 베이밸리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했다. 정 주무관은 “베이밸리 충남 4개 시 중에 철강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 등으로 인해 지역내총생산(GRDP)과 인구가 유일하게 감소하는 지역이 당진”이라며 “경기도, 평택시와 해상경계·서해대교 아래 서부두 소유권 분쟁에서 진 지역 정서를 감안해 당진에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산시도 아산만의 중심이기 때문에 베이밸리의 중심은 아산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태수 아산시 주무관은 “평택, 당진항과 함께 아산항이 트라이 포트가 돼야 해서 2050년 국가항만계획에 아산항 건설이 반영될 수 있도록 김태흠 충남지사에게 건의하고 있다”면서 “황해경제구역 지정에도 아산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천안시는 충남의 ‘제1도시’인 만큼 당연히 베이밸리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재영 천안시 기획팀장은 “종축장의 국가산업단지 추진 등을 볼 때 베이밸리의 중심 역할은 천안이어야 한다”며 “천안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반영하기 위해 베이밸리 추진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아산만과 멀리 떨어진 서산시는 볼멘소리를 낸다. 시 관계자는 “베이밸리에 10여건을 건의했는데 채택된 게 하나도 없다”면서 “가로림만 입구 서산~태안 해상에 연륙교를 만들어 ‘골드코스트’에 편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관광지가 많지 않은 서산에도 관광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가로림국가해양정원 추진도 있어 시너지 효과도 크다”며 “가로림만에 마리나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길섶에서] 로또 단상/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로또 단상/이순녀 논설위원

    “당신은 내 로또야.” “날 만난 게 그렇게 행운이야?” “아니, 하나도 안 맞잖아.” 몇 년 전 유행했던 ‘허무 개그’가 다시 생각난 건 로또가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는 기사 때문이다. 복권의 대명사인 로또는 한일월드컵이 열린 해인 2002년 12월 7일에 1회차를 추첨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1회차부터 올해 11월 26일 1043회차 추첨까지 로또 1등 당첨자는 총 7803명이다. 이들이 받은 총당첨금은 총 15조 9000억원으로, 한 사람당 평균 20억원이 넘는다. 역대 최대는 407억원, 최소는 4억원이다. ‘인생역전’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없지만 소소한 재밋거리로 가끔 로또를 산다. 길몽을 꾼 다음날 로또 한 장을 사서 지갑에 넣어 두면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지금까지 당첨 기록은 5등 5000원이 유일하다. 본전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다. 꽝이어도 상관없다. 나라가 복권 기금으로 입양아동 가족을 지원하고, 저소득층에 장학금을 지급하니 좋은 일 아닌가.
  • [문화마당] 우리들의 작은도서관/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문화마당] 우리들의 작은도서관/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종종 책방에 들러 여유롭게 책을 고르다가 높은 안목으로 멋진 책 한 권씩 뽑아 가던 손님이 있었다. 유쾌한 인사와 함께 책방 문을 열던 단골손님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책방에서 만날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책방지기들은 자책부터 하게 된다. ‘우리 책방에 왔을 때 불편한 마음으로 돌아선 적이 있었던 건가….’ 그렇게 5개월쯤 지났을 때, 의외의 경로로 단골손님의 소식을 알게 됐다. 작년 봄의 일이다. 강화도에 ‘미술도서관’이 생겼다는 소식에 궁금증이 생겨 위치 정보를 검색했다. ‘강화미술도서관’에 대한 기사가 함께 검색됐고, 기사를 읽던 중 사라진 책방의 단골손님이 바로 이 도서관의 설립자이자 관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강화미술도서관’에 찾아갔다. 깜짝 놀란 단골손님, 도서관장님이 웃으며 반겨 준 도서관 안에는 희귀 미술서적, 작품집이나 도록, 아트포스터, 그래픽노블 등이 촘촘하게 전시돼 있었다. 단골손님이 몇 달 동안 준비한 작은도서관의 실내는 단정하고 차분하지만, 그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을 기웃거리는 이웃들이 늘어나게 되자 미술 도서에 대한 정기적인 독서모임과 미술사에 대한 강좌도 진행되게 됐다. 미술 감상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지역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미술학교다. 강화도에 있는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은 독특한 그림책 큐레이션과 체험 프로그램으로 이웃한 어린이들은 물론 전국의 그림책 독자와 작가들까지 찾아오는 소문난 공간이다. 강화를 대표하는 작은도서관 ‘자람도서관’은 어린이들이 마을과 함께 자라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린이들이 책과 함께 마음껏 뒹구는 공간이자, 마을 주민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머리를 모으는 사랑방이며,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작은 문화센터이기도 하다. 이렇게 멋진 공간이 강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7000개가 넘는 작은도서관이 있다. 어린이 독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노인을 위한 작은도서관이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곳이 있는가 하면 개인이 세운 작은도서관도 있다. 위치한 지역과 설립 목적에 맞도록 규모도 제각각이고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이곳들은 모두 우리 독서환경의 최전선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책과 독자를, 독자와 독자를, 작가와 독자를 맺어 준다. 이제 막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아이는 책장 사이를 뛰어다니며 마음에 맞는 책과 함께 뒹굴뒹굴하는 사이 자연스레 독자로 탄생하며 이웃의 또래와 어른들과도 친숙해진다. 혼자 책을 읽기에 막막했던 사람들은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열독의 즐거움에 빠지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내며 마을과 함께 살아간다. 작은도서관이 이웃들에게 제공하는 공간과 장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엄청난 금액이겠지만, 작은도서관의 운영은 자발적인 자원봉사와 기부금에 기초해 운영된다. 공공의 지원이 넉넉하면 좋으련만 지금까지는 한참 모자란 편이다. 작은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또한 부족한 편이다. 잠깐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우리 사는 주변에 좋은 이웃, 작은도서관이 있다. 그곳에는 좋은 책과 좋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고, 생각보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겨울방학에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 이웃의 작은도서관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작은도서관을 찾아가는 것은 나도 즐겁고 우리 마을도 좋아지는 일이다.
  • ‘27번째 태극전사’ 오현규

    ‘27번째 태극전사’ 오현규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12년 만에 16강에 오른 한국 축구의 영광 뒤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한 명품 조연이 있다. 16강 진출은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26명)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결과다. 하지만 이들의 훈련 파트너로 구슬땀을 흘렸던 ‘27번째 태극전사’ 오현규(21·수원 삼성) 또한 ‘알라이얀 기적’의 숨은 공로자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월드컵 개막을 2주 앞두고 안와골절 수술을 받은 ‘캡틴’ 손흥민(토트넘)의 대체 자원으로 파울루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올 시즌 K리그1에서 13골(3도움)을 기록한 오현규는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극적인 골을 터트려 수원 삼성의 K리그1 잔류를 이끌었다. 벤투 감독은 그의 결정력과 폭발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손흥민이 초인적 투지와 정신력으로 조별리그와 브라질과의 16강전까지 4경기를 모두 풀타임으로 소화하면서 오현규는 생애 첫 월드컵 출전을 미루게 됐다. 그래도 대표팀의 모든 훈련 일정을 함께하면서 믿음직한 훈련 파트너로 최선을 다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선수 자격으로 벤치에 앉지 못하고 스태프로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조별리그 H조 3차전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진출을 확정했을 땐 그라운드에 달려 나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 기쁨을 나눴다. 오현규는 7일(한국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 한 일원으로 함께한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큰 기쁨이었고 영광이었다”고 전했다.
  • 쇄신 카드 꺼낸 카카오… “데이터센터 삼중화·5년간 3배 투자”

    쇄신 카드 꺼낸 카카오… “데이터센터 삼중화·5년간 3배 투자”

    지난 10월 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한 서비스 장애의 원인을 분석한 카카오는 문제의 핵심인 시스템 다중화와 관련해 이중화를 넘어 데이터센터 3개가 연동되는 삼중화 이상으로 고도화하겠다고 7일 밝혔다. 또 앞으로 5년간 기존 대비 3배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와 전담조직 신설 등 대대적인 쇄신 계획도 내놨다. 카카오는 전체 시스템에서 다중화를 설계·구축하고, 서비스 간 중요도 등을 고려해 복구 우선순위를 지정·관리할 방침이다. 고우찬(카카오엔터프라이즈 부사장) 비상대책위원회 재발 방지대책 공동소위원장은 “서비스 안정화를 위한 인재 확보와 기술 개발, 삼중화 이상의 재난복구(DR) 구현 등에 지난 5년간 투자한 금액의 3배 이상을 앞으로 5년간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DR 시스템을 삼중화 이상으로 고도화하면 데이터센터 한 곳이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이중화가 담보되는 안정성을 갖춘다고 카카오는 설명했다. 카카오톡 메시지 전송 기능을 전담하는 원격지 DR 데이터센터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 최고 정보기술(IT) 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을 영입해 대표이사(CEO) 직할의 IT 엔지니어링 전담조직도 편성하기로 했다. 재해복구위원회도 만들어 대규모 장애에 대한 신속 대응력을 강화하고 대비 훈련도 강도 높게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완공을 목표로 구축 중인 경기 안산 데이터센터는 전력·냉방·통신 등 3개 영역에서 ‘24시간 무중단 운영’을 위한 이중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실과 무정전전원장치(UPS)를 방화 격벽으로 분리, 배터리실에서 불이 나도 삼중의 진화 방식이 작동되게 해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와 같은 상황을 방지한다. 카카오는 이날 개최한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이프 카카오 데브 2022’를 통해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기조 연사로 나선 남궁훈(전 카카오 각자대표) 비상대책위원회 재발방지대책 공동소위원장은 “카카오의 최우선 과제는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를 항상 명심하겠다”고 다짐했다. 외부인인 이확영(그렙 최고경영자) 원인조사소위원장은 당시 복구 지연 원인으로 데이터센터 간 이중화와 서비스 운영 관리 도구 이중화가 미흡했으며, 이중화 이후 가용 자원과 인력이 부족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 소위원장은 특히 이중화에 필요한 상면(데이터센터 내 공간) 부족이 가장 치명적이었다고 판단했으며 사태 발생 초기 복구와 대응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 시내버스 신설, 주민들 만족… 신길뉴타운 7년 숙원 풀었다[현장 행정]

    시내버스 신설, 주민들 만족… 신길뉴타운 7년 숙원 풀었다[현장 행정]

    “신길뉴타운에 입주한 지 7년 만인 올해 10월부터 6713번 시내버스가 운행되니 지역 주민들이 ‘더욱 살기 좋아졌다’며 만족해합니다. 기초자치단체 행정을 이끄는 입장에서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죠.” 첫 혹한이 불어닥쳤던 지난달 30일. 최호권 서울 영등포구청장은 경기 광명시 철산동 세풍운수 차고지에서 6713번 버스에 올라탔다. 지난 10월 17일 첫 운행을 시작한 뒤 40여일이 지난 버스의 운행 현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6713번 버스가 지하철 1·2호선 신도림역과 7호선 신풍역을 지나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지역 내 신길파크자이 정류소에 멈추자 표지판에는 해당 버스만 표기돼 있었다. 나머지는 마을버스 2대뿐이었다. 최 구청장은 “신길뉴타운 북측 가마산로는 시내버스가 없어 대중교통 사각지대였지만 6713번이 새로 다닌 덕분에 주민들이 여의도와 홍대까지 연결되는 황금 노선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 구청장과 동행한 김재민 세풍운수 대표도 “예전엔 신길뉴타운 주민들이 여의도까지 나가려면 만원 마을버스에 시달려야 했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갈 수 있다”면서 “일평균 탑승 인원은 현재 400명 선이지만 개통 6개월 뒤에는 600명 선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6713번 시내버스엔 사연이 많다. 7일 영등포구에 따르면 신길뉴타운은 1만여 가구의 미니 신도시지만 가마산로부터 해군호텔 앞까지 약 1㎞ 구간은 시내버스 노선이 단 하나도 없었다. 주민들은 여의도나 광화문 쪽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만원 마을버스를 타거나 여의대방로까지 걸어가야 했다. 이에 1000여명의 지역 주민들이 버스노선 신설을 구 신문고에 청원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5월 신림선 경전철이 개통되자 최 구청장은 서울시에 버스 노선 변경을 요청했다. 이에 시는 10월 초 철산동에서 서울대와 여의도를 거쳐 돌아오던 6513번 시내버스를 신길뉴타운을 지나는 6713번으로 조정하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개선명령’을 내려 6713번의 운행이 성사됐다. 신길뉴타운에는 신길파크자이와 신길보라매SK뷰 정류소 2곳이 신설됐다. 버스 배차 간격은 평균 13분, 출퇴근 시간대엔 10분 정도라 주민들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최 구청장은 이날 6713번 버스 운전기사들의 ‘민원’도 곧바로 해결했다. 버스가 문래동 사거리에 다다르자 김 대표는 “버스가 사거리에서 우회전할 때 옆 차선이 실선으로 돼 있고, 얼마 전 차선 이탈로 단속 대상이 되기도 했다”면서 “안전운행을 위해 점선으로 변경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최 구청장은 “잘 알겠다. 경찰과 협의해 조치하도록 하겠다”며 곧바로 소관 부서에 변경을 지시했다. 최 구청장은 대중교통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인 2004년 시장 비서실 정책비서관으로 일하며 버스체계 개편과 환승무료시스템 도입 등 대중교통 개편 작업에 직접 참여해서다. 최 구청장은 “버스는 서민의 발이자 공공재”라면서 “더 많은 주민이 지방자치제를 통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가해자 부모 “고소” 1시간씩 폭언…교사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학폭위 10년, 지금 우리 학교는]

    가해자 부모 “고소” 1시간씩 폭언…교사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학폭위 10년, 지금 우리 학교는]

    “선생님, 잊으세요. 이런 일은 워낙 자주 일어나 교권침해도 아니에요.”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인 김성희(37·가명)씨는 올해 초 교육청과 연계된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가 머리가 아득해졌다. ‘내가 겪은 일이 별일이 아니라니….’ 3년째 학교폭력(이하 학폭) 업무를 전담해 온 김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숨이 턱 막히는 일이 잦아졌다. 그 사건 이후 증상이 더 심해졌다. 올해 5월, 김씨가 근무 중인 학교 남학생들이 학원 앞에서 여학생 A양을 집단 폭행했다. A양의 아버지는 학폭 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A양을 가장 앞장서 때린 B군의 부모는 ‘맞학폭’으로 신고하겠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남자아이들이 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얘기했어요. 여자아이가 먼저 가운뎃손가락 욕을 하고 욕설도 퍼부었다고 말이죠.” 학폭 사건이 일어나면 교사는 학생들과 ‘진실게임’을 하며 퍼즐을 맞춰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학부모까지 대부분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B군 부모는 시도 때도 없이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선생이 우리 애를 싫어해 아이 말을 안 들어 준다’, ‘인권침해로 깡그리 고소하겠다’ 등 1시간씩 폭언을 일삼았다. 급기야 교장실까지 가서 “교사가 애를 무시하고 차별한다. 교육청에 신고하고 국민신문고에도 넣어 까발릴 것”이라며 행패를 부렸다. “2주 내내 폭언을 들으니까 마음이 너무 지치고 힘들더라고요. 학폭 업무는 애써 일해도 학부모 본인들이 기분이 상하고 억울하다고 느끼면 그걸 다 교사에게 풀어요.” 김씨는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고 비유했다. 다행히 현장엔 폐쇄회로(CC)TV가 있었다. 학교전담경찰관(SPO)의 도움을 받아 뒤늦게 사건의 전말을 확인한 결과 남학생들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다. A양은 가만히 있다가 남학생 여러 명에게 주먹질을 당했다. 그 중심엔 B군이 있었다. 워낙 폭행 당시 상황이 정면으로 찍혀 부인할 수 없게 되자, 부모들은 전부 A양 부모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B군의 부모도 “(저희 아이가) 너무 세게 때려서 놀랐다”며 같이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간 교사에게 쏟아낸 폭언에 대해선 사과는커녕 일언반구도 없었다. A양의 아버지는 결국 가해 학생들을 용서했고 사건은 학교장 자체 종결로 마무리됐다. 학폭 피해가 2주 이상 치료를 요하지 않고,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등 조건에 들어맞으면 학교장이 사안을 자체 종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B군의 공격성은 같은 반 다른 여학생들로 향했다. 매일같이 지나가는 여학생의 등을 툭 치고 가버리거나, 목을 졸랐다. 피해 학부모의 민원이 반복됐다. 김씨가 B군 어머니에게 상담 전화를 걸자, 돌아온 건 ‘둘째라 사랑으로 키워 애교랑 스킨십이 많은 애를 선생님이 미워한다’, ‘전화 다 녹음했으니 경찰에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 등의 모진 말이었다. 그 이후로는 ‘숙제가 지나치게 많다’, ‘현장체험학습 장소가 엉망이다’ 등 학교나 교사의 사소한 잘못을 들추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우리 학교만 해도 세 분이 정신과 진료를 받았어요. 학부모님들은 담임이나 학폭 전담 교사를 제쳐 놓고 교장·교감실을 바로 찾아가 항의하는데, 관리자들은 교사들에게만 ‘무조건 사과해라’, ‘아무 말 하지 말라’며 저희 탓만 합니다. 교사는 대체 누가 지켜 주나요?” 김씨는 지난 2020년 3월 학폭 전담 교사를 처음 맡았다. 넘쳐나는 서류 작업과 피·가해 학부모 상담을 해야 하는 까닭에 대부분 교사가 기피하는 업무다. 육아휴직으로 3년간 일을 쉬고 돌아온 김씨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교실은 어느덧 김씨에게 지옥이 됐다. 교실 문 앞에 서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리 힘들어도 교실에선 웃는다. ‘앞에선 다들 선생님, 선생님 하다가 뒤에서 어떻게 뒤통수 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괴롭게 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 갑자기 날아드는 장문의 학부모 문자를 받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교권 침해’가 아니라는 교육청 판단에 더 힘이 빠졌다. 김씨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는 “더한 일로 오시는 선생님들도 많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 자문한다. “아이들이 좋아서 택한 이 직업을 내가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을까.” ■인터랙티브 페이지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schoolViolence/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 취재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 미초바 “♥빈지노와 첫만남, 담배 달라고 했다”

    미초바 “♥빈지노와 첫만남, 담배 달라고 했다”

    미초바가 빈지노와의 첫만남을 회상했다. 7일 유튜브 ‘피식대학’ 채널에는 ‘미초바에게 빈지노 번호를 묻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다. 이날 가수 빈지노의 아내인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가 출연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그는 빈지노와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을 받았다. 미초바는 “친구가 소개시켜줬다. 그렇게 흥미롭진 않다”고 운을 뗀 후 “데이트를 전제로 만난 건 아니고 서로 같이 아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만났고 나도 쿨하게 보이고 싶어서 ‘저기 담배 한 대 있어?’ 물었다. 심지어 난 담배도 안 핀다. 그래도 그냥 ‘나 담배 한 대만’ 했더니 ‘그래’ 이러더라. 그렇게 만났다”고 말했다. 또 “군대에 있을 때 큰 문제는 없었냐”는 질문에 “군대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만약 둘 중 한 명이 못 버틸 것 같으면 서로 솔직하게 대화로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기로 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미초바는 “우리 진짜 서로에게 헌신적이고 솔직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면서 “그리고 서로에게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고 꽤 잘 버텼다”고 덧붙였다.
  • 손흥민, ‘검은 마스크’ 벗었다…“대한민국도 나아갔으면”

    손흥민, ‘검은 마스크’ 벗었다…“대한민국도 나아갔으면”

    “포르투갈전을 앞두고 과연 저희한테 몇%의 가능성이 있었을까. 선수들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진짜 투혼을 발휘했다. 너무나도 멋있는 이 말은 선수들한테도 분명히 경기장에서 큰 영향을 줬다. 선수한테도, 제 팀한테도, 많은 국민분들한테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문장이 계속 꾸준히 유지돼 축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캡틴’ 손흥민(30)이 뜨거운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7일 인천공항을 통해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공식 일정을 마치고 QR858편과 EK322편으로 귀국했다. 이날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와 100여명 이상의 미디어 관계자, 경찰 관계자 추산 500여명의 팬들이 함께한 가운데 약식 귀국행사와 미디어 인터뷰 등이 진행됐다. 손흥민은 대회 직전 안와골절 부상을 당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한국 대표팀의 4개 경기에 모두 풀타임으로 출전하는 투혼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공식 인터뷰를 통해 손흥민은 부상의 어려움 속에 대회를 잘 마무리한 것에 대해 “사실 3~4주 전으로 다시 돌아가서 내게 ‘4경기를 풀타임으로 뛸 수 있을지’를 다시 한번 물어본다면 ‘아마 안 되지 않을까’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나올 것 같다”면서 솔직히 고백한 이후 “4주가 지나고 이렇게 월드컵 16강까지 뛰고 왔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대회의 소회를 전했다. 그러면서 손흥민은 “우리가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모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을 했다는 것”이라며 선수단 전체에 대해 고마움을 전한 이후 “이는 정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또 우리는 다른 선수들보다도 더 많이 노력 해서 16강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또 많은 국민, 축구를 좋아하시는 팬들의 응원 덕분에 우리가 16강이라는 큰 업적을 세웠다”며 성원해준 팬들과 국민들에게도 고마움을 돌렸다.손흥민 “‘꺾이지 않는 마음’ 대한민국도 나아 갔으면” 선수들이 16강 진출 확정 이후 그라운드를 돌 당시 태극기에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앞서 리그오브레전드 국제대회인 ‘롤드컵’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이 말은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증명으로 올해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대표팀에게 어떤 의미였냐는 취재진 질문에 손흥민은 “가장 좋은 예시인 것 같다. 내가 월드컵에 오기 전에 했던 ‘1%의 가능성만 있다면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는 마음과 같이 선수들이 그 작은 가능성을 보고 달려갔던 것 같다”며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손흥민은 “포르투갈전을 앞두고 과연 우리에게 몇 %의 가능성이 있었을까. 하지만 선수들은 그 적은 가능성을 믿었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투혼을 발휘해 그런 경기를 했다”면서 “내겐 너무나 멋있는 말이고 선수들에게도 분명히 큰 영향을 줬던 부분이다. 선수, 우리 팀, 또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장이 (마음에) 새겨졌으면 좋겠다. (이 마음으로) 대한민국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한편 한국 축구대표팀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브라질에 1-4로 석패를 당했다. 하지만 본선 조별리그에서 승점 4점(1승1무1패)을 획득 H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뒀다.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12년 만의 16강 토너먼트 진출인 동시에 역대 3번째 16강. 동시에 원정 기준으로는 역대 2번째 16강 진출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FIFA 세계랭킹 9위 포르투갈을 상대로 2-1 승리, 세계랭킹 14위 우루과이에 0-0 무승부를 거두며 저력을 보여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다.
  • [2022년 서민금융 이용수기3] 작은 창문

    당신을 위한 따뜻한 금융, 서민금융 이야기 연말연시 건강, 가족, 사업 등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내심 내년에도 경제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이 깊어진다. 특히 금리가 높아진 요즘, 소득이 낮고 신용이 낮은 사람들은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서민의 금융생활과 경제적 자립 지원을 위해 힘쓰고 있는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매년 서민금융 이용수기 공모전을 통해 서민금융 이용자의 사연을 널리 알리며, 더 많은 저소득·저신용자가 서민금융상품으로 경제적 재기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진흥원은 ‘2022년 서민금융 이용수기 공모전’을 통해 올해 총 41건의 서민금융 이용사례를 접수받았다. 특히 올해는 미소금융, 햇살론, 금융교육, 신용부채관리컨설팅 등 다양한 서민금융 이용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신문은 이 가운데 미소금융과 햇살론유스, 햇살론을 통해 희망을 얻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면서 시름은 덜고 희망은 더하고자 한다. ■작은 창문(김보미) 불이 나던 순간, 주황색 불꽃만이 눈에 보였다. 얼굴에 와 닿던 뜨거운 열기를 끝으로 더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그렇게 단편적이었지만 흉터는 구체적이고 확실했다. 얼굴과 몸 곳곳에 남겨진 흉터는 눈에 띄어 시각적으로도 자극이 되고, 피부를 당기며 촉각으로도 자극을 했다. 절대 한 순간도 잊고 살 수 없었다. 불이 나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불길에 잠식된 건 내가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뒤틀린 지체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사지를 움직일 수 있게 하려면 수술과 재활을 반복해야 했다.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온 가족이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 특히, 엄마는 나를 돌보면서 일을 하시느라 작은 어촌 마을의 허드렛일을 도맡다시피 하셨다. 주로 마당에서 찢어지거나 구멍 난 그물을 기우는 일을 하셨다. 그물을 녹이기 위해 피워놓은 화롯불이 삽시간에 툇마루로 옮겨 붙었다. 일감을 얻느라 엄마가 잠깐 외출하신 사이, 점심 먹으로 집에 돌아온 오빠가 그 광경을 보고 꼼짝 못하는 나를 불구덩이에서 건져냈다고 한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자, 엄마는 다 당신의 잘못이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게 어찌 엄마의 잘못이겠는가. 나는 그저 그 위험한 상황에 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몸이 굳어 불길을 오는 대로 맞아들인 나 자신을 원망했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안 그래도 나 때문에 고생중인 가족들에게 더 큰 짐을 지웠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몸을 제대로 쓰려면 흉터 치료보다는 재활치료가 급했다. 제멋대로 휘어버린 가지 같은 팔과 다리를 제대로 이어 붙이는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은 물론, 작은 집마저 저당을 잡혔다. 일곱 번이 넘는 큰 수술을 하는 동안 몇 년간 병원에 있기도 했고, 수술과 수술 사이에는 재활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큰 희생을 해준 덕분에 비록 팔과 다리를 마구 뒤흔드는 모습이긴 하지만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혼자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변화다. 나는 그 움직임 덕분에 학교를 다녔고, 대도시의 대학으로 유학까지 갈 수 있었다. 남들처럼 배우고, 대학교도 졸업했으니 그래도 조금은 평범한 삶의 궤도에 도달한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흉터 때문이었다. 화상 흉터는 팔이 제일 심했는데 마치 길고 굵은 뱀을 손목에 두른 것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자연스럽지 못한 움직임이 사람들 눈에 띄는데 화상 흉터까지 있으니 나는 그야말로 눈길을 끄는 존재였다. 길에서 마주오던 사람들은 꼭 두 세 번 나를 돌아보았다.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나를 주목했다. 다리 병신, 풍차 괴물 등 나를 지칭하는 지독한 별명 중에서도 뱀팔찌가 가장 괴로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당신의 죄라고 우시는 엄마를 보는 것도 무척 고통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애인 공공근로 정책을 통해 구청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나는 한 여름에도 긴 팔 옷을 입었다. 혹여나 내 화상흉터 때문에 누군가가 놀랄까봐 꼼꼼하게 가렸다. 그러니까 나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셈이었다. 작은 창문조차 없는 흉터라는 독방에 갇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설상가상 나이가 들면서 흉터 자국이 피부를 심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아무 이상 없는 조직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나는 이미 수술을 여러 번 하느라 사지가 붙어 있는 팔꿈치 같은 부분 피부가 당겨져 있어 움직임을 방해할 정도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흉터조직을 없애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나 때문에 집 한 칸도 없이 월세를 전전하는 가족들에게 더는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살아서 눈 뜨고 있는 1분 1초가 고통이었다. 직장 생활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당시 몸도 아프고, 해결할 방법이 없어 마음도 괴로웠던 내 독방 생활에 작은 창문을 열어준 건 ‘햇살론’이었다. 이름마저 따뜻했던 햇살론이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고통스런 내 감옥살이에 바람이 통하는 창문이 되어준 것이다. 길에 걸린 현수막 광고를 보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간 은행에서 햇살론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통장에 입금된 돈은 돈이 아니었다. 내 숨길이었다. 내 삶에 열린 창문이었다. 나는 그 창문을 통해 다시 숨 쉴 수 있었고,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사는 소박한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얼굴에 난 흉터와 팔에 난 흉터를 집중적으로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반쪽이 다른 얼굴인 것처럼 눈의 높이가 맞지 않던 것이 어느 정도는 맞아졌고, 팔을 감싸던 뱀도 자취를 감추었다. 여전히 왼팔에는 자국이 남았지만 예전처럼 크고 강렬하게 눈길을 끌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 삶을 가둔 감옥에 창문이 생기자, 내 인생이 달라졌다.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이 하나, 둘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누가 흉터를 볼까 무서워 팔만 긴 팔 옷으로 가린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가리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무채색 옷만 입었고, 어깨를 최대한 구부린 채 걸었다.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폐를 끼치는 것 같은 모양새로 살았다. 다른 누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직장 동료도, 친구도 만들 수 없었다. 누가 나를 쳐다볼까 겁을 내며 살고 있으니 사람 대 사람으로 누군가와 친한 사이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흉터 수술 이후, 나를 옥죄고 있던 뭔가가 끊어진 모양이었다. 병가가 끝나 직장에 복귀하자, 동료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 내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고 했다. 전에는 어둡고 무거워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다는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활짝 미소 지었다. 누군가와 일이 아니라 일상이나 안부와 관한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미처 몰랐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자, 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점점 올라갔다. 실수도 많고, 복잡한 일은 아예 도전하지도 안으려고 했는데 자신감이 붙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심정으로 살던 나는 퇴근 후,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영어학원이나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청년의 일상을 살게 된 것이다. 햇살론이 내 삶에 열어준 작은 창문, 그 창문으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세상과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삶을 살게 되었고, 내게 주어진 일과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회인의 삶도 살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나 자신과 화해하고,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는 누가 나를 쳐다볼까봐 겁내지 않게 되었다. 내 삶이 가장 고통스럽고 어두울 때, 숨 막히고 힘들 때 나를 구해주고, 내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게 해준 햇살론. 햇살론이 열어준 작은 창문은 여전히 내 삶에 바람과 햇살이 통하게 해주고 있다. 나도 내 삶을 충실하게 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 [2022년 서민금융 이용수기2] 세상에 혼자라고 느꼈을 때, 나를 도와준 서민금융

    당신을 위한 따뜻한 금융, 서민금융 이야기 연말연시 건강, 가족, 사업 등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내심 내년에도 경제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이 깊어진다. 특히 금리가 높아진 요즘, 소득이 낮고 신용이 낮은 사람들은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서민의 금융생활과 경제적 자립 지원을 위해 힘쓰고 있는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매년 서민금융 이용수기 공모전을 통해 서민금융 이용자의 사연을 널리 알리며, 더 많은 저소득·저신용자가 서민금융상품으로 경제적 재기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진흥원은 ‘2022년 서민금융 이용수기 공모전’을 통해 올해 총 41건의 서민금융 이용사례를 접수받았다. 특히 올해는 미소금융, 햇살론, 금융교육, 신용부채관리컨설팅 등 다양한 서민금융 이용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신문은 이 가운데 미소금융과 햇살론유스, 햇살론을 통해 희망을 얻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면서 시름은 덜고 희망은 더하고자 한다. ■세상에 혼자라고 느꼈을 때, 나를 도와준 서민금융(박준형) 옛말에 ‘불행은 반드시 겹쳐 찾아온다’라고 했습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 바로 그것입니다. 단언컨대, 지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약 2년 동안 우리 가족이 겪었던 상황을 요약하자면, 화불단행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1995년생으로 어릴 때부터 군대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중견 건설업체에 다니셨고, 어머니는 역시 병원에서 근무하셨습니다. 덕분에 제가 대학교 졸업 후 취준생이라는 명목으로 한참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집안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손을 다치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2020년 3월 23일 월요일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제 방에서 인터넷 게임을 하던 중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곧바로 전화를 받았지만, 스마트폰 너머에서는 당혹과 걱정이 섞인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 직장 동료라고 밝힌 아저씨께선 “너희 아버지가 왼손을 크게 다치셨다. 출혈이 심각해서 바로 근처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 바로 오도록 해라”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즉시 어머니에게도 연락했지만, 대학병원 업무 특성상 전화를 받기 어려웠던 탓에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즉시 옷을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지가 이송됐다는 병원에 도착하자 저에게 전화를 걸었던 아버지의 동료분께서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즉시 응급수술에 돌입한 아버지께서는 2시간 정도 지나 수술실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저는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렸고, 이내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하얀 붕대를 붉게 물들인 아버지의 왼손에서 익숙한 ‘새끼손가락’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왼손 소지(小指)를 잃은 후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로부터 ‘개인의 과실이니까 산재 처리는 불가능하다’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사실상 ‘퇴직 선고’를 받으면서부터 아버지는 매일 밤 술을 달고 사셨습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고성과 누군가와 욕설 섞인 대화를 나누셨고, 울다가 웃다가 화내다 다시 한탄하기를 반복하셨습니다. 당시에 집에서 빈둥거리던 저는 차치하더라도, 빠르게 확산 중인 코로나19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병원 업무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매일 반복되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으셨습니다. 결국, 싸움은커녕 가벼운 말다툼도 하지 않으셨던 부모님께서는 언제부턴가 하루가 멀다시피 큰소리로 다투기 시작하셨습니다. 원래 좋은 일이 겹치면 좋은 순환이 됩니다. 선순환이라고 하죠. 반대로, 나쁜 일이 계속 겹치면 그것은 결국 악순환이 됩니다. 당시 저와 가족들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갑작스레 짊어지게 된 장애에 절망하셨고, 어머니는 코로나19 때문에 더욱 힘들어진 병원 업무에 시달리느라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매일 밤 술주정을 하시고, 어머니는 여전히 전화도 받지 못할 만큼 바쁘고 힘드시니, 저 역시 집에 있는 모든 순간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퇴사 이후 가장 역할을 하던 어머니마저 정기 건강검진에서 ‘자궁근종’ 판정을 받아 ‘자궁을 절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아버지의 수술비와 약값에 어머니의 수술비, 입원비까지 연달아 더해지자 통장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토록 다급한 상황임에도 편안한 백수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저는 여전히 변변찮은 아르바이트 하나도 구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무력감에 절망했습니다. 동시에 그제야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제는 정말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꼈지만, 역시나 문제는 ‘그래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는 했지만, 학점이 우수하거나 특별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지잡대 출신. 갖고 있는 것은 열정과 의지뿐이었던 제게 취업의 문은 쉽사리 열려주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저하까지 더해졌으니, 더없이 급한 현실과 달리 제 앞에 놓인 취업의 문턱은 높았고, 겨우 서류를 통과해도 매번 실패하게 되는 면접의 분위기는 차갑다 못해 냉랭할 지경이었습니다. 거듭되는 실패는 이내 관성처럼 굳어졌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과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손을 빌렸던 친척들에게 연락해봤지만, 처음에는 반갑게 전화를 받다가도 돈 이야기만 꺼내면 자신도 힘들다며 즉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아버지께선 당뇨 합병증으로 2차 수술을 하셔야 했고, 자신의 장애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회사와 법정 공방을 시작하셨습니다. 거기에 간호사 생활의 후유증 탓인지 어머니의 몸에서는 자궁근종 외에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제가 책임져야만 하는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아버지는 기약 없는 법정 다툼을 시작하셨고,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병원 신세를 지는 나날이 계속됐습니다. 뻔뻔한 친척들에 이어 마지막 남은 알량한 자존심까지 모두 버리고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정말로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너무 외롭고, 힘들고, 그냥 세상 모든 일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무능력한 자신의 처지를 마주해야 했던 당시의 제게는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취업은 되지 않았고 돈은 계속 필요한 시점에서, 지인의 소개로 서민금융진흥원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당장에 쓸 생활비가 급했던 저는 곧바로 1397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짧은 신호음이 지나가고 따뜻하고 친절한 음성으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묻던 상담원분의 목소리가 제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연락했던 ‘1397 서민금융 콜센터’는 저와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상담원분께 소개받은 햇살론 Youth 상품을 통해 가족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취업성공패키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취업역량 강화 및 연계를 지원하는 해당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국비로 나온 300만 원의 지원금 덕분에 저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동영상 편집 및 마케팅’ 분야를 공부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취업 경쟁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출퇴근 20분 거리의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에 마케팅 매니저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서민금융진흥원은 당시 생계자금과 취업 두 가지 모두 절실했던 저의 상황을 해결해주었습니다. 대출로 얻은 생계자금을 통해 어머니의 수술비를 해결할 수 있었고,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취업에 성공하여 취업성공수당으로 150만 원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생활비와 취업 지원 이상으로 중요했던 것은 ‘세상에 나 혼자’라는 절망감 속에 빠져 있던 저에게 안정감과 희망을 심어주는 버팀목이 되어줬다는 것입니다. 햇살론의 생계자금과 월급 덕분에 저는 아버지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산업재해 처리 ‘승소’ 판정을 받아내실 때까지 무려 8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뒷바라지를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작년 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시고 제2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큰 고비를 넘기시고 제가 취업을 하여 안정적인 수입이 생긴 결과 저희 세 가족은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다시금 웃으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에 거센 폭풍을 이겨낸 보답인 걸까요? 요즘에는 하는 일마다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취업한 스타트업은 최근 1년 사이에 큰 성장을 해서 처음에 네 명이었던 직원이 어느덧 스무 명을 넘겼고, 저 역시 능력을 인정받아 나이에 비해 제법 많은 월급과 성과급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햇살론을 통해 대출받은 지원금은 취업 후 10개월 만에 전액 상환했습니다. 2022년 현재, 아버지께서는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치료비와 입원비를 포함해 많은 부분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으셨고, 친구분의 소개를 받아 경기도 파주시 건축 현장 감독직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수술을 잘 마치고 명예롭게 정년 은퇴한 어머니께서는 대학병원과 요양 보호시설을 오고 가며 요양보호사로서 바쁘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돌이켜보건대, 작년과 재작년은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모두가 저마다의 사정과 문제를 안고 있었으니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줄 여력이 없었으니까요. 당시 부모님께서는 정말로 진지하게 이혼을 생각하고 계셨고, 저는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과 현실에 좌절하며 몇 번이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지난 삶을 나름대로 평탄하게 살아왔기에 돌발적인 변수, 불행에 대한 내성이 부족했던 것이리라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어려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다시금 서로를 보듬으며 미소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민금융진흥원, 1397 콜센터, 햇살론, 취업성공패키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십 대 후반에 불과한 나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다양한 이유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곤 합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과거에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해준 뒤 서민금융진흥원 사이트를 소개해줍니다. 그 당시에 제가 느꼈던 안정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 사람들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살다 보면 돈이라는 것이 사람을 힘들게 만들 때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가족, 친척, 친구를 찾더라도 그들 역시 저마다의 사정과 어려움으로 원하는 만큼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랬죠. 그 순간에는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 저와 여러분 곁에는 서민금융진흥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저희처럼 어려움을 겪는 혹은 언젠가 겪게 될 모두가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금 환하게, 진심으로 웃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 [나우뉴스] 축구에 진심인 中서 ‘월드컵 환자’ 속출…밤새 경기 관람하다 그만

    [나우뉴스] 축구에 진심인 中서 ‘월드컵 환자’ 속출…밤새 경기 관람하다 그만

    전 세계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는 가운데, 정작 자국의 축구팀은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국민들은 경기를 보느라 밤을 새는 곳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5일 중국 현지 언론인 지무뉴스에 따르면 최근 밤을 새워 경기를 관람하는 중국 축구팬들이 안면마비, 안구 건조, 결막염 등의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우한에 거주하는 한 26세 남성은 매일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연일 밤을 지새우고 출근한 탓에 피로가 누적되어 안면마비 증세를 보였다.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 그는 월드컵 개막 후부터 매일 밤새도록 월드컵 경기를 관람했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모든 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람한데다, 근무까지 계속하자 몸 건강에 바로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달 30일에도 미국 대 이란의 월드컵 경기를 본 뒤 두 시간가량 잠을 자고 오토바이를 타고 찬바람을 맞으며 출근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피곤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회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고, 눈을 감을 때 눈꺼풀의 움직임도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도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당일 오후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안면 마비였다. 병원은 침술, 안면 마사지 등으로 치료를 진행했다. 우한시의 한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안면마비는 안면신경의 마비로 입과 눈이 삐뚤어지고 눈꺼풀과 입술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등 기본적인 안면 동작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안면마비 환자가 예전보다 20% 늘었는데, 밤을 새워 월드컵 구경을 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남성 뤼 씨는 며칠째 밤을 새워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시야가 흐려지고 어두워지며 뒤틀리는 증상을 느꼈다. 검사 결과 그의 안구 황반부의 망막 장애 진단이 나왔다. 현지 전문가들은 겨울철에는 안면마비 발병률이 높은 시기이므로 노인뿐 아니라 젊은 층도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전문가는 “특히 밤을 새워 축구를 보는 팬들은 과로하지 말고 평소 운동과 식단에 주의해 면역력을 높여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최근 과도한 축구 관람으로 눈병 환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대부분 안구 건조증, 빨갛게 부어오르는 홍종, 결막염 등의 증상을 보인다며 각별한 주의를 요했다. 한편 중국인들의 월드컵 사랑은 남달랐다.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한 28세 남성은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면서 월드컵 경기를 관람했다. 다음날 아침 몸 상태가 좋지 않자 회사에 반차를 냈고 오후에 출근한 뒤 1시간 만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평소에도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남성은 월드컵이 시작하면서 밤도 새우고 음주까지 하다가 이런 결과를 초래해 당시에도 과도한 월드컵 경기 시청을 자제하라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이민정 중국 통신원 ymj0242@naver.com
  • 카카오 하나부터 열까지 다중화… 투자 3배로

    카카오 하나부터 열까지 다중화… 투자 3배로

    지난 10월 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한 서비스 장애 원인을 분석한 카카오는 문제의 핵심인 시스템 다중화와 관련, 이중화를 넘어 데이터센터 3개가 연동되는 삼중화 이상으로 고도화하겠다고 7일 밝혔다. 또 앞으로 5년 간 기존 대비 3배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와 대대적인 쇄신 계획도 내놓았다. 카카오는 전체 시스템에서 다중화를 설계·구축하고, 서비스 간 중요도 등을 고려해 복구 우선순위를 지정, 관리할 방침이다. 특히 고우찬 비상대책위원회 재발 방지대책 공동소위원장(카카오엔터프라이즈 부사장)은 “서비스 안정화를 위한 인재 확보와 기술 개발, 삼중화 이상의 재난복구(DR) 구현 등에 지난 5년간 투자한 금액의 3배 이상을 앞으로 5년간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DR 시스템을 삼중화 이상으로 고도화하면 데이터센터 한 곳이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이중화가 담보되는 안정성을 갖춘다고 카카오는 설명했다. 카카오톡 메시지 전송 기능을 전담하는 원격지 DR 데이터센터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 최고 정보기술(IT) 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을 영입, 대표이사(CEO) 직할의 IT 엔지니어링 전담 조직도 편성하기로 했다. 재해복구위원회도 만들어 대규모 장애에 대한 즉각 대응력을 강화하고, 대비 훈련도 강도 높게 시행하겠다고 카카오는 밝혔다. 2024년 완공을 목표로 구축 중인 안산 데이터센터는 전력·냉방·통신 등 3개 영역에서 ‘24시간 무중단 운영’을 위한 이중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실과 무정전전원장치(UPS)를 방화 격벽으로 분리, 배터리실에서 불이 나도 삼중의 진화 방식이 작동하게 해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와 같은 상황을 방지한다.이런 계획은 이날 카카오가 개최한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이프 카카오 데브 2022’에서 이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기조 연사로 나선 남궁훈 비상대책위원회 재발방지대책 공동 소위원장(전 카카오 각자대표)은 “카카오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ESG)의 최우선 과제는 ‘우리의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우리의 ‘부족한 이중화’는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결국 장애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외부인인 이확영 원인조사소위원장(그렙 최고경영자)는 당시 복구 지연 원인으로 데이터센터 간 이중화와 서비스 운영 관리 도구 이중화가 미흡했으며, 이중화 이후 가용 자원과 인력 부족 등을 꼽았다. 이 소위원장은 특히 이중화에 필요한 상면(데이터센터 내 공간) 부족이 가장 치명적이었다고 판단했으며, 사태 발생 초기 복구와 대응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 “이런 날 오다니” 안정환♥이혜원 겹경사

    “이런 날 오다니” 안정환♥이혜원 겹경사

    전 축구선수이자 MBC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안정환의 아들 리환(14) 군과 관련해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안정환 아내 이혜원은 7일 인스타그램에 아들 안리환 군 사진과 함께 긴 글을 올렸다. 그는 “초4부터 본인이 좋아 시작한 트럼펫!! 아빤 운동하는 거 싫어해서 공에 바람도 빼두고, 악기하는 거 머리아플까 싶어 공부했으면 했는데 싱가포르 가서도 혼자 오케스트라 들어가더니 한국 와서도 혼자 준비해서 대회 나가 상 타오고. 전공하고 싶다는 거 아직도 아빠는 노!!”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너무 알지만, 나도 너무 이해하고 아빠도 이해하고 아이도 이해하고... 원하는 거 하고 살자 하여 준비시켜 대회도 나가보고 하더니 떡 하니 받아온 상!! 결국엔 이런 날도 오네요”라며 “위너들 리사이틀!!! 미국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하게 됐어요!!! 저도 감회가 새롭고 아이도 너무 서고 싶던 무대. 바로 D-day 1이 왔어요!!!”라고 아들 리환의 최연소 카네기홀 입성 소식을 알렸다. 또 “최연소라는 점이 엄마 마음을 더더더더 불안하게 만드는 대목이지만 살면서 언제 이런 경험을 하겠어요. 초대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만족, 감사하지요”라며 벅찬 심경을 전했다.
  • “한국은 오로지 돈…” 떠나는 벤투 작심발언 남겼다

    “한국은 오로지 돈…” 떠나는 벤투 작심발언 남겼다

    “선수들 휴식은 필요 없고, 중요한 게 돈, 스폰서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의견은 ‘대표팀이 한국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는 겁니다.”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직전까지 일부 선수들이 FA컵, K리그 등을 치르느라 소속팀에서 혹사 수준으로 경기를 뛴 것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었다. 벤투 감독은 이미 지난 9월 한국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작심발언은 한국팀을 떠나기로 결정한 다음에 나온 것이기에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벤투 감독은 김진수(30·전북현대)의 몸 상태와 관련해 “좋지 않다. 그렇지만 좋지 않은 상태에 대해 놀랍지는 않다”며 “FA컵에서 30분경 부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경기를 뛰었다. 월드컵을 잃을 수도 있는 큰 리스크를 가지고 경기에 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문환(27·전북)도 마찬가지다. K리그 막판에 많은 경기를 소화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진수는 K리그 31경기와 FA컵 4경기,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8경기에 나섰고, 김문환은 리그 28경기, FA컵 5경기, ACL 6경기에 각각 출전했다. 여기에 A대표팀과 동아시안컵 등 대표팀 경기에도 끊임없이 부름을 받았다. 월드컵 출전이 기정사실인 이들은 시즌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했는데, 김진수는 부상으로 대표팀 훈련에 참여하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김진수의 부상의 원인으로 소속팀에서 당한 혹사를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벤투 감독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나 FA컵 등 3일 간격으로 열린 시즌 막판 K리그·FA컵 일정에 대해서도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다. 벤투 감독은 “사실 선수들 휴식은 필요 없고 중요한 게 돈, 스폰서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제 의견은 대표팀이 한국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8월에도 그런 걸 볼 수 있었다”며 “그 외에도 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길 원하는 것 같은데, 팀도 그렇고 선수도 그렇고 올바른 방식으로 도울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16강 지휘하고 떠나는 배경 12년 만에 한국 축구를 월드컵 16강으로 이끌고도 벤투 감독은 4년 4개월 만에 한국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벤투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인 2018년 8월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4년 넘게 팀을 이끌어오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벤투 감독은 6일 “선수들과 대한축구협회 회장에게 내 결정을 말했다”면서 “결정은 이미 지난 9월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벤투 감독은 4년 뒤 북중미의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국이 공동 개최하는 2026년 월드컵까지 계약기간을 보장해주길 바랐지만 협회는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만 재계약한 뒤 성적에 따라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벤투 감독에게 제시했다. 결국 양측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벤투 감독도 이때 마음의 정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태극전사 “아쉽지만 감사…응원할 것” 태극전사들은 아쉬움 속에서도 감사함을 전하며 앞날을 응원했다. 대표팀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4년 동안 감사하다는 인사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손흥민은 “감독님이 어떤 축구를 하시는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많은 분이 의심하셨는데, 결국엔 월드컵에서 저희가 좋은 모습을 보이니 박수를 쳐주셨다”며 “어떻게 보면 4년 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우리 선수들 몸에 익은 거다. 이런 부분을 잘 인지하고 더 앞으로 잘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감독님은 항상 선수들을 보호해주고 생각해주셨다. 감독님이 오시고서 주장을 맡았는데,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이별이) 너무 아쉽지만, 감독님의 앞날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황인범(올림피아코스)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아쉬워했다. 황인범은 “감독님은 내게 정말 감사한 분이다. 많은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하다”라며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 선수를 왜 쓰냐’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감독님이었다면 흔들렸을 텐데도 저를 믿어주셨다. 그분으로 인해 제가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공격수 조규성(전북)도 “감독님이 선수들과 한 명씩 악수하실 때 나도 눈물이 나왔다. 정말 슬펐다”며 “감독님과 코치진이 없었다면 내가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사했다. 풀백 김진수는 “한국 축구를 위해서라면 한 분이 이렇게 길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 축구에 진심인 中서 ‘월드컵 환자’ 속출…밤새 경기 관람하다 그만

    축구에 진심인 中서 ‘월드컵 환자’ 속출…밤새 경기 관람하다 그만

    전 세계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는 가운데, 정작 자국의 축구팀은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국민들은 경기를 보느라 밤을 새는 곳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5일 중국 현지 언론인 지무뉴스에 따르면 최근 밤을 새워 경기를 관람하는 중국 축구팬들이 안면마비, 안구 건조, 결막염 등의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우한에 거주하는 한 26세 남성은 매일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연일 밤을 지새우고 출근한 탓에 피로가 누적되어 안면마비 증세를 보였다.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 그는 월드컵 개막 후부터 매일 밤새도록 월드컵 경기를 관람했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모든 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람한데다, 근무까지 계속하자 몸 건강에 바로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달 30일에도 미국 대 이란의 월드컵 경기를 본 뒤 두 시간가량 잠을 자고 오토바이를 타고 찬바람을 맞으며 출근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피곤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회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고, 눈을 감을 때 눈꺼풀의 움직임도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도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당일 오후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안면 마비였다. 병원은 침술, 안면 마사지 등으로 치료를 진행했다. 우한시의 한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안면마비는 안면신경의 마비로 입과 눈이 삐뚤어지고 눈꺼풀과 입술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등 기본적인 안면 동작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안면마비 환자가 예전보다 20% 늘었는데, 밤을 새워 월드컵 구경을 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남성 뤼 씨는 며칠째 밤을 새워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시야가 흐려지고 어두워지며 뒤틀리는 증상을 느꼈다. 검사 결과 그의 안구 황반부의 망막 장애 진단이 나왔다. 현지 전문가들은 겨울철에는 안면마비 발병률이 높은 시기이므로 노인뿐 아니라 젊은 층도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전문가는 “특히 밤을 새워 축구를 보는 팬들은 과로하지 말고 평소 운동과 식단에 주의해 면역력을 높여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최근 과도한 축구 관람으로 눈병 환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대부분 안구 건조증, 빨갛게 부어오르는 홍종, 결막염 등의 증상을 보인다며 각별한 주의를 요했다. 한편 중국인들의 월드컵 사랑은 남달랐다.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한 28세 남성은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면서 월드컵 경기를 관람했다. 다음날 아침 몸 상태가 좋지 않자 회사에 반차를 냈고 오후에 출근한 뒤 1시간 만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평소에도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남성은 월드컵이 시작하면서 밤도 새우고 음주까지 하다가 이런 결과를 초래해 당시에도 과도한 월드컵 경기 시청을 자제하라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 스페인 승부차기 하나도 못 넣어 모로코에 8강행 양보

    스페인 승부차기 하나도 못 넣어 모로코에 8강행 양보

    모로코가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물리치고 8강 진출의 위업을 이뤘다. 처음 출전한 1970 멕시코 대회 이후 8강에 든 것은 처음이다. 스페인은 승부차기에 나선 세 선수가 하나도 그물을 출렁이지 못해 수모를 당했다. 모로코는 7일(한국시간)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전을 정규시간 90분과 연장 전후반 30분 모두 0-0으로 마친 뒤 승부차기에 들어가 3-0으로 이겼다. 1986년 멕시코 대회의 16강이지금까지 월드컵 최고 성적이었다. 당시 16강전에서 로타어 마테우스에게 결승 골을 헌납해 서독에 0-1로 졌다. 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열린 이번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아랍 국가인 모로코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둔 이웃이자 식민 통치의 아픔을 선사했던 스페인과 맞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챙기는 겹경사도 누렸다. 이날 경기 전까지 모로코는 스페인과 역대 1무2패를 기록했다. 마지막 맞대결인 2018년 러시아 대회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2-2로 비겼다. 반면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2년 만의 우승을 노렸던 스페인은 예상보다 빨리 짐을 쌌다. 2018 러시아 대회 16강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개최국 러시아에 밀려 탈락했던 스페인은 두 대회 연속 16강에서 승부차기로 물러나는 악몽에 울었다. 무적함대는 2002 한일월드컵 8강전에서 한국에 승부차기로 눈물을 흘린 일도 있었다. 이날까지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에서 5연속으로 연장 승부를 펼친 스페인은 월드컵에서 두 번 연속 승부차기 끝에 탈락한 것도 특이했다. 스페인은 2018 러시아 대회 16강을 시작으로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16강, 8강, 4강에서 모두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만큼 해결해 줄 수 있는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얘기였고 이날 120분 무득점이 한마디로 보여줬다. 선축한 모로코의 첫 키커는 성공했다. 스페인의 첫 키커 파블로 사라비아는 연장 후반 막판 슈팅이 오른쪽 골대를 맞았는데 승부차기 킥은 왼쪽 골대를 맞혔다. 모로코의 두 번째 키커도 성공했는데 스페인의 두 번째 키커 카를로스 솔레르의 슈팅은 상대 골키퍼 야신 부누의 선방에 막혔다. 세 번째 모로코 키커가 실축하는 바람에 한숨 돌린 스페인의 세 번째 키커로 주장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킥을 부누가 또 한 번 몸을 날려 슈팅을 쳐냈다. 모로코의 네 번째 키커가 성공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스페인 키커 셋 중 누구도 골망을 출렁이지 못했다. 모로코가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전반 11분 프리킥 키커로 아슈라프 하키미가 직접 슈팅을 시도했다. 한 뼘 차이로 공은 골대 위로 향했다. 스페인은 전반 25분 모로코의 수비 실책을 틈타 빠르게 공격을 전개했다. 왼쪽에서 문전으로 크로스가 올라왔고, 가비가 마무리 슈팅을 날렸는데 보노의 선방에 막혔는데 오프사이드도 선언됐다. 1분 뒤 스페인은 또 좋은 찬스를 맞이했다. 뒤에서 올라오는 기가 막힌 패스를 마르코 아센시오가 부드러운 터치로 받아낸 뒤 바로 슈팅을 때렸는데 옆그물을 흔들었다. 전반 막판은 모로코가 공격을 주도했다. 42분 소피앙 부팔이 수비 둘을 제치고 왼발 크로스를 올렸는데 아게르드가 헤더 슈팅으로 연결했는데 골대 위로 공이 향했다. 축구 통계업체 옵타에 따르면 스페인은 1966년 잉글랜드 대회 이후 본선에서 가장 적은 전반 슈팅 수(1회)를 기록할 정도로 해법을 찾지 못했다. 후반 40분 모로코가 결정적인 기회를 날렸다. 후반 교체 자원 왈리드 삿디라가 좌측면에서 동료가 헤더로 떨궈준 공을 돌면서 슈팅으로 연결했는데 공이 얌전하게 골키퍼 우나이 시몬의 품에 안겼다. 스페인은 후반 44분 다니 올모가 돌파하는 과정에서 받칙을 유도해내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솔레르가 키커로 나서 먼 골대를 보고 크로스를 올린 것을 알바로 모라타가 공에 머리를 갖다댔지만 허공을 갈랐다. 결국 돌입한 연장 전반 5분 스페인은 스루패스를 낚아챈 삿디라가 골키퍼 보노와 일대일 기회를 맞았는데 슈팅이 약해 공이 보노 품에 안겼다. 스페인은 연장 후반 11분 모라타가 문전으로 달려 들어가는 안수 파티를 보고 전진 패스를 내줬는데 둘의 호흡이 맞지 않아 공이 그대로 라인을 벗어나 승부차기에 들어갔고 신은 모로코의 손을 들어줬다.
  • [월드피플+] 80세에 진 수십억 빚, 92세까지 리어카 밀며 갚은 中 할머니

    [월드피플+] 80세에 진 수십억 빚, 92세까지 리어카 밀며 갚은 中 할머니

    80세에 진 수십억 원의 빚을 10년에 걸쳐 상환하는데 성공한 92세 할머니의 눈물 겨운 사연이 화제다. 중국 저장성 리수이에서 직접 재봉틀로 짠 수공예 의류 제품을 리어카에 싣고 판매하는 올해 92세의 천진잉 할머니가 사연의 주인공이다. 천 씨는 지난 1983년 리수이에 대형 의류 공장을 설립해 한 때는 연매출 1000만 위안(약 19억 원) 이상의 돈을 벌어들였던 이 지역에서도 손에 꼽히는 여성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때였다. 당시 천 씨의 공장이 거래처와의 자금 회수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크게 휘청였고 이 때문에 그는 무려 2077만 위안(약 39억 원)의 큰 빚을 지게 된 상태였다. 어려움을 겪는 것은 천 씨의 사업체 뿐만이 아니었다. 이 일대 공장들이 모두 문을 닫고 파산 신청을 한 상태였던 것. 그러나 천 씨는 끝까지 채무액 전액을 상환하기로 마음 먹었다. 당시 지방 정부는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파산 신청시 채무액 상당부분을 탕감해주는 정책을 지원했었지만 그는 파산 신청을 하는 대신 부채액 전액을 스스로 갚아나가기로 결심했다. 이후 곧장 천 씨는 대형 공장 부지와 살고 있던 주택 두 채를 팔았고 이 돈으로 약 1800만 위안(약 34억 원) 상당의 대출금을 갚았으나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처분한 상태에서도 그가 감당해야 할 부채는 약 277만 위안(약 5억 2000만원)이 남아있었다. 그는 이를 다 상환하기 위해 무려 10년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노점상을 운영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천 씨는 매일 새벽 5시 일어나 작은 자전거에 연결된 리어카에 직접 만든 의류 제품들을 가득 싣고 거리로 나서기를 무려 10년이 되던 지난해 남았던 빚 전액을 모두 청산했다. 그가 91세가 되던 무렵이었다. 천 씨의 사연이 공개되자 저장성 정부는 ‘2021년 저장성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성 정부 관계자들은 “고령의 나이에 창업해 자수성하며 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천 씨의 사례를 잊지 말고 기념해야 한다”면서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그의 사연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화제가 되자 중국 네티즌들은 “노점상이 연평균 28만 위안 이상을 벌어들인다는 게 사실이냐”면서 “나도 당장 내일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노점상을 하겠다”고 반응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10년 동안 277만 위안이면 연평균 27만 위안이고 한 달 평균 2만 5000위안 남짓인데 이 돈을 갚은 것이 대단한 일이냐”면서 “빌려서 썼으면 갚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대단한 선행을 한 듯 치켜세우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는 등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냈다. 
  • “증세했다가 정권 바뀔라”…日 43조엔 방위비 증액 힘겨루기

    “증세했다가 정권 바뀔라”…日 43조엔 방위비 증액 힘겨루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내년부터 5년간(2023~2027년) 방위비를 모두 43조엔(약 411억원)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중국과 북한 등을 견제하기 위해 방위비를 대폭 증액한다는 의도이지만 예산 확보 방식에 일본 정부와 자민당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실제 증액이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5일 밤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과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을 총리관저로 불러 향후 5년간 방위비 예산 43조엔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8일에도 이들에게 5년 뒤 방위비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리라고 지시했는데 이날은 구체적인 숫자까지 명시해 예산 확보에 나서라고 주문한 것이다. 올해 일본의 방위비는 5조 4005억엔(약 51조 8000억원)으로 GDP의 0.96% 수준이며 역대 최대 규모다. 기시다 총리의 방침대로 방위비 예산을 5년간 43조엔으로 한다면 현 방위비의 1.5배 이상으로 증액해야 한다. 도쿄신문은 “방위비 증액은 대외적으로는 지역 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국내에서는 증세 등에 따른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시다 총리가 방위비 증액 목표치를 분명히 밝혔지만 문제는 재원 마련 방식이다. 국채 발행이냐 증세냐를 두고 일본 정부와 자민당 내에서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스즈키 재무상은 6일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향후 5년간의 방위비 재원에 대해 세출과 세입 모든 면에서 검토를 해야 한다”며 “방위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재원은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NHK는 “5년간 세출 조정으로 방위비 증액 재원을 마련하고 이후에는 증세를 통한 안정적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자민당에서 증세를 통한 방위비 증액에는 반대 의견이 많다. 주요 간부인 하기우다 고이치 정무조사회장은 이날 “(방위비 등) 모든 것을 세금으로 조달한다거나 내년부터 증세가 시작되는 듯이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대한 마이너스가 된다”라고 방위비 증세론에 선을 그었다. 이처럼 자민당이 증세에 민감한 데는 과거 자민당 집권 시절 소비세 인상 등을 시도하다 국민 반발에 부딪혀 총리가 여럿 교체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원인 중 하나도 소비세 인상에 있었다. 일본 내 여론 역시 방위비 증액에는 찬성해도 증세에는 부정적이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4일 유권자 1069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향후 5년간 방위비를 40조엔 넘게 대폭 증액하는 데는 ‘찬성’이 51%로 ‘반대’(42%)보다 많았다. 특히 방위비 증액 방식으로 ‘국채 발행’(38%)이 답변 비중이 가장 높았고 ‘사회 보장비 등 다른 예산 삭감’(30%), ‘증세’(27%)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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