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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이것은 아시아나 스포츠 상설 매장에서 산 트램펄린. 공중부양. 수양은 뛰고 있다. 흔들리고 있다. 조금씩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 전시제품이므로 모서리 변색 있음. 그러나 탄력 좋음. 아시아나 아저씨는 이것이 아주 튼튼한 물건이라고 말했고 정말 그렇게 생겼으니 괜찮겠다 싶지만 수양은 어쩔 수 없이 좀 무서워진다. 그녀는 변색한 트램펄린 모서리를 손톱으로 살살 긁으면서 물었다. 아저씨. 만약 부러지면 어떻게 할 건지? 그건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 아가씨…. 맞는 말이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가기 전에 튼튼하고 단단한 물건들을 생각하며 오십 분씩 뛰었다. 붉은 벽돌과 철제 의자 강화유리로 된 창문 그리고 칼…. 트램펄린 앞에는 높이 백칠십 센티미터짜리 거울이 있고 수양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열심히 뛴다. 이것은 은근히 땀이 나는 일이므로 겨울에는 얇은 반소매 티셔츠만 입고 뛰어야 하고 여름에는 다 벗고 뛰어야 한다. 뛰어오를 때는 정말로 공중부양하는 기분이지만 그것은 기분일 뿐이고 어쨌든 떨어지는 일이다. 수양이 영양제나 선크림이나 치약이나 칫솔이 아니라 칼을 파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라도 사 준다는 말이다…. 수양은 칼 판매상이다. * 수양은 택기와 알고 지낸 지 꽤 되었고 택기의 사육장에 가 본 적도 있다. 사육장은 동굴처럼 길고 캄캄해서 거기에 무엇이 있기는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빴다. 수양이 택기야 저렇게 하면 토끼가 살 수 있냐 너무 어둡지 않냐 물었을 때 택기는 원래 조명을 켜 두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어두운 거니 묻자 기주가 깜박한 거라고도 했다. 사육장 입구에는 파란색 파라솔이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탁자와 바퀴 달린 접이식 침대, 플라스틱 의자를 두었다. 의자에는 헐렁한 러닝셔츠와 익은 노른자색 사부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늘어져 있었는데, 수양은 그 사람이 말로만 듣던 기주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택기의 둔하고 쓸모없는 동생 기주. 네가 바로 기주다. 기주는 고개를 뒤로 기울인 채 눈을 감은 모습이었고 무릎 위로 까만 총이 놓여 있었다. 택기야 저거 진짜 총이냐. 비비탄총이지. 그렇구나 난 또. 정오를 지나던 때였으므로 하늘을 향한 기주의 얼굴은 서서히 달궈지는 중이었다. 그늘을 벗어난 얼굴 위로 노랗고 깨끗한 햇빛이 일렁거렸으니 기주는 잘 먹고 잘 자라는 중인 아이처럼 보였다. 스포츠머리에다 늘 하얀 두건을 쓰는 택기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수양은 기주의 뺨 위로 조심스레 검지를 얹었고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따듯함을 느꼈다. 택기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사육장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그의 표정은 중요한 약속을 앞둔 사람처럼 신중하고 뻣뻣했다. 기주는 그때까지도 절대 깨지 않았으므로 수양은 택기야 기주가 졸고 있어… 하고 작게 속삭였다. 택기는 기주가 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잿빛 토끼는 몸집이 컸다. 그냥 큰 게 아니라 아주 컸다. 택기는 자이언트 토끼라고 말했다. 크고 따듯하고 순한걸. 택기야 이 토끼는 정말로 순하다고. 털에 파묻힌 토끼의 눈이 마름모 모양이었기 때문에 수양은 토끼의 미간을 마름모꼴로 문질렀다. 몸집이 큰 것과는 별개로 토끼는 부드럽고 무른 표피를 가져서 조금만 세게 쥐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수양이 토끼도 우는가 어떻게 우는가 기억이 나지 않네 하자 택기는 토끼를 가리켜 커서 문제다, 크고 소리도 없어서 문제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게 왜 문제야. 커야 더 좋지. 너는 토끼로 요리하는 요리사니까 커야 좋은 거지. 개새끼들이 도망을 간다고. 토끼는 개새끼가 될 수 없었지만 택기는 달리 부를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도망을 간다니 탈출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탈출해. 이렇게 큰데. 크기가 이런데. 가끔 유연한 토끼들이 있다고 해도 토끼는 액체가 아니므로 수양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택기가 하는 탕집은 사육장과 마주 보고 있고 탕집 주방 쪽창은 사육장 입구를 향해 나 있었다. 택기는 하얀 두건을 쓰고 방수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탕을 끓인다. 매일 그렇게 한다. 그러다 보면 택기의 몸에서는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수양은 택기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택기가 한참 탕을 끓이다가 쪽창을 쳐다보면 토끼 두어 마리가 잔디밭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택기와 단번에 얼굴이 마주치고 어떤 때는 뒷모습이 보이지만, 뒤돌아 있던 놈도 언젠가 택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어 있고 그러다가 산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택기는 개새끼들이 사람을 놀릴 줄 안다고 싫어했다. 사실 토끼는 번식이 빠른 동물이라서 두어 마리가 없어진다고 문제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택기는 기주더러 탈출하는 놈들을 되는 대로 잡아내라고 거기에 앉혀 두었다. 기주는 그동안 뭔가를 잡아낸 적이 없다. 쟤는 아무것도 못 잡아. 택기가 말했다. 기주는 여태껏 바닥에만 비비탄을 쏘아 댔기 때문에 기주가 앉은 부근으로는 잔디가 자라지 않았고 살짝 젖은 토양이 드러났다. * 수양은 이제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지만 원래는 여기저기에서 잘 팔고 다녔다. 모르는 집의 문을 두드리고 칼 세트를 재빠르게 보여 준 뒤 현관에 걸터앉아서 800방짜리 숫돌에다 느릿느릿하게 칼을 갈고 이것 보세요 참 쉽지요 하는 일을 잘했다. 배낭에 챙긴 A4 용지 다발 중 한 장을 꺼낸 뒤에 막 갈아 낸 칼로 비스듬히 잘라 내고 한번 해 보세요 정말 부드럽고 예리하지요 하는 일도 잘했다. 가끔은 몇 달 전에 팔았던 집에 가서 또 팔아 내고 이번에는 업그레이드되었으니 다르다고 거짓말하는 일도. 그런 일을 못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의 집에 갔기 때문인데, 그가 원로 마술사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는 특히 손도 대지 않고 멀리 있는 폭죽을 터뜨리는 마술을 잘했는데 그것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게 없어서 터뜨리고 터뜨리다 귀가 먹었다고 했다. 어쨌든 수양은 원로 마술사쯤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수양이 아무리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해도 칼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수양은 그날 처음으로 지구대에 가 보았는데, 눈썹이 짙고 목소리가 큰 박 순경은 그냥 말하는 것이지만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는 볼륨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알아야 해요 하며 조금은 간절한 표정으로 수양의 손을 꼭 붙잡았다. 박 순경의 손바닥이 참 축축해서 수양은 이 사람 겁이 많은 사람이잖아 생각했고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칼 파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래도 수양은 칼 파는 데 재능이 있었고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지구대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하며 트램펄린을 뛰었다. 뒤통수가 팽팽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자 수양은 앞으로도 트램펄린 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멈추고 싶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기운이 빠져서 잠들었다. 다음 날에는 오전 다섯 시에 잠에서 깼다. 잠 없는 노인들이나 일찍 나가는 공장 사람들한테는 그만큼 이른 시간에 찾아가서 칼을 파는 수밖에 없었으니 수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그것이 그만 몸에 익어 버린 것이다. 잠자는 동안에는 땀을 조금 흘렸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랬다. 수양은 택기가 토끼탕을 잘 끓인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택기가 만든 탕을 먹어 본 적이 없고 그때까지 택기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지만, 오가는 길에 택기의 탕집을 자주 보았고 거기에는 늘 사람이 많았으니 그런 집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국도가 있고 작은 산도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그 작은 산이 국내 100대 명산 중 칠십 번째나 팔십 번째쯤 되었다. 수양은 그 산이 얼마나 명산인지 궁금했다. 지구대에 다녀온 다음 날, 수양은 일찍 일어나게 되었으니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싱크대에서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씻어 낸 뒤 밖으로 나가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무척 여유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분한 음악을 듣고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신 뒤에 산책하기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어 가며 걸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갈 때 주로 흰옷을 입었는데, 가장 친절하고 상냥해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위협적인 색깔이 바로 흰색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그런 식으로 칼을 팔지 않게 되었으나 자연스레 흰 옷을 골라 입었다는 사실이 좀 웃겼다. 어디서 자꾸만 하나둘하나둘하나둘하나둘 하고 조금도 쉬지 않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양은 곧 택기의 탕집 앞 잔디밭에 다다랐고 거기에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을 맞춰 잔뜩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저건… 새천년 체조잖아. 수양은 원래 칼을 잘 파는 사람이었지만 그날처럼 칼을 많이 팔아 본 적은 없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구호는 알맞게 외치는데 동작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 체조를 끝내고 명산이라는 산을 탄다고 우르르 사라졌을 때, 수양은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해, 하며 걷던 길을 다시 걸었고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로 들어섰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만두를 팔았는데 택기의 탕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장사가 잘됐다. 여기까지 따라오기는 했으나 산을 타기 싫은 아이들이 김밥과 만두를 먹고 있었고 산 타는 사람들만 노리는 일명 등산객 전문 린치족들이 교복을 꼬박꼬박 챙겨 입은 모습으로 담배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수양은 매운맛 만두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에 자리에 앉았다. 김이 나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잘라 먹으며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 칼을 팔아야겠어 하고 중얼거렸다. 김밥과 만두를 먹던 아이들에게 혹시 칼을 사겠니 물었지만 아이들은 무시했고 김밥에서 빼낸 단무지만 계속해서 찔러 댔다. 수양은 왠지 섭섭해져서 입을 쩝쩝 다셨다. 그래 역시 어른들에게 팔아야겠지…. 수양은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던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만두를 야금야금 베어 먹다가 벽걸이형 선풍기의 약풍을 맞으며 졸았다. 그러곤 결국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데 무려 여섯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렇게 작은 산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그만큼이나 걸린단 말인가. 알 수 없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양은 사람들이 손바닥을 짝짝 부딪치며 내려와서는 곧장 택기의 탕집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집으로 달려가서 칼 세트와 함께 A4 용지가 든 배낭을 챙겼는데, 그 사람들 앞에서는 종이를 자르는 시범 따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그런 것들을 챙기지 않았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하얀 두건을 쓰고 분홍색 방수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택기였다. 택기는 탕집 입구로 들어서려는 수양을 붙잡았다. 탕을 드시려면 예약을 하셔야 하는데요. 저는 탕 먹으러 온 사람 아니거든요. 그런 음식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왜 들어갑니까? 칼을 좀 팔고 싶어서요. 택기가 수양의 팔뚝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약간의 미소를 지었을 때 수양은 이 사람이 설마 나를 좋아하게 되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택기의 손바닥이 너무 두꺼웠고 반짝거리는 그의 분홍색 앞치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길 바랐다. 탕이 싫으면 뭘 좋아하시죠. 택기가 물었다. 저는 감자튀김을 좋아해요. 수양이 대답했다. 산을 좀 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주로 택기의 탕집에 모인다. 수양이 테이블 여러 개를 이어 붙인 곳으로 다가가서 제 칼을 좀 보시겠어요 하면 어어 그렇지 봐야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양의 칼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었고 일주일에 두어 번 방영하는 홈쇼핑 식칼과 유사한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수양이 칼을 꺼내 들 때마다 마술을 본 것처럼 좋아했다. 제 칼을 좀 사시겠어요 하면 당연히 사 줘야지 이걸로 기필코 그놈을 죽이고 말리라 그런데 아가씨는 누군가? 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칼을 사게 되어 있다. 수양은 매일 아침 몸을 앞뒤로 흔들며 산책하게 되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는 사람들을 지켜본 뒤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조금 식은 만두를 먹었고 할 일이 없어지면 린치족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려 했다. 그들은 늘 길쭉한 막대 모양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그게 어떤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택기는 수양의 칼을 사지 않았지만 매일 웃는 얼굴 모양의 동그란 감자튀김을 내 주었고 수양은 그것을 천천히 먹어 치웠다. * 기주야 너는 왜 토끼를 잡지 못하니. 수양은 매일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으므로 기주의 얼굴도 매일 보았다. 택기는 두피부터 손등과 발가락까지 온몸에 땀이 많은 편이었는데 기주는 그렇지 않았다. 기주는 파라솔 아래 탁자 앞에서 밥을 먹고 침대나 플라스틱 의자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고 하여튼 그런 식으로 종일 바깥에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바짝 마른 풀 냄새나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 같은 것만이 났다. 밥을 먹고 나서는 바닥에다 비비탄총을 쏘고 종아리나 팔뚝 주위로 부채질을 조금 하다가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를 한참 붙잡고 있었는데 빈칸을 모두 채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수양은 접이식 침대 위에 누워서 천천히 복식호흡을 했다. 언젠가 그것이 송장 자세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편안해진다. 너는 왜 토끼를 못 잡냐고. 몰라. 그걸 왜 몰라, 보고 있는데 왜 몰라. 그냥 잠깐 눈을 감았는데 밖으로 나와 있었어, 저기에 서 있었어. 토끼를 왜 좋아하나. 누가? 여기 오는 사람들이. 정력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대. 토끼는 조루라던데?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일간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가 바람에 날아가도 기주와 수양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내일은 또 다른 스도쿠가 배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주는 공중에서 나부끼는 스도쿠 종이를 보며 이마를 조금 구겼고 모든 것이 무게중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심장은 아주 미세하게 왼쪽으로 치우친 상태이므로 무게중심도 왼쪽에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모두의 왼쪽 엉덩이는 조금 더 눌려 있고 작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왼쪽으로 살짝 돌아앉게 되어 있다고. 안 그래도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편인데, 기주는 특히 자신이 왼쪽으로 조금씩 돌아앉는 상상만 해도 본능처럼 왼쪽으로 이끌리고 그래서 자꾸만 왼쪽을 주시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토끼들은 하필 오른쪽에서만 출몰하고 그런 이유로 도저히 놈들을 발견할 수가 없다고. 그렇지만 기주가 신경을 써서 오른쪽으로 돌아앉아 보아도 변하는 건 없었다. 어떻게 해도 토끼들은 탈출하고 기주는 밥을 먹고 있었거나 스도쿠를 풀고 있었거나 눈을 감고 있었거나 무게중심 때문이었거나 무슨 무슨 이유로 토끼를 발견하지 못했다. 뒤늦게 산 쪽으로 멀어지는 토끼를 발견하고 아아아아 토끼가 나타났다 지금은 멀어지는 중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택기가 뛰어나오지만 이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뒤였다. 수양은 사라진 토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전에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졌다. 이만큼이나 사라졌으면 이미 산에는 토끼가 천지일 텐데 산을 타는 사람들은 자꾸만 택기의 탕집에 와서 토끼탕을 먹었고 산을 타다 토끼를 본 사람은 없다고 하니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수양은 보이지가 않네 여기로 좀 와 봐라 이리 좀 와라 하며 산을 오르다 페도라를 만났는데, 그가 페도라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페도라는 까맣고 큰 페도라를 쓰고 있었고 걸친 옷이 없었다. 아주 깊은 페도라여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페도라는 줄무늬 사각팬티만 입은 모습으로 큰 소나무를 껴안고 있었는데 팔이 긴 편이어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수양이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 만난 린치족들을 떠올리며 옷까지 모두 벗겨 가다니 정말 답도 없는 놈들이로군, 하자 페도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산을 타고 또 탔지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워져서 옷을 한 꺼풀씩 벗었고 이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벗을 때마다 길을 잃는 기분이더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다만 뭐라고 했던가요…. 페도라는 여기에서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더니 얇고 연약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는 아주 건강해 너무 건강해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면서 나를 지나쳤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외우는 일은 잘해서 말이죠. 밤이 되니 추워져서 나무를 안고 싶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모자와 팬티를 가리켰다. 이건 제 자존심이라 남겨 두었습니다. * 택기의 손은 두껍다. 손등은 거칠지만 손바닥은 부드러워서 영 이상한 손이다. 수양은 택기가 탕집 안에서 날카로운 칼을 다루다 그 손까지 어떻게 해 버리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산을 타고 온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들기 때문에 괴로울 만큼 시끄럽고 그것은 모두 택기의 탕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택기는 자주 지치고 늘어진다. 늘어진 택기는 수양의 집에서 잠을 잔다. 택기의 탕집과 택기와 기주가 사는 집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택기는 가끔 수양의 집에서 자겠다고 성가시게 굴고 징징거리다 결국 그렇게 했다. 수양은 이제 칼 가는 시범을 보일 필요가 없지만 습관처럼 칼 가는 연습을 하고 트램펄린을 탔다. 그만 타. 왜. 나 머리가 아파. 이것만큼 긴장되는 게 없다고. 수양이 칼을 갈고 있으면 택기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허공에다 수양과 같은 동작으로 칼을 갈아 보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요리하는 택기는 두건을 쓰는 데다 표정도 굳어 있으니 어느 폭력배의 막내쯤으로 보이는데, 이럴 때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니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러다가 너무 집중하면 택기의 작은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지고 침이 떨어진다. 수양은 그때마다 택기의 목에 하얀 수건을 매 주었다. 아무리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도 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수건을 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택기는 칼 가는 시늉을 한참 하고 나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드러눕는다. 택기야 내일은 몇 마리나 잡냐. 아마 스물세 마리. 그렇구나 바쁘겠다. 택기와 수양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가까이 붙어 잔 적이 많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수양은 아무래도 칼 있는 집에서 하는 건 좀 그렇지, 하고 택기에게 말을 걸고 택기는 나도 방금 개새끼들 잡고 와서 좀, 이라고 대답한 뒤 눈을 감았다. 기주 말로는 자기 몸은 왼쪽이 더 무겁대. 걔는 원래 헛소리를 잘해. 나 어제 페도라를 봤어. 어디서 파는데. 아니 페도라 쓴 사람 봤다고. 어디서 봤는데. 산에서. 산에서 그런 걸 왜 쓰고 있어. 내가 박 순경을 불렀어. 박 순경은 왜. 데려가 줄 것 같아서 불렀어, 진짜 데려가더라. 택기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토끼를 잡아야 하고 수양은 흔들흔들 걷는 산책을 해야 하므로 그때쯤이면 수양이 이제 자자, 하고 그들은 잠을 잤다. 그런데 그날따라 택기가 수양의 팔뚝에 얼굴을 비벼 댔고 수양은 그것이 아주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택기의 얼굴이 언제부터 뜨거웠는지 궁금해졌다. 택기야 너는 왜 요리를 잘하냐. 사실 택기는 요리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탕집은 택기의 고모가 소유하던 것이었는데, 그녀는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기 전 택기와 기주의 얼굴을 조심스레 붙잡고 볼 키스를 해 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당시의 택기는 이미 어른이었고 그런 일이 시들했지만 어린 기주는 그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고모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생활력이 강했으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으므로 종일 동물을 관리하고 탕을 끓이는 일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제는 정말 견딜 수 없겠다고 느낄 때마다 탕집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고모는 하루하루 침실 방문을 잠그고 우는 일을 반복했으며 아주 먼 곳에 사는 친구와 긴 통화를 이어 가다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데, 수양은 도대체 그 고모가 어디로 떠났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될 건 뭐지 나는 거짓말을 안 하는데. 택기가 말했다. 택기와 기주는 그녀가 아주 먼 곳에 있다던 친구를 찾아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고모로부터 딱 한 번 받은 엽서에는 그런 소식이 적혀 있지 않았고 감기는 걸리지 않았니 하는 식의 시답잖은 안부와 함께 탕을 맛있게 끓이는 조리법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고모는 택기 앞으로 분홍색 방수 앞치마가 담긴 택배를 보냈다. 멀리 있는 곳에서 모텔 장사를 시작했으며 경치가 좋다는 내용의 쪽지를 함께 남기곤 연락이 닿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밤마다 전화를 걸었던 누군가가 정말로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고모가 보낸 엽서 앞면에는 어떤 지역의 문화재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는데 기주는 택기 몰래 그곳으로 찾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가 들킨 적이 있다. 어쨌든 택기는 돈 때문에 요리사가 되었고 자꾸자꾸 토끼를 잡고 자꾸자꾸 탕을 끓이다 보면 다 잘하게 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실망이야. 대대로 내려오는 명장 집안인 줄 알았는데. 택기는 이제 내가 명장이 되겠어 하고 속삭였다. * 수양은 아침 식사로 매운 컵라면을 먹은 뒤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날이 무척 더웠다. 이상하게도 수양은 배가 아주 헛헛한 기분이었고 뜨겁기도 해서, 어쩐지 저녁이 되면 배가 몹시 고파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원한 게 먹고 싶다 차갑고 시원한 게, 하며 걸었다. 탕집 앞에서는 하나둘하나둘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대신 몸을 꼭 죄는 회색 양복을 입은 페도라가 서 있었다. 그는 양손을 주먹 쥔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산 타는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바둑판처럼 깔끔한 간격을 유지하며 페도라를 마주 보았다. 그 속에서 러닝셔츠를 입은 기주의 뒷모습이 함께 보였다. 바닥에 놓인 시디플레이어에서 노래 전주가 흐르자 수양은 트로트잖아, 했고 가장 뒤에 서 있던 짧은 파마머리 여자가 뒤돌아 이건 샹송이야 아가씨, 하고 단호하게 속삭인 뒤 고개를 돌렸다. 페도라는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오른손을 올려 가슴 부근을 꼭 쥐더니 툭 하고 가볍게 무릎을 꺾어 쓰러지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가 똑같은 모션을 했다. 왼쪽 가슴 위로 손을 얹고 살며시 주먹을 쥔 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바짝 서 있던 잔디가 푹푹 꺼지는 소리가 얕게 들렸다. 움직임 없이 서 있는 것은 수양과 탕집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택기뿐이었다. 페도라는 곧바로 일어나 정자세를 취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유연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산을 타기 위해 흩어졌으며 페도라는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잰걸음으로 멀어졌다. 수양은 그날 밤에 페도라를 다시 만났다. 그는 기주와 함께 접이식 침대에 앉아서 사육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도라는 페도라를 쓰지 않은 채였고 품이 큰 티셔츠와 반바지에 납작한 가죽 슬리퍼를 신었다. 얼굴 끝이 뾰족한 데다 길쭉하고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서 물 위에서 흔들리는 수생식물 같은 모습이었다. 침대 옆 의자에는 박 순경이 등을 둥그렇게 말고 앉아 기주의 스도쿠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수양은 그 모습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저것이 진짜인가 생각했다. 날이 더웠으므로 휴게소에 들러 과일과 빙과류를 사 오던 길이었고 기주가 수양을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었기 때문에 그들 넷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기주야 택기는 어디 있냐. 사육장에. 또 토끼 잡으러 갔냐. 그래야 내일 팔지. 그렇긴 하지. 수양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페도라가 수양에게 수양씨 반갑습니다 하자 수양이 네 페도라씨, 하고 대답했다. 페도라씨와 박 순경님은 왜 여기에 있나요. 저는 지금 박 순경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요. 그날부터요. 수양은 페도라의 어조에서 어느 해안지역을 떠올렸으나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다. 기주는 수양에게 페도라가 극장에서 일했다고 일러 주었고 수양은 배우이시군요, 하며 페도라를 바라보았다. 페도라는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닌 것도 같다고 대답했다. 박 순경은 수양의 노란 장바구니에서 크림 맛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더니 수양의 칼로 참외를 깎아 탁자 위에 한 조각씩 올려 두었다. 모두 참외를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박 순경은 시간 간격을 두고 참외 다섯 개를 깎아 냈는데, 넷은 그것을 모조리 해치웠다. 탁자 한쪽에 쌓인 참외 껍질이 아주 얇게 깎인 모양새여서 박 순경은 그런 일에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페도라는 수양이 페도라씨, 하고 부를 때마다 턱 끝을 당기며 조금씩 새는 웃음을 참았다. 한때 자신이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고 했다. 그래서 배우라고요 아니라고요. 극장은 극장인데 영화를 보여 주는 극장은 아니고요…. 카바레라고 더 많이 부르던데요…. 그러면 가수인가 보군요. 그것도 애매한 것이 나는 노래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다른 것을 조금 더…. 페도라는 관광지에 있는 관광 카바레 출신으로, 밤무대 가수를 노렸으나 실력이 그만큼은 되지 못해서 코미디와 차력을 하다가 나중에는 가수 뒤에서 춤을 추는 댄서가 되었다. 그는 주로 샹송 가수의 뒤편에서 팔다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흐느적거리는, 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춤을 추었다.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 페도라를 쓰고 실크 셔츠를 입었으므로 전체적으로 잠들기 직전인 사람이 몽롱한 정신으로 침실이나 거실을 슥슥 걸어 대는 느낌이었다. 샹송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것과는 별개로 카바레에서 잘 통하는 장르는 아니었으니 샹송을 부르던 여자 가수와 페도라가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체로 에이급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세워지거나 펑크 난 공연을 메우기 위해 급조하는 식이었다. 원형 무대를 둘러싸고 앉거나 서거나 춤추거나 하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이런저런 욕을 하고 술이나 음식 던지기를 좋아했으며 샹송 가수와 페도라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면 유령처럼 사라지던 샹송 가수와 페도라가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게 된 것은 어느 날 페도라가 춤을 추다 크게 미끄러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춤에는 정교함이나 정신 집중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으니 그는 늘 언제쯤 이따위 춤을 그만두게 될 것인가 골몰하며 춤을 추었다. 그 일은 다만 페도라의 정신이 다른 데 있었고 밑창이 닳아 본드 칠을 한 그의 구두가 미끄러운 무대 바닥을 견디지 못해 생긴 불상사였을 뿐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페도라가 마치 허공에서 날아온 강렬한 펀치를 맞고 쓰러진 사연 있고 가련한 남자로 보였다.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 샹송 가수는 엉덩이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클라이맥스를 불렀다. 샹송 가수는 주로 앙리코 마시아스의 ‘추억의 솔렌자라’를 불렀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민요를 빌려 만들어진 노래였고 그날 샹송 가수가 부르던 노래 역시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민요라는 것이 공동체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라고 페도라는 덧붙였다. 그 노래는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프랑스인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 보지도 못했을 곳이 솔렌자라였지만 어느새 솔렌자라는 모두에게 추억의 솔렌자라가 되어 있었다. 페도라가 쓰러지자 사람들이 무대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이내 샹송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렸다. 무대 아래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안내요원은 두 손을 입가로 모은 뒤 야 이 새끼야 계속해, 계속하라고. 멈추지 마!라고 외쳤다. 안내요원과 페도라는 가끔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가 주춤거리며 일어서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날부터 샹송 가수와 페도라는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며 완벽한 B급이 되었다. 페도라는 완벽한 B급이 된 이후로 춤을 그만두고 마임을 했다. 주된 특기는 역시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화살 맞는 남자’를 가장 잘했다. 어떤 식으로 화살을 맞게 되는지는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덜떨어진 듀오’가 무대에 오르면 페도라는 먼저 무대 앞으로 한 발짝 나서서 말했다. 오늘은 도망치다 화살을 맞는 소년입니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 대신 화살을 맞는 남자입니다 하는 식이었다. 페도라는 관광 카바레의 유명 인사가 되어서 ‘덜떨어진 듀오’가 아닌 ‘페도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카바레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미 페도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어떤 이유로 화살을 맞는 콘셉트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페도라 역시 그 일을 자꾸만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자신이 화살을 수없이 맞아 본 가슴 아픈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감정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화살을 맞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어나느냐였는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많았다. 화살을 맞고 쓰러진 뒤에 재빨리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 외에도 아주 천천히 일어나거나 몸을 조금씩 굴려 일어나거나 하는 많은 방식이 있었다. 화살을 맞는 모습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보다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는 일이 중요했다. 크고 동그란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은 무대 앞 바리케이드에 달라붙어 페도라를 향해 다트를 던지는 듯한 가벼운 자세로 툭툭 한 손을 뻗거나 활시위를 당기는 척했고 그러면 페도라는 타이밍을 노려 바닥으로 주저앉아야 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사람들이 외치는 순간 알맞은 자세로 일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느 틈에 관광 카바레 포스터에는 깊고 검은 페도라를 쓰고 하관만을 드러낸 페도라가 매력적으로 미소 짓는 측면 모습이 들어섰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페도라는 무조건 일어난다’였다. 사람들이 ‘화살 맞는 남자’를 원한 것은 물론이고 페도라 역시 그런 일에 사로잡혔으므로, 그는 넉넉한 실크 셔츠 대신 흰색 쫄쫄이만을 입고 무대에 서게 되었다. 쫄쫄이는 페도라가 자세를 달리할 때마다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을 치밀하게 보여 주었다. 무대 조명 아래에서 길쭉하고 마른 페도라는 석고상처럼 보였다. 페도라는 그날 아침 택기의 탕집 앞에서 ‘화살 맞는 남자’를 시도할 때 입은 양복이 박 순경의 것이라고 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를 찾느라고 고생했습니다. 그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기주는 페도라를 향해 떼돈을 벌었냐고 물었다. 물론 그렇지요. 페도라가 답했다. 페도라가 점차 이름을 알리면서 샹송 가수는 잊히게 되었다. 그녀는 카바레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한 날 분장실로 페도라를 불러내었고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다가 화살이나 맞아라…. 그는 그날의 분장실과 샹송 가수를 상기하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끝내줬지요. 그는 잠시간 굉장한 화살을 맞은 기분을, 그것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화살이라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고 ‘페도라’로 사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이제 밝은 낮부터 일하는 직업을 얻고 싶어졌으므로 골목길에 커피숍을 차렸는데, 그곳은 분명 커피숍으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또 다른 카바레가 돼 버리고 말았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종종 무리 지어 커피숍에 들렀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 페도라가 내린 커피를 음미하고 얌전히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에이프런을 두른 바리스타 페도라의 구역을 침범했고, 손수 커피를 내려 마신 뒤 커피값과 팁을 금고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장소는 달라졌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페도라는 또다시 화살 맞는 남자가 되어서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매일 아침 일찍 경직된 얼굴로 찾아와서 페도라의 쇼를 관람한 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커피숍을 접고 책 대여점과 노래 연습장을 차례로 열었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끝으로 번 돈을 모두 까먹은 페도라가 백화점 주차요원이 되었을 때는 그가 들고 있던 주홍색 경광봉마저 화살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는 멀리 도망쳤고 그렇게 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들은 아주 캄캄한 시간까지 파라솔 아래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줄곧 무덥고 눅눅했다. 페도라의 이마에서 땀이 죽죽 흘러내려 턱 끝에 매달렸다. 기주는 비비탄총을 매만졌고 수양은 사육장 천장에 달린 노란 조명을 바라봤다. 박 순경이 수양씨 아직도 칼을 파신다고요, 하고 물었다. 정말 이상하시네 나한테 왜 자꾸 그러세요. 수양은 억울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저 사실 산을 잘 탑니다. 순경님이 산을 잘 타는데 나더러 어쩌라고요. 저도 린치족이었습니다. 뭐라고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박 순경은 코끝을 조금 긁적이다 또다시 수양의 장바구니를 뒤적였다. 이제는 깎아 먹을 참외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날씨가 참 덥네요 같은 말만 몇 번 더 했다. * 페도라는 매일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나타났고 사람들은 새천년 체조를 하는 대신 화살 맞는 사람들이 되어 갔다. 쓰러졌다 일어나는 순간에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기 때문에 모두 흥분한 모습으로 크게 숨 쉬었다. 방수 앞치마를 두른 택기도 종종 수양과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주로 산 타는 사람들 한복판에서 왼쪽 가슴을 그러쥐고 쓰러지는 기주를 구경했다. 택기야 기주가 제일 열심인 거 아냐. 쟤가 얼마나 땀이 없는데 저렇게 축축해지다니. 택기는 가만히 기주를 보다 사육장으로 걸어 들어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시디플레이어의 노래는 한 시간가량 반복 재생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한 시간 동안 화살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수양은 이른 오전마다 택기의 탕집 앞에 서서 기주와 페도라를 번갈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런 뒤에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갔다. 페도라는 일이 끝난 후에 시디플레이어를 챙겨 신속하게 걸었다. 아무래도 박 순경과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한 속도일 거라고 수양은 생각했다. 페도라의 ‘화살 맞는 남자’가 또다시 유명해지자 화살 맞는 사람이 되겠다는 이들은 끊임없이 늘어났다. ‘화살 맞는 산악 동호회’ 슬로건이 걸린 전세버스가 페도라를 찾아온 날에는 분반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먼저 맞는 조와 나중에 맞는 조로 나뉘었다. 그날의 페도라는 이전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모든 일을 마친 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쪽으로 걸어가는 수양을 불러 세웠다. 수양씨, 칼을 파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페도라가 입가를 우물우물 달싹였다. 나를 죽여 주십시오…. 수양은 그 순간 몹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칼 파는 사람이지 칼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하고 말한 뒤 침을 삼켰다. 잘 알고 있습니다. 페도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깊게 미소 지었다. 수양은 바로 그 미소가 한때 관광 카바레 포스터 속에 자리했던 그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수양씨, 나는 이제 평생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페도라는 느린 걸음으로 멀어졌다. 페도라의 속도가 아주 느렸기 때문에, 수양은 그의 크기가 도저히 작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걸었고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만두를 베어 먹다 다리를 덜덜 떠는 린치족과 눈이 마주쳤다. 이봐, 한가하면 우리랑 놀지 그래? 우리는 꽤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칼 파는 사람이다…. 어쩌라고! 크게 외친 린치족이 도망쳤다. 흐트러진 플라스틱 의자를 보던 수양은 애매한 기분이 되어서 린치족의 목소리를 되새겼다. * 페도라가 자취를 감춘 어느 아침에도 시디플레이어는 잔디밭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는 화살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착실히 열을 맞췄다. 기주가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택기가 사육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수양은 사육장 바깥으로 몸을 내민 잿빛 토끼를 단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는 그때 그 토끼구나. 너는 지금까지 계속 거기에 있었구나…. 잿빛 토끼 뒤로 몇 마리의 토끼들이 튀어나와 잔디밭 위에 선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다. 빠르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오랫동안 화살 맞기를 훈련한 기주는 교묘한 움직임으로 발밑의 토끼를 피할 수 있었으므로, 끊임없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고꾸라지다 분산되었다. 몇몇이 토끼를 잡기 위해 두 손을 죄며 바닥 가까이 몸을 숙였고 토끼는 매끄러운 몸짓으로 벗어났다. 택기가 기주의 비비탄총을 손에 들었지만 비비탄이 다 떨어져 틱틱 소리만 났다. 제법 많이 사라진 토끼 때문에 택기는 한동안 탕집 문을 닫았다. 박 순경은 꽤 오랜 시간 페도라를 찾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CCTV에 찍힌 그의 마지막 흔적을 확인한 뒤 조용해졌다. 화면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기주야 너는 이제 화살을 맞지 않니. 나는 이제 다 해냈어. 화살 맞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찾아오다 발길을 끊었다. 페도라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수양은 이제 페도라의 옆얼굴이나 자세, 목소리와 같은 것들을 묘연한 실루엣만으로 떠올렸다. 그러고는 택기와 잠을 자거나 트램펄린을 타거나 칼을 갈았다. 깰 생각 없이 느슨하고 풀어진 얼굴로 잠을 자는 기주의 뺨 위로, 수양은 그들이 아주 처음 만난 날처럼 손가락을 얹었다가 뗐다. 박 순경은 새로 마련한 자신의 과도로 참외를 깎았다. 그는 매일 누군가 내버려 둔 스도쿠를 채워 넣는 데 몰두했는데, 어떤 날에는 작은 탄성과 함께 저기에 토끼가, 하며 잔디밭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건 진짜 토끼야, 진짜다. 작게 속삭인 수양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나 방수 앞치마를 한쪽 어깨에 걸친 택기가 탕집 처마 아래에 서서 그곳을 바라보기만 했으므로 수양은 걸음을 멈추었다.
  • 한양 수복 도모, 삭녕군 주둔 중 왜적 기습에 순절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한양 수복 도모, 삭녕군 주둔 중 왜적 기습에 순절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류성룡은 ‘징비록’에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켰지만, 이순신을 제외하면 아마도 가장 공들여 서술한 인물이 경기 감사 심대(沈岱·1546~1592)가 아닐까 싶다. 심대는 세자를 교육하는 세자시강원의 종3품 보덕(輔德)이었다. 이후 경기 감사에 임명된 그는 사방에 왜적이 들끓는 상황에서도 숨어들기는커녕 깃발을 앞세우고 풍악을 울리며 당당하게 행차하곤 했다. 나아가 ‘한양 수복’을 공언하면서 도성 내부의 호응을 이끌었으니 왜적에게는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심대는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에 걸쳐 있던 삭녕에 머물고 있다가 왜적의 기습으로 순절했다. 심대는 1572년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요직을 섭렵한 대표적 문관이다. 그럼에도 경기도 용인에 있는 무덤 앞의 안내판조차 ‘심대 장군 묘역’이라 적어 놓았다. 선조실록을 보면 임진년 7월 17일 보덕 심대는 정3품 좌부승지로 승진해 임금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게 된다. 이후 7월 25일 ‘경기 감사 심대에게 가자(加資)하라’고 했으니 일주일 만에 종2품 관찰사에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삭녕에서 전사한 것이 9월 1일이니 감사 재임 기간은 한 달을 조금 넘는다. 한양 수복을 위해 군사를 정비하던 그의 의기(義氣)는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류성룡 “출전하면 어떤 위험도 안 피했다” 왜란 당시 심대의 행적은 류성룡이 쓴 글을 가감없이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징비록’은 심대를 두고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인 까닭에 왜란이 발발하자 분을 참지 못했다. 그때부터 명령을 받아 출전하게 되면 어떤 위험도 피하지 않았다’고 했다. 류성룡은 심대를 용기 있는 인물을 넘어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심대에 대한 깊은 애정마저 느껴진다. 조정의 핵심 요직에 있었던 두 사람은 실제 친분도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임진년 5월 3일자 선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이때 전라도 관찰사 이광이 병사들을 이끌고 올라오다가 공주에 이르러 경성이 벌써 함락되고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거둥했다는 소문을 듣고 드디어 병사들을 철수하여 본진으로 돌아갔다. 선조는 날마다 남쪽을 바라보며 원군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 역시 오지 않았으므로 개탄한 지 오래다. 보덕 심대가 자신이 남쪽으로 떠나 이광에게 명을 전달하겠다고 자청하자 선조가 매우 기뻐하면서 당상관으로 승직할 것을 명하니 심대는 울면서 굳이 사양했다.’ 심대는 왜군에 육로가 모두 끊긴 상황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심대는 결국 이광을 만났고 임금의 뜻을 전하며 질책하자 이광이 비로소 윤선각과 더불어 병사를 합쳐 다시 북상을 시작했다. 심대가 평양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전하니 선조와 조정은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북상한 이광의 전라도, 윤선각의 충청도, 김수의 경상도 등 하삼도(下三道)의 대군이 용인 광교산에서 소수의 왜군에게 패퇴했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삼도 근왕병이 허무하게 무너지자 서울 수복의 꿈은 깨지고, 조정의 희망도 사라져 갔다.이런 상황에서 심대가 아무도 입에 올리지 못하던 ‘한양 수복’을 다시 외치면서 어두워졌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류성룡은 가능성이 없는 듯해도 대의(大義)에 합당하면 기꺼이 뛰어드는 지사적 기질을 심대에게서 읽었다. 하지만 류성룡은 ‘징비록’에 심대의 한없는 자신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우려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숨기지 않았다. ‘징비록’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해 가을, 심대는 권징의 후임으로 경기 감사에 임명되어 출발했다. 가던 길에 안주에 머물고 있던 나를 백상루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야기 끝에 심대는 적을 만나면 직접 나가 싸우고야 말겠다는 뜻을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를 달래며 말했다. “옛말에 밭을 가는 일은 종에게 시키라고 일렀네. 그대는 선비라 싸우는 일에는 서투를 테니 그만두게. 대신 양주 목사 고언백이 대단히 용감하고 뛰어나니 그에게 군사를 넘겨주게. 그가 병사를 이끈다면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네. 부디 조급하게 덤비지 말게.”’ 제주 출신 고언백(?~1608)은 훗날 도성 탈환에 공을 세운 명장이니 류성룡의 판단은 정확했다. 당시 양주는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한 능침이 밀집한 고을이었다. 그러니 조선의 역대 양주 목사에게는 왕실의 중요한 능침을 지키는 엄중한 역할이 주어졌다. 고언백은 양주로 침입하는 왜적을 물리치는 전과를 여러 차례 거두며 경기도 방어사에 올랐다. 정유재란 때도 경기도 방어사로 전공을 세웠고, 선무공신 3등에 책록됐다. 선조실록에도 ‘경기 관찰사 심대가 조경을 대장으로 삼고, 최몽성에게 동로병마를 지휘케 하고, 고언백에게 서로병마를 지휘케 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심대가 류성룡의 조언을 아주 허투루만 들은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다.하지만 류성룡의 충고에 심대는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예, 예” 했을 뿐 별로 마땅치 않은 눈치였다고 ‘징비록’은 적었다. 류성룡은 혼자 떠나는 그가 걱정되어 활에 능숙한 군관 장모를 딸려 보냈다. 전쟁의 와중이라고는 하지만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된 인물이 혈혈단신으로 임지로 떠나려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류성룡이 심대에게 딸려 보낸 군관 장모(張某)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쉽다. 그는 삭녕에서 심대를 보호하다 장렬하게 순국했다. 번암 채제공(1720~1799)이 지은 심대 신도비 비명에도 ‘장성(張姓) 군관’이라고만 적혀 있다. 이후 류성룡은 말단 군관 장모와 연락병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한번은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경기도는 왜적의 피해가 극심합니다. 하도 불을 질러대고 약탈을 일삼아 성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전에 감사나 관원들은 깊은 곳에 숨어 지내거나, 다닐 때도 평복을 입어 왜적의 공격을 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감사는 왜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순시할 때 공문을 띄워 알리는 것은 물론 깃발과 나팔을 앞세웁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류성룡은 심대에게 부디 조심하라는 편지를 여러 차례 띄웠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심대는 “한양을 회복할 것”이라면서 군사를 모았다. 한편으로 심대는 도성 내부에 사람을 침투시켜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내응할 사람들을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도성 내부 사람들은 나중에 왜적에 부역했다는 죄를 뒤집어쓰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됐다. 연명부에 이름을 적어 보낸 도성 내부 사람이 하루에 1000명을 넘기도 했다. 경기 감사가 도성 내부와 소통하며 이곳저곳을 거리낌없이 내왕하니 왜적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들도 활개칠 수밖에 없었다. 심대가 삭녕군에 머물러 있을 무렵 정보를 수집한 왜군이 밤을 이용해 습격했다.●피신 권유에 “여기가 죽을 곳”이라며 활쏴 심대의 최후는 채제공의 신도비명에 자세히 적혀 있다. ‘그때 철원의 적이 얕은 여울을 몰래 건너 한밤중에 들이닥쳤다. 장씨 성을 가진 군관이 곧장 장막 안으로 들어가 “상황이 급박합니다. 빨리 나가서 뒷날을 도모하소서”했다. 공은 천천히 객사에서 나가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아 “여기가 내가 죽을 곳”이라며 왜적에 활을 쏠 뿐이었다. 왜적은 “감사는 어디에 있는가” 했다. 군관은 “내가 감사다”하고 외쳤고 왜적은 그의 목을 베어 갔다. 하지만 역적의 편에 선 자들이 감사가 아니라고 하자 마침내 심대와 삼종사관 윤경원, 강수남, 양지를 살해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시 ‘징비록’을 인용한다. ‘왜적이 물러가자 경기도 백성들이 심대의 시신을 거두어 삭녕의 임시 무덤에 모셨다. 며칠이 지나 왜적이 다시 나타나 시신의 머리를 베어 갔다. 그러곤 서울로 가져가 종로 한복판에 매달아 놓았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얼굴빛이 산 사람처럼 빛났다. 그의 충심에 감동한 사람들은 재물을 모아 왜병을 매수한 다음 머리를 찾아 강화도로 옮겼다가 왜적이 완전히 물러간 다음 시신과 함께 고향에 보내 장사 지냈다.’ 심대는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호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청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 이효리, 투병 중인 父 고백

    이효리, 투병 중인 父 고백

    가수 이효리가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달 31일 방송된 tvN ‘캐나다 체크인’에서는 이효리가 지인과 함께 캐나다로 입양된 강아지들을 만난 후, 나나이모 섬으로 향하며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강아지 ‘링고’를 입양 가족에 데려다준 이효리는 떠나는 차에서 “가족이 너무 화목해 보인다. 딸들이 행복해 보인다. 애들이랑 할머니도 있고 이런게 좋았다. 나는 오빠랑 둘만 사는데 부럽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이효리는 인숙에게 “아들 셋 낳은 비법 좀 알려줘”라고 말했다. 이에 인숙은 “남편을 뜨겁게 사랑하면 돼”라고 답했다. 이효리는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한테 연락을 자주 해야 하는데 잘 안 하게 된다. 전화하면 힘든 얘기만 하니까. 나도 같이 힘들어서”라고 말을 꺼냈다. 이어 “아빠 아파서 많이 힘들 텐데. 그런데 힘든데 집에서 끝까지 케어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존경스럽다”라며 투병 중인 아버지를 간병하는 어머니에 대해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효리는 “그때 아빠 잠깐 제주도 왔었을 때, 아빠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눈물이 났다. 그 동영상 보고 언니가 울었잖아. 누군가 나의 아픔을 같이 느껴주는 사람이 있더라”며 인숙에게 감사를 전했다. 인숙은 “너 없을 때 아버지께 ‘효리 어렸을 때 어떠냐’라고 물으니 엄청 자랑하시는 거야. 꿀이 막 떨어졌다”며 아버지와의 대화를 이효리에게 들려줬다. 이에 이효리는 “맞아, 아버지가 나는 한 번도 안 잊었어”라고 말했다. 이에 인숙은 “너는 존재 자체로 효도를 다 한 거지”라고 말했다.
  • “개 짖는다”…이기영 집서 구조된 반려동물 4마리 안락사 위기

    “개 짖는다”…이기영 집서 구조된 반려동물 4마리 안락사 위기

    택시기사와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기영(31)의 집에 방치된 반려동물 4마리가 닷새 만에 구조됐으나 안락사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쯤 이씨가 거주하던 경기 파주시 아파트에서 하얀 개 한 마리(믹스)와 고양이 3마리(샴·러시안블루·코리안숏헤어)가 구조됐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이씨의 아랫집 주민으로부터 ‘개가 짖는다’는 민원을 받고 경찰의 협조를 통해 동물들을 구출해 파주시에 인계했다. 이후 경찰은 이 씨에게 반려동물 포기각서를 받은 뒤 구조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반려동물들의 상태에 대해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사료를 공급 받지 못해 마르긴 했지만, 경찰들이 올라갈 때마다 먹이를 줘서 생각보다 상태는 양호했다”고 전했다. 파주시는 파주지역 내에는 동물보호센터가 없어 구출된 동물들을 경기 양주시에 위치한 사단법인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로 보냈다. 다만 문제는 이 동물들이 10일 안에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 된다는 것이다. 보호소는 구조된 동물이 10일이 지나도 입양 문의가 오지 않을 경우 원칙적으로 안락사를 시행한다. 협회는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입양 공고를 올려놓은 상태다. 협회 관계자는 “15일 정도의 기간을 두고 입양 대상자를 찾을 계획”이라며 “기간이 지나면 방침에 따라 안락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입양 절차 및 구출된 동물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공식 사이트(karma.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기영은 지난 20일 밤 11시쯤 음주운전을 하다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뒤 60대 택시기사를 파주시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후 시신을 옷장에 은닉한 혐의를 받는다. 또 지난 8월 현 거주지 명의자인 전 동거녀를 살해한 후 공릉천에 유기한 혐의도 있다.
  • MB 예방 권성동, “尹 정부 성공 뒷받침 잘하라 말씀하셨다”

    MB 예방 권성동, “尹 정부 성공 뒷받침 잘하라 말씀하셨다”

    권성동 의원은 사면·복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을 30일 예방한 뒤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는 것이 결국은 대한민국의 성공이기 때문에 뒷받침을 잘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전했다.권 의원은 이날 이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통령이) 본인의 개인적 소회를 말씀하셨고 ‘나라가 경제에 어려우니까 우리 모두 합심해서 나라가 잘되도록 기도하자’, ‘굳건한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하자’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권 의원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기성세대들이 그런 젊은 세대들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뒷받침을 잘하자”고 말했다. 권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교도소) 안에 계실 때 19세에서 23세 사이에 청년들로부터 수천 통의 편지를 받았고 일일이 답장을 다 해주셨다”며 “대화를 나누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공개 발언 하셨다시피 ‘나라가 잘되도록 기도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자기 역할은 거기에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번 사면으로 친이계 의원들이 다시 결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권 의원은 “친이·친박이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진 개념이라고 본다”면서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고 과거에 정치적 인연이 있던 분들이 서로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어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특별사면 관련 논란에 관해 권 의원은 “사면이라는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예외고 또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런 특전이기 때문에 사면이 있을 때마다 반대 여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면서도 “역대 모든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께서도 국민 통합 차원에서 사면을 단행했기 때문에 그런 의미 부여를 하면 좀 더 이해가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이 당 대표 출마를 권유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권 의원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여튼 이 정부가 잘 되는 것이 결국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길이니까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현역 정치인들이 뒷받침을 잘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권 의원은 차기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과 ‘친윤’(친 윤석열 대통령) 장제원 의원이 손을 잡는 ‘김·장 연대’ 관련 질문에는 “국민과 당원과의 연대 그리고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 코쿤, 장원영 나오는 무대에 ‘싸늘한 표정’

    코쿤, 장원영 나오는 무대에 ‘싸늘한 표정’

    가수 겸 작곡가 코드 쿤스트(코쿤)가 시상식 ‘무표정 리액션’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코드 쿤스트는 ‘2022 MBC 방송연예대상’ 예능 부분 남자 신인상을 받았다. 코드 쿤스트는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 큰 두 짝의 귀를 가지고 내 이름 나오는지도 못 듣고 멍때리는 과거의 내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다”며 사진을 올렸다. 공개된 사진에는 지난 29일 진행된 ‘2022 MBC 방송연예대상’ 축하 무대 장면이 담겼다. 당시 축하 무대를 한 그룹 아이브(IVE)는 시상식에 참석한 예능인들의 이름을 넣어 개사한 ‘After Like’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아이브 멤버 이서는 “코쿤에게 완전히 푹 빠졌단 게 중요한 거지”라는 가사로 노래를 불렀지만 코드 쿤스트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무표정한 채로 리듬을 탔다. 알고 보니 코드 쿤스트는 자신의 이름을 듣지도 못 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어쩐지 못 알아 들은 표정이더라”, “나도 방송 보면서 잘 안 들리긴 했다”, “그래도 너무 귀엽다”, “코쿤 반응이 너무 웃기다” 등 반응을 남겼다.
  • 스무살 터울에 신경전, 펠레와 마라도나 “최고는 둘일 수 없는데”

    스무살 터울에 신경전, 펠레와 마라도나 “최고는 둘일 수 없는데”

    29일(현지시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와 2020년 11월 25일 세상을 먼저 떠난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영예를 놓고 은근히 신경전을 벌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주위에서 부추긴 측면이 있겠지만 말이다. 아르헨티나의 유력 매체 클라린이 펠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리오넬 메시 이전 자국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히는 마라도나와 펠레의 애증 관계를 집중 조명해 눈길을 끈다. 이 매체는 “마라도나와 펠레가 축구계의 양대 산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면서도 두 사람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은근히 신경전을 펼쳤다고 돌아봤다. 첫 만남은 스무 살 위의 ‘대선배’ 펠레가 ‘샛별’ 마라도나를 격려한 4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4월 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펠레의 자택에서 두 사람은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아르헨티나 스포츠 신문 ‘엘그라피코’(El Grafico)가 인터뷰로 기획한 자리였다. 일년 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한 마라도나는 조국이 우승하는 감격을 함께 누리지 못해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펠레는 열일곱 살에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조국에 첫 우승을 안겼는데 마라도나는 펠레보다 한 살 많았는데도 월드컵 출전 기회조차 막힌 것이었다. 펠레는 마라도나에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고,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에 사인까지 해주며 다독였다. 그 응원이 힘이 됐을까?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승 주역으로 발돋움해 1978년의 악몽을 떨쳐냄과 동시에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다. 그런데 둘 사이는 마라도나의 도핑 의혹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리그에서 금지약물에 양성반응을 보인 마라도나에 대해 펠레는 “(도핑은) 새로운 세대의 축구선수들에게 나쁜 사례”라고 비난했다. 마라도나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는 ‘권력에 고개 숙인 기성세대’라고 맞받아쳤다. 2000년 들어서도 펠레는 “브라질에는 마라도나보다 더 좋은 선수들이 넘쳐난다”며 마라도나를 깎아내렸다고 클라린은 보도했다. 둘의 신경전은 2년 뒤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월드컵 개최 준비를 거의 끝낸 상태였고, 브라질 출신 주앙 아발랑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펠레는 일본을 적극 밀고 있었다. 반면 마라도나는 뒤늦게 뛰어든 한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 일은 두 축구 스타의 애증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전히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둘 모두 나이가 들어가며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두 사람은 2016년 프랑스 파리의 광고 캠페인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쌓인 앙금을 풀었다고 클라린은 전했다. 그리고 2년여의 터울을 두고 펠레가 마라도나를 뒤쫓아 올라간 하늘에서 공을 주고받게 됐다.
  • 경북도청 신도시 타워 내년부터 손님 맞는다

    경북도청 신도시 타워 내년부터 손님 맞는다

    준공된 지 3년이 지나도록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한 경북도청 신도시 내 100층 높이의 타워가 내년부터 본격 방문객을 맞는다. 경북도는 새해 1월부터 도청 신도시 내 ‘맑은누리타워’를 제대로 운영한다고 29일 밝혔다. 맑은누리타워는 2019년 10월까지 총 2097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안동시 풍천면 도양리 일대 6만 7004㎡에 조성한 신도시 내 광역소각장(맑은누리파크)의 굴뚝을 활용해 만든 전망대 시설이다. 100m 높이의 전망대엔 휴게공간, 북카페 등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108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이를 위해 현재 안내요원 채용, 견학 프로그램 마련 등 제반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운영은 맑은누리파크 민간투자사업자인 경북그린에너지센터㈜가 맡는다. 이 전망대는 준공 이후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 등을 이유로 제대로 된 손님맞이 개시도 못 한 상태다. 사실상 방치됐다. 맑은누리파크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하회탈 공원을 갖췄고 내년 7월 준공을 목표로 수영장, 찜질방, 체력단련장 등의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다.
  • 與 “노웅래 부결은 이재명 방탄 연습”… 민주, 1월 임시국회 검토

    與 “노웅래 부결은 이재명 방탄 연습”… 민주, 1월 임시국회 검토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을 두고 국민의힘은 29일 ‘이재명 방탄 국회’라며 비판을 쏟아낸 반면 민주당은 ‘검찰의 야당 탄압’을 강조하며 맞섰다. 민주당은 여권의 ‘방탄 국회’ 의혹 제기에도 1월 임시국회를 예고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노 의원 체포동의안을 군사작전하듯 부결했다. 방탄 예행연습을 실시한 것”이라며 “1년 내내 국회를 열어 두고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올 때마다 부결하겠다는 계산”이라고 지적했다. 노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전날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71명 중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로 부결됐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아마 1월 8일 임시국회가 끝나면 (민주당이) 또 방탄 국회 소집을 위해 임시국회를 요구할지 모른다”며 “1월과 7월은 국회가 열리지 않는 게 국회법의 취지인데, 민주당이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겠다”고 했다. 국회의원이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 불체포특권은 회기 중에만 유효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임시국회를 열어 이 대표 등을 보호할 것이라는 취지다. 박찬대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일몰법과 관련된 부분과 국정조사 추가 연장 불가피성 등으로 1월 임시국회가 다시 소집돼야 하지 않겠느냐”며 “아마 쉬지 못하는 국회가 계속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방탄 국회’ 논란에 강하게 방어하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방탄이 아니냐고들 하는데 민주당은 당론이 아닌 자유 의사에 따른 투표를 했다”며 “압도적 반대로 부결이 된 것은 그만큼 많은 의원이 검찰 수사 행태에 문제가 많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 최고위원은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장관이)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한 장관은 전날 본회의에서 검찰이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했다며 녹취록 일부를 공개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적법한 보고 절차에 따라 사건을 보고받고,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표결의 근거자료로서 범죄 혐의와 증거관계를 사실대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제도 마련을 위한 토론회 인사말에서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민주주의 파괴의 도구로 전락했다”며 “야당의 정적을 향해선 없는 사실도 조작해서 보복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 박나래 “트월킹 추다 십자인대 완전히 파열”

    박나래 “트월킹 추다 십자인대 완전히 파열”

    ‘2022 MBC 방송연예대상’ 올해의 예능인상을 수상한 박나래가 십자인대 파열 사실을 털어놨다. 이날 파격 패션으로 시상식에 등장한 ‘나 혼자 산다’, ‘구해줘 홈즈’의 박나래는 올해의 예능인상 수상 후 “올 한해 다리를 크게 다쳤다. 전방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됐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좀 덜 행복한가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행복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십자 중에 일자는 남았구나 했다. 여러분의 행복과 웃음을 위해 남아있는 십자 인대 하나도 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신체적인 성장판은 멈췄을지 몰라도 예능 성장판은 열려 있다. 항상 열심히 성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러자 MC 전현무는 “광고 촬영 현장에서 춤을 추다 전방 십자인대가 끊어졌다고 하더라. 의사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던데”라고 물었다. 박나래는 “축구, 농구, 씨름이 아니고 원래 추던 트월킹을 추다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다행히 원장 선생님이 내년 3월이면 다시 출 수 있다고 하더라. 너무 다행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엄태웅 “다시 태어나도 결혼”…윤혜진 반응이

    엄태웅 “다시 태어나도 결혼”…윤혜진 반응이

    배우 엄태웅이 아내인 발레무용가 윤혜진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보였다. 29일 ‘윤혜진의 What see TV’ 채널에서 윤혜진은 가족들과 한해를 되돌아보며 대화를 나눴다. 윤혜진은 “오늘은 2022년 마지막 영상이 올라가는 날이다”라고 말문을 열며 “엊그제 여러분께 연말 인사하고 새해 덕담을 나눈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갔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엄태웅에게 “남편이 살았다. 원래 같으면 내년에 지천명이었다. 법이 바뀌어서 남편이 다시 49세를 한 번 더 살 수 있고 나는 43세를 한 번 더 살 수 있다”고 좋아했다. 이에 엄태웅은 “다시 살아도 나랑 살 거냐? 결혼 전으로 돌려도?”라고 윤혜진의 마음을 궁금해 했고 윤혜진은 “왜 물어보는 거냐. 한 번 살아본 사람이랑? 또 다른 사람이랑도 살아보고 해야지”라고 답했다. “나랑 다시 할 거야?”라는 윤혜진의 물음에 엄태웅은 “응”이라고 답했고 윤혜진은 “그치. 오빤 좀 그렇겠다. 나 같은 여자는 진짜 없지 않아. 아무리 봐도 없을 거다. 알았으니까 됐다. 빈소리인 건 알지만 기분이 괜찮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 “안 예뻐…” 김수민, SBS 퇴사 이유 밝혔다

    “안 예뻐…” 김수민, SBS 퇴사 이유 밝혔다

    SBS 최연소 아나운서로 주목받았다 돌연 회사를 떠났던 김수민이 퇴사 이유를 털어놨다. 김수민은 지난 27일 “낯부끄럽지만 오늘 저녁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참을 통화하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니 왠지 용기가 나서 길어질 말들을 적어 보아요. 주제는 재능 없음과 도망입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서울예고 다니면서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어쩌면 내 생각보다 나는 미술에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더 성실해지고 열심에 목을 맸지만 고3 때가 되어서는 인정해야 했어요”라며 “선생님은 ‘수민아 근데 나는 네 그림보다 글이 더 좋다’ 하셨고 미대 말고 연대 문화인류학과 어떠니 다른 진로를 제안해주시기도 했거든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은 쉽게 붙는 서울대 미대 1차 탈을 했을 땐 정말 인정해야만 하는 것 같았어요. 재능이 없다는 걸. 그래서 운 좋게 한예종에 붙었을 땐 바득바득 우겼어요. 한예종이 내 재능 없음 논란을 잠재워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김수민은 한예종에서도 재능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그는 “한예종이라도 가지 않으면 정말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믿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고집을 잔뜩 부려서 한예종에 갔어요. 그리고 제대로 느껴야 했어요. 재능이 없다는 걸. 학교에서 세 시간 내내 비만 내리는 태국 예술영화를 함께 보던 날이었는데 모두가 극찬하는 영화의 예술성이 저는 하나도 공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슬펐어요. 나는 그 대화에 낄 수 없어서. 그래서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후 김수민은 진로를 바꿔 아나운서가 됐다. 김수민은 “그렇게 도망쳐서 방송국에 왔는데 또다시 재능 없음을 확인해야 했어요. 모니터링이 괴로웠거든요. 화면 속 나는 정말 예뻐 보이지 않았어요. 방송하는 내가 좋지 않았어요. 방송하는 재능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이 포함이라면 나는 분명 재능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또다시 도망치고”라고 밝혔다. 지금은 진정 자신이 행복해하는 일을 찾았다고 했다. 김수민은 “저는 글 쓸 때 제일 괴롭고 제일 행복하더라고요. 이걸 온갖 짝사랑으로부터 도망치고 나서야 알았어요. 이제야 10대부터 지금까지 기쁘고 괴로울 때 내가 계속 손에서 놓지 않았던 건 글쓰기뿐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누군가 도망치고 싶어 한다면 부디 그러라고 말하고 싶어서요. 재능 없음이 슬프다면 마음껏 슬퍼하되 실망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요”라며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기적처럼, 아무 성과가 없어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온 마음 주게 되는 일도 만나게 될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김수민은 2018년 만 21세에 SBS 24기 아나운서로 입사, SBS 최연소 아나운서로 화제를 모았으나 2021년 돌연 퇴사했다. 또한 퇴사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3월 5살 비연예인 남성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이후 결혼 8개월 만인 지난 11일 아들을 출산했다.
  • 민주당 박찬대 “한동훈 비호감 때문에 ‘노웅래 체포 동의안’ 부결”

    민주당 박찬대 “한동훈 비호감 때문에 ‘노웅래 체포 동의안’ 부결”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노웅래 민주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제안 설명에 나선 것과 관련, 29일 “비호감도를 높여 혹시 가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저렇게 얘기를 했냐는 생각이 상당히 들었다”고 힐난했다. 박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에서 “어쨌거나 한 장관이 부결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인식은 모두가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8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노 의원 체포 동의안을 재석 271명 중 찬성 101명, 반대 161명, 기권 9명으로 부결했다. 앞서 한 장관은 국회에서 노 의원 구속 필요성을 직접 설명했다. 법원은 지난 15일 노 의원에 대해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 동의안을 국회로 송부했다. 박 최고위원은 “(한 장관의)설명 자체가 너무 부적절한 것 같더라”며 “법무부 장관은 개별사건에 대해 구체적 보고를 듣거나 수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오면 기존의 법무부 장관은 체포동의안의 취지나 절차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의원들이 판단해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들은 절차에 대해 동의만 하는 것이지 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검찰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건 내용이나 검찰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듣고 판단하지 않는다”며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한 장관의 저런 제안설명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정도가 아니라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한편, 전날 노 의원 부결에 따른 여권의 비판은 이날도 계속됐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은 국회에서 이재명 방탄을 위한 예행연습을 실시했다. 노웅래 체포동의안을 군사 작전하듯 부결시켰다”며 “민주당은 1년 내내 국회를 열어두고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올 때마다 부결시키겠다는 계산”이라고 비판했다.
  • 함소원, 베트남 이사 후 근황 “♥진화는 혼자 일본”

    함소원, 베트남 이사 후 근황 “♥진화는 혼자 일본”

    방송 조작으로 고초를 겪은 방송인 함소원이 베트남 이사 후 근황을 공개했다. 27일 함소원은 “저희는 그 사이 너무 정신없이 짐 정리, 혜정이 유치원 등록, 정신 하나도 없이 지나갔네요~”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혜정이랑 맛난 것 먹은 후 혜정이랑 쇼핑도 다니고 일본여행간 남편 기다리면서 우린 따뜻한 일상 보내고 있습니다. 남편 도착하면 우린 또 다른 나라로 여행준비 중입니다~ 휴식이라 그런지 멍때리는 시간도 많아져서 그러면서도 여러분들 뵙고싶고 조만간 라방국수후루룩먹방~”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앞서 함소원은 “2023년은 휴식기”라며 1년 동안 태국 및 베트남 등의 나라에서 머무를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계획대로 베트남으로 이주한 함소원은 딸 혜정 양과 쇼핑도 즐기고 맛있는 음식도 먹는 등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2017년 18세 연하 진화와 결혼한 함소원은 슬하에 딸을 하나 두고 있다. 과거 방송 조작 논란으로 고초를 겪었다.
  • 기안84, 탈모인이었다…700모 모발이식수술

    기안84, 탈모인이었다…700모 모발이식수술

    웹툰 작가 기안84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돈으로 해결한 일화를 밝혔다. 기안84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인생84’에 올라온 ‘기안84, 주호민의 고민 상담소’라는 영상에 출연했다. 한 구독자가 두 사람에게 “탈모 예방법 및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질문했고, 기안84는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까지 3대가 탈모였다”라고 말했다. 기안84는 “나는 빼도 박도 못한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8세 때부터 ‘대다모’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탈모에 대해 공부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쓰오·검은콩·검은깨 등을 섞은 가루를 볶아서 들고 다니면서 항상 먹었는데, 사실 탈모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예방법은 돈이다. 돈이 있다면 모발을 심을 수 있다. 나도 700모 심었다”고 털어놨다. 주호민은 “난 방어에 실패했다. 탈모인지 긴가민가한 순간이 왔을 때 괜찮다는 주위 사람 말을 믿으면 안 된다. 엄마는 항상 탈모가 아니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탈모인가 싶으면 탈모다. 그땐 항복이다”라고 말했다.
  • 소프트제국, ‘2022 벤처창업진흥 유공 포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 수상

    소프트제국, ‘2022 벤처창업진흥 유공 포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 수상

    소프트제국(대표이사 최명수)은 ‘2022 벤처창업진흥 유공 포상’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고 28일 밝혔다. 벤처창업진흥 유공 포상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는 행사로, 우수 벤처기업과 창업기업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자리다. 2022 벤처창업진흥 유공 포상은 지난 4월 18일부터 6월 17일까지 접수를 받고, 16.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류심사, 현장점검, 면접 등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벤처 창업 생태계에 기여하고, 국내외 산업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최종 수상자를 선정했다. 소프트제국은 창립 이후 연구 개발에 매진해 블록체인 및 인증 분야 기술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다양한 국가 사업에 참여하여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창업 후 매년 약 50% 매출성장을 통하여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하게 됐다. 최명수 소프트제국 대표는 “우리나라는 IT강국이지만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나도 없는 소프트웨어 분야 후진국이다. 소프트웨어로 세계를 제패해보자는 창업 이념이 벤처창업진흥 유공 포상이라는 성과로 이어져 기쁘다”며 “앞으로 블록체인, 인증, 전자문서 유통 분야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으로 성장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소프트제국은 일자리 창출과 매출성장, 기술개발 성과를 인정 받아 이미 고용노동부 강소기업 선정, 고용노동부 청년 친화 강소기업 선정, 경기도 유망중소기업 선정, 경기도 일자리 우수기업 선정, 경기도 스타 기업 선정, 고용노동부 장관상, 산업통자원부 장관상 등 다양한 인증 및 수상을 한 바 있다. 소프트제국은 블록체인 서비스 플랫폼과 간편인증 솔루션 및 전자문서 유통 및 보안 솔루션을 연구개발 및 공급하는 스타트업으로 공공, 교육, 금융, 기업 등 약 200여 개의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제 창업 5년 차인 스타트업으로 약 50개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특히 블록체인 및 인증 관련 약 30여개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 브라질-아르헨 공동화폐 나올까?…남미 공동시장 가시화 [여기는 남미]

    브라질-아르헨 공동화폐 나올까?…남미 공동시장 가시화 [여기는 남미]

    남미 공동 화폐 창설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남미 경제의 양대 산맥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남미 공동 화폐 창설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7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세르히오 마사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최근 브라질을 방문, 상파울루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을 만났다. 새 브라질 정부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페르난두 아다지와도 회동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지역 통합과 에너지 협력 등 경제협력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하지만 단연 주목을 끈 건 남미 공동 화폐 가능성이었다. 마사 장관은 “경제, 금융, 인프라 등을 아우르는 통합이 추진될 것”이라면서 “남미의 지역통합은 통화 교환에서부터 공동 화폐의 꿈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게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미 공공 화폐는 이미 2000년대 초반 가능성이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기대감이 유난히 크다. 현지 언론에는 스페인어로 남쪽이라는 의미의 단어 ‘수르’라는 가칭으로 이미 불리고 있을 정도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르헨티나 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양국이 추진하는 건 단일 화폐가 아니라 공동 화폐”라면서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긴 이르지만 단일화폐와 공동화폐는 비슷한 것 같지만 개념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2003~2011년 집권한 룰라 다 실바 당선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공동 화폐 찬성론자다. 재임 때 남미공동시장 화폐를 만들자고 했던 그는 지난 대선에서도 남미 공동 화폐를 창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룰라 다 실바 당선인은 대선 유세 때 “브라질과 중남미 국가와의 관계를 복원하겠다”면서 “신이 원하신다면 공동 화폐를 창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달러에 종속되는 건 더 이상 중남미에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면서 남미 공동 화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르헨티나도 의회가 남미 공동 화폐에 대한 포럼을 개최하는 등 남미 공동 화폐 창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 자릿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선 공동 화폐 창설이 물가를 잡는 지름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당장 브라질 헤알화와 페소화의 페그제부터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는 가운데 공동 화폐가 추진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남미 각국이 무역에서 달러를 배제하고 공동 화폐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지역통합에는 엄청난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부 고위관계자는 “남미 통합에 유난히 적극적인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남미는 이제 확 달라질 것”이라면서 “침체했던 남미공동시장이 부활하고 공동 화폐 창설은 가장 가시적이 결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금수저’ 英총리, 무료 급식 노숙인에게 “현재 직장은?”

    ‘금수저’ 英총리, 무료 급식 노숙인에게 “현재 직장은?”

    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노숙인 쉼터에서 배식 봉사를 하다가 나눈 대화 내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수낙 총리가 노숙자에게 건넨 질문을 놓고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가디언·로이터통신·ITV뉴스 등에 따르면 수낙 총리는 성탄절을 앞둔 지난 23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노숙자 쉼터를 찾아 배식 봉사 활동을 했다. 당시 현장을 담은 영상에서 수낙 총리는 한 남성에게 음식을 배분하며 여러 질문을 건넸다. 수낙 총리는 “전에도 방문한 적 있냐”고 질문한 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끼니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무료 배식을 받으러 온 노숙자에게 “지금 직장이 있느냐”라고 물은 것이다. 남성이 “현재는 노숙인이다. 그런데 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답하자, 수낙 총리는 “무슨 사업에 관심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남성이 “금융업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수낙 총리는 “나도 옛날에 금융업에 종사했었다. 금융업이면 영국 전역에서 일을 구할 수 있겠다. 어딜 들어가고 싶으냐”고 재차 질문했다. 이에 노숙자는 “잘 모르겠다. 일단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잘 넘기고 싶다”고 답했다. 수낙 총리는 모이번에는 “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성은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며 “자선단체에서 마련해주는 임시 숙소에 들어가고 싶다”고 답했다. 장관시절 주유소 직원 차로 보도사진 이 동영상이 영국 방송 ITV의 트위터 계정을 타고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총리가 노숙자 등 서민의 실정을 너무 모른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안젤라 레이너 영국 노동당 부대표는 참담하다고 개탄했다. 노동당의 제스 필립스 의원은 트위터에 “가난은 심화하는데 수낵은 봉사단체 종사자로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소셜미디어(SNS)에는 평범한 영국인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총리라고 평가하는 댓글들이 적지 않게 달렸다. 그는 영국에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거친 데다가 천문학적 재산을 보유한 인도 재벌가 부인을 둬 1조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금수저’ 정치인으로도 통한다. 재무장관 시절인 지난 3월에도 유가가 내려간 것을 홍보하기 위해 직접 주유소에서 기아 리오에 기름을 넣는 장면이 담긴 보도사진을 유포했다가 서민 흉내를 낸 것 아니냐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 리오는 주유소 직원의 차였다.英총리에 오른 첫 비(非) 백인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수반 리즈 트러스 총리가 44일만에 낙마한 후 차기 영국 총리에 오른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은 1980년 5월생으로 만 42세다. 1812년 로버트 젠킨슨 이후 210년 만에 최연소 총리에 등극하게 됐다. 수낙은 인도 출신 이민 3세여서 비(非) 백인 첫 총리이기도 하다. 그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신분제)에서 최상위층인 브라만 계급으로 영국에서도 의사 아버지, 약사 어머니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수낙은 명문 사립 기숙학교인 윈체스터칼리지, 옥스퍼드대 PPE(철학·정치·경제학),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를 거쳐 골드만 삭스에서 일했다. 미국 유학 시절 만난 아내 악샤타는 ‘인도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나라야나 무르티 인포시스 창업자의 딸이다. 악샤타가 가진 인포시스 지분만 약 6억9000만 파운드(1조930억원)에 달한다. 수낙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수반으로 기록되게 됐다. 2015년 정계에 입문한 수낙은 장관 경력이 없었지만 39살이던 2020년 존슨 총리에 의해 바로 내각 2인자인 재무장관에 발탁됐다.
  • [김가경의 배회의 기술] 모두의 근황/작가

    [김가경의 배회의 기술] 모두의 근황/작가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십오륙년 동안 만나 온 지인들과 송년 모임을 했다. 감사하게도 모두 무탈하게 지내 왔다. 유쾌한 마음으로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거리 낚지볶음 골목을 지나는데 익숙한 아쉬움이 밀려 왔다. 카페 제제에 그녀가 더이상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스레 그 골목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노점 카페 제제는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던 날 처음 들렀던 곳이다.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던 그녀에게 마음이 가 자주 그곳에 들렀다. 간이 의자에 앉아 골목을 보고 있으면 그녀는 나에게 제제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근황을 들려 주었다. 저렇게까지 알고 있나 싶어 물어보면 누군 아파서, 누군 혼자라서, 누군 거리를 떠돌아서와 같이 사람에 대한 흥미를 넘어선 이유가 있었다. 불필요할지 모를, 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근황을 듣다 보면 나도 그들의 안부를 자연스레 묻게 되곤 했다. 문학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책을 꾸준히 읽는다는 그녀는 한때 소설가가 꿈이었다고 했다. 소설가가 되지 못했던 그녀의 사정과 소설가가 되기 전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다가 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도서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들러 교재를 전해 주며 보충 설명을 덧붙이곤 했다. 그녀의 글을 처음 받던 날, 노트 한 장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을 보고 그러한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건을 생략한 글이었지만 그녀가 겪은 그간의 역경을 나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글에는 피할 수 없는 그녀의 맑은 마음이 묻어 있었다. 그날 글에 쓰지 않은 그녀의 나머지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그녀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래도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이 더 많아요.” 민망한 웃음을 내보이는 나에게 그녀가 위로처럼 한마디 했다. 그 말이 좀 벅차게 들려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했다. 완성된 글이 아니었기에 다음 글을 기약하려는데 당분간 문을 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무허가이니만큼 단속이 잦은 데다 집안에도 사정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간 사정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어 문제가 해결되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녀의 다음 글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그녀가 카페 제제를 그만두게 되어서였다. 처음에는 그녀와 닮은 언니가, 얼마 뒤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 겨우 연락이 되어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 그녀의 삶이 무언가 다른 형태로 전환이 되고 있었기에 정리가 되면 만나자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녀가 없는데도 나는 종종 곁눈질을 하며 제제 근처를 지나다닌다. 혹시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보면 그녀가 나에게 전해준 모르는 사람들의 근황이 떠오르곤 한다. 누가 아프든 아프지 않든, 그녀의 눈에 밟힌 모든 사람들이 새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그 골목을 돌아 나왔다.
  • [기고] 반려견 정기검진과 담낭 질환/윤용석 샤인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기고] 반려견 정기검진과 담낭 질환/윤용석 샤인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담낭에 슬러지(찌꺼기)가 심해서 점액화됐어요. 비장에 5㎝나 되는 종괴도 보이고, 간염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이 정도면 꽤 오래 고생했을 텐데 건강검진은 언제 하셨어요?” 검사 결과를 보고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소리 높여 물었다. 발랄한 성격의 13살 푸들, ‘버터’는 지금까지 중성화 말고는 수술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종종 식사를 거르기도 했지만 워낙 활동성이 좋았기 때문에 그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동안 수술한 수백 건의 담낭 질환 강아지는 대부분 이런 경우가 많았다. 1년에 한 번, 아니 2년에 한 번만이라도 건강검진을 했다면 초기에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부분이다. 담즙은 간에서 생성돼 담낭(쓸개)에 저장돼 있다가 담관을 통해 소장으로 배출돼 지방의 소화를 돕는다. 쓸개즙이라고도 하며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소화액이다. 담낭 질환은 중연령(8~10세) 이상의 강아지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초기에는 식욕이 떨어지고 구토를 하거나 컨디션이 저하된다. 보호자들은 그저 ‘강아지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인가?’ 하고 간과하기 쉽다. 결국 강아지가 아예 식사를 거부하거나 심한 구토를 하고 황달이 보이는 상태가 돼야 동물병원을 찾는 보호자들이 많다. 담낭 질환에는 담낭점액종, 담석증, 담낭 파열 등 다양한 질병이 있다. 담낭 질환에 영향을 받아 비장에 종괴가 생긴다든지 간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발견이 늦어져 담낭이 파열된 다음 치료를 시작하면 담즙성 복막염이나 패혈증 때문에 사망률이 급격히 높아지므로 담낭 파열 전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진단은 비교적 간단하다. 초음파로 담낭과 담관을 살펴 보면 질병의 유무를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병의 중증도 파악도 가능하다. 보호자들은 담낭을 없애면 소화를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데 담즙은 간에서 발생한다. 간에서 소장으로 담관을 연결해 담즙의 배출과 소화에 문제가 없도록 수술하고 있다. 다만 담낭을 제거한 경우 지방의 소화기능이 떨어질 수 있고,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췌장염이 발생할 수 있어 수술 이후에는 저지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다. 담낭과 간, 췌장은 ‘침묵의 장기’라고도 부른다. 질병이 매우 심각해질 때까지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은 자신의 통증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보호자들이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반려동물 질환은 초기에만 발견하면 수술의 예후도 좋고 회복도 빠르다. 때문에 1년에 한 번 꼭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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